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마을 앞 시내 건너 앞산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 가서 찍은 고향마을의 원경.

비석이 서 있는 무덤의 주인공이구한말 한성판윤을 역임한 大자 鎭자 할아버지이시다.

[주]

비문(碑文)이나 개인의 전기인 행장(行狀)에는 명(名) 외에 자(字), 호(號)를 기록하고

사후에 국가로부터 시호(諡號)를 받은 경우에는 시호까지 밝히는 것이 보통이다.

중학동기 전병근님이 의정부 신숙주 비석 앞에서 자 호 시호에 대한 질문을 해 왔다.

이에세 가지 호징에 관하여 정리해 보았다.



<자[字] 호[號] 시호[諡號] 에 대하여>


자 [字]

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이는 이름.

육조시대 晉나라 도연명(陶淵明365~427)은 이름은 잠(潛)이고 연명은 자(字)이나
흔히 도연명으로 부른다. 호(號) 오류선생은 작품 <五柳先生傳>에서 유래한다.
이태백, 소동파처럼 성씨에 호를 붙여 그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는 경우는 있지만
字로써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은 드문 예이다.

왕조시대 양반 남자들은 성인식인 관례를 행할 때 字를 받는다.
양반이라 하더라도 여자들에겐 字는 물론 이름[名]조차 없다.
남자들이 사용하는 당호(堂號)를 쓰는 경우는 있었다.
본관에다 성씨를 붙여서 부르니 딸네들은 모두 같은 이름이어서 실상
고유명사라 할 수 없다.
나의 생각으로는 국가가 백성들의 노동력을 수취하던 제도인 역[役]과 관련된다.
말하자면 양반, 양인 여자들은 역의 의무가 없기 때문에 천인이 아닌 양인여자
이름을 굳이 호적에 등재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후에도 사방공사, 도로정비 등에 동원하는 걸 부역(賦役)이라 했다.
꼬리글에 역[役]에 관한 사전의 설명을 옮겼다.

성인식인 관례를 행할 때 자를 받는다. 왕조시대

양반 남자들은 성인식인 관례를 행할 때 字를 받는다. 양반이라 하더라도 여자들에겐

字는 물론 이름[名]조차 없었다.남자들이 사용하는 당호(堂號)를 쓰는 경우는 있었다.
본관에다 성씨를 붙여서 부르니 딸네들은 모두 같은 이름이어서 실상 고유명사라 할 수 없다.

나의 생각으로는 국가가 백성들의 노동력을 수취하던 제도인 역[役]과 관련된다. 말하자면

양반, 양인여자들은 역의 의무가 없기 때문에 천인이 아닌 양인여자 이름을 굳이 호적에

등재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후에도 사방공사, 도로정비 등에 동원하는 걸 부역(賦役)이라 했다.

중국에서 비롯된 풍습으로, 본명이 태어났을 때 부모에 의해 붙여지는 데 비해 자는 윗사람이 본인의 기호나 덕을 고려하여 붙이게 되며 자가 생기면 본명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명을 휘명(諱名)이라고도 한다. 흔히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말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를 쓴다. 다른 사람을 부를 때도 자를 사용하나 손아래 사람인 경우, 특히 부모나 스승이 그 아들이나 제자를 부를 때는 본명을 사용한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제자 안연(顔淵)을 회(回), 자공(子貢)을 사(賜)라 부르고 있다.

또 공자는 본명을 구(丘), 자를 중니(仲尼)라고 했는데 중(仲)은 아우라는 뜻으로 공자에게는 형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지었고, 니(尼)는 그가 이산(尼山)에 기도를 드려 낳은 아들인 것에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이 습속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는 설총(薛聰)의 자가 총지(聰智)였던 것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자의 사용이 보편화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동시대인인 원효(元曉)는 자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 근세의 유학자들이 중국을 본떠 자를 많이 사용하였다


호 [號]

본 이름이나 자(字) 외에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

호는 흔이 자기 고향의 산이름이나 강이름을 쓰기도 하고 고전에 근거하여 가치관을 표방하는 경우도 있다. 인명록을 찾다보면 같은 호를 쓰는 사람들이 여럿인 것은 후자에 근거한다.

본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한국이나 중국 등 주로 동양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호가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일반 ·사대부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되었다. 중국의 경우 호는 당나라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송나라대에 이르러 보편화되었다. 당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인 이태백(李太白)이나 송나라의 문장가 소동파(蘇東坡)는 그의 본 이름인 이백(李白)이나 소식(蘇軾)보다도 호가 널리 알려진 경우이다. 호의 사용이 정착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학자들간에 학문적 교류와 편지 교환이 일반화되면서 본 이름보다는 호나 자를 사용하는 것이 예의를 차리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호는 대부분이 거처하는 곳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거처하는 곳이 바뀜에 따라 호가 달리 사용되기도 했으며, 좋아하는 물건이 여럿인 경우 호는 늘어나게 마련이었다. 호는 집안에서 사용한다는 의미의 당호(堂號)와 시 ·서 ·화 등에 쓰는 아호(雅號)로 나누어지기도 했으나, 양자간에는 뚜렷한 구별이 없이 혼용되었다.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문신 이규보(李奎輔)의 경우는 초기에는 시 ·술 ·거문고 세 가지를 좋아하여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호하였다가 나중에는 구름에 묻혀 있는 자신의 처지를 좋아하여 백운거사(白雲居士)로 호를 바꾸기도 했다. 조선 중기 이후로 호의 사용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주로 자신이 학문을 배우고 가르친 곳을 호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황의 퇴계(退溪), 이이(李珥)의 율곡(栗谷), 서경덕(徐敬德)의 화담(花潭)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 문인들을 지칭할 때도 퇴계문인 ·화담문인 ·율곡문인 등으로 호를 사용하였다. 성리학자 조식(曺植)의 호 남명(南冥)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용어로서 노장사상에 관심을 가진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표현하였다.

호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조선 후기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로서, 알려진 것만 해도 약 500여 개가 된다. 김정희가 많은 호를 사용한 것은 시 ·서 ·화에 두루 능하였던 예술인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의 대표적인 호는 추사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선객(仙客) ·불노(佛奴) ·방외도인(方外道人) 등으로서 유 ·불 ·도 삼교사상을 망라하는 호를 사용한 것이 주목된다. 조선 후기 이래로 호 사전의 성격을 띤 많은 ‘호보(號譜)’들의 편찬은 호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던 당시 상황을 반영해주고 있다.

1945년에 편찬된 《대동명가호보(大東名家號譜)》에는 호를 유형별로 분석하고 있는데, 당(堂) ·암(巖) ·실(室) 등으로 끝나는 호가 많았다. 내용별로는 자신이 거주했던 곳이나 인연이 있었던 곳을 따서 지은 경우와, 인생관이나 수양목표를 한 경우, 완호물(玩好物)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일제강점기에서는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주시경(周時經)의 ‘한힌샘’, 최현배(崔鉉培)의 ‘외솔’ 등의 호가 나타났으며,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김정식(金廷湜)의 소월(素月), 박영종(朴泳鍾)의 목월(木月) 등의 호도 우리에게 이름보다는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 외에 이상백(李相佰)의 호 상백(想白)과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의 호 이호우(爾豪愚)는 이름과 호의 음을 같게 한 경우이다. 오늘날에는 사회체제가 다원화되면서 2종 이상을 쓰는 호보다는 자신의 실명(實名)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문학 ·예술 등 일부 분야에서 호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호를 통하여 당시 인물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시호 [諡號]


벼슬한 사람이나 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 행적에 따라 왕으로부터 받은 이름

역대 왕들의 호칭은 모두 시호에 해당한다. 사후에 붙여진 칭호이기 때문이다. 太祖는 개국왕, 成宗는 그 왕조의 문물제도의 완비 등 그 왕의 행적에 기초한다. 연산군, 광해군 등은 왕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왕답지 않은 왕이어서 시호를 받지 못하고 --군의 칭호를 유지한 경우이다.


조선 초기에는 왕과 왕비, 종친, 실직에 있었던 정2품 이상의 문무관과 공신에게만 주어졌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시호는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시법(諡法:시호를 의논하여 정하는 방법)이 이루어진 것은 주나라 주공(周公)부터이다. 한국에서는 514년(신라 법흥왕 1)에 죽은 부왕에게 ‘지증(智證)’의 증시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이나 왕비가 죽은 경우에는 시호도감(諡號都監)을 설치하여 증시를 신중하게 진행하였다. 일반 관리의 경우에는 봉상시(奉上寺)에서 주관하였다. 시호에 사용하는 글자수는 194자로 한정되어 있었다. 나중에 봉상시의 건의에 따라 새로 107자를 첨가하여 모두 301자를 시호에 쓰게 되었다.

실제로 자주 사용된 글자는 문(文) ·정(貞) ·공(恭) ·양(襄) ·정(靖) ·양(良) ·효(孝) ·충(忠) ·장(莊) ·안(安) ·경(景) ·장(章) ·익(翼) ·무(武) ·경(敬) ·화(和) ·순(純) ·영(英) 등 120자 정도였다. 착한 행장이 없고 악하고 사나운 일만 있던 사람에게는 양(煬) ·황(荒) ·혹(惑) ·유(幽) ·여(厲) 등이 쓰였다. 조선시대에는 죽은 자의 직품이 시호를 받을 만한 위치라면 후손들은 시호를 청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또 좋지 않은 글자가 쓰인 시호가 내려질 경우에도 다시 시호를 청하거나 개시를 청할 수 없었다. 시호를 내리는 목적은 여러 신하의 선악을 구별하여 후대에 권장과 징계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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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평 가평에서 흘러오는 왼쪽의 북한강과 여주에서 흘러온 위쪽의 남한강이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만나 하나의 강줄기 한강이 됩니다. 가까운 곳에 팔당댐이
보이는군요. 오른쪽 물길은 태촌앞 경안천에서 한강으로 오는 물길입니다.

어제는 문중13 홈피 운영자인 전병근님 덕분에 Seoul International Hiker's Club회원들과

중학동기 심대섭 교장님, 이유식 사장님과 하남 검단산에 다녀왔습니다. 나는 '검단'의

'검'이 '가미(神)과 관련이 있나 하여 '검단'이라는 산이름에 다소 흥분했습니다만 백제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이곳에 은거하였다 하여 검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여 흥분을

가라앉혔습니다.

657미터의 산이었지만 산행하는 이들도 많았고, 약수터부터는 가파른데다 얼음길이어서

아이젠 없이는 오르기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산에나 있는 깔닥고개란 이름을 붙였나 봐요, 등산객이 얼마나 밟았는지

얼어 있어야 할 산길은 먼지가 풀풀 날렸습니다. 중학동기홈피에 운영자님께서 사진을

올려주셨는데, 너무 여러 장 올려 동기님들게 미안하군요.


외국인들요? 대개 영어권 사람들인데, 언론사, 영어 원어민교사, 자동차 부품 수출입

업무를 하는 사람 등 하는 일도 다양했습니다.한국인들은 운영자님처럼 영어권에 살다온

사람들이 많았고,영어교사 등 영어와 관련 있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회원들은 심성도 착해보였고 이해력도 풍부해 보였습니다.

클럽의 코디네이터[리더]를 맡은, 현직 영어교사인 박종호 선생님은 1960년생이라 했는데

하는 말이나 사려 깊은 생각은 회갑을 지난 나와 동급이이거나 한 수 위였습니다. 학부

전공은 영문학이었지만 대학원에서 국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근대장편시가의 근대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이셔서 전공이 같은 내겐 친밀감이 배가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국어국문학을 뽑는 대학들도 많지 않았고, 또 창작하는 교수들이 많아 국문학

전공자들끼리 만나면출신대학에 상관없이거의 지인관계나 다름없었습니다. 교수나 교재,

또는 작가나 시인, 문학지에 수록된 화제작 등을 대상으로 담론이 자연스레 어어졌거던요.

---현재는 국문학 모집 대학을 대충 조사해 보니 71개 대학이더군요. 캠퍼스를 달리하면

둘로, 주야간은 같은 대학 교수가 가르치니 하나로 계산했습니다. 그러니 요즈음은

교수끼리라도 이름이 생소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원주에서 영어 교사를 한다는 젊은이 패트릭의 텍사스에 사는 어머니가 아들이 일하는

나라를 찾아 산행을 빛내주셨다. 한국에 온지 사흘밖에 되지 않아 밤낮의 시차 적응도

안 되었을 텐데, 아들과 함께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70세 정도의 그 할머니는 마카로니

웨스턴 총잡이 영화에서 자주 목도했던, 운영자의 표현대로 미국인의 도전정신을 보여준

산 증인이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카메라를 사용하고는 가슴 쟈크를 열고 집어 넣었습니다.

가슴가리개의 다양한 용도에 감탄했습니다. 그 카메라 되게 따뜻하겠지요잉?---

그 할머니는 아이젠도 없이 정상에 올라, 일단 모임에 참여했으면 끝까지 생사를 같이 하는
미국인의 자긍심과 책임감과 그 인내심에 나는 경탄했습니다.

중학동기 이유식 사장님이 운영자 보고 “왜 혼자 왔냐?” 물어보라고 하니,

코디 박선생이 달려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퍼라이버시를 철저하게 지키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시면

실례가 됩니다. 친한 사이가 아니면 나이도 잘 묻지 않습니다. ”

그들의 관계를 보니 실제로 연령을 의식하지 않았고 만남을 가지면 대체로

대등한 관계에서 자기 생각을 피력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마주하면 friends인거죠. 연장자라고 따로 대접 받을 일도 없으니 나이를

내세울 필요조차 없겠지요.

---중요한 건 어떤 사고를 하는 사람인가이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니까요.---


더치페이 모습도 나에게는 이색적인 풍경이었습니다. 더치페이라는 게 철저하게

자기로 인연해서 발생한 비용은 자기가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기호와 상관없이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은 주문할 수 있지만 물론

그 비용은 자기가 지불하는 거죠.

예를 들면, 그날 회비는 일만원이었는데 술을 마신 사람들은 6천원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렇게 정확한 산법에 나는 혀를 내둘렀습니다.


일본에서도 회식자리에는 대개 더치페이를 한다는데 더치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그 실상을 보았습니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교수가 대접을

받는 일은 없고, 또 우리나라처럼 교수가 한 턱 쏘는 그런 일도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모임에 참여했으면 동등한 자격으로 더치페이를 하는 거죠.

이유식 사장님은 운영자님이 남겨온 막걸리만 마셨지만 술자리팀에 앉은

운영자님의 middleschool friends로 묶여 16,000원을 부담했습니다.


그 지방 포도주처럼 클럽에서 향취를 풍겼던 캘리포니아 출신인, 강남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미국나이 23살의 신디는 운영자가 회비를 만원으로 깎아주니

"Thank you."를 연발하며 좋아라 박수를 쳐댔습니다.

6천원 가지고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우리 문중 산행에 동행하면 여자분들은 꽁짜인데 말입니다.

누가 만든 룰인지 모르지만 그분들 정말 신사군요.

사실은, 신디는 그날 처음으로 동향의 남자 친구를 만난데다 남자 친구와는 맥주를 ,

심교장님과는 소주를 대작하여 소맥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잠깐 미친 늙은이의 남대문 방화사건 얘기도 나왔는데, 이유식님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언급했습니다. <문화유산답사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유모 장관의 관상이 그저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관상을 얘기하는 건 좀

조심스러운 노릇이지만 당나라 때엔 인재 서용의 기준으로 身言書判을 적용했거던요.


身言書判의 身이란 풍채, 곧 외모를 말하고, 言이란 언변, 곧 말솜씨를 말합니다.

그리고 書란 지금의 글쓰기, 그 말썽 많은 대입 논술시험에 해당하겠군요.

남을 설득할 때 말과 글, 둘다 사용하걸랑요. 끝으로 判이란 판단력, 곧 맹자의

기준으로 보면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정의, 어느 편을 중시하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뉴스시간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고개숙인 남자들을 상기하면 오늘날에도 판단력의

위상의 중요성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불필요한 관급공사, 매년 연말이면 목도하는 도로포장, 이월이 되지 않아 섭씨

18도에도 화끈화끈하게 불태워버리는 공공기관의 난방비, 부처간의 중복투자 등,

판단력 없는 행정 때문에 국민들은 얼마나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했는지 모릅니다.

하산길의 오리고기도 맛있었고요.여자들이 들어가기 전에 "또오리"라고 해
웃었지요."또 오리고기냐?"라는 말도 되고, "또 오겠느냐?"는 회의(懷疑)적
自問의 중의(重意)적 의미를 지니기에, 그 여자분은 "또오리"를 몇 번이나
되뇌었습니다.

[사진] 설명을 반복하면 청평 가평에서 흘러오는 왼쪽의 북한강과 여주에서
흘러온 위쪽의 남한강이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만나 하나의 강줄기 한강이 됩니다.
가까운 곳에 팔당댐이 있군요. 오른쪽 물길은 태촌앞 경안천에서 한강으로
오는 물길입니다.


오는 2월25일 출범하는 새 정부도 두 개의 한강을 하나의 한강으로 모은
저 두물머리처럼 우파와 좌파, 곧 생산성 향상과 복지정책의 확대로 대변되는
둘로 갈라진 다른 생각들을 잘 조절하여 한마음으로 묶는 국민 통합을
이뤄내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어제의 검단산 산행은 신호체계를 연동하는 첫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을
만난 것처럼 기분 좋은 하루였다.


Seoul International Hiker's Club회원및 네 중학동기 사진은 아래의 글과

이 홈피 왼쪽 메뉴판 <동창앨범>에 실었습니다.
http://www.munjung13.com/board/read.php?table=m13sarang&no=23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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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항주 서호 소제(蘇堤) 둑에 서 있는 소동파 석상 앞에서. 초록잎을 달고 있는 겨울 날씨를 보면 항주는 참 따뜻한 지방이군요. 아래는 항주지사를 지낸 소제비.

*이 <적벽부(赤壁賦)>는 후에 쓴 <後赤壁賦> 와 구분하여 <전적벽부(前赤壁賦)>라 일컫기도 한다.

 

아래 사하님의 블로그에서 퍼와 원문과 번역을 대응시켜 수정 편집하였습니다.

http://blog.naver.com/farmzen/150004611843

 

후적벽부(後赤壁賦)

 

是歲十月之望에 步自雪堂하여

시세십월지망    보자설당하여

將歸于臨皐할세 二客從予라

장귀우임고 이객종여라

이해(임술년) 시월 보름에 설당으로부터 걸어서 장차 임고정으로 돌아가려 할 적에 두 손님이 나를 따라왔다.

 


過黃泥之坂하니 霜露旣降하고 木葉盡脫이라 人影在地어늘 仰見明月이라 

과황니지판      상로기강          목엽진탈         인영재지       앙견명월

황니판을 지나니 서리 와 이슬이 이미 내리고 나뭇잎이 다 떨어졌으므로

사람의 그림자가 비쳐 땅에 있기에 밝은 달을 쳐다보았다.

 

顧而樂之하며 行歌相答已而로라.

고이락지        행가상답이이

돌아보고 즐거워하여 길을 걸으며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 화답할 뿐이었다.

歎曰 有客無酒요 有酒無肴로다 月白風淸한데 如此良夜에 何

탄왈  유객무주    유주무효        오월백풍청     여차양야    하

이윽고 탄식했다.

"손님이 있으면 술이 없고 술이 있으면 안주가 없구나.

달이 밝고 바람이 시원하니 이처럼 좋은 밤에 어찌하오?"

 

客曰 今者薄暮에 擧網得魚하니 巨口細鱗이 狀如松江之鱸라 顧安所得酒乎아

객왈  금자박모   거망득어        거구세린    상여송강지로     고안소득주호

객이 말하였다.

오늘 저녁 무렵에 그물을 들어 고기를 잡았는데 입이 크고 비늘이 가늘어

모양이 송강의 농어와 같습니다. 다만 어느 곳에서 술을 구하겠습니까?" 

 

歸而謀諸婦한데 婦曰 我有斗酒하여 藏之久矣니 以待子不時之需로라. 

귀이모제부     부왈    아유두주       장지구의      이대자부시지수

내가 돌아와서 아내에게 상의하니, 아내가 대꾸했소.

"내가 한말 술을 생겨 보관한 지가 오랜데, 그대의 아무때나 수요라도 기다렸지요."

 


於是에 攜(=携)酒與魚하여 復遊於赤壁之下하니  江流有聲하고 斷岸千尺이라 

어시   휴(=휴)주여어         부유어적벽지하         강류유성         단안천척

이에 술과 고기를 가지고 다시 적벽강 아래에서 노니,

흐르는 강물 소리가 들려오고, 잘라낸 듯한 강 언덕은 천자나 되더라.

 


山高月小하고 水落石出하니 曾日月之幾何완대 而江山不可復識矣라 

산고월소       수락석출        증일월지기하        이강산부가부식의

산이 높아 달이 작아 보였고 수위가 낮아져 바닥의 돌이 드러나니,

일찍이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강산을 다시 기억할 수가 없었다오.

 

予乃攝衣而上하여 履巉巖披蒙茸하고

여내섭의이상 리참암피몽용하고

踞虎豹登蛇龍하여 攀棲鶻之危巢하고

거호표등사룡반서골지위소하고

俯馮夷之幽宮하니 蓋二客之不能從焉이라

부풍이지유궁 개이객지부능종언이라

나는 이에 옷자락을 걷어잡고 올라가서 높은 바위를 밟고 우거진 풀 속을 헤치고

호랑이 표범 바위를 걸터타고, 뱀과 용 나무에 올라가 새매가 살고 있는 높은 둥지에 올라가

황하 水神의 그윽한 집을 굽어보니 두 객은 따라오지 못하더라.

 


劃然長嘯하니 草木震動하고 山鳴谷應이오 風起水涌이라 

획연장소         초목진동        산명곡응        풍기수용

予亦悄然而悲하고 肅然而恐하여 凜乎其不可留也러라

여역초연이비        숙연이공         늠호기부가류야

획연히 길게 휘파람을 부니 초목이 진동하고 산이 울리고 골짜기가 메아리쳐 바람이 일고 물이 솟구쳐올랐다.

또한 초연히 슬퍼지고 숙연히 두려워져 오싹하여 오래 머물 수 없도다.

 

反而登舟하여 放乎中流하여 聽其所止而休焉하니

반이등주        방호중류         청기소지이휴언

돌아와 배에 올라 중류에 이르러 배가 멈추는 대로 버려두고 쉬었다.

 


時夜將半에 四顧寂廖한데 適有孤鶴이 橫江東來하니

시야장반    사고적료        적유고학      횡강동래

翅如車輪이요 玄裳縞衣로 戞然長鳴하여 掠予舟而西也러라.

시여거륜        현상호의     알연장명       략여주이서야

때가 마악 한밤중에 사방을 돌아봐도 적막한데마침 외로운 학 한 마리 강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오네,

나래가 수레바퀴만한데 검은 치마에 흰옷을 입고는 알연히 길게 울면서 내 배를 스쳐 서쪽으로 날아갔다.

 


須臾에 客去하고 予亦就睡러니夢에 一道士 羽衣翩躚하여 過臨皐之下라가 揖予而言曰 :

 수유    객거         여역취수      몽   일도사    우의편선         과임고지하      읍여이언왈

조금 후에 객이 떠나가고 나 또한 잠에 들었는데

꿈에 한 도사가 깃으로 만든 옷을 펄럭이며 임고정 아래를 지나다가 나에게 읍하고 말하기를,


赤壁之遊 樂乎아 問其姓名한데 俛而不答이라 

적벽지유 락호아 문기성명        면이불답

"적벽강의 뱃놀이가 즐거웠는가?"

내가 그의 성명을 물었으나 그는 내려다보며 대답하지 않더라.

 

嗚呼噫嘻라 我知之矣로다 疇昔之夜에 悲鳴而過我者 非子也耶아

오호희희   아지지의          주석지야     비명이과아자 비자야야

"아! 슬프다, 내 그대를 알겠노라.어젯밤에 울면서 내 배를 스쳐간 학이 그대가 아닌가?"

 

道士顧笑하고 予亦驚悟하여 開戶視之하니 不見其處러라.

도사고소        여역경오         개호시지        불견기처

도사는 돌아보고 웃었으며 나 또한 놀래어 잠을 깨어나 창문 열고 찾았으나, 그가 간 곳 알 수 없네.

 

 

https://leeza.tistory.com/m/4068

 

소식 - 후적벽부(後赤壁賦)

뱃전을 스쳐 날던 학이 꿈속에 나타나다 후적벽부(後赤壁賦) 소식(蘇軾) 손님이 가져온 농어와 아내가 간직하던 술 是歲十月之望, 步自雪堂, 將歸于臨皐, 二客從予. 過黃泥之坂, 霜露旣降, 木葉

leeza.tistory.com

 

 

https://kydong77.tistory.com/m/551

 

적벽부

[주]계절에 안 어울리지만 명구로 가득찬 를 다시 읽어봅니다. 아래는 이 블로그의 관련 주소창입니다. 서호 소동파상 http://blog.paran.com/kydong/25972342 전적벽부 http://blog.paran.com/kydong/24677137 후적벽

kydong77.tistory.com

 

赤 壁 賦 -蘇 軾-

적벽부 -소식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어 황저우[黃州:湖北省]에 유배되었던 蘇東波가 1082년(원풍 5)의 가을(7월)과 겨울(10월)에

황저우성 밖의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것이다. 7월에 지은 것을 ≪前赤壁賦≫, 10월에 지은 것을 ≪後赤壁賦≫라 한다.

 

壬戌之秋, 七月旣望,

임술지추, 칠월기망

蘇子與客泛舟, 遊於赤壁之下.

소자여객범주, 유어적벽지하

淸風徐來, 水波不興.

청풍서래, 수파불흥

 

임술(壬戌) 가을 7월 열엿세 날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 때,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擧酒屬客,1)

거주촉객,

誦明月之詩,2) 歌窈窕之章.3)

송명월지시, 가요조지장

 

1)屬客(촉객) 손님에게 (술을) 따르다.

2)明月之詩(명월지시):시경(詩經) 진풍(陣風)에 있는 월출편(月出篇).

3)窈窕之章(요조지장):시경(時經) 국풍(國風) 주남(周南)에 있는 관저편(關雎篇).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소언, 월출어동산지상,

徘徊於斗牛之間

배회어두우지간

白露橫江, 水光接天.

백로횡강, 수광접천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縱一葦之所如,4) 凌萬頃之茫然.

종일위지소여, 릉만경지망연

浩浩乎,

호호호,

如憑虛御風,5) 而不知其所止.

여빙허어풍, 이부지기소지

 

4)一葦(일위):한 잎의 갈대. 작은 배를 가리킨다. 所如(소여) 여(如)는 왕(往), 거(去)의 뜻. 가는 대로.

5)憑虛御風(빙허어풍):憑은 의지한다. 虛는 허공을 가리키며, 御는 乘과 같다.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간다는 말은 마음이 이미 신선의 경지에 들어감.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飄飄乎,

표표호,

如遺世獨立,6) 羽化而登仙.7)

여유세독립, 우화이등선

 

6)遺世獨立(유세독립):遺世(유세)는 속세를 떠나다. 속세를 떠나 그 어떠한 사물에도 속박되지 아니한 대자연의 경지를 말함.

7)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 몸에 날개가 돋치어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다.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ㅡ적벽의 야경과 흥취

於是, 飮酒樂甚. 扣舷而歌之.

어시, 음주락심, 구현이가지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歌曰,

가왈,

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8)

계도혜난장, 격공명혜소류강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묘묘혜여회, 망미인혜천일방

 

8)泝(소):거슬러 올라가다.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객유취통소자, 의가이화지

其聲嗚嗚然,

기성명명연,

如怨如慕, 如泣如訴,

여원여모, 여읍여소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餘音嫋嫋, 不絶如縷.

여음요요, 부절여루

舞幽壑之潛蚊,9) 泣孤舟之釐婦

무유학지잠문, 읍고주지리부

 

9)潛蚊(잠문) 숨어 있는 교룡(蛟龍)) 교룡-뿔 없는 용.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ㅡ주흥이 일어남

 

蘇者 愀然正襟,

소자 추연정금,

危坐而問客曰, 何爲其然也.

위좌이문객왈, 하우기연야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客曰, 月明星稀 烏鵲南飛,10)

객왈, 월명성희 오작남비

此非曹孟德之詩乎.

차비조맹덕지시호

 

10)조조(曹操)가 지은 단가행(短歌行)이라는 시(詩)의 일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西望夏口, 東望武昌,

서망하구, 동망무창

山川上繆, 鬱乎蒼蒼.11)

산천상무, 울호창창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12)

차비맹덕지곤어주랑자호

 

11)繆무:얽다.

12)맹덕은 조조의 자(字). 주랑은 주유(周喩). 적벽대전에 조조가 주유에게 크게 패한 것을 말함.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於東也,  

방기파형주, 하강릉, 순류어동야 

舳艫千里,13) 旌旗蔽空.

축로천리, 정기폐공

釃酒臨江,14) 橫槊賦詩.

시주임강, 횡삭부시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고일세지웅야, 이금안재재

 

13)舳艫(축로):배의 고물과 이물 14)釃(시):거르다.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況吾與子.

황오여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蝦而友麋鹿.

어초어강저지상, 려어하이우미록

駕一葉之扁舟, 擧匏樽而相屬,

가일엽지편주, 거포준이상촉

寄浮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기부유어천지, 묘창해지일속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애오생지수유, 선장강지무궁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협비선이오유, 포명월이장종

知不可乎驟得, 託遺響於悲風15)

지불가호취득, 탁유향어비풍

 

15)悲風(비풍):가을 바람(秋風).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고,

여운(餘韻)을 가을 바람에 부치노라.”

 

-손의 말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소자왈 객역지부수여월호

逝者如斯,16) 而未嘗往也.

서자여사, 이미상왕야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영허자여피, 이졸막소장야

 

16)逝者如斯(서자여사):일찍이 공자가 한 말로써, 흐르는 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흐른다는 말이다.

 

蘇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개장자기변자이관지, 즉천야증불능이일순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자기불변자지관지, 즉물여아개무진야

而又何羨乎,

이우하선호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차부천지지간, 물각유주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구비오지소유, 수일정이막취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유강상지청풍, 여산간지명월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이득지이위성, 목우지이성색

取之無禁, 用之不竭,

취지무금, 용지불알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樂,

시조물자지무진장야, 이오여자지소공락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ㅡ蘇子의 말 - 손의 말에 대한 반론

 

客喜而笑, 洗盞更酌.

객희이소, 세잔갱작

肴核旣盡, 杯盤狼藉17)

효핵기진, 배반낭자

相與枕籍乎舟中,18) 不知東方之旣白.

상여침자호주중, 부지동반지기백

 

17)杯盤(배반):잔과 접시. 18)枕籍(침적):베개 삼아 베고 눈고, 깔고 앉다.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ㅡ두 사람의 화해

 

 

https://m.cafe.daum.net/songdam.poong-su/EZwv/90?q=D_Q_pv7C3fF910& 

 

◈적벽부(赤壁賦)-원문, 독음, 해석

◈적벽부(赤壁賦)-원문, 독음, 해석 소동파 [蘇東坡, 1036.12.19 - 1101.7.28] 전적벽부(前赤壁賦)-소식(蘇軾) 壬戌之秋七月旣望(임술지추칠월기망)에 : 임술년 가을 칠월 기망(16일)에 蘇子與客泛舟(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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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86%8C%EC%8B%9D_(%EB%B6%81%EC%86%A1) 

 

소식 (북송)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소식(蘇軾, 1037년 1월 8일 ~ 1101년 8월 24일(음력 7월 28일))은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주요 이력[편집] 그의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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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스스로를 동파거사라고 칭했고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른다. 현 쓰촨성 미산(眉山)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소동파는 송시의 성격을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문장가였고 중국문학사상 처음으로 호방사(豪放詞)를 개척한 호방파의 대표 사인(詞人)이었다. 

송나라 때 저명한 문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순(蘇洵)이었고, 그 아우도 소철(蘇轍)로 유명한 문인이다. 이 세 부자를 사람들은 삼소(三蘇)라고 불렀는데, 모두 당송팔대가로 손꼽혔다.

당송8대가의 하나인 구양수 문하에서 배웠으며, 22세에 과거에 급제 일찌감치 문재를 알렸다. 당시 북송(北宋)은 왕안석 등이 주창한 신법을 둘러싸고 당쟁이 확산될 시기였는데, 소동파는 신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이를 구법당이라 하며, 구법당의 영수는 '자치통감'의 저자인 사마광이었다), 이로 인해 정치적인 부침을 거듭했다. 1079년에는 황주(호북성)로 유배를 갔지만 낙천적인 성격으로 6년간의 유배 생활을 무사히 끝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하여 한림학사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1094년 다시 신법당이 득세하면서 혜주(광동성)으로 유배되었고 3년 후인 1097년 중국 최남단인 해남도까지 귀양을 갔다.



[사진] 우도 가는 길에 바다에서 찍은 성산 일출봉, 달무리 같은 둘레의 화산석이 톱니처럼 살아 있네요. 아래는 하늘에서 찍은 일출봉[펌]

[주]조선시대 선비들이 줄줄 외던 저 유명한 <적벽부>입니다.

가을 달밤에 뱃놀이하며 질펀하게 술에 취해 인생에 대한 깨달음과 자연친화를 통해 영원성을

갈구하는 작자의 외침이 독자의 동의를 받아내기에 충분합니다.

1句구성에 4言과 6言을 많이 썼군요. 의미의 구속력이 강한 소단위를 4言+4言, 4言+6言,

6言+6言 등으로 구성하여 자유분방합니다. 이를 4,6변려문이라 하는데 漢,唐 사이의 육조시대에

발달한 글쓰기 형식입니다. 육조시대에는 문장의 형식주의, 유미주의를 지향했습니다.

이때, 불경의 번역과정에서 한자의 聲韻도 발달하여 당나라에서는 세계 최고의 정형시인 절구,

율시를 완성시켰답니다. 唐詩는 한시의 전성기였죠.

詩仙 이백(701-762)과 詩聖 두보(712-770)도 이때, 동시대 분들인데 조우까지 했답니다.

괴테와 바그너의 조우만큼이나 역사적 사건이었죠. 그런데 이백이 11살 위인데다 벼슬길에 오른

대선배인지라 두보가 이백의 눈에 띠진 않았지만서도요.

한자에 서툰 학생들을 위해 외기 쉽게 한자 독음을 달았습니다. 한자의 훈을 알고 싶은 분은

복사하여 커셔를 한자에 두고 자판의 “Shift+F9” 키를 치면 됩니다.

한자는 획순이 복잡하여 복사해서 보시면 편하시겠습니다. 감상문의 원문 인용믄 마자막

글자들이 왜 비스듬히 폼을 잡았냐구요? 원문 소개자가 친절하게 운(韻)자를 나타낸 겁니다.


駕一葉之扁舟, 擧匏樽而相,

寄浮蝣於天地, 渺滄海之一.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에는 인생에 대한 명구 ‘일엽편주’, ‘하루살이 인생’, ‘창해일속’ 등이

쏟아져 나오고, 인생의 유한함을 장강의 무궁함과 대비시켜 가을 달밤의

비장함을 극대화시킨다. 안용문에는 없지만 "羽化而登仙"도 천하 명구지요.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也,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거나 불어남이 없으니,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也.

而又何羨乎,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에서는 물과 달을 끌어다가 물은 흘러가지만 가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도 흐르고 있고, 달도 차고 기울지만 줄지도 불어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연으로 태어난 우리네 인생은 워째서 한 번 가면 못 오는고?

이런 의문이 분위기를 지배한다.

나의 중학동기들이 만들어가는 문중사이트에도 자주 삼강 주막 사진도

올라오고 하지만 담론의 핵심은 강물에 있다.

공자님도 논어에서,


子ㅣ 在川上曰 逝者如斯夫인저 不舍晝夜로다[子罕16]

[譯]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은 이와 같도다. 주야에 쉬지 않는구나.”

[註]天地之化, 往者過, 來者續, 無一息之停, 乃道體之本然也.

(천지의 조화가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은 계속되어

한 순간도 멈춤이 없으니 곧 도의 본체의 근본이 그러하다.)

*舍(사):집, 머무는 곳.


라 하셨다.

헤르만 햇세가 소설<싣달타>에서 보여준 깨달음과 동질의 것일 것이다.

곧, 인생의 진리를 향한 참다운 삶은 “日日新又日新”에 있는데,

강물이 그 표본이 된다. 한 지점의 단면을 상상해 보라. 강물은 제3한강교

밑이 아니라도 흘러간다. 그런데 그 지점을 응시해 보면 물은 부단히 흐른다.

그것이 강물의 영원성이고 자연의 영원성이다. 무덤의 풀은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지만 무덤의 주인공은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거지요.

유덕화를 찍은 영화인가요?

<天長地久> 다시 자구를 풀어서 조합하면 ‘天地長久’.

곧 자연의 영원성을 말하는 거라예.


그리하여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불변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과 나는 영원하다.

그럴까요?

많이도 취했나 보군요. 취했는데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필름이 끊어졌는데요.

취한 사람의 답변은 하나입니다.

“나 안 취했어, 이거 놔!”

꼴깝떠는 인간들은 욕설을퍼붓고 화까지 냅니다.

인생의 위대성은 주량으로 가늠하는 것처럼.

결론은 인생은 유한하지만 자연은 영원하다 입니다.

그런데 술김에 자연과 하나되었으니 더불어 영원할 수밖에요.


且夫天地之間, 物各有,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取之無禁, 用之不,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樂,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에서는 사물과 내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러

바람은 소리가 되고, 달은 빛이 되어

“가져도 금지할 사람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다는 명구를 남기게 된다.

조물주의 무진장한 자연을 그대와 내가 함께 실컷 누리자는

돈 안 드는 작자의 인심에 아무도 손을 내젓지 못하는 경지로 인도한다.


赤 壁 賦 -蘇 軾-


필화(筆禍) 사건으로 죄를 얻어 황저우[黃州:湖北省]에 유배되었던 蘇東波가 1082년(원풍 5)의 가을(7월)과 겨울(10월)에

황저우성 밖의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것이다. 7월에 지은 것을 ≪前赤壁賦≫, 10월에 지은 것을 ≪後赤壁賦≫라 한다.


壬戌之秋, 七月旣望,

임술지추, 칠월기망

蘇子與客泛舟, 遊於赤壁之下.

소자여객범주, 유어적벽지하

淸風徐來, 水波不興.

청풍서래, 수파불흥


임술(壬戌) 가을 7월 열엿세 날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 때,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擧酒屬客,1)

거주촉객,

誦明月之詩,2) 歌窈窕之章.3)

송명월지시, 가요조지장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소언, 월출어동산지상,

徘徊於斗牛之間

배회어두우지간

白露橫江, 水光接天.

백로횡강, 수광접천

1)屬客(촉객) 손님에게 (술을) 따르다.

2)明月之詩(명월지시):시경(詩經) 진풍(陣風)에 있는 월출편(月出篇).

3)窈窕之章(요조지장):시경(時經) 국풍(國風) 주남(周南)에 있는 관저편(關雎篇).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의 장(章)을 노래하더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縱一葦之所如,4) 凌萬頃之茫然.

종일위지소여, 릉만경지망연

浩浩乎,

호호호,

如憑虛御風,5) 而不知其所止.

여빙허어풍, 이부지기소지

飄飄乎,

표표호,

如遺世獨立,6) 羽化而登仙.7)

여유세독립, 우화이등선

4)一葦(일위):한 잎의 갈대. 작은 배를 가리킨다. 所如(소여) 여(如)는 왕(往), 거(去)의 뜻. 가는 대로.

5)憑虛御風(빙허어풍):憑은 의지한다. 虛는 허공을 가리키며, 御는 乘과 같다.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간다는 말은 마음이 이미 신선의 경지에 들어감.

6)遺世獨立(유세독립):遺世(유세)는 속세를 떠나다. 속세를 떠나 그 어떠한 사물에도 속박되지 아니한 대자연의 경지를 말함.

7)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 몸에 날개가 돋치어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다.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

ㅡ적벽의 야경과 흥취


於是, 飮酒樂甚. 扣舷而歌之.

어시, 음주락심, 구현이가지

歌曰,

가왈,

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8)

계도혜난장, 격공명혜소류강

8)泝(소):거슬러 올라가다.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묘묘혜여회, 망미인혜천일방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객유취통소자, 의가이화지

其聲嗚嗚然,

기성명명연,

如怨如慕, 如泣如訴,

여원여모, 여읍여소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하는 듯,


餘音嫋嫋, 不絶如縷.

여음요요, 부절여루

舞幽壑之潛蚊,9) 泣孤舟之釐婦

무유학지잠문, 읍고주지리부

9)潛蚊(잠문) 숨어 있는 교룡(蛟龍)) 교룡-뿔 없는 용.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이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릴레라.

ㅡ주흥이 일어남


蘇者 愀然正襟, 危坐而問客曰, 何爲其然也.

소자 추연정금, 위좌이문객왈, 하우기연야

客曰, 月明星稀 烏鵲南飛,10)

객왈, 월명성희 오작남비

此非曹孟德之詩乎.

차비조맹덕지시호

10)조조(曹操)가 지은 단가행(短歌行)이라는 시(詩)의 일절.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난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西望夏口, 東望武昌,

서망하구, 동망무창

山川上繆, 鬱乎蒼蒼.11)

산천상무, 울호창창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12)

차비맹덕지곤어주랑자호

11)繆무:얽다. 12)맹덕은 조조의 자(字). 주랑은 주유(周喩). 적벽대전에 조조가 주유에게 크게 패한 것을 말함.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이 푸른데,

예는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於東也,  

방기파형주, 하강릉, 순류어동야 

舳艫千里,13) 旌旗蔽空.

축로천리, 정기폐공

釃酒臨江,14) 橫槊賦詩.

시주임강, 횡삭부시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고일세지웅야, 이금안재재

13)舳艫(축로):배의 고물과 이물 14)釃(시):거르다.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況吾與子.

황오여자,

漁樵於江渚之上, 侶魚蝦而友麋鹿.

어초어강저지상, 려어하이우미록

駕一葉之扁舟, 擧匏樽而相屬,

가일엽지편주, 거포준이상촉

寄浮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기부유어천지, 묘창해지일속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애오생지수유, 선장강지무궁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협비선이오유, 포명월이장종

知不可乎驟得, 託遺響於悲風15)

지불가호취득, 탁유향어비풍

15)悲風(비풍):가을 바람(秋風).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날으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 알고,

여운(餘韻)을 가을 바람에 부치노라.”

-손의 말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소자왈 객역지부수여월호

逝者如斯,16) 而未嘗往也.

서자여사, 이미상왕야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영허자여피, 이졸막소장야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개장자기변자이관지, 즉천야증불능이일순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자기불변자지관지, 즉물여아개무진야

而又何羨乎,

이우하선호

16)逝者如斯(서자여사):일찍이 공자가 한 말로써, 흐르는 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흐른다는 말이다.


蘇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은 이와 같으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요?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차부천지지간, 물각유주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구비오지소유, 수일정이막취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유강상지청풍, 여산간지명월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이득지이위성, 목우지이성색

取之無禁, 用之不竭,

취지무금, 용지불알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樂,

시조물자지무진장야, 이오여자지소공락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ㅡ蘇子의 말 - 손의 말에 대한 반론


客喜而笑, 洗盞更酌.

객희이소, 세잔갱작

肴核旣盡, 杯盤狼藉17)

효핵기진, 배반낭자

相與枕籍乎舟中,18) 不知東方之旣白.

상여침자호주중, 부지동반지기백

17)杯盤(배반):잔과 접시. 18)枕籍(침적):베개 삼아 베고 눈고, 깔고 앉다.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 오는 줄도 몰랐어라.

ㅡ두 사람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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