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신화(剪燈新話)』에 대한 정확한 해설이 있어 작품 21편의 대역이 실린 주소창과 함께소개한다.
전등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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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고 새로운 이야기 『전등신화』
죽음과 친숙한 사랑, 귀신의 초현실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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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고 새로운 이야기 『전등신화』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저자인 구우(瞿佑)는 예로부터 학문을 중시한 집안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예(才藝)로 세간에 문명(文名)을 떨쳤다. 그가 쓴 『귀전시화(歸田詩話)』의 '자서(自序)'에는, 14세 때의 어느 날 부친의 친우 장언복(張彦復)이 찾아왔다가 그의 시재(詩才)를 높이 사 계화(桂花) 한 가지를 그린 다음 찬사의 시를 지어 넣어 주었으며, 이에 부친이 매우 기뻐하며 특별히 집안 한 곳을 정해 전계당(傳桂堂)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또 당대의 유명한 문인 양유정(楊維楨)이 만년에 송강(松江)에 머물러 혹 항주를 지나칠 때 구우의 숙부 구사형(瞿士衡)을 자주 방문하였다. 그들은 전계당에서 연일 술을 마시며 시 짓기를 즐겼는데 양유정이 어린 구우의 시재에 놀라 "이 아이는 그대 가문의 천리마이다!"라며 찬탄했고, 시인 능운한(凌雲翰)도 구우가 하루만에 자신의 2백수 매사(梅詞)ㆍ유사(柳詞)를 모두 화답하자 나의 '어린 벗'이라고 부르며 아꼈다고 한다.
『전등신화』는 "등불의 심지를 잘라서 불을 밝혀가며 읽는 재미나고 새로운 이야기"란 뜻이며, 당시 문예가 다시 고문에 복귀코자 하는 시대정신을 따라 명나라 시대에 들어와서부터 유행하던 백화체의 소설을 배척하고 당전기소설(唐傳奇小說)1)을 모방하여 신괴(神怪)한 내용을 섞어서 문어체로 기술한 단편의 전기소설집이다. 저작 시기는 명나라 초기의 홍무년간(洪武年間)2)으로 추정한다.
1) 육조(六朝) 시대의 지괴소설(志怪小說)을 이은 문언 단편소설로 그 명칭은 당나라 때 배형(裴鉶)의 소설집 『전기(傳奇)』에서 유래한다. '전기'란 기이한 것을 전한다는 의미로 지괴와는 달리 초현실적인 기괴함 위에 현실적인 사회문제도 함께 다룬다. 명나라 때 호응린(胡應麟)은 『소실산방필총(少室山房筆叢)』에서, 당(唐)나라 사람들에 이르러 비로소 의식적인 창작을 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당전기소설 구성의 볼만한 성과는 몽환(夢幻) 구조와 전기체 형식이다. '몽환구조'란 꿈과 현실의 이중구조로 삶 속에 꿈이 존재하고, 꿈속에 삶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인생약몽(人生若夢)'의 주제이며, 주인공이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가 꿈속의 세계로 진입하여 소원을 성취하고, 꿈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는 삼중 구조를 지닌다.
2) 1368년에서 1398년까지의 기간이다.
1378년 구우의 자서에 "내가 이미 고금의 괴기한 일을 편집해서 『전등록(剪燈錄)』 40권을 만들었다"고 한 데서 『전등신화』의 전신이 『전등록』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가 귀양간 후 『전등신화』 원고는 대부분 흩어져 없어졌는데 사천성 포강(浦江)에서 벼슬하던 호자앙(胡子昻)이 남아있는 4권을 구하여 보안의 구우에게 교정을 하도록 요청한다. 1420년 호자앙이 『전등신화권후기(剪燈新話卷後紀)』를 쓰고, 1421년 구우 자신이 발문을 짓는다. 그리하여 구우의 조카 구섬(瞿暹)이 항주에서 간행 유포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현존하는 『전등신화』의 원본이다. 전체 4권이고 매권은 5편으로 되어 있으며 부록 1편까지 포함하여 모두 21편이다.3)
3) 각권의 구성은 다음의 순서로 되어 있다.
권1 :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 「삼산복지지(三山福地志)」, 「화정봉고인기(華亭逢故人記)」, 「금봉채기(金鳳釵記)」, 「연방루기(聯芳樓記)」.
권2 : 「영호생명몽록(令狐生冥夢錄)」, 「천태방은록(天台訪隱錄)」, 「등목취유취경원기(滕穆醉遊聚景園記)」, 「목단등기(牧丹燈記)」, 「위당기우기(渭塘奇遇記)」.
권3 : 「부귀발적사지(富貴發跡司志)」, 「영주야묘기(永州野廟記)」, 「신양동기(申陽洞記)」, 「애경전(愛卿傳)」, 「취취전(翠翠傳)」.
권4 : 「용당영회록(龍堂靈會錄)」, 「태허사법전(太虛司法傳)」, 「수문사인전(修文舍人傳)」, 「감호야범기(鑑湖夜泛記)」, 「녹의인전(綠衣人傳)」.
부록 : 「추향정기(秋香亭記)」.
참고로 주이 교주의 『전등신화외이종』(상해고전문학출판사, 1957), 반총랑(飯塚朗) 역의 『전등신화』(동경, 평범사, 1965) 등에서 부록으로 「기매기(寄梅記)」를 넣었는데, 이는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潗成)』에 수록된 구우의 일문(佚文)에 불과할 뿐 『전등신화』의 작품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전등신화』의 제재는 원(元)나라와 명(明)나라 시대의 기이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나 일문(逸文)으로 당시 근 백 년 이내의 고사이다. 그는 책의 내용이 괴이하고 음란함을 들어 세간에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자서에서 창작의 목적을 "권선징악을 교훈으로 삼고, 원통하고 곤궁한 사람을 연민하고 동정함"을 들어 인도 주의를 표방하였다. 출판 이후 사서(邪書)로 규정되어 여러 차례 금서조치를 당했기 때문에 그 판본을 찾아볼 수 없다가 근세에 동강(董康)이 일본의 판본을 입수하여 중국에 다시 유포시켰다.
『전등신화』의 예술적 성취는 당전기의 가작(佳作)에 못 미친다고 평가받지만 선명한 시대적 색채와 특별히 시와 산문을 혼합하여 쓴 형식은 후대 문언소설 창작에 큰 영향을 준다. 1380년 능운한은 『전등신화』 「서(序)」에서 "이것을 읽으면 사람들에게 기쁠 때는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게 하기도 하고 슬플 때는 책을 덮어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고 했으며, 1389년 목인계형(睦人桂衡)은 『전등신화』 「시병서(詩幷序)」에서 "단지 거기에는 문(文)이 있고 시가 있고 가(歌)가 있고 사(辭)가 있고, 기뻐할 것이 있고 슬퍼할 것이 있고 놀랄 것이 있고 웃을 것이 있다는 것만 보인다"고 밝혔다.
『전등신화』는 이창기(李昌祺)의 『전등여화(剪燈餘話)』(1420), 소경첨(邵景詹)의 『멱등인화(覓燈因話)』(1592)를 비롯하여 『삼언이박(三言二拍)』 등을 낳았다. 이렇듯 제재ㆍ줄거리ㆍ인물의 전형성ㆍ수사 등에 있어 당대와 후대의 전기 소설ㆍ백화 소설ㆍ희곡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대략 1421년에서 1443년 사이로 추정되며, 1559년 윤춘년(尹春年) 정정(訂正)ㆍ임기(林芑) 집석(集釋)의 『전등신화구해(剪燈新話句解)』가 간행된다. 나아가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新話)』, 베트남 완서(阮嶼)의 『전기만록(傳奇漫錄)』, 일본 천정료의(淺井了意)의 『어가비자(御伽婢子)』 등에 영향을 끼쳐 비교문학적인 관점에서 다각적인 논의가 활발하다
죽음과 친숙한 사랑, 귀신의 초현실세계
죽어서도 애절한 사랑
동서고금의 문학을 통해 '사랑'이란 늘 최상의 주제이다. 『전등신화』에서도 총 21편 중 8편이 죽어서도 애절한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로 예외가 아니다.
재자가인의 사랑은 신의를 바탕으로 죽어서도 그 질기고 깊은 인연은 끝날 줄 모른다. 여주인공 모두 죽은 뒤에 이생에 환신(幻身)하여 남주인공과 1년 혹은 3년 간 미진한 인연을 마치고 명계(冥界)로 돌아간다. 이승에 홀로 남은 남주인공은 떠나간 여인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중국 고전 전기소설의 애정고사에서 거의 이와 유사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한결같이 여주인공이 귀신으로 설정되는 것은 고대 봉건 사회에서 여성의 낮은 지위로 인해 야기되는 한(恨)과 여성이 지니고 있는 환상과 신비로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최생(崔生)과 흥랑(興娘)은 태어나서 약혼을 맺었으나 오래 왕래가 두절된다. 흥랑은 기다림 끝에 병을 얻어 죽고 만다. 최생은 아우인 경랑(慶娘)의 몸을 빌려 환신한 흥랑과 약혼 예물인 금봉채를 계기로 1년 동안 살며 미진한 인연을 마친다.
-「금봉채기」
등목(滕穆)은 과거 길에 취경원(聚景園)에서 술에 취해 노닐다 송 왕조 때의 궁녀 위방화(衛芳華)를 만난다. 두 사람은 시를 화답하며 사랑을 확인하고 마침내 등목의 귀향길에 동행한다. 방화는 유가적인 부덕(婦德)을 실천하여 집안과 이웃의 칭송을 한 몸에 받는데 결국 3년간 전세의 인연이 다 했다며 명계로 돌아간다. 등목은 끝내 아내를 잊지 못해 산으로 약초를 캐러 들어가 종적을 감춘다.
-「등목취유취경원기」
조원(趙源)은 송나라 간신 가추학(賈秋壑)의 옛 집 앞에서 초록색 옷을 입은 미색의 여자를 만나 첫눈에 서로 사랑하게 된다. 전생에 여자는 가추학의 기동(棋童)이었고, 조원은 차를 달이는 하인으로 서로 사모했으나 가추학에게 들켜 죽임을 당했다. 마침내 여자는 이생에서 3년간의 미진한 인연을 마치고 명계로 돌아가고 조원은 여자를 잊지 못해 중이 된다. 한편 가추학의 만행을 비판하고 무릇 인간이란 하늘이 정한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녹의인전」
또 사랑하는 남녀가 장사성(張士誠) 난으로 인해 헤어지고 재회하는 아픔을 비극적으로 그린다. 비록 기녀 출신이나 유가적 부덕을 갖춘 여인 애경(愛卿)은 절의를 지키다 죽으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유취취(劉翠翠)와 김정(金定)은 못 이룬 사랑을 죽음으로 완성하고, 상생(商生)은 채채(采采)의 사랑을 잃어 끝내 상심하여 시에 부치기도 한다.
조생(趙生)은 명기(名妓) 애경을 아내로 맞이하고 벼슬길을 떠난다. 홀로 남은 애경은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으나 임종하자 예를 갖추어 장사지낸다. 장사성의 난으로 인해 애경은 정절을 지키고자 목을 매 자결한다. 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조생은 아내를 오매불망하다 서로 만나 회포를 풀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즐거움이 생시와 같았다. 이튿날 새벽이 되어 애경은 떠나가고 송씨네 아들로 환생하니 그 후 조생은 서로 세찬(歲饌)을 주고받으며 왕래한다.
-「애경전」
유취취와 가난한 김정(金定)은 동갑내기로 서당을 함께 다니며 사랑했다. 유씨네는 혼인에 있어 재산의 유무를 논하는 것은 오랑캐나 할 짓이라 밝히고 예를 갖추어 김정을 데릴사위로 맞는다. 1년이 못되어 장사성의 난으로 두 사람은 헤어지고 김생은 이장군의 첩이 된 취취를 재회한다. 그는 상심 끝에 병들어 죽고 이어 취취도 병들어 김생의 묘 왼쪽에 묻힌다. 마침내 두 사람은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을 죽음으로 완성한다.
-「취취전」
상생과 채채는 추향정 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장차 혼인을 약속하였으나 장사성난으로 헤어진다. 명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상생은 채채를 찾았는데 이미 왕씨에게 시집가 아들까지 두었음을 알게 된다. 상생이 채채의 편지를 받고 끝내 옛정을 잊지 못해 상심해하자 산양(山陽)의 친우 구우가 이 일을 두고 「만정방(滿庭芳)」을 짓는다. 작자인 구우의 등장으로 본 고사 배경의 사실성을 엿볼 수 있다.
-「추향정기」
반면 비극적인 사랑 외에 재자가인의 자유분방하고 꿈을 매개로 한 행복한 결말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왕생(王生)은 송강에 추수하러 갔다 위당의 한 주막에서 술을 마셨는데 그 집 딸이 그를 보자마자 사모했다. 왕생은 그날 밤 꿈에 그 여자의 방에서 잠자리를 함께 하고 이후 집으로 돌아가서도 매일 밤 꿈속에서 환락을 나눈다. 이듬해 왕생이 주막에 들러 상사병으로 병석에 누웠던 여자를 만나 서로 그동안 꿈속에서 일어난 일을 대조하니 모두 일치하였다. 마침내 두 사람은 꿈을 매개로 기이한 인연을 맺어 해로하게 된다.
-「위당기우기」
설난영(薛蘭英)과 혜영(蕙英) 두 자매는 자색과 시부(詩賦)에 뛰어나 당대에 명성을 날린다. 정생(鄭生)이 장삿길에 설씨네 들려 뱃머리에 나와 목욕하는데 자매가 연방루 창틈으로 밧줄에 대바구니를 매달아 내려 보냈다. 세 사람은 침실로 들어가 정념을 다하고 즉흥시를 지어 화답하며 이후 매일 밤 밀회한다. 설씨가 이 사실을 알고 정생의 인물, 사람 됨됨이, 문벌 등이 훌륭하여 걸맞으므로 사위를 삼는다. 사랑을 표현함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욱 적극적이며 일부다처제를 엿본다.
-「연방루기」
비켜갈 수 없는 운명
애정고사 외에 불가의 윤회설, 인과응보 등을 바탕으로 작자의 불우한 삶을 반영하고 당대 사회의 부정부패, 부조리 등을 명계를 빌려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나아가 세상사 한 개인의 행복과 불행, 한 나라의 흥망치란(興亡治亂) 모두 하늘이 정해준 운명의 수레바퀴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원자실(元自實)은 지정 말엽 산동에 난리가 나자 처자를 이끌고 한때 은혜를 베풀었던 목군(繆君)을 찾아갔으나 번번이 교묘한 말로 따돌림을 당했다. 결국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해 팔각정(八角井)에 몸을 던져 삼산복지에서 도사로부터 교리화조(交梨火棗)4)를 받아먹고 자신을 포함한 관리들의 인과응보에 의한 전생과 후생을 본다. 도사의 예언대로 그는 복녕(福寧)으로 이주하여 평안한 삶을 누리고 3년 만에 장사성난이 일어나 목군은 살해된다.
-「삼산복지지」
4) 도교에서 말하는 선과(仙果)로 이를 먹으면 하늘로 올라가고 능히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영호선(令狐譔)은 신불(神佛), 귀신 등을 믿지 않는 강직한 선비이다. 이웃에 오로(烏老)가 병으로 죽었다 사흘 만에 살아나 집안에서 불공을 잘 드려 명관(冥官)이 다시 이승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명부의 관리를 고발하는 시를 짓고 개탄하자 꿈에 귀졸(鬼卒)에 의해 저승으로 잡혀간다. 마침내 진술서를 써서 염라대왕을 감복시켜 방면되고 지옥구경까지 한다. 그가 꿈에서 깨어나 아침이 되자 오로가 그날 밤 삼경에 다시 죽었음을 알게 된다.
-「영호생명몽록」
선비 하우인(何友仁)은 성황당 부귀발적사 현판 아래서 부귀를 빌었다. 밤중에 부군(府君)과 여러 판관들이 들어와 각기 처리한 상벌을 말하고 장차 큰 난리가 일어나 어질고 착하거나 충효한 자가 아니면 환난을 면키 어렵다며 흩어졌다. 발적사 판관은 그의 앞날을 예언했는데 과연 장사성난이 일어나고 그는 '전'(電)자를 만나자 죽음을 준비한다.
-「부귀발적사지」
하안(夏顔)은 평소 학문이 깊고 영민했으나 곤궁하게 살다 객사했다. 친한 친구가 감로사(甘露寺)에서 하안을 만났는데 명부의 수문관 사인으로 있다며 저승에서는 이승과 달리 재주에 따라 일을 맡기고 제대로 대우해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승상, 병권을 쥔 자, 문관, 각 고을의 수령 등의 자질을 비판하고 자신이 저술한 책과 문장을 모아 출판해주길 부탁했다. 이후 그는 자주 왕래하며 길흉화복을 알려 주기도 했다. 3년 뒤 친구가 병들자 그가 곧 만기될 자신의 관직을 원한다면 힘쓰겠노라고 제의했다. 친구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치료받지 않고 죽는다.
-「수문사인전」
난세의 은둔세월
도가사상을 바탕에 깔고 역대 명장(名將)의 혼령과 은일자(隱逸者), 직녀신(織女神)과 더불어 시를 읊으며 역사를 담론하고 어지러운 세태를 개탄한다. 난세에 처한 지식인의 운명과 심리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송강에 사는, 전(全)과 가(賈)의 성을 가진 두 사람은 호걸 협객으로서 전학고(錢鶴皐)가 기병하여 장사성을 지원하자 그 휘하에 들어가 궤멸하여 물에 빠져 죽는다. 어느 날 화정에서 선비 석약허(石若虛)가 옛 친구였던 두 혼령을 만나 들판에 앉아 역사고사를 담론한다. 두 사람은 푸른 갖옷을 벗어 하인에게 주며 술을 받아오게 하고 함께 세상사 허망함을 시로 읊는다.
-「화정봉고인기」
서일(徐逸)은 단오날 천태산(天台山)에 약초를 캐러갔다 빼어난 산수에 매료되어 산 속 깊숙이 들어가다 한 마을을 만난다. 송나라 때 이곳으로 피난 왔다는 도(陶)노인은 그를 극진히 대접하며 송 원 명 삼대 흥망의 내력을 알고자 했다. 그는 하루를 더 머물고 돌아오는 길에 50보마다 대나무가지를 꽂아 표시를 해 두었다. 며칠 지나 다시 마을을 찾고자 했으나 통하는 길이 없었다.
-「천태방은록」
본편은 마치 「도화원기(桃花源記)」5)를 연상시킨다.
감호에 처사(處士) 성영언(成令言)은 부귀영달엔 뜻이 없고 회계(會稽)의 산수를 좋아하여 시를 읊으며 항상 배를 타고 노닐었다. 어느 날 밤 은하수에 닿아 직녀를 만난다. 선녀는 그에게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 왔다며 하계에 가 잘못 알려진 견우직녀고사와 신선계의 일들을 바로 잡아주길 부탁한다. 작별할 때 서기(瑞氣)어린 비단 두 끝을 받아 후에 페르시아 상인에게 보이니 하늘나라의 보배로 직녀가 짠 것이라고 감정했다. 그 후 영언은 작은 배를 타고 멀리 떠났는데 20년이 지나 그는 신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감호야범기」
5) 중국 전원시의 개조(開祖)인 동진(東晉) 도연명(陶淵明)의 산문으로 진(晉)나라 태원(太元)년간에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복숭아 숲을 만난다. 복숭아꽃에 취해 계속 배를 저어가 굴을 만나 배를 버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옛날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와 이룬 마을이 있었는데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어부는 그곳 마을사람의 환대를 받으며 며칠 지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표시를 해두었다. 그러나 돌아와서 태수에게 보고하여 사람을 시켜 길을 찾았으나 종내 찾지 못했다. 그 후 '도원경(桃源境)'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귀신, 요괴와의 만남
인간이 원귀(寃鬼)에 씌어서 교합하여 죽음을 맞고 이들 원귀가 사람들에게 재앙을 미치니 도사에 의해 처단된다.
원소절(元宵節) 삼경에 상처한 교생(喬生)이 부여경(符麗卿)을 만나 첫눈에 서로 뜻이 맞아 밤마다 잠자리를 하며 환락을 나눈다. 귀신에 홀린 교생은 위법사(魏法師)로부터 부적을 받아 겨우 재앙을 모면하나 결국 여경의 관속으로 끌려들어가 죽는다. 이후 음침한 날이나 달 없는 밤이면 쌍두(雙頭) 모란등(牡丹燈)을 든 하녀 금련(金蓮)을 앞세우고 교생과 여경이 손을 잡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앙화를 입히니 굿이나 푸닥거리로 원귀를 풀어야만 병이 나았다. 결국 철관도인(鐵冠道人)이 이들을 잡아들여 국문하고 진술서를 받아 율령에 따라 처결한다.
-「모란등기」
또 꿈을 빌려 요괴와 지옥의 심판을 그리고, 유명(幽明)간에 반드시 영(靈)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고금동서를 통해 인간의 영원한 꿈인 불로장생은 염왕(閻王)이 내린 상이 수명연장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서생 필응상(畢應祥)이 영주에 토신을 모시는 사당을 지나다 마침 제물(祭物)이 없어 정성스레 빌기만 하고 지나쳤다. 갑자기 광풍이 일며 검은 구름과 짙은 안개가 몰아치고 쫓아오는 군사가 천만을 헤아렸다. 그는 옥추경(玉樞經)을 외우며 달아나 남악(南嶽)에서 분향하며 봉변당한 일을 소상히 고했다. 그날 밤 꿈에 지옥으로 끌려가 죄인과 대질했는데 이 모두 토신을 대신하여 요괴(구렁이)가 저지른 소행이었다. 그는 염왕의 명령으로 풀려났으나 다시 무고죄로 지옥으로 잡혀간다. 염왕이 진상을 재조사하여 요괴를 풍도(酆都)6)로 보내고 그에게는 요괴를 제거한 공로로 목숨을 12년 연장시킨다
-「영주야묘기」
6) 북음(北陰)의 끝에 있는 산으로 대제(大帝)가 주관하는 세상인 지옥이 있다.
풍대이(馮大異)는 평소 안하무인으로 귀신 따위를 믿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귀곡(鬼谷)에 빠진다. 귀왕(鬼王)은 그에게 일장훈계를 하고 매질했으며 귀신들은 그를 키다리로 만들었다가 난쟁이로 만드는 등 수없이 괴롭혔다. 그는 귀신들로부터 두 개의 뿔, 새 주둥이, 붉은 머리털, 파란 눈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화병으로 죽었는데 며칠 뒤 관 속에서 재판에 이겨 귀신을 모두 처치하고 천부(天府)에서 자신을 태허전의 재판관으로 임명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태허사법전」
이덕봉(李德逢)은 계주(桂州) 낡은 사당에서 요괴들을 만나 신양후(申陽侯: 원숭이 왕)를 화살로 쏜다. 이튿날 핏자국을 쫓다 신양지동으로 떨어져 요괴들에게 독약을 선약이라고 처방하여 일망타진한다. 동굴의 원주인인 쥐들이 나타나 자신들은 500살이기에 그간 800살 묵은 원숭이들을 처치할 수 없었다며 치하했다. 그는 신양후를 시중들던 세 미인을 구출하여 모두 아내로 맞고 부귀를 누린다.
-「신양동기」
본편은 물괴고사(物怪故事)7)이며 봉건사회의 일부다처제를 엿본다.
7) 물체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천지의 정령(精靈)을 받아 괴력을 가지게 된 것을 말한다.
용궁에 가서 시를 짓다
사해(四海)에는 각기 용왕이 있고, 지상의 재사(才士)가 용왕의 초청을 받아 용궁에 가 시를 짓고 극진한 예우를 받고 돌아온다. 그러나 부귀공명을 초개처럼 여기고 은둔한다.
유생 여선문(余善文)은 남해 광리왕(廣利王)의 초청을 받는다. 영덕전(靈德殿)의 상량문(上梁文)을 지어 올리고 글 값으로 야광주(夜光珠)와 통천서각(通天犀角)8)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보물을 페르시아 보석상에게 팔아 큰 재산을 얻었으나 끝내 부귀공명에 뜻을 두지 않고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 종적을 감춘다.
-「수궁경회록」
8) 아래위로 기운이 통하고 물을 헤치고 나갈 수 있다는 무소의 뿔이다.
문인자술(聞人子述)이 용왕당(龍王堂)을 지나다 백룡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시 한 수를 지으니 용왕의 초청을 받는다. 용왕은 그의 시를 칭송하며 오(吳)나라의 삼고(三高)인 범상국(范相國), 장사군(張使君), 육처사(陸處士)를 소개한다. 이어 오군(伍君)이 당도하고 이들 혼령과 더불어 오월(吳越)의 역사를 담론하며 시를 읊고 술잔을 나누었다. 이윽고 아침이 되자 서로 작별하고 용왕은 진주와 통천서각을 자술에게 주었다.
-「용당영회록」
읽고 나서
작품은 내용의 특성에 따라 크게 애정고사와 신선귀괴(神仙鬼怪) 고사로 나뉜다. 작가는 진지하고 순수한 낭만적인 사랑을 통해 당시 봉건 혼인제도의 불합리와 원ㆍ명 교체기의 사회동란이 일반 백성에게 가져온 불행을 지적하였다. 한편 귀신세계를 빌려 원말 현실사회의 암흑과 불공평을 풍자하는 한편, 충의절의와 인과응보를 강조하였다. 나아가 작품 속에 난세를 사는 인민 군중들이 갖는 희망과 욕구를 형상화시켰다.
시대적 배경은 대부분 원나라 말엽에서 명나라 초기다. 1279년에 수립된 원나라는 포악한 통치로 인민들은 고통받았고 끊이지 않는 병란으로 사회는 혼미를 거듭하였다. 원나라는 몽골인의 귀족정치에 의해 한족(漢族)이 압박당하던 시대로 백성들은 노예와 같이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 1344년에는 가뭄과 충재(蟲災), 전염병 등으로 나라 안에 굶어죽는 자와 병사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지정 말엽 각 지역에서 농민의 폭동과 군사의 난이 끊이지 않자 살육과 혼란으로 천하는 크게 어지러웠다. 원말 장강(長江) 하류와 절강 지역에서 기의한 방국진(方國珍)ㆍ유복통(劉福通)에 이어 장사성의 세력이 비교적 컸는데 작품 전편에서 이들 대부분이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된다.
1368년 명나라가 건립된 후 사회는 안정된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며 통치 계급은 농민을 배려하여 생산은 증가되고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미천한 출신으로 하층민의 고충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국가정책에 반영하였다. 그러나 성군과 폭군의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던 그는 잔학함과 시기심, 의심으로 인해 수많은 공신과 명장을 살육하고 문자옥(文字獄)을 일으켜 지식인을 억압함으로써 시대를 어둡게 하였다. 또한 왕권을 공고히 하고자 재상제도를 폐지하였으나 오히려 환관의 정치를 초래하여 왕조를 약화시켰다.
이민족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명나라는 사회 전반에 한족의 문화와 전통을 세우려 하는 복고의 물결이 일었다. 문단의 복고주의와 함께 문인들은 시정(時政)을 비판하고자 엄한 형벌과 통제를 피해 미려한 당전기 형식을 빌려 글을 썼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 구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평민의 혁명으로 출발한 명나라는 계급을 타파하여 재능 있는 평민도 평등하게 가려 쓴 개방되고 진보된 사회였다. "동일함이 아닌 다름을 추구한다"는 기풍이 성행하여 각종 문학이 발달하였고 개개인의 재예를 중시하였다. 『전등신화』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난세에 불우한 생애를 보낸 작자의 삶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 전편에 혼란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내지 저항의식과, 이런 암울한 현실로부터 초월하려는 의식이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공간적 배경은 대부분 강소성과 절강성, 즉 소주(蘇州)ㆍ항주의 명승지와 비현실 세계인 용궁ㆍ지옥ㆍ은하수 등이다. 특히 초현실적인 귀신이나 요괴고사 등을 통해 작자의 이상주의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남주인공은 대부분 미혼의 빈곤한 선비로 재자(才子)이며 여주인공은 재색을 겸비한 규수ㆍ기녀ㆍ궁녀 등으로서 모두 시문에 능하다. 주제는 유가와 불교, 도가 및 신선 사상을 저변에 깔고 있는데 인과응보와 윤회설, 미신, 사회 암흑의 폭로, 역사와 정치에 대한 비판, 인민이 받는 고통에 대한 동정, 자유혼인 찬양, 불합리한 봉건제도에 대한 비판, 전란으로 파경을 맞는 애정, 인민의 이상에 대한 동경, 충효절의, 수신제가 등으로 현대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당송의 전기체 형식을 답습하였으나 대부분 원나라와 명나라 사이의 고사와 당대의 풍문을 소재로 하였다. 재자가인의 연애전설, 신선과 도사의 은둔고사, 학자와 문인의 풍류 등의 내용으로 사륙변려문9)과 전고를 사용하였고 시ㆍ사ㆍ문ㆍ부ㆍ격문ㆍ명(銘) 등 각종 문학 장르가 뛰어나다. 신화전설ㆍ역사ㆍ인물ㆍ민간고사, 고전시문ㆍ가무곡명ㆍ지명ㆍ명물(名物) 등을 인용 혹은 윤색, 전고하였다. 대부분 몽환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운문과 산문의 혼합 형식으로 씌어졌다. 『전등신화』는 비록 사대부에 의해 창작된 문언소설이지만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내세우고 있어 평민 문학의 관건이 된다.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작품에는 봉건 시대의 미신과 같은 내용이 많이 있으나 작자가 창작 동기를 '권선징악'이라 밝혔듯 대부분 인과응보의 설교를 담고 있으며 몽환구조 및 시문을 매개로 한다. 그 외 애정고사를 통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가?
「금봉채기」, 「연방루기」, 「위당기우기」, 「애경전」, 「취취전」, 「녹의인전」, 「추향정기」를 통해 진지한 사랑을 찬양하고 불합리한 봉건 체제의 혼인 제도를 비판하였다. 재자가인의 사랑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욱 적극적이다. 「금봉채기」, 「등목취유취경원기」, 「녹의인전」은 사람과 귀신 사이의 애정을 다룬 고사인데 여주인공이 사람의 몸을 되찾는다. 동란으로 인해 전생에 못다한 인연을 이승에서 한시적으로 맺으며 홀로 남은 남자는 중이 되거나 은둔한다. 「녹의인전」에서는 남송(南宋)의 간신 가사도의 죄상을 전면 폭로하여 봉건주의를 비판하였다.
2. 중국 문학은 전통적으로 『시경』의 풍유(諷諭) 정신을 따라 현실 비판의식이 강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인간 세상사 부조리가 만연한데 『전등신화』에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화전봉고인기」, 「용당영회록」, 「태허사법전」, 「수문사인전」은 정치의 부조리와 당시 백성들이 받은 압박과 불공평, 난세에 처한 지식인의 심리와 운명을 그렸다. 또한 「삼산복지지」는 충효절의를, 「영호생명몽록」과 「영주야묘기」는 귀괴신이(鬼怪神異)의 세계를 빌려 현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인민의 이상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였다. 특히 「부귀발적사지」에서는 불가의 인과응보를 강조한다.
3. 작자의 시대는 난세였다. 중국 도가는 난세의 사상을 대표한다. 이를 표방한 작품은 무엇인가?
「화정봉고인기」와 「천태방은록」 등에서 은둔사상을 추구하며, 「감호야범기」에서는 은하수의 직녀가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고 마침내 영언은 신선이 된다. 그 외 작품 전편 말미에서 심심치 않게 은일의 도가 사상을 만날 수 있다.
추천할 만한 텍스트『전등신화』, 구우 지음, 이병혁 역주, 태학사, 2002.
각주1) 육조(六朝) 시대의 지괴소설(志怪小說)을 이은 문언 단편소설로 그 명칭은 당나라 때 배형(裴鉶)의 소설집 『전기(傳奇)』에서 유래한다. '전기'란 기이한 것을 전한다는 의미로 지괴와는 달리 초현실적인 기괴함 위에 현실적인 사회문제도 함께 다룬다. 명나라 때 호응린(胡應麟)은 『소실산방필총(少室山房筆叢)』에서, 당(唐)나라 사람들에 이르러 비로소 의식적인 창작을 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당전기소설 구성의 볼만한 성과는 몽환(夢幻) 구조와 전기체 형식이다. '몽환구조'란 꿈과 현실의 이중구조로 삶 속에 꿈이 존재하고, 꿈속에 삶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인생약몽(人生若夢)'의 주제이며, 주인공이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가 꿈속의 세계로 진입하여 소원을 성취하고, 꿈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는 삼중 구조를 지닌다.
2) 1368년에서 1398년까지의 기간이다.
3) 각권의 구성은 다음의 순서로 되어 있다.
권1 :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 「삼산복지지(三山福地志)」, 「화정봉고인기(華亭逢故人記)」, 「금봉채기(金鳳釵記)」, 「연방루기(聯芳樓記)」.
권2 : 「영호생명몽록(令狐生冥夢錄)」, 「천태방은록(天台訪隱錄)」, 「등목취유취경원기(滕穆醉遊聚景園記)」, 「목단등기(牧丹燈記)」, 「위당기우기(渭塘奇遇記)」.
권3 : 「부귀발적사지(富貴發跡司志)」, 「영주야묘기(永州野廟記)」, 「신양동기(申陽洞記)」, 「애경전(愛卿傳)」, 「취취전(翠翠傳)」.
권4 : 「용당영회록(龍堂靈會錄)」, 「태허사법전(太虛司法傳)」, 「수문사인전(修文舍人傳)」, 「감호야범기(鑑湖夜泛記)」, 「녹의인전(綠衣人傳)」.
부록 : 「추향정기(秋香亭記)」.
참고로 주이 교주의 『전등신화외이종』(상해고전문학출판사, 1957), 반총랑(飯塚朗) 역의 『전등신화』(동경, 평범사, 1965) 등에서 부록으로 「기매기(寄梅記)」를 넣었는데, 이는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潗成)』에 수록된 구우의 일문(佚文)에 불과할 뿐 『전등신화』의 작품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4) 도교에서 말하는 선과(仙果)로 이를 먹으면 하늘로 올라가고 능히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고 한다.
5) 중국 전원시의 개조(開祖)인 동진(東晉) 도연명(陶淵明)의 산문으로 진(晉)나라 태원(太元)년간에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복숭아 숲을 만난다. 복숭아꽃에 취해 계속 배를 저어가 굴을 만나 배를 버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옛날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와 이룬 마을이 있었는데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어부는 그곳 마을사람의 환대를 받으며 며칠 지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표시를 해두었다. 그러나 돌아와서 태수에게 보고하여 사람을 시켜 길을 찾았으나 종내 찾지 못했다. 그 후 '도원경(桃源境)'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6) 북음(北陰)의 끝에 있는 산으로 대제(大帝)가 주관하는 세상인 지옥이 있다.
7) 물체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천지의 정령(精靈)을 받아 괴력을 가지게 된 것을 말한다.
8) 아래위로 기운이 통하고 물을 헤치고 나갈 수 있다는 무소의 뿔이다.
9) 육조시대 발달한 문체로 귀족적이고 유미주의 문학풍조의 산물이다. 한 구절이 4~6자구 위주로 이루어지며, 대구를 많이 쓰고 음조의 해화(諧和)를 중시하는 동시에 전고를 많이 사용하고 미려한 문사를 추구한다. 글 뜻의 표현보다도 아름답고 멋진 글 자체가 더 중시된다.
[참조]
산골 딱다구리,명청시대의 문언소설사
http://blog.naver.com/bhjang3/140173685053
구우의 전등신화
http://cafe.naver.com/chili/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