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굿 3>

-김초혜


나는 너에게

무엇이든 되고 싶다

누가 알면 큰일나는

겹도록 감추어 둔

비밀이고 싶다


종일을 숨어

그대 생각해도

마음 한금 건드리지 못하고

가난하고 약해지는


뚝 뚝 눈물이 되는 버릇

남은 살 몇 점

더 태워

삐인 발목 절룩이며

울고 섰는데

거울 앞에 서지 않는

너의

피곤한 미혹


그대

살을 우비는 냉정함의

절대한 그리움을

주저 앉히진 못할지라도

가거든 아니오기를

[원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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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원추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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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기형도

1


과거는 끝났다.

송곳으로 서류를 뚫으며 그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는 金을 본다.

자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수백 개 명함들을 읽으며

일일이 얼굴들을 기억할 순 없지.

또한 우리는 미혼이니까, 오늘도

분명한 일은 없었으니까

아직은 쓸모 있겠지. 몇 장 얄팍한 믿음으로

남아 있는 하루치의 욕망을 綴(철)하면서.


2


그들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한두 시간 차이났을 뿐. 내가 아는 것을

그들이 믿지 않을 뿐.

나에게도 중대한 사건은 아니었어.

큐대에 흰 가루를 바르면서

김은 정확하게 시간의 각을 재어본다.

각자의 소유만큼씩 가늠해보는 가치의 면적.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지.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좀 복잡한 타산이니까.

똑바로 말한 적이 자네는

한번도 없어.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와이셔츠 단추 한 개를 풀면서

날 선 칼라가 힘없이 늘어질 때까지

어쨌든 우리는 살아온 것이니.

오늘의 뉴스는 이미 상식으로 챙겨들고.


3


믿어주게.

나도 몇 개의 동작을 배웠지.

변화 중에서도 튕겨져 나가지 않으려고

고무풀처럼 욕망을 단순화하고

그렇게 하나의 과정이 되어갔었네. 그는

층계 밑에 서서 가스라이터 불빛 끝에 손목을 매달고

무엇인가 찾는 김을 본다. 무엇을 잃어버렸나.

잃어버린 것은 찾지 않네. 그럴 만큼 시간은 여유가 없어.

잃어 버려야 할 것들을 점검중이지. 그럴 만큼의 시간만 있으니까.

아무리 조그만 나프탈렌처럼 조직의 서랍 속에 숨어 있어도

언제나 나는 자네를 믿어왔네. 믿어주게.

로터리를 회전하면서 그것도 길의 중간에서

날씨야 어떻든 상관없으니까.


4


사람들은 조금씩 빨라진다.

속도가 두려움을 만날 때까지. 그러나

의사의 기술처럼 간단히 필라멘트는

가열되고 기계적으로 느슨히

되살아나는 습관에 취할 때까지 적어도

복잡한 반성 따위는 알코올 탓이거니 아마

시간이 승부의 문제였던 때는 지났겠지.

신중한 수술이 아니어도 흰색 가운을 입듯이

누구나 평범한 秒針(초침)으로 손을 닦는 나이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여주게. 휴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주 사무적인 착상이군. 여기와 지금이 별개이듯이

내가 집착한 것은 단순한 것이었어. 그래서

더욱 붙어 있어야 함을 알아두게. 일이 끝나면

굳게 뚜껑을 닫는 만년필처럼.


5


소리나는 것만이 아름다울 테지.

소리만이 새로운 것이니까 쉽게 죽으니까.

소리만이 변화를 신고 다니니까.

그러나 무엇을 예약할 것인가. 방이 모두

차 있거나 모두 비어 있는데. 무관심만이

우리를 수게 한다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는

없어진다. 과거는 끝났다. 즐거움도

버릇 같은 것. 넥타이를 고쳐매면서 거울 속의 키를

확인하고 안심하듯이 우리는 미혼이니까.

속성으로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휘파람불며

각자의 가치는 포켓 속에서 짤랑거리며

똑바로 말한 적이 자네는

한번도 없어. 제발

그만두게. 자네를 위해서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토해냈네. 또한

무엇이든 분명한 일이 없었고

아직도 오늘은 조금 남아 있으니까. 그럼.

굿바이.


사진 이동이 예술입니다

http://blog.paran.com/rudnfql12/26610946

[백합 & 원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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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서정윤


사랑한다는 말은

기다린다는 말인줄 알았다.

가장 절망적일때 떠오른 얼굴

그 기다림으로 하여

살아갈 용기를 얻었었다.

기다릴수 없으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줄 알았다.

아무리 멀리 떠나있어도

마음은 늘 그대 곁에 있는데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살았다.

그대도 세월을 살아가는 한 방황자인걸

내 슬품속에서 알았다.

스스로 와 부딪치는 삶의 무게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한 줄도 모른채

나는 그대를 무지개로 그려 두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하고

떠나갈 수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

나로 인한 그대 고통들이 아프다.

더 이상 깨어질 아무것도 없을 때 ,

나는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돌아설 수 있었다

사진 이동이 예술입니다

http://blog.paran.com/rudnfql12/26610946

[원추리동산-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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