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_7-DSoaOPeI 

 

 

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을 합편한 책으로 세조 5년(1459)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책 이름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에서 앞의 두 글자씩을 따온 것이다. 두 책을 합편하면서 상당한 개편이 이루어졌다. 권1에는 訓民正音諺解가 실려 있는데, 그 초간본으로 추정되는 책이 전한다.
《월인석보》의 체재는 부왕(父王)인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세조가 지은 <석보상절>을 그에 대한 주석의 형식으로 하였다. 이 책에 쓰인 한글 글자는 그 획(劃)이 한글 창제 당시와는 달리 부드러운 필서형으로 바뀌어 한글 자형(字形)의 변천 역사를 보여준다.
내용면에 있어서도 《석보상절》과 함께 한글 창제 직후의 산문자료로서 국어학, 국문학, 불교학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전체 25권 가운데 원간본으로 권 1, 2, 7~15, 17~20, 23, 25의 17권이 전하고, 16세기 이후에 다시 간행된 중간본도 있다. 대부분이 국가 지정문화재인 보물(745호, 935호)로 지정되었다.

2. 자료 원문
월인석보_권1.hwp

월인석보_권7.hwp

 

 

https://ko.wikipedia.org/wiki/%EC%9B%94%EC%9D%B8%EC%84%9D%EB%B3%B4

 

월인석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1459년(세조 5년)에 편찬한 조선의 불교 서적이다. 이 책은 조선 왕조의 석가 일대기로서는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석보는 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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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1459년(세조 5년)에 편찬한 조선의 불교 서적이다. 이 책은 조선 왕조의 석가 일대기로서는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석보는 석가모니의 연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며, 《석보상절》은 1446년(세종 28년)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불교 서적을 참고하여 한국어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다. 1447년(세종 29년)에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찬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월인천강지곡》이다.

1457년(세조 3년) 아들인 의경세자가 죽자 세조가 부왕 세종대왕과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내용을 증보, 수정하여 1459년(세조 5년)에 간행한 것이 《월인석보》이다. 《월인석보》는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 보면, 이 책은 조선 전기 2대에 걸쳐 임금이 편찬·간행한 것으로 한국 최초로 불교 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조선 전기 한국어 연구와 불교학 및 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권1 초간본의 맨 처음에는 훈민정음 언해가 실려 있다.

목차

구성[편집]

현존하는 책이 전질이 아니기 때문에 명확하지 않지만 월인석보는 전체 25권인 것으로 추정된다.[1]

목판[편집]

1569년(선조 2년) 새긴 월인석보의 목판 중 일부가 갑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중 일부가 보물 제582호로 지정되어 있다.

희방사에도 1568년(선조 1년)에 새긴 목판이 있었으나 한국 전쟁 때 불타 사라졌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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