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28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품 ④

“이 때에 6사는 질투하는 마음으로 바사닉왕에게 몰려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왕의 나라는 깨끗하고 고요하여 출가한 이가 있을 만한 곳이옵기에 우리들이 모여왔나이다. 대왕께서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의 근심을 없게 하는데, 사문 구담은 나이도 어리고 공부한 날짜도 얼마 안 되며 도술도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 먼저부터 있는 장로 대덕들에게 왕족이라 자세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나이다. 만일 왕족이라면 이치가 백성을 다스려야 할 것이요, 출가하였으면 장로들께 공경하여야 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잘 들으십시오. 사문 구담은 진실로 왕족 중에서 나지 않았나이다. 그에게 만일 부모가 있다면 무슨 이유로 다른 이의 부모를 빼앗았겠나이까. 대왕이시여, 우리들의 경에 말하기를, 천년을 지내고는 한 요망한 허깨비가 날 것이라 하였으니, 사문 구담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문 구담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줄을 알 것입니다. 만일 부모가 있다면 어찌하여 모든 법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고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다 말하겠나이까. 요술로 중생을 속이는 것을 어리석은 자는 그대로 믿고 지혜 있는 이는 버리나이다.
대왕이시여, 임금은 천하의 부모라, 저울 같고 땅 같고, 바람 같고 불 같고 길 같고 강 같고 다리 같고 등불 같고 해 같고 달 같아서, 법대로 사리(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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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를 판단하고 원수와 친한 이를 가리지 않는 줄 압니다. 사문 구담은 우리의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쫓아다니기를 그만두지 아니하나이다. 바라건대 대왕이시여, 우리가 그 사람으로 더불어 도력을 비교해 보는 것을 허락하소서. 그가 만일 우리를 이기면 우리가 그에게 소속될 것이요, 우리가 만일 그를 이기면 그가 마땅히 우리에게 소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사닉왕이 말하였다.
“대덕들이여, 그대들은 각각 행하는 법이 있고 머물러 있는 데도 제각기 다르지 않소. 내가 알기로는 여래 세존께서는 그대들에게 방해될 일이 없으리라 생각되오.”
6사들이 대답하였다.
‘어찌하여 방해가 없다 하오리까. 사문 구담이 환술하는 법으로 여러 사람들과 바라문들을 속이어서 모두 그에게 돌아가도록 하였나이다. 대왕이 만일 우리에게 도력을 비교하도록 허락하시면, 대왕의 거룩할 명성(名聲)이 팔방에 퍼질 것이고, 허락하지 않으시면 나쁜 소문이 자자할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대덕이여, 그대들이 여래의 도력과 위덕이 갸륵함을 알지 못하여 비교하려 하거니와, 만일 분명히 안다면 이길 수 없을 것이오.’
6사는 또 이렇게 하였다.
‘대왕이시여, 대왕께서는 벌써 그의 요술에 걸렸습니까? 바라옵건대 대왕은 잘 살펴주시고 우리를 경솔하게 생각하지 마옵소서. 꾸며댄 빈말은 실지로 증험함만 못하나이다.’
왕이 좋다고 허락하니, 6사의 무리들은 환희하여 물러나왔다.
그 때에 바사닉왕은 화려하게 꾸민 수레를 타고 나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한편에 물러가 앉아서 나에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6사들이 여래께 도력을 비교하기를 요구하기에, 나는 요량하지 못하고 감히 허락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다만 이 나라 곳곳에 절을 많이 지으십시오. 왜냐 하면, 내가 만일 그들과 도력을 비교하면, 그들의 제자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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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화를 받고 돌아올 사람이 많을 터이니, 이곳만으로는 좁아서 수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6사들을 위하여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희유하게 큰 신통 변화를 나타내었느니라. 이 때에 한량없는 중생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중생은 삼보에 대하여 신심을 내고 의심하지 않았으며, 6사의 무리들로 한량없는 사람이 잘못된 소견을 깨뜨리고 바른 법에 출가하였으며, 한량없는 중생은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게 되고, 한량없는 중생은 다라니와 모든 삼매문을 얻었고, 한량없는 중생들은 수다원과나 내지 아라한 과를 얻었느니라.
이 때에 6사들은 부끄러운 마음을 품고 서로 붙들고 바기다(婆枳多)성으로 가서, 그곳 백성들을 가르치어 사특한 법을 믿게 하며, 구담 사문은 헛된 일만 말한다고 선전하였다.
선남자여, 내가 그 때에 어머니를 위하여 도리천의 파리질다나무 아래서 안거하면서 법을 말하였더니, 그 때에 6사들은 매우 좋아서 구담의 환술도 이제는 없어졌다고 선전하며, 다시 한량없고 수없는 중생을 가르쳐 삿된 소견을 증장케 하였다. 이 때에 빈바사라왕과 바사닉왕과 사부중들은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이 염부제에 삿된 소견이 증장하여 저 중생들이 어두운 곳으로 가는 것이 매우 딱하옵니다. 원컨대 대덕께서 도리천에 올라가서 세존께 예배하고 우리의 말을 여쭈어 주십시오. 마치 송아지가 난 지 오래지 않아 어미의 젖을 먹지 못하면 죽을 것이 의심 없는 것과 같나니 우리들도 그러합니다.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어 이 세계에 돌아오시옵소서 하여지이다.’
목건련은 잠자코 허락하고는,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펼 동안에 천상에 올라가 세존 계신 데 이르러 여쭈었다.
‘염부제에 있는 사부대중이 여래를 갈망하여 법을 듣고자 하나이다. 빈바사라왕과 바사닉왕과 사부중들이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이 염부제에 있는 중생들의 삿된 소견이 증장하여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되오며 매우 딱하옵니다. 마치 송아지가 난 지 오래지 않아 어미의 젖을 먹지 못하면 죽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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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없는 것과 같나이다. 우리도 그러하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중생을 위하시어 염부제로 도로 오시어지이다 합니다.’
나는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너는 속히 염부제에 내려가서 여러 국왕과 사부중에게 말하여라. 앞으로 칠 일 후에 내려갈 터이니 6사들을 위하여 바기다성으로 갈 것이다.’
이레가 지나자 여래는 제석천왕·범천왕·마혜수라의 모든 천자와 수타회(首陀會)의 모든 천인들에게 앞뒤로 호위되어 바기다성에 내려와서 대사자후로 이렇게 말하였다.
‘오직 나의 법에만 사문과 바라문이 있으며, 모든 법은 무상하고 내가 없고, 열반은 고요하여 모든 허물이 없는 것이다. 만일 다른 법에도 사문이 있고 바라문이 있으며 항상하고 내가 있고 열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아니하니라.’
그 때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으며, 외도 6사들은 서로 말하기를 ‘만일 우리의 법에 참으로 사문과 바라문이 없다면, 어떻게 세간의 공양을 받겠는가’ 하면서, 서로 모여서 비사리성으로 가버렸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어느 때에 비사리성의 암라 숲 사이에 있었는데, 그 때에 암라 아씨가 내가 있는 줄을 알고 내가 있는 곳에 오려고 하였다. 나는 그 때에 비구들에게 말하기를 ‘생각이 머물 곳[念處]을 관찰하거나, 지혜를 닦되 닦는 것을 따라서 방일하지 말라. 어떤 것을 말하여 생각이 머물 곳을 관찰한다 하는가. 만일 비구가 속몸[內身]을 관찰하되 나와 내 것을 보지 아니하며, 바깥몸[外身]을 관찰하거나, 안팎몸[內外身]을 관찰하되 나와 내 것을 보지 아니하며, 받음[受]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는 것도 그와 같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생각이 머물 곳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는가. 만일 비구가 진실하게 고와 집과 멸과 도를 본다면, 이것을 말하여 비구가 지혜를 닦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마음이 방일하지 않다 하는가. 만일 비구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보시하여 버림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비구가 마음을 방일하지 않는다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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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이 때에 암라 아씨는 나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면서 공경하기를 마치고는 한쪽에 앉았다.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암라 아씨에게 알맞게 법을 말하였더니, 암라녀가 듣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느니라.
이 때에 그 성중에 리차(梨車)의 아들 4백 사람이 나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면서 공경하기를 마치고 한쪽에 앉거늘, 나는 다시 리차들을 위하여 알맞게 법을 말하였다.
‘모든 선남자들아, 방일한 데는 다섯 가지 과보가 있으니, 하나는 재물을 마음대로 못 쓰고, 둘은 나쁜 이름이 밖으로 퍼지고, 셋은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넷은 사부중 보기를 좋아하지 않고, 다섯은 하늘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느니라. 선남자들아, 방일하지 아니한 인연으로는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내게 되나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거든, 마땅히 방일하지 않는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방일하면 또 열세 가지 과보가 있나니, 무엇이 열셋인가. 하나는 세간에서 업을 짓기를 좋아하고, 둘은 쓸데없는 말 하기를 좋아하고, 셋은 오래오래 잠자기를 좋아하고, 넷은 세상 일을 말하기 좋아하고, 다섯은 항상 나쁜 동무를 친근하기 좋아하고, 여섯은 게으르며 느리고, 일곱은 다른 이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여덟은 비록 들었다가도 곧 잊어버리고, 아홉은 변방[邊地]에 있기를 좋아하고, 열은 여러 근(根)을 조복하지 못하고, 열하나는 음식에 만족함을 모르고, 열둘은 고요한 데를 좋아하지 않고, 열셋은 소견이 바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열셋이니라. 선남자여, 방일한 사람은 비록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친근하려 하여도 짐짓 멀어지느니라.’
리차의 아들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방일한 사람인 줄을 스스로 아나이다. 왜냐 하면 우리가 만일 방일하지 않았으면, 여래 법왕께서 우리 나라에 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회중에 바라문이 있으니 이름이 무승(無勝)이라, 리차들에게 말하였다.
‘좋은 말이오. 그대들의 말과 같으면, 빈바사라왕이 큰 이익을 얻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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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 여래께서 그 나라에 나셨으니까. 마치 큰 못에 연꽃이 났다면, 비록 물 속에 있어도 물이 더럽히지 못하는 것과 같소. 리차들이여,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그 나라에 났더라도 세상 법에 거리끼지 않습니다. 부처님 세존은 나오는 일도 없고 들어가는 일도 없지만 중생을 위하는 연고로 세상에 나면서도, 세상 법에 장애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아득하여 5욕락에 빠져 미혹하고, 부처님 계신 데는 갈 줄을 모르므로 방일한 사람이라 하는 것이요,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에 나셨다 해서 그대들을 방일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세존은 해와 달과 같아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위하여 세상에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여러 리차들은 이 말을 듣고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무승 동자여, 이렇게 훌륭한 말을 통쾌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리차들은 제각기 입었던 옷을 벗어서 무승에게 보시하였고, 무승은 그 옷을 받아서 나에게 받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나는 리차들에게 이 옷을 받았나이다. 바라옵건대 여래시여, 중생을 가엾이 여기사 저의 받드는 것을 받으시옵소서.’
나는 무승을 가엾이 여겨 받았다. 이 때에 리차들이 한꺼번에 합장하고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여래시여, 이 땅에 얼마 동안 안거하시면서 우리의 변변치 못한 공양이나마 받아 주시옵소서.’
나는 잠자코 리차들의 청을 받았다.
이 때에 6사들은 이 소문을 듣고 스승과 무리들이 서로 따라서 바라나성으로 갔고, 나는 다시 바라나에 나아가 바라나 강가에 머물렀다. 그 때에 바라나에 보칭(寶稱)이라 하는 장자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5욕에 빠져서 무상함을 모르고 지냈는데, 내가 그곳에 간 인연으로 자연히 백골관(白骨觀)을 얻고는, 그 집에 있는 사람들과 채녀들을 보니 모두 백골로 보였다. 무서운 마음이 생겨서 칼과 같고 독사와 같고 도둑과 같고 불과 같이 여겨져 그 집을 뛰어나와 나에게로 오면서 길에서부터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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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이여, 저는 지금 도둑에게 쫓기듯이 몹시 두렵기만 하오니, 바라건대 구제하여 주옵소서.’
나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부처님과 법과 승가는 편안하여 두려움이 없느니라.’
장자의 아들이 ‘삼보 중에 두려움이 없다면, 저도 이제 두려움 없음을 얻으려 하나이다’ 하기에, 나는 그의 출가를 허락하여 도를 닦게 하였다. 장자의 아들에게 50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보칭이 세상을 여의고 출가하였다는 말을 듣고, 서로 화합하여 함께 출가하였느니라.
6사들은 이 말을 듣고 다시 첨파성으로 갔다. 이 때에 첨파국 사람들은 6사의 무리를 섬기고, 삼보의 이름은 듣지도 못하였고, 여러 사람들은 대단히 나쁜 업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때에 중생을 위하여서 첨파성으로 갔느니라. 그 성중에 한 장자가 있는데, 자손이 없어서 6사를 공양하여 받들면서 아들 낳기를 구하였다. 오래지 아니하여 그의 아내가 아기를 배었다. 장자가 그 사실을 알고 6사에게 가서 기뻐하면서, ‘나의 아내가 아기를 배었는데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하고 물었다. 6사가 ‘반드시 딸을 낳을 것이라’고 대답하니, 장자는 그 말을 듣고 수심에 잠기었다. 어떤 친구가 장자에게 와서 ‘무슨 일로 그렇게 수심하느냐’고 물었다.
장자는 대답하였다.
‘아내가 잉태하였기에 아들인지 딸인지 몰라서 6사에게 물었더니, 6사의 말이 내가 보는 관상법으로는 딸을 낳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말을 듣고 생각하니, 나는 이제 나이 늙었고 재물은 많은데, 아들을 낳지 못하면 누구에게 전하겠는가, 그래서 수심하노라.’
친구는 다시 말하였다.
‘자네는 지혜도 없네. 왜 듣지 못하였는가. 우루빈나가섭 형제는 누구의 제자였던가. 부처님인가, 6사인가? 6사가 만일 일체지(一切智)를 가졌다면, 가섭이 어찌하여 6사를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겠는가. 또 사리불과 목건련이나 임금인 빈바사라 왕들이나 왕의 부인인 말리 부인들이나 장자인 수달다들이나 이런 여러분들이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아닌가. 광야의 귀신[曠野鬼神]과 아사세왕과 재물을 지키는 취한 코끼리[護財醉象]나 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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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등 욕심이 많아서 어미를 죽이려던 것들을 모두 여래께서 조복한 것이 아닌가. 장자여, 여래는 온갖 법에 지견이 걸림이 없으므로 부처님이라 하고, 말씀함이 두 가지가 아니므로 여래라 하고, 번뇌를 끊으셨으므로 아라하(阿羅訶)라 하는 것이네. 세존의 말씀은 두 가지가 없으시나 6사는 그렇지 못하거늘 어떻게 믿겠는가. 여래께서 지금 가까이 계시니, 진실하게 알려거든 부처님께 가 물으시게.’
그래서 장자는 그 사람과 함께 나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합장하고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원수거나 친한 이나 한결같사오나 저는 애정에 얽히어서 원수와 친한 이가 다르지 않을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 세상일을 물으려 하오나, 황송하고 부끄러워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내가 아기를 가졌는데, 6사들이 상을 보고는 딸을 낳으리라 합니다. 어떠하겠습니까?’
내가 말하였다.
‘장자여, 그대의 아내가 아기를 배었으니 아들을 낳을 것이 의심 없고, 그 아들이 나면 복덕이 그지없으리라.’
그 때에 장자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집으로 갔느니라. 육사들은 내가 예언하기를 ‘아들을 낳을 것이고 아기의 복덕이 그지없으리라’ 하였단 말을 듣고 질투하는 마음을 내고는, 암라 과실에 독약을 넣어 가지고 그 집에 가서 장자에게 말하였다.
“통쾌한 일이오. 구담은 예언을 잘 하였소. 그대의 부인이 만삭이 되었으니 이 약을 쓰시오. 이 약을 먹으면 아기도 단정하고 산모도 탈이 없을 것이오.”
장자가 기뻐서 그 약을 받아 아내에게 주었더니 먹고는 곧 죽었다. 6사는 기뻐서 온 성내를 다니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사문 구담은 저 장자의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기의 복덕은 천하에 짝할 이 없다고 예언하더니, 이제 아기도 낳기 전에 산모가 죽었도다.’
그 때에 장자는 나의 말은 믿지 아니하고, 세상법대로 염습하여 관에 넣어 가지고 성밖에 나가서 장작을 쌓아 불을 질렀다. 나는 도안(道眼)으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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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고 아난에게 명하기를 ‘나의 옷을 가져 오너라. 나는 저기 가서 삿된 소견을 부수리라’ 하였다.
그 때에 비사문천왕은 마니발타(摩尼跋陀) 대장에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지금 무덤들 있는 데로 가려 하시니, 그대는 빨리 가서 깨끗이 쓸고 사자좌를 놓고 좋은 꽃들을 구하여 훌륭하게 장엄하라.’
그 때에 6사들이 멀리서 내가 가는 것을 보고 서로 빈정대기를 ‘구담이 무덤 있는 데로 가니 고기나 한 점 먹으려는가’ 하였다. 이 때에 법안(法眼)을 얻지 못한 우바새들은 두려운 생각을 품고 내게 말하기를 ‘저 여인이 이미 죽었사오니 가실 것 없나이다’ 하였다. 그 때에 아난은 여러 사람에게 ‘잠깐만 기다리시오, 여래께서 곧 부처님의 경계를 열어 보일 것이오’ 하였다. 내가 무덤 곁에 가서 사자좌에 앉으니, 장자는 이렇게 힐난했다.
‘두 가지 말이 없어야 세존이라 할 터인데, 어미가 죽었으니 아들을 어떻게 낳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장자여, 그대는 그 때에 산모의 명이 길고 짧음은 묻지 아니하고, 뱃속에 든 아기가 아들인가, 딸인가만 물었느니라. 부처님 여래는 두 말 하는 일이 없으니 결정코 아들이 생길 줄을 알라.’
이 때에 송장이 불에 타서 배가 터지면서 아들이 나와서 불 속에 단정하게 앉았는 것이 마치 연꽃 위에 원앙이 노는 듯 하였다. 6사가 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사한 구담이여, 요술을 잘도 부리는구나.’
장자가 그것을 보고는 마음이 기뻐서 6사를 꾸짖었다.
‘만일 요술이라면 그대들은 어찌하여 부리지 못하오?’
나는 기바에게 말하여 불 속에 들어가서 아기를 안아 오라 하였더니, 기바가 가려는 것을 6사가 붙들고 이렇게 말했다.
‘구담 사문이 만든 환술이 오래갈 수 없을 것이오. 만일에 오래가지 못하면 반드시 타서 없어질 것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 말을 믿는가?’
기바가 대답하였다.
‘여래께서 설사 아비지옥에 들어가라고 시킨다면 지옥의 맹렬한 불에도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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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을 것인데 세간의 불이 어떻게 태우겠는가.’
기바는 앞으로 나아가 불더미 속에 들어가기를 시원한 물 속에 들어가듯 하여서 아기를 안고 도로 나와서 나에게 아기를 주었다. 나는 아기를 받아 안고 장자에게 말하였다.
‘모든 중생들의 목숨이 일정치 아니하여 물 위에 뜬 거품 같거니와 중생이 만일 중대한 과보가 있으면 불도 태우지 못하고 독약도 해하지 못하나니 이는 이 아이의 업보요, 나의 지음이 아니니라.’
이 때에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잘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아이가 만일 천명으로 오래 살겠사오면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옵소서.’
내가 말하였다.
‘장자여, 이 아이는 맹렬한 불 속에서 나왔고 불은 수제(樹提)라 하는 것이니 수제라고 이름하라.’
이 때에 모인 사람들이 나의 신통 변화를 보고, 한량없는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느니라.
이리하여 6사들은 여섯 성으로 돌아다니어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부끄러워 머리를 숙이고 구시나성으로 다시 왔다. 여기 와서는 이렇게 선전하였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아시오. 구담 사문은 큰 환술쟁이요. 천하 사람들을 속이면서 여섯 성으로 돌아다녔소. 마치 환술쟁이가 환술로 거병(事兵)과 보병을 만들고, 또 여러 가지 영락과 성곽과 궁전과 강과 숲을 환술로 만들 듯이, 그도 그와 같아서 왕의 몸을 환술로 만들고, 법을 말하기 위하여서 혹은 사문의 몸·바라문의 몸을 만들고, 혹은 남자의 몸·여자의 몸·작은 몸·큰 몸도 되며, 혹은 축생의 몸·귀신의 몸도 되며, 혹은 무상하다 말하고 혹은 항상하다 말하며, 어떤 때는 괴롭다 말하고 어떤 때는 즐겁다 말하고, 혹은 내가 있다 말하고 혹은 내가 없다 말하고, 혹은 깨끗하다 혹은 깨끗하지 않다, 혹은 있다 혹은 없다 말하여 하는 짓이 허망하므로 환술이라 하는 것이오. 씨를 심으면 씨를 따라서 열매를 얻나니, 구담도 그와 같아서 마야가 낳았는데 어머니가 이미 환술이거니, 아들이 어찌 환술이 아니겠는가. 사문 구담은 진실한 지견이 없소. 여러 바라문들은 10년 20년을 지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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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고 계율을 가지어도 진실한 지견이 없다 하거늘, 하물며 구담은 나이 젊고 학식이 옅으며 고행을 닦지 못하였거늘 어떻게 진실한 지견이 있겠는가. 설사 7년 동안 고행을 채웠어도 지견이 많지 못할 터인데, 하물며 닦은 고행이 6년도 차지 못함에랴. 어리석은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서 그의 가르침을 믿거니와, 마치 환술쟁이가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는 것과 같이 사문 구담도 이와 같소이다.’
선남자여, 이렇게 6사들이 이 성중에서 중생들로 하여금 사견을 증장케 하기에, 내가 이것을 보고 딱한 마음을 내어, 신력으로 시방의 대보살을 부르니, 구름처럼 이 숲으로 모여 와서 40유순에 가득하였으므로, 지금 여기서 크게 사자후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아무도 없는 데서는 아무리 말을 많이 하여도 큰 사자후라고 말할 수 없거니와, 지혜가 많은 대중 가운데서 큰 소리를 하여야 대사자후라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라 함은 모든 법이 다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고 부정한 것이요, 여래만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그 때에 6사들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구담이 내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도 내가 있나니, 나라고 하는 것은 보는 것을 나라고 이름합니다. 구담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창문 안[向中]에서 물건을 보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그러하니, 창문은 눈에 비유하고 보는 것은 나에게 비유함이오.’
나는 6사에게 말하였다.
‘만일 보는 것을 나라 한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그대들이 비유하기를 창문을 인하여 본다고 하거니와, 사람이 한 창문에 있을 적에 6근(根)이 한꺼번에 작용하기 때문이니라. 결정코 내가 있어서 눈을 인하여 본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저것과 같이 하나의 근 중에서 여러 경계[塵]를 한꺼번에 깨닫지 못하느냐. 만일 하나의 근 중에서 한꺼번에 여섯 경계를 깨닫지 못한다면, 내가 없는 줄을 알 것이다. 그대들이 말한 창문의 비유는 백년을 지나더라도 보는 사람이 창문 인하면 보는 바가 다르지 아니하니라. 눈이 만일 그렇다면, 나이 늙어 근이 쇠약해져도 다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사람과 창이 다르므로 안도 밖도 보나니, 눈도 만일 그렇다면 안과 밖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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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번에 모두 보아야 할 것이며, 만일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내가 있다 하겠는가.’
6사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누가 보겠습니까?’
나는 말하였다.
‘빛이 있고 밝음이 있고 마음이 있고 눈이 있어서, 이 넷이 화합하는 것을 본다고 이름하거니와, 이 가운데는 참으로 보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이 없건만, 중생들이 뒤바뀌어서 보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과 있다고 말하나니, 이런 이치로 모든 중생들은 보는 바가 뒤바뀌었고, 부처님과 보살은 보는 바가 진실하다 하느니, 6사여, 만일 색(色)이 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색은 진실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색이 만일 나라고 하면, 누추한 얼굴도 있을 수 없겠거늘, 무슨 까닭으로 다시 4성(姓)의 차별이 생기고 한결같이 바라문이 되지 못하는가. 무슨 까닭으로 다른 이에게 부속되어 자재하지 못하며 여러 근이 결함이 생겨 구족하지 못한 이가 있는가. 무슨 까닭으로 천인의 몸을 받지 못하고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의 몸을 받는가. 만일 나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을진댄 결정코 내가 없음을 알 것이니라. 내가 없으므로 무상하다 이름하고 무상하므로 괴롭다 하고, 괴로우므로 공하다 하고, 공하므로 뒤바뀌었다 하며, 뒤바뀌었으므로 모든 중생이 생사에서 헤매나니, 수(受)와 상(想)과 행(行)과 식(識)도 이와 같으니라.
6사여, 여래 세존은 색의 속박에서부터 내지 식의 속박을 아주 끊었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이름하니라. 또 색이란 것은 곧 인연이니, 인연이라면 내가 없다 할 것이요, 내가 없다면 괴롭고 공하다 하려니와 여래의 몸은 인연이 아니니, 인연이 아니므로 내가 있다 하며, 내가 있다면 곧 항상하고 즐겁고 깨끗한 것이니라.’
6사는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색도 내가 아니고 내지 식도 내가 아니니, 나란 것은 온갖 곳에 두루함이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나는 말하였다.
‘만일 두루하여 있다면, 내가 처음에는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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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만일 처음에는 보지 못하였다 하면, 이 보는 견(見)이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이요, 만일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다면, 이것은 무상한 것이라 이름하리니, 만일 무상하다면 어떻게 두루하였다 말하겠는가. 만일 두루하여 있다면 5도(道) 가운데에 모두 내 몸이 있을 것이요, 만일 몸이 있다면 반드시 각각 보를 받을 것이며, 만일 각각 보를 받는다면, 어떻게 번갈아 인간과 천상의 몸을 받는다 말하겠는가.
또 그대들이 두루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란 말이냐 여럿이란 말이냐. 내가 만일 하나라면 아비와 아들과 원수와 친한 이와 중간 사람이 없을 것이며, 내가 만일 여럿이라면, 모든 중생의 가진 5근이 모두 평등할 것이며, 업과 지혜도 역시 그러할 것이니라.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근을 구족한 이와 구족하지 못한 이가 있다 하며, 선한 업과 나쁜 업과 어리석음과 지혜로운 차별이 있다 하겠는가.’
‘구담이여, 중생의 나란 것은 끝간 데가 없거니와, 법답고 법답지 않은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어서, 중생이 법다운 것을 닦으면 좋은 몸을 얻고, 법답지 않은 것을 닦으면 나쁜 몸을 얻는 것이오니, 이런 이치로 중생의 업과 과보가 차별이 없지 않은 것이외다.’
내가 말하였다.
‘6사여, 법다운 것과 법답지 않은 것이 그와 같다면, 나라는 것은 두루하지 못할 것이요, 만일 두루하였다면 반드시 어디나 다 이르렀을 것이며, 만일 다 이르렀다면 선을 닦은 사람에게도 악이 있을 것이요, 악을 행한 사람에게도 선이 있을 것이니라.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두루하였다고 말하겠는가.’
‘구담이여, 마치 하나의 방 안에 백천 개의 등을 켜면, 제각기 밝게 비치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같이, 중생의 나란 것도 그와 같아서 선을 닦고 악을 행함이 서로 섞이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나라는 것이 등과 같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저 등의 밝은 빛은 인연을 따라서 있는 것이므로, 등이 많아지면 밝은 빛도 더 밝아지거니와 중생의 나라는 것은 그와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밝음은 등으로부터 나와서 다른 곳에 머물러 있거니와, 중생의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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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그와 같이 몸으로부터 나와서 다른 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니라. 등불의 광명은 어둠과 함께 있나니, 왜냐 하면 어두운 방에서 등불 하나를 켰을 적에는 비치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다가도 여러 개의 등불을 켰을 적에는 분명하게 되기 때문이니라. 만일 처음의 등불이 어둠을 아주 깨뜨렸으면, 뒤의 등불이 필요치 않을 것이요, 뒤의 등불이 필요하다면 처음의 밝은 것은 어둠과 함께 있었던 줄을 알 것이니라.’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누가 선과 악을 지으오리까?’
나는 대답하였다.
‘만일 내가 짓는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이름하며, 만일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어떤 때는 선을 짓고 어떤 때는 악을 짓겠는가. 만일 어떤 때에 선을 짓고 악을 짓는다면 어떻게 내가 가없다[無邊]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짓는다면, 무슨 까닭으로 다시 악한 법을 익히겠는가. 만일 내가 짓는 자요 아는 자라면, 어찌하여 중생은 내가 없다는 의심을 내겠는가. 이런 뜻으로 외도의 법에는 결정코 내가 없는 것이요, 만일 내가 있다고 말하면 이는 곧 여래니라. 왜냐 하면 몸이 가없는 까닭이며, 의심이 없는 까닭이니, 짓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므로 항상하다 이름하고,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므로 즐겁다 하고, 번뇌의 때가 없으므로 깨끗하다 하고, 열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공하다 하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고 공하여 온갖 모양이 없느니라.’
외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여래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고 모양이 없으므로 공하다면, 구담의 말하시는 법은 공한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정수리에 얹어 받아 지녀야 하리라.’
이 때에 수없는 외도들이 여래의 법에 신심으로 출가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인연으로 내가 이 쌍으로 선 사라나무에서 크게 사자후하는 것이니, 사자후라 함은 대반열반을 일컫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동방의 쌍수는 무상을 깨뜨리고 항상함을 얻는 것이며, 내지 북방의 쌍수는 부정을 깨뜨리고 깨끗함을 얻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 가운데 중생들이 쌍으로 선 나무를 위하여서 사라숲을 수호하며, 다른 이가 그 가지와 잎까지도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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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하게 하며, 찍거나 파괴하지도 못하게 하느니라. 나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법을 위하여서 제자들로 하여금 부처의 법을 수호하라 하나니,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니라. 이 네 개의 쌍수는 사천왕이 맡은 것이니, 나는 사천왕으로 하여금 나의 법을 수호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속에서 열반에 드느니라.
선남자여, 쌍으로 선 사라나무에는 꽃과 열매가 항상 무성하여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케 하나니, 나도 그와 같아서 성문과 연각을 항상 이익케 하느니라. 꽃은 나에 비유하고, 열매는 즐거움에 비유한 것이니, 이런 뜻으로 나는 이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크고 고요한 정에 드는 것이나, 크고 고요한 정을 대열반이라 이름하니라.”
사자후는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무슨 연고로 2월에 열반하시나이까?”
“선남자여, 2월은 봄이다. 봄에는 만물이 자라나고, 가지가지 화초와 나무를 심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강물이 많아지고 온갖 짐승들이 새끼를 치는 때이므로, 이 때에는 중생들이 흔히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중생들의 이러한 항상하다는 생각을 깨뜨리기 위하여, 온갖 법은 모두 무상하고, 여래만이 항상 있어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여섯 철 중에 초겨울은 낙엽이 지고 쓸쓸하여 사람들이 즐거워하지 아니하고, 봄철은 따뜻하고 화창하여 사람들이 사랑하나니, 중생의 세간 낙을 깨뜨리기 위하여 항상하고 즐거움을 연설하는 것이며, 나이고 깨끗한 것도 그와 같나니, 여래는 세간의 나와 세간의 깨끗함을 깨뜨리기 위하여, 여래의 참된 나와 참되게 깨끗함을 연설하느니라.
2월은 여래의 두 가지 법신에 비유하였으며, 겨울이 즐겁지 않다 함은, 지혜 있는 이는 여래가 무상하게 열반에 드심을 즐겨 하지 아니함이요, 2월이 즐겁다는 것은, 지혜 있는 이는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사랑함에 비유하였고, 초목을 심는 것은 중생들이 법을 듣고 환희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어 선근을 심는 데 비유하였고, 강물은 시방의 보살들이 나에게 와서 이러한 대반열반을 물어 배우는 데 비유하였고, 온갖 짐승들이 새끼를 치는 것은 나의 제자들이 선근을 내는 데 비유하였고, 꽃은 7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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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 비유하고, 열매는 4과(果)에 비유하였나니, 이런 뜻으로 나는 2월에 열반에 드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여래께서 처음 나실 때와 출가할 때와 성도(成道)할 때와 미묘한 법수레를 운전하실 때를 모두 8일에 하셨는데, 어찌하여 열반에 드심은 15일에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잘 물은 말이다. 선남자여, 15일은 달이 이지러짐도 자라남도 없는 것이다. 그런 뜻으로 15일에 대반열반에 드느니라. 선남자여, 15일에 달이 둥글었을 적에는 열한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한 가지인가. 하나는 어둠을 깨뜨리고, 둘은 중생들로 하여금 길인지 아닌지를 보게 하고, 셋은 중생들로 하여금 길이 굽었는지 똑바른지 보게 하고, 넷은 찌는 듯 답답함을 덜고 서늘한 낙을 얻게 하고, 다섯은 반딧불같이 교만한 마음[高心]을 깨뜨리고, 여섯은 모든 도둑질할 생각을 그만두게 하고, 일곱은 중생들의 사나운 짐승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고, 여덟은 우발라꽃을 피게 하고, 아홉은 연꽃을 오무리게 하고, 열은 집 떠나는 이의 길 가려는 마음을 내게 하고, 열하나는 중생들로 하여금 5욕락을 받아들여 쾌락케 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여래의 보름달도 그와 같나니, 하나는 무명의 어둠을 깨뜨리고, 둘은 정도와 사도를 연설하고 셋은 생사는 험하고 열반은 평탄함을 보여 주고, 넷은 사람들로 하여금 탐·진·치의 뜨거움을 여의게 하고, 다섯은 외도의 광명을 깨뜨리고, 여섯은 번뇌의 도둑을 파괴하고, 일곱은 5개(蓋)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고, 여덟은 중생의 선근 심는 마음을 열어 주고, 아홉은 중생들의 5욕락 마음을 덮어주고, 열은 중생들의 대반열반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열하나는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즐기게 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15일에 대반열반에 들거니와, 나는 진실로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거늘, 나의 제자들 중에서 어리석은 사람들이 여래가 열반에 든다고 말하느니라. 마치 여러 아들을 둔 어떤 어머니가 아이들을 두고 다른 나라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을 적에, 그의 아이들이 어머니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실로는 어머니가 죽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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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보살이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들이 이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하겠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구절을 바로 알고 뜻을 통달하며, 남에게 해설하되 처음이나 중간이나 나중이 모두 잘하며,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하려고 범행을 연설하면, 이런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잘 장엄하는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아난 비구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아난 비구는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다른 이에게 옳은 말과 바른 뜻을 해설하나이다. 마치 물을 부어 다른 그릇에 담듯이, 아난 비구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는 들은 대로 말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깨끗한 천안통을 얻어, 시방의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물건 보기를 손바닥에 있는 암마륵 열매를 보듯이 한다면, 이런 비구도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할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오면 아니루타(阿尼樓馱) 비구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아니루타는 천안통으로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물건이나 중음신까지도 분명하게 보고 막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며, 고요함을 좋아하여 정진함과 기억함과 선정과 지혜를 부지런히 닦으면 이런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하는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러하오면 가섭 비구가 그 사람이겠사오니, 왜냐 하면 가섭 비구는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아는 법을 잘 닦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중생을 이익하기 위하여 다투지 않는 삼매[無諍三昧]와 성인의 행과 공한 행을 닦고 자기의 이양을 위하지 않으면, 이런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할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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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수보리 비구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수보리는 다툼이 없는 삼매와 성인의 행과 공한 행을 잘 닦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신통을 닦아서 잠깐 동안에 가지각색 신통 변화를 짓되, 한 마음 한 선정으로 물과 불의 두 가지 결과를 지으면, 이런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할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목건련 비구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목건련은 신통을 잘 닦아서 한량없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큰 지혜, 이로운 지혜, 장엄한 지혜, 해탈한 지혜, 매우 깊은 지혜, 넓은 지혜, 끝없는 지혜, 이길 이 없는 지혜, 실다운 지혜, 이러한 지혜를 구족하게 성취하고서, 원수거나 친한 이거나 차별하는 마음이 없으며, 여래가 열반하여 무상하다는 말을 들어도 걱정하지 아니하고, 항상 머물러 있어 열반에 들지 않겠다는 말을 들어도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런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 나무를 장엄할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사리불 비구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사리불은 그러한 큰 지혜를 구족하게 성취하였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말하기를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어 금강 같은 몸을 얻으며, 그지없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며, 몸과 마음이 걸림이 없어 여덟 가지 자재함을 얻는다고 하면, 이러한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할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오직 여래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의 몸은 금강 같고, 그지없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오며, 몸과 마음에 걸림이 없어 여덟 가지 자재함을 구족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세존이라야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능히 장엄한 것이옵고, 세존이 아니시면 장엄할 수 없겠사오니, 바라옵건대 대자대비로 장엄하기 위하여 이 사라숲에 항상 머무시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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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온갖 법의 성품은 머무름이 없이 머무는 것이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여래가 머물기를 바란다고 말하는가. 선남자여, 무릇 머문다 함은, 색법(色法)을 일컫는 것이니, 인연으로부터 생기므로 머문다 말하고, 인연이 없는 데서는 머무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여래는 이미 모든 색의 속박을 여의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머물기를 바란다 하느냐.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머문다고 함은 교만이라 하나니, 교만하기 때문에 해탈하지 못하고, 해탈하지 못하므로 머문다 말하거니와, 어떤 교만이 어디서 오겠는가.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이 머문다 하느니라. 여래는 온갖 교만을 아주 끊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머물기를 원한다고 말하는가.
머문다 함은 함이 있는 법을 말하는 것인데, 여래는 이미 함이 있는 법을 끊었으므로 머물지 않느니라. 머문다 함은 공한 법을 말한 것인데, 여래는 이미 공한 법을 끊었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머물기를 원한다고 말하는가. 머문다 함은 25유를 일컬은 것인데, 여래는 이미 25유를 끊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머물기를 원한다 하는가. 머문다 함은 곧 온갖 범부요, 성인들은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고 머무는 일도 없느니라. 여래는 이미 가고 오고 머무는 모양을 끊었거늘, 어찌하여 머물라고 말하는가.
무주(無住)라 함은 가없는 몸을 말함이니, 몸이 가없는데, 어떻게 여래가 사라숲에 머물기를 원한다고 말하는가. 만일 이 숲에 머문다면 그것은 가가 있는 몸이요, 만일 가가 있다면 그것은 무상이다. 여래는 항상하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무주라 함은 허공이라 말하나니, 여래의 성품은 허공과 같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금강삼매라 하나니, 금강삼매는 온갖 머무는 것을 파괴하며, 금강삼매는 곧 여래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환술이라 이름하나니, 여래는 환술과 같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처음과 나중이 없음을 이름하나니, 여래의 성품은 처음과 나중이 없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가없는 법계를 이름함이니, 가없는 법계는 곧 여래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수릉엄삼매를 이름함이니, 수릉엄삼매는 온갖 법을 알면서도 집착함이 없으며, 집착함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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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이라 이름하니라. 여래는 수릉엄삼매를 구족하였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옳고 그른 것을 가르는 힘을 말한다. 여래는 옳고 그른 것을 가르는 힘을 성취하였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단(檀)바라밀이니, 단바라밀이 만일 머무는 것이라면, 시(尸)바라밀이나 내지 반야바라밀에 이르지 못할지니, 이런 뜻으로 단바라밀을 무주라 이름하거니와, 여래는 내지 반야바라밀에도 머물지 않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항상 사라숲에 머물기를 원한다 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4념처(念處)를 닦는다 이름하나니, 여래가 만일 4념처에 머문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므로, 머물지 않으면서 머문다[不住住]고 이름하느니라. 또 무주라 함은 가없는 중생계라 이름하나니, 여래가 모든 중생의 가없는 경계에까지 이르지만, 머무는 바가 없느니라. 또 무주라 함은 집이 없다[無屋宅]고 이름하나니, 집이 없다는 것은 남이 없다[無生]고 이름하고, 남이 없다 함은 죽음이 없다고 이름하고, 죽음이 없다 함은 모양이 없다고 이름하고, 모양이 없다 함은 얽매임이 없다고 이름하고, 얽매임이 없다 함은 집착이 없다고 이름하고, 집착이 없다 함은 무루(無漏)라 이름하나니, 무루는 곧 선이요, 선은 곧 함이 없음[無爲]이요, 함이 없음은 대열반의 항상함이요, 대열반에 항상함은 곧 나요, 나는 곧 깨끗함이요, 깨끗함은 곧 즐거움이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여, 마치 허공이 동방·남방·서방·북방이나, 네 간방이나 위나 아래에 머물지 않나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동방·남방·서방·북방이나 네 간방이나 위나 아래에 머물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말하기를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악하면서 선한 과보를 받는다 하면 옳지 아니하며,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선하면서 악한 과보를 받는다 함도 옳지 아니하니라. 만일 말하기를 범부는 불성을 보고, 10주 보살은 불성을 보지 못한다 함도 옳지 아니하고, 일천제들이 5역죄를 범하고 방등경을 비방하고 4중금을 범하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함도 옳지 아니하며, 6주 보살이 번뇌의 인연으로 3악도에 떨어진다 함도 옳지 아니하니라. 보살마하살이 참말 여인의 몸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함도 옳지 아니하며, 일천제는 항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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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보는 무상하다고 함도 옳지 아니하고, 여래가 구시나성에 머문다 함도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지금 이 구시나성에서 큰 삼매인 깊은 선정의 굴에 드는 것을 대중이 보지 못하므로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여래께서 무슨 연고로 선정의 굴에 드시나이까?”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려는 연고며, 선근을 심지 못한 이를 선근을 심게 하려는 연고며, 이미 선근을 심은 이를 증장케 하려는 연고며, 선한 과보가 성숙하지 못한 이를 성숙케 하려는 연고며, 이미 성숙한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게 하려는 연고며, 선한 법을 천히 여기는 이를 존중한 마음을 내게 하려는 연고며, 방일한 이들이 방일을 여의게 하려는 연고며, 문수사리 등 여러 대향상(大香象)들이 함께 논의하려는 연고며, 경을 읽고 외우기 좋아하는 이들을 교화하여 선정을 사랑케 하려는 연고며, 성인의 행과 범행과 천행(天行)으로 중생을 교화하려는 연고며, 함께하지 않는 깊은 법장을 관찰케 하려는 연고며, 방일한 제자들을 꾸짖되 ‘여래는 항상 고요하면서도 선정을 좋아하거늘, 하물며 너희들이 번뇌를 다하지 못하고 방일하겠느냐’ 하려는 연고며, 모든 나쁜 비구로서 여덟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두고, 욕심이 적지 않아 만족함을 알지 못하는 이를 꾸짖으려는 연고며, 중생들로 하여금 들은 바 선정법을 존중히 여기게 하려는 연고니, 이런 인연으로 선정의 굴에 들어가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양이 없는 선정[無相定]은 대열반이라 이름하옵나니, 그러므로 열반을 모양이 없음이라 하거니와, 무슨 인연으로 모양이 없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열 가지 모양이 없는 연고니라.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빛깔 모양, 소리 모양, 향기 모양, 맛 모양, 닿이는 모양, 나는 모양, 머무는 모양, 망그러지는 모양, 사내 모양, 여자 모양이므로 모양이 없다고 이름하니라. 선남자여, 모양에 집착한 이는 어리석음을 내고, 어리석으므로 사랑을 내고, 사랑하므로 속박되고, 속박되므로 태어나게 되고, 태어나므로 죽게 되고, 죽으므로 무상하거니와,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면 어리석음을 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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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이 나지 않으므로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므로 속박이 없고 속박이 없으므로 태어나지 않고 태어나지 않으므로 죽는 일이 없고, 죽음이 없으므로 항상하다 하나니, 이런 뜻으로 열반을 항상하다 이름하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비구가 능히 열 가지 모양을 끊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때때로 세 가지 모양을 닦아 익히면, 열 가지 모양을 끊나니, 때때로 삼매의 선정 모양을 닦아 익히고, 때때로 지혜의 모양을 닦아 익히고, 때때로 버리는 모양[捨相]을 닦아 익히는 것을 세 가지 모양이라 하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선정의 모양, 지혜의 모양, 버리는 모양이라 이름하나이까? 선정이 삼매라면 모든 중생이 모두 삼매가 있거늘, 어찌하여 바야흐로 삼매를 닦는다 하오리까? 마음이 한 경계에 있는 것을 삼매라 하오면, 만일 다시 다른 반연이라면 삼매라 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선정이 아니면 온갖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가 아닐 것이요, 온갖 것을 아는 지혜가 아니라면 어떻게 선정이라 하오리까? 만일 한 가지 행으로 삼매를 얻는다면, 다른 행들은 삼매가 아닐 것이요, 삼매가 아니면 온갖 것을 아는 지혜가 아니리니, 만일 온갖 것을 아는 지혜가 아니라면, 어떻게 삼매라 이름하오리까? 지혜의 모양과 사(捨)의 모양도 그와 같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한 경계를 반연함을 삼매라 한다면, 다른 반연들은 삼매라 이름하지 못하리라 하는 것은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다른 반연들도 한 경계인 까닭이니, 다른 행도 그와 같으니라. 또 말하기를, 중생이 먼저부터 삼매가 있으므로 닦을 필요가 없다 함도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삼매라고 말함은 선한 삼매를 말함이니, 모든 중생들은 참으로 가지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닦을 필요가 없다고 하겠는가. 이러한 선한 삼매에 머물러서 온갖 법을 관찰하는 것을 선한 지혜의 모양이라 하고, 삼매의 모양과 지혜의 모양이 다른 줄로 보지 않는 것을, 버리는 모양[捨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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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색의 모양[色相]을 취하고, 색의 항상하거나 무상한 모양을 관찰하지 아니하면 삼매라 이름하고, 만일 색의 항상하거나 무상한 모양을 관찰하면, 지혜라 이름하고 삼매와 지혜가 평등하게 온갖 법을 관찰하면 이것을 버리는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수레 멘 말을 잘 모는 사람은 빠르고 더딤이 알맞은 것같이, 빠르고 더딤이 알맞은 것을 버리는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보살도 그러하여 삼매가 많으면 지혜를 닦고, 지혜가 많으면 삼매를 닦으며, 삼매와 지혜가 평등하면 버리는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10주 보살은 지혜의 힘이 많고 삼매의 힘이 적으므로, 불성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성문과 연각은 삼매의 힘은 많고 지혜는 적으므로, 이를 인연하여 불성을 보지 못하고, 부처님 세존은 삼매와 지혜가 평등하므로 불성을 분명하게 보고 걸림이 없는 것이,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륵 열매같이 하나니, 불성을 보는 것을 버리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사마타(奢摩他)는 능히 없앤다[能滅] 이름하나니 온갖 번뇌를 없애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능히 조복한다 이름하나니 모든 근의 악하고 선하지 못한 것을 조복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고요하다 이름하나니 3업을 고요하게 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멀리 여읜다 이름하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5욕락을 멀리 여의게 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능히 맑힌다 이름하나니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의 흐린 법을 맑히는 연고니라. 이런 뜻으로 선정의 모양[定相]이라 이름하느니라.
비바사나(毘婆舍那)는 바르게 본다[正見] 이름하며, 또 분명히 본다[了見] 이름하며, 또 능히 본다[能見] 이름하며, 두루 본다[遍見]·차례로 본다[次第見]·딴 모양으로 본다[別相見] 이름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느니라.
우필차(憂畢叉)는 평등이라 이름하며, 다투지 않는다[不諍] 이름하며, 관찰하지 않는다[不觀] 이름하며, 행하지 않는다[不行] 이름하나니, 이것을 사(捨)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사마타는 두 가지가 있으니 세간과 출세간이요,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성취와 성취하지 못함이니라. 성취는 부처님과 보살이요, 성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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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함은 성문과 벽지불 등이니라. 또 세 가지가 있으니, 하와 중과 상이니라. 하는 범부들이요, 중은 성문과 연각이요, 상은 부처님과 보살이니라. 또 네 가지가 있으니, 물러가는 것과 머무는 것과 나아가는 것과 크게 이익하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가 있으니, 5지(智) 삼매라. 무엇이 다섯인가. 하나는 먹지 않는[無食] 삼매요, 둘은 허물없는[無過] 삼매요, 셋은 몸과 뜻이 청정한 일심(一心)삼매요, 넷은 인과 과가 모두 즐거운[因果俱樂] 삼매요, 다섯은 항상 생각하는[常念] 삼매니라. 또 여섯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백골을 관하는[觀骨] 삼매요, 둘은 인자한[慈] 삼매요, 셋은 20인연을 관하는 삼매요, 넷은 아나파나[數息觀] 삼매요, 다섯은 염각관(念覺觀) 삼매요, 여섯은 생멸을 관하는[觀生滅] 삼매니라.
또 일곱 가지가 있으니 곧 7각분(覺分)이니라. 하나는 염각분(念覺分)이요, 둘은 택법(擇法)각분이요, 셋은 정진(精進)각분이요, 넷은 희(喜)각분이요, 다섯은 제(除)각분이요, 여섯은 정(定)각분이요, 일곱은 사(捨)각분이니라. 다시 일곱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수다원삼매요, 둘은 사다함삼매요, 셋은 아나함삼매요, 넷은 아라한삼매요, 다섯은 벽지불삼매요, 여섯은 보살삼매요, 일곱은 여래각지(覺知)삼매니라. 또 여덟 가지가 있으니, 곧 8해탈삼매니라. 하나는 안에는 빛 모양이 있으면서 밖으로 빛을 관찰하여 해탈하는[內有色相外觀色解脫]삼매요, 둘은 안에는 빛 모양이 없으면서 밖으로 빛을 관찰하여[內無色相外觀色] 해탈하는 삼매요, 셋은 깨끗하게 해탈하여 몸으로 증험하는[淨解脫身證] 삼매요, 넷은 공처(空處)해탈삼매요, 다섯은 식처(識處)해탈삼매요, 여섯은 무소유처(無所有處)해탈삼매요, 일곱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해탈삼매요, 여덟은 멸진정(滅盡定)해탈삼매니라.
또 아홉 가지가 있으니, 곧 9차제정(次第定)이니라. 4선(禪)과 4공(空)과 멸진정삼매니라. 또 열 가지가 있으니, 10일체처삼매니라. 무엇이 열인가. 하나는 지일체처(地一切處)삼매요, 둘은 수(水)일체처삼매요, 셋은 풍일체처삼매요, 넷은 청(靑)일체처삼매요, 다섯은 황(黃)일체처삼매요, 여섯은 적(赤)일체처삼매요, 일곱은 백(白)일체처삼매요, 여덟은 공(空)일체처삼매요, 아홉은 식(識)일체처삼매요, 열은 무소유(無所有)일체처삼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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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또 수없는 종류가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과 보살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삼매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세간이요, 둘은 출세간이니라. 또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반야요 둘은 비파사나요, 셋은 사나니라. 반야는 온갖 중생이라 이름하고 비파사나는 온갖 성인이요, 사나는 부처님과 보살이니라. 또 반야는 별상(別相)이라 하고, 비파사나는 총상(總相)이라 하고, 사나는 파상(破相)이라 하느니라. 또 네 가지가 있으니, 4진제(眞諦)를 관찰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 가지 일을 위하여서 사마타를 닦나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나는 방일하지 않기 위함이요, 둘은 큰 지혜를 장엄하기 위함이요, 셋은 자재함을 얻기 위함이니라. 또 세 가지 일을 위하여서 비파사나를 닦나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나는 나고 죽는 나쁜 과보를 관찰하려 함이요, 둘은 모든 선근을 증장하려 함이요 셋은 모든 번뇌를 깨뜨리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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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9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품 ⑤

사자후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파사나(毗婆舍那)가 능히 번뇌를 깨뜨린다면, 어찌하여 다시 사마타(奢摩他)를 닦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그대가 말한 비파사나가 번뇌를 깨뜨린다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지혜가 있을 때에는 번뇌가 없고, 번뇌가 있을 때에는 지혜가 없는데, 어떻게 비파사나가 번뇌를 깨뜨린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마치 밝을 적에는 어둠이 없고, 어두울 적에는 밝음이 없는 것과 같나니, 어떤 이가 말하기를 밝음이 능히 어둠을 깨뜨린다 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누구에게 지혜가 있고 누구에게 번뇌가 있어서, 지혜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말하는가. 만일 없다면 깨뜨릴 것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지혜가 번뇌를 깨뜨린다 하면, 이르러서 깨뜨리는가, 이르지 않고도 깨뜨리는가. 만일 이르지 않고 깨뜨린다면 범부 중생도 능히 깨뜨릴 것이며, 이르러서 깨뜨린다면, 첫 생각에 깨뜨릴 것이요. 만일 첫 생각에 깨뜨리지 못한다면, 뒷생각으로도 깨뜨리지 못한 것이니라. 만일 처음 이르러서 문득 깨뜨린다면, 이는 이르지 못함이거늘 어떻게 지혜가 깨뜨린다 말하겠는가. 만일 이르거나 이르지 못하거나 능히 깨뜨린다고 한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또 비파사나가 번뇌를 혼자서 깨뜨리는가, 동무가 있어서 깨뜨리는가.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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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깨뜨린다면 무슨 연고로 보살이 8정도(正道)를 닦겠는가. 만일 동무가 있어서 깨뜨린다면, 혼자서는 깨뜨리지 못함을 알지니, 만일 혼자서 깨뜨리지 못하면 동무들도 깨뜨리지 못하리라. 마치 소경 한 명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여러 동무 소경도 보지 못하나니, 비파사나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땅은 굳은 성품이요, 불은 뜨거운 성품이요, 물은 젖는 성품이요, 바람은 동하는 성품이거니와, 땅의 굳은 성품과 내지 바람의 동하는 성품이 인연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요, 성품이 스스로 그런 것이니라. 4대의 성품과 같이 번뇌도 그러하여 성품이 스스로 끊는 것이니, 만일 성품이 끊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지혜가 끊는다 하겠는가. 이런 뜻으로 비파사나가 결정코 번뇌를 깨뜨리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소금의 성질이 짜므로 다른 물건을 짜게 하고, 꿀의 성질이 달므로 다른 물건을 달게 하고, 물의 성질이 젖으므로 다른 물건을 젖게 하듯이, 지혜의 성품이 멸한 것이므로 다른 법을 멸한다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법이 멸함이 없다면 어떻게 지혜가 억지로 멸하게 하겠는가. 만일 소금이 짜서 다른 물건을 짜게 하듯이, 지혜의 멸함도 그와 같아서 다른 법을 멸하게 한다면 그것도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지혜의 성품은 잠깐잠깐 멸해 가기 때문이니라. 만일 잠깐잠깐 멸한다면 어떻게 다른 법을 멸한다고 말하겠는가. 이런 뜻으로 지혜의 성품이 번뇌를 깨뜨리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이 두 가지 멸함이 있으니, 하나는 성품의 멸함이요, 둘은 필경까지 멸함이니라. 만일 성품이 멸한다면, 어찌하여 지혜가 능히 멸한다고 말하겠는가. 만일 지혜가 능히 번뇌를 멸함이 불이 물건을 태움과 같다고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불이 물건을 태움에는 남은 불똥이 있기 때문이니, 지혜도 그렇다면 남은 불똥이 있어야 하고, 도끼로 나무를 찍음에는 찍은 흔적을 볼 수 있나니, 지혜도 그렇다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지혜가 번뇌를 떠나게 한다면, 떠난 번뇌가 다른 곳에 나타날 것이니, 마치 외도들이 6대성에서 떠나서 구시나성에 나타남과 같을 것이며, 만일 번뇌가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지혜가 번뇌를 떠나게 하지 못하는 줄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법의 성품이 스스로 공하다면, 누가 나게 하며 누가 멸하게 하겠는가. 남[生]이 다르고 멸함이 달라서 짓는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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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선정을 닦으면 이러한 바른 지혜와 바른 소견을 얻느니라.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 말하기를 만일 비구가 선정을 닦으면 5음의 생멸하는 모양을 본다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선정을 닦지 않고는 세간의 일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출세간의 일이리요. 만일 선정의 힘이 없으면 평지에서 엎어지며, 마음으로 다른 법을 반연하고 입으로 다른 말을 이야기하고 귀로 다른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다른 이치를 이해할 것이며, 다른 글자를 만들려고 하고 손으로 다른 글을 쓰며, 다른 길로 다니려고 몸이 딴 갈래에 가려니와, 만일 삼매의 선정을 닦는 이는 크게 이익하며,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면 크게 이익하리니, 하나는 선정이요 둘은 지혜니라. 선남자여, 왕골을 벨 적에 급히 서두르면 끊어지는 것과 같나니,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는 일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굳게 박힌 나무를 뽑을 적에, 먼저 손으로 흔들면 뒤에 뽑기가 쉽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아서, 먼저 선정으로 흔들고 나중에 지혜로 뽑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때 묻은 옷을 빨 적에 먼저 잿물에 담그고 뒤에 맑은 물로 씻으면 옷이 깨끗하여지나니,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용맹한 사람이 먼저 갑옷으로 몸을 단속한 뒤에 진중에 나아가면 대적을 파하게 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공교로운 공장이 도가니에 금을 담고는 마음대로 저어서 녹이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밝은 거울로 얼굴을 비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먼저 땅을 고루고 뒤에 씨를 심으며, 먼저 스승에게 배우고 뒤에 뜻을 생각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크게 이익케 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5근을 조섭하여 모든 괴롬을 견디나니, 이른바 기갈과 차고 더움과, 매맞고 욕설함과, 나쁜 짐승에게 물리는 일과, 모기 따위에 물리는 일들이니라. 항상 마음을 거두어들여 방일하지 못하게 하며, 이양을 위하여 법답지 못한 일을 행하지 아니하며, 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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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에 더럽히지 아니하고, 사특한 소견에 의혹되지 아니하며, 모든 나쁜 관념[覺觀]을 멀리 여의어,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니, 중생들을 성취시켜 이익케 하려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네 가지 뒤바뀐 폭풍도 흔들지 못함이, 마치 수미산을 네 가지 바람으로도 동요하지 못하는 듯하며, 삿된 외도들에게 동요되지 아니함이, 마치 제석천왕의 짐대를 이전할 수 없는 듯하며, 여러 가지 요술로도 의혹하지 못하고 항상 미묘하고 제일가는 안락을 받으며, 여래의 깊고 비밀한 도리를 이해하여 낙을 받아도 기뻐하지 아니하고, 괴롬을 만나도 슬퍼하지 아니하며, 천상 사람 세상 사람들이 공경하고 찬탄하며, 생사와 생사 아닌 것을 분명하게 보고 법계와 법의 성품을 잘 알며, 몸에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이 있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대반열반의 낙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선정의 모양은 공삼매(空三昧)라 하고, 지혜의 모양은 무원(無願)삼매라 하고, 버리는[捨] 모양은 무상(無相)삼매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선정의 때와 지혜의 때와 버리는 때를 잘 알고 때 아닌 것도 알면, 이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보리의 도를 행한다 하느니라.”
사자후가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쾌락을 받는다 하여 교만을 내거나, 법을 연설한다 하여 교만을 내거나, 정근하노라 하여 교만을 내거나, 이치를 알고 문답을 잘한다 하여 교만을 내거나, 나쁜 동무를 가까이 하면서 교만을 내거나, 소중한 물건을 보시하면서 교만을 내거나, 세간의 선한 공덕을 짓노라 하여 교만을 내거나, 세상의 지위 높은 사람에게 공경을 받노라 하여 교만을 내게 되거든, 이 때에는 지혜를 닦지 말고 선정을 닦아야 할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도 이익한 열반의 낙을 얻지 못하거나, 얻지 못한 연고로 후회하는 마음을 내거나, 근성이 둔하여서 5근을 조복하지 못함은 모든 번뇌의 세력이 치성한 연고며, 계율이 이로울까 해로울까 의심하는 연고니, 이런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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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선정을 닦지 말고 지혜를 닦아야 할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선정과 지혜의 두 가지가 평등하지 못할 때에는, 사(捨)를 닦지 않아야 할 줄을 알며, 두 가지가 평등하면 닦아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선정과 지혜를 닦다가 번뇌가 일어나면 그럴 적에는 사를 닦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12부경을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사함을 생각하여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함을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이렇게 세 가지 법을 닦으면, 이 인연으로 무상(無相)열반을 얻느니라.”
사자후가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열 가지 모양이 없는 연고로 대열반을 이름하여 무상(無相)이라 한다 하오면, 또 무슨 인연으로 남이 없다[無生], 냄이 없다[無出], 지음이 없다[無作], 집이다[屋宅], 섬이다[洲], 귀의할 데다, 편안하다, 멸도(滅度)다, 열반이다, 고요하다[寂靜], 병고가 없다[無諸病苦], 있는 것이 없다[無所有] 이름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선남자여, 인연이 없으므로 남이 없다 하고, 함이 없으므로 냄이 없다 하고, 짓는 일이 없으므로 지음이 없다 하고, 다섯 가지 소견에 들어가지 아니하므로 집이라 하고, 4폭류를 여의었으므로 섬이라 하고, 중생을 조복하므로 귀의할 데라 하고, 번뇌의 도적을 깨뜨렸으므로 편안하다 하고, 번뇌의 불이 꺼졌으므로 멸도라 하고, 각관(覺觀)을 여의었으므로 열반이라 하고, 시끄러운 것을 멀리하였으므로 고요하다 하고, 죽는 일을 아주 끊었으므로 병고가 없다 하고, 온갖 것이 없으므로 있는 것이 없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에는 불성을 분명히 보게 되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몇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러한 무상열반과 내지 있는 것이 없음을 보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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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무상열반과 내지 있는 것이 없음을 분명히 보느니라. 무엇을 열이라 하는가. 하나는 믿는 마음이 구족함이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믿는 마음이 구족하다 하는가. 부처님과 법과 승가는 항상하지만 시방의 부처님이 방편으로써 모든 중생과 일천제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보이신 줄을 믿고, 여래의 나고 늙고 병나고 죽음과 고행을 하심과, 제바달다가 참으로 화합승을 파하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낸 것과, 여래가 필경에 열반에 들어서 바른 법이 없어진다는 일을 믿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믿는 마음이 구족하다 하느니라.
둘은 깨끗한 계행이 구족함이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 하는가. 선남자여,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노라고 말하면서 여인과 어울리지 않더라도 여인을 볼 적에 조롱하고 꾀이고 웃고 지껄이고 희롱하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케 함이라, 깨끗한 계율이 구족하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노라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지 아니하며 조롱하고 꾀이고 웃고 희롱하지 않더라도, 담 밖에서 나는 여인의 영락 가락지·팔찌 따위의 소리를 듣고, 마음에 애착을 낸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행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케 함이라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노라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거나 조롱하고 지껄이고 꾀이거나 모든 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다른 남자가 여인을 따라가거나 여인이 남자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는 문득 탐욕을 낸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케 함이라,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노라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거나 지껄이고 꾀이거나 모든 소리를 듣거나, 남자와 여인이 서로 따라감을 보지 않더라도, 천상에 태어나서 5욕락을 받는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케 함이라,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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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되, 계율을 위하지 아니하고 시바라밀을 위하지 아니하고 중생을 위하지 아니하고, 이양을 위하지 아니하고, 보리를 위하지 아니하고, 열반을 위하지 아니하고, 성문과 벽지불을 위하지 아니하고, 오직 가장 훌륭한 제일의[最上第一義]를 위하여서, 금하는 계율을 보호하여 가진다면 선남자여, 이것은 보살의 깨끗한 계율이 구족하다고 이름하느니라.
셋은 선지식을 친근함이니, 선지식이라 함은 믿음과 계율과 많이 아는 것과 보시와 지혜를 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 행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넷은 고요함을 좋아함이니, 고요하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고요하여 모든 법의 깊고 깊은 법계를 관찰함이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고요하다 하느니라.
다섯은 정진이니, 정진이라 함은 마음을 두어 네 가지 바른 법[四正諦]을 관찰하되, 머리에 불이 붙더라도 놓아 버리지 않는 것이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정진이라 하느니라.
여섯은 생각함이 구족함[念具足]이니, 생각이 구족하다는 것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사함을 생각함이라, 이런 것을 이름하여 생각함이 구족하다 하느니라.
일곱은 부드러운 말[軟語]이니, 부드러운 말이라 함은 진실한 말과 미묘한 말과 먼저 문안함과 때 맞추어 말함과 참된 말 등 이런 것을 이름하여 부드러운 말이 하느니라.
여덟은 법을 보호함[護法]이니, 법을 보호한다는 것은 바른 법을 사랑하여 항상 연설하기를 좋아하며, 읽고 외우고 쓰고 뜻을 생각하고, 널리 선전하여 멀리 퍼지게 하며, 만일 다른 이가 쓰고 해설하고 읽고 외우고 찬탄하고 뜻을 생각함을 보거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여 공양하되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의약으로 이바지하며, 법을 보호하기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나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법을 보호한다 하느니라.
아홉은 보살마하살이 함께 배우고 함께 계를 받은 이가 부족한 것이 있음을 보거든, 발우나 물든 옷이나 간병에 필요한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방 같은 것을 다른 데서 빌어서라도 공급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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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은 지혜를 구족함이니, 지혜라 함은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음을 관찰하며, 법의 두 가지 모양을 관찰함이니, 이른바 공함과 공하지 않은 것, 항상함과 무상한 것, 즐거움과 즐겁지 않은 것, 내가 있고 내가 없는 것, 깨끗함과 부정한 것, 이법(異法)의 끊을 것과 끊지 못할 것, 이법의 인연으로 나는 것과 이법을 인연으로 보는 것, 이법의 인연으로 생긴 과보와 이법의 인연으로 생기지 않는 과보니라. 이런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구족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열반의 무상(無相)함을 분명하게 본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순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미 불성을 보았으니, 대열반을 얻을 것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라’ 하셨사오니, 그 뜻이 어떠한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경에 말씀하기를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과보를 받고, 일천제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과보를 받고, 계행 가지는 이에게 보시하면 백천 배의 과보를 받고, 번뇌를 끊은 외도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받고, 4향(向)과 4과와 벽지불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받고, 불퇴(不退) 보살이나 최후신(最後身) 보살이나 여래 세존께 보시하면, 받는 과보의 복덕이 한량없고 가없고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다’ 하였사오니, 순타 대사(大士)가 이렇게 한량없는 과보를 받을진댄, 과보가 한량없삽거늘 어느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나이까?
세존이시여, 경에 또 말씀하기를 ‘사람이 중대한 마음으로 좋은 업이나 나쁜 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데, 이 세상에서 받기도 하고 다음 세상에서 받기도 하고 뒷세상에서 받기도 한다’ 하였나이다. 순타는 중대한 마음으로 선한 업을 지었사온즉 그 업으로 반드시 과보를 받을 터이니, 만일 반드시 과보를 받사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략삼보리를 성취하오며, 어떻게 불성을 보겠나이까? 세존이시여, 경에 또 말씀하기를 ‘세 가지 사람에게 보시하면 과보가 그지없나니, 병인과 부모와 여래라’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또 경에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에게 욕계의 업이 없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니, 색계와 무색계의 업도 그러하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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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나이다.
세존이시여, 법구게에는 ‘허공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요, 산 속도 바위 속도 아니며, 어느 곳에서도 벗어나서 업보를 받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나이다. 또 아니루타는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생각하오니 지난 옛적에 밥 한 그릇을 보시하고 8만 겁 동안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였사오니, 세존이시여, 밥 한 그릇을 보시한 과보도 그러하옵거늘, 하물며 순타가 신심으로 부처님께 보시하고 단바라밀을 구족히 성취한 것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선한 과보가 끝이 없을진댄 방등경을 비방하고 5역죄를 범하고 4중금을 깨뜨린 일천체의 죄보인들 어찌 끝이 있겠나이까. 만일 끝이 없사오면 어떻게 불성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오직 두 종류의 사람만이 한량없고 가없는 공덕을 얻어서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능히 생사에 표류하는 큰 강물을 말리고 마군과 원수를 항복받으며 마군이 이겼다는 짐대를 꺾고, 여래의 위없는 법수레를 운전하리니, 하나는 묻기를 잘함이요 둘은 대답을 잘함이니라. 선남자여, 부처님의 10력 중에 업의 힘이 가장 깊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중생들이 업의 인연에 대하여 업신여기고 믿지 아니하기에 그런 자를 제도하려고 이런 말을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업이 가벼운 것이 있고 무거운 것이 있으며, 가벼운 업과 무거운 업이 또 각각 둘이니, 하나는 결정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악한 업이 과보가 없나니, 만일 악한 업이 결정코 과보가 있다면, 어찌하여 기허전다라(氣噓旃陀羅)가 천상에 태어나고, 앙굴마라가 해탈의 과보를 얻었겠는가. 이런 이치로 보아, 지은 업으로 과보를 얻기도 하고, 과보를 얻지 않기도 하는 줄을 알겠다’ 하였는데, 나는 이런 잘못된 소견을 없애기 위하여 경에 말하기를 ‘모든 지은 업은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혹은 무거운 업을 가볍게 받을 수도 있고, 혹은 가벼운 업을 무겁게 받을 수도 있거니와,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오직 어리석고 지혜 있는 데 달렸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업이 모두 결정한 과보를 얻는 것이 아니며, 비록 얻는 것 아니나 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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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 것도 아니니라.
선남자여, 중생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혜 있는 사람이요, 둘은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지혜의 힘으로써 지옥에서 받을 중대한 업을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받을 가벼운 업을 지옥에서 중하게 받기도 하느니라.”
사자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청정한 범행도, 해탈의 과보도 구할 것이 아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범행과 해탈을 구할 것이 없지만, 결정되지 않았기에 범행과 해탈의 과보를 닦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악한 업을 멀리 여의면 선한 과보를 얻고, 선한 업을 멀리 여의면 악한 과보를 얻느니라.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을진댄 성인의 도를 닦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요, 만일 도를 닦지 아니하면 해탈이 없을 것이니라. 모든 성인이 도를 닦는 것은 결정된 업을 깨뜨리어 가벼운 과보를 얻으려 함이니, 결정되지 않은 업은 과보가 없는 연고니라. 만일 온갖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성인의 도를 닦아 구할 것이 없으려니와, 사람들이 성인의 도를 닦는 일을 여의고 해탈을 얻는다 함은 옳지 아니하고, 해탈을 얻지 않고 열반을 얻는다 함도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만일 온갖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을진댄 한평생 동안 지은 선한 업으로는 마땅히 영원히 안락을 받을 것이요, 한평생 동안 지은 악한 업으로는 마땅히 영원히 큰 고통을 받을 것이며, 업의 과보가 만일 그렇다면 도를 닦음과 해탈과 열반이 없을 것이요, 사람이 지은 것은 사람이 받고 바라문이 지은 것은 바라문이 받을 것이니라. 만일 그렇다면 하천한 종정[下姓]과 하천한 존재가 없어서, 사람은 항상 사람이요 바라문은 항상 바라문일 것이며, 젊어서 지은 업은 마땅히 젊어서 받고, 중년(中年)에나 늙어서는 받지 않을 것이다. 늙어서 나쁜 업을 짓고 지옥에 태어나면 지옥의 초년[初身]에는 받지 않을 것이요 늙어서야 받을 것이며, 만일 늙어서 살생을 않는다면 마땅히 장년(壯年)에는 장수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장년에 장수하지 아니하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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떻게 노년(老年)에 이를 수 있겠는가. 업이 없어지지 않은 까닭이며, 업이 만일 없어지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도를 닦는 일과 열반이 있겠는가.
선남자여, 업에 두 가지가 있으니, 결정된 것과 결정되지 않은 것이니라. 또 결정된 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과보가 결정된[報定] 것이요, 하나는 시기가 결정된[時定] 것이니라. 혹 과보는 결정되었으나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것은 인연이 합하면 받으며, 혹은 세 때에 받나니, 현생에 받는 것, 다음 생에 받는 것, 후생에 받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결정한 마음으로 선한 업이나 악한 업을 짓고, 지은 뒤에 신심으로 기뻐하고 원을 세워 삼보에게 공양하면, 이것을 결정한 업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은 선근이 견고하여 동요하기 어려우므로 무거운 업을 가볍게 하거니와,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이 두터우므로 가벼운 업으로 무거운 과보를 얻게 되나니, 이런 뜻으로 모든 업이 결정되었다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지옥에 갈 업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서원을 세우고 지옥에 나느니라. 선남자여, 지나간 옛적 중생의 수명이 백세이던 때에,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중생들이 지옥의 업보를 받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 큰 서원을 세우고 지옥의 몸을 받았느니라. 보살이 그 때에 그런 업이 없었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지옥의 과보를 받은 것이니라. 내가 그 때에 지옥에서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면서 죄인들을 위하여 12부경을 널리 분별하여 말하였더니, 여러 사람들이 경을 듣고는 악한 과보를 깨뜨려서 지옥이 비게 되었는데, 일천체들은 제외하였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이 현겁(賢劫) 중에 한량없는 중생들이 축생에 떨어져서 나쁜 과보를 받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는 다시 큰 서원을 내고 법을 연설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서, 혹은 노루·사슴·곰·비둘기·원숭이·용·뱀·금시조(金翅鳥)·물고기·자라·여우·토끼·소·말 따위의 몸을 받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실로 이런 축생의 업보가 없었지만, 큰 원력으로 중생을 위하여서 이런 몸을 받은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이 현겁 중에 다시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들이 아귀에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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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국물·비계·고름·피·똥·오줌·콧물·침 따위를 먹었다 뱉았다 하면서, 수명이 한량없어 백천만 년을 지내어도 장이나 물이란 이름도 듣지 못하거든, 어찌 눈으로 보고 먹을 수 있으리요. 만일 멀리 있는 물을 보고 먹을 욕심으로 가서 보면, 불더미나 고름으로 변하기도 하고, 혹시 변하지 않을 때에는 여러 사람들이 창을 들고 붙잡고 가지 못하게 하며, 혹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몸에 닿으면 불이 되나니, 이것은 나쁜 업의 과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이런 악업이 없지만,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을 얻게 하려고 서원을 세우고 이런 몸을 받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현겁 중에 백정의 집에 태어나서, 닭·돼지·소·양 따위를 기르기도 하고, 사냥하고 고기잡는 일도 하였으며, 전다라의 집에서 도둑질도 하였으니, 보살이 실로는 이런 나쁜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려고 큰 원력으로 이런 몸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현겁 중에 또 변방에 태어나서, 흔히 욕심 많고 성 잘내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며, 법답지 않은 일을 행하고 삼보와 후세의 과보를 믿지 아니하며, 부모·천척·늙은이·장로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실로 이런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그 가운데 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현겁 동안에 여인의 몸, 나쁜 몸, 탐욕의 몸, 성내는 몸, 어리석은 몸, 질투하는 몸, 간탐하는 몸, 어린 몸, 속이는 몸, 속박하는 몸을 받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은 이런 업이 없건만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그 가운데 나기를 원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런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현겁 동안에 내시의 몸, 근이 없는 몸, 근이 둘인 몸, 근이 일정하지 않은 몸을 받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실로 이런 나쁜 몸을 받을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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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그 가운데 나기를 원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런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또 현겁에서 외도 니건자의 법을 익히고 그 법을 믿었으므로, 보시도 없고 사당[祠]도 없고 보시와 사당의 과보도 없으며, 선한 업도 없고 악한 업도 없고 선한 업 악한 업의 과보도 없으며, 현재의 세상도 없고 미래의 세상도 없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으며, 성인도 없고 변화하는 몸도 없고 도와 열반도 없었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실로 이런 나쁜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이런 삿된 법을 받은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생각하니 지난 옛적에 제바달다와 더불어 함께 장사치의 우두머리가 되어 각각 5백의 장사꾼이 있었는데, 이익을 위하여 바다에 나아가 보배를 따다가, 나쁜 인연으로 폭풍을 만나서 배가 파선되고 동무들이 모두 죽었으나, 나와 제바달다만은 살생하지 않은 과보로 장수할 팔자가 되어 바람에 불려서 함께 육지에 이르렀다. 그 때에 제바달다는 보물을 탐하는 마음으로 크게 고통하면서 소리를 높여 통곡하였다. 나는 제바달다에게 통곡하지 말라고 일렀더니, 제바달다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을 들어보시오. 어떤 가난뱅이가 하도 빈궁하고 곤고하여서 무덤들이 있는 데 가서 송장을 붙들고 말하기를, 그대가 나에게 죽음의 낙을 준다면, 나는 그대에게 가난한 목숨을 주겠노라 하였소. 그 때에 송장이 일어나 앉아서 가난뱅이에게 하는 말이 선남자여, 가난한 목숨은 그대나 가지시오. 나는 이 죽음의 낙이 매우 좋아서, 그대의 빈궁하고 사는 목숨을 반가워하지 않노라 하였소. 그런데 나는 지금 죽는 낙도 없고 겸하여 빈궁하기까지 하였으니, 어떻게 울지 않겠소.’
나는 다시 위로하기를 ‘그대는 너무 근심하지 말라. 나에게 지금 두 개의 보주가 있으니 값이 한량이 없소. 한 개를 그대에게 나누어 주리라’ 하면서 한 개를 주고, 말하기를 ‘생명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런 보배를 가지는 것이지, 생명이 없으면 어떻게 가지겠소’ 하였노라. 그러고 나는 너무 고달파서 나무 아래 누워서 쉬노라니, 제바달다는 탐욕이 불같이 일어나 한 개의 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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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마저 빼앗으려고, 나쁜 마음으로 나의 눈을 찌르고 보주를 빼앗았느니라. 나는 그 때에 눈이 아파서 앓는 소리를 내었더니, 어떤 여인이 나에게 와서 묻기를 ‘당신은 왜 그렇게 고통하는가’ 하여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였더니, 여인이 듣고는 또 묻기를 ‘당신의 이름은 누구요’ 하기에 ‘나의 이름은 참말 하는 이요’ 하였다. 여인이 또 말하기를 ‘무엇으로 당신이 참말 하는 것을 증명하겠는가’ 하기에 나는 이렇게 맹세하였노라. ‘내가 만일 제바달다에게 원통한 마음이 있으면, 내 눈이 지금 모양으로 영원히 소경이 될 것이고 원통한 마음이 없으면, 눈이 도로 온전하게 될 것이오’ 하였더니,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눈이 예전과 같이 되었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세의 과보로 말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지나간 옛적에 남천축 부단나(富單那)성의 바라문 집에 났더니, 그 때에 가라부(迦羅富)라는 임금이 있는데, 성질이 포악하고 교만이 많으며 나이 젊었고 얼굴이 잘생기어 5욕락을 즐기었느니라. 나는 그 때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그 성 밖에서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었더니, 그 임금이 때마침 봄놀이를 하느라고 권속과 채녀들을 데리고 성에서 나와 구경을 다니다가 나무숲 아래서 욕락을 즐기고 있었다. 채녀들은 왕의 곁을 떠나서 구경 다니다가 나에게 왔으므로, 나는 그들의 탐욕을 끊기 위하여 법을 말하였다. 왕이 따라와서 나를 보고는 좋지 않은 마음으로 나에게 묻기를 ‘너는 아라한과를 얻었느냐’ 하기에, 나는 ‘얻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 또 묻기를 ‘아나함과를 얻었느냐’ 하기에, ‘얻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왕이 또 말하였다.
‘네가 만일 두 가지 도과를 얻지 못하였으면, 탐욕 번뇌가 구족하였을 터인데, 어찌하여 방자하게 나의 채녀들을 보느냐.’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내가 지금 탐욕의 결박을 끊지는 못하였으나, 마음에는 진실로 애착이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아, 세상에 있는 신선들이 기운을 삼키고 과실만을 먹으면서도 여색을 보면 탐심이 생기는데, 너는 한창 나이가 젊었고 탐욕을 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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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였거늘, 어찌하여 여색을 보고 애착이 없겠느냐?’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여색을 보고 애착하지 아니함은, 기운을 삼키고 과실을 먹는 데 달린 것이 아니요, 무상하고 부정한 줄로 생각하는 데 있나이다.’
왕은 또 말했다.
‘남을 업신여기고 비방을 한다면 어떻게 청정한 계율을 지킨다고 말하겠느냐?’
나는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만일 질투하는 마음이 있으면 비방도 하려니와, 나는 질투하는 마음이 없는데 왜 비방한다고 말합니까?’
왕은 또 말했다.
‘대덕이여, 어떤 것을 계행이라 하는가?’
‘대왕이여, 참는 것을 계행이라 합니다.’
왕은 또 말하였다.
‘참는 것이 계행이라면 내가 네 귀를 벨 터이니, 만일 참으면 네가 계행을 가지는 줄을 믿겠다.’
그러면서 귀를 베었으나, 나는 귀를 잘리우면서도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였다.
그 때에 왕의 신하들은 이 광경을 보고 왕에게 간하기를, ‘이런 대사를 해하지 마옵소서’ 하니, 왕은 신하들에게 ‘너희들은 이 사람이 대사인 줄을 어떻게 아느냐?’ 했다. 신하들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고통을 받으면서 얼굴빛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았나이다.’
그러자 왕은 ‘내가 다시 시험하여서 얼굴이 변하는지 않는지를 보겠다’ 하면서, 코를 베고 손발을 끊었다. 이 때에 보살은 벌써부터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상에서 자비를 닦았으므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었다.
이때에 사천왕은 분노한 마음을 품고 모래와 자갈비를 내리었다. 왕은 그것을 보고 공포를 품고 내 앞에 와서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나의 참회를 허락하소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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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이여, 나의 마음에 성내지 아니함도 애욕이 없음과 같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대덕이여, 성내는 마음이 없는 줄을 어떻게 증명하오리까?’
나는 곧 맹세하기를 ‘내가 참으로 성내는 마음이 없다면, 나의 몸이 예전과 같아지이다’ 하였더니, 이렇게 서원함을 따라서 몸이 예전과 같이 되었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세의 과보를 말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선한 업으로 다음 생에 받는 과보와 후생에 받는 과보와 나쁜 업의 과보도 이와 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모든 업이 현세에 과보를 얻게 되느니라. 나쁜 업으로 받는 현세의 과보는 왕이 나쁜 업을 지으매 하늘에서 나쁜 비를 내리는 것과 같고, 또 어떤 사람이 사냥꾼에게 곰이 있는 곳과 보배빛 사슴을 가리켜 주고 손이 떨어진 것과 같나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나쁜 업으로 현세에 받는 과보라 하느니라. 다음 생에 받는 과보는 일천제가 4중금이나 5역죄를 범한 것과 같고, 그 이후의 생에 받는 과보는, 마치 계행을 지니는 사람이 서원을 세우고 미래의 세상에도 항상 이와 같은 깨끗한 계율을 지키는 몸이 되어지이다 하다가, 중생의 수명이 백년이나 80년 되는 때에 전륜성왕이 되어서 중생을 교화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만일 업이 반드시 현세의 과보를 얻는다면, 다음 생의 과보나 그 이후 생의 과보는 얻지 못할 것이요, 보살마하살이 32대인상(大人相)의 업을 닦는 것은, 현세의 과보는 얻지 못하는 것이며, 업이 만일 세 가지의 과보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을 결정되지 않은 업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 것인즉, 범행과 해탈과 열반을 닦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요, 마의 권속인 줄을 알 것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모든 업은 결정된 것과 결정되지 않음이 있나니, 결정된 것은 현세에 받는 것, 다음 생에 받는 것, 후생에 받는 것이요, 결정되지 않은 것은 인연이 합하면 받고 합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범행과 해탈과 열반을 닦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참으로 나의 제자요 마의 권속이 아닌 줄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은 결정되지 않은 업이 많고 결정된 업은 적으니라. 그런 뜻으로 도를 닦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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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고, 도를 닦으므로 결정된 중대한 업을 가볍게 받을 수 있으며, 결정되지 않은 업은 다음 생의 업보로 받을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두 가지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결정되지 않은 과보를 결정된 과보로 만들며, 현생에 받을 과보를 다음 생에 받을 과보로 만들며, 가벼운 과보를 중한 과보로 만들어서, 인간에서 받을 과보를 지옥에서 받는 것이요, 둘은 결정된 과보를 결정되지 않은 과보로 만들며, 다음 생에 받을 것을 현생에 받게 하며, 중한 과보를 가볍게 만들어서 지옥에서 받을 것을 인간에서 가볍게 받는 것이니라. 이러한 두 사람이 하나는 어리석고 하나는 지혜로우며, 지혜 있는 이는 가볍게 하고 어리석은 이는 무겁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컨대 두 사람이 왕에게 죄를 지었을 적에 권속이 많은 이는 죄가 가벼워지고, 권속이 적은 이는 가벼운 죄도 무거워지느니라. 어리석고 지혜로운 사람도 그와 같아서, 지혜로운 이는 선한 업이 많으므로 중한 업도 가볍게 받고, 어리석은 이는 선한 업이 적으므로 가벼운 업도 무겁게 받느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살이 쪄서 건장하고 한 사람은 여위었으니, 함께 수렁에 빠졌을 적에 건장한 이는 나올 수 있으나 여윈 이는 점점 빠지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함께 독약을 먹었을 적에, 한 사람에게는 주문의 힘과 아가다약이 있고 한 사람은 없으면 주문과 약이 있는 이는 독약이 해치지 못하고 없는 이는 먹고는 곧 죽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모두 즙을 많이 먹었을 적에, 한 사람은 화기가 성하고 한 사람은 화기가 미약하거든, 화기가 성한 이는 능히 소화하지만 화기가 미약한 이는 병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함께 임금의 옥에 갇혔을 적에 한 사람은 지혜가 있고 한 사람은 어리석거든, 지혜 있는 이는 놓여날 수 있지만 어리석은 자는 놓여날 기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함께 위험한 길을 갈 적에 한 사람은 눈이 잘 보이고 한 사람은 소경이라면,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은 걱정없이 잘 가지만 소경은 구렁에 떨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먹을 적에 한 사람은 양이 크고 한 사람은 양이 적거든, 양이 큰 사람은 먹어도 근심이 없지만, 양이 적은 사람은 먹는 대로 걱정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함께 원수와 싸울 적에 한 사람은 갑주로 몸을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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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 사람은 맨몸이면, 갑주로 무장한 이는 원수를 파하지만, 맨몸인 이는 면하기 어려운 것과 같으니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더러운 것이 옷에 묻었을 적에, 한 사람은 알고 곧 빨았으나 한 사람은 알고도 빨지 않는다면, 빤 사람은 옷이 깨끗하지만 빨지 않은 사람은 옷이 점점 더러워지는 것과 같으니라. 또 두 사람이 모두 수레를 탔을 적에, 하나는 바퀴가 있고 하나는 바퀴가 없으면, 바퀴가 있는 것은 마음대로 가려니와, 바퀴가 없는 것은 한 발자국도 가지 못하느니라. 또 두 사람이 모두 먼길을 떠났을 적에 한 사람은 양식이 있고 한 사람은 그냥 간다면 양식이 있는 이는 무사하게 지나갈 수 있지만, 그냥 가는 이는 지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도적에게 겁탈을 당하였을 적에, 한 사람은 보배 광이 있고 한 사람은 광이 없으면, 보배 광이 있는 이는 근심이 없지만 광이 없는 이는 근심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어리석은 이와 지혜 있는 이도 그와 같아서, 선한 광이 있는 이는 무거운 업도 가볍게 받고 선한 광이 없는 이는 가벼운 업도 무겁게 받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업이 모두 결정된 과보를 얻는 것도 아니요, 모든 중생이 반드시 받는 것도 아니라면, 세존이시여, 어떻게 중생이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무겁게 받으며, 지옥의 무거운 업보를 현세에 가볍게 받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온갖 중생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혜 있는 이요, 하나는 어리석은 자니라.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으면 지혜 있다 이름할 것이요, 몸도 계율도 마음도 지혜도 닦지 않으면 어리석다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몸을 닦지 않는다 하는가. 만일 5정(情)의 감관을 거두어들이지 못하면 몸을 닦지 못한다 하고, 일곱 가지 깨끗한 계율[淨戒]을 받아 지니지 못하면 계행을 닦지 못한다 하고, 마음을 조복하지 못하므로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하고, 성인의 행을 익히지 못하므로,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청정한 계율의 자체를 구족하지 못함이요, 계율을 닦지 못한다 함은 여덟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둠이요, 마음을 닦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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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한다 함은 세 가지 모양을 닦지 못함이요, 지혜를 닦지 못한다 함은 범행을 닦지 못하는 연고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몸을 관찰하지 못하고 빛을 관찰하지 못하고 색상(色相)을 관찰하지 못하고 몸의 모습을 관찰하지 못하고 몸에 딸린 것[身數]을 알지 못하며, 이 몸이 여기로부터 저기에 이름을 알지 못하여 몸이 아닌 데서 몸이란 상(相)을 내고 색이 아닌 데에 색이란 상을 짓는 것이니, 그리하여 나의 몸과 몸에 딸린 것에 탐착함을 이름하여 몸을 닦지 못한다 하느니라.
계율을 닦지 못한다 함은, 만일 하열한 계를 받으면 계율을 닦는다 이름하지 못하나니, 한쪽으로 치우친 계율[邊戒]이나 자기의 이익을 위한 계율이나 자기만 조율하는 계율[自調戒]을 받아 가지고, 중생들을 널리 안락케 하지 못하며, 위없이 바른 법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고, 천상에 나서 5욕락 받기를 위하는 것은 계율을 닦는다고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함은, 마음이 산란하여 자기의 경계를 전일하게 지키지 못함이니, 자기의 경계란 것은 4념처(念處)요 다른 경계는 5욕락이니, 4념처를 닦지 못하면 마음을 닦지 못한다 이름하며, 나쁜 업 가운데서 마음을 잘 보호하지 못하면 지혜를 닦지 못한다 이름하느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이 몸이란 것이 무상하고, 머물러 있지 않고 위태하고 연약하고 잠깐잠깐 사이에 멸하는 것이어서, 마군의 경계인 줄을 깊이 관찰하지 못함이요, 계율을 닦지 못한다 함은 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함이요,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함은 선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함이요, 지혜를 닦지 못한다 함은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나의 몸과 나의 몸에 딸린 것을 탐착하여 나의 몸은 항상하여 변역함이 없다 함이요, 계율을 닦지 못한다 함은 자기의 몸을 위하여서 10악업을 지음이요,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함은 나쁜 업 가운데서 마음을 거두지 못함이요, 지혜를 닦지 못한다 함은 마음을 거두지 못하므로 선한 법 악한 법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나라는 소견을 끊지 못함이요, 계율을 닦지 못한다 함은 계율에 집착함[戒取]을 끊지 못함이요,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함은 탐욕과 성내는 업을 지어서 지옥으로 향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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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지혜를 닦지 못한다 함은 어리석은 마음을 끊지 못하는 것이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몸이 비록 허물은 없더라도 항상 원수가 되는 줄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남자에게 원수가 항상 따라다니면서 짬을 엿보거든 지혜 있는 이는 알아차리고 마음을 두어 방비하나니, 방비하지 아니하면 해를 받는 것과 같으니라.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항상 음식과 차고 더움을 따라 보호하여 기르나니 그렇게 보호하여 기르지 아니하면 곧 무너지느니라. 선남자여, 저 바라문이 불을 섬길 때에, 매양 향과 꽃으로 공양하고 찬탄하고 예배하며 백년 동안을 섬기는데, 만일 한 번만 닿더라도, 곧 사람의 손을 데이나니, 이 불을 그렇게 공양하지만 조금도 섬기는 이의 은혜를 갚을 생각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여러 해를 두고 좋은 향과 꽃과 영락과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병나면 의약으로 공급하더라도, 어쩌다가 안으로나 밖으로나 나쁜 인연만 만나면, 곧 파멸하여 버리고 지나간 날에 의복과 음식으로 이바지한 은혜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임금이 네 마리 독사를 기를 때에, 한 궤짝에 넣어서 어떤 사람에게 맡기어 기르게 하면, 네 마리 중에서 한 마리가 성을 내어도 사람을 해치므로, 이 사람이 항상 조심하고 무서워서 먹을 것을 구하여 때때로 수호하는 것과 같이 모든 중생의 4대인 독사도 그와 같아서 1대만 성내어도 곧 몸을 망가뜨리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오래도록 병이 들었으면, 마땅히 지성으로 의원을 구하여 치료하여야 하나니, 만일 부지런히 구원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항상 정신을 차려서 방일하지 말게 할 것이니, 만일 방일하면 곧 멸망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날기와는 비 바람이나 던지거나 밟는 것을 견디지 못하듯이,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기갈과 덥고 춥고 비와 바람과 때리고 얽어매고 꾸짖는 것을 견디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스럼이 곪지 않았을 적에는 잘 수호하여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며, 만일 건드리면 아픔을 참을 수 없나니,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노새가 새끼를 배면 제몸을 해롭게 하나니,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아서 속에 풍이나 냉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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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고통을 받느니라. 선남자여,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말라죽듯이,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또 파초는 속에 굳은 고갱이가 없듯이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뱀과 쥐와 이리가 각각 서로 원수라는 마음을 내듯이, 중생의 4대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거위가 무덤을 좋아하지 않듯이, 보살도 그러하여 몸이란 무덤에 탐착을 내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전다라가 7대를 계속하여 그 업을 버리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듯이, 이 몸의 종자도 그러하여 종자와 정혈(精血)이 끝까지 부정한 것이며, 부정한 연고로 부처님과 보살들이 천하게 꾸짖느니라. 선남자여, 이 몸이 마라야(摩羅耶)산에서 전단을 내는 것과 같지 아니하며, 우발라꽃·분다리꽃·첨파꽃·마리가꽃·바사가꽃을 내지 못하고, 아홉 구멍에서 농혈과 부정한 것이 항상 흐르며, 난 곳이 더럽고 추하고 미우며 온갖 벌레들과 함께 있느니라.
선남자여, 세간에서 아무리 훌륭하고 정결한 숲 동산이라도 송장이 그 가운데 이르면 부정하여져서, 여러 사람이 모두 버리고 사랑하지 아니하나니, 색계(色界)도 그와 같아서 비록 깨끗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몸이 있는 연고로 부처님과 보살들이 모두 버리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이런 관찰을 하지 못하면 몸을 닦지 않는다고 이름하느니라.
계율을 닦지 않는다 함은, 선남자여, 계율은 모든 선한 법의 사다리며, 모든 선한 법의 근본이니, 마치 땅이 모든 나무들이 나는 근본인 것과 같으며, 계율은 모든 선근을 인도하는 우두머리니, 장사치의 두목이 여러 장사꾼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 계율은 모든 선한 법의 우뚝한 짐대니, 제석천왕의 세우는 짐대와 같으며, 나쁜 병을 치료하는 약 나무와 같이 계율은 모든 악업과 3악도를 영원히 끊어 버리느니라. 계율은 생사의 험한 길을 걸어가는 양식이며, 계율은 번뇌의 도둑을 쳐부수는 병장기며, 계율은 번뇌의 독사를 없애는 주문이며, 계율은 나쁜 업을 건네는 다리라고 관찰할 것이니, 만일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면, 계율을 닦는다고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마음을 닦지 않는다 함은, 마음은 경솔하고 조급하고 요동하는 것이어서 붙잡기 어렵고 조복하기 어려우며, 멋대로 달아나기는 사나운 코끼리 같고, 잠깐잠깐 신속하기는 번갯불 같고, 경망하여 가만 있지 못함은 원숭이 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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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요술 같고 아지랑이 같아서 모든 악의 근본이 되며, 5욕락으로도 만족하지 못함은 불이 섶을 얻은 듯, 바다가 여러 강물을 삼키는 듯, 만다(曼陀)산에 초목이 무성한 듯하고 생사의 허망함은 관찰하지 못하고 탐을 내다가 환난에 부딪치는 것은, 고기가 미끼를 삼키는 듯하며, 항상 앞서서 인도하면 모든 업이 따라오는 것은, 마치 조개 어미[貝母]가 새끼들을 인도하는 듯하니라. 5욕을 탐하고 열반을 좋아하지 아니함은 마치 약대가 꿀을 먹고 죽음에 이르도록 꼴을 돌아보지 않는 듯하고 현재의 욕락만 탐착하고 뒷날의 허물을 관찰하지 못함은, 소가 여린 싹을 먹느라고 채찍을 무서워하지 않는 듯하며, 25유(有)로 두루 돌아다니는 것은, 강한 바람이 도라솜을 날리는 듯하니라.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만족함을 모르는 것은, 지각 없는 사람이 뜨겁지 않은 불을 구하는 듯하고, 매양 생사를 좋아하고 해탈을 좋아하지 아니함은, 임바(紝婆)벌레가 임바나무를 좋아하듯 하며, 미혹하여 생사의 더러움을 애착함은 옥중의 죄수가 옥졸 여인을 좋아하는 듯하고, 뒷간에 기르는 돼지가 부정한 데 있기를 좋아하는 듯하나니,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마음을 닦지 않는다 하느니라.
지혜를 닦지 않는다 함은, 지혜는 큰 세력을 가진 것이 금시조와 같아서 악한 업을 깨뜨리며, 무명의 어둠을 파함은 햇빛과 같으며, 5음의 나무를 뽑는 것은 홍수가 물건을 떠내려 보내듯 하며, 나쁜 소견을 불사름은 맹렬한 불과 같으니라. 지혜가 온갖 선한 법의 근본이며 부처님과 보살의 어머니 되는 종자임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지 않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제일의(第一義) 중에서 만일 몸과 몸의 모양과 몸의 인과 몸의 과와 몸의 모임[身聚]과 몸이 하나임[身一]과 몸이 둘임[身二]과 이 몸과 저 몸과 몸이 멸함과 몸이 평등함과 몸으로 닦음[身修]과 닦는 이를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몸을 닦지 않는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계율과 계율의 모양과 계율의 인과 계율의 과와 상계(上戒)와 하계와 계율의 모임과 계율이 하나임과 계율이 둘임과 이 계율과 저 계율과 계율이 멸함과 계율이 평등함과 계율로 닦음과 닦는 이와 계바라밀을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계율을 닦지 않는다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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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마음과 마음의 모양과 마음의 인과 마음의 과와 마음의 모임과 심왕과 심수(心數)와 마음이 하나임과 마음이 둘임과 이 마음과 저 마음과 마음이 멸함과 마음이 평등함과 마음으로 닦음과 닦는 이와 상심(上心)과 중심과 하심과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마음을 닦지 않는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지혜와 지혜의 모양과 지혜의 인과 지혜의 과와 지혜의 모임과 지혜의 하나임과 지혜의 둘임과 이 지혜와 저 지혜와 지혜의 멸함과 지혜의 평등함과 상품 지혜와 중품 지혜와 하품 지혜와 둔한 지혜와 예리한 지혜와 지혜로 닦음과 닦는 이를 본다면, 이런 소견이 있는 이는 지혜를 닦지 않는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작은 나쁜 업에도 크게 나쁜 과보를 받으며, 공포하는 연고로 항상 ‘나는 지옥에 딸렸으니 지옥으로 가리라’ 고 생각하고, 지혜 있는 이가 지옥의 고통을 말함을 듣고도, ‘쇠로는 쇠를 치고 돌로는 돌을 치고 나무는 나무를 치고 불에 있는 벌레는 불을 좋아하듯이, 지옥에 가는 몸은 지옥과 같을 것이며 설사 지옥과 같다 한들 괴로울 것이 무엇이랴’ 하고 생각하느니라. 마치 파리가 가래침에 붙어 서로 벗어나지 못하듯이, 이 사람도 그러하여 조그만 죄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며, 처음부터 뉘우치는 마음도 없고 선한 일을 닦지도 못하며 있는 허물을 숨기기만 하므로, 비록 지난 세상에 지었던 선한 업이 있어도 이 죄에 더럽혀져 이 사람의 현세에 받을 가벼운 업보도, 지옥의 중대한 나쁜 과보로 변하느니라. 선남자여, 적은 물에 소금 한 되를 넣으면 너무 짜서 마실 수 없듯이, 이 사람의 죄업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남에게 빚 한 돈을 지고도 갚지 않으면, 몸이 속박을 당하고 많은 고통을 받듯이, 이 사람의 죄업도 그와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무슨 연고로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받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이 다섯 가지 일을 갖추었으면, 현세에 받을 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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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업보를 지옥에서 받게 되느니라. 무엇이 다섯 가지 일인가. 하나는 어리석은 탓이요, 둘은 선근이 적은 탓이요, 셋은 악한 업이 무거운 탓이요, 넷은 참회하지 아니한 탓이요, 다섯은 근본 선업을 닦지 못한 탓이니라. 또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하나는 나쁜 업을 닦아 익힌 탓이요, 둘은 계율의 재산이 없는 탓이요, 셋은 모든 선근을 멀리 여읜 탓이요, 넷은 몸의 계행과 마음의 지혜를 닦지 아니한 탓이요, 다섯은 나쁜 동무를 친근한 탓이니라. 선남자여, 이런 연고로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무겁게 받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지옥에서 받을 과보를 바꾸어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아 익히되 앞서 말한 바와 같이하며, 모든 법이 허공과 같은 줄을 관찰하면서 지혜도 보지 않고 지혜로운 이도 보지 않고 어리석음도 보지 않고 어리석은 자도 보지 않고 닦음도 보지 않고 닦는 이도 보지 않으면, 그런 이는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리니, 이런 사람은 능히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을 것이며, 이런 사람은 지옥에서 받을 업보를 현세에서 가볍게 받느니라.
이런 사람은 설사 중대한 나쁜 업을 지었더라도 생각하고 관찰하여 가볍게 하며, ‘나의 업이 비록 무겁더라도 선한 업만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마치 목화가 백 근이라도 순금 한 냥을 대적하지 못하며, 항하수에 소금 한 되를 넣더라도 짠맛이 없어서 마시는 이가 알지 못하며, 억만 부자가 비록 남의 빚을 천냥 만냥을 졌더라도 그를 속박하여 괴롬을 받게 하지 못할 것이며, 큰 코끼리가 쇠사슬을 끊고 자재하게 달아나듯이, 지혜 있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항상 ‘나의 선근은 크고 나쁜 업은 미약하니 내가 능히 모두 드러내어 참회하여 나쁜 업을 없애고 지혜를 닦으면 지혜의 힘은 커지고 무명의 힘은 적어지리라’고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선지식을 친근하여 바른 지견을 닦으며, 12부경을 배우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경전을 배우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는 이를 보면 공경하는 마음을 내고, 겸하여 의복과 음식과 방과 가구와 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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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찬탄하고 존중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의 선한 일을 칭찬하고 잘못을 말하지 아니하며, 삼보께 공양하고 방등대승의 대반열반경을 공경하며, 여래는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하고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는 줄을 믿으면, 이런 사람은 능히 지옥의 중한 업보를 현세에서 가볍게 받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이치로 온갖 업이 모두 결정된 과보가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중생이 결정코 받는 것도 아니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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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26~3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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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6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품 ②

“선남자여, 또 눈으로 보는[眼見] 일이 있으니, 부처님 여래와 10주 보살은 불성을 눈으로 보느니라. 또 들어서 보는[聞見] 일이 있으니 모든 중생과 9지 보살들은 불성을 들어서 보느니라. 보살이 만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 함을 듣고, 마음에 믿음을 내지 아니하면, 들어서 본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를 보고자 하거든 마땅히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할지니라.”
사자후보살마하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오니, 어떻게 관찰하여야 알게 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진실로 여래의 마음을 알지 못하거니와, 만일 관찰하여 알고자 하면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하나는 눈으로 보는 것이요 둘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의 몸으로 하는 업을 본다면, 이것이 곧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을 눈으로 본다 하느니라. 만일 여래의 입으로 하는 업을 본다면, 이것이 곧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을 들어서 본다 하느니라. 만일 얼굴빛이 모든 중생으로는 같을 수 없는 줄을 본다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음성이 미묘하고 훌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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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의 음성과 같지 않음을 들으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의 짓는 신통이 중생을 위함인가 이양을 위함인가 하여, 중생을 위함이요 이양을 위함이 아닌 줄을 보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가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로 중생을 관찰할 때에, 이양을 위하여 말함인가 중생을 위하여 말함인가 하여, 중생을 위함이요 이양을 위함이 아닌 줄을 보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여래가 어떻게 이 몸을 받았으며 무슨 까닭으로 몸을 받았으며 누구를 위하여 몸을 받았는가 하면,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요, 만일 여래가 어떻게 법을 말하며 무슨 까닭으로 법을 말하며 누구를 위하여 법을 말하는가 관찰하면,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몸으로 짓는 나쁜 업으로 나에게 더하여도 성내지 않으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니라. 입으로 짓는 나쁜 업으로 내게 더하여도 성내지 않으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만일 보살이 처음 태어날 적에 시방으로 일곱 걸음씩 다녔고, 마니발타(摩尼跋陀)·부나발타(富那跋陀) 신장들이 깃발과 일산을 들고 한량없는 세계를 진동하매 금빛이 찬란하게 허공에 가득하였으며, 난타(難陀)용왕과 발난타(跋難陀)용왕이 신통의 힘으로 보살의 몸을 목욕시켰고, 모든 하늘의 형상들이 영접하여 예배하였으며, 아사타(阿私陀) 선인이 합장하여 공경하였고, 청년시절에는 욕락을 버리기를 침뱉듯 하여 세상 향락에 미혹하지 아니하였으며, 출가하여 수도하면서 고요한 데를 좋아하였고, 삿된 소견을 깨뜨리기 위하여 6년 동안 고행하였으며, 여러 중생에게 평등하여 둘이 없었고, 마음은 항상 선정에 있어 애초부터 산란치 아니하였으며, 얼굴과 몸매가 단정하고 그 몸을 장엄하였고, 다니는 곳마다 언덕이나 구렁이 평탄하였으며, 옷은 몸에서 네 치쯤 떨어져 있어도 흘러내리지 아니하고, 다닐 적에는 앞만 보고 좌우로 살피지 아니하며, 음식은 항상 갖춰져 있어 거르는 일이 없고, 앉고 일어나는 곳에는 풀이 요동하거나 어지럽지 아니하며,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일부러 가서 법을 말하되 마음에 교만이 없는 것을 보면,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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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보살이 일곱 걸음을 다니면서 말하기를, 이번에 나의 몸은 마지막 몸이라 하였고, 아사타 선인도 합장하고 말하기를 ‘대왕은 아십시오. 실달 태자는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요, 집에 있으면서 전륜왕이 되지 아니하리니, 왜냐 하면 32상과 80종호(種好)가 분명한 까닭입니다. 전륜왕은 상호가 분명치 못하지만 태자의 상호는 매우 분명하시니,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입니다’ 하였으며, 늙고 병들고 죽은 것을 보고는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은 참으로 가련하다. 이렇게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므로 함께 따라다니면서도 보지 못하고 항상 괴로움만 행하니 내가 마땅히 끊으리라’ 하였고, 아라라(阿羅邏) 5통 선인에게서 무상정(無想定)을 받아 성취하고는 옳지 못함을 말하고, 울다(鬱陀) 선인에게서는 생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정[非有想非無想定]을 받아 성취하고는 열반이 아니고 생사하는 법이라 말하였으며, 6년 동안 고행하고서도 얻은 바가 없어 말하기를 ‘고행을 하는 일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만일 실지가 있다면 내가 마땅히 얻었을 터인데, 허망한 연고로 얻은 바가 없으니 그것은 삿된 술법이요, 바른 도가 아니라’ 하였으며, 성도한 뒤에 범천이 권청하기를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중생을 위하여 감로의 문을 열어 위없는 법을 말씀하소서’ 하니, 여래가 말하기를 ‘범왕이여, 모든 중생들이 번뇌에 가리워져서 내가 말하는 바른 법을 듣지 못하리라’ 하였는데, 범천은 다시 여쭙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은 세 가지가 있으니, 영리한 근성과 중품 근성과 둔한 근성입니다. 영리한 근성은 받을 수 있사오니 말씀하시옵소서’ 하였다.
여래는 말하기를 ‘범왕이여, 자세히 들으라. 내가 지금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감로문을 열리라’ 하고, 바라나국에 나아가 바른 법륜을 운전하여 중도를 말하였느니라. 모든 중생이 여러 가지 결박을 깨뜨리지 아니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한 것이 아니니, 깨뜨린 것도 아니요 깨뜨리지 못한 것도 아니므로 중도라 하느니라. 중생을 제도하지 아니하였으나 제도하지 못한 것이 아니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라. 온갖 것을 이룬 것도 아니요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니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라. 무릇 말한 것이 있으나 스스로 스승이라 말하지도 않고 제자라 말하지도 아니하므로 중도라 이름하느니라. 말하는 것이 이양을 위함이 아니나 과를 얻지 못함도 아니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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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바른 말이요 진실한 말이요 때에 맞는 말이요 참된 말이며, 말을 헛되이 내지 아니하여 미묘하기가 제일이니, 이런 법을 들어서 본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마음은 실로 볼 수 없거니와,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를 보고자 할진댄 마땅히 이 두 가지 인연을 의지할 것이니라.”
이 때에 사자후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앞서 말씀하신 암라 열매는 네 가지 사람에 비유한 것이오니, 어떤 사람은 행은 세밀하나 마음이 정당[正實]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은 세밀하나 행이 정당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도 세밀하고 행도 정당하며, 어떤 사람은 마음이 세밀하지도 못하고 행이 정당하지도 못하나이다. 이 처음의 두 가지를 어떻게 아오리까?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이 두 인연에 의지하여도 알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암라의 열매를 두 가지 사람에게 비유한 것은 진실로 알기 어려우니라. 알기 어려우므로 나의 경에 말하기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하였느니라. 함께 있어도 모르겠거든 오래 있어야 하며, 오래 있어도 모르겠거든 지혜를 써야 하며, 지혜로도 모르겠거든 깊이 관찰하여야 하나니, 관찰하는 까닭으로 계행을 가짐과 파함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함께 있고 오래 있고 지혜를 쓰고 깊이 관찰하는 네 가지를 구족한 후에야, 계행을 가지고 계행을 파함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계행에 두 가지가 있고 가지는 것도 두 가지니, 하나는 끝까지의 계행이요 다른 하나는 끝까지 아닌 계행이니라. 어떤 사람이 인연이 있어서 계율을 받아 가지거든 지혜 있는 사람이면 이 사람이 가지는 계행이 이양을 위함인지 끝까지 가짐인지를 관찰할지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계율은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끝까지의 계율[究竟戒]이라 이름하니라. 이런 뜻으로 보살은 비록 나쁜 중생들의 상해함을 받더라도 성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여래는 필경까지 가지는 계행과 끝까지 가지는 계행을 성취하였다 이름하니라.
선남자여, 내가 예전에 한 번은 사리불과 5백 제자들과 함께 마가다국의 첨파(瞻婆)성에 있었다. 그 때에 사냥꾼이 비둘기 한 마리를 따라오는데, 그 비둘기가 무서워서 사리불의 그림자 속에 들어와서도 파초나무처럼 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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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나의 그림자 속에 와서는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무서운 마음이 없어졌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끝까지 가지는 계행이어서 그림자까지도 이런 힘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끝까지 아닌 계행으로는 성문이나 연각도 얻지 못하거든,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는가.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이양을 위함이요 하나는 정법(正法)을 위함이니라. 이양을 위하여서 계율을 받아 가지는 것은 그 계행으로는 불성이나 여래를 보지 못할 줄을 알지니, 비록 불성과 여래의 이름을 듣는다 하더라도 들어서 본다고 이름하지 못하거니와, 만일 정법을 위하여 계율을 받아 가지면, 이 계는 불성과 여래를 볼 수 있는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며 들어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뿌리가 깊어 뽑기 어려운 것이요, 하나는 뿌리가 얕아서 흔들리기 쉬운 것이니라. 만일 공하고 모양 없고[無相] 원이 없음[無願]을 닦아 익히면, 이를 뿌리가 깊어 뽑기 어렵다 하고, 이 3삼매를 닦지 아니하면, 비록 25유(有)를 닦더라도 이는 뿌리가 얕아 흔들리기 쉽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제 몸을 위함이요 둘은 중생을 위함이니라. 중생을 위하는 이는 불성과 여래를 보느니라. 계행을 가지는 사람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제 성품으로 가지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함이라. 만일 계를 받은 뒤에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면서도 잃어버리지 않거나, 나쁜 나라에 나거나 나쁜 친구와 나쁜 때와 나쁜 세상을 만나거나 나쁜 법을 듣거나 나쁜 소견 가진 이와 함께 있을 적에, 계를 받는 법이 없더라도 본래와 같이 계율을 가지고 범하지 아니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제 성품으로 가진다 하느니라. 만일 계사(戒師)를 만나서 네 번 아뢰어 갈마[白四羯磨]한 뒤에 계를 얻는 것은, 비록 계를 얻은 뒤에라도 모름지기 화상이나 승가나 함께 공부하는 동무들의 가르침을 의지하여야 행동할 줄을 알며, 법을 듣고 법을 말하는 데 모든 위의를 갖추나니, 이것은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제 성품으로 가지는 이는 불성과 여래를 눈으로 보는 것이며 또 들어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계율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의 계요 둘은 보살의 계니라.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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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마음을 낼 적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때까지를 보살의 계라 하고, 백골을 관하거나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까지를 성문의 계라 하나니, 성문의 계를 받아 지니면, 이 사람은 불성과 여래를 보지 못하는 줄을 알아야 하고, 보살의 계를 받아 지니면 이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불성과 여래와 열반을 볼 것임을 알지니라.”
사자후보살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금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선남자여, 마음으로 뉘우치지 아니하기 위함이니라. 어찌하여 뉘우치지 아니하는가. 낙을 받으려 함이니라. 어찌하여 낙을 받는가. 멀리 여의기 위함이니라. 어찌하여 멀리 여의는가. 편안하기 위함이니라. 어찌하여 편안한가. 선정을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선정에 드는가. 진실하게 알고 보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진실하게 알고 보는가. 생사의 모든 근심을 보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생사의 근심을 보려 하는가. 마음이 탐착하지 않으려 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마음이 탐착하지 않는가. 해탈을 얻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해탈을 얻으려 하는가. 위없는 대반열반을 얻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대반열반을 얻으려 하는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을 얻으려 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으려 하는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법을 얻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을 얻으려 하는가. 불성을 보기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제 성품으로 끝까지 깨끗한 계율을 가지느니라.
선남자여, 계율을 지니는 비구는, 비록 원을 세우고 후회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구하지 않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마음을 저절로 얻나니, 왜냐 하면 법의 성품이 그러한 까닭이니라. 비록 낙과 멀리 여읨과 편안함과 진실하게 알고 보는 것과 생사의 근심을 보는 것과 마음이 탐착하지 않음과 해탈과 열반과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과 불성을 보려 함을 구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얻나니, 왜냐 하면 법의 성품이 그러한 까닭이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세존께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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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계행을 가짐으로 인하여 후회하지 않는 과를 얻고, 해탈로 인하여 열반의 과를 얻는다면 계행은 인이 없고 열반은 과가 없겠나이다. 계행이 만일 인이 없다면 항상하다 이름할 것이요, 열반이 인이 있으면 이는 무상함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열반은 본래는 없던 것이 지금은 있는 것이니 본래 없던 것이 지금은 있다면 이는 무상한 것입니다. 마치 등불을 켜는 것과 같을 것이며, 열반이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나이고 즐겁고 깨끗하다 하오리까?”
“선남자여, 참으로 훌륭하다. 그대는 일찍이 한량없는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으므로 여래에게 이러한 깊은 이치를 묻는구나. 선남자여, 본래의 생각을 잃지 않고 이렇게 물음이로다. 내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겁 전에, 바라나성에 부처님이 나셨으니 이름이 선득(善得)이었다. 그 때에 그 부처님이 3억 년 동안에 이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시었고, 나는 그대와 더불어 저 부처님 회상에 있으면서 내가 이런 일을 그 부처님께 물었느니라. 그 때에 여래께서 중생을 위하여서 삼매에 드시고 이 뜻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대사가 능히 이러한 지난 생의 일을 기억하나니, 자세히 들으라. 그대에게 말하리라. 계행에도 인이 있으니 바른 법을 들은 것이다. 바른 법을 듣는 것도 인이 있으니 선지식을 가까이 함이다. 선지식을 가까이 함에도 인이 있으니 믿는 마음이 있음이다. 믿는 마음이 있음도 인이 있는데,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법을 들음[聽法]이요 둘은 뜻을 생각함[思性義]이니라.
선남자여, 믿는 마음은 법문 들음을 인하고 법문 들음은 믿는 마음을 인함이니, 이 두 법은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과도 되고 과의 과도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니건외도(尼乾外道)들이 틀[拒]을 세워 병(甁)을 드는 것이 인과가 되어 서로 여의지 못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무명의 연(緣)으로 행이 있고 행의 연으로 무명이 있음과 같아서, 무명과 행은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과도 되고 과의 과도 되느니라. 내지 생(生)은 능히 법을 내지만 스스로 나지는 못하나니, 스스로 나지 못하므로 생생(生生)을 말미암아 나는 것이며, 생생도 스스로 나지 못하고 생을 의지하여 나느니라. 그러므로 두 생은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과도 되고 과의 과도 되느니라. 선남자여, 믿는 마음과 법문을 들음도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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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과이고 인이 아닌 것은 대반열반이니, 무슨 까닭으로 과라 하는가. 으뜸가는 과[上果]인 까닭이며, 사문의 과며 바라문의 과며 생사를 끊었으며 번뇌를 깨뜨렸으므로 과라 하며, 모든 번뇌의 꾸짖음이 되므로 열반을 과라 이름하고, 번뇌를 허물의 허물[過過]이라 이름하니라. 선남자여, 열반은 인이 없으나 그 자체는 과이니, 왜냐 하면 났다 없어졌다 함이 없는 연고며, 지음이 없는 연고며 함이 있음이 아닌 연고며 함이 없는 법인 연고며 항상 변하지 않는 연고며 처소가 없는 연고며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만일 열반이 인이 있다면 열반이라 하지 못하리라. 반(槃)은 인(因)이란 말이요 반열(般涅)은 없다[無]는 말이니, 인이 없으므로 열반이라 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 말씀과 같이 열반이 인이 없다 하시나,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만일 없다고 한다면 여섯 가지 뜻에 맞아야 하리이다. 첫째는 끝까지 없으므로 없다고 이름하나니, 온갖 법이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음과 같음이요, 둘째는 어떤 때에 없으므로 없다고 하나니, 마치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못이나 내에 물이 없다거나, 해와 달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음이요, 셋째는 적으므로 없다고 하나니, 세상 사람들이 음식에 간이 적은 것을 간이 안 됐다 하고, 설탕물에 설탕이 적은 것을 달지 않다고 하는 것과 같음이요, 넷째는 받지 아니하였으므로 없다고 함이니, 전다라가 바라문 법을 받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바라문이 없다는 것과 같음이요, 다섯째는 나쁜 법을 받았으므로 없다고 함이니, 세상 사람들이 나쁜 법을 받은 자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다고 함과 같음이요, 여섯째는 상대가 되지 아니하므로 없다고 하나니, 마치 희지 아니한 것을 검다고, 밝음이 없는 것을 무명이라 함과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열반도 그와 같아서 어떤 때에 인이 없으므로 열반이라 이름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말하는 여섯 가지 뜻은, 어찌하여 끝까지 없는 것을 가져다가 열반에 비유하지 아니하고, 어떤 때에 없는 것을 취하였는가?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는 끝까지 인이 없음이, 마치 내가 없고 내 것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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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세상 법과 열반과는 마침내 상대가 되지 아니하므로, 여섯 가지 일은 비유가 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은 모두 내가 없지만, 이 열반은 진실로 내가 있나니, 그런 뜻으로 열반은 인이 없지만 그 자체는 과라는 것이니라. 인이요 과가 아닌 것을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인으로 생긴 것이 아니므로 인이요 과가 아니라 하며, 사문의 과가 아니므로 과가 아니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으로 인이라 하는가. 아는 인[了因]인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내는 인[生因]이요 하나는 아는 인이다. 능히 법을 내는 것을 내는 인이라 이름하고, 등불이 물건을 비치듯 함을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번뇌의 결박은 내는 인이라 하고, 중생·부모는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곡식의 씨는 내는 인이라 하고, 땅과 물과 거름은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또 내는 인이 있으니, 6바라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함이요, 또 아는 인이 있으니, 불성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함이니라. 또 아는 인이 있으니, 6바라밀 불성이요, 또 내는 인이 있으니 수릉엄삼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또 아는 인이 있으니 8정도(正道)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또 내는 인이 있으니 믿는 마음의 6바라밀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여래와 불성을 본다는 것은 뜻이 어떠하오니까? 세존이시여, 여래의 몸은 형상이 없사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있는 곳이 없어 삼계에 있지 아니하며, 함이 있는 모양이 아니며 안식(眼識)으로 볼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보겠나이까? 불성도 그러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부처의 몸이 두 가지니, 하나는 항상하고 둘은 무상하니라. 무상한 것은 모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요, 항상한 것은 여래 세존의 해탈한 몸이니, 눈으로 본다고도 하고 들어서 본다고도 하느니라. 불성도 두 가지니, 하나는 볼 수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볼 수 있는 것은 10주 보살과 부처님 세존이요, 볼 수 없는 것은 모든 중생이니라. 눈으로 본다 함은 10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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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나 부처님 여래가 중생에게 있는 불성을 눈으로 보는 것이요, 들어서 본다는 것은 온갖 중생이나 9주 보살이 불성이 있음을 듣는 것이니라. 여래의 몸이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빛[色]이요 둘은 빛이 아니니라[非色]. 빛이라 함은 여래의 해탈이요, 빛이 아니라 함은 여래가 모든 빛 모양을 영원히 끊은 까닭이니라. 불성도 두 가지니, 하나는 빛이요 둘은 빛이 아니니라. 빛이라 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빛이 아니라 함은 범부나 내지 10주 보살이니, 10주 보살이 보기를 분명히 하지 못하므로 빛이 아니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불성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빛이요 둘은 빛이 아니니라. 빛이라 함은 부처님과 보살을 말함이요, 빛이 아니라 함은 모든 중생이니라. 빛인 것은 눈으로 본다 하고, 빛이 아닌 것은 들어서 본다 이름하니라.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비록 안도 바깥도 아니나 잃어지거나 부서지는 것도 아니므로,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는 것은, 젖 속에 타락이 있는 것이나 금강역사와 같고, 부처님들의 불성은 청정한 제호와 같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라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나도 젖 속에 타락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지만 타락이 젖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타락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모든 생기는 법은 제각기 시절이 있나이다.”
“선남자여, 젖 상태일 때에는 타락이 없고 생소(生酥)와 숙소(熟酥)와, 제호도 없느니라. 모든 중생도 젖이라 할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젖 속에 타락이 없다 한 것이니라. 만일에 있다면 어찌하여 두 가지 이름을 얻지 못하여, 두 가지 기능이 있는 사람을 은장이·대장장이라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타락 상태일 때에는 젖과 생소와 숙소와 제호가 없나니, 중생도 타락이라 하면, 젖도 아니고 생소나 숙소나 제호도 아니며, 내지 제호일 때에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정인(正因)과 연인(緣因)이다. 정인이라 함은 젖에서 타락이 생기는 것과 같고, 연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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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은 효모[酵]나 따뜻함 등이니 젖에서 생기므로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젖에 타락의 성품이 없다면 각(角) 가운데도 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각 가운데서는 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각에서도 타락이 나느니라. 왜냐 하면 내가 말하기를 연인에 두 가지가 있다 하였으니, 하나는 효모요 다른 하나는 따뜻함이다. 각의 성품이 따뜻하므로 역시 타락을 내느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각이 타락을 낸다면 타락을 구하는 사람이 어찌하여 젖만 구하고 각은 찾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그러기에 내가 말하기를 정인과 연인이 있다 하였느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여쭈었다.
“만일 젖 속에 본래는 타락이 없었는데 지금 비로소 생긴다면, 젖 속에 본래 암마라나무가 없었으니, 어찌하여 암마라나무는 나지 않나이까? 두 가지가 모두 없었던 까닭이옵니다.”
“선남자여, 젖에서도 암마라나무가 나나니, 만일 젖을 부어 주면 하룻밤 동안에 다섯 자쯤 자라느니라. 그런 뜻으로 내가 두 가지 인을 말하였나니,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한 가지 인으로만 난다면, 젖 속에서 어찌하여 암마라나무는 나지 않느냐고 따질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4대가 온갖 색법(色法)의 인연이 되거니와, 빛이 제각기 달라서 같지 않나니 그런 이치로 젖 속에서 암마라나무가 나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정인과 연인의 두 가지 인이 있다 하오면, 중생의 불성은 무슨 인이라 하오리까?”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도 두 가지 인이니, 하나는 정인이요 하나는 연인이니라. 정인은 모든 중생을 말함이요 연인은 6바라밀을 말함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음을 아나이다. 왜냐 하면 세상에서 타락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젖만 찾고 물은 찾지 않는 것을 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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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선남자여, 그대가 물은 것이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마치 사람들이 얼굴을 보려고 칼을 드는 것과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그런 뜻으로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나이다. 칼에 만일 얼굴 모양이 없으면 무슨 까닭으로 칼을 들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칼 가운데 얼굴 모양이 있다면, 어찌하여 뒤바뀌겠느냐? 칼을 세우면 얼굴이 길게 보고 뉘면 얼굴이 넓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만일 자기의 얼굴이라면 어째서 길게 보이며, 만일 다른 이의 얼굴이라면 어찌하여 자기의 얼굴 그림자라 하느냐? 만일 자기의 얼굴로 인하여 다른 이의 얼굴을 본다면, 어찌하여 나귀나 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느냐?”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눈의 광명이 저기 이르므로 얼굴이 길게 보이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눈의 광명이 실제로 저기 이르는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먼 데와 가까운 데를 일시에 다 보는 까닭이며 중간에 있는 물건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눈의 광명이 저기 이르므로 본다면 모든 중생이 모두 불을 볼 적에 어찌하여 타지 않느냐? 사람이 멀리 있는 흰 물건을 볼 적에 따오기인지 깃발인지 사람인지 나무인지 의심하지 아니하리라. 광명이 이르러 간다면 어떻게 수정 속에 있는 물건이나, 물 속에 있는 고기와 돌을 보게 되느냐? 만일 이르지 않고서 본다면 어찌하여 수정 속의 물건을 보면서, 담 바깥 물건은 보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눈의 광명이 저기 이르므로 길게 본다는 말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젖에 타락이 있다면, 젖을 파는 사람이 어째서 젖 값만 받고 타락 값은 받지 않으며, 피마[騲馬]를 파는 사람이 말 값만 받고 망아지 값은 달라 하지 않느냐.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아들이 없는 까닭으로 아내를 맞았는데, 아내가 만일 아기를 배면 처녀라 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이 여자에게 아기를 낳을 성품[兒性]이 있었기에 맞았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아기를 낳을 성품이 있다면 손자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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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낳는다면, 이는 곧 형제이니, 왜냐 하면 한배에서 나온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여자에게 아기의 성품이 없다 하느니라. 만일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어찌하여 한꺼번에 다섯 가지 맛이 보이지 아니하는가. 만일 나무의 씨 속에 니구타의 다섯 길 되는 성질이 있다면 어찌하여 한꺼번에 움과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과실의 다른 모양을 보지 못하는가. 선남자여, 잎과 꽃과 과실의 다른 모양을 보지 못하는가. 선남자여, 젖빛이 때를 따라 다르고, 맛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며, 내지 제호도 그러하거늘, 어찌하여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 하겠느냐.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내일 생소를 먹을 터인데, 오늘 벌써 냄새를 걱정하는 것과 같나니, 젖 속에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다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붓과 종이와 먹으로써 글자를 이루거니와, 이 종이에는 본래 글자가 없었느니라. 본래는 없었으므로 연을 반연하여 글자를 이루는 것이니 만일 본래부터 있었다면 어찌하여 여러 가지 연을 반연하겠느냐. 마치 푸르고 누른 것이 화합하여 초록빛을 이루는 것 같아서 이 두 가지 빛에는 본래 초록빛 성품이 없는 것이니, 만일 본래 있었다면 어찌하여 화합하여서야 이루겠는가. 선남자여, 마치 중생들이 먹음을 인하여 목숨을 얻거니와 음식 속에는 실로 목숨이 없나니, 만일 본래 있었다면 먹기 전에는 음식이 목숨일 것이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들이 본래 성품이 없는 것이니, 그런 뜻으로 내가 이런 게송을 말하였느니라.

본래는 없으나 지금은 있으며
본래는 있으나 지금은 없으니
이 세상 앞세상 지나간 세상에
있다는 모든 법 옳은 곳 없나니.

선남자여, 온갖 법이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으로 없어지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들 속에 불성이 있다면, 모든 중생은 지금의 나와 같이 부처의 몸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니라. 중생의 불성은 깨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끄달리지 않고 붙잡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속박되지 아니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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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가운데 허공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모든 중생에게 다 허공이 있건만, 장애되지 아니하므로 제각기 허공 있음을 보지 못하거니와, 만일 중생에게 허공이 없다면, 가고 오고 다니고 서고 앉고 누움이 없을 것이며, 나지도 못하고 자라지도 못할 것이니라. 이런 뜻으로 나의 경 가운데 말하기를, 모든 중생에게 허공계가 있다 하였으니 허공계를 이름하여 허공이라 한다. 중생의 불성도 이와 같아 10주 보살이라야 그것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으니, 마치 금강주(金剛珠)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은 부처님의 경계요, 성문·연각으로는 알 바가 아니니라. 모든 중생들은 불성을 보지 못하는 까닭에 항상 번뇌에 얽매여서 생사에 헤매는 것이며, 불성을 보는 연고로 모든 번뇌가 속박하지 못하여 생사에서 해탈하여 대열반을 얻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에게 불성의 성질이 있는 것이, 마치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는 것과 같나이다. 만일 젖에 타락의 성품이 없다면,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정인이요 하나는 연인인데, 연인이라 함은 효모와 따뜻함이니, 허공은 성품이 없으므로 연인이 없다’ 하셨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선남자여, 만일 젖 속에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어찌하여 연인(緣因)을 필요로 하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성품이 있는 연고로 연인을 구하나니, 왜냐 하면 분명하게 보려 함입니다. 연인은 곧 아는 인이오니, 세존이시여, 마치 어둠 속에 먼저 물건이 있었기에 물건을 보려고 등불로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본래 없었으면 무엇을 등불로 비치오리까. 마치 진흙 속에 병이 있으므로, 사람과 물과 물레와 노끈과 작대기 따위로 아는 인을 삼는 것이며, 니구타의 씨가 땅과 물과 거름을 추구하여, 아는 인을 짓는 것과 같나니, 젖 속에 있는 효모와 따뜻함도 이와 같아서, 아는 인을 짓나이다. 그러므로 비록 먼저부터 성품이 있어도 아는 인을 빌려서야 보게 되나니, 젖 속에 먼저 타락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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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만일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이것이 곧 아는 인일 것이요, 만일 아는 인이라면 어찌하여 다시 알려 하겠는가. 선남자여, 만일 이 아는 인의 성품이 아는 것이라면, 항상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요, 만일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것을 알겠는가. 만일 말하기를 아는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스스로 아는 것이요, 하나는 다른 것을 아는 것이라 하면 그 뜻이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아는 인은 한 법인데 어떻게 둘이 있겠는가. 만일 둘이 있다면 젖도 마땅히 둘일 것이며, 만일 젖 속에 두 가지 모양이 없다면, 어찌하여 아는 인에만 둘이 있다 하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까지 모두 여덟 사람이다’ 하는 것과 같이, 아는 인도 그와 같아서 스스로도 알고 다른 이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아는 인이 만일 그렇다면 아는 인이 아니니, 왜냐 하면 세는 이는 제 몸[自色]과 다른 몸을 셀 수 있으므로, 여덟 사람이라 말하거니와, 이 몸의 성품은 스스로 아는 상[了相]이 없으며, 아는 상이 없으므로 지혜의 성품을 의지하여야 저와 다른 것을 셀 수 있나니, 그러므로 아는 인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다른 것도 알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불성 있는 이가 무슨 까닭으로 한량없는 공덕을 닦는가. 만일 닦는 것이 아는 인이라 한다면, 이미 타락이 없어짐[壞]과 같으니라. 만일 인 가운데 결정코 과가 있다면,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증장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없다가 스승에게서 받고 나서는 점점 증장하니, 만일 스승의 가르치는 것이 아는 인이라 한다면 스승이 가르칠 때에는 받는 사람에게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있지 않았을 것이니라. 만일 이것이 아는 인이라면 아는 것이 있지 않았을 터이니, 어떻게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알아서 증장케 하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는 인이 없다면, 어떻게 젖이 있는 것이 타락이 있다고 이름하오리까?”
“선남자여, 세상에서 물음을 대답하는 데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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츰 대답함[轉]이니, 앞에서 말함과 같이 무슨 인연으로 금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가. 뉘우치지 아니하기 위함이니라. 내지 대반열반을 얻기 위함이니라 하는 따위요, 둘은 잠자코[黙然] 대답함이니, 범지가 나에게 와서 묻기를, 내가 항상합니까 하기에, 내가 잠자코 있음과 같은 것이요, 셋은 반문하는[疑] 대답이니, 이 경에서 말한 것처럼 ‘만일 아는 인이 둘이 있다면, 젖 속에는 어찌하여 두 가지가 있지 않은가’ 하는 등이니라. 선남자여, 나는 지금 차츰차츰 대답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 젖이 있으면 타락이 있다고 하는 것은, 결정코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젖이 있는 것을 타락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느니라. 불성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있으면 불성이 있는 것이니, 마땅히 볼 수 있는 연고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과거는 이미 없어졌고, 미래는 오지 아니하였사온데, 어떻게 있다 하오리까. 만일 마땅히 있으리라 하여서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나이다. 마치 세상 사람이 현재에 아들이 없으면, 아들이 없노라 말하는 것이온데,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는 것을 어떻게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지나간 것을 있다고 함은, 가령 귤을 심어서 싹이 나고 씨가 없어졌으나, 싹도 달고 풋과일 맛도 달다가, 익고 나면 이에 시어지느니라. 선남자여, 이 신맛이 씨나 싹이나 풋과일 때에는 없었다가 익을 때의 빛과 모양을 따라서 생기는 것이니, 이 신맛은 본래는 없던 것이 지금 있는 것이다. 본래는 없던 것이 지금에 있지만 근본을 인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본래의 씨가 비록 지나갔으나 있었다고 이름할 것이니, 이런 이치로 지나간 것을 있었다고 이름하니라. 또 어찌하여 미래를 있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참깨를 심을 적에, 누가 묻기를 무엇하려고 심는가 하면, 기름이 있기에 심노라 하는 것 같나니, 실로 기름이 있는 것 아니지만 참깨가 여문 뒤에 깨를 받아서 찌고 누르면 기름이 생길 터이므로, 이 사람의 말이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이런 뜻으로 미래를 있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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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찌하여 과거를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외딴 데서 임금을 욕하였더니, 여러 해 뒤에 임금이 듣고 불러 묻기를 ‘어찌하여 나를 욕하였느냐’ 하기에, 대답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욕하지 않았나이다. 왜냐 하면 욕한 일은 이미 없어진 까닭입니다’ 하였다.
임금은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욕을 한 너와 내가 모두 있는데, 어찌하여 없어졌다 하느냐?’ 이리하여 목숨을 잃었느니라. 선남자여, 이 둘이 실로 없지만 결과는 없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을 말하여 지나간 것이 있다 하느니라.
또 어찌하여 미래를 있다 하느냐. 어떤 사람이 옹기장이에게 가서 병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옹기장이는 있다고 대답하였다. 옹기장이에게 실상은 병이 없었지만 진흙이 있으므로 병이 있다고 한 것이니, 이 사람의 말이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젖 속에 타락이 있다는 것이나,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불성을 보고자 하면 마땅히 시절과 인연을 관찰할 것이니,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나이까. 정인이 있는 까닭입니다. 무엇이 정인인가 하오면, 불성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니구타 씨에 니구타나무가 없다면 어찌하여 니구타 성씨라 하고, 가타라(佉陀羅) 씨라 이름하지 않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구담 씨를 아지야(阿坻耶) 성씨라 일컫지 못하고, 아지야도 구담이라고 일컬을 수 없는 것처럼, 니구타 씨도 그와 같아서 가타라 씨라 일컫지 못하고, 가타라 씨도 니구타 씨라고 일컬을 수 없나이다. 마치 세존이 구담 성씨를 버릴 수 없듯이,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사오니, 이런 뜻으로 중생에게 모든 불성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씨 속에 니구타가 있다고 말하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 만일에 있다면 어찌하여 보이지 않는가. 선남자여, 세간의 물건들은 인연이 있어서 보이지 않나니, 무엇을 인연이라 하는가. 멀어서 보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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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허공을 나는 새의 발자국이요, 가까워서 보이지 않음은 사람의 속눈썹이요, 망그러져서 보지 않음은 눈이 먼 이요, 생각이 어지러워서 보지 못함은 마음이 전일하지 못한 이와 같고, 작아서 보지 못함은 가는 티끌이요, 가리워서 보지 못함은 구름에 덮인 별이요, 많아서 보지 못함은 볏단 속의 삼씨와 같고, 비슷하여서 보지 못함은 콩더미에 있는 콩과 같거니와, 니구타나무는 이러한 여덟 가지와는 같지 않거늘, 만일 있다면 어찌하여 보이지 않는가. 만일 작아서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나무의 모양이 큰[麤] 까닭이니라. 만일 성품이 가늘다면 어떻게 자라겠는가. 만일 가리워서 보이지 않는다면, 항상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본디는 큰 모양이 없었는데, 지금에 큰 것을 본다 하면 이 큰 것이 본디는 보이는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며, 본디는 보이는 성품이 없었는데 지금에 볼 수 있다면 이 보는 것도 본디는 성품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니라. 씨도 그와 같아서 본디는 나무가 없던 것이 지금에 있다고 한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정인이요 다른 하나는 아는 인[了因]이라 하겠나이다. 니구타의 씨가 땅과 물과 거름으로 아는 인을 삼는 연고로, 작던 것이 커진다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본래 있었다면, 어찌 아는 인을 요구하겠는가. 만일 본디 성품이 없다면, 아는 인이 무엇을 알겠는가. 만일 니구타에 본래 큰 모양이 없건만 아는 인을 인하여 큰 모양을 내었다 하면, 어찌하여 가타라나무는 내지 않는가. 둘이 다 없던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작아서 보지 못한다면 큰 것은 볼 수 있으리라. 마치 한 티끌은 보지 못하더라도, 여러 티끌이 화합하면 볼 수 있을 것이니, 그와 같이 씨 가운데 큰 모양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속에 이미 싹과 줄기와 꽃과 과실이 있고, 낱낱 과실마다 한량없는 씨가 있고, 낱낱 씨 속에 한량없는 나무가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크다고 하느니라. 이러한 큰 것이 있으므로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니구타 씨에 니구타의 성품이 있어서 나무를 자라게 한다고 하면, 이 씨가 불에 타는 것을 볼 적에는, 이러한 타는 성품도 본래 있었다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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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며, 만일 본래 있다면 나무는 자라지 못할 것이니라. 만일 온갖 법이 본래 나고 없어짐이 있다면 어찌하여 먼저 났다가 나중에 없어지고, 한꺼번에 나고 없어지지 않는가. 이런 뜻으로 성품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니구타 씨에 본래 나무의 성품이 없는데 나무를 내었다면, 이 씨에서 어찌하여 기름은 나오지 않나이까? 둘이 마찬가지로 없는 까닭입니다.”
“선남자여, 이 씨 속에서 기름도 낼 수 있나니, 본래는 성품이 없었으나 인연으로 하여서 있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어찌하여 참깨 기름이라고 이름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참깨가 아닌 연고니라. 선남자여, 불의 인연으로는 불을 내고, 물의 인연으로는 물을 내는 것이어서, 모두 인연을 따르지만 상대되는 것이 함께 있지는 못하는 것이니라. 니구타의 씨와 참깨 기름도 그와 같아서, 모두 인연을 따르지만 제각기 서로 내지는 못하나니, 니구타 씨의 성품은 냉(冷)을 다스리고, 참깨 기름의 성품은 풍(風)을 다스리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탕수수[甘蔗]의 인연으로 석밀(石蜜)과 흑설탕이 생기나니, 비록 한 가지 인연이지만 빛과 모양이 제각기 달라서, 석밀은 열(熱)을 다스리고 흑설탕은 냉을 다스리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없고 참깨에 기름의 성품이 없고, 니구타 씨에 나무의 성품이 없고, 진흙에 병의 성품이 없고,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면,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바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고 한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않겠나이다. 왜냐 하면 사람과 하늘이 성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품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하늘도 되고 하늘이 사람도 되거니와, 이는 업의 인연으로 되는 것이요, 성품으로 되는 것이 아니겠사오며 보살마하살도 업의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겠나이다. 만일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면 무슨 인연으로 일천제(一闡提)들은 선근을 끊어 버리고 지옥에 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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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까? 만일 보리심이 불성이라면 일천제들이 끊지 못하여야 할 것이요, 만일 끊을 수 있다면 어떻게 불성이 항상하다고 말하겠나이까. 만일 항상함이 아니라면 불성이라 하지 못할 것이요, 만일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면, 어찌하여 처음으로 보리심을 낸다고 하오며, 어찌하여 비발치(毗跋致)·아비발치(阿毗跋致)라 하겠나이까? 비발치라 하면 이 사람에게는 불성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니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나아가며, 대자대비로 나고 늙고 죽음과 번뇌의 걱정을 보았고, 대반열반에는 나고 늙고 죽음과 번뇌의 걱정이 없음을 보았으며, 삼보와 업과 과보를 믿고, 계율을 받아 지니는 따위의 법을 불성이라 하리니, 만일 이런 법을 여의고 불성이 있다면, 무슨 필요로 이런 법으로써 인연을 삼았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젖은 인연을 의지하지 않고도, 반드시 타락을 이루려니와, 생소(生酥)는 그렇지 아니하여 모름지기 인연을 의지하여야 하나니, 사람의 공력과 물병과 혼합시키는 것과 노끈입니다. 중생도 그러하여 불성이 있다면, 인연을 여의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만일 결정코 있을진댄 수행하는 사람이 어찌하여 3악도의 고통과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보고, 퇴타하는 마음을 내나이까? 그리고 6바라밀을 닦지 않고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 마치 젖이 인연이 아니고도 타락을 이루는 것 같으리이다. 그러나 6바라밀을 인하지 아니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 아니오니, 이런 뜻으로 중생들에게 불성이 없음을 알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승보가 항상하다 하였사온데, 만일 항상하다면 무상이 아닐 것이며, 무상이 아니라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이까? 승보가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온갖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씀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들이 본래부터 보리심이 없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도 없었다가 뒤에 있다 하오면, 중생들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본래는 없다가 뒤에 있을 것이오니, 이런 이치로 온갖 중생이 마땅히 불성이 없으리라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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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오래전부터 불성의 이치를 알았지만 중생들을 위하여서 짐짓 이렇게 물음이리라. 모든 중생이 진실로 불성이 있건만 그대가 말하기를 중생에게 만일 불성이 있다면, 처음 보리심을 내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을 수 없다 하거니와, 선남자여, 마음은 불성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마음은 무상한 것이고 불성은 항상한 까닭이니라. 그대의 말이 어찌하여 마음이 퇴타하는가 하지만, 실로는 퇴타하는 마음이 없나니 마음이 퇴타한다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려니와, 더디게 얻게 되므로 퇴타한다고 이름하는 것이니라. 이 보리심은 실로 불성이 아니니, 왜냐 하면 일천제들이 선근을 끊고 지옥에 떨어지는 연고니라. 만일 보리심이 불성이라 하면 일천제들을 일천제라고 이름할 수 없으며, 보리심도 무상하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보리심이 결정코 불성이 아닌 것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중생에게 만일 불성이 있다면, 인연을 의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 젖이 타락되는 것과 같다고 함은, 이치가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다섯 가지 인연이 생소를 이룬다 하면, 불성도 그와 같은 줄을 알기 때문이니라. 마치 여러 가지 돌에 금도 있고 은도 있고 구리[銅]도 있고 철도 있는데, 모두 4대로 되었으며, 이름도 같고 실상도 같으나 내는 것은 각각 같지 아니하며, 반드시 중생의 복덕과 용광로와 사람의 공력 따위의 여러 가지 인연을 의지한 뒤에야 나오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본래 금의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니라. 중생의 불성도 부처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여러 가지 공덕과 인연이 화합하여 불성을 본 뒤에야 부처를 얻게 되느니라.
그대가 말하기를,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면 어찌하여 보지 못하는가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인연이 화합하지 못한 연고니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내가 두 가지 인을 말하였으니, 정인(正因)과 연인(緣因)이니라. 정인은 불성이요 연인은 보리심을 내는 것이니, 이 두 가지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 마치 돌에서 금이 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승보가 항상하다면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으리라 하거니와, 선남자여, 승가라 함은 화합(和合)이란 말이요, 화합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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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세간의 화합이요 하나는 제일의의 화합이니라. 세간의 화합은 성문승이라 하고, 제일의의 화합은 보살승이라 하나니, 세간승은 무상하고 불성은 항상하며 불성이 항상한 것처럼 제일의의 승도 그러하니라. 또 승가가 있으니 법 화합을 말하는 것이다. 법 화합은 12부경을 말함이니, 12부경이 항상한 것이므로, 내가 말하기를 법승도 항상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승가는 화합이라 이름하고, 화합은 12인연이라 하나니, 12인연 가운데도 불성이 있으며, 12인연은 항상한 것이요 불성도 그러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승가에게 불성이 있다 하느니라. 또 승가란 것은 부처님의 화합이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승가에게 불성이 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이 중생에게 만일 불성이 있다면, 어찌하여 퇴타하는 이가 있고 퇴타하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나니, 자세히 들으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세 가지 법이 있으면 퇴타하느니라. 무엇을 열세 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마음에 믿지 않음이요, 둘은 마음을 짓지 않음이요, 셋은 의심하는 마음이요, 넷은 몸과 재물을 아낌이요, 다섯은 열반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어서 어떻게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멸하게 하겠는가 함이요, 여섯은 마음에 견디지 못함이요, 일곱은 마음이 조복되지 못함이요, 여덟은 수심함이요, 아홉은 즐거워하지 않음이요, 열은 방일함이요, 열하나는 제몸을 가벼이 여김이요, 열둘은 스스로 번뇌를 보고 깨뜨릴 수 없다 함이요, 열셋은 보리에 나아가는 법을 좋아하지 아니함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열세 가지 법이라 하나니, 보살로 하여금 보리에서 퇴타하게 하느니라.
또 여섯 가지 법이 있어서 보리심을 파괴하나니, 무엇이 여섯인가. 하나는 법을 아낌이요, 둘은 모든 중생에게 선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킴이요, 셋은 나쁜 동무를 친근함이요, 넷은 부지런히 정진하지 아니함이요, 다섯은 스스로 교만함이요, 여섯은 세상 사업을 경영함이니라.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이 보리심을 파괴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부처님 세존은 인간 천상의 스승이며, 중생 중에 가장 높아서 비길 이 없으며,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훌륭하며, 법에 대한 눈이 밝아서 걸림없이 법을 보며, 큰 고통 바다에서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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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는 곧 서원을 내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마땅히 얻으리라 하고, 이런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기도 하고, 혹은 다른 이의 가르침을 듣고 보리심을 내기도 하였으나, 혹은 보살이 아승기겁 동안에 고행을 닦은 뒤에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말을 듣고는 생각하기를, ‘나는 이런 고행을 감당할 수 없으니 어떻게 얻으리요’ 하고 퇴타하는 마음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또 다섯 가지 법이 있어서 보리심을 퇴타케 하나니, 무엇이 다섯인가. 하나는 외도에 출가하기를 좋아함이요, 둘은 대자대비의 마음을 닦지 않음이요, 셋은 법사의 허물 보기를 좋아함이요, 넷은 항상 생사에 있기를 좋아함이요, 다섯은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기를 좋아하지 않음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다섯 가지 법으로 보리심을 퇴타케 한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 법으로 보리심을 퇴타케 하나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5욕락을 탐함이요, 둘은 3보를 공경하거나 존중하지 않음이니라.
이런 인연으로 보리심이 퇴타하느니라.
어떤 것을 퇴타하지 않는 마음이라 하는가.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속에서 중생을 제도하며, 스승에게 묻지 않고도 자연히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말을 듣고는, 만일 보리의 도를 얻을 수 있다면, 나도 닦아서 반드시 얻으리라 하여 이 인연으로 보리심을 내고, 짓는 공덕이 많거나 적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면서, 서원을 세우되 내가 항상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를 친근하며, 항상 깊은 법을 듣고 다섯 가지 근[五情]이 구족하며, 설사 괴롭고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이 마음을 잃지 말아지이다 하며, 또 원하기를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나에게 항상 환희한 마음을 내되, 다섯 가지 선근을 갖추어지니이다 하며, 만일 중생들이 나의 몸을 찍으며 나의 수족과 머리와 눈과 사지를 베더라도 이런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 스스로 기뻐하며, 이런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보리심이 증장케 하나니, 만일 이런 일이 없으면, 내가 무슨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있으리요 하느니라.
또 원을 세우되, 나는 근(根)이 없거나 근이 둘이거나 여인의 몸을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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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며, 남에게 얽매이지 말며 악한 주인을 만나지 말며 악한 임금에게 소속되지 말며 나쁜 나라에 나지 않게 하여지이다. 만일 좋은 몸을 얻으면 문벌이 훌륭하고 재물이 많더라도 교만을 내지 않게 하며, 내가 항상 12부경을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만일 중생을 위하여 연설하면 듣는 이가 공경하고 믿고 의심이 없으며, 나에게 대하여 나쁜 마음을 내지 않게 하여지이다. 차라리 조금 듣고 뜻을 많이 이해할지언정, 많이 듣고 뜻을 알지 못함을 원치 아니하며 마음의 스승이 되기를 원하고 마음을 스승함을 원치 아니하며,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이 악한 일과 어울리지 아니하며, 모든 중생에게 안락함을 베풀고, 몸의 계행과 마음의 지혜가 산과 같아서 동하지 아니하며, 위없는 바른 법을 받아 지니기 위하여서는 몸과 목숨과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며 부정한 물건은 복업으로 여기지 아니하며, 정당한 생업[正命]으로 살아가고 삿된 마음이 없어지이다.
은혜를 받은 때에는 작은 은혜라도 크게 갚기를 생각하며, 세상에 있는 사업과 기술을 잘 알고, 중생들의 각 지방 말을 잘 알아서 12부경을 읽고 외우고 쓰면서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아니하며, 만일 중생들이 듣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면 방편으로 인도하여 듣기를 좋아하게 하며, 말이 항상 부드러워서 나쁜 말을 하지 아니하며, 화합하지 못하는 대중은 화합하게 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이가 있으면 근심과 두려움을 여의게 하며, 흉년 드는 세상에는 풍족하게 하고, 병이 도는 세상에선 용한 의원이 되어 병에 쓰는 약이나 재물을 마음대로 하여, 앓는 이로 하여금 쾌차하게 하며, 도병겁(刀兵劫)이 생길 적에는 큰 세력이 있어서 상하고 해하려는 것을 끊어 버리고 남는 일이 없게 하며, 중생들의 가지가지 공포를 덜어 줄 것이니, 이른바 죽는 공포, 가두고 얽어매고 때리는 일, 수재, 화재, 법률을 범하고 난리가 생기는 일, 빈궁하고 파계하는 일, 나쁜 소문, 나쁜 갈래, 이런 따위의 공포를 모두 끊을 것이니라.
부모와 스승과 어른에게는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내고 원수들에게는 자비한 마음을 가지며, 항상 여섯 가지 생각함[六念]과 공삼매문(空三昧門)과 12인연과 생멸하는 관[生滅等觀]과 숨을 내쉬고[出息] 들이쉬는 것[入息]과 하늘의 행과 범행과 성행(聖行)과 금강삼매와 수릉엄정을 닦으며, 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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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없는 데서는 스스로 고요한 마음을 얻게 하며, 설사 몸과 마음으로 큰 고통을 받을 때라도 위없는 보리심을 잃지 말게 하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으로 만족한 줄을 알지 못하게 하며, 삼보가 없는 곳에서는 삿된 소견을 파할지언정 그의 도를 익히지 아니하며, 법에 자재함을 얻고 마음에 자재함을 얻으며, 함이 있는 법에는 분명하게 허물을 보고 나로 하여금 2승의 도과를 무서워하기를 목숨을 아끼는 이가 몸 버리기를 무서워하듯 하며, 중생을 위하여 세 나쁜 갈래에 있기를 좋아하기를 중생들이 도리천에 나기를 좋아하듯 하며, 낱낱 사람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겁 동안에 지옥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마음에 뉘우치지 않게 하며, 다른 이가 이익 얻음을 보고도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항상 기뻐하기를 자기가 낙을 얻은 듯이 할지니라.
삼보를 만나거든 외복과 음식과 와구와 가옥과 의약과 등과 꽃과 향과 풍악과 깃발과 일산과 7보로 공양할 것이며, 부처님의 계율을 받거든 견고하게 보호하고 범할 생각을 내지 말며, 보살들이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한다는 말을 듣거든, 환희한 마음으로 후회함을 내지 말며, 지나간 세상의 숙명(宿命)을 알고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업을 짓지 말며, 과보를 받기 위하여 인연을 모으지 말고, 현재의 낙에 탐착함을 내지 말지니라.
선남자여, 만일 이러한 서원을 내는 이가 있으면 보살이라 이름할 것이니, 보리심을 퇴타하지 아니할 것이며, 시주라고도 이름할 것이니, 여래를 뵈옵고 불성을 분명히 알 것이며, 중생들을 조복하여 생사에서 해탈케 하며, 위없는 바른 법을 보호하여 가지고, 6바라밀을 구족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퇴타하지 않는 마음을 불성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퇴타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비유하여 말하면 어떤 두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 ‘다른 지방에 7보로 된 산이 있고, 산에 맑은 샘이 있는데, 물맛이 매우 좋고, 그 산에 가는 사람은 빈궁을 영원히 면하고 그 물을 먹으면 만년을 살 수 있거니와, 길이 멀고 험하여서 가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이 함께 길을 떠나는데, 한 사람은 가지가지 행구를 준비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빈손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함께 앞으로 향하여 가다가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보물을 많이 가지고 오는데 7보가 구족하였다. 두 사람은 앞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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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물었다. ‘여보시오. 그 지방에 참으로 7보 산이 있더이까?’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참으로 있고 거짓말이 아니며 나는 보물을 많이 얻어 가졌고, 그 물도 먹었소만, 길이 험하고 도적이 많고 자갈밭 가시밭뿐이요, 물도 풀도 없어서 가는 사람은 천명 만명이나 도착한 사람은 대단히 적소.’
이 사실을 듣고 한 사람은 후회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길이 그렇게 멀고 고생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가는 사람은 많으나 도착한 사람은 몇 사람 안 된다 하니, 난들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지금 나의 살림은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는데, 거기를 가다가는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 몸을 보전하지 못하면 장수가 무슨 소용인가’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다른 이도 도착한 사람이 있으니, 나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가기만 하면 소원이 만족하여 보물도 많이 얻고 장수하는 물도 마실 것이요, 만일 이르지 못하면 죽기로 한정하리라.’ 이 때에 두 사람이 하나는 후회하여 돌아서고, 한 사람은 앞으로 가서 그 산에 당도하였다. 그래서 보물을 많이 얻었고 물도 마음껏 먹었으며, 많은 보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부모를 봉양하고 친척들까지 이바지하였다. 후회하면서 먼저 돌아왔던 사람이 이 일을 보고는 마음에 열이 나서, 저 사람이 갔다 왔는데, 난들 어찌 그냥 있으리요 하고, 곧 행장을 차려서 길을 떠났다.
7보 산은 대반열반에 비유하고, 맛나는 물을 불성에 비유하고, 두 사람은 초발심한 두 보살에 비유하고, 험악한 길은 생사에 비유하고, 길에서 만난 사람은 부처님 세존에 비유하고, 도적이 있는 것은 네 마군에 비유하고, 자갈밭 가시밭은 번뇌에 비유하고 물도 풀도 없다는 것은 보리의 도를 익히지 않는 데 비유하고, 한 사람이 돌아선 것은 퇴타한 보살에 비유하고 곧장 간 사람은 퇴타하지 않는 보살에 비유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이 항상 있어 변하지 않는 것이 저 험한 길과 같거든, 어떤 사람이 후회하고 돌아왔다고 하여서, 도가 무상하다고 말할 수 없나니, 불성도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보리의 길에 마침내 퇴타하는 이가 없나니, 선남자여, 그 때에 후회하고 돌아왔던 사람도 저번에 같이 가던 사람이 보배를 얻어 가지고 와서 형제가 자재하게 부모를 봉양하고 친척들을 도와주면서 안락하게 사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열이 나서 즉시 행장을 차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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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다시 떠나서, 몸도 돌아보지 않고 모든 곤란을 참아가면서 마침내 7보 산에 이르렀으니 퇴타하였던 보살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 말하기를 온갖 중생이나 내지 5역죄나 4중금을 범한 이와 일천제들도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였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퇴전하는 이와 퇴전하지 않는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여래의 32상을 얻는 업의 인연을 닦아 익히는 이는 퇴전하지 않는다 이름하며, 보살마하살이라 이름하며, 불퇴전이라 이름하며, 모든 중생들을 불쌍히 여긴다 이름하며, 모든 성문·연각보다 훌륭하다 이름하며, 아비발치라 이름하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계행을 가지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보시하는 마음을 옮기지 아니하며, 진실한 말에 머물기를 수미산같이 하면,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발바닥이 상자 바닥처럼 평평한 모양[奩底相]을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부모에게나 화상(和上)에게나 어른에게나 내지 축생에게까지 법다운 재물로 공양하거나 공급하면,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발바닥에 천 개의 바퀴살 무늬[千輻輪相]가 있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생명을 죽이지 아니하고 훔치지 아니하고 부모와 스승에게 항상 환희한 마음을 내면,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세 가지 잘 생긴 몸매[相好]를 얻느니라. 하나는 손가락이 가늘고 길며, 둘은 발꿈치가 길며, 셋은 몸이 방정하고 곧나니, 이 세 가지 모양은 같은 업의 인연이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4섭법[攝法]으로 중생을 이끌어들이면,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손가락 발가락 사이에 흰 거위와 같은 비단결 같은 막이 있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부모나 스승의 병들었을 적에 손수 씻고 붙들고 안마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손과 발이 보드랍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가지고 법을 듣고 보시하기를 만족함이 없이 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관절이나 복사뼈가 통통하고 원만하며, 몸의 털이 위로 쏠리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전심으로 법을 듣고 바른 교법을 연설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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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가 사슴의 다리 같으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에게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음식에는 만족함을 알며, 보시하기를 항상 좋아하고 병든 이를 보살피고 약을 주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몸이 원만하기가 니구타나무와 같고, 손이 무릎을 지나고, 정수리에 육계가 있으며, 정상을 볼 수 없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두려워하는 이를 보면 구호하여 주고, 헐벗은 이를 보고는 옷을 주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남근이 몸안에 숨어 있는 모양[陰藏相]을 얻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지혜 있는 이를 친근하고 어리석은 이를 멀리하며, 묻는 일에 대답하기 좋아하고 다니는 길을 깨끗이 쓸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살결이 보드랍고 몸의 털이 오른쪽으로 쏠리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항상 의복·음식·와구·의약·향·꽃·등불 따위로 남에게 보시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몸이 금빛 같고 늘 광명이 빛나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시할 적에, 보배로운 것들을 아낌없이 버리되 복밭인가 아닌가를 보지 아니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일곱 군데가 원만한 모양[七處滿相]을 얻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시할 적에 마음에 의심을 내지 아니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부드러운 음성을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법답게 재물을 구하여 보시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뼈마디가 원만하고 사자의 웃통 같고 팔과 팔꿈치가 원만하고 가늘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간하는 말과 욕설하는 말과 성내는 마음을 멀리 여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40개의 이가 희고 깨끗하고 가지런하고 조밀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에게 대자비를 닦으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두 송곳니가 희고 크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항상 원하기를 와서 달라는 이에게 달라는 대로 주리라 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사자와 같은 빰을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이 달라는 대로 음식을 주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맛 가운데 좋은 맛을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열 가지 선한 일을 행하고 남에게까지 교화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넓고 긴 혀를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다른 이의 단점을 들추어내지 않고, 정법을 비방하지 아니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범(梵) 음성을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원수나 미운 이를 보고 기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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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을 내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속눈썹이 검붉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다른 이의 덕을 숨기지 않고, 잘한 일을 드날리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양미간의 백호상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32상을 얻을 업의 인연을 닦으면 보리심이 퇴전하지 않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중생들을 헤아릴 수 없으며, 부처님의 경계와 업의 과보와 불성을 헤아릴 수 없느니라. 왜냐 하면 이 네 가지 법은 모두 항상한 것이며, 항상한 연고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니라. 온갖 중생은 번뇌가 덮이었으므로 항상하다 이름하며, 항상한 번뇌를 끊으므로 무상하다 하느니라. 만일 온갖 중생이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8성도를 닦아서 모든 괴로움을 끊겠는가. 모든 괴로움이 만일 끊어지면 무상하다 이름하고, 받는 낙은 항상하다 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번뇌가 덮이어서 불성을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연고로 열반을 보지 못한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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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7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 ③

사자후보살이 또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모든 법에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정인(正因)이요 하나는 연인(緣因)이오나, 이 두 가지 인으로는 묶고 푸는 것이 없으리이다. 이 5음은 잠깐잠깐 사이에 났다 없어졌다 하나니, 만일 났다 없어졌다 한다면, 누가 묶고 누가 푸나이까? 세존이시여, 이 5음으로 인하여 뒤의 5음을 내거니와, 이 5음은 스스로 멸하고 저 5음에 이르지 않으며, 비록 저 5음에 이르지 않더라도 능히 저 5음을 내나이다. 마치 씨를 인하여 싹이 나거니와 씨는 싹에 이르지 않으며, 비록 싹에 이르지 않더라도 능히 싹을 내는 것 같나이다. 중생도 그러하옵거늘 어찌하여 묶고 푼다 하오리까?”
“선남자여, 자세히 잘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목숨을 버리려고 크게 괴로울 적에 일가 친척들이 둘러앉아 울고불고 슬퍼하거든 그 사람이 공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비록 다섯 가지 정(情)이 있으나 감각이 없고, 팔 다리는 떨리어 스스로 진정하지 못하며, 몸은 식어가고 더운 기운은 다하려 하거든, 먼저 닦아 익혔던 선과 악의 과보를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해가 지려 할 적에는 산이나 언덕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나타나고, 서쪽으로 기울어질 이치가 없느니라. 중생의 업과 과보도 그와 같아서 이 5음이 없어질 때에 저 5음이 계속하여 생기나니,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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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등불이 켜지면 어둠이 없어지고, 등불이 꺼지면 어둠이 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밀랍으로 만든 인[蠟印]을 인주[泥]에 찍으면 인과 인주가 합하였다가, 인은 없어지고 글씨가 생기거니와, 밀랍으로 만든 인이 변하여서 인주에 있지도 아니하고 글씨가 인주에서 나오지도 아니하고,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요, 밀랍으로 만든 인의 인연으로 글씨가 생기느니라. 현재의 5음이 없어지면 중음신의 5음이 생기거니와, 이 현재의 5음이 변하여서 중음신의 5음이 되지도 아니하고, 중음신의 5음이 스스로 생기는 것도 아니며,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요, 현재의 5음을 인해서 중음의 5음이 생기는 것이니, 마치 밀랍으로 만든 인을 인주에 찍으면, 인이 망그러지면서 글씨가 생기는 것과 같아서 이름은 비록 차별이 없으나 시절이 제각기 다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중음신의 5음은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고, 천안(天眼)으로야 본다고 하느니라.
이 중음신에는 세 가지 먹는 것이 있으니, 하나는 생각으로 먹음[思食]이요 둘은 닿이어서 먹음[觸食]이요 셋은 뜻으로 먹음[意食]이니라. 중음신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업의 과보요, 둘은 악한 업의 과보니라. 선한 업을 인해서는 선한 알음알이[覺觀]를 얻고, 악한 업을 인해서는 악한 알음알이를 얻나니, 부모가 교접할 적에 업의 인연을 따라서 태에 들게 되는데, 어미에게는 사랑함을 내고, 아비에게는 미워함을 내며, 아비의 정수가 나올 적에는 자기의 것이라 여기고, 보고서는 기뻐서 환희한 마음을 내나니, 이 세 가지 번뇌의 인연으로 중음신의 5음이 없어지고 후생(後生)의 5음을 내는 것이, 마치 인주에 찍었던 인이 망그러지고, 글씨가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태어날 적에 모든 근이 구족하기도 하고 구족하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구족한 이는 색을 보고 탐심을 내며, 탐심을 내므로 사랑이라 하며, 광란(狂亂)하여 탐심을 내는 것을 무명이라 하느니라. 탐애(貪愛)와 무명의 두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는 경계가 모두 뒤바뀌어서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보고, 내가 없는 것을 내가 있다 보고, 낙이 없는 것을 즐겁다 보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보느니라. 네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선한 행과 악한 행을 짓나니, 번뇌는 업을 짓고 업은 번뇌를 짓는 것을 속박이라 이름하며,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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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5음이 생긴다 이름하느니라.
이 사람이 만일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나 선지식을 친근하면, 문득 12부경을 듣게 되고, 법문을 들었으므로 선한 경계를 관찰하고, 선한 경계를 관찰하므로 큰 지혜를 얻고, 지혜를 얻은 이는 바른 지견[正知見]이라 하고, 바른 지견을 얻었으므로 생사 중에서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뉘우치는 마음을 내었으므로 즐거운 마음을 내지 않고, 즐거움을 내지 아니하므로 탐심을 깨뜨리고, 탐심을 깨뜨렸으므로 8성도를 닦고, 8성도를 닦으므로 생사가 없어지고, 생사가 없어지므로 해탈을 얻었다 하나니, 불이 섶을 만나지 못한 것을 꺼졌다고 이름하는 것과 같으니라. 생사를 멸하였으므로 멸도(滅度)라 이름하나니, 이런 뜻으로 5음이 멸하였다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허공 가운데 가시가 없거늘 무엇을 뽑는다 하오며, 5음에 속박하는 이가 없다면, 어찌하여 속박이라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번뇌의 사슬로 5음을 속박하나니, 5음을 여의고 따로 번뇌가 없고, 번뇌를 여의고 따로 5음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기둥이 집을 지탱함과 같아서, 집을 여의고 기둥이 없으며, 기둥을 여의고 집이 없나니, 중생의 5음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있으므로 속박이라 하고 번뇌가 없으므로 해탈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주먹과 손바닥을 모으는 것과 결박하는 것 등 세 가지는 합하고 흩어져서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요, 다시 다른 법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중생의 5음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있으므로 속박이라 하고 번뇌가 없으므로 해탈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명과 색[名色]이 중생을 속박하였다는 말과 같나니, 명과 색이 멸하면 중생이 없거니와 명과 색을 여의고 따로 중생이 없으며, 중생을 여의고 따로 명과 색이 없지만, 명과 색이 중생을 속박한다고도 이름하고, 중생이 명과 색을 속박한다고도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치 눈이 스스로 보지 못하고, 손가락이 스스로 찌르지 못하고, 칼이 스스로 깎지 못하고, 수(受)가 스스로 받지 못하옵거늘, 어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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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여래께서 명과 색이 명과 색을 속박한다 말씀하시나이까? 왜냐 하면 명과 색이라 말하면 곧 중생이요, 중생이라 말하면 곧 명과 색이기 때문이니, 만약 명과 색이 중생을 속박한다 말하면 이는 곧 명과 색이 명과 색을 속박한다 함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두 손을 합할 적에 다른 법이 와서 합함이 없느니라. 명과 색도 그와 같나니, 이런 뜻으로 내가 말하기를 명과 색이 중생을 속박한다 하는 것이며, 만일 명과 색을 여의면 곧 해탈이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중생이 해탈한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명과 색이 있는 것을 속박이라 한다면, 아라한들이 아직 명과 색을 여의지 못한 것도 속박이라 하겠나이다.”
“선남자여, 해탈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종자를 끊음[子斷]이요, 둘은 과보를 끊음[果斷]이니라. 종자를 끊음은 번뇌를 끊음이라 하나니, 아라한은 이미 번뇌를 끊었으므로 모든 속박[結]이 무너졌느니라. 그러므로 종자의 번뇌는 속박하지 못하거니와, 과보를 끊지 못하였으므로 과보의 속박이라 이름하니라. 아라한들이 불성을 보지 못하였나니, 보지 못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과보의 속박이라고는 말할지언정, 명과 색의 속박이라고는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등불을 켜는 것과 같아서, 기름이 다하기 전에는 밝은 빛이 꺼지지 않거니와, 기름이 다하면 꺼질 것이 의심없느니라. 선남자여, 기름은 번뇌에 비유하고 등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니, 모든 중생들이 번뇌의 기름인 연고로 열반에 들지 못하거니와, 만일 번뇌를 끊는다면 열반에 드느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등과 기름은 두 성품이 각각 다르거니와, 중생과 번뇌는 그렇지 아니하여, 중생이 곧 번뇌요 번뇌가 곧 중생이며, 중생을 5음이라 하고 5음을 중생이라 하며, 5음을 번뇌라 하고 번뇌를 5음이라 하옵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등에 비유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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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비유에 여덟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수순하는 비유[順喩]요, 둘은 거슬러 하는 비유[逆喩]요, 셋은 현재에 있는 비유[現喩]요, 넷은 실제가 아닌 비유[非喩]요, 다섯은 먼저 하는 비유[先喩]요, 여섯은 뒤에 하는 비유[後喩]요, 일곱은 앞과 뒤에 하는 비유[先後喩]요, 여덟은 두루하는 비유[遍喩]니라. 어떤 것을 수순하는 비유라 하는가. 경에 말하기를 ‘하늘에서 큰비가 오면 도랑이 넘치고, 도랑이 넘치므로 작은 구렁이 넘치고, 작은 구렁이 넘치므로 큰 구렁이 넘치고, 큰 구렁이 넘치므로 큰 샘이 넘치고, 큰 샘이 넘치므로, 작은 못이 넘치고, 작은 못이 넘치므로 큰 못이 넘치고, 큰 못이 넘치므로 작은 강이 넘치고, 작은 강이 넘치므로 큰 강이 넘치고, 큰 강이 넘치므로 큰 바다가 넘치나니, 여래의 법비도 이와 같아서 중생의 계행이 만족하고, 계행이 만족하므로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 만족하므로 환희한 마음이 만족하고, 환희가 만족하므로 멀리 여의는 것이 만족하고, 멀리 여의는 일이 만족하므로 편안함이 만족하고, 편안함이 만족하므로 삼매가 만족하고, 삼매가 만족하므로 바른 지견이 만족하고 바른 지견이 만족하므로 싫어함이 만족하고, 싫어함이 만족하므로 꾸짖음이 만족하고, 꾸짖음이 만족하므로 해탈이 만족하고, 해탈이 만족하므로 열반이 만족하니라’ 한 것을 수순하는 비유라 이름하니라.
어떤 것을 거슬러 하는 비유라 하는가. 큰 바다의 근본이 있으니 큰 강이요, 큰 강의 근본이 있으니 작은 강이요, 작은 강의 근본은 큰 못이요, 큰 못의 근본은 작은 못이요, 작은 못의 근본은 큰 샘이요, 큰 샘의 근본은 작은 샘이요, 작은 샘의 근복은 큰 구렁이요, 큰 구렁의 근본은 작은 구렁이요, 작은 구렁의 근본은 도랑이요, 도랑의 근본은 큰비인 것처럼, 열반의 근본이 있으니 해탈이요, 해탈의 근본이 있으니 꾸짖음이요, 꾸짖음의 근본은 싫어함이요, 싫어함의 근본은 바른 지견이요, 바른 지견의 근본은 삼매요, 삼매의 근본은 편안함이요, 편안함의 근본은 멀리 여의는 일이요, 멀리 여의는 일의 근본은 환희한 마음이요, 환희한 마음의 근본은 후회하지 아니함이요, 후회하지 않는 근본은 계행을 가짐이요, 계행을 가지는 근본은 법비니라 하는 것은, 거슬러 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현재에 있는 비유라 하는가. 경에서 말하기를 중생의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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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같나니, 원숭이의 성품은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가짐이니라. 중생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빛과 소리와 향과 맛과 닿임과 법에 취착하여 잠시도 머무는 때가 없다고 함은 현재에 있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실제가 아닌 비유라 하는가. 내가 예전에 바사닉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어떤 믿는 사람이 사방에서 와서 각각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네 개의 큰 산이 사방으로부터 백성들을 해하려 한다고 하면 왕은 이 말을 듣고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설사 이런 일이 있어도 도피할 곳이 없으니, 다만 전심으로 계율을 지키고 보시할 뿐입니다.’
나는 이렇게 찬탄하였노라.
‘훌륭합니다. 대왕이여, 내가 말한 네 개의 산이라 함은, 곧 중생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데 비유한 것입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항상 와서 사람을 침노하거늘, 대왕은 어찌하여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행하지 않습니까?’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행하여 어떠한 과보를 얻나이까?’
나는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인간에나 천상에 태어나서 훌륭한 쾌락을 받나이다.’
왕은 또 말하기를 ‘니구타나무가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하여도, 인간에나 천상에서 쾌락을 받겠나이까?’ 하기에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니구타 나무는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행할 수가 없거니와, 그렇게 하기만 하면 쾌락을 받을 것이 다를 것 없습니다.’ 이런 것을 실제가 아닌 비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먼저 하는 비유라 하는가. 내가 경 가운데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탐내어 꽃을 꺾다가 물에 떠내려갔으니,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5욕락에 탐착하다가 나고 늙고 죽음의 물에 떠내려가느니라’ 하였으니, 이런 것을 먼저 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뒤에 하는 비유라 하는가. 『법구경』에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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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악을 가벼이 여겨
재앙이 없다 말하지 말라.
물방울이 작지만
큰 그릇을 채우느니라.

이런 것을 뒤에 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앞과 뒤에 하는 비유라 하는가. ‘마치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죽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이양을 얻는 것도 그와 같나니, 노새가 새끼를 배면 생명을 오래 보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하는 것이, 앞과 뒤에 하는 비유니라.
어떤 것을 두루하는 비유라 하는가. 경에 말하기를 ’33천에 파리질다나무가 있는데, 뿌리는 땅속으로 5유순이나 깊이 들어가고 높이는 1백 유순이요 가지와 잎은 사방으로 50유순이나 퍼지었다. 잎이 성숙하면 누렇게 되므로 하늘 사람들이 보고 환희한 마음을 내어, 이 잎은 오래지 않아 반드시 떨어지리라 하고, 잎이 떨어지면 또 환희심을 내어 이 가지가 오래지 않아 빛이 변하리라 하고, 가지의 빛이 변하면 또 환희심을 내어 이 빛이 오래지 않아 반드시 포(皰)가 생기리라 하고, 포를 보고는 또 기뻐서 이 포가 오래지 않아 꽃봉오리가 생기리라 하고, 꽃봉오리를 보고는 또 기뻐서 이 꽃봉오리가 오래지 않아 활짝 피리라 하나니, 필 적에는 향기가 50유순까지 퍼지고 광명이 80유순까지 비치나니, 그 때에 하늘 사람들이 여름 석 달 동안 그 아래서 낙을 받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제자들도 그와 같나니, 잎이 누렇게 되는 것은 나의 제자가 출가하려는 데 비유하고, 잎이 떨어짐은 나의 제자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는 데 비유하고, 빛이 변함은 나의 제자의 네 번 고하는 갈마[白四羯磨]를 하여 구족계를 받는 데 비유하고, 처음으로 포가 생기는 것은 나의 제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는 데 비유하고, 꽃봉오리는 10주 보살이 불성을 보는 데 비유하고, 꽃이 피는 것은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데 비유하고, 향기는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이 계율을 받아 갖는 데 비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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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광명은 여래의 명호가 걸림없이 시방에 두루 퍼짐에 비유하고, 여름 석 달은 세 가지 삼매에 비유하고, 33천이 쾌락을 받음은 부처님들이 대열반에 계시면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는 데 비유하였으니, 이것을 두루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릇 비유하는 것은 반드시 모두 취할 것이 아니요, 혹 조금만 취하기도 하고, 혹 많이 취하기도 하고, 혹은 전부를 취하기도 하나니, 마치 여래의 얼굴이 보름달 같다고 함은, 조금만 취한 비유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애초에 젖은 알지 못하여서 다른 이에게 젖이 어떠냐고 물었다. 대답하기를, 물과 같고 꿀과 같고 조개와 같다고 하였으니, 물은 습한 모양이고 꿀은 단 성품이고 조개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비유를 말하였으나 젖의 실상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내가 등불을 이끌어서 중생에게 비유한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물을 떠나서는 강이 없나니, 중생도 그러하여 5음을 떠나서는 따로 중생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수레 바탕과 바퀴와 바퀴살과 굴대와 덧바퀴와 수레 지붕을 떠나서는 따로 수레가 없듯이, 중생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만일 저 등불의 비유를 법에 합치하려면 자세히 잘 들으라, 내가 이제 말하리라. 심지는 25유에 비유하고, 기름은 애욕에 비유하고, 밝은 빛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둠을 깨뜨림은 무명을 없애는 데 비유하고, 더움은 성인이 도에 비유하고, 기름이 다하면 밝은 불꽃이 꺼지는 것은 중생의 애욕이 다하면 불성을 보는 데 비유한 것이다. 비록 명과 색이 있어도 속박하지 못하나니, 비록 25유에 있더라도 모든 유의 더럽힘을 받지 않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5음이 공하여 있지 않다면, 누가 가르침을 받고 도를 닦겠나이까?”
“선남자여, 온갖 중생이 모두 생각하는 마음, 지혜의 마음, 처음 내는 마음[發心], 정진하는 마음, 믿는 마음, 선정의 마음이 있나니, 이런 따위의 법이 비록 순간순간 생멸하더라도, 오히려 비슷하게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도를 닦는다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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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법이 모두 순간순간 멸하나이다. 이 잠깐잠깐 사이에 멸하는 것도 비슷하게 서로 계속하오나, 어떻게 닦아 익히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마치 등불이 비록 순간순간 멸하지만 광명이 있어 어둠을 깨뜨리나니, 생각하는 마음 등의 여러 가지 법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먹는 것이 비록 순간순간 멸하지만 굶주린 이로 하여금 배가 부르게 하며, 좋은 약도 순간순간 멸하지만 능히 병을 다스리며, 해와 달의 광명도 순간순간 멸하지만, 초목들을 자라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잠깐잠깐 사이에 멸하는데 어떻게 자라게 하겠는가 하지만, 마음이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자란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글을 읽을 적에 읽는 구절이나 글자가 한꺼번에 읽는 것이 아니어서, 앞의 것이 중간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 것이 뒤에 이르지 못하여, 사람과 글자와 마음이 모두 순간순간 멸하지만 오래오래 닦으므로 통달하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은장이가 처음 견습할 적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비록 순간순간 멸하여서 앞의 것이 뒤에 이르지 못하지만, 오래오래 익힌 연고로 교묘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잘하는 은장이라 하나니, 글을 읽고 외우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씨앗을 보고 ‘네가 싹을 내라’고 땅이 가르치지 않지만, 법의 성품인 연고로 싹이 스스로 나는 것이며, 내지 꽃도 네가 열매를 맺으라고 말하는 것 아니지만, 법의 성품인 연고로 열매가 저절로 생기나니, 중생의 도를 닦음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셈하는 법[數法]이 하나가 둘에 이르지 아니하고 둘이 셋에 이르지 아니하며 순간순간 멸하지만, 천과 만에 이르나니, 중생이 도를 닦음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저 등불이 순간순간 멸하거니와, 처음 멸하는 불꽃이 뒤의 불꽃에게 가르치기를 ‘내가 멸하거든 네가 나서 어둠을 깨뜨리라’ 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마치 송아지가 나면서 문득 젖을 찾는데 젖을 찾는 지혜는 누가 가르친 적이 없으며, 비록 순간순간 멸하지만, 처음은 주리었으나 나중에 배부르니라. 이러므로 서로 같지 않음을 많이 알지니, 만일 서로 같다면 마땅히 다른 데서 나지 않을 것이니라. 중생의 도를 닦음도 이와 같아서, 처음에는 증장하지 못하지만, 오래오래 닦으므로 모든 번뇌를 능히 깨뜨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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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수다원이 과를 증득한 뒤에는, 비록 나쁜 나라에 태어나더라도 오히려 계율을 지키어 살생과 도적질과 음행과 이간하는 말과 술을 마시는 일을 하지 아니한다 하오니, 수다원의 5음이 여기서 멸하고 나쁜 나라에 이르지 아니한다면, 도를 닦는 것도 그와 같아서 나쁜 나라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만일 서로 같다면 무슨 연고로 깨끗한 나라에 나지 않나이까? 만일 나쁜 나라의 5음은 수다원의 5음이 아니라 하오면, 어찌하여 나쁜 법을 짓지 아니할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수다원은 비록 나쁜 나라에 나더라도, 수다원의 이름을 잃지 아니하거니와, 5음은 서로 같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송아지로 비유하였느니라. 수다원은 비록 나쁜 나라에 나더라도 도력으로 말미암아 나쁜 업을 짓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향산에 사자왕이 있으므로, 모든 새와 짐승들이 이 산에는 종적을 감추고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더니, 어느 때에 이 사자왕이 설산으로 갔는데도, 온갖 새와 짐승들이 오히려 있지 못하는 것처럼, 수다원도 그와 같아서, 비록 도를 닦지 아니하더라도 도력으로 말미암아 나쁜 일을 짓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감로를 먹었으면, 감로는 비록 멸하였으나 그 세력으로 이 사람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느니라. 선남자여, 수미산에 능가리(楞伽利)라 하는 좋은 약이 있는데, 사람이 먹으면 비록 그것은 순간순간 없어지나 그 약의 효력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전륜왕이 앉는 자리에는 왕이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왕의 위력이 있는 까닭이니라. 수다원도 그와 같아서 비록 나쁜 나라에서 나서 도를 닦지 않더라도, 도력으로 말미암아 나쁜 업을 짓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수다원의 5음이 여기서 없어지고 다른 5음이 생겼다 할지라도 여전히 수다원의 5음은 잃지 않느니라. 어떤 중생이 과일을 얻기 위하여 종자를 심느라고 애를 많이 쓰며 거름을 주고 물을 대었으나 과일을 얻기 전에 종자까지 없어졌지만, 그래도 종자로 인하여 과일을 얻는다 이름하나니, 수다원의 5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재산이 매우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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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아들은 먼저 죽었고, 그 아들의 아들이 있었으나, 다른 지방에서 살았다. 그 사람이 홀연히 죽으매, 손자가 기별을 듣고 그 재산을 모두 차지하였느니라. 비록 그 재산이 자기가 모은 것이 아니지만, 그 재산을 차지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없었다. 왜냐 하면 그 내림[姓]이 같은 연고니, 수다원의 5음도 그와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이런 게송을 말씀하였나이다.

비구들이 만일에
계와 정과 지혜를 닦으면
그것은 언제나 물러가지 않고
대열반에 친근하게 되리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계를 닦는 것이며, 어떤 것이 정을 닦는 것이며, 어떤 것이 지혜를 닦는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계율을 받아 지니더라도 다만 제 몸만 위하여 인간이나 천상에서 쾌락을 받으려 하고,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지 않으며, 위없는 정법을 보호하지 않고, 자기의 이양을 위하여 3악도를 무서워하거나, 생명과 색신(色身)과 힘과 편안함과 걸림없는 변재를 위하거나, 국법과 나쁜 이름과 나쁜 소문이 두려워서, 세간 사업만을 한다면, 이렇게 계율을 가지는 것은 계를 닦는다 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참으로 계를 닦는다 하는가. 계율을 받아 지닐 때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고 정법을 보호하기 위하며,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고 알지 못하는 일을 알게 하고, 귀의할 데 없는 이를 귀의하게 하고 열반에 들지 못한 이를 열반에 들게 하기 위하며, 이렇게 계를 닦으면서도 계도 보지 않고 계의 모양도 보지 않고 계를 가지는 사람도 보지 않고 과보도 보지 않고 파계함도 보지 아니한다면, 선남자여, 이렇게 하는 이는 계를 닦는다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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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삼매를 닦는다 하는가. 삼매를 닦을 때에 스스로 해탈하기를 위하여 이양만을 위하고, 중생을 위하지 아니하며 법을 보호하기를 위하지 아니하고, 탐욕과 더러운 음식 따위의 허물을 보기 위하며, 남녀의 근(根)이나 아홉 구멍이 부정함과 소송하고 때리고 서로 살해함을 보기 위한다면, 이런 일을 위하여 삼매를 닦는 이는, 삼매를 닦는다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참으로 삼매를 닦는다 하는가. 만일 중생을 위하여 삼매를 닦되, 중생들 가운데서 평등한 마음을 얻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물러가지 않는 법을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성인의 마음을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을 얻게 하기 위하며, 위없는 법을 두호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수릉엄삼매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금강삼매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다라니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4무애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불성을 보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행을 닦을 적에, 삼매를 보지 아니하며 삼매라는 모양을 보지 아니하며 닦는 사람도 보지 아니하며 과보도 보지 아니하나니, 선남자여, 만일 능히 이렇게 한다면, 이것은 삼매를 닦는다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는가. 만일 지혜를 닦는 이가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이러한 지혜를 닦으면 해탈함을 얻어 3악도에서 벗어나리니, 누가 능히 모든 중생을 이익케 하며, 누가 능히 생사하는 갈래에서 사람을 제도하리요. 부처님께서 나시기 어려움이 우담꽃과 같나니, 내가 이제 번뇌의 결박을 끊고 해탈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마땅히 부지런히 지혜를 닦아 빨리 번뇌를 끊고 해탈을 얻으리라 하여, 이렇게 닦는 이는 지혜를 닦는다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겠는가. 만일 나고 늙고 죽는 고통을 관하되, 모든 중생들은 무명에 덮이어서 위없는 바른 도를 닦을 줄 알지 못하나니, 나의 이 몸으로 중생들을 대신하여 이 큰 고통을 받기 원하며, 중생들의 빈궁함과 미천함과 파계하는 마음과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은 죄업이 모두 나의 한 몸에 모이기를 원하며, 중생들이 탐욕으로 취(取)함을 내지 아니하여, 명과 색의 속박이 되지 아니함을 원하며, 중생들은 하루 빨리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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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를 벗어나고 나의 한 몸이 그 자리에 처하여 싫어하지 아니하기를 원하며, 모든 사람들이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원하며, 이렇게 닦을 때에 지혜를 보지 아니하고 지혜의 모양을 보지 아니하고 닦는 이도 보지 아니하고 과보도 보지 아니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렇게 계와 정과 지혜를 닦으면, 보살이라 이름할 것이요, 이렇게 계와 정과 지혜를 닦지 못하면, 성문이라 이름하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다시 이름하여 계를 닦는다 하겠는가. 모든 중생의 16가지 나쁜 율의[惡律儀]를 깨뜨릴 것이니, 무엇을 16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이익을 위하여 양이나 염소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둘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셋은 이익을 위하여 돼지 따위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넷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다섯은 이익을 위하여 소와 송아지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여섯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일곱은 이익을 위하여 닭이나 오리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여덟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아홉은 물고기를 낚는 것이요, 열은 사냥함이요, 열하나는 겁탈함이요, 열둘은 푸줏간을 경영함이요, 열셋은 새를 잡는 것이요, 열넷은 이간하는 말을 함이요, 열다섯은 옥사장이요, 열여섯은 용을 주문으로 길들이는 것이니라. 만일 중생을 위하여 이런 16가지 나쁜 직업을 끊게 하면 이것을 계를 닦는다 이름할 것이니라.
무엇을 일컬어 정을 닦는다 하는가. 모든 세간의 삼매를 능히 끊는 것이니, 이른바 무신(無身)삼매는 중생으로 하여금 뒤바뀐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 생각하게 함이요, 또 무변심(無邊心)삼매와 정취(淨聚)삼매와 세변(世邊)삼매와 세단(世斷)삼매와 세성(世性)삼매와 세장부(世丈夫)삼매와 비상비비상삼매들도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뒤바뀐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 생각하게 하느니라. 만일 이런 삼매들을 영원히 끊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정을 닦는다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다시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는가. 세간에 있는 나쁜 소견들을 깨뜨림이니라. 모든 중생이 다 나쁜 소견을 가지었으니, 이른바 색(色)이 곧 나이고, 또한 나의 것이며, 색 가운데 내가 있고, 내 가운데 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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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내지 식(識)도 그러하다 하느니라. 항상함이 곧 나이니, 색은 멸하나 나는 존재한다 하고, 색이 곧 나이니, 색이 멸하면 나도 멸한다 하는데, 어떤 사람은 짓는 이는 나라 하고 받는 이를 색이라 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는 색이라 하고 받는 이는 나라 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어 스스로 나고 스스로 멸하는 것이므로 모두 인연이 아니라 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짓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어서 모두 자재천의 조작이라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어서, 모두가 시절(時節)로 되는 것이라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나 받는 이가 모두 없고 지대[地] 등의 5대를 중생이라 이름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중생들의 이러한 나쁜 소견을 깨뜨리면, 이런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계를 닦는 것은 몸이 고요하기 위함이요, 삼매를 닦는 것은 마음이 고요하기 위함이요, 지혜를 닦는 것은 의심을 깨뜨리기 위함이며, 의심을 깨뜨림은 도를 닦아 익히기 위함이요, 도를 닦음은 불성을 보기 위함이요, 불성을 보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함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은 위없는 대열반을 얻기 위함이며, 대열반을 얻음은 중생들의 모든 생사와 온갖 번뇌와 모든 유[一切諸有]와 모든 경계[界]와 모든 진리[諦]를 끊기 위함이며, 생사를 끊고 내지 모든 진리를 끊는 것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을 얻기 위함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만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을 대반열반이라 이름한다면, 나는[生] 것도 그러하여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겠거늘, 어찌하여 열반이라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그대가 말한 것처럼, 나는 것이 비록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나 처음과 나중은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이 생사하는 법도 처음과 나중이 없나이다. 만일 처음과 나중이 없다면 항상하다 이름할 것이며, 항상하면 곧 열반이온데 어찌하여 생사를 이름하여 열반이라 하지는 않나이까?”
“선남자여, 생사하는 법은 모두 인과 과가 있나니, 인과 과가 있으므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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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열반의 자체에는 인도 과도 없는 연고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열반에도 인과 과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을 따라서 천상에 나고
인을 따라서 나쁜 갈래에 나고
인을 따라서 열반하나니
그러므로 모두 인이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예전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사문의 도과(道果)를 말하리라. 사문이라 함은 계와 정과 지혜를 갖추고 닦는 것이요, 도라 함은 8성도요, 사문의 과는 열반이니라’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열반이 이러하옵거늘, 어찌 과가 아니오니까? 어찌하여 말씀하시기를, 열반의 자체에는 인도 과도 없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내가 말한 열반의 인이라 함은 불성을 말한 것인데, 불성의 자성은 열반을 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열반은 인이 없다는 것이며, 능히 번뇌를 깨뜨리므로 대과(大果)라 하는데, 도(道)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므로 과가 없다 하나니, 그러므로 열반은 인도 없고 과도 없다 하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불성은 모두 함께 가졌나이까, 각각 가졌나이까? 함께 가졌다면 한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 모든 중생들도 함께 얻어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20명이 함께 원수진 사람이 있는데 만일 한 사람이 원수를 없앴다면, 다른 19명도 함께 원수가 없어진 것이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한 사람이 얻을 적에 다른 사람들도 얻을 것입니다. 만일 각각 가졌다면 곧 무상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셀 수가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생의 불성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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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각각 가졌다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고,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모든 부처님께서는 평등하고 허공과 같아서, 모든 중생들이 공동으로 가졌으니, 만일 8성도를 닦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분명히 보게 될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설산에 풀이 있으니 이름이 인욕(忍辱)이라. 소가 먹으면 제호가 되나니, 중생의 불성이 이와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욕초는 하나입니까, 여럿입니까? 만일 하나라면 소가 먹으면 끝날 것이요, 여럿이라면 어떻게 중생의 불성도 이와 같다 하시나이까? 부처님 말씀과 같이 8성도를 닦는 이는 불성을 보리라 하시나,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왜냐 하면 도가 만일 하나라면, 인욕초와 같아서 끝남이 있을 것이요, 만일 끝난다면 한 사람이 닦고 나면 다른 이는 닦을 분이 없을 것입니다. 도가 만일 여럿이라면 어찌하여 구족하게 닦는다고 말할 수 있겠으며, 또한 살바야 지혜[薩婆若智]라고는 이름하지 못한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치 평탄한 큰길은, 모든 중생들이 모두 그 위로 다니고 장애할 것이 없으며, 중간에 나무가 있어 그늘이 매우 서늘하여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수레를 멈추고 그 아래서 쉬어가거니와, 그 나무 그늘은 항상 있어서 옮겨가지 아니하며 없어지지도 아니하고 가지고 가는 사람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길은 성인의 도에 비유하고, 그늘은 불성에 비유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큰 성에 문이 하나뿐인데 여러 사람이 드나들지만, 아무도 막을 자가 없으며, 파괴하거나 훼손하거나 가지고 가는 자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마다 다니는 다리가 막을 사람도 없고 파괴하거나 가지고 갈 이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용한 의원이 여러 사람의 병을 모두 치료하거든, 아무도 의원을 제지하여 이 병을 다스리고 저 병은 버리라고 할 사람이 없는 것과 같나니, 성인의 도와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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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끌어대시는 여러 가지 비유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앞에 가던 사람이 길에 있으면, 뒷사람에게 방해가 되거늘, 어찌하여 장애할 것이 없다 하나이까? 다른 비유도 그러하오니 성인의 도와 불성이 그와 같다면, 한 사람이 닦을 때에 다른 이에게는 방해가 될 것입니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은 이치가 맞지 아니하니라. 내가 비유한 것은 일부분만 비유함이요, 전부를 비유한 것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세간의 도는 장애가 있으며, 이것과 저것이 달라서 평등하지 않거니와, 무루의 도는 그렇지 아니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장애가 없게 하고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이것과 저것이 다른 곳이 없느니라. 이렇게 바른 도는 모든 중생의 불성을 위하여 아는 인[了因]이 되는 것이요, 내는 인[生因]을 짓지 아니하니, 마치 밝은 등불이 물건을 비쳐 알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모두 무명의 인으로 행(行)을 반연하여 주나니, 한 사람의 무명이 행을 반연하여 주면, 다른 이는 그러한 몫이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모든 중생이 다 무명의 인이 있어서 행을 반연하여 주므로, 12인연이 모든 것에 평등하다고 말하느니라. 중생들이 닦을 무루의 바른 도(道)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번뇌와 네 가지로 태어나는[四生] 모든 경계의 유(有)의 길을 평등하게 끊느니라. 이런 뜻으로 평등하다고 이름하며, 그를 증득하는 이는 피차의 지견(知見)이 장애됨이 없으므로 살바야 지혜라 이름하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모든 중생들의 몸은 한 가지가 아니어서, 혹은 하늘의 몸이요 혹은 사람의 몸이요 혹은 축생·아귀·지옥의 몸이라, 이렇게 여러 가지 몸으로 차별하여 한결같지 아니한데, 어떻게 불성이 하나라 말씀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젖에 독약을 넣으면, 내지 제호까지도 모두 독이 있게 된다. 그러나 젖은 타락이라 이름하지 않고, 타락은 젖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며, 내지 제호도 그와 같으니라. 이름은 비록 변하였으나, 독약의 성질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섯 가지 맛 속에 두루 있으며, 모두 그와 같아서 설사 제호를 먹더라도 사람을 죽게 하거니와, 제호에 독약을 넣은 것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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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다섯 갈래로 다니면서 다른 몸을 받더라도, 불성은 항상 동일하여 변함이 없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16대국에 여섯 성이 있사오니, 사위(舍衛)성, 바기다(婆枳多)성, 첨바(瞻婆)성, 비사리성, 바라나성, 왕사성의 여섯 성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이온데, 어찌하여 여래는 큰 성을 버리고 이렇게 변방의 나쁘고 누추하고 작은 구시나성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나이까?”
“선남자여, 그대는 구시나 성이 변방이고 나쁘고 누추하고 작다고 말하지 말고, 이 성이 미묘한 공덕으로 장엄한 것임을 말하라. 왜냐 하면 부처님들과 보살들이 수행하시던 곳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미천한 사람의 집이라도, 임금이 한번 다녀가면 반드시 찬탄하기를, 이 집이 화려하고 웅장하여 복덕으로 이룩되었으므로 임금까지 거둥하였다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렸을 적에 보잘것없는 약을 먹고라도 병이 나으면, 반드시 기뻐서 찬탄하기를 이 약이 가장 훌륭하여서 내 병이 낳았다 하리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배가 별안간에 파괴되어 의지할 데 없더니, 마침 송장을 의지하여 저 언덕에 이르면, 크게 기뻐서 찬탄하기를 이 송장을 뜻밖에 만나서 내가 살아났노라 하리라. 구시나성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과 보살들이 수행하시던 곳이거늘, 어찌하여 변방이요 나쁘고 누추하고 좁다고 하겠느냐.
선남자여, 내가 기억하기로 지나간 옛적 항하의 모래 수겁 전에 선각(善覺)이란 겁이 있고, 그 때에 전륜성왕이 있으니 이름이 교시가(憍尸迦)였다. 7보를 성취되고 1천 아들을 구족하였는데, 그 임금이 이 성을 설치하였으니 사방이 12유순씩이요 7보로 장엄하고, 흐르는 강이 많은데 밝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맛나는 물이 가득하였느니라. 이른바 니련선하·이라발제하(伊羅跋提河)·히련선하(凞連禪河)·이수말퇴하(伊搜末堆河)·비파사나하(毗婆舍那河) 등의 강이 5백이며, 강의 언덕에는 수목이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아름다웠으며, 그 때에 백성들의 수명이 한량없었느니라. 그 전륜왕이 백 년을 지난 뒤에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온갖 법이 모두 무상하거니와, 열 가지 선한 법을 닦는 이는 이렇게 무상한 고통을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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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수 있으리라’ 하니,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는 모두 열 가지 선한 법을 닦았느니라.
나는 그 때에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열 가지 선한 법을 받아 지니고 생각하고 닦아 행하면서,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이 마음을 내고는 또 이 법으로 한량없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온갖 법이 무상하고 변천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느니라.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서 모든 법이 무상하여 변천하는 것이며, 오직 부처님 몸만이 항상 있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지난 옛적에 행하던 인연을 생각하므로, 지금 여기 와서 열반에 들려는 것이며, 또 이 땅의 지나간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니,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서 말하기를 나의 권속들은 받은 은혜를 갚으라고 하였느니라.
또 선남자여, 지나간 옛적 중생들의 나이가 한량없을 적에, 그 때에 이 땅의 이름이 구사발제(拘舍跋提)요, 가로와 세로가 50유순이었으며, 염부제에 사는 사람들은 닭이 날아서 서로 미칠 만큼 인접하여 살았다. 전륜왕의 이름은 선견(善見)이라, 7보가 성취되었고, 1천 아들이 구족하여 사천하에서 임금이 되었는데, 제1 태자가 바른 법을 생각하여 벽지불과를 얻었느니라. 전륜왕이 태자가 벽지불 된 것을 보니 위의가 단아하고 신통이 희유하였다. 그런 것을 보고는 즉시 임금의 지위를 침뱉듯이 버리고, 출가하여 이 사라나무 사이에서 8만 년 동안 인자한 마음[慈心]을 닦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悲非], 기뻐하는 마음[喜心], 버리는 마음[捨心]도 각각 8만 년씩 닦았느니라. 선남자여, 그 때의 선견왕은 곧 나의 몸이었으니,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러한 네 가지 법에 노닐기를 항상 좋아하는 것이며, 이 네 가지 법은 삼매라 이름하나니, 이런 뜻으로 여래의 몸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니라. 선남자여, 이런 인연으로 지금 이 구시나성의 사라나무 사이에 와서 삼매에 드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겁 전에는 이 성의 이름이 가비라(迦毗羅)였고, 그 성에 있는 임금의 이름은 백정(白淨)이요, 그 부인의 이름은 마야(摩耶)였고, 왕의 외아들은 실달다(悉達多)라 하였다. 그 왕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도 아니하고 저절로 생각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며, 두 제자가 있으니 하나는 사리불이요, 다른 하나는 목건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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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 시봉하는 제자는 아난이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쌍으로 선 나무 사이에서 이와 같은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였는데, 나도 그 때에 그 회중에 참석하여서,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 말을 듣고는 보리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스스로 원을 세워서 내가 이 다음에 부처를 이룰 적에 부모와 나라 이름과 제자와 시봉하는 사람과 법문을 말하여 교화하는 일이 지금 부처님과 같게 하여지이다 하였으며, 이 인연으로 지금 여기 와서 대반열반경을 연설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처음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적에, 빈바사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실달 태자여, 그대가 만일 전륜성왕이 되면 나는 신하가 될 것이요, 집에 있기를 좋아하지 아니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거든, 바라건대 먼저 왕사성에 와서 법을 말하여 사람을 제도하면서 나의 공양을 받으라’ 하기에, 그 때에 나는 말 없이 그의 청을 받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교살라국으로 향하였느니라. 그 때에 니련선하에 바라문이 있었으니, 성은 가섭(迦葉)이었다. 5백 제자들과 함께 그 강가에서 위없는 도를 구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일부러 가서 법을 말하였더니, 가섭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나는 지금 나이 늙어서 백스무 살이 되었고, 마가다국 사람들과 그 임금 빈바사라왕은 모두 내가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제 당신의 앞에서 법을 듣는다면, 모든 사람들이 뒤바뀐 마음을 내어서 대덕 가섭이 아라한이 아니었던가 하리니, 바라건대 구담이여, 빨리 다른 데로 가시오. 만일 이 사람들이 구담의 공덕이 나보다 나은 줄을 알게 되면, 우리들은 다시 공양을 받을 길이 없소.’
나는 그 때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가섭이여, 당신이 나를 대단히 미워하지 않을진댄 하룻밤만 쉬고 내일 아침에 가게 하시오.’
가섭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나의 마음에는 다른 생각이 없고, 당신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독한 용이 있는데 성질이 매우 포악하여서 당신을 해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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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염려되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섭이여, 독한 것 가운데는 3독보다 더 독한 것이 없는데, 나는 그것을 모두 끊었소. 그래서 세간에 독한 것은 두려울 것이 없소.’
가섭은 또 말하였다.
‘만일 두렵지 않다면 자고 가도 좋소.’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가섭을 위하여서 경에서 말한 것처럼 18 변화를 나타내었다. 가섭과 5백 권속들이 이것을 보고 듣고는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고, 이 때에 가섭은 두 동생이 있었으니 하나는 가야가섭이고, 하나는 나제가섭이며, 그들의 권속까지 모두 5백 사람인데, 역시 아라한과를 얻었느니라. 이 때에 왕사성에 있던 외도 6사(師)들이 이 소문을 듣고는, 나에게 대하여 악한 마음을 가지었다. 나는 그 때에 신의를 지키고 왕의 청을 받아서 왕사성으로 가는데, 반쯤 갔을 적에 왕이 한량없는 백천 사람으로 더불어 와서 나를 영접하였고, 나는 그들에게 법을 말하였다. 이 법문을 듣고 욕계천의 8만 6천 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빈바사라왕이 거느리고 왔던 12만 사람은 수다원과를 얻고, 한량없는 중생들이 인위의 마음[忍心]을 성취하였다. 성에 들어가서는 사리불과 대목건련과 그의 권속 2백50 사람을 제도하여, 본래의 마음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게 하고, 나는 그 성중에 있으면서 왕의 공양을 받았는데, 외도 6사들은 서로 모이어 사위성으로 나아갔느니라.
그 때에 그 사위성에 사는 수달다(須達多)라 하는 한 장자가 며느리를 맞으려고 왕사성에 왔다가 산단나사(珊檀那舍) 장자의 집에서 묵었다. 그런데 주인 장자가 밤중에 일어나서 권속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일어나서 옷을 정돈하고 방과 뜰을 깨끗하게 쓸고 음식을 장만하라’라고 했다. 수달다가 이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아마 마가다국 왕을 청하려는 것인가, 경사스러운 혼인 잔치를 하려는 것인가’ 하였다. 그리고는 장자에게 가서 물었다.
‘대사(大士)여, 마가다국의 빈바사라왕을 초청하렵니까, 즐거운 혼인 잔치가 있습니까, 무슨 일로 바쁘게 서두르십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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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거사여, 나는 아침에 위없는 법왕(法王)이신 부처님을 청하려는 것입니다.’
수달다 장자는 처음으로 부처님이란 말을 듣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래서 ‘어떤 이를 부처님이라 합니까’ 라고 물었다. 장자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당신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까? 가비라성의 석가씨 문중에 한 아들이 있으니, 이름이 실달다요 성은 구담이요, 부왕의 이름은 백정(白淨)인데, 처음 났을 적에 관상보는 이가 말하기를, 결정코 전륜성왕이 될 것이니, 마치 암라 열매를 손바닥에 놓은 듯하다고 하였더라오. 그런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버리고 출가하여서 스승도 없이 혼자 깨달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소.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이 아주 없어지고, 항상 있어서 변하지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근심과 두려운 일이 없으며, 모든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기가 마치 부모가 외아들 보듯 하며, 몸과 마음이 여러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하지만 교만한 생각이 없고, 살을 베거나 약을 발라 주거나 두 가지 일에서 마음이 한결같으며, 지혜가 통달하여 무슨 법에나 걸림이 없으며, 10력·4무소외·다섯 가지 지혜삼매와 대자대비와 3념처에 머무는 일을 구족하였으므로 부처님이라 합니다. 아침에 우리집에 오시게 되었으므로 바쁘게 서두르느라 서로 쳐다볼 겨를도 없습니다.’
수달다는 이렇게 물었다.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보살[大士]의 말과 같이 부처님의 공덕이 그지없사온데, 지금 어디 계십니까?’
장자가 대답했다.
‘이 왕사성의 가란타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십니다.’
수달다는 일심으로 부처님의 공덕이신 10력, 4무소외, 5지혜삼매, 대자대비 및 3념처를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니, 그 밝기가 대낮과 같았다. 밝은 빛을 따라서 성문까지 이르니 부처님의 신력으로 성문이 저절로 열리고, 문 밖으로 나가니 천인을 위하는 사당이 길 곁에 있었다. 수달다가 지나다가 공경하여 예배하였더니 밤은 다시 캄캄하여졌다. 무서운 생각이 나서 있던 데로 다시 돌아오려 하였더니, 그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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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어떤 천신이 있다가 수달다에게 말했다.
‘당신이 만일 부처님 계신 데 가면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오.’
수달다가 ‘어떤 것이 좋은 이익이냐’ 하고 묻자 천신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좋은 보배로 장식한 준마(駿馬)가 백 필, 향상(香象)이 백 마리, 보배 수레가 백 대, 금으로 만든 사람 백 명과 몸에 영락을 차고 있는 단정한 여인과, 여러 가지 보배로 잘 꾸민 훌륭한 궁전과 여러 가지 무늬를 아로새긴 전당과 금쟁반에는 은쌀을 담고 은쟁반에는 금쌀을 담은 것들을 각각 일백으로써 한 사람에게 보시하며, 이렇게 염부제에 있는 사람에게 모두 보시하여 얻는 공덕도 어떤 사람이 부처님 계신 데 한 걸음만 나아가려는 마음을 낸 공덕에 미치지 못합니다.’
수달다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냐?’
천신이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나는 승상(勝相) 바라문의 아들로서 당신의 옛날 선지식이오. 나는 예전에 사리불과 대목건련을 보고 환희한 마음을 낸 인연으로 몸을 버리고 북방천왕 비사문의 아들이 되어 이 왕사성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오. 나는 사리불과 목건련에게 예배하고 환희심을 낸 인연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몸을 얻었거늘, 하물며 부처님을 뵈옵고 예배하고 공양한 과보겠습니까?’
수달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는 곧 걸음을 돌려서 나에게 왔느니라. 와서는 머리를 조아려 나의 발에 예배하기에 나는 그에게 알맞게 법을 말하였더니, 장자는 법을 듣고 수다원과를 얻었으며,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청하였다.
‘대자대비하신 여래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굽어살피사 사위성에 왕림하시어 저의 변변치 못한 공양이나마 받으시옵소서.’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대의 사위성에는 우리가 묵을 만한 절이 있느냐?’
수달다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저를 가엾히 여겨 왕림하신다면, 힘을 다하여 절을 새로 짓겠나이다.’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잠자코 청함을 받았다. 수달다 장자는 허락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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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에게 말하기를 ‘저는 한 번도 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사리불을 보내시어 규모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하였다. 나는 곧 사리불에게 가서 감독하라 하였더니, 사리불은 수달다와 함께 수레를 타고 사위성으로 떠나서, 나의 신력으로 밤낮 하루 동안에 그곳에 도착하였다. 그 때에 수달다는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이 성밖에 어느 곳에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으면서 샘과 못이 많고, 훌륭한 숲과 꽃과 과일이 무성하고 한적하고 깨끗한 데가 있습니까? 나는 거기에 부처님 세존과 비구스님들을 위하여 절을 짓겠나이다.’
사리불은 이렇게 말하였다.
‘기타숲 동산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고 깨끗하고 고요하며, 샘도 시내도 많고 수목이 우거지며 꽃과 과일이 때를 따라 열리니, 거기가 절을 짓기에 가장 적당합니다.’
수달다는 그 말을 듣고는 그길로 기타 장자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내가 지금 위없는 법왕을 위하여 절을 지으려 하는데, 그대의 동산이 절터로 적당하기에 사려 하니, 허락하실 수 있겠소?’
기타가 대답하였다.
‘설사 진금을 그 땅에 가득히 깔아 놓는대도 팔 수 없습니다.’
수달다가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기타여, 숲 동산은 내것이 되었으니 그대는 금이나 받으시오.’
기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동산을 팔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금을 받겠는가?’
수달다가 말했다.
‘뜻에 맞지 않거든 나와 함께 재판관에게 가서 말합시다.’
두 장자는 함께 재판관에게 갔더니, 재판관은 이렇게 말했다.
‘숲 동산은 수달다가 차지하고 기타는 금을 받으라.’
수달다는 사람을 시켜 말과 차에 금을 실어오게 하여, 오는 대로 땅에 깔았는데 하루 동안에 5백 보밖에 금이 채 깔리지 못하였다. 기타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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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여, 만일 후회하거든 그만두어도 좋소.’
수달다가 대답하였다.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아니하오. 생각건대 몇 광의 금만 더 가져오면 넉넉할 것이오.’
기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래이신 법왕은 진실로 위가 없으시고, 말씀하는 법문은 청정하여 티가 없는가 보다. 이 사람이 그렇기에 보배를 아끼지 않는구나.’
그리고 즉시 수달다에게 말하였다.
‘아직 깔지 못한 것은 그만두시오. 그대로 당신에게 주겠소. 그리고 나는 문루를 지어서 여래께서 출입하시도록 하겠소.’
그래서 기타 장자는 문을 짓고, 수달다 장자는 이레 동안에 3백 간의 큰 집을 지었는데, 조용한 선방이 63개요, 겨울에 머무는 방과 여름에 쓰는 방이 각각 다르고, 부엌과 욕실과 발씻는 데와 대·소변 보는 곳을 모두 구비하였다. 절 짓는 역사를 마치고는 곧 향로를 받들고 멀리 왕사성을 향하여 말하였다.
‘지을 것을 모두 마치었사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사 이 절을 받으시옵소서.’
나는 그 때에 장자의 마음을 알고, 대중을 데리고 왕사성을 떠나서 장사가 팔 한 번 굽힐 동안에 사위성의 기타숲 동산 수달다의 절에 이르렀더니, 수달다 장자는 그 절을 나에게 보시하고, 나는 그것을 받아 그 가운데 머물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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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4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 ⑥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아홉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는 데는 처음에 다섯 가지 마음을 내어 모두 성취하나니, 무엇이 다섯인가. 믿음[信]과 곧은 마음[直心]과 계행[戒]과 선지식을 친근함[親近善友]과 많이 아는 것[多聞]이니라.
어떤 것을 믿음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삼보를 믿고, 보시에 과보가 있음을 믿고, 두 가지 진실한 이치[二諦]를 믿고, 1승의 도에 다른 길이 없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빨리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이 분별하여 3승을 만든 것을 믿고, 제일의제를 믿고, 좋은 방편을 믿음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믿음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믿는 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모든 중생이 깨뜨리지 못하며, 이렇게 믿으므로 성인의 성품을 얻어 보시를 행하면, 많거나 적거나 모두 대반열반에 가까워지고 생사에 떨어지지 아니하니라. 계행 가짐과 많이 들음과 지혜도 그와 같나니, 이것을 믿음이라 하느니라. 비록 이런 믿음이 있더라도 또한 견해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는 데, 첫 번째 일을 성취함이니라.
어떤 것을 곧은 마음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중생에게 대하여 질직한 마음을 짓나니, 모든 중생들은 인연을 만나면 아첨하고 굽은 마음을 내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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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법이 다 인연인 줄을 아는 까닭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비록 중생들의 나쁜 허물을 보더라도 말하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번뇌가 생길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만일 번뇌가 생기면 나쁜 갈래에 떨어지느니라. 보살이 만일 중생에게 선한 일이 있음을 보면 칭찬하나니, 무엇을 선한 일이라 하는가. 불성을 말함이니라. 불성을 칭찬하므로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보살마하살이 불성을 칭찬하여 한량없는 중생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한다 하시오나, 그 뜻이 그렇지는 않겠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 처음 열반경을 펴실 적에 세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하나는 어떤 병난 사람이 용한 의원과 약과 간병할 사람을 만나면 병이 쉽게 나으려니와, 만나지 못하면 나을 수 없고, 둘은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병이 나을 수 없고, 셋은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병이 나을 것이니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만일 선지식이나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묘한 법문을 들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려니와, 만나지 못하면 내지 못하나니, 이들은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이요, 둘은 아무리 선지식·부처님·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들어도 보리심을 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여도 내지 못하나니 그들은 일천제요, 셋은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나니, 그들은 보살이라’ 하셨나이다. 만일 만나거나 만나서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다고 할진댄, 어찌하여 지금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성을 칭찬함을 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한다 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선지식·부처님·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지 못한다 하시거나, 이 이치도 옳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이런 사람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까닭이오니, 일천제들도 불성이 있으므로 법문을 듣거나 듣지 않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까닭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일천제라 하는가. 선근을 끊은 것이라’ 하였사오나, 이 이치도 그렇지 않사오니, 왜냐 하면 불성을 끊지 못하는 까닭이옵니다.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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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불성은 끊을 수 없삽거늘,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근을 끊었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예전에 12부경을 말씀하실 적에 선근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항상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무상한 것이라. 항상한 것은 끊어지지 않고 무상한 것은 끊어진다 하셨나이다. 무상한 것은 끊어질 수 있기에 지옥에 떨어지려니와, 항상한 것은 끊어지지 않는데, 어찌하여 지옥에 떨어짐을 막지 못하오리까. 불성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일천제가 아니온데,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일천제라는 말을 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불성을 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다 하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중생들을 위하여 12부경을 말씀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4대하가 아뇩달못에서 흘러내리는데, 천상 사람 세간 사람이나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근원으로 돌아간다 하오면, 옳지 않나이다. 보리심도 그와 같아서 불성이 있는 이는 법을 듣거나 듣지 않거나, 계행을 지키거나 지키지 않거나, 보시하거나 보시하지 않거나, 닦거나 닦지 않거나, 지혜롭거나 지혜롭지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이다. 세존이시여, 우다연산에서 뜬 해가 남쪽까지 왔다가 생각하기를, 나는 서쪽을 가지 않고 도로 동쪽으로 가겠다 한다면 옳지 아니한 것이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법을 듣지 않고 계율을 지니지 않고 보시하지 않고 닦지 않고 지혜롭지 않다고 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다 함은 옳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여래께서 인과의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말씀하거니와, 그 이치도 옳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만일 우유 속에 타락의 성품이 없다면 타락이 생기지 못할 것이며, 니구타 씨에 다섯 길[五丈]만큼 자랄 성품이 없으면 다섯 길 되는 나무를 내지 못하리이다. 불성 가운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품이 없으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오리까. 이런 뜻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과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하심이 이런 이치와 어떻게 어울리겠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세상에는 두 사람이 매우 희유하여 우담화(優曇花)와 같으니라. 하나는 나쁜 법을 행하지 아니함이요, 다른 하나는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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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참회함이니, 이런 사람은 대단히 희유하니라. 또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은혜를 짓는 이요, 하나는 은혜를 생각하는 이니라. 또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새로운 법을 물어 배우는 이요, 하나는 옛것을 익히어 잊어버리지 않는 이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새것을 짓는 이요, 하나는 옛것을 닦는 이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법 듣기를 좋아하고 하나는 법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질문을 잘하는 이요, 다른 하나는 답변을 잘하는 이다. 질문을 잘하는 이가 그대요, 답변을 잘하는 이는 여래니라. 선남자여, 잘 물음을 인하여 위없는 법수레를 운전하며, 12인연의 나무를 시들게 하며, 가없는 생사의 큰 강을 건너며, 마왕 파순과 더불어 싸우며 파순이 세운 전승의 깃발을 꺾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먼저 말한 것처럼 세 가지 병자 중에 용한 의원과 간병하는 이와 약을 만나거나 또 만나지 않고 병이 쾌차한다 함은 무슨 뜻인가. 만나거나 못 만나거나 간에 수명은 결정된 것이니라. 왜냐 하면 이 사람은 한량없는 지난 세월에 세 가지 선한 일을 닦았으니, 상품·중품·하품이니라. 이렇게 세 가지 선을 닦았으므로 수명이 결정된 것이니, 저 북구로주 사람이 수명이 천 년인 것 같아서, 병에 걸린 이가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간병하는 이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모두 병이 낫는 것이니, 왜냐 하면 결정한 수명을 얻은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말한 것처럼 병난 이가 만일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간병할 이를 만나면 병이 낫고, 만나지 못하면 낫지 못한다 함은 무슨 뜻인가. 선남자여, 이런 사람은 수명이 결정되지 않았으니, 목숨은 비록 다하지 아니하였으나 아홉 가지 인연을 만나면 목숨이 단명하는 것이니라. 무엇이 아홉인가. 하나는 먹어서 편안치 못할 줄을 알면서도 먹는 것이요, 둘은 많이 먹음이요, 셋은 먹은 것이 채 소화되기 전에 또 먹는 것이요, 넷은 대소변이 때를 따르지 못함이요, 다섯은 병이 났을 때에 의원의 말을 따르지 아니함이요, 여섯은 간병하는 이의 시킴을 따르지 않음이요, 일곱은 억지로 참고 토하지 않음이요, 여덟은 밤에 다님이니, 밤에 다니므로 나쁜 귀신이 침노함이요, 아홉은 방사(房事)가 너무 과도함이니, 이런 인연으로 내가 말하기를 용한 의원과 약을 만나면 병이 나을 것이요, 만나지 못하면 낫지 못한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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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먼저 말하기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모두 낫지 못한다 함은 무슨 뜻인가. 사람의 수명이 다하였으면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쾌차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수명이 다한 연고니라. 이런 이치로 내가 말하기를 의원과 약을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건, 병이 낫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중생도 그와 같아서 보리심을 낸 이는 선지식과 부처님과 보살을 만나서 깊은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마땅히 보리를 이룬다는 것이니, 그 까닭은 능히 보리심을 낸 까닭이며, 북구로주 사람의 수명이 결정된 것 같으니라. 내가 말하기를, 수다원으로부터 내지 벽지불이 선지식이나 부처님과 보살이 말씀하는 깊은 법을 들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고, 만일 부처님이나 보살이 말씀하는 깊은 법을 듣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지 못한다 함은 저 수명이 결정되지 아니한 사람이 아홉 가지 인연으로 목숨이 단명하는 것과 같나니, 저 병난 사람이 의원과 약을 만나면 병이 쾌차하고, 만나지 못하면 낫지 못하는 것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깊은 법을 들으면 보리심을 내고, 만나지 못하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내가 먼저 말하기를, 만일 선지식이나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모두 보리심을 내지 못한다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선남자여, 일천제들이 선지식·부처님·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일천제의 마음을 여의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선한 법을 끊은 까닭이니라. 일천제들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함은 무슨 까닭인가. 만일 보리심을 내면 다시 일천제라 이름하지 않음이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는가. 일천제들은 진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나니, 마치 수명이 다한 이는 비록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간병할 이를 만난다 하더라도 쾌차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왜냐 하면 수명이 다한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일천(一闡)은 믿음[信]이란 말이요, 제(提)는 갖추지 못하였다[不具]는 말이니, 믿음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이름하거니와, 불성은 믿음이 아니며 중생은 갖춤이 아니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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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겠는가. 일천은 좋은 방편[善方便]이란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단 말이니, 좋은 방편 닦음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거니와, 불성은 좋은 방편을 닦음이 아니며 중생은 갖춤이 아니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정진[進]이란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다는 말이니, 정진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거니와, 불성은 정진이 아니요 중생은 갖춤이 아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생각한다[念]는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단 말이니, 생각함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거니와, 불성은 생각함이 아니요 중생은 갖춤이 아니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선정이란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단 말이니, 선정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거니와, 불성은 선정이 아니요 중생은 갖춤이 아니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지혜란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단 말이니, 지혜를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거니와, 불성은 지혜가 아니요 중생은 갖춤이 아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무상한 선[無常善]이란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단 말이니, 무상한 선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느니라. 불성은 무상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선하지 않음도 아니니, 왜냐 하면 선한 법은 반드시 방편으로부터 얻거니와, 불성은 방편으로 얻는 것이 아니므로 선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선하지 않음도 아니라 하는가. 능히 선한 과보를 얻는 까닭이며, 선한 과보는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또 선한 법은 나면서 얻는 것이거니와 불성은 나면서 얻는 것이 아니므로 선이 아니며, 나면서 얻은 선한 법을 끊었으므로 일천제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만일 일천제가 불성이 있다면 어째서 지옥의 죄보를 막지 못하는가’ 하지만 선남자여, 일천제 가운데는 불성이 있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어떤 왕이 공후(箜篌)의 소리를 들으니 청아하고 미묘하여 마음이 쏠리고, 즐겁고 사랑하는 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신에게 묻기를 ‘이 아름다운 소리가 어디서 나는가’ 하였다. 대신은 ‘아름다운 소리가 공후에서 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왕은 또 소리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대신은 공후를 가져다가 왕의 앞에 놓고 말하기를 ‘대왕이여, 이것이 그 소리이니다’ 하였다. 왕은 공후에게 말하기를 ‘소리를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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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내라’ 하였으나, 공후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왕은 공후의 줄을 끊었으나 그래도 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그 가죽과 나무까지 모두 깨뜨리면서 소리를 찾아보았으나 소리는 없었다. 그러자 왕은 어째서 거짓말을 하느냐고 대신을 꾸짖었다.
대신은 왕에게 말하였다. ‘소리를 내게 하는 방법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오니, 반드시 공교로운 수단과 여러 가지 인연을 말미암아서야 소리가 나나이다.’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머물러 있는 데가 없고, 공교로운 방편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찾아봄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거니와 일천제는 불성을 보지 못하거니 어떻게 나쁜 갈래의 죄를 막을 수 있겠는가. 선남자여, 일천제가 만일 불성이 있는 줄을 믿으면 나쁜 갈래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일천제라고 이름하지도 아니하려니와, 자기에게 불성이 있음을 믿지 아니하므로 3악도에 떨어지고, 3악도에 떨어지므로 일천제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만일 우유에 타락의 성품이 없으면 타락이 생기지 아니할 것이요, 니구다 씨에 다섯 길 될 성품이 없으면 다섯 길의 나무가 생기지 못하리라 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말을 하려니와, 지혜 있는 이는 그런 말을 하지 아니하리니, 왜냐 하면 성품이란 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우유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으면, 여러 가지 인연의 힘을 가자할 것이 아니니, 선남자여, 물과 우유를 섞어서 한 달 동안을 그냥 두어도 타락이 되지 못하거니와, 파구수(頗求樹)의 즙을 한 방울만 젖속에 떨어뜨리면 곧 타락이 되나니, 만일 본래 타락이 있었으면 어찌 다른 인연을 반연하겠느냐.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인연을 반연하므로 보게 되는 것이요, 모든 인연을 반연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느니라. 만일 모든 인연을 반연한 뒤에야 이룬다면 이것은 불성이 없음이니, 성품이 없음으로써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남의 선한 인을 칭찬하고 남의 단처를 말하지 아니함을 말하여 질직한 마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보살의 질직한 마음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항상 악한 일을 하지 아니하며, 설사 허물이 있더라도 즉시 참회하고, 스승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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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들에게 숨기지 아니하며,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책망하여 다시 범하지 아니하며, 가벼운 허물에도 중한 죄를 지은 줄 생각하는 것이니라. 만일 다른 이가 물으면 참으로 범하였노라 대답하고, 그 죄가 좋으냐고 물으면 좋지 않다고 하며, 또 묻기를 잘한 짓이냐 하면 잘못한 짓이라 대답하고, 또 묻기를 그 죄가 선한 결과냐 선하지 아니한 결과냐 하면, 이 죄는 선한 결과가 아니라 대답하며, 또 묻기를 이 죄를 누가 지었는가, 부처님이나 교법이나 스님들이 지은 것 아니냐 하면, 부처님·교법·스님들이 지은 것이 아니요, 내가 지었노라 대답하느니라. 이것은 번뇌로 모여진 것이나 곧은 마음인 연고로 불성이 있는 줄을 믿고, 불성을 믿으므로 일천제라 이름할 수 없으며, 곧은 마음이 있으므로 부처님의 제자라 하리니, 설사 중생의 의복과 음식과 좌복과 의약(醫藥) 따위를 수없이 받더라도 많다 할 것이 아니니, 이런 것을 보살의 질직한 마음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계행을 닦는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받아 지님은 천상에 나기 위함이 아니며 공포를 위함이 아니며, 내지 외도들의 개의 계[狗戒]·닭의 계[鷄戒]·소의 계[牛戒]·꿩의 계[雉戒]를 받지 않고, 파계를 짓지 아니하며, 모자라는 계[缺戒]를 짓지 아니하며, 흠 있는 계를 짓지 아니하며, 잡계(雜戒)를 짓지 아니하며, 성문의 계를 짓지 아니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의 계와 시라(尸羅)바라밀 계를 받아 가지어 구족계(具足戒)를 얻고도 교만을 내지 아니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는 데, 세 번째 계를 갖추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선지식을 친근한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항상 중생을 위하여 선한 도를 말하고 나쁜 도를 말하지 아니하며, 나쁜 도를 선한 과보가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몸이 곧 모든 중생의 참된 선지식이니, 그러므로 부가라(富伽羅) 바라문이 가진 나쁜 소견을 끊었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이 나를 친근하는 이는 비록 지옥에 태어날 인연이 있더라도 천상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저 수나찰다(須那刹多) 등이 지옥에 떨어질 것인데, 나를 보았으므로 지옥 인연을 끊고 색계천에 난 것과 같으니라. 사리불과 목건련이 있지만 중생의 진정한 선지식이라 이름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일천제의 마음을 내게 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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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국에 있을 적에 사리불이 두 제자에게 하나는 백골을 관하게 하고, 하나는 숨을 세는 관법[數息觀]을 가르쳤는데, 여러 해가 지나도록 모두 선정을 얻지 못하였고, 이런 인연으로 잘못된 소견을 내어 열반이라는 무루의 법이 없다고 말하면서, 만일 있다면 내가 얻었어야 할 것이니, 왜냐 하면 나는 받은 계율을 잘 지킨 까닭이라고 하였다.
비구들이 잘못된 소견을 낸 것을 보고, 사리불을 불러서 이렇게 꾸중하였다. ‘네가 옳게 시키지 못하였으니, 두 제자에게 뒤바뀌게 법을 말한 것이다. 그 두 사람의 성품이 각각 다르니, 하나는 빨래하던 이요, 다른 하나는 은장이다. 은장이에는 숨을 세는 법을 가르쳐야 하고, 빨래하던 이에게는 백골관을 시켜야 할 것인데, 네가 잘못 가르쳐서 그 두 사람이 잘못된 소견을 내었느니라.’ 그러고 내가 두 사람의 정도에 알맞게 법을 말하여 주었더니, 두 사람이 듣고 아라한과를 얻었으므로 내가 모든 중생에게 진정한 선지식이 되는 것이요, 사리불이나 목건련이 아니니라.
만일 중생으로서 매우 중대한 번뇌에 속박된 이가 나를 만나면 나는 방편으로써 그를 끊게 하나니, 나의 동생 난타가 큰 탐욕이 있는 것을 내가 가지가지 방편으로 끊어 주었고, 앙굴마라는 지독하게 성내는 일이 있었는데, 나를 보고서 성내는 마음이 끊어졌고, 아사세왕은 매우 어리석었으나 나를 본 인연으로 우치한 생각이 없어졌고, 파희가(婆熙伽) 장자는 한량없는 겁 동안에 두터운 번뇌가 쌓였건만, 나는 보고서 끊어졌느니라. 아무리 추악하고 미천한 사람이라도 나를 친근하여 제자가 된 이는, 그러한 인연으로 모든 천상 사람 세간 사람의 공경과 친애함을 받느니라.
시리국다(尸利鞠多)는 잘못된 소견이 치성하더니, 나를 본 인연으로 나쁜 소견이 소멸되었으며, 나를 봄으로써 지옥의 인을 끊어 버리고 천상에 태어나는 인연을 지은 이는 기허전다라(氣噓旃陀羅)요, 목숨을 마치려 할 적에 나를 보고 목숨을 이은 이는 교시가요, 마음이 미쳐서 산란하다가 나를 보고서 본마음을 회복한 이는 수구담미(瘦瞿曇彌)요, 백정의 아들로서 나쁜 업을 많이 짓다가 나를 보고 아주 버린 이는 천제(闡提) 비구요, 나를 본 인연으로 몸과 생명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범치 아니하려 한 이는 초계(草繫) 비구니라. 이런 뜻으로, 아난 비구는 반쯤 범행(梵行) 갖는 이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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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라 하였거니와, 나는 그렇지 아니하여 범행을 구족한 이라야 선지식이라 이름한다 하노라.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는 데, 네 번째 선지식 친근함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을 위하여 12부경을 쓰고 읽고 외우고 분별하여 해설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12부경은 그만두고 비불략(毘佛略)만을 배워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함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12부경은 그만두고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쓰고 읽고 외우고 분별하여 해설하면, 그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이 경전의 전체는 아니더라도 네 글귀 한 게송만을 배워 가지거나, 다시 이 게송도 그만두고 여래가 항상 머물러 성품이 변하지 아니함을 배워 지니어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또 이 일은 그만두고 여래가 항상 법을 말씀하지 않는 줄을 알아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하였다 하나니, 왜냐 하면 법이 성품 없음을 아는 까닭이니라. 여래가 비록 온갖 법을 말하여도 항상 말하지 않는 줄을 알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는 데, 다섯 번째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선남자 선여인이 대반열반을 위하여 이 다섯 가지를 구족히 성취하면, 짓기 어려운 일을 지을 것이요, 참기 어려운 일을 참을 것이요,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짓기 어려운 일을 짓는다 하는가. 어떤 이가 참깨 하나를 먹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단 말을 들으면, 그 말을 믿어 한량없는 아승기겁이 되도록 항상 참깨 한 개를 먹고, 불에 들어가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단 말을 들으면, 한량없는 겁 동안에 아비지옥에 있어서 맹렬한 불더미에 들어가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짓기 어려운 일을 짓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참기 어려운 일을 참는다 하는가. 만일 손이나 작대기나 칼이나 돌로 때리는 고통을 받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을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몸으로 그런 일을 받으면서도 괴롭게 여기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참기 어려움을 참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한다 하는가. 만일 나라나 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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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처자나 머리나 눈이나 뇌수(腦髓)를 남에게 보시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단 말을 들으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자기가 가진 나라나 성이나 처자나 머리·눈·뇌수를 다른 이에게 보시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한다 하느니라.
보살은 비록 짓기 어려운 일을 지었더라도 내가 그런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지 아니하며,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하고도 역시 그와 같이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부모가 외아들을 두었으면, 소중하게 사랑하여 좋은 의복과 좋은 음식으로 때를 따라 공급하고 모자람이 없게 하며, 설사 그 아들이 부모에게 버릇없는 마음으로 욕설을 하더라도, 부모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여워하지 아니하고, 내가 아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공급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 보기를 외아들같이 하나니, 아들이 병이 나면 부모도 병이 나고, 의원과 약을 구하여 정성으로 치료하며, 병이 나은 뒤에도 아들의 병을 치료하여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번뇌의 병에 걸린 것을 보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법을 말해 주어 번뇌를 끊게 하고, 번뇌가 끊어진 뒤에도 내가 중생을 위하여 번뇌를 끊게 하였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나니, 만일 그런 생각을 내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오직 생각하기를 한 중생에게도 내가 법을 말하여 번뇌를 끊게 한 일이 없다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중생에게 대하여 성내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공삼매(空三昧)를 잘 닦은 까닭이니라. 보살은 공삼매를 닦았거니 누구에게 성을 내고 기뻐함을 내겠는가. 선남자여, 마치 산에 있는 나무들이 불에 타거나 사람이 찍거나 물에 떠내려가더라도, 이 나무가 누구에게 성을 내며 기뻐함을 내겠는가.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에게 성도 내지 아니하고 기쁨도 내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공삼매를 닦은 까닭이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성품이 본래부터 스스로 공하나이까, 공으로써 공하게 하므로 공하나이까? 만일 성품이 스스로 공하다면, 공을 닦은 뒤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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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함을 볼 것이 아니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을 닦아서 공함을 본다 하시오며, 성품이 만일 공하지 않다면, 비록 공을 닦더라도 공하게 할 수 없으리이다.”
“선남자여, 모든 법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공한 것이니라. 왜냐 하면 온갖 법의 성품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색의 성품을 얻을 수 없나니, 무엇을 색의 성품이라 하겠는가. 색의 성품은 지대·수대·화대·풍대가 아니며, 지대·수대·화대·풍대를 여의지도 아니하였고,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지도 아니하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것을 여의지도 아니하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거늘, 어떻게 색이 제 성품이 있다 하겠는가. 성품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공이라 하느니라.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서로 비슷한 것이 서로 계속하므로 범부들이 보고는 모든 법의 성품이 공적하지 않다고 하거니와,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를 갖추었으므로 법의 성품이 본래 공적함을 보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하지 않은 줄로 본다면 이 사람은 사문이 아니며 바라문이 아니니, 반야바라밀을 닦지 못하며, 대반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며, 부처님과 보살들을 보지 못하리니, 그는 마군의 권속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법의 성품이 본래 공하거니와, 보살이 공을 닦음으로 인하여 법의 공함을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모든 법의 성품이 무상한 까닭으로 멸(滅)이란 것이 능히 멸하듯이 만일 무상하지 않으면 멸이란 것이 멸할 수 없느니라. 함이 있는 법에는 나는 모양[生相]이 있는 까닭으로 생이란 것이 능히 내는 것이요, 멸하는 모양[滅相]이 있는 까닭으로 멸하는 것이 능히 멸하느니라. 모든 법에는 괴로운 모양[苦相]이 있는 까닭으로 고(苦)라는 것이 능히 괴롭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소금의 성질이 짜기 때문에 다른 것을 짜게 자며, 사탕의 성질이 달기 때문에 다른 것을 달게 하며, 초의 성질이 시기 때문에 다른 것을 시게 하며, 새앙의 성질이 맵기 때문에 다른 것을 맵게 하며, 가리륵(呵梨勒)의 성질이 쓰기 때문에 다른 것을 쓰게 하며, 암라 열매의 성질이 담백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담백하게 하며, 독약의 성질이 해치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해롭게 하며, 감로의 성질은 사람을 죽지 않게 하며, 다른 물건에 섞어도 죽지 않게 하느니라. 보살이 공을 닦음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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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아서 공함을 닦는 까닭으로 모든 법의 성품이 공적한 것을 보느니라.”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소금이 짜지 않은 물건을 짜게 하듯이, 공삼매를 닦는 것도 그와 같다면 이 삼매는 선한 것도 아니고 묘한 것도 아니어서, 성품이 뒤바뀌었을 것이며, 공삼매로써 공한 것만을 본다면 공이란 것은 없는 것이니 어떻게 보겠나이까?”
“선남자여, 이 공삼매로는 공하지 아니한 법을 보아서 공하게 하거니와, 그러나 뒤바뀐 것이 아니니라. 마치 소금이 짜지 않은 것을 짜게 하듯이, 공삼매도 그와 같아서 공하지 않은 것을 공하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탐욕은 있는 성품이요 공한 성품이 아니니, 탐욕이 만일 공하다면 중생이 그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요, 지옥에 떨어진다면 어찌하여 탐욕의 성품이 공하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색의 성품은 있는 것이니, 무엇을 색의 성품이라 하는가. 뒤바뀐 것을 말함이니, 뒤바뀐 연고로 중생이 탐욕을 내느니라. 만일 색의 성품이 뒤바뀌지 않았다면, 어떻게 중생으로 하여금 탐욕을 내게 하겠는가. 탐욕을 내게 하므로 색의 성품이 있지 않은 것이 아닌 줄을 알 것이다. 이런 뜻으로 공삼매를 닦음은 뒤바뀐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모든 범부들은 여인을 보면 여인이란 집착을 내거니와,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비록 여인을 보더라도 여인이란 집착을 내지 아니하며, 집착을 내지 아니하므로 탐욕이 생기지 아니하고, 탐욕이 생기지 아니하므로 뒤바뀐 것이 아니니라. 세상 사람들이 여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보살도 따라서 여인이 있다고 말하나니, 만일 남자를 보면서 여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뒤바뀜이니라. 그래서 내가 천제(闡提) 비구에게 말하기를 ‘만일 낮을 가지고 밤이라 한다면 그것이 뒤바뀜이요, 밤을 가지고 낮이라 한다면 그것도 뒤바뀜이 되려니와, 낮을 낮의 모양이라 하고 밤을 밤의 모양이라 하는 것이야 어찌 뒤바뀜이라 하겠는가’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보살의 9지(地)에 머문 이는 법의 있는 성품[有性]을 보나니, 이렇게 봄으로써 불성을 보지 못하거니와, 만일 불성을 본다면 다시 모든 법의 성품을 보지 아니하리라. 이러한 공삼매를 닦으므로 법의 성품을 보지 아니하며, 보지 아니하므로 불성을 보느니라. 불보살이 두 가지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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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니, 하나는 성품이 있다 함이요, 또 하나는 성품이 없다 함이라. 중생을 위하여 법의 성품이 있다 말하고, 현성들을 위하여는 법의 성품이 없다 말하느니라. 공하지 아니한 이로 법의 공함을 보게 하기 위하여서, 공삼매를 닦아 공함을 보도록 하며, 법의 성품이 없다는 이도 공삼매를 닦으므로 공한 것이니, 이런 뜻으로 공을 닦아서 공을 보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공한 것만을 본다면, 공이란 것은 없는 법이니 어떻게 보겠느냐’ 하거니와, 선남자여, 그러하니라. 보살마하살은 진실로 볼 것이 없으며, 볼 것이 없다 함은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요, 있는 것이 없다 함은 곧 온갖 법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대반열반을 닦으므로 온갖 법에 대하여 보는 것이 없느니라. 만일 보는 것이 있다면 불성을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닦지 못하여 대반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모든 법의 성품이 있는 바가 없음을 보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다만 삼매를 봄으로써 공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반야바라밀도 공하고, 선정바라밀도 공하고, 정진바라밀도 공하고, 인욕바라밀도 공하고, 지계바라밀도 공하고, 보시바라밀도 공하며, 빛도 공하고 눈도 공하고 알음알이도 공하며, 여래도 공하고 대반열반도 공하니, 그러므로 보살은 모든 법이 다 공한 줄로 보느니라. 그래서 내가 가비라성에 있으면서 아난에게 말하기를 ‘너는 걱정하지 말고 슬피 울지 말라’라고 하였더니, 아난은 ‘세존이시여, 지금 나의 친속들이 모두 죽었사온데 어떻게 울지 않겠나이까. 여래께서 저와 같이 이 성에 났사오며, 마찬가지로 석가족의 친척이며 권속이온데, 어찌하여 여래는 수심이 없으시고 안색이 화평하나이까’라고 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또 말하기를, ‘너는 가비라성이 참으로 있는 줄로 보지만 내가 보기에는 공적하여 아무것도 없으며, 너는 석가족이 모두 친속인 줄로 보지만, 나는 공삼매를 닦았으므로 보는 것이 없느니라. 그런 까닭으로 너는 걱정하거니와, 나는 안색이 화평한 것이다’ 하였느니라. 여래와 보살들은 공삼매를 닦으므로 수심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아홉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최후로 열째 공덕을 구족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이 37도품(道品)을 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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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대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데 들어가고, 중생들을 위하여 대반열반경을 분별하여 해설하며 불성을 나타내나니,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과 벽지불과 보살이 이 말을 믿는 이는 모두 대반열반에 들어가려니와 믿지 않는 이는 생사에서 바퀴돌 듯 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이 경에 대하여 공경하지 아니하겠나이까?”
“선남자여, 내가 열반한 뒤에, 어떤 성문 제자가 어리석어서 계율을 파하고 다투기를 좋아하며, 12부경을 버리고 여러 가지 외도의 경전을 읽고 외우며, 글짓고 글씨 쓰며, 모든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받아 두면서 부처님이 허락하였다 하리니, 이런 사람은 전단을 가지고 보통 나무로 바꾸며, 금을 놋쇠로 바꾸며, 은을 납으로 바꾸며, 비단을 삼베로 바꾸며, 감로를 독약으로 바꾸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전단을 보통 나무로 바꾼다 하는가. 나의 제자가 공양을 얻기 위하여 속인들에게 정법을 연설하거든 속인이 마음이 방일하여 들으려 하지 아니하면, 속인을 높은 곳에 앉게 하고 비구는 낮은 곳에 있으며, 여러 가지 맛나는 음식을 공급하더라도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나니, 이런 것을 말하여 전단을 보통 나무로 바꾼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금을 놋쇠로 바꾼다 하는가. 놋쇠는 빛·소리·향기·맛·감촉에 비유하고 금은 계율에 비유한 것이니, 나의 제자들이 빛 따위의 인연으로 계율을 파하는 것을 말하여 금을 놋쇠로 바꾼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은을 납으로 바꾼다 하는가. 은은 열 가지 선한 일에 비유하고, 납은 열 가지 나쁜 일에 비유한 것이니, 나의 제자들이 열 가지 선한 일을 버리고 열 가지 나쁜 법을 행하는 것을 말하여 은을 놋쇠를 바꾼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비단을 삼베로 바꾼다 하는가. 삼베는 남부끄럼[慚]도 없고 제부끄럼[愧]도 없는 데 비유하고, 비단은 남부끄러워하고 제부끄러워하는 데 비유한 것이니, 나의 제자가 남부끄럽고 제부끄러운 것을 버리고 남부끄럼도 모르고 제부끄럼도 모름을 익히는 것을 이름하여 비단을 삼베로 바꾼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감로를 독약으로 바꾼다 하는가. 독약은 가지가지의 이양에 비유하고 감로는 무루법에 비유함이니, 나의 제자가 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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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위하여서 속인들을 향하여 자기가 무루를 얻었노라 하는 것을 말하여 감로를 독약으로 바꾼다 하느니라.
이런 나쁜 비구들을 위하여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염부제에 널리 유포하리니, 이 때에 나의 제자들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연설하여 선포하면 저 나쁜 비구들에게 살해를 받게 되리라. 그 나쁜 비구들도 여럿이 모이어 혹독한 규칙을 만들고 있으면서, 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거나 쓰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는 이는, 모두 함께 있지도 아니하고 같이 앉아 말하지도 아니하면서, 그 이유를 말하기를 ‘열반경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고 사견(邪見) 가진 자가 만든 것이니, 사견 가진 자는 육사외도(六師外道)이고, 육사외도가 말한 것은 부처님의 경전이 아니다.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이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하지 않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니, 모든 법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부처님의 말씀이라 하겠는가. 부처님과 보살은 비구에게 가지가지 물건을 받아 두라고 허락하시었고, 6사들은 제자에게 모든 물건을 받아 두지 못하게 하였거늘, 이런 말을 어떻게 부처님의 말씀이라 하겠는가. 부처님과 보살은 제자들에게 다섯 가지 우유[牛味]와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제정하지 아니하였고, 6사들은 다섯 가지 소금과 다섯 가지 우유와 비계와 피를 먹음을 허락하지 아니하는데, 이런 것을 먹지 말라 한 것을 어떻게 부처님의 경전이라 하겠는가. 또 부처님과 보살은 3승의 법을 말씀하였는데, 이 경에서는 1승만을 말하여 대열반이라 말하였으니, 이런 것을 어떻게 부처님의 옳은 경전이라 하며, 부처님께서는 필경에 열반에 드셨는데, 이 경에서는 부처님께서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서 열반에 들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 경은 12부 중에 들지 아니하며, 이것은 마군의 말이요 부처님의 말이 아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사람들은 나의 제자라고는 하더라도 이 열반경을 믿고 따르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때를 당하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반구절만이라도 믿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참으로 내 제자며, 이렇게 믿음을 인하여 불성을 보아서 열반에 들게 되리라.”
그러나 광명변조고귀덕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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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여래께서 오늘에 대반열반경을 잘 열어 보이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을 인하여 대반열반경의 한 구절, 반구절이나마 깨달았사오며, 한 구절 반구절을 깨달았으므로 조그만치 불성을 보았사오니,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마땅히 대열반에 들어가겠사오며,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열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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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5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품(師子吼菩薩品) ①

그 때에 부처님께서 모든 대중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너희들이 만일 부처님이 있는지 없는지, 법이 있는지 없는지, 승가가 있는지 없는지, 괴롬이 있는지 없는지, 집(集)이 있는지 없는지, 멸(滅)이 있는지 없는지, 도(道)가 있는지 없는지, 실제[實]가 있는지 없는지, 내[我]가 있는지 없는지, 즐거움이 있는지 없는지, 깨끗함이 있는지 없는지, 항상한지 무상한지, 승(乘)이 있는지 없는지, 유(有)가 있는지 없는지, 인이 있는지 없는지, 과(果)가 있는지 없는지, 지음이 있는지 없는지, 업이 있는지 없는지, 과보가 있는지 과보가 없는지를 의심하거든, 너희 마음대로 물으라. 내가 너희들에게 낱낱이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나는 진실로 하늘이나 사람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내게 와서 묻는 것을 대답하지 못한 것이 없노라.”
이 때에 그 회중에 이름이 사자후(師子吼)라고 하는 한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용모를 단정히 하며 의복을 바로하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여쭙겠사오니, 여래께서는 크게 어여삐 여기시어 허락하시옵소서.”
이 때에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너희들은 이 보살에게 공경하는 마음으로 존중하고 찬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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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각색 향과 꽃과 풍류와 영락과 번과 일산과 의복과 음식과 좌복과 의약과 집과 전당으로 공양하며, 영접하고 전송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이 보살은 지나간 부처님들께 선근을 깊이 심어 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지금 내 앞에서 사자후를 하려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자가 자기의 기운을 알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뽐내며 네 발로 땅을 짚고 굴속에 있으면서 꼬리를 휘두르며 소리를 내지르듯이, 이런 여러 가지 모양을 갖추면 이는 크게 사자후하려는 줄을 알 것이다. 참말 사자왕이 새벽에 굴 속에서 나와 몸을 다듬고 입을 벌리고 사방을 살피면서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열한 가지 일을 위함이니라.
그 열한 가지란, 첫째는 사자가 아니면서 사자 행세를 하는 무리를 부수려는 것이요, 둘째는 몸에 있는 기운을 시험함이요, 셋째는 있는 곳을 깨끗이 하려는 것이요, 넷째는 새끼들로 하여금 있는 처소를 알게 하려는 것이요, 다섯째는 여러 동무들로 하여금 두려운 마음이 없게 하려는 것이요, 여섯째는 자는 놈을 깨우려 함이요, 일곱째는 마음 놓은 짐승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려 함이요, 여덟째는 여러 짐승들로 하여금 와서 복종케 하려는 것이요, 아홉째는 향상(香象)들을 조복하려 함이요, 열째는 새끼들을 가르치려는 것이요, 열한째는 자기의 권속들을 장엄하려는 것이니라. 모든 짐승이 사자후하는 소리를 들으면, 물에 사는 짐승들은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뭍에 사는 짐승들은 굴속에 숨고, 날아다니는 놈들은 떨어지고, 향상들은 넋을 잃고 똥을 싸느니라.
선남자들이여, 여우는 사자를 백 년 동안 따라다니어도 사자후를 하지 못하는데, 사자의 새끼는 3년만 되어도 큰 사자처럼 사자후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 정각(正覺)께서는 지혜의 이빨과 발톱이며, 4여의족(如意足)과 6바라밀을 만족한 몸에, 10력이 용맹하고 대비로 꼬리를 삼아서 4선정의 청정한 굴에 있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사자후하나니, 마군을 쳐부수고 중생에게 10력을 보이며, 부처님이 행하는 곳을 나타내어 사견(邪見)을 가진 사람에게 귀의할 바를 지으며, 생사를 두려워하는 중생들을 무마하여 무명의 졸음에서 깨어나게 하며, 나쁜 짓을 행하는 이가 뉘우침을 내게 하고, 사견을 가진 중생들을 깨우치느니라. 육사외도는 사자후가 아닌 줄을 알게 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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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연고며, 부란나(富蘭那)들의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려는 연고며, 2승들로 하여금 뉘우치는 마음을 내게 하려는 연고며, 5주(住) 보살들로 하여금 큰 힘을 구하는 마음을 내게 하려는 연고며, 바른 견해를 가진 사부대중으로 하여금 사견을 가진 4부중에게 두려운 생각이 없게 하려는 까닭으로, 거룩한 행·청정한 행·하늘의 행을 하는 굴속으로부터 몸을 쭉 펴면서 나오는 것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교만을 깨뜨리려는 까닭이며, 입을 벌리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선한 법을 내게 하려는 까닭이며, 사방을 살피는 것은 중생들을 4무애(無礙)를 얻게 하려는 까닭이며, 네 발로 땅을 짚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지계(持戒)바라밀에 구족히 머물게 하려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사자후하는 것이니라. 사자후라 함은 결정한 말이니, 모든 중생이 모든 불성이 있으며, 여래는 항상 계시어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성문이나 연각들은 한량없는 백천 아승기겁 동안에 여래 세존을 따라다니더라도 사자후를 하지 못하거니와, 10주 보살이 이 세 가지 행을 닦기만 하면 능히 사자후할 것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이 사자후보살마하살이 이제 이러한 대사자후를 하려는 것이니,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깊은 마음으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히 여기고 찬탄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사자후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그대가 물으려거든 이제 마음대로 물으라.”
사자후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불성이라 하오며, 무슨 뜻으로 불성이라 이름하오며, 무슨 까닭으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나이까? 만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면 어찌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있는 불성을 보지 못하나이까? 10주 보살은 무슨 법에 머물렀으므로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부처님께서는 무슨 법에 머물렀으므로 분명하게 보나이까? 10주 보살은 무슨 눈이기에 분명하게 보지 못하며, 부처님께서는 무슨 눈이기에 분명하게 보나이까?”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장하고 장하다. 어떤 사람이나 법을 위하여 물으면, 이는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하나니, 하나는 지혜요 다른 하나는 복덕이니라. 만일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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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런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한 이라면 곧 불성을 알며, 불성이라 이름하는 것도 알 것이며, 내지 10주 보살은 무슨 눈으로 보고, 부처님 세존들은 무슨 눈으로 보는 줄을 알 것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세존께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지혜 장엄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복덕 장엄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지혜 장엄이라 함은, 1지(地)로부터 10지에 이르는 것을 지혜 장엄이라 하고, 복덕 장엄이라 함은 보시바라밀로부터 내지 반야에 이르는 것이요, 반야바라밀은 아니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장엄은 부처님과 보살들을 말함이요, 복덕 장엄은 성문·연각과 9주 보살을 말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복덕 장엄은 함이 있는 것이요, 유루(有漏)요, 유(有)가 있고 과보가 있고 걸림이 있고 항상하지 아니한 것이니, 그는 범부의 법이요, 지혜 장엄은 함이 없는 것이요 무루요 유가 없고 과보가 없고 걸림이 없고 항상 머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이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하였으므로, 깊고 묘한 이치를 묻는 것이며, 나도 이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하였으므로, 이 이치를 대답하는 것이니라.”
사자후보살마하살이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이 이러한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하였다면 한 가지 두 가지를 물을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가지 두 가지를 대답한다 하시나이까? 왜냐 하면 모든 법에는 한 가지 두 가지가 없는 까닭이니, 한 가지 두 가지라 함은 범부의 집착이니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어떤 보살이 두 가지 장엄이 없다면, 한 가지 두가지를 알지 못하려니와, 보살이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하였으므로 한 가지 두 가지를 이해하느니라. 모든 법이 한 가지 두 가지가 없다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한 가지 두 가지가 없다면, 모든 법은 하나도 없고 둘도 없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만일 한 가지 두 가지가 범부의 집착이라 하면 이는 곧 10주 보살이라 이름할 것이요, 범부가 아니니라. 왜냐 하면 하나라 함은 열반이요 둘이라 함은 생사이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하나를 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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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하는가. 항상한 까닭이요, 어찌하여 둘을 생사라 하는가, 애(愛)와 무명인 까닭이니라. 항상함을 열반이라 함은 범부의 모양이 아니요, 생사를 둘이라 함도 범부의 모양이 아니니, 이런 뜻으로 두 가지 장엄을 구족한 이는 능히 묻고 능히 대답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어떤 것을 불성이라 하느냐’ 하였으니, 자세히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하나하나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불성은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 하고, 제일의공은 지혜라 이름하느니라. 공이라 말하는 것은 공한 것이니 공하지 아니한 것을 보지 않는 것이요, 지혜라 함은 공한 것이나 공하지 아니한 것과, 항상한 것이나 무상한 것과, 괴로운 것이나 즐거운 것과, 나인 것이나 내가 없는 것을 보는 것이니라. 공이란 것은 온갖 생사요 공하지 않다는 것은 대열반이며, 내지 내가 없다는 것은 생사요 나라는 것은 대열반이니라. 온갖 공한 것만 보고 공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중도(中道)라 이름할 수 없으며, 내지 온갖 내가 없는 것만 보고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중도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중도란 것은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이런 뜻으로 불성은 항상하여 변하지 아니하거니와, 무명에 덮이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볼 수 없게 하느니라. 성문과 연각은 모든 공한 것만 보고 공하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하며, 내지 모든 내가 없는 것만 보고 나인 것은 보지 못하나니, 이런 뜻으로 제일의공을 얻지 못하며, 제일의공을 얻지 못하므로 중도를 행하지 못하고, 중도가 없으므로 불성을 보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중도를 보지 못하는 데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결정코 즐거운 행이요, 둘은 결정코 괴로운 행이요, 셋은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행[苦樂行]이니라. 결정코 즐거운 행이라 함은,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므로 비록 아비지옥에 있더라도 3선천락과 같이 여김이요, 결정코 괴로운 행이라 함은 범부들을 말함이요,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행이라 함은 성문과 연각이니, 성문과 연각은 괴롬과 즐거움을 행하면서 중도라는 생각을 하나니, 이런 뜻으로 비록 불성이 있으나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그대가 묻기를 ‘무슨 뜻으로 불성이라 이름하느냐’ 하나니 선남자여, 불성이라 함은 곧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중도 종자니라.
또 선남자여, 도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와 상과 중이니라. 하라 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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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천이 무상함을 항상하다고 잘못 보는 것이요, 상이라 함은 생사가 무상함을 항상하다고 잘못 보고, 삼보가 항상함을 무상하다고 잘못 여기나니, 어찌하여 상이라 하는가. 가장 위 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음이니라. 중이라 함은 제일의공이라 이름하나니, 무상한 것은 무상하다 보고 항상한 것은 항상하다 보느니라. 제일의공은 하라고 이름하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온갖 범부들이 얻지 못하는 까닭이며, 상이라고 이름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곧 상인 까닭이니라. 부처님과 보살들의 닦는 도는 상도 아니고 하도 아니니, 이런 뜻으로 중도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생사의 본고장[本際]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명이요 하나는 애(愛)니라. 이 두 가지 중간에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 있나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중도가 생사를 깨뜨리므로 중도라 하며, 이런 뜻으로 중도의 법을 불성이라 이름하며, 그러므로 불성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건만 모든 중생들이 보지 못하므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다 하거니와, 불성은 진실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마치 가난한 집에 숨은 보배[寶藏]가 있지만 이 사람이 보지 못하는 연고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못하다가, 어떤 선지식이 말하기를 ‘그대의 집에 숨은 보배가 있거늘, 어찌하여 이렇게 빈궁하고 곤고하여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아니한가’ 하면서 방편으로 보게 하거든, 이 사람이 보았으므로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불성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이 보지 못하며, 보지 못하므로 무상하고 즐겁지 아니하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못하거니와, 선지식인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방편으로써 가지가지로 가르쳐 보게 하면, 보았으므로 중생이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느니라.
또 선남자여, 중생들이 소견을 일으킴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항상하다는 소견[常見]이요 둘은 아주 없다는 소견[斷見]이니라. 이러한 두 소견은 중도라 이름하지 아니하니라. 항상함도 없고 아주 없다는 것도 없음은 곧 12인연을 관찰하는 지혜니, 이것을 불성이라 하니라. 2승들은 비록 12인연을 관찰하여도 불성이라 이름하지 못하나니, 불성이 항상하지만 모든 중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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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무명에 덮였으므로 보지 못하느니라. 또 12인연의 강을 건너지 못함은 토끼나 말과 같나니, 왜냐 하면 불성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12인연을 관찰하는 지혜는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종자니, 이런 뜻으로 12인연을 불성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오이[胡苽]를 열병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열병의 인연이 되는 연고며, 12인연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불성은 인이 있고 인의 인[因因]이 있으며, 과가 있고 과의 과[果果]가 있느니라. 인은 12인연이요 인의 인은 곧 지혜며, 과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과의 과는 곧 위없는 대반열반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무명이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식(識)이 과도 되고 과의 과도 되나니,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12인연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항상하지도 않고 아주 없지도 않으며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아니며 인도 아니요 과도 아니니라. 선남자여, 인이요 과가 아님은 불성과 같고, 과요 인이 아님은 대반열반과 같고, 인도 되고 과도 됨은 12인연으로 생긴 법과 같거니와, 인도 아니요 과도 아님을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인도 과도 아니므로 항상하여 변함이 없느니라.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서 말하기를 ’12인연은 그 뜻이 매우 깊어서,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으므로 부처님과 보살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으로 미칠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무슨 까닭으로 매우 깊다 하는가. 중생의 업행(業行)은 항상하지도 않고 아주 없지도 않지만 과보를 얻으며 비록 잠깐잠깐에 멸하지만 잃어지지 아니하며, 짓는 이는 없지만 짓는 업은 있으며, 받을 이는 없지만 과보는 있으며, 받는 이가 멸하더라도 과보는 없어지지 아니하며, 생각하여 앎이 없지만 화합하여 있느니라. 모든 중생들은 12인연과 함께 행하면서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보지도 알지도 못하므로 나중과 처음이 없느니라. 10주 보살은 나중만 보고 처음을 보지 못하거니와, 부처님 세존은 처음도 보고 나중도 보나니, 이런 뜻으로 부처님께서는 분명하게 불성을 본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은 12인연을 보지 못하므로 바퀴돌 듯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누에가 고치를 만들어서 스스로 나고 스스로 죽듯이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불성을 보지 못하므로 스스로 번뇌의 업을 짓고는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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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데서 헤매나니, 공을 치는 것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내가 여러 경전에서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12인연을 보는 이는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이는 곧 부처님을 본다 하였으니, 부처님께서는 곧 불성이니라.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이 이것으로 성품을 삼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12인연을 보는 지혜에 네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하(下)요 둘은 중이요 셋은 상이요 넷은 상상이니라. 하품 지혜로 관하는 이는 불성을 보지 못하나니, 보지 못하는 연고로 성문의 도를 얻고, 중품 지혜로 관하는 이는 불성을 보지 못하나니, 보지 못하는 연고로 연각의 도를 얻고, 상품 지혜로 관하는 이는 보아도 분명치 못하나니, 분명치 못하므로 10주지(住地)에 머물고, 상상품 지혜로 관하는 이는 분명히 보나니, 그러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를 얻느니라. 이런 뜻으로 12인연을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불성은 곧 제일의공이요, 제일의공은 중도라 하고 중도는 부처라 이름하며 부처는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그 때에 사자후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부처님과 불성이 차별이 없다면, 모든 중생들은 도를 닦아서 무엇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그대가 물은 것은 옳지 아니하다. 부처님과 불성이 비록 차별이 없으나, 모든 중생들이 모두 구족하지 못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어미를 살해하고 해한 뒤에 뉘우침을 내었다면, 두 가지 업이 비록 선하더라도 이 사람은 지옥 사람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이 사람은 마땅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니라. 이 사람에게 비록 지옥의 5음과 18계와 6입이 없더라도 오히려 지옥 사람이란 이름을 얻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내가 여러 경전에서 말하기를, 만일 어떤 이가 선한 일을 닦으면 하늘 사람을 본다 하고 나쁜 일을 행하면 지옥을 본다 하나니, 왜냐 하면 반드시 그 과보를 받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 하였으나, 모든 중생이 참으로 32상과 80종호를 갖추지 못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이 경에서 게송을 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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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있으나 지금은 없으며
본래는 없으나 지금은 있으니
이 세상 앞세상 지난 세상에
있다는 모든 법 옳은 곳 없나니.

선남자여, 있다는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다음에 있는 것이요 둘은 지금에 있는 것이요 셋은 지난적에 있는 것이니라. 모든 중생이 오는 세상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이것을 불성이라 하고, 모든 중생이 지금에 번뇌의 결박이 있으므로 현재에 32상과 80종호가 없으며, 모든 중생이 지나간 세상에 번뇌를 끊은 일이 있었으므로 현재에 불성을 보게 되는 것이니라. 이런 뜻으로 내가 항상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으며, 내지 일천제들도 불성이 있다고 하였느니라. 일천제들은 선한 법이 없으며 불성도 선한 법이거니와, 오는 세상에 있을 것이므로 일천제들이 불성이 있다 하나니, 왜냐 하면 일천제들도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집에 우유와 타락이 있는데, 다른 이가 묻기를 그대에게 소(酥)가 있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있노라 함과 같나니, 타락이 실로 소는 아니지만, 공교한 방편으로 소를 만들 수 있으므로 소가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중생도 그와 같아서 모두 마음이 있으며, 마음이 있는 이는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나니, 이런 뜻으로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내가 떳떳하게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필경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장엄필경(莊嚴畢竟)이요 둘은 구경(究竟)필경이며, 하나는 세간필경이요 둘은 출세간필경이니라. 장엄필경은 6바라밀이요 구경필경은 모든 중생이 얻을 1승(乘)이며, 1승은 불성이라 하나니, 이런 이치로 내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하느니라. 모든 중생이 다 1승이 있건만 무명에 덮이어서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북구로주나 33천은 과보가 덮이어서 여기 있는 중생이 보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불성도 그러하여 번뇌에 덮이었으므로 중생들이 보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불성은 곧 수릉엄삼매니 성품이 제호(醍醐)와 같으며,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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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어머니이니, 수릉엄삼매의 힘으로써 부처님들로 하여금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게 하느니라. 모든 중생이 다 수릉엄삼매가 있건만 닦아 행하지 않으므로 보지 못하며, 그러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수릉엄삼매에 다섯 가지 이름이 있으니, 하나는 수릉엄삼매요 둘은 반야바라밀이요 셋은 금강삼매요 넷은 사자후삼매요 다섯은 불성이다. 그 짓는 대로 따라서 곳곳마다 이름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한 삼매가 가지가지 이름을 얻나니, 마치 선(禪)에는 4선이라 하고, 근(根)에는 정근(定根)이라 하고, 역(力)에는 정력이라 하고, 각(覺)에는 정각(正覺)이라 하고 정(正)에는 정정(正定)이라 하고, 8대인각에는 정각(正覺)이라 하는 것과 같아서, 수릉엄삼매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세 가지 정(定)을 구족하였으니 상과 중과 하니라. 상정은 불성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이며, 중정은 모든 중생이 초선(初禪)을 구족한 것이니, 인연이 있으면 닦아 익히고 인연이 없으면 닦지 못하느니라. 인연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화재(火災)요, 둘은 욕계의 결박을 깨뜨리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모두 중정을 구족하였다고 말하느니라. 하정은 10대지(大地) 중에 심수정(心數定)이니,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다 하정을 구족하였다고 말하느니라.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지만, 번뇌에 덮이어서 보지 못하는 것이며, 10주 보살이 비록 1승을 보지만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인 줄을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10주 보살이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치 못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수릉(首楞)이라 함은 온갖 일이 필경이란 말이요, 엄(嚴)은 견고하단 말이니, 온갖 일이 필경에 견고함을 얻으므로 수릉엄이라 하며, 그러므로 수릉엄정(首楞嚴定)을 불성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 니련선하에서 아난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목욕하려 하니 너는 옷과 비누를 가져오라 하고 물에 들어갔더니, 온갖 나는 새와 물에 살고 뭍에 사는 붙이들이 모두 와서 나를 보고, 또 5백의 범지(梵志)들이 강가에 왔다가 나에게 와서 서로 말하기를 ‘어떻게 금강 같은 몸을 얻었는가, 만일 구담이 아주 없다는 소견을 말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를 따라서 재계하는 법을 받으리라’ 하거늘, 내가 그 때에 타심통[他心智]으로 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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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마음을 알고 범지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내가 아주 없다는 소견을 말한다 하는가?’
범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구담이여, 먼저부터 여러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모두 내가 없다고 하였다. 내가 없다고 하였으니 어찌 아주 없다는 소견이 아니라 하겠는가. 만일 내가 없다면 계행을 갖는 이는 누구며, 계행을 파하는 이는 누구겠는가?’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모든 중생이 모두 내가 없다고 말하지 아니하였고, 모든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불성이 어찌 내가 아니겠는가. 이런 뜻으로 나는 아주 없다고 말하지 않았건만, 모든 중생이 불성을 보지 못하므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못한 것이니, 이것을 아주 없다는 소견이라 하느니라.’
이 때에 여러 범지들은 불성이 곧 나라고 말함을 듣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고는 마침내 출가하여 보리도를 닦았으며, 나는 새와 물에 살고 뭍에 사는 붙이들도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마음을 내고는 곧 몸을 버리었느니라. 선남자여, 이 불성이 실로는 내가 아니지만 중생을 위하여 나라고 이름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인연이 있으므로 내가 없는 것을 말하여 나라 하였으나, 실로는 내가 없으며 비록 이런 말을 하였으나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인연이 있으므로 나를 말하여 내가 없다 하였으나, 실로는 내가 있는 것이며, 세계를 위하여서 내가 없다 하였으나,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불성은 내가 없건만 여래가 나라 말한 것은 이것이 항상한 까닭이며, 여래는 나건만 내가 없다고 말한 것은 자재함을 얻은 까닭이니라.”
그때에 사자후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는 것이 금강역사와 같을진댄 무슨 이치로 모든 중생들이 보지 못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마치 색법(色法)이 비록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것이 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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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짧은 모양이 있지만, 소경은 보지 못하는 것이며, 소경이 보지 못한다 하여서,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고 길고 짧은 모양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왜냐 하면 소경은 비록 보지 못하나 눈이 있는 이는 보는 까닭이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은 보지 못하나 10주 보살은 일부분을 보고 여래는 전부를 보나니, 10주 보살이 불성을 보는 것은 밤에 빛깔을 보는 것과 같고, 여래가 보는 것은 낮에 빛깔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애꾸눈이 물체를 분명하게 보지 못하지만, 용한 의원이 눈병을 치료하면 약의 효력으로 분명하게 보게 되듯이 10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치 못하지만, 수릉엄삼매의 힘으로 분명하게 볼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온갖 법[一切法]도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줄로 본다면, 이런 사람은 불성을 보지 못하느니라. 온갖 법은 생사라 이름하고, 온갖 법 아닌 것은 삼보를 이름한 것이니, 성문과 연각은 온갖 법이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줄을 보고, 온갖 법 아닌 것도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줄로 보나니, 이런 뜻으로 불성을 보지 못하느니라. 10주 보살은 온갖 법은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줄을 보고, 온갖 법 아닌 것은 부분적으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보나니, 이런 뜻으로 십분 가운데서 일분을 보느니라. 부처님 세존은 온갖 법은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줄로 보고, 온갖 법 아닌 것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로 보느니라. 이런 뜻으로 불성 보기를 손바닥에 있는 아마륵 열매를 보듯 하나니, 이런 뜻으로 수릉엄정을 필경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초하루 달을 볼 수는 없으나 없다고 할 수도 없나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범부들이 보지 못하지만 불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느니라.
선남자여, 불성이라 함은 10력과 4무소외(無所畏)와 크게 불쌍히 여김과 3념처(念處)니라. 모든 중생은 모두 세 가지로 번뇌를 깨뜨림이 있으므로, 그런 뒤에야 보는 것이요, 일천제들은 일천제를 깨뜨린 뒤에, 10력과 4무소외와 크게 가엾이 여김과 3념처를 얻나니, 이런 뜻으로 내가 항상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12인연은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가진 것이며, 안에도 있고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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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있느니라. 무엇을 인연이라 하는가. 과거의 번뇌를 무명이라 하고, 과거의 업을 행(行)이라 하고, 현재 세상에 처음으로 태에 드는 것을 식(識)이라 하고, 태에 들어서 5분(分)과 4근(根)이 구족하지 못한 것을 명색(名色)이라 하고, 4근을 구족하였으나, 촉(觸)이라 이름할 수 없는 때를 6입(入)이라 하고, 괴롭고 즐거움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촉이라 하고, 한 가지 사랑[一愛]에 물드는 것을 수(受)라 하고, 5욕을 익히어 가까이함을 애(愛)라 하고, 안과 밖으로 탐하여 구함을 취(取)라 하고, 안과 밖의 일을 위하여 몸과 입과 뜻으로 업을 일으킴을 유(有)라 하고, 현재 세상의 식을 미래의 생(生)이라 하고, 현재의 명색·6입·촉·수를 미래 세상의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라 하나니, 이것을 12인연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비록 12인연을 가지었으나 혹은 구족하지 못하니, 가라라(歌羅羅) 때에 죽으면 12인연이 없고, 생으로부터 늙고 죽는 데 이르면 12인연을 구족하는 것이니라. 색계의 중생들은 세 가지 수와 세 가지 촉과 세 가지 애가 없고, 늙고 병드는 일이 없지만, 12인연을 구족하였다 이름하며, 무색계의 중생들은 색도 없고 내지 늙고 죽음도 없지만 역시 12인연을 구족하였다 이름하나니, 반드시 얻을 것인 까닭이며, 그러므로 중생들이 평등하게 12인연을 구족하였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다고 내가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설산에 이름을 인욕(忍辱)이라 하는 풀이 있는데, 소가 먹으면 제호가 나는 것이요, 또 이상한 풀이 있으니 소가 먹으면 제호가 없어지느니라. 비록 제호가 없어지더라도 설산에 인욕초가 없다고 말할 수 없나니,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설산이라 함은 여래를 말함이요 인욕초는 대반열반을 말함이요, 이상한 풀은 12부경을 말함이니라. 중생이 만일 대반열반을 듣고 물으면 불성을 볼 것이니, 12부경 가운데서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나, 불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불성은 색(色)이기도 하고, 색이 아니기도 하고, 색도 아니고 색 아님도 아니며, 모양이기도 하고 모양이 아니기도 하고,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며, 하나이기도 하고 하나 아니기도 하고, 하나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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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아님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고 아주 없음[斷]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음도 아니고 아주 없지 않음도 아니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며, 다하기도 하고 다하지 않기도 하고 다함도 아니고 다하지 않음도 아니며, 인이기도 하고 과이기도 하고,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기도 하며, 뜻이기도 하고 뜻이 아니기도 하고 뜻도 아니고 뜻 아님도 아니며, 글자이기도 하고 글자 아니기도 하고 글자도 아니고 글자 아님도 아니니라.
어찌하여 색이라 하는가. 금강 같은 몸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색이 아니라 하는가. 18불공법(不共法)은 색법이 아닌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색도 아니고 색 아님도 아닌가. 색과 색 아닌 데에 일정한 모양이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모양이라 하는가. 32상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모양이 아니라 하는가. 모든 중생의 모양이 나타나지 않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모양과 모양 아닌 데에 결정치 못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하나라 하는가. 모든 중생이 다 1승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하나가 아니라 하는가. 3승을 말하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하나도 아니고 하나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세는 법이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항상함이 아니라 하는가. 인연을 따라 보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아주 없음이 아니라 하는가. 아주 없다는 소견을 여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항상하지 않음도 아니고 아주 없지 않음도 아니라 하는가. 나중과 처음이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있다 하는가. 모든 중생이 모두 가진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없다 하는가. 알맞은 방편을 따라서 보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라 하는가. 허공의 성품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다한다 하는가. 수릉엄삼매를 얻은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다하지 않는다 하는가. 항상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다함도 아니고 다하지 않음도 아니라 하는가. 모든 다했다는 모양이 없어진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인이라 하는가. 요인(了因)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과라 하는가. 결정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라 하는가. 항상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뜻이라 하는가. 뜻에 장애 없음[義無礙]을 모두 거두어 가진[攝取]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뜻이 아니라 하는가.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뜻도 아니고 뜻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필경까지 공한 까닭이니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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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하여 글자라 하는가. 이름이 있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글자가 아니라 하는가. 이름하는 것이 이름이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글자도 아니고 글자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온갖 글자가 없어진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괴롬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라 하는가. 온갖 받는 것[受]을 없앤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내가 아니라 하는가. 여덟 가지 자재함[八自在]을 갖추지 못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나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항상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나도 아니고 나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짓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공이라 하는가. 제일의공인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공이 아니라 하는가. 항상한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공도 아니요 공 아님도 아니라 하는가. 선한 법을 위하여 종자가 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대반열반의 이러한 뜻을 생각하고 이해한다면, 이 사람은 불성을 본 것이니, 불성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부처님 여래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의 알 바가 아니니라. 선남자여, 불성은 5음도 18계도 6입도 아니요, 본래는 없다가 지금은 있는 것도 아니며, 있었다가 도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선한 인연으로야 중생들이 보게 되느니라. 마치 검은 쇠[黑鐵]가 불에 들어가면 붉어지고, 나와서 식어지면 도로 검어지는 것과 같나니, 이 검은 빛은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으며 인연으로 있는 것이니라. 불성도 그러하여 모든 중생의 번뇌의 불이 꺼지면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은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히 성취하였나니, 불성도 그러하여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으로 성취하였느니라.”
이 때에 사자후보살마하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몇 가지 법을 구족히 성취하였길래, 불성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며, 부처님들은 몇 가지 법을 성취하셨길래 분명하게 보나이까?”
“선남자여, 보살은 열 가지 법을 구족히 성취하였으므로 불성을 보면서도 분명하지 못하니라. 무엇이 열인가. 하나는 욕심이 적고[少欲] 둘은 만족함을 알고[知足] 셋은 고요함[寂靜]이요 넷은 정진이요 다섯은 바른 생각[正念]이요 여섯은 바른 정[正定]이요 일곱은 바른 지혜[正慧]요 여덟은 해탈이요 아홉은 해탈을 찬탄함이요, 열은 대반열반으로 중생을 교화함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세존께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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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욕심이 적은 것과 만족함을 아는 것이 어떻게 다르나이까?”
“선남자여, 욕심이 적은 것은 구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음이요, 만족함을 아는 것은 적게 얻었을 적에 후회하지 않는 것이니라. 욕심이 적은 것은 하고자 함이 적음이요 만족함을 아는 것은 불법의 일만 위하고 마음에 근심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욕심은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나쁜 욕심이요, 둘은 큰 욕심이요, 셋은 욕망의 욕심[欲欲]이다. 나쁜 욕심이란 것은 만일 비구가 탐욕을 내어서, 모든 대중의 우두머리가 되어 모든 비구들이 나의 뒤에 따르고, 여러 사부대중이 모두 나에게 공양하고 공경하고 찬탄하고 존중하기를 바라며, 내가 가장 먼저 사부대중에게 법을 말하거든 모든 사람들이 나의 말을 믿으며, 국왕·대신·장자들도 모두 나에게 공양하여 나로 하여금 의복과 음식과 와구(臥具)와 의약과 훌륭한 가옥을 많이 얻어서, 생사의 욕망을 만족하려 하면 이것은 나쁜 욕심이니라.
어떤 것이 큰 욕심인가. 만일 비구가 욕심을 내어서, ‘어찌하면 사부대중으로 하여금 내가 초주(初住)에서부터 내지 10주를 얻었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며, 아라한과에서부터 내지 수다원과를 얻었으며 4선(禪)과 4무애지(無礙智)를 얻은 줄을 알게 하리요’ 하며, 이양을 위한다면 이것은 큰 욕심이니라.
욕망의 욕심이라 함은, 만일 비구가 범천에나 마왕천에나 자재천에나 전륜성왕이나 찰제리나 바라문으로 태어나서 자재하려 하면, 이는 이양을 위하는 것이므로 욕망의 욕심이라 하느니라. 만일 이런 세 가지 나쁜 욕심의 해가 되지 아니한다면, 이는 욕심이 적다고 이름하느니라. 욕심은 25애(愛)라 하나니, 25애가 없으면 욕심이 적다 하고, 미래에 하고자 하는 일을 구하지 아니하면 욕심이 적다 하고, 얻고도 집착하지 아니하면 만족한 줄 안다 하며, 공경을 구하지 아니하면 욕심이 적다 하고, 얻고도 쌓아 두지 아니하면 만족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또 욕심은 적으나 만족함을 안다고 이름하지 못할 것이 있으며, 만족할 줄은 아나 욕심이 적다고 이름하지 못할 것도 있으며, 욕심도 적고 만족함도 안다고 할 것이 있으며, 만족한 줄도 모르고 욕심도 적지 않다고 할 것이 있느니라. 욕심이 적은 이는 수다원이요, 만족함을 아는 이는 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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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요, 욕심도 적고 만족함도 아는 이는 아라한이요, 욕심도 적지 않고 만족함도 모르는 이는 보살이니라. 선남자여,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아는데 또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선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선하지 않은 것이니라. 선하지 않은 것은 범부요 선한 것은 성인과 보살이니라. 모든 성인은 비록 도과(道果)를 얻었으나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며, 말하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시끄럽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만족함을 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대승 대열반경을 닦아서 불성을 보려 하나니, 그러므로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아는 것을 닦아 익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고요함이라 하는가. 고요함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마음이 고요하고 둘은 몸이 고요함이니라. 몸이 고요함은 몸으로 하는 세 가지 나쁜 짓을 짓지 아니함이고, 마음이 고요함은 뜻으로 하는 세 가지 나쁜 짓을 짓지 아니함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몸과 마음이 고요하다 하느니라. 몸이 고요한 이는 사부대중을 친근하지 아니하고, 사부대중의 하는 일에 참여하지 아니하며, 마음이 고요한 이는 마침내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을 익히지 않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몸과 마음이 고요하다 하느니라.
어떤 비구는 몸은 고요하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이가 있고 마음은 고요하나 몸이 고요하지 못한 이도 있고, 몸과 마음이 고요한 이도 있고, 몸과 마음이 모두 고요하지 못한 이도 있느니라. 몸은 고요하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것은, 어떤 비구가 고요한 데서 좌선(坐禪)하느라고 사부대중을 멀리하였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쌓아 두나니, 이를 일러 몸은 고요하나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다 하느니라. 마음은 고요하나 몸이 고요하지 못한 것은, 어떤 비구가 사부대중과 국왕과 대신을 친근하면서도, 마음에는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을 끊었으면, 이것을 말하여 마음은 고요하나 몸은 고요하지 못하다 하느니라. 몸과 마음이 고요한 이는 부처님과 보살이요, 몸과 마음이 모두 고요하지 못한 이는 모든 범부들이니라. 왜냐 하면 범부들은 몸과 마음이 비록 고요하더라도,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음을 깊이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이런 뜻으로 범부들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법을 고요하게 하지 못하고, 일천제들은 4중금을 범하고 5역죄를 지으므로, 이런 사람들도 몸과 마음이 고요하다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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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하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정진이라 하는가. 어떤 비구가 몸과 입과 뜻으로 하는 업이 깨끗하기 위하여, 온갖 선하지 못한 업을 멀리 여의고, 모든 선한 업을 닦는 것을 정진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렇게 부지런히 정진하는 이는 여섯 군데에 생각을 두나니, 부처님과 법과 승가와 계율과 보시와 하늘이니라. 이것을 바른 생각[正念]이라 하느니라.
바른 생각을 갖춘 이가 얻는 삼매는 이것을 바른 정[正定]이라 하느니라.
바른 정을 갖춘 이는 모든 법을 관찰하되 허공과 같이 하나니, 이것을 바른 지혜[正慧]라 하느니라.
바른 지혜를 갖춘 이는 온갖 번뇌의 결박을 여의었나니 이것을 해탈이라 하느니라.
해탈을 얻은 이는 중생들을 위하여 해탈을 칭찬하면서, 이 해탈은 항상하여 변하지 않는다 하나니, 이것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해탈은 곧 위없는 대반열반이요, 열반은 곧 번뇌로 결박한 불이 꺼지는 것이니라. 또 열반은 집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번뇌라는 사나운 비바람을 막는 까닭이니라. 또 열반은 귀의할 데라 하나니, 왜냐 하면 능히 모든 공포를 없애는 까닭이니라. 또 열반은 섬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네 가지 빠른 물결[四暴流]로도 떠내려 보낼 수 없는 까닭이니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나는 욕심 빠른 물결[欲暴流]이요 둘은 유(有)의 빠른 물결이요 셋은 소견의 빠른 물결이요, 넷은 무명의 빠른 물결이니라. 그러므로 열반을 섬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열반은 필경에 돌아갈 데니, 왜냐 하면 모든 필경의 낙을 얻는 까닭이니라. 만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갖추면 불성을 보기는 하나 분명치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출가한 사람에게 네 가지 병이 있어서 네 가지 사문의 과를 얻지 못하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 병이라 하는가. 네 가지 나쁜 탐욕이니, 하나는 의복을 위한 탐욕이요 둘은 음식을 위한 탐욕이요 셋은 와구를 위한 탐욕이요 넷은 유(有)의 탐욕이니, 이것을 네 가지 나쁜 탐욕이라 하느니라. 이 출가한 이의 병은 네 가지 좋은 약이 있어 치료하나니, 누더기옷[糞掃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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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는 비구의 의복을 위하는 탐욕을 고치고, 걸식함으로는 음식을 위한 탐욕을 깨뜨리고, 나무 밑에 앉음으로는 와구를 위한 탐욕을 깨뜨리고, 몸과 마음이 고요함으로는 비구들의 유의 탐욕을 깨뜨린다. 이 네 가지 약으로 네 가지 병을 치료하는 것을 성인의 행이라 하며, 이런 성인의 행을 이름하여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고요함은 네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하나는 출가한 즐거움이요 둘은 고요한 즐거움이요 셋은 영원히 멸하는 즐거움이요 넷은 끝까지 즐거움이라. 이 네 즐거움을 얻었으므로 고요하다 이름하느니라.
4정진을 갖추었으므로 정진이라 하고, 4념처(念處)를 갖추었으므로 바른 생각이라 하고, 4선정을 갖추었으므로 바른 정이라 하고, 네 가지 진실한 이치[四聖實]를 갖추었으므로 바른 지혜라 하고, 모든 번뇌의 결박을 영원히 여의었으므로 해탈이라 하고 모든 번뇌의 허물을 꾸짖으므로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 법에 머물러 구족하면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경을 듣고 친근하고 닦아서 모든 세상일을 멀리 여의면 욕심이 적다 하고, 출가한 뒤에 후회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면 만족함을 안다 하고, 고요한 곳을 가까이하고 시끄러운 데를 멀리 여의면 고요하다 하느니라. 만족함을 알지 못하는 이는 고요한 데를 좋아하지 못하거니와, 만족함을 아는 이는 고요한 데를 좋아하고, 고요한 데서 항상 생각하기를 ‘모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말하여 사문의 도를 얻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얻지 못하였거늘, 어찌 사람을 속이리요’ 이렇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사문의 도과를 닦는 것을 정진이라 하고, 대반열반을 친근하여 익힘을 바른 생각이라 하고, 하늘의 행을 따라 익힘을 바른 정이라 하고, 이 정에 편안하게 머물러 옳게 보고 옳게 아는 것을 바른 지혜라 하고, 옳게 보고 옳게 아는 이가 번뇌의 결박을 멀리 여의는 것을 해탈이라 하고, 10주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서 열반을 칭찬함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 법에 편안히 머물러 구족하면,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욕심이 적다는 것은 비구가 고요한 데 있어서 단정하게 앉아 눕지 않거나, 나무 밑에 있거나 무덤 곁에 있거나 한데에 있거나 풀밭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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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앉았으며, 걸식하여 먹으면서 얻는 대로 만족하고, 혹은 한 자리에서 먹으면서 한 때만 먹고, 세 가지 가사와 누더기옷과 취의(毳衣)만을 가지면, 이것을 욕심이 적다 하고, 이런 일을 행하면서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으면 만족함을 안다 하고, 공삼매(空三昧)를 닦는 것을 고요하다고 하고, 4과를 얻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마음을 쉬지 아니함을 정진이라 하고, 여래는 항상하여 변함이 없다고 마음을 두어 생각함을 바른 생각이라 하고, 8해탈을 닦음을 바른 정이라 하고, 4무애를 얻는 것을 바른 지혜라 하고, 일곱 가지 누(漏)를 여의는 것을 해탈이라 하고, 열반에는 열 가지 모양이 없다고 칭찬함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나니, 열 가지 모양은 낳는 것·늙는 것·병나는 것·죽는 것·빛·소리·향기·맛·닿임·무상이라, 이 열 가지를 여의는 것을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에 머물러 구족하면, 불성을 보면서도 분명하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탐욕이 많아서 국왕·대신·장자·찰제리·바라문·비사·수타를 친근하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수다원과나, 내지 아라한과를 얻었노라 하여 이양을 위하며, 가고 서고 앉고 눕거나 내지 대소변을 하다가도 단월을 만나면 공경을 행하거나 상대하여 말을 하여 나쁜 욕심을 파하는 이는 욕심이 적다고 이름하며, 모든 번뇌를 깨뜨리지 못하였더라도, 여래의 행하는 곳과 같이 하면 만족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두 가지 법은 바른 생각과 바른 정에 가까워지는 인연이며, 스승이나 함께 공부하는 이의 칭찬을 받으며, 나도 항상 여러 경전에서 이 두 가지 법을 찬탄하였으니, 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는 이는 대반열반과 다섯 가지 낙에 가까워지리니 이것을 고요함이라 하고, 계행을 굳게 지니는 이를 정진이라 하고, 부끄러움이 있는 이를 바른 생각이라 하고, 마음의 모양을 보지 않는 것을 바른 정이라 하고, 모양이 없어져서 번뇌가 끊어짐을 해탈이라 하고, 이러한 대반열반을 칭찬함을 해탈을 찬탄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에 편안히 머문다 하나니,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10주 보살은 무슨 눈이길래, 불성을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고, 부처님 세존은 무슨 눈이길래 불성 보기를 분명히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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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나니, 선남자여, 혜안(慧眼)으로 보는 까닭으로 분명하지 못하고, 불안(佛眼)으로 보는 까닭으로 분명한 것이며, 보리행을 하는 까닭으로 분명하지 못하고, 행함이 없으므로 분명한 것이며, 10주에 머물렀으므로 보는데도 분명하지 못하고, 머물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므로 분명한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지혜의 인이므로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부처님께서는 인과를 끊었으므로 분명하게 보느니라. 온갖 것을 깨달은 것을 불성이라 하거니와, 10주 보살은 온갖 것을 깨달았다 이름할 수 없으므로, 비록 보더라도 분명하지 못하니라.
선남자여, 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눈으로 보는 것이요 둘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부처님 세존은 눈으로 불성을 보시므로, 손바닥에 있는 아마륵 열매를 보듯 하고, 10주 보살은 불성을 들어서 보므로 분명치 못하니라. 10주 보살은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줄을 스스로는 알지만,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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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2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 ④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수행하여 둘째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하였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아서,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얻으며, 예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며,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들으며, 예전에 이르지 못한 데에 이르며, 예전에 알지 못한 것을 아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지금 얻었다 하는가. 그것은 신통이니라. 신통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엣 신통이요, 다른 하나는 바깥 신통이니라. 바깥 신통은 외도와 함께하는 것이요, 안엣 신통은 또 두 가지니, 2승의 신통과 보살의 신통이니라. 보살이 대반열반경을 수행하여 얻은 신통은 성문이나 벽지불과 함께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성문·벽지불과 함께하지 않는다 하는가. 2승이 얻은 신통 변화는 한 마음으로 하나만 짓고 여러 가지를 짓지 못하거니와,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한 마음에서 다섯 갈래의 몸을 구족하게 나타내느니라. 왜냐 하면 이러한 대반열반경의 세력을 얻은 까닭이니, 이것을 말하여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을 말하여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지금 얻었다 하는가. 몸도 자재하고 마음도 자재함이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범부는 몸과 마음이 자재하지 못하여, 혹은 마음이 몸을 따르고, 혹은 몸이 마음을 따르느니라. 무엇을 말하여 마음이 몸을 따른다 하는가. 마치 술취한 사람이 술이 몸 안에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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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몸이 동하면 마음도 따라 동하고, 몸이 나태하면 마음도 나태하나니, 이것은 마음이 몸을 따른다 하느니라. 또 어린아이는 몸이 작으므로 마음도 작고, 어른은 몸이 크므로 마음도 큰 것과 같으니라. 또 어떤 사람이 몸이 껄끄러우면 마음으로 항상 기름 따위를 얻어서 부드럽게 하려고 생각하나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몸을 따른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몸이 마음을 따른다 하는가. 가고 오고 앉고 누울 때에 보시·지계·인욕·정진을 수행하는 것이니, 근심하는 사람은 몸이 여위고, 기뻐하는 사람은 몸이 살찌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몸이 떨리고, 전심으로 법을 들으면 몸이 화평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눈물이 흐르나니, 이런 것은 몸이 마음을 따른다 하느니라.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몸이나 마음에 모두 자재하게 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예전에 얻지 못한 것을 지금 얻었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나타내는 몸은 티끌과 같나니, 이 티끌 같은 몸으로 한량없고 가없이 항하의 모래와 같은 여러 부처님 세계에 이르러도 조금도 장애되지 않지만, 마음은 항상 일정하여서 변동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몸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또 예전에 이르지 못한 데에 지금 이른다 하나니, 어찌하여 예전에 이르지 못한 데를 지금 이른다 하는가.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들로는 이를 수 없는 데에 보살이 능히 이르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예전에 이르지 못한 데에 지금 이른다 하느니라.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들은 비록 신통이 있더라도 티끌과 같이 몸을 변화하여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세계에 두루 이르지 못하며, 성문이나 연각은 몸이 동할 때에는 마음도 따라 동하지만,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마음은 동하지 않더라도 몸이 이르지 못하는 데가 없으므로, 보살은 마음이 몸을 따르지 않는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은 몸을 변화하여 삼천대천세계와 같이 하며, 그렇게 큰 몸으로 한 티끌에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따라서 작아지지 아니하거니와, 성문이나 연각은 비록 몸을 변화하여 삼천대천세계와 같이 하더라도 그렇게 큰 몸으로 티끌 같은 몸에 들어가지 못하나니, 이런 일에도 자재하지 못하거든, 따라서 동하지 않게 하겠는가.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은 마음이 몸을 따르지 않는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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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한 음성으로써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듣게 하더라도,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이 음성으로써 모든 세계에 두루하여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예전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듣게 하였다’ 하지도 아니하고, 이 보살이 또 말하기를 ‘내가 중생으로 하여금 예전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듣게 하였노라’ 하지도 아니하나니, 보살이 만일 ‘내가 법을 말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듣지 못하던 것을 듣게 하였노라’ 말한다면, 이 사람은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리라. 왜냐 하면 중생이 듣지 못하던 것을 내가 말하였다 하면, 이런 마음은 나고 죽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보살의 이런 마음이 이미 다하였으니,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의 몸과 마음은 서로 따르지 않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범부들은 몸과 마음이 서로 따르거니와,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서 작은 몸을 나타내더라도 마음은 작아지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보살들의 마음 성품은 항상 넓고 큰 까닭이며, 비록 큰 몸을 나타내더라도 마음은 커지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을 큰 몸이라 하는가. 몸이 삼천대천세계와 같은 것이며, 어떤 것이 작은 마음인가. 어린아이의 행을 행하는 것이니, 이런 뜻으로 마음이 몸을 따르지 않는다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미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술을 멀리하고 마시지 않지만 마음이 동하기도 하며, 마음에 슬픈 일이 없지만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실로 무서운 일이 없지만 떨리기도 하나니, 이런 이치로 보살은 몸과 마음이 자재하여 서로 따르지 않는 줄을 알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다만 한 몸을 나타내지만, 중생들은 제각기 다른 것을 보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지금 듣는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먼저 소리의 모양을 취하나니, 코끼리 소리, 말 소리, 수레 소리, 사람의 소리, 소라·북·피리·퉁소 소리와 노래 소리, 우는 소리 따위를 익히며, 익히는 까닭으로 한량없는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지옥의 음성을 들으며, 또 점점 다른 귀를 닦아 익히어 성문·연각의 천이통과 다르니, 무슨 까닭인가. 2승들이 얻은 청정한 귀는 만일 초선(初禪)의 깨끗하고 묘한 4대로는 초선의 소리만 듣고 2선의 것은 듣지 못하며, 내지 4선도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비록 어쩌다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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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을 듣는다 하여도, 한량없고 가없는 항하의 모래 같은 세계의 음성은 듣지 못하나니, 이런 뜻으로 보살이 얻는 귀는 성문·연각의 귀와 다르니라. 이렇게 다른 까닭으로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지금 듣는다는 것이며, 비록 음성을 듣더라도 마음에는 소리를 듣는 모양이 없어서 있는 모양이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모양이나, 주장하는 모양, 의지하는 모양, 짓는 모양, 인이란 모양, 일정한 모양, 과보라는 모양을 짓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으로 보살들이 예전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듣는다 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사와 일정한 모양을 짓지 아니하며, 과보란 모양을 짓지 않는다 함은 그 뜻이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이 대반열반경의 한 구절 한 글자를 들으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 하셨기 때문이온데, 이제는 어찌하여 일정함도 없고 과보도 없다 하시나이까?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 하면, 그것이 곧 일정한 모양이며 과보의 모양이옵거늘, 어찌하여 일정함과 과보가 없다 하시나이까? 나쁜 소리를 들은 탓으로 나쁜 마음을 내고, 나쁜 마음을 내면 3악도에 이르고, 3악도에 이르면 그것은 일정한 과보이옵거늘, 어찌하여 일정함도 없고 과도도 없다 하오리까?”
이 때에 부처님께서 찬탄하시었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능히 맞게 묻는구나. 만일 부처님들이 말하기를 모든 음성이 일정한 과보의 모양이 있다면 이것은 부처 세존의 모양이 아니고, 마왕의 모양이며, 생사하는 모양이며, 열반과 멀어지는 모양이니,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이 말하는 것은 일정한 과보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칼에 사람의 얼굴이 비칠 때에 칼을 세우면 길어지고 뉘면 넓어지나니, 만일 일정한 모양이 있다면 어찌하여 세우면 길어지고 뉘면 넓어지겠느냐. 이런 이치로 부처 세존의 연설함은 일정한 과보의 모양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열반이란 것은 진실로 소리의 결과가 아니니, 만일 열반이 소리의 결과라면 열반은 항상한 법이 아닐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세간에서 인으로부터 생기는 법은, 인이 있으면 과가 있고 인이 없으면 과가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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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 무상하므로 과도 무상한 것과 같으니라. 왜냐 하면 인이 과도 되고 과가 인도 되기 때문이니, 그런 뜻으로 모든 법이 일정한 모양이 없으며, 만일 열반이 인으로부터 생긴다면 인이 무상하므로 과도 무상할 것이요, 이 열반이 인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면 자체가 과가 아닐 것이며, 그러므로 항상함이 되나니, 선남자여, 이런 이치로 열반의 체는 일정함도 없고 결과도 없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열반이란 것은 일정하다 할 수도 있고 과라고 말할 수도 있나니, 어찌하여 일정하다 하는가. 모든 부처님의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므로 일정한 것이며, 나고 늙고 파괴됨이 없으므로 일정한 것이며, 일천제가 4중금을 범하거나 방등경을 비방하거나 5역죄를 지었더라도 본마음을 버리면 반드시 얻을 것이므로 일정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내가 연설하는 대반열반의 한 글자 한 구절만 들어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함은, 그대가 이 이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니, 그대는 자세히 들으라. 내가 다시 분별하여 말하리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대반열반경의 한 글자 한 구절을 듣고도, 글자란 모양을 짓지 않고, 구절이란 모양을 짓지 않고, 듣는다는 모양을 짓지 않고, 부처란 모양을 짓지 않고, 말한다는 모양을 짓지 아니하면, 이런 것은 모양 없는 모양이라 하나니, 모양 없는 모양인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나쁜 소리를 들었으므로 세 갈래에 이른다 함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나쁜 소리로써 세 갈래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이 과보는 나쁜 마음인 줄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니, 어떤 선남자 선여인은 비록 나쁜 소리를 듣더라도 마음에 나쁜 생각을 내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나쁜 소리를 인하여 세 갈래에 나는 것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하나니, 모든 중생들은 번뇌의 속박을 인하여 나쁜 마음이 점점 많아져서 3악도에 나게 되는 것이요, 나쁜 소리를 인함이 아니니라.
만일 소리에 일정한 모양이 있다면, 듣는 이마다 모두 나쁜 마음을 낼 것이거니와, 혹 내는 이도 있고 내지 않는 이도 있으니, 그러므로 소리에는 일정한 모양이 없음을 알 것이며, 일정한 모양이 없으므로 비록 소리를 인하더라도 나쁜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니라.”
“세존이시여, 소리가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어찌하여 보살이 예전에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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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한 것을 지금 들을 수 있나이까?”
“선남자여, 소리는 일정한 모양이 없는데,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보살들로 하여금 지금 듣게 하느니라. 이런 이치로 내가 말하기를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지금 듣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찌하여 예전에 보지 못한 것을 지금 본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을 때에 먼저 밝은 모양을 취할지니, 곧 해와 달과 별과 화톳불과 등촉과 구슬의 빛과 약초(藥草)의 빛들이다. 닦아 익힌 까닭으로 다른 눈을 얻었으며, 성문이나 연각이 얻은 것과 다르니라. 어떻게 다른가. 2승이 얻은 청정한 천안은 욕계의 4대로 된 눈으로는 초선의 것을 보지 못하며, 초선의 눈으로는 윗 하늘의 것을 보지 못하며, 내지 자기의 눈을 보지 못하고, 많이 보려 하면 고작해야 삼천대천세계에 이르지만, 보살마하살은 천안을 닦지 않고도 묘한 몸[妙色身]이라도 모두 해골로 보며, 다른 지방에 있는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세계의 모양을 보더라도 빛깔이란 모양을 짓지 아니하며, 항상한 모양·있다는 모양·물건이란 모양·이름이란 모양·인연이란 모양도 짓지 아니하며, 본다는 모양도 짓지 아니하고 눈의 미묘하고 깨끗한 모양이라 말하지도 아니하며, 다만 인연과 인연이 아닌 모양만 보느니라.
무엇을 인연이라 하는가. 빛[色]은 눈의 인연이니, 만일 빛이 인연이 아니라면, 모든 범부들은 빛을 본다는 일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빛을 인연이라 하느니라. 인연이 아니라 함은, 보살마하살은 빛을 보더라도 빛이란 모양을 짓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인연이 아니며, 이런 뜻으로 보살이 얻은 청정한 천안은 성문·연각이 얻은 것과 다르다는 것이며, 다르므로 한꺼번에 시방세계에 계시는 부처님을 두루 보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예전에 보지 못한 것을 지금 본다고 하며, 이렇게 다르므로 성문·연각의 보지 못하는 미진(微塵)을 보는 것이요, 이렇게 다르므로 자기의 눈을 보아도 본다는 모양이 없으며, 무상한 모양을 보고 범부의 몸에 36종의 부정한 것이 가득함을 보되 손바닥에 있는 아마륵(阿摩勒) 열매를 보듯 하나니, 이런 이치로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지금 본다고 하는 것이니라. 만일 중생에게 있는 빛만 보아도 그 사람이 대승인지 소승인지를 알며, 옷만 만지고도 그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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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고 악한 것과 여러 근(根)의 차별을 아나니, 그러므로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안다고 하느니라. 한번 보기만 하고도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나니, 이렇게 아는 까닭으로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본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찌하여 보살이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안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비록 범부의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은 마음을 알더라도, 애초의 마음이라, 심수(心數)라 하는 모양을 짓지 아니하며, 중생이다 물건이다 하는 모양도 짓지 아니하고, 제일의(第一義)의 끝까지 공한 것을 닦나니, 왜냐 하면 모든 보살이 항상 공한 성품과 모양을 수습하는 까닭이니라. 공함을 수습하므로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안다 하나니 어떤 것을 안다 하는가.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음을 알며,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음을 아느니라. 불성이 있으므로 일천제들이라도 본마음만 버리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느니라. 이런 것이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알 수 없고, 보살만이 아는 것이니, 이런 뜻으로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안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찌하여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안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익히면, 지난 세상 모든 중생의 태어나던 성씨와 부모 형제와 처자 권속과 친구들과 원수들을 알며, 잠깐 동안에 특수한 지혜[殊異智]를 얻어서 성문·연각의 지혜와는 다르나니, 어떻게 다른가. 성문·연각이 가진 지혜로는 지난 세상에 태어난 중생들의 성씨와 부모와 내지 원수들을 기억하여 무슨 성씨라, 내지 원수라는 상을 짓지만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지난 세상의 성씨와 부모와 내지 원수라는 모양을 기억하더라도, 마침내 무슨 성씨와 부모와 원수라는 상을 내지 아니하고, 항상 법이라는 상과 공적하다는 상을 짓나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안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찌하여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안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익히면,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를 얻어서 성문·연각이 얻은 지혜와는 다르니, 어떻게 다른가. 성문·연각은 한 번 생각하는 지혜[一念智]로 사람의 마음을 알더라도, 지옥·축생·아귀·천인의 마음은 알지 못하거니와,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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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동안에 여섯 갈래 중생들의 마음을 두루 아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안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다시 다른 지혜가 있나니, 보살마하살은 한 마음 중에서 수다원의 첫마음과 차례차례로 열여섯째 마음까지를 아는 것이며, 이런 이치로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 안다고 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서 둘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함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서 셋째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서 인자함[慈]을 버리고 인자함을 얻나니, 인자함을 얻을 때에는 인연을 따르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인자함을 버리고 인자함을 얻는다 하는가. 선남자여, 인자함은 세상법[世諦]을 말함이니, 보살은 세상법의 인자함을 버리고 제일의법의 인자함을 얻느니라. 제일의법의 인자함은 인연으로 좇아 얻지 아니하느니라. 또 어찌하여 인자함을 버리고 인자함을 얻는다 하는가. 인자함을 버리는 것은 범부의 인자함이요, 인자함을 얻는 것은 보살의 인연이 없는 인자함이니, 일천제의 인자와 중한 계율을 범한 인자와 방등경을 비방하는 인자와 5역죄를 지은 인자를 버리고, 가엾이 여기는 인자와 여래의 인자와 세존의 인자와 인연 없는 인자를 얻음이니라.
어떤 것을 또 인자함을 버리고 인자함을 얻는다 하는가. 내시의 인자와 근(根)이 없는 자의 인자와 근이 둘인 자의 인자와 여인의 인자, 백정·사냥꾼·짐승 기르는 자 따위의 인자를 버리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인자함도 버리고, 보살의 인연 없는 인자를 얻으며, 자기의 인자함도 보지 않고, 다른 이의 인자함도 보지 않고, 계율을 가짐도 보지 않고, 계율을 파함도 보지 않으며, 스스로 불쌍히 여김을 보더라도 중생을 보지 아니하고, 비록 괴로움이 있어도 괴로움 받는 자를 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제일의 진실한 이치를 닦는 까닭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아서 셋째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한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을 닦아서 넷째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서 넷째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함에는 열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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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라 하는가. 첫째 뿌리가 깊어서 뽑기 어려움이요, 둘째 자기의 몸에 결정한 생각을 냄이요, 셋째 복밭인가 복밭 아닌가를 보지 않음이요, 넷째 부처님 국토를 깨끗이 함을 닦음이요, 다섯째 다른 나머지를 없앰이요, 여섯째 업의 인연을 끊음이요, 일곱째 청정한 몸을 닦음이요, 여덟째 모든 인연을 분명히 앎이요, 아홉째 원수를 여읨이요, 열째 두 가장자리를 끊어 버림이니라.
어떤 것을 뿌리가 깊어 뽑기 어렵다 하는가. 뿌리라 함은 방일하지 아니함을 말함이니, 방일하지 아니함은 무슨 뿌리인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뿌리니라.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의 선한 근본이 모두 방일하지 아니함이며, 방일하지 않으므로 다른 선근들이 점점 늘어나며, 모든 선근이 늘어나므로 모든 선한 일 중에 가장 훌륭하니라. 선남자여, 모든 발자취 중에는 코끼리의 자취가 으뜸이 되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선한 법 중에 가장 훌륭하니라. 모든 밝은 빛 중에는 햇빛이 으뜸이 되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선한 법 중에 가장 훌륭하니라. 선남자여, 모든 왕 중에는 전륜왕이 가장 제일이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러하여, 모든 선한 법 중에 가장 제일이니라. 모든 강 중에는 4대하가 으뜸이 되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러하여 모든 선한 법 중에 가장 제일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산 중에는 수미산이 가장 제일이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러하여 모든 선한 법 중에 가장 제일이 되느니라. 물에 나는 꽃 중에는 청련화가 으뜸이 되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러하여 모든 선한 법 중에 가장 으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뭍에 나는 꽃 중에는 바리사(婆利師) 꽃이 으뜸이 되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러하여 모든 선한 법 중에 으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짐승 중에는 사자가 으뜸이 되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러하여 모든 선한 법 중에 으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새 중에는 금시조가 으뜸이 되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러하여 모든 선한 법 중에 으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큰 몸 중에는 라후아수라가 가장 으뜸이 되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선한 법 중에 가장 으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두 발 가지거나 네 발 가지거나 발이 많거나 발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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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들 중에는 여래가 으뜸이 되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선한 법 중에 가장 으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여러 대중 중에서 부처님과 승가가 가장 높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와 같아서 선한 법 중에 가장 높으니라. 선남자여, 불법 중에는 대열반법이 가장 높듯이, 방일하지 않는 법도 그와 같아서 선한 법 중에 가장 높으니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방일하지 않는 뿌리가 깊어서 뽑기 어려우니라.
어떤 것을 방일하지 않으므로 늘어난다 하는가. 믿는 근본, 계행의 근본, 보시의 근본, 지혜의 근본, 참는 근본, 들은 근본, 정진하는 근본, 생각하는 근본, 선정의 근본, 선지식의 근본, 이러한 근본들이 방일하지 않으므로 늘어나게 되며, 늘어나므로 깊고 견고하여 뽑기 어려우니라.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으며 뿌리가 깊어 뽑기 어렵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자기의 몸에 결정한 생각을 낸다 하는가. 자기의 몸에 대하여 결정한 마음을 내되, 나의 이 몸이 오는 세상에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그릇을 이룰 것이니, 마음도 그와 같아서 좁은 마음도 짓지 아니하고 변하는 마음도 짓지 아니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도 짓지 아니하며, 마군의 마음이나 스스로 즐거워하는 마음이나 생사를 좋아하는 마음도 짓지 아니하고, 항상 중생들을 위하여 자비한 마음을 구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자기의 몸에 대하여 결정한 마음을 내되 내가 오는 세상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그릇이 되리라 하는 것이며,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의 대반열반을 닦아서 자기의 몸에 결정한 생각을 낸다는 것이니라.
어찌하여 보살이 복밭인가 복밭이 아닌가를 보지 않는다 하는가. 무엇을 복밭이라 하는가. 외도의 계행을 가진 이로부터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를 복밭이라 하거니와, 만일 생각하기를 이런 이들이 참으로 복밭이라 한다면 그 마음은 좁고 용렬한 것이니, 보살마하살은 온갖 한량없는 중생이 모두 복밭이라고 관찰하느니라. 왜냐 하면 다르게 생각하는 곳[異念處]을 잘 닦아 익힌 까닭이니, 다르게 생각하는 곳을 닦아 익히는 중생을 관찰할 때에 계행을 가지거나 계행을 파함이 없고, 항상 부처님들이 말씀하신 것을 관찰하며, 보시하는 일이 비록 네 가지라 하나, 모두 청정한 과보를 얻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첫째, 시주는 깨끗하나 받는 이가 부정함이요, 둘은 시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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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하나 받는 이가 깨끗함이요, 셋은 시주와 받는 이가 모두 깨끗함이요, 넷은 시주와 받는 이가 모두 부정함이니라. 어떤 것이 시주는 깨끗하나 받는 이가 부정함인가. 시주는 계행을 가지고 많이 알고 지혜가 있어 은혜롭게 보시함과 보시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거니와, 받는 이는 계행을 파하고, 나쁜 소견에 집착하여 보시도 없고 과보도 없다 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시주는 깨끗하나 받는 이가 부정하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받는 이는 깨끗하나 시주가 부정하다 하는가. 시주는 계행을 파하고 나쁜 소견에 집착하여 보시도 과보도 없다 하지만, 받는 이는 계행을 지키고 많이 알고 지혜가 있어 보시와 보시한 과보가 있음을 아나니, 이것을 말하여 시주는 부정하나 받는 이는 청정하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시주와 받는 이가 모두 깨끗하다 하는가. 시주와 받는 이가 모두 계행을 지니고 많이 알고 지혜가 있어 보시와 보시의 과보가 있음을 아나니, 이것이 시주와 받는 이가 모두 청정하다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시주와 받는 이가 모두 부정하다는 것인가. 시주와 받는 이가 모두 계행을 파하고 나쁜 소견에 집착하여 보시와 보시한 과보가 없다고 함이니라.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깨끗한 과보를 얻는다 하는가. 보시도 없고 과보도 없으므로 깨끗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시하는 인과 보시의 과보를 보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계행을 파하고 나쁜 소견에 집착한다 이름하지 않느니라. 만일 성문을 의지하여 보시와 보시의 과보를 보지 않는다 말하면, 이것은 계행을 파하고 나쁜 소견이라 하고, 만일 이러한 대반열반경을 의지하여 보시와 보시의 과보를 보지 아니하면, 이것은 계행을 가진 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다르게 생각하는 곳이 없어서 닦아 익힌 까닭으로, 중생의 계행을 가지고 파함과 보시하고 받는 이와 보시한 과보를 보지 아니하면, 이것은 계행을 지니며 바른 소견이라 이름하나니, 이러한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복밭인가 복밭이 아닌가를 관찰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미묘한 대반열반경을 닦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살해할 마음을 여의며, 이 선근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하여, 중생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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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금 수명이 장수하고 큰 세력을 가지고 큰 신통 얻기를 원하며,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부처를 이룰 적에 그 국토에 있는 중생들이 수명이 장수하고 큰 세력이 있고 큰 신통을 얻게 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훔치는 마음을 여의며 이 선근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하여 여러 부처님의 세계에 있는 것이 순전한 7보로 되었고, 중생들이 부요하여 하려는 일이 뜻대로 되며,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부처를 이룰 때에, 그 세계의 국토가 순전한 7보로 되고, 중생들이 부요하여 하려는 일이 뜻대로 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음욕의 마음을 여의고, 이러한 선근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하기를 원하여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 있는 중생들이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마음을 여의고, 굶주리거나 고통의 걱정이 없을 것이며,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부처를 이룰 때에, 그 세계의 중생들이 음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마음을 여의고, 굶주리거나 고통받는 걱정이 없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거짓말하는 마음을 여의고, 이러한 선근을 모두 중생들과 함께하여, 부처님의 세계에는 무성한 삼림과 꽃과 과일과 향 나무가 항상 있으며, 그 세계의 중생들이 아름다운 음성 얻기를 원하면,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부처를 이룰 때에, 그 세계에는 언제나 무성한 삼림과 꽃과 과일과 향 나무가 있으며, 그 가운데 중생들이 청정하고 아름다운 음성을 얻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이간하는 말을 여의고, 이러한 선근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하여 여러 부처님 국토에 있는 중생들이 항상 화합하고 바른 법을 연설하기를 원하면,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부처를 이룰 때에 그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화합하여 바른 법을 강론하게 되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나쁜 욕설을 멀리 여의고, 이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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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하여, 부처님의 국토가 손바닥처럼 반듯하고 돌과 모래와 가시덤불이 없으며, 중생들의 마음이 평등하기를 원하면,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부처를 이룰 때에 그 세계의 땅이 손바닥처럼 반듯하고, 돌과 모래와 가시덤불이 없으며, 중생들의 마음이 평등하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옳지 못한 말을 여의고, 이 선근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하여, 부처님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시끄러움이 없기를 원하면,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부처를 이룰 때에 그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시끄러움이 없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간탐과 미워함을 여의고, 이 선근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하여, 모든 부처님 세계의 여러 중생들이 모두 간탐과 미워함과 시끄러움과 나쁜 소견이 없기를 원하면,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부처를 이룰 때에 그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간탐과 미워함과 시끄러움과 나쁜 소견이 없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시끄럽고 해치는 마음을 여의고, 이 선근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 부처님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대자대비를 익히어 외아들과 같이 하기를 원하면,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부처를 이룰 때에, 그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대자대비를 익히어 외아들처럼 생각함을 얻으리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나쁜 소견을 멀리 여의고, 이 선근을 모든 중생들과 함께하여, 부처님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모두 마하반야바라밀 얻기를 원하면, 이렇게 서원한 인연으로 내세에서 부처님을 이룰 때에, 모든 중생들이 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얻게 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함을 닦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다른 나머지를 없앤다 하는가. 나머지에 셋이 있으니, 하나는 번뇌의 나머지 과보요, 둘은 나머지 업이요, 셋은 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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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인과가 있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번뇌의 나머지 과보라 하는가. 어떤 중생이 탐욕을 익히면 그 과보가 성숙되어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아 비둘기·참새·원앙·앵무·기바기바(耆婆耆婆)·사리가조(舍利伽鳥)·파랑새·물고기·자라·원숭이·노루 따위가 되고, 설사 사람이 되더라도 고자, 여인, 근이 둘인 자, 근이 없는 자나 음녀가 되고, 출가하면 첫째 중대한 계율[初重戒]을 범하게 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음침한 마음으로 성내는 일을 익히면, 그 과보가 성숙되어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아 독사가 되어 보는 독·닿는 독·쏘는 독·뿜는 독이 구족하고, 사자·호랑이·곰·살쾡이·고양이·매·새매 따위가 되며, 사람의 몸을 얻더라도 열여섯 가지 나쁜 것을 구족하며, 출가하면 둘째 중대한 계율[第二重戒]을 범하게 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어리석음을 익히면, 과보가 성숙하여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아 코끼리·돼지·소·양·무소·벼룩·이·모기·등에·개미 따위가 되고, 사람이 되더라도 귀머거리·소경·벙어리·곱사등이 등의 불구자가 되어서 법을 얻어 배우지 못하며, 출가하면 모든 기관이 암둔하고 중대한 계율[重戒]을 거리낌 없이 범하며 내지 미천하게 되나니, 이런 것을 나머지 과보가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교만한 버릇을 익힌 사람은 그 과보가 성숙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아 꽁지벌레·약대·나귀·개·말 따위가 되고,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종이 되고 빈궁하여 거지가 되며, 혹 출가하더라도 항상 중생들의 업신여김을 받으며, 넷째 계율[第四戒]을 파하게 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 하느니라. 이런 과보들을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 익히면 모두 멸하여 없어지느니라.
어떤 것을 나머지 업이라 하는가. 모든 범부의 업, 모든 성문의 업이며, 수다원은 일곱 번 생사의 업을 받고 사다함은 두 번 생사의 업을 받고, 아나함은 색계의 업을 받나니, 이것을 나머지 업이라 하며, 이런 나머지 업을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 익힘으로 모두 끊어 버리느니라. 어떤 것을 나머지 인과가 있음이라 하는가. 아라한이 아라한과를 얻고 벽지불이 벽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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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를 얻을 때에 업이 없고 번뇌가 없이 두 가지 과를 전멸(轉滅)함을 나머지 인과가 있다고 하느니라. 이러한 세 가지 나머지 법을 보살마하살은 대승의 대반열반경을 닦음으로써 멸하게 되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나머지를 멸하여 없앤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청정한 몸을 닦는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살생하지 않는 계행을 닦는 데 다섯 가지 마음이 있으니, 하와 중과 상과 상중과 상상이며, 내지 바른 소견도 역시 그러하니라. 이 50가지 마음을 초발심(初發心)이라 하고, 이 50가지 마음을 구족하게 이루면 만족이라 하며, 이와 같이 백 가지 마음을 백 가지 복덕이라 이름하고, 백 가지 복덕을 구족하면 한 가지 몸매[一相]를 이루며, 이와 같이 점점 32상을 구족하게 성취하면 청정한 몸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80종호를 닦는 것은, 세상 중생들이 80신장을 섬기나니, 무엇이 80인가. 12날차지신[日神]과 12대천(大天)과 5대성(大星)과 북두성과 마천(馬天)과 행도천(行道天)과 바라타발사천(婆羅墮跋闍天)과 공덕천과 28수(宿)와 지천(地天)과 풍천과 수천과 화천과 범천과 루타천(樓陁天)과 인제천(因提天)과 구마라천(拘摩羅天)과 팔비천(八臂天)과 마혜수라천과 반사라천(半闍羅天)과 귀자모천(鬼子母天)과 4천왕천과 조서천(造書天)과 바수천(婆藪天)이니, 이것이 80신장이니라. 이런 중생이 80종호를 닦아서 스스로 장엄하는 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청정한 몸이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80천은 모든 중생이 믿고 복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보살이 80종호를 닦으면, 그 몸이 동하지 않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믿는 대로 제각기 보게 되고, 보고는 존경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게 되나니,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청정한 몸을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임금을 청하려면 그 집을 깨끗하게 장엄하여 여러 가지 훌륭한 음식을 마련한 뒤에야 임금이 청하는 대로 왕림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륜왕(法輪王)을 청하려면 먼저 몸을 닦아서 깨끗하게 한 뒤에야 위없는 법왕이 임하게 되리니, 그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청정한 몸을 닦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감로를 먹으려면 먼저 몸을 깨끗이 하여야 하나니,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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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위없는 감로법맛인 반야바라밀을 얻으려면 먼저 80종호로 몸을 깨끗이 하여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아름다운 금은으로 된 보배 그릇에 깨끗한 물을 담으면 겉과 속이 모두 깨끗한 것처럼 보살마하살의 몸이 청정함도 그와 같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물을 담으면 안과 밖이 모두 청정하니라. 선남자여, 바라나(波羅▩)로 만든 흰 옷은 물들기 쉬우니, 왜냐 하면 성질이 결백한 연고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몸이 깨끗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느니라.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깨끗한 몸을 닦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모든 인연을 분명히 안다 하는가. 보살이 빛의 모양을 보지 아니하며, 빛의 인연을 보지 아니하며, 빛의 본체를 보지 아니하며, 빛이 나는 것을 보지 아니하며, 빛이 없어짐을 보지 아니하며, 한 모양을 보지 아니하며, 다른 모양을 보지 아니하며, 보는 이를 보지 아니하며, 형상을 보지 아니하며, 받는 이를 보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인연을 분명히 아는 까닭이며, 빛과 같이 모든 법도 그와 같으니라.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모든 인연을 분명히 안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이 모든 원수를 여읜다 하는가. 온갖 번뇌가 보살의 원수니, 보살마하살이 항상 멀리 여의는 까닭으로 보살이 모든 원수를 여읜다 하느니라. 5주 보살은 모든 번뇌를 보아도 원수라 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번뇌로 인하여 보살이 태어나는 것이며, 나는 일이 있으므로 더욱 중생들을 교화하나니, 이런 이치로 원수라 하지 아니하느니라. 어떤 것을 원수라 하는가. 방등경전을 비방하는 이를 말함이니, 보살이 날 때에 지옥·축생·아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방등경전을 비방하는 이를 두려워하느니라. 모든 보살이 여덟 가지 마군을 원수라 하며, 이 여덟 마군을 여의는 것을 원수를 여읜다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모든 원수를 여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두 가장자리를 멀리 여읜다 하는가. 두 가장자리라 함은 25유(有)와 애착하는 번뇌를 말함이니, 보살이 25유와 애착하는 번뇌를 멀리 여의는 것을 말하여 보살이 두 가장자리를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서 넷째 공덕을 구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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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사와 보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으면 모두 이러한 열 가지 공덕을 지을 것이온데,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아홉 가지만 닦으시고 국토를 깨끗이 하는 것을 닦지 아니하였나이까?”
“선남자여, 나도 지나간 옛적에 이런 열 가지 일을 항상 구족하게 닦았나니, 모든 보살과 여래가 이 열 가지 일을 닦지 않은 이가 없느니라. 만일 세계에 부정한 것이 가득하였다면 여래는 그 가운데 나는 일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부처님이 부정한 세계에 난다고 말하지 말지니, 그런 마음은 옳지 못하고 좁은 것인 줄을 알지니라. 그대는 내가 실로 염부제에 나지 않은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세계에만 해와 달이 있고, 다른 세계에는 없다 한다면 이런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니라. 만일 보살이 말하기를, 이 부처님 세계는 더럽고 깨끗하지 못하며, 다른 세계는 청정하게 장엄하였다 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32항하의 모래 수 세계를 지나가서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무승(無勝)이라. 그 세계를 어찌하여 무승이라 하는가. 그 세계에 있는 모든 장엄이 모두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것이 서방의 극락[安樂]세계와 같고, 동방의 만월(彎月)세계와도 같으며, 내가 그 세계에서 세상에 나타났건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이 세계의 염부제에서 지금 법수레를 운전하느니라. 내 몸만이 여기서 법수레를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들도 여기에서 법수레를 운전하시나니, 이런 뜻으로 모든 부처님 세존이 이러한 열 가지 일을 닦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자씨(慈氏)보살도 서원이 있으므로 이 다음 세상에서 이 세계를 청정하게 장엄할 것이니라. 이런 뜻으로 모든 부처님들의 세계가 모두 청정하게 장엄한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다섯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서 다섯째 공덕을 구족히 성취하는 데는 다섯 가지 과보가 있나니, 무엇이 다섯인가. 하나는 모든 근이 구족함이요, 둘은 변지(邊地)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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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아니함이요, 셋은 모든 하늘들이 사랑하여 염려함이요, 넷은 항상 하늘과 마군과 사문과 찰제리와 바라문 등의 공경을 받음이요, 다섯은 숙명통의 지혜를 얻음이니, 보살이 이 대반열반경의 인연으로써 이러한 다섯 가지 공덕을 구족하느니라.”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남자 선여인이 보시를 행하면 다섯 가지 공덕을 갖춰 이룬다 하셨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대반열반경을 인하여 다섯 가지 공덕을 얻는다 하시나이까?”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이런 일은 그 뜻이 제각기 다르니, 그대를 위하여 이제 분별하리라. 보시하여 얻는 다섯 가지 일은 일정하지 않고 항상하지 않고 깨끗하지 않고 훌륭하지 않고 이상하지 않고 무루가 아니므로, 모든 중생을 이익하고 안락케 하고 가엾이 여기지 못하거니와 대반열반경을 의지하여 얻는 다섯 가지 일은 일정하고 항상하고 깨끗하고 훌륭하고 이상하고 무루이어서 모든 중생을 이익하고 안락케 하고 가엾이 여기느니라. 선남자여, 보시하는 것은 기갈을 여의게 하거니와, 대반열반경은 중생으로 하여금 25유의 애착하는 병을 여의게 하느니라. 보시한 인연으로는 생사를 계속하게 하거니와, 대반열반경은 생사를 끊어서 계속하지 않게 하느니라. 보시로 인해서는 범부의 법을 받거니와, 대반열반경을 인하여 보살이 되게 하느니라. 보시한 인연으로는 모든 빈궁과 고통을 끊게 하거니와, 대반열반경은 모든 선한 법의 빈궁을 끊느니라. 보시한 인연으로 분별이 있고 과보가 있거니와 대반열반경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분별이 없고 과보가 없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다섯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서 여섯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서 금강삼매를 얻어 그 가운데 머물면, 모든 법을 능히 다 파괴하니, 모든 법이 다 무상하고, 다 변동하는 모양이고, 공포할 인연으로 병들고 고통이고 겁탈하는 도둑이며, 잠깐잠깐에 부수어져서 진실하지 아니하여, 온갖 것이 마군의 경계요 볼 만한 모양이 없는 줄로 보게 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에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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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비록 중생에게 보시하더라도 내지 한 중생도 실다움을 보지 아니하며, 중생을 위하여서 지계[尸]바라밀을 부지런히 닦거나, 내지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 역시 그와 같아서 보살이 만일 한 중생이라도 있는 것을 보면, 끝까지 보시[檀]바라밀을 구족히 성취하지 못하며, 내지 반야바라밀을 구족히 성취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금강으로 겨루는 곳에는 부서지지 않는 것이 없으나, 그 금강은 파손되지 아니하나니, 금강삼매도 그와 같아서 겨루는 법이 파괴되지 않는 것이 없으나, 이 삼매는 손상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보배 중에는 금강이 가장 훌륭하듯이, 보살이 얻는 금강삼매도 그와 같아서 모든 삼매에 가장 제일이 되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닦으면 모든 삼매가 다 와서 귀속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소왕(小王)들은 모두 전륜성왕에게 와서 귀속하듯이, 모든 삼매도 그와 같아서 금강삼매에 와서 귀속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나라의 원수가 되면 모든 사람이 싫어하고 어떤 사람이 그를 죽인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 사람의 공덕을 칭찬하듯이, 금강삼매도 그와 같아서 보살이 닦아 익히면 모든 중생의 원수를 파괴하나니, 그러므로 항상 모든 삼매의 경모함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기운이 장대하여 당할 이가 없는데, 다른 사람이 그를 굴복시키면, 그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게 되듯이, 금강삼매도 그와 같아서 굴복하기 어려운 법을 굴복하나니, 이런 뜻으로 모든 삼매가 와서 귀속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바닷물에서 목욕하면, 이 사람은 이미 여러 가지 강물로 목욕함이 되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이 금강삼매를 닦으면 다른 여러 가지 삼매를 닦은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향산 가운데 못이 있으니 이름이 아뇩달(阿耨達)인데, 그 물은 여덟 가지 맛을 갖추었으므로 마시는 사람마다 모든 병이 없어지듯이, 금강 삼매도 그와 같아서 8정도(正道)를 구족하였으므로 보살이 닦아 익히면 모든 번뇌의 병을 끊어 버리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마혜수라천에게 공양하면 이 사람은 모든 하늘에게 공양함이 되듯이, 금강삼매도 그와 같아서 누구든지 닦아 익히면 그 밖의 모든 삼매를 닦음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이 금강삼매에 머물면 온갖 법을 보는 데 장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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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손바닥 위의 아마륵 열매를 보듯 하나니, 보살이 비록 이렇게 보는 일을 얻더라도 온갖 법을 본다는 생각을 짓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네거리에 앉았으면 여러 중생의 오고 가고 앉고 눕는 것을 보게 되듯이, 금강삼매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의 나고 없어지고 나오고 들어감을 보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높은 산에 올라가면 모든 방향으로 멀리까지 분명하게 볼 수 있듯이, 금강삼매의 산도 그와 같아서 보살이 올라가면 모든 법을 분명하게 보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봄철에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에 그 방울이 가늘고 빽빽하여 빈틈이 없지만, 눈 밝은 사람은 분명하게 보듯이 보살도 그와 같아서 금강삼매의 깨끗한 눈을 얻으면, 동방에 있는 여러 세계와 그 중에 이루어지는 세계, 없어지는 세계를 분명하게 보는 데 장애가 없으며, 내지 시방세계도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유건타산(由乾陀山)에 일곱 해가 한꺼번에 뜨면 그 산에 있는 초목과 숲들이 모두 타듯이 보살이 금강삼매를 닦는 것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의 초목들이 즉시 소멸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금강이 비록 모든 물건을 깨뜨리더라도, 내가 능히 깨뜨린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나니, 금강삼매도 그와 같아서 보살이 닦고는 번뇌를 깨뜨리지만, 내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땅이 모든 물체를 유지하지만 나의 힘으로 유지한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불도 역시 내가 태운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물도 내가 축여 준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바람도 내가 흔든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허공도 내가 수용한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듯이 열반도 내가 중생들로 하여금 멸도하게 한다는 말을 하지 않나니, 금강삼매도 비록 온갖 번뇌를 없애지만, 애초부터 내가 없앤다는 마음이 없느니라.
만일 보살이 금강삼매에 머무르면 잠깐 동안에 부처님과 같이 한량없는 몸을 변화하여, 시방에 있는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 세계에 두루 가득하지만, 이 보살이 이렇게 변화하더라도 그 마음에는 교만한 생각이 조금도 없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이 항상 생각하기를 ‘누가 이 삼매를 가지고 이러한 화신을 지으리요만, 다만 보살이 이 금강삼매에 머무르면 지을 수 있다’고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 금강삼매에 머무르면 잠깐 동안에 시방에 있는 항하의 모래 수 세계에 두루 이르렀다가, 본고장으로 돌아오며, 비록 이런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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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이 있더라도, 내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이 삼매의 인연인 까닭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이 금강삼매에 머무르면 잠깐 동안에 시방에 있는 항하의 모래 수 세계에 사는 중생들의 번뇌를 끊어 버리지만, 마음에는 모든 중생의 번뇌를 끊는다는 생각이 없나니, 왜냐 하면 이는 삼매의 인연인 까닭이니라. 보살이 이 금강삼매에 머무르면 한 가지 음성으로 연설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이 자기네 분수를 따라 제각기 이해하며, 한 가지 빛을 보이는 것을 모든 중생들이 제각기 가지각색 빛깔로 보며, 한 곳에 머물러 몸이 이동하지 않더라도, 중생으로 하여금 방향을 따라서 각각 보게 하며, 18계나 12입의 한 가지 법을 연설하더라도 모든 중생들이 각각 본래의 해석을 따라 듣게 되느니라.
보살이 이런 삼매에 머무르면, 비록 중생을 보더라도 마음에는 애초부터 중생이란 상(相)이 없으며, 남자 여자를 보더라도 남녀라는 상이 없으며, 색법(色法)을 보더라도 색법이란 상이 없으며, 내지 식(識)을 보더라도 식이라는 상이 없으며, 밤과 낮을 보더라도 밤낮이란 상이 없으며, 온갖 것을 보더라도 온갖이란 상이 없으며, 모든 번뇌의 결박을 보더라도 번뇌라는 상이 없으며, 8성도를 보더라도 성인의 도라는 상이 없으며, 보리를 보더라도 보리라는 상이 없으며, 열반을 보더라도 열반이란 상이 없나니, 왜냐 하면 온갖 법이 본래 상이 없는 까닭이니라. 보살은 이 삼매의 힘으로 온갖 법이 본래 상이 없다고 보느니라.
무슨 까닭으로 금강삼매라 하는가. 선남자여, 마치 금강이 햇빛 가운데 있으면 빛이 일정하지 않듯이, 금강삼매도 그와 같아서 대중에 있을 적에 빛이 일정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금강삼매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금강은 모든 세상 사람이 평가할 수 없듯이, 금강삼매도 그와 같아서 있는 공덕을 모든 천상 사람 세간 사람들이 요량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금강삼매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가난한 사람이 금강 보배를 얻으면 곧 빈궁과 곤고함과 나쁜 귀신과 나쁜 독을 영원히 여의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이 삼매를 얻으면 번뇌의 모든 고통과 마군의 나쁜 독을 여의게 되나니, 그러므로 금강삼매라 이름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경을 닦아서 여섯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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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3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 ⑤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면 일곱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무슨 법이 대반열반의 가까운 인연[近因]이 되겠는가 하면, 네 가지 법이 대반열반의 가까운 인연이 됨을 보살이 곧 알게 되느니라. 만일 말하기를 온갖 고행(苦行)을 닦음이 대반열반의 가까운 인연이 되리라 하면, 옳지 아니하리라. 무슨 까닭인가. 네 가지 법을 여의고 열반을 얻는다 하면 그럴 이치가 없기 때문이니라. 무엇이 넷인가. 하나는 선지식을 친근함이요, 둘은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들음이요, 셋은 마음을 두어 생각함이요, 넷은 법대로 행을 닦음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병에 걸렸을 때에 열병이나 냉병이나 허로(虛勞)거나 학질이거나 귀신의 독이거나 간에 용한 의원에게 가면 의원이 병의 증세를 따라 약을 일러 줄 것이니, 그 사람이 정성으로 의원의 말을 듣고 그 말대로 약을 지어 처방대로 먹을 것이며, 먹으면 병이 나아서 몸이 편안하게 되느니라. 병에 걸린 사람은 보살에 비유하고, 용한 의원은 선지식에 비유하고, 의원의 말은 방등경전에 비유하고, 의원의 말을 잘 들음은 방등경전의 뜻을 생각하는 데 비유하고, 말한 대로 약을 짓는 것은 법대로 37조도품(助道品)을 수행하는 데 비유하고, 병이 나은 것은 번뇌를 멸하는 데 비유하고, 편안함을 얻음은 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에 비유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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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왕이 법대로 나라를 다스리어 백성들을 안락케 하려고 지혜 있는 신하에게 방법을 물었더니, 신하들이 선왕의 예전 법을 이야기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지성으로 믿고 행하여 법대로 나라를 다스리니, 원수와 대적이 없어지고 백성들이 편안하여 걱정이 없었느니라. 선남자여, 왕은 보살에 비유하고 지혜 있는 신하는 선지식에 비유하고, 신하가 다스리는 법을 왕에게 말한 것은 12부경(部經)에 비유하고 왕이 듣고 지성으로 믿고 행한 것은 보살이 12부경의 깊은 이치를 뜻 두어 생각함에 비유하고, 법대로 나라를 다스림은 보살들이 법대로 수행하는 데 비유하였으니 곧 6바라밀이요, 6바라밀을 수행하므로써 원수와 대적이 없어진 것은 보살이 번뇌의 나쁜 대적을 멀리 여의는 데 비유하고, 안락하게 된 것은 보살이 대반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데 비유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문둥병에 걸렸는데, 선지식이 말하기를, ‘네가 수미산에 가면 병이 나으리라. 왜냐 하면 거기에 유명한 약이 있기 때문이니 맛이 감로와 같으며, 그 약을 먹으면 온갖 병을 다 고치리라’ 하였다. 그 사람이 지성으로 그 말을 믿고 수미산자락에 가서 감로약을 구하여 먹고 병이 쾌차하여 몸이 안락하였느니라. 문둥병 걸린 것은 범부에게 비유하고, 선지식은 보살마하살에 비유하고 지성으로 믿은 것은 4무량심에 비유하고, 수미산은 8성도에 비유하고, 감로의 맛은 불성에 비유하고, 문둥병이 쾌차한 것은 번뇌를 멸한 데 비유하고, 안락함을 얻은 것은 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데 비유했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여러 제자들을 두었는데 총명하고 지혜가 있었다. 이 사람은 밤낮으로 가르치고 게으르지 아니하나니, 보살들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이 믿는 이도 있고 믿지 않는 이도 있지만, 항상 교화하고 싫어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선지식이라 함은 부처님과 보살과 벽지불과 성문과 방등경전을 믿는 사람들이니라. 어째서 선지식이라 하는가. 선지식은 중생들을 교화하여 10악업을 여의고 10선업을 닦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선지식은 법대로 말하고 말대로 행하느니라. 어떤 것을 법대로 말하고 말대로 행한다 하는가. 자기가 살생하지 아니하고 다른 이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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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하지 않게 하며, 내지 자기가 바른 소견을 행하고 다른 이에게 바른 소견을 가르치나니, 만일 이렇게 하는 이는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스스로 보리를 닦고 다른 이로 하여금 보리를 닦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자기가 믿음과 계율과 보시와 많이 아는 것과 지혜를 닦아 행하고, 다른 이로 하여금 믿고 계율을 가지고 보시하고 많이 알고 지혜를 닦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이라 함은 선한 법이 있기 때문이니, 무엇을 선한 법이라 하는가. 짓는 일이 스스로 즐겁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항상 중생을 위하여 안락을 구하며, 다른 이의 허물을 보고도 단점을 말하지 않고 입으로는 선한 말만 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허공에 있는 달이 초하룻날부터 보름날까지는 점점 자라듯이 선지식도 그와 같아서 배우는 일에서 나쁜 법은 멀리하고 선한 법은 자라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선지식을 친근하는 이는 본래 계행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의 지견이 없었더라도 문득 있게 되며, 구족하지 못한 이는 구족하게 되나니, 왜냐 하면 선지식을 친근하는 까닭이며, 친근함을 인하여 12부경의 깊고 묘한 이치를 알게 되기 때문이니라.
만일 이 12부경의 깊은 뜻을 듣는 이는 법을 듣는다 이름할 것이며, 법을 듣는 것은 곧 대승의 방등경전이요, 방등경을 듣는 것을 참으로 법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참으로 법을 듣는 이는 대반열반경을 듣는 것이니 대반열반에 불성이 있거니와 여래는 필경까지 열반에 들지 아니함을 듣나니, 그러므로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 것을 8성도라 이름하며, 8성도로써 능히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끊으므로 법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법을 듣는다 함은 11공(空)을 말하나니, 이 모든 공함으로써 온갖 법에 모양을 짓지 아니하느니라. 법을 듣는다 함은 초발심이라 이름하며 내지 구경의 아뇩다라삼먁보리라 이름하나니, 초발심을 인하여 대열반을 얻는 것이지만 들음으로써 대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요, 닦음으로써 대열반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병난 사람이 의원의 가르침을 듣거나 약의 이름을 들음으로써 병이 낫는 것이 아니요, 약을 먹음으로써 병이 낫는 것이듯 12인연의 깊은 법을 들음으로써 모든 번뇌를 끊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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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마음을 가두어 잘 생각함으로써 번뇌를 끊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셋째 마음을 가두어 생각함이라 하느니라.
또 마음을 가두어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른바 3삼매니, 공삼매(空三昧)·무상(無相)삼매·무작(無作)삼매니라. 공삼매는 25유에 대하여 한 가지 실다움도 보지 않음이요, 무작삼매는 25유에 대하여 원하는 일을 짓지 않음이요, 무상삼매는 열 가지 모양이 없다는 것이니, 빛깔 모양·소리 모양·향기 모양·맛 모양·닿이는 모양·나는 모양·멸하는 모양·남자 모양·여자 모양이라, 이 3삼매를 닦는 것을 보살의 마음을 가두어 생각함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법과 같이 수행한다 하는가. 법과 같이 수행함은 보시바라밀과 내지 반야바라밀을 수행함이니, 5음·12입·18계의 진실한 모양을 알며, 성문·연각·부처님이 다 같이 한길로 열반에 드는 것이니라. 법이라 함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이며, 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으며,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괴롭지 않고 시끄럽지 않고 물러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대반열반의 깊은 뜻을 아는 이는 부처님들이 필경에 열반에 들지 않음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제일 진실한 선지식은 보살과 부처님 세존이니, 왜냐 하면 항상 세 가지로 잘 제어하는 까닭이니라.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나는 시종 부드러운 말[軟語]이요, 둘은 시종 꾸짖음[呵責]이요, 셋은 부드러운 말과 꾸짖음[軟語呵責]이니, 이런 뜻으로 보살과 부처님을 진실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은 큰 의원이므로 선지식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병을 알고 약을 알아서 병에 맞추어 약을 주는 까닭이니라. 용한 의원이 여덟 가지 의술을 잘 알아서, 먼저 병의 증세를 보는데, 증세에 세 가지가 있으니, 풍병과 열병과 물병이니라. 풍병이 있는 이에게는 타락기름[酥油]을 주고 열병이 있는 이에게는 석밀(石蜜)을 주고 물병이 있는 이에게는 강즙[薑湯]을 주나니, 병의 근원을 알고 약을 주어서 낫게 하므로 용한 의원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범부에게 세 가지 병이 있음을 아나니,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니라. 탐욕의 병이 있는 이는 해골 모양을 관찰하게 하고, 성내는 병이 있는 이는 자비한 것을 관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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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리석은 병이 있는 이는 12인연을 관찰하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뱃사공이 사람을 잘 건네주는 까닭으로 훌륭한 뱃사공이라 하나니,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바다에서 중생을 건네주므로 선지식이라 이름하느니라. 그리고 또 부처님과 보살을 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선한 법의 근본을 구족히 닦게 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설산은 가지각색 미묘한 약의 근본이 되듯이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선한 법의 근본이 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설산에 훌륭한 약이 있으니 이름이 사가(娑呵)인데, 그 약을 보는 사람은 목숨이 한량없고 모든 병이 없으며, 네 가지 독이 있더라도 상하지 못하고, 약에 닿이는 이는 수명이 늘어서 120세를 살며, 생각하는 이는 숙명통을 얻느니라. 왜냐 하면 약의 힘인 까닭이니라.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만일 보는 이는 모든 번뇌가 소멸되며, 네 가지 마군이 있더라도 산란하게 하지 못하고, 접촉하는 이는 목숨이 단명하지 아니하여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나니, 접촉한다 함은 부처님 곁에서 묘한 법을 듣는 것이니라. 생각하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향산 속에 아뇩달못이 있으며, 이 못으로부터 4대하(大河)가 흐르니, 항하(恒河)와 신두하(辛頭河)와 사타하(私陀河)와 박차하(博叉河)니라. 세간 중생들이 항상 말하기를, 죄를 지은 이가 이 강에서 목욕하면 모든 죄가 소멸된다고 하느니라. 이 말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함을 알아야 하거니와, 이 밖에 어떤 것이 진실한가. 부처님과 보살들이 진실하니, 그 까닭은 만일 사람이 그를 친근하면 모든 죄악이 소멸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이 땅에 있는 약풀이나 모든 숲이나, 곡식이나 감자나 꽃과 과일들이 가뭄을 만나서 말라 죽을 적에, 난다용왕과 우파난다용왕이 중생을 가엾이 여겨서 바다에서 나와 모든 숲과 온갖 곡식과 초목들이 다시 소생시키느니라.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있는 선근이 소멸하려 할 때에 부처님과 보살이 자비한 마음으로 지혜 바다로부터 감로 비를 내리어 중생들로 하여금 열 가지 선한 법을 도로 얻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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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용한 의원이 여덟 가지 의술을 잘 알면서 병난 사람만 보고, 문벌과 단정하고 추한 것이나 재물이 있고 없는 것을 보지 아니하고 모두 다스리매 세상 사람들이 훌륭한 의원이라 하나니,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에게 번뇌의 병이 있는 것만 보고, 문벌이나 단정하고 추한 것이나 재물이 있고 없음을 보지 않고 자비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법을 말하거든, 중생들이 듣고 번뇌의 병이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이런 것을 말하여 선지식을 친근한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깝게 된다 하느니라.
어찌하여 보살이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는가. 모든 중생이 법을 들은 까닭으로 신근(信根)을 구족하고, 신근을 얻은 까닭으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즐거이 행하여 수다원과나, 내지 부처의 과보를 얻게 되나니, 그러므로 선한 법을 얻는 것은 모두 법을 들은 인연의 힘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어떤 장자가 외아들을 다른 지방에 보내어 필요한 물건을 무역하게 하면서 도로가 통하고 막힌 데를 일러 주고, 또 경계하기를 ‘만일 기생 따위를 만나더라도 사랑하지 말라, 만일 사랑하면 몸을 망치고 생명이 위험하며 재물을 잃게 되느니라. 또한 나쁜 사람들도 사귀지 말라’ 하거든, 아들이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고 재물을 많이 얻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연설함도 그와 같아서, 여러 중생과 사부대중에게 길이 통하고 험한 것을 보여 주거든, 대중들이 법을 들은 까닭으로 나쁜 짓을 여의고 선한 법을 구족하나니,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밝은 거울로 사람의 얼굴을 비치면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법을 듣는 거울도 그와 같아서 누구나 비치기만 하면 선한 일 나쁜 일이 분명히 나타나고 가리우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장사꾼이 보배 있는 섬에 가려 하면서 길을 모르는 것을 다른 이가 일러 주면, 그 사람이 그 말대로 보배 섬에 가서 한량없는 보배를 얻게 되듯이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선한 곳에 가서 도의 보배를 얻으려 하면서 길을 모르는 것을 보살이 일러 주면 중생이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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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따라 선한 곳에 가서 위없는 대반열반의 보배를 얻게 되나니,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술취한 코끼리가 미친 듯이 포악하여 만나는 대로 살해하거든, 코끼리 길들이는 사람이 굵은 쇠갈고리로 정수리를 찍으면 이내 길들어 사나운 성질이 없어지듯이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취하여 나쁜 짓을 하려 할 때에 보살이 법의 갈고리로 찍어서 머물게 하면 다시는 나쁜 짓을 하려는 마음은 일으키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에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여러 경전에서 말하기를 ‘제자들이 전일한 마음으로 12부경을 들으면 5개(蓋)를 여의고 7각분(覺分)을 닦으리라’ 하였으니, 이렇게 7각분을 닦으므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니라. 법을 들은 까닭으로 수다원들이 공포를 여의나니, 왜냐 하면 수달 장자가 중병에 걸려서 매우 두려워하는 것을 사리불이 수다원에게 네 가지 공덕과 열 가지 안위(安慰)가 있음을 말하였더니, 그 말을 듣고는 두려움이 없어진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고 하니 왜냐 하면 법눈을 뜨게 하는 까닭이니라. 세상에 세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눈이 없고 한 사람은 눈이 하나이고 다른 한 사람은 눈이 둘이었느니라. 눈이 없는 이는 항상 법을 듣지 못하는 이요, 한 눈 있는 이는 잠깐은 법을 듣더라도 마음이 전일하지 않은 이요, 두 눈이 있는 이는 전심으로 법을 듣고 들은 대로 행하는 이니라. 법을 듣는 데 세 가지 사람이 있음을 알 것이니, 이런 뜻으로 말하기를,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예전에 구시나(拘尸那)성에 있을 적에 사리불이 병에 걸리었으므로, 내가 아난에게 유촉하면서 법을 연설하였더니, 사리불이 그 소문을 듣고 4부 제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나의 평상을 듣고 부처님 계신 데에 가자. 내가 법을 들으려 한다’ 하였다. 그 때에 4부 제자가 평상을 들고 나에게 나와 법을 듣게 하였고, 법을 들은 힘으로 병이 나아서 몸이 편안하였다.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어찌하여 보살이 생각한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는가. 이 생각으로 마음이 해탈하게 되나니, 왜냐 하면 모든 중생이 항상 5욕락에 얽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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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생각하는 까닭으로 해탈하게 되느니라.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네 가지 법에 뒤바뀌게 되었으나, 생각하는 연고로 모든 법이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한 줄을 보게 되며, 이렇게 보고는 네 가지 뒤바뀐 것이 즉시 끊어지나니,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온갖 법이 네 가지 모양이 있으니, 무엇이 넷인가. 나는 모양, 늙은 모양, 병드는 모양, 없어지는 모양이니라. 이 네 가지 모양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범부로부터 수다원에 이르도록 큰 고통을 내게 하거니와 만일 마음을 가두어 잘 생각하면 비록 이 네 가지를 만나더라도 고통이 생기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온갖 선한 법이 모두 생각을 말미암아 얻어지나니, 왜냐 하면 만일 사람이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더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중생이 불·법·승 삼보가 변역하지 아니함을 믿고 공경한다면, 그것은 마음을 두어 생각한 인연의 힘으로 온갖 번뇌를 끊은 것이니,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이 법대로 수행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나쁜 법을 끊어 버리고 선한 법을 닦음을 이름하여 보살이 법대로 수행한다 하느니라. 또 어떻게 법대로 수행하는가. 온갖 법이 공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한 줄을 보고, 이렇게 보았으므로 몸과 생명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런 것을 일러 보살이 법대로 수행한다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을 법대로 수행한다 하는가. 수행함이 두 가지니, 진실한 것과 진실치 아니한 것이니라. 진실하지 않다 함은 열반과 불성과 여래와 법과 승가와 실상과 허공의 모양을 알지 못하나니, 이것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진실하다 하는가. 열반·불성·여래·법·승가·실상·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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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모양을 아는 것을 진실하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열반의 모양을 안다 하는가. 열반의 모양이 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다함[盡]과 선한 성품[善性]과 진실함[實]과 참됨[眞]과 항상함[常]과 즐거움[樂]과 나임[我]과 깨끗함[淨]이니, 이것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또 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덟인가. 해탈과 선한 성품과 진실하지 아니함과 참되지 아니함과 무상함과 즐겁지 않음과 부정함이니라. 또 여섯 가지 모양이 있으니, 해탈과 선한 성품과 진실하지 아니함과 참되지 아니함과 안락함과 청정함이니라. 만일 중생이 세속의 도를 의지하여 번뇌를 끊었으면, 이런 열반은 여덟 가지 해탈이 있으나 진실하지 못하니, 왜냐 하면 항상하지 아니한 까닭이니라. 항상함이 없으므로 진실함이 없고, 진실함이 없으므로 참되지 아니하며, 비록 번뇌를 끊었으나 다시 일어나므로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아니하고 부정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 해탈의 여덟 가지 일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여섯 가지 모양이라 하는가. 성문과 연각은 번뇌를 끊었으므로 해탈이라 하거니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진실하지 아니하다 하고, 진실하지 아니하므로 참되지 아니하다는 것이며, 오는 세상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므로 항상함이 없고 무루한 8성도를 얻었으므로 안락하고 청정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렇게 아는 것은 열반을 아는 것이나 불성과 여래와 법과 승가와 실상과 허공의 모양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불성을 안다 하는가. 불성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섯인가. 항상함과 깨끗함과 진실함과 선함과 장차 보는 것과 참됨이니라. 또 일곱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증득할 만함[可證]이요, 다른 여섯은 위와 같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불성을 안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여래의 모양을 안다 하는가. 여래라 함은 깨달음과 선함과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임과 깨끗함과 해탈함과 진실함과 도를 보임과 볼 수 있음이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여래의 모양을 안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법의 모양을 안다 하는가. 법이라 함은 선한 것 선하지 못한 것과, 항상한 것 항상하지 않은 것과, 즐거운 것 즐겁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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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과, 내가 있는 것 내가 없는 것과, 깨끗한 것 부정한 것과, 아는 것 알지 못하는 것과, 이해할 것 이해하지 못할 것과, 참된 것 참되지 못한 것과, 닦는 것 닦지 못한 것과, 사승할 것 사승하지 못할 것과, 진실한 것 진실하지 않은 것 따위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법의 모양을 안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승가의 모양을 안다 하는가. 승가라 함은 항상하고 즐겁고 내가 있고 깨끗하며 제자의 모양과 볼 수 있는 모양과 선하고 참되고 진실하지 아니함이니, 왜냐 하면 모든 성문이 부처님의 도를 얻은 까닭이며, 또 참되다는 것은 법의 성품을 깨달은 까닭이니, 이런 것을 말하여 보살이 승가의 모양을 안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실상을 안다 하는가. 실상이라 함은 항상하고 무상한 것, 즐겁고 즐겁지 않은 것, 내가 있고 내가 없는 것, 깨끗하고 부정한 것, 선하고 선하지 않은 것, 있는 것 없는 것, 열반이고 열반 아닌 것, 해탈이고 해탈 아닌 것, 알고 알지 못하는 것, 끊고 끊지 못하는 것, 증득하고 증득하지 못하는 것, 닦고 닦지 않는 것, 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니, 이것은 실상이라 이름하거니와 열반·불성·여래·법·승가·허공은 아니니라. 이런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음으로 인하여 열반·불성·여래·법·승가·실상·허공 등의 차별한 모양을 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면 허공을 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부처님과 보살이 비록 다섯 가지 눈이 있지만 보지 않는 까닭이요, 혜안(慧眼)으로야 보는 것이니, 혜안으로 보는 것은 볼 수 있는 법이 아니므로 본다고 하느니라. 만일 아무것도 없는 데를 허공이라 한다면, 이런 허공을 진실하다 하나니, 진실하므로 항상 없다 이름하며, 항상 없으므로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도 없느니라. 선남자여, 공은 없는 법을 이름한 것이요, 없는 법은 공이라 하나니, 마치 세간에서 물건이 없는 것을 공이라 이름하듯이, 허공의 성질도 그와 같아서 있는 물건이 없는 데를 허공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성품과 허공의 성품이 모두 실다운 성품이 없나니, 왜냐 하면 마치 사람들이 있는 물건을 없애 버리고 그런 뒤에 허공을 만든다 말하거니와, 허공은 실로 만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있는 것이 없는 까닭이니, 있는 것이 없으므로 허공도 없는 줄을 알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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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허공의 성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무상하다 할 것이니, 만일 무상하다면 허공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허공은 빛도 없고 막힘도 없고 항상 변하지 않는다 하며, 그러므로 세상에서 허공의 성질을 말하여 다섯째 요소[第五大]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허공은 실로 성품이 없는 것을 광명이 비치므로 허공이라 하거니와, 실로는 허공이 없느니라. 마치 세상법[世諦]은 실로 제 성품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세상법이 있다고 말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도 그와 같아서 머무는 곳이 없고, 오직 모든 부처님의 번뇌를 끊은 데[斷煩惱處]이므로 열반이라 하나니, 열반은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니라. 열반이 즐겁다 하지만 우리가 감각하여 즐거움[受樂]이 아니고, 가장 묘하고 적멸(寂滅)한 낙이니라. 부처님 여래에게 두 가지 낙이 있으니, 하나는 적멸한 낙이요, 다른 하나는 깨닫는 낙이니라. 실상의 체에는 세 가지 낙이 있으니, 감각하는 낙과 적멸한 낙과 깨닫는 낙이며, 불성은 오직 한 가지 낙이니, 마땅이 볼 수 있는 까닭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을 보리락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번뇌가 끊어진 데를 열반이라 한다면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 예전에 처음으로 부처의 도를 이루려고 니련선하(尼連禪河) 가에 가셨을 때에, 마왕이 권속들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데 와서 말하기를 ‘세존이여, 열반하실 때가 되었사온데 어찌하여 열반에 들지 않나이까?’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왕이여, 나에게는 지금 많이 아는 제자로서 계율을 잘 지니고 총명하고 지혜 있는, 중생을 교화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열반에 들지 않노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번뇌가 끊어진 데가 열반이라 하오면 여러 보살들은 한량없는 겁 전에 이미 번뇌를 끊었는데, 어찌하여 열반이라 하지 아니하며, 다 같이 끊었는데 어찌하여 부처님만 열반이 있고 보살에게는 없다 하나이까? 만일 번뇌를 끊었어도 열반이 아니라면,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예전에 생명(生名) 바라문에게 말씀하기를 ‘나의 지금 이 몸이 곧 열반이니라’ 하였사오며, 또 비사리(毘舍離)성에 계실 적에 마왕이 또 여쭙기를 ‘여래께서 예전에는 많이 알고 계율을 잘 지니고 총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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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있어, 중생을 교화할 만한 제자가 없어서 열반에 들지 않는다 하시더니, 지금은 구족하였사온데, 왜 열반에 들지 않나이까?’ 하거늘, 그 때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궁금하게 기다리는 생각을 내지 말라. 지금부터 석 달 뒤에는 내가 열반에 들리라’ 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멸도(滅度)함이 열반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석 달 뒤에 열반에 든다 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번뇌를 끊음이 열반이라면 여래께서 처음 도량에 계실 적에 보리수 아래서 번뇌를 끊으신 때가 곧 열반이옵거늘, 어찌하여 앞으로 석 달 뒤에 열반에 드신다고 말씀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그 때가 열반이라 하오면, 어찌하여 구시나성에서 여러 역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새벽녘에 열반에 든다’고 하셨나이까? 여래는 진실하옵거늘 어찌하여 허망한 말을 내시나이까?”
이 때에 부처님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여래가 광장설(廣長舌)을 얻었다면 여래는 한량없는 겁 전부터 허망한 말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하나니,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하는 말은 진실하여서,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파순이 예전에 나에게 청하여 열반에 들라고 하였다면, 선남자여, 이 마왕은 열반의 일정한 모양을 진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파순의 생각엔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을 열반인 줄로 아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 사람이 어떤 이가 말로 하지 않고 아무 하는 일이 없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은 죽은 자와 다름이 없다 하듯이, 파순도 그와 같아서 생각하기를,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지도 않고 잠자코 말이 없는 것으로써 여래가 열반에 든다고 하는 모양이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불·법·승 삼보가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다만 항상 머무는 법과 청정한 법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도 ‘부처나 불성이나 열반이 차별한 모양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항상하고 변하지 않음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도 열반과 실상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항상 있고 진실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그 때에 나의 성문 제자들이 분쟁을 일으키고, 구섬미(拘睒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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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의 나쁜 비구들은 나의 가르침을 어기고 계율을 범하며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받아 이양(利養)을 구하면서, 재가의 사람들을 향하여 스스로 칭찬하기를 ‘나는 무루를 얻었으니 수다원과와, 내지 아라한과를 얻었다’ 하고, 다른 이를 헐뜯어 욕하며, 불·법·승 삼보와 계율과 화상에게도 공경하지 아니하고, 공공연하게 내 앞에서 이런 물건은 받으라고 부처님이 허락하였다 말하지만 나는 허락한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하여도, 그들은 나와 반대로 이런 것은 참으로 부처님이 허락하였다 하며, 이런 나쁜 사람이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기에,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너는 궁금하게 기다리지 말라. 이제부터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노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나쁜 비구들로 인하여, 성문의 배우는[受學] 제자들로 하여금 나의 몸을 보지 못하고 나의 법을 듣지 못하게 하여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게 하였거니와, 보살들은 내 몸을 보고 내 법을 들으므로 내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며, 성문 제자들이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성문 제자들이 만일 말하기를,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면, 이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요 마군의 도당(徒黨)이며, 나쁜 소견을 가진 사람이요 바른 소견이 아니거니와, 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는 이 사람이 참으로 나의 제자요 마군의 도당이 아니며, 바른 소견을 가진 사람이요 나쁜 무리가 아니니라. 선남자여, 나는 본래부터 제자들 중에서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은 열반에 든 것이라고 말하는 이를 보지 못하였노라. 선남자여, 어떤 장자가 여러 아들을 버리고 다른 지방으로 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을 적에, 아들들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 하나 장자는 실로 죽은 것이 아니지만, 아들들이 잘못 생각하여 죽은 줄로 아는 것이니,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나를 보지 못하므로, 여래가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열반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아니한 것을 성문 제자들이 열반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밝은 등불을 어떤 사람이 가리웠을 때에, 알지 못하는 사람은 등불이 꺼졌다 생각하거니와 등불은 실로 꺼진 것이 아니며, 알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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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 꺼졌다고 생각하듯이,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비록 혜안이 있으면서도 번뇌에 덮이어서 마음이 뒤바뀌었으므로, 참몸[眞身]을 보지 못하고 멸도하였다는 생각을 내거니와, 나는 끝까지 멸도한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배냇소경은 해와 달을 보지 못하였으며, 해와 달을 보지 못하므로 낮과 밤이 밝고 어두운 줄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므로 해와 달이 없다고 말하나니, 해와 달은 진실로 있건만 소경이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탓으로 잘못된 생각을 내어 해와 달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저 배냇소경과 같이, 여래를 보지 못하므로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거니와 여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아니하였으며, 잘못된 생각으로 이런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안개와 구름이 해와 달을 가리웠을 때에 어리석은 사람은 해와 달이 없어졌다고 말하지만, 해와 달은 실로 있는 것을 구름이 가리웠으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성문 제자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지혜 눈을 덮었으므로 여래를 보지 못하고,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니, 선남자여, 이는 여래가 젖먹이 아기의 행을 나타내는 것일지언정, 멸도한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염부제에 해가 졌을 때에 중생들이 보지 못함은 흑산(黑山)이 가리운 까닭이요, 해는 본래 지는 것이 아니지만 중생들이 보지 못하므로 졌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성문 제자도 그와 같아서 번뇌의 산이 가리워서 내 몸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연고로 여래가 멸도한다는 생각을 내지만 나는 실로 끝까지 멸도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내가 비사리(毗舍離)성에서 파순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석 달 뒤에 내가 열반하리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가섭보살이 석 달 뒤에 선근이 성숙할 것을 미리 보았으며, 또 향산의 수발다라(須跋陀羅)가 안거를 마치고는 나에게 올 것을 알았으므로 마왕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든다고 하였느니라. 여러 역사가 있으니 그 수가 5백이라, 석 달을 마치고는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낼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들 것이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순타(純陀)와 5백 명의 리차(梨車)와 암라과녀(菴羅果女)가 석 달 뒤에 위없는 보리를 이루려는 선근이 성숙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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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므로,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수나찰다(須那刹多)가 니건자 외도에게 친근하는 것을 내가 12년 동안 법을 말하였으나, 나쁜 소견으로 믿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의 나쁜 소견의 뿌리가 석 달 뒤에 뽑힐 줄을 알았으므로,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내가 예전에 니련선하 가에서 파순에게 말하기를 나는 지금 지혜 있는 제자가 없다. 그래서 열반에 들 수 없노라 하였는가 하면, 나는 다섯 비구들을 위하여 바라나에서 법수레를 굴리려 한 까닭이며, 또 야사(耶奢)·부나(富那)·비마라사(毗摩羅闍)·교범바제(憍梵波提)·수바후(須婆睺) 등의 다섯 비구를 위하여, 또 욱가(郁伽) 장자 등 50사람을 위해서, 또 마가다국의 빈바사라왕 등 한량없는 세간 사람 천상 사람들을 위하여, 또 우루빈나 가섭의 제자 5백 비구를 위하여서, 또 나제가섭·가야가섭의 형제 두 사람과 그의 5백 제자를 위하여서, 또 사리불과 목건련 등 2백50 비구를 위하여서 미묘한 법수레를 운전하려고 마왕 파순에게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열반이라 이름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어떤 것을 열반이라 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불성을 보지 못하고 번뇌만 끊은 것은 열반이라 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느니라.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항상함도 없고 나도 없으며, 즐거움과 깨끗함만 있나니, 이런 뜻으로 번뇌를 끊었으나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만일 불성을 보고 번뇌를 끊었으면 대반열반이라 이름하나니, 불성을 보았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며, 이런 뜻으로 번뇌를 끊은 것도 대반열반이라 일컫느니라.
선남자여, 열(涅)은 아니란[不] 말이요, 반(槃)은 멸한다[滅]는 말이니, 멸하지 않는 것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또 덮는다[覆]는 뜻이니, 덮이지 않았다는 뜻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또 간다 온다[去來]는 뜻이니,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취(取)하는 뜻이니, 취하지 아니함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일정치 않다[不定]는 뜻이니 선정이 일정치 아니함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새 것과 낡은 것[新故]이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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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 새 것과 낡은 것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장애[障]란 말이니, 장애가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우루가(優樓迦)와 가비라(迦毗羅)의 제자들이 말하기를 반은 모양[相]이란 뜻이니, 모양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반은 있다[有]는 말이니, 있지 아니함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화합(和合)이란 말이니 화합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괴롭다[苦]는 말이니, 괴롬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번뇌를 끊은 것은 열반이라 하지 않고 번뇌가 생기지 않음을 열반이라 하나니, 선남자여, 부처님 여래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진 지혜가 법에 장애되는 것이 없음을 여래라 하느니라. 여래는 범부도 성문도 연각도 보살도 아니니, 이름을 불성이라 하느니라. 여래의 몸과 마음과 지혜가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 세계에 가득하여 장애가 되지 아니하므로 허공이라 하느니라. 여래가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으므로 실상이라 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여래는 실로 끝까지 열반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일곱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여덟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을 닦아서 다섯 가지를 끊어 버리고, 다섯 가지를 멀리 여의고, 여섯 가지를 성취하고, 다섯 가지를 익히고, 한 가지를 수호하고, 네 가지를 친근하고 한결같은 실상을 믿고 순종하여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가 잘 해탈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다섯 가지를 끊어 버린다 하는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5음(陰)을 말함이니라. 음은 무슨 뜻인가.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가 서로 계속하여 무거운 짐을 여의지 못하게 하며, 흩어지고 모이고 하여 삼세에 포섭되나니, 그 진실한 뜻을 구하여도 찾을 수 없으므로 음이라 이름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비록 색음(色陰)을 보아도 모양을 보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열 가지 색 중에서 성품을 구하여도 찾을 수 없지만, 세계를 지어내므로 음이라 하느니라. 수음에 일백 여덟이 있나니, 비록 수음을 보아도 애초부터 수음의 모양이 없느니라. 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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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수음이 비록 일백 여덟이지만 이치로는 일정한 실제가 없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수음을 보지 못하며, 상음과 행음과 식음도 그와 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은 5음이 번뇌를 내는 근본임을 분명하게 보았으므로 방편으로 끊어 버리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어떻게 다섯 가지를 멀리 여의는가. 다섯 가지 소견을 말함이니, 몸이란 소견[身見], 한쪽에 집착하는 소견[邊見], 사특한 소견[邪見], 계에 집착하는 소견[戒取見], 소견에 집착하는 소견[見取見]이니라. 이 다섯 가지 소견으로 인하여 생각이 끊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방비하고 가까이하지 않느니라.
어떻게 보살이 여섯 가지를 성취하는가. 6념처(念處)를 말함이니,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보시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함이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여섯 가지를 성취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다섯 가지를 익힌다 하는가. 다섯 가지 선정을 말함이니, 아는 선정[知定], 고요한 선정[寂定], 몸과 마음이 쾌락한 선정, 쾌락이 없는 선정, 수릉엄정(首楞嚴定)이니라. 이 다섯 가지 선정을 익히면 대반열반에 가깝게 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부지런히 닦아 익히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한 가지 일을 수호한다 하는가. 보리심을 말함이니라. 보살마하살이 항상 보리심을 수호하나니, 세상 사람이 외아들을 수호하듯 하며, 외눈박이가 외눈을 수호하듯 하며, 거치른 벌판에 가는 이가 길잡이를 수호하듯이, 보살이 보리심을 수호함도 그와 같으니라. 이렇게 보리심을 수호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구족하게 갖는 것이, 곧 위없는 대반열반이니, 그러므로 보살이 한 법을 수호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이 네 가지를 친근한다 하는가. 4무량심을 말함이니, 크게 인자함[大慈]·크게 가엾이 여김[大悲]·크게 기뻐함[大喜]·크게 버림[大捨]이니라. 이 네 가지 마음으로 인하여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마음을 가두어 친근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한결같은 실상으로 믿고 순종한다 하는가.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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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모든 중생이 한 길로 돌아감을 분명히 아나니, 한 길은 대승인데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서 셋으로 나눈 것이니, 그러므로 보살이 믿어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느니라.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마음이 잘 해탈한다 하는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마음을 아주 끊은 까닭이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마음이 해탈하였다 하느니라.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지혜가 잘 해탈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을 막힘이 없이 아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지혜가 잘 해탈하였다 하느니라. 지혜가 해탈하므로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이제 듣고,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이르지 못한 데에 이제 이르게 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마음이 해탈한다 함은 옳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마음은 본래 얽매인 것이 아니오니, 그 까닭을 말하면 마음의 성품이 탐욕, 성내는 일, 어리석은 번뇌에 속박되지 아니하였나이다. 본래 얽매인 것이 아니거늘, 무엇을 말하여 마음이 해탈한다 하오리까. 마음의 본성품이 탐욕 따위 번뇌에 얽힐 것이 아니온데, 무슨 인연으로 속박할 수 있겠나이까. 마치 사람이 뿔을 짜는 것 같아서 그것에 젖의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아무리 공력을 들여도 젖이 나올 리가 없나이다. 젖을 짜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여 공을 적게 들여도 젖이 많이 나는 것이니, 마음도 그와 같아서 본래부터 탐욕이 없었는데 지금엔들 어찌 있사오리까. 만일 본래는 없던 탐욕이 뒤에 생긴다 하오면, 부처님과 보살이 본래 탐욕이 없었으나 지금 있어야 하리이다.
세존이시여, 저 석녀(石女)는 본래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니, 아무리 한량없는 공력의 인연을 들이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없나이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본래 탐욕이 없으므로, 아무리 여러 인연을 짓더라도 탐욕이 생길 수가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젖은 나무는 아무리 비비어도 불을 낼 수 없나니,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비비더라도 탐욕이 생길 수 없거늘, 어떻게 탐욕의 번뇌가 마음을 얽어맬 수 있으리까. 세존이시여, 마치 모래를 짜서는 기름을 얻을 수 없듯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짜더라도 탐욕을 얻을 수 없나이다. 탐욕과 마음은 두 가지 이치가 각각 다르거늘, 설사 탐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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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온들 어떻게 마음을 더럽힐 수 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말뚝을 허공에 박아서는 마침내 박히게 할 수 없듯이, 탐욕을 마음에 두는 것도 그와 같아서 가지각색 인연을 쓰더라도 탐욕으로 하여금 마음을 얽어맬 수가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는 것을 해탈이라 한다면, 부처님과 보살이 어찌하여 허공중에 가시[刺]를 뽑지 못하나이까. 세존이시여, 지난 세상의 마음은 해탈이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오는 세상의 마음도 해탈함이 없으며 지금 세상의 마음은 도와 함께하지 아니하였으니, 어느 세상의 마음을 해탈이라 이름하오리까. 세존이시여, 지나간 등불은 어둠을 멸하지 못하고, 오는 날의 등불도 어둠을 멸하지 못하고, 지금의 등불도 어둠을 멸하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밝음과 어둠은 함께 있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마음도 그와 같거늘, 어떻게 마음이 해탈한다 하오리까. 세존이시여, 탐욕은 있기도 한 것이니 만일 탐욕이 없다면 여인을 볼 때에 탐욕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만일 여인으로 인하여 탐욕이 생긴다면 이 탐욕은 참으로 있다고 할 것이오며, 탐욕이 있는 연고로 3악도에 떨어질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여인의 그림만 보고도 탐욕을 내며, 탐욕을 내는 탓으로 가지각색 죄를 짓나이다. 만일 본래 탐욕이 없다면 어찌하여 그림을 보고 탐욕을 내며,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이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하나이까. 만일 마음에 탐욕이 있다면 어찌하여 모양을 보고야 탐욕이 생기고 보지 않을 적에는 생기지 않나이까. 내가 현재에 나쁜 과보를 보는 것은 탐욕이 있음인 줄을 알 것이니,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도 그와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중생이 몸은 있으나 나라 할 것이 없거늘 모든 범부들은 부질없이 나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며, 비록 나라는 생각을 가지더라도 세 갈래에 떨어지지 않거늘 어찌하여 탐욕이 있는 이는 여인의 형상이 없는 데에 여인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3악도에 떨어지나이까. 세존이시여, 나무를 비벼서 불을 내지만 불의 성품이 모든 인연 중에 있는 것이 아니거늘, 무슨 인연으로 불이 나나이까. 세존이시여, 탐욕도 그와 같아서 빛 가운데 탐욕이 없고 향기나 맛이나 닿이는 법 중에도 탐욕이 없거늘, 어찌하여 빛과 향기와 맛과 닿이는 법에 탐욕을 내나이까. 만일 모든 인연 중에 탐욕이 없다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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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하여 중생만이 탐욕을 내고 부처님과 보살은 내지 않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음은 일정하지도 않나이다. 마음이 만일 일정하다면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없을 것이요,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어떻게 마음이 해탈을 얻는다 하오리까. 탐욕도 일정하지 않사오니,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어찌하여 탐욕을 인하여 3악도에 떨어지나이까. 탐하는 이와 경계가 둘이 다 일정하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다 같이 한 가지 빛을 반연하되 혹은 탐욕을 내고 혹은 성냄을 일으키고 혹은 어리석음을 내나니, 그러므로 탐하는 이와 경계가 모두 일정치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 두 가지가 모두 일정치 않다면 어찌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으면 마음이 해탈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나이까?”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마음은 탐욕의 번뇌에 얽히는 것도 아니고 얽히지 않음도 아니며, 해탈함도 아니요 해탈하지 않음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이 제 성품이 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외도들이 말하기를 ‘인과 연이 화합하면 결과가 나는 것이니, 만일 모든 인연 가운데 본래 날 성품이 없는데 능히 난다고 하면, 허공도 날 것이 없지만 결과를 내어야 할 것이나, 허공은 내지 않으니 인이 아닌 까닭이다. 모든 인연 중에 본래 결과의 성품이 있으므로 합하여 모이면 결과를 내는 것이니, 그 까닭을 말하겠다. 마치 제바달이 담을 쌓으려면 진흙을 취하고 채색을 취하지 아니하며, 그림을 그리려면 채색을 취하고 초목을 취하지 아니하며, 옷을 만들려면 천을 취하고 흙이나 나무는 취하지 아니하며, 집을 지으려면 흙을 취하고 천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으니, 사람들이 취함으로써 그 가운데 결과를 낼 수 있음을 알 것이며, 결과를 냄으로써 인연 가운데 먼저 결과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알 것이다. 만일 성품이 없다면 한 물건에서 모든 물건을 낼 것이 아닌가. 만일 취할 만하며 지을 수 있고 낼 수 있다면, 그 가운데는 반드시 결과가 있었을 것이며, 만일 결과가 없다면 사람들이 취하지도 않고 짓지도 못하고 내지도 못할 것이다. 다만 허공은 취할 것도 없고 지을 수도 없으므로 온갖 만물을 내는 것이니, 인이 있는 까닭으로, 니구타(尼拘陀) 열매는 니구타나무에 있고, 우유에 제호가 있으며 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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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천이 있고, 진흙에는 질그릇이 있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범부들이 무명 때문에 눈이 멀어서 이런 결정적인 말을 하여 빛에는 집착하는 뜻이 있고, 마음에는 탐하는 성품이 있다고 하느니라.
또 말하기를 ‘범부의 마음에 탐하는 성품도 있고 해탈의 성품도 있어서, 탐할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탐욕을 내고 해탈할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해탈한다’ 하나니, 비록 이런 말을 하나 뜻이 옳지 아니하니라. 어떤 범부는 또 말하기를 ‘온갖 인 가운데는 모두 과가 없다.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미세하고 다른 하나는 굵은 것이다. 미세한 것은 항상하고 굵은 것은 무상하다. 미세한 인으로부터 변하여 굵은 인이 되고, 이 굵은 인으로부터 다시 과를 이루나니, 굵은 것이 무상하므로 과도 무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범부는 말하기를 ‘마음도 인이 없고 탐욕도 인이 없거니와, 시절을 인하여서 탐욕의 마음이 생긴다’ 하나니, 이런 무리는 마음의 인연을 알지 못하므로 여섯 갈래로 바퀴돌 듯 하면서 생사를 받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개를 묶어서 기둥에 매어 두면 종일토록 기둥을 돌고 벗어나지 못하듯이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무명에 얽히어 나고 죽는 기둥에 매여 있으면서 25유를 돌고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뒷간에 빠졌다가 나와서 다시 들어가는 것 같으며, 어떤 이가 병이 나았다가 다시 병드는 것 같으며, 길 가는 사람이 허허벌판을 만났다가 지나가고는 다시 오는 것 같으며, 또 깨끗이 씻었다가 다시 흙을 칠하듯이,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이미 무소유처(無所有處)에서 해탈하였으나, 비비상처(非非想處)를 해탈하지 못하고 다시 3악도에 들어가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범부들이 과보만을 관찰하고 인연을 관찰하지 않는 연고니, 마치 개가 흙덩이만 쫓아가고 사람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으니라.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과보만 보고 인연을 보지 못하는 연고로 비비상처로부터 다시 3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마침내 인 가운데 과가 있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없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거나를 결정적으로 말하지 아니하나니, 만일 인 가운데 결정된 과가 있었다거나, 결정된 과가 없었다거나 결정된 과가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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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거나, 결정된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았다고 말하면, 이런 사람은 모두 마군의 무리로서 마군에게 딸렸으니, 곧 애욕의 사람이며, 이렇게 애욕에 빠진 사람은 생사의 속박을 영원히 끊을 수 없으며, 마음의 모양과 탐욕의 모양을 알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중도(中道)를 보이나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정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그 이유를 말하면 눈을 인하고 빛을 인하고 밝음을 인하고 마음을 인하고 생각함을 인하여 알음알이가 생기거니와, 이 알음알이는 결정코 눈에나 빛에나 밝음에나 마음에나 생각하는 데 있지 아니하며 중간도 아니니라.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인연으로부터 나는 것이므로 있다 이름하고, 제 성품이 없다 이름하나니,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모든 법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마침내 마음에 깨끗한 성품과 부정한 성품이 있다고 결정된 말을 하지 아니하나니, 깨끗한 마음이나 부정한 마음이 머무는 곳이 없는 까닭이며, 인연을 따라 탐욕을 내므로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본래 탐욕의 성품이 없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인연을 따르므로 마음에 탐욕이 생기고, 인연을 따르므로 마음이 해탈하느니라. 선남자여, 인연은 두 가지니, 하나는 생사를 따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대열반을 따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인연이 있으므로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기도 하느니라.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는 것인가. 선남자여, 만일 범부가 탐심을 끊지 못하고 탐심을 닦으면, 이런 사람은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한다 하느니라. 모든 중생들도 탐심을 끊지 못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하나니, 마치 욕계의 중생이 모두 초지미선(初地味禪)이 있으므로 닦거나 닦지 않거나 간에 항상 성취할 것이고 인연을 만나면 곧 얻는 것과 같으니라. 인연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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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화재(火災)를 말함이니,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닦거나 닦지 않거나 간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하나니, 왜냐 하면 탐욕을 끊지 못한 연고니라.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인가. 성문 제자들이 인연이 있으므로 탐심을 내고, 탐심을 두려워하여 백골관(白骨觀)을 닦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성문들이 4과를 증득하지 못하였을 때에 인연이 있어 탐심을 내고, 4과를 증득할 때에 탐심이 멸해지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하며, 보살마하살이 부동지(不動地)를 얻을 적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는 것인가. 보살마하살이 탐심을 끊고도 중생을 위하여서 탐욕이 있는 듯이 나타내는 것이니, 일부러 나타내므로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선한 법을 물어서 구족이 성취하게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아니함이라 하는가. 아라한과 연각과 부처님과 부동지를 제외한 보살들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들이 결정코 마음의 성품이 본래 깨끗하다거나 본래 부정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 마음은 탐욕의 번뇌와 화합하지 아니하고 성내는 일이나 어리석음과도 화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해와 달이 연기나 티끌이나 구름이나 안개나 아수라에 의해 가리우게 되면, 이런 인연으로 중생들이 보지 못하나니, 비록 보지 못하더라도 해와 달의 성품이 그 다섯 가지 가리움과 화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마음도 그와 같아서, 인연으로써 탐욕을 내거든, 중생들이 마음이 탐욕과 화합하였다 말하거니와, 이 마음의 성품은 진실로 화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만일 탐심이 곧 탐욕의 성품이라 하고, 탐하지 않는 것이 탐하지 않는 성품이라면, 탐하지 않는 성품은 탐욕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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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하고 탐욕의 마음은 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탐욕의 번뇌가 마음을 더럽히지 못한다 하는 것이며, 부처님과 보살은 영원히 탐욕의 번뇌를 깨뜨렸으므로 마음이 해탈하였다 하느니라.
모든 중생들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탐욕을 내고 인연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얻나니, 선남자여, 마치 저 설산의 험준한 곳에는 사람이나 원숭이가 모두 가지 못하며, 어떤 곳에는 원숭이는 가지만 사람은 가지 못하며, 어떤 곳에는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갈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가는 곳에 사냥꾼이 억센 끈끈이를 널쪽 위에 놓아 두고 원숭이를 잡는데, 원숭이가 어리석어서 손으로 건드리면 손이 들러붙고 손을 떼기 위하여 발로 밟으면 발이 또 들러붙고, 발을 떼려고 입으로 씹으면 입이 들러붙어서, 이와 같이 다섯 군데를 모두 떼지 못하게 되면 사냥꾼이 몽둥이에 꿰어 메고 집으로 돌아오느니라. 설산의 험준한 데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얻는 바른 도에 비유하고, 원숭이는 범부에 비유하고, 사냥꾼은 마왕 파순에게 비유하고, 끈끈이는 탐욕 번뇌에 비유한 것이니라. 사람이나 원숭이가 모두 가지 못한다 함은, 범부와 마왕 파순의 모두 행하지 못하는 데 비유하고, 원숭이는 가고 사람은 못 가는 것은 모든 외도와 지혜 있는 이에게 비유하였으니, 마군들이 5욕으로도 속박하지 못함이요,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가는 데는 모든 범부와 파순이 생사 중에 항상 있으면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범부들이 5욕락에 얽매이면 파순이 데려가나니, 사냥꾼이 원숭이를 붙들어 가지고 집으로 가는 것 같으니라.
선남자여, 한 나라의 임금이 자기의 나라 안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지만 다른 나라에 가면 여러 가지 괴롬이 있게 되나니,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만일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는 안락하지만, 다른 경계에 이르게 되면 마군을 만나 괴롬을 받나니, 자기의 경계는 4념처(念處)를 말함이요. 다른 경계는 5욕락을 말함이니라.
어떤 것을 마군에게 얽매인다 하는가. 중생들이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보고,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보며, 괴롬을 즐겁다 보고 즐거움을 괴롭다 보며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보고 깨끗함을 부정하다 보며, 내가 없는 것을 내가 있다 보고, 나인 것을 내가 없다 보며, 진실한 해탈이 아닌 것을 허황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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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이라 보고, 진실한 해탈을 해탈이 아니라 보며, 승(乘)이 아닌 것을 승이라 보고 승인 것을 승이 아니라 보느니라. 이런 사람을 일러서 마군에게 얽매였다 하나니, 마군에게 얽매인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모든 법에 공통한 모양과 제각기 다른 모양이 참으로 있다고 보는 이는, 이 사람이 색(色)을 볼 때에는 색이란 모양을 짓고, 내지 식(識)을 볼 때에는 식이란 모양을 지으며, 남자를 보면 남자란 모양을 짓고 여자를 보면 여자란 모양을 지으며, 해[日]를 보면 해란 모양을, 달을 보면 달이란 모양을, 해[歲]를 보면 해란 모양을, 5음을 보면 음이란 모양을, 6입(入)을 보면 입이란 모양을, 18계(界)를 보면 계란 모양을 짓나니, 이렇게 보는 이는 마군에게 얽매였다 하며, 마군에게 얽매인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내가 곧 색이라, 색 가운데 내가 있다, 내 가운데 색이 있다, 색이 내게 부속되었다고 보거나, 내지 내가 곧 식이다, 식 가운데 내가 있다, 내 가운데 식이 있다, 식이 내게 부속되었다고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마군에게 얽매인 것이니,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선남자여, 나의 성문 제자로서, 여래의 12부경을 여의고 외도들의 경전을 익히거나, 출가한 적멸(寂滅)의 업을 닦지 아니하고 재가(在家)한 세속의 일을 경영하는 이가 있나니, 무엇을 재가한 일이라 하는가. 여러 가지 부정한 물건인 하인·전택(田宅)·코끼리·말·수레·약대·나귀·닭·개·원숭이·돼지·양 따위나 가지각색 곡식을 받아 두거나, 스님을 멀리 여의고 속인들을 가까이하며, 성인의 말씀을 어기고 재가자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여러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기를 허락했다’ 하니, 이것을 재가의 일을 익힌다 하느니라.
또 제자들이 열반을 위하지 아니하고 이끗만을 위하여 12부경을 친근하고 듣거나, 시방 승물(僧物)이나, 승만물(僧鬘物)을 입고 먹기를 자기의 것처럼 생각하거나, 다른 집을 아끼거나 칭찬하거나, 임금이나 왕자들을 친근하거나, 길흉한 것을 점치고 책력에 관한 것을 숭상하며, 바둑·장기·노름·투호(投壺)하는 일이나, 비구니나 처녀들을 친근하거나, 두 사미를 거느리거나, 사냥하고 고기 팔고 술 파는 집과 전다라들이 사는 데를 놀러다니거나, 여러 가지로 장사하거나,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거나, 나라의 사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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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웃 나라에 가거나 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군의 권속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이런 인연으로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며, 내지 어리석은 마음과 함께 나고 함께 멸하는 일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런 인연으로 마음이 깨끗한 것도 아니고 부정한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마음이 해탈한다 하느니라. 만일 온갖 부정한 물건을 받지도 않고 저축하지도 아니하며, 대반열반을 위하여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남에게 해설하면 이런 사람은 나의 참된 제자인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마왕 파순의 경계를 행하지 아니하면, 37도품(道品)을 닦는 것이요, 도품을 닦으므로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여덟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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