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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 성도 初唐 시절의 시편

[은자주]성도는 사천성에 속한다. 양자강(揚子江) 상류에 위치해 있으면서 4가지의 강, 즉 양자강, 민장강, 퉈장강, 자링강의 네 강이 흐르는 곳으로 四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도 여기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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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絶句>  * '絶句'란 시의 형식이므로 굳이 시의 제목을 붙이자면 '無題'이다.

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 파아란 강물 위로 나는 새 더욱 희고   

靑山花欲然 

청산화욕연, 푸른 산에 핀 꽃빛이 불타는 듯하다.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 금년 봄도 또 그냥 지나가는구나.

何年是歸年[先韻] 

하년시귀년, 어느 해에나 고향에 갈 수 있을고?

 

< 江村>

淸江一曲抱村流

청강일곡포촌류)  맑은 강 한 굽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데

長夏江村事事幽 

장하강촌사사유) 기나긴 여름 강촌은 만사가 한가롭다

自去自來梁上燕

자거자래양상연) 제비는 마음대로 처마를 들고나고

相親相近水中鷗 

상친상근수중구) 수중의 갈매기는 가까이 가도 날아갈 줄 모른다

老妻畵紙爲棋局 

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 

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드는구나

多病所須唯藥物 

다병소수유약물) 다병한 몸에 필요한 것이란 오직 약물뿐

微軀此外更何求

미구차외갱하구미천한 이내 몸이 달리 또 무엇을 바라리오?

 

〈春夜喜雨〉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내릴 시절을 아나니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봄이 되면 내려 만물을 소생케 하네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비는 바람 타고 살며시 밤에 내려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만물을 적시지만 가늘어 소리도 없네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들녘 길은 낮은 구름과 함께 어두워지고

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 강 위의 고기잡이 배 불빛만 홀로 밝구나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새벽에 일어나 붉게 젖은 곳을 보니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금관성의 꽃들도 비에 젖어 만발하였으리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7615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췌언] 대학 재학시절, 두시언해를 강의하셨던 이병주 선생님께서는 아래의 <희위육절> 원시를 암송하지 못하면 학점을 주시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이 때문에 동기들은 한 학기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새로와 아래에 정리해 본다. 128음절의 독음을 외웠던 게 지금 생각해도 신통한 일이다.

"轉益多師是汝師"는 일생을 사는 동안 名句가 아닐 수 없다. 하늘이 내려다 보고 땅이 쳐다보는데, 지 잘났다고 설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https://m.blog.daum.net/bobae5656/6202

 

희위육절戱爲六絶

희위육절戱爲六絶 재미로 지은 절구 시 여섯 편 其一 유신문장로갱성庾信文章老更成 유신의 문장은 늙어 더욱 격조가 높아져 릉운건필의종횡凌雲健筆意縱橫 구름을 넘는 듯 굳건하고 의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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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一

庾信文章老更成

유신문장로갱성, 유신의 문장은 늙어 더욱 격조가 높아져

*유신庾信(513~581)’ 남북조南北朝시대 문학가. 궁체문학宮體文學의 대표작가.

凌雲健筆意縱橫

릉운건필의종횡, 구름을 넘는 듯 굳건하고 의미도 종횡무진 하였다.

今人嗤點流傳賦

금인치점류전부, 요즈음 사람들 전하는 부(賦)를 꼬집어 비웃지만

不覺前賢畏後生

불각전현외후생, 먼저 이룬 사람이 후생을 두려워함을 깨닫지 못하네.

 

其二

楊王盧駱當時體

양왕로락당시체, 양왕과 노락의 당시의 문체를

*양왕로락楊王盧駱:초당사걸初唐四傑인 양형楊炯·왕발王勃·노조린盧照隣·낙빈왕駱賓王.

輕薄爲文哂未休

경박위문신미휴, 경박하게 글을 지어 아름답지 않다고 비웃네.

爾曹身與名俱滅

이조신여명구멸, 너희들은 몸과 이름 다 없어지나

廢江河萬古流

불폐강하만고류, 강물은 만고에 흐름을 그치지 않으리.

 

其三

縱使盧王操翰墨

종사로왕조한묵, 노조린과 왕발의 문자를 살펴보면

*노조린盧照隣(637~689). 왕발王勃:(650~676). 참신하고 정감情感어린 성당시盛唐詩의 선구자. 

劣於漢魏近風騷

열어한위근풍소, 한나라와 위나라 보다는 못하여 풍소(風騷)에 가깝다.

龍文虎脊皆君馭

룡문호척개군어, 용문과 호척은 모두 임금이 부리는 명마인지라

歷塊過都見爾曹

력괴과도견이조, 빠르게 흙을 밟으며 도읍을 지나니 너희들을 보랴

 

其四

才力應難跨數公

재력응난과수공, 재주와 능력으로는 몇 분의 어른을 넘기 어렵지만

凡今誰是出群雄

범금수시출군웅, 지금은 누가 무리중의 으뜸일까

或看翡翠蘭苕上

혹간비취란초상, 난초위에 비취새는 간혹 보이지만

未掣鯨魚碧海中

미체경어벽해중, 푸른 바다 속 고래는 끌어내지 못하리라

 

其五

不薄今人愛古人

불박금인애고인, 지금 사람 가벼이 말고 옛 사람 좋아하여

淸詞麗句必爲隣

청사려구필위린, 맑고 고운 시는 본받아 이웃삼아야 하네.

竊攀屈宋宜方駕

절반굴송의방가, 굴원과 송옥을 다잡고서 같은 수준이라 여겨

*屈原은 초楚나라의 정치인政治人이자 열혈지조(熱血志操)의 시인詩人으로 초사楚辭의 개척자.

*宋玉은 屈原의 제자로 楚辭와 미사여구美辭麗句의 청각문학聽覺文學을 개척한 시인임.

恐與齊梁作後塵

공여제량작후진, 제나라와 양나라처럼 뒷세상 티끌 될까 두렵네.

 

其六

未及前賢更勿疑

미급전현갱물의, 앞 현인에게 미치지 못함을 의심하지 말고

遞相祖述復先誰

체상조술부선수, 저마다 서로 베끼니 누가 앞설 수 있겠는가?

別裁僞體親風雅

별재위체친풍아, 거짓 문체를 가려내야 풍아와 가까워지나니

轉益多師是汝師

전익다사시여사, 더욱 보태어 스승이 많아지는 것, 이것이 곧 너희 스승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IiBOrDNNM 

 

 

https://www.youtube.com/watch?v=E3XJb6ZF180&t=93s 

 

 

https://www.youtube.com/watch?v=1wCEVdPUHMQ&t=77s

 

 

https://www.youtube.com/watch?v=ewZvLskhPp0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mgjang1&logNo=220199318617 

 

杜甫(두보) - 登高(등고)

登高(등고) 杜甫(두보) 風急天高猿嘯哀 풍급천고원소애 渚淸沙白鳥飛廻 저청사백조비회 無邊落木蕭蕭下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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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1277

 

李白,촉도난(蜀道難)/도연명,도화원기(桃花源記)&귀거래사(歸去來辭)

https://www.youtube.com/watch?v=z--V9CMcHN0 https://www.youtube.com/watch?v=Cm-E76ScJKI&list=RDCm-E76ScJKI&start_radio=1 https://kydong77.tistory.com/15345 의 해제 해설과 구성" data-og-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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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0%B1

 

이백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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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의 아버지가 장사를 하던 무역상이었기 때문에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25세나 26세까지 고향인 촉나라에서 살면서 동암자라는 선인과 사천(四川)의 산들을 오르며 도교를 수양하였다. 25세나 26세에 고향을 떠나 강남을 여행하였으며, 아버지의 유산을 소비하며 몰락한 귀족의 자제들과 어울렸다. 744년 43세에 현종(玄宗)의 칙령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어 장안에 머물렀으나 관리의 따분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44세에 현종의 측근인 고역사와 다투고 사직하였다. 사직 후에 뤄양시에서 산둥까지 두보와 함께 여행하였다. 54세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 인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당 숙종에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이백도 야, 지금의 구이저우 에 유배되었다. 다행히 삼협(三峽) 부근까지 왔을 때에 은사(恩赦)를 받아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1세에 안휘성(安徽省) 당도(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종숙 이양빙(李陽冰)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백이 장강(長江)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백은 고시와 절구를 특기로 했다. 그의 절구는 '신품'이라고 평해졌고, 그의 시재는 천래의 재, 즉 '천재'라고 했다. 그의 시는 스케일이 크고, 또한 박진감이 있으며, 때때로 환상적이다. 또한 그의 시는 매우 자유로우며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 한 번에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동시대에 살았던 11세 연하의 시인 두보가 1자 1구의 조탁에 뼈를 깎는 고심을 기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에 취해 있을 때 현종의 부름을 받고 그대로 궁전으로 들어가 계속해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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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路難(행로난) - 이백(李白)

行路難(행로난) 三首之一(삼수지일)    -  이백(李白 701~762) 세상살이 어려워라 金樽美酒斗十千(금준미주두십천) : 천금짜리 좋은 술이 금 술잔에 그득하고 玉盤珍羞直萬錢(옥반진수치만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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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27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이백, 장진주와 행로난

https://www.youtube.com/watch?v=YLd6X5N5Xto&t=340s 

 

 

https://www.youtube.com/watch?v=75V6a00DtkY 

 

 

https://www.youtube.com/watch?v=jLrpzCyR6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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