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지 탈해왕대

-金閼智 脫解王代, 三國遺事 紀異第四,

[은자주]신라의 왕족 성씨, 금관 사용, 묘제의 변모 양상 등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신라의 왕족 성씨

朴: 북방,1-3대.53대-55대.

昔:해상,4대 탈해(아랍?)-12대,14-16대.

金:유라시아 기마민족, 13대 미추닛금, 17대 내물마립간~52대, 56대 경순왕.

󰋬고구려; 북방에서 독립, 백제; 고구려에서 파생.

◇金氏의 뿌리는 유라시아의 초원을 지배하고 동서교역을 담당했던 기마민족[훈족(흉노), 투루크족, 몽고족]으로 스키타이 문화를 형성함.

󰋬적석․목곽분의 묘제: 유라시아의 유목민족들 평야에 봉분. 미추왕,

대능원[천마총]의 주인공들은 13대 미추왕, 17대 내물왕-22대 지증왕 일곱 왕.

󰋬금관 사용: 흑해 부근의 박물관에선 나무 양쪽에 사슴을 배치한 금관 보관, 사실적 조각.

◇금관은 김씨 왕들 초기에만 사용됨. 17대 내물마립간-28대 진덕여왕 2년.(356?-648)

금관: 나무 세 그루, 사슴뿔 2개. 나무는 하늘과의 통로, 사슴을 신성시함(수렵 대상, 시베리아)

◇묘제의 변모 양상

13대 미추 263-283. 평야에 봉분. 23년 冬十月. 王薨 葬大陵(一云 竹長陵)

천마총 정문에서 직진,봉분 앞에 시동석, 측면과 후면엔 대나무를 둘러친 무덤.

17대 내물356-401. 적석․목곽분. 황남대총.

22대 지증왕 500-513.4년 국호 신라. 처음으로 왕의 호칭 사용 및 시호 제정.

23대 법흥왕514-539. 횡혈식․석곽분. 산에 봉분함.

27年 秋七月. 王薨 諡曰法興. 葬於哀公寺北峰.

28대 진덕여왕 647-653. 3년(649)정월. 중국 의관 들여옴. 始服中朝衣冠.


永平三年庚申(一云中元六年 誤矣 中元盡二年而己) 八月四日

영평 3년(60년) 8월 4일에

瓠公夜行月城西里

호공이 밤에 월성 서리를 가다가

見大光明於始林中(一作鳩林)

*[은자주]始林 鳩林은 새벌 새블로 곧 사뇌 東川 東國의 뜻,

시림에서 크고 밝은 빛을 보았다.

有紫雲從天垂地

붉은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뻗쳤는데

雲中有黃金櫃 掛於樹枝

그 구름 속에 황금의 궤가 나무가지에 걸려 있었고

光自櫃出

그 빛은 궤 속에서 나왔고,

亦有白鷄鳴於樹下

도한 흰 닭이 그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以狀聞於王

이 상황을 왕에게 아뢰었다.

駕幸其林

왕이 친히 그 숲에 나아가서

開櫃有童男 臥而卽起

그 궤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곧 일어났다.

如赫居世之故事

이것은 혁거세의 고사와 같으므로

故因其言 以閼智名之

그 말을 인연하여 알지라 이름하였다.

閼智卽鄕言小兒之稱也

알지는 우리말로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抱載還闕

왕이 그 아이를 안고 궁으로 돌아오니

鳥獸相隨 喜躍蹌蹌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며 기뻐하여 너훌너훌 춤을 추었다.

王擇吉日 冊位太子

왕이 길일을 택하여 태자로 책봉했으나

後讓於婆裟 不卽王位

후에 알지는 왕위를 파사왕[제5대]에게 물려주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因金櫃而出 乃姓金氏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씨라 하였다.

閼智生熱漢 漢生阿都 都生首留

알지는 열한을 낳았고, 열한은 아도를 낳고 아도는 수류를 낳고,

留生郁部 部生俱道(一作仇刀) 道生未鄒

수류는 욱부를 낳고, 욱부는 구도를 낳고 구도는 미추를 낳았는데,

鄒卽王位

미추는 왕위에 즉위했다. [13대 미추왕]

新羅金氏自閼智始

신라의 김씨는 알지에서 시작되었다.

[계림 탄강지 비각, 포석정, 대릉원 저수지]







탈해왕 신화

-三國遺事 紀異第四 脫解王

[은자주] 1989년 9월27일 박인호(57), 유성미씨(50)의 1녀1남 중 둘째로 태어난 마린보이 박태환이 수영장에 처음 발을 담근 것은 5살 때였다고 한다.

박태환의 기사 중 눈길을 끄는 것은 한겨레닷컴 기사였다. 무용수의 유연성과 색소폰 연주자의 폐활량, 아마 맞을 것이다. 원조(遠祖)를 찾는다면 탈해왕과 역시 바다에서 출현한 김수로 왕비 허황후를 들 수 있다.

허황후는 이 불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다.

http://blog.paran.com/kydong/24616056

http://blog.paran.com/kydong/24772353

‘천재성+노력’이 피운 ‘불모지의 꽃’

지난해 초부터 1년 남짓 박태환 전담코치를 맡았던 박석기 <문화방송> 해설위원은 박태환의 강점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신체와 재질”이라고 잘라 말했다. “수영은 우선 기술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태환이는 무엇보다 기술이 뛰어나다. 1m83, 74㎏으로 서양 선수들보다 작지만 기술로 체력을 이긴다.” 박태환의 유연성이 남다른 것은, 젊었을 때 무용을 했던 어머니 유성미(51)씨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폐활량은 보통 사람의 경우 3천∼4천㏄ 정도인데, 7천㏄나 된다는 게 코칭스태프의 설명. 이것도 색소폰 주자였던 부친 박인호(58)씨의 영향을 받았다.

脫解齒叱今(一作吐解尼師今)

*[은자주]叱과 師는 사잇소리 "ㅅ“ 표기임, 齒는 훈독,尼는 음독.

탈해 닛금(토해 닛금)은

南解王時

남해왕 때에

(古本云 壬寅年至者謬矣. 近則後於弩禮卽位之初 無爭讓之事 前則在於赫居之世 故知壬寅非也)

(일연주;고본에 이르기를, 임인년에 왔다는 것은 잘못이다. 가깝다면 노례왕 즉위초보다 뒤이니 왕위를 다투어 양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요, 앞서다면 혁거세왕 때에 있었을 것이므로 임인년은 아니다.)

駕洛國海中有船來泊

가락국의 바다에 어떤 배가 와서 닿았다.

其國首露王

그 나라의 수로왕이

與臣民鼓譟而迎 將欲留之

신하와 백성들과 북을 치고 떠들면서 머무르게 하려고 했으나

而舡乃飛走 至於鷄林東下西知村阿珍浦(今有上西知下西知村名)

배는 급히 달아나 계림의 동쪽 하서지촌 아진포에 이르렀다.

時浦邊有一嫗 名阿珍義先

이때 갯가에 한 늙은 할멈이 이름을 아진의선이라 하였는데

乃赫居王之海尺之母

이가 바로 혁거세왕 때의 고기잡이 할멈이었다.

望之謂曰

그녀는 배를 바라보고 말했다.

此海中元無石嵓

“이 바다 가운데에 원래 바위가 없는데

何因鵲集而鳴

어찌해서 까치가 모여서 울고 있는가.”

拏舡尋之 鵲集一舡上

배를 끌어당겨 찾아보니 까치가 배 위에 모여들고

舡中有一櫃子 長二十尺 廣十三尺

그 배 안에 궤 하나가 있었는데, 길이는 스무자나 되고 넓이는 열 세 자였다.

曳其船 置於一樹林下

그 배를 끌어다가 나무 숲 밑에 매어두고

而未知凶乎吉乎

이것이 흉한 일인지 길하 일인지를 몰라

向天而誓爾

하늘을 향해 고하였다.

俄而乃開見 有端正男子

얼마 후에 궤를 열어보니 잘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竝七寶奴婢滿載其中

또 일곱 가지 보물과 노비가 그 속에 가득하였다.

供給七日 迺言曰

이레동안 잘 대접하였더니 그 사내아이는 말하였다.

我本龍城國人(亦云正明國 或云琓夏國 琓夏或作花廈國 龍城在倭東北一千里)

“나는 본시 용성국 사람으로

我國嘗有二十八龍王 從人胎而生

우리나라엔 일찌기 28용왕이 있었는데 모두 다 사람의 태에서 났으며,

自五歲六歲 繼登王位

5-6세 때부터 왕위에 올라

敎萬民修正性命

만민을 가르쳐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였습니다.

而有八品姓骨

팔품의 성골이 있는데

然無揀擇 皆登大位

그들은 간택하는 일이 없이 모두 왕위에 올랐습니다.


時我父王含達婆 聘積女國王女爲妃

이때 우리 부왕 함달파가 적녀국의 왕녀를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는데

久無子胤 禱祀求息

오래도록 아들이 없으므로 기도를 하여 자식을 빌었는데

七年後産一大卵

7년만에 커다란 알 하나를 낳았습니다.

於是大王會問群臣

이에 대왕은 군신을 소집하여 묻기를,

人而生卵

“사람으로 알을 낳은 일은

古今未有 殆非吉祥

고금에 없는 일이며 아마도 길하고 상서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고

乃造櫃置我

궤를 만들어서 나를 그 속에다 넣고

幷七寶奴婢載於舡中

일곱 가지 보물과 노비들을 함께 배 안에 실은 후에

浮海而祝曰

바다에 띄우고 축원하기를,

任到有緣之地 立國成家

‘마음대로 인연이 있는 땅에 닿아 국가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便有赤龍 護舡而至此矣

문득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호위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言訖 其童子曳杖率二奴

말을 끝내자 그 아이는 지팡이를 끌고 두 종을 데리고

登吐含山上作石塚 留七日

토함산 위에 올라가 돌집을 지어 그 곳에서 아레 동안 머물렀다.

望城中可居之地 見一峯如三日月

성 안에 살만한 곳을 바라보다가 마치 초승달 모양으로 된 봉우리가 보았는데

勢可久之地

그 지세가 오래 살만한 땅이었다.

乃下尋之 卽瓠公宅也

이에 내려와서 그 곳을 찾아가 보니 바로 호공[朴公]의 집이었다.

乃設詭計 潛埋礪炭於其側

이에 지략을 써서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곁에 묻어놓고

詰朝至門云

다음날 아침 그 집 문 앞에 가서 말했다.

此是吾祖代家屋

“이 집은 조상 대대로 이어온 우리집입니다.”

瓠公云 否 爭訟不決 乃告于官

호공이 그렇지 않다고 하여 쟁송이 판결나지 않아 관가에 고했다.

官曰 以何驗是汝家

관가에서 동자에게 물었다.

“무슨 증거로 너의 집인고?”

童曰

아이가 말했다.

我本冶匠 乍出隣鄕

“나는 본시 대장장이였는데 잠시 이웃 고을에 나간 동안에

而人取居之 請掘地撿看

다른 사람이 빼앗아서 살고 있으므로 땅을 파서 조사해 보기를 청합니다.”

從之 果得礪炭

그 말을 따랐다.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다.

乃取而居焉

이에 그 집을 빼앗아 살았다.

時南解王知脫解是智人

이 때 남해왕은 탈해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고

以長公主妻之 是爲阿尼夫人

맏공주를 그의 아내로 삼게 하니 이가 곧 아니부인이었다.


一日吐解登東岳 廻程次

하루는 탈해가 동악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에

令白衣索水飮之

백의(白衣)에게 물을 찾아 떠오게 하였다.

白衣汲水中路先嘗而進

백의는 물을 떠서 가지고 오다가 중도에서 자기가 먼저 마시고 탈해에게 올리려고 하였다.

其角杯貼於口不解. 因而嘖之 白衣誓曰

뿔잔이 입이 붙어 떨어지지 않아 탈해가 이로 인하여 꾸짖었다. 백의가 맹세했다.

爾後若近遙不敢先嘗

“이제는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먼저 마시지 않겠습니다.”

然後內解

걸한 후에 뿔잔이 입에서 떨어졌다.

自此白衣 讋服 不敢欺罔

그 이후로 백의는 탈해를 두려워하여 감히 속이지 않았다.

今東岳中有一井 俗云遙乃井是也

지금 동악에 우물 하나가 있는데, 세상사람들이 요내정이라 말하는 것이 바로 그 우물이다.

及弩禮王崩 以光虎帝中元六(二)年丁巳六月 乃登王位

노례왕이 붕어하시고 광무제 중원 6년(57년) 6월에 탈해는 왕위에 올랐다.


以昔是吾家取他人家 故因姓昔氏

옛날에 자기 집이라 하여 남의 집을 빼앗았으므로 인하여 성을 석(昔)씨라고 하였다.

或云 因鵲開櫃 故去鳥字 姓昔氏

혹은 까치로 인해서 상자를 열었으므로 ‘鵲자에서 새 조(鳥)를 제거하고 성을 석(昔)씨로 했다고도 한다.

解櫃脫卵而生 故因名脫解

그리고 궤를 열자 알을 깨고 나왔으므로 탈해라고 이름했다고 한다.


在位二十三年 建初四年己卯崩

왕위에 오른 지 23년만인 건초 4년(79년)에 붕어하셨다.

葬䟽川丘中 後有神詔

소천구에 장례를 지냈는데 그 후 신이 명령하기를,

愼埋葬我骨

'내 뼈를 조심해서 묻어라' 했다고 한다.

其觸髏周三尺二寸 身骨長九尺七寸

두개골의 둘레는 3자 2치였고 신장 뼈의 길이는 9자 7치였다.

齒凝如一 骨節皆連琑

치아[齒]는 서로 엉기어 하나가 된 듯하고 뼈마디 사이는 모두 연이어져 있어,

所謂天下無敵力士之骨

이른바 바로 천하에 적이 없는 역사의 골격이었다.

碎爲塑像 安闕內

뼈를 부수어서 소상(塑像)을 만들어 대궐 안에 안치했다.

神又報云

탈해신이 또 말하기를,

我骨置於東岳 故令安之

“내 뼈를 동악에 안치하라,” 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 곳에 모시게 하였다.

(一云 崩後二十七世文虎王代 調露二年庚辰三月十五日辛酉夜

見夢於太宗 有老人貌甚威猛曰

태종에게 현몽하였다. 노인의 모습이 심히 위엄 있고 용맹한 이가 말하기를,

我是解脫也 拔我骨於䟽川丘

“나는 탈해이다. 소천구에서 내 유골을 추려서

塑像安於土含山.

소상을 토함산에 안치하라.”고 했다

王從其言 故至今國祀不絶

태종대왕은 그 말을 따랐으므로 지금껏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가 끊어지지 아니하니,

卽東岳神也云)

곧 동악신이시다.)





 

아기왕이 한 번 일어나리라

-신라시조 혁거세왕

新羅始祖 赫居世王, 삼국유사 권1

 

前漢地節元年壬子(古本云建虎元年, 又云建元三年等, 皆誤)三月朔,

民皆放逸 自從所欲

백성들이 방

전한 지절 원년(B.C.69년) 3월 초하룻날,

六部祖各率子弟, 俱會於閼川岸上, 議曰:

여섯부의 조상들은 자제를 거느리고 알천의 언덕위에 모여서 의논을 하였다.

「我輩上無君主 臨理蒸民

"우리들은 위로 임금이 없어서 백성들에 임하여 다스리지만

자하여 스스로 하고자하는 바를 따르니

盍覓有德人 爲之君主 立邦設都乎?」 *합:何不

어찌 덕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하지 않으리오."

於是 乘高南望

이에 그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남쪽을 바라보니

楊山下蘿井傍 異氣如電光垂地

양산 아래 나정(蘿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갯불처럼 땅에 닿았더라.

有一白馬跪拜之狀

백마 한 마리가 꿇어 앉아 절을 하는 형상이었다.

尋撿之 有一紫卵(一云靑大卵).

그곳을 찾아가 살펴본즉 자줏빛 알 하나가 있었다.

馬見人長嘶上天

말은 사람을 보더니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剖其卵得童男

그 알을 깨어보니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形儀端美 驚異之

대개 신라말이다.

或作

외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워 모두 놀라고 이상하게 여겼다.

浴於東泉(東泉寺在詞腦野北) 身生光彩

그 아이를 동천에서 목욕을 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났다.

鳥獸率舞 天地振動 日月淸明

새와 짐승들이 따르며 춤을 추고 이내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했다.

因名赫居世王.

그로 인하여 그 아이를 혁거세왕이라고 이름하였다.

 

(蓋鄕言也.

弗矩內王 言光明理世也.

혹은 불그내왕이라고도 한다.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說者云 是西述聖母之所誕也.

설자는 말하기를, 이는 서술성모가 탄생한 것이니

故中華人讚仙桃聖母

중국인들이 선도성모를 찬양하여

有娠賢肇邦之語是也.

“현인(賢人)을 임신하여 나라를 시작하였네.”라고 한 말이 이것이다.

乃至雞龍現瑞産閼英

계룡이 상서로움을 나타내고 알영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又焉知非西述聖母之所現耶?)

또한 서술성모가 현신(現身)한 것은 아닌지 어찌 알리오?

 

位號曰 居瑟邯.

위호는 거슬한이라고 했다.

 

(或作居西干

혹은 거서간이라고도 한다.

初開口之時 自稱云

처음 입을 열 때에 스스로 칭하기를,

閼智居西干一起

“아기거서간이 한 번 일어나리라.” 했으므로,

因其言稱之 自後爲王者之尊稱)

거서간은 그의 말을 따라 호칭한 것으로, 그 후로 왕이 된 이의 존칭이었다.

 

時人爭賀曰

당시의 사람들은 서로 앞다투어 치하를 하였다.

「今天子已降

"이제 천자가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宜覓有德女君配之.」

마당히 덕이 있는 왕후를 찾아 배필을 삼아야 합니다."

 

是日 沙梁里閼英井(一作娥利英井)邊

이 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 주변에

有雞龍現而左脇誕生童女(一云龍現死 而剖其腹得之)

계룡이 나타나 왼쪽 갈비에서 계집아이를 낳았다.

姿容殊麗 然而唇似雞觜

얼굴와 모습이 매우 고왔으나 입은 닭의 부리와 같았다.

將浴於月城北川 其觜撥落

월성의 북천에 가서 목욕을 시키니 그 부리가 떨어졌으므로

因名其川曰撥川.

그 내를 발천이라고 하였다.

營宮室於南山西麓(今昌林寺) 奉養二聖兒.

남산의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성스러운 두 사람을 받들어 길렀다.

男以卵生 卵如瓠.

사내아이가 알에서 나왔데 그 알이 박과 같았다.

鄕人以瓠爲朴 故因姓朴.

향인들은 박을 박(朴)이라 하am로 그 성을 박(朴)이라 하였다.

女以所出井名名之.

계집아이는 그녀가 나온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이름하였다.

二聖年至十三歲 以五鳳元年甲子

두 성인이 나이가 열세살이 되자 오봉원년 갑자에

男立爲王 仍以女爲后

사내아이는 왕이 되고 그 여자를 왕후로 삼았다.

國號徐羅伐 又徐伐(今俗訓京字云徐伐. 以此故也). 或云斯羅 又斯盧.

나라의 이름을 서라벌 또는 서벌이라 하고 혹은 사라 또는 사로라고 하였다.

 

初王生於雞井 故或云 雞林國

처음에 왕이 계정[나정]에서 탄생을 하였기 때문에 나라이름을 계림국이라고도 하였다.

以其雞龍現瑞也.

이것은 계룡이 상서로움을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一說 脫解王時 得金閼智 以雞鳴於林中

일설에는 탈해왕 때 김알지를 얻을 때 숲속에서 닭이 울었다고 하여

乃改國號爲雞林.

국호를 고쳐 계림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은자주]雞林, 始林은 모두 고유어 '새벌 새불'로'東川 東國'의 뜻임.

後世遂定新羅之號.

후세 드디어 신라라고 국호를 정하였다.

 

理國六十一年. 王升于天.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이 되던 해에 박혁거세왕은 하늘로 올라갔는데

七日后 遺體散落于地.

이레후에 몸뚱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다.[풍장(風葬)]

 

后亦云亡.

그리고 왕후도 역시 훙거(薨去)했다고 한다.

國人欲合而葬之

나라의 사람들이 이들을 합장하여 장사를 지내려 하자

有大蛇逐禁 各葬五體爲五陵.

큰 뱀이 나타나 방해를 하므로 머리와 사지를 제작기 장사지내어 오릉을 만들었다.

亦名蛇陵. 曇嚴寺北陵是也.

또한 사릉(蛇陵)이라고 이름하였다. 담엄사 북쪽의 능이 바로 이것이다.

太子南解繼位.

태자 남해왕이 즉위하여 왕위를 계승하였다.

[신화의 특징]

 

1.天賜卵;신성시 됨.人卵은 遺棄 過程 수반됨.아름답고 찬란한 황금과 황슴빛 수반됨.

2.井泉,櫃,金合子;농경민의 정착생활 반영. 降雨의 담당자 池龍.井泉에는 瑞氣 天氣 어림.

3.天馬思想;1)祭儀적 面유사 p66:8행. <新羅別記 刑白馬而盟 先祀天神及山川之靈...

2)하늘의 使者로 降雨를 담당하는 龍馬.天馬.동명왕의 五龍車.

4.仙桃聖母 신화: 삼국유사 권5 感通 제7 仙桃聖母隨喜佛事 유사,p.216. 神母本中國帝室之女 名娑蘇 早得神仙之術 歸止海東 久而不還. (...중략...) 其始到辰韓也 生聖子 爲東國始君 蓋赫居閼英 二聖之所自也.

삼국사기 권12.政和年間 宋에 朝貢갈 때 김부식이 文翰의 소임을 맡고 祐神館에 이르러 女仙의 像을 모신 一堂을 보았다.

館伴學士王黼曰 此貴國之神公 等知之乎

遂言曰 古有帝室之女 不夫而孕 爲人所疑 乃泛海抵辰韓 生子 爲海東始主 帝女爲地仙 長在仙桃山 此其像也

臣又見大宋國 信使王襄 祭東神聖母文 有‘娠賢肇邦’之句 乃知東神 則仙桃山神聖者也 然而不知其子王於何時. [혁거세왕을 말함]

 





[은자주]신라는 박,석,김 세 왕에 걸쳐 왕의 성씨가 교체되었지만 왕통을 살펴보면 새로 권력을 장악한 이민족의 외래인인 왕들은 이전의 왕과 왕족들을 포섭하여 통합을 꾀한 것을 볼 수 있다. 고대국가이면서도 대단한 정치력으로, 현대 한국 정치인들도 배워야 할 덕목이다.

10년간의 전정부가 얼마나 집권층을 교체했는지 발표된 통계가 없지만 이명박 정부는 포용력을 발휘하여 국민통합을 이루는 것이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임을 명심할 일이다. 집권층을 싹쓸이하는 건 조선시대 숙종조 당쟁에서나 있었던 일이다.

신라 세 왕의 건국 내지 씨족신화를 정리해 본다.

육부촌장과 육성

新羅始祖 赫居世王.삼국유사 권1,

辰韓之地, 古有六村;

진한 땅에 옛날 여섯 마을이 있었다.

一曰閼川楊山村,

첫째는 알천 양산촌인데

南今曇嚴寺, 長曰謁平,

그 남쪽은 지금의 담엄사로서, 그 촌장은 알평이었다.

初降于瓢嵓峰, 是爲及梁部李氏祖

처음 하늘에서 표암봉에 내려왔는데 이가 급량부 이(李)씨의 조상이 되었다.

(弩禮王九年置, 名及梁部, 本朝太祖天福五年庚子, 改名中興部, 波潛‧東山‧彼上‧東村屬焉);

二曰突山高墟村, 長曰蘇伐都利,

둘째는 돌산 고허촌이니 촌장은 소벌도리이다.

初降于兄山, 是爲沙梁部(「梁」讀云「道」, 或作「涿」, 亦音「道」)鄭氏祖,

처음 형산에 내려왔으니 이가 사량부 정(鄭)씨의 조상이 되었다.

今曰南山部, 仇良伐‧麻等烏‧道北‧廻德等南村屬焉(稱「今曰」者, 太祖所置也, 下例知);

지금의 남사누라고 하는데 구량벌,마등오,도북,회덕 등 남촌이 여기에 속한다.

三曰茂山大樹村, 長曰俱(一作仇)禮馬,

셋째는 무산 대수촌이니 촌장은 구례마이다.

初降于伊山(一作皆比山), 是爲漸梁(一作涿)部又牟梁部孫氏之祖,

처음엔 이산에 내려오니 여기가 점량부 또는 모량부로 손(孫)씨의 고향이 되었다.

今云長福部, 朴谷村等西村屬焉;

지금은 장복부라고 하는데 박곡촌 등 서촌이 여기에 속한다.

四曰觜山珍支村(一作賓之, 又賓子, 又氷之), 長曰智伯虎,

넷째는 자산 지지촌 이니 촌장은 지백호이다.

初降于花山, 是爲本彼部崔氏祖,

처음에 화산에 내려오니 이가 곧 본피부 최(崔)씨의 조상이 되었다.

今曰通仙部, 柴巴等東南村屬焉,

지금의 통선부이다. 시파 등 동남촌이 여기에 속한다.

致遠乃本彼部人也,

최치원이 바로 본피부 사람이다.

今皇龍寺南味呑寺南有古墟,

지금의 황룡사 남쪽 미탄사의 남쪽에 옛집터가 있는데

云是崔侯古宅也, 殆明矣;

여기가 최후(최치원)의 옛집이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분명하다.

五曰金山加里村(今金剛山栢栗寺之北山也), 長曰祗沱(一作只他),

다섯째는 금산 가리촌이니 촌장은 지타이다.

初降于明活山, 是爲漢歧部又作韓歧部裵氏祖,

처음에 명활산에 내려오니 이가 곧 한기부 배(裵)씨의 조상이다.

今云加德部, 上下西知乃兒等東村屬焉;

지금은 가덕부라고 하는데 상서지, 하서지, 내아 등 동촌이 여기에 속한다.

六曰明活山高耶村, 長曰虎珍,

여섯째는 명활산 고야촌이니 촌장의 이름은 호진이다.

初降于金剛山, 是爲習比部薛氏祖,

처음에 금강산에 내려왔으니 이 사람이 습비부 설(薛)씨의 조상이 되었다.

今臨川部, 勿伊村 ‧仍仇旀村‧ 闕谷(一作葛谷)等東北村屬焉.

지금의 임천부로 물이촌,잉구미촌, 궐곡 등 동북촌 여기에 속한다.


按上文,

위의 글을 살피건대,

此六部之祖, 似皆從天而降.

이 여섯 부의 조상들은 모두 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같다.

弩禮王九年始改六部名, 又賜六姓.

노례왕(유리왕) 9년에 비로소 여섯부의 이름을 고치고 또 그들에게 여섯 성(姓)을 주

었다.

今俗中興部爲母, 長福部爲父,

지금의 풍속에느 중흥부를 어머니라 하고 장복부를 아버지,

臨川部爲子, 加德部爲女, 其實未詳.

임천부를 아들, 가덕부를 딸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