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는 마음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마음을 정화하면 번뇌도 정화된다. 번뇌가 정화된다는 것은 번뇌 자체가 실체가 아니며, 가상의 생각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실체가 없는 번뇌라 할지라도 마음이 자아의 모습[我相]과 삼라만상의 모습[法相]을 확고하게 집착하고 있는 한 쉽게 정화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먼저 자각을 야기하고 이타적인 보살의 수행을 하여야만 그 번뇌들이 정화될 수 있다.
수행은 육바라밀(六婆羅密)을 수행하는 것으로서 육바라밀은 남에게 보시를 하고[布施],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계율을 지키고[持戒], 고난을 참고 진리를 탐구하며[忍辱],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구제하는 일에 용맹정진하고[精進], 번뇌를 없애고 마음을 안정하여[禪定], 번뇌를 퇴치하여 지혜를 밝게 하는 것[知慧]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은 수행은 반드시 마음이 번뇌가 정화되어 보리와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는 뜻에서 바라밀이라고 한다.
《유식삼십론송》(唯識三十論頌)은 한역대장경에 수록된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가리키는 문헌 이름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두 문서 간에 존재한다.
즉, 《유식삼십송》은 오직 서른 개의 게송으로 구성된 바수반두의 저작물이지만, 《유식삼십론송》은 서른 개의 게송 외에도 게송 사이 사이에 한역자인 현장의 소개글이 짤막한 주석의 형태로 삽입되어 있다. 글의 분량 측면에서 《유식삼십론송》이 《유식삼십송》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유식삼십송》은 글의 모든 부분에서 저자를 바수반두로 볼 수 있지만, 《유식삼십론송》은 글의 많은 부분에서 직접 글을 쓴 사람을 바수반두로 볼 수 없는 내용이 존재한다.
《유식삼십론송》을 《유식삼십송》에 대한 일종의 짤막한 형태의 간이 주석서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원문 외의 부가적인 내용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책을 같은 문헌으로 볼 수 없다.
* 북망산(北邙山): 중국 낙양 북쪽에 있는 산으로 왕후나 공경대부등 사람이 죽으면 이곳에 와서 묻혔다고 한다. * 황천객(黃泉客): 저승으로 가는 나그네 * 常樂我淨: 열반의 세계는 절대 영원하고 즐겁고 자재(自在)한 참된 자아가 확립되어 있으며 청정함을 이른다 * 무위도無爲道: 무심의 경지를 무위도라 한다. 무위심, 내기비심. 무주상보시 기복덕불가사량
사람되어 못 닦으면 다시 공부 어려우니 나도 어서 닦아보세
닦는 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대강 추려 적어보세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착의끽반(着衣喫飯) 대인접화(對人接話)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영(昭昭靈靈)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몸뚱이는 송장이요 망상번뇌 본공하고
천진면목(天眞面目) 나의 부처 보고 듣고 앉고 눕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눈 한번 깜짝할 제
천리 만리 다녀오고 허다한 신통묘용
분명한 나의 마음 어떻게 생겼는고 의심하고 의심하되,
고양이가 쥐잡듯이 주린 사람 밥 찾듯이 '목마른데 물 찾듯이
육칠십 늙은 과부 외자식을 잃은 후에 자식 생각 간절하듯
생각 생각 잊지 말고 깊이 궁구하여가되 일념만년(一念萬年) 되게 하여
폐침망찬(廢寢忘饌)할 지경에 대오하기 가깝도다
홀연히 깨달으면 본래생긴 나의부처 천진면목 절묘하다
아미타불 이 아니며 석가여래 이 아닌가
젊도 않고 늙도 않고 크도 않고 작도 않고
본래 생긴 자기 영광 개천개지(盖天盖地) 이러하고
열반진락涅般眞樂 가이없다
지옥 천당 본공하고 생사윤회 본래없다
선지식을 찾아가서 요연(了然)히 인가마쳐
다시 의심 없앤 후에 세상만사 망각하고 수연방광隨緣放曠 지내가되 *廢寢忘饌폐침망찬: 몰두하여 침식을 잊다 *盖天盖地: 하늘과 땅을 덮어 가린다는 뜻으로, 중생(衆生)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빛이 하늘과 땅에 가득 참을 이르는 말 *放曠방광: 언행에서 거리낌이 없음 도인의 경지
빈 배 같이 떠돌면서 유연중생(有緣衆生) 제도하면
보불은덕(報佛恩德) 이 아닌가
일체계행 지켜가면 천상인간 복수(福壽)하고
대원력을 발하여서 항수불학 생각하고
동체대비 마음 먹어 빈병걸인(貧病乞人) 괄시 말고
오온색신(五蘊色身) 생각하되 거품같이 관을하고
바깥으로 역순경계(逆順境界) 몽중으로 관찰하여
해태심(懈怠心)을 내지 말고 허령(虛靈한) 나의 마음
허공과 같은 줄로 진실히 생각하여
팔풍오욕(八風五慾) 일체경계
팔풍(八風) :이利---남이 나에게 이롭게 하는 것(흔들리지 말라) 쇠衰---내외 형편이 쇠잔해지는것( 훼毁---남이 나를 헐뜻고 비방할 때나 예譽---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는것 칭稱---나를 칭찬할 때나 기譏---남이 나를 제 맘대로 희롱할 때나 고苦---고생스러울 때나 락樂---편안하고 즐거운 때나 오욕(五慾): 재 색 식 명 수(財 色 食 名 壽)
부동한 이 마음을 태산같이 써나가세
허튼소리 우스개로 이날 저날 헛보내고
늙은 줄을 망각하니 무슨 공부 하여볼까
죽을 제 고통중에 후회한들 무엇하리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 내고 머리골을 쪼개낸듯
오장육부 타는중에 앞길이 캄캄하니
한심참혹寒心慘酷 내 노릇이 이럴 줄을 누가 알꼬
저 지옥과 저 축생의 나의신세 참혹하다
백천만겁 차타(蹉打)하여 다시 인신(人身) 망연(茫然)하다
참선 잘 한 저 도인은 서서 죽고 앉아 죽고 앓도 않고 선세(蟬兌)하며
* 蹉打: 일을 이루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감, * 蟬兌: 매미선, 바꿀세(애벌레에서 매미로 몸을 바꿈)
오래 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자재하며
항하사수 신통묘용 임의괘락(任意快樂) 소요하니
아무쪼록 이세상에 눈코를 쥐어뜯고 부지런히 하여보세
오늘 내일 가는 것이 죽을 날에 당도하니
푸주간에 가는 소가 자욱자욱 사지로세
예전 사람 참선할 제 마디 그늘 아꼈거늘
나는어이 방일하며
예전 사람 참선할 제 잠오는 것 성화하여 송곳으로 찔럿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예전 사람 참선할 제 하루해가 가게 되면 다리뻗고 울었거늘
나는어이 방일한고
무명업식 독한술에 혼혼불각(昏昏不覺) 지내가니
* 昏昏 정신이 가물가물하고 희미한 모양,
오호라 슬프도다 타일러도 아니듣고
꾸짖어도 조심않고 심상히 지내가니
혼미한 이 마음을 어이하야 인도할고
쓸데없는 탐심진심 공연히 일으키고
쓸데없는 허다 분별 날마다 분요(紛擾)하니
우습도다 나의 지혜 누구를 한탄할고
지각없는 저 나비가 불빛을 탐하여서 제 죽을 줄 모르도다
내 마음을 못닦으면
여간계행(如間戒行) 소분복덕(少分福德) 도무지 허사로세
오호라 한심하다 이 글을 자세 보아 하루도 열두 때며
밤으로도 조금 자고 부지런히 공부하소
이 노래를 깊이 믿어 책상 위에 펴어놓고 시시때때 경책하소
할 말을 다하려면 해묵서이(海墨書而) 부진이라
이만 적고 그치오니 부디부디 깊이 아소
다시 한 말 있사오니 돌장승이 아기나면 그때에 말하리라.
* 분요紛擾: 먼지가 날려 어지러움, 가루가 날려 탁함 * 여간계행如間戒行 소분복덕少分福德: 계행을 지키고 적은 복덕을 짓는다고 하여도
용수(龍樹: 150년경 ~ 250년경?)는 중관(中觀·Madhyamaka)을 주창한 인도의 불교승려이다. 베트남·중국·대한민국·일본 등에서는 흔히 용수라 불리며 티베트에서는 Klu Sgrub이라 한다. 한국 조계종에서는 육조단경에 의거해 인도 제14대 조사로 보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다. 3세기 용수는 중관불교의 틀은 유지하는 동시에 상좌부 불교를 비판하고 대승불교의 논리를 창시했기 때문에 제2의 석가모니 또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석가모니 이래 출가자 위주의 "수행 중심 불교"였는데, 이를 비판하고 대승불교 교단을 새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