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범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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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치
ㅡ김창범
성복천 버들치 떼는 면도날보다 예민하다.
한 덩어리로 뭉쳐있다가도 누군가 그림자라도 드리우면
순식간에 흩어진다. 전율하는 힘의 덩어리가 예리하게 찢어져
사방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어둠을 밀어내고 달리는
열차의 힘이 어느 순간 머물렀다가 굉음을 지르며 떠나간다.
아, 황홀하다. 저 조용한 물밑에서 일어나는 힘의 시작과
그 해체를 보노라면, 우리의 생명은 황홀하고 처절하다.
생명이란 결국 헤어져 분해되는 것, 어디론가 달려가고 마는 것.
한순간 버들치 떼로 모이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
과거도 미래도 없다. 반짝이는 비늘 빛만 잔상을 남길 뿐이다.
어디에도 허무란 없다. 그들은 어딘가에 열심히 살아있다.
악을 쫓거나 악에게 쫓기는 삶의 밑바닥이 너무나 생생하다.
살아있는 것들은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분해되어
철저히 해체당하지만, 텅 빈 침묵이 모래로 쓸려갈 무렵,
성복천 바닥에 붙어사는 것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생명은 행렬과 무리를 이루며 냇물을 거슬러 온다.
그것은 또 하나의 힘의 덩어리, 또 다른 힘의 혁명,
버들치 떼는 그저 한가롭게 꼬리치며 광장으로 모여들지만,
결국, 거센 물살을 뚫고 저마다 자기 지느러미를 흔든다.
아, 깃발이 되어 몰려나온다. 그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것.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들은 또 다른 세상을 준비한다.
출처/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1년 11월호(Vol. 74)
버들치
버들치는 잉어과에 속한 민물고기로 1급수 물의 대표어종이다. 성장해도 15cm 전후의 작은 물고기로 무리를 이루어 산다. 수원 광교산(582m) 시루봉에서 수원과 용인의 사방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계곡물의 한 가닥이 성복동, 신봉동 골짜기로 흐르면서 옛날부터 “버들치마을”이란 동네를 이루었다. 이곳에서 버들치라는 민물고기가 많이 서식하기 때문이다.
성복천은 광교산 기슭에서 발원되어 좁은 개천을 이루어 흐르다가 탄천에 이어지고 마침내 한강으로 나아간다.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시냇물에 불과하지만 버들치가 죽지 않고 대를 이어 사는 곳이다. 그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하천공사가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어도 버들치는 냇가의 나무와 풀과 함께 끈질기게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성복천에는 청둥오리, 두루미, 참새, 비둘기 등 온갖 새들이 깃들어 산다. 여기에 인근 주민들이 휴식하며 걷는 산책로가 형성되어 성복천은 자연이 선물한 주민들의 복된 자산이 되었다.
[시인 소개]
https://kydong77.tistory.com/20691
김창범 제1시집, 봄의 소리, 창작과 비평사, 1981.
1972년 가을 『창작과비평』에 「산」,「불행」,「달」,「소리」 등 8편의 신인작품을 발표하여 70년대의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는 김창범 시인의 처녀시집.
http://www.dg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57
짐승의 시
거기 묶여 있는 것은
짐승이 아니다
거기 숨죽이고 있는 것은
짐승이 아니다
그러나 주인은
짐승이라고 한다
한 마리 순한 짐승이라고 한다
아, 네 발로 벌떡 일어나
짐승이여 그대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무엇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가
거기 쓰러져 있는 것은
짐승이 아니다
거기 묻혀 있는 것은
말 못하는 짐승이 아니다.
-시집 ‘봄의 소리’
(창작과 비평사, 1981)에서
출처 : 동대신문(http://www.dgupress.com)
김창범 제2시집, 소금창고에서, 인간과문학사, 2017.
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54600
김창범 제3시집, 노르웨이 연어, 보림출판사, 2020,12.4.
노르웨이 연어
북해 저 아득한 바다를 쏘다니다가
거친 파도를 뚫고 달려와 마침내
어판장 도마 위에 네 큰 몸을 눕혔구나.
싱싱한 먹이를 찾아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날카로운 주둥이가 이젠 굳게 닫혔지만,
아직도 매끈한 청비늘을 번쩍이며
네 부릅뜬 눈은 돌아갈 바다를 찾는구나.
노르웨이 연어라는 네 명찰에는
오십오만 원짜리 가격표도 선명한 데,
네 평생의 노동과 사랑과 눈물을
심해 바닷물에 씻어서 잘 거두어 놓았다만,
이리저리 해체당한 네 자유로운 영혼은 어디 갔는가?
고향 가는 길을 찾고 찾아 회귀하는
네 수다한 수고와 희생을
어찌 몇 접시 세상 값으로 매기겠는가?
적나라하게 휘두르는 운명의 칼에
몇 덩이 살코기로 남겨진 연분홍빛 연어를 보라.
우리도 때가 되면 눕혀지리라.
세상이 달아주는 명찰을 붙이고 저 도마에 누워
푸르고 잔잔한 고향 바다를 그리워하리라.
(2019 겨울호, 계간 인간과문학)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창범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안동과 부산에서 성장했다. 동국대 국문학과를 나와 현대경제 기자로 시작하여 한동안 광고전문가로 살았다. 아리랑TV 임원으로 공직을 마치고 목회자로서 선교 활동에 참여했다. 미래한국, 북한구원운동, 손과마음, 더디아스포라선교회 등 북한선교 활동에 참여했으며, 유라시아 지역의 탈북민들을 돕는 사역을 해 왔다. 창작과비평 1972년 겨울호에 ‘산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였고 1981년에 첫 시집 ‘봄의 소리’(창비시선 31)를 출간하고 ‘예수와 민중과 사랑 그리고 시’라는 엔솔로지(1985, 기민사)에 참여했고 30여년이 지나 두 번째 시집 ‘소금창고에서’(인간과문학사, 2017)를 출간하였다. 기타 저서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라”(도서출판 언약, 2007), “북한의 고통 10가지”(손과마음, 2010), “예수의 품성을 가진 크리스천”(역서, 국제제자훈련원, 2005) 등이 있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691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www.youtube.com/watch?v=qZMqj04U76w
https://blog.naver.com/lifehand77/222565358443
집에 관한 단상
ㅡ 김 창범
내 친구는 일흔이 되면 집을 짓겠단다.
은하수처럼 잔잔하게
물 위에 뜬 하얀 집을 짓겠단다.
평생을 일했으니 그만한 위로와 휴식이 필요하단다.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기슭에서 고향처럼 오래 살고 싶은 집,
남은 인생이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위엄도 있고 단조로움도 있고 부러움도 덧입혀
까마득히 높게 올려다 보이는 풍경風響을 달고 싶단다.
집이란 밥 먹고 적당히 일하면서 즐기는 공간이라지만
시간을 쌓아가며 영원 속으로 늙어가는 곳이 아니던가?
누구도 기둥과 지붕과 벽과 창을 넘지 못하고
어느 날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영혼의 겉옷이 아니던가?
그래서 남은 자식에게 유언을 하듯 집을 짓고 싶단다.
겉옷 한 자락이나마 지상에 걸쳐두고 싶단다.
/2014. 봄, 계간 《불교문예〉
[보너스]
https://www.youtube.com/watch?v=SFOsppDcg1g
https://www.youtube.com/watch?v=-jP6mKy0aoI
김용임 노래 동영상의 그림의 두 마리 새는 잘못임. 비익조는 머리부터 발까지 반쪽씩만 가져 한 몸이 된, 동아시아인들의 뇌리 속에서 희망사항을 형상화한 전설상의 새이다.
머리가 둘이면 서로 성장기부터 다른 경험세계를 가진 두 사람은 취향이나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곁에 붙어 있다고 취향이나 가치관이 같아지지는 않는다.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계기만 제공할 뿐이다. 그러나 그 차이란 우열의 기준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당 현종은 왕권유지를 위하여 천하일색 양귀비조차 처형하지 않았던가?
결국 비익조란 이기적 인간들의 희망사항을 담은 전설상의 새일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4trNHg095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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