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Ah9UB8i6Swc
금시작비(今是昨非)
https://kydong77.tistory.com/21033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지금 생각이 옳고 지난 세월 잘못 산 걸 깨달았노라.
귀거래사(歸去來辭)
ㅡ 도연명(陶淵明, 365년 ~ 427년)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껏 내 스스로 마음을 육체에 사역하도록 하였으니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픔에 젖어 홀로 서러워만 할 수 있겠는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을 탓했자 무슨 소용 있으랴?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는 바른 길을 추구하는 게 옳다는 걸 알았도다.
實迷途其未遠
(실미도기미원)
실로 인생길 잘못 접어들어 헤매었지만 그닥 멀리온 것은 아니니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지금 생각이 옳고 지난 세월 잘못 산 걸 깨달았노라.
舟遙遙以輕颺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간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지나는 길손에게 고향 가는 길 물을 제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녁 희미한 빛마저 한스럽구나.
乃瞻衡宇
(내첨형우)
저만치 내 집 지붕과 처마가 바라다보인다.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뛰듯이 집에 당도하니
僮僕歡迎
(동복환영)
어린 하인들 반가이 맞이하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자식들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안 세 갈래 오솔길엔 잡초가 무성하나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변함이 없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아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 서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술통엔 술이 가득 나를 반긴다.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혼자 잔 부어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 앞 나뭇가지 바라보고 미소짓노라.
倚南窗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에 기대어 의기 도도해지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겨우 들일 집이건만 편안키 그지없다.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풍취가 일고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은 달았건만 찾아오는 이 없어 늘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해 발길 멎는대로 쉬기도 하고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고개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짝을 돌아나가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다 지친 저 새는 둥지로 돌아온다.
景翳翳以將入
(경예예이장입)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지려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 부여잡고 서성이노라.
歸去來兮
(귀거래혜)
나 돌아왔도다!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의 사귐도 속세와의 어울림도 단절하리라!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 서로 인연을 멀리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나간들 무엇을 얻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 이웃들과 즐겁게 정담을 나누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 타고 책 읽으며 시름 달래리.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와 봄이 왔다 알려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내일은 서쪽 밭에 나가서 밭을 갈리라.
或命巾車
(혹명건거)
때로는 수레 불러 몰기도 하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때로는 조각배 띄워 노를 젓는다.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고 굽이진 골짝도 찾아 나서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고 가파른 언덕길도 지난다.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물오른 나무들 싱싱하게 자라나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퐁퐁 솟아 흘러 내린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만나 신명남을 부러워할 제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내 생도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아서라!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 세상에 머물 날 얼마나 되리오!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가고 머무는 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니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무엇 위해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하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부귀영화 내 바라던 바 아니요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내 죽어 신선나라 태어나기도 바라지 않을지니,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날씨가 좋으면 혼자 거닐기도 하고
或植杖而耘耔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두고 김매고 북돋우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 하는날 돌아갈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일소냐?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껏 내 스스로 마음을 육체에 사역하도록 하였으니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픔에 젖어 홀로 서러워만 할 수 있겠는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을 탓했자 무슨 소용 있으랴?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는 바른 길을 추구하는 게 옳다는 걸 알았도다.
實迷途其未遠
(실미도기미원) 실로 인생길 잘못 접어들어 헤매었지만 그닥 멀리온 것은 아니니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지금 생각이 옳고 지난 세월 잘못 산 걸 깨달았노라.
舟遙遙以輕颺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간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지나는 길손에게 고향 가는 길 물을 제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녁 희미한 빛마저 한스럽구나.
乃瞻衡宇
(내첨형우) 저만치 내 집 지붕과 처마가 바라다보인다.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뛰듯이 집에 당도하니
僮僕歡迎
(동복환영) 어린 하인들 반가이 맞이하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자식들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안 세 갈래 오솔길엔 잡초가 무성하나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변함이 없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아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 서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술통엔 술이 가득 나를 반긴다.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혼자 잔 부어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 앞 나뭇가지 바라보고 미소짓노라.
倚南窗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에 기대어 의기 도도해지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겨우 들일 집이건만 편안키 그지없다.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풍취가 일고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은 달았건만 찾아오는 이 없어 늘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해 발길 멎는대로 쉬기도 하고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고개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짝을 돌아나가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다 지친 저 새는 둥지로 돌아온다.
景翳翳以將入
(경예예이장입)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지려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 부여잡고 서성이노라.
歸去來兮
(귀거래혜) 나 돌아왔도다!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의 사귐도 속세와의 어울림도 단절하리라!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 서로 인연을 멀리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나간들 무엇을 얻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 이웃들과 즐겁게 정담을 나누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 타고 책 읽으며 시름 달래리.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와 봄이 왔다 알려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내일은 서쪽 밭에 나가서 밭을 갈리라.
或命巾車
(혹명건차) 때로는 수레 불러 몰기도 하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때로는 조각배 띄워 노를 젓는다.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고 굽이진 골짝도 찾아 나서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고 가파른 언덕길도 지난다.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물오른 나무들 싱싱하게 자라나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퐁퐁 솟아 흘러 내린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만나 신명남을 부러워할 제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내 생도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아서라!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 세상에 머물 날 얼마나 되리오!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가고 머무는 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니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무엇 위해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하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부귀영화 내 바라던 바 아니요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내 죽어 신선나라 태어나기도 바라지 않을지니,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날씨가 좋으면 혼자 거닐기도 하고
或植杖而耘耔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두고 김매고 북돋우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 하는날 돌아갈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일소냐?
https://www.miryang.go.kr/tur/EgovTourDetail.do?nmtIdx=40&mnNo=10302180000
월연정(月淵亭)은 본래 월영사(月影寺)가 있던 곳으로 월영연(月影淵)이라 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한림학사등 여러 요직을 지내다가 기묘사화를 예견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월연 이태(月淵 李迨)선생이 중종20년(1520년)에 세운 정사(亭舍)로 처음에는 쌍경당(雙鏡堂)이라 편액(扁額)하였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조33년(1757년)에 8대손인 월암(月菴) 이지복(李之復)이 쌍경당을 복원하였습니다.
월연정은 가장 좌측인 남쪽에 있으며, 동향을 하고 정면 5칸, 측면 2칸의 5량(樑)구조로 팔작지붕을 한 이익공계(二翼工系) 건물입니다. 가장 북측에 위치하고 제일 높은 언덕에 있는 월연대(月淵臺)는 남동향을 하고 있으며, 월연정 주위에 건립된 제헌(齊軒), 월연대등 모두 풍치 수려한 곳에 무리를 이루어 정자의 기능을 가지며, 놓여진 지형에 맞추어 모두 각기 다른 평면을 지니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백송
기둥 위에 용머리 조각은 사찰 기둥의 용머리를 조각하거나 그것을 모방한 장인의 솜씨였다.
http://www.grandculture.net/miryang/toc/GC08702023
쌍경당(雙鏡堂)은 월연(月淵) 이태(李迨)[1483~1536]가 세운 밀양 월연정(月淵亭)의 건물 중 하나이다. 밀양 월연정은 월연대, 쌍경당, 제헌 세 건물을 합친 것이다. 쌍경당은 이태가 함경도 도사 재직 중 기묘사화를 예견하여 사직하고 귀향한 이듬해인 1520년 용평의 월영사(月影寺) 옛터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고 기초를 닦아 창건하였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지은 두 채의 건물 중 북쪽 절벽 위는 월연대(月淵臺), 남쪽은 쌍경당(雙鏡堂)이라 하였다. 응천 상류인 이연(梨淵)의 물결이 거울 표면처럼 맑고, 달이 중심을 비추면 물과 달이 쌍으로 맑게 보이는 절경에서 이름을 따왔다. 만월 때 연출되는 물속의 달빛 기둥 월주(月柱)가 일품이다. 월연대와 쌍경당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쌍경당은 1697년 이태의 현손 자유헌 이만백[1656~1716]이 주축이 되어 복구를 논의하여 상당한 진척이 있었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60년이 지난 1757년 봄 이태의 6세손 월암(月庵) 이지복(李之復)[1672~1759]이 사촌 형제의 아들인 수사(水使) 이홍(李泓), 육촌 형제의 아들인 자락정 이례(李澧)와 쌍경당 중건에 착수하였고, 육촌 동생이자 이례의 아버지인 이지표[1698~1763]가 설계를 맡아 1758년 공사를 마쳤다. 월연대는 쌍경당보다 100여 년 뒤 중수되었는데 이태의 10세손 일성 이장운[1820~1886]이 족질 이종증, 이종술과 함께 합심하여 소실된 지 무려 270여 년이 지난 1866년 봄 비로소 누대를 복원하였다. 이때 이태의 큰아들 이원량[1504~1567]의 유덕을 기리는 제헌(霽軒)을 쌍경당 곁에 함께 지었다. 쌍경당의 연혁은 이태의 외현손 권두인의 「쌍경당중건기」, 이의한의 「쌍경당상량문」[1758], 홍성의 「쌍경당중건기」[1766], 권사호의 「쌍경당중수기」[1798], 이장운의 「월연대상량문」, 류후조의 「월연대중건기」[1869], 이돈우의 「월연대중건기」[1871], 이지복과 이종술의 후지, 권상규의 「제헌기」[1957] 등을 통하여 알 수 있다.
http://www.grandculture.net/miryang/toc/GC08700321
용평터널은 1905년 경부선 철로로 사용되다가, 1940년 경부선 복선화로 선로가 이설되어, 추화산의 다른 방향에 터널이 새로 생기면서 더 이상 철로로 사용되지 않고 폐철되었다. 인도로 이용되다가 현재 자동차가 다니는 일반도로 터널로 사용되고 있다. [현황]
용평터널은 1940년부터 일반도로의 터널로 사용된 이후, 폭이 4m여서 양방향 통행이 어려워 사고의 위험과 교통 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다. 밀양시 민선6기 출범 이후 시민과 소통하는 열린 시정 구현을 위하여 도입된 ‘사랑방 콘서트’에서 진입 차량 통제 시스템 구축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2016년 8월 터널 반대편에서 진입하는 차량을 신호를 통하여 미리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용평터널은 약 300m의 짧은 터널이지만 100여 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이색 드라이브 코스일 뿐 아니라,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터널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하여 포토존으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터널 안에는 전구 불빛을 장식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3년에 개봉된 곽경택 감독의 영화 「똥개」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인근에는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하나인 밀양 월연정(密陽月淵亭)[1985년 1월 14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지정]과 밀양아리랑길 등 명소가 자리하고 있다.
https://namu.wiki/w/%EB%98%A5%EA%B0%9C(%EC%98%81%ED%99%94)
https://www.youtube.com/watch?v=iJfUlKdc7yM
커피잔 속의 초코렛 인물그림, 소피아 로렌이라는 분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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