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33

至數日 鄭生來謂翰林曰 :

지수일 정생래위한림왈

여러 날이 지나자 정생이 와서 한림에게 말하기를,

“向日因室人有疾, 不得與兄同遊 尙有恨矣.

향일인실인유질 부득여형동유 상유한의

“지난날에는 집사람의 신병으로

부득이 형과 더불어 함께 놀지 못하여

지금까지 유한遺恨함이 있습니다.

卽今桃李雖盡, 城外長郊柳陰正好,

즉금도리수진 성외장교류음정호

곧 이제 복숭아꽃, 자두꽃이 비록 다하였으나,

성 밖의 긴 들의 버들 그늘이 정말 좋으니,

與兄常偸得半日之閑, 更辦一場之遊,

여형상투득반일지한 갱판일장지유

玩蝶舞 而聽鶯歌矣.”

완접무 이청앵가의

마땅히 형과 더불어 반나절의 틈을 가벼이 내어

한바탕 놀이를 다시 벌이고,

나비가 춤추는 것을 구경하며 앵무새의 노래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翰林曰 : “綠陰芳草 亦勝花時矣.”

한림왈 록음방초 역승화시의

한림이 말하기를,

“녹음 방초가 또한 꽃이 피는 시절보다 더 낫지요.”

兩人共轡同行催出城門, 涉遠野擇茂林,

양인공비동행최출성문 섭원야택무림

藉草而坐對酌數籌.

자초이좌대작수주

두 사람이 나란히 고삐를 잡고 동행하여 바삐 성문을 나서서

먼 들판을 건너가 무성한 숲속에 들어가

풀을 자리삼아 깔고 앉고는 꽃가지로 수놓으며 술잔을 주고 받았다.

傍有一抔荒墳, 寄在於斷岸之上 而蓬高四沒,

방유일배황분 기재어단안지상 이봉고사몰

莎草盡剝 惟有雜卉成叢,

사초진박 유유잡훼성총

옆에 황폐한 무덤이 하나 있는데,

가파른 절벽위에 붙어 있으며, 다북쑥이 두루 다하고

잔디가 다 벗겨져 오직 잡풀만이 떨기를 이루어

綠影相交 數点幽花,

록영상교 수점유화

隱映於荒阡亂樹之間也.

은영어황천란수지간야

푸른 그림자가 서로 어리비치고 두어 떨기 말라빠진 꽃이

황폐한 무덤과 어지러이 선 나무 사이로 보일락 말락 하였다.

翰林因醉興 指点而歎曰 :

한림인취흥 지점이탄왈

한림이 취흥으로 인해 무덤을 가리키며 탄식하기를,

“賢愚貴賤 百年之後, 盡歸於一丘土,

현우귀천 백년지후 진귀어일구토

此孟嘗君所以泣下於雍門琹者也.

차맹상군소이읍하어옹문금자야

“현우 귀천賢愚貴賤을 막론하고, 백 년 후에는

모두가 한 언덕의 흙으로 돌아가는데,

이것이 맹상군孟嘗君이 옹문雍門 (제齊나라 음악가)의 거문고 곡조에 눈물을 흘린 까닭이렸다.

吾何以不醉於生前乎?”

오하이불취어생전호

내 어찌 생전에 취하지 아니하겠는가?”

鄭生曰 :

정생왈

“兄必不知彼墳也. 此卽張女娘之墳也,

형필부지피분야 차즉장녀낭지분야

女娘以美色, 鳴一世人以張麗華稱之,

녀낭이미색 명일세인이장려화칭지

정생이 말하기를,

“형은 틀림없이 저 무덤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장여낭張女娘의 무덤으로

여낭의 아름다운 자색이 일세에 떨침으로 장여화張麗華라 불렀는데,

二十而夭 瘞於此 後人哀之,

이십이요 예어차 후인애지

以花柳雜植於墓前以誌其處矣,

이화류잡식어묘전이지기처의

이십 세에 요절하니, 이곳에 묻어 주고 후인들이 슬퍼하여

꽃과 버들을 무덤 앞에 어지러이 심어 그곳에 기록하였으니,

吾輩以一杯酒澆其墳,

오배이일배주요기분

以慰女娘芳魂如何?”

이위녀낭방혼여하

우리들이 술 한 잔을 그 무덤에 부어

여낭의 꽃다운 넋을 위로함이 어떻겠습니까?”

翰林自是多情者 乃曰 :

한림자시다정자 내왈

“兄言可也.”

형언가야

한림은 본래 다정한 사람이라 이에 대답하기를,

“형의 말이 옳소이다.”

遂與鄭生至其墳前 擧酒澆之,

수여정생지기분전 거주요지

各製四韻一首, 以弔孤 魂翰林之詩,

각제사운일수 이조고 혼한림지시

마침내 정생과 더불어 그 무덤 앞에 이르러 술을 들어서 붓고,

각기 사운四韻으로 된 한 수首의 글을 지어

외로운 넋을 조상弔喪하니,

한림은 시에 읊기를,

美色曾傾國 미색증경국

芳魂已上天 방혼이상천

管絃山鳥學 관현산조학

羅綺野花傳 라기야화전

古墓空春草 고묘공춘초

虛樓自暮烟 허루자모연

秦川舊聲價 진천구성가

今日屬誰邊 금일속수변

미색이 일찍이 나라를 기울게 하더니

꽃다운 혼이 이미 하늘에 올라갔구나

거문고 줄은 산새가 배우고

깁과 비단은 들꽃이 전하는구나

옛 무덤에는 부질없는 봄풀과

빈 누각에는 스스로 저무는 연기만 보일 뿐

진천의 옛 성가는

오늘 어디에서 찾겠는가

鄭生之詩,

정생지시

정생은 시에 읊기를,

問昔繁華地 문석번화지

誰家窈窕娘 수가요조낭

荒凉蘇小宅 황량소소택

寂寞薛濤庄 적막설도장

草帶羅裙色 초대라군색

花留寶靨香 화류보염향

芳魂招不得 방혼초부득

惟有暮鴉翔 유유모아상

옛적 번화한 곳의

뉘집의 요조한 낭자였는지 묻고 싶구나

소소의 집이 황량하고

설도의 별장도 적막한데

풀은 깁치마 빛을 띠었고

꽃은 보배 사마귀의 향기를 풍기는구나

꽃다운 넋을 불러 얻지 못하는데

오직 저녁 까마귀만 날고 있구나

兩人傳看浪吟 更進一盃,

양인전간랑음 갱진일배

鄭生繞墓徊徨 至崩頹之處,

정생요묘회황 지붕퇴지처

두 사람이 전하여 보고 소리내어 읊조리고는,

다시 한 잔을 올리고

정생이 무덤 둘레를 머뭇거리며 돌다가,

무너져 움패인 곳에 이르러

得白羅所書絶句一首 而詠之曰 :

득백라소서절구일수 이영지왈

“何處多事之人, 作此詩 納於女娘之墓乎?”

하처다사지인 작차시 납어여낭지묘호

절구絶句 한 수首가 적힌 흰 비단을 주워 그것을 읊조리며 말하기를,

“어느 곳에 사는 부질없는 사람이 이 시를 지어 여낭의 무덤에 넣었을까?”

翰林索見之 則卽自家裂衫製詩,

한림색견지 즉즉자가열삼제시

以贈仙娘子者也.

이증선낭자자야

한림이 그것을 받아 살펴보니

곧 자기가 한삼汗衫을 찢고 시를 지어서

선낭에게 준 것이었다.

乃大驚於心曰 :

내대경어심왈

“向日所逢美人, 果是張女娘之靈也.”

향일소봉미인 과시장여낭지령야

이에 마음으로 크게 놀라 말하기를,

“지난날에 만났던 미인이 장여낭張女娘의 신령이었다니.”

駭汗自出 頭髮上竦,

해한자출 두발상송

心不能自定已 而自解曰 :

심불능자정이 이자해왈

놀라 식은땀이 저절로 흐르고 머리털이 으쓱하게 솟구치며

마음을 진정치 못하였지만 스스로 깨닫기를,

“其色之美如此 其情之厚如此,

기색지미여차 기정지후여차

仙亦天緣也 鬼亦天然也, 仙與鬼不必卞之矣.”

선역천연야 귀역천연야 선여귀불필변지의

“그의 자색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고, 그의 정情의 많음이 이와 같으니,

선녀라도 역시 하늘의 연분이고,

귀신이라도 또한 하늘의 연분이라,

신선과 귀신을 굳이 분변할 필요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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