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但恨天意人事自相乖戾, 薄命之人 更無所望 而身雖未許,
단한천의인사자상괴려 박명지인 갱무소망 이신수미허
다만, 하늘의 뜻과 사람의 일이 본시 서로 어긋남을 한탄하옵고
박명한 사람에게는 다시는 소망이 없사오며,
몸은 비록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나
心旣有屬 則至今二三其德, 非義之所敢出也,
심기유속 즉지금이삼기덕 비의지소감출야
마음은 이미 붙였사온즉,
지금에 이르러 두세 가지의 그 덕은
의義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니,
姑欲依存於怙恃膝下, 以送未盡之日月矣.
고욕의존어호시슬하 이송미진지일월의
아직은 부모의 슬하에 의존함으로써
미진한 세월을 보내고자 하나이다.
因此命途之崎嶇, 幸得一身之淸閑故,
인차명도지기구 행득일신지청한고
이 몹시 기구한 신세로 말미암아
다행히 일신에 청한淸閑함을 얻었으므로,
乃敢薦誠於佛前, 以告弟子之心誠.
내감천성어불전 이고제자지심성
이에 감히 정성을 바쳐 부처님 앞에
제자의 심사를 아뢰옵니다
伏願僉佛聖之靈, 燭祈懇之忱 垂悲慈之念,
복원첨불성지령 촉기간지침 수비자지념
엎드려 바라옵건대, 여러 불성佛聖의 영靈들께서는
이렇듯 지성스러운 정성을 통촉하시와
자비지념慈悲之念을 드리우셔서
使弟子老父母俱享遐筭 壽與天齊,
사제자로부모구향하산 수여천제
제자의 노부모로 하여금 장수를 누리시어
수壽를 하늘과 함께 하시도록 해 주시옵고,
令弟子身無疾病災殃, 以盡衣彩 弄雀之歡,
령제자신무질병재앙 이진의채 롱작지환
제자에게는 몸에 질병과 재앙이 없게 하여
곧 부모 앞에서 채색 옷을 입고
새 새끼를 희롱하는 즐거움을 다하게 해 주시면
則父母身後誓歸空門, 斷俗緣服戒行,
즉부모신후서귀공문 단속연복계행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맹세코 공문空門으로 돌아가
세속의 인연을 끊고 계행戒行에 복종하여
齋心誦經 潔躬禮佛, 以報諸佛之厚恩矣.
재심송경 결궁례불 이보제불지후은의
마음을 재계하고 경문을 외우며
몸을 정결히 하여 예불을 드려서
부처님들의 후은厚恩에 보답하겠나이다.
侍婢賈春雲本與瓊貝大有因果, 名雖奴主 實則朋友,
시비가춘운본여경패대유인과 명수노주 실즉붕우
시비 가춘운은 본디 경패와 더불어 크게 인연이 있사와
명색은 비록 노주奴主 사이이지만
내실은 붕우朋友의 사이로
曾以主人之命爲楊家之妾矣,
증이주인지명위양가지첩의
일찍이 주인의 명으로 양가의 첩이 되었으나,
事與心違 佳緣莫保, 永辭楊家 復歸主人,
사여심위 가연막보 영사양가 복귀주인
일이 마음과 달라 아름다운 인연을 보존치 못하고
길이 양가와 하직하여 다시 주인에게 돌아와,
死生苦樂誓不異同.
사생고락서불이동
사생고락을 같이 할 것을 맹세하였나이다.
伏乞諸佛 俯憐吾兩人之心事,
복걸제불 부련오양인지심사
바라옵건대 여러 부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의 심사를 굽이 살피시고, 가련히 여기시어
世世生生俾免爲女子之身,
세세생생비면위녀자지신
세세생생世世生生으로
다시 여자의 몸이 되기를 면하여
消前生之罪過 贈後世之福祿,
소전생지죄과 증후세지복록
전생의 죄과를 소멸하고
후세의 복록을 주시어,
使之還生於善地, 長享逍遙快活之樂.”
사지환생어선지 장향소요쾌활지락
좋은 땅에 환생還生하여
쾌활한 낙을 길이 누리게 해 주옵소서.”
公主見畢慘然曰:
공주견필참연왈
공주가 그 글을 다 보고 참연한 마음으로 이르기를,
“一人之婚事 誤兩人之身世, 恐有大害於陰德矣.”
일인지혼사 오양인지신세 공유대해어음덕의
“한 사람의 혼사로 인하여
두 사람이 신세를 그르치게 하니,
아마도 음덕陰德에 크게 해로우리다.”
太后聽之黙然.
태후청지묵연
태후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此時鄭小姐侍其父母, 婉容婾色 無一毫慨恨之色,
차시정소저시기부모 완용유색 무일호개한지색
이 무렵 정소저는 그의 부모를 모시는데
정숙한 자태와 즐거운 기색으로
털끝만큼도 원망해 하거나 슬퍼하는 빛을 보이지 않으니,
而崔夫人每見小姐 輒有悲傷之念,
이최부인매견소저 첩유비상지념
최부인은 매번 소저를 볼 적마다
문득문득 비상悲傷한 생각이 들었고,
春雲侍小姐 以翰墨雜技, 强爲排遣之地 而潛消暗削,
춘운시소저 이한묵잡기 강위배견지지 이잠소암삭
춘운은 소저를 모시는데
한묵翰墨과 잡기로서
억지로 소유에 대한 생각을 물리쳐 떨쳐 버리려 하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줄어들고 슬그머니 약해져서
日漸憔悴 將成膏盲之疾,
일점초췌 장성고맹지질
날마다 몸이 점점 초췌해져
고치지 못할 병이 생기게 되었거늘,
小姐上念父母 下憐春雲,
소저상념부모 하련춘운
소저가 위로는 부모를 생각하고
아래로는 춘운을 불쌍히 여김으로
心緖搖搖 不能自安, 而人不能知矣.
심서요요 불능자안 이인불능지의
심서心緖가 산란해져 스스로 편안치 못하였지만
남들은 알 수가 없었다.
小姐欲慰母親之意 使婢僕等, 求技樂之人 玩好之物,
소저욕위모친지의 사비복등 구기락지인 완호지물
소저는 모친의 쓸쓸한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서
비복 등을 시켜
악기에 재주를 지닌 사람과 신기하고도 보기 좋은 물건들을 구하게 하여,
時時奉進 以娛其耳目矣.
시시봉진 이오기이목의
때때로 노모에게 받들어 올림으로써
이목을 즐겁게 해드렸다.
一日女童一人, 來賣繡簇二軸, 春雲取而見之,
일일녀동일인 래매수족이축 춘운취이견지
하루는 한 계집아이가 찾아와
수놓은 족자 두 축軸을 팔려고 하기에,
춘운이 가져다가 펴 보니
一則花間孔雀 一則竹林鷓鴣.
일즉화간공작 일즉죽림자고
한 폭은 꽃 사이에 공작새고,
다른 하나는 대숲에 자고새였다.
手品絶妙 工如七襄, 春雲敬歎留其人,
수품절묘 공여칠양 춘운경탄류기인
그 수놓은 품品이 극히 절묘하여서
춘운이 경탄하여 그 계집아이를 머무르게 하고,
以其簇子進於夫人及小姐曰:
이기족자진어부인급소저왈
그 족자를 부인과 소저께 바치며 여쭙기를,
“小姐每贊春雲之刺繡矣, 試觀此簇 其才品何如耶?
소저매찬춘운지자수의 시관차족 기재품하여야
“소저께서 매양 춘운이 수놓은 것을 칭찬하시었는데,
시험삼아 이 족자를 보소서.
그 재품才品이 어떠하나이까?
不出於仙女機上, 必成於鬼神手中也.”
불출어선녀기상 필성어귀신수중야
이는 선녀의 틀 위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필연 귀신의 손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옵니다.”
小姐展看於夫人座前 驚謂曰:
소저전간어부인좌전 경위왈
소저가 부인의 자리 앞에서 족자를 펴 보다가
깜짝 놀라며 이르기를,
“今之人必無此巧, 而染線尙新非舊物也.
금지인필무차교 이염선상신비구물야
“금세의 사람에게는 필연 이런 공교한 솜씨가 없겠거늘,
선線에 물들인 것이 오히려 새로워서 구물舊物이 아니로다.
怪哉! 何人有此才也.”
괴재 하인유차재야
괴이하도다!
어떤 사람에게 이런 재주가 있을꼬!”
使春雲問其出處於女童,
사춘운문기출처어녀동
춘운으로 하여금 그 여동에게 그 출처를 묻게 하니,
女童答曰:
여동답왈
여동이 대답하기를,
“此繡卽吾家小姐所自爲也. 小姐方在寓中急有用處,
차수즉오가소저소자위야 소저방재우중급유용처
“이 수는 우리 집의 소저께서 스스로 놓으신 것이외다.
소저께서 바야흐로 객지에 계신데 급히 쓸 곳이 있어서
不擇金銀錢幣 而欲捧之矣.”
불택금은전폐 이욕봉지의
값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팔려고 하나이다.”
春雲問曰:“汝小姐誰家娘子,
춘운문왈 여소저수가낭자
춘운이 묻기를,
“너의 소저는 뉘 집의 낭자이시며,
且因何事獨留客中耶?”
차인하사독류객중야
또 무슨 일 때문에 홀로 객지에 머물러 계시느냐?”
答曰: “小姐李通判妹氏也, 通判陪夫人往浙東任所,
답왈 소저이통판매씨야 통판배부인왕절동임소
여동이 대답하기를,
“우리 소저는 이통판李通判의 매씨妹氏이신데,
통판께서 대부인을 모시고 절동浙東의 임소任所로 가시었으나,
而小姐病不從, 姑留於內舅張別駕宅矣,
이소저병부종 고류어내구장별가댁의
소저께서는 병환이 있어서 따라가지 못하고
그 외삼촌 장별가張別駕 댁에 머물러 계셨는데
別駕宅中近有些故, 借寓於此路迤左臙脂店謝三娘家,
별가댁중근유사고 차우어차로이좌연지점사삼낭가
근일에 사소한 연고가 있어서
이 길을 건너 연지臙脂를 파는 점포인
사삼낭謝三娘의 집을 빌려 우거寓居하시며,
而待浙東車馬之來矣.”
이대절동거마지래의
절동 고을에서 거마車馬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나이다.”
春雲以其言入告小姐, 以釵釧首飾等物,
춘운이기언입고소저 이채천수식등물
춘운이 들어가서 그 말대로 소저에게 고하니,
소저가 비녀와 팔찌 그리고 머리에 꾸미는 장식물 등의 물건으로
優其價而買之, 高掛中堂 盡日愛玩 嗟羨不已.
우기가이매지 고괘중당 진일애완 차선불이
그 값을 넉넉히 주고 족자를 사서는
대청에 높이 걸고 날이 지도록 사랑스레 바라보며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此後女童因緣
차후녀동인연
이후에 그 여동이 족자를 매매함을 인연으로 하여
出入於鄭府, 與府中婢僕相交矣.
출입어정부 여부중비복상교의
정부鄭府에 출입하게 되고,
부중의 비복들과 사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