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MnPLhzZmovk 

 

 

https://www.youtube.com/watch?v=SDOyFrYP8zk&t=201s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1927년>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A7%80%EC%9A%A9

 

정지용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지용(鄭芝溶, 1902년 6월 20일 (음력 5월 15일)[1] ~ 1950년 9월 25일)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아명은 지룡(池龍)이다.[2] 대한민국에서는 납북 여부와 사인이 모호하여 한때 이름이 '정X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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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향수〉(鄕愁)
  • 유리창
  • 〈바다9〉
  • 〈비〉
  • 〈장수산〉(長壽山)
  • 소설 〈삼인〉(三人)
  • <춘설>
  • <고향>

 

시집

 

https://kydong77.tistory.com/20806

 

정지용 - 고향, 향수, 별, 유리창, 백록담, 鴨川(압천)/ 생가와 기념관

향수 ㅡ 정지용(1902-1950)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1] 황소[2]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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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백이 황소'

https://ko.wikipedia.org/wiki/%EC%B9%A1%EC%86%8C

 

칡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칡소란 한우 품종의 하나이다. 칡덩굴 같이 짙은 갈색과 검은색 무늬를 가진것이 특징이다. 옛날에는 얼룩소라고도 불렀다. 3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아 여러 지자체에서 육성 노력을 하고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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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소란 한우 품종의 하나이다. 칡덩굴 같이 짙은 갈색과 검은색 무늬를 가진것이 특징이다. 옛날에는 얼룩소라고도 불렀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9%A9%EA%B5%AD%EC%8B%A0%EB%AF%BC%EC%84%9C%EC%82%AC

 

황국신민서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일본어: 皇国臣民ノ誓詞 ‘황국 신민의 서사(맹세)’[*])[1][2]는 황국 신민화 정책으로 일본 제국이 1937년에 만들어내 조선인들에게 외우게 한 맹세이다. 학교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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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용]

한국어 번역

  1.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하겠습니다.
  3. 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성인용]

한국어 번역

  1. 우리는 황국신민(皇國臣民)이다. 충성으로써 군국(君國)에 보답하련다.
  2. 우리 황국신민은 신애협력(信愛協力)하여 단결을 굳게 하련다.
  3.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힘을 길러 황도(皇道)를 선양하련다.

 

*'황국신민화시대'에 출생한 정지용에게 있어 '고향'이란 곧 조국(祖國) 모국(母國), 고국(故國)의 동의어이다.

조국(祖國)은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 또는 자기의 국적이 속하여 있는 나라를 일컫는 말이다.[1] 자기가 태어난 나라는 모국(母國)이라 일컫는다.[2] 타국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자기 나라를 "모국"이라 일컫거나 자신의 조상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를 고국(故國)이라 부르기도 한다.[2][3] 

한국에서는 흔히 '우리나라'라고 부른다.[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우리 사회주의조국을 정답게 이르는 의미로 '어머니조국'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12세 결혼

휘문고보졸업, 1929년 (27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귀국 후 모교 영어교사로 활동함.

<향수> 22세 지음. 1927년 발표

 

 

https://ko.wikisource.org/wiki/%EC%A0%95%EC%A7%80%EC%9A%A9_%EC%8B%9C%EC%A7%91

 

정지용 시집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1926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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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시문학사(詩文學社)에서 간행하였고, 1946년에 건설출판사(建設出版社)에서 재판하였다. 작자의 첫 시집으로 모두 5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총 87편의 시와 2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시집의 맨 뒤에 박용철(朴龍喆)의 발문이 붙어 있다.

1부

2부

3부

4부

5부

발문(跋文)-박용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2094

 

백록담(白鹿潭)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B6판. 136면. 1941년 문장사(文章社)에서 간행하였고, 1946년 백양당(白楊堂)에서 다시 나왔다. 작자의 제2시집으로, 모두 5부로 되어 있으며 1∼4부에 25편의 시와 5부에 8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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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판. 136면. 1941년 문장사(文章社)에서 간행하였고, 1946년 백양당(白楊堂)에서 다시 나왔다. 작자의 제2시집으로, 모두 5부로 되어 있으며 1∼4부에 25편의 시와 5부에 8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1부는 「장수산(長壽山) 1」·「백록담」·「비로봉(毘盧峰)」 등 18편, 2부는 「선취(船醉)」·「유선애상(流線哀傷)」의 2편, 3부는 「춘설(春雪)」·「소곡(小曲)」의 2편, 4부는 「파라솔」·「슬픈 우상」·「별」의 3편, 그리고 5부는 「노인과 꽃」·「꾀꼬리와 국화」 등 산문 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백록담(白鹿潭))]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A7%80%EC%9A%A9

 

정지용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지용(鄭芝溶, 1902년 6월 20일 (음력 5월 15일)[1] ~ 1950년 9월 25일)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아명은 지룡(池龍)이다.[2] 대한민국에서는 납북 여부와 사인이 모호하여 한때 이름이 '정X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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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 1902년 (0세) 6월 20일(음력 5월 15일) 옥천군옥천면수북리238번지일원 정태국과 정미하의 장남으로 태어남.
  • 1909년 옥천군옥천면하계리 40번지로 이주해서 정착생활
  • 1910년 (8세)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 죽향초등학교)에 들어감.
  • 1913년 (11세) 동갑인 송재숙과 결혼
  • 1914년 (12세)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함.
  • 1918년 (16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함. 학교성적은 우수하고 집안이 어려워서 교비생(校費生)으로 학교를 다녔음.
  • 1922년 (20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함.마포 하류 현석리에서 첫 시작품인 〈풍랑몽〉을 씀.
  • 1923년 (21세) 일본 교토시의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함.
  • 1924년 (22세) 시 〈석류〉· 〈민요풍 시편〉을 씀.
  • 1925년 (23세) 〈새빨간 기관차〉· 〈바다〉등을 씀.
  • 1926년 (24세) 《학조》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등 9편의 시, 《신민》· 《문에시대》에 〈Dahlia〉· 〈홍춘〉 등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
  • 1927년 (25세) 〈뻣나무 열매〉· 〈갈매기〉 등 7편의 시를 교토와 옥천을 오가며 씀. 《신민》· 《문에시대》· 《조선지광》· 《청소년》 · 《학조》 지에 〈갑판우〉· 〈향수〉등 30여편의 시를 발표함.
  • 1928년 (26세) 장남 정구관 출생(음력 2월). 《동지사문학》 3호에 일어시 〈馬1· 2〉를 발표함.
  • 1929년 (27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함. 12월에 시 〈유리창〉을 씀.
  • 1950년 (48세)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구금됨.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평양 감옥으로 이관되는 도중 또는 이관된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음.

 

[아래는 위 사진에서 생략한 부분] * 기증자 밝히겠다고 시를 잘라 먹으서야 쓰겄냐.

내도 이가 아퍼서

고향 찾어 가오

배추꽃 노란 사월 바람을

기차는 간다고

악물며 악물며 달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tL7P6FL3eU 

 

 

https://www.youtube.com/watch?v=kQlq64SUEwI 

 

 

https://www.youtube.com/watch?v=C5Kf77z0Y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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