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20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②

그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중대한 계율을 범하였거나 방등경을 비방하거나 5역죄(逆罪)를 짓거나 일천제(一闡提)나 이런 이들이 모두 불성이 있사오면 이런 이들이 어찌하여 지옥에 떨어지나이까? 세존이시여, 이런 이들도 불성이 있을진댄 어찌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다 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선근을 끊은 이를 일천제라 할진댄 선근을 끊을 때에 불성은 어찌하여 끊어지지 아니하오며, 불성이 끊어졌다면 어떻게 다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말하오며, 만일 끊어지지 않았으면 무슨 까닭으로 일천제라 하나이까? 세존이시여, 4중금(重禁)을 범함을 이름하여 결정되지 않았다[不定]하오면, 방등경전을 비방하고 5역죄를 지은 이나 일천제를 모두 결정하지 않았다 할 것이오며, 이런 무리들이 만일 결정되었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나이까? 수다원으로부터 벽지불에 이르기까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이름할 것이며, 수다원으로부터 벽지불에 이르기까지도 결정되었다면 역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4중금을 범함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면 수다원으로부터 벽지불까지도 결정된 것이 아닐 것이며, 이런 것이 결정된 것이 아니면 부처님 여래도 결정된 것이 아닐 것이요, 부처님이 결정된 것이 아니면 열반의 성품도 결정된 것이 아닐 것이며, 온갖 법들도 결정된 것이 아니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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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결정이 아니겠는가. 만일 일천제가 일천제를 없애고 불도(佛道)를 이룬다면, 부처님 여래도 그와 같아서 열반에 들었다가도 도로 나와서 열반에 들지 아니하리니, 만일 그렇다면 열반의 성품이 결정된 것이 아닐 것이며, 결정된 것이 아니하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을 것이어늘, 어찌하여 일천제들이 열반을 얻으리라 하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되고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하여 모든 세간을 가엾이 여기고 인자하게 염려하며, 보리심을 낸 보살들을 더욱 자라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묻는구나. 선남자여, 그대는 지나간 세상을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 세존을 가까이 모시고,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선근(善根)을 심었으며, 오래전부터 보리의 공덕을 성취하였고, 모든 마군들을 항복받아 물러가게 하였으며, 이미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하였으며, 벌써부터 부처님 여래의 깊고 깊은 비밀한 법장[藏]을 통달하였으며, 지나간 세상 한량없고 그지없는 항하의 모래수만큼 많은 부처님께 이렇게 깊고 비밀한 이치를 이미 물었으니, 나는 모든 세간의 사람이나 하늘이나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마군이나 범천이 여래에게 이러한 이치를 묻는 이를 보지 못하였노라. 이제 정성스런 마음으로 자세히 들으라.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연설하리라. 선남자여, 일천제는 결정된 것이 아니니, 만일 결정되었다면 일천제는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련만 결정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얻는 것이니라. 그대가 말하기를, ‘불성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일천제를 일컬어 선근을 끊은 이라 하는가?’ 하였거니와, 선남자여, 선근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의 것이요, 또 하나는 밖의 것이니라. 불성은 안의 것도 아니요 바깥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불성은 끊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유루(有漏)요, 또 하나는 무루거니와 불성은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니므로 끊어지지 않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항상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상한 것이거니와, 불성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므로 끊어지지 않느니라.
만일 끊어진다면 도로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만일 도로 얻을 수 없다면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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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지 않았다고 이름할 것이며, 만일 끊어졌다가 얻는 것을 일천제라 한다면 4중죄를 범한 이도 결정되지 않을 것이고, 만일 결정된다면 4중죄를 범하고는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며, 방등경전을 비방한 이도 결정되지 않을 것이고, 만일 결정된다면 바른 법을 비방하고는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며, 5역죄를 지은 이도 결정되지 않을 것이고, 만일 결정된다면 5역죄를 지은 사람은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니라. 빛[色]과 빛의 형상[色相]이 두 가지가 모두 결정되지 아니하며, 향기와 맛과 감촉하는 모양과 나는 모양으로부터 무명의 모양에 이르기까지와 5음(陰)·12입(入)·18계(界)의 모양과 25유(有)의 모양과 4생(生)과 나아가 모든 법들도 모두 결정되지 아니하리라.
선남자여, 마치 환술쟁이가 여러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 차병(車兵)·보병(步兵)·상병(象兵)·마병의 네 가지 군대를 환술로 만들었거나 모든 영락과 몸을 꾸미는 기구를 만들었거나, 도시·촌락·산림·숲·우물·못·강 등을 만들었거든, 그 사람들 중에서 어린아이들은 지혜가 없어서 그런 것을 볼 때에 참말이라 하지만, 지혜 있는 사람들은 모두 허황한 것으로서 환술로 사람의 눈을 홀리는 줄을 아나니, 선남자여, 온갖 범부로부터 성문이나 벽지불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에 대하여 일정한 모양이 있다고 보는 것도 그와 같거니와 부처님과 보살들은 모든 법에 대하여 일정한 모양을 보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린아이들은 더운 여름에 아지랑이를 보고는 물인 줄 알지만,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이 아지랑이를 참말 물이라 생각하지 아니하고, 모두 허황한 것으로 사람의 눈을 홀리는 것이요, 참말 물이 아니라 하나니, 모든 범부와 성문과 연각들이 모든 법을 볼 때에도 그와 같아서 실재라 하거니와, 부처님과 보살들은 모든 법을 일정한 모양이라고 보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산골짜기에서 소리에 울려서 나는 메아리를 아이들이 듣고는 참말 소리라 하는 것과 같거니와, 지혜 있는 사람은 일정한 소리가 아니고, 소리인 듯한 것이 귀를 속이는 것인 줄을 아나니, 선남자여, 모든 범부와 성문과 연각들이 모든 법에 대하여서도 그와 같아서 일정한 모양이 있다고 보거니와, 보살들은 모든 법이 일정한 모양이 없는 줄을 이해하여 무상한 모양, 공적(空寂)한 모양, 생멸이 없는 모양으로 보나니,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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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무상한 모양으로 보느니라.
선남자여, 일정한 모양도 있나니, 어떤 것을 일정하다 아는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니라. 어디 있는가. 이른바 열반이니라. 선남자여, 수다원과도 결정되지 아니하니, 결정되지 아니하므로 8만 겁을 지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느니라. 사다함과도 결정되지 아니하니, 결정되지 아니하므로 6만 겁을 지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느니라. 아나함과도 결정되지 아니하니, 결정되지 아니하므로 4만 겁을 지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느니라. 아라한과도 결정되지 아니하니, 결정되지 아니하므로 2만 겁을 지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느니라. 벽지불도 결정되지 아니하니, 결정되지 아니하므로 10천 겁을 지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지금 구시나(拘尸那)성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일부러 사자상(師子牀)에 누워서 열반에 들려 함을 보여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제자들과 모든 역사(力士)들로 하여금 크게 근심하게 하며, 하늘·사람·아수라(阿修羅)·건달바(乾達婆)·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들로 하여금 공양을 베풀게 하며,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1천 필의 천[布]으로 몸을 염습하고, 7보로 관을 만들고 향유를 담고, 향 나무 장작을 쌓아서 불로 태우게 하거니와 두 가지는 태울 수 없으니, 하나는 속몸[儭身]이요, 또 하나는 겉몸[最在外]이니라. 그리고는 중생들이 사리(舍利)를 나누어 여덟 몫을 내게 하며, 모든 성문 제자들은 모두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겠지만, 여래는 결정코 열반에 들지 아니하는 줄을 알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여래는 항상 머물러 변역하지 아니하는 까닭이니라. 이런 뜻으로 여래의 열반도 결정되지 않은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도 결정되지 않은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는 하늘이 아니니, 왜냐 하면 네 가지 하늘이 있는데, 세간의 하늘과 태어나는 하늘과 깨끗한 하늘과 이치의 하늘이니라. 세간의 하늘은 국왕들이요, 태어나는 하늘은 사천왕천으로부터 비유상비무상천(非有想非無想天)까지요, 깨끗한 하늘은 수다원으로부터 벽지불까지요, 이치의 하늘은 10주(住) 보살마하살 등이니라. 무슨 뜻으로 10주 보살을 이치의 하늘이라 하는가. 모든 법의 뜻을 잘 아는 까닭이니라. 무엇을 뜻이라 하는가. 모든 법이 공한 뜻을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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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국왕도 아니요, 사천왕도 아니요,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천도 아니며, 수다원으로부터 나아가 벽지불이나 10주 보살도 아니니, 이런 뜻으로 여래는 하늘이 아니지만, 그래도 중생들은 부처를 일컬어 천중천(天中天)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하늘도 아니고 하늘 아님도 아니며, 사람도 아니고 사람 아님도 아니며, 귀신도 아니고 귀신 아님도 아니며, 지옥·축생·아귀도 아니고 지옥·축생·아귀 아님도 아니며, 중생도 아니고 중생 아님도 아니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님도 아니며, 빛도 아니고 빛 아님도 아니며, 긴 것도 아니고 길지 않음도 아니며, 짧은 것도 아니고 짧지 않음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며, 마음도 아니고 마음 아님도 아니며,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니며, 함이 있음도 아니고 함이 없음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며, 환술도 아니고 환술 아님도 아니며, 이름도 아니고 이름 아님도 아니며, 결정됨도 아니고 결정되지 않음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말함도 아니고 말하지 아니함도 아니며, 여래도 아니고 여래 아님도 아니니, 이런 뜻으로 여래가 결정되지 않은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슨 까닭으로 여래가 세간의 하늘이 아니라 하는가. 세간의 하늘은 여러 국왕이니, 여래는 오랜 옛적 한량없는 겁 동안에 이미 임금의 자리를 버렸으므로 국왕이 아니며, 국왕 아님도 아니라 함은 여래는 가비라성 정반왕(淨飯王)의 가문에 났으므로 국왕 아님도 아니니라. 태어나는 하늘이 아니라 함은, 여래는 오래전부터 모든 생사[有]를 여의었으므로 태어나는 하늘이 아니며, 태어나는 하늘이 아님도 아니라 함은 무슨 까닭인가. 도솔천에 올라갔다가 염부제(閻浮提)에 내려왔으므로 여래는 태어나는 하늘이 아님도 아니니라. 또 깨끗한 하늘도 아니니, 왜냐 하면 여래는 수다원도 아니고, 나아가 벽지불도 아니므로 여래는 깨끗한 하늘이 아니며, 깨끗한 하늘이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세간의 여덟 가지 법으로 물들일 수 없음이 마치 연꽃이 띠끌과 물이 묻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여래는 깨끗한 하늘 아님이 아니니라. 역시 이치의 하늘도 아니니, 왜냐 하면 여래는 10주 보살이 아니므로 여래는 이치의 하늘이 아니며, 이치의 하늘이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여래는 18공(空)의 이치들을 항상 닦았으므로 여래는 이치의 하늘 아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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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니라.
여래는 사람이 아니니, 왜냐 하면 오랜 옛적 한량없는 겁 동안에 인간을 여읜 까닭으로 사람이 아니며, 사람이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가비라성에 태어난 까닭으로 사람이 아님도 아니니라. 여래는 귀신이 아니니, 왜냐 하면 온갖 중생을 해하지 아니하므로 귀신이 아니며, 귀신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귀신의 형상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귀신이 아님도 아니니라. 여래는 지옥·축생·아귀가 아니니, 왜냐 하면 여래는 오래전부터 모든 악업(惡業)을 여의었으므로 지옥·축생·아귀가 아니며, 지옥·축생·아귀가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여래는 일부러 3악취(惡趣)의 몸을 받아 중생을 교화하므로 지옥·축생·아귀가 아님도 아니니라. 중생도 아니니, 왜냐 하면 오래전부터 중생의 성품을 여의었으므로 여래는 중생이 아니며, 중생이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어떤 때에는 중생의 모양을 연설하므로 여래는 중생이 아님도 아니니라. 여래는 법이 아니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은 각각 다른 모양이 있거든,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오직 한 가지 모양이므로 법이 아니며, 법이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여래가 곧 법계이므로 법이 아님도 아니니라. 여래는 빛이 아니니, 왜냐 하면 열 가지 색입(色入)으로 포섭할 바 아니므로 빛이 아니며, 빛이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몸에 32상(相)과 80종호(種好)가 있으므로 빛이 아님도 아니니라. 여래는 긴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모든 빛을 끊었으므로 긴 것이 아니며, 길지 않음도 아니니, 왜냐 하면 모든 세간에서 정수리의 육계[頂髻]를 본 사람이 없으므로 길지 않음도 아니니라. 여래는 짧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오래전부터 교만의 속박을 여의었으므로 짧은 것이 아니며, 짧지 아니함도 아니니, 왜냐 하면 구사라(瞿師羅) 장자를 위하여 세 자[尺]의 몸을 나타내었으므로 짧지 않음도 아니니라. 여래는 모양이 아니니, 왜냐 하면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모양을 여의었으므로 모양이 아니며, 모양이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모든 모양을 잘 알므로 모양이 아님도 아니니라.
여래는 마음이 아니니, 왜냐 하면 허공의 모양이므로 마음이 아니며, 마음이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10력(力)이란 마음법이 있으며, 또한 다른 중생의 마음을 알므로 마음이 아님도 아니니라. 여래는 함이 있음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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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므로 함이 있음이 아니며 함이 없음도 아니니, 왜냐 하면 오고 가고 앉고 누움이 있으며, 열반을 나타내므로 함이 없음도 아니니라. 여래는 항상함이 아니니, 왜냐 하면 몸이 분한(分限)이 있으므로 항상함이 아니니라. 어찌하여 항상함이 아닌가. 앎이 있는 까닭이니, 항상한 법은 앎이 없어 허공과 같거늘, 여래는 앎이 있으므로 항상하지 아니하니라. 어찌하여 항상하지 아니한가. 말이 있는 까닭이니, 항상한 법은 말이 없으며 허공과 같거늘, 여래는 말이 있으므로 항상함이 없으며, 성씨(姓氏)가 있는 것을 무상이라 하고, 성씨가 없는 법을 항상하다 하나니, 허공은 항상하므로 성씨가 없거니와 여래는 성씨가 있으니 구담씨(瞿曇氏)라, 그러므로 무상하며, 부모가 있는 것을 무상하다 하고 부모가 없는 것을 항상하다 하나니, 허공은 항상하므로 부모가 없거니와 부처에게는 부모가 있으니 그러므로 무상하니라. 4위의(威儀)가 있음을 무상하다 하고 4위의가 없음을 항상하다 하나니, 허공은 항상하므로 4위의가 없거니와 부처는 4위의가 있으므로 무상하니라. 항상 머무는 법은 방소(方所)가 없나니, 허공은 항상하므로 방소가 없거니와 여래는 동천축(東天竺)에 나서 사바제(舍婆提)나 왕사성(王舍城)에 머물므로 무상하니라. 이런 뜻으로 여래는 항상하지 아니하니라.
또 항상하지 아니함도 아니니, 왜냐 하면 나는[生] 일을 영원히 끊은 까닭이니라. 나는 일이 있는 법을 무상하다 하고 나는 일이 없는 법을 항상하다 하나니, 여래는 나는 일이 없으므로 항상하니라. 항상한 법은 성품이 없을새 성품이 있는 법은 무상하다 하거니와, 여래는 나는 일도 없고 성품도 없나니, 나는 일도 없고 성품도 없으므로 항상하니라. 항상한 법은 온갖 처소에 두루하여 마치 허공이 있지 않은 데가 없는 것 같나니, 여래도 그러하여 온갖 처소에 두루하므로 항상하니라. 무상한 법은 여기는 있다고 하고 저기는 없다고도 하거니와,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여기는 있고 저기는 없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항상하니라. 무상한 법은 어떤 때는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없기도 하거니와,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으므로 항상하니라. 항상 머무는 법은 이름도 없고 빛도 없나니, 허공은 항상하므로 이름도 없고 빛도 없거든, 여래도 그러하여 이름도 없고 빛도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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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하니라. 항상 머무는 법은 인도 없고 과도 없나니, 허공은 항상한 것이므로 인도 없고 과도 없거든, 여래도 그러하여 인도 없고 과도 없으므로 항상하니라. 항상 머무는 법은 3세(世)에 잡히지 않나니, 여래도 그러하여 3세에 잡히지 아니하므로 항상하니라.
여래는 환술이 아니니, 왜냐 하면 온갖 허황한 마음을 영원히 끊었으므로 환술이 아니며, 환술이 아님도 아니니, 왜냐 하면 여래가 어떤 때에는 한 몸을 나누어서 한량없는 몸이 되기도 하고, 한량없는 몸이 다시 한 몸이 되기도 하며, 벽을 곧장 뚫고 지나가서 걸림이 없기도 하고, 물을 밟고 다니기를 땅과 같이 하고, 땅에 들어가기를 물과 같이 하고, 허공에 다니기를 땅과 같이 하며, 몸에서 불길을 내기를 불더미같이 하고, 구름과 우레가 진동하여 그 소리가 놀랄 만하며, 혹은 도시와 촌락과 집과 산과 물과 나무가 되며, 혹은 큰 몸이 되고 혹은 작은 몸이 되며, 남자의 몸, 여자의 몸이 되기도 하나니, 그러므로 여래는 환술이 아님도 아니니라.
여래는 일정한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여래가 이 구시나성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일부러 반열반에 듦을 보이므로 일정하지 아니하며, 일정하지 아니함도 아니니, 왜냐 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므로 여래는 일정하지 아니함이 아니니라. 여래는 유루가 아니니, 왜냐 하면 3루(漏)를 끊었으므로 유루가 아니니라. 3루란, 욕계의 온갖 번뇌에서 무명을 제외한 것을 욕루(欲漏)라 하고, 색계와 무색계의 온갖 번뇌에서 무명을 제외한 것을 유루(有漏)라 하고, 삼계의 무명을 무명루(無明漏)라 하지만 여래는 아주 끊었으므로 비루(非漏)라 하느니라.
또 모든 범부는 유루를 보지 못하나니, 어찌하여 범부는 유루를 보지 못한다 하는가. 모든 범부는 오는 세상에 대하여 여러 의심이 있나니, 오는 세상에 몸을 얻게 되는가, 몸을 얻지 못하겠는가, 지나간 세상에 몸이 본래 있었는가, 본래 없었는가, 지금 세상에 이 몸이 있는가, 이 몸이 없는가, 만일 내가 있다면 빛인가 빛이 아닌가, 빛이기도 하고 빛이 아니기도 한가, 빛도 아니고 빛 아님도 아닌가, 생각인가 생각이 아닌가, 생각이기도 하고 생각 아니기도 한가,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가, 이 몸이 다른 이에게 달렸는가, 다른 이에게 달리지 않았는가, 달리기도 하고 달리지 않기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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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달린 것도 아니고 달리지 않음도 아닌가, 목숨이 있고 몸은 없는가, 몸이 있고 목숨은 없는가, 몸도 있고 목숨도 있는가, 몸도 없고 목숨도 없는가, 몸과 목숨이 항상한가, 무상한가,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한가,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닌가, 몸과 목숨을 자재천이 지었는가, 시절이 지었는가, 인이 없이 지어졌는가, 세상 성품이 지었는가, 티끌이 지었는가, 법과 법 아닌 것이 지었는가, 사람이 지었는가, 번뇌가 지었는가, 부모가 지었는가. 내가 마음에 머무는가, 눈에 머무는가, 몸에 가득하였는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누가 났으며 누가 죽는가, 내가 지난 세상에는 바라문이었던가, 찰리(刹利)였던가, 비사(毗舍)였던가, 수다라(首陀羅)였던가, 오는 세상에는 어떤 성이 되겠는가, 나의 이 몸이 지난 세상에는 남자의 몸이었던가, 여자의 몸이었던가, 축생의 몸이었던가, 내가 만일 산 생명을 죽인다면 죄가 있겠는가, 죄가 없겠는가. 나아가 술을 마시면 죄가 있겠는가, 죄가 없겠는가, 내가 스스로 지었는가, 다른 이의 지음이 되었는가, 내가 과보를 받는가, 몸이 과보를 받는가. 이렇게 의혹하는 소견인 한량없는 번뇌가 중생의 마음을 덮었고, 이런 의혹하는 소견으로 인하여 여섯 가지 마음을 내되, 결정코 내가 있는가, 결정코 내가 없는가 하여 나에게서 나를 보는가, 나에게서 내가 없음을 보는가, 내가 없는 데서 나를 보는가, 내가 짓는가, 내가 받는가, 내가 아는가 하는 따위를 삿된 소견이라 하거니와, 여래는 이렇게 한량없는 견루(見漏)의 근본을 뽑아 버렸으므로 누(漏)가 아니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에 대하여 성인의 행을 닦는 이는, 영원히 이런 누를 끊는 것이니, 부처님 여래는 항상 성인의 행을 닦으므로 누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범부는 5근을 잘 거두어 잡지 못하므로 3루가 있어서 나쁜 짓에 끌려 선하지 못한 곳에 이르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나운 말이 성질이 고약하여 말 탄 이를 끌고 험악한 곳으로 가듯이, 이 5근을 잘 거두어 잡지 못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열반의 선한 길을 여의고 나쁜 갈래로 가게 하는 것이며, 마음을 길들이지 못한 사나운 코끼리를 타면 뜻대로 가지 아니하고, 도시나 촌락을 떠나서 빈 벌판으로 가게 되듯이, 이 5근을 잘 거두어 잡지 못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열반의 도시를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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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고 나고 죽는 넓은 벌판으로 가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아첨하는 신하가 임금으로 하여금 나쁜 짓을 하게 하듯이, 5근이란 나쁜 신하도 그와 같아서 중생으로 하여금 한량없는 나쁜 짓을 짓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고약한 자식은 스승과 부모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여러 가지 나쁜 짓을 짓듯이, 조복되지 못한 5근도 그와 같아서 스승이 좋은 말로 가르치는 것을 받지 아니하고 온갖 나쁜 짓을 모두 짓느니라.
선남자여, 범부들은 5근을 거두어 잡지 못하여서 항상 지옥·축생·아귀의 해함이 되나니, 마치 원수가 선한 사람을 해치는 듯하니라. 선남자여, 범부들은 5근을 거두어 잡지 못하여 5진(塵)으로 달아나나니, 마치 소 먹이는 사람이 잘 수호하지 못하면 남의 곡식을 먹게 되듯이 범부가 5근을 거두어 잡지 못하면 항상 여러 세계에 있어 고통을 많이 받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아 성인의 행을 행할 때에 항상 5근을 잘 거두어 수호하여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교만·질투를 두려워하나니, 모든 선한 법을 얻기 위함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이 5근을 잘 수호하면 마음을 거두어 잡을 것이요, 마음을 거두어 잡으면 5근을 거두어 잡을 것이니, 마치 사람이 임금을 옹호하면 나라를 옹호하고, 나라를 옹호하면 임금을 옹호하는 것과 같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만일 대반열반경을 들으면 지혜를 얻고 지혜를 얻으므로 생각을 오로지 할 수 있거니와 만일 5근이 산란하면 생각함이 그치게 되나니, 왜냐 하면 이것이 생각하는 지혜[念慧]인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소를 잘 기르는 사람은 설사 소가 동서로 남의 곡식을 먹더라도 곧 제지하여 범하지 못하게 하나니,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생각하는 지혜의 인연으로 5근을 거두어 잡아 산란하지 못하게 하느니라.
보살마하살로서 생각하는 지혜가 있는 이는 나라는 모양을 보지 아니하고, 내 것이라는 모양도 보지 아니하며, 중생도 보지 아니하고 수용(受用)할 것도 보지 아니하여, 모든 법이 법의 성품과 같음을 보아 흙이나 돌이나 기왓장이라는 모습을 내느니라. 마치 집이 여러 가지 인연으로 생겨서 일정한 성품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중생들이 4대(大)와 5음(陰)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일정한 성품이 없음을 추측하리니, 일정한 성품이 없으므로 보살은 그 가운데 탐착(貪着)을 내지 아니하느니라. 모든 범부들은 중생이 있는 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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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번뇌를 일으키거니와, 보살마하살은 대반열반을 닦아서 생각하는 지혜가 있으므로 모든 중생에게 탐착을 내지 아니하느니라.
또 보살마하살로서 대반열반경을 닦는 이는 중생의 모양에 집착하여 가지가지 법의 모양을 짓지 아니하나니, 선남자여, 마치 환쟁이가 여러 가지 채색으로 남자·여자·소·말의 형상을 그린 것을, 범부는 지견(知見)이 없으므로 보고는 남자·여자 등이라 생각하거니와, 환쟁이는 남녀의 모습이 없는 줄을 알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법의 다른 모양에 대하여 한 모양으로 관찰하고, 마침내 중생이란 생각을 내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생각하는 지혜가 있는 까닭이니라. 보살마하살로서 대열반을 닦는 이는 혹시 단정한 여자를 보더라도 탐착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모양을 잘 관찰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5욕락이 즐거울 것이 없으며, 잠깐도 머물러 있지 못함을 아나니, 마치 개가 썩은 뼈를 깨무는 것 같으며, 사람이 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가는 것 같으며, 상자에 든 독사를 꿈에 얻은 것 같고, 길가에 있는 과일 나무에서 과일을 여러 사람이 따는 것 같으며, 한 조각 고기를 뭇 새가 따라가는 것 같으며, 물 위에 뜬 거품이나 물에 그린 자취와 같으며, 날실[經]만을 끝까지 짠 것과 같으며, 죄수가 거리에 나아가는 것 같으며, 빌려 가진 세력이 오래지 못하는 듯하며, 탐욕이 이렇게 허물이 많은 줄을 관찰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들이 빛·향기·맛·감촉의 인연을 위하여 지난 세상 한량없고 수없는 겁으로부터 오면서 항상 괴로움을 받는 것을 관찰하나니, 한 겁 동안에 쌓인 낱낱 중생의 뼈가 왕사성의 비부라산과 같고, 먹은 젖은 4해의 물과 같고, 몸에서 난 피는 4해의 물보다도 많으며, 부모·형제·처자·권속이 죽었을 때에 울어 흘린 눈물도 4해의 물보다 많으며, 땅 위의 초목을 모두 베어 산가지를 만들어서 부모를 세어도 다할 수 없으며, 한량없는 겁 동안에 지옥·축생·아귀에서 받은 고통도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땅덩이를 깨어서 대추만큼씩 빚어서 다하기는 쉽지만, 한량없이 나고 죽는 것은 다할 수 없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이 애욕의 인연으로 받은 고통이 한량없음을 깊이 관찰하며, 보살이 나고 죽는 고통이 이러함을 관찰하므로 생각하는 지혜를 잃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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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가령 세간에 대중들이 25리에 가득하였거든, 왕이 한 신하를 시켜 기름 그릇을 받들고 그 속으로 지나가면서 엎지르지 못하게 하되, 만일 한 방울만 엎질러도 목숨을 끊으리라 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칼을 빼어 들고 뒤에서 따라가면서 위협하게 하면 신하는 왕의 명령을 받고 지극한 마음으로 기름 그릇을 붙잡고, 그러한 대중 속으로 지나가면서 비록 마음에 드는 다섯 가지 삿된 욕락을 보더라도 항상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방일하여 저 삿된 욕락을 탐하면 이 기름을 엎지르고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리라’ 하여, 이 사람이 이렇게 조심하는 인연으로 나아가 한 방울의 기름도 엎지르지 아니하느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가운데서 생각하는 지혜를 잃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비록 5욕락을 보더라도 마음에 탐착하지 아니하며, 만일 깨끗한 빛을 보면 빛이란 모습을 내지 않고 다만 고통인 줄만 관하며, 나아가 이 모양도 그와 같아서 나는 모양도 짓지 아니하고 멸하는 모양도 짓지 아니하며, 인이란 모양도 짓지 아니하고 화합한 모양을 관하면, 보살이 그 때에 5근이 청정하여지고, 근이 청정하므로 근을 수호하는 계행이 구족하거니와 모든 범부는 5근이 깨끗하지 못하여 잘 호지하지 못하므로 이름하여 근이 샌다[根漏] 하고, 보살은 영원히 끊었으므로 무루(無漏)라 하며, 여래는 뽑아 버리고 근본까지 아주 끊었으므로 누가 아니라[非漏]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다시 누를 여의는 일이 있었으니, 보살마하살이 위없는 감로인 부처의 과보를 위하여 나쁜 누를 여의려 하느니라. 어떻게 함이 여의는 것인가. 만일 대반열반경을 수행하여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뜻을 생각한다면 그것을 여읜다고 이름하느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나는 12부 경전에서 나쁜 누를 여읠 수 있는 것이, 이 방등의 대반열반경과 같음을 보지 못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진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때에 제자들 중에서 가르침을 잘 받는 이는 마음에 나쁜 짓을 짓지 아니하나니, 보살마하살로서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는 이도 그와 같아서 마음에 나쁜 짓을 짓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세간에 있는 훌륭한 주문을 한 번 듣기만 하여도, 그 뒤부터 7년 동안은 모든 독약이 해롭히지 못하고 독사도 물지 못하며, 만일 외우는 이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모든 나쁜 일이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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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대반열반경도 그와 같아서 어떤 중생이 귀에 한 번만 듣기만 하여도 그 뒤부터 7겁 동안은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만일 쓰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해설하거나 뜻을 생각하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분명하게 불성 보기를 저 성왕이 감로 맛을 얻는 것같이 하리라. 선남자여, 이 대반열반경은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열반경을 쓰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해설하거나 다른 이에게 말하거나 뜻을 생각하면, 이 사람은 진정한 나의 제자로서 나의 가르침을 잘 받는 이며, 내가 보는 바며 내가 생각하는 바니라. 이 사람은 내가 열반에 들지 아니함을 분명히 아는 이며, 이 사람이 있는 데는, 도시거나 촌락이거나 산이거나 들이거나 집이거나 밭이거나 누각이거나 전당이거나 간에, 내가 그 가운데서 항상 머물고 옮겨가지 아니하며, 내가 이 사람에게서 항상 보시를 받되, 혹은 비구·비구니가 되며, 우바새·우바이가 되며, 바라문·범지·빈궁한 걸인이 되느니라. 어떻게 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보시하는 것을 여래가 받는 줄을 알게 하는가. 선남자여, 이 사람이 혹은 꿈에 부처님 형상을 보며, 혹은 천인의 형상이나 사문의 형상을 보며, 국왕과 전륜성왕과 사자 왕의 형상을 보기도 하고, 연꽃 형상·우담바라꽃 형상을 보기도 하며, 큰 산이나 바닷물을 보기도 하고, 해와 달을 보기도 하며, 혹은 흰 코끼리나 흰 말의 형상을 보기도 하고, 부모를 보기도 하며, 꽃이나 과실이나 금·은·유리(琉璃)·파리(頗梨) 따위의 보배를 얻기도 하고, 다섯 가지 우유를 얻기도 하거든 그 때에 여래가 그의 보시를 받는 줄을 알 것이며, 깨어서는 즐거우며 가지가지 필요한 물건을 얻게 되어 나쁜 일은 생각도 아니하고, 선한 법을 닦기를 좋아하리라. 선남자여, 이 대반열반경은 이렇게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 공덕을 성취하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나의 말을 잘 믿으라. 만일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나를 보고자 하는 이, 나를 공경하려는 이, 법의 성품과 같이 나를 보려는 이, 공한 선정을 얻으려는 이, 실상을 보려는 이, 수릉엄정(首楞嚴定)이나 사자왕정(師子王定)을 닦으려는 이와 4마(魔)·무상·무락·무아·부정의 여덟 가지 마군을 깨뜨리려는 이와,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을 얻으려는 이는, 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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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경을 받아 지니거나 쓰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다른 이에게 해설하거나 뜻을 생각하는 이를 보거든, 마땅히 나아가서 친근하고 의지하여 물으며,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손과 발을 씻어 주고 평상과 자리를 깔아 주며, 네 가지로 이바지하여 모자람이 없게 할 것이며, 만일 멀리서 오거든, 10유순까지 걸어가서 맞으며, 이 경을 위하여서 소중한 물품을 받들어 드리되, 만일 없거든 몸이라도 팔아야 하리니, 왜냐 하면 이 경을 만나기 어려움이 우담바라꽃보다 더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한량없고 그지없는 나유타 겁 전에 그 때의 세계는 이름이 사바(娑婆)요, 부처님 세존의 명호는 석가모니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신데, 대중을 위하여 이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셨느니라. 나는 그 때에 선지식에게서 그 부처님께서 대중을 위하여 대반열반경을 말씀하신다는 말을 들었고, 듣고는 마음으로 환희하며 공양을 차리려 하였으나 가난하여 차릴 것이 없었다. 몸을 팔려 하였지만 박복하여 팔리지 아니하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어떤 사람을 보고 말하였다.
‘내가 몸을 팔고자 하니 그대가 사지 않겠소?’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나의 집에서 할 일이 있는데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그대가 할 수 있다면 내가 그대의 몸을 사겠소.’
나는 또 물었다.
‘무슨 일을 할 터인데 감당할 사람이 없다 하시오?’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내가 악질(惡疾)이 있어 의원에게 처방하였더니, 날마다 사람의 고기 석 냥쭝을 먹으라 하니, 그대가 만일 날마다 살 석 냥쭝씩 베어 준다면 그대에게 금전 다섯 개를 주겠소.’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뻐서 말하였다.
‘그대가 먼저 돈을 주고 7일 동안 여유를 주면 내가 볼일을 다 보고 다시 오겠소.’
그 사람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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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까지는 기다릴 수 없으나, 그대의 사정을 보아서 하루 동안만 허락하겠소.’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그 돈을 가지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가진 것을 모두 받들어 드리고 나서 정성으로 이 경을 들었다. 나는 성품이 암둔하여 경을 듣기는 하였으나, 다만 한 게송만을 받아 지니었다.

여래는 열반을 증득하시고
생사를 영원히 끊으셨으니
지극한 맘으로 듣기만 하면
끝없는 즐거움 얻게 되오리.

이런 게송을 받고는 그 병난 이의 집으로 돌아갔다.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날마다 살 석 냥쭝을 베어 주었으나 게송을 외우는 인연으로 아프지 않았으며, 하루도 빼지 않고 한 달을 채웠다. 선남자여, 이 인연으로 그의 병은 완전하게 나았고, 내 몸도 회복되어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나는 그 때에 몸이 완전하여짐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니, 한 게송의 힘도 이렇거든 하물며 구족하게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움일까보냐. 나는 이 경이 이런 이익이 있음을 보고 다시 갑절이나 마음을 분발하여 오는 세상에 부처를 이루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기를 원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이 한 게송의 인연으로 내가 지금 대중 가운데서 여러 천상 사람과 세간 사람들에게 구족하게 말하는 바이다.
선남자여, 이런 인연으로 이 대반열반경은 헤아릴 수 없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여러 부처님 여래의 깊고 비밀한 법장이니, 이런 이치로 받아 지니는 이는 나쁜 누를 여의게 되느니라. 나쁘다는 것은 사나운 코끼리, 사나운 말, 사나운 소, 사나운 개, 독사 따위가 있는 곳이나, 황무지, 절벽, 험준한 구릉, 홍수, 소용돌이, 나쁜 사람, 나쁜 나라, 나쁜 성, 나쁜 집, 나쁜 동무 등으로서, 만일 누가 될 것은 보살이 즉시 여의고, 누가 되지 아니하면 여의지 아니하며, 유루를 증장하면 여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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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장하지 아니하면 여의지 아니하며, 나쁜 법을 지으면 여의고, 선한 일을 지으면 여의지 아니하니라. 어떻게 여의는가. 칼이나 작대기를 가지지 아니하고, 바른 지혜의 방편으로 멀리 여의나니, 그러므로 바른 지혜로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선한 법을 내기 위하여는 나쁜 법을 여의나니, 보살마하살이 그 몸을 관찰하되, 병과 같고 헌 데와 같고 등창과 같고 원수와 같고 화살이 몸에 박히는 것같이 하며, 이 큰 고통 덩어리는 모든 선과 악의 근본이라 하느니라. 이 몸이 이렇게 부정하지만, 보살은 잘 돌보아 기르나니, 왜냐 하면 몸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법을 하기 위함이며, 열반을 위함이요 생사를 위함이 아니며,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위함이요,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함을 위함이 아니며, 보리도(菩提道)를 위함이요, 유루도를 위함이 아니며, 1승(乘)을 위함이요 3승을 위함이 아니며, 32상과 80종호의 미묘한 몸을 위함이요,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의 몸을 위함이 아니며, 법륜왕(法輪王)을 위함이요 전륜왕을 위함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항상 몸을 보호하나니, 왜냐 하면 몸을 보호하지 아니하면 생명이 온전하지 못하고, 생명이 온전하지 못하면 이 경전을 쓰거나, 받아 지니거나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연설하고 그 뜻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마땅히 몸을 잘 보호하여야 하며, 그런 뜻으로 보살이 온갖 나쁜 유루를 여읠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물을 건너기 위하여는 배나 떼를 잘 보호하고, 길을 떠나려는 사람은 말을 잘 보호하고, 농사하는 사람은 거름을 잘 보호하고, 독을 치료하기 위하여는 독사를 잘 보호하고, 재물을 위하여는 전다라를 보호하고, 대적을 부수기 위하여는 장사를 보호하여 기르고, 추운 사람은 불을 보호하고 문둥병 걸린 이는 독약을 구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러하여 비록 이 몸에 한량없이 부정한 것이 가득 찬 줄을 알지만 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기 위하여서 잘 보호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사나운 코끼리나 나쁜 동무 등을 볼 때에 달리 여기지 않고 평등하게 보나니, 왜냐 하면 모두 몸을 망치게 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사나운 코끼리 등에게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지만, 나쁜 동무에게는 두려운 마음을 내나니, 왜냐 하면 사나운 코끼리 등은 몸만을 망치고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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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지 못하거니와, 나쁜 동무는 두 가지를 모두 망치는 연고며, 사나운 코끼리는 한 몸만을 망치거니와, 나쁜 동무는 한량없는 선한 몸과 한량없는 선한 마음을 망치는 연고며, 사나운 코끼리 등은 부정한 몸을 망치거니와, 나쁜 동무는 깨끗한 몸과 깨끗한 마음을 망치는 연고며, 사나운 코끼리 등은 육신만을 망치거니와, 나쁜 동무는 법신까지 망치는 연고며, 사나운 코끼리에게 죽으면 3악취에는 이르지 않지만 나쁜 동무에게 죽으면 3악취에 가게 되는 연고며, 사나운 코끼리 등은 몸의 원수가 되거니와 나쁜 동무는 선한 법의 원수가 되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항상 나쁜 동무를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이러한 누(漏)를 범부는 여의지 못하므로 누가 생기거니와, 보살은 이런 것을 여의므로 누가 생기지 아니하느니라. 보살도 이렇게 누가 없는 것이어늘 하물며 여래리요. 그러므로 누가 아니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친근하는 누라 하는가. 모든 범부들은 의복과 음식과 와구(臥具)와 의약을 받을 때에 몸과 마음의 쾌락을 위하여 이런 것을 구하며, 가지각색 나쁜 짓을 지으면서도 허물 되는 줄을 알지 못하고, 3악취에 윤회하므로 누라 하거니와, 보살마하살은 이런 허물을 보았으므로 멀리 여의느니라. 만일 의복이 필요할 때에는 의복을 받거니와, 몸을 위함이 아니요 법을 위하는 것이며, 교만을 기르지 아니하고 마음을 항상 낮게 가지며, 찬란하게 꾸미지 아니하고 다만 부끄러움을 위함이며, 차고 더움과 심한 비바람과 독벌레, 모기, 등에, 파리, 벼룩, 살무사 등을 막기 위하는 것이니라. 음식을 받는 것도 탐내는 마음이 없으며, 몸을 위함이 아니요 바른 법을 위함이며, 나의 살을 위함이 아니요 중생을 위함이며, 교만한 마음으로가 아니요 몸의 기운을 위함이며, 해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요 기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함이므로, 비록 훌륭한 음식을 얻더라도 탐하는 마음이 없으며, 집을 가지는 것도 그와 같아서 탐욕과 교만한 번뇌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고, 보리의 집을 삼아서 번뇌의 도둑을 막으며, 심한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집을 받는 것이며, 의약을 구하는 것은 탐하거나 교만한 마음이 없고 다만 바른 법을 위할 뿐이요, 오래 살기를 위함이 아니며, 보통의 수명을 위함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헌데가 생기면 밀가루 반죽을 붙이고 헝겊으로 싸는 것과 같나니, 농혈이 흐르게 하려고 밀가루 반죽을 부치고, 헌데가 낫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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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고 약을 바르고, 바람을 쏘이지 않으려고 방안에 앉아 있느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몸을 헌데와 같이 생각하므로 옷으로 덮고, 아홉 구멍으로 흘리느라고 음식을 구하고, 사나운 비와 바람을 막기 위하여 집을 가지며, 네 가지 독이 발생함을 막기 위하여 의약을 찾나니, 보살이 네 가지 공양을 받는 것은 보리도를 위함이요 장수하기 위함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이 네 가지 공양을 받지 아니하면 몸이 마멸하여 견고하지 못할 것이고, 몸이 견고하지 못하면 고통을 참지 못할 것이고, 고통을 참지 못하면 선한 법을 닦지 못하려니와, 만일 고통을 참으면 한량없는 선법을 닦을 수 있으리라. 내가 만일 모든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것에는 성을 내고, 즐거운 것에는 탐심을 낼 것이며, 만일 즐거움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번뇌를 내게 되리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범부들은 네 가지 공양에 유루를 내거니와, 보살마하살은 깊이 관찰하고 유루를 내지 않나니, 그래서 보살을 무루라 이름하거늘, 어찌하여 여래를 유루라 이름하겠는가. 그러므로 여래를 유루라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또 선남자여, 모든 범부는 비록 몸을 보호하더라도 마음으로는 세 가지 나쁜 감각을 내나니, 이런 인연으로 번뇌를 끊는다 하여도, 비상비비상천에 태어났다가 도로 3악도에 떨어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이 바다를 건널 때에 저 언덕에 오를 뻔하다가 물에 빠져 죽는 것같이, 범부도 그와 같아서 삼계의 업을 끝낼 뻔하다가 3도(塗)에 도로 떨어지나니, 왜냐 하면 선한 깨달음이 없는 연고니라. 무엇을 선한 깨달음이라 하는가. 6념처(念處)를 말하는 것이니라. 범부들은 선한 마음이 쇠약하고 선하지 않은 마음이 치성하나니, 선한 마음이 쇠약하므로 지혜가 엷고, 지혜가 엷으므로 모든 누가 늘거니와, 보살마하살은 지혜 눈이 청정하여 세 가지 나쁜 감각의 허물을 보며, 이 세 가지 나쁜 감각에 가지가지 걱정이 있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3승의 원수가 되게 하는 줄을 아느니라. 세 가지 나쁜 감각의 인연이 한량없는 범부 중생으로 하여금 불성을 보지 못하게 하며, 한량없는 세월에 뒤바뀐 마음을 내게 하여서, 부처님 세존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인 것은 없고 깨끗한 것만 있다 하며, 여래도 필경에 열반에 듣다고 하며, 모든 중생은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함이 없건만, 뒤바뀐 마음으로 항상하고 즐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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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며, 진실로 3승이 없건만, 뒤바뀐 마음으로 3승이 있다 하며, 실상 도리는 한결같이 진실하여 헛되지 않건만, 뒤바뀐 마음으로 한결같은 실상이 없다 하느니라. 이 세 가지 나쁜 감각은 부처님과 보살들이 항상 꾸중하는 것이며, 이 세 가지 나쁜 감각은 항상 나를 해롭게 하고 혹은 다른 이도 해롭게 하느니라.
이 세 가지 나쁜 감각이 있으면 온갖 나쁜 일이 항상 따라오는 것이며, 이 세 가지 나쁜 감각은 곧 세 가지 속박이어서 중생으로 하여금 그지없는 생사를 계속하게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항상 이렇게 세 가지 나쁜 감각을 관찰하느니라. 보살이 어떤 때에는 무슨 인연으로 탐욕의 나쁜 감각을 내게 되더라도 잠자코 받지 아니하나니, 마치 단정하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더러운 것을 받지 않는 것 같으며, 뜨거운 철환은 아무도 받을 자가 없는 것 같으며, 바라문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는 것 같으며, 배 부른 사람이 맛없는 음식을 받지 않는 것 같으며, 전륜왕이 모든 전다라들과 한 평상에 함께 앉지 않는 것 같아서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나쁜 감각을 미워하여 받지 않고 맛보지 않음도 그와 같으니라. 왜냐 하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중생들은 내가 좋은 복밭인 줄로 알거늘, 내가 어찌 이러한 나쁜 법을 받겠는가 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나쁜 감각을 받으면 중생의 좋은 복밭이 될 수 없느니라. 내가 스스로 복밭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중생들이 모습을 보고 나를 복밭이라 하나니, 내가 만일 이런 나쁜 감각을 일으키면, 이는 모든 중생을 속이는 것이니라. 내가 지난 세상에 남을 속인 탓으로 한량없는 세월을 생사에 헤매면서 3악도에 떨어졌으며, 내가 만일 나쁜 마음으로 남의 신실한 보시를 받으면 모든 천인과 5신통을 얻은 신선들이 모두 알고 꾸짖을 것이며, 내가 만일 나쁜 감각으로 남의 신실한 보시를 받으면, 시주의 과보가 감소하거나, 혹은 과보가 없는 것이며, 만일 나쁜 감각으로 시주의 보시를 받으면 시주에게 원수가 될 것이며, 모든 시주들이 항상 나에 대하여 어린아기처럼 생각하거늘, 내가 어찌 저들을 속여 원수라는 생각을 내게 하겠는가.
왜냐 하면 혹은 시주로 하여금 과보를 받지 못하게 하거나, 과보가 감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라. 내가 항상 출가한 사람이라고 자칭하지 않았는가. 출가한 사람은 나쁜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나니, 만일 나쁜 마음을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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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면 출가가 아니며, 출가한 사람은 몸과 말이 서로 응하여야 하나니 서로 응하지 아니하면 출가가 아니니라. 나는 부모·형제·처자·권속과 친구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는 터인즉, 모든 선한 감각을 닦을 시절이요, 선하지 못한 감각을 닦을 시절이 아니니, 마치 어떤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서 보배를 구하면서 진주는 가지지 아니하고 수정을 가지는 것과 같으며, 또 어떤 사람이 미묘한 음악을 버리고 거름더미에서 유희하는 듯하며, 훌륭한 아씨를 버리고 비루한 것을 생각하는 듯하며, 황금 그릇을 버리고 오지 그릇을 사용하는 듯하며, 감로수를 버리고 독약을 먹는 듯하며, 친구인 용한 의원을 버리고 원수를 따라가서 약을 구하여 치료하는 것과 같이 나도 그와 같아서 큰 스승이신 여래 세존의 감로법을 여의고, 마군이요 원수인 가지가지 나쁜 감각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려움이 우담바라와 같거늘 나는 이미 얻었으며, 여래를 만나기 어려움이 우담바라보다 더하거늘 나는 이미 만났으며, 청정한 법보를 보고 듣기 어렵거늘, 나는 이미 들었으니, 마치 눈먼 거북이 나무의 구멍을 만난 듯하며, 목숨이 잠깐도 정지하지 아니함이 산 위의 물과 같아서 오늘은 남아 있더라도 내일까지 보증하기 어렵거늘 어찌하여 마음을 놓고 나쁜 법에 머물겠는가. 젊은 시절이 머물지 아니함이 달아나는 말과 같거늘, 무엇을 믿고 교만을 내겠는가. 마치 나쁜 귀신이 사람의 허물을 엿보는 것처럼, 4대라는 악귀도 그와 같아서 항상 따라다니면서 나의 허물을 엿보거늘, 어찌하여 나쁜 감각이 일어나게 하겠는가. 마치 낡은 집이 금시에 무너질 것처럼 나의 수명도 그와 같거늘, 어찌하여 나쁜 감각을 일으키겠는가.
나는 이름이 사문이니, 사문은 선한 감각을 배우는 것이거늘, 내가 이제 선하지 못한 감각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사문이라 하겠는가. 나는 이름이 출가한 사람이니 출가한 이는 선한 도를 닦는 것이거늘, 내가 이제 나쁜 감각을 행한다면 어떻게 출가한 이라 하겠는가. 나는 이름이 진정한 바라문이니, 바라문은 청정한 행을 닦는 것이거늘, 내가 이제 부정한 나쁜 감각을 행한다면 어떻게 바라문이라 하겠는가. 나는 지금 찰리 대성이니, 찰리는 원수와 대적을 물리치는 것이거늘, 내가 이제 나쁜 대적을 물리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찰리라 하겠는가. 나는 이름이 비구이니, 비구는 번뇌를 깨뜨리는 것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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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내가 이제 나쁜 감각인 번뇌를 깨뜨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비구라 하겠는가.
세상에 여섯 가지가 만나기 어렵거늘 내가 이미 만났으니, 어찌하여 나쁜 감각을 마음에 두겠는가. 무엇을 여섯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부처님 세상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고, 둘째는 바른 법을 듣기 어려운 것이고, 셋째는 두려운 마음을 일으키기 어려운 것이고, 넷째는 큰 나라에 태어나기 어려운 것이고, 다섯째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려운 것이고, 여섯째는 모든 기관이 구족하기 어려운 것이니라. 여섯 가지는 얻기 어려운 것인데 내가 이미 얻었으니, 그러므로 나쁜 감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느니라.
보살이 이렇게 대반열반경을 수행할 때에는 부지런히 나쁜 마음을 살피거니와, 모든 범부들은 이러한 나쁜 마음의 허물을 보지 못하고, 세 가지 나쁜 감각을 받는 것을 누를 받는다 이름하거니와, 보살은 이미 보았으므로 받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았으며, 내버려 두고 수호하지 아니하며 8성도(聖道)를 의지하여 밀어 보내고, 끊어 없애므로 보살들은 누를 받는 일이 없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여래에게 누가 있다 하겠는가. 이런 이치로 여래 세존은 유루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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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1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③

“또 선남자여, 범부들은 몸과 마음에 괴롬을 만나면 가지가지 나쁜 짓을 일으키고, 만일 몸에 병이 나거나 마음에 병이 생기면, 몸과 입과 뜻으로 여러 가지 나쁜 짓을 짓게 하고, 나쁜 짓을 지었으므로 세 갈래로 헤매면서 모든 고통을 갖추 받느니라. 왜냐 하면 범부들은 생각하는 지혜가 없는 까닭이니, 그러하여 가지가지의 누를 내는 것을 염루(念漏)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항상 생각하기를, 내가 지나간 수없는 겁 동안에 이 몸과 마음을 위하여 가지가지 나쁜 짓을 지었고, 그러한 인연으로 살고 죽는 데 헤매면서 3악도에서 모든 고통을 받았으며, 그리하여 3승의 바른 길을 멀어지게 하였다 하나니, 보살이 이런 나쁜 인연으로 자기의 몸과 마음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어, 모든 악을 버리고 선한 길로 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임금이 네 마리의 독사를 한 상자에 담아 두고, 다른 이를 시켜 먹을 것을 주어 기르게 하며, 누울 적에나 일어날 적에 그 몸을 쓰다듬게 하되, 만일 어떤 독사라도 성을 내게 하면 법에 의지하여 사형하리라 하였다. 그 사람이 임금의 명령을 듣고는 무서운 생각을 내어 상자를 버리고 도망하였다. 임금은 다시 전다라 다섯 사람을 보내면서 칼을 빼어 들고 따라가라고 하였더니, 그 사람은 전다라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는 더욱 빨리 달아났다. 그 때에 다섯 전다라는 나쁜 방편으로 들었던 칼을 숨기고 가만히 다른 사람을 보내어 거짓 친근한 척하면서 도로 가자고 달래었으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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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어떤 마을로 들어가서 숨으려 하였다. 그 마을에 들어가서 여러 집들을 살펴보았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여러 독이나 뒤주들은 아무것도 담긴 것이 없었다. 사람들도 만날 수 없고 물건도 얻을 수 없어서 그냥 땅바닥에 앉았더니, 공중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가엾다. 그대여, 이 마을은 비어서 사는 사람이 없고, 오늘밤에는 여섯 도둑이 올 터인데, 그대가 만일 그들과 마주치면 생명을 보전할 수 없으리니 그대는 어떻게 면하려는가.’
그 때에 그 사람은 무서운 마음이 점점 더하여 그 마을에서 떠나가다가, 큰 강을 만났는데, 물살은 급하고 배도 떼도 없었다. 황망한 중에 여러 가지 풀과 나무를 꺾어다가 떼를 만들면서 다시 생각하였다.
‘내가 만일 여기 있다가는 독사와 다섯 전다라와 거짓 친한 척하는 사람과 여섯 도둑에게 해를 당할 것이요, 만일 이 강을 건너려면 떼도 믿기 어려우니, 물에 빠져 죽을 것이다. 차라리 물에 빠져 죽을지언정, 저 독사나 도둑의 피해를 입지 아니하리라.’
그리고는 나무로 만든 떼를 물 위에 밀어 넣고 그 위에 몸을 의지하여 손과 발을 허위적거리면서 강을 건너가 저 언덕에 이르니, 아무 걱정이 없고 마음이 태연하여 공포가 없어졌다.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듣고 받아 지니면, 몸은 상자와 같고 지대·수대·화대·풍대는 네 마리의 독사와 같이 보나니, 보기도 독하고 건드리는 것도 독하고 기운도 독하고 물리는 것도 독한 것이다. 모든 중생이 이 네 가지 독을 만나므로 목숨을 잃게 되나니, 중생들의 4대도 그와 같아서, 보는 것도 나쁘고 건드림도 나쁘고 기운도 나쁘고 물리는 것도 나쁘며, 이런 인연으로 여러 선한 일을 여의게 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네 가지 독사에 네 가지 족성(族姓)이 있음을 관하나니, 찰리(刹利)·바라문(婆羅門)·비사(毗舍)·수타(首陀)니라. 4대라는 뱀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성질이 있으니, 굳은[堅] 성질, 젖는[濕] 성질, 더운[熱] 성질, 동하는[動] 성질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4대가 네 마리의 독사와 성질이 같다고 보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4대를 네 마리의 독사와 같이 관하나니,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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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관하는가. 네 마리의 독사는 항상 사람의 짬을 엿보아 어느 때에 볼까, 어느 때에 건드릴까, 어느 때에 독기를 뿜을까, 어느 때에 물까 하나니, 4대의 독사도 그와 같아서 항상 중생의 짬을 엿보아 그 기회를 기다리느니라. 설사 네 마리 독사에게 물려 죽는대도 3악도에는 떨어지지 않지만, 만일 4대의 살해를 받으면 반드시 3악도에 떨어질 것이 의심없느니라. 저 네 마리의 독사를 아무리 보살펴서 기른다 하더라도 항상 사람을 물려 하나니, 4대도 역시 그러하여 아무리 이바지하여도 사람을 이끌어 나쁜 업을 짓게 하느니라. 네 마리 독사 중 한 마리만 성내어도 사람을 죽이나니, 4대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1대만 발작하여도 사람을 해치느니라.
이 네 마리 독사가 비록 한곳에 있어도 마음이 각각 다르듯이, 4대의 독사도 그와 같아서, 한곳에 있더라도 그 성품이 제각기 다르니라. 네 마리 독사를 아무리 공경하더라도 친근하기 어렵듯이, 4대의 독사도 그러하여, 비록 공경하더라도 친근하기 어려우니라. 저 네 마리 독사가 사람을 해칠 때에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주문과 약으로 치료할 수 있거니와, 4대의 독사가 사람을 해칠 때에는 사문이나 바라문의 주문이나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느니라. 마치 제물을 조심하는 사람이 네 마리 독사의 냄새가 나쁜 것을 맡고는 멀리 여의는 것과 같나니, 부처님과 보살들도 그와 같아서 4대의 냄새를 맡고는 멀리 여의느니라. 이 때에 보살은 생각하기를, 4대의 독사는 매우 무서운 것이라 하고, 버려 두고 달아나서 8성도(聖道)를 닦았느니라.
다섯 전다라란 것은 곧 5음이니, 어찌하여 보살이 5음 보기를 전다라와 같이 하는가. 전다라는 항상 사람으로 하여금 은혜와 사랑은 이별하고 원수는 모이게 하나니, 5음도 그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나쁜 법은 탐하게 하고 선한 법은 여의게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전다라는 가지각색 무기로 스스로 무장하나니, 칼이나 방패나 활이나 살이나 갑옷이나 창 따위로 사람을 해치느니라. 5음도 그와 같아서 여러 가지 번뇌로 굳게 무장[裝束]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해쳐 생사에 떨어지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전다라는 죄 지은 사람들을 해치나니, 5음도 그러하여 번뇌의 허물 있는 사람들을 해치느니라. 그러므로 보살들이 5음을 보기를 전다라와 같이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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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살이 5음을 관찰하기를 전다라와 같이 한다는 것은, 전다라는 자비한 마음이 없어서 원수나 친한 이를 모두 해치나니, 5음도 그와 같아서 자비한 마음이 없이 선과 악을 함께 해치느니라. 전다라가 모든 사람을 시끄럽게 하듯이, 5음도 그러하여 모든 번뇌로써 모든 생사하는 중생들을 시끄럽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보살들이 5음을 관찰하기를 전다라와 같이 하느니라.
또 보살이 5음을 관찰하기를 전다라와 같이 한다는 것은, 전다라는 항상 해치려는 마음을 품나니, 5음도 그러하여 항상 모든 번뇌로 해치려는 마음을 품느니라. 마치 사람이 발이나 칼이나 작대기나 시종이 없으면, 전다라에게 살해될 줄을 알아야 하듯이, 중생도 그러하여 발도 없고 칼도 없고 시종도 없으면 5음의 해를 입게 되느니라. 발은 계행이요 칼은 지혜요 시종은 선지식이다. 이 세 가지가 없으면 5음의 해를 입게 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5음을 관찰하기를 전다라와 같이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5음을 관찰하기를 전다라보다도 지나치게 하나니, 왜냐 하면 중생이 만일 다섯 전다라의 살해함이 되더라도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지만, 5음의 살해를 입으면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이런 뜻으로 보살이 5음을 관찰하기를 전다라보다 지나치게 한다는 것이니라. 이렇게 관찰하고는 서원을 세우되, 내가 종신토록 전다라를 가까이할지언정, 잠깐 동안만이라도 5음을 친근하지 못할 것이니, 전다라는 다만 욕계의 어리석은 사람만을 해치거니와, 5음은 삼계의 범부 중생을 모두 해치는 것이며, 전다라는 다만 죄 있는 사람만을 살해하거니와, 이 5음의 도둑은 중생들의 죄가 있고 죄가 없건 간에 모두 해치는 것이며, 전다라는 늙은 할머니나 어린아이들은 해치지 않지만 5음의 도둑은 중생의 늙은이, 어린이, 여자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해롭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5음을 보기를 전다라보다 지나치게 하며, 발원하기를 차라리 종신토록 전다라를 가까이할지언정, 잠시라도 5음을 친근하지 않겠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전다라는 다른 사람만 해치고 자기는 해치지 않지만 5음의 도둑은 자기도 해치고 다른 이도 해치고 전다라도 해치느니라. 전다라는 좋은 말을 하거나 재물이나 보배를 주고 벗어날 수 있지만, 5음은 그렇지 아니하여 좋은 말로 달래거나 재물이나 보배를 주고 벗어날 수 없느니라. 전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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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네 시절을 두고 늘 살해하는 것 아니지만, 5음은 그렇지 아니하여 어느 때나 항상 중생을 해치느니라. 전다라는 한 곳에만 있으므로 도피할 수도 있지만, 5음은 그렇지 아니하여 간 데마다 있으므로 도피할 수가 없느니라. 전다라는 사람을 해치더라도 해친 뒤에는 따라오지 않거니와, 5음은 그렇지 아니하여 중생을 죽이고도 따라다니면서 떠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차라리 종신토록 전다라는 가까이할지언정, 잠시라도 5음을 친근하지는 않으려 하느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좋은 방편으로 5음을 벗어날 수 있나니, 좋은 방편은 8성도와 6바라밀과 4무량심이니라. 이런 방편으로 해탈하면 몸과 마음이 5음의 해침을 받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몸은 금강과 같고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몸과 마음을 파괴하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이런 뜻으로 보살은 5음이 모든 선하지 못한 법을 성취함을 보고 두려운 생각을 내어 8성도를 닦나니, 마치 저 사람이 네 마리 독사와 다섯 전다라를 두려워하여 강을 건너가고 머물러 있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거짓 친근한 척하는 것은 탐애(貪愛)라 하느니라. 보살은 탐애의 번뇌를 원수같이 생각하나니, 만일 실정을 알면 어찌할 수 없거니와 만일 알지 못하면 반드시 해를 받느니라. 탐애도 그러하여 만일 그 성품을 알면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에서 헤매게 하지 못하거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여섯 갈래로 헤매면서 모든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탐애의 병을 버리기 어려움이, 마치 친한 척하는 원수를 멀리 떠나기 어려움과 같기 때문이니라. 친한 척하는 원수는 항상 짬을 엿보아서, 사랑하는 것은 이별하게 하고, 미워하는 것은 모이게 하나니, 탐애도 그와 같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선한 법은 멀리 여의게 하고 모든 선하지 못한 법을 가까이하게 하느니라. 이러한 이치로 보살마하살이 탐애를 보기를 원수가 거짓 친한 척함과 같이 하나니,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는 연고니라. 마치 범부가 생사의 허물을 보는 것 같아서, 비록 지혜가 있으나 어리석음이 가리운 탓으로 다시는 보지 못하나니, 성문과 연각도 그와 같아서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느니라. 그 까닭을 말하면 탐애하는 마음을 인한 탓이니, 왜냐 하면 생사의 허물을 보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빨리 이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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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그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은 탐애의 번뇌를 친한 척하는 원수와 같이 보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원수가 친한 척하는 것이라 하는가. 원수는 참이 아닌 것을 참인 듯이 나타내고 친근하지 못한 것을 친근한 듯이 나타내고 실로는 선하지 아니한 것을 선한 듯이 나타내며,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 듯이 나타내나니, 왜냐 하면 항상 사람의 짬을 엿보아 해치려는 까닭이니라. 탐애도 그와 같아서 항상 중생을 위하여 참이 아닌 것을 참인 듯 꾸미고, 친근하지 아니한 것을 친근한 듯이 꾸미며, 선하지 아니한 것을 선한 듯이 꾸미고,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 듯이 꾸미어서, 모든 중생들을 속여 생사에 바퀴돌 듯하게 하나니, 이러한 뜻으로 보살이 탐애를 보기를 원수가 친한 척하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
원수가 친한 척하는 것은, 몸과 입만 보고 마음을 보지 못하므로 능히 속이나니, 탐애도 그러하여 다만 허황할 뿐이요, 실상은 얻을 수 없으므로 모든 중생들을 의혹케 하느니라. 원수가 친한 척하는 것은 처음도 있고 나중도 있어 멀리 떠나 보낼 수도 있거니와, 탐애는 그렇지 아니하여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으므로 멀리 여의기 어려우니라. 원수가 친한 척함은 멀면 깨닫기 어렵고 가까우면 알기 쉽거니와, 탐애는 그렇지 아니하여 가까워도 알기 어렵거든, 하물며 멀면 알까보냐. 이런 이치로 보살이 탐애를 볼 때에 친한 척하는 원수보다는 지나치게 하느니라. 모든 중생들은 탐애하는 번뇌의 탓으로 대열반을 멀리하고 생사를 가까이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멀리하고,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고 부정함을 가까이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여러 가지 경전에서 세 가지 때[三垢]라고 말하였으니, 현재의 일에는 무명 때문에 허물을 보지 못하여 여의지 못하거니와, 탐애의 원수가 친한 척하는 것으로는 마침내 지혜 있는 사람은 해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탐애를 보고 두려움을 내어 8성도를 닦나니, 마치 저 사람이 네 마리 독사와 다섯 전다라와 친한 척하는 이를 무서워하여 달아나고 돌아오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빈 마을이라 함은, 곧 안으로 여섯 군데 받아들이는 것[內六入]이니 보살마하살이 이 6입(入)이 비어서 아무것도 없음을 보되, 빈 마을과 같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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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은, 마치 저 무서워하는 사람이 마을에 들어갔지만, 한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독이나 뒤주 따위를 살펴보았으나 한 물건도 찾지 못함과 같으니라. 보살도 그와 같아서, 6입을 관찰하였으나 비어서 아무것도 없고, 중생이나 한 물건도 실다운 것이 없으므로, 보살이 안의 6입이 비어서 아무것도 없음을 보되, 빈 마을과 같이 하느니라. 선남자여, 저 빈 마을을 도둑들이 멀리서 보고는 비었다는 생각을 내지 않나니, 범부들도 그러하여, 6입의 마을에 대하여 비었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비었다고 생각하지 못하므로 생사에서 바퀴돌 듯하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느니라.
선남자여, 도둑들이 마을에 들어가고는 빈 줄을 알 듯이, 보살도 그러하여 이 6입을 보고 비었다는 생각을 내며, 비었다고 생각하므로 생사에서 바퀴돌 듯하는 고통을 받지 아니하며, 보살마하살은 이 여섯 군데에 뒤바뀌지 아니하나니, 뒤바뀌지 아니하므로 다시 생사에서 바퀴돌 듯하지 아니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마치 도둑들이 빈 마을에 들어가서는 편안한 것같이 번뇌의 도둑도 그러하여 이 6입에 들어가면 안락하게 되는 것이며, 도둑이 빈 마을에 머무를 적에 두려운 마음이 없듯이, 번뇌의 도둑도 그러하여 6입에 머물면 두려움이 없느니라. 저 빈 마을에는 사자나 호랑이, 이리 따위의 영악한 짐승들이 사는 것처럼, 안의 6입도 그와 같아서, 온갖 나쁜 번뇌 짐승들이 머무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6입을 보되, 비어서 아무것도 없고, 순전히 선하지 못한 것들만이 머무는 데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안의 6입이 비어서 아무것도 없음을 볼 때에, 빈 마을처럼 생각함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이 허황하여 참되지 못한 연고며, 아무것도 없는 데를 있다고 생각하는 연고며, 즐거울 것이 없음을 즐겁다고 생각하는 연고며, 사람이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연고니라. 안의 6입도 역시 그러하여, 아무것도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며, 즐거울 것이 없는 것을 즐겁다고 생각하며, 사람이 없는 것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거니와 지혜 있는 사람만이 분명히 알고 실지를 얻게 되느니라.
또 선남자여, 빈 마을은 어떤 때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6입은 그렇지 아니하여 한결같이 사람이 없나니, 왜냐 하면 성질이 항상 공한 까닭이니라. 지혜 있는 이가 알 것이요, 눈으로 볼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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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므로, 보살들은 안의 6입이 피해가 많음을 보고, 8성도를 닦아서 잠시도 쉬지 아니하나니, 마치 저 사람이 네 마리 독사와 다섯 전다라와 친한 척하는 사람과 여섯 도둑이 무서워서 바른 길로 달아나는 것과 같으니라.
여섯 도둑이란 것은 밖에 있는 여섯 티끌[外六塵]을 말함이니, 보살마하살이 이 6진(塵)을 여섯 도둑처럼 보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온갖 선한 법을 빼앗은 연고니라. 여섯 도둑이 모든 사람의 재물을 빼앗듯이, 6진의 도둑도 그와 같아서, 온갖 중생의 선한 재물을 빼앗느니라. 마치 여섯 도둑이 사람의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있는 것은 좋건 나쁘건 모두 빼앗아 큰 부자라도 금시에 가난뱅이가 되게 하나니, 이 6진의 도둑도 그와 같아서, 사람의 근(根)에 들어가면 모든 선한 법을 빼앗으며, 선한 법이 다 없어지면, 가난하고 외로운 일천제(一闡提)가 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6진을 보기를 여섯 도둑과 같이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여섯 도둑이 남의 재물을 빼앗으려 할 때에는 안에 있는 사람과 결탁하여야 하나니, 만일 안에 있는 사람이 없으면 문득 중도에 물러가느니라. 6진의 도둑도 그와 같아서, 선한 법을 빼앗으려면 안에 있는 중생의 지견인 항상하고[常] 즐겁고[樂] 나이고[我] 깨끗하여[淨] 공하지 않다는 모양을 연결하여야 하나니, 안에 만일 이런 모양이 없으면 6진의 나쁜 도둑이 모든 선한 법을 빼앗지 못하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안에 이런 모양이 없거니와, 범부에게는 있으므로 6진이 항상 와서 선한 법을 침노하는 것이며, 잘 수호하지 못하고 빼앗음을 받게 되느니라. 수호하는 것은 지혜라 하나니, 지혜 있는 사람은 잘 방비하고 수호하여서 빼앗음을 받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6진을 보기를 여섯 도둑과 같이 하여 차별이 없느니라.
또 선남자여, 여섯 도둑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시끄럽게 하듯이, 6진도 그와 같아서, 중생의 몸과 마음을 항상 괴롭게 하느니라. 여섯 도둑은 사람의 현재 있는 재물만 빼앗거니와, 6진의 도둑은 중생들의 삼세의 선한 재물을 빼앗느니라. 여섯 도둑은 밤에는 즐거워하나니, 6진의 도둑도 그러하여 무명의 어두운 밤에는 즐거워하느니라. 여섯 도둑은 임금의 법으로만 막을 수 있듯이, 6진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이나 보살들만이 막을 수 있느니라. 여섯 도둑이 재물을 빼앗을 때에는 단정한 가문이나 총명한 철인이나 많이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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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나 부유하고 빈천한 이를 가리지 아니하듯이, 6진의 도둑도 그와 같아서, 선한 법을 빼앗을 때에는 단정하거나 내지 빈천한 이를 가리지 않느니라. 여섯 도둑은 비록 왕의 법률로 그들의 손과 발을 끊을 수 있으나, 그들의 마음을 쉬게 할 수는 없나니, 6진의 도둑도 그와 같아서, 수다원이나 사다함이나 아나함들이 그 손과 발을 끊을 수는 있으나, 선한 법을 빼앗지 못하게는 할 수 없느니라. 용맹한 사람은 여섯 도둑을 굴복시킬 수 있듯이, 부처님과 보살들은 6진의 도둑을 꺾어 굴복시키느니라.
마치 사람이 문벌이 흥왕하고 종족이 많으면 여섯 도둑의 빼앗음을 받지 아니할 수 있듯이, 중생들도 그러하여 선지식이 있으면 6진의 도둑의 빼앗음을 받지 않느니라. 여섯 도둑은 사람의 물건을 보고서야 훔치지만, 6진은 그렇지 아니하여 보거나 알거나 듣거나 맡거나 부딪치고 지각하는 것을 모두 빼앗느니라. 여섯 도둑은 욕계 사람의 재물만을 빼앗고, 색계나 무색계의 것은 빼앗지 못하거니와, 6진의 도둑은 그렇지 아니하여, 삼계의 온갖 선한 보배를 모두 빼앗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6진을 관찰할 때에 여섯 도둑보다 지나치게 하며, 그렇게 관찰하고는 8성도를 닦아서 바로 가고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마치 저 사람이 네 마리 독사와 다섯 전다라와 친한 척하는 사람과 여섯 도둑을 무서워하여 빈 마을을 버리고 달아나는 것과 같으니라.
길에서 강을 만났다 함은 번뇌를 말함이니, 어찌하여 보살이 번뇌 보기를 큰 강과 같이 하느냐. 물살이 급한 강물이 향상(香象)을 떠내려 보내듯이, 번뇌의 강물도 그러하여 연각도 떠내려 보내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번뇌 보기를 물살 급한 강물과 같이 하느니라. 깊어서 바닥을 알 수 없으므로 강이라 하고, 넓어서 가[邊]를 알 수 없으므로 크다 하며, 그 속에 나쁜 고기들이 많이 있나니, 번뇌의 강도 그러하여 부처님이나 보살들만이 바닥을 얻을 수 있으므로 깊다 하고, 부처님이나 보살들만이 가를 얻을 수 있으므로 크다 하고, 모든 어리석은 중생을 해치므로 나쁜 고기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보살이 번뇌 보기를 큰 강물처럼 하느니라. 마치 강물이 온갖 초목을 자라게 하듯이, 번뇌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이 25유(有)를 자라게 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번뇌 보기를 큰 강과 같이 하느니라.
마치 사람이 강물에 빠지면 부끄러움이 없듯이, 중생도 그러하여 번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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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빠지면 부끄러움이 없느니라. 강에 빠지는 사람은 바닥까지 이르지 못하고 목숨을 마치듯이, 번뇌의 강에 빠진 이도 그와 같아서, 밑바닥까지 이르지도 못하고 25유에 두루 돌아다니며 헤매느니라. 밑바닥이라 함은 공한 모양을 말함이니, 만일 공한 모양을 닦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25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모든 중생들도 공하여 모양이 없는 것을 잘 닦지 못하므로, 번뇌의 강에 항상 빠져 있느니라. 강물은 몸만 빠지는 것이요, 모든 선한 법은 빠뜨리지 못하거니와 번뇌의 강은 그렇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의 모든 선한 법을 파괴하느니라. 빨리 흐르는 강물은 욕계의 사람만을 표류케 하지만, 번뇌의 강물은 삼계의 세간 사람, 천상 사람들까지 표류케 하느니라. 세간의 강에서는 손과 발을 움직이면 저 언덕에 이를 수 있지만 번뇌의 강에서는 보살만이 6바라밀을 말미암아서야 건너가는 것이니라.
저 강물을 건나가기 어렵듯이, 번뇌의 강물도 그러하여 건너가기 어려우니, 어찌하여 건너기 어렵다 하는가. 10주(住)에 오른 대보살들도 끝까지 건너가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필경까지 건너가는 것이므로 어렵다는 것이니라. 사람이 강에 빠져서는 조그만 선한 법도 닦을 수 없나니 중생도 그러하여 번뇌의 강에 빠져서는 선한 법을 닦을 수 없느니라. 마치 사람이 강에 빠져서 물에 떠내려가는 것은, 기운 센 사람이면 건져낼 수도 있지만, 번뇌의 강에 빠져서 일천제가 된 사람은 성문·연각이나 부처님까지도 건져내지 못하느니라. 이 세상의 강물은 겁이 끝날 때에 일곱 태양이 한꺼번에 뜨면 마르기도 하지만 번뇌의 강물은 그렇지 아니하여, 성문이나 연각이 7각지(覺支)를 닦더라도 말리울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번뇌 보기를 물살 급한 강과 같이 하느니라.
저 사람이 네 마리 독사와 다섯 전다라와 친한 척하는 한 사람과 여섯 도둑이 무서워서 빈 마을을 버리고 빨리 가다가, 강가에 이르러서는 초목을 모아 떼를 만들 듯이, 보살도 그러하여 4대의 독사와 5음의 전다라와 친한 척하는 탐애와 6입의 빈 마을과 6진의 도둑이 무서워서 번뇌 강에 이르러서는, 계·정·혜·해탈·해탈지견과 6바라밀과 37도품(道品)을 닦아서 떼를 만들고, 이 떼를 의지하여 번뇌의 강을 건너서,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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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로서 대반열반을 닦는 이는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이러한 몸과 마음의 고통을 참지 못하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의 강을 건너게 하지 못하리라’ 하며, 이렇게 생각하였으므로 비록 몸과 마음의 고통이 있더라도 잠자코 참으며, 참고 견디므로 누(漏)를 내지 아니하느니라. 보살도 이렇게 모든 누가 없거든, 하물며 부처님께서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부처님들은 누가 있다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무루가 아니라 하는가. 여래는 항상 유루 중에 있는 연고며, 유루는 곧 25유니 그러므로 성문이나 범부들은 부처님이 유루라고 말하거니와, 부처님 여래는 참으로 무루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인연으로 부처님 여래는 결정한 모양[定相]이 없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4중금(重禁)을 범하거나, 방등경을 비방하거나, 일천제들은 모두 결정된 것이 아니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아뢰었다.
“그러하나이다. 거룩하신 말씀과 같사와 온갖 법은 모두 결정되지 않았으며,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여래께서도 필경의 열반에 들지 아니하심을 알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을 닦아서 듣지 못하던 것을 듣는 가운데는 열반이 있고 대열반이 있다 하셨사온데, 어떤 것을 열반이라 하오며, 어떤 것을 대열반이라 하나이까?”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을 찬탄하시었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어떤 보살이든지 생각하는 총지[念摠持]를 얻어서야 그대가 묻는 바와 같이 물으리라.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바다가 있고 큰 바다가 있으며, 강과 큰 강이 있으며, 산과 큰 산과, 땅과 사람과 대인과 하늘과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과 도(道)와 큰 도가 있다 하나니, 열반도 그와 같아서 열반도 있고 대열반도 있느니라.
어떤 것을 열반이라 하는가. 선남자여, 마치 굶주린 사람이 밥을 조금만 먹어도 안락하다 하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며, 병이 나으면 안락하다 하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며, 어떤 사람이 공포를 느끼다가 의지할 데를 얻으면 안락을 얻었다 하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며, 가난하던 사람이 7보를 얻으면 안락을 얻었다 하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며, 사람이 뼈를 보고 탐욕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락을 얻나니 이런 안락도 열반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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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니와, 이러한 열반들은 대열반이라고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기갈하던 까닭이며 병 있던 까닭이며 공포하던 까닭이며 가난하던 까닭이며 탐욕을 내던 까닭이니, 열반이라 할지언정 대열반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범부나 성문들이 혹 세속을 인하거나 혹 성인의 도를 인하여 욕계의 속박을 끊으면 안락함을 얻나니, 이런 안락은 열반이라 이름할지언정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초선의 속박을 끊거나 내지 비상비비상처의 속박을 끊으면 안락함을 얻나니, 이런 안락은 열반이라 이름할지언정 대열반이라 이름하지는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도로 번뇌를 내거나, 습기(習氣)가 있는 까닭이니라. 어떤 것을 번뇌의 습기라 하는가. 성문이나 연각은 번뇌의 습기가 있나니, 이른바 나의 몸이라, 나의 옷이라, 내가 간다, 내가 온다, 내가 말한다, 내가 듣는다, 여래는 열반에 들었다, 열반의 성품은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다만 항상하고 깨끗함만 있다고 하는 등 이것을 번뇌의 습기라 이름하느니라.
부처와 교법과 스님들은 차별한 모양이 있고, 여래는 필경의 열반에 드시며, 성문이나 연각이나 부처님의 얻는 열반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하나니, 이런 뜻으로 2승의 얻는 열반은 대열반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는 까닭이니,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야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곳에서 여러 강물을 받아들이는 데가 있으면 큰 바다라고 이름하듯이, 성문이나 연각이나 보살이나 부처님 여래의 들어가시는 데를 대열반이라 이름하나니, 4선정·3삼매·8배사(背捨)·8승처(勝處)·10일체처(一切處) 따위의 한량없는 선한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강이 있는데 첫째가는 향상(香象)으로도 바닥에 닿지 못한다면 큰 강이라 이름하듯이 성문·연각이나 10주 보살까지가 불성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열반이라 할지언정 대열반은 아닌데, 만일 불성을 분명하게 본다면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대열반은 큰 코끼리왕이라야 바닥을 밟을 수 있나니, 큰 코끼리왕은 부처님을 말함이니라. 선남자여, 마하나가(摩訶那伽)나 발건타(鉢犍陁) 대역사들이 오랜 세월을 걸어도 올라갈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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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큰 산이라 하듯이, 성문·연각이나 보살인 마하나가나 대역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라야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소왕(小王)이 있는 데는 작은 성이라 하고, 전륜왕이 있는 데는 큰 성이라 하듯이, 성문이나 연각이 8만·6만·4만·2만·1만 겁 동안 머무는 데는 열반이라 하고, 위없는 법주(法主)인 성왕(聖王)의 머무는 데라야 대반열반이라 이름할 수 있나니, 그러므로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네 가지 군대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큰 중생이라 이름하리니, 만일 어떤 중생이 3악도의 번뇌와 나쁜 업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면 이 사람은 대열반을 얻을 것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부모를 공양하며 사문이나 바라문을 공경하고 선한 법을 닦으며 말이 진실하여 속이지 아니하며, 나쁜 것을 참고 가난한 이를 도와주면 대장부라 이름하리니, 보살도 그러하여 대자비가 있어 모든 사람을 가엾이 여기고 여러 중생을 부모같이 여기며, 생사하는 바다에서 중생들을 건지고, 중생들에게 한결같은 실상의 도를 보여 준다면 그런 이는 대반열반이라 이름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크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음[不可思議]을 말함이니, 만일 헤아릴 수 없어서 중생들이 믿을 수 없으면 대반열반이라 이름하며, 부처님이나 보살들만이 보는 것이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대(大)라 하는가. 한량없는 인연으로써 얻을 수 있으므로 대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세상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인연으로 얻은 것을 대라 하나니, 열반도 그러하여 여러 가지 인연으로 얻는 것이므로 대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다시 대열반이라 이름하는가. 큰 나[大我]가 있으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열반에는 내가 없지만 크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크게 자재하다 하는가. 여덟 가지 자재가 있으므로 나라 하나니,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한 몸으로 여러 몸을 나타내는데, 몸의 크기가 티끌과 같아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가득하며, 여래의 몸은 티끌이 아니지만, 자재하므로 티끌 같은 몸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둘째는 한 티끌 같은 몸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나니, 여래의 몸은 실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것 아니지만 걸림이 없는 까닭이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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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함으로써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는 것이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셋째는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몸으로 훨훨 날아서 20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세계를 지나가도 장애가 없느니라. 여래의 몸은 가볍고 무거움이 없건만 자재한 연고로 가볍기도 무겁기도 한 것이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넷째는 자재한 연고로 자재하게 되나니 어떻게 자재한가. 여래는 한 마음이 편안히 머물러 동하지 않지만 변화하여 나타내는 한량없는 종류들로 하여금 제각기 마음이 있게 하며, 여래는 어떤 때에 한 가지 일을 짓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각각 마련하게 하며, 여래의 몸은 언제나 한 세계에 있지만, 다른 세계로 하여금 모두 보게 하나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다섯째는 근(根)이 자재한 까닭이니, 어떤 것을 근이 자재하다 하는가. 여래는 하나의 근으로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닿임을 지각하고 법진(法塵)을 알기도 하거니와, 여래의 여섯 가지 근은 보지도 않고, 듣지도 맡지도 맛보지도 닿임을 지각하지도 법진을 알지 아니하기도 하느니라. 이렇게 자재하는 까닭으로 근으로 하여금 자재케 하나니, 이렇게 자재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여섯째는 자재한 까닭으로 온갖 법을 얻거니와, 여래의 마음에는 얻었다는 생각이 없나니, 왜냐 하면 얻은 바가 없는 연고니라. 만일 있는 것이라면 얻었다 이름하려니와 실제로 있는 바와 없는데, 무엇을 얻었다 하겠는가. 만일 여래께서 얻었다는 생각이 있다면, 부처님들이 열반을 얻는다 할 수가 없지만, 얻음이 없으므로 열반을 얻었다 하느니라. 자재함으로써 온갖 법을 얻고, 모든 법을 얻었으므로 큰 나라 이름하느니라. 일곱째는 말씀이 자재하므로, 여래가 한 게송의 뜻을 연설할 때에 한량없는 겁을 지내어도 그 뜻을 다하지 못하나니, 계행이거나 선정이거나 보시거나 지혜 따위니라. 그러나 여래는 조금도 내가 연설하고 저가 듣는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한 게송이라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지만, 세상 사람들이 네 글귀를 한 게송이라 하므로, 세상을 따라서 게송이라 말하는 것이며, 모든 법의 성품을 말할 곳이 없지만, 자재함으로써 여래가 연설하는 것이며, 연설하므로 큰 나라 하느니라. 여덟째는 여래가 모든 곳에 두루함이 마치 허공과 같나니, 허공의 성품을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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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는 것처럼 여래도 볼 수 없건만, 자재함으로써 모든 이들로 하여금 보게 하는 것이니, 이렇게 자재한 것을 큰 나라 하는 것이요, 이렇게 큰 나를 대열반이라 이름하며, 이런 이치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마치 보배 광에 신기한 보배가 많으며, 온갖 것이 구족한 것을 큰 광이라 하나니, 부처님의 깊은 법장도 그와 같아서 여러 가지 기특한 것을 구족하여 모자람이 없으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끝이 없는 물건을 크다 하나니, 열반이 끝이 없으므로 대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크게 즐거움이 있으므로 대열반이라 하나니, 열반은 즐거움이 없건만 네 가지가 즐거우므로 대열반이라 하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낙이 끊어진 까닭이니, 낙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괴롭다 이름하며, 괴롬이 있으면 큰 즐거움이라 이름하지 못하거니와, 즐거움이 없어졌으므로 괴롬이 없으며, 괴롬도 없고 즐거움도 없음을 큰 즐거움이라 하느니라. 열반의 성품은 괴롬도 없고 즐거움도 없나니, 그러므로 열반을 크게 즐거움이라 하는 것이며, 이런 뜻으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낙에 두 가지가 있으니, 범부의 낙과 부처님의 낙이니라. 범부의 낙은 무상하여 파괴되나니, 그러므로 낙이 없고, 부처님께서는 항상 즐거워 변동이 없으므로 크게 즐겁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세 가지 받아들임[受]이 있으니, 괴로움[苦受]과 즐거움[樂受]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不苦不樂受]이니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을 괴로움이라 하건댄 열반은 비록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과 같지만, 그래도 크게 즐거움이라 하며, 크게 즐거우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둘째는 크게 고요하므로[大寂靜] 크게 즐겁다 이름하나니, 열반의 성품은 크게 고요하니라. 왜냐 하면 온갖 시끄러움을 멀리 여읜 까닭에 크게 고요하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셋째는 온갖 것을 아는 까닭으로 크게 즐겁다 하나니, 온갖 것을 아는 것이 아니면 크게 즐겁다 이름하지 못하거니와, 부처님께서는 온갖 것을 아시므로 크게 즐겁다 하고, 크게 즐거우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넷째는 몸이 무너지지 아니함을 크게 즐겁다 하나니, 몸이 무너진다면 즐겁다 할 수 없거니와, 여래의 몸은 금강과 같아서 무너지지 아니하며, 번뇌의 몸이 아니고 무상한 몸이 아니므로 크게 즐겁다 하며, 크게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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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우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세간의 이름은 인연이 있기도 하고 인연이 없기도 하니라. 인연이 있다는 것은 저 사리불은 어머니의 이름이 사리니, 어머니로 인하여 이름을 지었으므로 사리불이라 하느니라. 마투라(摩鍮羅) 도인은 마투라국에 났으니 나라로 인하여 이름을 지었으므로 마투라 도인이라 하느니라. 목건련 존자는 목건련이 성이니, 성으로 인하여 이름을 지었으므로 목건련이라 하느니라. 나는 구담(瞿曇)의 문중에 났으니, 성으로 인하여 이름하였으므로 구담이라 하느니라. 비사가(毗舍佉) 도인은 비사가는 별 이름이니, 별로 인하여 이름하였으므로 비사가라 하느니라. 육손이라 함은 손가락이 여섯이므로 육손이라 이름하며, 불노(佛奴)·천노(天奴)라 함은 부처님을 인하고 하늘을 인하였으므로 불노·천노라 하며, 습기를 인하여 났으므로 습생이라 하며, 소리로 인하여서 가가라(迦迦羅)·구구라(究究羅)·달달라(呾呾羅)라 이름하였으니, 이런 이름들은 인연이 있는 것이니라.
인연이 없는 이름은 연화·땅·물·불·바람·허공 따위니라. 저 만다파(曼陀婆)는 한 이름에 두 가지 실물이 있으니, 전당(殿堂)과 물을 마심이라, 전당도 아니고 물을 마시지도 않았지만, 만다파라 이름지었고, 살바차다(薩婆車多)는 사개(蛇蓋)라 하거니와, 실로는 사개가 아니니 이런 것은 인연이 없이 억지로 이름지은 것이니라. 지라바이(坻羅婆夷)는 기름을 먹는다는 것이니, 실제로 기름을 먹지 않았지만, 억지로 이름을 지어 기름먹이라 하였으니, 이런 이름들은 인연이 없이 억지로 지은 이름들이니라. 선남자여, 대열반도 그와 같아서, 인연이 없는 것을 억지로 이름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허공을 작은 허공을 인하여 큰 허공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열반도 그러하여 작은 것을 인한 것이 아니지만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법을 칭량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을 크다고 하는 것처럼, 열반도 그러하여 칭량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므로 대반열반이라 이름하였느니라. 순전하게 깨끗하므로 대열반이라 하나니, 어떤 것을 순전하게 깨끗하다 하는가. 깨끗함에 네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나는, 25유는 부정하다 하고 능히 끊은 것을 깨끗하다 하며, 깨끗한 것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열반을 유(有)라고도 하나니, 열반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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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니지만, 부처님이 세속을 따라서 열반을 유라고 말하였느니라. 마치 세상 사람이 아비가 아닌 이를 아비라 하고 어미가 아닌 이를 어미라 말하여, 실로는 부모가 아니지만 부모라 말하는 것이니, 열반도 그와 같아서 세속을 따르므로 부처님에게 대열반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둘은, 업이 청정한 까닭이니, 모든 범부는 업이 청정하지 못하므로 열반이 없거니와, 부처님들은 업이 청정하므로 크게 깨끗하다 하고, 크게 깨끗하므로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셋은 몸이 청정한 까닭이니, 몸이 무상하면 부정하다 하거니와, 여래의 몸은 항상하므로 크게 깨끗하다 하고, 크게 깨끗하므로 대열반이라 하느니라. 넷은 마음이 청정한 까닭이니, 마음에 누(漏)가 있으면 부정하다 하거니와, 부처님 마음은 누가 없으므로 크게 깨끗하다 하고, 크게 깨끗하므로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선남자 선여인이 이렇게 대반열반경을 수행하여 첫째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하였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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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18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0. 청정한 행 ⑤

그 때에 세존이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아사세가 기절하여 땅에 쓰러짐을 보고 대중에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이 임금을 위하여 한량없는 겁 동안 세상에 있으면서 열반에 들지 아니하리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위하여 열반에 들지 않으실 터이온데, 어찌하여 아사세왕만을 위한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야, 이 대중에는 한 사람도 내가 끝까지 열반에 들리라고 생각하는 이가 없지만, 오직 아사세왕이 내가 끝까지 열반에 들리라 하여 기절하고 땅에 쓰러졌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말한 바 아사세를 위하여 열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비밀한 뜻이어서 그대들은 알지 못하리라. 왜냐 하면 나의 말에 위한다 함은 온갖 범부요, 아사세라 함은 5역죄를 지은 모든 사람들이니라. 또 위한다는 것은 모든 함이 있는 중생이니, 나는 언제나 함이 없는 중생을 위해서는 세상에 머물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함이 없는 이는 중생이 아니며, 아사세라 함은 번뇌를 구족한 것이니라. 또 위한다 함은 불성을 보지 못하는 중생이니라. 만일 불성을 보았다면 나는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아니하리니, 왜냐 하면 불성을 본 이는 중생이 아니며, 아사세라 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지 못한 온갖 중생들이니라.
또 위한다 함은 아난과 가섭 두 대중이요, 아사세라 함은 아사세왕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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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는 후비들과 왕사성의 모든 여인들이니라. 또 위한다 함은 이름이 불성이요, 아사는 나지 않음이요, 세는 원수니, 불성이 나지 않았으므로 번뇌인 원수가 생겼고, 번뇌인 원수가 생겼으므로 불성을 보지 못하는데, 번뇌가 생기지 아니하면 불성을 볼 것이며, 불성을 보았으므로 대반열반에 편안하게 머물 것이니, 그러므로 나지 않았다 이름하며, 그러므로 아사세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아사는 나지 않았다는 것이요, 나지 않은 것은 열반이며, 세는 세상법이요, 위한다 함은 더럽히지 않음이니, 세상의 여덟 가지 법으로는 더럽힐 수 없는 것이므로,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에 열반에 들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아사세를 위하여 한량없는 억겁을 열반에 들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여래의 비밀한 말이 불가사의며, 부처님·교법·승가도 불가사의며, 보살마하살도 불가사의며, 대반열반경도 불가사의니라.”
이 때에 자비하신 세존 도사(導師)께서 아사세왕을 위하여 월애(月愛) 삼매에 드시고, 삼매에 듣고는 큰 광명을 놓으니, 그 광명이 청량하여 왕의 몸에 비치매 대풍창병이 즉시 나았고, 답답하고 뜨거운 증세가 스러지고 말았다.
왕은 병이 나았고 몸이 시원함을 느끼면서 기바에게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겁말(劫末)에는 달 셋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이 때에는 모든 중생의 근심과 고통이 없어진다 하더니,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는데, 이 광명이 어디서 와서 나의 몸에 비치며, 창병의 고통이 나아져서 몸이 편안하여지는가.”
기바는 대답하였다.
“이것은 겁이 다하여 달 셋이 한꺼번에 비친 것도 아니고, 불해[火日]나 별이나 약초나 보배 구슬이나 하늘 빛도 아닙니다.”
“이 광명이 달 셋이 한꺼번에 비치는 것도, 보배 구슬의 광명도 아니하면 누구의 광명인가.”
“대왕이시여, 이것은 하늘 중의 하늘이 놓는 광명이니, 이 광명은 근본이 없고 가가 없어서, 더운 것도 아니고 찬 것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고 없어짐도 아니며, 빛도 아니고 빛 없는 것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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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아니며, 푸른 것도 아니고 누른 것도 아니며 붉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지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모양이 있어 볼 수 있으며, 근본이 있고 가가 있고 덥고 차고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어서 말할 수 있나이다. 대왕이시여, 이 광명이 비록 그러하나, 진실로 말할 수 없고 볼 수 없으며, 나아가 푸르고 누르고 붉음이 없나이다.”
“기바여, 그 하늘 중의 하늘이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을 놓으시는가?”
“이 상서는 대왕을 위한 것이니, 대왕이 먼저 말씀하기를 ‘이 세상에는 몸과 마음을 치료할 용한 의원이 없다’ 하셨으므로 이 광명을 놓아서 먼저 왕의 몸을 다스리고, 그런 뒤에 마음을 다스리니이다.”
“기바여, 여래 세존께서 나를 생각하시는가?”
“어떤 사람이 아들 일곱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한 아들이 병이 났다고 한다면, 부모의 마음은 평등하건만 병난 아들에게 마음이 치우치게 되는 것이오니, 대왕이시여, 여래도 그와 같아서 여러 중생에게 평등하지 않음이 없건만, 죄 있는 이에게 마음이 치우치게 되는 것이오매, 방일한 이는 부처님께서 자비로 염려하시고, 방일하지 않는 이는 마음을 놓는 것이오니, 방일하지 않는 이는 6주(住) 보살이니이다.
대왕이시여, 부처님 세존은 중생들에 대하여 문벌이나 늙고 젊음이나 빈부나 시절이나 해나 달이나 별이나 공교롭거나 미천하거나 하인이나 종이나를 보는 것이 아니고 선심 있는 중생만을 보오며, 선심이 있으면 문득 자비하게 생각하나이다. 대왕이시여, 이 상서는 여래께서 월애삼매에 들어서 놓으시는 삼매인 줄로 아십시오.”
“어떠한 것을 월애삼매라 하는가?”
“마치 달빛이 모든 우발라꽃을 곱게 피게 하듯이,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선한 마음을 피게 하므로 월애삼매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마치 달빛이 모든 길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듯이,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열반의 길을 닦아 익히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므로 월애삼매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마치 달빛이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형상과 빛이 점점 늘어나나니,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처음 마음을 낸 이로 하여금 선한 근본이 점점 늘게 하며, 나아가 대반열반을 구족케 하므로 월애삼매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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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대왕이시여, 마치 달빛이 16일부터 그믐까지 형상과 빛이 점점 덜어지나니,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빛이 비치는 곳마다 모든 번뇌를 점점 덜어지게 하나니, 그러므로 월애삼매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한창 무더울 때에 모든 중생이 항상 달빛을 생각하고 달빛이 비치면 찌는 듯하던 더위가 감하여지듯이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탐욕과 번뇌의 더위를 덜어지게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마치 보름달이 여러 별들 중에 왕이며 감로맛이 되어 모든 중생의 사랑을 받듯이,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여러 선한 일 중의 왕이며, 감로맛이 되어 모든 중생의 즐거움이 되나니, 그러므로 월애삼매라 하나이다.”
“기바여, 내가 들으니, 여래는 바쁜 사람과 함께 앉지도 섰지도 일어나지도 말도 의논도 하지 아니함이, 마치 바다가 송장을 묵히지 아니하고, 원앙이 뒷간에 머물지 아니하고, 제석천왕이 귀신과 함께 있지 아니하고, 구시라새가 죽은 나무에 깃들지 않는 것 같아서, 여래도 그러하다 하나니, 내가 어떻게 가서 뵈오며, 설사 뵈온들 내 몸이 장차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는가. 내가 보건대 여래께서 차라리 술 취한 코끼리·사자·호랑이나 맹렬한 불꽃을 가까이할지언정 막중한 죄업을 지은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소. 그러므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으니 무슨 마음으로 여래를 가서 뵈옵겠는가?”
“대왕이시여, 마치 목마른 사람은 샘으로 가고, 굶주린 이는 밥을 찾고, 두려워하는 이는 구원을 청하고, 병난 이는 약을 구하고, 더위에 지친 이는 서늘한 그늘을 구하고, 추워 떠는 이는 불을 구하나니, 대왕이 지금 부처님을 찾으심도 그와 같이 하여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여래는 일천제 따위를 위하여서도 법을 연설하시거늘, 하물며 대왕은 일천제가 아니온즉 마땅히 자비로 구제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기바여, 예전에 내가 들으니 일천제는 믿지도 않고 듣지도 못하고 관찰하지도 못하고 이치도 얻지 못한다 하던데, 어찌하여 여래가 그에게 법을 말하시는가?”
“대왕이시여, 어떤 사람이 중병이 들렸는데, 밤에 꿈을 꾸니, 기둥이 하나만 세워진 전당에 올라가서 생소와 기름을 먹기도 하고 몸에 바르기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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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재에 눕고 재를 먹기도 하고 마른 나무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혹은 원숭이와 함께 다니고 않고 눕기도 하고, 물에 잠기고 진흙에 빠지기도 하며, 누각과 높은 산과 나무와 코끼리와 말과 소와 양 따위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몸에 푸르고 누르고 붉고 검은 옷을 입고 웃으며 노래하고 춤추기도 하며, 혹은 까마귀·독수리·여우·살쾡이 따위를 보기도 하고, 이가 빠지고 머리카락이 떨어지며, 벗은 몸에 개[狗]를 베고 더러운 가운데 누워 보기도 하며, 또 죽은 사람과 함께 가고 서고 앉고 일어나면서 손을 잡고 음식을 먹기도 하며, 독사가 가득한 길로 걸어가기도 하며, 또 혹은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과 서로 껴안기도 하고, 다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기도 하며, 부서진 나귀 수레를 타고 남방으로 가기도 하였나이다.
이 사람이 이런 꿈을 꾸고는 마음으로 수심하며, 수심한 까닭으로 병이 더하였고, 병이 더한 까닭으로 집안 친속들이 사람을 보내어 의원을 청하였습니다.
심부름 간 사람이 키가 작고 불구자로서 머리에는 먼지를 쓰고, 헌옷을 입고 낡고 깨어진 수레를 타고 가서 의원을 보고 빨리 수레를 타라고 청하였습니다.
이 때에 의원이 생각하기를 ‘심부름 온 사람의 모양이 불길하니 환자의 병을 고치기 어려우리라’ 하였고, 다시 생각하기를 ‘심부름꾼은 비록 불길하지만, 다시 날짜를 점쳐서 병을 다스릴 수 있는가 보리라. 4일, 6일, 8일, 12일, 14일과 같은 이런 날에는 병을 치료하기가 어렵겠구나’ 하였습니다.
또 생각하기를 ‘날짜는 비록 불길하나, 다시 별로 점을 쳐서 치료할 수 있는가 보리라. 만일 화성, 금성, 묘성(昴星)·염라왕성·습성(濕星)·만성(滿星) 이런 별들을 본다면 병을 고치기 어려우리라’ 하였습니다. 또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별점은 비록 불길하나 다시 때를 살펴보리라. 만일 가을이나 겨울이나 해가 질 때나 한밤중이나 달이 질 때면 이 병이 고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생각하기를 ‘이렇게 여러 가지가 죄다 불길하거니와 혹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리니, 마땅히 병인을 보아야 할 것이다. 병인이 만일 복덕이 있으면 다스릴 수 있을 것이요, 복덕이 없다면 비록 길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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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고는 심부름꾼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길에서 다시 생각하기를 ‘저 병인이 장수할 상이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요, 단명할 상이면 치료할 수 없으리라’ 하였는데, 앞길에서 두 아이가 서로 붙들고 싸우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머리카락을 뽑고 기왓장과 돌과 칼과 작대기로 때리는 것을 보았으며, 어떤 사람이 불을 들고 가던 것이 저절로 꺼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무를 찍고, 어떤 사람이 가죽을 끌고 길을 따라 가는 것을 보았으며, 혹은 길에 떨어진 물건을 보며, 어떤 사람은 빈 그릇을 들었고, 혹은 사문이 혼자 가는 것을 보며, 혹은 범·이리·까마귀·독수리·여우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고는 또 생각하기를, ‘심부름꾼이나 길에서 보는 것이 모두 상서롭지 못하니 이 병인은 결정코 치료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였으며,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가기 않으면 용한 의원이 아니요, 만일 가더라도 치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고, 또 생각하되, ‘이렇게 여러 가지가 상서롭지 못하지만 우선 그냥 두고 병인에게 가 보리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때에 앞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없어졌다, 죽었다, 무너졌다, 꺾어졌다, 깍아버렸다, 떨어졌다, 타버렸다, 오지 말라, 치료할 수 없다, 구제할 수 없다.’
또 남쪽에서 짐승의 소리가 들리니, 까마귀·독수리·사리새의 소리와 개·쥐·여우·멧돼지·토끼의 소리였습니다.
이런 소리를 듣고는 병인은 진실로 치료하기 어려우리라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인이 있는 집에 들어가서 병인을 관찰하니, 찼다 더웠다가 하고, 골절이 아프고 눈이 붉고 눈물이 흐르고 귀 우는 소리[耳聲]가 밖에까지 들리며, 목구멍이 아프고 혓바닥이 터져 그 빛이 검고, 머리를 바로 들지 못하고, 몸은 말라서 땀이 나지 않고, 대소변이 막혀서 통하지 못하며, 몸이 갑자기 비대하여 뻘겋고 이상하며, 말이 고르지 못하여 컸다 작았다 하고 온몸이 얼룩얼룩하여 푸르고 붉고 하며, 배가 부었고 말이 분명치 못하였습니다.
의원은 병세를 살피고는 간병하는 이에게 ‘병인의 정신상태가 요사이에 어떠하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이 사람이 본래는 삼보와 하늘을 믿고 존경하더니, 지금은 변하여 공경하고 믿는 마음이 없으며, 본래는 보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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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더니 지금은 인색하며, 본래는 밥을 적게 먹더니 지금은 많이 먹으며, 본래는 성품이 폐악(敝惡)하더니 지금은 온화하고 선하며, 본래는 성품이 인자하여 부모에게 공경하더니 지금은 부모에게 공경하는 마음이 없나이다’하였습니다.
의원이 이 말을 듣고는 병자에게 가까이 가서 맡아보니, 우발라향 내음, 침수향 내음, 필가다향 내음, 다가라향 내음, 울금향 내음, 바마라발향 내음, 전단향 내음과 고기 굽는 냄새, 포도주 냄새, 뼈 타는 냄새, 생선 냄새, 똥 냄새가 났습니다.
향내와 구린내를 알고는 또 몸을 만져보았더니 보드랍기는 비단이나 목화와 같았고, 굳기는 돌과 같고, 얼음처럼 차기도 하고, 불처럼 뜨겁기도 하고, 모래처럼 깔깔하기도 하였습니다. 의원은 이러한 가지가지 형편을 보고 병자가 반드시 죽을 것을 알았지만, 꼭 죽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 간병하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바쁜 일이 있어서 갔다가 내일 다시 올 터이니, 병인이 찾는 대로 무엇이나 주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심부름꾼이 또 의사에게 갔으나, 의사의 말은 ‘나의 볼일이 아직 끝나지 못하였고 약도 마련하지 못하였노라’ 하였습니다. 이만하면 지혜 있는 이는 병자가 반드시 죽을 줄을 알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세존도 그러하여 일천제들의 근성을 잘 알아서 법을 말하나이다. 왜냐 하면 만일 그를 위하여 말하지 아니하면, 범부들은 말하기를 ‘여래가 자비한 마음이 없도다. 자비한 마음이 있으면 온갖 지혜를 가진 이라 하련만, 자비한 마음이 없다면 무엇으로 온갖 지혜를 가진 이라 말하랴’ 할 것이므로, 여래는 일천제를 위하여서 법을 연설하나이다. 대왕이시여, 여래 세존은 병자를 보는 대로 늘 법약을 주건만 병자가 먹지 않는 것은 여래의 허물이 아니옵니다.
대왕이시여, 일천제를 분별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현재의 선근을 얻을 이요, 하나는 후세의 선근을 얻을 이입니다. 여래는 일천제들을 잘 아시어서 현재에 선근을 얻을 이에게는 법을 말씀하시고, 후세에 얻을 이에게도 법을 말씀하나니, 지금에 이익이 없어도 후세의 인을 짓기 위하시므로 여래는 일천제에게도 법을 말씀하나이다. 일천제는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영리한 이요 하나는 중품 근성입니다. 영리한 사람은 현재에 선근을 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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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요, 중품 사람은 후세에 얻을 터이므로 부처님의 설법이 헛되지 않나이다. 대왕이시여, 어떤 깨끗한 사람이 뒷간에 빠진 것을 선지식이 보고는 딱하게 여기어 나아가 머리카락을 붙들고 끌어내나니, 부처님 여래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이 3악도에 떨어짐을 보고는 방편으로 구제하여 벗어나게 하나니, 그러므로 여래는 일천제를 위하여서도 법을 연설하나이다.”
“기바여, 여래가 참으로 그러하시다면 길한 날을 택하여 가서 뵈오리라.”
“대왕이시여, 여래의 법에는 길한 날을 택하는 일이 없나이다. 대왕이시여, 마치 중병에 걸린 사람은 날을 보고 길흉을 가리지 못하고 용한 의원을 구할 뿐이니, 대왕은 지금 병이 중하시오니, 부처님 의원을 구하실 뿐이옵고, 좋은 날을 택하실 것 아닌가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전단나무에 타는 불이나 이란(芛蘭)에 타는 불이 타기는 마찬가지오니, 길한 날 흉한 날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께 가시기만 하면 죄를 멸할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대왕은 오늘 곧 가사이다.”
이 때에 대왕은 길상이란 신하에게 말씀하였다.
“경은 내가 지금 부처님 계신 데 가려 하니, 공양하기에 필요한 물건들을 마련하라.”
길상은 여쭈었다.
“대왕이시여, 좋사옵니다. 필요한 공양거리가 모두 준비되었나이다.”
아사세왕은 부인과 더불어 타고 가는 수레가 1만 2천이요 살찌고 건장한 코끼리가 5만이니, 코끼리마다 세 사람씩 타고, 가지고 가는 깃발·일산·꽃·향·풍류 여러 가지 공양거리가 모두 구족하였고, 따라가는 인마들이 18만이요, 마가다국 백성들로 왕을 따라가는 이가 58만이었다. 이 때에 구시나성에 있는 대중이 12유순에 가득하여, 아사세왕과 그 권속들이 길을 찾아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있었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운 인연이 될 것은 착한 벗이 제일이니라. 왜냐 하면 아사세왕이 만일 기바의 말을 따르지 아니하였더라면 내달 7일에는 목숨이 마치어 아비지옥에 떨어질 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가까운 인연은 착한 벗이 제일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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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세왕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사바제의 비유리왕은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화재를 만나 죽었다 하고, 구가리 비구는 산 채로 땅에 들어가 아비지옥에 갔다 하고, 수나찰다는 가지가지 나쁜 짓을 하고는 부처님 계신 데 가서 모든 죄가 소멸되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기바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이런 두 가지 이야기를 들었으나 결정할 수 없으니, 경은 와서 나와 함께 한 코끼리를 탑시다. 내가 만일 아비지옥에 들어가게 되거든, 경이 나를 붙들어 떨어지지 않게 하시오. 왜냐 하면 내가 들으니 도를 얻은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오.”
이 때에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아사세왕이 지금 의심이 있으니 내가 이제 그를 위하여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하리라.”
그 때에 모인 가운데 한 보살이 있으니 이름은 지일체(持一切)라 하는데,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일정한 모습이 없나니, 빛도 일정한 모습이 없고 나아가 열반도 일정한 모습이 없다 하였사온데, 지금 여래께서 어찌하여 아사세왕을 위하여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좋은 말이다. 선남자야, 내가 이제 결정코 아사세왕에게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하리라. 왜냐 하면 만일 왕의 의심을 깨뜨린다면 모든 법이 일정한 모습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아사세왕을 위하여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하리니, 이 마음이란 일정함이 없는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만일 저 왕의 마음이 일정하다면 왕의 역죄를 어떻게 벗게 하리요만, 일정한 모습이 없으므로 그 죄를 파괴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아사세왕을 위하여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니라.”
이 때에 대왕은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이르러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여래를 뵈오니, 32상과 80종호가 마치 미묘한 황금산 같았다.
이 때에 세존이 여덟 가지 음성으로 ‘대왕이여!’ 하였다. 아사세왕은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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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돌아보면서, 이 대중에 누가 대왕인가. 나는 이미 역적죄를 지었고, 또 복덕도 없으니 여래께서 나를 대왕이라고 부르지는 아니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이 때에 여래는 ‘아사세대왕!’ 하고 다시 불렀다. 이 말을 왕이 듣고는 마음이 즐거워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오늘날 인자하게 돌아보아 말씀하시니, 여래의 중생에게 대하여 대비로 가엾이 여기심이 차별이 없음을 알겠도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의심이 아주 없어졌사오니, 여래는 참으로 중생의 위없는 대도사이심을 알겠나이다.”
이 때에 가섭보살은 지일체보살에게 말하였다.
“여래는 벌써 아사세왕을 위하여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하였나이다.”
아사세왕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가령 내가 범천왕이나 제석천왕과 함께 앉고 일어나고 먹고 하더라도 오히려 기쁠 것이 아니지만 여래께서 한 말씀으로 인자하게 말씀하심을 듣자옴은 매우 기쁘고 경사스럽나이다.”
그리고 아사세왕은 가지고 왔던 깃발·일산·향·꽃·풍류로 공양하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돌고는 한 곁에 물러나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아사세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이제 대왕을 위하여 바른 법을 말하리니 일심으로 자세히 들으라. 범부들이 마땅히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살펴보는 데 스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나의 이 몸에는 공하여 무루가 없고, 둘째는 선근의 근본이 없고, 셋째는 나의 생사는 아직 조복되지 못하였고, 넷째는 깊은 구렁에 빠져서 간 데마다 두렵고, 다섯째는 무슨 방편으로 불성을 보게 되겠는가. 여섯째는 어떻게 선정을 닦아야 불성을 볼 수 있을까. 일곱째는 생사가 늘 괴로워서 항상함과 나와 깨끗함이 없고, 여덟째는 8난(難)의 액난은 여의기 어렵고, 아홉째는 항상 원수가 따라다니고, 열째는 한 가지 법도 유(有)를 막을 수 없고, 열한 번째는 3악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열두 번째는 가지가지 나쁜 소견을 구족하고, 열세 번째는 5역죄의 나루를 건너갈 일을 마련하지 못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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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열네 번째는 나고 죽는 일이 그지없는데 그 끝을 얻지 못하고, 열다섯 번째는 업을 짓지 않고는 과보를 얻을 수 없고, 열여섯 번째는 내가 짓고 다른 이가 과보를 받을 수 없고, 열일곱 번째는 즐거운 인을 짓지 못하였으니, 즐거운 과보가 없고, 열여덟 번째는 업을 지었으면 과보가 없어지지 않고, 열아홉 번째는 무명으로 인하여 났으니 무명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요, 스무 번째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항상 방일을 행함이니라.
대왕이여, 범부들은 이 몸에 대하여 항상 이렇게 스무 가지 관찰을 하여야 하며, 이러한 관찰을 하게 되면 생사를 좋아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사를 좋아하지 아니하면 지(止)와 관(觀)을 얻을 것이니, 그 때에는 차례차례 마음의 나는 모양, 머무는 모양, 없어지는 모양을 관찰하며, 차례차례 마음의 나고 머물고 없어지는 모양을 관찰하면 선정·지혜·정진·계율도 그와 같이 하며, 나고 머물고 없어지는 모양을 관찰하면, 마음의 모양과 나아가 계율의 모양을 알아서 마침내 나쁜 짓을 하지 아니하며, 죽는 두려움과 3악도의 두려움이 없으리라. 만일 마음을 가다듬어 이 스무 가지를 관찰하지 아니하면 마음이 방일하여 온갖 나쁜 짓을 하게 되리라.”
아사세왕이 여쭈었다.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이치를 이해하기로는 저는 애초부터 이런 스무 가지 일을 관찰하지 못하여서 여러 가지 나쁜 짓을 지었사오며, 나쁜 짓을 많이 지었으므로, 죽음의 두려움과 3악도의 두려움이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재앙을 받으려고 중대한 죄악을 지어 아무 허물 없는 부왕을 역해하였사오니, 이런 스무 가지를 관찰하거나 않거나 간에 결정코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대왕이여, 온갖 법의 성품과 모양이 항상하지 아니하여 결정한 것이 없는 것이거늘, 왕은 어찌하여 결정코 아비지옥에 떨어지리라 하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이 일정한 모양이 없다면 나의 살생한 죄도 결정적이 아닐 것이옵고, 만일 살생한 죄가 결정적이라면, 모든 법도 결정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좋은 말이오.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는 ‘모든 법이 일정한 모양이 없다’ 하였는데, 왕도 살생이 결정적이 아니라고 아시니, 그러므로 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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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정한 모양이 없음을 알 것이오. 대왕이여, 왕의 말이 허물이 없는 부왕을 억울하게 역해하였다 하는데 무엇을 아버지라 하는가. 이름만 빌린[假名] 중생의 5음에 대하여 허망하게 아버지란 생각을 내는 것이오. 12입이나 18계 가운데서 무엇을 아버지라 하겠는가. 만일 색음이 아버지라면 다른 4음은 아버지가 아닐 것이고, 만일 4음이 아버지라면 색음은 아버지가 아닐 것이며, 만일 색음과 색음 아닌 것이 화합하여 아버지가 되었다 하여도 그럴 이치가 없으니, 왜냐 하면 색음과 색음 아닌 것은 성질이 화합할 수 없는 까닭이오.
대왕이여, 범부 중생들이 색음에 대하여 아버지란 생각을 낸다 하여도 이러한 색음을 해할 수도 없나니, 왜냐 하면 색에는 열 가지가 있거니와, 이 열 가지 중에서 색진(色塵) 한 가지만을 볼 수 있고 잡고 저울질하고 헤아리고 끌고 속박할 수 있소. 비록 보고 속박할 수 있더라도 그 성품이 머물지 아니하나니, 머물지 아니하므로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고 측량할 수 없고 끌고 속박할 수 없는 것이오. 색의 모양이 이러하거늘, 어떻게 살해할 수 있겠소. 만일 색진인 아버지를 살해하여서 죄보를 얻는다면, 다른 아홉 가지는 아버지가 아닐 것이고, 그 아홉 가지는 아버지가 아니라면, 살해하더라도 죄가 없을 것 아니겠소. 대왕이여, 색에 세 가지가 있으니 과거와 미래와 현재요. 과거와 현재는 살해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과거는 지나간 연고며 현재는 찰나찰나 멸하는 연고요, 미래의 색은 계속하지 못하게 하므로 죽인다 하는 것인즉, 같은 색에도 어떤 것은 죽일 수 있고 어떤 것은 죽일 수 없소. 죽일 수 있는 것과 죽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색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고, 색이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죽이는 것도 일정하지 않을 것이니, 죽이는 일이 일정하지 않으면 과보 받는 것도 일정하지 않을 것이거늘, 어찌하여 결정코 지옥에 들어가리라 말하는가.
대왕이여, 모든 중생의 짓는 죄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가벼운 죄고, 하나는 중대한 죄요. 만일 마음과 입으로만 지은 것은 가벼운 죄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것은 중한 죄라 하는 것이오. 대왕이여,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을 하였으나 몸으로 짓지 아니하였으면 받는 보가 가벼운 것이오. 대왕이 예전에 입으로 죽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발을 끊으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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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뿐이오. 대왕이 만일 신하에게 명령하여 ‘섰을 적에 부왕의 머리를 베라’ 한 것을 앉았을 적에 베었더라도 죄가 되지 아니할 것인데, 하물며 왕은 베라고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무슨 죄를 얻겠소. 왕이 만일 죄를 얻는다면 부처님 세존도 죄를 얻어야 하리니, 왜냐 하면 왕의 부왕인 빈바사라왕이 일찍부터 여러 부처님께 선근을 심은 까닭으로 금생에 임금이 되었나니, 부처님들이 만일 그의 공양을 받지 않았더라면 임금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오. 만일 임금이 되지 아니하였으면 대왕이 나라를 위하여 살해하지 않았을 터이오. 그러니까, 왕이 아버지를 살해하여 죄가 있다면 우리 부처님들도 죄가 있을 것이고, 만일 부처 세존이 죄가 없다면 어찌하여 대왕만이 죄를 얻게 된다는 말이오.
대왕이여, 빈바사라왕도 과거에 나쁜 마음이 있었소. 비부라산에서 사냥할 적에 넓은 들을 두루 다녔으나 짐승을 잡지 못하였고, 오직 5신통을 얻은 신선이 있는 것을 보았소. 보고는 나쁜 마음으로 성을 내어 ‘내가 사냥하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은 이 사람이 모두 쫓아보낸 탓이라’ 하고, 시중들에게 명령하여 죽이라 하였소. 그 사람이 죽을 적에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으므로 신통을 잃어버리고 맹서하기를 ‘나는 아무 죄도 없건만 네가 마음과 입으로 억울하게 나를 죽이니, 나도 오는 세상에 그와 같이 마음과 입으로 너를 죽이리라’ 하였소.
그 때에 빈바사라왕은 그 말을 듣고 뉘우치는 마음을 내어 죽은 송장에게 공양하였소. 그 왕은 그러하여 과보를 가볍게 받고 지옥에는 떨어지지 아니하였는데, 대왕은 죽이라고도 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 지옥에서 과보를 받겠소. 선왕은 자기가 지은 업으로 자기가 받은 것이거늘 대왕이 어찌하여 살생죄를 받게 되겠소. 대왕은 부왕이 허물이 없다 하거니와, 어찌 허물이 없다 하겠는가. 죄가 있으면 죄의 갚음이 있고, 나쁜 업이 없으면 죄의 갚음이 없는 법이오. 왕의 부왕이 만일 허물이 없었으면, 왜 죄의 갚음이 있었겠소. 빈바사라왕은 현세에도 선한 과보를 얻고 나쁜 과보도 얻었소. 그러므로 선왕도 일정하지 않았으니, 일정하지 않았으므로 살해함도 일정하지 않았으며, 살해함이 일정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결정코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하겠소.
대왕이여, 중생이 미치는 데는 네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탐심으로 미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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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고, 둘은 약으로 미치는 것이고, 셋은 주문으로 미치는 것이고, 넷은 본래 지은 업의 인연으로 미치는 것이오. 대왕이여, 나의 제자 중에 이 네 가지 미친 이가 있어 나쁜 짓을 많이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이 계율을 범한다고 치지 아니하나니, 이 사람의 짓는 것이 3악도에 이르지 아니하며, 도로 본마음을 얻어도 범하였다 말하지 아니하는 터이오. 대왕이 본래 나라를 탐하여서 부왕을 역해하였으니, 탐심으로 미치어서 지은 것이거늘, 어찌 죄를 얻으리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술이 취하여 어머니를 역해하고 깨어서는 후회하는 마음을 낸다면, 이런 업으로는 죄보를 받지 아니하오. 왕은 지금 탐욕에 취하였고, 본마음으로 지은 것이 아니니, 만일 본마음이 아니라면 무슨 죄를 얻겠는가. 마치 환술하는 사람이 네거리에서 환술로 가지가지 남자 여자와 코끼리·말·영락·의복을 만든다면, 어리석은 사람은 참인 줄 알지만, 지혜 있는 사람이면 참이 아닌 줄을 알 것이니, 살해하는 일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참이라 하지만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산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를 어리석은 사람은 참말 소리인 줄 알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참이 아닌 줄을 아나니, 죽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참이라 하지만,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원수 맺힌 사람이 와서 친한 양 하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참으로 친하는 줄 알지만 지혜 있는 이는 거짓인 줄을 아나니, 죽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범부는 참이라 하지만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사람이 거울을 들고 얼굴을 볼 적에 어리석은 사람은 참말 얼굴이라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참 얼굴이 아닌 줄을 아나니, 죽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범부는 참이라 하지만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더울 때의 아지랑이를 어리석은 사람은 물이라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물이 아닌 줄을 아나니, 죽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참이라 하지만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마치 건달바성을 어리석은 사람은 참인 줄 알지만 지혜로운 이는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처럼, 죽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참이라 하거니와,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5욕락을 누리었거든, 어리석은 사람은 참인 줄 알지만 지혜 있는 이는 참이 아닌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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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아나니, 죽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참이라 하거니와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죽이는 방법·죽이는 업·죽이는 사람·죽이는 과보와 해탈을 내가 다 아는 것이매 죄가 없거늘, 왕이 비록 죽임을 안다 한들 어찌 죄가 있겠는가.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술 붓는 책임을 맡았더라도 마시지 아니하면 취하지 않듯이, 비록 불인 줄 알아도 타지 않는 것이니, 대왕도 그와 같아서 비록 죽임을 안다 한들 어찌 죄가 있겠는가. 대왕이여, 중생들이 해가 났을 적에 가지가지 죄를 짓고, 달이 떴을 적에 도둑질을 하다가도, 해와 달이 뜨지 아니하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면, 비록 해와 달을 인하여 죄를 지었더라도 해와 달은 죄를 받지 아니하나니, 죽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비록 왕을 인하였다 하나 왕은 실로 죄가 없는 것이오.
대왕이여, 대왕이 궁중에서 매양 양을 잡으라 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없거늘, 어찌하여 부왕에 대하여서만 두려운 마음을 내는가. 비록 사람과 짐승이 높고 낮은 차별은 있지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일반이거늘, 무슨 까닭으로 양에게는 가볍게 여겨 두려움이 없고 부왕은 소중히 여겨 근심을 하는가. 대왕이여, 세상 사람들이 애정의 종이 되어 자재하지 못하며, 애정의 시킴을 받아 살해하는 일을 한 것인즉, 설사 과보가 있더라도 이는 애정의 죄일 것이니 자재하지 못한 왕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대왕이여, 마치 열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도 있는 것처럼, 죽이는 일도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있는 것이니,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이 아니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 아니나, 과보를 받는 이는 있다고 이름하며, 공하다는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있는 것이 아니고, 있다는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없는 것이 아니나, 있다는 소견이 있는 이는 있다고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있다는 소견이 있는 이는 과보를 얻는 연고이나, 있다는 소견이 없는 이는 과보가 없는 것이오. 항상하다는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없는 것이 아니고, 항상하다는 소견이 없는 이에게는 있는 것이 아니나, 늘 항상하다는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없을 수가 없나니, 왜냐 하면 늘 항상하다는 소견을 가진 이는 나쁜 업의 과보가 있는 연고며, 그러므로 늘 항상하다는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없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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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기 때문이오. 이런 이치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있는 것이오. 대왕이여, 중생이라 함은 숨을 쉬는 이라 이름하고, 숨 쉬는 것을 끊으므로 죽였다 이름하거든, 부처님도 세상을 따라서 죽였다 이름하는 것이오. 대왕이여, 색은 무상한 것이고 색의 인연도 무상한 것이니, 무상한 인으로 좇아 난 색이 어떻게 항상하며, 내지 식(識)은 무상한 것이고 식의 인연도 무상한 것이니, 무상한 인으로 좇아난 식이 어떻게 항상하겠는가. 무상한 연고로 괴롭고 괴로운 연고로 공하고 공한 연고로 내가 없나니, 만일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면 무엇이 죽일 바가 되겠는가. 무상함을 죽이면 항상한 열반을 얻고, 괴로움을 죽이면 즐거움을 얻고, 공함을 죽이면 참됨을 얻고 내가 없음을 죽이면 참나를 얻을 것이니, 대왕이여, 만일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나 없음을 죽인 이는 나와 같을 것이오. 나도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나 없음을 죽이었으나 지옥에 들어가지 아니하였는데, 당신인들 어찌 지옥에 들어가리오.”
이 때에 아사세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색을 관하며, 나아가 식을 관하고 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색이 무상하며, 나아가 식이 무상함을 알았나이다. 제가 본래부터 이런 줄을 알았으면 죄를 짓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일찍 듣사온즉 부처님 세존은 항상 중생에게 부모가 된다 하였습니다. 비록 이런 말을 들었으나 분명하게 알지 못하였더니 이제서야 확실히 알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 수미산이 네 가지 보배로 되었다고 들었으니 이른바 금과 은과 유리와 파리며, 모든 새들이 모이는 곳을 따라 빛이 같다 하였습니다. 비록 이런 말을 들었으나 역시 분명하게 알지 못하였더니, 이제 부처님 수미산에 오르매 곧 빛이 같사오니, 빛이 같다는 것은 모든 법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세간에서는 이란의 씨에서 이란나무가 나는 것만 보옵고, 이란의 씨에서 전단나무가 나는 것을 보지 못하였더니, 지금에야 비로소 이란의 씨에서 전단나무가 나는 것을 보았사오니, 이란의 씨는 나의 몸이고 전단나무는 곧 믿음의 뿌리가 없는 나의 마음입니다. 뿌리가 없다 함은, 나는 애초에 여래를 공경할 줄도 모르고 교법과 승가를 믿지 않았사오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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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뿌리가 없다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마땅히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큰 지옥에서 끝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온데, 저는 지금 부처님을 뵈었사오니, 이 부처님을 뵈온 공덕으로써 중생들의 온갖 번뇌와 나쁜 마음을 파괴하게 되나이다.”
“대왕이여, 대단히 좋은 일이오. 나는 이제 대왕이 반드시 중생의 나쁜 마음을 파괴할 줄을 압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중생의 나쁜 마음을 파괴할 수 있다면, 설사 제가 아비지옥에 항상 있어서 한량없는 세월에 중생들을 위하여 크나큰 고통을 받더라도 괴롭다 하지 않겠나이다.”
이 때에 마가다국의 한량없는 사람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으며, 이렇게 한량없는 사람이 큰 마음을 내었으므로, 아사세왕의 모든 중죄가 곧 소멸되었고, 왕과 부인과 후궁의 채녀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다.
이 때에 아사세왕은 기바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기바여, 나는 지금 죽기도 전에 하늘의 몸을 얻었고, 단명한 것을 버리고 장수함을 얻었고, 무상한 몸을 버리고 항상한 몸을 얻었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하였으니, 이것이 곧 하늘의 몸이며 장수함이며 항상한 몸이며, 곧 여러 부처님의 제자라 하겠소.”
이렇게 말하고는 가지각색 보배 당과 번과 일산과 향과 꽃과 영락과 아름다운 풍류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다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진실하고 현미하고 묘하온 말씀
구절이나 이치에도 공교하시니
오묘하고 깊고 깊은 비밀한 법장
중생들을 위하여서 나타내시네.

법장 속에 들어 있는 넓으신 말씀
중생들을 위하여서 말씀하시니
이와 같은 참된 말씀 구족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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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의 번뇌 병을 치료하시네.

삼계에서 헤매이던 여러 중생들
이와 같은 좋은 말씀 얻어들으면
믿거나 안 믿거나 물을 것 없이
부처님의 말씀인 줄 알게 되오리.

어느 때나 여래 말씀 부드럽다도
중생들을 위하여서 억세거니와
부드러운 말씀이나 억센 말씀이
모두가 제일의로 돌아가나니.

내가 지금 세존께 귀의합니다.
여래 말씀 한결같아 바닷물처럼
그러므로 제일의라 이름하나니
이치 아닌 말씀이란 조금도 없네.

여래께서 오늘날에 말씀하시는
가지가지 한량없는 미묘한 법문
남녀노소 누구라도 듣기만 하면
한 가지로 제일의를 얻게 되오리.

인도 없고 결과도 없는 것이며
나도 않고 멸하지도 아니하는 일
이를 일러 열반이라 이름하나니
듣는 이는 모든 결박 벗어나리라.

부처님께서는 어디서나 우리들에게
자비하신 부모님이 항상 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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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어다, 한량없는 우리 중생들
모두 다 부처님의 아들 딸임을.

자비하고 자상하신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하여서 고행하오심
허깨비에 들린 이가 정신 없어서
이것 저것 되는 대로 하는 것같이.

내가 지금 부처님을 뵈옵고 나서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선근들
바라건대 이 공덕을 회향하여서
위없는 보리에로 돌려지이다.

부처님과 법보와 승가에게
내가 지금 공경하여 공양하온 일
바라건대 이러한 공덕으로써
삼보가 이 세상에 항상 있고자.

내가 지금 부처님께 예경하옵고
얻게 되는 가지가지 공덕으로써
중생들의 네 가지 마군들을
여지없이 깨뜨려 없애지이다.

이내 몸이 나쁜 동무 만날 적마다
지난 세상 오는 세상 많은 죄업을
지성으로 부처님께 참회하오니
이 뒤에는 다시 짓지 말아지이다.

원하건대 생사고해 모든 중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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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뇩다라 보리심을 모두 내어서
한결같이 정성스런 참된 맘으로
시방 삼세 부처님을 생각하오며

원하건대 여섯 갈래 모든 중생들
영원하게 모든 번뇌 없애 버리고
부처님의 참성품을 분명히 보고
문수사리보살들과 같아지이다.

이 때에 세존은 아사세왕을 찬탄하셨다.
“대왕이여, 잘하는 일이오. 만일 어떤 사람이 보리심을 낸다면 이 사람은 부처님의 대중을 장엄하는 것이오. 대왕은 지나간 옛적 비바시부처님에게서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그 때부터 내가 출세할 때까지, 한 번도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은 일이 없었소. 대왕이여, 보리의 마음은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하오. 대왕은 이제부터는 항상 보리의 마음을 닦을지니, 왜냐 하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한량없는 죄악을 소멸할 수 있는 까닭이오.”
이 때 아사세왕과 마가다 나라의 온 백성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 번 부처님을 돌고는 하직하고 궁중으로 돌아갔다.
[천행품(天行品)은 잡화(雜花)에서 말한 것과 같다]2)

21. 어린아기 행(嬰兒行品)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어찌하여 어린아기의 행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일어나거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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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11권 처음 부분에 다섯 가지 행을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거룩한 행[聖行]이고, 둘째는 청정한 행[梵行]이며, 셋째는 하늘의 행[天行]이고, 넷째는 어린아기의 행[嬰兒行]이고, 다섯째는 병 고치는 행[病行]이다. 천행품은 잡화경에서 말한 것과 같아 생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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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거나 오거나 가거나 말하거나 하지 못함을 어린아기라 하나니, 여래도 그러하니라. 일어나지 못한다 함은 여래가 마침내 모든 법의 모양을 일으키지 않음이요, 머물지 못한다 함은 여래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아니함이요, 오지 못한다 함은 여래의 몸과 행동이 동요하지 않음이요, 가지 못한다 함은 여래가 이미 대반열반에서 이름이요, 말하지 못한다 함은 여래가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거니와, 실로 말하는 것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말할 바 있는 것은 함이 있는 법이라 하나니, 여래 세존은 함이 있는 법이 아니므로 말하는 것이 없느니라. 또 말함이 없다 함은, 마치 어린아기의 말이 분명치 못하므로 비록 말을 하더라도 실로는 말이 없는 것이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말이 분명치 아니한 것은 부처님의 비밀한 말씀이니, 비록 말씀을 하더라도 중생들이 알지 못하므로 말이 없다고 하느니라.
또 어린아기는 이름과 물건이 한결같지 아니한데 바른 말을 알지 못하나니, 비록 이름과 물건이 한결같지 아니한데 바른 말을 알지 못하나, 이것으로 인하여 물건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의 종류가 각각 다르고 말이 같지 않지만 여래는 방편으로 그들을 따라 말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말로 인하여 알게 하느니라. 또 어린아기는 큰 자[大字]를 말하는데, 여래도 그러하여 큰 자를 말하나니 이른바 바(婆)와 화(▩)니라. 화는 함이 있는 것이요, 바는 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어린아기라 하느니라. 화는 무상이라 하고 바는 항상하다 하나니, 여래가 항상함을 말할 때 중생들이 듣고는 항상한 법을 위하여서 무상을 끊나니, 이것을 어린아이의 행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린아기는 괴로움과 즐거움과 낮과 밤과 부모를 알지 못하나니,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위하므로 괴로움과 즐거움을 보지 아니하고 낮과 밤이 없으며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므로 아버지 어머니라 친하다, 소원하다라는 생각이 없느니라. 또 어린아기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을 짓지 못하는데,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업을 짓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큰 일을 짓지 아니하는 것이며, 큰 일은 5역죄니, 보살마하살은 5역죄를 짓지 아니하고, 작은 일은 2승의 마음이니, 보살은 보리심을 퇴타하여 성문·벽지불승을 짓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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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린아이의 행이라 함은 어린아기가 울 때에는, 그 부모가 누른 버들잎을 주면서 달래기를 너에게 돈을 줄 터이니 울지 말라 하는데, 아기가 보고는 참말 돈인 줄 생각하고 울지 않으니 그것은 참말 돈이 아니니라. 나무로 만든 소와 나무 말과 나무 남자와 나무 여자를 어린아이가 보고는 참으로 남자나 여자인 줄 생각하고 울지 않는데 참으로 남자와 여자가 아닌 것을 남자와 여자인 줄 생각하므로 어린아기라 이름하느니라.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만일 중생들이 나쁜 업을 지으려 하면, 여래는 그들을 위하여 33천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단정하고 자재하여 훌륭한 궁전에서 5욕락을 받는 일과, 6근으로 상대하는 것이 모두 즐거운 일이라 말하는데, 중생들은 이러한 즐거움을 들은 까닭으로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하고 33천에 태어날 선한 업을 짓거니와 실제로는 나고 죽는 것이며 무상하고 낙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건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방편으로 말하는 것이니라.
또 어린아이라 함은 어떤 중생이 나고 죽음을 싫어할 때에는 여래가 2승의 도를 말하거니와, 실제로는 2승의 실상이 없는 것이며, 2승의 법으로 인하여서 나고 죽는 허물을 알고 열반의 낙을 보는 것이며, 이런 소견으로 말미암아 끊을 것과 끊지 못할 것이 있으며, 참된 것과 참되지 않은 것이 있으며 닦을 것과 닦지 않을 것이 있으며, 얻을 것과 얻지 못할 것이 있음을 아느니라.
선남자야, 저 어린아기가 돈이 아닌데 돈이란 생각을 내듯이, 여래도 그러하여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 말하거니와, 여래는 제일의를 얻었으므로 허망함이 없느니라. 어린아기가 소와 말이 아닌데 소와 말이라 생각하듯이 어떤 중생이 도가 아닌데 도라는 생각을 하는데, 여래도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말하나니 도가 아닌 데에 실로 도가 없지만 능히 도를 내는 작은 인연이 되는 것이므로, 도가 아닌 것을 말하여 도라고 하느니라. 어린아기가 나무로 된 남자와 여자에게 참말 남자와 여자인 생각을 내듯이 여래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중생이라 말하지만 실로는 중생이란 모양이 없느니라. 만일 부처님 여래가 중생이 없다고 말하면 모든 중생이 잘못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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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에 떨어질 것이므로 여래가 중생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중생에 대하여 중생이란 모양을 지으면 곧 중생의 모양을 깨뜨리지 못하나니 중생에 대하여 중생의 모양을 깨뜨리는 이라야 능히 대반열반을 얻을 수 있느니라. 이렇게 대반열반을 얻으므로 울음을 그치는 것을 어린아기의 행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남자나 여인이 이 다섯 가지 행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는 이가 있으며, 이 사람은 반드시 이와 같은 다섯 가지 행을 얻은 줄을 알지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저도 결정코 이 다섯 가지 행을 얻겠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야, 홀로 너만이 이 다섯 가지 행을 얻을 것이 아니라, 이 회중에 있는 93만 사람이 너와 같이 이 다섯 가지 행을 얻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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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19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 ①

이 때에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 열 가지[十事] 공덕을 얻어 성문·벽지불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라. 생각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어서 듣는 이가 놀라고 이상하게 여기리니,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닌 것도 아니며, 세상법도 아니고 형상도 없고 세간에는 없는 것이니라.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하나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듣지 못한 것을 들음이요, 둘째 듣고는 이익이 됨이요, 셋째 의혹하는 마음을 끊음이요, 넷째 지혜의 마음이 곧고 굽지 아니함이요, 다섯째 능히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듣지 못한 것을 들음인가. 깊고 비밀한 법장을 말함이니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고 부처님과 교법과 승가가 차별이 없으며, 삼보의 성품과 모양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며, 모든 부처님이 필경까지 열반에 드시는 이가 없고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어서, 여래의 열반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함이 있는[有爲] 것도 아니고 함이 없는 것도 아니며, 새는 것[有漏]도 아니고 샘이 없는 것도 아니며, 빛도 아니고 빛 아님도 아니며, 이름[名]도 아니고 이름 아님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고 있지 않음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고 물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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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아니며,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며, 기다림도 아니고 기다리지 않음도 아니며, 밝음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며, 나옴도 아니고 나오지 않음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음도 아니며, 끊음도 아니고 끊지 않음도 아니며, 처음도 아니고 나중도 아니며,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며, 음(陰)도 아니고 음 아님도 아니며, 입(入)도 아니고 입 아님도 아니며, 계(界)도 아니고 계 아님도 아니며, 12인연도 아니고 12인연 아님도 아니어서, 이런 법이 깊고 비밀하여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능히 듣느니라. 또 듣지 못함도 있으니, 모든 외도들의 경전으로서 4비타론(毗陀論)·비가라론(毗伽羅論)·위세사론(衛世師論)·가비라론(迦毗羅論)·모든 주문·의방(醫方)·기예(伎藝)·일식과 월식과 별들의 운행·도참서 따위니라. 이러한 경들에 대해 애초부터 듣지 못하면, 비밀의 뜻을 이 경전에서 들으며, 또 비불략(毗佛略)을 제외한 11부 경에도 없던 비밀한 이치를 이 경전으로 인하여 알게 된 것이니,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듣지 못한 것을 얻어 듣는다 하느니라.
듣고는 이익이 된다 함은, 만일 이 대열반경을 들으면 온갖 방등 대승경전의 깊은 이치를 모두 아는 것이니라. 마치 남자나 여자나 밝은 거울 속에서 자기의 형상을 분명하게 보듯이 대반열반경의 거울도 그와 같아서 보살들이 붙잡으면 대승경전의 깊은 이치를 모두 보게 되느니라.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횃불을 들면 모든 물건들을 다 볼 수 있듯이, 대반열반의 횃불도 그러하여 보살이 들면 대승의 깊은 뜻을 보느니라. 또 해가 뜨면 밝은 광명이 모든 산의 깊고 어두운 데를 비치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물건을 보게 하듯이 대반열반경의 지혜의 해도 그와 같이 대승의 깊은 이치를 비치어서 2승들로 하여금 부처님 도를 보게 하나니, 그 이유는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듣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면 모든 법의 이름을 들으며, 만일 쓰고 읽고 외우고 통달하여 다른 이에게 말하여 주고 뜻을 생각하면 모든 법의 이치를 알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듣기만 하는 이는 이름만 알고 뜻을 모르거니와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그 뜻을 생각하면 그 이치를 알게 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이 경전을 듣는 이는 불성이 있음을 듣기만 하고 보지는 못하거니와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하는 이는 보게 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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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이 경을 듣기만 하는 이는 보시의 이름을 알기만 하고 보시바라밀을 보지는 못하거니와, 쓰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한다면 보시바라밀을 보게 되며, 내지 반야바라밀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면 법도 알고 뜻도 알며 두 가지 걸림없음을 갖추어서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 등 모든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12부경을 열어 보이고 분별하며 그 뜻을 연설하는 데 잘못됨이 없을 것이며, 다른 이에게서 듣지 않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움을 스스로 알 것이니, 선남자여, 이것을 말하여 듣고는 이익이 된다고 하느니라.
의혹하는 마음을 끊는다 함은, 의혹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이름을 의심함[疑名]이요, 다른 하나는 이치를 의심함[疑義]이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름을 의심하는 마음을 끊고, 뜻을 생각하는 이는 이치를 의심하는 마음을 끊을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의심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부처님이 반드시 열반하는가 의심하고, 둘째 부처님이 항상 계시는가 의심하고, 셋째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즐거운가 의심하고, 넷째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깨끗한가 의심하고, 다섯째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내[我]가 있는가 의심함이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열반하는가 하는 의심을 영원히 끊게 되고, 쓰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하는 이는, 네 가지 의심을 영원히 끊게 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의심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성문이 있는가 없는가, 둘째 연각이 있는가 없는가, 셋째 불승(佛乘)이 있는가 없는가 함이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세 가지 의심을 영원히 끊어 남음이 없고, 쓰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하면 온갖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아느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중생들이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면 의심이 매우 많으니, 항상한가 무상한가,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 깨끗한가 깨끗하지 못한가, 내가 있는가 내가 없는가, 수명인가 수명이 아닌가, 필경인가 필경이 아닌가, 다른 세상인가 지나간 세상인가, 있는가 없는가, 고통인가 고통이 아닌가, 집(集)인가 집이 아닌가, 도인가 도가 아닌가, 멸인가 멸이 아닌가, 법인가 법이 아닌가, 선인가 선이 아닌가, 공한가 공하지 않은가 따위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들이 아주 끊어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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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여, 이런 경을 듣지 못한 이는 가지가지 의심이 많으니, 색이 나인가, 수(受)·상(想)·행(行)·식(識)이 나인가, 눈이 보는가 내가 보는가, 내지 식이 아는가 내가 아는가, 색이 과보를 받는가 내가 과보를 받는가, 내지 식이 과보를 받는가 내가 과보를 받는가, 색이 다른 세상에 가는가 내가 다른 세상에 가는가, 내지 식도 그와 같으며, 나고 죽는 법이 처음이 있고 나중이 있는가, 처음이 없고 나중이 없는가 하거니와,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이 아주 없느니라. 또 어떤 이는 의심하기를, 일천제들이 4중금(重禁)을 범하고 5역죄를 지으며, 방등경전을 비방하나니, 이런 무리들은 불성이 있는가 불성이 없는가 하거니와,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이 모두 끊어지느니라. 또 어떤 이는 의심하기를, 세간이 끝[邊]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시방세계가 있는가 시방세계가 없는가 하거니와,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들이 아주 없어지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의혹하는 마음을 끊는다 하느니라.
지혜 마음이 곧고 굽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의심이 있으면 소견이 바르지 못하나니, 모든 범부들이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을 듣지 못하면 소견이 삿되어지고, 내지 성문·연각들도 소견이 잘못되느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모든 범부들의 소견이 잘못됐다 하는가. 샘이 있는[有漏] 속에서 항상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로 보고, 여래에게는 무상하고 고통이고 깨끗하지 않고 내가 없는 줄을 보며, 중생과 수명과 지견(知見)이 있는 줄로 보며, 비유상비무상천을 열반이라 억측하며, 자재천에 8성도(聖道)가 있는 줄로 보며, 있다는 소견·없다는 소견 따위를 잘못됐다 하거니와,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듣고 거룩한 행[聖行]을 닦으면 이렇게 잘못된 소견을 끊게 되느니라.
어떤 것을 성문·연각의 잘못된 소견이라 하는가. 보살이 도솔타천에서 내려와 흰 코끼리를 변화해내어 타고 어머니의 태에 드시니, 아버지는 정반왕이요 어머니는 마야부인이었다. 가비라(迦毗羅)성에서 태중에 있다가 열 달이 차 태에서 나올 때에, 땅에 닿기 전에 제석천왕이 받들어 모시고, 난다용왕과 우바난다용왕은 물을 뿜어 몸을 씻기고, 마니발다 대귀신왕은 보배 일산을 받들고 뒤에 모시고 섰으며, 지신(地神)은 연꽃을 변화로 지어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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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들매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고, 천신의 사당에 이르니 천신의 상[天像]들이 일어나 맞았다. 아사타 선인이 와서 태자를 안고 상(相)을 보았으며, 상을 보고 나서는 슬픈 생각을 내어 부처님이 출현함을 보지 못할 것을 스스로 서러워하였다. 스승에게 나아가 글과 산수와 활쏘기, 말타기와 참서와 기예를 배웠으며, 깊은 궁전에 있어서는 6만 채녀와 더불어 즐거이 향락하였고, 네 군데 문으로 나가 유람하다가 가비라 동산에 이르는 도중에 노인과, 내지 법복을 입고 가는 사문을 보았다. 궁중에 돌아와서는 채녀들을 보니, 형상은 마치 송장과도 같고 궁전은 무덤 속인 듯하였다. 그것이 싫어져서 집을 떠나 밤중에 성을 넘었으며, 울타가(鬱陀伽)와 아라라(阿羅邏) 신선에게 가서는 식처천(識處天)과 비상비비상천의 이야기를 들었고, 듣고는 그런 곳들이 무상하고 괴롭고 부정하고 내가 없음을 관찰하였으며, 거기를 버리고 나무 아래 가서 6년 동안 고행을 닦으면서 이런 고행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할 줄을 알았다.
그 때에 다시 아이라발제(阿夷羅跋提)강에 이르러 목욕하고, 마침 소 기르는 여자가 받드는 우유죽을 받고는, 보리수 아래로 가서 마왕 파순을 깨뜨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 바라나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처음으로 법수레를 굴리었고, 내지 구시나성에서 열반에 드는 것을 보는 것이니, 이런 소견을 말하여 성문·연각의 잘못된 소견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면 이러한 소견들을 끊어 버리게 되며, 만일 쓰고 읽고 외우고 통달하여 다른 이에게 연설하고 뜻을 생각하면, 올바른 소견을 얻어 잘못된 소견이 없어지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의 가르침[諦]을 수행하면, 보살이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도솔타천에서 내려와서 어머니의 태에 들며, 내지 구시나성에서 반열반에 들지 아니하는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올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여래의 비밀한 뜻을 능히 안다 함은 곧 대반열반이니,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어서, 네 가지 중대한 계율 범한 것을 참회하고, 법을 비방한 죄를 없애고, 5역죄를 끝내고, 일천제를 멸하며, 그런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깊고 비밀한 뜻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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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깊은 이치라 하는가. 비록 중생에게 내가 없음을 알지만, 세상에 업과 과보를 잃지 아니하며, 비록 5음이 여기서 소멸함을 알지만 선악의 업은 마침내 없어지지 아니하며, 비록 여러 가지 업이 있지만 짓는 이가 없으며, 비록 이르는 곳이 있으나 가는 이가 없으며, 비록 속박이 있으나 속박 받을 이가 없으며, 비록 열반이 있으나 열반할 이가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깊고 비밀한 뜻이라 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 듣고 듣지 못한다는 뜻을 해석하기로는, 그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법이 만일 있다면 결정코 있을 것이고, 법이 만일 없다면 결정코 없을 것이니, 없는 것이면 생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면 멸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일 들을 것이면 곧 들었을 것이요, 만일 듣지 못할 것이면 곧 듣지 못하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하오리까? 세존이시여, 만일 들을 수 없는 것이면 그것은 듣지 못하는 것이요, 만일 이미 들었으면 다시 듣지 아니할 것이니, 이미 들은 까닭이거늘 어찌하여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하나이까? 마치 가는 이가 이르렀으면 가지 아니할 것이요 간다면 이르지 못한 것과 같으며, 또한 났으면 나지 아니할 것이요, 나지 않은 것이면 나지 못하는 것과 같고, 얻었으면 얻지 아니할 것이요, 얻지 못하는 것이면 얻지 못할 것과도 같나니, 들었으면 듣지 아니할 것이요 듣지 못하는 것이면 듣지 못할 것도 그와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면, 모든 중생이 보리를 소유(所有)하지 못한 것을 마땅히 소유할 것이요, 열반을 얻지 못한 것을 마땅히 얻을 것이며,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나 마땅히 볼 것이온데, 어찌하여 10주(住) 보살이 비록 불성을 보아도 분명하지 못하다 말씀하시었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면, 여래께서는 옛적에 누구에게서 들었사오며, 만일 듣는다 하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아함 가운데에서 스승이 없다 말씀하셨나이까? 만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지 못하고도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셨다면, 모든 중생들도 듣지 못한 것을 듣지 못하고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야 할 것이오며, 여래께서 만일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고 불성을 보았다면, 모든 중생들이 이 경을 듣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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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으나 역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빛이란 것은 볼 수 있는 것도 있고, 볼 수 없는 것도 있사오며, 소리도 그와 같아서 들을 것도 있고 듣지 못할 것도 있거니와 이 대반열반은 빛도 아니고 소리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보고 들을 수 있다 하나이까? 세존이시여, 과거는 이미 없어졌으므로 들을 수 없고, 미래는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들을 수 없으며, 현재는 들을 때에는 들었다 이름하지 못할 것이요, 들었으면 소리는 이미 없어졌으니 다시 들을 것 아니거니와, 이 대반열반은 또한 과거·미래·현재가 아니오니, 만일 삼세가 아니라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면 들을 수가 없삽거늘, 어찌하여 보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닦으면,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나이까?”
이 때에 세존께서는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을 찬탄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온갖 법이 환술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건달바성과 같고 물에 번진 파문과 같으며, 물거품 같고 파초나무가 공하여 실속이 없는 것 같으며, 수명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괴롬과 즐거움이 없음을 알았으니, 10주 보살의 지견과 같으니라.”
이 때에 대중 가운데에 별안간 큰 광명이 있었으니, 푸른 것이 아닌데 푸른 것을 보고, 누른 것이 아닌데 누른 것을 보고 붉은 것이 아닌데 붉은 것을 보고, 흰 것이 아닌데 흰 것을 보며, 빛이 아닌데 빛을 보고, 밝음이 아닌데 밝음을 보고, 보는 것이 아닌데 보게 되었다. 그 때 대중들이 이 광명을 만나고는 몸과 마음이 쾌락하기가, 마치 비구들이 사자왕정(師子王定)에 든 듯하였다.
이 때에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광명은 누가 놓나이까?”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말씀하지 아니하셨다.
가섭보살이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대중에게 비치는 것입니까?”
문수보살 역시 잠자코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다시 무변신(無邊身)보살이 가섭보살에게 이 광명은 누구의 것인지를 물었으나, 가섭보살은 잠자코 말하지 아니하였고, 정주왕자(淨住王子)보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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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신보살에게 무슨 인연으로 대중 가운데 이 광명이 있는가를 물었으나, 무변신보살도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5백 보살이 서로 물었으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이 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인연으로 대중 가운데 이 광명이 있는가?”
문수사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런 광명은 지혜라 이름하오며, 지혜는 항상 머무는 것이옵고,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이 없삽거늘,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느냐’고 물으시나이까? 이 광명은 대열반이라 이름하고 대열반은 항상 머문다 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느냐’고 하시나이까? 이 광명은 곧 여래요 여래는 항상 머무는 것이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광명은 대자대비라 하고 대자대비는 항상 머무는 것이라 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광명은 곧 염불이요 염불은 항상 머무는 것이라 이름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광명은 모든 성문·연각과 함께하지 아니하는 도며, 모든 성문·연각과 함께하지 아니하는 도는 항상 머무는 것이라 이름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세존이시여, 역시 인연이 있사오니, 무명이 없어짐을 인하여 환하게 치성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등불을 얻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그대는 모든 법의 깊고 깊은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들어가지 말고, 세상법[世諦]으로써 해설하라.”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동쪽으로 20항하의 모래 수 세계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부동(不動)이라 합니다. 그 부처님 계시는 곳은 가로와 세로가 꼭 같아서 1만 2천 유순이요, 땅은 7보로 되어 흙이나 돌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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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고 단정하고 부드러워 구렁이 없으며, 나무들은 네 가지 보배로 되었으니 금과 은과 유리와 파리요, 꽃과 열매가 무성하여 없는 때가 없나이다. 만일 중생이 그 꽃향기를 맡으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마치 비구가 3선천에 든 듯하며, 그 주위에 다시 3천의 강이 있는데 물이 미묘하여 여덟 가지 맛이 갖추어졌으며, 만일 중생이 그 물에서 목욕하면, 즐겁기가 2선천에 들어간 비구와 같습니다. 그 물에 가지각색 꽃이 있으니 우발라꽃·파두마꽃·구물두꽃·분다리꽃·향화·대향화·미묘항화와 모든 중생들의 애호하는 꽃이며, 그 강의 양쪽 언덕에도 여러 가지 꽃이 있으니 아제목다가화·점파화·파타라화·파사라화·마리가화·대마리가화·신마리가화·수마나화·유제가화·단누가리화·상화 등 모든 중생들이 애호하는 꽃입니다. 바닥에는 금 모래가 깔리고, 네 가지 계단이 있으니 금·은·유리와 잡색 파리며, 여러 가지 새들이 그 가운데 모여들고, 또 한량없는 범·이리·사자 등 사나운 짐승들이 있으나, 마음이 유순하여 어린아기들처럼 서로 어울립니다.
그 세계에는 중대한 계율을 범한 자나 바른 법을 비방하는 자나 일천제(一闡提)나 5역죄를 짓는 자가 없으며, 그 토양이 조화롭고 기후가 알맞아 춥고 덥고 굶주리고 목마른 고통이 없고, 탐욕과 성내는 일과 방일하고 질투하는 일이 없고, 해와 달과 밤과 낮이 없는 것이 도리천과 같습니다. 그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광명이 있고 교만한 마음이 없어서 모든 사람이 다 보살들이며, 모두 다 신통을 얻었고, 큰 공덕을 구족하였으며, 마음으로 바른 법을 존중하여, 대승을 타며 대승을 사랑하며, 대승을 즐거워하며 대승을 애호하며, 큰 지혜를 이룩하여 큰 총지(摠持)를 얻었고, 마음으로는 항상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깁니다. 부처님 명호는 만월광명(滿月光明) 여래·응공·전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며 계시는 곳을 따라 법을 강설하시니, 그 나라의 중생들은 그 부처님께서 유리광(琉璃光)보살마하살을 위하여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나이다.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만일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 듣지 못한 것을 모두 듣느니라’ 하셨고, 저 유리광보살마하살이 만월광명부처님께 여쭌 것도, 여기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물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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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다름이 없었나이다.
저 만월광명부처님께서 유리광보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여, 여기서 서쪽으로 20항하의 모래 수 세계를 지나서 거기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사바(娑婆)인데, 그 세계에는 산과 구릉이 많고, 흙·모래·자갈·돌·가시 등이 가득하며, 항상 기갈과 춥고 더운 고통이 있으며, 그곳 사람들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부모나 스승을 공경하지 아니하고, 법답지 아니한 것을 탐하며 잘못된 법을 욕구하여, 삿된 법을 행하고 바른 법을 믿지 아니하며, 수명이 짧고 간사한 짓을 행하므로 국왕이 그것을 다스리며, 국왕이 나라를 가지었어도 만곡한 줄 모르고, 다른 임금이 가진 토지에 탐심을 내어서 군대를 일으켜 서로 싸우매 억울하게 죽는 이가 한정이 없으며, 임금의 행하는 일이 이렇게 옳지 못하므로, 사천왕과 선신들이 환희한 마음이 없고, 그리하여 가뭄과 재앙을 내려 곡식이 풍년 들지 못하고 괴질이 유행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한량이 없느니라.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니, 이름은 석가모니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신데,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순후하며 중생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대중을 위하여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시며, 거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은 광명변조고귀덕왕이라, 이미 이 일을 물은 것이 그대와 다름이 없거늘, 부처님께서 지금 대답하시나니, 그대가 빨리 가면 들을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유리광보살이 이 말을 듣고, 8만 4천 보살마하살과 더불어 이곳으로 오려 하므로 이런 상서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런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사오니, 이것은 인연이라고도 하고 인연이 아니라고도 하나이다.”
이 때에 유리광보살이 8만 4천 보살과 함께 모든 깃발과 일산과 향과 꽃과 영락과 가지가지 풍악이 앞엣 것보다 갑절이나 훌륭한 것을 가지고,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와서는, 가지고 온 공양거리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얼굴을 부처님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합장하고 공경하여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았으며, 그렇게 공경하고는 물러가서 한쪽에 앉았다.
이 때에 세존께서 그 보살에게 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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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이르러서 왔는가, 이르지 않고서 왔는가?”
“세존이시여, 이르러서 오지도 않았고, 이르지 않고서 오지도 않았사오니, 제가 이 뜻을 관찰하건대 도무지 오는 일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행(行)이 항상하더라도 오지 아니하고, 무상하더라도 오지 않나이다. 만일 사람이 중생의 성품이 있는 줄로 보면 오고 오지 아니함이 있으려니와, 저는 지금 중생의 결정된 성품을 보지 아니하거늘, 어찌 오고 오지 않음이 있사오리까? 교만이 있는 이는 가고 오는 일이 있음을 보거니와, 교만이 없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집착하는 행[取行]이 있는 이는 가고 옴이 있음을 보거니와, 집착하는 행이 없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만일 여래가 필경에 열반하는 줄로 보면 가고 옴이 있거니와, 여래가 필경에 열반하는 줄로 보지 아니하면 가고 옴이 없나이다. 불성을 듣지 못한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불성을 들은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성문·벽지불에게 열반이 있는 줄로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성문·벽지불에게 열반이 있는 줄로 보지 않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성문·벽지불에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보지 않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여래에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는 줄로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여래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로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이 일은 그만두고 여쭐 일이 있사오니, 가엾이 여기시어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음대로 물으라. 지금이 물을 때니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하나하나 설명해 주겠다. 그 까닭을 말하면 부처님을 만나기 어려움이 우담꽃과 같고, 법도 그러하여 듣기 어려우며, 12부 경전에서 방등경이 더욱 어려우니, 그러므로 전일한 마음으로 들어야 하느니라.”
이 때에 유리광보살마하살은 이미 허락을 받았고, 또 경계하심을 받자왔으므로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나이까?”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 대승 대열반의 바다를 다하고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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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또 나를 만났으니 잘 해설하리라. 그대에게 있는 의심과 독화살은, 내가 큰 의원으로서 뽑아줄 것이며, 그대가 불성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였으니, 내가 지혜의 횃불이 되어 밝게 비쳐줄 것이며, 그대가 나고 죽는 바다를 건너려 하니, 내가 뱃사공이 되어 줄 것이며, 그대가 나를 부모같이 생각하니, 나도 그대를 아들처럼 생각할 것이며, 그대가 마음으로 법보를 탐구하니, 나에게 있는 것을 보시하여 주리라. 자세하게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그대에게 분별하여 해석하리라.
선남자여, 법을 들으려면 지금이 좋은 때니라. 법을 듣고는 마땅히 공경하고 믿음을 내어 지성으로 듣고 공경하고 존중하라. 바른 법에 대하여 허물을 찾지 말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생각지 말며, 법사의 문벌이 높고 낮음을 보지 말며, 법을 듣고는 교만한 마음을 내지 말며, 공경과 명예와 이양을 위하지 말고 세상을 건지는 감로법이 되어야 하며, 또 이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나니 ‘내가 법을 듣고는 먼저 내 몸을 제도하고, 그런 뒤에 남을 제도하리라. 먼저 내 몸을 해탈하고 그런 뒤에 남을 해탈케 하리라. 먼저 내 몸을 편안케 한 뒤에 남을 편안케 하리라. 먼저 내가 열반한 뒤에 다른 이도 열반을 얻게 하리라’ 하지 말며, 부처님과 교법과 승가에 평등한 생각을 내며, 나고 죽는 데는 괴로운 생각을 내며, 대열반에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생각을 내며, 먼저 다른 이를 위하고 나중에 나를 위하며, 대승을 위하고 2승을 위하지 말며, 모든 법에 머무는 바가 없어야 하며, 모든 법의 모양만을 집착하지 말며, 모든 법에 대하여 탐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항상 법을 알고 법을 보려는 생각을 내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능히 이렇게 지성으로 법을 들으면 이것을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듣지 못하면서 들음이 있고, 듣지 못하면서 듣지 못함이 있고, 들으면서 듣지 못함이 있고, 들으면서 들음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나지 않으면서 나고, 나지 않으면서 나지 않고, 나면서 나지 않고, 나면서 나는 것과 같으며, 또 이르지 않으면서 이르고, 이르지 않으면서 이르지 않고, 이르면서 이르지 않고, 이르면서 이르는 것과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나지 않으면서 나는 것입니까?”
“선남자여, 세제(世諦)에 편안히 머물러서 처음 태에서 나올 때를 이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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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나지 않으면서 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지 않으면서 나지 않는다 하는가. 선남자여, 이 대열반은 나는 모습이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나지 않으면서 나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면서 나지 않는다 하는가. 선남자여, 세제에서 죽는 때를 이름하여 나면서 나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면서 난다 하는가. 선남자여, 온갖 범부들을 이름하여 나면서 난다 하느니라. 왜냐 하면 나고 나는 것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며, 온갖 유루(有漏)들이 찰나찰나 나는 까닭으로, 이것을 이름하여 나면서 난다 하느니라. 4주(住) 보살을 이름하여 나는 것이 나지 않는다 하나니, 왜냐 하면 나는 것이 자재한 까닭으로 나면서 나지 않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은 안엣 법이라서 하거니와, 무엇을 바깥 법이라 하는가. 나지 못하는 것이 나며, 나지 못하는 것이 나지 못하며, 나는 것이 나지 못하며, 나는 것이 남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종자에서 싹이 나지 못할 때에 4대가 화합하고 사람이 공들여 가꾸면 나게 되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나지 못하는 것이 난다 하느니라. 무엇을 나지 못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는가. 마치 썩은 종자가 연(緣)을 만나지 못한 것 같음이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나지 못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느니라. 무엇을 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는가. 마치 싹이 나고도 자라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느니라. 무엇을 나는 것이 난다 하는가. 마치 싹이 나서 자라는 것 같음이거니와, 만일 나는 것이 나지 못하면 자라는 일이 없나니, 이러한 모든 유루법을 이름하여 바깥 법의 나는 것이 난다 하느니라.”
유리광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유루의 법이 만일 난다면 항상함이 되나이까, 무상함이 되나이까? 나는 것이 만일 항상하다면, 유루의 법은 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요, 나는 것이 만일 무상하다면 유루의 법이 항상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나는 것이 능히 스스로 난다면 나는 것이 제 성품이 없을 것이며, 만일 능히 다른 것을 낸다면, 무슨 인연으로 무루(無漏)는 내지 못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나지 않았을 적에 나는 일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이제서야 났다 이름하나이까? 만일 나지 않았을 적에 나는 일이 없었다면, 어찌하여 허공이 났다고는 말하지 않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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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나지 않는 것이 난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는 것이 난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는 것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지 않는 것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지 않는 것도 말할 수 없거니와, 인연이 있으므로 말할 수 있느니라. 어찌하여 나지 않는 것이 난다는 것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지 않는 것을 난다고 이름하니,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 왜냐 하면 그가 났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나는 것이 난다는 것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는 것이 나는 까닭으로 나고, 나는 것이 나는 까닭으로 나지 아니하므로 역시 말할 수 없느니라. 어찌하여 나는 것이 나지 아니함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는 것은 났다고 이름하거니와, 나는 것이 스스로 나지 아니하므로 말할 수 없느니라. 어찌하여 나지 않는 것이 나지 아니함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지 않는 것은 이름하여 열반이라 하는데, 열반은 나지 아니하므로 말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도를 닦아서야 얻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나는 것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나지 않는 것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얻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이 인연이 있으므로 말할 수도 있다 하느냐. 열 가지 인연법이 나는 것의 인이 되나니, 그런 이치로 말할 수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깊고 깊은 공한 정[空定]에 들어가지 말지니 대중이 둔한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함이 있는 법은 나는 것이 항상하지만, 머무는 것[住]이 무상하므로 나는 것도 무상하며, 머무는 것이 항상하지만, 나는 것으로 내게 되므로 머무는 것도 무상하며, 달라지는 것[異]이 항상하지만, 법이 무상하므로 달라지는 것도 무상하며, 무너지는 것[壞]이 항상하지만,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으므로 무너지는 것도 무상하니라. 선남자여, 성품인 까닭으로 나고 머물고 달라지고 무너지는 것이 모두 항상하거니와, 찰나찰나 멸하는 까닭으로 항상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대열반으로써 끊어 없앨 수 있으므로 무상하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유루의 법은 나지 않았을 때에 벌써 나는 성품이 있으므로 나는 것이 능히 내거니와, 무루의 법은 본래 나는 성품이 없으므로 나는 것이 능히 내지 못하느니라. 마치 불은 본래 성품이 있으므로, 연을 만나면 불이 나는 것이요, 눈은 본래 보는 성품이 있으므로, 빛을 인하고 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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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인하고 마음을 인하여서 보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나는 법도 그와 같아서, 본래 성품이 있으므로 업의 인연과 부모가 화합함을 만나면 나는 것이니라.”
이 때에 유리광보살마하살과 8만 4천 보살마하살들이 이 법문을 듣고는 공중으로 다라나무의 7배 높이까지 솟아올라서 합장하고 공경하여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의 은근하게 가르침을 입사와 대열반을 인하여 비로소 깨닫고, 듣지 못한 바를 들었사오며, 8만 4천 보살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나지 않으면서 나는 것들을 깊이 알게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알고서 의심을 끊었사오나, 이 회상에 한 보살이 있으니 이름을 무외(無畏)라 하옵는데, 부처님께 여쭙고자 하오니 허락하시옵소서.”
이 때에 세존은 무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음대로 물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해설하리라.”
이 때에 무외보살이 6만[어떤 판본에서는 8만이라 함] 4천 보살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로하고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세계의 중생들은 무슨 업을 지어야 저 부동(不動)세계에 가서 날 수 있나이까? 그 세계의 보살들은 어찌하여 지혜가 성취되었사오며, 사람 중의 코끼리 왕으로서 큰 위덕이 있사오며, 모든 행을 갖추어 닦아서 영리한 지혜가 빠르며, 듣고는 곧 이해하나이까?”
이 때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중생들의 모든 생명 해하지 않고
여러 가지 계율을 굳게 지키며
부처님의 미묘한 법 받아 지니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다른 이의 귀한 재물 빼앗지 말고
언제라도 중생들에 늘 보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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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스님 모여 있을 절을 지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다른 이의 여자들을 범하지 않고
때 아니면 자기 처도 범하지 말며
계행 갖는 니사단을 보시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나와 남의 이익을 위하여서나
아무리 두려운 일 닥치더라도
입 다물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언제라도 선지식을 헐뜯지 말고
좋지 못한 권속들을 멀리 여의며
입으로는 화합한 말 항상 말하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저 모든 보살마하살처럼
나쁜 말은 입 안에서 멀리 여의고
다른 이가 즐겨 듣는 말만 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희롱으로 웃는 말을 할 때에라도
말할 때가 아닌 말은 말하지 않고
조심조심 말할 때만 말을 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다른 이가 이양을 얻는 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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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나 즐거운 마음을 내어
시기하고 질투하는 생각 없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중생들을 시끄럽게 굴지도 않고
어느 때나 인자한 마음을 내며
방편으로 짓는 악도 내지 않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잘못된 소견으로 보시도 없고
부모도 과거 미래 없다고 하는
이러한 나쁜 소견 내지 않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넓은 벌판 먼 길에는 우물을 파고
간 데마다 과실 나무 많이 심으며
거지에겐 좋은 음식 항상 준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부처님과 법보와 스님들에게
향 한 개나 등불 하나 공양하거나
하다못해 꽃 한 송이 바치더라도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두려움을 모면하기 위하여서나
이양이나 복덕을 얻기 위하여
이 경전을 한 게송만 쓴다 하여도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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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복덕·이양 얻기 위하여
여러 날은 그만두고 하루 동안만
이 경전을 외우고 읽는다 하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어떤 이가 무상도를 얻기 위하여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이라도
정성으로 8재계를 받아 지니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크고 중한 계율을 범한 사람과
한 곳에서 한가지로 있지 않거나
방등경전 훼방한 이 꾸짖는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어떤 이가 병난 사람 살펴보거나
맛난 과실 한 개라도 보시하거나
즐거운 마음으로 간호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스님들의 쓰는 물건 범하지 않고
부처님의 상주(常住)물을 수호 잘하며
절 도량을 잘 치우고 소제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부처님 형상이나 부처님 탑을
엄지손가락만치라도 조성해 놓고
어느 때나 즐거운 맘 항상 낸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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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 이 경전을 위하는 마음
내 몸이나 재물 보배 아끼지 않고
설법하는 법사에게 보시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부처님의 비밀한 이런 법장을
듣거나 배우거나 읽고 외우며
쓰거나 통달하여 해설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이 때에 무외보살마하살은 이렇게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짓는 업을 따라서 저 세계에 태어나게 되는 일을 알았나이다. 이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먼저 여쭌 바를 여래께서 해설하시면, 세간 사람·천상 사람·아수라·건달바·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들을 이익하고 안락케 하리이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여기서 정성스런 마음으로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낱낱이 말해 주리라. 인연이 있으므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지 못하고, 인연이 있으므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고, 인연이 있으므로 이를 데에 이르지 아니하고, 인연이 있으므로 이를 데에 이르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지 못하는가. 선남자여, 이르지 못할 데는 대열반인데, 범부는 이르지 못하나니,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있는 탓이며, 몸으로 짓는 짓과 입으로 짓는 짓이 깨끗지 못한 탓이며, 모든 깨끗하지 않은 물건을 받아 둔 탓이며, 4중금(重禁)을 범한 탓이며, 방등경을 비방한 탓이며, 일천제인 탓이며, 5역죄를 지은 탓이니, 이런 이치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지 못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는가. 이르지 못할 데는 대열반인데, 어떠한 뜻으로 이르는가.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과 몸과 입으로 짓는 나쁜 짓을 아주 끊은 까닭이며, 온갖 부정한 물건을 받지 않는 까닭이며, 4중금을 범하지 아니한 까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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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방등경전을 비방하지 아니한 까닭이며, 일천제가 되지 아니한 까닭이며, 5역죄를 짓지 아니한 까닭이니, 이런 뜻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른다 이름하며, 수다원은 8만 겁에 이르고 사다함은 6만 겁에 이르고, 아나함은 4만 겁에 이르고 아라한은 2만 겁에 이르고 벽지불은 10천 겁에 이르나니, 이런 뜻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른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이를 데에 이르지 않는다 이름하는가. 이를 데라 함은 25유(有)인데, 모든 중생이 한량없는 번뇌에 덮인 바가 되어 갔다 왔다 하면서 여의지 못함이 마치 수레바퀴가 도는 것 같나니, 이것을 이른다 하며, 성문과 연각과 보살들은 이미 여의었으므로 이르지 않는다 하며,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그 가운데 일부러 있으므로 이른다고도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이를 데에 이른다 이름하는가. 이를 데라 함은 25유인데, 온갖 범부들과 수다원, 내지 아니함은 번뇌의 인연으로 이를 데에 이른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듣지 못할 것을 듣는 일도 있고, 듣지 못할 것을 듣지 못하는 일도 있고, 듣는 것을 듣지 않는 일도 있고, 듣는 것을 듣는 일도 있느니라. 어찌하여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하는가. 선남자여, 듣지 못할 것을 대열반이라 하나니, 어찌하여 듣지 못한다 하는가. 함이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며, 음성이 아닌 까닭이며,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듣는다 하는가.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까닭이니 이른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니라. 이런 이치로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대열반을 들을 수 없다면, 어찌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들을 수 있다’ 하나이까?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번뇌를 끊은 이는 열반을 얻었다 이름하고, 번뇌를 끊지 못한 이는 얻지 못하였다 이름하나니, 이런 이치로 열반의 성품은 본래는 없으나 지금은 있다 하나이다. 만일 세간의 법이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다면 무상하다 이름하나니, 마치 병(甁) 따위가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으니 이미 있다가는 도로 없어지므로 무상하다 하거늘, 열반이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겠습니까? 또 세존이시여, 무릇 장엄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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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무상하다 하나니 열반이 만일 그러하면 으레 무상하다 하겠습니다. 무엇을 인연이라 하나이까? 37품(品)과 6바라밀과 4무량과 뼈의 모양을 관함[骨相觀]과 아나파나(阿那波那)와 6념처(念處)와 6대(大)를 분석하는 것이니, 이런 법들은 모두 열반을 성취하는 인연이므로 무상하다 이름하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있는 것을 무상하다 하나니, 만일 열반이 있는 것이라면 역시 무상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예전에 아함에서 말씀하시기를, 성문과 연각과 부처가 다 열반이 있다 하였사오니, 이런 뜻으로 무상하다 하겠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볼 수 있는 법을 무상하다 하나니,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열반을 보는 이는 온갖 번뇌를 끊는다 하셨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마치 허공이 중생들에게 평등하여 장애가 없으므로 항상하다 이름하는 것과 같나니, 만일 열반이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중생이 얻기도 하고 얻지 못하기도 하나이까? 열반이 그와 같이 중생들에게 불평등하다면 항상하다고 이름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백 사람에게 공통한 한 사람의 원수가 있을 때에 그 원수를 살해하면, 여러 사람이 즐거울 것입니다. 만일 열반이 평등한 법이라면, 한 사람이 얻을 때에 여러 사람이 함께 얻을 것이니, 한 사람이 번뇌를 끊으면 여러 사람도 번뇌를 끊을 것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겠나이까? 어떤 사람이 임금이나 왕자나 부모나 스승에게,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고 이양을 얻으면, 이것은 항상하다 하지 않나이다. 열반도 그러하여 항상하다고 이름하지 못할지니,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예전에 아함 가운데에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사람이 열반을 공경하면 번뇌의 결박을 끊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받는다 하였기 때문이오니, 이런 뜻으로 항상하다 이름하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열반에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는 이름이 있으면 항상하다고만 이름하지 못할 것이요, 만일 없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나이까?”
이 때에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열반의 자체는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니라. 만일 열반의 자체가 본래 없다가 지금 있다면, 무루의 항상 머무는 법이 아니리라. 부처가 있거나 없거나 성품과 모양이 항상 있건만, 중생들은 번뇌에 가리웠으므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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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을 보지 못하고 없다 하며, 보살마하살은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써 마음을 닦아 번뇌를 끊었으므로 문득 보는 것이니, 열반은 항상 머무는 법으로서, 본래는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두운 우물 속에 가지가지 7보가 있는 것을 사람들도 알지만 어두워서 보지 못하거든, 지혜 있는 사람이 방편을 알고서 등불을 켜 가지고 가서 비치면 모두 보는 것이며, 이 사람들이 여기서 생각하기를 ‘물과 7보가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다’고 하지 않느니라. 열반도 그와 같아서 본래부터 있는 것이요, 지금에 비로소 있는 것이 아니며, 번뇌가 어두워서 보지 못하거든, 큰 지혜인 여래가 알맞은 방편으로 지혜의 등을 켜서 보살들로 하여금 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보게 하나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장엄을 인하여서 보리를 이루는 것이매, 무상하리라’ 함은, 그 이치가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는 나는 것도 아니요 나오는 것도 아니며 진실한 것도 아니요 빈 것도 아니며 업을 지어서 생기는 것도 아니요 유루인 함이 있는 법이 아니며, 들을 것도 아니요 볼 것도 아니요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다른 모양도 아니요 같은 모양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요 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요 여럿도 아니요 긴 것도 아니요 짧은 것도 아니며, 둥근 것도 아니요 모난 것도 아니며, 뾰족한 것도 아니요 비낀 것도 아니며, 있는 모양도 아니요 없는 모양도 아니며, 이름도 아니요 빛도 아니며, 인도 아니요 과도 아니며, 나와 나의 것도 아니니, 이런 이치로 열반은 항상한 것이며 영원히 변역하지 아니하는 것이건만,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선한 법을 닦아 모아서 스스로 장엄한 뒤에야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땅밑에 여덟 가지 맛을 가진 물이 있는 것을 모든 중생들이 얻지 못하거든, 지혜 있는 사람이 공력을 들여서 파면 얻게 되나니, 열반도 그와 같으니라. 마치 눈먼 사람이 해와 달을 보지 못하다가 용한 의원이 눈을 치료하여 고치면 보게 되거니와, 해와 달은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니, 열반도 그와 같아서 원래 있었던 것이요 지금에야 있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죄가 있어 옥에 갇히었다가 오랜 뒤에 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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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집에 돌아가면, 부모·형제·처자·권속들을 보게 되나니, 열반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인연인 까닭으로 열반의 법이 무상하리라’ 함도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 내는 인[生因]이요, 둘째 화합하는 인[和合因]이요, 셋째 머무는 인[住因]이요, 넷째 자라는 인[增長因]이요, 다섯째 먼 인[遠因]이니라. 무엇을 내는 인이라 하는가. 내는 인이란 곧 업과 번뇌며, 밖으로는 초목의 종자들이니, 이것을 내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화합하는 인이라 하는가. 선한 것은 선한 마음과 화합하고, 선하지 못한 것은 선하지 못한 마음과 화합하고 기억이 없는 것[無記]은 기억이 없는 마음과 화합하는 것이니, 이것을 화합하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머무는 인이라 하는가. 마치 아래에 기둥이 있으면 집이 무너지지 아니하고, 산과 강과 초목은 땅을 인하여 머물러 있는 것같이 안으로 4대와 한량없는 번뇌가 있으므로 중생이 머물러 있나니, 이것을 머무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자라는 인이라 하는가. 의복과 음식 따위를 인연하여 중생이 자라는 것이니, 마치 종자가 불에 타지 아니하고 새가 먹지 아니하면 자라는 것 같으며, 사문(沙門)이나 바라문들이 화상(和上)이나 선지식을 의지하여 자라는 것 같으며, 부모를 인하여 아들이 자라는 따위니, 이것을 자라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먼 인이라 하는가. 마치 주문을 인하여 귀신이 침로하지 못하고 독이 해하지 못하며, 임금을 의지하여 도적이 없으며 싹이 땅과 물과 더운 것과 바람을 인하며, 물과 젓는 것과 사람의 노력이 생소[酥]의 먼 인이 되며, 밝음과 빛이 식(識)의 먼 인이 되며, 부모의 정기와 피가 중생의 먼 인이 되나니, 시절 같은 것을 이름하여 먼 인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는 이러한 다섯 가지 인으로 이룬 것이 아니어늘, 어찌하여 무상의 인이라 말하겠는가.
또 선남자여, 다시 두 가지 인이 있으니, 짓는 인[作因]과 아는 인[了因]이니라. 마치 옹기장이의 물레와 노끈 따위는 짓는 인이라 하고, 등촉으로 어두운 데 물건을 비치는 것은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대열반은 짓는 인을 따라 있는 것이 아니고, 아는 인으로 좇아 있는 것이니, 아는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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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함은 37조도법과 6바라밀 등으로 이것을 아는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시는 열반의 인이요, 대열반의 인은 아니니, 보시바라밀이라야 대열반의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37품은 열반의 인이요, 대열반의 인은 아니니,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 동안의 도를 돕는 법이라야 대열반의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보시는 보시바라밀이라 이름하지 못하고, 어떠한 보시는 보시바라밀이라 이름하오며, 내지 반야는 어찌하면 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하지 못하고 어찌하면 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합니까? 어떤 것은 열반이라 이름하고, 어떤 것은 대열반이라 이름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방등한 대반열반을 수행함에는 보시를 듣지 못하고 보시를 보지 못하며, 보시바라밀을 듣지 못하고 보시바라밀을 보지 못하며, 내지 반야를 듣지 못하고 반야를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듣지 못하고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며, 열반을 듣지 못하고 열반을 보지 못하며, 대열반을 듣지 못하고 대열반을 보지 못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 법계를 알고 보며 실상을 이해하여, 공하여 있는 것이 없고 화합하여 깨닫는 모양이 없으며, 무루의 모양과 짓는 일이 없는 모양과 환술과 같은 모양과 더울 때의 아지랑이 같은 모양과 건달바성 따위의 비고 공한 모양을 얻게 되리니, 보살이 이러한 모양을 얻으면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이 없어서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할 것이며,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진실한 모습이며, 실상에 머문다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그 때에는 이것은 보시요 이것은 보시바라밀이며, 내지 이것은 반야요 이것은 반야바라밀이며, 이것은 열반이요 이것은 대열반임을 스스로 알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어찌하여 이것은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라 하는가. 달라는 이가 있음을 보고야 주는 것은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거니와, 달라는 이가 없는데, 마음을 내어 스스로 주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때때로 주는 것은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거니와, 항상 주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다른 이에게 주고는 도로 후회하는 마음을 내면, 이것은 보시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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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밀이 아니거니와, 주고는 후회하지 아니하면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재물에 대하여 임금·도둑·수재·화재의 네 가지 공포한 마음을 내어 기쁘게 보시하면 이름을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과보를 희망하여 주는 것은 이름이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며, 주고도 갚음을 바라지 않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공포(恐怖)나 명예나 이양이나 집의 규모[家法]를 상속하거나 천상의 5욕락을 위한다면, 교만을 위함이고, 아는 동무[知識]를 위함이고 오는 세상의 과보를 위하는 것이므로, 장사하는 법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서늘한 그늘을 위하고 꽃과 과실과 재목을 얻기 위하여 사람이 나무를 심는 것과 같나니, 만일 이런 보시를 행한다면 그것은 보시라 이름하거니와 바라밀은 아니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대열반을 수행하는 이는 보시하는 이· 받는 이·주고 받는 재물을 보지 아니하며, 시절을 보지 아니하며, 복밭과 복밭 아님을 보지 아니하며, 인을 보지 않고 연을 보지도 않고 과보도 보지 아니하며, 짓는 이도 보지 아니하고 받는 이도 보지 아니하며, 많음도 보지 않고 적음도 보지 않고, 깨끗함도 보지 않고 부정함도 보지 아니하며, 받는 이와 자기와 재물을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며, 보는 이도 보지 아니하고 보지 않는 이도 보지 아니하며, 자기와 남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다만 방등한 대반열반의 항상 머무는 법을 위하므로 보시를 수행하고 모든 중생을 이익하기 위하여 보시를 행하며, 온갖 중생의 번뇌를 끊기 위하여 보시를 행하며,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받는 이·주는 이·재물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보시를 행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큰 바다에 빠졌을 때에 송장이라도 붙들면 벗어나게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할 때에도 그와 같아서 송장과 같이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옥에 갇히면, 문이 굳게 잠기고 뒷간 구멍만이 있는데, 그리로 나와서라도 자유로운 곳에 가려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할 때에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존귀한 사람이 위급하고 무서울 때에 의지할 데가 없으면 전다라에게라도 의지하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병난 사람이 병고를 소멸하고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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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얻기 위하여서는 부정한 것이라도 먹는 것과 같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바라문들이 곡식이 귀할 적에는 목숨을 위하여서 개고기라도 먹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대열반 중에서는 이러한 일을 한량없는 겁 동안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듣는 것이니, 지계와 지계바라밀과, 내지 반야와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의 『잡화경(雜花經)』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는가. 12부 경전은 뜻이 매우 깊어서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인데, 이제 이 경을 인하여 구족하게 들으며, 먼저 들었다 하더라도 이름만 듣다가 이제 이 대반열반경에서 뜻을 들었으며, 성문·연각도 12부 경전의 이름만 듣고 뜻을 듣지 못하였다가 이 경에서 갖춰 들었으니, 이것을 일러서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성문·연각의 경에서는 부처님에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는 것과 필경에 멸하지 않는다는 것과 삼보의 불성에 차별이 없다는 것과 4중금을 범하였거나, 방등경을 비방하였거나, 5역죄를 지었거나, 일천제들이 모두 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다가, 지금 이 경에서 듣는 것을 이름하여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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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16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0. 청정한 행 ③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시기를 ‘세간에서 아는 것은 나도 알고 세간에서 모르는 것도 나는 아노라’ 하였사온데, 그 뜻이 어떠하오니까?”
“선남자야, 모든 세간은 불성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나니, 만일 불성을 알고 보고 깨닫는 이가 있으면 세간이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보살이라 이름하느니라. 세간 사람들은 12부경과 12인연과 네 가지 뒤바뀜과 4제(諦)와 37품(品)을 듣는 일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대반열반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나니, 만일 알고 보고 깨달으면, 세간이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보살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은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하는가. 범천·자재천·8비천(臂天)·성품·때(時)·티끌·법·그리고 법 아닌 것[非法], 조화의 주인[造化主], 세계의 나중과 처음, 아주 없다는 것[斷見], 늘 있다는 것[常見], 초선에서 비비상천까지를 열반이라고 말하는 따위니, 선남자야, 이런 것을 이름하여 세간에서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런 일에도 알고 보고 깨닫나니, 보살이 이렇게 알고 보고 깨닫고도, 만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노라 말하면, 이는 허망한 것이요 허망한 법은 죄가 되는 것이며, 이런 죄로는 지옥에 떨어지느니라. 선남자야, 남자나 여인이나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도와 보리와 열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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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고 말하면, 이런 이는 일천제며 마군의 권속이며 법을 비방하는 것이니, 이렇게 법을 비방하는 것을 부처님들을 비방한다고 하느니라. 이런 사람은 세간이라 이름하지도 않고, 세간이 아니라고 이름하지도 않느니라.”
그 때에 가섭보살은 이 일을 듣고는 곧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인자하게 중생들을 사랑하시니,
그러할새 제가 지금 귀의하오며
중생들의 독한 살을 뽑아 주시기에
큰 의원 왕이라고 일컫습니다.

세상의 의원들이 고친 병들은
나았다가 또다시 도지거니와
여래께서 고치신 우리의 병은
끝까지 다시 발병 아니하나니.

세존께서 훌륭한 감로약으로
우리를 중생에게 베푸시오니
중생들이 그 약을 한번 먹으면
죽지도 아니하고 나지도 않네.

부처님이 오늘날 우리를 위해
대반열반 큰 경을 연설하시니
중생들이 비밀한 법장 듣삽고
나고 죽지 않는 일 얻었나이다.

가섭보살은 이런 게송을 말하고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세간 사람들이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다’ 하시니, 만일 보살도 세간이라면, 세간 사람들은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이 알고 보고 깨닫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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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요, 만일 세간이 아니라면 어떻게 다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야, 보살이라 말함은 세간이기도 하고 세간이 아니기도 하나니,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세간이라 이름하고,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세간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어떻게 다르냐고 그대가 물은 것을 지금 말하리라. 선남자야, 남자나 여인이 처음으로 이 열반경을 듣고 공경하고 믿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는 이는 세간 보살이라 이름하나니, 모든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보살도 세간과 같아서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지만 보살이 열반경을 듣고는 세간에서는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나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달아야 할 줄을 아느니라. 이런 것을 알고는 또 생각하기를 ‘내가 무슨 방편으로 닦아 익히어야, 알고 보고 깨닫게 되겠는가’ 하며, 다시 생각하기를 ‘오직 깊은 마음으로 깨끗한 계율을 닦아 지녀야 하리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때의 이러한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 태어날 적마다 계행이 항상 깨끗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계행이 깨끗함으로써 곳곳에 태어날 적마다 교만이나 삿된 소견이나 의심이 없으며, 여래가 필경에 열반에 든다고 말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깨끗한 계행을 닦는다 하느니라. 계행이 깨끗하고는 다시 선정을 닦나니, 선정을 닦으므로써 곳곳에 태어날 적마다 바르게 기억하고 잊지 아니하나니, 온갖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는 것과, 12부경과 부처님들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모든 보살이 방등 대반열반경에 편안히 머물러서 불성을 보는 것 따위의 일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며, 선정을 닦는 인연으로 11공(空)을 얻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청정한 선정을 닦는다 하느니라. 계행과 선정을 구비하고는 다음에 깨끗한 지혜를 닦나니, 지혜를 닦으므로 애초부터 몸속에 내가 있다거나, 내 속에 몸이 있다거나 이것이 몸이고 이것이 나라든가, 몸이 아니고, 내가 아니라는 데 집착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깨끗한 지혜를 닦는다 하느니라.
지혜를 닦음으로써 받아 지니는 계율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아니하나니, 선남자야, 마치 수미산이 네 가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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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뒤바뀜에 흔들리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때에 스스로 받아지니는 계율이 흔들림이 없는 줄을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 세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자기의 지니는 계행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아니하여 뉘우치는 마음이 없으며, 뉘우침이 없으므로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기쁘므로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을 얻으므로 마음이 편안하여지고, 편안하므로 동요하지 않는 선정을 얻고, 동요하지 않는 선정을 얻으므로 진실하게 알고 보게 되며, 진실하게 알고 보았으므로 생사를 싫어하여 여의고, 생사를 여의므로 해탈을 얻고, 해탈을 얻으므로 불성을 분명하게 보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요 세간이 아니라 아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말하여 세간이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들은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이 깨끗한 계행을 닦아 마음에 뉘우침이 없으며, 나아가서 불성을 분명하게 본다 하나이까?”
“선남자야, 세간의 계율은 청정하다고 이름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세간의 계율은 생존[有]을 위하는 연고며, 성품이 결정되지 못한 연고며, 끝까지 이르지 못한 연고며, 모든 중생을 널리 위하지 못하는 연고니, 그러므로 깨끗하지 못하다 이름하느니라. 깨끗하지 못하므로 뉘우치는 마음이 있고, 뉘우침이 있으므로 마음에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으므로 즐겁지 못하고, 즐겁지 못하므로 편안하지 못하고, 편안하지 못하므로 동요하지 않는 선정이 없고, 동요하지 않는 선정이 없으므로 진실하게 알고 보지 못하고, 진실하게 알고 보지 못하므로 싫어함이 없고, 싫어함이 없으므로 해탈이 없고, 해탈이 없으므로 불성을 보지 못하고, 불성을 보지 못하므로 마침내 대반열반을 얻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세간의 계율은 청정하지 못하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계율이란 것은, 계율이 계율 아닌 까닭이며, 생존을 위하는 것이 아닌 까닭이며, 결정코 끝까지 이르는 까닭이며,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계율이 청정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계율 속에서는, 뉘우침이 없는 마음을 내지 않고자 하더라도 뉘우침이 없는 마음이 자연히 생기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밝은 거울을 들었으면 얼굴을 보려 하지 않더라도 얼굴이 저절로 나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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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농부가 밭에 씨를 심으면, 싹이 나기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싹이 저절로 나는 것이며, 또 등불을 켜면 어둠을 없애려 하지 않아도 어둠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깨끗한 계율을 가지면, 뉘우침이 없는 마음이 자연히 생기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깨끗한 계율을 가지므로 마음이 기쁘게 되나니 선남자야, 마치 단정하게 생긴 사람이 자기의 얼굴을 보면 기쁜 마음이 생기듯이 깨끗한 계율을 가지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파계한 사람이 계율이 깨끗하지 못함을 보면, 마음이 기쁘지 아니하나니, 마치 병신이 자기의 모양을 보면 기쁘지 아니한 것처럼, 파계한 사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마치 소를 기르는 두 여인이 있는데 하나는 타락 병을 가지고 또 하나는 물만 들어 있는 병을 가지고서, 함께 성안에 가서 팔려다가 길에서 넘어져서 두 병이 모두 깨어지거늘, 한 사람은 기뻐하고 한 사람은 근심하였으니, 계율을 가지는 이와 계율을 파한 이도 그와 같아서, 깨끗한 계율을 가지는 이는 마음이 기쁘니라. 마음이 기쁘므로 문득 생각하기를 ‘부처님 여래께서 열반경에서 청정한 계율을 가지는 이는 열반을 얻느니라 하였으니, 내가 지금 깨끗한 계율을 닦는 일로 열반을 얻으리라’ 하고, 이 인연으로 마음이 즐거우니라.”
가섭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기쁨과 즐거움은 무슨 차별이 있나이까?”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 적에는 기쁘다 하고, 마음이 깨끗하여 계율을 가지는 것은 즐겁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생사를 관찰하는 것은 기쁘다 하고, 대열반을 보는 것은 즐겁다 하느니라. 하품은 기쁘다 하고, 상품은 즐겁다 하나니, 세간과 함께하는 법을 여의는 것은 기쁘다 하고 함께하지 않는 법을 얻는 것은 즐겁다 하느니라. 계율이 깨끗하므로 몸이 가벼워지고 입에 허물이 없으면, 그 때에 보살의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아는 것에 나쁜 일이 없고, 나쁜 일이 없으므로 마음이 편안하여지고, 편안하므로 고요한 선정을 얻고, 고요한 선정을 얻으므로 진실하게 알고 보고, 진실하게 알고 보므로 생사가 싫어서 여의려 하고, 생사를 여의므로 해탈을 얻고, 해탈을 얻으므로 불성을 보고, 불성을 보았으므로 대반열반을 얻나니, 이것을 보살의 청정하게 가지는 계율이요 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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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이 아니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받은 깨끗한 계율은 다섯 가지 법이 돕는 것이니, 무엇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믿음[信]이요 둘째는 제부끄러움[慚]이요 셋째는 남부끄러움[愧]이요 넷째는 선지식이요 다섯째는 공경하는 계율을 숭상함이니, 5개(盖)를 여의는 까닭이며, 소견이 깨끗하나니 5견(見)을 여의는 까닭이며, 마음에 의심이 없나니 다섯 가지 의심을 여의는 까닭으로 첫째는 부처님을 의심하고, 둘째는 법을 의심하고, 셋째는 승가를 의심하고, 넷째는 계율을 의심하고, 다섯째는 방일하지 않음을 의심함이니라. 보살이 이 때에 5근(根)을 얻나니, 믿음·생각·정진·선정·지혜며, 5근을 얻으므로 다섯 가지 열반을 얻나니, 빛에서 해탈함[色解脫]이며 내지 알음알이에서 해탈함[識解脫]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깨끗한 계율이라 하나니, 세간의 계율이 아니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 사람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데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로서 대반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면서, 계율을 파하는 이가 있거든, 어떤 사람이 꾸짖고 업신여기고 훼방하여 말하기를 ‘만일 부처님의 비밀한 법장인 대반열반경이 위력이 있다면 어찌하여 너로 하여금 받은 계율을 파하게 하였겠느냐. 이 열반경을 받아 가지는 사람이 계율을 파하는 것은 이 경이 위력이 없음을 알 것이요, 위력이 없다면 비록 읽고 외운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할 것이며, 이렇게 열반경을 업신여기고 훼방케 하는 인연으로써,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할 것이니, 이 경을 받아 가지면서 계율을 파하는 이는 중생의 나쁜 지식이며, 나의 제자가 아니요 마군의 권속이니라. 이런 사람은 이 경전을 받아 가지는 것을 나도 허락하지 아니하나니, 차라리 받지도 않고 가지지도 않고 닦지도 않을지언정, 계율을 파하면서 받아 가지고 닦지는 못하게 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나의 제자로서 대반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려거든,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조심하여 희롱하거나 경솔한 동작을 말아야 하느니라. 몸은 희롱함이 되고 마음은 경솔한 동작이 되나니 유(有)를 구하는 마음을 경솔한 동작이라 하고, 몸으로 여러 가지 업을 지음을 희롱이라 하느니라. 만일 나의 제자로서 유를 구하여 업을 짓는 이 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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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인 대반열반경을 받아 가지지 말아야 하리니, 이런 이가 경을 받아 가지면 사람들이 업신여기며 꾸짖어 말하기를 ‘부처님의 비밀한 법장인 대반열반경이 위력이 있다면, 어찌 너로 하여금 유를 구하여 업을 짓게 하겠느냐. 경을 받아 가지는 사람이 유를 구하여 업을 짓는 것은, 이 경이 위력이 없음을 알 것이요, 만일 위력이 없다면 비록 받아 가진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할 것이며, 이렇게 열반경을 업신여기고 훼방케 하는 인연으로써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할 것이니, 이 경을 받아 가지면서 유를 구하여 업을 짓는 이는 중생의 나쁜 지식이며, 나의 제자가 아니요 마군의 권속이니라.
또 선남자야, 나의 제자로서 대반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연설하려거든, 때 아닌 때에 말하지 말며, 나라 아닌 데서 말하지 말며, 청하지 않는데 말하지 말며, 경솔한 마음으로 말하지 말며, 곳곳마다 말하지 말며, 자기를 찬탄하여 말하여 말며, 남을 업신여기어 말하지 말며, 부처님 법을 없이하는 말을 하지 말며, 세상 법을 치성하게 하는 말을 하지 말지니라.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로서 이 경을 받아 가지고 때 아닌 때에 말하거나 내지 세상 법을 치성하게 말을 하는 이는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꾸짖어서 말하기를 ‘부처님의 비밀한 법장인 대반열반경이 위력이 있다면, 어찌 너로 하여금 때 아닌 때에 말하며, 나아가 세상 법을 치성하게 하는 말을 하겠느냐. 경을 받아 가지는 이가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이 경이 위력이 없음을 알 것이요, 만일 위력이 없다면 비록 받아 가진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할 것이며, 이렇게 열반경을 업신여기고 훼방케 하는 인연으로써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을 지옥에 떨어지게 할 것이니, 이 경을 받아 가지면서 때 아닌 때에 말하거나, 나아가 세상 법을 치성하게 말하는 이는 중생의 나쁜 지식이며 나의 제자가 아니요 마군의 권속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받아 가지려는 이와 대반열반경을 말하려는 이와 불성을 말하려는 이와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말하려는 이와 대승을 말하려는 이와 방등경전을 말하려는 이와 성문승을 말하려는 이와 벽지불승을 말하려는 이와 해탈을 말하려는 이와 불성을 보려는 이는 먼저 몸을 깨끗이 해야 하나니, 몸이 깨끗하므로 꾸짖는 책망이 없고, 꾸짖는 책망이 없으므로 한량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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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하여금 대열반에 들어가서 깨끗한 신심이 나게 할 것이요, 신심이 생기므로 이 경을 공경할 것이니라. 만일 한 게송, 한 구절, 한 글자를 듣거나 법을 말하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낼 것이니, 이 사람은 중생들의 선지식이요 나쁜 지식이 아니며, 나의 제자요 마군의 권속이 아니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요 세간이 아니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세간 사람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데,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어떤 것을 모든 세간에서는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라 하는가. 그것은 6념처(念處)니,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보시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어떻게 부처님을 생각하는가.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은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하며, 10력과 4무소외를 구족하여 크게 사자후 하시므로 이름을 대사문이라 하며 대바라문이라 하며 깨끗하게 구경의 저 언덕에 이른 이라 하며, 이길 수 없는 이·정수리를 볼 수 없는 이·두려움 없는 이·놀라지 않고 변동없는 이·혼자요 짝할 이 없는 이·스승 없이 혼자 깨달은 이며, 빠른 지혜·큰 지혜·예리한 지혜·깊은 지혜·해탈한 지혜·함께하지 않는 지혜·넓은 지혜·필경의 지혜로서 지혜의 보배를 성취한 이며, 사람 중의 코끼리와, 사람 중의 우왕(牛王)·사람 중의 용왕·사람 중의 장부·사람 중의 연꽃과 분다리꽃·사람을 억제하는 스승이며 대시주·대법사라 이름하나니, 법을 앎으로 대법사라하고, 이치를 앎으로 대법사라 하고, 때를 앎으로 대법사라 하고, 만족함을 앎으로 대법사라 하고, 나를 앎으로 대법사라 하고, 대중을 앎으로 대법사라 하고, 중생들의 가지가지 성품을 앎으로 대법사라 하고, 모든 근성의 영리하고, 둔하고 중품임을 앎으로 대법사라 하고, 중도(中道)를 말하므로 대법사라 이름하느니라.
어찌하여 여래라 이름하는가. 지나간 세상의 부처님들처럼 말씀하는 것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나간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느라고 12부경을 연설하였는데, 여래도 그러하므로 여래라 이름하며, 부처님 세존들이 6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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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37품과 11공(空)으로부터 와서 대열반에 이르렀거든, 여래도 그러하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여래라 하며, 부처님 세존들이 중생을 위하여 적당한 방편으로 삼승을 열어 보이었으며, 수명이 한량없어 계산할 수 없거든, 여래도 그러하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여래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응(應)이라 하는가. 세간 법은 모두 원수라 하는데, 부처님이 응당히 해(害)할 것이므로 응이라 하며, 네 가지 마군은 보살의 원수인데, 부처님이 보살이던 때에 지혜로 네 가지 마군을 깨뜨렸으므로 응이라 하느니라. 또 응이란 말은 멀리 여읜다는 뜻이니, 보살이던 때에 한량없는 번뇌를 응당 멀리 여의었으므로 응이라 하며, 또 응이란 말은 즐겁다는 뜻이니, 지난 세상 부처님들이 보살이던 때에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중생들을 위하여 많은 고통을 받더라도 싫어하지 않고 항상 즐거워하였거든, 여래도 그러하므로 응이라 하느니라. 또 응이란 말은 모든 인간·천상 사람들이 응당 여러 가지 향과 꽃과 영락과 짐대[幢]와 깃발과 음악으로 공양하나니, 그러므로 응이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정변지(正遍知)라 하는가. 정이란 말은 뒤바뀌지 않았다는 뜻이요, 변지란 말은 네 가지 뒤바뀐 것을 모두 안다는 뜻이며, 또 정은 고행(苦行)이란 말이요, 변지는 고행의 원인으로는 결정코 괴로운 결과가 있음을 아는 것이며, 또 정은 세간의 중도란 뜻이요 변지는 중도를 닦으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을 끝까지 안다는 뜻이며, 또 정은 셀 수 있고 요량할 수 있고 일컬을 수 있다는 뜻이요, 변지는 셀 수 없고 요량할 수 없고 일컬을 수 없다는 뜻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정변지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성문이나 연각은 변지하기도 하고 변지하지 못하기도 하느니라. 왜냐 하면 변지라 함은 5음·12입·18계를 이름하나니, 성문·연각도 두루 알 수 있으므로 변지라 이름하느니라. 무엇을 변지하지 못한다 하는가. 선남자야, 가령 2승(乘)이 한량없는 겁에 한 색음(色陰)을 관찰하더라도 다 알지 못하나니, 이런 뜻으로 성문·연각은 변지할 수 없다 하느니라.
어찌하여 명행족(明行足)이라 하는가. 명은 한량없는 선한 과보를 얻는다는 말이요, 행은 발이란 뜻이며, 선한 과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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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 발은 계율과 지혜를 이름함이니, 계율과 지혜의 발을 의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므로 명행족이라 하느니라. 또 명은 주문이요, 행은 길하다는 말이요, 족은 과보니, 선남자야, 이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거니와, 주문은 해탈이라 하고, 길한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고, 과보는 대반열반이니, 그러므로 명행족이라 하느니라. 또 명은 광명이요, 행은 업이요, 족은 과보니 선남자야, 이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거니와, 광명은 방일하지 않음이요, 업은 여섯 가지 바라밀이요, 과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또 명은 3명이니 보살의 명·부처의 명·무명의 명(無明明)이라, 보살의 명은 곧 반야바라밀이요, 부처의 명은 곧 부처님 눈이요, 무명의 명은 곧 필경공이니라. 행은 한량없는 겁에 중생을 위하여 선한 업을 닦음이요, 족은 불성을 분명히 보는 것이니, 이런 뜻으로 명행족이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선서(善逝)라 하는가. 선은 높다는 말이요 서는 높지 않다는 말이니, 선남자야, 이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거니와, 높은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높지 않은 것은 여래의 마음이니라. 선남자야, 마음이 높은 이는 여래라 이름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여래를 선서라 하느니라. 또 선은 선지식이란 말이요 서는 선지식의 과보니, 선남자야, 이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거니와, 선지식은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것이요, 과보는 대반열반을 말하는 것이니, 여래는 최초에 낸 마음을 버리지 아니하고 대열반을 얻는 것이므로 여래를 이름하여 선서라 하느니라. 또 선은 좋다는 뜻이요 서는 있다는 뜻이니, 선남자야, 이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거니와 좋다 함은 불성을 보는 것이요, 있다 함은 대열반이니라. 선남자야, 열반의 성품은 실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부처님들이 세간을 인하여서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선남자야, 마치 세상 사람이 실로 아들이 없건만 아들이 있다고 말하고, 실로 길이 없건만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열반도 그러하여 세간을 인하여서 있다고 말하나니, 부처님 세존이 대열반을 이루는 까닭으로 선서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세간해(世間解)라 하는가. 선남자야, 세간이란 것은 5음이란 뜻이요, 해란 것은 안다는 뜻이니 부처님 세존은 5음을 잘 아는 까닭으로 세간해라 하느니라. 또 세간은 다섯 가지 탐욕이요, 해는 집착하지 아니함이니, 다섯 가지 탐욕에 집착하지 아니하므로 세간해라 하느니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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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해라 함은 동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를 모든 성문·독각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거니와, 부처님께서는 모두 알고 모두 보고 모두 이해하나니, 남방·서방·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하방도 그와 같으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세간해라 하느니라. 또 세간은 온갖 범부요, 해는 범부들의 선하고 악한 원인과 결과를 아는 것이니, 성문과 연각의 알 것이 아니고, 부처님만이 앎으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세간해라 하느니라. 또 세간은 연꽃이라 이름하고 해는 더럽히지 않는다 이름하나니, 선남자야, 이것은 세간의 뜻을 이름하거니와, 연꽃은 곧 여래요, 더럽히지 않음은 여래가 세간의 여덟 가지 법에 더럽히지 아니함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세간해라 하느니라. 또 세간해는 부처님과 보살들을 세간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부처님과 보살들은 세간을 보는 까닭으로 세간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밥으로 인하여 생명을 보존하므로 밥을 이름하여 생명이라 하듯이,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세간을 보는 까닭으로 세간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하여 무상사(無上士)라 하는가. 상사라는 말은 끊는다는 뜻이요, 끊을 것이 없으므로 무상사라 이름하나니, 부처님 세존은 번뇌가 없으므로 끊을 것이 없고,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 하느니라. 또 상사는 다툰다는 뜻이요, 무상사는 다툼이 없다는 것이니, 여래는 다툼이 없으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 하느니라. 또 상사는 말을 깨뜨릴 수 있음이요, 무상사는 말을 깨뜨릴 수 없음이니, 여래가 말한 것은 모든 중생들이 깨뜨릴 수 없으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 하느니라. 또 상사는 윗자리라 이름하고, 무상사는 위가 없는 자리라 이름하니, 삼세의 부처님들은 다시 그보다 지나갈 이가 없으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 하느니라. 상(上)은 새것이요 사(士)는 낡은 것이니, 부처님 세존은 대열반을 체득하여 새것도 없고 낡은 것도 없으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무상사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조어장부(調御丈夫)라 하는가. 자기가 이미 장부(丈夫)인데 다시 장부를 조복 어거[調御]하는 것이니, 선남자야, 여래는 실로는 장부도 아니고 장부 아닌 것도 아니지만, 장부를 조복 어거하므로 여래를 이름하여 조어장부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남자나 여인이 네 가지 법을 갖추면 장부라 이름하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선지식이요, 둘째는 능히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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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듣고, 셋째는 뜻을 생각하고, 넷째는 말한 대로 수행함이니라. 선남자야, 남자나 여인이나 이 네 가지 법을 갖추면 장부라 이름하려니와 선남자야, 남자라도 이 네 가지 법이 없으면, 장부라 이름하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몸은 비록 장부나 행동은 짐승과 같기 때문이니라. 여래는 남자와 여인을 조복하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조어장부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말을 모는 데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털에 닿고, 둘째는 가죽에 닿고, 셋째는 살에 닿고, 넷째는 뼈에 닿음이니라. 닿는 대로 따라서 어거하는 이의 뜻에 맞게 하느니라. 여래도 그러하여 네 가지 법으로 중생을 조복하나니, 첫째는 나는 일을 말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받게 하나니, 마치 털에 닿게 하여 모는 이의 뜻에 맞게 함이요, 둘째는 나고 늙는 일을 말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받게 하나니, 털과 가죽에 닿게 하여 모는 이의 뜻에 맞게 함이요, 셋째는 나고 늙고 병드는 일을 말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받게 하나니, 털과 가죽과 살에 닿게 하여 모는 이의 뜻에 맞게 함이요, 넷째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말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받게 함이니, 털과 가죽과 살과 뼈에 닿게 하여 모는 이의 뜻에 맞게 함이니라. 선남자야, 말을 모는 이가 말을 조복함에는 결정함이 없지만 여래 세존이 중생을 조복함에는 반드시 결정하여 허망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조어장부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천인사(天人師)라 하는가. 사(師)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착하게 가르침이요, 둘째는 나쁘게 가르침이니라. 부처님과 보살은 항상 착한 법으로 중생들을 가르치나니, 무엇을 착한 법이라 하는가. 몸과 입과 뜻으로 하는 선이니,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을 가르칠 때에 이러한 말을 하느니라. ‘선남자야, 너는 마땅히 몸으로 짓는 나쁜 업을 여의어야 하나니, 왜냐 하면 몸으로 짓는 나쁜 업을 여의면, 해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법으로 저를 가르치거니와, 만일 이 나쁜 업을 여의고도 해탈을 얻을 수 없다면, 너로 하여금 멀리 여의라 하지 아니하리라.’ 만일 중생들이 나쁜 업을 여의고도 세 나쁜 갈래에 떨어진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멀리 여의므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 대열반을 얻게 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과 보살이 항상 이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입과 뜻으로 짓는 업도 그와 같나니, 그러므로 부처를 이름하여 위없는 스승[無上師]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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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니라. 또 예전에 얻지 못하였던 도를 지금 얻었으므로 얻은 도를 중생에게 말하며, 본래는 깨끗한 행을 닦지 못하였다가 지금에는 닦았으므로 자기의 닦은 것으로 중생에게 말하며, 스스로 무명을 깨뜨렸으므로 중생을 위하여 무명을 깨뜨리게 하며, 스스로 깨끗한 눈을 얻었으므로 다시 중생을 위하여 어두운 눈을 제하고 깨끗한 눈을 얻게 하며, 스스로 두 가지 이치[二諦]를 알고 다시 중생을 위하여 두 가지 이치를 말하며, 스스로 해탈하고 중생을 위하여 해탈하는 법을 말하며, 스스로 가없는 생사의 강을 건너고 중생들로 하여금 건너게 하며, 자기가 두려움 없음을 얻고 중생들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게 하며, 자기가 열반을 얻고 또 중생들에게 대열반을 연설하므로, 부처를 이름하여 위없는 스승이라 하느니라.
천(天)은 낮이라 이름하나니, 천상은 낮이 길고 밤이 짧으므로 천이라 하느니라. 또 천은 근심이 없다는 뜻이니, 항상 쾌락을 받으므로 천이라 하느니라. 또 천은 등불이라 하나니, 컴컴한 어둠을 깨뜨리고 밝게 하므로 천이라 하며, 또 나쁜 업의 어둠을 깨뜨리고 선한 업을 얻어 천상에 태어나게 하므로 천이라 하느니라. 또 천은 길하다는 뜻이니, 길상하므로 천이라 하느니라. 또 천은 해라는 뜻이며, 해는 광명이 있으므로 해를 이름하여 천이라 하나니, 이런 뜻으로 천이라 하느니라. 인(人)이라 함은 해는 은혜가 많다는 뜻이며, 또 인은 몸과 입이 부드럽다는 것이며, 또 인은 교만이 있다 이름하며, 또 인은 교만을 깨뜨린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부처님이 모든 중생에게 위없는 스승이 되지만 경전에서 천인사라 말하였으니, 왜냐 하면 선남자야, 모든 중생 중에 천과 사람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낼 수 있으며, 10선업을 닦아서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과와 벽지불의 도를 얻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천인사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불(佛)이라 하는가. 불은 깨닫는다는 뜻이니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마치 도둑이 주인이 있는 줄을 알면 당황하여 어찌할 수 없듯이 보살마하살도 한량없는 온갖 번뇌를 깨달았으며 깨달은 뒤에는 번뇌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게 하나니, 그러므로 불이라 하며, 깨달았으므로 나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나니,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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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불이라 이름하느니라.
바가바[世尊]라는 것은 바가(婆伽)는 깨뜨린다는 뜻이요 바(婆)는 번뇌라는 뜻이니, 번뇌를 능히 깨뜨리므로 바가바라 하느니라. 또 모든 선한 법을 성취하는 까닭이며, 또 모든 법의 뜻을 잘 아는 까닭이며, 큰 공덕이 있어 이길 이가 없는 까닭이며, 큰 소문이 시방에 두루 퍼진 까닭이며, 가지가지 큰 지혜로 보시하는 까닭이며, 또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여근(女根)을 받지 않은[吐]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남자나 여인이 이렇게 부처님을 생각하면,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낮에나 밤에나 밝거나 어둡거나 간에 항상 여의지 않고 부처님 세존을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여래·응공·정변지, 나아가 바가바라 이름하며,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과 큰 이름이 있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옛적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부모와 화상과 스승들과 상좌(上座)와 장로에게 공경하였으며, 한량없는 겁 동안에 중생들을 위하여 항상 보시를 하고 계율을 가지고 인욕을 익히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선정과 지혜와 대자와 대비와 대희와 대사를 행하였으므로 지금 32상과 80종호의 금강 같은 몸을 얻었느니라. 또 보살이 옛적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신심과 생각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의 근본을 닦았으며, 여러 스님들을 공경하고 공양하였으며, 항상 법의 이익을 위하였고 음식의 이익을 위하여 아니하였느니라. 보살이 12부경을 가지며 읽으며 외우는 것은 항상 중생을 위하여 해탈과 편안함과 쾌락함을 얻게 하려는 것이요, 자기를 위함이 아니니, 왜냐 하면 보살은 항상 출세간 마음, 출가한 마음, 함이 없는 마음, 다툼이 없는 마음, 때[垢穢]가 없는 마음, 속박이 없는 마음, 집착이 없는 마음, 덮임이 없는 마음, 무기(無記)가 없는 마음, 생사가 없는 마음, 의심이 없는 마음, 탐욕이 없는 마음, 성냄이 없는 마음,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 교만이 없는 마음, 더러움이 없는 마음, 번뇌가 없는 마음, 괴로움이 없는 마음, 한량이 없는 마음, 넓고 큰 마음, 허공 같은 마음, 없는 마음, 없음이 없는 마음[無無心], 조복한 마음, 보호하지 않는 마음, 숨김이 없는 마음, 세간이 없는 마음, 항상 정한 마음[常定心], 항상 닦는 마음, 항상 해탈한 마음, 갚음이 없는 마음, 서원이 없는 마음, 잘 원하는 마음, 잘못이 없는 마음, 부드러운 마음, 머물지 않는 마음, 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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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음, 무루(無漏)한 마음, 제일의 마음, 물러가지 않는 마음, 무상한 마음, 정직한 마음, 아첨이 없는 마음, 순전히 선한 마음, 다소가 없는 마음[無多少心], 견고함이 없는 마음, 범부가 없는 마음, 성문이 없는 마음, 연각이 없는 마음, 잘 아는 마음, 계를 아는 마음, 생기는 계를 아는 마음, 머무는 계를 아는 마음, 자재한 계의 마음을 닦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지금에 10력과 4무쇠외와 3념처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래, 나아가 바가바라 일컫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을 생각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법을 생각한다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부처님들이 말씀하신 법은 가장 묘하고 가장 높은 것이니, 이 법을 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현재의 과보를 얻게 하거니와, 이 바른 법은 시절이 없으며, 법안(法眼)으로 볼 수 있고, 육안으로 볼 것이 아니며, 비유로 비교할 수도 없으니, 나지도 않고 내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비롯하지도 않고 마치지도 않으며, 함도 없고 셀 수도 없으며, 집이 없는 이에게는 집이 되고, 돌아갈 데 없는 이에게는 돌아갈 데가 되며, 밝음이 없는 데는 밝음이 되며, 저 언덕에 이르지 못한 이는 저 언덕에 이르게 하며, 향이 없는 곳에서는 걸림없는 향이 되며, 볼 수도 없으며 동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고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모든 즐거움을 아주 끊었으나 편안한 쾌락이 끝까지 미묘하며, 빛이 아니고 빛을 끊었지만 그래도 빛이며, 내지 알음알이가 아니고 알음알이를 끊었지만 그래도 알음알이며, 업이 아니고 업을 끊었으며, 맺힘이 아니고 맺힘을 끊었으며, 물건이 아니고 물건을 끊었지만 그래도 물건이며, 계(界)가 아니고 계를 끊었지만 그래도 계며, 유(有)가 아니고 유를 끊었지만 그래도 유며, 입(入)이 아니고 입을 끊었지만 그래도 입이며, 인이 아니고 인을 끊었지만 그래도 인이며, 과가 아니고 과를 끊었지만 그래도 과며, 빈 것도 아니고 참된 것도 아니고, 온갖 참된 것을 끊었지만 그래도 참된 것이며, 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고 나고 멸함을 아주 끊었지만 그래도 생멸하는 것이며, 모양도 멸함을 아주 끊었지만 그래도 생멸하는 것이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고 온갖 모양을 끊었지만 그래도 모양이며, 가르침도 아니고 가르치지 않음도 아니지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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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스승이며, 공포도 아니고 편안함도 아니고 온갖 공포를 끊었지만 그래도 편안하며, 참음도 아니고 참지 않음도 아니고 참지 않음을 아주 끊었지만 그래도 참는 것이며, 고요함도 아니고 고요하지 않음도 아니고 모든 고요함을 끊었지만 그래도 고요하며, 온갖 법의 정수리[頂]이어서 모든 번뇌를 온통으로 끊었으며, 청정하고 모양이 없어 온갖 모양을 영원히 벗어났으며, 한량없는 중생의 필경에 머물 곳이며, 모든 생사의 성한 불을 멸하였으며, 부처님들의 노닐며 계시는 곳이어서 항상 변역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법을 생각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승가를 생각한다 하는가.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聖衆]들은 법답게 머물러 있으면서, 정직한 법을 받고 따라서 수행하며, 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깨뜨릴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고 생각하고 말할 수도 없으며 모든 중생의 좋은 복밭이며, 비록 복밭이나 받는 것이 없고, 청정하여 더럽지 아니하며, 새는 일도 없고 함도 없으며, 넓기는 가없고, 마음은 부드럽고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시끄러움이 없고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승가를 생각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계율을 생각한다 하는가. 보살이 생각하기를, 계율을 파하지 아니하고 새지 아니하고 깨뜨리지 아니하고 잡란하지 아니하며, 비록 형상이 없으나 보호하여 가질 수 있으며, 비록 마주 대할 수 없으나 방편을 닦으면, 구족할 수 있고 허물이 없어, 부처님과 보살의 칭찬하는 바이니 이것이 대방등 대열반의 일이니라. 선남자야, 땅덩이와 같고 배·영락·바다·잿물·집·칼·다리[憍]와 같으며, 의원·약·아가타약·여의주와 같으며, 발·눈·부모·그늘과 같으며, 억지로 빼앗을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으며, 불로 태울 수 없고 물로 휩쓸어 버릴 수 없으며, 큰 산의 사다리 길이요 불·보살의 훌륭한 짐대니라. 이런 계율에 머물면 수다원과를 얻을 것이며, 나도 얻을 명분이 있지만 나는 요구하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내가 만일 수다원과를 얻으면, 모든 중생을 널리 제도할 수 없는 까닭이며, 만일 이 계율에 머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나도 얻을 명분이 있고 내가 요구하나니, 왜냐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면 중생들을 위하여 묘한 법을 말하여 구원을 지을 수 있으리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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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을 생각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시를 생각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관찰하기를, 보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인이 된다 하며, 부처님과 보살들이 이와 같이 보시를 친근하고 닦았으니 나도 그와 같이 친근하고 닦는다 하며, 만일 보시하지 아니하고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장엄할 수 없으며, 보시가 필경까지 번뇌를 끊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번뇌를 덜어버릴 수 있으며, 보시한 인연으로 시방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항하의 모래 수 세계의 중생들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며, 보살마하살이 중생에게 밥을 보시하면 곧 생명을 보시함이니, 이 과보로 성불할 때에 항상 번역하지 아니하며, 즐거움을 보시한 인연으로 성불할 때에 안락을 얻으며, 보살이 보시할 때에 법답게 재물을 구하고 저 사람의 것을 침노하여 이 사람에게 보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성불할 때에 청정한 열반을 얻으며, 보살이 보시할 때에 중생들로 하여금 구하지 않고 얻게 하였으므로, 성불할 때에 자재한 나를 얻으며, 보시한 인연으로써 다른 이로 하여금 힘을 얻게 하였으므로, 성불하여서 10력을 얻으며, 보시한 인연으로써 다른 이로 하여금 말할 수 있게 하였으므로 성불하여서 4무애(無礙)를 얻으며, 부처님과 보살이 보시를 닦아서 열반의 인이 되었으므로 나도 그와 같이 보시하여 열반의 인을 삼으리라 하나니, 자세히 말한 것은 『잡화경(雜花經)』과 같으니라.
어떤 것을 가리켜 하늘을 생각한다 하는가. 사천왕천으로부터 내지 비상비비비상처천이 있나니, 만일 신심이 있으면 사천왕천을 얻게 되나니 나도 얻을 명분이 있으며, 만일 계율과 많이 아는 것[多聞]과 보시와 지혜로 사천왕천으로부터 나아가 비상비비상처를 얻으며, 나도 또한 얻을 명분이 있으며 내가 욕구하는 것은 아니니, 왜냐 하면 사천왕천과 내지 비상비비상처천은 모두 무상한 것이며, 무상한 연고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니, 이런 뜻으로 내가 욕구하지 않는 것이니라. 마치 환술로는 어리석은 사람은 속일 수 있거니와, 지혜로운 사람은 의혹케 하지 못하나니, 환술은 사천왕천과 내지 비상비비상처천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온갖 범부들이거니와, 나는 어리석은 범부와는 같지 아니하니라. 나는 제일의천(第一義天)이 있음을 들었으니, 부처님과 보살들이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함이며, 항상 머물러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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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이니라. 나는 중생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제일의천을 구하게 하나니, 왜냐 하면 제일의천은 중생들로 하여금 번뇌를 끊어버리기를 의수(意樹)와 같게 하느니라. 만일 나에게 신심이 있고 나아가 지혜가 있으면 제일의천을 얻게 되나니, 마땅히 중생들을 위하여 제일의천을 분별하여 말하리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하늘을 생각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이라 이름하고 세간이 아니며, 이것을 말하여 세간은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살은 알고 보고 깨닫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가 말하기를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연설하는 것이 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고 잃고 외우고 쓰고 연설하는 것으로 더불어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면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야, 대반열반경은 모든 부처님 세존의 깊고 깊은 비밀한 법장이요, 부처님들의 비밀한 법장이므로 가장 훌륭하니, 선남자야, 그러한 이치로 대반열반경은 매우 기특하여 말하거나 생각할 수 없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나도 이 대반열반경이 매우 기특하여 불가사의하오며, 부처님·교법·승가도 불가사의하오며, 보살의 보리인 대반열반도 불가사의한 줄을 아옵니다만, 세존이시여, 무슨 뜻으로 보살이 불가사의하다고 다시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가르치는 이가 없지만 스스로 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마음을 내고는 부지런히 정진하며, 설사 큰불이 몸과 머리를 태우더라도, 마침내 구원을 청하느라고 법을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항상 생각하기를 ‘내가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혹은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나 인간이나 천상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번뇌의 불에 몸을 태웠지만, 일찍이 결정한 법을 얻지 못하였으며, 결정한 법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몸과 마음과 목숨을 아끼지 않겠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서는 몸이 티끌같이 부서지더라도 뜻을 버리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리니, 왜냐 하면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인이라’ 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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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보지 못하고도 이렇게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이미 보았음이랴. 그러므로 보살이 불가사의하니라. 또 불가사의한 것은 보살마하살이 생사의 한량없는 허물을 보는 것은 성문·연각의 미칠 바가 아니며, 비록 생사의 한량없는 허물을 알지만 중생을 위하여 그 속에서 받는 고통을 싫어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다시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중생을 위하는 까닭으로 비록 지옥에서 여러 가지 시끄러움을 받더라도, 3선천(禪天)의 즐거움과 같이 여기나니,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장자가 집에 불이 난 것을 보고 뛰어나왔으나, 여러 아들들이 뒤에 떨어져서 화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더니, 장자는 아들들이 불에 타게 됨을 알고, 다시 들어가서 구원할 적에 자기의 몸을 돌아보지 않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생사의 허물을 알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싫어하지 아니하고 그 속에 있나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한량없는 중생들이 보리심을 내었다가도 생각 중에 걱정이 많은 것을 보고는 마음이 퇴타하여 성문도 되고 연각도 되거니와 보살들로서 이 경을 들은 이는 마침내 보리심이 퇴타하여 성문이나 연각이 되지 아니하나니, 이러한 보살은 비록 초지의 변동되지 않는 자리에 이르지 못하였더라도 퇴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큰 바닷물에 떠서 건너갈 수 있노라’ 하면, 이 말을 그러리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그런 말은 생각할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나이다. 왜냐 하면 만일 사람이 건너가노라 하면 생각할 수 없지만, 아수라가 건너가노라 하면 생각할 수 있나이다.”
“선남자야, 나는 아수라를 말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말하였느니라.”
“세존이시여, 사람들 중에도 생각할 수 있기도 하고 생각할 수 없기도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람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성인과 범부이온데, 범부라면 생각할 수 없고, 성현이라면 생각할 수 있나이다.”
“선남자야, 나는 범부를 말하였고 성인을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범부라면 진실로 생각할 수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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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범부들은 참으로 큰 바닷물을 건너갈 수 없나니, 보살만이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갈 수 있으므로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연근에서 나는 실로 수미산을 매어달 수 있다면, 생각할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생각할 수 없나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잠깐 동안에 온갖 생사를 헤아릴 수 있으므로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벌써 한량없는 아승기겁부터 생사함이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는 줄을 알았건만 중생을 위하여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연설하는 것이며, 비록 그렇게 말하더라도 삿된 소견은 아니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물에 들어가도 물이 빠치지 못하며 맹렬한 불에 들어가도 불이 태우지 못한다면, 이런 일은 불가사의한 것이니,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생사하는 속에 있더라도 생사하는 것이 시끄럽게 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사람에게는 3품이 있으니 상품·중품·하품이니라. 하품 사람은 처음 태 속에 들어갔을 적에는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더러운 것들이 모여드는 뒷간에 있는 것이, 마치 송장들 속에나 가시덤불 캄캄한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하며, 태에서 나와서는 또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더러운 것들이 모여든 뒷간에서 나왔고, 내지 캄캄한 속에서 나왔다’ 하며, 중품 사람은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많은 나무숲 속에나 깨끗한 강 가운데나 방안에 들어갔다’ 하고, 나올 때에도 그러하며, 상품 사람은 생각하기를 ‘나는 전당에 올라가서 꽃숲 속에 있으며 말도 타고 코끼리도 타고 높은 산에 올라 갔다’ 하고, 나올 때도 그와 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은 처음 태에 들 때에도 드는 줄을 알고, 머물 적에도 머무는 줄을 알고, 나올 때에는 나오는 줄을 알아서, 마침내 탐하고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지만 초주(初住)에는 이르지 못하였나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비유로도 말할 수 없나니, 선남자야, 마음도 역시 비유로 비기어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스승에게 묻고 배운 곳이 없지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며, 이 법을 얻고는 아끼는 마음이 없이 중생을 위하여 연설하나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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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몸으로 여의었고 입이 아닌 것이 있으며, 입으로 여의었고 몸 아닌 것이 있으며, 몸도 입도 아니면서 멀리 떠난 것이 있느니라. 몸으로 여의었다 함은 살생과 훔치는 일과 음행을 떠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몸으로 여의었고 입이 아니라는 것이니라. 입으로 여의었다 함은 허망한 말, 이간하는 말, 욕설, 옳지 않은 말을 여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입으로 여의었고 몸이 아니라는 것이니라. 몸도 입도 아니면서 멀리 여의었다 함은 탐욕, 성내는 일, 나쁜 소견을 멀리 여읜 것이니,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몸도 입도 아니면서 멀리 여의었다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한 가지 법도 몸이거나 입이거나 및 주재를 여읜 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여의는 것이 있나니, 그러므로 불가사의하며 입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몸으로부터 몸을 여의고 입으로부터 입을 여의고 지혜로부터 몸이 아니고 입이 아님을 멀리 여의니라. 선남자야, 진실로 이 지혜가 있지만 보살로 하여금 멀리 여의게 하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선남자야, 한 가지 법도 능히 깨뜨리거나 능히 짓게 하지 못하며, 함이 있는 법의 성품은 다르게 나고 다르게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이 지혜가 능히 멀리 여의게 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지혜가 깨뜨리지 못하며 불이 태우지 못하며 물이 풀리게 하지 못하며 바람이 흔들지 못하며 땅이 가지고 있지 못하며, 나는 것이 나게 하지 못하며, 늙음이 늙게 하지 못하며 머무름이 머물게 하지 못하며 깨뜨림이 파괴하지 못하며, 탐심이 탐하지 못하며, 성냄이 성나게 하지 못하며, 어리석음이 어리석게 하지 못하나니, 함이 있는 성품이 다르게 나고 다르게 없어지는 연고니라. 보살마하살이 마침내 생각하기를 ‘내가 이 지혜로 모든 번뇌를 깨뜨린다’ 하지 않지만,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번뇌를 깨뜨린다’ 하며, 비록 이런 말을 하여도 허망한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 이름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에야 보살마하살이 불가사의하고, 부처님·교법·승가·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는 이와 보리·열반이 불가사의한 줄을 알았나이다. 세존이시여, 위없는 부처님의 법이 얼마 동안이나 머물며 어느 때에 없어지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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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대반열반경과 같은 것은 나아가 다섯 가지 행이 있으니, 거룩한 행[聖行]·청정한 행[梵行]·하늘의 행[天行]·병난 행[病行]·어린아기의 행[嬰兒行]이니라. 만일 나의 제자가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뜻을 연설하여 중생들의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고 여러 가지로 공양함을 받으면, 그런 때에는 없어지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대반열반경이 구족하게 유통하는 때에, 나의 제자들이 계율을 많이 범하고 나쁜 짓을 하며, 이런 경전을 공경하여 믿지 아니하면, 믿지 않는 연고로 받아 가지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쓰거나 뜻을 해설하지 아니할 것이며, 여러 사람의 공경과 내지 공양함을 받지 못할 것이며, 받아 가지는 이를 보고는 비방하고 업신여기면서, ‘너는 육사외도(六師外道)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 하리니, 이런 때에는 부처님 법이 오래지 않아서 없어지느니라.”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하신 것을 들었사오니, ‘가섭부처님의 법이 세상에 이레 동안 있다가 없어졌다’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가섭여래께서도 이 경이 있었나이까? 만일 있었다면 어찌하여 없어졌다 하오며, 만일 없었다면 어찌하여 말하기를, 대반열반경은 모든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야, 내가 먼저 말하기를, 문수사리가 이 뜻을 안다 하였거니와, 이제 다시 말하리니, 지성으로 자세히 들으라. 선남자야, 부처님 세존에게 두 가지 법이 있으니, 하나는 세상 법[世法]이요 또 하나는 제일의법(第一義法)이니라. 세상 법은 멸할 수 있거니와 제일의법은 멸하지 않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함이 없는 것이요, 또 하나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이니,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않고 깨끗함이 없는 것은 없어지거니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은 없어지지 않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2승들이 가지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보살들이 가지는 것이니, 2승들이 가지는 것은 멸하는 것이요, 보살들이 가지는 것은 멸하지 않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바깥 법이요 다른 하나는 안의 법이니, 바깥 법은 멸함이 있고 안의 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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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함이 없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함이 있는 법이요 다른 하나는 함이 없는 법이니, 함이 있는 법은 멸함이 있고 함이 없는 법은 멸함이 없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얻을 수 있는 법이요 하나는 얻을 수 없는 법이니, 얻을 수 있는 법은 멸할 수 있고 얻을 수 없는 법은 멸할 수 없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함께하는 법이요 하나는 함께하지 않는 법이니, 함께하는 법은 멸하는 것이요 함께하지 않는 법은 멸하지 않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사람 가운데요 하나는 하늘 가운데니, 사람 가운데 법은 멸하고 하늘 가운데 법은 멸하지 않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11부경이요 하나는 방등 경전이니, 11부경은 멸하는 것이요 방등 경전은 멸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나의 제자가 방등 경전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뜻을 해설하며,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 그 때에는 부처님의 법이 멸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그대가 묻기를 ‘가섭여래에게도 이 경이 있었느냐’ 한 것은, 선남자야, 대반열반경은 여러 부처님의 비밀한 법장이니, 왜냐 하면 여러 부처님이 비록 11부경이 있지만, 불성을 말하지 아니하고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말하지 아니하고, 부처님 세존은 언제까지나 열반에 들지 않는 일을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그러므로 이 경을 여래의 비밀한 법장이라 하느니라. 11부경에서 말하지 아니한 것이므로 장이라 하나니, 마치 사람들이 7보를 들고 나와서 쓰는 것이 아니므로 장(藏)이라 하는 것 같으니라. 선남자야, 그 사람이 이런 물건을 간직하여 두는 것은 다음 일을 위한 것이니, 어떤 것을 다음 일이라 하는가. 곡식이 귀할 때나 대적이 와 나라를 침노할 때나 나쁜 임금을 만났을 적에 보배로 생명을 바꾸거나, 길을 가다가 어려울 때에나 재물을 구하기 어려울 때에 보배를 내어 쓰려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부처님 여래의 비밀한 법장도 그와 같아서 말세(末世)의 나쁜 비구들이 부정한 물건을 쌓아 두고, 사부대중에게 여래가 필경에 열반에 든다고 말하며, 세간 경전을 읽고 부처님 경전을 공경하지 않거든, 이러한 나쁜 일이 세상에 나타날 때에, 여래가 이런 나쁜 일을 없애고 잘못 생활하는 이양을 여의게 하기 위하여 이 경전을 연설하나니, 만일 비밀한 법장인 이 경전이 없어지고 나타나지 아니할 적에는, 부처님 법도 없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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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대반열반경은 항상 변역하지 않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가섭 부처님 때에도 이 경이 있었느냐’고 묻느냐. 선남자야, 가섭부처님 때에는 중생들이 탐욕이 적고 지혜가 많았으며, 보살마하살들도 부드러워 교화하기 쉽고 큰 위덕이 있었으며, 모두 기억하여 잊지 아니함이 코끼리왕과 같으며, 모든 중생들도 여래가 필경까지 열반에 들지 아니하고 항상 머물러서 변하지 않는 줄을 아는 까닭으로, 이 경전이 있지만 연설할 필요가 없었느니라. 선남자야, 지금 세상의 중생들은 번뇌가 많고 어리석어 잊기를 잘하며, 지혜가 없고 의심이 많아서 믿음이 뿌리 박히지를 못하고, 세계가 깨끗하지 못하며, 중생들은 모두 생각하기를, 여래가 무상하여 자주 변천하는 터이매, 나중에는 대반열반에 들어간다고 하므로, 여래가 이 경전을 연설하느니라. 선남자야, 가섭부처님의 법은 진실로 멸하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항상하여 변천하지 않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중생들이 나인 것을 내가 없는 줄로 보고 내가 없는 것을 나라고 보며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보고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보며, 즐거운 것을 즐겁지 않다 보고 즐겁지 않은 것을 즐겁다 보며, 깨끗한 것을 부정하다 보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보며, 멸하는 것을 멸하지 않는다 보고 멸하지 않는 것을 멸한다 보며, 죄를 죄가 아니라 보고 죄가 아닌 것을 죄라 보며, 가벼운 죄를 중하다 보고 중한 죄를 가볍다 보며, 승(乘)을 승이 아니라 보고 승이 아닌 것을 승이라 보며, 도를 도가 아니라 보고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보며, 진실한 보리를 보리가 아니라 보고 진실한 보리가 아닌 것을 보리라고 잘못 보며, 고통인 것을 고통이 아니라 보고 집(集)인 것을 집이 아니라 보며, 멸(滅)인 것을 멸이 아니라 보고 진실한 것을 진실하지 않다고 보며, 세제(世諦)를 제일의제(第一義諦)라 보고 제일의제를 세제라 보며, 귀의할 데를 귀의할 데가 아니라 보고 귀의할 데가 아닌 것을 귀의할 데라 보며, 참으로 부처님 말씀을 마군의 말이라 하고 참으로 마군의 말을 부처님 말이라 하면, 이러한 때에 부처님들이 대반열반경을 말씀하느니라.
선남자야, 모기의 입으로 바다의 밑바닥까지를 말린다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입으로 불어서 수미산을 날린다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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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새끼로 폭풍을 얽어맨다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가다라(佉陀羅) 불속에 연꽃이 난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아가타약이 독약이라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차라리 달을 뜨겁게 하고 해를 차게 한다고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차라리 4대가 각각 제 성품을 버린다 말할지언정 여래의 법이 없어진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건만, 제자가 깊은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부처님 세존이 열반하신하면 이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한다면, 부처님이 열반하여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지만, 굳게 믿는 단월이 부처님 법을 공경·존중하는 이가 없는데, 부처님이 문득 열반한다면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도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단월들이 있어 부처님 법을 공경 존중하면, 부처님이 열반하여도 그 부처님의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단월이 있어 부처님 법을 공경 존중하더라도, 제자들이 경법을 연설하면서 이양을 탐하고 열반을 구하지 않는데, 부처님마저 열반한다면,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도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단월이 부처님 법을 공경 존중하고, 저 제자들이 경법을 연설하되 이양을 탐하지 아니하고 열반을 구하면, 비록 부처님이 열반하더라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단월들이 부처님 법을 공경 존중하더라도, 제자들이 다툼을 일으키어 서로 시비하는데, 부처님마저 열반한다면 그 법은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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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머물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흰옷 입은 단월들이 부처님 법을 공경 존중하고 제자들도 화합하고 공경하는 법[和敬法]을 닦고 서로 시비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면 부처님이 열반하더라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고 없어지지 않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흰옷 입은 단월들이 부처님 법을 공경 존중하고, 저 제자들이 다 열반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면서 서로 공경하고 다툼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온갖 부정한 물건을 받아 저축하면서 또 스스로 찬탄하기를, 나는 수다원과와 나아가 아라한과를 얻었노라 하는데 부처님마저 열반하면, 이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이 깊은 이치를 이해하고 굳게 믿는 흰옷 입은 단월들이 부처님 법을 공경 존중하고, 저 제자들이 대반열반을 위하여 경법을 연설하고 화합하여 공경하는 법을 닦으면서 서로 존중하고 모든 부정한 물건을 저축하지 아니하고, 수다원과를 얻었고 나아가 아라한과를 얻었노라 말하지 아니하면, 저 부처님 세존이 비록 열반하더라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도 나아가 부정한 물건을 저축하지 아니하고, 또 스스로 말하기를, 수다원과나 아라한과를 얻었노라 하지 않지만 제각기 소견을 고집하여 가지가지로 말을 짓되, 장로여, 부처님이 제정한 4중이나 내지 일곱 가지 다툼을 없애는 법도, 중생을 위하여서는 막기도 하고 열기도 하며, 12부 경전도 그러한 것이니,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국토와 시절이 각각 다르고, 중생이 한결같지 아니하며 영리하고 둔근의 차별을 아시므로 여래가 막기도 하며 중대하고 경미하게 말씀하였나니 선남자야, 마치 용한 의원이 병을 위하여 우유를 쓰기도 하고 병을 위하여 우유를 금하기도 하여, 열병에는 먹게 하고 냉병에는 금하는 것같이, 여래도 그러하여 중생들의 번뇌의 병을 관찰하여 열기도 하고 막기도 한 것이오. 장로여, 나는 부처님을 따라 친히 이런 뜻을 들었나니, 오직 내가 이 뜻을 알고 당신은 모르며, 나만이 계율을 알고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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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모르며, 내가 경을 알고 당신은 모른다 하는데, 부처님마저 열반한다면 그 법은 오랫 동안 세상에 머물지 못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부처님이 처음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제자들도 내지 내가 수다원과나 아라한과를 얻었노라 말하지 아니하고, 또 부처님이 중생을 위하여서 막기도 하고 열기도 한 것이오. 장로여, 나는 부처님을 따라 친히 이런 뜻과 이런 법과 이런 계율을 들었으니, 장로여, 마땅히 여래의 12부경을 의지하여 이 뜻이 옳으면 내가 받아 가지겠고, 만일 그르면 내가 버리겠노라고 말하지 아니한다면, 부처님 세존이 비록 열반하더라도 그 법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느니라.
선남자야, 나의 법이 멸할 때에는 성문 제자들이 혹은 신(神)이 있다 하고 혹은 신이 공하다 하며, 혹은 중음(中陰)이 있다 하고 혹은 중음이 없다 하며, 혹은 삼세(三世)가 있다 하고 혹은 삼세가 없다 하며, 혹은 3승이 있다 하고 혹은 3승이 없다 하며, 혹은 온갖 것이 있다 하고 혹은 온갖 것이 없다 하며, 혹은 중생이 처음도 있고 나중도 있다 하고 혹은 중생이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다 하며, 혹은 12인연이 함이 있는 법이라 하고 혹은 12인연이 함이 없는 법이라 하며, 혹은 여래가 병고행(病苦行)이 있다 하고 혹은 여래는 병고의 행이 없다 하며, 혹은 여래가 비구들에게 열 가지 고기 먹음을 허락하지 않았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사람·뱀·코끼리·말·나귀·개·사자·돼지·여우·원숭이요, 다른 것은 모두 허락하였다 하고, 혹은 온갖 고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며, 혹은 비구들은 다섯 가지 일은 하지 않아야 하나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짐승·칼·술·낙사(酪沙)·참기름을 팔지 말아야 하고, 다른 것은 모두 허락하였다 하며 혹은 다섯 종류의 집에 들어감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니, 백정의 집·기생집·술집·왕궁·전다라의 집이요, 다른 집은 다 허락하였다 하며, 혹은 교사야 옷은 허락하지 않고, 다른 옷은 모두 허락하였다 하며, 혹은 여래가 비구들에게 옷이나 음식이나 침구 따위의 값이 금 10만 냥쯤 가는 것까지는 허락하였다 하고, 혹은 허락하지 않았다 하며, 혹은 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고, 혹은 열반이라 함은 번뇌가 다한 것이요, 다른 법이 없는 것을 열반이라 이름하나니, 마치 실을 짠 것이 옷인데, 옷이 이미 해진 것을 이름하여 옷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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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지언정 옷이 없다는 딴 법이 있는 것 아니니, 열반의 자체도 그러하다 하리라.
선남자야, 이런 때를 당하여서는 나의 제자들도 바른 말 하는 이는 적고 삿된말 하는 이가 많으며, 바른 법을 받는 이는 적고 삿된 법 받는 이가 많으며, 부처님 말을 받는 이는 적고 마군의 말을 받는 이가 많으리라.
선남자야, 그 때에 구담미국에 두 제자가 있으니, 하나는 아라한이요 하나는 파계한 사람이다. 파계한 이의 무리는 5백이요 아라한의 무리는 1백이었다. 파계한 이가 말하기를, 여래는 끝까지 열반에 드는 것이니 나는 부처님에게서 이런 뜻을 친히 들었으며, 여래가 마련한 네 가지 중대한 법은 가져도 좋고 범하여도 죄가 없으며, 나도 지금 아라한과와 4무애지를 얻었으며, 아라한도 이러한 네 가지 중대한 법을 범하나니, 네 가지 중대한 법이 만일 참말로 죄라면 아라한은 마침내 범하지 아니할 것이나,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는 꼭 가지라 하였지만 열반하실 적에는 모두 버리었다고 말하였다. 그 때에 아라한 비구가 말하기를 장로여, 당신은 여래께서 끝까지 열반에 든다고 말하지 마시오. 나는 여래가 항상하여 변역하지 않는 줄을 알며, 여래가 세상에 계실 적에나 열반하신 뒤에나 4중금(重禁)을 범한 죄는 차별이 없으며, 만일 아라한이 4중금을 범한다 말하는 것은 그럴 리가 없으니, 왜냐 하면 수다원을 증득한 사람도 계율을 범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아라한이리요. 장로가 아라한이라 말하거니와, 아라한은 마침내 내가 아라한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며, 아라한은 선한 법만 말하고 선하지 아니한 법은 말하지 아니하거늘, 장로의 말은 모두 잘못된 법이니, 12부경을 보면 장로가 아라한이 아님을 결정코 알 것이오’라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야, 그 때에 파계 비구의 무리들이 달려들어 그 아라한을 죽이고 말았다. 이 때에 마왕은 이 두 무리들이 분노한 마음을 틈타서 6백 비구들을 모두 살해하였으니, 그 때에 범부들은 각각 함께 말하기를 ‘애닯다! 부처님의 법이 이제 없어진다’ 하였으나, 나의 바른 법은 진실로 멸하지 아니하였나니, 이 때에 그 나라에는 12만 보살들이 있어서 나의 법을 잘 가지었는데, 어찌하여 나의 법이 멸한다 말하겠는가. 그 때에 염부제 안에는 한 비구도 나의 제자가 없었고 이 때에 파순은 큰 불로써 모든 경전을 있는 대로 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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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렸으며, 혹 남은 것은 바라문들이 훔쳐다가 군데군데 뽑아서 자기들의 경전에 써 넣었으니, 그런 뜻으로 여러 작은 보살들이 부처님이 출현하기 전에는 모두 바라문의 말을 믿고, 바라문들이 비록 우리에게 재계(齋戒)가 있다고 말하나, 외도들에게는 참으로 없는 것이며, 외도들이 또 말하기를, 나이고 즐겁고 깨끗함이 있노라 말하거니와, 참으로 나이고 즐겁고 깨끗한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고, 부처님 법에서 한 자 두 자 한 구절 두 구절을 가져다가 자기들 경전에 그런 이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그 때에 구시나성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 대중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말하기를 ‘세상이 비었다, 세상이 비었다’ 하거늘, 가섭보살이 대중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걱정하지 말고 울지 말라. 세상이 비지 아니하였나니, 여래는 항상 계시어서 변역하지 않으며, 교법과 승가도 그러하니라’ 하였다. 대중들은 이 말을 듣고는 통곡을 그치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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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17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0. 청정한 행 ④

이 때에 왕사성의 아사세왕은 성질이 모질고 살육하기를 좋아하며, 입으로 짓는 네 가지 나쁜 짓을 갖추었으며, 탐심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마음이 치성하여 눈앞의 일만 보고 장래 일을 보지 못하였으며, 나쁜 사람들로 권속을 삼았고 현세의 5욕락만을 탐하는 탓으로 허물 없는 부왕을 살해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부왕을 살해하고 나자 마음으로 뉘우치는 열기를 내고 몸에는 영락을 벗고 풍류를 가까이하지 아니하며, 마음에 뉘우침의 열기로 온 몸에 독창이 생기어 지독한 냄새가 나 가까이할 수 없었다. 드디어 생각하기를 ‘내 몸이 지금 화보(花報)를 받았으니 지옥의 과보도 멀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 때에 어머니 위제희(韋提希)가 가지가지 약을 발라 주었지만, 독창은 더욱 성하고 나아지지 아니하였다. 왕은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이 독창은 마음에서 생기었고 4대(大)로 난 것이 아니니, 중생으로는 다스릴 도리가 없겠나이다.”
이 때에 한 대신이 있으니 이름은 월칭(月稱)이었다. 왕에게 나아가 한 곁에 서서 여쭈었다.
“대왕이시여, 무슨 근심을 하시는지, 안색이 화평하지 못하시나이다. 몸이 아프시나이까? 마음이 불편하시나이까?”
왕은 대답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허물이 없는 부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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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해(逆害)하였구려. 나는 일찍이 지혜 있는 이에게 들은즉, 이 세상에서 다섯 종류의 사람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나니, 5역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였소. 나는 이미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 죄를 지었거늘, 어떻게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겠소. 더구나 나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여 줄 의원이 없구려.”
“대왕이시여, 너무 근심하지 마옵소서.”
그리고는 곧 게송을 말하였다.

항상 근심하는 사람
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대로 세상에서 다섯 종류의 사람이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오나, 누가 가서 보고 대왕에게 말하더이까? 지옥을 말함은 이 세상에서 잔꾀 있는 사람의 말이옵니다. 대왕의 말씀이 세상에는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오나, 지금 큰 의원이 있으니 이름은 부란나(富蘭那)라 하나이다. 온갖 것을 알고 보고 하오며, 자재한 선정을 얻었사오며, 깨끗한 범행을 끝까지 닦았고,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에게 위없는 열반의 길을 연설하오며 제자들에게는 이런 법을 말하나이다.
‘검은 업도 없고 검은 업의 과보도 없으며, 흰 업도 없고 흰 업의 과보도 없으며, 검고 흰 업도 없고, 검고 흰 업의 과보도 없으며, 상품 업도 없고 하품 업도 없다.’ 이런 사람이 지금 왕사성 안에 있사오니, 원컨대 대왕이시여, 그 사람에게 거둥하시어서 그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치료케 하여지이다.”
“참으로 나의 죄를 벗겨줄 수 있다면 내가 마땅히 귀의하리라.”
또 한 신하가 있으니 이름이 장덕(藏德)이었다. 왕에게 나아가서 이렇게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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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께서 용안이 여위시고 입술이 마르시고 음성이 작으심이 마치 겁약한 사람이 큰 대적을 만난 듯, 얼굴이 초췌하시니 무슨 괴로움이 계시나이까? 몸이 아프십니까?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내가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여 친구를 삼았으며, 제바달다란 악한 사람의 말을 듣고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시는 부왕을 역해하였구려. 나는 일찍이 지혜 있는 사람의 게송을 들었소.

아버지나 어머니나
부처님과 제자에게
좋지 못한 마음으로
나쁜 짓을 지었으면
이와 같은 과보로는
아비지옥 간다 하오.

이런 일로 말미암아 마음이 송구하고 매우 괴로움을 참지 못하며, 더구나 치료하여 줄 의원도 없구려.”
“대왕이시여, 근심하지 마옵소서. 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출가한 법이요 다른 하나는 임금의 법입니다. 임금의 법에는 부왕을 해하였으면 나라의 왕이 되는 것이매, 비록 시역이라 하더라도 죄가 없는 것입니다. 저 가라라충(迦羅羅虫) 어미의 배를 무너뜨리고야 나오지만, 나오는 법이 그러하므로 비록 어미의 배를 무너뜨렸으나 죄가 없는 것이며, 노새가 새끼를 배는 것도 그와 같나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 그런 것이오매, 비록 아버지나 형을 살해하였더라도 죄가 없는 것이옵고, 출가한 법에는 모기나 개미를 살해하여도 죄가 있는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은 마음을 너그럽게 하시고 걱정하지 마옵소서. 왜냐 하면 게송과 같기 때문입니다.

항상 근심하는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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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이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거니와, 지금 큰 스승이 있으니 이름을 말가리구사리자(末伽梨拘舍離子)라 하나이다. 온갖 것을 알고 보며, 중생들을 갓난아기처럼 불쌍히 여기고, 번뇌를 이미 여의었으며, 중생들의 세 가지 독한 살을 뽑아 주나이다. 모든 중생들은 온갖 법을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거니와, 이 사람만이 홀로 알고 보고 깨달았으며, 이런 스승이 항상 제자들에게 이런 법을 말하나이다.
‘모든 중생들의 몸에 일곱 가지 부분이 있으니, 지대·수대·화대·풍대·괴로움·즐거움·목숨이라, 이 일곱 가지 법은 변화함도 아니고 지음도 아니어서, 깨뜨릴 수 없기는 이사가 풀과 같고, 머물러 있어 흔들리지 않기는 수미산과 같고, 버릴 수 없고 지을 수 없기는 타락과 같아서 각각 서로 시새우지 아니하며, 괴롭거나 즐겁거나 선하거나 선하지 않거나가, 마치 잘 드는 칼에 던져져도 상하지 않음 같으니, 왜냐 하면 일곱 부분이 공한 속에서 서로 장애되지 않는 연고며, 목숨도 해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해할 이와 죽을 이가 없는 까닭이며, 짓는 이도 없고 받을 이도 없고 말할 이도 없고 들을 이도 없으며, 생각 하는 이도 가르칠 이도 없는 까닭이다.’
항상 이런 법을 말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한량없는 중대한 죄를 멸하나이다. 그 사람이 지금 왕사성에 있사오니, 바라건대 대왕께서 그곳에 가시어서 보기만 하여도 모든 죄가 소멸될 것입니다.”
“참으로 나의 죄를 멸할 수 있으면 내가 마땅히 귀의할 것이오.”
또 한 신하가 있으니 이름은 실득(實得)이었다. 왕에게 이르러 이런 게송을 말하였다.

대왕께서 무슨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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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영락 벗으시며
머리카락 덥수룩해
이런 모양 되시니까.

대왕의 몸 무슨 일로
불안하고 벌벌 떨어
꽃가지에 바람 불어
흔들리듯 하나이까.

“대왕의 용안에 수심이 가득하심, 마치 농부들이 씨를 심은 뒤에 비가 오지 아니하여 걱정하는 듯 하오니, 마음이 불안하시나이까? 몸이 아프시나이까?”
왕은 대답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선대왕께서 인자하시며 나를 사랑하기 특별하시어 조그만 허물도 없었으며, 관상쟁이에게 물었더니, 관상쟁이의 말이 아이가 나기만 하면 반드시 아버지를 해하리라 하였으나, 이런 말을 들으시고도 나를 사랑하여 기르셨소. 일찍이 지혜 있는 이의 말을 듣건대, 만일 사람이 어미나 비구니를 간통하거나, 승가의 물건을 훔치거나, 위없는 보리심 낸 이를 죽이거나, 아버지를 살해하면, 이런 사람은 결정코 아비지옥에 떨어진다 하였거늘,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원컨대 대왕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왕께서 해탈을 닦으셨으면 해한 것이 죄가 되려니와, 나라를 다스렸으므로 해하여도 죄될 것이 없나이다. 대왕이여, 법이 아닌 것은 무법이라 이름하오며, 무법이란 말은 무죄라는 뜻이니이다. 마치 아들이 없는 것을 무자라 하고 나쁜 아들도 무자라 하거니와, 무자라 하더라도 참으로 아들이 없는 것이 아니오며, 음식에 소금이 안 든 것도 간이 안 되었다 하고 소금이 덜 든 것도 간이 안 되었다 하오며, 강에 물이 아주 마른 것도 물이 없다 하고 물이 적은 것도 물이 없다 하오며, 찰나찰나 없어지는 것도 무상하다 하고 한 겁 동안을 살아도 무상하다 하오며, 사람이 괴로움을 받는 것도 낙이 없다 하고 즐거움이 적어도 낙이 없다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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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자제하지 못함을 내가 없다 하고 조금 자제하는 것도 내가 없다 하오며, 캄캄한 밤을 해가 없다 하고, 안개가 자욱할 때에도 해가 없다 하는 것 같사오니, 대왕이시여, 법이 부실하다고 무법이라 하오나 실로 법이 없는 것이 아니니이다. 원컨대 대왕은 유의하시어 신의 말을 들으십시오. 모든 중생들이 모두 남은 업[餘業]이 있고 업의 인연으로 자주자주 생사를 받는 것이온데, 만일 선왕께서 남은 업이 있사오면 지금 대왕께서 해하였기로 무슨 죄가 있겠나이까?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시고 수심하지 마시옵소서. 왜냐 하면 게송과 같기 때문입니다.

항상 근심하는 이는
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이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오나, 지금 큰 스승이 있으니 이름을 산사야비라지자(刪闍耶毗羅胝子)라 하나이다. 온갖 것을 알고 보며, 지혜의 깊기는 바다와 같고, 큰 위덕이 있고 큰 신통을 갖추었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의심을 끊게 하나이다. 모든 중생들은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오나, 이 사람만이 홀로 알고 보고 깨달았으며, 지금 왕사성 가까운 데 있어 제자들에게 이런 법을 말하나이다.
‘모든 중생 중에 임금된 이는 자재하게 마음대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짓나니, 비록 여러 가지 악한 일을 짓더라도 죄가 있는 것 아니니라. 마치 불이 물건을 태울 적에 깨끗하고 부정한 것이 없나니, 임금도 그러하여 불의 성품과 같으니라. 마치 땅덩이가 깨끗한 것 더러운 것을 모두 실을 적에 기뻐하거나 성내지 아니하나니, 임금도 그러하여 땅의 성품과 같으니라. 마치 물이 깨끗한 것 더러운 것을 모두 씻으면서도 기뻐하고 근심함이 없나니, 임금도 그러하여 물의 성품과 같으니라. 마치 바람이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모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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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날리면서도 기뻐하고 근심함이 없나니, 임금도 그러하여 바람의 성품과 같으니라. 마치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졌다가 봄이 되면 다시 나나니, 비록 잎을 떨어뜨려도 진실로 죄가 없듯이,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여기서 목숨이 마치고는 다시 여기에 나는 것이며, 다시 하는 것이매 무슨 죄가 있겠는가. 모든 중생의 괴롭고 즐거운 과보는 모두 현재의 업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지난 세상에 지은 인으로 지금 세상에서 과보를 받는 것이니, 현재의 인이 없고 다음 세상에 과보가 없건만 현재의 과보를 위하여 중생들이 계율을 가지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현재의 나쁜 과보를 막는 것이니라. 계율을 가지므로 무루(無漏)를 얻고 무루를 얻으므로 번뇌의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므로 모든 고통이 끝나고, 모든 고통이 끝나므로 해탈을 얻는다.’
원컨대 대왕은 그이에게 가시어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옵소서. 대왕이 그를 보기만 하여도 모든 죄가 소멸되리이다.”
“참으로 그 사람이 나의 죄를 멸할 수 있으면 내가 마땅히 귀의할 것이오.”
또 한 신하가 있으니 이름은 실지의(悉知義)였다.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무슨 일로 용안이 단정하지 못하시나이까? 나라를 잃은 이 같으며, 우물이 마른 듯하며, 못에 연꽃이 없는 것 같으며, 나무에 꽃과 잎이 없는 듯하며, 파계한 비구의 위덕이 없는 것 같사오니, 몸이 편치 않으십니까? 마음이 괴로우십니까?”
왕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부왕께서는 인자하신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셨건만, 내가 불효하여 은혜 갚을 줄을 몰랐으며, 항상 나를 즐겁게 하셨건만 내가 배은망덕하여 즐거움을 끊었으며, 선왕께서 허물이 없으시거늘 내가 역해를 하였구려. 일찍이 지혜 있는 이의 말을 듣건대, 만일 아비를 해하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큰 고통을 받는다 하더니, 나는 이제 오래지 않아 지옥에 떨어질 것이거늘, 어느 의원 한 사람 나의 죄를 구하여 줄 이가 없구려.”
“원컨대 대왕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옛적에 라마(羅摩) 임금은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고, 발제대왕·비루진왕·나후사왕·가제가왕·비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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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월광명왕·일광명왕·애왕·지다인왕, 이런 임금들이 모두 부모를 살해하고 왕이 되었지만 한 임금도 지옥에 들어간 이가 없사오며, 지금 계시는 비유리왕·우타나왕·악성왕·서왕·연화왕, 이런 임금이 모두 그 부왕을 해하였지만 한 임금도 걱정 근심하는 이가 없습니다. 비록 말로는 지옥이니 아귀의 갈래니 천상이니 하지만 누가 보았나이까? 대왕이여, 다 두 갈래뿐이오니 인간과 축생이오며, 두 갈래가 있지만 인연으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인연으로 죽는 것도 아니오며, 만일 인연이 아니라면 무슨 선과 악이 있겠나이까? 원컨대 대왕은 걱정하고 공포하지 마옵소서. 왜냐 하면 게송과 같기 때문입니다.

항상 근심하는 사람
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이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오나, 지금 큰 스승이 있으니 이름을 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라 하나이다. 온갖 지견을 가진 이로서 금과 흙을 평등하게 보며, 오른쪽 옆구리를 칼로 찌르거나 왼쪽 옆구리를 전단으로 바르더라도 이 두 사람에게 차별하는 마음이 없으며, 원수와 친한 이를 평등하게 대하고 다르게 생각하지 아니하오니, 이 사람은 진실로 이 세상의 용한 의원입니다. 가거나 섰거나 앉거나 누웠거나 항상 삼매에 있어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하오며, 제자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나이다.
‘제가 짓거나 남을 시켜 지었거나, 제가 찍었거나 남을 시켜 찍었거나, 제가 구웠거나 남을 시켜 구웠거나, 제가 해하였거나 남을 시켜 해하였거나, 제가 훔쳤거나 남을 시켜 훔쳤거나, 제가 음행하였거나 남을 시켜 음행하였거나, 제가 거짓말 하였거나 남을 시켜 거짓말 하였거나, 제가 술을 먹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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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남을 시켜 술을 먹었거나, 한 마을·한 도시·한 나라 사람들을 살해하였거나, 칼로써 모든 중생을 죽였거나, 항하의 남쪽에서는 중생에게 보시하고 항하의 북쪽에서는 중생들을 살해하였어도 죄도 복도 모두 없으며, 보시하고 계행 가지고 선정 닦는 일이 없다.’
지금 왕사성 가까이 있사오니, 대왕은 속히 가옵소서. 대왕이 보기만 하여도 모든 죄가 소멸할 것이니이다.”
“대신하여 참으로 나의 죄를 소멸할 수 있다면 나는 마땅히 귀의할 것이오.”
또 한 대신이 있으니 이름은 길덕(吉德)이었다. 또 왕에게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무슨 일로 용안에 윤기가 없나이까. 낮에 켠 등불 같고 낮에 보는 달 같고, 나라 잃은 임금 같고 장사에 실패한 사람 같나이다. 대왕이시여, 지금 사방이 태평하여 원수나 대적이 없사온데, 무슨 연고로 이다지 수심하시나이까. 몸이 괴로우시나이까, 마음이 아프시나이까? 다른 왕자들은 항상 생각하기를, 나는 언제나 자재함을 얻을까 하옵는데, 대왕은 이제 소원을 이루었고 자재하신 왕으로서 마가타국을 차지하셨고 선왕의 보물을 모두 다 얻었사온즉, 마땅히 만족한 마음으로 복을 즐길 것이거늘, 어찌하여 그다지도 근심하시나이까?”
왕은 대답하였다.
“내가 지금 어떻게 수심하지 않겠는가. 대신이여, 어리석은 사람이 단맛만 탐하고 칼날을 보지 못하는 듯, 독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걱정을 생각하지 못하는 듯, 나도 그와 같으며, 사슴이 먹을 풀만 보고 함정을 보지 못하는 듯, 쥐가 먹을 것만 보고 고양이를 보지 못하는 듯, 나도 그와 같아서 현재의 쾌락만 보고 오는 세상에서 고통의 나쁜 과보 받을 줄을 보지 못하였소. 일찍이 지혜 있는 이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소. ‘차라리 하루 동안에 3백 자루 창에 찔릴지언정 부모에게 대하여 잠깐 동안 나쁜 생각을 내지 말라’ 하였거늘, 나는 지금 지옥의 맹렬한 불에 타게 되었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겠소.”
“누가 지옥이 있다고 말하더이까. 가시 끝이 뾰족한 것은 누가 만들었으며, 나는 새의 빛이 제각기 다른 것은 누가 지었으며, 물의 성질은 축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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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성질은 단단하고 바람은 흔들리고 불은 뜨거우며, 온갖 만물이 저절로 났다가 저절로 죽는 것은 누구의 짓이오니까. 지옥이란 말은 잔꾀 있는 이의 문자로 조작한 말이오니, 지옥이 무슨 뜻인지를 신이 말하겠습니다. 지는 땅이요 옥은 깨뜨린다는 것이니, 지옥을 깨뜨려도 죄보가 없사올새 지옥이라 하나이다. 또 지는 인간이요 옥은 천상이니, 아비를 살해한 탓으로 인간·천상에 이를 수 있으므로, 바수(婆藪) 선인이 말하기를 ‘양을 죽이고 인간·천상의 낙을 얻는다’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지옥이라 하나이다. 또 지는 목숨이요 옥은 길다는 것이니 생명 있는 것을 죽이면 목숨이 길어지므로 지옥이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그러므로 실로 지옥이 없는 줄을 알겠나이다. 대왕이여, 밀을 심으면 밀을 거두고 벼를 심으면 벼를 거두듯이, 지옥을 죽이면 지옥에 나게 되고 사람을 살해하고는 인간에 날 것입니다.
대왕이여, 지금 신이 말하는 살해가 없는 이치를 들으십시오. 만일 내가 있다 하여도 실로 살해함이 없삽고, 만일 내가 없다면 해할 것이 없나이다. 왜냐 하면 내가 있다면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할 것이며, 항상 머무는 터이므로 살해하지 못할 것이니, 깨뜨리지 못하고 부수지 못하고 얽매지 못하고 속박하지 못하고 성내지 아니하고 기뻐하지 아니함이 허공과 같을 것이니 어찌 살해하는 죄가 있겠나이까. 만일 내가 없다면 모든 법이 무상할 것이며, 무상한 것이므로 찰나찰나 멸할 것이니, 찰나찰나 멸하는 연고로 죽인 이 죽은 이가 모두 찰나찰나 멸할 것이요, 만일 찰나찰나 멸한다면 누가 죄가 있겠나이까. 대왕이시여, 불이 나무를 태워도 불은 죄가 없으며, 도끼로 나무를 찍어도 도끼는 죄가 없으며, 낫으로 풀을 베어도 낫은 죄가 없나이다. 마치 칼로 사람을 죽였을 적에 칼은 실로 사람이 아니니, 칼이 이미 죄가 없을진댄 사람이 무슨 죄가 있사오며, 독약으로 사람을 죽였을 적에 독약은 실로 사람이 아니니, 독약이 죄가 없을진댄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겠나이까. 온갖 만물도 그와 같아서 진실로 살해함이 없삽거늘 어찌 죄가 있사오리까? 원컨대 대왕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게송과 같이 때문입니다.

항상 근심하는 사람
근심 더욱 느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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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이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거니와, 여기 큰 스승이 있으니 이름은 가라구타가전연(迦羅鳩馱迦旃延)입니다. 온갖 지견을 가진 이로서 삼세를 분명히 알고, 잠깐 동안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계를 보고, 소리를 듣는 것도 그와 같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허물을 여의게 함이, 마치 항하의 안과 밖에 있는 모든 허물이 모두 깨끗하듯이, 이 사람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안팎의 죄를 멸하게 하오며, 제자들에게 이런 법을 말하나이다.
‘만일 사람이 모든 중생을 살해하고도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마치 허공이 티끌과 물을 받지 않는 듯하며, 부끄러움이 있으면 지옥에 떨어지나니, 마치 큰 물이 땅을 적시는 듯하니라. 모든 중생은 모두 자재천이 지은 것으므로 자재천이 기뻐하면 중생들이 안락하고 자재천이 노하면 중생들이 고통을 받으며, 모든 중생의 죄와 복은 모두 자재천이 하는 것이거늘, 어찌 사람에게 죄와 복이 있다고 말하리요. 마치 공장(工匠)이 허깨비 사람[機關木人]을 만들면 가고 서고 앉고 눕지만 말은 하지 못하나니, 중생도 그와 같아서, 자재천은 공장과 같고 허깨비 사람은 중생의 몸과 같으며, 이와 같이 만드는 것이거늘 누구에게 죄가 있겠느냐.’
이 사람이 지금 왕사성에 있사오니, 원컨대 빨리 가시면 보기만 하여도 모든 죄가 소멸할 것입니다.”
“진실로 이런 사람이 있어 나의 죄를 멸한다면 내가 마땅히 귀의하리라.”
또 한 신하가 있으니 이름은 무소외(無所畏)였다.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하루 동안에 백 번 기뻐하고 백 번 수심하며, 백 번 자고 백 번 깨며, 백 번 놀라고 백 번 통곡하거니와, 지혜 있는 사람은 그런 일이 없삽거늘, 대왕은 무슨 일로 그렇게 수심하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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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동무를 잃은 나그네 같으며, 수렁에 빠졌을 적에 구원할 이가 없는 것 같으며,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만나지 못한 듯하며, 길을 잃은 사람이 길잡이를 만나지 못한 듯하며, 병든 사람에게 치료할 의원이 없는 듯하며, 바다에서 파선하였을 적에 건질 이가 없는 듯합니다. 대왕께서는 지금 몸이 아프시나이까, 마음이 불안하시나이까?”
왕은 대답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나는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고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허물 없는 부왕을 역해하였으니, 마땅히 지옥에 들어갈 줄 알지만 구제하여 줄 의원이 없구려.”
“원컨대 대왕은 근심하지 마소서. 찰리는 왕족이라 하옵는데, 국왕이 되었거나 사문이 되었거나 바라문이 되어서,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하여서는 비록 살해하더라도 죄가 없나이다. 선왕이 사문을 공경하였으나 바라문은 섬기지 아니하였으니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였삽고, 평등하지 못한 연고로 찰리가 아니니이다. 대왕께서 바라문들을 공양하시려고 선왕을 해하심이 무슨 죄가 있사오리까. 대왕이여, 실로 살해가 없나이다. 살해란 말은 목숨을 죽였다는 것인데, 목숨은 바람 같은 기운이오며, 기운의 성품은 살해할 수 없거늘, 어찌하여 목숨을 살해하였다고 죄가 있사오리까? 원컨대 대왕은 근심하지 마옵소서. 왜냐 하면 게송과 같기 때문입니다.

항상 근심하는 사람
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이 이 세상에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거니와, 여기 큰 스승이 있으니 이름은 니건타야제자(尼乾陀若提子)이온데, 온갖 지견을 가진 이로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며, 중생들의 근성이 영리하고 둔함을 잘 알고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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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을 통달하여,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이 더럽히지 못하고 고요하게 깨끗한 범행을 닦았으며, 제자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나이다.
‘보시도 없고 선한 일도 없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지금 세상도 없고 뒤의 세상도 없고 아라한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닦을 도도 없으며, 모든 중생들이 만겁을 지나면 생사의 윤회에서 자연히 해탈하며, 죄가 있거나 죄가 없거나 간에 모두 그러한 것이니라. 마치 신두·항하·박차·사타 등 네 강이 모두 바다에 들어가서 아무 차별도 없듯이,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해탈을 얻을 적에는 차별이 없다.’
이 사람이 지금 왕사성에 있사오니 원컨대 대왕은 빨리 가십시오. 그 사람을 만나면 모든 죄가 소멸할 것입니다.
“진실로 그 사람이 나의 죄를 덜어준다면 나는 마땅히 귀의하겠소.”
이 때에 기바라는 큰 의원이 임금 계신 데 나아가서 여쭈었다.
“대왕이여, 안녕히 주무셨나이까?”
왕은 게송으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누구든지 모든 번뇌
깨끗하게 끊어지고
이 세상에 물 안 들면
편안하게 잠을 자고.

큰 열반을 얻고 나서
깊은 뜻을 연설하며
참바라문 된 뒤에야
편안하게 잠을 자고.

몸으로는 세 가지 업
입으로는 네 가지 업
의심 그물 끊은 뒤에
편안하게 잠을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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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과 맘에 번뇌 없고
고요한 곳 머물러서
위없는 낙 얻고서야
편안하게 잠을 자고.

마음 속에 고집 없고
원수들을 멀리 떠나
다툼 없이 화평하면
편안하게 잠을 자고.

나쁜 업을 짓지 않고
부끄러움 항상 품어
악의 과보 믿어야사
편안하게 잠을 자고.

부모에게 공경하고
산 목숨을 살해 말고
남의 재물 안 훔치면
편안하게 잠을 자고.

모든 감관 조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하며
마군들을 깨뜨려야
편안하게 잠을 자고.

고·락·길·흉 보지 말고
중생들을 위하여서
나고 죽고 애쓰는 이
편안하게 잠을 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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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게 잠잘 이는
시방세계 부처님들
공한 삼매 관하면서
몸과 마음 편안한 이.

편안하게 잠잘 이는
자비하신 보살들
불방일(不放逸)을 항상 닦고
중생 보길 아들처럼.

무명 가린 중생들이
번뇌 과보 못 보면서
나쁜 업만 짓는 이는
편안한 잠 못 자느니.

자기 몸을 위해서나
다른 이를 시키어서
10악업을 짓는 이는
편안한 잠 못 자느니.

아비 죽인 죄 없으니
목전 쾌락 누리자는
나쁜 동무 사귄 이는
편안한 잠 못 자느니.

절차 없이 밥을 먹고
지나치게 찬 술 먹고
그리고서 병난 이는
편안한 잠 못 자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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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에게 죄를 짓고
유부녀에 정을 두고
쓸쓸한 길 다니는 인
편안한 잠 못 자느니.

계행 아직 미숙한 이
등극 못한 태자거나
돈 못 뺏은 도둑들은
편안한 잠 못 자느니.

기바여, 나는 지금 병이 중하오.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부왕에게 역해를 하였으니, 모든 의원이나 약이나 주문이나 좋은 방편으로 구원하더라도 나을 수가 없소. 그 까닭을 말하면 부왕께서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실로 허물이 없거늘, 나쁜 마음으로 역해를 하였는지라, 뭍에 나온 물고기 같으니 무슨 낙이 있으며, 그물에 걸린 사람과 같으니 애초부터 즐거운 생각이 없으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줄을 아는 사람과 같으며, 나라를 잃고 다른 나라로 도망하는 임금과 같으며, 자기의 병은 고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 같으며, 파계한 이가 죄의 설명을 들은 것 같구려. 나는 예전에 지혜 있는 이의 말을 들으니,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업이 깨끗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 하였소. 나의 신세가 그와 같거니 어찌 편안하게 잠을 자겠는가. 그리고 나에게는 법의 약을 말하여, 병을 치료하여 줄 만한 훌륭한 의원이 없소.”
“좋은 말씀입니다. 대왕께서는 비록 죄를 저질렀으나 마음으로 깊이 뉘우치고 부끄러운 생각을 품으셨나이다. 대왕이시여, 부처님 세존이 항상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선한 법이 중생을 구제할 수 있으니, 하나는 제 부끄러움[慚]이요, 다른 하나는 남 부끄러움[愧]이니라. 제 부끄러워하는 이는 스스로 죄를 짓지 아니하고, 남 부끄러워 하는 이는 다른 이를 시켜 죄를 짓지 아니하며, 제 부끄러워하는 이는 속으로 수치한 줄 알고, 남 부끄러워 하는 이는 남을 향하여 죄를 털어 놓으며, 제 부끄러운 이는 사람에게 부끄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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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부끄러운 이는 하늘께 부끄러워하나니 이것을 참괴라 하느니라. 참괴가 없는 이는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짐승이라 이름하며, 참괴가 있으므로 부모와 스승과 웃사람을 공경하고, 참괴가 있으므로 부모 형제 자매가 있다고 말하느니라’ 하시더니, 대왕께서는 지금 참과 괴를 갖추었나이다.
대왕이시여, 신이 부처님의 이런 말씀을 들었나이다.
‘지혜로운 이가 둘이니 하나는 나쁜 짓을 짓지 않는 이요, 다른 하나는 지은 뒤에 곧 참회하는 이니라. 어리석은 이도 둘이니 하나는 죄를 짓는 이요, 하나는 짓고는 감추려는 이니라. 비록 나쁜 짓을 지었지만, 이내 드러내어 참회하며 참회하고는 부끄러워서 다시 짓지 아니하면, 마치 흐린 물에 맑은 구슬을 넣으면 구슬의 위력으로 물이 곧 맑아지며, 구름이 걷히면 달이 청명하여지듯이, 죄를 짓고 참회하는 것도 그와 같다.’
왕께서 만일 참회하시고 참괴한 생각을 품으시면 죄가 곧 소멸되어 본래와 같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부자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코끼리와 말과 가지가지 짐승이요, 다른 하나는 금과 은과 가지가지 보배이온데, 코끼리와 말이 아무리 많아도 여의주 하나를 대적할 수 없나이다. 중생도 그러하여 하나는 악이 부자요 하나는 선이 부자니, 모든 악을 많이 지어도 한 가지 선함만 같지 못하나이다. 신이 부처님 말씀을 듣사오니 한 가지 선을 닦는 마음이 백 가지 악을 깨뜨린다 하더이다. 대왕이시여, 작은 금강이 능히 수미산을 깨뜨리며, 작은 불이 능히 온갖 것을 태우며, 적은 독약이 능히 중생을 해롭게 하나니, 작은 선도 그와 같아서 큰 악을 파하오며, 비록 작은 선이라 이름하나 실제로는 큰 것이니 왜냐 하면 큰 악을 파하는 까닭입니다. 대왕이시여,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덮어 감추는 것은 새고 감추지 아니하면 새지 않나니, 털어놓고 허물을 참회하므로 새지 않느니라. 여러 가지 죄를 지었더라도 덮어 두지 말고 감추지 말지니, 덮어 두지 아니하므로 죄가 경미하여지고 부끄러운 생각을 품으면 죄가 소멸한다’고 하였나이다. 대왕이시여, 물방울이 비록 작으나 점점 모이면 큰 그릇에 차나니, 선한 마음도 그러하여 하나하나의 선한 마음이 큰 악을 깨뜨리는 것이오며, 만일 죄를 덮어 두면 죄가 점점 더하거니와, 털어놓고 참회하면 죄가 소멸하는 것이므로 부처님 말씀이 지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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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죄를 덮어 두지 아니한다 하였나이다. 좋은 일입니다. 대왕이시여, 능히 인과 과를 믿사오며 업을 믿고 과보를 믿사오니, 원컨대 대왕은 근심하고 공포하지 마시옵소서.
만일 어떤 중생이 모든 죄를 짓고는 덮어 두고 참회하지 아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며, 인과와 업보를 보지 못하면서 지혜 있는 사람에게 묻지도 아니하며 선지식을 친근하지 아니하면, 이런 사람은 모든 훌륭한 의원이나 병구원을 잘하는 이라도 다스릴 수 없나니, 마치 대풍창병은 세간의 의원들이 손을 댈 수 없는 것처럼 죄를 감추는 사람도 그와 같나이다. 어떤 것을 죄인이라 합니까. 일천제를 말함입니다. 일천제는 인과(因果)를 믿지 않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고 업보를 믿지 않고, 지금 세상과 오는 세상을 보지 못하며, 선지식을 친근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나니 이런 사람을 일천제라 하며, 부처님들도 다스릴 수 없나이다. 왜냐 하면 마치 세간의 죽은 송장은 의원도 고칠 수 없는 것처럼, 일천제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 세존도 다스릴 수 없거니와, 대왕은 일천제가 아니옵거늘 어찌 치료할 수 없다고 말씀하나이까.
왕의 말씀은 치료할 이가 없다 하시오나, 가비라성 정반왕의 아드님은 성은 구담이요 이름은 실달다이니, 스승이 없이 혼자 깨달아서 자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사오며, 32상과 80종호로 몸을 장엄하고, 10력과 4무소외(無所畏)와 온갖 지견과 대자비를 구족하옵고,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김을 라후라와 같이 하며, 선한 중생을 따르기를 송아지가 어미 따르듯 하며, 때를 알아서 말하고 때가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며, 진실한 말·깨끗한 말·미묘한 말·이치 있는 말·법다운 말·한결같은 말을 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번뇌를 영원히 여의게 하며, 중생들의 근성과 심리를 잘 알고 마땅한 방편을 모두 통달하였으며, 지혜의 높고 크기는 수미산 같고, 깊고 넓기는 바다와 같으며, 이 부처님 세존은 금강 같은 지혜가 있어 중생들의 모든 죄악을 깨뜨리나니, 못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나이다.
여기서 12유순 되는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계시며, 한량없는 아승기 보살들을 위하여 가지가지 법을 연설하시니, 있는 법, 없는 법, 함이 있는 법, 함이 없는 법, 샘이 있는 법, 샘이 없는 법, 번뇌의 과보,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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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법의 과보, 빛이 있는 법, 빛이 아닌 법, 빛도 아니고 빛 아님도 아닌 법, 나라는 법, 내가 아닌 법, 나도 아니고 나 아님도 아닌 법, 항상한 법, 항상하지 않은 법, 항상함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음도 아닌 법, 즐거운 법, 즐겁지 않은 법, 즐겁지도 않고 즐겁지 않음도 아닌 법, 모양 있는 법, 모양 아닌 법,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닌 법, 아주 없는 법, 아주 없지 않은 법, 아주 없지도 않고 아주 없지 않음도 아닌 법, 세간법, 출세간법,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니 법, 승(乘)인 법, 승 아닌 법, 승도 아니고 승 아님도 아닌 법, 제가 짓고 제가 받는 법, 제가 짓고 남이 받는 법,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는 법 들이옵니다. 대왕이 만일 부처님 계신 데서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음을 들으시면 있는 바 중대한 죄가 곧 소멸할 것입니다.
대왕은 또 들으십시오. 제석환인이 목숨이 마치려 할 적에 다섯 가지 쇠하는 모양이 생기니, 첫째는 옷에 때가 묻고, 둘째는 머리 위에 꽃이 시들고, 셋째는 몸에서 냄새가 나고, 넷째는 겨드랑이에 땀이 나고, 다섯째는 앉은 자리가 편안하지 못함입니다. 이 때에 제석이 고요한 곳에서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고는 그곳에 나아가 부처님인 줄 생각하더니, 그 때에 사문과 바라문은 제석이 오는 것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천왕이여, 나는 지금 당신에게 귀의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제석이 듣고는 부처가 아닌 줄 알고 다시 생각하기를 ‘저가 부처가 아니면 나의 다섯 가지 쇠퇴하는 모양을 다스릴 수 없으리라’ 하였습니다.
이 때에 모시고 있던 신하 반차시가 제석에게 말하였습니다.
‘교시가여, 건달바왕의 이름이 돈부루요, 왕의 딸은 수발타라 하나니, 왕이 이 아가씨를 신에게 주시면 신이 그 쇠퇴하는 모양을 없앨 방도를 보여드리겠나이다.’
제석의 대답하였습니다.
‘선남자야, 비마질다 아수라왕의 딸은 이름이 사지라. 내가 공경하는 터이나, 경이 만일 나의 쇠퇴함을 소멸할 방도를 보여주면 경에게 주리니, 하물며 수발타리요.’
‘교시가여, 부처님 세존이 계시니 호를 석가모니라 하며, 지금 왕사성에 있으니, 그이에게 가서 물으면 쇠퇴하는 모양을 없앨 수 있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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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부처님이면 쇠퇴하는 모양을 없앨 수 있으리니 수레를 돌려 그리로 가자.’
신하는 왕의 명을 받들어 수레를 몰아 왕사성의 기사굴산에 이르렀다. 제석은 부처님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곁에 물러가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천상 인간에서 무엇이 속박하나이까?’
‘교시가여, 간탐과 질투니라.’
또 여쭈었다.
‘간탐과 질투는 어찌하여 생기나이까?’
‘무명을 인하여 생기느니라.’
‘무명은 무엇을 인하여 생기나이까?’
‘방일을 인하여 생기느니라.’
‘방일은 또 무엇을 인하여 생기나이까?’
‘뒤바뀜을 인하여 생기느니라.’
‘뒤바뀜은 또 무엇을 인하여 생기나이까?’
‘의심을 인하여 생기느니라.’
‘세존이시여, 뒤바뀐 법이 의심을 인하여 생긴다 하심은 실로 말씀하심과 같나이다. 왜냐 하면 나는 의심이 있었삽고 의심인 연고로 뒤바뀜이 생기어서 세존이 아닌데 세존이란 생각을 내었삽더니, 지금 부처님을 뵈옵고 의심이 없어졌으며, 의심이 없으므로 뒤바뀐 생각도 다하였고, 뒤바뀜이 다하였으므로 간탐심과 질투심이 없어졌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었다.
‘그대의 말대로 간탐·질투가 없어졌으면 아나함과를 얻었는가. 아나함은 탐하는 마음이 없나니, 만일 탐심이 없다면 어찌 목숨을 구하려고 여기 왔는가. 참으로 아나함이면 진실로 목숨을 구하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뒤바뀐 마음이 있는 이는 목숨을 구하고 뒤바뀜이 없는 이는 목숨을 구하지 않는다 하거니와 저는 목숨을 구함이 아니옵고 구하는 것은 부처님의 법신과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교시가여, 부처님의 법신과 부처님의 지혜를 구한다면 오는 세상에 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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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얻으리라.’
이 때에 제석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다섯 가지 쇠하는 모양이 즉시 소멸하여져서, 일어나 예배하고 세 바퀴를 돌고 공경하고 합장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죽었다가 살았고 목숨을 잃었다가 목숨을 얻었사오며, 또 부처님께서 수기하시기를,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하시니, 이것이 다시 산 것이며 다시 목숨을 얻음입니다. 세존이시여, 온갖 세간 사람 천상 사람이 어찌하면 많아지오며, 무슨 인연으로 줄어지나이까?’
‘교시가여, 싸우는 인연으로 사람과 하늘이 줄어지고 화합과 공경을 닦으면 느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싸우기 때문에 준다 하오면 저는 오늘부터 다시는 아수라와 싸우지 않겠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잘하는 일이다. 교시가여, 부처님 세존이 욕되는 일을 참는 법을 말씀하는데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일이 되느니라.’
이 때에 제석환인은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나이다. 대왕이여, 여래께서 나쁜 모양을 없애었므로 부처님을 불가사의라 하오니, 왕이 만일 가시기만 하면 무거운 죄악이 반드시 없어지리이다.
대왕은 또 들으십시오. 한 바라문의 아들이 있으니 이름은 불해(不害)라 하는데, 한량없는 중생을 죽이었으므로 또 앙굴마라라 이름하며, 다시 어머니를 죽이려고 나쁜 마음이 일어날 때에 마음이 따라 동하였고 몸과 마음이 동하였으므로 5역죄의 인이 되고, 역죄의 인연으로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으며, 뒤에 부처님을 뵈올 때에 몸과 마음이 동하여 해하려 하였으니, 몸과 마음이 동함은 5역죄의 일이요, 역죄의 인연으로 지옥에 들어갈 것이거늘, 이 사람이 여래를 만나서 지옥의 인연이 소멸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므로, 부처님을 일컬어 위없는 의원이라 하오니 외도의 6사(師)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또 수비라 왕자는 그 아버지가 성을 내어 손발을 끊어서 우물 속에 넣은 것을 어머니가 가엾게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건져내어 데리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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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 계신 데 갔더니, 부처님을 뵈올 적에 손과 발이 도로 구족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나이다. 대왕이여, 부처님을 뵈온 인연으로 현세의 과보를 얻었사오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일컬어 위없는 의원이라 하오며, 외도의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여, 항하의 가에 아귀가 있으니 수효가 5백이오며, 한량없는 옛적부터 물은 보지 못하고, 비록 강가에 이르러도 흐르는 불만 보며, 기갈이 막심하여 부르짖어 통곡하였나이다. 그 때에 여래께서 그 강 곁에 있는 우담바라 숲속에 앉았더니, 아귀들이 부처님 계신 데 와서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기길이 심하여 죽을 날이 멀지 않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항하의 흐르는 물을 어찌하여 먹지 않느냐?’
아귀가 대답하였습니다.
‘여래는 물로 보시나 우리는 불로 보이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항하의 맑은 물은 불이 아니건만, 나쁜 업의 연고로 마음이 뒤바뀌어 불이라 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로 하여금 뒤바뀐 마음을 없애고 물을 보게 하리라.’
이 때에 세존이 아귀들을 위하여 간탐의 허물을 말씀하시니, 아귀들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갈증이 심하여 아무리 법문을 들어도 마음에 들어가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목이 마르면 먼저 강에 들어가서 양껏 물을 마시라.’
아귀들은 부처님 법력으로 물을 먹게 되었고, 물을 먹은 뒤에 여래는 다시 가지가지 법문을 말씀하셨으며, 아귀들이 법문을 듣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 아귀의 형상을 벗고 하늘의 몸을 얻었나이다. 대왕이시여, 그러므로 부처님을 일컬어 위없는 의원이라 하오니, 외도의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사위성에 강도 5백 명이 있는 것을 바사닉왕이 그들의 눈을 뽑았더니, 눈이 없고 길잡이도 없어서 부처님 계신 데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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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도적들이 있는 데로 가셔서 이렇게 위로하셨습니다.
‘선남자들이여, 몸과 입을 잘 수호하고 다시 나쁜 짓을 하지 말라.’
그러자 도적들은 여래의 음성이 미묘하고 청아함을 듣고 곧 눈을 회복하여, 부처님 앞에 합장 예배하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제서야 부처님의 자비하신 마음이 모든 중생들에게 널리 덮이시었고 인간 천상만이 아닌 줄을 알았나이다.’
그 때에 여래께서 법문을 말씀하시니, 그 법문을 듣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므로, 여래는 참으로 세간의 훌륭한 의원이옵고, 외도의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또 사위성에 전다라가 있으니, 이름은 기허(氣噓)입니다. 한량없는 사람을 죽였는데, 부처님의 제자 목건련을 보고는 즉시 지옥의 인연을 깨뜨리고 33천에 태어났사오니,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가 있으므로 부처님을 일컬어 위없는 의원이라 하오며, 외도의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바라내성에 한 장자의 아들이 있으니 이름은 아일다(阿逸多)라, 그 어미를 간통하고, 이 인연으로 아비를 죽였더니, 어미가 또 다른 사람과 정을 통하므로 아들이 알고는 또 어미를 죽였으며, 한 아라한이 있어 모든 일을 잘 알므로 그 아라한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또 죽이고는 기타숲 절에 가서 출가하기를 원하였으나, 비구들은 이 사람이 세 가지 역죄 지은 줄을 알았으므로 허락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다시 성을 내어 그날 밤에 불을 놓아서 절을 불사르고 죄없는 사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런 뒤에 다시 왕사성으로 갔다가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출가하기를 애걸하였더니, 여래가 허락하시고, 그에게 법을 말씀하여 그의 죄를 가볍게 하여주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나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일컬어 세상의 훌륭한 의원이라 하오며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왕의 성품이 포악하여 나쁜 제바달다를 믿고 술취한 코끼리를 놓아서 부처님을 밟게 하였으나, 코끼리가 부처님을 보고는 곧 술이 깨었고, 부처님이 손을 내밀어 머리를 만지면서 법문을 말씀하여, 그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였나이다. 대왕이시여, 축생도 부처님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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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축생의 업보를 벗어버렸거든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대왕이 만일 부처님을 뵈오면 무거운 죄악이 반드시 소멸될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세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적에 마군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권속들과 함께 보살의 계신 데 이르거늘, 보살이 그 때에 인욕하는 힘으로 마군의 나쁜 마음을 깨뜨리고 마군으로 하여금 법을 받게 하였더니,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사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큰 공덕이 있나이다.
대왕이시여, 들판에 귀신이 있어 중생들을 많이 해치는 데, 여래는 그 때 선현장자를 위하여 광야 촌에 가서 법을 말하였더니, 들판에 귀신이 법을 듣고 환희하여 장자를 부처님께 드리고 문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나이다.
대왕이시여, 바라내국에 백정이 있으니 이름은 광액(廣額)이라, 날마다 한량없는 양을 죽이더니, 사리불을 만나서 8계를 받고는, 하루 낮 하룻밤을 지나고 그 인연으로 목숨이 마치고 북방천왕 비사문의 아들이 되었나이다. 여래의 제자도 이런 공덕의 과보가 있거든, 하물며 부처님이겠습니까.
대왕이시여, 북천축에 한 성이 있으니 이름이 세석(細石)이요, 그 성중에 임금이 있으니 이름은 용인(龍印)이라, 나라와 왕위를 탐내어 부왕을 살해하였고, 살해한 뒤에는 뉘우치는 마음을 내어 나라 정사를 버리고 부처님계신 데 와서 출가하기를 애걸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잘 왔도다[善來]’ 하시니, 곧 비구를 이루어 중죄가 소멸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나이다.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의 과보를 가지셨나이다.
대왕이시여, 여래의 동생 제바달다가 승가를 파괴하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고 연화 비구니를 해하여 세 가지 역적죄를 지었으나, 여래가 가지가지 법을 말하여 그 중한 죄가 마침내 경미하여졌나이다. 그러므로 여래를 용한 의원이라 하오며,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만일 신의 말을 믿사오면 원컨대 빨리 여래에게로 가시옵고, 만일 믿지 않으시면 잘 생각하시옵소서.
대왕이시여, 부처님 세존은 크게 가엾이 여김이 널리 덮이어 한 사람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바른 법이 크고 넓어 포섭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원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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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이에 평등하여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며, 한 사람에게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고 다른 이는 얻지 못하게 하지 아니하며, 여래는 사부대중의 스승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온갖 천상·인간·용·귀신·지옥·축생·아귀들의 스승이 되는 터인즉, 모든 중생들도 부처님 뵈옵기를 부모처럼 하여야 하나이다.
대왕께서는 이런 줄을 아셔야 합니다. 여래는 호화롭고 부귀한 발제가왕만을 위하여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천한 우파리 등에게도 법을 말하며, 수달다아나빈지가 받드는 공양만 받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수달다의 음식도 받으며, 사리불 같은 영리한 근기를 위하여서만 법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근성이 둔한 주리반특에게도 법을 말하며, 대가섭같이 탐심이 없는 사람이 출가하여 도를 구하는 것만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탐심이 많은 난타의 출가도 허락하며, 번뇌가 엷은 우루빈나가섭 등의 출가하여 도를 구하는 것만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무겁고 중죄를 지은 바사닉왕의 동생 우타야의 출가도 허락하여, 사초(裟草)로 공경하고 공양함으로써 그의 성내는 근성을 뽑고, 앙굴마라가 나쁜 마음으로 해하려는 것을 버려 두고 구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지혜 있는 남자만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어리석은 이의 짝이 된 지혜 있는 여인을 위하여서도 법을 말하며, 출가한 사람으로 하여금 네 가지 도과(道果)를 얻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집에 있는 이로 하여금 세 가지 도과를 얻게 하며, 부다라 등 바쁜 일을 버리고 한적하게 생각하는 이만을 위하여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빈바사라왕 등의 나라를 통치하고 정사를 살피는 이를 위하여서도 법을 말하나이다.
또 다만 술을 끊은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즐기는 욱가 장자의 만취한 이에게도 말하며, 선정에 들어 있는 리바다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죽어 상심하는 바라문의 딸인 바사타를 위하여서도 말하며, 자기의 제자들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외도인 니건자를 위하여서도 말하며, 다만 25세의 장년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80세의 늙은이들을 위하여서도 말하며, 선근이 성숙한 이들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선근이 성숙하지 못한 이에게도 말하며, 말리 부인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음녀인 연화녀(蓮花女)를 위하여서도 말하며, 바사닉왕의 훌륭한 음식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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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국다 장자의 나쁜 음식도 받나이다. 대왕이시여, 시리국다도 옛적에 역죄를 지었지만, 부처님을 만나서 법을 들었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나이다.
대왕이시여, 가령 한 달 동안을 의복과 음식으로 온갖 중생에게 항상 공양하고 공경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 염불하여 얻는 공덕의 16분의 1도 미치지 못하나이다. 대왕이시여, 가령 황금을 녹여 사람을 만들고 수레와 말에 보배를 실은 것 각각 백으로써 보시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발심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한 걸음을 옮긴 것만 같지 못하나이다. 대왕이시여, 가령 또 코끼리 수레 일백 채에 대진국(大秦國)의 가지가지 보물을 싣고, 여인의 몸에 차는 영락을 각각 일백 가지로 보시하더라도, 오히려 발심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한 걸음을 옮긴 것만 못하나이다. 그것은 그만두고, 만일 네 가지 것[四事]으로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더라도, 오히려 발심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한 걸음을 걸은 것만 못하나이다. 또 그것은 그만두고, 만일 대왕이 항하의 모래처럼 한량없는 중생에게 공양·공경하더라도,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가서 부처님 계신 데서 정성으로 법문을 듣는 것만 못하나이다.”
이 때에 임금은 기바에게 말하였다.
“여래 세존은 성품이 조화되셨으므로 조화된 이로 권속을 삼으시니 마치 전단숲에는 전단만으로 둘려 있는 듯하며, 여래가 청정하므로 그 권속들도 청정하니, 마치 용왕은 용으로만 권속을 삼은 듯하며, 여래가 고요하므로 권속들도 고요하며, 여래가 탐욕이 없으므로 권속들도 탐욕이 없으며, 부처님이 번뇌가 없으므로 권속들도 번뇌가 없는 것이거늘, 나는 지금 가장 나쁜 사람이어서 나쁜 업에 얽히고 몸이 더러워 지옥에 매였으니, 어떻게 부처님이 계신 곳에 갈 수 있겠는가. 내가 설사 가더라도 돌아보지도 않으며, 상대하여 말씀도 하시지 않을까 싶소. 그대는 비록 나를 권하여 부처님 계신 곳에 가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 몸이 더럽고 황송하여 갈 마음이 조금도 없구려.”
그 때에 허공에서 이런 말이 들리었다.
“위없는 부처님 법이 장차 쇠하려 하며, 깊고 깊은 법의 강물이 장차 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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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 하며 법의 등불이 오래잖아 꺼지려 하며, 법 산이 무너지려 하며, 법 배가 잠기려 하며, 법의 다리가 끊어지려 하며, 법의 궁전이 파괴되려 하며, 법의 짐대가 꺼꾸러지려 하며, 법의 나무가 꺾어지려 하며, 선지식이 가시려 하며, 큰 공포가 장차 이를 것이며, 법에 굶주린 중생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번뇌의 괴질이 장차 유행할 것이며, 암흑시대가 닥칠 것이며, 법에 목마른 시기가 이를 것이며, 마왕은 경행하여 갑옷을 벗으며 부처님의 해는 열반의 산으로 넘어가려 합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이 만일 세상을 떠나시면 왕의 중죄를 다스릴 이가 다시 없을 것입니다. 대왕이 이미 아비지옥에 떨어질 극악한 죄업을 지었으니 그 죄업의 인연으로 지옥의 고통을 받을 것이 의심없으리다.
대왕이여, 아는 없단 말이요 비는 사이란 말이니, 잠깐도 즐거울 사이가 없으므로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하나이다. 대왕이여, 가령 한 사람이 혼자서 이 옥에 들어가도 몸이 8만 유순으로 커져서 그 속에 가득하여 빈틈이 없고 몸으로는 두루두루 가지각색 고통을 받으며, 설사 여러 사람이라도 몸이 가득 차서 서로 방해하지 않나이다. 대왕이여, 치운 지옥에서는 잠깐 동안 더운 바람을 만나서 즐거울 수도 있고, 더운 지옥에서는 잠깐 동안 찬바람을 만나서 즐거울 수가 있으며, 어떤 지옥에서는 설사 명이 끊어졌다가도 살아라 하는 소리를 들으면 문득 살아나지만, 아비지옥에는 그런 일이 아주 없나이다. 대왕이여, 아비지옥에는 사방에 문이 있고, 문 밖마다 맹렬한 불이 있어 동서남북으로 서로 통하였으며, 8만 유순 되는 무쇠 담이 둘려 있고 철망이 덮이었고 땅도 철로 되었으며, 위의 불이 아래로 사무치고 아래의 불이 위로 통하였으므로, 대왕이여, 번철 위에 놓인 물고기가 기름이 끓듯이, 지옥 속의 죄인도 그와 같나이다.
대왕이여, 한 가지 역죄를 지었으면 한 가지 죄를 이렇게 받고, 두 가지 역죄를 지었으면 두 갑절 죄를 받고, 5역죄를 모두 지었으면 다섯 갑절 죄를 받나이다. 대왕이여, 내가 알기에는 왕의 지은 악업이 반드시 면할 수 없으리니, 원컨대 대왕은 빨리 부처님 계신 데로 가시오. 부처님을 제하고는 구원할 이가 없으리다. 나는 왕을 딱하게 여겨서 이렇게 권하는 것이오.”
이 때에 대왕은 이 말을 듣고 두려운 마음을 품고 온몸이 떨리고 사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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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기 파초나무같이 하면서 우러러 대답하였다.
“당신은 누구인데 형상은 드러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가?”
“대왕이여, 나는 왕의 아비인 빈바사라로다. 왕은 마땅히 기바의 말을 따르고 여섯 신하의 잘못된 소견을 따르지 말라.”
왕은 이 말을 듣고는 기절하여 땅에 쓰러지니 창병은 더욱 성하여 역한 냄새가 곱절이나 더하였으며, 냉한 약을 바르며 치료하였으나 창이 성하며 뜨거운 독이 더하기만 하고 덜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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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2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14~25권
[321 / 909] 쪽

대반열반경 제 14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0. 청정한 행[梵行品]①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청정한 행[梵行]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무르면 일곱 가지 착한 법에 머물러야 범행을 구족하나니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법을 알고, 둘째는 뜻을 알고, 셋째는 때를 알고, 넷째는 만족함을 알고, 다섯째는 스스로 알고, 여섯째는 대중을 알고, 일곱째는 높고 낮음을 아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법을 아는 것이라 하느냐.
선남자야, 이 보살마하살이 12부경을 알아야 하나니, 수다라[契經]·기야[重頌]·수기(授記)·가타[孤起頌]·우타나[自說]·니다나[因綠]·아바다나[譬喩]·이제목다가[本事]·사다가[本生]·비불략[方廣]·아부타달마[未曾有]·우파제사[論議]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수다라경이라 이름하는가.
‘이렇게 내가 들었다(如是我聞)’에서 ‘기쁘게 받들어 행하니라(歡喜奉行)’까지의 모든 것을 수다라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기야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나와 너희들이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4진제(眞諦)를 실상 그대로 보지 못하고서, 오래도록 생사에 헤매면서 고통 바다에 빠졌으니, 네 가지 이치는 괴로움과 집(集)과 열반과 도이니라. 부처님이 예전에 비구들에게 수다라경을 말하여 마치었는데, 다시 자격이 훌륭한 중생이, 법문을 들으려고 나중에 부처님께신 데 와서 다른 이에게 묻기를 ‘여래께서 요전에 어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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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였는가’하기에, 부처님이 그 일을 알고 근본경을 의지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멀고 먼 옛적에는 나나 너희나
네 가지 참 이치를 보지 못하고
났다가는 죽고 하는 고통 바다에
오래오래 헤매면서 지내었으니,

네 가지 참 이치를 보았더라면
나고 죽는 뿌리를 끊어 버리어
나는 일이 다하여 없어지고는
다시는 모든 세상 받지 않으리.

이런 것을 기야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수기경이라 이름하는가. 마치 어떤 경이나 계율에서 부처님이 법을 말하다가 천상 사람이나 세간 사람에게 부처님의 수기를 주면서 ‘너 아일다여, 오는 세상에 양가(蠰佉)라는 왕이 있으리니, 바로 그 세상에서 부처의 도를 이룩하고 이름을 미륵이라 하리라’ 하는 것을 수기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가타경이라 이름하는가. 수다라나 계율을 제외하고, 그 밖에 네 글귀 게송을 가리키는 것이니라.

여러 가지 나쁜 짓 짓지도 말고
여러 가지 착한 일 모두 행하라.
자기 마음 스스로 깨끗이 하면
이를 일러 부처님 교라 하느니라.

이런 것을 가타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우다나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께서 저녁나절에 선정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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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하늘 대중들에게 법문을 연설하였는데, 그 때에 비구들이 생각하기를, 여래가 지금은 무엇을 하시는가 하였다. 여래께서는 다음날 아침에 선정에서 일어나 물은 사람이 없지만, 타심통으로 알고 스스로 말씀하기를 ‘비구들은 알아라. 모든 천인들은 수명이 엄청나게 긴데, 너희 비구들은 남을 위하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탐욕이 없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만족한 줄을 아는 것이 잘하는 일이며, 고요하게 지내는 것이 잘하는 일이니라’ 하셨다.
이런 경들은 묻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우다나’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니다나경이라 하는가. 어떤 경이나 게송에서 원인이 되는 근본을 다른 이에게 연설하는 것이니라. 사위성(舍衛城)에 어떤 장부가 그물로 새를 잡아서 새장에 넣어두고 모이와 물을 주다가 도로 놓아주었는데, 세존께서 그 근본과 나중의 인연을 알고 게송을 말씀하셨다.

작은 악을 업신여겨
죄가 없다 하지 말라.
물방울이 작지만
큰 그릇에 차느니라.

이런 것을 니다나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아바다나경이라 이름하는가. 계율 가운데서 말한 비유와 같은 것을 아바다나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제목다가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은 마땅히 알아라. 내가 세상에 났을 때에 말한 것은 계경(契經)이라 하고, 구루진불(鳩留秦佛)이었을 때에는 감로 북[甘露鼓]이라 하였고,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때에는 법 거울[法鏡]이라 하였고, 가섭불(迦葉佛) 때에는 분별공(分別公)이라 하였느니라’ 하는 이런 것을 이제목다가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사다가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이 본래 보살로서 고행을 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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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일이니,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라. 내가 지난 세상에서 사슴이 되고 곰이 되고 노루가 되고 토끼가 되고 좁쌀이 흩어진 것처럼 많은 임금이 되고 전륜왕이 되고 용이 되고 금시조가 되었는데, 이와 같은 것은 보살의 도를 닦을 적에 받던 몸이다’라고 한다면 이런 것을 사다가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비불략경이라 이름하는가. 대승의 방등경전을 말함이니, 뜻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음이라, 이런 것을 비불략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미증유경이라 이름하는가. 저 보살이 처음 났을 적에 붙들어 주는 이가 없었지만 일곱 걸음을 걸었고, 큰 광명을 놓으며 시방을 두루 보았다느니, 원숭이가 손으로 꿀 그릇을 받들어 여래께 드렸다느니, 목이 흰 강아지가 부처님 곁에서 법을 들었다느니, 마왕 파순이 푸른 소로 변하여 옹기 발우 사이로 다니면서 발우가 서로 부딪치게 하여도 깨어지지 않았다느니, 부처님이 아기 때에 천신의 사당에 들어가매 천신의 동상이 일어나서 예배하던 일 따위를 미증유경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우바제사경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님이 말씀한 경전에서 논란하고 분별하여, 그 모양을 말하는 것을 우바제사경이라 하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12부경을 분명히 알면 이것을 법을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뜻을 아는 것이라 하느냐. 보살마하살이 온갖 글자와 말에 대하여 그 뜻을 널리 알면 그것을 뜻을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때를 아는 것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이 이런 때에는 고요함을 닦을 만하고 이런 때에는 정진을 닦을 만하고 이런 때에는 버리는 선정을 닦을 만하며, 이런 때에는 부처님께 공양할 만하고 이런 때에는 스님께 공양할 만하며, 이런 때에는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을 닦아서 반야바라밀을 구족할 만한 줄을 잘 아는 것을 뜻을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만족함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족함을 안다 함은 음식·의복·약과, 다니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자고 깨고 말하고 잠잠하는 따위니, 이것을 만족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아는 것이라 하는가. 이 보살이 내게 이런 믿음·이런 계행·이런 기억·이런 버림·이런 지혜·이런 거래·이런 바른 생각·이런 선행·이런 물음·이런 대답이 있음을 아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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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중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보살이 이러한 이는 찰리(刹利) 대중이며 바라문 대중이며 거사 대중이며 사문 대중들이니, 이 대중에게는 이렇게 가고 오고, 이렇게 앉고 일어나고, 이렇게 법을 연설하고, 이렇게 묻고 대답하여야 할 줄을 하는 것을 대중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사람의 높고 낮음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사람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믿는 이요, 다른 하나는 믿지 않는 이니라. 믿는 이는 착하고 믿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아니함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믿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절에 가는 이와 가지 않는 이니라. 가는 이는 착하고 가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절에 가는 이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예배하는 이와 예배하지 않는 이니라. 예배하는 이는 착하고 예배하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예배하는 데도 두 가지가 있으니, 법을 듣는 이와 듣지 않는 이니라. 법을 듣는 이는 착하고 듣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아니한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법을 듣는 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지성으로 듣는 이와 지성이 없는 이니라. 지성으로 듣는 이는 착하고 지성이 없는 자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지성으로 법을 듣는 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뜻을 생각하는 이와 생각하지 않는 이니라. 뜻을 생각하는 이는 착하고 뜻을 생각하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않은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뜻을 생각하는 데도 두 가지가 있으니, 말한 대로 행하는 이와 말한 대로 행하지 않는 이니라. 말한 대로 행하는 이는 착하고 말한 대로 행하지 않는 이는 착하지 아니한 줄을 보살이 알아야 하느니라. 말한 대로 행하는 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을 구하고 모든 괴로움 받는 중생을 이익하여 편안케 하지 못하는 이요, 둘은 위없는 대승으로 회향하여 여러 사람을 이익하고 안락케 하는 이니, 여러 사람을 이익케 하여 안락을 얻게 하는 이가 가장 높고 가장 선한 줄을 보살은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보배 가운데는 여의주가 가장 훌륭하고, 여러 가지 음식 중에는 감로가 제일이니, 이런 보살은 천상과 인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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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서 비유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승 대반열반경에 머물러서 일곱 가지 선한 법에 있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 일곱 가지 선한 법에 머물면, 청정한 행을 구족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또 청정한 행이 있으니, 사랑하고[慈] 가엾이 여기고[悲] 기뻐하고[喜] 버리는[捨]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사랑함을 닦으면 성내는 마음을 끊고, 가엾이 여김을 닦아도 성내는 마음을 끊사옵거늘, 어찌하여 4무량심이라 합니까. 이치로 미루어보면 세 가지가 있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랑함에 세 가지 반연함이 있으니, 중생을 반연하는 것과 법을 반연하는 것과 반연함이 없는 것이며, 가엾이 여기는 마음·기뻐하는 마음·버리는 마음도 그와 같아서 이런 뜻을 따른다면 셋만이 있겠고 넷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중생의 반연은 5음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주려는 것이 중생의 반연이요, 법의 반연은 중생들이 필요하는 물건을 보시하여 주는 것이 법의 반연이요, 반연함이 없다 함은 여래를 반연함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반연이 없다고 하나이다.
사랑이라 함은 흔히 가난한 중생을 반연하는 것인데, 여래께서는 가난을 영원히 여의고 첫째가는 기쁨을 받으시니, 만일 중생을 반연한다면 부처님께서는 반연하지 않으며, 법도 그러하니, 이런 이치로 여래를 반연하는 것을 반연이 없다고 이름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랑으로 반연하는 모든 중생은 부모·처자·권속을 반연하는 따위니, 이런 뜻으로 중생의 반연이라 이름하고, 법을 반연함은 부모·처자·권속을 보지 않고,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긴 줄을 보는 것이니, 이것을 법의 반연이라 이름하고, 반연이 없다 함은 법의 모습과 중생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반연이 없다 이름하오며,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일도 이와 같으니, 셋이 마땅하고 넷은 있을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람에 두 가지가 있으니, 잘못 보는 행[見行]과 애욕의 행[愛行]이외다. 잘못 보는 행을 하는 사람은 사랑함과 가엾이 여김을 많이 닦고, 애욕의 행을 하는 사람은, 기뻐함과 버림을 많이 닦사오니, 그러므로 둘이 마땅하고 넷은 있을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한량없다[無量]함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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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없다는 것이니, 가를 짐작할 수 없으므로 한량없다 하오니, 만일 한량이 없으면 하나라 함이 마땅하고, 넷이라 할 수는 없나이다. 만일 넷이라 하면 어찌 한량이 없으리요. 그러므로 하나가 마땅하고 넷이 있을 수는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야, 부처님 여래가 중생들에게 말씀하는 법은 그 말씀이 비밀하여 분명하게 알기가 어려우니라. 혹은 중생을 위하여 한 인연을 말하나니, 무엇이 한 인연인가. 온갖 함이 있는 법이라 함이니라. 선남자야, 혹은 두 가지를 말하나니, 인과 과이니라. 혹은 셋을 말하나니 번뇌와 업과 괴로움이니라. 혹은 넷을 말하니 무명과 행과 나는 것과 늙어 죽는 것이니라. 혹은 다섯을 말하니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이니라. 혹은 여섯을 말하니 삼세의 인과 과보니라. 혹은 일곱을 말하니 식(識), 명색(名色)·6입(入)·촉(觸)·수(受)·애(愛)·취(取)니라. 혹은 여덟을 말하니 12인연에서 무명·행·생·노사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이니라. 혹은 아홉을 말하니 성(城)을 지나던 중에 무명과 행과 식을 빼고 설한 나머지 아홉 가지와 같으니라. 혹은 열한 가지니 살차니건자를 위하여 말할 적에 생(生) 한 법만 빼고 설한 나머지 열한 가지와 같으니라. 혹은 12인연을 구족하게 말하니 왕사성에서 가섭 등을 위하여 열두 가지를 구족하게 말한 것으로 무명으로부터 생·노사까지니라. 선남자야, 한 가지 인연에서도 중생들을 위하여 가지가지로 분별하나니, 한량없는 마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여래의 깊고 비밀한 일에 의심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큰 방편이 있어서 무상을 항상하다 말하고, 항상함을 무상하다 말하며, 즐거움을 괴롭다 말하고, 괴로움을 즐겁다 말하며, 부정함을 깨끗하다 말하고 깨끗함을 부정하다 말하며, 나[我]를 내가 없다[無我] 말하고, 내가 없는데 나라 말하며, 중생 아닌데 중생이라 말하고 참말 중생에겐 중생 아니라 말하며, 물건 아닌데 물건이라 말하고, 물건을 물건 아니라 말하며, 진실이 아닌데 진실하다 말하고, 진실한데 진실이 아니라 말하며, 경계가 아닌데 경계라 말하고, 경계를 경계 아니라 말하며, 생(生)이 아닌데 생이라 말하고, 생을 생이 아니라 말하며, 내지 무명을 명(明)이라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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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을 무명이라 말하며, 색을 색 아니라 말하고, 색 아닌 것을 색이라 말하며, 도가 아닌 것을 도라 말하고, 도를 도가 아니라 말하나니, 선남자야, 여래가 이러한 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들을 조복함을 어찌 허망하다 하겠는가.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재물을 탐하거든,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몸을 변화하여 전륜왕이 되어, 한량없는 세월 동안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가지로 이바지한 뒤에 그를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5욕락을 탐하거든 한량없는 세월에 미묘한 5욕락으로 그 뜻을 만족케 한 뒤에, 그를 권유하고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영화와 귀함을 누리려 하거든, 한량없는 세월 동안 그 사람의 하인이 되어 심부름하고 모시면서 그의 마음에 들게 한 뒤에, 권유하고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성질이 사나워서 다른 이의 간함을 필요하게 되면, 내가 백천 년 동안에 그를 타이르고 달래어서 마음이 조복된 뒤에 다시 권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가 이와 같이 한량없는 세월 동안 가지가지 방편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는 것을 어찌 허망하다 하겠느냐. 부처님 여래는 가지가지 나쁜 것 가운데 있더라도 물들지 아니함이 연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이렇게 4무량심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 한량없는 마음의 성품이 넷이 있으니, 이것을 닦아 행하면 대범천에 태어나느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한량없는 마음의 짝이 네 가지가 있으므로 넷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내는 일을 끊고, 기뻐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즐겁지 아니함을 끊고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내고 성내는 중생을 끊나니,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넷이라 이름하고, 하나나 둘이나 셋이라고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사랑으로 성내는 일을 끊고, 가엾이 여김도 그렇다 하여, 셋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이제부터 그런 문난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선남자야,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하나는 채찍질하는 것이니라. 사랑을 닦으면 생명 빼앗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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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끊고 가엾이 여김을 닦으면 채찍질하는 일을 끊나니, 선남자야, 그런 이치로 보면 넷이 아니겠느냐.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중생을 성내는 것과 중생 아닌 것을 성내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중생에게 성내는 일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중생 아닌 것에 성내는 일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인연이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인연이 없는 것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인연 있는 것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인연 없는 것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난 세상에서 오래부터 익힌 것이요 다른 하나는 지금 세상에서 금방 익힌 것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지나간 것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지금 것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인을 성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범부를 성내는 것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인을 성내는 것을 끊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범부를 성내는 것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상품이요, 다른 하나는 중품인데, 사랑을 닦으면 상품을 끊고, 가엾이 여김을 닦으면 중품을 끊느니라. 선남자야, 이런 이치로 넷이라 이름하거늘, 어찌하여 셋이 마땅하고 넷이 아니라고 힐난하겠느냐.
그러므로 가섭이여, 이 한량없는 마음을 짝으로 상대하여 분별하면 넷이 되고, 또 근기로 말하여도 넷이 되나니, 근기에 사랑함이 있으면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마음은 있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넷이 마땅하고 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행으로 분별하여도 넷이 있어야 하나니, 만일 사랑을 행할 때에는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마음이 없으므로 넷이 있느니라. 선남자야, 한량이 없는 것으로도 넷이라 이름하느니라. 한량없는 마음에 네 가지가 있으니,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반연은 있으나 자재함이 아니고,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자재는 하나 반연이 아니고,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반연도 있으며 자재도 하고,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반연도 아니며 자재도 아니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을 반연은 있으나 자재가 아니라 하는가.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을 반연하면서도 자재한 삼매를 얻지 못하거나, 얻더라도 확고하지 못하여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이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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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자재는 하지만 반연이 아니라 하는가. 부모·형제·자매를 반연하여 안락을 얻게 하려는 것들은 한량없는 마음의 반연이 아니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을 반연도 있고 자재도 하다고 하는가. 부처님과 보살들을 말하는 것이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을 반연도 아니고 자재도 아니라 하는가. 성문과 연각은 한량없는 중생을 반연하지도 못하고 자재도 아니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4무량심은 성문이나 연각들의 알 것이 아니고, 부처님 여래의 경계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네 가지는 성문이나 연각은 한량없다고 이름하지만 너무 적어서 말할 것이 못되는 것이요 부처님과 보살만은 한량없고 갓이 없다고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나이다. 참으로 거룩한 말씀과 같아서, 여래의 가지신 경계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미칠 것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물러서 사랑하는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얻더라도 큰 사랑과 큰 가엾이 여김이 아닐 수 있겠나이까?”
“있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일 중생들 가운데 3품으로 분별하면 첫째는 친한 이, 둘째는 원수, 셋째는 중간 사람이다. 친한 이를 또 3품으로 나누면 상품·중품·하품이며 원수도 그러하니라. 이 보살마하살이 상품의 친한 이에게는 더 나은 낙을 주고, 중품·하품의 친한 이에게도 평등하게 더 나은 낙을 주며, 상품의 원수에게는 조그만 낙을 주고, 중품의 원수에게는 중품 낙을 주고, 하품의 원수에게는 더 나은 낙을 주며, 보살이 이렇게 점점 더 닦아서 상품의 원수에게 중품 낙을 주고, 중품·하품의 원수에게 평등하게 더 나은 낙을 주며, 더 점점 닦아서 상품·중품·하품에게 평등하게 상품 낙을 주나니, 만일 상품의 원수에게 상품 낙을 주면, 그 때에는 사랑하는 마음을 성취하느니라. 보살이 그 때에는 부모와 상품의 원수에게 평등한 마음을 얻어 차별이 없으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얻었다 하거니와, 큰 사랑하는 마음은 아니니라.”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이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얻은 것을, 오히려 큰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야, 성취하기 어려우므로 큰 사랑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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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세월에 오래오래 번뇌만 쌓았고 선한 법을 닦지 못하였으므로, 하루 동안에 마음을 조복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완두(豌豆)가 말랐을 적에는 송곳으로 찌를 수 없는 것처럼, 번뇌의 굳기도 그와 같아서 하루 밤낮에 마음을 두어 산란치 않아도 조복하기 어려우니라. 또 집에 있는 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산에 있는 들사슴은 사람을 보면 무서워서 달아나나니, 성내는 마음을 버리기 어렵기는 집을 지키는 개와 같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기는 들사슴 같으므로 조복하기 어려우니라. 이런 뜻으로 큰 사랑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또 선남자야, 돌에 그린 그림은 문채가 항상 있지만 물에 그린 것은 빨리 없어져서 오래가지 못하나니, 성내는 마음은 돌에 그린 그림 같고, 선한 근본은 물에 그린 그림 같나니, 그러므로 조복하기 어려우니라. 마치 큰 불더미는 밝은 빛이 오래 머물고, 번개 빛의 밝은 것은 잠깐도 머물 수 없거든, 성내는 마음은 불더미 같고 사랑하는 마음은 번개 빛 같으므로 조복하기 어려우니, 그런 뜻으로 큰 사랑하는 마음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초지(初地)에 머물면 큰 사랑하는 마음이라 하나니, 왜냐 하면 선남자야, 가장 나쁜 이는 일천제라 하는데, 초지 보살은 큰 사랑을 닦을 때에 일천제에 대하여 차별하는 마음이 없으며, 그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므로 성을 내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으로 큰 사랑하는 마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 없는 일을 덜어 버리므로 크게 사랑함이라 하고,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이익을 주려 하므로 크게 불쌍히 여김이라 하고, 중생들에게 대하여 환희한 마음을 내므로 크게 기뻐함이라 하고, 내 것이라 하여 옹호하려는 생각이 없으므로 크게 버림이라 하며, 만일 나[我]라는 법의 모양과 내 몸을 보지 아니하고, 모든 법이 평등하여 둘이 없는 줄 보면 이것을 크게 버림이라 하며, 자기의 즐거움을 버리어 다른 이에게 주면 크게 버림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4무량심으로야 보살이 6바라밀을 늘게 하며 구족케 할 것이요, 다른 행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먼저 세간의 4무량심을 얻은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어서, 차례로 출세간의 것을 얻느니라. 선남자야, 세간의 한량없는 마음을 인하여 출세간의 한량없는 마음을 얻는 것이므로 큰 한량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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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이익 없는 것을 덜어 버리고, 이익과 안락을 준다는 것은 실제로는 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유하는 것은 빈 관찰뿐이고 실지의 이익은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비구들이 부정한 줄을 관찰할 적에 입은 옷을 모두 가죽이라고 보지만 실로는 가죽이 아니며 먹는 것을 모두 벌레라고 생각하지만 실로 벌레가 아니며, 콩국을 똥물[卞汁]로 생각하지만 실로 똥이 아니며, 먹을 수 있는 타락을 골수와 같다고 관찰하지만 실로 골수가 아니며, 뼈 부순 가루를 보릿가루와 같다고 관찰하지만 실로 보릿가루가 아닌 것처럼, 4무량심도 그와 같아서, 진실하게 중생을 이익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지 못할 것이오니, 아무리 입으로만 중생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말하여도, 실제로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리니 이러한 관찰은 허망한 것이 아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허망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즐거움을 준다면, 모든 중생들이 어찌하여 부처님과 보살의 위덕의 힘으로 모두 즐거움을 받지 못하나이까? 만일 진실로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같이, ‘네가 옛적에 사랑하는 마음만을 닦고서도, 이 세계가 일곱 번 이루어지고 파괴되는 동안에 여기 와서 나지 아니하면서, 세계가 성취될 적에는 범천에 태어나고, 세계가 파괴될 적에는 광음천(光音天)에 태어났는데, 범천에 나서는 세력이 자제하여 아무도 꺾을 이가 없고, 1천 범천 중에 가장 훌륭하고 가장 높아서 대범천왕이 되었으며, 모든 중생들이 나에게 대하여 가장 높은 이란 생각을 가졌고, 서른여섯 번이나 도리천의 제석천왕이 되고, 한량없는 백천 번은 전륜왕이 되었노라. 다만 사랑하는 마음만을 닦고도 이렇게 인간·천상의 과보를 얻은 것이다’ 하였사오니 만일 진실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이치와 서로 맞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너는 참으로 용맹하여 두려움이 없도다.”
그리고는 가섭보살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였다.

한 중생에게라도
성내는 맘 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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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주려 하면
이를 일러 자선이요,

모든 세계 중생들을
가엾이 여긴다면
성인의 종성(種性)이니
한량없는 복 받으리.

온 세계에 가득하온
5통(通) 얻은 신선들과
대자재천주에게
온갖 것을 보시해도

그 복으로 얻는 과보
사랑하는 한 마음을
닦은 복에 비긴다면
십육분의 일도 못돼.

“선남자야,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것은 허망한 생각이 아니고 이치가 진실하니라. 만일 성문이나 연각의 사랑이라면 허망하다고 이름하지만 부처님과 보살의 사랑은 진실한 것이요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무엇으로 아는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로서 이러한 대반열반을 닦는 이는 흙을 관하여 금을 만들고 금을 관하여 흙을 만들며, 지대로 수대를 만들고 수대로 지대를 만들며, 물로 불을 만들고 불로 물을 만들며, 지대로 풍대를 만들고 풍대로 지대를 만들어서, 마음대로 성취하여 허망함이 없으며, 참말 중생을 관하여 중생 아닌 것을 만들고 중생 아닌 것을 관하여 참말 중생을 만들되, 모두 뜻대로 되어서 허망하지 아니하나니, 선남자야, 보살의 4무량심은 진실한 생각이요 진실하지 아니함이 아니니라.
또 선남자야, 어찌하여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가. 모든 번뇌를 끊어 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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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다. 선남자야, 사랑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어 버리고, 가엾이 여김을 닦는 이는 성냄을 끊어 버리고, 기쁨을 닦는 이는 즐겁지 아니함을 끊어 버리고,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과 성냄과 중생이란 모습을 끊어 버리나니, 그러므로 진실한 생각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의 4무량심은 모든 선근의 근본이 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일 가난한 중생을 보지 못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낼 인연이 없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면 보시할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려니와, 보시하는 인연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편안한 쾌락을 얻게 하나니, 곧 음식과 수레와 의복과 꽃과 향과 평상과 집과 등불이니라. 이런 것으로 보시할 적에 마음이 속박되지 않고 탐착함을 내지 아니하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회향할 것이며, 그 마음에 의지함이 없고, 허망한 생각을 끊어 버리고, 두려움이나 명예나 이양을 위하지 아니하여, 인간과 천상에서 받는 쾌락도 구하지 아니하고, 교만한 마음도 내지 아니하며, 은혜 갚기를 바라지도 않고, 다른 이에게 속아서 보시하는 것도 아니며, 부귀를 구함도 아니며, 보시를 행할 때에는 받는 이가 계행을 가지거나 계행을 파하거나, 복밭이거나 복밭이 아니거나 선지식이거나 선지식이 아니거나도 보지 말며, 보시할 때에 정당한 그릇인지 그릇이 아닌지도 보지 말며, 보시할 때거나 보시할 곳이거나 아닌 것도 가리지 말아야 하며, 또 흉년과 풍년도 아는 체하지 말고, 원인이나 결과나 중생이다 중생 아니다 복이다 복 아니다 하는 것을 보지 말아야 하며, 보시하는 이와 받는 이와 재물을 비록 보지 아니하며, 내지 끊는 것과 과보를 보지 않더라도, 항상 보시를 행하여 끊이지 말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일 계행을 가짐과 계행을 깨뜨림과 내지 과보를 본다면, 마침내 보시하지 못하고, 보시하지 아니하면 보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며, 보시바라밀다를 구족하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을 적에, 그 권속들이 편안케 하며 독을 없애기 위하여 의원을 청하여 살을 뽑으려 하는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아직 손을 대지 말라. 이 독한 살이 어느 쪽에서 왔으며, 누가 쏘았으며 찰리인지 바라문인지 비사인지 수타인지를 내가 살펴보아야 하겠다’ 하며,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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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를 ‘그 살이 나무냐 대냐 버들이냐, 그 촉은 어디서 만들었으며 강한 것인지 연한 것인지, 깃[羽]은 무슨 새의 깃이냐, 까마귀 깃이냐 올빼미 깃이냐 독수리 깃이냐. 그 독은 만든 것이냐 자연으로 생긴 것이냐, 사람의 독이냐 뱀의 독이냐’ 하고 이렇게 따지려 하면,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목숨이 끊어질 것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도 그러하여 보시를 행하려 하면서 받을 사람이 계행을 가지는가, 계행을 파하였는가, 과보는 어떠 할 것인가를 분별하려 들면, 마침내 보시하지 못할 것이요, 보시하지 못하면 보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고, 보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행할 적에는, 평등한 자비심으로 중생을 아들처럼 생각할 것이며, 또 보시할 때에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서 마치 부모가 병든 자식을 돌보듯이 할 것이며, 보시를 행할 적에는 마음이 기쁘기가 아들의 병이 쾌차함을 보는 부모와 같아야 하며, 보시한 뒤에는 마음 놓기를 마치 부모가 장성한 아들의 스스로 생활할 수 있음을 보듯이 하여야 하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밥을 보시할 적에 항상 원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 모든 중생들이 큰 지혜의 밥을 얻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위없는 대승으로 회향하여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좋은 지혜의 밥을 얻고 성문·연각의 밥을 구하지 말아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법의 기쁜 밥[法喜食]을 얻고 사랑의 밥[愛食]을 구하지 말아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모두 반야바라밀 밥을 얻어 만족하고 걸림없이 늘어가는 선근[增上善根]을 섭취하여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공한 모양을 깨닫고 허공과 같이 걸림없는 몸을 얻어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들이 받는 이를 위하여 여럿을 불쌍하게 여기며, 중생들의 복밭이 되어지이다’ 할지니,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을 닦으면서 밥을 보시할 적에는 마땅히 이러한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마실 것을 보시할 적에는, 항상 원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 모든 중생들이 대승의 강에 들어가 여덟 가지 맛을 마시고, 위없는 보리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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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며, 성문 연각의 목마름을 여의고 부처님의 법을 구하며, 번뇌의 갈증을 끊고 법의 맛을 앙모하며, 나고 죽는 애착을 끊고 대승의 대반열반을 좋아하며, 법신을 갖추어 모든 삼매를 얻어 깊고 깊은 지혜 바다에 들어가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감로의 맛과 보리와 출세간과 탐욕을 여읜 고요한 맛들을 얻어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한량없는 백천의 법맛을 구족하며, 법맛을 구족하고는 불성을 보고, 불성을 보고는 법비를 능히 내리며, 법비를 내리고는 불성이 두루 덮이기를 허공과 같이 하며, 또 다른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한 법의 맛을 얻게 하되, 대승의 법맛이요 성문·벽지불의 맛이 아니게 하여지이다. 바라건댄 중생들이 법맛과 걸림없는 불법을 행하는 맛을 얻고 다른 맛을 구하지 말아지이다’ 할지니,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마실 것을 보시할 적에는 마땅히 이러한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수레 등을 보시할 적에는 마땅히 원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을 이루게 하며, 대승에 머물러서 법에서 물러가지 아니함과 동요하지 않는 법과 금강좌(金剛座) 같은 법을 얻게 하며, 성문승이나 벽지불승을 구하지 아니하고, 부처님 법, 굴복할 수 없는 법, 부족함이 없는 법, 물러가지 않는 법, 위가 없는 법과 10력승(乘)·대공덕승·미증유승 그리고 희유한 법, 얻기 어려운 법, 가가 없는 법, 온갖 것을 아는 법으로 향하여지이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에서 수레를 보시할 적에는 마땅히 이러한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옷을 보시할 적에는 마땅히 원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이 부끄럽다는 옷[慚愧衣]을 얻게 하며, 법계로 몸을 덮어 잘못된 소견의 옷을 찢으며, 옷이 몸에서 1척 6촌을 떠나고 금빛 몸을 얻으며, 여러 가지 받는 촉감이 부드러워 장애가 없으며, 얼굴빛이 윤택하고 피부가 보드라우며, 뚜렷한 광명[常光]이 한량없고, 빛이 없고 빛을 여의어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모두 빛 없는 몸을 얻고, 온갖 색을 뛰어넘어 빛이 없는 대반열반에 들어지이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옷을 보시할 적에 마땅히 이런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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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함을 닦으면서 꽃과 향과 바르는 향·가루·여러 가지 잡색향을 보시할 적에 마땅히 원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불화(佛花)삼매를 얻고 일곱 가지 깨달은 미묘한 화만으로 머리에 매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의 형모는 보름달 같고 보는 빛들은 미묘하기 제일이 되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모두 한 모양을 이루어 온갖 복으로 장엄하여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마음대로 뜻에 맞는 빛을 보아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들이 항상 선지식을 만나서 걸림없는 향기를 얻고 더러운 냄새를 여의어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선한 근본인 위없는 보배를 얻어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서로 보고 기뻐하며 괴로움이 없으며, 모든 선한 일을 갖추어 근심과 염려가 없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계율의 향기를 구족하여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걸림없는 계율을 지니어 향기가 아름답게 사방에 가득하여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견고한 계행·후회가 없는 계행·온갖 지혜의 계행을 얻고, 여러 가지 파계를 여의어 없는 계율·미증유한 계율·스승 없는 계율·짓지 않는 계율[無作戒]·더러움 없는 계율·물들지 않는 계율·끝낸 계율[竟已戒]·끝까지의 계율을 모두 얻으며, 평등한 계율을 얻고 향을 몸에 발라주거나 살을 깎는 데에 사랑하고 미워함이 없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위없는 계율·소승이 아닌 계율을 얻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마다 지계바라밀을 구족하여 부처님들이 성취한 계율과 같은 것을 얻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모두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에 훈습하는 수행을 하여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모두 대반열반경의 미묘한 연꽃을 얻고, 그 꽃의 향기가 시방에 가득하여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대승 대반열반의 위없는 음식을 먹되, 벌이 꽃을 빨 듯이 향기로운 맛만을 빨아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모두 한량없는 공덕으로 닦아 얻은 몸을 성취하여지이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에서 꽃과 향을 보시할 적에 마땅히 이러한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평상을 보시할 적에, 마땅히 원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하늘의 하늘[天中天]이 눕던 평상을 얻으며 큰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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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얻고 4선정 자리에 앉아서, 보살들이 눕던 평상에 눕고 성문·연각의 평상에 눕지 말며, 나쁜 평상에 눕지 말게 하여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안락한 누움을 얻어, 나고 죽는 평상을 여의고 대반열반의 사자가 눕는 평상을 이루어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이 평상에 앉아서 다시 한량없는 다른 중생들을 위하여 신통과 사자(師子)의 유희(遊戱)를 보여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이 대승의 궁전에 있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불성을 연설하여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위없는 평상에 앉아서 세상 법에 굴복함이 되지 말아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인욕의 평상에 앉아 생사의 흉년과 얼고 굶주림을 여의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두려움 없는 평상을 얻어 온갖 번뇌의 도적을 여의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청정한 평상을 얻어 위없고 진정한 도를 오로지 구하여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선한 법의 평상을 얻어 선지식의 항상 옹오함이 되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오른쪽 옆구리로 눕는 평상을 얻어 부처님들이 행하던 법을 의지하여지이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평상을 보시할 적에, 마땅히 이러한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주택을 보시할 적에, 마땅히 원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의 집에 있어서 선지식들이 행하던 행을 닦되, 크게 가엾이 여기는 행·6바라밀 행·큰 정각의 행·모든 보살이 행하는 도행· 그지없이 넓고 커서 허공 같은 행을 닦아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모두 바른 생각을 얻고 나쁜 생각을 여의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마다 항상하고 즐겁고 내가 있고, 깨끗한 데 머물러 네 가지 뒤바뀜을 여의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마다 출세간 하는 글을 배워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반드시 위없는 온갖 지혜의 그릇이 되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모두 감로의 집에 들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첫 마음·중간 마음·나중 마음이 항상 대승열반의 집에 들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오는 세상에서 항상 보살의 거처하는 궁전에 있어지이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주택을 보시할 적에, 마땅히 이러한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등촉을 보시할 적에, 마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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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기를 ‘내가 지금 보시하는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바치니, 이 인연으로써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광명이 한량이 없어 부처님 법에 편안히 머물러지이다. 바라건대 모든 중생이 항상 밝게 비침을 얻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미묘하고 광택이 제일되는 빛을 얻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눈이 깨끗하여 흐리터분한 병이 없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지혜의 횃불을 얻어 내[我]가 없고 중생(衆生)이 없고 사람[人]이 없고 수명[壽]이 없음을 잘 알아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마다 청정한 불성이 허공과 같음을 보아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육안(肉眼)이 깨끗하여 시방 항하의 모래 같은 세계를 사무쳐 보아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부처님의 광명을 얻어 널리 시방을 비치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막힘 없는 눈을 얻어 청정한 불성을 모두 보아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지혜의 등불을 얻어 온갖 어둠과 일천제를 깨뜨려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한량없는 광명을 얻어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를 널리 비치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대승의 등불을 켜고 2승의 등불을 여의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얻은 광명으로 무명의 어둠 없애기를 일천 해가 함께 비치는 공덕보다 뛰어나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큰 광명을 얻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어둠을 소멸하여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네 가지 눈을 구족하고 법의 모양을 깨달아, 스승 없이 깨달음을 이루어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이 무명을 보지 말아지이다. 바라건대 중생들마다 대승 대반열반경의 미묘한 광명을 얻고 중생들에게 진실한 불성을 깨닫게 하여지이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으로 등촉을 보시할 적에, 마땅히 이러한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성문·연각·보살과 부처님 여래의 가진 선근에는 인자한 마음이 근본이 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을 닦으면, 이렇게 한량없는 선근을 내나니, 이른바 부정한 것,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 무상하게 나고 없어지는 것, 4념처(念處), 일곱 가지 방편, 세 가지 관하는 곳, 12인연, 내가 없는 등의 관, 난법(煖法)·정법(頂法)·인법(忍法)·세제일법(世第一法)과 견도(見道)·수도(修道)와 정근(正勤)·여의(如意)·여러 근(根)·여러 역(力)·7보리분법·8정도·4선정·4무량심·8해탈·8승처(勝處)·10일체입(一切入)과 공한 것·모양이 없는 것·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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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다툼 없는[無諍] 삼매와 다른 이 마음을 아는 지혜, 모든 신통, 본고장을 아는 지혜[知本際智], 성문의 지혜, 연각의 지혜, 보살의 지혜, 부처님의 지혜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법에는 인자함이 근본이 되나니, 선남자야, 이런 이치로 인자함이 진실하고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어떤 이가 묻기를 ‘무엇이 모든 선근의 근본이냐’ 하면, 인자한 마음이라고 말하리니, 이런 이치로 인자함은 진실하고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야, 능히 선한 일을 하는 것을 진실한 생각이라 하나니, 진실한 생각은 곧 인자한 마음이요, 인자함은 곧 여래며, 인자함이 곧 대승이니, 대승은 곧 인자함이요 인자함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보리의 도니, 보리의 도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인자함이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은 곧 대범(大梵)이니, 대범이 곧 인자함이요, 인자함이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은 모든 중생의 부모가 되나니, 부모는 곧 인자함이요 인자함이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경계니,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경계가 곧 인자함이요 인자함이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중생의 불성이니 이러한 불성이 오랫동안 번뇌에 덮였으므로 중생이 불성을 보지 못하였거니와, 불성이 곧 인자함이요 인자함이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대공(大空)이니 대공이 곧 인자함이요 인자함이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허공이니, 허공은 곧 인자함이요 인자함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항상함이니, 항상함은 곧 법이요 법은 곧 승가며, 승가는 곧 인자함이고 인자함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즐거움이니, 즐거움은 곧 법이요 법은 곧 승가며 승가는 곧 인자함이고 인자함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깨끗함이니, 깨끗함은 곧 법이요 법은 곧 승가며 승가는 곧 인자함이고 인자함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나이니 내가 곧 법이요 법은 곧 승가며 승가는 곧 인자함이고 인자함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감로니, 감로는 인자함이요 인자함은 곧 불성이며 불성은 곧 법이요 법은 곧 승가며 승가는 곧 인자함이니 인자함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모든 보살의 위없는 도니, 도는 곧 인자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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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함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곧 부처니 세존의 한량없는 경계며, 한량없는 경계가 곧 인자함이니, 인자함이 곧 여래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무상하다면 무상함이 곧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괴롭다면 괴로움이 곧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부정하다면 부정이 곧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내가 없다면, 나 없음이 곧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허망한 생각이라면, 허망한 생각이 곧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보시바라밀이 아니라면 보시바라밀이 아닌 것이 인자함이니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 것이며, 내지 반야바라밀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중생을 이익하게 못한다면, 이런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이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한 모양인 도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모든 법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여래의 성품을 보지 못한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법이 모두 모양새가 있는 줄로 본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유루(有漏)라면 유루인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함이 있는 것이라면, 함이 있는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초주(初住)에 머물지 못한다면, 초주가 아닌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를 얻지 못한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4사문과를 얻는다면 이 인자함은 성문의 인자함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있거나 없거나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라면, 이렇게 인자함은 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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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벽지불들의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이 만일 헤아릴 수 없으면, 법도 헤아릴 수 없고 불성도 헤아릴 수 없고 여래도 헤아릴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이렇게 인자함을 닦으면 비록 자는 가운데 편안하더라도 자는 것이 아니니 부지런히 정진하는 까닭이며, 항상 깨어 있더라도 깨어 있는 것이 아니니 잠이 없는 까닭이며, 자는 가운데 하늘 사람들이 보호하더라도 보호함이 없나니 나쁜 짓을 행하지 않는 까닭이며, 자면서도 나쁜 꿈을 꾸지 않으며 선하지 못함이 없나니, 잠을 여읜 까닭이며, 목숨이 마친 뒤에 범천에 나더라도 태어남이 없나니, 자재함을 얻은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인자함을 닦는 이는 이렇게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성취하느니라. 선남자야,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도 이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성취하며, 부처님 여래도 이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성취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가진 생각은 모두 진실하거니와 성문이나 연각은 진실한 것이 아니거늘, 중생들이 어찌하여 보살의 위신력으로 평등하게 쾌락을 받지 않나이까? 만일 중생들이 참으로 쾌락을 얻지 못한다면, 보살의 닦는 인자한 마음은 이익이 없겠나이다.”
“선남자야, 보살의 인자함이 이익이 없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야, 어떤 중생들은 괴로움을 받기도 하고 받지 않기도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괴로움을 받는다면, 보살의 인자함이 이익이 없음이니 그것은 일천제요, 만일 괴로움을 받더라도 반드시 결정함이 아닌 것은 보살의 인자함이 이익이 있음이니, 저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쾌락을 받게 하리라.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멀리서 사자·범·표범·늑대·이리·나찰·귀신 따위를 보면 저절로 공포가 생기고, 밤에 길을 가다가 말뚝을 보고도 공포가 생기나니, 선남자야, 이런 사람들은 저절로 공포하는 것처럼 중생들도 그러하여, 인자함을 닦는 이를 보면 자연히 쾌락을 받느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보살이 인자함을 닦음은 진실한 생각이며 이익이 없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야, 내가 인자함을 말하는 데 한량없는 문이 있으니, 그것은 신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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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선남자야, 저 제바달이 아사세를 시켜서 여래를 해하려 할 적에 그 때에 내가 왕사성에 들어가서 차례로 걸식하였더니, 아사세왕이 재물 지키는 취한 코끼리를 놓아서 나와 제자들을 해하게 하였다. 그 코끼리가 그 때에 한량없는 중생을 밟아 죽였으며 중생들이 죽어서 피가 많이 흐르니 코끼리가 그 냄새를 맡고는 취한 증세가 갑절이나 더하여, 나를 따르는 이들이 붉은 옷 입은 것을 보고는 피인 줄 알고 다시 나의 제자들 속에 들어오니, 탐욕을 여의지 못한 이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아난만이 남아 있었느니라. 그 때에 왕사성에 있는 백성들이 한꺼번에 큰 소리로 통곡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괴상한 일이로다. 여래께서 오늘 죽을는지 모르겠다. 어찌하여 바르게 깨달은 분이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나는가.’
이 때에 조달은 마음이 기뻐서 ‘구담 사문이 죽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제부터는 다시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통쾌하구나, 이 계책은. 나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나는 그 때에 재물 지키는 코끼리를 항복받기 위하여, 인자한 선정에 들어서 손을 펴 보였더니, 다섯 손가락에서 다섯 마리 사자가 튀어나왔다. 코끼리가 보고는 무서워서 똥을 흘리면서 땅에 엎드리어 내 발에 절하였느니라. 선남자야, 그 때에 나의 손가락에는 사자가 없었건만 인자함을 닦은 선근의 힘으로 코끼리를 조복한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내가 열반에 들려고 처음 발을 옮겨 구시나성을 향할 적에 5백 명의 역사가 길을 닦고 쓸더니 길 가운데 큰 돌이 있는 것을 여러 역사들이 굴려 버리려 하였으나,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었으니, 역사들이 보기에는 내가 엄지발가락으로 그 돌을 들어서 공중에 던졌다가 다시 손으로 받아서 오른 손바닥에 놓고, 입으로 불어서 가루가 되도록 부수었다가, 도로 한데 합하였느니라. 그래서 그 역사들로 하여금 뽐내는 마음이 없어지게 하고는, 가지가지로 법을 말하여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가지게 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가 그 때에 참으로 발가락으로 돌을 들어서 공중에 던졌다가 다시 손바닥에 놓고 불어서 가루를 만들거나 인자한 선근의 힘으로써 역사들로 하여금 그렇게 보게 한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이 남천축에 수파라(首波羅)성이 있고 성중에 노지(盧至) 장자가 있어서 여러 사람의 지도자가 되었으니, 지난 세상에 한량없는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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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계신 데서 여러 가지 선근을 심었었느니라. 선남자야, 그 성중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삿된 도를 믿으면서 니건의 도를 섬기었다. 나는 그 때에 그 장자를 제도하기 위하여 왕사성에서 수파라성으로 가는데, 65유순이나 먼 데를 걸어서 갔으니, 그 사람들을 교화하려는 까닭이니라. 그 니건들은 내가 수파라성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사문 구담이 이곳에 오면 백성들이 나를 버리고 다시 이바지하지 아니할 것이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하고, 니건들이 각각 여러 곳으로 가서 성중 사람에게 말하기를 ‘사문 구담이 이리로 온다는데, 그 사문은 부모를 버린 사람으로 사방으로 다니면서 간 데마다 그곳에는 흉년이 들고 백성들이 굶주려서 죽는 이가 많고 병이 돌아서 구제할 도리가 없다. 구담은 무뢰한 사람으로서 악독한 나찰이나 귀신들로 시중을 삼았으며, 부모도 없고 떠돌아다니는 건달들을 오는 대로 모아서 제자를 삼았고, 가르치는 학설은 모두 허공이란 말뿐이며, 간 데마다 편안하지 않다’고 선전하였다. 듣는 사람들은 겁이 나서 니건의 무리들에게 예배하면서 물었다.
‘선생이여,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겠나이까?’
니건들은 대답하였다.
‘구담은 숲속이나 맑은 샘이나 흐르는 물을 좋아하는 터이니 그런 데가 있으면 파괴하여 버려야 한다. 너희들은 성 밖으로 나가서 숲이 있으면 찍어 버리고, 샘이나 강에는 똥이나 송장 따위를 넣어 두어서 그런 데 있지 못하게 하며, 성문을 꼭꼭 닫고, 병장기를 준비하여 가지고 잘 방비하여, 저들이 오더라도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너희들은 편안할 것이며, 우리들은 여러 가지 술법을 베풀어, 오던 구담이 도로 가게 하리라.’
백성들은 이 말을 듣고 그대로 시행하여 나무 숲은 찍어 버리고 샘과 물을 더럽게 만들고 병장기를 준비하여 물샐틈없이 방비하고 기다렸다.
선남자야, 내가 그 때에 그 성에 이르니 나무 숲은 볼 수가 없었고, 여러 사람들이 무기를 있는 대로 가지고 지키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니 가엾은 생각이 나서 인자한 마음으로 대하였더니, 나무 숲은 예전대로 도로 살아서 다시 무성하여지고, 냇물이나 못들도 깨끗하기가 유리 같아서 가득가득 찼으며, 가지각색 꽃이 위에 덮였으며, 성벽들은 변하여 붉은 유리가 되어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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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던 사람들은 나와 대중들을 환하게 보았으며, 성문은 저절로 열리어 막는 이가 없고 준비하였던 무기는 아름다운 꽃으로 변하였다. 노지 장자가 두목이 되어 여러 사람들이 모여왔기에, 내가 그들에게 가지가지 법을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그 때에 여러 가지 나무 숲을 변화하여 만들지도 아니하였고, 맑은 물이 못에 차게 하거나, 성벽이 유리로 변하게 하거나, 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보고 성문을 열고 무기를 꽃으로 변하게 한 일이 없었건만 선남자야, 그것은 인자한 선근의 힘으로써 그 사람들이 그런 일을 보게 된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사위성에 바라문 여인이 있으니, 성이 바사타(婆私吒)였다. 외아들이 있어서 애지중지하였는데 병으로 일찍 죽었다. 그 여인은 걱정하다못해 미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옷을 벗고 네거리로 돌아다니며 통곡하면서 ‘아들아! 아들아! 너는 어디로 갔느냐’ 하고, 온 성안을 헤매면서 고달픈 줄도 몰랐다. 그러나 이 여인은 지난 세상에 부처님께 선근을 많이 심은 일이 있었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그 여인에게 가엾은 생각을 하였더니 그 여인이 나를 보고 아들인 줄 알고는, 곧 제정신을 차리고 뛰어와서 나를 붙들고 아들을 사랑하듯 하였다. 내가 곧 시자 아난에게 말하여 옷을 가져다가 여인에게 입히게 하고, 가지가지로 법문을 말하였더니, 여인이 법을 듣고 기뻐서 뛰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느니라. 선남자야, 나는 그 때에 그의 아들도 아니고 그도 나의 어머니가 아니며, 또 서로 붙든 일도 없었건만 선남자야, 모두 인자한 선근의 힘으로 그 여자가 이런 일을 본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바라내 성에 한 우바이가 있었으니 이름이 마하사나달다(摩訶斯那達多)요, 지나간 세상에 많은 부처님께 여러 가지 선근을 심은 일이 있었다. 이 우바이가 여름 90일 동안에 비구들에게 의약을 보시하는데, 그 대중 가운데 어떤 비구가 중병이 들려서 의원에게 물은즉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하며, 고기를 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지만 고기를 얻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때에 우바이는 의원의 말을 듣고는 황금을 가지고 온 거리로 두루 다니면서 ‘고기를 팔 사람이 없는가, 금을 주고 고기를 사려 하노라. 고기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금을 주겠노라’ 하면서, 성안을 두루 돌아다녔으나 고기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바이는 칼을 들고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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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어 썰어서 국을 끓이고 가지가지 고명을 넣어 병든 비구에게 보냈다. 비구는 고기를 먹고 병이 나았으나, 우바이는 상처를 앓느라고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나무불! 나무불!’ 하고 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 때에 사위성에서 그 소리를 듣고 그 여인에게 인자한 마음을 내었더니, 그 여인은 내가 좋은 약으로 상처 위에 발라주는 것을 보고, 그 상처가 곧 아물었으며, 내가 그 여인에게 가지가지 법을 말하였더니, 그는 법문을 듣고 환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진실로 바라내 성에 가서 우바이의 상처에 약을 발라준 일이 없었건만 선남자야, 이것은 모두 인자한 선근의 힘으로써 그 여인으로 하여금 그런 일을 보게 한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조달은 나쁜 사람으로서 탐욕스러워 만족함을 모르는 연고로, 생소를 많이 먹고 배가 부르고 머리가 아프며,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서 ‘나무불! 나무불!’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우선니(優禪尼)성에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인자한 마음을 내었더니, 그 때에 조달은 내가 자기에게 가서 손으로 머리와 배를 만지고 소금물을 주어서 먹게 함을 보고는 병이 나았다고 한다. 나는 실로 조달에게 가거나 머리와 배를 만지거나 약을 주어 먹게 한 일이 없었지만 선남자야, 이것은 모두 인자한 선근의 힘으로써 조달이 그런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또 선남자야, 교살라국에 도적 떼가 있었으니, 그 무리가 5백이며, 떼를 지어 다니면서 노략질을 하여 피해가 막심하였다. 바사닉왕이 그들의 행패를 염려하여, 군대를 보내어 체포하고 그 눈들을 뽑아 버리고 컴컴한 수풀 속에 버려두었다. 이 도적들이 지난 세상에 부처님께 많은 공덕을 심었기에, 눈을 뽑히고는 큰 고통을 받으면서 ‘나무불! 나무불! 우리를 구원해 줄 사람이 없네’ 하면서, 통곡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에 기원정사에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인자한 마음을 내었더니, 그 때에 서늘한 바람이 향산에 있는 가지각색 향기로운 약을 실어 그들의 눈에 넣어 주었으므로 눈이 전과 같이 회복되었다. 도적들이 눈을 뜨고 보니 여래가 앞에 서서 법을 말하여 주었고, 도적들은 법을 듣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느니라. 선남자야, 나는 그 때에 바람을 일으켜서 향산에 있는 향기 약을 실려 보낸 일도 없었고,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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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법을 말하지도 아니하였지만 선남자야, 이것은 모두 인자한 선근의 힘으로써 그 도적들로 하여금 그런 일을 보게 한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유리 태자가 어리석어서 부왕을 폐하고 자기가 임금이 되고는, 예전의 혐의로 석가의 종족을 많이 살해하고, 석가 종족의 여자 1만 2천명을 잡아다가 귀와 코를 베고 손과 발을 잘라서 구렁에 쓸어넣었더니, 그 여자들은 고통을 못이기고 ‘나무불! 나무불! 우리들을 구해 줄 이가 없구나’하면서 통곡하였다. 이 여자들은 지난 세상 부처님께 여러 가지 선근을 지은 일이 있었는데, 내가 그 때에 대숲 속에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인자한 마음을 내었다. 그 여자들은 내가 가비라성에 이르러 물로 상처를 씻어 주고 약을 발라 주어서 고통이 없어지고 귀와 코와 손과 발이 모두 예전대로 되었으며, 내가 법을 말하여서 그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는, 즉시 대애도(大愛道) 비구니에게 가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았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그 때에 가비라성에 가지도 아니하였고, 물로 씻고 약을 발라서 고통을 멎게 한 일도 없건만 선남자야, 이것은 모두 인자한 선근의 힘으로써 그 여자들로 하여금 그런 일을 보게 한 것이니,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는 마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이런 이치로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생각을 닦는 것이, 진실한 일이요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야, 한량없는 마음은 헤아릴 수 없으며, 보살의 행하는 일도 헤아릴 수 없으며, 대승경전인 대반열반경도 헤아릴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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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15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0. 청정한 행 ②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을 닦고는 외아들을 가장 사랑하는 자리에 머무느니라. 선남자야, 어찌하여 이 자리를 가장 사랑함이라 하며, 또 외아들이라 하느냐. 선남자야, 마치 부모가 아들이 편안함을 보면 마음이 매우 환희하듯이, 보살마하살이 이 자리에 머묾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보기를 외아들과 같이 하며, 선한 일 닦음을 보고는 크게 즐거워하나니, 그러므로 이 자리를 가장 사랑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부모가 아들이 우환에 걸림을 보면 괴로운 마음을 내고 딱하게 여기는 걱정을 버리지 못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이 자리에 머문 이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이 번뇌의 병에 얽매임을 보면, 마음으로 걱정하고 수심하기를 아들과 같이 하며, 온몸의 털구멍에서 피가 흐르므로 이 자리를 외아들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사람이 어렸을 적에는 흙덩이나 똥 묻은 돌이나 마른 뼈나 나뭇가지 따위를 입에 넣으면, 부모가 보고는 걱정이 되어서 왼손으로 머리를 붙들고 오른손으로 끄집어 내나니, 보살마하살이 이 자리에 머문 이도 그러하여, 중생들이 법신이 더 나아가지 못하였는데, 혹 몸이나 입이나 마음으로 하는 짓이 옳지 못하면, 보살이 보고는 지혜의 손으로 뽑아내고, 그로 하여금 생사에 헤매면서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나니, 그러므로 이 자리를 외아들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사랑하던 아들이 세상을 버리고 죽으면, 부모는 애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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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목숨을 버리려 하나니, 보살도 그와 같아서, 일천제(一闡提)가 지옥에 떨어짐을 보고는 함께 지옥에 가서 나기를 원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일천제가 고통을 받을 적에 잠깐이라도 뉘우치는 마음을 내면 내가 곧 그를 위하여 가지가지 법을 말하여 잠깐 동안 선근이라도 내게 하려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이 자리를 외아들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부모가 외아들을 두었으면, 그 아들이 자나 깨나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는 것을 항상 염려하고, 만일 허물이 있으면 좋은 말로 달래어 나쁜 일이 더하지 않게 하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이 지옥·축생·아귀 갈래에 떨어지거나, 혹은 인간이나 천상에 나서 선한 일 악한 일을 짓는 것을 마음에 항상 생각하면서 놓아 버리지 못하며, 만일 나쁜 짓을 하더라도 성을 내어 나쁜 일이 더하지 않게 하나니, 그러므로 이 자리를 외아들이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아서 말씀이 비밀하옵고 저의 지혜는 옅사오니, 어떻게 알겠나이까? 만일 보살이 외아들인 자리에 머물러서 능히 이러하다 하오면 어찌하여 여래는 옛적에 국왕이 되어 보살의 도를 행할 적에 저러한 바라문의 목숨을 끊었나이까? 만일 이 자리를 얻었으면 마땅히 보호하고 염려할 것이오며, 만일 얻지 못하였사오면 무슨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았나이까? 만일 모든 중생들을 평등하게 보기를 아들처럼 생각하여 라후라와 같이 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제바달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사람은 부끄러운 줄을 모르니 남의 침이나 먹어라’ 하여, 그가 이 말을 듣고 성을 내어서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게 하였사오며, 제바달다가 이런 나쁜 짓을 한 뒤에 부처님께서는 또 수기(授記)하시기를 ‘지옥에 떨어져서 한겁 동안 죄를 받으리라’ 하였나이까? 세존이시여, 이런 말이 어찌하여 이치에 어긋나지 않나이까? 세존이시여, 수보리는 허공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성안에 들어가 음식을 빌려 할 적에는, 먼저 사람을 관찰하여 자기에게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이에게는 가지 아니하오며, 내지 아무리 굶주려도 걸식하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수보리는 항상 생각하기를 ‘나는 지나간 옛적에 어떤 복밭 되는 이에게 한 번 나쁜 생각을 한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았으니, 내가 이제 차라리 굶을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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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토록 먹지 아니하여, 그들로 하여금 내게 혐의를 일으키고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게 하지 아니하리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생각하기를 ‘만일 중생들이 내가 섰는 것을 혐의하면, 나는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일어나지 아니할 것이며, 만일 중생이 나의 앉았는 것을 혐의하면 나는 종일토록 서서 자리를 옮기지 아니할 것이며, 다니고 눕는 일도 역시 그렇게 하리라’ 하였나이다. 이 수보리는 중생을 보호하기 위하여서도 이런 마음을 내었거늘 하물며 보살이겠습니까? 보살이 만일 외아들인 자리를 얻었으면, 무슨 인연으로 여래께서 이런 거친 말을 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대단히 나쁜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나이까?”
“선남자야, 그대는 지금 이렇게 힐난하는 말로 부처님이 중생들을 위하여 번뇌의 인연을 지었다고 하지 말라. 선남자야, 설사 모기의 입으로 바닷물을 말리더라도 여래는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인연을 짓지 아니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가령 땅덩이가 모두 색 아닌 것이 되며, 물의 모양이 바삭바삭하며, 불의 모양이 싸늘하며, 바람의 모양이 머물러 있으며, 삼보와 불성과 허공이 무상하여지더라도, 여래는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인연을 짓지 아니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가령 4중금을 범하였거나 바른 법을 비방한 일천제들이 지금 가진 몸으로 10력과 4무소외와 32상과 80종호를 이루더라도 여래는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인연을 짓지 아니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가령 성문·벽지불들이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더라도 여래는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인연을 짓지 아니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가령 10주(住) 보살들이 4중금을 범하며 일천제가 되어 바른 법을 비방하더라도 여래는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인연을 짓지 아니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가령 한량없는 중생의 불성이 없어지고 여래가 끝끝내 반열반에 든다 하여도 여래는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인연을 짓지 아니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가령 그물을 던져 바람을 얽어매고, 이빨로 쇠를 깨물고, 손톱으로 수미산을 헐더라도 여래는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인연을 짓지 아니할 것이니라. 차리리 독사와 한곳에 있고, 두 손을 굶은 사자의 입에 넣고 가다라 숯으로 몸을 씻더라도 여래 세존이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인연을 지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진실로 중생을 위하여 번뇌를 끊을지언정 끝내 번뇌의 인연을 짓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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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그대의 말이 여래가 옛적에 바라문을 죽였다 하거니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나아가 개미 한 마리도 일부러 죽이지 아니하거늘 하물며 바라문이랴. 보살이 항상 가지가지 방편으로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수명을 보시하느니라. 선남자야, 밥을 보시함은 곧 목숨을 보시함이니, 보살마하살이 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항상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수명을 보시하느니라. 선남자야, 죽이지 않는 계율을 닦으면 목숨이 장수함을 얻나니, 보살마하살이 지계(持戒)바라밀을 행할 적에 항상 모든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수명을 보시하느니라. 선남자야, 입을 조심하여 허물이 없으면 목숨이 장수함을 얻나니, 보살마하살이 인욕바라밀을 행할 때에 항상 중생들에게 권하여 원망하는 생각을 내지 말게 하며, 곧은 일은 남에게 미루고 굽은 일은 자기에 향하여 다투지 아니하면 목숨이 장수함을 얻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인욕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미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수명을 보시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부지런히 착한 일을 닦으면 목숨이 장수함을 얻나니, 보살마하살이 정진바라밀을 행할 때에 항상 중생에게 권하여 부지런히 선한 법을 닦게 하며, 중생들이 그대로 행하고는 한량없는 수명을 얻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정진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미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수명을 보시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마음을 다잡는 수행을 하면 목숨이 장수함을 얻나니, 보살마하살이 선정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들에게 권하여 평등한 마음을 닦게 하며, 중생들이 그대로 행하고는 목숨이 장수함을 얻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선정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미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수명을 보시하였느니라. 선남자야, 모든 선한 법에 방일하지 아니하면 목숨이 장수함을 얻나니,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들에게 권하여 선한 법에 방일하지 말게 하며, 중생들이 그대로 행하고는 그 인연으로 목숨이 장수함을 얻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이미 중생에게 한량없는 수명을 보시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중생에게 대하여 마침내 목숨을 빼앗는 일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그대가 묻기를 ‘바라문을 죽일 때에 이 자리를 얻었는가’ 하거니와 선남자야, 나는 이미 얻었지만 사랑하는 생각으로 그 목숨을 끊은 것이고 나쁜 마음이 아니니라. 선남자야, 마치 부모가 외아들을 두고 애지중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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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들이 나라의 법을 범하였으면 부모가 두려운 마음으로 쫓아내거나 죽이거나 하는데, 비록 내쫓고 죽이고 하더라도 나쁜 마음이 아니니, 보살마하살이 바른 법을 보호함도 그와 같으니라. 어떤 중생이 대승을 비방하면 이를 매질 하여 호되게 다스리거나 혹 목숨을 빼앗아서 지나간 잘못을 고치고 선한 법을 닦게 하려는 것이니, 보살은 항상 생각하기를 ‘무슨 인연으로든지 중생들로 하여금 믿는 마음을 내게 하고 방편을 따라서 잘하리라’ 하느니라. 바라문들이 목숨이 마친 뒤에 아비지옥에 나고는 세 가지 생각이 있나니 하나는 생각하기를 ‘내가 어디로부터 여기에 와서 났는가’ 하고는 곧 인간 갈래에서 온 줄을 알 것이요, 둘은 ‘내가 지금 난 데는 어디인가’ 생각하여, 아비지옥에 난 줄을 알 것이요, 셋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무슨 죄업으로 여기에 와서 났는가’ 하여 자기가 방등 대승경전을 비방하고 인연을 믿지 아니한 죄로 임금에게 죽임을 받고 여기 난 줄을 알 것이니, 이런 일로 생각하고는 즉시 대승의 방등경전에 믿는 마음을 낼 것이요, 그리고는 목숨을 마치면서 감로 북 여래의 세계에 태어나서 그 세계의 수명으로 10겁을 구족할 것이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보면 내가 지난 옛적에 이 사람들에게 10겁의 수명을 준 것이거늘 어찌하여 죽였다 하겠는가.
선남자야, 만일 사람이 땅을 파고 풀을 베고 나무를 찍으며 송장을 자르고 욕설하고 매질했다면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겠는가?”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한 뜻을 해석하기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예전에 성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비구들은 초목에 대하여도 나쁜 마음을 내지 말라. 왜냐 하면 모든 중생들이 나쁜 마음으로 인하여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세존은 가섭보살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대의 말과 같으니 잘 받아 지니라. 선남자야, 만일 나쁜 마음으로 지옥에 떨어진다면 보살은 그 때에 진실로 나쁜 마음이 없었으니,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에게 나아가 개미 같은 것이라도 가엾이 여기고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내는 까닭이니라. 그 까닭을 말하면 인연과 모든 방편을 잘 아는 연고로 그 방편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선근을 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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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나는 그 때에 좋은 방편으로 그 목숨을 빼앗은 것이고 나쁜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야, 바라문 법에는 가령 개미를 열 수레에 차도록 죽여도 죄가 없다 하고, 모기·등에·벼룩·이·고양이·살쾡이·사자·범·이리·곰 따위의 나쁜 벌레와 사나운 짐승이거나 그 밖에라도 중생에게 해가 되는 것은 열 수레를 죽이거나, 귀신·나찰·구반다·가라부단나·전광귀(顚狂鬼)·간고귀(幹枯鬼) 따위로서 중생을 시끄럽게 하는 것들은 그 목숨을 빼앗아도 죄보가 없고, 만일 나쁜 사람을 죽이면 죄보가 있으며, 만일 죽이고 참회하지 아니하면 아귀에 떨어지려니와 만일 참회하고 3일 동안 먹지 않으면 그 죄가 소멸되고 남지 않으며, 만일 화상을 죽이거나 부모나 여인이나 소를 살해하면 여러 천년을 지옥 속에 있게 된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부처님과 보살들은 죽이는 데 세 가지가 있음을 아나니, 그것은 곧 하품·중품·상품이니라. 하품 살생은 개미나 나아가 모든 축생을 죽이는 것이니라. 보살이 일부러 태어난 것은 제외하나니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원력으로 축생이 되는 일이 있는 것은 제외한다는 것이니라. 이런 것을 하품 살생이라 이름하며, 하품 살생한 인연으로는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에 떨어져서 하품 고통을 받나니, 왜냐 하면 이 축생들도 작은 선근이 있으므로 죽이면 죄보를 받기 때문이며, 이것을 하품 살생이라 하느니라. 중품 살생은 범부들로부터 아나함까지 죽임을 중품 살행이라 하나니, 그 업인으로는 지옥·축생·아귀에 떨어져서 중품 고통을 받는 것으로, 이것을 중품 살생이라 하느니라. 상품은 부모나 내지 아라한·벽지불·결정된 보살을 상품 살생이라 하나니, 이 업인으로는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상품 고통을 받는 것으로, 이것을 상품 살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일천제를 죽이는 것은 이 세 가지 살생에 들지 않나니 선남자야, 저 바라문들은 모두 일천제니라. 마치 땅을 파며 풀을 베며 나무를 찍거나 송장을 자르고 욕설하고 매질하는 것이 죄보가 없는 것처럼, 일천제를 죽임도 그와 같아서 죄보가 없느니라. 왜냐 하면 저 바라문들은 내지 믿음 따위의 다섯 가지 법이 없으므로 죽여도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그대가 먼저 말하기를 ‘여래는 무슨 까닭으로 제바달다를 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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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은 사람이라고 꾸짖으면서 침이나 먹으라’고 하였느냐 하거니와, 그대도 그런 질문을 하지 말 것이니, 왜냐 하면 부처님의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혹은 진실한 말로서 세상의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때도 아니고 법도 아니어서 이익이 되지 못하는 이런 말은 내가 말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또 어떤 말은 거칠고 허망하며 때도 아니고 법도 아니어서 듣는 이가 사랑하지 아니하며 이익하지도 못하나니, 이런 것은 나도 말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어떤 말이 거칠기는 하나 진실하고 허망하지 아니하며, 때도 알맞고 법답기도 하여 모든 중생의 이익이 될 만한 것은, 듣는 이가 기뻐하지 않더라도 내가 말하나니, 왜냐 하면 부처님 세존인 응(應)·정변지(正遍知)가 방편을 아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어느 때에 나는 넓은 벌판에 있는 어떤 마을의 숲 속에 갔더니, 그 수풀 밑에 광야(壙野)라는 귀신이 있어, 고기와 피만 먹으면서 중생들을 많이 죽였고, 또 그 마을에서 하루에 한 사람을 잡아먹었다. 선남자야, 나는 그 귀신에게 법을 말하였지만 그는 포악하고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기에, 나는 기운 센 귀왕으로 변화하여 그 궁전을 흔들어서 편안하게 있지 못하도록 하였더니, 그 귀신은 권속들을 데리고 궁전에서 나와 나를 거역하려 하였다. 귀신은 나를 보고는 곧 제정신을 잃고 두려워하며 땅에 엎드려서 기절하여 죽은 것 같았다. 내가 인자한 손길로 그 몸을 만졌더니, 도로 일어나 앉아서 이렇게 말하였다. ‘시원하다, 이제 다시 살아났습니다. 큰 신왕께서 위덕이 구족하시고 자비한 마음으로 저의 허물을 용서하였나이다’ 하면서 나에게 대하여 믿음을 냈으므로, 나는 여래의 몸을 회복하고 다시 가지가지 법문을 말하여 그 귀신으로 하여금 살생하지 않는 계를 받게 하였다. 이 날 그 마을에서 죽을 차례가 된 장자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를 귀신에게 데리고 갔고 귀신은 그 장자를 나에게 보내었기에, 나는 그를 받고는 다시 이름을 지어서 수장자(手長者)라 하였다.
그 때에 그 귀신이 나에게 ‘세존이시여, 나와 권속들은 피와 고기를 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계를 받았사오니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나이까?’ 하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제부터는 성문 제자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부처의 법을 수행하는 곳마다 너에게 음식을 주게 하리라.’ 선남자야, 이 인연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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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비구들에게 이런 계율을 마련하였으니, ‘너희들은 지금부터 광야 귀신에게 먹을 것을 주라. 만일 거처가 있으면서도 주지 아니한다며, 그는 천마의 무리와 권속이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중생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이렇게 가지가지 방편을 보인 것이요, 그들을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야, 나도 나무로써 호법하는 귀신을 때리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 때에는 산 위에서 양 머리 귀신을 밀어서 산 밑으로 떨어지게 하였고, 또 나무 끝에서 원숭이 수호하는 귀신을 때려잡았으며, 재물 보호하는 코끼리에게 다섯 마리 사자를 보게 하였고, 금강신으로 하여금 살차니건(薩遮尼犍)을 놀라게 하고, 또 침으로 살털 귀신[箭毛鬼]을 찔렀으니, 비록 그런 일을 하였으나 그 귀신들을 죽게 하지는 아니하였고, 다만 그들로 하여금 바른 법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이런 여러 가지 방편을 보인 것이니라.
선남자야, 나는 그 때에 참으로 제바달다를 욕하지 아니하였으며, 제바달다도 남의 침을 먹을 만큼 어리석지 아니하였고, 나쁜 갈래인 아비지옥에 나서 한 겁 동안 죄를 받지 아니하였으며, 또 승가를 파괴하거나 부처의 몸에 피를 내지도 아니하였고, 4중금을 범하였거나 바른 법과 대승경전을 비방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일천제도 아니고, 성문이나 벽지불도 아니었느니라. 선남자야, 제바달다는 실로 성문·연각의 경계가 아니고 부처님만이 알고 보는 것이니, 선남자야, 그러므로 그대는 지금 ‘여래는 어찌하여 제바달다를 꾸짖고 욕하였느냐’고 문난할 것이 아니며, 부처님의 경계에 대하여 이러한 의심을 내지도 말아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마치 사탕무를 오래 달이면 가지가지 맛을 얻듯이, 저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을 따라서 자주 듣고 많은 법 맛을 얻었사오니, 이른바 출가한 맛·탐욕을 여읜 맛·고요한 맛·도의 맛이니라. 세존이시여, 마치 진금을 자주자주 달구고 두들기고 녹이고 연단하며, 점점 더 깨끗하고 조화되고 부드럽고, 광채가 아름답고 값도 한량이 없나니, 그런 뒤에야 인간·천상의 보배가 되나이다. 세존이시여, 여래도 그러하여 정중하게 물으면 깊은 이치를 듣고 볼 것이며, 실행하는 이로 하여금 받아 지니고 닦아 행하며, 한량없는 중생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한 뒤에야 인간·천상에서 받들어 섬기고 공경하고 공양하게 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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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부처님께서는 가섭보살을 칭찬하시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여래에게 이렇게 깊은 뜻을 묻는구나. 선남자야, 이러한 이치로 나는 그대의 뜻을 따라, 대승 방등의 깊고 비밀한 법을 말하나니, 가장 사랑하는 외아들 같은 자리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보살이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을 닦아서 외아들 자리를 얻는다면, 버리는 마음을 닦을 때에는 무슨 자리를 얻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그대는 때를 잘 알아서 내가 말하려는 줄을 알고 묻는 것이로다. 보살마하살이 버리는 마음을 닦을 적에는 공하고 평등한 자리에 머물기를 수보리와 같이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공하고 평등한 자리에 머물면, 부모·형제·자매·아이들·친척·동무·원수·보통 사람을 보지 아니하며, 내지 5음·18계·6입·중생·오래 사는 이를 보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허공에는 부모·형제·처자도 없고, 나아가 중생·오래 사는 이도 없는 것처럼,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부모와 나아가 오래 사는 것이 없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을 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마음이 평등하기 허공과 같으니라. 왜냐 하면 모든 공한 법을 잘 닦아 익힌 까닭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공하다 하나이까?”
“선남자야, 공이라는 것은 안이 공한 것, 밖이 공한 것, 안팎이 공한 것, 함이 있는 공, 함이 없는 공, 비롯함이 없다는 공, 성품이 공한 것, 있는 바 없는 공, 제일의 공, 공한 공, 큰 공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안이 공함[內空]을 관찰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안의 법이 공하다고 관찰한다. 안의 법이 공하다 함은 부모와 원수와 친한 이와 보통 사람과 중생과 오래 사는 것과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와 깨끗함과 여래와 법과 승가와 재물이 없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 안의 법 가운데 불성이 있지만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불성은 항상 있어서 변역함이 없는 까닭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안이 공함을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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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니라.
밖이 공하다는 것[外空]도 그와 같아서 안의 법이 없는 것이며, 안팎이 공하다는 것[內外空]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다만 여래와 법과 승가와 불성은, 두 가지 공한 데 있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이 네 가지 법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 가지 법을 공하다 이름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과 밖이 함께 공하다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함이 있는 공[有爲空]이라 함은, 함이 있는 법이 모두 공하다는 것이니, 안의 법이 공하고 밖의 법이 공하고 안팎 법이 공하며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공하고, 중생과 오래 삶과 여래와 법과 승가와 제일의가 공하거니와, 이 가운데 불성은 함이 있는 법이 아니므로 불성은 함이 있는 법의 공한 것이 아니니, 이것을 이름하여 함이 있는 공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함이 없는 공[無爲空]을 관찰한다 하는가. 이는 함이 없는 법이 모두 공하다는 것이니, 이른바 무상함과 괴로움과 부정함과 내가 없음과 5음·18계·12입과 중생이란 고집과 오래 산다는 고집과 함이 있는 것, 유루(有漏), 안의 법, 밖의 법이 없다는 것이니라. 함이 없는 법 가운데 부처님 등의 네 가지 법은 함이 있는 것도 아니도 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성품이 선한 것이므로 함이 없는 것이 아니고 성품이 항상 있는 것이므로 함이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함이 없는 공을 관찰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이 비롯함이 없다는 공[無始空]을 관한다 하는가. 이 보살마하살이 나고 죽음이 비롯함이 없어 모두 공한 줄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른바 공하다 함은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와 깨끗함이 모두 공적하여 변역함이 없으며, 중생·오래 사는 것·삼보·불성·함이 없는 법도 마찬가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비롯함이 없다는 공을 관찰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이 성품이 공함[性空]을 관찰한다 하는가. 이 보살마하살이 온갖 법의 본 성품이 모두 공한 줄을 관찰함이니, 5음·18계·12입과, 항상함과 무상함, 괴로움과 즐거움, 깨끗함과 부정함, 나와 나 없음 등이니라. 이러한 온갖 법을 관찰하여도 본 성품을 보지 못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성품이 공함을 관찰함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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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있는 바 없는 공[無所有空]을 관찰한다 하는가. 마치 사람이 아들 없는 것을 집안이 비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필경에 공함을 관찰하면 친하고 사랑할 이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방소가 공하다고 말하며, 빈궁한 사람은 온갖 것이 비었다고 말하나니, 이렇게 계교하는 것이 혹은 공하고 혹은 공한 것이 아니거니와, 보살이 관찰할 때에는 빈궁한 사람이 온갖 것이 비었다고 하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있는 바 없는 공을 관찰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제일의공(第一義空)을 관찰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제일의를 관찰할 때에 ‘이 눈이 생길 적에도 온 곳이 없었고, 없어질 적에도 가는 데가 없으니,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었고, 이미 있던 것이 도로 없어지는 것이므로 그 실제의 성품을 추구하면 눈도 없고 주재도 없으며, 눈과 같아서 온갖 법도 그러하다’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제일의공이라 하는가. 업이 있고 과보가 있으나, 지은 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한 법을 제일의공이라 하며,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제일의공을 관찰한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공한 공[空空]을 관찰한다 하는가. 이 공한 공 가운데는 성문과 벽지불들도 아득하여 빠지는 곳이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있지만 이것은 없다. 이것을 공한 공이라 이름한다. 이것이 그것이요 이것이 아님을 공한 공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십주(十住) 보살도 이 가운데서는 조그만치 통달함이 티끌과 같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일까보냐. 선남자야, 이러한 공한 공은 성문들이 얻는 공공삼매와는 같지 아니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공한 공을 관찰한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큰 공[大空]을 관찰한다 하는가. 선남자야, 큰 공이라 함은 반야바라밀이니, 이것을 큰 공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공한 문을 얻으면 허공과 같은 자리에 머물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이 대중 가운데서 이러한 공한 이치를 말할 적에, 열 항하의 모래와 같은 보살마하살이 허공과 같은 자리에 머무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자리에 머물고는 온갖 법 가운데 걸리거나 속박되거나 집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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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며, 마음에 답답함이 없나니, 이런 이치로 허공 같은 자리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허공은 사랑스러운 빛에 탐심을 내지도 않고, 사랑스럽지 아니한 빛에 성을 내지도 아니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이 자리에 머묾도 그와 같아서, 좋거나 나쁜 빛에 대하여 탐심내거나 성내는 마음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허공은 넓고 크기가 짝이 없어서 온갖 법을 수용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이 자리에 머묾도 그와 같아서, 넓고 크기 짝이 없어 온갖 법을 모두 용납하나니, 이런 이치로 허공 같은 자리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자리에 머무르면 온갖 법을 보기도 하고 알기도 하나니, 행·반연·성품·모양·인·연·중생의 마음·근성·선정·승(乘)·선지식·계행을 지님·보시 따위의 법을 모두 알고 보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자리에 머물고는 알기만 하고 보지는 못하나니, 무엇을 안다 하는가. 스스로 굶는 일·못에 빠지고, 불에 뛰어들고,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고, 한 다리를 늘 뻗는 일·다섯 가지 뜨거운 방법으로 몸을 지지는 일·재와 먼지와 가시덤불·엮은 서까래·나뭇잎·나쁜 풀·소똥 따위의 위에 누으며, 굵은 베옷·무덤 곁에 버린 더러운 걸레나 담요·흠바라(欽婆羅) 옷·노루 가죽·풀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물 밥·연근·깻묵·쇠똥·근과(根果)를 먹으며, 걸식할 적에는 한 집에만 한하는데, 주인이 밥이 없다고 말하면 곧 떠나가고, 다시 부르더라도 돌아보지도 아니하며, 절인 고기나 다섯 가지 우유로 만든 것을 먹지 아니하고, 항상 뜨물과 백비탕을 마시며, 우계(牛戒)·구계(狗戒)·계계(雞戒)·치계(雉戒) 등 외도의 계율을 가지고, 재를 몸에 바르고 머리를 기르며, 양을 잡아 제사할 적에는, 먼저 주문을 읽은 뒤에 죽이며, 넉 달 동안 불을 섬기고 7일 동안 바람을 섬기며, 백천억의 꽃으로 하늘에 공양하면, 모든 소원이 이것을 말미암아 성취된다고 하여, 이런 법이 위없는 해탈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옳지 아니한 줄을 아는 것을 안다고 이름하는 것이며, 무엇을 보지 못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한 사람도 이런 법을 행하여 바른 해탈을 얻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을 보지 못한다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보기도 하고 알기도 하는 것이니, 어떤 것을 본다 하는가. 중생들이 삿된 법을 행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줄을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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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본다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안다 하는가. 중생들이 지옥에서 나와서 인간에 나서는 만일 보시바라밀을 행하며, 나아가 모든 바라밀을 구족하면, 이 사람이 반드시 바른 해탈을 얻을 줄 아는 것을 안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보기도 하고 알기도 하는 것이 있나니, 어떤 것을 본다 하는가. 항상하고 무상한 것과, 괴롭고 즐거운 것과, 깨끗하고 부정한 것과 나와 나 없음을 보는 것을 본다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안다 하는가. 여래는 결정코 끝끝내 열반에 들지 아니함을 알며, 여래의 몸은 금강과 같아서 무너지지 아니하며, 번뇌로 된 몸이 아니고, 또 더럽고 부패하는 몸이 아닌 줄을 알며, 또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는 줄을 아나니, 이것을 안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다시 알기도 하고 보기도 하는 것이 있으니, 어떤 것을 안다 하는가. 이 중생은 신심이 성취된 줄을 알며, 이 중생은 대승을 구하고, 이 사람은 흐름을 따르고 이 사람은 흐름을 거스르고 이 사람은 바르게 머물고 이 중생은 저 언덕에 이른 줄 아나니, 흐름을 따르는 이는 범부요, 흐름을 거스르는 이는 수다원이나 내지 연각이요, 바르게 머문 이는 보살들이요, 저 언덕에 이른 이는 여래·응공·정변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본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대승의 대반열반에 머물러서 범행할 마음을 닦으면서, 깨끗한 천안통으로 중생들이 몸과 입과 뜻으로 세 가지 나쁜 업을 짓고, 지옥·축생·아귀 갈래에 떨어짐을 보며, 중생들이 선한 업을 닦는 이는, 목숨을 마치면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는 것을 보며, 어떤 중생은 어둔 데로부터 어둔 데 들어가고, 어떤 중생은 어둔 데로부터 밝은 데 들어가고, 어떤 중생은 밝은 데로부터 어둔 데 들어가고, 어떤 중생은 밝은 데로부터 밝은 데 들어감을 보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본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또 알기도 하고 보기도 하는 것이 있으니, 보살마하살은 여러 중생이 몸을 닦고 계행을 닦고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으면, 이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나쁜 업이 성취되었거나, 혹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마땅히 지옥에 떨어져서 과보를 받을 것이로되, 몸을 닦고 계행을 닦고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음으로써,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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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할 줄을 아느니라. 어떻게 이 업으로 이 세상에서 과보를 받는가. 여러 가지 나쁜 짓을 참회하고 털어놓으며 참회한 뒤에는 다시 짓지 아니하여, 참회가 성취되고 삼보에 공양하고 항상 스스로 책망한 까닭이니, 이 사람이 이런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서 과보를 받되, 머리가 아프고 눈이 아프고 배가 아프고 등이 아프며, 죽을 횡액을 만나고 꾸중과 욕을 당하고 매를 맞고 얽어매이고 굶주리고 곤궁하여 이런 고통을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는 줄을 아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본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이런 사람은 몸과 계행과 마음과 지혜를 닦지 못하고 나쁜 업을 조금 지었으면 이 인연으로 이 세상에서 죄보를 받으련만 이 사람이 조금 지은 나쁜 짓을 참회도 아니하고, 스스로 책망도 하지 않고, 부끄러운 마음도 내지 않고, 두려운 생각도 없으면, 이 업이 점점 커져서 지옥의 과보를 받게 됨을 보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본다고 하느니라.
또 알기만 하고 보지 못함이 있나니, 어떤 것을 알기만 하고 보지 못한다 하는가. 모든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는 줄을 알지만 번뇌에 덮여서 보지 못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알기만 하고 보지는 못한다 하느니라. 또 알고 조금 보는 것이 있나니, 10주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음을 알고 보기도 하지만 분명하지 못함이 마치 어두운 데서는 보는 것이 분명치 못한 것 같으니라. 또 보기도 하고 알기도 하는 것이 있나니, 이른바 여래는 보기도 하고 알기도 하느니라. 또 보기도 하고 알기도 하며,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 있나니, 보기도 하고 알기도 한다는 것은, 세간의 문자와 말과 남녀와 수레와 옹기와 집과 도시와 의복과 음식과 산과 강과 동산과 숲과 중생과 오래 사는 따위니, 이것은 알기도 하고 보기도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하는가. 성인의 하시는 비밀한 말씀은 남자·여자·동산·수풀이 없나니, 이것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니라.
또 알기는 하나 보지 못하는 것이 있나니, 보시할 것과 공양할 곳과 받을 이를 알며 원인과 과보도 아는 것을 안다고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 하는가. 보시할 것과 공양할 곳과 받을 이와 과보를 보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이름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의 아는 것이 여덟 가지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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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곧 여래의 다섯 가지 눈으로 아는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아는 것은 무슨 이익을 얻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알면 4무애(無碍)를 얻나니, 법에 걸림이 없고, 뜻에 걸림이 없고, 말에 걸림이 없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느니라. 법에 걸림이 없다 함은 모든 법과 법의 이름을 아는 것이요, 뜻에 걸림이 없다 함은 모든 법이 가지고 있는 뜻을 알고, 모든 법의 이름을 따라서 뜻을 짓는 것이요, 말에 걸림이 없다 함은 이름을 따르는 언론[隨字論], 바른 음성의 언론[正音論], 천타론[闡陀論], 세간 변재의 언론[世辯論]이요, 말하기를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의 무릇 연설하는 것이 걸림이 없어 변동할 수 없으며, 두려움이 없어 굴복할 수 없는 것이니,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이렇게 보고 알면, 4무애지를 얻는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법에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성문과 연각과 보살과 부처님의 법을 두루 아는 것이요, 뜻에 걸림이 없다 함은 승(乘)은 비록 셋이나 하나에 돌아감을 알아서, 마침내 차별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요, 말에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한 가지 법에 대하여 가지가지 이름을 지어서, 한량없는 세월을 지나면서 말하여도 다할 수 없거니와, 성문이나 연각은 이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이요,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한량없는 세월에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되, 이름과 뜻을 가지가지로 말하여도 다할 수 없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야, 법에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함이요, 뜻에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모든 뜻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함이요, 말에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이름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함이요,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말하기 좋아함이 이렇게 훌륭함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함이니, 왜냐 하면 선남자야, 만일 집착하면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집착하지 아니하면 법을 알 수 없습니다. 법을 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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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곧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알고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말씀하기를 법을 알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야, 집착하는 것은 걸림이 없다고 할 수 없나니, 집착함이 없어야 걸림이 없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그러므로 모든 보살이 집착이 있으면 걸림이 없을 수 없고, 만일 걸림이 없지 아니하면 보살이라 하지 못하나니, 이런 사람은 범부라고 하느니라. 어찌하여 집착하는 이를 범부라 하는가. 온갖 범부들은 빛에 집착하며, 나아가 알음알이에 집착하나니, 빛에 집착함으로써 탐심을 내고, 탐심을 내기 때문에 빛에 속박되며, 나아가 알음알이에 속박되는 것이며, 속박되는 연고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온갖 번뇌를 면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집착하는 이를 범부라 하며, 이런 이치로 범부들은 4무애를 얻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벌써 법의 모습을 알고 보았고, 알고 보았으므로 그 뜻을 알았고, 법의 모습을 보고 뜻을 알았으므로 빛 가운데 집착을 내지 아니하고, 나아가 알음알이 가운데서도 그와 같다. 집착하지 아니하므로 보살이 빛에 대하여 탐심을 내지 아니하고, 나아가 알음알이에도 탐심을 내지 아니한다. 탐심이 없으므로 빛에 속박되지 아니하고, 나아가 알음알이에도 속박되지 아니하며 속박되지 아니하므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온갖 번뇌에서 해탈하나니, 이런 이치로 모든 보살이 4무애를 얻느니라.
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내가 제자들을 위하여 12부 경전에서 말하기를 얽매고 집착함은 마군에게 속박됨이라 하였다. 만약 집착하지 아니하면 마군의 속박을 벗어나리니, 마치 세상에 죄 있는 사람은 임금의 속박을 받지만 죄 없는 사람은 임금도 속박하지 못하느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얽매이고 집착하면 마군의 속박을 받고, 얽매이고 집착함이 없으면 마군이 속박하지 못하나니,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은 집착함이 없느니라.
또 선남자야, 법에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글자를 잘 가지고 잊어버리지 아니함이니라. 가진다는 것은 땅과 같고 산과 같고 눈[眼]과 같고 구름과 같고 사람과 같고 어미와 같나니, 온갖 법도 그와 같으니라. 뜻에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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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없다 함은 보살이 비록 모든 법의 이름을 알지만 뜻은 알지 못하다가, 뜻에 걸림없음을 얻으면 곧 뜻을 아느니라. 어떻게 뜻을 아는가. 땅이 가진다 함은 마치 땅이 모든 중생과 중생 아닌 것을 모두 가지는 것과 같나니, 이런 뜻으로 땅이 가진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산이 가진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무슨 이유로 산을 가진다고 하는가’ 하는데, 산이 땅을 붙들어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진다고 이름하느니라. 무슨 이유로 눈을 가진다고 하는가. 눈은 광채를 가졌으므로 가진다고 하느니라. 무슨 이유로 구름을 가진다고 하는가. 구름을 용의 기운이라 하고, 용의 기운은 물을 가지는 까닭으로 구름을 가진다고 하느니라. 무슨 이유로 사람을 가진다고 하는가. 사람은 법과 법 아닌 것을 가지므로 사람을 가진다고 이름하느니라. 무슨 이유로 어미를 가진다고 하는가. 어미는 자식을 가지므로 어미를 가진다고 이름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온갖 법의 이름과 구절과 뜻을 아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말에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가지가지 말로써 한 가지 뜻을 연설하지만 역시 뜻이 없나니, 마치 남자나 여자나 집이나 수레나 중생의 이름과 같으니라. 어찌하여 뜻이 없다 하는가. 선남자야, 뜻은 곧 보살과 부처님의 경계요 말은 범부의 경계니, 뜻을 아는 까닭으로 말에 걸림이 없게 되느니라.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 함은 보살마하살이 말을 알고 뜻을 아는 까닭으로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말을 연설하고 뜻을 연설하여 다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에 세상 법[世諦]을 수행하고, 수행하였으므로 법에 걸림없음을 알며 또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제일의제를 수행하였으므로 뜻에 걸림없음을 얻으며, 또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비가라나(毗伽羅那)논을 익혔으므로 말에 걸림없음을 얻으며, 또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세상 언론을 말하기를 익혔으므로,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없음을 얻느니라. 선남자야, 성문·연각이 만일 이 4무애를 얻는다면 그것은 그럴 수가 없는 일이니라. 선남자야, 9부 경전 중에는 내가 말하기를, 성문·연각이 4무애가 있다고 하였으나, 성문·연각에서는 참으로 없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을 제도하느라고 4무애지를 닦아 익히거니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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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들은 고요한 법을 닦아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만일 중생을 교화하려면 신통을 보일 뿐이요, 종일토록 잠자코 있고 말하는 일이 없거늘 어찌하여 4무애지가 있겠는가. 어찌하여 잠자코 말하는 일이 없는가. 연각은 법을 말하여 사람을 제도해서 난법(煖法)·정법(頂法)·인법(忍法)·세제일법(世第一法)이나,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이나, 보살마하살을 얻게 하지 못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야, 연각이 세상에 날 적에는 세간에 9부 경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각은 말에 걸림이 없는 일과, 말하기 좋아하는 데 걸림이 없는 일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연각들은 비록 여러 가지 법을 알아도 법에 걸림이 없지 못하니, 왜냐 하면 법에 걸림이 없다는 것은 글자를 안다는 것인데, 연각들은 글자를 알지만 글자에 걸림이 없지는 못하나니, 왜냐 하면 항상 머문다는 글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각들은 법에 걸림이 없음을 얻지 못하느니라. 비록 뜻은 알지만 뜻에 걸림이 없지는 못하나니, 참으로 뜻을 안다 함은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음을 아는 것이며, 불성이란 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하나니, 이런 이치로 연각들은 뜻에 걸림이 없음을 얻지 못하며, 그러므로 연각들은 모두 4무애지가 없느니라.
어찌하여 성문들은 4무애지가 없는가. 성문들은 세 가지 좋은 방편이 없는 연고니라. 무엇을 세 가지 방편이라 하는가. 첫째는 반드시 부드러운 말을 한 뒤에야 법을 받는 것이요, 둘째는 반드시 거친[麤] 말을 한 뒤에야 교화를 받는 것이요, 셋째는 부드럽지도 않고 거칠지도 아니한 말을 한 뒤에야 교화를 받는 것인데, 성문들은 이 세 가지가 없는 연고로 4무애지가 없느니라. 또 성문이나 연각들은 끝까지 말을 알지 못하고 뜻을 알지 못하며, 자재한 지혜가 없어 경계를 알지 못하며, 10력이 없고, 4무외심이 없어서 필경에 12인연의 강을 건너가지 못하며, 중생들의 근성이 예리하고 둔한 차별을 알지 못하며, 두 가지 참된 이치[二諦]의 의심을 끊지 못하였으며, 중생들이 가지가지 마음으로 반연하는 경계를 알지 못하며, 제일의공을 말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2승들은 4무애지가 없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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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성문이나 연각은 모두 4무애지가 없을진대, 어찌하여 세존께서 말씀하기를 ‘사리불은 지혜가 제일이요, 목건련은 신통이 제일이요, 마하구치라는 4무애가 제일이라 하였사오며, 만일 4무애지가 없다면, 여래께서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나이까?”
이 때에 부처님께서는 가섭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마치 항하에 한량없는 물이 있고, 신두하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고, 박차하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고, 실타하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고 아뇩달 못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고, 바다에도 한량없는 물이 있다 하여, 여러 곳 물을 모두 한량없다 하지만 그 분량은 진실로 같지 않은 것처럼, 성문·연각·보살의 4무애지도 그와 같아서, 같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범부들에게 마하구치라가 4무애지가 제일이라 한 것이니, 그대가 물은 그 뜻이 이러한 것이니라. 선남자야, 성문들은 혹은 한 가지를 얻고, 혹은 두 가지를 얻었을지언정, 네 가지를 구족한 것은 아니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청정한 행을 말한 글[梵行品] 중에서 ‘보살은 알고 보는 것으로 4무애를 얻는다’ 하였으나, 보살의 알고 보는 것은 얻는 것이 없고, 얻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마하살이 참으로 얻는 것이 없습니다. 만일 보살이 마음에 얻음이 있을진댄 보살이 아니고 범부라 이름할 것이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보살이 얻음이 있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야, 훌륭하고 훌륭하다. 내가 지금 말하려 하는데 그대가 묻는구나.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진실로 얻음이 없다. 얻음이 없는 것을 4무애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무슨 뜻으로 얻음이 없는 것을 걸림이 없다고 이름하는가. 만일 얻음이 있으면 곧 걸림이 있는 것이라 하며, 걸림이 있는 것은 4전도(顚倒)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4전도가 없으므로 걸림없음을 얻었다 하며, 그러므로 보살을 얻은 것이 없다[無所得]고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얻음이 없으면 지혜라 이름한다. 보살마하살이 이 지혜를 얻었으므로 얻음이 없다고 이름하고, 얻음이 있는 것은 무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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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거니와, 보살은 무명의 어둠을 아주 끊었으므로 얻음이 없다고 하며, 그래서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얻음이 없는 것은 대반열반이라 이름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이 대반열반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온갖 법의 성품과 모양을 보지 아니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보살을 얻음이 없다고 이름한다. 얻음이 있는 것은 25유라 이름하거니와, 보살은 25유를 아주 끊고 대반열반을 얻었나니, 그러므로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얻음이 없는 것은 대승이라 이름하나니,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에 머물지 아니하므로 대승을 얻었으며, 그래서 보살을 얻음이 없다고 이름하고, 얻음이 있는 것은 성문·벽지불의 도라고 이름하거니와, 보살은 2승의 도를 아주 끊었으므로 부처님 도를 얻었나니, 그러므로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얻음이 없는 것은 방등경(方等經)이라 이름하나니, 보살은 이런 경전을 읽고 외우므로 대열반을 얻었으며, 그러므로 보살을 얻음이 없다고 이름하고, 얻음이 있는 것은 11부 경전이라고 이름하거니와, 보살의 닦는 것은 방등 대승경전만을 말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있는 바 없음을 허공이라 이름하고 세간에서 물건이 없음을 허공이라 하며, 보살은 이 허공삼매를 얻었으니 보는 것이 없는 까닭이며, 그러므로 보살을 얻은 것이 없다고 이름하느니라. 얻은 것 있는 것은 나고 죽는 바퀴라 이름하나니, 모든 범부는 나고 죽는 데서 바퀴 돌듯 하므로 보는 것이 있거니와, 보살은 온갖 나고 죽음을 아주 끊었으므로 보살을 일러서 얻음이 없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얻음이 없는 것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이름하나니, 보살마하살은 불성을 보았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었으며, 그래서 보살을 얻음이 없다고 이름하고, 얻음이 있는 것은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함이 없다고 하거니와, 보살마하살은 이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함이 없는 것을 아주 끊었으므로, 보살을 일러서 얻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얻음이 없는 것을 제일의공이라 이름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제일의공을 관찰하여 보는 바가 없으므로 보살을 얻음이 없다고 이름하느니라. 얻음이 있는 것은 다섯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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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소견이라 이름하거니와, 보살은 이 다섯 가지 소견을 아주 끊었으므로 제일의공이라 하며, 그러므로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야, 얻음이 없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적에는 보는 바가 없으므로 보살을 얻음이 없다고 이름하느니라. 얻음이 있는 것은 성문·연각의 보리라 이름하거니와, 보살은 2승의 보리를 아주 끊었으므로 보살을 이름하여 얻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그대가 물은 것도 얻음이 없고, 내가 말하는 것도 얻음이 없나니, 만일 얻음이 있다고 말하면, 그는 마군의 권속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보살의 얻음이 없음을 말씀할 적에 한량없는 중생이 모양이 있는 마음을 끊어사오니 이런 일로써 제가 감히 얻음이 없는 이치를 묻자와 이러한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마군의 권속을 여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게 하였나이다.”
가섭보살은 부처님께 또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먼저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순타(純陀)에게 게송을 말씀하셨나이다.

본래는 있어도 지금은 없으며
본래는 없어도 지금은 있으니
이 세상 앞세상 지나간 세상에
있다는 모든 법 옳은 곳 없나니.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슨 뜻이오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나는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하여 이 말을 하였고, 또 성문·벽지불을 위하여 이 말을 하였고, 또 문수사리법왕자를 위하여 이 말을 한 것이요, 순타 한 사람만을 위하여 이 게송을 말한 것이 아니니라. 그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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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가 나에게 물으려 하기에, 내가 그의 마음을 알고 말하였으며, 내가 말한 뒤에는 문수사리가 곧 이해하였느니라.”
“세존이시여, 문수사리 같은 이가 몇 사람이나 이 뜻을 알았는지 모르거니와, 바라건댄 여래께서 대중을 위하시어 다시 분별하여 말씀하소서.”
“선남자야,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들에게 다시 말하리라. 본래는 있다[本有]는 것은 나에게는 옛날 본래 한량없는 번뇌가 있다는 것이니, 번뇌가 있으므로 현재에 대반열반이 없다는 것이며, 본래는 없다[本無]는 것은 본래 반야바라밀이 없다는 것이니, 반야바라밀이 없으므로 현재에 번뇌의 결박이 두루 있다는 것이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오는 세상·지금 세상에 번뇌가 있다’고 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나에게 본래 부모의 화합한 몸이 있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현재에 금강 같은 미묘한 법신이 없다는 것이며, 본래는 없다는 것은 나의 몸에 본래 32상과 80종호가 없다는 것이니, 본래는 32상과 80종호가 없으므로, 현재에 404가지 병을 갖추었다는 것이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오는 세상·지금 세상에 병의 고통이 있다’고 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옛적에 본래 무상함과 내가 없음과 즐거움 없음과 부정함이 있다는 것이니, 무상함과 내가 없음과 즐거움 없음과 부정함이 있으므로 현재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없다는 것이며, 본래는 없다는 것은 불성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니,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다는 것이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오는 세상·지금 세상에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다’고 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범부로서 고행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니, 이런 일이 있으므로 현재에 네 가지 마군을 깨뜨리지 못하는 것이며, 본래는 없다는 것은 나에게 본래 6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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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이 없다는 것이니, 본래 6바라밀이 없으므로 범부로서 고행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오는 세상·지금 세상에 고행이 있다’고 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옛적에 본래 잡식하는 몸이 있다는 것이니, 잡식하는 몸이 있으므로 현재에 가없는 몸이 없다는 것이며, 본래는 없다는 것은 본래 37조도법이 없다는 것이니, 37조도법이 없으므로, 현재에 잡식하는 몸을 갖추어 있느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오는 세상·지금 세상에 잡식하는 몸이 있다’고 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옛적에 본래 온갖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니, 이런 일이 있으므로 현재에 필경까지 공한 선정이 없다는 것이며, 본래는 없다는 것은 나에게 중도의 진실한 뜻이 없다는 것이니, 중도의 진실한 뜻이 없으므로 온갖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느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오는 세상·지금 세상에 온갖 법이 모양이 있다’고 말한다면 옳지 아니하니라.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내가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 때에, 근기가 둔한 성문 제자가 있다는 것이니, 근기가 둔한 성문 제자가 있으므로 일승의 참다운 법을 연설하지 못하였으며, 본래는 없다는 것은 본래 근기가 영리한 사람 중의 코끼리인 가섭보살 같은 이들이 없다는 것이니, 근기가 영리한 가섭 같은 이가 없으므로, 마땅한 방편으로 삼승법을 열어 보이었느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오는 세상·지금 세상에 필경까지 3승을 연설한다’ 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또 선남자야, 본래는 있다는 것은 내가 본래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반열반에 든다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현재에 방등경전인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지 못하는 것이며, 본래는 없다는 것은 옛적에 본래 문수사리보살들이 없다는 것이니, 보살들이 없으므로 현재에 말하기를, 여래가 무상하다고 하였느니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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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래는 지난 세상·오는 세상·지금 세상에 무상하다’고 말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여러 중생들을 두루 위하는 것이므로, 모든 법을 알지만 모르노라 말하고, 모든 법을 보지만 못 보노라 말하며, 모양이 있는 법을 모양이 없다고 말하고, 모양이 없는 법을 모양이 있다 말하며, 진실로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말하고, 진실로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말하며, 나이고 즐겁고 깨끗한 것도 역시 그러하니라. 3승의 법을 일승이라 말하고, 일승 법을 마땅한 대로 3승으로 말하며, 간략한 것을 자세하게 말하고, 자세한 것을 간략하게 말하며, 네 가지 중대한 법을 투란차(偸蘭遮)라 말하고, 투란차 법을 네 가지 중대한 것이라 말하며, 범한 것을 범하지 않았다 말하고, 범하지 아니한 것을 범했다 말하며, 가벼운 죄를 중대하다 말하고, 중대한 죄를 가볍다 말하나니, 왜냐 하면 여래는 중생의 근성을 분명히 보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여래가 비록 이렇게 말하지만 허망한 말은 허물이 되거니와, 여래는 모든 허물을 여의었거늘, 어찌 허망한 말이 있겠는가. 선남자야, 여래는 비록 허망한 말이 없지만 만일 중생들이 허망한 것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허망한 말을 인하여 법의 이익을 얻을 줄을 알면 적당한 방편대로 말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온갖 세상 법이라도 여래에게는 곧 제일의법이니, 왜냐 하면 부처님 세존은 제일의법을 위하여서 세상법을 말하며, 또 중생들로 하여금 제일의법을 얻게 하나니, 만일 중생으로 하여금 제일의법을 얻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부처님께서는 마침내 세상법을 말하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가 어떤 때에 세상법을 연설하더라도, 중생들은 부처님이 제일의법을 말한다 하고, 어떤 때에 제일의법을 연설하더라도, 중생들은 부처님이 세상법을 말한다 하나니 부처님의 깊은 경계는 성문이나 연각들의 알 바가 아니니라. 선남자야, 그러므로 그대는 먼저 문난하기를 ‘보살마하살이 얻는 것이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하나니, 보살이 항상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얻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얻음이 없다고 힐난하겠느냐?”
가섭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일의제는 도(道)라고도 하고 보리라고도 하고 열반이라고도 하나니, 만일 보살이 도나 보리나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면 곧 무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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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 왜냐 하면 법이 항상하다면 얻을 수 없나이다. 저 허공을 누가 얻을 수 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세간 물건으로서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을 무상하다고 함과 같이 도도 그러하여 도를 만일 얻을 수 있다면, 무상이라 이름할 것이오며, 법이 만일 항상하다면, 얻는 일도 없고 나는 일도 없을 것이오니, 마치 성품은 얻을 수도 없고 나는 일도 없는 것 같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도는 빛도 아니고 빛 아님도 아니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며 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붉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고 푸른 것도 아니고 누른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나이까? 보리와 열반도 그와 같나이다.”
“그러니라. 선남자야, 도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항상함과 무상함이요, 보리의 모양도 두 가지니 항상함과 무상이며, 열반도 그와 같으니라. 외도의 도는 이름을 무상이라 하고, 내도(內道)의 도는 항상하다 하며, 성문·연각의 보리는 무상이라 하고 보살과 부처님의 보리는 항상하다 하며, 밖으로 해탈함은 무상하다 하고 안으로 해탈함은 항상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도와 보리와 열반을 모두 항상하다 이름하거니와, 온갖 중생들은 한량없는 번뇌에 덮이어서 지혜의 눈이 없으므로 보지 못하느니라. 중생들이 보기 위하여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닦으며, 닦으므로 도와 보리와 열반을 보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도와 보리와 열반을 본다고 하지만 도의 성품과 모양은 진실로 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포착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도라는 것은 모양을 볼 수도 없고 칭량하여 알 수도 없지만 실제로 작용이 있나니, 선남자야, 중생의 마음이 빛도 아니고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고 굵지도 않고 가늘지도 않고 묶인 것도 아니고 풀린 것도 아니며, 볼 수 있는 법도 아니지만 그러나 있는 것이니라. 이런 뜻으로 내가 수달에게 말하기를 ‘장자여, 마음은 성(城)의 주인이니, 장자가 마음을 수호하지 못하면 몸과 입을 수호하지 못하고, 마음을 수호하면 몸과 입을 수호하느니라. 몸과 입을 수호하지 못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3악도에 이르게 하고, 몸과 입을 수호하면 중생들로 하여금 인간·천상이나 열반을 얻게 하리니, 얻는 것은 진실하다 하고 얻지 못하면 진실치 않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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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도와 보리와 열반도 그와 같아서 있기도 하고 항상하기도 하니, 만일 없다면 어떻게 모든 번뇌를 끊으리요만, 있음으로써 모든 보살들이 분명하게 보느니라. 선남자야, 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모양으로 보는 것이요, 둘은 분명하게 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모양으로 본다 하느냐. 멀리 연기를 보고 불을 보았노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불을 보지 못하였으며, 비록 불을 보지 못하였더라도 허망한 것은 아니니라. 공중에 있는 학을 보고 물을 보았노라 말하나니, 비록 물을 보지 못하였으나 허망한 것은 아니니라. 마치 꽃과 잎을 보고 뿌리를 보았노라 말하는 것처럼, 비록 뿌리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허망한 것은 아니니라. 어떤 사람이 멀리 울타리 너머로 소뿔을 보고 소를 보았노라 하면, 비록 소를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아니하니라. 여인이 아기 밴 것을 보고 탐욕을 보았노라 말하면, 비록 탐욕을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아니하니라. 나무에 잎이 난 것을 보고 물을 보았노라 말하면, 비록 물을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아니하니라. 구름을 보고 비를 보았노라 말하면 비록 비를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아니하니라. 몸으로 하는 짓이나 입으로 하는 짓을 보고 마음을 보았노라 하면, 비록 마음을 본 것은 아니나 허망하지는 아니하니라. 이런 것을 이름하여 모양으로 본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분명하게 본다 하느냐. 눈으로 빛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사람의 눈이 깨끗하여 항상하지 아니하였으면, 손바닥에 아마륵 열매를 보는 것 같나니, 보살마하살이 분명하게 도와 보리와 열반을 보는 것도 이와 같아서, 비록 이와 같이 보지만 애초부터 보는 모양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내가 예전에 사리불에게 말하기를 ‘모든 세간의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여래는 모두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이며, 보살들도 그와 같으니라. 사리불아, 모든 세간에서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나와 보살도 알고 보고 깨닫느니라. 세간 중생들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서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줄도 스스로 알지 못한다. 세간 중생들이 알고 보고 깨닫는 것은 문득 말하기를, 내가 알고 보고 깨닫노라 하느니라. 사리불아, 여래는 온갖 것을 모두 알고 보고 깨닫지만 스스로 내가 알고 보고 깨닫노라 말하지 아니하나니, 보살들도 그와 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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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왜냐 하면 만일 여래가 알고 보고 깨닫는다는 상을 지으면, 이는 부처님이 아니고 범부라 이름할 것이리니, 보살도 그러하니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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