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드디어 정상이다. 볼거리는 좀...

여기서 남산의 얽힌 설화를 하나 소개..

남산(南山)과 망산(望山)의 유래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徐羅伐) 또는 새벌 이라 했으며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는 뜻으로 아침 햇님이 새벌을 비추고 따스한 햇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고 온갖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찬 평화로운 땅이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어느날 두 신이 찾아 왔다.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통붕퉁한 남신이었고, 또 한사람은 가름한 얼굴에 반짝 반짝 빛나는 눈동자, 예븐 웃음이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두 신은 아름다운 새벌을 둘러보고 " 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구나!" 하고 외쳤고, 이소리는 너무나 우렁차 새벌의 들판을 진동하였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레하던 처녀가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산 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게 안니가? 처녀는ㄴ 겁에 질려 "산 봐라!"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
"산 같이 큰 사람을 봐라!" 라고 해야할 말을 급한 나머지 "산 봐라!" 하고 외쳤던 것이다. 갑자기 발아래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에 두 신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발을 멈췄는데 그만 왠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두 신은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산이 되었는데 소원대로 이곳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남신은 기암괴석이 울퉁불퉁하고 강하게 생긴 남산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 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삼국유사


정상에 있는 표지석에 세겨진 글귀... 백번보아도 지당한 말이다...

정상에 올라서자 힘이 쪼옥 빠져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완전 퍼저 버렸다.
표지석에 기대어 털석 주저 앉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주저 앉았다기 보다는 거의 쓰러져 있었다고 하는게 맞는 표현일거다.

내려가기 전에 한곳을 더 찾아야한다. 바로 예전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바위이다. 바둑바위는 상선암 뒤 마애석가여래좌상있는 큰 바위인 암봉 정상에 있는 것인데 처음엔 위치를 몰라 내려가는 길에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겨우 찾았다.



암봉 정상에서 바라본 경주 전경.
중앙 좌측 부근의 숲이 박혁거세왕를 비롯한 신라 초기 박씨 왕릉이 있는 오릉이고 그 밑에아주 작은 숲이 박혁거세왕이 태어났다는 나정이다. 중앙 우측 부근에 작은 산이 남산 자락의 일부인 도당산이다. 그곳에 도당토성이 있다. 도당토성 뒤로 넓게 퍼진 옅은 초록색이 월성(반월성)이다.

암봉정상에 내 또래의 남자가 체조를 하고 있기에 바둑바위가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고 한다.
여기 저기 둘러 보았지만 어느게 바둑바위인지 모르겠다.

주변을 뒤지며 약간 위쪽으로 가니 왼 석물 하나가 보이고 그 뒤로


요런 요상한 곳이.... 바로 금송정터이다.
금송정은 이곳에 있던 정자인데 신라 35대 경덕왕때의 음악가인 옥보고가 가야금을 타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런 좁은 곳에 정자를 짖는 것도 힘들지만 가야금 타러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것이...ㅎㅎ


금송정터에서 바라본 상사바위 서쪽면


다시 바둑바위를 찾으러 돌아오니 국민체조하던 등산객은 보이지 않고 왠지 대단한 포스의 등산객 한분이..
지팡이이를 두 개나 들고 계신다.기명문학의 대빵이신 김용선생의"신조협려"에 보면 개방의 제자들이 고수일수록 마대 숫자가 많아지듯이. ㅋㅋ

워커 : 저 실례지만 바둑바위가 어느 건지 아세요?

등산객 : 바둑바위요? 지금 서 계신 곳이 바둑바위입니다.

워커 : ?

등산객 : 바둑바위라 해서 바둑판이 그려져 있는게 아니고 도교의 유입으로 신선사상이 널리..(중략)..
이곳 전체를 바둑바위라 부르죠. 도움이 돼셨는지요?

워커 : 감사합니다. 남산 공부 막 시작했는데 오기전에 이것저것 공부하고 왔어도 못찾은게 반입니다.

등산객 : 무얼 못 찾으셨는지요?

워커 : 선각마애불하고 부부바위, 거북바위입니다.

등산객 : 하하 혼자 오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내려가는 길에 가르쳐 드리죠.

워커 : 아니 그런 수고를 일부러...죄송해서..

등산객 ; 아닙니다. 내려가는 길에 잠시 들리는 건데요..

워커 :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남산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가 봅니다. (사실은 나도 몇 달 공부한 사람이야 ㅎㅎ)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던데요.

등산객 : 저도 많이 아는 건 아닙니다. 한 20년 남산에 오르다 보니.. 사실은 20년전에 윤경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남산에 처음 올라왔는데 남산이 너무좋아져 부산에서 전근 신청해서 경주로 이사를 왔었죠.

워커 : 유유윤... 윤경렬 선생님이요? 살아있는 신라인 윤경렬 선생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등산객 : 네 ^&^



윤경렬 (尹京烈)

"신라를 알고 싶으면 경주에 가 살아라. 겨레의 혼을 알고 싶으면 서라벌의 흙냄새를 맡으라. 그리고 한국 불교의 원류를 찾고자 한다면 경주 남산에 가 보아라" 라는 스승 고유섭 선새의 말에 따라, 윤경렬 선생은 30살의 젊은 시절, 함경북도 주을의 고향을 떠나 옛 신라의 서울 경주에 터를 잡았다. 그 후 선생은 평생을 신라문화의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일에 바쳐 세인으로부터 '살아있는 신라인'으로 불리웠다
살아서는 신라의 수문장이 되어 서라벌의 맥을 잇고자 노력했고, 죽어서는 남산의 수호신이 되리라던 선생은 한 달에도 몇 번씩 노구를 이끌고 남산을 오르내리다가 1999년 별세하시어 뭇사람들의 추모 속에 남사자락에 그 유골을 흩뿌리셨다.
윤경렬 선생은 1960년대 진홍섭씨와 함께 경주에 어린이 박물관학교를 세워 조상의 슬기를 가르쳐 온 공로로 외솔상(11회, 실천부문)을 받았으며, 풍속인형연구소인 고청사(古靑社)를 세워 풍속토우를 만들어 경주 민속품의 주맥을 이루어 오기도 했다.

저서로 경주남산고적순례 등 여러 권을 집필하셨다.


윤경렬 선생이 지으신 책 '겨레의 땅, 부처님의 땅'
남산 올라가기전에 이 책 열심히 보고 올라간다..ㅎㅎ

워커 : 사부!!!! ㅎㅎ ^&^
등산객 ; 무신 말씀을.. 그래 어떠세요..경주 남산 참 아름답죠?
워커 : 넵 사부 ^&^

사부께서 나를 데리고 내려가면서 이것 저것 윤경렬 선생님과의 옛이야기도 해주시고 내가 찾지 못한 곳도 직접 데려다 주셨다.


거북바위

보물 666호인 석불좌상에서 선각마애불 쪽으로 가다가 보면 보인다.
두마리의 거북이 형상으로 큰 거북이 등에 작은 거북이가 올라타 교미를 하는 형상이다.
솔잎에 가려 큰 거북이 대가리가 잘 안보인다. 겨울에 보면 진짜 같다..



선각마애불로 사부의 설명으로는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것으로 보여진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통일신라 것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



바로 옆의 부부바위
자세히 보면 오래만에 상봉한 부부가 서로 껴 앉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도 사실은 카메라 각이 잘못되어 별로.. 나중에 다시 가서 찍어야겠다...ㅠ.ㅠ



흔들바위
사부께서 덤으로 보여주신 ... 달라붙어 밀어 보았는데 흔들리기는 커녕 꿈적도 안한다..



내려가면서 옛 절터와 선방터들을 하나 하나 찾아주시며 설명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바위..
뭔지 아시겠죠 ^&^

삼릉부근에서 사부와 헤어지기 아쉬워 존함을 여쭈었는데

사부 : 남산을 사랑하고 자주 오르시면 언젠가 또 만나겠지요 ^&^

하시며 우문에 현답으로 답하시며 배리 삼불 쪽으로 넘어가셨다.


드디어 출발 지점인 서남산 주차장부근으로 ..
시계를 보니 4시 30분이다..나도 정말 대단하다 10시 30분에 올라가기 시작해서

4시 30분에 내려오다니... 남들보다 거의 2배 반이나 더 걸렸다.

그래도 처음으로 금오봉 정상을 밟아보았다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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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은 아미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이 2구의 마애삼존상은 만들어진 시대나 조각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우측면의 석가여래좌상


좌측면의 아미타여래입상

석가여래와 아미타여래를 세겨넣은 이유는 현세에서 성불해서 극락으로 라는 의미가 아닐지..



바위 위에 보면 빗물을 배수하기 위한 배수로와 위에 목조전실을 세우기 위해 기둥을 세운 흔적이 보인다.
남산의 많은 마애불은 예전에 비를 피하기 위한 목전 전실을 함께 지었다

여기서 다시 왔던 길로 내려와 상선암 쪽으로 올라가도 되고 아니면 마애불 바위 위를 따라 올라가도 된다.
처음 길을 찾는 사람들은 다시 돌아가 오르던 길로 오르는게 더 좋다.



다시 냉골 계곡으로 내려가 약간 걸어 올라가면 또 먼가가 나온다 ㅎㅎ
그냥 등산길은 여기까지 힘들지는 않지만 불상이나 마애불을 보러 등성이를 왔다리 갔다리 했기에 발바닥에 땀이 좀 난다


좌측 능선으로 약간만 올라가면

보물 666호인 삼릉계곡 석불좌상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이 석불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옷주름선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대석으로 되어 있다.
8각의 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안상을 비롯하여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 등으로 보아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원래 이 불상은 조선시대 유생들에 의해 목이 잘려 시멘트로 흉하기 복원했고 광배 또한 애꿎은 등산객이 ....
하여간 뭐 그런 것을 이번에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고 미술학자 분들의 조언을 받아 원형에 가깝게 복원을 한 거다.


바로 뒤에 선방터로 보이는 굴이 보인다. 선방은 절과는 달리 스님이 혼자 참선을 하기 위해 머물렀던 곳으로 보면 된다.


이곳에서 좌측 즉 북쪽으로 가면 선각여래좌상이 있는데 본인은 그걸 보러 가다가 길을 잃어 상선암 쪽으로 올라가는 길로 들어 버렸다.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등산객에 의해 찾을 수 있었지만..
남산에 가기 전에 서적과 블러그를 뒤지며 준비를 했지만 막상 혼자 가면 반도 찾기가 힘들고 헤메기 십상이다.
최소한 4~5번은 가야 재대로 볼 수가 있다. 어쩌면 재대로 못 볼수도...

매주 일요일, 공휴일 그리고 쉬는 토요일(놀토)에 김구석 소장님이 운영하시는 남산연구소에서 무료 해설 산행이 있으니 그걸 따라 가는게 편하다.

남산 연구소 http://www.kjnamsan.org/



다시 내려가 길을 재촉하면 여기 부터 슬슬 난이도가 올라 간다..
그리고 상선암 바로 밑 돌계단은 거리는 얼마 안돼지만 평소 채력관리 안한 사람에겐 ㅠ.ㅠ
이곳에서 잠시 산행이 극락에서 지옥으로 바뀌는 코스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죠.
이코스는 한 여름에도 모자는 그리 필요하지 않은 코스이다.
길이 솔숲과 나무숲 사이에 나 있기에 녹음이 우거져 있다


석불좌상에서 다시 상선암으로 길을 재촉하다 보면 뒷통수가 좀 가려운 느낌이 드는데 ㅎㅎ
좌측을 보면 큰 바위에 먼가 보일 듯 말듯 ...


육안으론 사람에 따라 보이기도 안보이기도 하지만 사진찍어 확대하면 부처님이 내려다 보고 계신다. ^&^
여기를 지나면 나무 난간이 설치된 돌계단이 나오는데 아주 아주 죽여주는 코스이다.
특히 나처럼 몸이 부실한 사람은 @@
쉬지 않고 올라가면 10분도 안걸리지만 그게 말이 쉽지 결코 쉽지가 않다.


여기서 잠깐 삼천포로 빠지는데... 사진을 찍기 위해 두번째 올라간 날 석불좌상에서 선각마애불을 보기 위해 좌측으로 걸어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위쪽 능선을 타게 되었다. 그냥 좌측으로 계속 90미터만 가면 선각마애불을 찾을 수가 있으니 명심하세요.
굳이 선각마애불을 찾아 나선 것은 선각마애불 근처에 거북바위와 부부바위가 있기에 함께 보러 나섰다..
결국 내려올때 타인의 도움으로 찾았지만...하여간 쉬다가 올라가고 다시 쉬다가 올라가다 잠시 쉬는데 우연히 옆을 바라보니...
요상하게 생긴 바위가 ㅎㅎ


나중에 남산연구소장님이나 20여년을 남산에 오르신 분에게 물어 보았는데도 처음 본단다
그래서 내가 이름 하나 지어주었다.
"공룡바위"
공룡해골이 비스딤히 누워 있는거 같기에... 아니면 멍멍이 바위?


앞에 보이는 아주 귀여운 산이 망산(望山)이다.. 이름 기억하시길...


길을 잃고 무작정 올라가다 보니 결국 길이 나왔다. 현재는 폐쇄된 등산로이다.
계속가면 상선암가는 길과 상선암 뒤 마애석가여래좌상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상선암

예 절터에 근세에 세워진 절이다. 남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목도 축이는 곳이다.
금오봉으로 오르기전에 이곳에서 꼭 목을 축이기 바란다.. 안그러면 후회함 ^&^



상선암 요사채 바로 옆에 있는 선각보살입상의 일부
산 정상 어디에선가 굴러 내려오다 조각이나 일부가 땅에 약간 묻혀 있는데 나머지 부분은 아직 찾지 못했다.
원래의 크기는 매우 큰 것으로 사료된다고 한다.



상선암에서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낑낑거리며 잠시 약 100 미터를 오르면 석축 위로 부처님이 까꿍하고...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이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커다랐고 인자하신 부처님을 뵈니 마음이 포근해진다... 뭐 다리는 이제 맛이 가버렸다...ㅎㅎ
여기서 중요한 건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니다.. 필자가 좀 몸이 부실해서 그렇지...할배, 할매라면 많이 힘드실거다.
참고로 필자는 엔진 계통의 심각한 결함이 몇 년전 발생했기에 이 지점에서 거의 녹초다...
평지라면 문제 없는데 가파른 산행은 사실 무리이다.

여기서 다시 계단 몇개를 올라가면 냉골 암봉이고 거기서 부터 금오봉 정상까지는 약간의 오르막과 평지이다.
약 20분에서 30분 걸린다 하는데....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다..


냉골 암봉
마애석거여래좌상 바로 뒷 봉오리로 바둑바위와 금송정터가 있으니 함 가보시길...


정상가는 능선에서 내려다 본 상선암


산아당(産兒當) 상사바위 뒷 쪽면으로 정면에서 보면 쭈우욱 갈려졌다.
뭐 여자가 아이를 낳다 가리진 바위라 뭐나라...옛날 사람들은 요세 만큼 거시기 했나보다...@@
바위엔 아이의 모습도 새겨져 있어 예로부터 상사바위 전체는 아기를 갖기 원하는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던 곳이다.
카메라 위치가 잘못돼서 지송합니다 ㅎㅎ



상사바위

남산에는 상사바위가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약간 로리타 기질이 있던 할배와 마음씨 착한 피리소녀와의 사랑이 어린 바위이고 요건 위에 언급했듯이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던 상사바위이다.
큰 바위면 중간에 횡으로 골이 파여있는데 거기에 돌을 던져 얹으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또 상상병에 걸린 사람이 이곳에서 빌면 병이 낮는다는 야그도 전해져 내려온다.

남근과 여근을 상징하는 것이 있는데... 여근은 방금 설명했고 (횡으로 갈라진 골) 남근은 좌측에 서있는 길다란 바위이다..
여근 밑에 인위적으로 파여진 곳 밑 바로 옆에 잘 보면 작은 돌기둥이 있는데 요거이 얼굴없는 불상으로 현재 남산에 전해져내려오는 가장 작은 석불입상이다.
얼굴이 왜 없냐고요? 부처님 코 베어 먹으면 아들 난다는 속설이 있어 코베어 먹다가 나중에 코가 없어지는 얼굴까지 긁어 먹었겠죠... ㅎㅎ



정상으로 가는 부근에 있는 민묘. 재주도 좋네요..이 꼭대기에 묘를...
남산에 약 2만여개 이상의 민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또 1년에 약 100 여기의 무덤이 새로 생긴다.
인원부족으로 감시도 힘들고 또 밤에 몰래 묘를 만들고 도망을 가니..거기에 남산의 약 55%가 개인 사유지이기에 민묘 조성을 막기가 힘들다 한다. 뭐 남탓 할거 없다. 집사람 외할머니 묘도 남산 자락에 있으니...


으윽 ... 또 계단 ...미티 미티..
길이 주로 평이했지만 체력이 바닥난 상태로 한 발자욱 걷고 1분 휴식을 반복하며...@@


정상까지 100 미터 ... 갑자기 화장실이 급한데 화장실까지 180미터란다 .. 화장실가다가 탈진해 쓰러질 듯..걍 참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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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leesky.kr/xe/club/5989

신라 천년의 역사는 남산에서 비롯하여 남산에서 끝났다

시조 박혁거세가 나정에서 태어났고 천년의 영화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해주는 포석정이 그 기슭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신라 최초의 궁궐지인 창림사터가 여기에 있고, 시조묘을 비롯한 초기 몇몇 왕들의 무덤인 오릉, 박씨계의 왕인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이 잠든 삼릉을 비롯하여, 비운의 왕인 경애왕의 독릉이 각각 남산의 어귀와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이렇듯 숱한 흥망성쇠의 자취를 간직한 채 남산은 신라왕조의 영산으로서, 한편으로는 불교의 성지로서 오래도록 산라인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 왔었다

남산은 남북으로 10km, 동서로 4km로 금오봉(468m)과 수리봉(또는 고위봉 494m)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 신라사람들은 서라벌 남쪽에 있었기에 남산이라 불렀다.
남산에는 왕릉 13기, 산성지(山城址) 4개소, 사지(寺址) 147개소,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672점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들 문화유적은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44점이 지정되어 있고,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보호받고 있다.

그리 높지도 그렇다고 밋밋한 산이 아니기에 등산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경주를 구경와서 일부러 반나절을 투자해 가족과 함께 오르는 이들도 많다.

오늘 코스는 가장 많이 애용되는 냉골(冷谷)-상선암-금오봉(金鰲峰) 코스이다
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어 냉골이라 이름붙여졌지만 근래는 초입에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이의 무덤이 있기에 삼릉이라고도 불리운다. 이코스는 남산 등반 코스 중 가장 많은 유물이 있으며 금오봉을 거처 가장 많은 유적이 있는 용장골로 내려오면 단일 코스로는 가장 많은 유물과 유적을 접할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시작하는 코스는 좀 복잡하다.



금오봉에서 다시 돌아 내려오는 코스임.. 용장골로 내려가는 코스가 아닙니다

400 여미터 위 배리 삼불 주차장(무료)에 차를 주차시키고 배리 삼불을 본 후 다시 삼릉으로 이동해 냉골로 올라 가는 코스가 있다. 주차장이 무료이고 또 남산에 있는 석불 중 배리 삼불을 볼 수 있기에 남산을 몇 번 등반한 사람들이 애용하는 코스이다.

서남산 주차장(2000원)에 차를 주차시키고 바로 앞 등산로나 바로 좌측 삼릉입구로 시작하는 코스이다. 단체 등산객들이 관광버스를 이용해 왔거나 처음 남산을 찾는 분들이 애용하는 코스이다.

서남산 주차장에 주차 후 삼릉 바로 밑의 경애왕릉을 보고 다시 삼릉으로 올라와 시작하는 코스이다.

오늘 올라가는 코스는 세번째 코스로 개인적으로 비운의 왕 55대 경애왕릉 사진을 찍기 위해서 였다



서남산 주차장. 주차료가 2000원 되겠습니다. 물론 난 여기에 주차 안시킨다.
인근에 마을 진입로가 있기에 거기에 세워두고 올라간다.



산이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기에 아주머니들이 반나절 코스로 자주 올라간다.



서남산 주차장 앞 등산로



삼릉입구 진입로


삼릉에서 남쪽으로 약 50 여 미터 떨어진 경애왕릉 진입로..어느 쪽으로 가든 다 삼릉에서 만난다.



55대 경애왕릉의 묘. 혼자 떨어져 있기에 독릉이라고도 한다



경애왕릉에서 바로 좌측으로 보면 삼릉이 보인다


위에서 부터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릉이라고 전해진다.
여기서 전해진다 라는 표현이 좀... 즉 매장자와 무덤이 다를 수도 있다는 여그이다.


삼릉 윗 부분에 있는 안내도


삼릉을 본 후 잘 정돈 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우측으로 계곡이 있는데 가물때는 물이 거의 없는 편이다.
현재 2년전 남산 관리가 경주시에서 국립공원 관리공단으로 이관 된 후 남산 생태계 복원을 위해 일부 등산로 폐쇄, 등산로 정비 사업등이 이루어져 있다


약간의 오르막 길을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올라가면 눈 앞에 목없는 불상이 답사객을 맞이 한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1964년 동국대 학생들이 남쪽 30 미터 계곡에서 머리와 손이 짤린 상태로 땅속에 묻혀 있는 걸 발견했다.
옷고름의 매듭으로 우리의 전통 매듭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블러그를 보니 특정 종교를 비방할 목적으로 이 불상을 자주 인용하는데 불두와 손이 파괴된 것은 조선 후기 유생들에 의해서 였다. 나라에 재앙이나 기인한 현상이 일어날 때면 유생들이 불상 등을 파괴하곤 했는데 그 후 절터는 명당이란 인식이 굳어져 절터에 조상들의 묘를 쓰기 위해 불상이나 탑 등을 많이 파괴했었다.


작은 샘. 비가 적을 시엔 마시기에 좀 거시기 하다....


석불좌상에서 좌측으로 약 10 미터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면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자세히 보면 입술에 빨간 루즈 자국이...^&^ 입술에 칠한 채색이 아직 남아 있다.
설명문을 보면 아미타여래란 말이 나오는데 관음보살 보관(모자)에 새겨져 있으니 나 처럼 아미타여래 찾는다고 1시간 동안 주변을 헤매지 마세용 @@


석조좌불상에서 다시 약간 올라가면 또 뭔가가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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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사진은 아래 포스트에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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