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三山福地誌 복받은 삼산의 땅

[게재분]

원자실(元自實)은 지정 말엽 산동에 난리가 나자 처자를 이끌고 한때 은혜를 베풀었던 목군(繆君)을 찾아갔으나 번번이 교묘한 말로 따돌림을 당했다. 결국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해 팔각정(八角井)에 몸을 던져 삼산복지에서 도사로부터 교리화조(交梨火棗)4)를 받아먹고 자신을 포함한 관리들의 인과응보에 의한 전생과 후생을 본다. 도사의 예언대로 그는 복녕(福寧)으로 이주하여 평안한 삶을 누리고 3년 만에 장사성난이 일어나 목군은 살해된다.

-「삼산복지지」

1/전등신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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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6) 三山福地志(삼산복지지)(1)

剪燈新話(전등신화)(6)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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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등신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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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7) 三山福地志(삼산복지지)(2)

剪燈新話(전등신화)(7)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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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등신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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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8) 三山福地志(삼산복지지)(3)

剪燈新話(전등신화)(8)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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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등신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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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9) 三山福地志(삼산복지지)(4)

剪燈新話(전등신화)(9)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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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등신화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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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10) 三山福地志(삼산복지지)(5)

剪燈新話(전등신화)(10)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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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전등신화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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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11) 三山福地志(삼산복지지)(6)

剪燈新話(전등신화)(11)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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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등신화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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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12) 三山福地志(삼산복지지)(7)

剪燈新話(전등신화)(12)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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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전등신화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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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13) 三山福地志(삼산복지지)(8)

剪燈新話(전등신화)(13)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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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山福地誌

元自實,山東人也。生而質鈍,不通詩書。家頗豐殖,以田莊為業。同裏有繆君者,除得閩中一官。缺少路費,於自實處假銀二百兩。自實以鄉黨相處之厚,不問其文券,如數貸之。

至正末,山東大亂。自實為群盜所劫,家計一空。時陳有定據守福建,七閩頗安。自實乃挈妻子由海道趨福州,將訪繆君而投托焉。至,則繆君果在有定幕下。當道用事,威權隆重,門戶赫奕。自實大喜。然而,患難之餘,跋涉道途,衣裳藍縷,容貌憔悴,未敢遽見也。乃於城中僦屋,安頓其妻孥,整飾其冠服,卜日而往。適值繆君之出,拜於馬首。初似不相識,及敘鄉井,通姓名,方始驚謝。即延之入室,待以賓主之禮。良久,啜茶而罷。明日,再往。酒果三杯而已,落落無顧念之意,亦不言銀兩之事。自實還家,旅寓荒涼,妻孥怨詈,曰:“汝萬裏投人,所幹何事?今為三杯薄酒所賣,即便不出一言,吾等何所望也!”自實不得已。又明日,再往訪焉。則似已厭之矣。自實方欲啟口,繆君遽曰:“向者承借路費,銘心不忘。但一宦蕭條,俸入微薄。故人遠至,豈敢辜恩,望以文券付還,則當如數陸續酬納也。”自實悚然曰:“與君共同鄉裏,自少交契深密。承命周急,素無文券。今日何以出此言也?”繆君正色曰:“文券誠有之,但恐兵火之後,君失之耳。然券之有無,某亦不較,惟望寬其程限,使得致力焉。”自實唯唯而出。怪其言辭矯妄,負德若此。羝羊觸藩,進退維谷。

半月之後,再登其門,惟以溫言接之,終無一錢之惠。展轉推托,遂及半年。市中有一小庵,自實往繆君之居,適當其中路,每於門下憩息。庵主軒轅翁者,有道之士也。見其往來頗久,與之敘話,因而情熟。時值季冬,已迫新歲。自實窮居無聊,詣繆君之居,拜且泣曰:“新正在邇,妻子饑寒,囊乏一錢,瓶無儲粟。向者銀兩,今不敢求。但願捐鬥水而活涸轍之枯,下壺飧而救翳桑之餓,此則故人之賜也。伏望憐之憫之,哀之恤之!” 遂匍匐於地。繆君扶之起,屈指計日之數,而告之曰:“更及一旬,當是除夕。君可於家專待。吾分祿米二石及銀二錠,令人馳送於宅,以為過歲之資,幸勿以少為怪。”且又再三丁寧,毋用他出以候之。自實感謝而退。歸以繆君之言慰其妻子。至日,舉家懸望,自實端坐於床,令稚子於裏門覘之。須臾,奔入曰:“有人負米至矣。”急出俟焉,則越其廬而不顧。自實猶謂來人不識其家,趨往問之。則曰:“張員外之饋館賓者也。”默然而返。頃之,稚子又入告曰:“有人攜錢來矣。” 急出迓焉,則過其門而不入。再往扣之,則曰:“李縣令之贐遊客者也。”憮然而慚,如是者凡數度。至晚,竟絕影響。明日,歲旦矣。反為所誤,粒米束薪,俱不及辦,妻子相向而哭。自實不勝其憤,陰礪白刃,坐以待旦。雞鳴鼓絕,徑投繆君之門,將俟其出而刺之。

是時,震方未啟,道無行人,惟小庵中軒轅翁方明燭轉經,當門而坐。見自實前行,有奇形異狀之鬼數十輩從之,或握刀劍,或執椎鑿,披頭露體,勢甚凶惡。一飯之頃,則自實複回,有金冠玉珮之士百餘人隨之,或擊幢蓋,或舉旌幡,和容婉色,意甚安閑。軒轅翁叵測,謂其已死矣。誦經已罷,急往訪之,則自實固無恙。坐定,軒轅翁問曰:“今日之晨,子將奚適?何其去之匆匆,而回之緩緩也?願得一聞。”自實不敢隱,具言:“繆君之不義,令我狼狽!今早實礪霜刃於懷,將往殺之以快意。及至其門,忽自思曰:彼實得罪於吾,妻子何尤焉。且又有老母在堂,今若殺之,其家何所依?寧人負我,毋我負人也!遂隱忍而歸耳。”軒轅翁聞之,稽首而賀曰:“吾子將有後祿,神明已知之矣。”自實問其故。翁曰:“子一念之惡,而凶鬼至;一念之善,而福神臨。如影之隨形,如聲之應響。固知暗室之內,造次之間,不可萌心而為惡,不可造罪而損德也。”因具言其所見而慰撫之,且以錢米少許周其急。然而自實終鬱鬱不樂。

至晚,自投於三神山下八角井中。其水忽然開辟,兩岸皆石壁如削,中有狹徑,僅通行履。自實捫壁而行,將數百步,壁盡路窮,出一弄口。則天地明朗,日月照臨,儼然別一世界也。見大宮殿,金書其榜曰:“三山福地。”自實瞻仰而入,長廊晝靜,古殿煙消,徘徊四顧,闃無人蹤,惟聞鍾磬之聲,隱隱於雲外。饑餒頗甚,行不能前,困臥石壇之側。忽一道士,曳青霞之裾,振明月之珮。至前呼起之,笑而問曰:“翰林識旅遊滋味乎?”自實拱而對曰:“旅遊滋味,則盡足矣。翰林之稱,一何誤乎?”道士曰:“子不憶草西蕃詔於興聖殿乎?”自實曰:“某山東鄙人,布衣賤士。生歲四十,目不知書。平生未嚐遊覽京國,何有草詔之說乎?”道士曰:“子應為饑火所惱,不暇記前事耳。”乃於袖中出梨棗數枚令食之,曰:“此謂交梨火棗也。食之當知過去未來事。”自實食訖,惺然明悟。因記為學士時,草西蕃詔於大都興聖殿側,如昨日焉。遂請於道士曰:“某前世造何罪而今受此報耶?”道士曰:“子亦無罪。但在職之時,以文學自高,不肯汲引後進,故今世令君愚懵而不識字。以爵位自尊,不肯接納遊士,故今世令君漂泊而無所依耳。”自實因指當世達官而問之曰:“某人為丞相,而貪饕不止,賄賂公行,異日當受何報?”道士曰:“彼乃無厭鬼王,地下有十爐以鑄其橫財,今亦福滿矣,當受幽囚之禍。”又問曰:“某人為平章,而不戢軍士,殺害良民,異日當受何報?”道士曰:“彼乃多殺鬼王,有陰兵三百,皆銅頭鐵額,輔之以助其虐,今亦命衰矣,當受割截之殃。”又問:“某人為監司,而刑罰不振;某人為郡守,而賦役不均;某人為宣慰,不聞所宣之何事;某人為經略,不聞所略之何方。然則當受何報也?”道士曰:“此等皆已杻械加其身,縲絏係其頸,腐肉穢骨,待戮餘魂,何足算也!”自實因舉繆君負債之事。道士曰:“彼乃王將軍之庫子,財物豈得妄動耶?”道士因言:“不出三年,世運變革,大禍將至,甚可畏也。汝宜擇地而居,否則恐預池魚之殃。”自實乞指避兵之地。道士曰:“福清可矣。”又曰:“不若福寧。”言訖,謂自實曰:“汝到此久,家人懸望,今可歸矣。”自實告以無路,道士指一徑令其去,遂再拜而別。

行二裏許,於山後得一穴出。到家,則已半月矣。急攜妻子徑往福寧村中,墾田治圃而居。揮钁之際,錚然作聲,獲瘞銀四錠,家遂稍康。其後張氏奪印,達丞相被拘。大軍臨城,陳平章遭擄。其餘官吏多不保其首領。而繆君為王將軍者所殺,家資皆歸之焉。以歲月記之,僅及三載,而道士之言悉驗矣。

 

 

 

卷一

1. 水宮慶會錄 경사스런 수궁의 잔치모임

[게재분]

유생 여선문(余善文)은 남해 광리왕(廣利王)의 초청을 받는다. 영덕전(靈德殿)의 상량문(上梁文)을 지어 올리고 글 값으로 야광주(夜光珠)와 통천서각(通天犀角)8)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보물을 페르시아 보석상에게 팔아 큰 재산을 얻었으나 끝내 부귀공명에 뜻을 두지 않고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 종적을 감춘다.

-「수궁경회록」

1/전등신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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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1) 水宮慶會錄(수궁경회록)(1)

剪燈新話(전등신화)(1)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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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등신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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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2) 水宮慶會錄(수궁경회록)(2)

剪燈新話(전등신화)(2)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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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등신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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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3) 水宮慶會錄(수궁경회록)(3)

剪燈新話(전등신화)(3)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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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등신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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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4) 水宮慶會錄(수궁경회록)(4)

剪燈新話(전등신화)(4)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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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2/전등신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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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5) 水宮慶會錄(수궁경회록)(5)

剪燈新話(전등신화)(5) 중국 명대(明代) 구우(瞿佑)가 지은 문어체(文語體) 단편소설집으로, 전4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 5 편에 부록 1편이 포함되어 있다. 1378년(洪武 11) 무렵에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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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宮慶會錄

至正甲申歲,潮州士人餘善文,於所居白晝閑坐。忽有力士二人,黃巾繡襖,自外而入。致敬於前曰:“廣利王奉邀。”善文驚曰:“廣利洋海之神,善文塵世之士。幽顯路殊,安得相及?”二人曰:“君但請行,毋用辭阻!”遂與之偕出南門外,見大紅船泊於江滸。登船,有兩黃龍挾之而行。速如風雨,瞬息已至,止於門下。二人入報。頃之,請入。廣利降階而接,曰:“久仰聲華。坐屈冠蓋,幸勿見訝。”遂延之上階,與之對坐。善文局蹐退遜。廣利曰:“君居陽界,寡人處水府。不相統攝,可毋辭也。”善文曰:“大王貴重,仆乃一介寒儒,敢當盛禮!”固辭。廣利左右有二臣,曰黿參軍、鱉主簿者,趨出奏曰:“客言是也,王可從其所請。不宜自損威德,有失觀視。”廣利乃居中而坐,別設一榻於右,命善文坐。乃言曰:“敝居僻陋,蛟鱷之與鄰,魚蟹之與居;無以昭示神威,闡揚帝命。今欲別構一殿,命名靈德。工匠已舉,木石鹹具,所乏者惟上梁文爾。側聞君子負不世之才,蘊濟時之略;故特奉邀至此,幸為寡人製之。”即命近侍取白玉之硯,捧文犀之管,並鮫綃丈許,置善文前。善文俯首聽命,一揮而就,文不加點。其詞曰:

伏以天壤之間,海為最大;人物之內,神為最靈。既屬香火之依歸,可乏廟堂之壯麗!是用重營寶殿,新揭華名。掛龍骨以為梁,靈光耀日;緝魚鱗而作瓦,瑞氣蟠空。列明珠白璧之簾櫳;接青雀黃龍之舸艦。瑣窗啟而海色在戶,繡闥開而雲影臨軒。雨順風調,鎮南溟八千餘裏;天高地厚,垂後世億萬斯年。通江漢之朝宗,受溪湖之獻納。天吳紫鳳,紛紜而到;鬼國羅刹,次第而來。巋然若魯靈光,美哉如漢景福。控蠻荊而引甌越,永壯宏規;叫閶闔而呈琅玕,宜興善頌。遂為短唱,助舉修梁:
拋梁東,方丈蓬萊指顧中。笑看扶桑三百尺,金雞啼罷日輪紅。拋梁西,弱水流沙路不迷。後夜瑤池王母降,一雙青鳥向人啼。拋梁南,巨浸漫漫萬族涵。要識封疆寬幾許?大鵬飛盡水如藍。
拋梁北,眾星絢爛環辰極。遙瞻何處是中原?一發青山浮翠色。拋梁上,乘龍夜去陪天仗。袖中奏罷一封書,盡與蒼生除禍瘴。拋梁下,水族紛綸承德化。清曉頻聞讚拜聲,江神河伯朝靈駕。
伏願上梁之後,萬族歸仁,百靈仰德。珠宮貝闕,應天上之三光,袞衣繡裳,備人間之五福。

書罷,進呈。廣利大喜。卜日落成,發使詣東西北三海,請其王赴慶殿之會。

翌日,三神皆至,從者千乘萬騎,神蛟毒蜃,踴躍後先;長鯨大鯤,奔馳左右。魚頭鬼麵之卒,執旌旄而操戈戟者,又不知其幾多也。是日,廣利頂通天之冠,禦絳紗之袍,秉碧玉之圭,趨迎於門,其禮甚肅。三神亦各盛其冠冕,嚴其劍珮,威儀極儼恪。但所服之袍,各隨其方而色不同焉。敘暄涼畢,揖讓而坐。善文亦以白衣,坐於殿角。方欲與三神敘禮,忽東海廣淵王座後有一從臣,鐵冠而長鬛者,號赤鯇公,躍出廣利前而請曰:“今茲貴殿落成,特為三王而設斯會。雖江漢之長,川澤之君,鹹不得預度,其禮可謂嚴矣。彼白衣而末坐者為何人斯?乃敢於此唐突也!”廣利曰:“此乃潮陽秀士餘君善文也。吾構靈德殿,請其作上梁文,故留之在此爾。”廣淵遽言曰:“文士在座,汝烏得多言?姑退!”赤鯇公乃赧然而下。已而,酒進樂作,有美女二十人,搖明璫,曳輕裾,於筵前舞淩波之隊,歌淩波之詞。曰:

若有人兮波之中,折楊柳兮采芙蓉。振瑤環兮瓊珮,璆鏘鳴兮玲瓏。衣翩翩兮若驚鴻,身矯矯兮如遊龍。輕塵生兮羅襪,斜日照兮芳容。蹇獨立兮西複東,羌可遇兮不可從。忽飄然而長往,禦泠泠之輕風。

舞竟,複有歌童四十輩,倚新妝,飄香袖,於庭下舞采蓮之隊,歌采蓮之曲。曰:

桂棹兮蘭舟,泛波光兮遠遊。捐予玦兮別浦,解予珮兮芳洲。波搖搖兮舟不定,折荷花兮斷荷柄。露何為兮沾裳?風何為兮吹鬢?棹歌起兮彩袖揮,翡翠散兮鴛鴦飛。張蓮葉兮為蓋,緝藕絲兮為衣。日欲落兮風更急,微煙生兮淡月出。早歸來兮難久留,對芳華兮樂不可以終極。

二舞既畢,然後擊靈鼉之鼓,吹玉龍之笛,眾樂畢陳,觥籌交錯。於是東西北三神,共捧一觥,致善文前,曰:“吾等僻處遐陬,不聞典禮。今日之會,獲睹盛儀。而又幸遇大君子在座,光采倍增。願為一詩以記之,使流傳於龍宮水府,抑亦一勝事也。不知可乎?”善文不可辭,遂獻水宮慶會詩二十韻:

帝德乾坤大,神功嶺海安。淵宮開棟宇,水路息波瀾。列爵王侯貴,分符地界寬。威靈聞赫奕,事業保全完。南極常通奏,炎方永授官。登堂朝玉帛,設宴會衣冠。鳳舞三簷蓋,龍馱七寶鞍。傳書雙鯉躍,扶輦六鼇蟠。王母調金鼎,天妃捧玉盤。杯凝紅琥珀,袖拂碧琅玕。座上湘靈舞,頻將錦瑟彈。曲終漢女至,忙把翠旗看。瑞霧迷珠箔,祥煙繞畫欄。屏開雲母瑩,簾卷水晶寒。共飲三危露,同餐九轉丹。良辰宜酩酊,樂事稱盤桓。異味充喉舌,靈光照肺肝。渾如到兜率,又似夢邯鄲。獻酢陪高會,歌呼得盡歡。題詩傳勝事,春色滿毫端。

詩進,座間大悅。已而日落鹹池,月生東穀,諸神大醉。傾扶而出,各歸其國。車馬駢闐之聲,猶逾時不絕。

明日,廣利特設一宴,以謝善文。宴罷,以玻璃盤盛照夜之珠十,通天之犀二,為潤筆之資。複命二使送之還郡。善文到家,攜所得於波斯寶肆鬻焉,獲財億萬計,遂為富族。後亦不以功名為意,棄家修道,遍遊名山,不知所終。

 

[참고]금오신화의 <용궁부연록>의 구성은 이 작품과 일치한다.

 

1.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

-용궁의 경사스런 잔치에 참석하다

 

至正甲申歲,潮州士人餘善文,於所居白晝閑坐。

지정 갑신년에 조주의 선비 여선문은 대낮에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忽有力士二人,黃巾繡襖,自外而入。

홀연 역사 두 사람이 누런 두건에 수놓은 저고리를 입고 밖으로부터 들어왔다.

致敬於前曰:“廣利王奉邀。”

앞에 와서 공손히 말하기를,

"광리왕께서 찾으십니다."

善文驚曰:“廣利洋海之神,善文塵世之士。幽顯路殊,安得相及?”

선문이 놀라서 말하기를,

"광리왕은 바다의 신이고 나는 속세의 선비라

서로 사는 곳이 다른데 어찌 서로 마주할 수 있겠소?"

二人曰:“君但請行,毋用辭阻!”

두사람이 말하기를,

"선비께서는 그냥 가시기만 하소서. 사양하고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遂與之偕出南門外,見大紅船泊於江滸。

마침내 함께 남문 밖으로 나가 강 어귀에 커다란 붉은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을 보았다.

登船,有兩黃龍挾之而行。

배에 오르니 양쪽에 황룡이 있어 호위해 갔다.

速如風雨,瞬息已至,止於門下。

비바람처럼 빠르게 나아가 순식간에 도착해 문 아래에 이르렀다.

二人入報。

두 사람이 들어가 보고했다.

頃之,請入。

곧 들어오라고 했다.

廣利降階而接,

광리왕은 계단을 내려오며 영접했다.

曰:“久仰聲華。坐屈冠蓋,幸勿見訝。”

"오랜 동안 그대의 높은 명성을 우르러 왔는데

내 거처에서 인사드림을 행여 달리 보시지 마시오."

遂延之上階,與之對坐。

마침내 연의 맨 윗 계단으로 올라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善文局蹐退遜。

선문이 종종걸음으로 황송하여 물러나려했다.

廣利曰:“君居陽界,寡人處水府。不相統攝,可毋辭也。”

광리왕이 말했다.

"그대는 양계에 살고 있고 과인은 수부에서 지내니

서로 통하는 바가 없기에 그렇게 사양할 필요는 없소."

善文曰:“大王貴重,仆乃一介寒儒,敢當盛禮!”固辭。

선문이 말하기를,

"대왕은 귀중하시지만 소인은 일개 한미한 서생인데 성대한 예우를 감당할 수 있으리오." 하고 고사하였다.

廣利左右有二臣,曰黿參軍、鱉主簿者,

광리왕의 좌우에 두 신하가 있었는데 원참군과 별주부였다.

趨出奏曰:“客言是也,王可從其所請。不宜自損威德,有失觀視。”

그들이 성큼 나와 아뢰었다.

"손님의 말씀도 옳습니다. 왕께서 그 소청을 따르심이 가합니다.

스스로 위덕을 손상하고 체통을 잃으심은 옳지 않습니다."

廣利乃居中而坐,別設一榻於右,命善文坐。

광리왕은 자기 의자에 앉았고 따로 한 의자를 오른편에 설치하여 선문을 앉게 하였다.

乃言曰:“敝居僻陋,蛟鱷之與鄰,魚蟹之與居;

無以昭示神威,闡揚帝命。

이에 말하기를,

"우리 사는 곳은 누추합니다. 상어 악어와 더불어 이웃해 있고 물고기 새우와 함께 삽니다. 밝게 신위로써 보일 수도 옥황상제의 명을 천양할 수도 없습니다.

今欲別構一殿,命名靈德。

이제 따로 한 전각을 만들고 싶어 지시를 했는데 이름을 영덕전으로 붙였습니다.

工匠已舉,木石鹹具,所乏者惟上梁文爾。

장인들이 이미 착수를 하여 나무와 돌들은 다 구비했는데 빠진 것은 오직 상량문입니다.

側聞君子負不世之才,蘊濟時之略;故特奉邀至此,幸為寡人製之。”

옆에서 듣기로 군자께서는 세상에 없는 재주를 갖고 시대를 뛰어넘는 책략을 쌓았다기에

특별히 받들어 모셔 여기에 이르렀으니 과인을 위해 상량문을 지어주기 바라오."

即命近侍取白玉之硯,捧文犀之管,並鮫綃丈許,置善文前。

곧 가까이 있는 내시에게 명하여 백옥 벼루를 가져오게 하고 문서를 받드는데 무소뿔 대롱에 교소의 비단 한 폭과 함께 선문의 앞에 펼쳐놓았다.

善文俯首聽命,一揮而就,文不加點。

其詞曰:

선문이 고개를 숙이면서 청해온 명을 받드니 일필휘지하니 글자에 점 하나도 더하지 않고 써내려 갔다.

그 사는 이러했다.

 

伏以天壤之間,海為最大;

人物之內,神為最靈。

엎드려 생각컨대

천지간에 바다가 제일 크고,

인간과 사물간에 신이 제일 신령하도다.

既屬香火之依歸,可乏廟堂之壯麗!

이미 향화의 귀의함이 있는데

묘당의 장려함이 모자라서야 되겠는가!

是用重營寶殿,新揭華名。

이에 좋은 집을 다시 짓고,

새로 좋은 이름을 붙이노라.

掛龍骨以為梁,靈光耀日;

緝魚鱗而作瓦,瑞氣蟠空。

용의 뼈를 걸어 들보를 삼으니,

신령스러운 빛이 해에 빛나고,

고기의 비늘로 기와를 만드니

상서로운 기운이 반공에 서렸구나.

列明珠白璧之簾櫳;接青雀黃龍之舸艦。

瑣窗啟而海色在戶,繡闥開而雲影臨軒。

명주와 백옥을 엮은 창문은 벌여 있고,

푸른 공작과 황룡을 그린 함선이 대어 있네.

자잘한 문양의 창을 여니 바다색이 문에 비치고

화려한 궁문을 여니 구름의 그림자는 추녀의 안으로 밀려오네.

雨順風調,鎮南溟八千餘裏;

天高地厚,垂後世億萬斯年。

비는 순하게 내리고 바람은 고르게 불어

진남의 명부는 팔천여 리에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워

후세의 억만 년을 드리우리라.

通江漢之朝宗,受溪湖之獻納。

장강과 한수가 종묘에 흘러 들고,

시내와 호수의 물결도 받아들이네.

天吳紫鳳,紛紜而到;

鬼國羅刹,次第而來。

해신인 천오(天吳)와 자색 봉황

어지럽게 내려오고

귀신 나라의 나찰들이

차례로 내려오사

巋然若魯靈光,美哉如漢景福。

험한 기세는 노나라 영광전(靈光殿) 같고,

미려함은 한나라 경복궁(景福宮) 같다.

控蠻荊而引甌越,永壯宏規;

叫閶闔而呈琅玕,宜興善頌。

만형을 제어하고 구월을 이끄니,

광대한 그 규모는 길이 영구하리라.

창합문에 소리쳐 천제께 낭간을 바치오니

마땅히 좋은 칭송이 일어나리라.

遂為短唱,助舉修梁:

여기 노래지어

상량에 바치노라.

拋梁東,方丈蓬萊指顧中。

笑看扶桑三百尺,金雞啼罷日輪紅。

들보 동쪽에 바치노라.

방장 봉래는 지척이요.

웃으며 삼백척의 부상 땅을 보네.

금계 울음 그치고 둥근 해는 붉도다.

拋梁西,弱水流沙路不迷。

後夜瑤池王母降,一雙青鳥向人啼。

들보 서쪽에 바치노라.

서쪽은 약수, 유사의 땅, 길은 분명하네.

한 밤중에도 요지에는 왕모 내려오시어

한 쌍의 청조(靑鳥)는 소식 알려 우는구나.

拋梁南,巨浸漫漫萬族涵。

要識封疆寬幾許?大鵬飛盡水如藍。

들보 남쪽에 바치노라.

끝없는 큰 가람 넘치는 물굽이

뉘라서 알리요, 경계가 어디메뇨?

대붕이 날아서 끝닿은 곳, 쪽빛 물결 다한 곳이네.

拋梁北,眾星絢爛環辰極。

遙瞻何處是中原?一發青山浮翠色。

들보 북쪽에 바치노라.

별들은 반짝반짝 북극성(北極星)을 둘러 있네.

북극성 잠들고, 중원이 어디메뇨.

아득한 푸른 산에 비취색만 아른거리네.

拋梁上,乘龍夜去陪天仗。

袖中奏罷一封書,盡與蒼生除禍瘴。

들보 위에 바치노라.

용을 타고 밤새도록 천제 앞에 가리라.

소매 속에 간직한 아뢰올 글월엔

창생의 온갖 재난 보살피라는 그 말씀.

拋梁下,水族紛綸承德化。

清曉頻聞讚拜聲,江神河伯朝靈駕。

들보 아래에 바치노라.

그 많은 수족(水族)들마저 성덕(聖德)을 입었구나!

맑은 새벽 부산하게 참배(參拜) 소리 들리니,

강의 신과 하백이 영가(靈駕)로 조회하네.

伏願上梁之後,

萬族歸仁,百靈仰德。

엎드려 원하건대 상량한 연후

온 누리가 대왕의 어진 인덕에 귀의하고,

만 겨레가 용왕님의 어진 덕에 귀의하고

온갖 신령이 용왕님의 선덕을 우러르게 하소서.

珠宮貝闕,應天上之三光,

袞衣繡裳,備人間之五福。

진주와 보패로 이룬 궁궐은

해와 달과 별빛에 맞서고,

곤룡의는 인간의 오복을 갖추게 하시라.

 

書罷,進呈。

廣利大喜。卜日落成,

發使詣東西北三海,請其王赴慶殿之會。

글을 끝내고 나아가 올렸다.

광리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낙성식 날을 받고

동서북 세 바다로 사신을 보내어

그 왕들을 낙성 축하연에 초대하였다.

翌日,三神皆至,從者千乘萬騎,

神蛟毒蜃,踴躍後先;

長鯨大鯤,奔馳左右。

이튿날 삼신들이 모두 왔다.

따라오는 종자들이 천승 만기며

신룡과 독신들이 위무 당당히 앞뒤에 섰고,

긴 고래와 대곤이 좌우를 벌려섰다.

魚頭鬼麵之卒,執旌旄而操戈戟者,

又不知其幾多也。

물고기 대가리에 귀신 얼굴의 병사들이

정모를 꼰아잡고 창극을 거머쥔 자가

얼마나 많은 지 헤아릴 수 없었다.

是日,廣利頂通天之冠,禦絳紗之袍,

秉碧玉之圭,趨迎於門,其禮甚肅。

이날 광리왕은 통천관을 쓰고 붉은 도포를 입고

벽옥장을 짚고 문에서 영접하는데 그 예가 매우 엄숙하였다.

三神亦各盛其冠冕,嚴其劍珮,威儀極儼恪。

삼신 또한 각자 그 관면이 성대하였고

그 차고 있는 칼도 엄중했으며

위엄스런 의식이 지극히 엄각하였다.

但所服之袍,各隨其方而色不同焉。

다만 옷과 도포가

각기 그 지방에 따라 색이 다를 뿐이었다.

敘暄涼畢,揖讓而坐。

차례대로 소개가 끝나자 서로 읍을 하고 앉았다.

善文亦以白衣,坐於殿角。

선문 또한 흰 옷을 입은 채 전각 한 모퉁이에 앉았다.

方欲與三神敘禮,

忽東海廣淵王座後有一從臣,鐵冠而長鬛者,號赤鯇公,

이제 삼신과 차례로 예를 올렸다.

홀연 동해 광연왕의 자리 뒤에 수행 신하가 하나 있었는데

철관에 긴 지느러미가 있어서 적완공이라 부르는 자였다.

躍出廣利前而請曰:

광리왕 앞으로 뛰쳐나와서 청하기를,

“今茲貴殿落成,特為三王而設斯會。

雖江漢之長,川澤之君,鹹不得預度,其禮可謂嚴矣。

彼白衣而末坐者為何人斯?乃敢於此唐突也!”

“지금은 귀 대궐의 낙성식이라 특히 삼왕을 모셔서 이런 연회를 열었습니다.

비록 강한의 수장이며 천택의 군주라도

다 자리에 앉지 못할 정도로 그 예의가 엄중하다고 이를 만합니다.

저 흰옷 입고 말석에 앉은 자는 누구이기에 감히 이 자리에 당돌합니까?”

廣利曰:“此乃潮陽秀士餘君善文也。

吾構靈德殿,請其作上梁文,故留之在此爾。”

광리왕이 말하기를,

"저분은 양계의 뛰어난 선비인 여선문입니다.

내 영덕전을 짓는데 청해서 상량문을 짓게 하였으므로

여기에 저처럼 머무르게 된 것입니다."

廣淵遽言曰:“文士在座,汝烏得多言?姑退!”

광연왕이 급히 말하기를,

"문사께서 여기 계시는데 너는 어찌 그리 말이 많으냐, 물러 가라."

赤鯇公乃赧然而下。

적완공이 얼굴을 붉히며 내려갔다.

已而,酒進樂作,有美女二十人,搖明璫,曳輕裾,

於筵前舞淩波之隊,歌淩波之詞。曰:

이어 술잔이 올라오고 음악이 연주되었는데

미녀 20인이 있어 밝은 구슬을 흔들며 소매를 가볍게 떨치며

무대 앞으로 나와 능파의 대열로 춤을 추는데

능파의 가사로 노래하였다. 가사는 이러하였다.

 

若有人兮波之中,折楊柳兮采芙蓉。

振瑤環兮瓊珮,璆鏘鳴兮玲瓏。

파도 가운데에 누가 있는가

수양버들과 부용꽃 꺾었어라.

차고 있는 패와 옥고리 흔들어라.

쩔렁쩔렁 울림은 영롱하구나.

衣翩翩兮若驚鴻,身矯矯兮如遊龍。

輕塵生兮羅襪,斜日照兮芳容。

옷자락 펄럭임은 놀란 기러기 같고

교교한 몸 놀림은 용의 유희 같구나.

버선 끝에서 가벼운 먼지 일어나니

기우는 햇살에 용모는 꽃답도다.

蹇獨立兮西複東,羌可遇兮不可從。

忽飄然而長往,禦泠泠之輕風。

한 발로 서서 서쪽으로 갔다 동쪽으로 다시 오니

강족 아니면 따를 수 없네.

갑자기 회오리바람처럼 멀리 갔다가

냉랭하고 가볍게 바람 재우네.

 

舞竟,複有歌童四十輩,

倚新妝,飄香袖,

於庭下舞采蓮之隊,歌采蓮之曲。曰:

춤이 끝나자 다시 가동 40 명이 나와

새로운 단장을 하고 향수 소매를 떨치며

뜰 아래로 내려와 채련(연을 채취함)의 대열을 하고 춤을 추는데

채련가를 불렀다.

 

桂棹兮蘭舟,泛波光兮遠遊。

捐予玦兮別浦,解予珮兮芳洲。

계수나무 노의 난초 배여,

파도 빛에 두둥실 멀리도 갔네.

내 패옥을 끊어 포구와 이별하고

내 패옥을 버려 포구에 새기네.

波搖搖兮舟不定,折荷花兮斷荷柄。

露何為兮沾裳?風何為兮吹鬢?

파도 일렁일렁 배는 정처없고,

연꽃 꺾으려니 연 가지 부러지네.

치마를 적시는 이슬은 어찌할꼬?

귀밑머리에 부는 저 바람은 어찌할꼬?

棹歌起兮彩袖揮,翡翠散兮鴛鴦飛。

張蓮葉兮為蓋,緝藕絲兮為衣。

노젓는 노래 시작하며 수 놓은 소매 휘젓고,

비취 빛 흩어지니 원앙 또한 날아가네.

긴 연꽃 잎은 덮개로 쓰고,

연뿌리 실 뽑아 옷 만드세.

日欲落兮風更急,微煙生兮淡月出。

早歸來兮難久留,對芳華兮樂不可以終極。

해 떨어지려 하니 바람은 급히 바뀌고

실 연기 일어나니 엷은 달님 나오는구나.

일찍 돌아오고 싶어도 오래 머물기 어렵고,

대하며 화려한 이름 남기려하나 즐거움이 종내 그 끝까지 갈 수는 없나니.

 

二舞既畢,

然後擊靈鼉之鼓,吹玉龍之笛,

眾樂畢陳,觥籌交錯。

두 춤이 끝나자

그런 후에 영타(신령스런 악어 가죽으로 만든 북)의 북을 치고

옥룡의 피리를 부는데

모든 악기가 함께 늘여서 굉주를 서로 교차시켰다.

於是東西北三神,共捧一觥,

致善文前,曰:

이에 동서북 삼심이 같이 하나의 광을 받들고

선문의 앞으로 나와서 말하기를,

“吾等僻處遐陬,不聞典禮。

今日之會,獲睹盛儀。

而又幸遇大君子在座,光采倍增。

우리들은 후미진 한 쪽 귀퉁이에서 사는데

책에 쓰여진 예의를 몰랐습니다.

오늘의 만남으로 성대한 의식을 보게 되었고

또 다행히 크신 군자를 앉은 자리에서 만나 뵙게 되었으니

광채가 배나 증가하였습니다.

願為一詩以記之,使流傳於龍宮水府,

抑亦一勝事也。不知可乎?”

원컨대 한 수 시를 지어 용궁 수부에 전해지도록 해 주시면

우러러 봄에 한 층 좋은 일이되겠습니다.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善文不可辭,遂獻水宮慶會詩二十韻:

선문은 사양하지 않고 드디어 수궁경회시 20운을 바쳤다.

 

帝德乾坤大,神功嶺海安。

淵宮開棟宇,水路息波瀾。

제의 덕은 하늘과 땅에 크고,

신의 공덕은 산과 바다에 편안하도다.

연궁은 동우를 열고

수로는 파란 속에 쉬는 구나.

列爵王侯貴,分符地界寬。

威靈聞赫奕,事業保全完。

열작과 왕후는 귀하나

떨어진 귀신 땅의 경계는 닫혀있네.

위령은 혁혁하게 들리고

사업은 완전하게 보전되리.

南極常通奏,炎方永授官。

登堂朝玉帛,設宴會衣冠。

남극으로는 늘 소원이 통하고

염방은 늘 관작을 주고

조정에 오를 때는 옥백이요,

연회를 열 때는 의관이라.

鳳舞三簷蓋,龍馱七寶鞍。

傳書雙鯉躍,扶輦六鼇蟠。

봉은 춤을 추며 삼 층 처마를 덮고

용을 타려고 칠보 안장 올렸네.

책을 전하기 위해서는 두 마리 잉어가 뛰고,

수레를 끌기 위해 큰 바다거북이 엎드려 있네.

王母調金鼎,天妃捧玉盤。

杯凝紅琥珀,袖拂碧琅玕。

서왕모는 금정을 조절하고,

천비는 옥쟁반을 받들며

술잔을 부딧히니 붉은 호박이요,

소매를 떨치니 푸른 낭간이로다.

座上湘靈舞,頻將錦瑟彈。

曲終漢女至,忙把翠旗看。

자리 위에서는 상령무를 추고,

빠른 곡조로 금슬을 연주하네.

곡조 끝나니 한녀가 와서

황급히 푸른색 깃발을 보여주네.

瑞霧迷珠箔,祥煙繞畫欄。

屏開雲母瑩,簾卷水晶寒。

상서로운 안개가 주박을 아른거리게 하고,

상서로운 연무는 난간을 그림처럼 두르고 있다.

운모 병풍 황홀하고

수정 주렴은 차가워라.

共飲三危露,同餐九轉丹。

良辰宜酩酊,樂事稱盤桓。

삼위의 이슬을 잔에 붓고,

구전단을 먹어보세.

임아, 이 좋은 밤에 취합시다.

즐거운 이 밤은 다시 안 오리니.

異味充喉舌,靈光照肺肝。

渾如到兜率,又似夢邯鄲。

진미는 혀와 목에 가득하고,

신령한 빛은 폐부에 빛나리라.

도솔천에 이르렀는가,

또 한단의 꿈이런가.

獻酢陪高會,歌呼得盡歡。

題詩傳勝事,春色滿毫端。

이름 높은 모임에 잔을 올리세,

흥이 다할 때까지 노래 부르세.

이 좋은 일들을 시로 지으니,

봄빛이 붓 끝에 가득하도다.

 

詩進,座間大悅。

已而日落鹹池,月生東穀,

諸神大醉。

시를 올리자 좌중이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이미 해는 연못 너머로 지고 달이 동쪽 골짜기로 올라오니

모든 신들이 다 크게 취했다.

傾扶而出,各歸其國。

車馬駢闐之聲,猶逾時不絕。

비틀거리며 나아가 각자 그 나라로 돌아가는데,

마차들의 요란스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明日,廣利特設一宴,以謝善文。

이튿날 광리왕은 특별히 또 연회를 열어

선문에게 사례를 하였다.

宴罷,以玻璃盤盛照夜之珠十,

通天之犀二,為潤筆之資。

잔치가 끝나자 파려의 쟁반에 빛나는 야광주 열 개와

통천하는 무소뿔 둘로 재료를 해서 붓을 만들어 주었다.

複命二使送之還郡。

다시 두 사신에게 명하여 집으로 돌려보내주었다.

善文到家,攜所得於波斯寶肆鬻焉,

獲財億萬計,遂為富族。

선문이 집에 도착하여 물속에서 얻은 보배들을 끌러보니

억만금의 재물을 얻어 마침내 부자가 되었다.

後亦不以功名為意,

棄家修道,遍遊名山,

不知所終。

뒤에 공명에는 뜻을 두지는 않았다가

집을 버리고 수도를 하려 명산을 돌아다녔는데

생을 마친 일은 알지 못한다.

 

『전등신화(剪燈新話)』에 대한 정확한 해설이 있어 작품 21편의 대역이 실린 주소창과 함께소개한다.

전등신화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65&docId=892479&mobile&categoryId=1065

재미나고 새로운 이야기 『전등신화』

죽음과 친숙한 사랑, 귀신의 초현실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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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고 새로운 이야기 『전등신화』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저자인 구우(瞿佑)는 예로부터 학문을 중시한 집안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예(才藝)로 세간에 문명(文名)을 떨쳤다. 그가 쓴 『귀전시화(歸田詩話)』의 '자서(自序)'에는, 14세 때의 어느 날 부친의 친우 장언복(張彦復)이 찾아왔다가 그의 시재(詩才)를 높이 사 계화(桂花) 한 가지를 그린 다음 찬사의 시를 지어 넣어 주었으며, 이에 부친이 매우 기뻐하며 특별히 집안 한 곳을 정해 전계당(傳桂堂)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또 당대의 유명한 문인 양유정(楊維楨)이 만년에 송강(松江)에 머물러 혹 항주를 지나칠 때 구우의 숙부 구사형(瞿士衡)을 자주 방문하였다. 그들은 전계당에서 연일 술을 마시며 시 짓기를 즐겼는데 양유정이 어린 구우의 시재에 놀라 "이 아이는 그대 가문의 천리마이다!"라며 찬탄했고, 시인 능운한(凌雲翰)도 구우가 하루만에 자신의 2백수 매사(梅詞)ㆍ유사(柳詞)를 모두 화답하자 나의 '어린 벗'이라고 부르며 아꼈다고 한다.

『전등신화』는 "등불의 심지를 잘라서 불을 밝혀가며 읽는 재미나고 새로운 이야기"란 뜻이며, 당시 문예가 다시 고문에 복귀코자 하는 시대정신을 따라 명나라 시대에 들어와서부터 유행하던 백화체의 소설을 배척하고 당전기소설(唐傳奇小說)1)을 모방하여 신괴(神怪)한 내용을 섞어서 문어체로 기술한 단편의 전기소설집이다. 저작 시기는 명나라 초기의 홍무년간(洪武年間)2)으로 추정한다.

1) 육조(六朝) 시대의 지괴소설(志怪小說)을 이은 문언 단편소설로 그 명칭은 당나라 때 배형(裴鉶)의 소설집 『전기(傳奇)』에서 유래한다. '전기'란 기이한 것을 전한다는 의미로 지괴와는 달리 초현실적인 기괴함 위에 현실적인 사회문제도 함께 다룬다. 명나라 때 호응린(胡應麟)은 『소실산방필총(少室山房筆叢)』에서, 당(唐)나라 사람들에 이르러 비로소 의식적인 창작을 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당전기소설 구성의 볼만한 성과는 몽환(夢幻) 구조와 전기체 형식이다. '몽환구조'란 꿈과 현실의 이중구조로 삶 속에 꿈이 존재하고, 꿈속에 삶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인생약몽(人生若夢)'의 주제이며, 주인공이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가 꿈속의 세계로 진입하여 소원을 성취하고, 꿈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는 삼중 구조를 지닌다.

2) 1368년에서 1398년까지의 기간이다.

1378년 구우의 자서에 "내가 이미 고금의 괴기한 일을 편집해서 『전등록(剪燈錄)』 40권을 만들었다"고 한 데서 『전등신화』의 전신이 『전등록』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가 귀양간 후 『전등신화』 원고는 대부분 흩어져 없어졌는데 사천성 포강(浦江)에서 벼슬하던 호자앙(胡子昻)이 남아있는 4권을 구하여 보안의 구우에게 교정을 하도록 요청한다. 1420년 호자앙이 『전등신화권후기(剪燈新話卷後紀)』를 쓰고, 1421년 구우 자신이 발문을 짓는다. 그리하여 구우의 조카 구섬(瞿暹)이 항주에서 간행 유포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현존하는 『전등신화』의 원본이다. 전체 4권이고 매권은 5편으로 되어 있으며 부록 1편까지 포함하여 모두 21편이다.3)

3) 각권의 구성은 다음의 순서로 되어 있다.

권1 :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 「삼산복지지(三山福地志)」, 「화정봉고인기(華亭逢故人記)」, 「금봉채기(金鳳釵記)」, 「연방루기(聯芳樓記)」.

권2 : 「영호생명몽록(令狐生冥夢錄)」, 「천태방은록(天台訪隱錄)」, 「등목취유취경원기(滕穆醉遊聚景園記)」, 「목단등기(牧丹燈記)」, 「위당기우기(渭塘奇遇記)」.

권3 : 「부귀발적사지(富貴發跡司志)」, 「영주야묘기(永州野廟記)」, 「신양동기(申陽洞記)」, 「애경전(愛卿傳)」, 「취취전(翠翠傳)」.

권4 : 「용당영회록(龍堂靈會錄)」, 「태허사법전(太虛司法傳)」, 「수문사인전(修文舍人傳)」, 「감호야범기(鑑湖夜泛記)」, 「녹의인전(綠衣人傳)」.

부록 : 「추향정기(秋香亭記)」.

참고로 주이 교주의 『전등신화외이종』(상해고전문학출판사, 1957), 반총랑(飯塚朗) 역의 『전등신화』(동경, 평범사, 1965) 등에서 부록으로 「기매기(寄梅記)」를 넣었는데, 이는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潗成)』에 수록된 구우의 일문(佚文)에 불과할 뿐 『전등신화』의 작품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전등신화』의 제재는 원(元)나라와 명(明)나라 시대의 기이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나 일문(逸文)으로 당시 근 백 년 이내의 고사이다. 그는 책의 내용이 괴이하고 음란함을 들어 세간에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자서에서 창작의 목적을 "권선징악을 교훈으로 삼고, 원통하고 곤궁한 사람을 연민하고 동정함"을 들어 인도 주의를 표방하였다. 출판 이후 사서(邪書)로 규정되어 여러 차례 금서조치를 당했기 때문에 그 판본을 찾아볼 수 없다가 근세에 동강(董康)이 일본의 판본을 입수하여 중국에 다시 유포시켰다.

『전등신화』의 예술적 성취는 당전기의 가작(佳作)에 못 미친다고 평가받지만 선명한 시대적 색채와 특별히 시와 산문을 혼합하여 쓴 형식은 후대 문언소설 창작에 큰 영향을 준다. 1380년 능운한은 『전등신화』 「서(序)」에서 "이것을 읽으면 사람들에게 기쁠 때는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게 하기도 하고 슬플 때는 책을 덮어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고 했으며, 1389년 목인계형(睦人桂衡)은 『전등신화』 「시병서(詩幷序)」에서 "단지 거기에는 문(文)이 있고 시가 있고 가(歌)가 있고 사(辭)가 있고, 기뻐할 것이 있고 슬퍼할 것이 있고 놀랄 것이 있고 웃을 것이 있다는 것만 보인다"고 밝혔다.

『전등신화』는 이창기(李昌祺)의 『전등여화(剪燈餘話)』(1420), 소경첨(邵景詹)의 『멱등인화(覓燈因話)』(1592)를 비롯하여 『삼언이박(三言二拍)』 등을 낳았다. 이렇듯 제재ㆍ줄거리ㆍ인물의 전형성ㆍ수사 등에 있어 당대와 후대의 전기 소설ㆍ백화 소설ㆍ희곡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대략 1421년에서 1443년 사이로 추정되며, 1559년 윤춘년(尹春年) 정정(訂正)ㆍ임기(林芑) 집석(集釋)의 『전등신화구해(剪燈新話句解)』가 간행된다. 나아가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金鰲新話)』, 베트남 완서(阮嶼)의 『전기만록(傳奇漫錄)』, 일본 천정료의(淺井了意)의 『어가비자(御伽婢子)』 등에 영향을 끼쳐 비교문학적인 관점에서 다각적인 논의가 활발하다

죽음과 친숙한 사랑, 귀신의 초현실세계

죽어서도 애절한 사랑

동서고금의 문학을 통해 '사랑'이란 늘 최상의 주제이다. 『전등신화』에서도 총 21편 중 8편이 죽어서도 애절한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로 예외가 아니다.

재자가인의 사랑은 신의를 바탕으로 죽어서도 그 질기고 깊은 인연은 끝날 줄 모른다. 여주인공 모두 죽은 뒤에 이생에 환신(幻身)하여 남주인공과 1년 혹은 3년 간 미진한 인연을 마치고 명계(冥界)로 돌아간다. 이승에 홀로 남은 남주인공은 떠나간 여인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중국 고전 전기소설의 애정고사에서 거의 이와 유사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한결같이 여주인공이 귀신으로 설정되는 것은 고대 봉건 사회에서 여성의 낮은 지위로 인해 야기되는 한(恨)과 여성이 지니고 있는 환상과 신비로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최생(崔生)과 흥랑(興娘)은 태어나서 약혼을 맺었으나 오래 왕래가 두절된다. 흥랑은 기다림 끝에 병을 얻어 죽고 만다. 최생은 아우인 경랑(慶娘)의 몸을 빌려 환신한 흥랑과 약혼 예물인 금봉채를 계기로 1년 동안 살며 미진한 인연을 마친다.

-「금봉채기」

등목(滕穆)은 과거 길에 취경원(聚景園)에서 술에 취해 노닐다 송 왕조 때의 궁녀 위방화(衛芳華)를 만난다. 두 사람은 시를 화답하며 사랑을 확인하고 마침내 등목의 귀향길에 동행한다. 방화는 유가적인 부덕(婦德)을 실천하여 집안과 이웃의 칭송을 한 몸에 받는데 결국 3년간 전세의 인연이 다 했다며 명계로 돌아간다. 등목은 끝내 아내를 잊지 못해 산으로 약초를 캐러 들어가 종적을 감춘다.

-「등목취유취경원기」

조원(趙源)은 송나라 간신 가추학(賈秋壑)의 옛 집 앞에서 초록색 옷을 입은 미색의 여자를 만나 첫눈에 서로 사랑하게 된다. 전생에 여자는 가추학의 기동(棋童)이었고, 조원은 차를 달이는 하인으로 서로 사모했으나 가추학에게 들켜 죽임을 당했다. 마침내 여자는 이생에서 3년간의 미진한 인연을 마치고 명계로 돌아가고 조원은 여자를 잊지 못해 중이 된다. 한편 가추학의 만행을 비판하고 무릇 인간이란 하늘이 정한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녹의인전」

또 사랑하는 남녀가 장사성(張士誠) 난으로 인해 헤어지고 재회하는 아픔을 비극적으로 그린다. 비록 기녀 출신이나 유가적 부덕을 갖춘 여인 애경(愛卿)은 절의를 지키다 죽으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유취취(劉翠翠)와 김정(金定)은 못 이룬 사랑을 죽음으로 완성하고, 상생(商生)은 채채(采采)의 사랑을 잃어 끝내 상심하여 시에 부치기도 한다.

조생(趙生)은 명기(名妓) 애경을 아내로 맞이하고 벼슬길을 떠난다. 홀로 남은 애경은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으나 임종하자 예를 갖추어 장사지낸다. 장사성의 난으로 인해 애경은 정절을 지키고자 목을 매 자결한다. 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조생은 아내를 오매불망하다 서로 만나 회포를 풀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즐거움이 생시와 같았다. 이튿날 새벽이 되어 애경은 떠나가고 송씨네 아들로 환생하니 그 후 조생은 서로 세찬(歲饌)을 주고받으며 왕래한다.

-「애경전」

유취취와 가난한 김정(金定)은 동갑내기로 서당을 함께 다니며 사랑했다. 유씨네는 혼인에 있어 재산의 유무를 논하는 것은 오랑캐나 할 짓이라 밝히고 예를 갖추어 김정을 데릴사위로 맞는다. 1년이 못되어 장사성의 난으로 두 사람은 헤어지고 김생은 이장군의 첩이 된 취취를 재회한다. 그는 상심 끝에 병들어 죽고 이어 취취도 병들어 김생의 묘 왼쪽에 묻힌다. 마침내 두 사람은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을 죽음으로 완성한다.

-「취취전」

상생과 채채는 추향정 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장차 혼인을 약속하였으나 장사성난으로 헤어진다. 명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상생은 채채를 찾았는데 이미 왕씨에게 시집가 아들까지 두었음을 알게 된다. 상생이 채채의 편지를 받고 끝내 옛정을 잊지 못해 상심해하자 산양(山陽)의 친우 구우가 이 일을 두고 「만정방(滿庭芳)」을 짓는다. 작자인 구우의 등장으로 본 고사 배경의 사실성을 엿볼 수 있다.

-「추향정기」

반면 비극적인 사랑 외에 재자가인의 자유분방하고 꿈을 매개로 한 행복한 결말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왕생(王生)은 송강에 추수하러 갔다 위당의 한 주막에서 술을 마셨는데 그 집 딸이 그를 보자마자 사모했다. 왕생은 그날 밤 꿈에 그 여자의 방에서 잠자리를 함께 하고 이후 집으로 돌아가서도 매일 밤 꿈속에서 환락을 나눈다. 이듬해 왕생이 주막에 들러 상사병으로 병석에 누웠던 여자를 만나 서로 그동안 꿈속에서 일어난 일을 대조하니 모두 일치하였다. 마침내 두 사람은 꿈을 매개로 기이한 인연을 맺어 해로하게 된다.

-「위당기우기」

설난영(薛蘭英)과 혜영(蕙英) 두 자매는 자색과 시부(詩賦)에 뛰어나 당대에 명성을 날린다. 정생(鄭生)이 장삿길에 설씨네 들려 뱃머리에 나와 목욕하는데 자매가 연방루 창틈으로 밧줄에 대바구니를 매달아 내려 보냈다. 세 사람은 침실로 들어가 정념을 다하고 즉흥시를 지어 화답하며 이후 매일 밤 밀회한다. 설씨가 이 사실을 알고 정생의 인물, 사람 됨됨이, 문벌 등이 훌륭하여 걸맞으므로 사위를 삼는다. 사랑을 표현함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욱 적극적이며 일부다처제를 엿본다.

-「연방루기」

비켜갈 수 없는 운명

애정고사 외에 불가의 윤회설, 인과응보 등을 바탕으로 작자의 불우한 삶을 반영하고 당대 사회의 부정부패, 부조리 등을 명계를 빌려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나아가 세상사 한 개인의 행복과 불행, 한 나라의 흥망치란(興亡治亂) 모두 하늘이 정해준 운명의 수레바퀴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원자실(元自實)은 지정 말엽 산동에 난리가 나자 처자를 이끌고 한때 은혜를 베풀었던 목군(繆君)을 찾아갔으나 번번이 교묘한 말로 따돌림을 당했다. 결국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해 팔각정(八角井)에 몸을 던져 삼산복지에서 도사로부터 교리화조(交梨火棗)4)를 받아먹고 자신을 포함한 관리들의 인과응보에 의한 전생과 후생을 본다. 도사의 예언대로 그는 복녕(福寧)으로 이주하여 평안한 삶을 누리고 3년 만에 장사성난이 일어나 목군은 살해된다.

-「삼산복지지」

4) 도교에서 말하는 선과(仙果)로 이를 먹으면 하늘로 올라가고 능히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영호선(令狐譔)은 신불(神佛), 귀신 등을 믿지 않는 강직한 선비이다. 이웃에 오로(烏老)가 병으로 죽었다 사흘 만에 살아나 집안에서 불공을 잘 드려 명관(冥官)이 다시 이승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명부의 관리를 고발하는 시를 짓고 개탄하자 꿈에 귀졸(鬼卒)에 의해 저승으로 잡혀간다. 마침내 진술서를 써서 염라대왕을 감복시켜 방면되고 지옥구경까지 한다. 그가 꿈에서 깨어나 아침이 되자 오로가 그날 밤 삼경에 다시 죽었음을 알게 된다.

-「영호생명몽록」

선비 하우인(何友仁)은 성황당 부귀발적사 현판 아래서 부귀를 빌었다. 밤중에 부군(府君)과 여러 판관들이 들어와 각기 처리한 상벌을 말하고 장차 큰 난리가 일어나 어질고 착하거나 충효한 자가 아니면 환난을 면키 어렵다며 흩어졌다. 발적사 판관은 그의 앞날을 예언했는데 과연 장사성난이 일어나고 그는 '전'(電)자를 만나자 죽음을 준비한다.

-「부귀발적사지」

하안(夏顔)은 평소 학문이 깊고 영민했으나 곤궁하게 살다 객사했다. 친한 친구가 감로사(甘露寺)에서 하안을 만났는데 명부의 수문관 사인으로 있다며 저승에서는 이승과 달리 재주에 따라 일을 맡기고 제대로 대우해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승상, 병권을 쥔 자, 문관, 각 고을의 수령 등의 자질을 비판하고 자신이 저술한 책과 문장을 모아 출판해주길 부탁했다. 이후 그는 자주 왕래하며 길흉화복을 알려 주기도 했다. 3년 뒤 친구가 병들자 그가 곧 만기될 자신의 관직을 원한다면 힘쓰겠노라고 제의했다. 친구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치료받지 않고 죽는다.

-「수문사인전」

난세의 은둔세월

도가사상을 바탕에 깔고 역대 명장(名將)의 혼령과 은일자(隱逸者), 직녀신(織女神)과 더불어 시를 읊으며 역사를 담론하고 어지러운 세태를 개탄한다. 난세에 처한 지식인의 운명과 심리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송강에 사는, 전(全)과 가(賈)의 성을 가진 두 사람은 호걸 협객으로서 전학고(錢鶴皐)가 기병하여 장사성을 지원하자 그 휘하에 들어가 궤멸하여 물에 빠져 죽는다. 어느 날 화정에서 선비 석약허(石若虛)가 옛 친구였던 두 혼령을 만나 들판에 앉아 역사고사를 담론한다. 두 사람은 푸른 갖옷을 벗어 하인에게 주며 술을 받아오게 하고 함께 세상사 허망함을 시로 읊는다.

-「화정봉고인기」

서일(徐逸)은 단오날 천태산(天台山)에 약초를 캐러갔다 빼어난 산수에 매료되어 산 속 깊숙이 들어가다 한 마을을 만난다. 송나라 때 이곳으로 피난 왔다는 도(陶)노인은 그를 극진히 대접하며 송 원 명 삼대 흥망의 내력을 알고자 했다. 그는 하루를 더 머물고 돌아오는 길에 50보마다 대나무가지를 꽂아 표시를 해 두었다. 며칠 지나 다시 마을을 찾고자 했으나 통하는 길이 없었다.

-「천태방은록」

본편은 마치 「도화원기(桃花源記)」5)를 연상시킨다.

감호에 처사(處士) 성영언(成令言)은 부귀영달엔 뜻이 없고 회계(會稽)의 산수를 좋아하여 시를 읊으며 항상 배를 타고 노닐었다. 어느 날 밤 은하수에 닿아 직녀를 만난다. 선녀는 그에게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 왔다며 하계에 가 잘못 알려진 견우직녀고사와 신선계의 일들을 바로 잡아주길 부탁한다. 작별할 때 서기(瑞氣)어린 비단 두 끝을 받아 후에 페르시아 상인에게 보이니 하늘나라의 보배로 직녀가 짠 것이라고 감정했다. 그 후 영언은 작은 배를 타고 멀리 떠났는데 20년이 지나 그는 신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감호야범기」

5) 중국 전원시의 개조(開祖)인 동진(東晉) 도연명(陶淵明)의 산문으로 진(晉)나라 태원(太元)년간에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복숭아 숲을 만난다. 복숭아꽃에 취해 계속 배를 저어가 굴을 만나 배를 버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옛날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와 이룬 마을이 있었는데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어부는 그곳 마을사람의 환대를 받으며 며칠 지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표시를 해두었다. 그러나 돌아와서 태수에게 보고하여 사람을 시켜 길을 찾았으나 종내 찾지 못했다. 그 후 '도원경(桃源境)'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귀신, 요괴와의 만남

인간이 원귀(寃鬼)에 씌어서 교합하여 죽음을 맞고 이들 원귀가 사람들에게 재앙을 미치니 도사에 의해 처단된다.

원소절(元宵節) 삼경에 상처한 교생(喬生)이 부여경(符麗卿)을 만나 첫눈에 서로 뜻이 맞아 밤마다 잠자리를 하며 환락을 나눈다. 귀신에 홀린 교생은 위법사(魏法師)로부터 부적을 받아 겨우 재앙을 모면하나 결국 여경의 관속으로 끌려들어가 죽는다. 이후 음침한 날이나 달 없는 밤이면 쌍두(雙頭) 모란등(牡丹燈)을 든 하녀 금련(金蓮)을 앞세우고 교생과 여경이 손을 잡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앙화를 입히니 굿이나 푸닥거리로 원귀를 풀어야만 병이 나았다. 결국 철관도인(鐵冠道人)이 이들을 잡아들여 국문하고 진술서를 받아 율령에 따라 처결한다.

-「모란등기」

또 꿈을 빌려 요괴와 지옥의 심판을 그리고, 유명(幽明)간에 반드시 영(靈)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고금동서를 통해 인간의 영원한 꿈인 불로장생은 염왕(閻王)이 내린 상이 수명연장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서생 필응상(畢應祥)이 영주에 토신을 모시는 사당을 지나다 마침 제물(祭物)이 없어 정성스레 빌기만 하고 지나쳤다. 갑자기 광풍이 일며 검은 구름과 짙은 안개가 몰아치고 쫓아오는 군사가 천만을 헤아렸다. 그는 옥추경(玉樞經)을 외우며 달아나 남악(南嶽)에서 분향하며 봉변당한 일을 소상히 고했다. 그날 밤 꿈에 지옥으로 끌려가 죄인과 대질했는데 이 모두 토신을 대신하여 요괴(구렁이)가 저지른 소행이었다. 그는 염왕의 명령으로 풀려났으나 다시 무고죄로 지옥으로 잡혀간다. 염왕이 진상을 재조사하여 요괴를 풍도(酆都)6)로 보내고 그에게는 요괴를 제거한 공로로 목숨을 12년 연장시킨다

-「영주야묘기」

6) 북음(北陰)의 끝에 있는 산으로 대제(大帝)가 주관하는 세상인 지옥이 있다.

풍대이(馮大異)는 평소 안하무인으로 귀신 따위를 믿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귀곡(鬼谷)에 빠진다. 귀왕(鬼王)은 그에게 일장훈계를 하고 매질했으며 귀신들은 그를 키다리로 만들었다가 난쟁이로 만드는 등 수없이 괴롭혔다. 그는 귀신들로부터 두 개의 뿔, 새 주둥이, 붉은 머리털, 파란 눈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화병으로 죽었는데 며칠 뒤 관 속에서 재판에 이겨 귀신을 모두 처치하고 천부(天府)에서 자신을 태허전의 재판관으로 임명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태허사법전」

이덕봉(李德逢)은 계주(桂州) 낡은 사당에서 요괴들을 만나 신양후(申陽侯: 원숭이 왕)를 화살로 쏜다. 이튿날 핏자국을 쫓다 신양지동으로 떨어져 요괴들에게 독약을 선약이라고 처방하여 일망타진한다. 동굴의 원주인인 쥐들이 나타나 자신들은 500살이기에 그간 800살 묵은 원숭이들을 처치할 수 없었다며 치하했다. 그는 신양후를 시중들던 세 미인을 구출하여 모두 아내로 맞고 부귀를 누린다.

-「신양동기」

본편은 물괴고사(物怪故事)7)이며 봉건사회의 일부다처제를 엿본다.

7) 물체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천지의 정령(精靈)을 받아 괴력을 가지게 된 것을 말한다.

용궁에 가서 시를 짓다

사해(四海)에는 각기 용왕이 있고, 지상의 재사(才士)가 용왕의 초청을 받아 용궁에 가 시를 짓고 극진한 예우를 받고 돌아온다. 그러나 부귀공명을 초개처럼 여기고 은둔한다.

유생 여선문(余善文)은 남해 광리왕(廣利王)의 초청을 받는다. 영덕전(靈德殿)의 상량문(上梁文)을 지어 올리고 글 값으로 야광주(夜光珠)와 통천서각(通天犀角)8)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보물을 페르시아 보석상에게 팔아 큰 재산을 얻었으나 끝내 부귀공명에 뜻을 두지 않고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 종적을 감춘다.

-「수궁경회록」

8) 아래위로 기운이 통하고 물을 헤치고 나갈 수 있다는 무소의 뿔이다.

문인자술(聞人子述)이 용왕당(龍王堂)을 지나다 백룡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시 한 수를 지으니 용왕의 초청을 받는다. 용왕은 그의 시를 칭송하며 오(吳)나라의 삼고(三高)인 범상국(范相國), 장사군(張使君), 육처사(陸處士)를 소개한다. 이어 오군(伍君)이 당도하고 이들 혼령과 더불어 오월(吳越)의 역사를 담론하며 시를 읊고 술잔을 나누었다. 이윽고 아침이 되자 서로 작별하고 용왕은 진주와 통천서각을 자술에게 주었다.

-「용당영회록」

읽고 나서

작품은 내용의 특성에 따라 크게 애정고사와 신선귀괴(神仙鬼怪) 고사로 나뉜다. 작가는 진지하고 순수한 낭만적인 사랑을 통해 당시 봉건 혼인제도의 불합리와 원ㆍ명 교체기의 사회동란이 일반 백성에게 가져온 불행을 지적하였다. 한편 귀신세계를 빌려 원말 현실사회의 암흑과 불공평을 풍자하는 한편, 충의절의와 인과응보를 강조하였다. 나아가 작품 속에 난세를 사는 인민 군중들이 갖는 희망과 욕구를 형상화시켰다.

시대적 배경은 대부분 원나라 말엽에서 명나라 초기다. 1279년에 수립된 원나라는 포악한 통치로 인민들은 고통받았고 끊이지 않는 병란으로 사회는 혼미를 거듭하였다. 원나라는 몽골인의 귀족정치에 의해 한족(漢族)이 압박당하던 시대로 백성들은 노예와 같이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 1344년에는 가뭄과 충재(蟲災), 전염병 등으로 나라 안에 굶어죽는 자와 병사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지정 말엽 각 지역에서 농민의 폭동과 군사의 난이 끊이지 않자 살육과 혼란으로 천하는 크게 어지러웠다. 원말 장강(長江) 하류와 절강 지역에서 기의한 방국진(方國珍)ㆍ유복통(劉福通)에 이어 장사성의 세력이 비교적 컸는데 작품 전편에서 이들 대부분이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된다.

1368년 명나라가 건립된 후 사회는 안정된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며 통치 계급은 농민을 배려하여 생산은 증가되고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미천한 출신으로 하층민의 고충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국가정책에 반영하였다. 그러나 성군과 폭군의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던 그는 잔학함과 시기심, 의심으로 인해 수많은 공신과 명장을 살육하고 문자옥(文字獄)을 일으켜 지식인을 억압함으로써 시대를 어둡게 하였다. 또한 왕권을 공고히 하고자 재상제도를 폐지하였으나 오히려 환관의 정치를 초래하여 왕조를 약화시켰다.

이민족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명나라는 사회 전반에 한족의 문화와 전통을 세우려 하는 복고의 물결이 일었다. 문단의 복고주의와 함께 문인들은 시정(時政)을 비판하고자 엄한 형벌과 통제를 피해 미려한 당전기 형식을 빌려 글을 썼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 구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평민의 혁명으로 출발한 명나라는 계급을 타파하여 재능 있는 평민도 평등하게 가려 쓴 개방되고 진보된 사회였다. "동일함이 아닌 다름을 추구한다"는 기풍이 성행하여 각종 문학이 발달하였고 개개인의 재예를 중시하였다. 『전등신화』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난세에 불우한 생애를 보낸 작자의 삶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 전편에 혼란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내지 저항의식과, 이런 암울한 현실로부터 초월하려는 의식이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공간적 배경은 대부분 강소성과 절강성, 즉 소주(蘇州)ㆍ항주의 명승지와 비현실 세계인 용궁ㆍ지옥ㆍ은하수 등이다. 특히 초현실적인 귀신이나 요괴고사 등을 통해 작자의 이상주의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남주인공은 대부분 미혼의 빈곤한 선비로 재자(才子)이며 여주인공은 재색을 겸비한 규수ㆍ기녀ㆍ궁녀 등으로서 모두 시문에 능하다. 주제는 유가와 불교, 도가 및 신선 사상을 저변에 깔고 있는데 인과응보와 윤회설, 미신, 사회 암흑의 폭로, 역사와 정치에 대한 비판, 인민이 받는 고통에 대한 동정, 자유혼인 찬양, 불합리한 봉건제도에 대한 비판, 전란으로 파경을 맞는 애정, 인민의 이상에 대한 동경, 충효절의, 수신제가 등으로 현대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당송의 전기체 형식을 답습하였으나 대부분 원나라와 명나라 사이의 고사와 당대의 풍문을 소재로 하였다. 재자가인의 연애전설, 신선과 도사의 은둔고사, 학자와 문인의 풍류 등의 내용으로 사륙변려문9)과 전고를 사용하였고 시ㆍ사ㆍ문ㆍ부ㆍ격문ㆍ명(銘) 등 각종 문학 장르가 뛰어나다. 신화전설ㆍ역사ㆍ인물ㆍ민간고사, 고전시문ㆍ가무곡명ㆍ지명ㆍ명물(名物) 등을 인용 혹은 윤색, 전고하였다. 대부분 몽환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운문과 산문의 혼합 형식으로 씌어졌다. 『전등신화』는 비록 사대부에 의해 창작된 문언소설이지만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내세우고 있어 평민 문학의 관건이 된다.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작품에는 봉건 시대의 미신과 같은 내용이 많이 있으나 작자가 창작 동기를 '권선징악'이라 밝혔듯 대부분 인과응보의 설교를 담고 있으며 몽환구조 및 시문을 매개로 한다. 그 외 애정고사를 통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가?

「금봉채기」, 「연방루기」, 「위당기우기」, 「애경전」, 「취취전」, 「녹의인전」, 「추향정기」를 통해 진지한 사랑을 찬양하고 불합리한 봉건 체제의 혼인 제도를 비판하였다. 재자가인의 사랑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욱 적극적이다. 「금봉채기」, 「등목취유취경원기」, 「녹의인전」은 사람과 귀신 사이의 애정을 다룬 고사인데 여주인공이 사람의 몸을 되찾는다. 동란으로 인해 전생에 못다한 인연을 이승에서 한시적으로 맺으며 홀로 남은 남자는 중이 되거나 은둔한다. 「녹의인전」에서는 남송(南宋)의 간신 가사도의 죄상을 전면 폭로하여 봉건주의를 비판하였다.

2. 중국 문학은 전통적으로 『시경』의 풍유(諷諭) 정신을 따라 현실 비판의식이 강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인간 세상사 부조리가 만연한데 『전등신화』에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화전봉고인기」, 「용당영회록」, 「태허사법전」, 「수문사인전」은 정치의 부조리와 당시 백성들이 받은 압박과 불공평, 난세에 처한 지식인의 심리와 운명을 그렸다. 또한 「삼산복지지」는 충효절의를, 「영호생명몽록」과 「영주야묘기」는 귀괴신이(鬼怪神異)의 세계를 빌려 현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인민의 이상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였다. 특히 「부귀발적사지」에서는 불가의 인과응보를 강조한다.

3. 작자의 시대는 난세였다. 중국 도가는 난세의 사상을 대표한다. 이를 표방한 작품은 무엇인가?

「화정봉고인기」와 「천태방은록」 등에서 은둔사상을 추구하며, 「감호야범기」에서는 은하수의 직녀가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고 마침내 영언은 신선이 된다. 그 외 작품 전편 말미에서 심심치 않게 은일의 도가 사상을 만날 수 있다.

추천할 만한 텍스트『전등신화』, 구우 지음, 이병혁 역주, 태학사, 2002.

각주1) 육조(六朝) 시대의 지괴소설(志怪小說)을 이은 문언 단편소설로 그 명칭은 당나라 때 배형(裴鉶)의 소설집 『전기(傳奇)』에서 유래한다. '전기'란 기이한 것을 전한다는 의미로 지괴와는 달리 초현실적인 기괴함 위에 현실적인 사회문제도 함께 다룬다. 명나라 때 호응린(胡應麟)은 『소실산방필총(少室山房筆叢)』에서, 당(唐)나라 사람들에 이르러 비로소 의식적인 창작을 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당전기소설 구성의 볼만한 성과는 몽환(夢幻) 구조와 전기체 형식이다. '몽환구조'란 꿈과 현실의 이중구조로 삶 속에 꿈이 존재하고, 꿈속에 삶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인생약몽(人生若夢)'의 주제이며, 주인공이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가 꿈속의 세계로 진입하여 소원을 성취하고, 꿈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는 삼중 구조를 지닌다.

2) 1368년에서 1398년까지의 기간이다.

3) 각권의 구성은 다음의 순서로 되어 있다.

권1 : 「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 「삼산복지지(三山福地志)」, 「화정봉고인기(華亭逢故人記)」, 「금봉채기(金鳳釵記)」, 「연방루기(聯芳樓記)」.

권2 : 「영호생명몽록(令狐生冥夢錄)」, 「천태방은록(天台訪隱錄)」, 「등목취유취경원기(滕穆醉遊聚景園記)」, 「목단등기(牧丹燈記)」, 「위당기우기(渭塘奇遇記)」.

권3 : 「부귀발적사지(富貴發跡司志)」, 「영주야묘기(永州野廟記)」, 「신양동기(申陽洞記)」, 「애경전(愛卿傳)」, 「취취전(翠翠傳)」.

권4 : 「용당영회록(龍堂靈會錄)」, 「태허사법전(太虛司法傳)」, 「수문사인전(修文舍人傳)」, 「감호야범기(鑑湖夜泛記)」, 「녹의인전(綠衣人傳)」.

부록 : 「추향정기(秋香亭記)」.

참고로 주이 교주의 『전등신화외이종』(상해고전문학출판사, 1957), 반총랑(飯塚朗) 역의 『전등신화』(동경, 평범사, 1965) 등에서 부록으로 「기매기(寄梅記)」를 넣었는데, 이는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潗成)』에 수록된 구우의 일문(佚文)에 불과할 뿐 『전등신화』의 작품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4) 도교에서 말하는 선과(仙果)로 이를 먹으면 하늘로 올라가고 능히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고 한다.

5) 중국 전원시의 개조(開祖)인 동진(東晉) 도연명(陶淵明)의 산문으로 진(晉)나라 태원(太元)년간에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복숭아 숲을 만난다. 복숭아꽃에 취해 계속 배를 저어가 굴을 만나 배를 버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옛날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와 이룬 마을이 있었는데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어부는 그곳 마을사람의 환대를 받으며 며칠 지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표시를 해두었다. 그러나 돌아와서 태수에게 보고하여 사람을 시켜 길을 찾았으나 종내 찾지 못했다. 그 후 '도원경(桃源境)'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6) 북음(北陰)의 끝에 있는 산으로 대제(大帝)가 주관하는 세상인 지옥이 있다.

7) 물체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천지의 정령(精靈)을 받아 괴력을 가지게 된 것을 말한다.

8) 아래위로 기운이 통하고 물을 헤치고 나갈 수 있다는 무소의 뿔이다.

9) 육조시대 발달한 문체로 귀족적이고 유미주의 문학풍조의 산물이다. 한 구절이 4~6자구 위주로 이루어지며, 대구를 많이 쓰고 음조의 해화(諧和)를 중시하는 동시에 전고를 많이 사용하고 미려한 문사를 추구한다. 글 뜻의 표현보다도 아름답고 멋진 글 자체가 더 중시된다.

 

[참조]

산골 딱다구리,명청시대의 문언소설사

http://blog.naver.com/bhjang3/140173685053

구우의 전등신화

http://cafe.naver.com/chili/70

 

 

 

 

 

2.삼산복지지 三山福地志

-삼산의 복지궁에 가다

 

元自實,山東人也。生而質鈍,不通詩書。

원자실은 산동인이었다.

날 때부터 기질이 둔하여 시서에도 통하지 못했다.

家頗豐殖,以田莊為業。

집은 자못 풍족하여 농사를 지어 가업을 꾸렸다.

同裏有繆君者,除得閩中一官。缺少路費,於自實處假銀二百兩。

동네에 목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민땅의 한 벼슬을 샀으나

노잣돈이 없어서 원자실에게 은 이백 량을 빌렸다.

自實以鄉黨相處之厚,不問其文券,如數貸之。

자실은 향당으로써 서로 후덕한 처지였으므로

그 문권을 불문하고 숫자만큼 빌려 주었다.

至正末,山東大亂。自實為群盜所劫,家計一空。

지정 말년에 산동에 큰 난리가 나서

자실은 도적 무리에게 겁탈당하고 가계가 단번에 빈털털이가 되었다.

時陳有定據守福建,七閩頗安。

이때에 진유정이 복건성의 태수로 있었는데 칠민지방은 안전했다.

自實乃挈妻子由海道趨福州,將訪繆君而投托焉。

자실은 이에 처자등속을 거느리고 바닷길을 따라 복건으로 가서

장차 목군을 방문하여 의탁할 생각이었다.

至,則繆君果在有定幕下。

도착하니 목군은 과연 진유정의 막하에 있었다.

當道用事,威權隆重,門戶赫奕。自實大喜。

당도용사함에 권위가 막중했고 문호도 대단히 높았다.

자실은 크게 기뻤다.

然而,患難之餘,跋涉道途,

衣裳藍縷,容貌憔悴,未敢遽見也。

그러나 환란을 당한데다 긴 여정 끝이라

옷가지는 남루하고 용모는 초췌하여 감히 찾아볼 수 없었다.

乃於城中僦屋,安頓其妻孥,

整飾其冠服,卜日而往。

이에 성 가운데의 한 집을 세내어 그 처자를 편히 쉬게 하고

그 관복을 가지런하게 장식한 후 날을 정해서 찾아갔다.

適值繆君之出,拜於馬首。

도착하니 목군은 출타하는 중이었다.

그는 말 머리에 절을 했다.

初似不相識,

及敘鄉井,通姓名,方始驚謝。

처음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고향 일을 말하면서 통성명하니 그제야 놀라 인사를 했다.

 

即延之入室,待以賓主之禮。

곧 입실을 권하며 빈주의 예로 대했다.

良久,啜茶而罷。

한참 동안 차만 마시고 헤어졌다.

明日,再往。

이튿날 다시 찾아갔다.

酒果三杯而已,

落落無顧念之意,亦不言銀兩之事。

술과 과일 석 잔이 그만이었다.

그와 어울리지 않고 지난 일을 되돌아 볼 뜻이 없는지

또한 은량에 대한 일도 말하지 않았다.

自實還家,旅寓荒涼,

자실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妻孥怨詈,曰:

처자식도 원망하고 대들었다.

“汝萬裏投人,所幹何事?

今為三杯薄酒所賣,即便不出一言,吾等何所望也!”

"당신은 만 리에 우리를 데리고 와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지금 석 잔의 값싼 술에 팔려서 변변히 한마디 말씀도 꺼내지 못하니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自實不得已。

자실은 부득이했다.

又明日,再往訪焉。則似已厭之矣。

또 이튿날 다시 방문하러 갔다. 곧 싫어하는 기색인 듯했다.

自實方欲啟口,繆君遽曰:

자실이 막 입을 열려고 하자 목군이 먼저 말했다.

“向者承借路費,銘心不忘。

但一宦蕭條,俸入微薄。

"전에 여비를 빌린 것은 마음에 새겨서 잊지 않고 있소이다.

다만 일개 벼슬아치가 변변치 못하여 녹봉도 얼마 되지 않소이다.

故人遠至,豈敢辜恩,

望以文券付還,則當如數陸續酬納也。”

그대가 멀리서 이렇게 왔으니 어찌 감히 은혜를 모르리까?

바라건대 문권을 되돌려주면 마땅히 숫자에 적힌 대로 갚아 드리겠습니다."

自實悚然曰:

자실이 오싹 소름을 느끼며 말했다.

“與君共同鄉裏,自少交契深密。

承命周急,素無文券。今日何以出此言也?”

"그대와는 같은 고향인데 어릴 때부터 사귐이 깊고 친밀한데다

당시 상황이 급하여 본디 문권은 없었습니다.

오늘 와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시오? "

 

繆君正色曰:

목군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文券誠有之,但恐兵火之後,君失之耳。

"문권은 분명히 있었소.

다만 난리 후에 그대가 잃어버렸을까 걱정일 뿐이오.

然券之有無,某亦不較,

惟望寬其程限,使得致力焉。”

그러니 문권의 유무는 나 또한 견줄 수 없는 것이오.

오직 그 기한은 너그럽게 봐줄 수 있으니 힘써 찾아보시오."

自實唯唯而出。怪其言辭矯妄,負德若此。

羝羊觸藩,進退維穀。

자실은 예예 하고는 나왔지만

그 언사 요망하고 은덕을 저버림이 이 같은 게 괴씸했다.

숫양이 울타리에 부딪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이요 진퇴유곡(進退維谷)이었다.

半月之後,再登其門,

惟以溫言接之,終無一錢之惠。

반 달 후에 다시 그 문을 오르니

다만 온화한 얼굴로 접대할 뿐 끝내 한 푼도 주지 않았다.

展轉推托,遂及半年。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기 마침내 반 년이 되었다.

市中有一小庵,自實往繆君之居,

適當其中路,每於門下憩息。

도시 가운데에 한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자실이 목군의 집을 방문할 때

그 길 중간의 적당한 곳이라 매번 문 아래에서 쉬곤했다.

庵主軒轅翁者,有道之士也。

암자 주인 헌원옹은 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見其往來頗久,與之敘話,因而情熟。

그의 왕래하는 것을 자못 오랫동안 보면서

함께 대화도 나누었기에 정이 무르익었다.

時值季冬,已迫新歲。

때는 늦겨울로 치달아 이미 새해가 임박했다.

自實窮居無聊,詣繆君之居,拜且泣曰:

자실은 가난하게 살아 아무것도 없었기에

목군의 집에 이르러 절하고 울면서 말했다.

“新正在邇,妻子饑寒,囊乏一錢,瓶無儲粟。

"설날이 다가왔는데 처자식은 춥고 굶으니

일전 한 푼이 없고 단지에는 양식 한 톨 없습니다.

向者銀兩,今不敢求。

但願捐鬥水而活涸轍之枯,

下壺飧而救翳桑之餓,此則故人之賜也。

지난날 은량은 지금 감히 구할 수 없으나

다만 원하오니 한 되의 물로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사는 붕어가

점점 물이 말라 죽어가는 것을 살리게 하고,

한 병의 저녁밥을 내려 의상(翳桑)의 굶주림을 구한다고 했으니

이는 곧 옛 사람의 구제함입니다.

伏望憐之憫之,哀之恤之!”

엎드려 바라건대 가련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애달프게 여기어 도와주소서."

遂匍匐於地。

드디어 그는 땅바닥에 포복했다.

繆君扶之起,屈指計日之數,而告之曰:

목군이 일으켜 세우고 손꼽아 날짜를 계산하더니 알렸다.

“更及一旬,當是除夕。君可於家專待。

"한 열흘 있으면 섣달 그믐이 되오.

그대는 집에 가 기다리시오.

 

吾分祿米二石及銀二錠,

令人馳送於宅,以為過歲之資,幸勿以少為怪。”

내가 녹봉 쌀 두 석과 돈 2 정을 나누어 주겠소.

사람을 시켜 댁으로 보내주겠으니 과세 밑천으로 쓰시오.

행여 적다고 이상하게 여기지나 마시오."

且又再三丁寧,毋用他出以候之。

또 다시 재삼 위로를 하면서도 달리 내줄 것은 없다는 기색이었다.

自實感謝而退。歸以繆君之言慰其妻子。

자실은 감사하고 물러 나왔다.

집에 와서는 목군의 말로 처자식을 위로했다.

至日,舉家懸望,

自實端坐於床,令稚子於裏門覘之。

그 날이 되자 온집안 식구들은 목을 매달고 바라보는데

자실은 걸상 위에 단정히 앉아서 아들에게 동네 입구에 나가 보라고 했다.

須臾,奔入曰:“有人負米至矣。”

잠시 후에 들어와 말하기를,

"쌀을 지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急出俟焉,則越其廬而不顧。

급히 나가 보니 눈앞을 지나가는데 돌아보지도 않았다.

自實猶謂來人不識其家,趨往問之。則曰:

“張員外之饋館賓者也。”

자실은 오는 사람이 그 집을 잘 못 알았다고 생각하여 좇아가서 물었다.

곧 대답하기를 "장원외께서 관빈에게 보내는 물건입니다."

默然而返。

頃之,稚子又入告曰:

“有人攜錢來矣。”

말없이 돌아왔다.

얼마 지나니 아들이 또 들어와서 고했다.

"돈을 들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急出迓焉,則過其門而不入。再往扣之,則曰:

급히 나가 보니 곧 문앞을 지나가고 들어오지 않아 다시 가서 물었다.

“李縣令之贐遊客者也。”

"이현령께서 유객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憮然而慚,如是者凡數度。

그는 무안하고 부끄러웠다.

이와 같은 일이 무릇 몇 번 있었다.

至晚,竟絕影響。

저녁이 되자 인적이 끊어졌다.

明日,歲旦矣。

이튿날은 새해 아침이었다.

反為所誤,粒米束薪,俱不及辦,妻子相向而哭。

도리어 목군에게 속아 쌀 한 톨 나무 한 단을 변통하지 못했다.

처자식은 서로를 향해 크게 울었다.

自實不勝其憤,陰礪白刃,坐以待旦。

자실은 그 분함을 참지 못하고

은밀히 칼을 하얗게 갈아가지고는 앉아서 아침을 기다렸다.

雞鳴鼓絕,徑投繆君之門,將俟其出而刺之。

닭이 울기를 그치면 목군의 대문으로 가는 작은 길로 접어들어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찌를 작정이었다.

是時,震方未啟,道無行人,

이 때 진방(동쪽)은 아직 열리지 않았고 길에도 가는 사람이 없었다.

惟小庵中軒轅翁方明燭轉經,當門而坐。

오직 작은 암자의 헌원옹만이 촛불을 밝히고 경을 돌다가 문앞에 앉았다.

見自實前行,有奇形異狀之鬼數十輩從之,

보니 자실이 앞에서 오는데 기이한 형색의 이상한 귀신 수십 명이 따라왔다.

 

或握刀劍,或執椎鑿,披頭露體,勢甚凶惡。

어떤 자는 도검을 쥐고 어떤 자는 철퇴를 들었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벗은 몸이라 기세가 매우 흉악했다.

一飯之頃,則自實複回,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지나자 자실이 돌아왔다.

有金冠玉珮之士百餘人隨之,

금관 옥패의 선비들 백여 인이 따라왔다.

或擊幢蓋,或舉旌幡,和容婉色,意甚安閑。

어떤 자는 당개를 치고 어떤 자는 정번을 들고

온화한 용모와 아름다운 낯빛으로 뜻이 매우 한가롭고 안락했다.

軒轅翁叵測,謂其已死矣。

誦經已罷,急往訪之,則自實固無恙。

헌원옹이 무슨 일인가 알 수가 없어, 그가 이미 죽었나 생각해

경 외기를 끝내고 (자실의 집으로) 가서 찾아보았다.

곧 자실은 별 탈 없었다.

坐定,軒轅翁問曰:

자리에 앉자 헌원옹이 물었다.

“今日之晨,子將奚適?

何其去之匆匆,而回之緩緩也? 願得一聞。”

"오늘 새벽에 그대는 어디로 갔소?

어찌 그렇게 총총히 가더니 올 때는 여유로웠소? 한 번 들어봅시다."

自實不敢隱,具言:

자실은 숨길 수가 없어서 목군의 불의한 행동을 구체적으로 말했다.

“繆君之不義,令我狼狽!

"목군이라는 자가 의리가 없어

나를 낭패케 했습니다.

今早實礪霜刃於懷,將往殺之以快意。

오늘 아침에 저는 서릿발 같은 칼을 갈아서 품고는

가서 죽여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았습니다.

及至其門,忽自思曰:彼實得罪於吾,妻子何尤焉。

그 문에 다다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놈은 실제 나에게 죄를 지었으나 처자식은 어쩌나?

且又有老母在堂,今若殺之,其家何所依?

寧人負我,毋我負人也!遂隱忍而歸耳。”

또 더우기 늙은 모친이 집안에 있으니

지금 만약 죽인다면 그 집안은 누가 돌보랴!

남은 나에게 짐을 지웠으나 나는 남에게 짐을 지울 수 없으니

마침내 속으로 참고서 돌아온 것입니다."

軒轅翁聞之,稽首而賀曰:

헌원옹이 듣고는 머리를 숙이며 경하했다.

“吾子將有後祿,神明已知之矣。”

"그대는 장차 후록이 있을 것일세.

신께서는 이미 훤하게 알고 있을 걸세. "

自實問其故。翁曰:

자실이 그 연유를 물으니 옹이 말했다.

“子一念之惡,而凶鬼至;一念之善,而福神臨。

"자네의 한 생각이 악하면 흉귀들이 오고

한 생각이 선하면 복신들이 오더군.

如影之隨形,如聲之應響。

그림자가 모양을 따르는 것과 같고,

소리가 음을 따르는 것과 같네.

固知暗室之內,造次之間,

不可萌心而為惡,不可造罪而損德也。”

어두운 방 가운데서나 얼마지 않아서 알 것이네.

마음에서 악이 싹틀 수 없고 죄를 지어 덕을 손상시킬 수가 없네."

因具言其所見而慰撫之,且以錢米少許周其急。

이렇게 자세한 말로 자신이 본 바를 말하고 위로했다.

또 돈과 쌀을 약간 내어 그 급함을 막았다.

然而自實終鬱鬱不樂。

그러나 자실은 끝내 우울하고 즐겁지가 않았다.

至晚,自投於三神山下八角井中。

저녁이 되자 삼신에 빠져 죽으려고 산 밑의 팔각 우물 가운데로 갔다.

其水忽然開辟,兩岸皆石壁如削,

中有狹徑,僅通行履。

그 물이 홀연히 빠져 없어지더니 양쪽 가장자리의 석벽이 다 깎여나가고

가운데 좁은 통로가 속으로 들어가도록 나타났다.

自實捫壁而行,將數百步,

壁盡路窮,出一弄口。

자실은 벽을 더듬으며 걸었다. 수백 보를 가니

벽은 다하고 길이 없어지더니 나가는 출구가 있었다.

則天地明朗,日月照臨,儼然別一世界也。

見大宮殿,金書其榜曰:“三山福地。”

곧 천지가 밝아지고 일월이 비쳐지며 엄연한 별천지가 나타났다.

보니 커다란 궁전에 금 글씨로 방을 붙였는데 ‘삼산복지(三山福地)’였다.

自實瞻仰而入,長廊晝靜,

古殿煙消,徘徊四顧,闃無人蹤,

자실이 우러러 보며 들어갔다.

긴 복도가 낮인데도 조용하고

오래된 전각에 연기도 꺼져

배회하며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惟聞鍾磬之聲,隱隱於雲外。

오직 종소리가 구름 밖에서 은은히 들렸다.

饑餒頗甚,行不能前,困臥石壇之側。

배고픔을 느꼈으나 앞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피곤하여 석단의 옆에 누웠다.

忽一道士,曳青霞之裾,振明月之珮。

홀연 한 도사가 푸른 도포자락을 날리며

밝은 달을 향해 옥패를 떨치더니

至前呼起之,笑而問曰:

“翰林識旅遊滋味乎?”

앞에 당도하여 일어나라고 하면서 웃으며 물었다.

"한림은 여행하는 재미를 느낍니까? "

自實拱而對曰:

“旅遊滋味,則盡足矣。

翰林之稱,一何誤乎?”

자실이 손을 맞잡고 대답하기를,

"여행하는 재미는 곧 만족하오만

한림이라는 칭호는 어찌 그리 잘못 말하십니까?"

道士曰:

도사 말했다.

“子不憶草西蕃詔於興聖殿乎?”

"그대는 흥성전에서 서번에 보내는 조서를 기초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오?"

自實曰:

자실이 말했다.

“某山東鄙人,布衣賤士。

生歲四十,目不知書。

平生未嚐遊覽京國,何有草詔之說乎?”

"저는 산동의 천민이며 베옷 입은 천한 선비로

사십이 되도록 글도 못 읽고

평생 서울은 유람한 적도 없는데

어찌 조서를 기초한 말씀을 하십니까?"

 

道士曰:

도사가 말했다.

“子應為饑火所惱,不暇記前事耳。”

"그대는 굶주림에 시달려 옛날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뿐입니다."

乃於袖中出梨棗數枚令食之,曰:

이에 소매 속에서 배와 대추 몇 알을 꺼내 먹게 했다.

“此謂交梨火棗也。食之當知過去未來事。”

이것은 교리와 화조라는 선과(仙果)입니다.

먹으면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 수 있지요."

自實食訖,惺然明悟。

자실이 먹으니 기억나고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因記為學士時,草西蕃詔於大都興聖殿側,如昨日焉。

이에 기억하기를 학사 시절에

대도의 흥성전 옆에서 초서로 조서를 작성하던 것이 어제 일 같았다.

遂請於道士曰:

드디어 도사에게 간청했다.

“某前世造何罪而今受此報耶?”

"저는 어떤 죄를 지었기에 지금 이런 업보를 받습니까?"

道士曰:

도사 말했다.

“子亦無罪。但在職之時,

以文學自高,不肯汲引後進,

故今世令君愚懵而不識字。

"그대는 죄는 없소이다.

다만 재직할 때 학문이 스스로 높다면서 후진들을 양성하는 일에 소홀하여

고로 지금 세상에 그대는 우둔하여 글자도 모릅니다.

以爵位自尊,不肯接納遊士,

故今世令君漂泊而無所依耳。”

작위가 스스로 높다고 하여 떠돌이 선비들과 만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서

금세에 그대는 한 곳에 정박하지 못하고 의지처가 없는 것입니다."

自實因指當世達官而問之曰:

자실이 이에 지금 세상의 고위 관직 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某人為丞相,而貪饕不止,

賄賂公行,異日當受何報?”

"모모는 승상인데 탐도를 끊이지 않고

뇌물 받기를 공공연히 행하니 다른 날에 어떤 업보를 받겠습니까? "

道士曰:

도사가 말했다.

“彼乃無厭鬼王,地下有十爐以鑄其橫財,

今亦福滿矣,當受幽囚之禍。”

"그는 무염귀왕이니 지하에 열 개 용광로에 그 재물과 함께 녹여질 것입니다.

지금 복이 많은 듯하나 마땅히 유수의 화가 따릅니다."

又問曰:

또 물었다.

“某人為平章,而不戢軍士,

殺害良民,異日當受何報?”

"모모는 평장으로서 군사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양민을 학살하니 다른 날에 어떤 업보를 받을까요? "

道士曰:

도사가 말했다.

“彼乃多殺鬼王,有陰兵三百,

皆銅頭鐵額,輔之以助其虐,

今亦命衰矣,當受割截之殃。”

"그는 다살귀왕이니 음병 삼백이

다 구리 머리에 초 이마라 그를 학대함을 도울 것입니다.

지금 또한 명이 다했고 마땅히 할절의 재앙을 받을 것입니다."

又問:

또 물었다.

“某人為監司,而刑罰不振;

某人為郡守,而賦役不均;

某人為宣慰,不聞所宣之何事;

某人為經略,不聞所略之何方。

然則當受何報也?”

"모모는 감사로써 형벌은 다스리지 않고,

모모는 군수로써 부역을 균등히 못했고,

모모는 선위로써 어떤 일을 베풀었다는 말을 못 들었고,

모모는 경략으로 아랫 사람을 다스렸다는 말을 못 들었습니다.

마땅히 어떤 업보를 받겠지요."

道士曰:

도사 말했다.

“此等皆已杻械加其身,縲絏係其頸,腐肉穢骨,待戮餘魂,何足算也!”

"그들은 다 이미 그 몸에 쇠고랑을 달았고 그 목에 오랏줄을 메었고

썪은 몸 더러운 뼈는 남은 혼들이 도륙내길 기다리니 어찌 셈이 족하리오."

自實因舉繆君負債之事。

자실이 목군의 부채 일을 거론하니,

道士曰:

도사가 말했다.

“彼乃王將軍之庫子,財物豈得妄動耶?”

"그는 왕장군의 창고지기인데

재물을 어찌 그렇듯 망동하게 얻었단 말인가 "

道士因言:

도사가 이어 말했다.

“不出三年,世運變革,大禍將至,甚可畏也。

汝宜擇地而居,否則恐預池魚之殃。”

"삼 년이 지나지 않아 세상의 운은 변혁합니다.

큰 재앙이 이를 것이니 매우 두렵습니다.

당신은 마땅히 땅을 정해 은거하십시오.

아니면 연못 물고기가 가뭄에 당하는 재앙이 이를까 두렵습니다."

自實乞指避兵之地。道士曰:

자실이 병화를 피할 수 있는 땅을 묻자 도사가 말했다.

“福清可矣。”

"복청이 좋습니다."

又曰:

또 말하기를,

 

“不若福寧。”

"아니라면 복녕입니다."

言訖,謂自實曰:

말을 끝내자 자실에게 일렀다.

“汝到此久,家人懸望,今可歸矣。”

"당신은 여기 너무 오래 있었소.

식구들이 기다릴 것이니 지금 돌아가시는 게 좋겠소."

自實告以無路,

道士指一徑令其去,遂再拜而別。

자실이 작별을 고했으나 길이 없었다.

도사가 한 곳을 가리키며 그 곳으로 가라고 했다.

드디어 재배를 올리고 헤어졌다.

行二裏許,於山後得一穴出。

到家,則已半月矣。

이 리를 가니 산 뒤에 한 구멍이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보름이 지났다.

急攜妻子徑往福寧村中,墾田治圃而居。

급히 처자식을 거느리고 복령촌 가운데로 가서

밭을 일구고 채마밭을 갈며 살았다.

揮钁之際,錚然作聲,獲瘞銀四錠,家遂稍康。

괭이를 휘두를 때에 쨍그랑 소리가 들려 파보니 은 4정이 나왔다.

집은 비로소 소강상태가 되었다.

其後張氏奪印,達丞相被拘。

大軍臨城,陳平章遭擄。其餘官吏多不保其首領。

그 후에 장씨가 인수를 빼앗아 승상이 되었다가 잡혀 갔고

대군이 성에 들어오니 진유정 평장은 체포되었고

그 나머지 관리들도 다들 그 목을 보존하지 못했다.

而繆君為王將軍者所殺,家資皆歸之焉。

以歲月記之,僅及三載,而道士之言悉驗矣。

목군도 왕장군이라 죽임을 당하고 집의 재물은 다 빼앗겼다.

이런 세월이 겨우 3 년 안에 닥치니 도사의 말이 다 영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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