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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생애와 사상 – 디지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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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즐거움

1. 윤회의 삶은 끝나다

붓다께서는 우루벨라(Uruvela) 마을의 네란자라(Neranjara, 尼連禪河) 강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였습니다.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는 성도(成道)에 관한 여러 경전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동일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사항은 약간 다른 점도 있습니다. 붓다의 성도와 관련하여 악마의 유혹을 물리쳤다는 항마(降魔)의 이야기는 남전(南傳)과 북전(北傳)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항마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경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아함(中阿含)의 <라마경(羅摩經)>1)과 이에 해당하는 팔리어로 씌어진 아리야빠리예사나 숫따(Ariyapariyesana Sutta, 聖求經)2)에서는 항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오직 깨달음만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경전에 의하면, 석존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의 곁을 떠나 마가다(Magadha)국을 편력하던 중 우루벨라의 세나니가마(Senanigama, 將軍村)로 갔습니다. 그곳은 수행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석존은 이곳이야말로 참으로 수행정진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자리를 깔고 수행에 전념하였습니다. 출가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거기에서 자기의 몸이 ‘태어난다’는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도 이 태어난다는 것에 불행의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태어남을 초월한 최상의 평안, 즉 열반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열반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다음으로 자기의 몸이 ‘늙는다’는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 ‘병에 걸린다’는 자연의 법칙, ‘죽는다’는 자연의 법칙, ‘근심한다’는 자연의 법칙, ‘더러워진다’는 자연의 법칙, 이와 같은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 그러한 존재 속에 불행의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초월한 최상의 평안, 즉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 것입니다.3)

그때의 경지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리하여 내게 지견(智見)이 생겼다. 나의 해탈(解脫)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내 마지막 생애이고 이 이상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을 한역 <라마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생()은 이미 다하고, 청정한 수행은 이루어져, 소작(所作)도 모두 가려졌네. 다시 유()를 받지 않으며, 진여(眞如)를 알았다.”

즉 과거로부터 무수한 생애를 두고 정진 노력한 결과가 성숙해서 여기 최고의 이상이 실현된 것이므로 이제는 더 이상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몇 번이고 되풀이되어 온 생사의 유전은 마침내 종말을 고하고, 맑고 깨끗한 수행은 완성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모두 다 해놓았으며 또다시 생사를 되풀이함이 없이 최고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말입니다.4)

이러한 팔리문이나 한역 중아함 <라마경>에는 보리수 아래 앉기까지 있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즉 마을 처녀의 공양, 강에서의 목욕, 길상초의 보시를 받은 일, 그리고 보리수의 일 같은 것은 전혀 적혀 있지 않습니다. 또한 마라 빠삐만(Mara papiman)에 대해서도 한마디 비치지 않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일본의 불교학자 와다나베 쇼오꼬(渡邊照宏)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라마경}은 원래 부처님이 제자들을 위해 자기 자신의 수행시절의 체험을 말한 것을 기록한 경전이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제자들의 수행에 직접 관계가 깊은 사항에 대한 설명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부처님밖에 통용될 수 없는 항마(降魔)나 성도(成道)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간단히 보살은 우루벨라의 세나니가마로 와서 경치가 아름다운 언덕진 숲속에 앉아 좌선,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 더러움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고찰한 결과 그런 것들의 본질을 깨닫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만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가지 사건 특히 마라와의 싸움 같은 것은 전기 작가의 창작이라거나 후세 사람이 첨가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학자가 지금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부처님의 참다운 모습을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불교의 본질에 접근할 수도 없다.”5)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라마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2. 깨달음의 경지

사실 범부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와다나베 쇼오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능력에 알맞은 범위 안에서만 사물을 생각하려고 한다. 선천적인 장님이나 귀머거리는 빛깔이나 소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서 설명을 듣더라도 자기 나름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부처님에 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부처님이 아니므로 부처님의 심경이나 그 경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들이 알 수 없다고 해서 부처님의 특수한 모습이 실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르는 대로 경전에 나오는 말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까지 헤아려볼 수는 있다. 경전에 사용되고 있는 말의 표면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실한 그 뜻을 체득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6)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자신의 체험이 그러한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깨달음을 이룩한 붓다의 경지를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처님께서 성취한 깨달음의 경지는 감히 우리 범부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경지를 ‘이지불이(理智不二)’의 세계, ‘불불상념(佛佛相念)’의 세계, ‘자수용법락(自受用法樂)’의 경계라고 불려집니다. 이지불이(理智不二)란 지혜와 이치가 하나된 상태를 말하고, ‘불불상념(佛佛相念)’이란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서로 생각하는 상태를 일컫는 것입니다.7) 그리고 ‘자수용법락(自受用法樂)’이란 법의 즐거움을 스스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경지는 목적을 달성한 후에 누린 붓다의 만족감과 한동안의 안도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8)

우리 범부는 다만 우러러 존숭(尊崇)하고 찬탄하며 경앙(敬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맑은 거울에는 일시에 만상(萬象)이 환하게 다 그 모습을 비추는 것과 마찬가지로 맑은 마음에는 모든 경계가 다 와서 거기에 머뭅니다. 그 마음을 바다에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경계(境界)를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마음의 바다에 와서 머무는 것입니다. 실로 깨달은 그 분의 심경(心境)은 이와 같은 것일 것입니다. 이를 일컬어 ‘해인삼매(海印三昧)’라고도 합니다.9)

3. 깨달음의 즐거움

여러 율장과 불교문헌들에 의하면 붓다는 성도한 후 4주(28일) 동안 혹은 7주(49일) 동안 보리수 밑에서 또는 그 밖의 다른 나무들 밑에서 홀로 가부좌한 채 열반의 즐거움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팔리 율장(律藏) 대품(大品)에 의하면, 붓다께서 깨달음을 이룬 뒤, 첫 번째 7일 동안은 보리수 밑에서 보냈고, 다시 7일 동안은 아자빨라 니그로다(Ajapala-nigrodha)10) 나무 밑에서 보냈으며, 세 번째 7일은 무짤린다(Mucalinda) 나무 밑에서 보냈고, 네 번째 7일은 라자야따나(Rajayatana) 나무 밑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첫 번째 7일 동안 붓다는 보리수 밑에서 오로지 한자세로 삼매(三昧)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이 때 붓다는 연기(緣起)를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셨다고 합니다.

두 번째 7일 동안에는 모든 것을 비웃는 버릇이 있는 거만한 브라흐마나(Brahmana, 波羅門)의 방문을 받고 그에게 진정한 브라흐마나(바라문)이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때의 상황을 기록한 율장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11)

세존께서는 7일이 지난 뒤 삼매에서 깨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보리수를 떠나 아자빨라 니그로다 나무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다리를 맺고 앉은 채 7일 동안 오로지 한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그때 교만한 바라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존께 와서 안부를 여쭙고 몇 마디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서서 말했습니다.

“사문 고따마(Gotama)여, 그대는 어째해야 바라문이 되는지 아시오? 어떤 수행을 해야 바라문이 되는지 아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감흥을 읊으셨습니다.

“바라문은 죄악을 멀리하고, 마음이 교만하지 않다. 때가 없고 자제(自制)하고, 베다(Veda)에 정통하며 청정한 수행을 완성한다. 바라문이란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니, 그에게 세상 어디에선들 교만함이 있겠는가?”

세존께서는 7일이 지난 뒤 삼매에서 깨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아자빨라 니그로다 나무를 떠나 무짤린다 나무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다리를 맺고 앉은 채 7일 동안 오로지 한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구름이 일어나 7일 동안 비가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날씨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그러자 무짤린다 용왕(龍王)은 자신의 거주처에서 나와 긴 몸으로 세존을 일곱 번 둘러싸고, 고개를 굽혀 세존의 머리 부분을 가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추위나 더위가 세존을 침범치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파리·모기·바람·열기·뱀 등이 세존에게 다가서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7일이 지난 뒤 세존께서는 삼매에서 깨어나셨습니다. 용왕은 날씨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게 갠 것을 보고 세존에게서 자신의 몸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동자의 모습으로 변한 뒤 세존을 향해 합장한 채 경배하며 서 있었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감흥을 읊으셨습니다.

“진리를 듣고 보아
혼자서도 만족함은 즐거움이다.
생명에 대해 조심해서
해치지 않음도 세상의 즐거움이다.
애욕(愛欲)을 극복하여
세상살이에 탐착하지 않음도 즐거움이다.
그러나 내가 있다는 교만심을 누를 줄 아는 것,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

세존께서는 7일이 지난 뒤 삼매에서 깨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무짤린다 나무를 떠나 라자야따나 나무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다리를 맺고 앉은 채 7일 동안 오로지 한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그때 따뿟사(Tapussa)와 발리까(Bhallika)라는 두 상인이 욱깔라(Ukkala) 지방에서 세존이 계신 곳으로 향하는 큰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생에 두 상인의 친척이었던 천신(天神)이 그들 앞에 나타나 세존께 공양을 올리도록 권했습니다.

“벗들이여, 이제 막 깨달음을 이루신 세존께서 라자야따나 나무 아래에 계십니다. 그분께 보리죽과 꿀을 공양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들은 오랫동안 즐거움과 안락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보리죽과 꿀을 가지고 세존에게 다가가 공손히 절한 뒤 한쪽에 서서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보리죽과 꿀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저희들은 오랫동안 즐거움과 안락함을 누릴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생각하셨습니다.

‘여래(如來)가 저들의 손에서 직접 음식을 받을 수는 없다. 나는 어떤 것을 사용하여 보리죽과 꿀을 받아야 할까?’

그러자 사대왕(四大王=四天王)이 세존의 생각을 자신들의 마음으로 알아낸 뒤, 사방에서 다가와 수정으로 만든 네 개의 그릇을 바치며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으로 보리죽과 꿀을 받으십시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수정 그릇으로 음식을 받아 드셨습니다.

두 상인은 세존께서 음식을 다 드시고 그릇에서 손을 거두는 것을 보고서는, 세존의 발에 머리를 숙이며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과 법()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상인 따뿟사(Tapussa)와 발리까(Bhallika)는 세존과 법이라는 두 의지처에 귀의한 최초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위 내용은 팔리 율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따뿟사와 발리까라는 두 상인이 500대의 수레에 짐을 싣고 웃깔라 마을에서 중부 인도로 가던 도중 마침 이 근처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수신(樹神, 일설에는 조령이라 함)의 권고로 앞으로의 이익과 안락을 기원하며 보리죽과 꿀떡을 공양하고 불()과 법()에 귀의함을 허락 받아서 붓다의 최초 재가 신자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12)

그 때는 아직 출가한 제자들의 집단이 없을 때인데, 이와 같이 세속생활을 그대로 하면서 부처님을 받들어 그의 가르침을 실행해 가는 남자들을 우빠사까(Upasaka, 優婆塞)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우루벨라의 숲속에서 고행(苦行)을 할 때에 이미 사람들로부터 대성자(大聖者)로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 부처님이 고행을 버리고 지금 보리수 밑에서 성도한 뒤 아직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벌써 그 거룩한 위덕(威德)에 감화를 입고 있었던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13)

Notes:

1) 大正藏 1권, pp.775c-778c.
2) Majjhima Nikaya (PTS), Vol. Ⅰ, pp.160-175; 南傳大藏經 9권, p.290f.
3) 와다나베 쇼오꼬 지음 · 法頂 옮김, <불타 석가모니> (서울: 샘터, 1990), pp.133-134.
4) 와다나베 쇼오꼬 지음 · 法頂 옮김, <불타 석가모니> (서울: 샘터, 1990), p.134.
5) 와다나베 쇼오꼬 지음 · 法頂 옮김, <불타 석가모니> (서울: 샘터, 1990), p.135.
6) 와다나베 쇼오꼬 지음 · 法頂 옮김, <불타 석가모니> (서울: 샘터, 1990), pp.135-136.
7) 이기영, <석가> 세계대사상전집 5 (서울: 지문각, 1965), p.102.
8) 中村元 著 · 金知見 譯, <불타의 세계(The World of Buddha)> (서울: 김영사, 1984), p.207.
9) 이기영, <석가> 세계대사상전집 5 (서울: 지문각, 1965), p.102.
10) 니그로다(Nigrodha)는 인도 무화과나무에 속한다. 키가 매우 크며, 9-15m 정도까지 자란다. 이 나무는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더위를 피하고 수행하기에 적합하다. 이 나무를 아자빨라(aja-pala)라고 하는데, 아짜빨라란 ‘염소지기’라는 뜻이다. 염소를 치는 목동들이 자주 이 나무 밑에서 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11) Vinaya Pitaka (PTS), Vol. Ⅰ, p.2-4.
12) 中村元 著 · 金知見 譯, <불타의 세계(The World of Buddha)> (서울: 김영사, 1984), p.207.
13) 이기영, <석가> 세계대사상전집 5 (서울: 지문각, 1965), p.102.

범천의 권청(勸請)

1. 정각자의 고독

붓다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직후의 상황들은 팔리어 <율장(律藏)> ‘대품(大品)’에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율장>에 의하면, 붓다께서는 성도 후 5주째 7일 동안은 라자야따나(Rajayatana) 나무를 떠나 아자빨라 니그로다(Ajapala Nigrodha) 나무로 다시 자리를 옮겨 깨달음의 희열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함빠띠(Sahampati)라는 범천(梵天)이 나타나 세존께 법을 설하시도록 간청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범천권청(梵天勸請)’의 설화입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범천의 권청이 있기 직전의 상황을 묘사한 경전이 있습니다.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의 ‘공경(恭敬, Garavo)이라는 경’1)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경전에 묘사된 내용도 세존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후 다섯 번째 주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2) 이 경전에 깨달음을 이룩한 정각자의 고독을 표현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경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괴롭다. 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중하고 가까이해야 하랴.”3)

붓다께서 깨달음을 성취한 것은 더 없는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아도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은 붓다 자신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같은 생각을 지닌 자가 있다면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토로할 대상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무엇인지 모를 고독과 불안을 느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이것을 마스타니 후미오(增谷文雄)는 ‘정각자의 고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4) 그때 붓다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차라리 내가 깨달은 법, 이 법을 존중하고 가까이하면서 살리라.”5)

이 대목을 한역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는 범천의 입을 빌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직 바른 법이 있어서, 세존께서 스스로 깨달아 다 옳은 깨달음을 성취하였나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래께서 공경하고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할 만한 것으로써, 그것을 의지해 살아 가셔야 할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여래 · 응등정각(應等正覺, 다 옳게 깨달은 이)도 바른 법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그것을 의지해 살았고, 미래의 모든 여래 · 응등정각(應等正覺)도 바른 법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그것을 의지해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도 그 바른 법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면서 그것을 의지해 살아가셔야 할 것이옵니다.?6)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에서는 범천의 입을 빌리지 않고, 붓다께서 직접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습니다. “일체 세간에 살고 있는 생류(生類) 중에서 계(, sila) · 정(, samadhi) · 혜(, panna) · 해탈(解脫, vimutti) · 해탈지견(解脫知見, vimuttinanadassana)이 나보다 뛰어난 자가 있다면, 내 마땅히 가까이 하여 그에게 의지하고 공양·공경하겠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아도 세간의 인천(人天) · 마() · 범() · 사문(沙門) · 바라문(波羅門)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다. 일체의 세간에서 계 · 정 · 혜 · 해탈 · 해탈지견이 나보다 뛰어난 자가 있다면 나는 의지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바에야 ‘내가 깨달은 법()’을, 내가 지금 마땅히 가까이 하고 공양·공경하며 성심껏 존중할 것이다.”7)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후세의 불교 용어로 표현하면,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내가 깨달은 법’을 객관화하여 흔들리지 않도록 확립해 놓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거기에서 설법이라는 과제가 새로이 그의 앞에 다가오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8)

2. 범천의 권청

붓다께서 설법하시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은 앞에서 소개한 팔리어 <율장>의 [대품]에 아주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9) 여기서는 가능한 필자의 의견을 생략하고 문헌에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존께서는 7일이 지난 뒤 삼매에서 깨어나셨다. 그리고 라자야따나 나무를 떠나 아자빨라 니그로다 나무로 가서 머무셨다.

그곳에서 홀로 선정(禪定)에 잠기신 세존의 마음에는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도달한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숭고하다. 단순한 사색에서 벗어나 미묘하고 슬기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착하기 좋아하여, 아예 집착을 즐긴다. 그런 사람들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도리와 연기의 도리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또한 모든 행()이 고요해진 경지, 윤회의 모든 근원이 사라진 경지, 갈애(渴愛)가 다한 경지, 탐착을 떠난 경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경지 그리고 열반(涅槃)의 도리를 안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비록 법을 설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만 피곤할 뿐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게송을 떠올리셨다.

‘나는 어렵게 도달하였다.
그러나 지금 결코 드러낼 수 없다.
탐착과 분노에 억눌린 자들은
이 법을 원만히 깨달을 수 없다.
흐름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미묘하고 깊고 보기 어렵고 섬세하니,
탐착에 물든 자들이
어떻게 이 법을 보겠는가?
어둠의 뿌리로 뒤덮인 자들이.’

이와 같이 깊이 사색한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지 않기로 하셨다.
그때 사함빠띠(Sahampati)라는 범천이 자신의 마음으로 세존의 마음속을 알고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세상은 멸망하는구나. 아! 세상은 소멸하고 마는구나. 여래 · 응공(應供) · 정등각자(正等覺者)가 법을 설하지 않으신다면.’

그리하여 사함빠띠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것처럼 재빠르게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진 뒤 세존 앞에 나타났다.

그는 한쪽 어깨에 상의(上衣)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은 다음 세존을 향해 합장하며 간청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선서(善逝)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삶에 먼지가 적은 중생(衆生)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법을 듣는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설하지 않으신다면 그들조차 쇠퇴할 것입니다.”

사함빠띠는 다시 게송으로 간청했다.

“세존 이전의 마가다국에는
어지러운 법이 설해져 있었으니
때묻은 자들이 사유한 것이었네.
이제 세존께서 오셨으니 불사(不死)의 문을 여시어
그 법을 듣고 때 없는 자들이 깨닫도록 하소서.
지극히 현명한 분이시여,
모든 것을 보는 분이시여,
슬픔이 제거된 분이시여,
산의 정상에 있는 바위 위에 오르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법으로 이뤄진 누각 위에 올라서
태어남과 늙음에 정복당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소서.
영웅이시여,
전쟁의 승리자시여,
일어나소서.
빚 없는 대상(隊商)들의 지도자처럼
세상을 다니소서.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아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사함빠띠의 청을 들으신 뒤 그에게 말씀하셨다.

“범천아, 나는 생각했다. ‘내가 도달한 이 법은 보기 어렵고 …… 열반의 도리를 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비록 법을 설한다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만 피곤할 뿐이다.’

범천아, 그때 나에게 이런 게송이 떠올랐다.

나는 어렵게 도달하였다.
……
이떻게 이 법을 보겠는가?
어둠의 뿌리로 뒤덮인 자들이.’

범천아, 이런 깊은 사색 끝에 나는 법을 설하지 않기로 하였던 것이다.”

(사함빠띠 범천은 다시 그리고 또다시 반복해서 세존께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범천의 청이 지극함을 아시고는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켜 부처님의 눈[佛眼]10)으로 세상을 내려다보셨다. 그리고 참으로 여러 중생이 있음을 아셨다. 더러움이 적은 사람, 더러움이 많은 사람, 영리한 사람, 둔한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 가르치기 쉬운 사람, 가르치기 어려운 사람, 그 중에는 후세와 죄과에 대해 두려움을 알고서 사는 사람, 후세와 죄과에 대해 두려움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셨다.

비유하면 연못의 연꽃들과 같으니, 그곳에는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흰 연꽃이 있다. 그들은 모두 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물의 보호를 받는데, 어떤 연꽃은 물에 잠긴 채 자라고 어떤 연꽃은 물의 표면에 있고 어떤 연꽃은 물 위로 솟아 나와 물에 젖지 않은 채 있다.

그와 같이 세상을 내려다보니 참으로 여러 중생이 있었다. ……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사함빠띠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을 열겠으니
죽은 자에 대한 근거 없는 제사는 그만두어라.
범천아,
나는 단지 피로할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덕스럽고 숭고한 법을 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함빠띠는 세존이 설법을 허락하셨음을 알고는 공손히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다음 그곳에서 사라졌다.

이상에서 인용한 ‘범천권청’의 내용을 요약하면, 붓다께서 처음에는 설법을 망설였는데, 사함빠띠라는 범천이 나타나 붓다의 마음을 되돌려 마침내 설법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 심리적 전환의 경위를 이 경은 ‘범천의 권청’이라는 신화적 수법을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범천(Brahma)이란 인도인이 받들어 오던 신인데, 그 신이 붓다의 속마음을 알고 붓다를 예배하면서 설법을 하여 주시도록 권청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름답고 구성면에서도 빈틈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불교학자 마스타니 후미오(增谷文雄)는 “붓다의 설법 결의는 결코 그러한 객관적인 계기로 이루어졌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11)고 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무릇 고대인의 문학적 수법은 거의 심리 묘사를 무시하는 데에 특징이 있다. 그들은 흔히 심리적 과정을 객관적 사건을 통해 묘사한다. 마음속에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표현하고, 훌륭한 생각이 떠오르면 범천 같은 신을 등장시킨다. 그것이 불교 경전의 문학 형식의 상례이다. 그러면 이에 범천 설화의 양식으로써 묘사된 붓다의 설법 결의의 진상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을 푸는 열쇠 또한 앞에 든 ‘정각자의 고독’을 이야기한 경 속에 감추어져 있는 듯하다. 새로운 사상을 자기 혼자 지니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리라. 그것을 어떻게든 남에게 알려서 동조를 얻고 싶어지리라. 인간이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며, 붓다도 인간이기 때문이다.”12)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마스타니 후미오(增谷文雄)는 붓다의 설법 결의는 ‘범천권청’ 때문이라기보다도 ‘정각자의 고독’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여튼 붓다께서 범천의 간청에 의해서 최초로 설법을 하려고 결심한 ‘범천권청’의 설화는 그 실재성 여부를 떠나서 불교의 출발점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즉 깨달음의 내용을 설법의 형식을 통해 객관화시키는 것은 깨달음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13)

Notes:

1) Samyutta Nikaya(PTS) Vol. Ⅰ, pp.138-140; <雜阿含經> 권44, 1188(大正藏 2, p.321); <別譯雜阿含經> 권5, 101(大正藏 2, p.410) 전재성 역주, <쌍윳따 니까야> (서울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1999) 제1권, pp.316-319.
2) Samyutta-Atthakatha(Saratthappakasini), Ⅰ, p.203.
3) Samyutta Nikaya(PTS) Vol. Ⅰ, p.139.
4) 마스타니 후미오 지음 · 이원섭 옮김, <불교개론> 개정2판(서울 : 현암사, 2001), pp.131-134 참조.
5) Samyutta Nikaya(PTS) Vol. Ⅰ, p.139, “Yam nunaham yvayam dhammo maya abhisambuddho tam eva dhamma sakkatva garukatva upanissaya vihareyyan-ti.”
6) <雜阿含經> 44권, 1188(大正藏 2권, p.322), “唯有正法如來自悟成等正覺則是如來所應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者所以者何過去諸如來應等正覺亦於正法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諸未來如來應等正覺亦當於正法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世尊亦當於彼正法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
7) <別譯雜阿含經> 권5, 101(大正藏 2, p.410).
8) 마스타니 후미오 지음 · 이원섭 옮김, <불교개론>, p.132.
9) Vinaya Pitaka(PTS) Vol. Ⅰ, pp.4-7; 최봉수 옮김, <마하박가1> (서울 : 시공사, 1998), pp.47-53.
10) 불안(佛眼, Buddhacakkhu)은 부처님이 갖추게 되는 완전한 직관 능력을 말한다. 오안(五眼)의 하나이다. 오안을 북방에서는 ①육안(肉眼), ②천안(天眼), ③혜안(慧眼), ④법안(法眼), ⑤불안(佛眼)이라고 한다. 그런데 남방전통에서는 ①육안(肉眼), ②천안(天眼), ③혜안(慧眼), ④불안(佛眼), ⑤보안(普眼, samantacakkhu, 두루 빠짐없이 살피는 눈) 등으로 분류한다.
11) 마스타니 후미오 지음 · 이원섭 옮김, <불교개론>, p.134.
12) 마스타니 후미오 지음 · 이원섭 옮김, <불교개론>, p.134.
13) 스가누마 아키라 지음 · 편집부 옮김, <부처님과 그 제자들> (서울 : 봉은사출판부, 1991), p.58.

전도의 개시

첫 설법의 대상

붓다께서는 마침내 법을 설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설법을 결심한 다음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어떻게 설할 것인가를 고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깨달은 성도의 내용과 최초로 다섯 비구들에게 설한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붓다는 우선 누구를 대상으로 첫 설법을 해야할지를 신중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새로이 준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미묘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것을 설함으로써 남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대로 붓다가 획득한 깨달음 자체의 첫 시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1)

붓다는 첫 설법의 상대로 처음 출가하여 수행할 때 선정(禪定)을 가르쳐준 스승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를 생각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라면 분명히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이미 죽고 없었습니다. 두 스승에 관한 이야기는 팔리 “율장(律藏)”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붓다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는 큰 지혜를 갖춘 자였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이 법을 들었다면 곧바로 이해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생각하셨다.

‘이제 누구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까? 그렇다. 다섯 명의 비구가 있다. 그들은 내가 고행(苦行)할 때 늘 나를 보살폈고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다섯 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해야겠다.’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살피셨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청정한 하늘의 눈[天眼]으로 다섯 비구가 바라나시(Baranaasi, 波羅奈城) 근처의 이시빠따나(Isipatana, 仙人住處)에 있는 녹야원(鹿野苑)에 머물고 있음을 보셨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우루벨라에서 좋은 만큼 머무시고는 바라나시로 떠나셨다.2)

붓다께서 처음 법을 설하기 위해 그 대상으로 생각한 두 사람의 스승과 다섯 비구는 모두 출가자들입니다. 전도를 시작함에 있어서 붓다는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의 수행을 쌓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후에 붓다의 제자가 되어 불교 교단의 확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리뿟따(Sariputta, 舍利弗)나 목갈라나(Moggalana, 目(牛+建)連) 등도 모두 이교(異敎)의 가르침을 받들어 제자를 두고 이미 일파를 이루고 있던 출가사문으로부터의 개종이었던 것입니다.3)

이와 같이 초기불교 교단에서 붓다의 설법 대상은 주로 당시 사회의 부유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거나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전에서는 이들을 꿀라뿟따(kulaputta, 善男子)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좋은 가문의 아들’, 즉 ‘귀족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붓다의 가르침은 계급의 차별을 초월해서 만인이 평등함을 전제로 합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평등하게 그 교단에 들어올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출가수행자나 ‘귀족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그의 가르침을 펼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불교 교단에서는 이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일반 세속 사람들도 교단에 합류하거나 재가 신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우빠까와의 만남

세존께서 가야와 우루벨라 사이에 있는 큰길을 가고 계셨을 때였습니다. 그때 아지바까(Ajivaka, 邪命外道) 교도인 우빠까(Upaka, 優波迦)가 세존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존께 여쭈었습니다.

“그대의 감관은 매우 깨끗하고 모습은 아주 밝습니다. 그대는 누구를 모시고 있으며,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또 그대는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고
모든 것에 더럽혀지지 않았고
모든 것을 버렸다. 갈애가 다한 해탈을 얻었다.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따르겠는가?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
천신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자는 없다.
어떤 자도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
나는 세상에서 완전한 자이므로
내가 최고의 스승이다.
나는 홀로 모든 것을 깨달아
적정한 경지에 이르렀고 열반을 얻었다.
법륜을 굴리기 위해 나는 까시로 간다.
어두운 이 세상에 불사(不死)의 북을 울리기 위해.”

*[운영자 주]

이 게송을 붓다의 오도송이라 한다.

https://m.blog.naver.com/nelect/40016835433

 

부처님의 오도송(悟道頌)

부처님의 오도송(悟道頌)       차례 - 부처님의 오도송 - 법정스님 번역 - 부처님의 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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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0778

 

붓다의 오도송(悟道頌)/ <숫타니파타> 3장 무소의 뿔, 5장 피안(彼岸)

https://www.youtube.com/watch?v=XO3tt7HzQK4 https://m.blog.naver.com/nelect/40016835433 부처님의 오도송(悟道頌) 부처님의 오도송(悟道頌) 차례 - 부처님의 오도송 - 법정스님 번역 - 부처님의 오도... blog.naver.com https: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6SUVZHE-W94&t=1465s

 

붓다 오도송 [悟道頌] 김용옥 역/ 시각바 46:55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다.

나는 일체의 제법(諸法)에 물들여지지 않았고 모든 것을 버렸다.

갈애 [渴愛]가 다하고 해탈을 얻었다.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스승으로 칭하랴?

나에게 스승이 없다. 나와 비견할 자도 없다.

천신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자는 없다.

어떤 자도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다.

나는 無上의 스승이다.

나는 홀로 모든 것을 바르게 깨달아 청정하고 적정한 경지에 이르렀다.

나는 법륜을 굴리기 위해 카시의 도성으로 간다.

어두운 이 세상에 불멸의 북을 울리기 위해.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9148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영역]

I have overcome all foes;

I am all-wise;

I am free from stains in every way;

I have left everything;

and have obtained emanipaction by the destruction of desire.

Having myself gained knowledge,

whom should I call my master?

I have no teacher;

no one is equal to me;

in the world of men and of gods no being is like me.

I am the holy One in this world,

I am the highest teacher,

I alone am the absolute Sambuddha;

I have gained coolness (by the extinction of all passion)

and have obtained Nirvana.

To found the Kingdom of Truth

I go the city of the Kasis;

I will beat the drum of the Immortal in the darkness of this world.

 

http://eftkorea.net/zbxe/?mid=eft_column&listStyle=gallery&document_srl=67310 

 

붓다의 오도송(悟道頌)EFT칼럼 -혼돈- - EFT 칼럼 - 한국 EFT협회

붓다의 오도송(悟道頌)EFT칼럼 -혼돈-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다. 나는 일체의 제법에 물들여지지 않았고 모든 것을 버렸다. 갈애가 다한 해탈을 얻었다.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eftkorea.net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77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우빠까는 반신반의하여 말했다.

“그대의 주장대로라면 그대는 무한의 승리자일 수밖에 없군요.”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와 같은 자가 있다면 그들은 참으로 승리자이다.

번뇌를 쳐부수어 승리했기 때문이다.

우빠까여, 모든 그릇된 법을 나는 부수었으니 진실로 나는 승리자이다.”

그러자 우빠까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는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다른 길로 가 버렸다.

이상은 팔리 “율장”에 묘사된 그대로를 소개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빠까는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인연 없는 중생은 어쩔 수 없다고 한탄합니다만 이 우빠까가 바로 그런 사람에 해당됩니다. 만일 그가 그때 부처님께 귀의했다면 역사상 최초의 출가제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부처님을 만났지만 부처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그를 떠나갔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빠까와 같이 불법을 만났지만 불법을 버리고 떠나는 불행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라나시 여행

예전에 붓다와 함께 고행하였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붓다가 고행을 포기한 것을 보고 타락하였다고 생각하여 바라나시(현재의 베나레스)의 녹야원(鹿野苑, Migadaya, ‘사슴의 동산’이란 뜻, 베나레스 교외의 사르나트)으로 옮겨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선인(仙人)들이 모여 사는 곳’(Isipatana, Isipatana, 仙人住處)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당시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우루벨라를 떠나 녹야원을 향해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도중에 우빠까를 만나기도 하였지만, 여행을 계속하여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녹야원에 이르러, 마침내 다섯 비구가 머물고 있는 근처에 나타나셨습니다. 다섯 비구와 붓다와의 재회에 관해서는 팔리 “율장”에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다섯 비구들은 멀리서 세존께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벗들이여, 수행자 고따마가 오고 있다. 그는 타락한 자로서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그에게 인사를 해서도 안 되고, 일어서서 영접해서도 안 되고, 발우와 옷을 받아서도 안 된다. 단지 그가 앉을 자리만은 비워 두어 앉고자 하면 앉을 수 있게 하자.”

그러나 세존께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들은 자신들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일어나서 세존을 영접했다. 한 사람은 발우와 옷을 받아 들었고 한 사람은 자리를 준비했고 한 사람은 발 씻을 물과 발판과 수건을 가져왔다. 세존께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아 발을 씻으셨다. 그런데 그들은 세존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르거나 “벗이여.”라고 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래를 이름이나 벗이라는 말로 불러서는 안 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할 분이며,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불사의 경지를 증득하였다. 이제 법을 설하겠다. 설한대로 수행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범행(梵行)의 궁극적인 완성을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살아 생전에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자 다섯 비구는 말했다.

“벗 고따마여, 고행을 닦고 실천하고 수행하여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성스러운 지견(智見)을 얻기 어려운데 하물며 타락하여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성스러운 지견을 얻었겠는가?”

다시 세존께서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타락하지 않았다.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이제 법을 설하겠다. 설한대로 수행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범행의 궁극적인 완성을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살아 생전에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자 다섯 비구는 똑같은 내용을 두 번째 세 번째 되풀이하였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에게 물으셨다.)

“비구들이여, 잘 기억해 보아라. 내가 예전에 이와 같이 말한 적이 있었느냐?”

“세존이시여, 그런 적이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이제 법을 설하겠다. 설한대로 수행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범행의 궁극적인 완성을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살아 생전에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의 생각을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세존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잘 들으려 했고, 참된 앎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다.4)

종교의 성지 바라나시

붓다께서는 왜 최초의 설법을 바라나시에서 하게 되었을까? 우루벨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직선 거리로도 약200㎞ 정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붓다의 여정은 무척 먼 길이었을 것입니다. “니다나 카타”에 의하면, 그 여행은 아사르하월(인도력의 6-7월) 14일과 15일이었다고 합니다. 새벽녘에 의발(衣鉢)을 챙겨 가지고 18요자나의 먼 길을 걸은 붓다는 그 날 저녁 무렵에 이시빠따나에 닿았다고 합니다.5) 그러나 5세기 경에 성립된 “마하바스투”에 의하면, 붓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7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문헌에는 붓다께서 거친 여러 지명과 갠지스강을 건넌 일화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6)

이 경전에 의하면, 붓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18유순(由旬, 요자나)이었다고 하는데, 1유순이란 멍에를 건 암소가 걸어서 하루가 걸리는 거리를 말합니다. 이를 7마일(약12㎞)로 보는 설에 따르면 실제 거리와도 합치됩니다. 현재는 붓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버스로 약 8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어쨌든 붓다께서는 붓다가야(佛陀伽倻)에서 약200㎞나 떨어진 갠지스강 맞은편 언덕인 바라나시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왜 거기까지 가서 제일성(第一聲)을 올렸을까? 오래 전부터 빔비사라(Bimbisara, 頻婆裟羅)왕을 비롯해 많은 신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마가다국에서 왜 최초의 설법을 하지 않았을까. 이 의문에 대해서는 실제적으로나 교리적인 면으로 보아 여러 가지 해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기야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녹야원에서 우연히 최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나중에 전기 작가들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처럼 설명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라나시가 지닌 종교사상적인 위치를 두고 생각할 때 그것은 결코 단순한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7)

바라나시라는 명칭은 이 곳이 갠지스강으로 흘러드는 바라나 강과 아시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두 강 모두 큰 하천이라고 부르기에는 적당치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성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로부터 바라나시는 하르드와르, 웃자인, 마투라, 아요다, 두와르카, 칸치푸람 등과 비견되는 칠대영장(七大靈場)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3만 이상의 바라문 승려가 살고 있으며, 또 연간 백만 명에 이르는 순례자들이 찾아듭니다. 강기슭에는 가트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목욕장이 줄지어 있습니다.8)

이처럼 바라나시는 오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도에 있는 온갖 종교의 성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성스러운 갠지스강의 연안 중에서도 특히 이곳이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붓다께서 제일 먼저 이 바라나시를 방문한 것은 많은 수행자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자신이 얻은 정각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Notes:

1)마스타니 후미오 지음, 이원섭 옮김, “불교개론” 개정2판 (서울 : 현암사, 2001), p.142.
2)Vinaya Pitaka(PTS), Vol. Ⅰ, pp.7-8.
3)中村元著, 金知見譯, “불타의 세계” (서울 : 김영사, 1983), p.209.
4)Vinaya Pitaka(PTS), Vol. Ⅰ, pp.8-10; 최봉수 옮김, “마하박가 1” (서울 : 시공사, 1998), pp.53-59, 참조.
5)中村元著, 金知見譯, “불타의 세계”, p.209.
6)中村元著, 金知見譯, “불타의 세계”, p.209.
7)와다나베 쇼오꼬 지음, 法頂 옮김, “불타 석가모니”, p.156.
8)中村元著,金知見譯, “불타의 세계”,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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