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3OLeu-tQyjY
행복
ㅡ 천상병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청산, 1993)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kywind2018&logNo=221394448283
새
ㅡ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출처- [새] 조광출판사(1971)
그날은
ㅡ 천상병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1954년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그만두고 문학에 전념한다.
그는 이 때 『현대문학』에 월평을 쓰는가 하면 외국 서적의 번역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다가 1964년부터 2년 동안 부산 시장의 공보 비서로 일하는데,
이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 생활인 셈이다.
1967년에 어이없게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정도 옥고를 치른 그는
죽을 때까지 다른 직업 없이 오직 시인으로 살아간다.
https://ko.wikipedia.org/wiki/%EC%B2%9C%EC%83%81%EB%B3%91
천상병(千祥炳, 1930년 1월 29일 ~ 1993년 4월 28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문학평론가이다. 호는 심온(深溫), 본관은 영양(潁陽)이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姬路)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일본 효고 현 고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원적지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시 《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작품 목록
- <덕수궁의 오후>
- <어둔 밤에>
- 《새》
- <장마>
- <간 봄>
- <귀천>
- 《주막에서》
-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소릉조(小陵調)
-70년 추석에
천상병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81504&categoryId=60538&cid=60538
https://kydong77.tistory.com/17540
*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았습니다.
https://kydong77.tistory.com/10345
https://kydong77.tistory.com/17536
아래 1번 포스트를 보다가 귀천하신 천상병님을 환기하여
영면하신 어머님과 누님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뿐만 아니라 "어머님과 누님들은 아름다웠다."고 외쳐 봅니다.
이 블로그 글 가운데 반복 게재도 있지만 천상병님이 16꼭지나 있는 걸 보면 나는 그분을 무척이나 존경하나 봅니다.
그 가운데 수락산길에서 만난 시판들을 다시 읽어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pCrwHwt010
https://www.youtube.com/watch?v=vCOvlpfO9CU
*위의 한국어 번역은 오역임.
"오래 살다보면 내 이런 일(죽음)이 생길 줄 알았지."
"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https://m.cafe.daum.net/readandchange/auS1/4491?listURI=%2Freadandchange%2FauS1
많이 인용되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주지하다시피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쓰여진 것으로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이다.
그렇다면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맞는 번역인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니고 더 정확한 번역은
"오래 살다보면 내 이런 일(죽음)이 생길 줄 알았지."가 된다.
[참고]
김종필 전 총리의 自撰 묘비명이 화제다. 이를 옮겨 본다.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html?no=560535
다음은 김 전 총리가 작성했던 묘비명 전문.
「思無邪」를 人生의 道理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을 治國의 根本으로 삼아
國利民福과 國泰民安을 具現하기 위하여 獻身盡力 하였거늘
晩年에 이르러 「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嘆하며
數多한 물음에는 「笑而不答」하던 者-
內助의 德을 베풀어준 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銘 雲庭 自僎
書 靑菴 高崗
[풀이 ]
“한 점 허물없는 생각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나라 다스림 그 마음의 뿌리를 ‘무항산이며 무항심’에 박고 몸 바쳤거늘,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데,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 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7855
https://www.youtube.com/watch?v=-yzAcONK7WY
https://www.youtube.com/watch?v=_xdyRTmEp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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