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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02)상서(商書)(50)미자편(微子篇)(1) 은나라는 끝내 망할 것입니다.

             <서경(書經)>(102) 상서(商書)(50)         상(商)나라 시대의 사적을 기록해둔 것이라고 하여 상서(商書)라 일컫게 되었는데, 상(商)은 성탕(成湯)   의 조상이 봉함을 받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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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편 미자편(微子篇)(1)

   미자(微子)는 주왕(紂王)의 이복형이라고하며, 어머니가 미천한 집안의 출신이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다고 <사기>에는 기록하고있다. 이와는 반대로 <여씨춘추(呂氏春秋)>와 정현(鄭玄)이라는 학자

   는 같은 어머니를 모셨다고 하는데, 어느설이 옳은지는 확실치않다. 그런데 미자의 미(微)는 경기(京畿)

   땅 안에 있는 나라의 이름이며, 자(子)는 자작(子爵) 이라는 작위를 이르는 말이다. 이는 미자가 보사(父

   師)인 기자(箕子)와 소자(少子)인 비간(比干)등과 함께 망해 가고 있는 은나라와 자신들이 해야 할 바를

   걱정하여 의논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실이 <금문상서>와 <위고문상서>에 모두 실려 있다. 전하는

   바로는 은나라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 이라고도 하지만 역시 문사(文辭)가 쉽고 뜻이 깊지 못한 점으

   로 미루어 보아 당시의 글이 아닐 것이라는 설도 있다.

 

[1] 은나라는 끝내 망할 것입니다.

  

   微子若曰(미자약왈)

   미자(微子)가 한 말은 이와 같다.

   父師少師(보사소사)

   "보사(父師)와 소사(少師)여!

   殷其弗或亂正四方(은기불혹란정사방)

   은나라는 아마도 천하를 정도(正道)로 이끌어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我祖底遂陳于上(아조저수진우상)

   우리 조상들께서는 이미 고인이 되시어 하늘에 계시는데,

   我用沈酗于酒(아용심후우주)

   우리들은 술에 깊이 빠져 있으며,

   用亂敗厥德于下(용란패궐덕우하)

   이리하여 이 세상에서 조상의 덕을 어지럽히고 망쳤습니다.

   殷罔不小大(은망불소대)

   은나라는 세력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好草竊姦宄(호초절간구)

   모두 약탈하고 도둑질하여 안팎으로

   난을 일으키기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으며,

   卿士師師非度(경사사사비도)

   경사(卿士)들까지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서로 배우고 있고,

   凡有辜罪(범유고죄) 乃罔恒獲(내망항획)

   무릇 허물과 죄가 있는 사람도, 죄인으로 다스리고 있지 않습니다. 

   小民方興(소민방흥) 相爲敵讎(상위적수)

   작은 백성들도 함께 일어나, 서로 적이 되어 원수처럼 싸웁니다.

   今殷其淪喪(금은기륜상) 若涉大水(약섭대수)

   이제 은나라가 멸망으로 빠져드는 것이, 마치 큰 내를 건너려는데,

   其無津涯(기무진애)

   나루터도 언덕도 없는 것과 같으니,

   殷遂喪越至于今(은수상월지우금)

   은나라는 끝내 망할 것인데 바로 그때가 지금인가 합니다"

 

   (왈) : 미자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父師少師(보사소사)

   "보사(父師)와 소사(少師)여!

   我其發出狂(아기발출광)

   우리가 그 미친 짓을 발출했기 때문에,

   吾家耄遜于荒(오가기손우황)

   우리나라의 늙은이들이 황야로 달아나거늘,

   今爾無指告予(금이무지고여)

   이제 그대들은 나에게 알려주는 자가 없으니,

   顚隮若之何其(전제약지하기)

   넘어지고 떨어지는 것을 어찌해야 하겠는가?"   

 

   *미자는 기자와 비간을 모신가운데 은나라가 절망적인 상태에 있음을 말하고있다. 은나라의 도는 땅에

    떨어져 노소를 막론하고 도둑질과 반란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관리들마저도 부패할 대로 부패

    해졌으며, 백성들은 서로 죽이는 등 도저히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길이 없으니 자기로서도 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요지를 담고 있다. 이편의 보사와 소사라는 관명은 주(周)나라 제도와 흡사하

    다. 다음에 상세히 논하겠지만 주나라 초기에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의 삼공을 두었고,소

    사(少師), 소부(少傅), 소보(少保)를 두어서  삼공을 보좌하게 하였는데,  이를 삼고(三孤)라 하였으며,

    또 고경(孤卿)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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