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권본 화엄경 보현행원품

이운허 역, 동국대학교역경원.

大方廣佛華嚴經卷第四十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kyoung/index_kyoung.asp?kyoungName=%B4%EB%B9%E6%B1%A4%BA%D2%C8%AD%BE%F6%B0%E640%B1%C7%BA%BB&kyoungList=2

[은자주]이 도입부에 이어서십원(十願)에 대한 설명과 게송이 나온다. 십원 부분은 향가 작품 10수에 맞추어 정리하기로 한다. 균여대사가 그 진수를 모아 우리말로 된 보현십원가 10[전체는 11수]로 압축한 것이다. 교술장르인 가사가 불교에서 시작된 이유도 알 만하다. 우리말로 바꾸어야 대중들에게 그 뜻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罽賓國三藏般若奉 詔譯

 “선남자여, 여래의 공덕은 시방세계의 부처님들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티끌 수 같은 겁 동안에


相續演說不可窮盡。 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계에 들어가는 보현보살님의 행동과 서원을 담은 불경의 한 부분입니다.)


爾時普賢菩薩摩訶薩。稱歎如來勝功德已。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거룩하신 공덕을 두루 찬탄하고 나서

告諸菩薩及善財言。

여러 보살들과 선재동자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善男子。如來功德。假使十方一切諸佛經不可說不可說佛刹極

微塵數劫。

계속하여 말하더라도 끝까지 다할 수가 없느니라.

若欲成就此功德門。應修十種廣大行願。。

만일 이러한 공덕을 성취하려면 마땅히 열 가지 넓고 큰 행과 원을 닦아야 하느니라.

何等爲十

무엇이 열 가지인가?

一者禮敬諸佛。二者稱讚如來。三者廣修供養。

四者懺悔業障。五者隨喜功德。六者請轉法輪。

七者請佛住世。八者常隨佛學。九者恒順衆生。

十者普皆迴向

하나는 부처님께 예경함이요,

둘은 여래를 찬탄함이요,

셋은 여러 가지로 공양함이요,

넷은 업장을 참회함이요,

다섯은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함이요,

여섯은 법륜(法輪) 굴리시기를 청함이요,

일곱은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함이요,

여덟은 부처님을 따라서 배움이요,

아홉은 중생의 뜻에 늘 따라 줌이요,

열은 모두 회향함이니라.”

善財白言。

선재동자가 사뢰기를,

大聖。云何禮敬乃至迴向。
『거룩하신 이여! 어떻게 예경하오며 어떻게 회향해야 하나이까?』

普賢菩薩。告善財言。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말씀하였다.

'고전문학 > 향가 外'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예경제불가  (0) 2008.08.30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0) 2008.08.30
균여전에 수록된 향가  (0) 2008.08.29
향가연구의 문제와 연구서들  (0) 2008.08.29
바다에서 허황후 오시다/ 가락국기  (0) 2008.08.28

均如傳에 수록된 향가


[은자주]균여대사의 전기 <균여전>은 100여 년에 걸친 불가(佛家)의 문화유산이다. 화엄경 보현행원품 성립부터 기산(起算)하면 중국의 한역을 거쳐 천여 년은 족히 추가되리라.

보현십원가 11수는 均如大師(923-973)의 소작(所作)로 전기(傳記)의 제7장 ⑦歌行化世分에 수록하였다. 崔行歸는 향가를 七言律詩로 번역하고 서문까지 지었는데(983년) 이것이 제8장 ⑧譯歌現德分이다.

그후 고려 문종 29년(1075) 혁연정(赫連挺)은 일곱 장을 추가한 끝에 드디어 균여대사의 전기 均如傳[약칭, 원제:大華嚴首座圓通兩重大師均如傳]을 편찬하였던 것이다. 향가 11수, 한역가 11수, 균여전 등 세 단계의 과정을 거쳐 우리는 그 전모를 알 수 있으니 어느 분의 노고도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원작이 없었다면 한역가도 없었을 것이요, 한역가가 없었다면 향찰로 표기된 원작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요, 이 두 개의 장이 없다면 균여전의 전기는 승려 한 분의 일대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의 할 것은 향가라면 으레 신라시대의 노래인데, 여기 보현십원가의 향가 11수는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다음 꼭지에서부터 향가, 한역가, 화엄경 보현행원품을 묶어 한 작품씩 살펴보고자 한다.


[균여전소재 11首]

普賢十願歌(均如大師)

◇普賢菩薩十種願王歌(原題)


(1)균여전의 구성(全九章)

①降誕靈驗分 ②出家請益分 ③姉妹齊賢分

④立義定宗分 ⑤解釋諸章分 ⑥感通神異分

歌行化世分 ⑧譯歌現德分 ⑨感應降魔分


(2)歌行化世分

-均如大師(923-973, 고려 太祖6- 고려 光宗24) 창작은 949-973년으로 추정.

◇普賢十願歌 11수

①禮敬諸佛歌 ②稱讚如來歌 ③廣修供養歌

④懺悔業障歌 ⑤隨喜功德歌 ⑥請轉法輪歌

⑦諸佛住世歌 ⑧常隨佛學歌 ⑨恒順衆生歌

⑩普皆廻向歌 ⑪總結無盡歌


(3)⑧譯歌現德分

-漢詩로 飜譯한 崔行歸의 序(983). 七言律詩.


(4)均如傳[大華嚴首座圓通兩重大師均如傳], 고려 문종 29년(1075) 赫連挺 撰.

[참조]均如(俗姓은 邊氏, 黃州출신,923-973.고려 太祖6- 고려 光宗24)) 향가 11수는 고려시대의 작품. 광종(재위 949-975) 949-973년으로 추정.


[참고]

崔行歸의 序(983)에 나타난 보배로운 말씀들

[第七 歌行化世分者]

師之外學 尤閑於詞腦(意精於詞 故云腦也)

균여대사는 불교 외의 학문으로는 특히 사뇌(지은이의 뜻이 가사에 정밀하게 표현되므로 腦)라 한다)에 익숙하여

依普賢十種願王 著歌一十一章.

보현보살의 열 가지 서원을 바탕으로 노래 11章을 지었다.

其序云

그 서문에 이르기를,

夫詞腦者 世人喜樂之具

“대저 詞腦라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놀고 즐기는 데에 쓰는 도구요

願王者 卄卄(주,菩薩)修行之樞

願王이라 한 것은 보살 수행의 중추이다.

故得涉淺歸深

그러므로 얕은 데를 지나 깊은 데로 갈 수 있고,

從近至遠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는 것이니

不憑世道 無引劣根之由

세상의 도구에 의지하지 않고는 劣根을 가진 사람들을 인도할 단서가 없고,

非其陋言 莫現普因之路.

우리말이 아니면 큰 인연을 나타낼 길이 없다.”


[第八 譯歌現德分者] 漢詩를 飜譯한 崔行歸의 序(983).

然而詩搆唐辭 磨琢於五言七字

그러나 漢詩는 중국 글자로 였어서 五言, 七言으로 다듬고,

歌排鄕語 切磋於三句六名

향가는 우리말로 배열해서 三句六名으로 다듬는다.

(…중략…)

八九行之唐序 義廣文豊

8-9행의 한문으로 쓴 서문은 뜻이 넓고 문채가 풍부하며,

十一首之鄕歌 詞淸句麗

11수의 향찰로 쓴 노래는 그 가사가 맑고 곱다.

其爲作也 呼稱詞腦

창작된 것을 사내(詞腦, 東川의 뜻)라 부르니

可欺貞觀之詞

貞觀(唐太宗,627-649) 때의 시를 대단치 않게 생각할 만하고,

精若賦頭

정치(精緻)함은 賦 작품 중 으뜸인 것과 같아서

堪比惠明之賦

육조시대 晉의 惠帝(290-306), 東晉의 明帝(323-325) 때의 賦에 비길만하다.

而唐人見處 於序外以難詳

그러나 중국인이 보면 서문 외에는 자세히 알기 어렵고

鄕士聞時 就歌中而易誦

우리나라 선비들이 들을 적에는 노래에 참가하여 쉽사리 왼다.

皆沾半利 各漏全功.

양쪽 모두 반쪽 이익만 취하고 각기 온전한 성공은 놓친다.


'고전문학 > 향가 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0) 2008.08.30
보현행원품 도입부  (0) 2008.08.29
향가연구의 문제와 연구서들  (0) 2008.08.29
바다에서 허황후 오시다/ 가락국기  (0) 2008.08.28
금빛 아기 일어나시다  (0) 2008.08.28

향가연구의 문제와 연구서들

◇향가연구의 제문제

1.語釋:신라어 재구에 어려움.

󰋬몽고어(김선기), 터어키어(강길운), 일본어, 만주어.

󰋬원칙:의미부(訓借), 형태부(音借)

󰋬어학적 문제:해독과 주석, 음운체계와 표기법, 어휘론.

2.형식문제:5행시(도솔가,강길운), 6행시(풍요,김선기)

󰋬형식 발생의 선후 문제(청우;同時多發)

3.작품명:

󰋬禱千手觀音歌(양주동), 盲兒得眼歌(소창진평), 千手大悲歌(김동욱), 觀音歌(홍기문), 눈밝안노래(김선기), 千手千眼觀音歌((김사엽)

󰋬怨歌(양주동), 信忠栢樹歌(소창진평), 掛冠歌(정렬모), 宮庭栢(지헌영), 잣나무노래(홍기문), 잣나모노래(김선기), 怨樹歌(양재연),

4.작가명(청우;諡號적 성격). 원왕생가(광덕의 처, 김동욱)

5.해석:

󰋬문학적(양주동), 어학적(김완진 1차 정리), 신화적(기호체계), 민속학적(辟邪進慶;처용가)

6.記述物의 처리: 작품에 포함 또는 분리.

󰋬신화적 해석, 歷史(寫實)적 해석.


향가연구서 목록

小倉進平:1929,鄕歌 및 吏讀의 硏究.

梁柱東:1942,古歌硏究/1965,增訂 古歌硏究,一潮閣.

池憲英:1948,鄕歌麗謠新釋

李鐸:1958,鄕歌新解讀,國語學論攷.

金善琪:1967-1975,향가의 새로운 풀이,現代文學 145호-250호 16회 分載.

金鍾雨:1971,鄕歌文學論,석학문화사/선명문화사.

鄭然粲:1972,鄕歌解讀의 一斑,鄕歌의 語文學的 硏究(김열규 이재선 공저)

徐在克:1975,新羅 鄕歌의 語彙硏究,계명대출판부.

金俊榮:1979,鄕歌文學,형설출판사.

崔 喆:1979,新羅歌謠硏究,개문사.

金完鎭:1980,鄕歌解讀法硏究,서울대출판부.

林基中:1981,新羅歌謠와 記述物의 硏究,이우출판사.

金雲學:1981,佛敎文學의 理論,일지사.

朴魯埻:1982,新羅歌謠의 硏究,열화당.

兪昌均:1994,鄕歌批解,螢雪出版社.

姜吉云:1995,鄕歌新解讀硏究,學文社.


연구서의 특징

梁柱東,增訂 古歌硏究,一潮閣,1965/1968.[문학적 관점]

兪昌均,鄕歌批解,螢雪出版社,1994.[어학적 관점]

金善琪,1967-1975,향가의 새로운 풀이,現代文學 145호-250호 16회 分載.[몽고어 참조]

姜吉云,鄕歌新解讀硏究,學文社,1995.[터어키어 참조] p.19.‘攴(복:치다):단어나 어절의 분계표, 支(지:가르다):이음표.<삼국사기>지리지에서는 ‘支’가 ’只‘와 함께 ’기‘나 ’지‘로 읽힘.

林基中,우리의 옛노래,현암사,1993.

󰋬[林]은 임기중 역으로 양주동 해독을 보완한 것임.


歌名 제시 여부 *( ) 표시는 연구자들이 부여한 것.

1.(慕竹旨郞歌);孝昭王代 竹旨郞 39.2-76:初得烏谷 慕郞而作歌曰,

2.老人獻花歌;水路夫人 41.2-78:老人獻花歌曰,

3.安民歌;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 43.2-79:安民歌曰,

4.讚耆婆郞歌;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 43.2-79:讚耆婆郞歌曰, (본문)讚耆婆郞詞腦歌

5.(處容歌);處容郞 望海寺 50.2-88:乃唱歌 作舞而退 歌曰,

6.(薯童謠);武王 57.2-98:乃作謠 誘群童而唱之云,

7.(禱千手觀音歌);芬皇寺 千手大悲 盲兒得眼 84.4-158:令兒作歌 禱之.遂得明 其詞曰,

8.風謠;志使錫 99.5-187:風謠云,

9.(願往生歌);廣德 嚴莊 116.7-219:德嘗有歌云,

10.兜率歌;月明寺 兜率歌 119.7-222:明乃作兜率歌賦之 其詞曰,

11.(祭亡妹歌);月明寺 兜率歌 119.7-222:作鄕歌祭之...歌曰,

12.彗星歌;融天師 彗星歌 眞平王代 122.7-228:時天師作歌 歌之...歌曰,

13.(怨歌);信忠掛冠 127.8-232:怨而作歌 帖於栢樹...乃召之 賜爵祿 栢樹乃蘇 歌曰,

14.(遇賊歌);永才遇賊 129.8-235:乃命□□□作歌 其辭曰,

'고전문학 > 향가 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현행원품 도입부  (0) 2008.08.29
균여전에 수록된 향가  (0) 2008.08.29
바다에서 허황후 오시다/ 가락국기  (0) 2008.08.28
금빛 아기 일어나시다  (0) 2008.08.28
마린보이 탈해왕 신화  (0) 2008.08.28

† 김해 망월석탑

 

 보주태후허씨릉

가락국기

駕洛國記

[은자주]가락국은 나라 이름부터 문화 전체가 한반도의 것이 아닌 해양문화다. 수로왕은 이름뿐이고 허황후의 나라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둣하다, 가락국에 대한 사전지식을 다시 싣는다.

가락국기 해설

가락, 가야의 뜻;물고기. 가야국의 文章;雙魚紋(인도 아요디아국의 문장)

아요디아는 인도 중북부에 위치함. 630년경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는 주위가 5천여리라 함.힌두신 비쉬누를 모신 힌두교의 성지이고 석가의 설법지이기도 함.

1)神魚像;태양족 마누의 수호신.대홍수시대에 마누에게 배를 만들게 하고 배를 인도하여 산에 정착시킨 전설상의 동물.

2)허황후가 바지를 벗어 산신에게 폐백 드린것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인도 아유타국의 풍습.

3)김수로왕이 축조한 명월사(흥국사)탑신의 일부 화강암에는 불상을 양쪽에서 수호하는 두 마리의 뱀을 조각함. 인도에는 뱀 두 마리가 불상을 수호하는 조각도 있음.

4)파사석탑에 쓰인 석재는 인도의 돌로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싣고 온 것으로 추정됨.

<본초강목> 파사석에 닭의 피를 섞으면 물로 변하고 태우면 유황냄새가 남.

5)신어산의 은하사 본존불의 기단부와 천정에 신어 배치.

*음력 4~6월의 계절풍으로 미뤄 볼 때 허황후는 5월경에 인도를 출발함.

*허황후의 오빠인 장유화상은 7왕자 데리고 지리산 칠불암으로 들어가 성불함.

*[金秉模]

김해 龜旨峰 기슭에는 "駕洛國首露王妃,普州太后許氏陵"[아래 사진에 있음]이란 비석 하나가 서 있다.허황옥의 가계가 출발한 곳은 인도 아유타국이었으나 그들 집단은 중국 四川省 安岳의 옛 지명인 普州로 망명 이주하였다.蜀地인 사천성에서도 雙魚를 모시는 신앙집단이 살았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브라만(司祭) 출신 여인인 허황옥은 이 곳에서 출생하여 성장하던 중 A.D.47년에 일어난 반란을 계기로 그 곳을 떠나 이듬해 가락국에 도착하였다. 대부분의 許巫師는 武昌지방에 새로 신전을 짓고 살았다. 후한 때 촉지방에서 일어난 두 번째 반란은 101년에 있었는데 이 때의 주동자는 許聖이었다.47년의 반란도 허씨가 이끄는 소수민족이었을 것이다. 許는 姓이 아니라 世習巫師를 뜻하는 職種을 나타낸 말로 許聖이란 사람은 巫師 곧 신앙지도자일 것이다.

(조선일보1991.5.14. 수로왕비의 비밀참조)


(文廟朝大康年間, 金官知州事文人所撰也, 今略而載之.)

(문종조 대강년간 금관지주사 문인이 지은 것이다. 이제 간락히 하여 싣는다)

開闢之後, 此地未有邦國之號, 亦無君臣之稱.

천지가 개벽한 후로 이곳에는 아직 나라 이름도 없었고, 또한 군신의 칭호도 없었다.

越有我刀干‧汝刀干‧彼刀干‧五刀干‧留水干‧留天干‧五天干‧神鬼干等九干者,

이 때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 등 아홉 간이 있었다.

是酋長, 領總百姓, 凡一百戶, 七萬五千人.

이들 추장들이 백성들을 통솔했는데 모두 1백호로 7만5천 명이었다.

多以自都山野, 鑿井而飮, 耕田而食.

이 사람들은 거의 산과 들에 모여서 살았으며,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먹었다.

屬後漢世祖光武帝建武十八年壬寅三月禊浴之日,

후한의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A.C.42)3월 계욕일(액땜을 하는 날로 목욕을 하고, 물가에서 술을마심)에

所居北龜旨(是峯巒之稱, 若十朋伏之狀, 故云也)有殊常聲氣呼喚,

그들이 살고 있는 북쪽 구지(龜旨-산봉우리의 이름)에서 이상한 기운이 일며,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衆庶二三百人集會於此, 有如人音, 隱其形而發其音曰:

마을 사람들 2,3백명이 그 곳에 모였는데 사람 소리와 같기도 하지만 그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소리만 들려왔다.

「此有人否?」

"이 곳에 누가 있는가?'

九干等云: 「吾徒在!」

구간(九干)들이 대답했다.

"우리들이 여기 있습니다."

又曰: 「吾所在爲何?」 "내가 있는 이 곳이 어디인가?"

對云「龜旨」也. "구지입니다."

又曰: 「皇天所以命我者, 御是處, 惟新家邦, 爲君后. 爲玆故降矣.

이에 또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명령하기를 이 곳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므로, 이를 위하여 여기에 내려왔다.

你等須掘峯頂撮土, 歌之云

너희들은 산 꼭대기의 흙을 파서 제단을 쌓고 노래하라.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 밀어라.

若不現也,   만약 내밀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워 먹겠다.

 

以之蹈舞, 則是迎大王‧歡喜踴躍之也.」

노래를 부르고 뛰며 춤을 추면 곧 너희들은 대왕을 맞이하여 기뻐서 춤추게 될 것이다."

九干等如其言, 咸忻而歌舞.

구간들은 이 말에 모두 기뻐서 노래하고 춤추었다.

未幾, 仰而觀之, 唯紫繩自天垂而着地,

얼마후 하늘을 우러러 보니 한 줄기 자주색 빛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져 땅에 닿는 것이 었다.

尋繩之下, 乃見紅幅裹金合子.

줄끝을 찾아가 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이 싸여 있었다.

開而視之, 有黃金卵六圓如日者.

열어 보니 황금빛 알 여섯 개가 있었는데 둥글기가 해와 같은 것이었다.

衆人悉皆驚喜, 俱伸百拜,

여러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기뻐하여 다 함께 수없이 절을 했다.

尋還裹著, 抱持而歸我刀家, 寘榻上, 其衆各散.

조금 있다가 다시 싸서 안고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와 걸상 위에 놓아 두고 무리는 제각기 흩어졌다.

過浹辰, 翌日平明, 衆庶復相聚集開合,

하루가 지나가고 그 이튿날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모셔 그 합을 열자,

而六卵化爲童子, 容貌甚偉. 仍坐於床,

여섯개의 알은 화하여 아기가 되어 있었는데 용모가 매우 깨끗했으며 이내 평상 위에 앉았다.

衆庶拜賀, 盡恭敬止.

사람들은 모두 절하고 하례하면서 극진히 공경했다.

日日而大 踰十餘晨昏, 身長九尺則殷之天乙,

나날이 자라더니 10여일을 지나자 키가 9척으로 은나라 천을(天乙-은나라 탕왕)과 같고,

顔如龍焉則漢之高祖, 眉之八彩則有唐之高,

얼굴이 용안임은 한나라 고조와 같았고, 눈썹의 여덟 가지 빛깔은 당 고조와 같았고,

眼之重瞳則有虞之舜,

눈동자가 겹으로 된 것은 우나라 순임금과 같았다.

其於月望日卽位也. 始現故諱首露, 或云首陵(首陵是崩後諡也),

그 달 보름에 왕위에 올랐는데 세상에 처음 나타났다고 하여 이름을 수로라 하거나 혹은 수릉이라 했다.

國稱大駕洛, 又稱伽耶國, 卽六伽耶之一也.

나라를 대가락이라 하고, 또 가야국이라고도 했으니 곧 여섯 가야 중의 하나이다.

餘五人各歸爲五伽耶主.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기 가서 다섯 가야국의 임금이 되었다.

東以黃山江, 西南以滄海, 西北以地理山, 東北以伽耶山, 南而爲國尾.

가야는 동쪽은 황산강, 서남쪽은 창해, 서북쪽은 지리산, 동북쪽은 가야산이며 남쪽은 나라의 끝이었다.

俾創假宮而人御, 但要質儉, 茅茨不剪, 土階三尺.

그는 임시로 대궐을 세우게 하고 거처하였는데, 질박하고 검소할 따름이니 집에 이은 이엉을 자르지 않았으며, 흙으로 만든 계단은 겨우 3척이었다.

二年癸卯春正月, 王若曰:

즉위한 2년 계묘(A.B. 43)정월에 왕이 말하기를,

「朕欲定置京都.」

"내가 도읍을 정하려 한다."

仍駕幸假宮之南新畓坪(是古來閑田, 新耕作故云也. 畓乃俗文也), 四望山嶽, 顧左右曰:

이내 임시 궁궐이 남쪽 신답평에 나가서 사방의 산악을 두루 바라보다가 신하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此地狹小如蓼葉, 然而秀異, 可爲十六羅漢住地.

"이 땅은 여뀌잎처럼 협소하기는 하지만 수려하고 기이하여 가히 16나한이 살만한 곳이다.

何況, 自一成三, 自三成七, 七聖住地,

더구나 1에서 3을 이루고 3에서 7을 이루므로 七聖(성이란 진리를 깨친 사람이라는 뜻)이 살 곳으로도 가장 적합하다.

固合于是. 托土開疆, 終然允臧歟.」

여기에 근거하여 강토를 개척하면 마침내 좋은 곳이 되겠구나."

築置一千五百步周廻羅城‧宮禁殿宇及諸有司屋宇‧虎庫倉廩之地. 事訖還宮,

이에 1,500보 둘레의 외성과 궁궐과 전당 및 여러 관청의 청사와 무기고, 창고를 지을 터를 마련한 뒤에 궁궐로 돌아왔다.

徧徵國內丁壯‧人夫‧工匠, 以其月二十日資始金陽, 曁三月十日役畢.

널리 나라 안의 장정과 인부 공장들을 불러모아서 그 달 20일에 성곽을 쌓기 시작하여 3월 10일에 공사를 끝냈다.

其宮闕屋舍, 俟農隙而作之, 經始于厥年十月, 逮甲辰二月而成,

궁궐과 屋舍만은 농한기를 이용하여 지었으므로 그해 10월에 비로소 시작하여 갑진(44)2월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다.

涓吉辰御新宮, 理萬機而懃庶務.

좋은 날을 가려 새 궁으로 옮겨가서 모든 정사를 다스리며 서무에도 부지런하였다.


忽有琓夏國含達王之夫人妊娠, 彌月生卵, 化爲人, 名曰脫解.

홀연히 완하국 함달왕의 부인이 아기를 배어 달이 차서 알을 낳았는데 그 알이 변하여 사람이 되었다. 이름을 탈해라 했다.

從海而來, 身長三尺, 頭圍一尺.

탈해가 바다고부터 가락국에 왔는데 키는 3척이요, 머리 둘레는 1척이나 되었다.

悅焉詣闕, 語於王云:

그는 혼연히 대궐로 나아가 왕에게 말했다.

「我欲奪王之位, 故來耳.」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으러 왔소."

王答曰:

이에 왕이 대답했다.

「天命我俾卽于位, 將令安中國而綏下民, 不敢違天之命以與之位,

"하늘이 나를 명하여 왕위에 오르게 함은 장차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 함이다.

又不敢以吾國吾民, 付囑於汝.」

나는 감히 천명을 어기고 왕위를 너에게 줄 수 없으며, 또한 이 백성들을 너에게 맡길 수도 없다."

解云: 「若爾可爭其術.」

탈해: "그렇다면 술법으로 겨뤄보자."

王曰「可」也.

왕: “좋소.”

俄頃之間, 解化爲鷹, 王化爲鷲,

잠깐 사이에 탈해가 변해서 매가 되자, 왕은 변하여 독수리가 되었다.

又解化爲雀, 王化爲鸇.

탈해가 또 변해서 참새가 되니 왕은 변해서 새매가 되었다.

于此際也, 寸陰未移,

그 변하는 시간은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解還本身, 王亦復然.

탈해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왕도 또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解乃伏膺曰:

이에 탈해가 엎드려 항복하며 말하기를,

「僕也適於角術之場, 鷹之鷲, 雀之於鸇, 獲免焉,

"술법을 다투는 마당에 있어서 매가 독수리에게서, 참새가 새매에게서 죽음을 면하였으니,

此盖聖人惡殺之仁而然乎!

이것은 대저 성인께서 죽이기를 싫어하는 인덕을 지니셔서 그러하심입니다.

僕之與王, 爭位良難.」

내가 왕과 왕위를 다투기는 실로 어렵사옵니다."

便拜辭而出, 到麟郊外渡頭, 將中朝來泊之水道而行,

탈해는 곧 왕께 하직하고 교외에 나가 가까운 나루터에 이르러 중국 배가 와서 정박하는 수로로 취해서 떠났다.

王竊恐滯留謀亂, 急發舟師五百艘而追之,

왕은 그가 머물러 있으면서 반란을 일으킬 것을 염려하여 급히 수군을 실은 배 5백척을 보내어 쫓게 했다.

解奔入雞林地界, 舟師盡還.

탈해가 계림의 영토 안으로 달아나므로 수군은 이내 돌아왔다.

事記所載多異與新羅.

그러나 여기에 적힌 기사는 신라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屬建武二十四年戊申七月二十七日, 九干等朝謁之次, 獻言曰:

건무 24년 무신(48)7월27일에 구간등이 왕을 조알할 때 말씀을 올렸다.

「大王降靈已來, 好仇未得.

"대왕께서 강람하신 후로 아직 좋은 배필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請臣等所有處女絶好者, 選入宮闈, 俾爲伉儷.」

신들이 기른 처녀 중에서 가장 좋은 사람을 궁중에 뽑아 왕비로 삼게 하시기 바랍니다."

王曰: 「朕降于玆天命也. 配朕而作后,

왕:"내가 이곳에 내려옴은 하늘의 명령이다. 나에게 짝을 지어 왕후로 삼게함도

亦天之命, 卿等無慮.」

역시 하늘의 명령이 있을 것이니 경들은 염려하지 말라."

遂命留天干押輕舟, 持駿馬, 到望山島立待;

왕은 드디어 유천간에게 명하여 가벼운 배와 빠른 말을 주어 망산도에 가서 기다리게 하고,

申命神鬼干就乘岾(望山島, 京南島嶼也. 乘岾, 輦下國也),

신귀간에게 명하여 승점(망산도는 서울 남쪽의 섬이고, 승점은 경기(京畿)안에 있는 나라)에 가도록 했다.


忽自海之西南隅, 掛緋帆, 張茜旗, 而指乎北.

문득 바다 서남쪽에서 붉은 빛의 돛을 단 배가 붉은 기를 휘날리며 북쪽을 바라보며 오고 있었다.

留天等先擧火於島上, 則競渡下陸, 爭奔而來.

유천간 등이 먼저 망산도 위에서 횃불을 올리니, 사람들이 다투어 육지로 내려와 다투어 뛰어왔다.

神鬼望之, 走闕奏之. 上聞欣欣,

승점에 있던 신귀간이 이를 바라보고 대궐로 달려와 왕께 아뢰자 왕은 듣고 매우 기뻐했다.

尋遣九干等, 整蘭橈, 揚桂楫而迎之, 旋欲陪入內, 王后乃曰:

아내 구간 등을 보내어 난초나무로 만든 키를 바로잡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이하여 곧 모시고 대궐로 들어가려 하자 왕후가 말했다.

「我與(爾)等素昧平生, 焉敢輕忽相隨而去!」

"나는 너희들과 본디 모르는 터인데 어찌 감히 경솔하게 따라가라 수가 있겠느냐?"

留天等返達后之語,

유천간 등이 돌아가서 왕후의 말을 전달했다.

王然之, 率有司動蹕, 從闕下西南六十步許地, 山邊設幔殿祗候.

왕은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유사를 데리고 행차하여 대궐 아래에서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산 기슭에 장막을 쳐서 임시 궁전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王后於山外別浦津頭, 維舟登陸, 憩於高嶠,

왕후는 산 밖의 별포 나루터에 배를 대고 육지로 올라와 높은 언덕에서 쉬었다.

解所著綾袴爲贄, 遺于山靈也.

그리고 자기가 입었던 비단 바지는 벗어 산신에게 폐백으로 바쳤다.

其地侍從媵臣二員, 名曰申輔‧趙匡,

또 시종해 온 잉신(시집갈때 따라가는 시신) 두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신보, 조광이었다.

其妻二人, 號慕貞‧慕良. 或臧獲幷計二十餘口,

그들의 아내는 모정,모량이라고 했으며, 또 노비까지 있었는데 모두 합하여 20여명이엇다.

所齎錦繡綾羅‧衣裳疋段‧金銀珠玉‧瓊玖服玩器, 不可勝記.

가지고 온 금수,능라의 옷과 필단,금은주옥과 구슬로 만든 패물 등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王后漸近行在, 上出迎之, 同入帷宮,

왕후가 이제 왕이 계신 곳에 가까이 이르니 왕은 친히 나아가 맞아 함께 장막궁전으로 들어갔다.

媵臣已下衆人, 就階下而見之卽退.

잉신 이하 모든 사람들은 뜰아래에서 뵙고 즉시 물러갔다.

上命有司, 引媵臣夫妻曰:

왕은 유사에게 명하여 잉신 내외를 안내하라고 말했다.

「人各以一房安置, 已下臧獲各一房五六人安置.」

"사람마다 방 하나씩을 주어 편안히 머무르게 하고 그 이하 노비들은 한 방에 5, 6명씩 있게 하라."

給之以蘭液蕙醑, 寢之以文茵彩薦, 至於衣服疋段寶貨之類, 多以軍夫遴集而護之.

그리고 그들에게 난초로 만든 음료와 혜초로 만든 술을 주고, 무늬와 채색이 있는 자리에서 자도록 했으며, 심지어 옷과 비단과 보화까지 주고는 많은 군인들을 모아 그들을 보호하게 했다.

於是, 王與后共在御國寢, 從容語王曰:

이에 왕이 앙후와 함께 침전에 들자 왕후가 조용히 말했다.

「妾是阿踰陁國公主也. 姓許名黃玉, 年二八矣.

"저는 아유타국(중인도에 있던 고대의 왕국)의 공주인데 성은 허씨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

在本國時, 今年五月中, 父王與皇后顧妾而語曰:

본국에 있을 때 지난 5월에 부왕과 모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爺孃一昨夢中, 同見皇天上帝, 謂曰:

"부모가 어젯밤 꿈에 하늘의 상제를 뵈었는데, 상제께서

「駕洛國『元君首露者, 天所降而俾御大寶, 乃神乃聖, 惟其人乎!

가락국왕 수로는 하늘이 내려 보내어 왕위에 앉게 했으니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분은 오직 그 사람뿐이로다.

且以新蒞家邦, 未定匹偶, 卿等湏遣公主而配之.」

또 새로이 나라를 다스림에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 배필이 되게 하라.』

言訖升天.

말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形開之後, 上帝之言, 其猶在耳, 你於此而忽辭親, 向彼乎往矣.󰡕

꿈을 깨었으나 상제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니 너는 이 자리에서 곧 우리와 작별하고 그곳으로 떠나라 하셨습니다.

妾也浮海遐尋於蒸棗, 移天夐赴於蟠桃, 螓首敢叨, 龍顔是近.」

그래서 저는 배를 타고 멀리 증조(蒸棗-신선이 사는 곳에 열리는 좋은 과일)를 찾고, 하늘로 가서 반도(삼천년에 한번씩 열리는 복숭아)를 찾아 이제 모양을 가다듬고 감히 용안을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王答曰: 「朕生而頗聖, 先知公主自遠而屆, 下臣有納妃之請, 不敢從焉.

왕:"나는 태어나서부터 신성하여 공주가 멀리서 올 것을 이미 알았으므로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는 청을 따르지 않았소.

今也淑質自臻, 眇躬多幸.」

이제 현숙한 공주께서 이렇게 스스로 오셨으니 이 사람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오."

遂以合歡, 兩過淸宵, 一經白晝.

드디어 혼인하여 두 밤을 지내고 하루 낮을 지냈다.

於是, 遂還來船, 篙工楫師共十有五人, 各賜粮粳米十碩‧布三十疋, 令歸本國.

이에 그들이 타고 왔던 배를 돌려 보냈는데 뱃사공이 모두 15명이었다. 이들에게 각각 쌀 10석씩과 베 30필씩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八月一日廻鑾, 與后同輦,

8월 1일에 왕은 왕후와 한 수레를 타고 대궐로 돌아왔다.

媵臣夫妻齊鑣並駕, 其漢肆雜物, 感使乘載, 徐徐入闕, 時銅臺欲午.

잉신 내외도 역시 나란히 수레를 탔으며, 중국에서 나는 갖가지 물품도 모두 수레에 싣고 천천히 대궐로 들어오니 그때 종루에서 정오를 알리려했다.

王后爰處中宮, 勑賜媵臣夫妻, 私屬空閑二室分入;

왕후는 궁중에 거처하게 하고, 잉신 내외와 그들의 노비들에게는 비어있는 두 집에 나누어 살게 하고,

餘外從者以賓舘一坐二十餘間, 酌定人數, 區別安置.

나머지 따라온 자들도 20여칸 되는 빈관 한채를 주어 사람 수를 보아 적당히 나누어 편안히 있게 하였다.

日給豊羡, 其所載珍物, 藏於內庫, 以爲王后四時之費.

그리고 날마다 물품을 풍부하게 주었으며, 그들이 싣고 온 진귀한 물건들은 내고(內庫)에 두어서 왕후의 사시 비용으로 쓰도록 했다.

一日上語臣下曰.

하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九干等俱爲庶僚之長, 其位與名, 皆是宵人野夫之號, 頓非簪履職位之稱,

"구간들은 모든 벼슬의 으뜸인데 그 지위와 명칭이 다 소인이나 농부의 칭호이니 이는 높은 벼슬의 호칭이 못된다.

儻化外傳聞, 必有嗤笑之耻.」

혹 외국 사람들이 듣게 되면 필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遂改我刀爲我躬‧汝刀爲汝諧‧彼刀爲彼藏‧五方爲五常,

드디어 아도를 고쳐서 아궁이라 하고,여도를 여해,피도를 피장,오도를 오상이라 했으며,

留水‧留天之名, 不動上字, 改下字留功‧留德, (神)(天)改爲神道, 五天改爲五能,

유수와 유천은 윗글자는 그대로 두고 아래 글자만 고쳐 유공,유덕이라 하고 신천을 고쳐서 신도, 오천을 고쳐서 오능이라 했다.

神鬼之音不易, 改訓爲臣貴.

신귀(神鬼)는 음을 바꾸지 않고 훈만 고쳐 신귀라 하였다.

取雞林職儀, 置角干‧阿叱干‧級干之秩, 其下官僚, 以周判漢儀而分定之,

계림의 직제를 취해서 각간 아질간 급간의 품계를 두었고, 그이하의 관료는 주나라 규례와 한나라 제도로써 나누어 정했다.

斯所以「革古鼎, 新設官分職」之道歟!

이것은 옛것을 고치고 새것을 취하여 관직을 나누어 설치하는 방법이로다.

於是乎, 理國齊家, 愛民如子, 其敎不肅而威, 其政不嚴而理.

이에 비로소 나라와 집안을 잘 다스리고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니 그 교화는 엄숙하지 않아도 위엄이 서고, 그 정치는 엄하지 않아도 잘 다스려졌다.

況與王后而居也, 比如天之有地‧日之有月‧陽之有陰,

더구나 왕이 왕후와 더불어 사는 것을 비유하면 마치 하늘에 대하여 땅이 있고, 해에 대하여 달이 있으며, 陽에 대하여 陰이 있는 것과 같도다.

其功也塗山翼夏, 唐煖興嬌.

그 내조의 공은 도산(도산의 딸이 우왕에게 시집감)씨가 하나라 우왕을 돕고, 당원(요임금의 딸 아황, 여영으로 순임금에게 시집감)이 순임금을 도와 교씨를 일으킨 것과 같았다.

頻年有得熊羆之兆, 誕生太子居登公.

그 해에 왕후는 웅비지조(곰의 꿈을 꾸면 사내아이를 낳는다는 속설)의 꿈을 꾸고 태자 거등공을 낳았다.

靈帝中平六年己巳三月一日后崩, 壽一百五十七.

영제 중평 6년 기사(189) 3월 1일 왕후가 세상을 마치니, 나이는 157세였다.

國人如嘆坤崩, 葬於龜旨東北塢.

나라 사람들은 마치 땅이 무너진 듯 슬퍼하였으며, 구지봉 동북쪽 언덕에 장사했다.

遂欲忘子愛下民之惠, 因號初來下纜渡頭村曰主浦村,

그리고 앞으로 왕후가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던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왕후가 처음 배에서 내린 도두촌을 주포촌이라 하고,

解綾袴高岡曰綾峴, 茜旗行入海涯曰旗出邊.

비단바지를 벗은 언덕을 능현이라 했으며, 붉은 기를 단 배가 들어온 바닷가를 기출변이라 했다.

媵臣泉府卿申輔‧宗正監趙匡等到國三十年後, 各産二女焉, 夫與婦踰一二年而皆𢱍信也.

잉신 천부경 신보와 종점감 조광 등은 가락국에 온지 30년만에 각각 두 딸을 낳았는데 그 후 그들 부부는 12년을지나 세상을 떠났다.

其餘臧獲之輩, 自來七八年間, 未有玆子生, 唯抱懷土之悲, 皆首丘而沒. 所舍賓館, 圓其無人,

그밖에 노비들은 가락국에 온 지 7,8년이 지났으나 자식을 낳지 못했으며, 오로지 고향을 그리워하는 슬픔을 품고 세상을 떠나갔으니 그들이 거처하던 빈관은 텅비고 아무도 없었다.

元君乃每歌鰥枕, 悲嘆良多. 隔二五歲, 以獻帝立安四年己卯三月二十三日而殂落, 壽一百五十八歲矣.

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왕은 매양 외로운 베개를 의지하며 몹시도 슬퍼하다가 25년 후인 헌제 입안4년 기묘(199)3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나이는 158세였다.

國中之人若亡天只, 悲慟甚於后崩之日.

나라 사람들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함이 왕후가 돌아가시던 때보다 더했다.

遂於闕之艮方平地, 造立殯宮, 高一丈, 周三百步而葬之, 號首陵王廟也.

대궐의 동북쪽 평지에 빈궁을 세웠는데 높이가 한 길이며 둘레가 300보로서 그곳에 장사지내고 수릉왕묘라 했다.

銘曰:

元胎肇啓, 천지가 처음 열리니,

利眼初明. 비로소 日月이 밝았네,

人倫雖誕, 인륜은 비록 생겼다 하나

君位未成. 임금의 지위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네

中朝累世, 이미 중국은 여러 대를 거듭했지만,

東國分京. 동국에서는 아직도 서울이 갈려 있었네

雞林先定, 계림이 먼저 정해졌고,

駕洛後營. 가락국이 후에 경영되었도다.

自無銓宰, 스스로 맡아서 다스릴 자 없다면,

誰察民氓. 백성을 보살필 이 누구인가?

遂玆玄造, 드디어 상제께서

顧彼蒼生. 저 창생들을 돌보았도다.

用授符命 부명[天命]을 주어,

特遣精靈 특별히 정령을 보내셨다니.

山中降卵 산중에 알을 내려보내고,

霧裏藏刑 안개 속에 그 모습 감추었다네.

內猶漠漠, 안은 오히려 아득하고,

外亦冥冥 바깥도 역시 캄캄하네.

望如無象 바라보매 형상은 나타나지 않으나,

聞乃有聲. 귀 기울이면 소리가 있으니

群歌而奏, 무리들은 노래 불러 아뢰고,

衆舞而呈. 춤을 추어 바치었네

七日而後, 7일이 지나매,

一時所寧. 일시에 조용해졌네.

風吹雲卷, 바람이 불어 구름이 걷히고,

空碧天靑.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下六圓卵, 여섯 개의 둥근 알이 내려오매,

垂一紫纓. 한 줄 자줏빛 끈이 드리웠네.

殊方異土, 수려한 땅에

比屋連甍. 즐비한 집들이 지붕을 잇달았네.

觀者如堵, 구경꾼들 담처럼 둘러서고,

覩者如羹. 보는 이들 국처럼 들끓었네.

五歸各邑, 다섯 분은 각 읍으로 흩어지고,

一在玆城. 한 분만 이 성에 남아 있었네.

同時同迹, 한 때에 나와 닮은 모습들,

如弟如兄. 아우와 형이매 한가지로다.

實天生德, 실로 하늘이 유덕한 분 낳아,

爲世作程. 세상을 위해 질서를 만들었도다.

寶位初陟, 처음 왕위에 오르니,

寰區欲淸. 세상은 이내 맑아지려 하였네.

華構徵古, 궁전 구조는 옛 법을 따랐고,

土階尙平. 土階는 오히려 평평했네

萬機始勉, 비로소 정사에 힘쓰고,

庶政施行. 여러 가지 일을 보살폈으니,

無偏無儻,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으매,

惟一惟精. 오로지 한결같았고 오로지 세밀했네.

行者讓路, 길 가는 이들은 길을 양보하고,

農者讓耕. 농부는 농토를 양보하니

四方奠枕, 사방은 모두 안정을 찾고,

萬姓迓衡. 만백성은 물을 맡은 관리를 맞이했도다.

俄晞薤露, 잠깐 사이 정구지의 이슬이 마르듯하여.

靡保椿齡. 문득 大椿(8천세)의 수명을 보전치 못하였네.

乾坤變氣, 천지의 기운이 변하고

朝野痛情. 조정과 민간의 사람들 모두 슬퍼하였네.

金相其躅, 금속 악기로 그의 발자취 돕고,

玉振其聲. 옥으로 그의 명성 떨쳤네.

來苗不絶, 후손이 끊어지지 않으매,

薦藻惟馨. 영묘(靈廟)의 제전은 향기로왔네.

日月雖逝, 비록 세월은 흘러갔지만,

規儀不傾. 그 규범은 기울지 않았네.

[구지봉 언덕배기의 허황후릉과 파사석탑비,

맨아래 두 장은 김해 시가지 평지에 모셔진 김수로왕릉]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