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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書經)>(18) 우서(虞書)(18)
우서(虞書)는 요순(堯舜)의 치적을 기록한 것이라 한다. 우(虞)는 유우(有虞)씨라는 순(舜)의 씨족명(氏
族名)에서부터 유래했다.
내용은 요순의 치적을 위주로 하여 그 당시 큰공을 세웠던 신하들의 말이나 업적도 함께 수록하였다.
수록된 편으로는 요전(堯典), 순전(舜典),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익직(益稷)등으로 나뉘어 져 있는데,
실제로는 순(舜)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사가(史家)들의 추기(追記)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대우모(大禹謨)는 보다 후세의 위작(僞作)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기원전 2333년 부터 2184년 까지로 잡고 있는데, 세계적으로는 바빌론의 건국시기와
인구민족(印歐民族)의 대이동기(大移動期)에 해당한다.
당시의 대륙은 씨족 사회의 발전단계에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황하(黃河)의 범람이었다.
우리는 우서(虞書)로 통하여 요순(堯舜)을 비롯한 대정치가들이 어떻게 이를 극복했으며,
백성들을 어떻게 아꼈는가를 차근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제3편 대우모(大禹謨)(4)
이 편은 앞의 두편과는 달리 <위고문상서>에만 수록이 되어 있다.
신하여 홍수를 다스린지 30년 만에 마침내 성공하였다.
이에 순임금은 우를 사공(司空)의 벼슬에 임명하고 사(娰)라는 성(姓)을 하사 하였으며,
하백(河伯)에 봉하였다. 뒤에 우는 옛부터 중원을 침범하여 소란케 했던 묘족을 평정하고,
장강의 중류지역을 안정시켰으며, 다시는 묘족의 북침이 없게 하였다.
그래서 그도 대우(大禹) 라고 하는 존칭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모(謨)는 모(謀)와 통용자로, ‘좋은 말씀, 훌륭한정책의 계책’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우모는 우(禹)가 순임금의 신하로 있을 때 진언한 여러가지 계책, 곧 정치에 관한 의견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순임금과 우, 그리고 익과 고요의 정치적인 대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대우모는 중국의 고전인 <좌전(左傳)>, <국어(國語)>, <맹자(孟子)>등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앞에 나온 두편보다 문장의 구성이 훨씬 짜임새가 있고, 또한 유려한 필치로 엮어져 있다.
[4] 순임금과 고요가 서로 공적을 칭송하다.
帝曰(제왈) : 순임금이 말했다.
皐陶(고요) 惟玆臣庶(유자신서)
"고요여! 신하와 백성들간에,
罔或于予正(망혹우여정) 汝作士(여작사)
그 누구도 감히 나의 올바른 정치를, 문란케 하지 못함은,
그대가 형벌을 관장하는 사(士)가 되어
明于五刑(명우오형)
오형(五刑)을 밝히고,
以弼五敎(이필오교)
이로써 오륜으로 보필하여,
期于予治(기우여치)
나의 다스림을 도와서 책임을 완수했기 때문이오.
刑期于無刑(형기우무형)
형벌로 다스리면서 형벌이 없어지도록 애썼으며,
民協于中(민협우중)
백성들을 도와서 올바른 길로 이끈 것은,
時乃功(시내공) 懋哉(무재)
그대의 공인 것이니, 더욱 힘써 일해 주시오"
皐陶曰(고요왈) : 이에 고요가 말하였다.
帝德罔愆(제덕망건) 臨下以簡(임하이간)
"임금의덕에 허물이 없고, 아랫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대범하시고,
御衆以寬(어중이관)
백성들을 관대하게 다스리시며,
罰弗及嗣(벌불급사)
벌을 주면서 자손에 미치지 아니 하시고,
賞延于世(상연우세)
상을 주면서 후손에게 까지 미치게 하시며,
宥過無大(유과무대)
실수의 죄는 크지만 관용을 베푸시고,
刑故無小(형고무소)
고의로 범한 죄는 작아도 벌하셨습니다.
罪疑惟輕(죄의유경)
죄가 의심스러우면 가볍게 벌하시고,
功疑惟重(공의유중)
공은 의심스러워도 후한 상을 내리셨으며,
與其殺不辜(여기살불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寧失不經(영실불경)
차라리 법을 지키는 태도를 굽히셨습니다.
好生之德(호생지덕) 洽于民心(흡우민심)
호생(好生)의 덕이, 백성들의 마음속 깊이 스며드니,
玆用不犯于有司(자용불범우유사)
이로 인하여 관리들을 거스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帝曰(제왈) : 순임금이 말씀하셨다.
俾予從欲以治(비여종욕이치)
"나로 하여금 내 마음대로 다스리게 하여,
四方風動(사방풍동)
세상의 백성들이 바람에 고개를 숙이듯 따르게 된 것은,
惟乃之休(유내지휴)
오로지 그대가 진실했기 때문이오"
*순 임금은 우(禹)가 고요를 천거하고 고요의 덕을 칭송하자, 친히 고요에게 치하의 말을 하고 있다.
이에 고요는 모두 순 임금의 덕망에 의해 자기의 맡은 바를 이행할 수 있었다고 순 임금을 극구 칭송하는
대목이다. 정녕 그 임금이요,그 신하인 것이다.
공을 서로 상대방에게로 돌리니 이 얼마나 흐뭇한 광경이겠는가?
고요는 실로 어질고 유능한 신하였다. 그의 덕은 결코 우(禹)에 비하여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우의 치수의 공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우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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