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李文靖昨過永明寺之作。不雕飾不探索。偶然而合於宮商。詠之神逸。

이문정공이 영명사를 지나며 지은 시는 꾸미지도 않고 애써 찾아낸 것도 아니지만 우연히 가락에 어울렸고, 읊조린 것이 뛰어나게 신묘하였다.

許穎陽見之曰。

你國亦有此作耶。

허영양이 보고서,

“너의 나라에도 이런 작품이 있었느냐” 물으니,

其浮碧樓大篇。其曰。

그가 부벽루 큰 현판에 적은 시 가운데,

門端尙懸高麗詩。 문단상현고려시。

當時已解中華字。 당시이해중화자。

문 끝에 아직도 고려 때의 시를 걸어 놓으니,

그때에 벌써 중국의 글자를 알고 있었네.

者。

라고 한 것은

雖藐視東人。亦服文靖之詩也。

비록 우리나라 사람을 깔보고 쓴 글이지만, 또한 문정공의 시에 탄복한 것이다.

14. 文靖入元。中制科應奉翰林。

문정공이 원나라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하고, 응봉한림이 되었다.

歐陽圭齋 玄虞道園 集 輩皆推 奬之。

규재 구양현․ 도원 우집 등의 무리들이 모두 그를 받들어 칭찬했다.

圭齋嘆曰。吾衣鉢當從海外傳之於君也。

규재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 나의 옷과 바리는 마땅히 바다 바깥 나라로 나가서, 자네에게 전해 주어야겠네”

其後文靖困於王氏之末。流徙播遷。門生故吏。皆畔而下。

그뒤 고려 왕조 말엽에 문정공은 어려움을 겪었다.

귀양을 가기도 하고 벼슬자리가 마구 옮겨지기도 하니, 제자와 벗들이 모두 그에게서 멀어졌다.

石公嘗作詩曰。

그래서 하석공이 일찍이 시를 지었다.

衣鉢當從海外傳。 의발당종해외전。

圭齋一語尙琅然。 규재일어상랑연。

近來物價俱翔貴。 근래물가구상귀。

獨我文章不直錢。 독아문장불직전。

옷과 바리를 마땅히 해외로 전하겠다던

규재의 한 마디 아직도 낭랑한데

요즘 들어 물가는 모두 뛰어 올랐지만

유독 나의 글솜씨만은 돈 값어지가 안 나가네.

蓋自傷其遭時不淑也。

대개 때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여, 스스로 슬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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