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고개를 넘으며
허옇게 탈색된 머리카락
뽑히듯 힘겹게 흩날린다.
손자 셋 키워
제 집으로 보낸 일곱 해 만에
당신은 고려장이 다 되었다.
평생을 넘나들던 아리랑고개
능숙한 언덕 하나 허위허위 오르며
여러 차례 멈춰 서서 숨 몰아쉰다.
동양화 속에서 방금 걸어 나온 듯
청아한 자태 은은히 빛나던 청춘
어제 본 듯 생생한데
돌아보는 나를 향해 당신은 손을 들어
어여 먼저 가라고 손짓한다.
역광으로 희뿌옇게 허트러지는 당신의 머리칼에
생애의 실낱같은 오솔길들 빛나는데
나 혼자 어딜 가겠는가?
혼자 갈 길 더는 남아 있지 않아
잠시 돌아보다가
못 본 척 서너 걸음 앞서 걷는 산책길.
폭력에 관한 사유
진달래는 진달래를 믿거나 믿지 않는
허황된 짓은 하지 않는다.
봉숭아는 봉숭아대로
분꽃은 분꽃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사슴은 사슴으로서 신앙에 의탁하지 않으며
사자는 사자로서 허망에 기대지 않는다.
오직 사람만이 무언가에 기댈 뿐이다.
믿거나 믿지 않는 공식에 따라
도려내고 발라 먹는다.
믿음으로 서로를 죽이고
믿지 않는 것으로 살생한다.
살의 쾌감과 살점의 고통으로
드높이 쌓은 탑의 허공을
그들은 문화라고 이름 짓는다.
불가해한 믿음
불가해한 폭력은 무어라고 부를까?
믿음의 폭력
불신의 폭력
문화의 폭력
폭력에 대한 폭력
인간만이 폭력에 기댈 뿐이다.
* 위 자료를 제공하신 시인
https://kydong77.tistory.com/21074
버들치
ㅡ김창범
성복천 버들치 떼는 면도날보다 예민하다.
한 덩어리로 뭉쳐있다가도 누군가 그림자라도 드리우면
순식간에 흩어진다. 전율하는 힘의 덩어리가 예리하게 찢어져
사방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어둠을 밀어내고 달리는
열차의 힘이 어느 순간 머물렀다가 굉음을 지르며 떠나간다.
아, 황홀하다. 저 조용한 물밑에서 일어나는 힘의 시작과
그 해체를 보노라면, 우리의 생명은 황홀하고 처절하다.
생명이란 결국 헤어져 분해되는 것, 어디론가 달려가고 마는 것.
한순간 버들치 떼로 모이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
과거도 미래도 없다. 반짝이는 비늘 빛만 잔상을 남길 뿐이다.
어디에도 허무란 없다. 그들은 어딘가에 열심히 살아있다.
악을 쫓거나 악에게 쫓기는 삶의 밑바닥이 너무나 생생하다.
살아있는 것들은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분해되어
철저히 해체당하지만, 텅 빈 침묵이 모래로 쓸려갈 무렵,
성복천 바닥에 붙어사는 것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생명은 행렬과 무리를 이루며 냇물을 거슬러 온다.
그것은 또 하나의 힘의 덩어리, 또 다른 힘의 혁명,
버들치 떼는 그저 한가롭게 꼬리치며 광장으로 모여들지만,
결국, 거센 물살을 뚫고 저마다 자기 지느러미를 흔든다.
아, 깃발이 되어 몰려나온다. 그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것.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들은 또 다른 세상을 준비한다.
ㅡ출처/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1년 11월호(Vol. 74)
짐승의 시
ㅡ김창범
거기 묶여 있는 것은
짐승이 아니다
거기 숨죽이고 있는 것은
짐승이 아니다
그러나 주인은
짐승이라고 한다
한 마리 순한 짐승이라고 한다
아, 네 발로 벌떡 일어나
짐승이여 그대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무엇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가
거기 쓰러져 있는 것은
짐승이 아니다
거기 묻혀 있는 것은
말 못하는 짐승이 아니다.
-시집 ‘봄의 소리’
(창작과 비평사, 1981)에서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074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www.youtube.com/watch?v=zLMe5UG5LGA
https://www.youtube.com/watch?v=bH2gNrnzY2k
https://kydong77.tistory.com/21076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원컨대 비익조 되고35)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원컨대 연리지가 되자고 했소.36)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하늘은 길고 땅은 오래어도 다할 날이 있으련만37)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들의 恨은 잇고 이어져 끊어질 때 없으리라.38)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076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kydong77.tistory.com/20581
꽃에 관한 사유
ㅡ이명주
우리 동네 아리랑고개
비탈진 도로 옆 빈터엔 튤립이 핀다.
봄이면 좁다랗게 조성된 화단에
단색의 싸구려 튤립뿐만 아니라
황제, 총독, 제독, 영주, 대장 따위의 등급이 매겨졌다던
귀족풍의 다채로운 기품들이
희희낙락 피어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신흥 부르주아들은
터키 산 튤립에 목숨을 걸었다.
귀족이나 대부호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최고가의 취향에 생사결단으로 달려든 튤립 버블.
변종 튤립 알뿌리 한 알에 3,000만 원을 호가하여
꽃 한 송이의 무게가 천금이었단다.
수 세기 만에 꽃의 황제는
배기가스 충만한 대한민국 서울 변두리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길바닥에도 피는
민주적인 천격이 되었다.
나 같은 늙은이의 어슴푸레한 정감에나
겨우 알은체하는 구닥다리 향수가 반갑다.
역사란 이래서 천박하기도 오묘하기도 한 것이다.
꽃은 본디 누군가가 기를 쓰고 피우는
인공 작물이 아니라
저 혼자 그냥 피어나는
빛이거나 그늘이다.
멀쩡히 모르는 척하는 건 고사하고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注,1)
끄떡없는 무명의 빛깔이요 향기요 바람이다.
그런데도 저 혼자 세상에 난 줄 아는
시러베 인간들은 기를 쓰고 주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름 없이 피는 꽃은 없다고.
이름 없는 꽃은 꽃이 아니라고.
이름 불리지 못한 꽃은
아예 피지 않은 거라고 지랄을 떠는
세상이 꼴불견인 꽃들도 있다.
그걸 모르는 이들에겐 차라리
꽃 없는 세상을 던져주는 게 어떨까.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야 저답다는 듯
오늘도 꽃은 어디에서나
그냥 줄기차게 제멋대로 핀다.
* 注1)김춘수 시인의 '꽃'에 대한 변주
비트겐슈타인의 서부극
ㅡ이명주
오스트리아 출신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서부 영화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철강 재벌의 2세로 태어나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형제자매를 비롯해 릴케 같은 가난한 문인들에게 재산을 모조리 나누어 준 뒤 쓸모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산골 초등학교 교사로 취업했다. 나중에 러셀의 제자가 되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철학 교수가 되기도 하지만 그 짓이 '살아 있는 죽음'이라며 노동자로 나섰다.
클라리넷 연주에 탁월했고 휘파람으로 웬만한 소나타와 교향곡을 불어댈 수 있었다는 이 거부의 막내아들은 수학과 철학에 심취한 뒤엔 아예 장식과 허례를 모조리 제거해버린 검약과 정확성과 확실성을 신조로 삼았다. 러셀에게서 진정한 천재의 표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이 언어철학의 거인이 왜 얼핏 천박해 보이는 서부 영화에 환장했을까?
어린 시절에 매료된 '베라 크루스'나 'OK 목장의 결투'를 필두로, 적응하는 데 세월이 꽤 소모된 '황야의 무법자'나 '석양의 건맨' 같은 마카로니웨스턴을 다시 보게 될 때마다 비트겐슈타인을 떠올린다.
아무리 선악의 구별이 불투명할망정 분명하게 갈리는 한 가지 확실성이 있다. 삶과 죽음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단순 명확한 폭력 미학은 왜 찬양받는가? 안개 속처럼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한 욕망의 몽환적 타협을 결투로 한 방에 날려 버리기 때문이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581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무척 심심한 A급시인들]
작품 출처: '문학동네'
문정희, 치마 vs 임보, 팬티
*여고시절 이미 학원문학상을 수상한 분의 '치마'는 무난하나, '팬티'는 시어로서 꺼림칙하네요. '바지'라면 모를까.
치마
ㅡ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팬티
(문정희의「치마」를 읽다가)
ㅡ 임보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치마와 팬티
(문정희 시인의 「치마」와 임보 시인의「팬티」를 읽다가)
ㅡ이수종
치마 속 신전에는 달을 가리고
숨겨주는 창이 있다
바람을 빨아들이는 들창 주위를 서성거리며
은밀히 숨겨진 비밀을 열고 싶어
사내들은 신전가는 길목에서
치마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영역싸움을 벌인다
거기서 이기면 다 되는가
그건 일차 관문에 지나지 않는
창들끼리의 다툼일 뿐
방패를 뚫고 침입하는
선택받은 승자의 개선을 위해서는
목숨을 건 더 큰 한판 승부가 남아 있다
사내의 완력만으로는 성문을 열 수 없다
문 열려라 참깨하고
주문을 외우며
사내들은 치마 앞에서
치마성의 주인과 내통하는
카드 비밀번호를 맞춰 보아야 한다
성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구도자의 인내도 필요하고
계관시인의 음유도 필요하고
말 탄 백기사의 용맹도 있어야 되지만
힘 하나 안들이고 성문을 열고 맞아들이는 경우도
아주 드물게 더러는 있어
치마 앞에서는 여간 근신하며 공을 들여야 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치마는 딱 한번 열렸다 닫히고
더 이상 끄떡도 하지 않은 채
폐쇄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창은 방패를 이길 수 없고
방패는 창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힘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 시집 『시간여행』 (비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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