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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65)주서(周書)(62)낙고편(洛告篇)(6) 성왕이 주공(周公)을 후사로 세우다.

             <서경(書經)>(165) 주서(周書)(62)         주서는 주나라의 사관이 기록하여 모아놓은 역사이다. 주나라의 시조는 기(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   은 희(姬)인데, 제곡(帝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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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왕이 주공(周公)을 후사로 세우다.   

 

   戊辰(무진) 王在新邑(왕재신읍)

   무진일(戊辰日), 왕은 새로운 고을에서,

   烝祭歲(증제세)

   겨울 제사인 증제(烝祭)를 올리고, 다음해의 풍년을 기원하였는데,

   文王騂牛一(문왕성우일) 武王騂牛一(무왕성우일)

   문왕에게 붉은 소 한 마리를, 무왕에게도 붉은 소 한 마리를 바쳤다. 

   王命作冊逸祝冊(왕명작책일사책)

   왕은 책서(冊書)을 짓도록 명하고

   문서 관리인 일(逸)에게 책문(冊文)을 읽게 하였다.

   惟告周公其後(유고주공기후)

   그리고 주공(周公)을 후사(後嗣)로 세웠음을 보고하였다.

   王賓殺禋(왕빈살인)

   왕이 주공을 빈객으로 대접하여 짐승을 잡아 인제(禋祭)를 올리자,

   咸格(함격) 王入太室祼(왕입태실관)

   모든 심령들이 강림하였으며, 왕은 침묘(寢廟) 가운데

   위치한 큰 방에 들어가서 술을 땅에 뿌렸다.

   王命周公後(왕명주공후) 作冊逸誥(작책일고)

   왕이 주공을 후사로 세울 것을 명하여, 문서관인 일(逸)이 널리 알렸다.

   在十有二月(재시유이월)

   주공이 섭정이 끝난 것은 12월이었는데,

   惟周公誕保文武受命(유주공탄보문무수명) 惟七年(유칠년)

   이는 주공이 문왕과 무왕이 받은 천명을 지킨 지, 7년 째였다.   

 

     

 

    *이 글에서는 낙읍(洛邑)이 하나의 큰 고을로 규모를 갖추게 되었으므로 이에 제사를 올린 상황을 기록

     한것이다. 주공을 다시 성왕(成王)의 후계자로 삼았다고 하였으나, 그러나 주공(周公)은, 어린 조카 성

    왕을 도와 섭정하여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의 반란을 평정하고 제도와 예약을 정비 하였으며, 왕실의

    기초를 다진 후에 조카인 성왕이 장성하자, 스스로 왕실을 떠나 노(魯)나라를 책봉받게 되었다. 여기서

    분명히 밝혀 둘것은 이글이 낙읍이 도읍지로 책정이 되어서 성왕이 천도를 한 사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낙읍은 단지 주나라의 세력이 동방으로 확대가 되자, 그 거점으로 건설되었을 뿐이다. 종주(宗周)가 주

    (周)나라의 처음 도읍이었고, 낙읍(뤄양)은 주공이 개척하고 나서, 훨씬 이후인 주(周)나라 평왕(平王)

    때 이 곳으로 동천(東遷)을 하게 된다. 지도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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