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bTizqvC5X9o

 

 

https://www.youtube.com/watch?v=wBWV4fN5I5U

 

 

 

https://ko.wikisource.org/wiki/%EB%B2%88%EC%97%AD:%EB%B0%98%EC%95%BC%EB%B0%94%EB%9D%BC%EB%B0%80%EB%8B%A4%EC%8B%AC%EA%B2%BD

 

번역:반야바라밀다심경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산스크리트어 원문[편집] प्रज्ञापारमिताहृदयसूत्रंprajñāpāramitā-hṛdaya-sūtraṃ नमःnamaḥ स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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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20687

 

십팔공 (十八空)은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보살의 지혜

www.youtube.com/watch?v=e0RxzOXN9VI www.youtube.com/watch?v=fUHb5PoyVjI www.youtube.com/watch?v=Hogz5lk_Mkg blog.daum.net/511-33/12369785 이란 이란 공(空)’이라는 용어.. blog.daum.net 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4215 공(空)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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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 성취한 보살의 지혜-십팔공 (十八空) - 금강신문

천태조사 《법계차제초문》 읽기십팔공 초문 제45(十八空初門第四十五)9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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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게 설해진 공(空)의 교설 가운데 지금은 열여덟 가지 항목으로 정리된 ‘18공’에 대하여 설한다. 그 뜻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내공(內空)이니, 안·이·비·설·신·의라는 내육법[內六法]의 공함이다. 눈[眼]·귀[耳] 등이 공하므로 곧 인식주체라고 할 나[我]도 없고 나의 것[我所]도 없다. 즉, 눈 등의 인식주체라고 할 만한 법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 외공(外空)이니, 외법(外法)이 공한 것이다. 외법은 외육입을 말하니, 색·성·향·미·촉·법이다. 물질[色]·소리[聲] 등이 공하니 나도 없고 나의 것도 없어서 물질 등이라고 할 법이 없다. 즉, 인식대상의 공함을 말한다.

3. 내외공(內外空)이니, 내외법[內外法]이 공함이다. 눈이 물질을 보고 귀가 소리를 들으며 코가 냄새를 맡는 등으로 인식의 주관과 대상이 마주하는 일체의 현상 가운데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음을 ‘내외공’이라 한다.

4. 공공(空空)이니, 공(空)으로써 내공·외공·내외공을 타파하는 것이다. 《유마경》에서 ‘이 법을 얻었을 때 다른 병은 없고 오직 공병(空病)만 있다’고 한 것과 같이 공에 대한 집착을 다시 공으로 깨트리는 것이다.

5. 대공(大空)이니, 시방의 모습이 공함을 말한다. ‘대(大)’란 동쪽이나 서쪽 등 사방팔방으로 각각 끝없는 것을 나타내며, 또 일체처에 물질이 두루함을 말한다. 이러한 커다란 공간[大方] 또한 공함이다.

6. 제일의공(第一義空)이니, 모든 법 가운데 제일(第一)인 열반 또한 공함이다. 즉, 열반 가운데 또한 열반이라고 할 모습도 없으므로 제일의(第一義)도 공이다.
 
7. 유위공(有爲空)이니,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오온·십이처·십팔계 등 유위법의 공함이다. 왜냐하면 첫째, 거기에는 그것이라고 할 실체[我]도 없고 그에 따른 것[我所]도 없으며 변치 않는 모습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공이다. 둘째는 유위법의 모습이 공하여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고 있는 바가 없으므로 공이라 한다.

8. 무위공(無爲空)이니, 인연으로 생겨나지 않은 무위법의 공함이다. 무위법이란 항상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서 허공과 같으니, 만약 유위법을 얻을 수 없다면 가히 집착할만한 무위도 없다는 뜻이다.

9. 필경공(畢竟空)이니, 앞의 여덟 가지 공으로써 제법을 타파하여 깨끗한 데에 이르름을 ‘필경(畢竟)’이라 하는데 이 필경마저 집착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 《법화경》에서 ‘구경열반에 이르기까지 항상 적멸한 모습[乃至究竟涅槃 常寂滅相]’이라고 한 것과 같이 궁극[究竟]의 법이 있다고 집착하지 않는 것을 ‘필경공’이라 한다.

10. 무시공(無始空)이니, 일체세간이 중생이든 법이든 모두 시작이 없는 것이다. 마치 부처님께서 ‘중생은 시작 없는 무명이 애욕을 덮어 거기에 묶여 생사를 왕래하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이, 일체법 가운데 ‘시작’이라 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

11. 산공(散空)이다. 오온이 화합해서 개체가 있는 것인데, 만약 지혜로써 하나하나 분별하여 개체와 오온을 깨트려 흩으면, 깨뜨리고 흩어진 법도 모두 공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산공’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이 색(色)을 깨트려 흩어져 멸하여 있는 바가 없도록 한다’고 하신 것과 같다.

12. 성공(性空)이다. ‘성(性)’이란 본성(本性)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 있는 것’을 말하니, 인연을 기다리지 않는다. 만약 인연을 기다린다면 그것은 만들어진 법[作法]이다. 그러면 성(性)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일체의 법 가운데 모두 그러한 ‘성’이란 없다는 것이다.

13. 자상공(自相空)이다. 일체법에는 두 가지 상(相)이 있으니,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이다. ‘총상’이란 일체는 항상하지 않다[無常]는 등과 같이 모든 존재에 공통된 모습이며, ‘별상’은 모든 존재가 갖는 서로 다른 특징들이다. 마치 땅에는 단단한 특징이 있고 불에는 뜨거운 모습이 있지만, 이러한 모습이 모두 공하므로 ‘상공’이라 한다.

그것이라 할 실체도 없고
그에 따른 것도 없으며
변치 않는 모습을
얻을 수도 없어

14. 제법공(諸法空)이다. 제법(諸法)이란 오온·십이입·십팔계 등을 이름하니, 이 제법은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체법이 있다거나[有] 안다거나[知] 분별한다거나[識] 말미암는다거나[緣] 원인[因]이나 결과[果]라거나 하는 모든 모습 또한 공함을 말한다.

15. 불가득공(不可得空)이다. 위에서 밝힌 ‘제법공’과 공한 일체법은 모두 얻을 수 없으나, 이 ‘얻을 수 없음[不可得]’이라는 것을 일으키면 단멸(斷滅)에 빠지게 된다. 만약 불가득 또한 불가득[얻을 수 없음]임을 아는 것을 ‘불가득공’이라 한다.

16. 무법공(無法空)이다. ‘무법’은 존재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 사라짐[滅]도 없으므로 무법공이라 한다. 혹은 ‘없는 법[無法]’이란 과거나 미래의 법과 같은 것이니 이러한 ‘없는 법’도 얻을 수 없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17. 유법공(有法空)이다. ‘유법(有法)’이란 모든 인연으로 화합으로 생겨난 법이다. 어떤 이는 현재의 일체법과 무위법을 ‘유법(有法)’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유법이 모두 공함을 말한다.

18.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니, 무법이나 유법은 모두 그 모습을 얻을 수 없음을 말한다. 또한 무법유법공을 관(觀)하므로 무법유법공이라 한다. 혹자는 과거·미래·현재의 일체가 모두 공하므로 무법유법공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상과 같은 18 가지 공에는 인식 주관과 대상에 대한 집착을 비롯해 진리와 열반 그리고 얻을 수 없다는 공에 대한 집착까지 떨쳐야 한다는 뜻이 있다. 특히 ‘무시공’이나 ‘대공’은 시간과 공간 또한 실체가 없음을 말하여, 현대과학의 빅뱅이론과 같이 굳이 세계의 시작을 밝히려는 것 또한 잘못된 인식임을 지적하고 있다.

출처 : 금강신문(http://www.ggbn.co.kr)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68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반야심경 해설 9. 照見五蘊皆空 ④ 18공(空)의 뜻

http://blog.daum.net/mahatop7/5468

 

반야심경은 600권 반야경을 짧게 압축해 놓은 경입니다.

그래서 이 반야심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야경을 읽어 봐야 합니다.

반야경에는 이 공(空)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18공(空)입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공(空)을 열여덟 종류로 나눠서까지 설명했을까요?

그건 바로 공(空)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오해할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그걸 없애주시려는 부처님의 자비입니다.

십팔공(空)은 다음과 같습니다.

 

1.내공(內空),

2.외공(外空),

3.내외공(內外空),

4.공공(空空),

5.대공(大空),

6.제일의공(第一義空),- 열반

7.유위공(有爲空),

8.무위공(無爲空),

9.필경공(畢竟空),

10.무시공(無始空),

11.산공(散空),

12.성공(性空),

13.자상공(自相空),

14.제법공(諸法空),

15.불가득공(不可得空),

16.무법공(無法空),

17.유법공(有法空),

18.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일체가, 즉 모든 게 다 공(空)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신 것이 바로 십팔공입니다.

십팔공 중에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공공(空空)과 제일의공(第一義空)입니다.

공공(空空)이란 공(空)도 역시 실체가 없어서 공(空)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공(空)에 뭔 실체가 있다고 여기고 거기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제일의공(第一義空)에서 제일의(第一義)란 열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제일의공(第一義空)의 뜻은 열반도 또한 공(空)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열반에 뭔 실체가 있다고 여기고, 거기에 집착하면 그게 열반입니까?

아닙니다. 집착은 곧 고통이죠.

공(空)도 역시 공(空)하며, 열반도 역시 공(空)한 것입니다.

 

십팔공이란 그 모든 게 다 공(空)하다라는 것을 부처님께서 명확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이래서 부처님 법의 깊이가 너무나도 심오한 것입니다.

이 반야바라밀이란 그야말로 허공과 같아서 깊고도 심오합니다.

그러나 중생은 항상 이와는 반대로 뭔 어떤 형상을 찾아서 그걸 진리로 삼으려는 바보짓을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집착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불교는 그 반대의 방식을 취해야 깨달을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세속의 그런 방식으로는 불교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습관으로 인해서 이 공(空)이 그렇게 깨닫기가 힘든 것 입니다.

아래는 반야경에 나와 있는 십팔공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입니다.

각각의 뜻이 명확하게 나와 있으며,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대지도론을 보시면 됩니다.

대지도론에서는 아주 더 상세히 아주 자세히 그 뜻이 나와 있습니다.

18공 각각의 뜻을 모조리 다 명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공(空)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위에 써 놨듯이 공(空)의 종류가 18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모조리 다 공(空)하다라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시기 위해서 18공(空)을 설하신 것입니다.

 

......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내공(內空)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안의 법[內法]이란 눈[眼]과 귀[耳]와 코[鼻]와 혀[舌]와 몸[身]과 뜻[意]을 말하느니라.

눈은 눈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 있는[常]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滅]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귀는 귀로서 공하고, 코는 코로서 공하며, 혀는 혀으로서 공하고, 몸은 몸으로서 공하며,

뜻은 뜻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다.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내공(內空)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외공(外空)이냐 하면,

바깥 법[外法]이란 빛깔[色]과 소리[聲]와 냄새[香]과 맛[味]과 닿임[觸]과 법(法)을 말하느니라.

빛깔은 빛깔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소리는 소리로서 공하고, 냄새는 냄새로서 공하며,

맛은 맛으로서 공하고, 닿임[觸]은 닿임으로서 공하며,

법은 법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외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내외공(內外空)이냐 하면,

안팎의 법[內外法]이란 안[內]의 6입(入)과 바깥[外]의 6입을 말하느니라.

안의 법은 안의 법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바깥의 법은 바깥의 법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내외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공공(空空)이냐 하면, 온갖 법은 공하며, 이 공하다는 것도 또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공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대공(大空)이냐 하면, 동쪽은 동쪽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는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이며 위와 아래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대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제일의공(第一義空)이냐 하면, 제일의는 열반을 말하느니라.

열반은 열반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제일의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유위공(有爲空)이냐 하면,

유위의 법이란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를 말하느니라.

욕계는 욕계로서 공하고, 색계는 색계로서 공하며, 무색계는 무색계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유위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위공(無爲空)이냐 하면, 무위의 법이란 남이 없어짐이 없는 모양[無生相]과

머무름이 없는 모양[無住相]과 없어짐이 없는 모양[無滅相]을 말하느니라.

무위의 법은 무위의 법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무위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필경공(畢竟空)이냐 하면, 필경이란 모든 법의 마지막을 말하며 얻을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필경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시공(無始空)이냐 하면, 어떤 법에서도 처음에 온 곳을 얻을 수 없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무시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산공(散空)이냐 하면, 산(散)이란 모든 법이 없고 소멸하는 것이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산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성공(性空)이냐 하면, 온갖 법의 성품으로서 유위(有爲)의 법의 성품이거나

무위(無爲)의 법의 성품이거나 간에 이 성품은 성문이나 벽지불이 만든 바도 아니고

부처님께서 만든 바도 아니며, 또한 그 밖의 사람이 만든 바도 아니어서 이 성품은 성품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성공 (性空)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자상공(自相空)이냐 하면, 자상(自相)이란

물질[色]의 무너지는 모양과

느낌[受]의 느끼는 모양과

생각[想]의 취하는 모양과

지어감[行]의 짓는 모양과

분별[識]의 아는 모양을 말하느니라.

 

이와 같은 등의 유위의 법이나 무위의 법은 저마다 자상이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자상공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제법공(諸法空)이냐 하면,

모든 법이란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과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과

눈의 계층[眼界]ㆍ빛깔의 계층[色界]ㆍ안식의 계층[眼識界] 내지 뜻의 계층[意界]ㆍ법의 계층[法界]ㆍ의식의 계층[意識界]을 말하느니라.

이 모든 법은 모든 법으로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제법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불가득공(不可得空)이냐 하면, 모든 법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며,

이것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불가득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법공(無法空)이냐 하면, 어떤 법이 없는 이것도 또한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무법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유법공(有法空)이냐 하면, 법이 있다는 것은 모든 법이 화합한 가운데에 자기 성품과 모양[性相]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 있는 법이 공하나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유법공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이냐 하면, 모든 법 가운데에 법이 없는 것과 모든 법이 화합한 가운데에 자기 성품과 모양이 있는 것과, 이 없는 법과 있는 법이 공한 것이니, 그것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무법유법공이라 하느니라.

 

 일주각이 없으니 계단 양옆에 사부신장을 안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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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해설 8. 照見五蘊皆空 ③ 공(空)을 깨닫는 요령/방법

http://blog.daum.net/mahatop7/5467

 

공(空)을 깨닫는 방법 및 요령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최대한 쉽게 쓰겠습니다.

 

1. 어디에서 깨달아야 하는가?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는 말과 같이 바로 나 자신에게서 공(空)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을 아주 크게 나누면 두가지로 나누는데, 바로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입니다.

아공(我空)이란 바로 나 자신의 공함을 깨닫는 것이고,

법공(法空)이란 바로 나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 그러니까 내가 접하는 모든 바깥것들의 공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중에서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바로 아공(我空)입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나 자신의 공함을 깨달아야 하므로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인 것입니다.

오온(五蘊)이란 바로 "나"입니다.

나라고 여기는 게 바로 오온(五蘊)입니다.

(오온의 뜻은 나중에 자세히 새로온 항목에서 설명토록 하겠습니다.)

오온(五蘊)이란 쉽게 말하면 몸과 마음이란 뜻입니다.

그걸 더 세분화한것이 바로 색/수/상/행/식입니다.

몸과 마음 중에서 어디에서 공(空)을 깨달아야 할까요?

바로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이 마음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의 실체를 몰라서, 업을 쌓아 얻은 것이 바로 이 몸입니다.

그러므로 몸이 아니라 이 마음에서 공(空)을 깨달아야 합니다.

 

2. 마음에서 공(空)을 어떻게 깨닫는가?

위에서 써놨듯이 마음의 공(空)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마음 자체의 공(空)함을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공(空)함을 깨닫는다라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공(空) 그 자체는 그 어떤 말이나 언어로써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비유해서 설명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空)이란 그 무엇도 없이 ‘비어 있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마음의 본질/실상을 비유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바로 허공(하늘)입니다.

이 비유를 이해해서 마음의 본질을 깨달으십시오.

허공에 바람이 불면 먼지가 낍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지만,

땅바닥의 흙이라는 인(因)이 바람이라는 연(緣)을 만나면 허공에 먼지가 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이 불 때 허공에 있는 먼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인연화합으로 인해 허공에 먼지가 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기법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똑같습니다.

마음의 본질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空)인데,

우리의 감각기관인 육근(因)이 외부대상인 육경(緣)을 만나면 그때 마음, 즉 육식이 생깁니다.

마음이란 것도 인연화합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늘에 낀 먼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객진(客塵)이라고 부릅니다.

객은 나그네라는 뜻이며, 진은 먼지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은 하늘에 낀 먼지와 같은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들의 연속을 "나"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근데 이런 마음/생각이란 게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바로 인연화합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실체가 없고, 공한 것입니다.

[참고] 여기서 마음/생각이라는 의미를 같이 쓴 것은 제6식, 즉 생멸식을 의미합니다. 불성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중생이란 바로 이 먼지와 같은 내 마음을 실체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전도몽상입니다.

중생은 쉬지 않고 항상 끊임없이 생각하니까, 항상 하늘에 먼지가 가득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자체를 못보고 오로지 먼지만 바라보며 집착하고 그 무상한 먼지를 나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근데 잘 보십시오.

하늘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하늘에 낀 먼지가 중요합니까?

먼지는 무상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늘이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의 실체인 空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과 연으로 화합해서 생겨난 마음/생각이란게 마치 허공에 낀 먼지와 같아서 객진(客塵)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음의 본체인 하늘과 같은 공(空)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마음/생각이라는 먼지만을 바라보고 그 생멸하고 무상한 생각/마음을 나로 여기는 것입니다.

생멸하는 이 마음은 주인이 아니고 객(客)입니다.

끊임없이 왔다가 가버리니까 나그네/손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능엄경에 중생은 주인을 잃어버리고 손님이 주인 행세한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주인을 찾으십시요.

주인은 항상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게 주인입니다.

반대로 언제나 왔다갔다 하는 게 바로 나그네입니다.

이 생멸하는 마음인 객(客)을 나로 알고 도를 닦으면, 그게 바로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꼴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몽상입니다.

중생은 언제나 모양이 있는 것을 취해서 집착합니다.

모양에 집착하는 것 입니다. 모양/형체에....

그래서 허공에 바람이 불어 먼지가 끼면, 뭐를 바라보는 줄 아십니까?

허공을 안 보고 오로지 허공에 낀 먼지만을 바라봅니다.

마음의 실체...즉 마음의 공(空)을 왜 못 깨닫는 줄 아십니까?

무한한 텅빈 공(空)함을 안보고 오로지 허공위에 떠도는 먼지 같은 그 생각/마음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모습, 즉 相을 취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공에는 허공과 같이 相이 없습니다.

이제 시야를 돌리십시요.

광활한 텅빈 공(空)으로 눈을 돌리세요. 그때 깨닫습니다.

먼지를 바라보지 말고, 허공 그 자체를 깨달으려고 해야 합니다.

찰라생 찰라면하는 이 마음...즉 육식만 바라보지 말고, 그 육식이 떠 있는 그 무한한 공(空)을 알아채야 합니다.

마음을 관찰하는 사띠를 한다라는 것도 바로 이걸 깨닫기 위한 것입니다.

언제나 먼지와 같은 이 생멸하는 마음만 바라보다가는 아무것도 못 깨닫습니다.

 

3. 문득 공(空)을 깨닫는다 - 돈오(頓悟)

깨달음은 한 순간에 옵니다.

문득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오(頓悟)입니다.

이 생멸하는 마음을 바라보다가 마음의 본질인 공(空)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생멸하는 마음은 무상합니다. 매 변화합니다.

그렇다고 매 순간순간 변화하는 이 무상함만을 관하다가는 아무것도 못 깨닫습니다.

이 생멸하는 마음을 관하다가 텅 빈 공(空)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이 생멸하는 마음을 떠나서 공(空)을 깨닫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생멸심의 실상이 바로 공(空)이기 때문입니다.

공(空)은 다른 말로 불성이나, 진여, 법성 등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생멸하는 마음을 관하다가..마음 자체의 텅빈 공(空)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하늘의 먼지를 바라보다가 하늘 자체를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늘(허공)은 그저 비유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유라는 것을 아십시오.

먼지를 보다가 하늘을 봐야 합니다.

그 때 깨닫습니다.

허공엔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뭘 찾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마음을 쉬어야 그때 깨닫게 됩니다.

하늘에 먼지가 다 사라져야 청명한 하늘이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4. 공(空)을 깨달으면 끝인가?

그게 겨우 시작입니다.

공(空)을 돈오했다라는 것은 겨우 반야바라밀을 힐끗 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대한 시작입니다.

이 공(空)을 깨닫지 못한 상태로 그 뭔 수행을 한들, 그것은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 무슨 짓을 해도 허당이라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불교수행이란 깨닫고 나서 목적지, 즉 완전한 깨달음을 향해 걸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소승도 단계가 있고, 대승도 단계가 있습니다.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단계가 있고, 보살 제1지에서 제10지까지의 단계가 있습니다.

공(空)을 깨닫고 자기는 할일이 끝났다라고 착각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 무지함은 버려야 합니다.

그때부터 이 공(空)이 뭔지, 반야바라밀이 뭔지 다시 제대로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가 커져갑니다.

공(空)을 깨달은 사람이 만약 600권 반야경을 본다면, 아무 너무 재미있어서 눈물을 흘리고 보게 될 겁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재미가 없고 이해가 안돼서 몇페이지 보다가 덮어버릴 것입니다.

 

5. 왜 그렇게 공(空)을 깨닫기 어려운가?

위에는 아주 쉽게 하늘에 비유해서 공(空)을 깨닫는 방법을 설명해 놨습니다.

그러나 실제 공(空)을 깨닫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즉 대단한 공덕이 있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혹시나 긴가민가, 알듯 말듯하신 분이 계시다면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고 간절히 기도해보세요.

제발 좀 그게 뭔지 알려달라고 말입니다.

앉아서 도만 닦는다고 공(空)을 깨닫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남을 돕는 공덕도 같이 쌓아야 그 공덕으로 말미암아 깨닫습니다.

 

6. 공(空)도 역시 공(空)한 것이다.

공(空)이란 텅 비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공(空)에 집착해서 공(空)에도 뭔가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그래서 용수보살께서는 공에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병은 중병이며, 그 병은 못 고친다는 얘기까지 하셨죠.

공(空)에 집착하는 게 바로 어리석음, 즉 무명입니다.

공(空)함을 깨닫고도 그 공(空)에 집착하지 않는 게 바로 반야바라밀입니다.

이 공(空)을 대단히 잘못 착각하고 이해할 요소가 많기 때문에,

반야경에서 부처님께서 구분해서 공(空)을 설하셨듯이 18공(空)이 있습니다.

공(空)을 열더덟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한 것이 바로 18공(空)입니다.

공(空)을 깨달았다고 해서 나가 자빠지면 안 됩니다.

그런 이유로 깨달은 보살들께서도 부처님께 끊임없이 질문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7. 공(空)을 깨달은 자, 대승의 마음을 일으키라.

공(空)을 깨달으신 분들은, 대승의 마음을 일으키셔야 합니다.

대승의 마음이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다른 중생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나만 알고 있음 뭐합니까?

다른 존재들에게도 알려줘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합니다.

수많은 중생들은 자신의 마음을 실상을 몰라서 거기에 집착하며 끊임없이 고통받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부처님께서 걸으셨던 그 대승보살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깊이 반야바라밀을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 어떤 두려움 없이 중생을 돕는 보살행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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