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kydong77.tistory.com/m/21174

 

同安常察,十玄談/김시습,십현담요해 &한룡운, 십현담주해/南銘,北銘

[상단은 젊은 날의 초상화, 하단은 "자사진찬"까지 쓴 주름진 늙으막의 초상화] https://kydong77.tistory.com/18574 同安常察,十玄談/ 김시습,십현담요해 & 한룡운, 십현담주해 십현담 [十玄談] ​https://te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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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정 - 고향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kQlq64SUEwI

님의침묵/(작곡 정의송, 노래 하이런)

https://www.youtube.com/watch?v=v9NQ9jA7f_8

 

 

한용운/국가보훈처

https://www.youtube.com/watch?v=vUjF_ST0V5g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백담사

https://www.youtube.com/watch?v=TJntlumnCfA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https://www.youtube.com/watch?v=YvWk6Rq50Ds&t=51s

https://www.youtube.com/watch?v=nk-ObZ196wc

​한용운의 연설:우리의 가장 큰 원수

https://www.youtube.com/watch?v=p4dq0UNrPZA

 

- YouTube

 

www.youtube.com


[재정리]

시대를 달리한 한국의 두 천재가 스님 신분으로 <십현담>에 탐닉한 것이 흥미롭다. 설악산의 오세암은 5세때 세종으로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은 영원한 방랑자 김시습이 머물렀던 곳인데, 1926년 백담사 시절 만해 선생이 <님의 침묵>을 발간한데다 <십현담주해>를 출간에 앞서 <십현담요해>를 열독했으니, 438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설악산 오세암에서 동일한 주제로 고심한 두 천재의 기이한 인연은 세상에 회자될 만한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김시습이 <금오신화> 5편을 탈고한 곳은 경주 금오산(남산) 용장사의 거처임.1468년(세조 14년) 34세 때였다.]

김시습 1435년(세종 17)-1493년(성종 24) 34세때 경주 금오산[남산] 용장사에서 <금오신화> 탈고.

한룡운 1879년(고종 16) 8월 29일 ~ 1944년 6월 29일. 설악산 백담사에서 집필한 <십현담주해>와  <님의 침묵>을 47세때 발간.

 

동안상찰 -<십현담(十玄談)> & 한룡운 -<십현담주해>   (1) 2018.09.03

한룡운 - 십현담주해 & 김시습 - 학랑소     (0) 2018.08.30

김시습의 ‘십현담요해’ 언해본 발견

http://news.donga.com/3/all/20090916/8809995/1

 

김시습의 ‘십현담요해’ 언해본 발견

성철 스님 서고 정리중 나와문화재 목록에 없는 희귀본16세기 어휘 담긴 중요자료 16세기 특이한 우리말 어휘를 담은

www.donga.com

성철 스님(왼쪽) 서고에서 발견된 ‘십현담언해’. 사진 제공 백련암

한룡운 十玄談註解 서문중에서

대저, 매월(김시습)에게는 지키고자 한 것이 있었으나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운림(雲林)에 낙척(落拓)한 몸이 되어, 때로는 원숭이와 같이 때로는 학과 같이 행세하였다. 끝내 당시 세상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천하만세(天下萬世)에 결백하였으니, 그 뜻은 괴로운 것이었고 그 정(情)은 슬픈 것이었다.
또 매월이 십현담을 주석(註釋)하였던 곳이 오세암이고, 내가 열경의 주석을 읽었던 것도 오세암이다. 수백년 뒤에 선인(先人)을 만나니 감회가 오히려 새롭다.

십현담[]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51358&cid=40942&categoryId=31543

중국 당나라의 선승(禪僧) 동안상찰(同安常察)이 조동종(曹洞宗)의 가풍과 수행자의 실천 지침 등을 칠언율시 형식으로 노래한 10수의 게송(偈頌).

중국 선종()의 한 종파인 조동종의 승려 동안상찰이 지은 게송으로서 《경덕전등록()》 제29권에 실려 있다. 조동종의 가풍과 수행자의 실천 지침 등을 칠언율시 형식의 10수로 지은 것인데, 각 수의 제목은 심인()·조의()·현기()·진이()·연교()·달본()·환원()·회기()·전위()·일색()이다.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17952?category=485846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한룡운 - 십현담주해 & 김시습 - 학랑소

△ 만해 한룡운 저 野船渡盡無數人 滿江風雨自縱橫 「나룻배 타고 강 건너는 수 많은 사람들이여, 강에 가득한 비바람 스스로 어지럽구나」. 중에서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바리톤 박흥우) http

kydong77.tistory.com

 

 

 

자화상 찬(自寫眞贊) 

 

俯視李賀

(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다 볼 만큼 

優於海東

(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謾

(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

(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眇

(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

(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

(의이치지) 네 몸을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

(구학지중) 금오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23023002&wlog_tag3=naver#csidx5cb1eef2c190ffca8ad78f9df6ab14d

*[운영자 주]

번역에 '금오산'은 운영자가 덧붙임. 산골짝은 경주 남산 삼릉계곡. 그래서 기존 번역의 제목인 '나의 초상에 쓰다'를 바꾸어 '자화상 찬'이라 했다.

작품집 이름에 '금오'를 얹은 것은 금오산에서 유래함.

김시습은 34세 때 경주 남산 삼릉계곡 용장사 거소에서 <금오신화> 5편을 창작함.

전영수님의 <『十玄談要解』에 드러난 金時習의 經典 및 禪語錄에 관한 理解> 의 논문 초록을 추가하고

동안상찰의《십현담(十玄談)과  한룡운님의 <십현담주해>만 발췌하여’ 읽기 쉽게 재정리해 보았습니다.

 

천재의 광기 김시습 & 권필과 남효온의 한시

https://kydong77.tistory.com/m/18008

 

천재의 광기 김시습 & 권필과 남효온의 한시

자화상 찬(自寫眞贊) -위 사진 상단. 俯視李賀(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다 볼 만큼 優於海東(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謾譽(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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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현담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51358&cid=40942&categoryId=31543

 
중국 당나라의 선승(禪僧) 동안상찰(同安常察)이 조동종(曹洞宗)의 가풍과 수행자의 실천 지침 등을 칠언율시 형식으로 노래한 10수의 게송(偈頌).

중국 선종()의 한 종파인 조동종의 승려 동안상찰이 지은 게송으로서 《경덕전등록()》 제29권에 실려 있다. 조동종의 가풍과 수행자의 실천 지침 등을 칠언율시 형식의 10수로 지은 것인데, 각 수의 제목은 심인()·조의()·현기()·진이()·연교()·달본()·환원()·회기()·전위()·일색()이다. 

 십현담 [十玄談] (두산백과)

 

전연수, 『十玄談要解』에 드러난 金時習의 經典 및 禪語錄에 관한 理解

한국선학 15권, 한국선학회, 2006년, pp.211-242.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12971951

[초록]

본고에서는 十玄談要解에서 金時習이 經典 및 禪語錄을 통해 자신의 思想을 어떻게 펼쳐나가는지 살펴보았다. 김시습은 天台의 五時敎判과 같이 『阿含經』․『方等經』․『般若經』․『法華經』과 『涅槃經』의 순서로 敎判하고 있었는데, 특히 김시습은 『법화경』과 『열반경』의 교의를 중추로 삼고 있었다. 김시습은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기보다는 부정하거나 역설하는 방식으로써 부처의 본의를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祖師禪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禪語錄을 引用하여 「十玄談」의 원문내용을 直截하게 표현함으로써 조사선의 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미루어 볼 때, 김시습은 「십현담요해」를 저술할 당시에 이미 경전 및 선어록을 통해서 自由自在로 자신의 사상을 펼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십현담(十玄談)》열 가지 현묘한 말씀
   - 동안상찰(同安常察) 선사 지음 

https://blog.naver.com/bonem25/221339263704

내용이 길어 운영자가 그 타이틀을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현묘한 담론이란 진리를 말한다.

그 진리를 10가지로 요약한 것이 십현담이다.

① 心印(심인)

② 祖意(조의)

③ 玄機(현기)

④ 塵異(진이)

⑤ 佛敎(불교)

⑥ 還鄕曲(환향곡)

⑦ 破還鄕曲(파환향곡)

⑧ 廻機(회기)

⑨ 轉位歸(전위기)

⑩ 一色過後(일색과후)

 

① 心印(심인)

問君心印作何顔 (문군심인작하안)

그대에게 묻노니 
심인이 어떻게 생겼는가?


心印誰人敢授傳 (심인수인감수전)

심인을 
누가 감히 전해주고 받으랴


歷劫坦然無異色 (역겁탄연무이색)

영원토록 변함없어 
다른 모양 없거늘


呼爲心印早虛言 (호위심인조허언)

심인이라 부르는 것도 
벌써 헛된 말이라네


須知本自靈空性 (수지본자영공성)

본래 스스로
신령스럽고 빈 성품이여,


將喩紅爐火裏蓮 (장유홍로화리연)

비유하면 
벌겋게 달아 있는 
난로 속의 연꽃이네


莫謂無心云是道 (막위무심운시도)

무심을 일러 
도라 하지 말게나.


無心猶隔一重關 (무심유격일중문)

무심도 아직 
한 겹의 관문이 막혀 있다네.




② 祖意(조의)

祖意如空不是空 (조의여공불시공)

조사의 뜻은 
공한 것 같으나 공하지 않나니


眞機爭墮有無功 (진기쟁타유무공)

참된 기틀이 
어찌 있다 없다는 공과를 따지랴.


三賢尙未明斯旨 (삼현상미명사지)

삼현의 경지로는 
아직 이 뜻에 캄캄하고


十聖那能達此宗 (십성나능달차종)

십성인들 어찌 
이 종지(宗旨)를 통달 했으리요.


透網金鱗猶滯水 (투망금린유체수)

그물 벗어난
금비늘 고기가 
오히려 물에 걸렸는데


回途石馬出紗籠 (회도석마출사롱)

길 돌린 돌말은 
우리를 벗어났네.


慇懃爲說西來意 (은근위설서래의)

은근히 그대 위해 
서쪽에서 온 뜻을 말하노니


莫問西來及與東 (막문서래급여동)

서쪽에서 왔는가, 
동쪽에서 왔는가를 
묻지 말게나.



③ 玄機(현기)

迢迢空劫勿能收 (초초공겁물능수) 

멀고 먼 공겁부터 
거두지를 못했는데


豈爲塵機作繫留 (가위진기작계류)

어찌 티끌 속에 
매어둘 수 있으리오


妙體本來無處所 (묘체본래무처소)

미묘한 본체는
본래 처소가 없고


通身何更問蹤由 (통신하갱문종유)

온몸이 그대로인데 
어찌 다시 자취를 묻겠는가?


靈然一句超群像 (영연일구초군상)

신령한 한 말씀이 
모든 현상을 초월하였으니


逈出三乘不假修 (형출삼승불가수)

삼승 경계 뛰어 넘어 
닦는 노력 필요 없네.


撒手那邊千聖外 (철수나변천성외)

저 쪽 천성들이 못가는 
먼 밖에서 손을 흔들고


廻程堪作火中牛 (회정감작화중우)

돌아오는 길에는
불 속의 소가 되었네.


④ 塵異(진이)

濁者自濁淸者淸 (탁자자탁청자청)

탁한 것은 스스로 탁하고
맑은 것은 스스로 맑으니


菩提煩惱等空平 (보리번뇌등공평)

보리와 
번뇌가 텅 비어 
똑같이 평등하도다.

誰言卞璧無人鑑 (수언변벽무인감)

누가 변씨네 옥을 
알아보는 이 없다 하는가?


我道驪珠到處晶 (아도여주도처정)

나는 여룡의 여의주가
도처에서 빛난다 하리라.


萬法泯時全體現 (만법민시전체현)

만법을 잊을 그때
전체가 드러나고


三乘分處假安名 (삼승분처가안명)

삼승으로 
나누는 곳에서 
거짓 이름 생긴 것

丈夫自有衝天氣 (장부자유충천기)

대장부 누구나 
하늘 찌르는 기운 있으니


不向如來行處行 (불향여래행처행)

부처님 가신 곳을
향해 가지 말아야 하네.



⑤ 佛敎(불교)

三乘次第演金言 (삼승차례연금언)

삼승을 차례로 
설하신 부처님 말씀


三世如來亦共宣 (삼세여래역공선)

삼세의 여래가 
모두 같이 말씀하셨지만


初說有空人盡執 (초설유공인진집)

처음 유와 공을 설하니 
사람들이 모두 집착하더니


後非空有衆皆捐 (후비공유중개손)

뒤에는 
공과 유가 아니라 설하니
중생이 모두 버려

龍宮滿藏醫方義 (용궁만장의방의)

용궁에 저장된 장경은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약방문일 뿐


鶴樹終談理未玄 (학수종담리미현)

학수의 마지막 말씀에도
이치는 현묘하지 않았네.


眞淨界中纔一念 (진정계중재일념)

깨끗한 경계 속에 
한 생각 일으키면


閻浮早已八千年 (염부조이팔천년)

염부제에서 
벌써 8천년이 지났네.



⑥ 還鄕曲(환향곡)

勿於中路事空王 (물어중로사공왕)

공부하다 중간에 
부처님을 따로 섬기지 말라.


策杖咸須達本鄕 (책장함수달본향)

지팡이 재촉하여 
모두 본고향으로 어서 가라.


雲水隔時君莫住 (운수격시군막주)

구름과 물이 막는다고 
그대 머물지 말라.


雪山深處我非忙 (설산심처아비망)

설산 깊은 곳에서도 
나는 허덕이지 않았노라.


堪嗟去日顔如玉 (감차거일안여옥)

슬프다.
떠나던 날 
옥 같던 그 얼굴이


却歎廻來鬢似霜 (각환회래빈사상)

돌아올 때 
귀밑털이 서리와도 같구나.


撒手到家人不識 (철수도가인불식)

손을 털고 집에 오니 
식구들도 몰라보고


更無一物獻尊堂 (갱무일물헌존당)

집안의 어른에게 
드릴 것도 하나 없네.



⑦ 破還鄕曲(파환향곡)

返本還源事亦差 (반본환원사역차)

고향에 돌아온다는 것도
또한 틀린 일이니


本來無住不名家 (본래무주불명가)

본래 머문 것이 없었으니 
집인들 어디 있나?


萬年松徑雪深覆 (만년송경설심복)

오래된 솔밭 길에 
눈이 깊이 덮여 있고


一帶峯巒雲更遮 (일대봉만운갱차)

산봉우리는 
구름 띠가 막아버렸네.


賓主穆時純是妄 (빈주목시순시망)

손님 주인 화목해도
순수함이 거짓이요

君臣合處正中邪 (군신합처정중사)

임금 신하 모인 곳도 
바른 가운데 그릇됨이라


還鄕曲調如何唱 (환향곡조여하창)

귀향 노래를
어떻게 부를 건가?

明月堂前枯木華 (명월당전고목화)

밝은 달밤 
집 앞의 고목나무 꽃이 피었네.




⑧ 廻機(회기)

涅槃城裏尙猶危 (열반성리상유위)

열반성 
그 속이 오히려 위태롭고


驀路相逢沒了期 (맥로상봉몰료기)

길에서 만나 봐도 
마칠 기약 없구나.


權掛垢衣云是佛 (권괘구의운시불)

방편으로 
때 낀 옷 입혀놓고 
부처라 하였으나


却裝珍御復名誰 (각장진어부명수)

비단 옷으로 단장하면 
무엇이라 부를 건가?


木人夜半穿靴去 (목인야반천화거)

목인은 한밤중에 
신을 신고 떠나가고


石女天明戴帽歸 (석녀천명대모귀)

석녀는 새벽녘에 
모자 쓰고 돌아오네.


萬古碧潭空界月 (만고벽담공계월)

만고의 푸른 못에 있는
허공의 달을


再三勞漉始應知 (재삼로록시응지)

두 번 
세 번 건져내야 
비로소 알리라.



⑨ 轉位歸(전위기)

披毛戴角入廛來 (피모대각입전래)

털옷 입고
뿔을 이고 
저자로 들어오니


優鉢羅花火裏開 (우발라화화리개)

우발라 보배 꽃이
불속에 피었구나.


煩惱海中爲雨露 (번뇌해중위우로)

번뇌의 바다 가운데 
비와 이슬 되어주고


無明山上作雲雷 (무명산상작운뢰)

무명산 위에서는 
구름이 되고 우레가 된다네.


鑊湯爐炭吹敎滅 (확탕노탄취교멸)

활활 타는 지옥 불을 
입으로 불어 끄고


劍樹刀山喝使摧 (검수도산할사최)

검수지옥
도산지옥 
소리쳐 꺾고서


金銷玄關留不住 (금쇄현관유부주)

부처님 궁전과 
조사의 관문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行於異路且輪廻 (행어이로차윤회)

다른 길을 가면서 
윤회를 밟고 있네.




⑩ 一色過後(일색과후)

枯木岩前差路多 (고목암전차로다)

고목나무 바위 앞엔 
갈림길이 많나니


行人到此盡蹉跎 (행인도차진차타)

길가는 이 
여기서 잘못 들기 일쑤더라.


鷺鷥立雪非同色 (노사입설비동색)

백로가 눈밭에 서니 
같은 색이 아니지만


明月蘆花不似他 (명월노화불사타)

갈대꽃 위에 
달이 밝으니 
다른 빛이라 하겠는가?


了了了時無所了 (료료료시무소료)

깨닫고, 깨닫고, 깨달아도
깨달은 것 없고


玄玄玄處亦須呵 (현현현처역수가)

현묘하고 현묘해 현묘한 곳 
또한 현묘한 것 없으니


慇懃爲唱玄中曲 (은근위창현중곡)

은근히 그대 위해 
현묘한 노래를 부르건만


空裏閃光撮得麽 (공리섬광촬득마)

허공 속의 
달빛을 어떻게 잡으랴.

[출처] 《십현담(十玄談)》열 가지 현묘한 말씀|작성자 곡두

 

 

김시습의 <십현담 요해>는 복사가 가능한

만해 한룡운의 <십현담 주해>로 대신한다.

아래 포스트에는 서준섭님 번역의 선불교의 10가지 요체를 담은 원문과 번역 및 주해가 있다.

 

https://blog.naver.com/bonem25/221339531724

 

한용운, ‘십현담주해’(법보회,1926)

                                                                            서준섭역

  
乙丑余過夏于五歲 偶閱十玄談 十玄談者 同安常察禪師所著禪話也 文雖平易 意有深奧 初學者卒難窺其幽旨耳 有原註 而未詳其人 幷有悅卿註 悅卿者 梅月金時習之字也 梅月之避世入山 衣緇而住于五歲時 所述也 兩註各有其妙 足以解原文之意 至若言外之旨 往往與愚見 有所同異者存焉 夫以梅月之有所守 而世不相容 落拓雲林 爲猿爲鶴 終不屈於當世 自潔於天下萬世 其志苦 其情悲矣 且梅月註十玄談于五歲 而余之讀悅卿註者 又五歲也 接人於數百年之後 而所感尙新 乃註十玄談
 
乙丑 六月 日 於五歲庵
 
韓 龍 雲 識

서문
을축년 내가 오세암(五歲庵)에서 여름을 지낼때
우연히 십현담(十玄談)을 읽었다. 십현담은 동안 상찰 선사(同安 常察 禪師)가 지은 선화(禪話)이다. 글이 비록 평이하나 뜻이 심오하여
처음 배우는 사람은 그 유현(幽玄)한 뜻을 엿보기 어렵다.
원주(原註)가 있지만 누가 붙였는지 알 수 없다. 열경(悅卿)의 주석도 있는데, 열경은 매월(梅月) 김시습(金時習)의 자(字)이다. 매월이 세상을 피하여 산에 들어가 중옷을 입고 오세암에 머물때 지은 것이다. 두 주석이 각각 오묘함이 있어 원문의 뜻을 해석하는데 충분하지만, 말 밖의 뜻에 이르러서는 나의 견해와 더러 같고 다른 바가 있었다.
대저, 매월에게는 지키고자 한 것이 있었으나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운림(雲林)에 낙척(落拓)한 몸이 되어, 때로는 원숭이와 같이 때로는 학과 같이 행세하였다. 끝내 당시 세상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천하만세(天下萬世)에 결백하였으니, 그 뜻은 괴로운 것이었고 그 정(情)은 슬픈 것이었다.
또 매월이 십현담을 주석(註釋)하였던 곳이 오세암이고, 내가 열경의 주석을 읽었던 것도 오세암이다. 수백년 뒤에 선인(先人)을 만나니 감회가 오히려 새롭다. 이에 십현담을 주해(註解)한다.
을축 6월 일 오세암에서
한용운 씀
 
 
십현담 주해(十玄談註解)
 
                               동안선사(同安禪師) 지음(述)
                               용운사미(龍雲沙彌) 비주(批註)


                                            서 준 섭 역
 
 
마음(心印)

[批] 畫蛇已失 添足何爲 
[비] 뱀을 그리는는 것도 이미 틀렸는데, 다리까지 덧붙여 무엇하리.
[註] 心本無體 離相絶跡 心是假名 更用印爲 然萬法以是爲準 諸佛以是爲證 故名之曰心印 本體假名 兩不相病 心印之旨明矣
[주] 마음(心)은 본래 형체[體]가 없어 모양[相]을 떠나고 흔적을 잃었다. 마음(心)이란 말이 가짜 이름인데, 거기에 인(印)자를 덧붙였다.
그러나 만법(萬法)은 이로써 기준을 삼고 제불(諸佛)은 이로써 증거를
삼는다. 그러므로 심인(心印)이라 이름 붙여 말한다. 본래의 체(體)와 가짜 이름이 서로 병(病)이 되지 않는데서 심인(心印)이라는 말 뜻이 드러난다.

<原文> 問君心印作何顔
그대에게 묻노니 마음은 어떤 모습인가?

[批] 脂粉滿地 世無傾城
[비] 분냄새는 가득한데 경국지색(傾國之色)은 간데 없다.

[註] 三十二相 八十種好 在心印 盡屬空華 果何顔之有 五彩不足以染 規矩不足以形 且道果作何顔 良久 花月已謝 美人全如玉
[주] (부처님의) 32상(相) 80종호(種好)가 다 마음[心印]에 있고 모두 허공 꽃[空華]에 속한다. 그러니 어떤 얼굴이 있겠는가. 다섯 가지 물감으로도 물들이기에 부족하고 갖가지 자[規矩]로도 그 모습을 재기에 부족하다. 또한 도(道)는 과연 어떤 모습을 짓고 있는가?
(잠시 후에 읊는다)

「꽃과 달 이미 시들었는데 미인은 옥처럼 온전하네」.

<原文> 心印何人敢授傳 
마음을 누가 감히 주고 받겠는가?

[批] 衣鉢早非心印 
[비] 의발(衣鉢)은 본래 마음[心印]이 아니다.
[註] 心印無體 衆生不能受 諸佛不能傳 三世佛祖之傳法 仍是謾語 世法以傳爲傳 心印以不傳爲傳
[주] 마음은 형체가 없어서 중생이 받을 수 없고 제불(諸佛)이 전할 수 없다. 삼세(三世) 불조(佛祖)의 전법(傳法)도 부질없는 말이다. 세상의 법은 전함으로써 전해지는 것이고, 마음[心印]은 전하지 않음으로써 전해지는 것이다.

 
<原文> 歷劫坦然無異色
긴 세월 지나오며 한결같이 변함 없어

[批] 千眼失明
[비] 천 개의 눈도 빛을 잃는다.
[註] 超古越今 萬色俱泯 不異不立 異者何物
[주] 고금(古今)을 초월하고 만색(萬色)이 다 없어진다.
다름이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다른 것은 어떤 물건인가.
良久云 滿地芦花 一天明月
(잠시 후에 읊는다) 「땅에 가득한 갈꽃이요 하늘에 밝은 달이로다」.


<原文> 呼爲心印早虛言 
심인(心印)이라 하는 것도 본래 빈말인 것을.

[批] 呼心非印亦虛言 
[비] 마음을 심인(心印)이 아니라고 해도 또한 빈말인 것을.
[註] 無相無色 何有言說 千呼萬名 元不相稱 此諱尊嚴 千佛莫能犯 名之則錯 不名亦錯 天下廣長舌 一時俱斷
[주]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으니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천 가지로 부르고 만 가지 이름을 붙여도 원래부터 이름으로는 어긋난다. 이것은 존엄하여 천불(千佛)도 범할 수 없다. 거기에 이름을 붙이면 틀리고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틀린 것이다.
천하에 말 잘하는 사람도 한 순간 말길이 끊어져 버린다.



<原文> 須知體自虛空性
분명히 알아라 그 형체 텅 비어 저 허공 같다.

[批] 天下之不具 莫此甚也 
[비] 천하의 병신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註] 離相而存 超色而明 拔乎性命 曾不生滅 不與有爲之有形 有壽爲伍 虛空性故 有若此者
[주] 모양[相]을 떠나 존재하고 빛[色]을 초월하여 밝다.
성명(性命)을 넘어서서 일찌기 생멸(生滅)하지 않는다.
세상의 형체있고 수명있는 것이 더불어 짝하지 않는다.
본성이 공(空)하므로 이와 같다.

 
<原文> 將喩紅爐火裡蓮 
불 속에 핀 연꽃에나 비유해 볼까.

[批] 百花元從火裡生 
[비] 모든 꽃(것)이 원래 불 속에서 핀다.
[註] 性若虛空 無以爲名 喩之火中蓮 取其名有實無也 道之無名 喩之無物 火中蓮 亦何足世喩哉
[주] 본성은 허공과 같아서 이름 붙일 방법이 없다. 불속의 연꽃에 비유한 것은 이름은 취했으나 실체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도(道)는 이름이 없고 그것을 비유할 물건이 없으니 ‘불 속의 연꽃’이라는 세속의 비유 또한 어찌 만족스러운 것이겠는가.

 
<原文> 勿謂無心云是道
무심(無心)을 도(道)라 이르지 말라.

[批] 網盡桃花武陵春 漁郞依舊到仙源 
[비] 무릉(武陵)의 봄 복사꽃을 모두 건져 올렸지만 어부들은 여전히 선원(仙源)에 찾아온다.
[註] 非徒有心爲病 無心均是病也 何也 有心者滯於有心 無心者碍於無心 有無雙忘 近於道矣
[주] 유심(有心)만이 병이 아니라 무심(無心) 또한 병이다. 왜 그런가.
유심은 ‘유심’에 걸리고 무심은 ‘무심’에 막힌다.
유(有) 무(無) 모두 잊어버려야만 도(道)에 가깝다.


<原文> 無心猶隔一重關
무심(無心)마저 한 겹 막혀 있는 것이다.

[批] 初擬萬事到夜定 其奈閒愁入夢多 
[비] 처음에는 만사가 밤이 되면 안정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근심이 꿈속에 들어와 설치니 어찌할 것인가?
杖云
[註] 初學者 妄念紛起 常以無心爲期 及到無心 往往落空 絶盧爲宗 墮於小乘 至是而無心之病 更甚於有心也 此法不可以有心得 亦不可以無心求 如何始得 放下拄 山雨未晴 春事在邇
[주] 처음 배우는 사람은 망령된 생각이 어지러이 일어나 항상 무심의 경지를 기약하고, 무심에 이르러서는 종종 허공(虛空)에 떨어져, 생각을 끊는 것을 종지(宗旨)로 삼아 소승(小乘)에 떨어지고 만다. 이렇게 되면 무심의 병이 오히려 유심(有心)의 병보다 심한 것이다. 이 법은 유심으로 얻을 수 없고 무심으로도 구할 수 없다. 어떻게해야 얻을 수 있는가?
(주장자를 내려 놓고 읊는다)

「산에 오는 비는 개지 않는데 봄철 농사 일은 코앞에 닥쳤도다」.


②조사의 뜻(祖意)

[批] 博地凡夫 本自具足 一切賢聖 道破不得 
[비] 세상의 범부(凡夫)도 본래부터 다 갖추어져 있다. 모든 현자(賢者) 성인(聖人)이 일러볼 길 끊겼다.
[註] 祖師之意 何嘗有意 衆生有意 祖亦有意 祖意者 衆生之意也
[주] 조사(祖師)의 의중에 처음부터 무슨 뜻이 있었겠는가? 중생에게 뜻이 있다면 조사에게도 뜻이 있는 것이다. 조사의 뜻이란 중생의 뜻이다.

 
<原文> 祖意如空不是空
조사(祖師)의 뜻은 빈 것 같지만 빈 것이 아니다.

[批] 一葉天下秋 
[비] 나뭇잎 하나로 천하가 가을됨을 안다.
[註] 祖意者 祖師之意旨也 若空而妙有 若有而眞空 有時天上天下 尋之無跡 有時百草頭上 歷歷可見 破有云空 破空云有 空有俱倒 祖意始彰
[주] 조사의 뜻이란 조사가 지니고 있는 뜻이다.
공(空)한 것 같지만 묘하게 있고[妙有], 있는 것 같지만 참으로 공한 것[眞空]이다. 때때로 하늘 위 아래에서 찾아보아도 흔적이 없지만,
백 가지 풀머리에서도 늘 역력히 볼 수 있다.
유(有)를 깨트려 공(空)이라 하고 공을 깨트려 유라고 하지만,
공과 유가 다 함께 거꾸러져야 조사의 뜻이 비로소 드러난다.

 
<原文> 靈機爭墮有無功 
신령스런 기틀 어찌 ‘있다’, ‘없다’에 떨어지랴.

[批] 無報無應 
[비] 보답할 것도 베풀 것도 없다.
[註] 有功者 功有所不成 無功者 未始有淨業 故有功者 其功不大 無功者 其業不進 此兩者 共不足以爲大量漢 夫靈機者 無所不成 而實無一得 何功之有 何功之無 畢竟如何

良久 野船渡盡無數人 滿江風雨自縱橫

[주] 공(功)이 있다는 것은 이루지 못한 공이 있다는 것이고,
공이 없다는 것은 아직 업(業)을 씻기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이 있는 자는 그 공이 크지 못하고, 공이 없는 자는 그 업이
나아가지 못한다. 이 둘은 모두 큰 도량을 지닌 사람되기에 부족하다.
무릇 신령스런 기틀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지만, 실상은 하나도 얻은 것이 없다. 거기에 무슨 공이 있다고 할 것이며 또 공이 없다고 할 것인가. 그렇다면 끝내 무엇이란 말이가?
(잠시 후에 읊는다)

 「나룻배 타고 강 건너는 수 많은 사람들이여,
강에 가득한 비바람 스스로 어지럽구나」.
 
 
<原文> 三賢尙未明斯旨
삼현(三賢)도 아직 이 뜻에 밝지 못하거늘,

[批] 盃水之覆 芥爲之舟 
[비] 한 잔 물 엎질러서 겨자씨 배 띠우는 격이다.
[註] 十住十行十廻向 學位之初 豈能承當大旨 未明此旨 無足怪也
[주] 10주(住) 10행(行) 10회향(廻向)은 학위(學位)의 시작인데,
어찌 깨달음의 큰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아직 이 뜻에 어두운 것도 이상하지 않다.

 
<原文> 十聖那能達此宗 
십성(十聖)이 어찌 이런 종지(宗旨)를 깨닫겠는가?

[批] 百尺竿頭
[비] 백척간두(百尺竿頭)로다.

[註] 位至十地 所證非淺 然至於妙覺 瞠乎後矣 安能達此祖意 如何到得 良久 回首停步處 已出第三關
[주] 학위가 10지(地)에 이르면 마음 공부가 얕지 않다. 그러나 오묘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멀다. 어찌 이 조사(祖師)의 뜻에 이를 수 있겠는가. 어떻게 다다를 수 있겠는가?
(잠시 후에 읊는다)

「머리를 돌려 발길을 멈춘 곳, 이미 세 번째 관문(關門)을 빠져 나왔도다」.

 
<原文> 透網金鱗猶滯水 
그물 뚫은 금고기 오히려 물에 걸리고,

[批] 天下之金鱗 不死於網 而死於水者多矣
[비] 천하의 금고기도 그물에서는 살아났지만, 물에 떨어져 죽는 자 많다.
杖云
[註] 金麟之魚 脫於漁網 可謂出死入生 猶未免滯水之憂 至於非水 則其危立至 水與非水 縱橫自在 是謂神龍 三賢十聖 能脫世間煩惱網 猶未忘法見之浸水 如何不滯水 堅起拄自從泥牛入海後 木魚盡在白雲中
[주] 금빛 비늘의 물고기(아름다운 물고기 : 역자주)가 그물에서 벗어나니 사경(死境)에 들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으나, 아직 물에 걸리는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 아닌 것에 이르러서는 곧 위험에 빠지게 된다. 물과 물 아닌데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야 ‘신비스런 용(神龍)’이라 이른다. 삼현(三賢) 십성(十聖)도 세간(世間)의 번뇌의 그물을 벗어날 수는 있지만, 세상만사[法見]의 침수(浸水)를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한다. 어떻게 해야 물에 걸리지 않겠는가?
(주장자를 세우며 읊는다)

「진흙 소 바다로 들어간 후에, 나무 물고기[木魚] 흰 구름 속에 있네」


<原文> 廻頭石馬出紗籠 
머리 돌린 석마(石馬)는 사롱(紗籠)을 빠져 나간다.

[批] 須彌納芥 恢有餘地 
[비] 수미산(須彌山)을 겨자 씨에 넣어도 남은땅이 있다.
[註] 天下之駿馬 何足以出細入微 石馬乃能出紗籠 三賢十聖 不能透關 靜思回頭 頓忘功用 無關不透 無地不入
[주] 하의 준마(駿馬)가 어찌 미세한 곳으로 나고 들 수 있겠는가?
석마(石馬)라야 사롱(紗籠)을 빠져 나올 수 있다. 삼현(三賢) 십성(十聖)도 관문을 뚫지 못한다. 근본을 돌이켜 고요히 생각하고 공부[功]와 쓰임을 문득 잊어야 뚫지 못할 관문이 없어지고 들어가지 못할 곳(지위)이 없어진다.


<原文> 慇懃爲說西來意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을 귀뜀하노니,

[批] 口業未淨 
[비] 구업(口業)을 아직 깨끗이 씻지 않았군.
[註] 達磨西來 本無一意可說 饒舌何爲 然婆心未已 橫說堅說
[주] 달마(達磨)가 서쪽에서 온 것은 본래 말할만한 한 뜻도 없는데,
혀를 놀려 무엇하겠는가? 노파심 때문에 횡성수설해보는 것이다.

 
<原文> 莫問西來及與東 
서쪽이냐 동쪽이냐 묻지 말라.

[批] 尋春莫須向東去 西園寒梅已破雪 
[비] 봄 찾아 굳이 동쪽으로 갈 필요없네. 서쪽 정원의 한매(寒梅)가 이미 눈[雪]을 뚫고 있네.

[註] 無邊刹境 不隔於毫端 入此門來 何有方所 旣無方所 云東云西 仍是妄語 畢竟如何 良久未離兜率 已降王宮 

[주] 광대무변의 찰나의 경지는 털끝만큼의 막힘도 없다. 이 문(門)에 들면 어찌 방위와 장소(場所)가 있겠는가. 이미 방위와 장소가 없는데 동쪽이요 서쪽이요 하는 말은 헛된 것이다. 마침내 어떻다는 말인가?
(잠시 후에 읊는다) 「도솔천(兜率天)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미 왕궁으로 내려 왔도다」.

③현묘한 기틀(玄機)
 
[批] 不是秋花不是紺 
[비] 가을 꽃 빛도 아니고 하늘 빛도 아니다.
[註] 超乎方圓 亦非長短 無法不生 故曰玄機 玄機者 妙之至也
[주] 모나고 둥근 것을 초월하고 길고 짧은 것도 아니다. 생성하지 못하는 사물[法]이 없으니 ‘현묘한 기틀’[玄機]이라고 한다. 현묘한 기틀은 오묘함의 극치이다.
 
<原文> 超超空劫勿能收 
공겁(空劫)은 뛰어나고 뛰어나서 거둘 수가 없으니,

[批] 春風桃李 秋水芙蓉 
[비] 봄 바람에 도리(桃李)요, 가을 물에 부용(芙蓉)이다.

[註] 十世古今 不離於當念 一念不生 萬劫自消 白髮靑春 妄想故有 劫外更有何世 良久 新絃未上 古桐有聲

[주] 아득한 세월도 지금의 한 생각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겁(萬劫)도 저절로 사라진다.
백발과 청춘도 망상 때문에 있는 것이니
공겁(空劫) 밖에 무슨 세계가 따로 있겠는가?
(잠시 후에 읊는다) 「초승달 뜨기 전 늙은 오동나무에 가을 바람 소리로다」.


 
<原文> 豈與塵機作繫留 
어찌하여 진기(塵機)따위에 묶여 머뭇거리겠는가?

[批] 依天長劍 
[비] 하늘에 기댄 장검(長劍)이다.

[註] 玄機之在日用中 何嘗與世塵爲侶 如蓮生水中 曾不着水 在色非有 在空非無 收之不得 却之不退 用在其中 妙而不染 果作何狀 良久兩岸細過芳草雨 江上未沾鈞魚人

[주] 현묘한 기틀은 일상생활[日用]속에 있으나 어찌 일찌기 세상 띠끌과 반려가 된 적이 있는가.
(이 도리는) 연꽃이 물 속에서 생겼으나 일찌기 물에 얽매인 적이 없는 것과 같다. 색계(色界)에 있지만 유(有)가 아니고, 공(空)에 머무나 무(無)가 아니다. 거두되 얻지 않고 놓되 물러서지 않으니 나날의 씀[日用]은 그 속에 있다. 오묘하여 물들지 않으니 과연 무슨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잠시 후에 읊는다) 「언덕 방초(芳草)에 이슬비 내리는데 강 위에서 고기잡는 사람은 젖지 않도다」.

 
 
<原文> 妙體本來無處所 
그 묘체(妙體) 본래 머물 곳이 없으니,

[批] 君臣同座 始得太平 
[비] 군신(君臣)이 자리를 같이 하니 비로소 태평(太平)스럽다.
[註] 妙體 不在內 不在外 亦不在中 內外中間 歷歷現露 無處不在 所在無處
[주] 묘체는 안에 있는 것도 밖에 있는 것도 가운데에 있는 것도 아니나,
안팎 중간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없는 곳이 없고 있는 곳[所在]도 없다.

 
<原文> 道芽何更有蹤由 
도(道)의 싹이 어찌 흔적이나 있겠는가?

[批] 春雨未能潤 秋霜何曾枯 
[비] 봄비가 적시지 못하는데, 가을 서리가 어찌 시들게 하겠는가.
[註] 道無色相 千眼不能視 道無形狀 五軆不能觸
[주] 도(道)는 색(色)과 상(相)이 없으니 천 개의 눈(眼)으로도 볼 수 없다. 도는 형상(形狀)이 없으니 온 몸으로도 만질 수 없다.

 
 <原文> 靈然一句超羣像
령(神靈)스럽게 일구(一句)는 만상(萬像)을 훌쩍 뛰어 넘어

[批] 一句不在一句中 
[비] 일구(一句)는 일구 중에 있지 않다.
[註] 向上一句 不在文字 旣離文字 有何像形 超乎群像 靈而不眛
[주] 일구(一句)위에는 문자가 없다. 이미 문자를 떠났는데 무슨 형상(形像)이 있겠는가? 뭇 형상을 훌쩍 뛰어 넘어 신령스럽지만 어둡지 않다.

 
<原文> 逈出三乘下假修 
삼승(三乘)을 멀리 벗어났으니 수행(修行)
따위는 필요 없다.


[批] 夜光之璧 不因彫琢而得 
[비] 야광주(夜光珠)는 조탁(彫琢)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註] 地位漸次 假小乘而權有 至於玄機 劫前圓成 末後不盡 何假修得 三阿僧祗 五十五位 一時俱斷
[주] 지위(地位)는 점차 소승(小乘)을 빌어 권위를 얻고 현묘한 기틀에
이른다. 영겁(永劫) 전에 완만히 이루어져서 뒤에 다하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수행 따위가 필요하겠는가?
세 아승지(阿僧祗)겁과 55위(位)가 일시에 끊어져 버린다.

<原文> 撤手那邊千聖外 
어딘가 뭇 성인(聖人) 밖으로 손을 털어버렸으니

[批] 佛也打 祖也打 滿地無一物 
[비] 부처도 처 버리고 조사(祖師)도 처 버려서,
천지 가득 한 물건(一物)도 없음이여.
[註] 萬魔不足以爲碍 千聖何足以爲益 超然獨立 所依無物 此大丈夫之事也
[주] 일만 마귀도 장애가 되지 않는데 천성(千聖)이 어지 도움이 되겠는가? 초연히 우뚝 서서 의지할 물건이 필요 없으니, 이것이 대장부의 사업이다.

<原文> 廻程堪作火中牛 
돌아오는 길 ‘불속의 소’나 되어 볼까.

[批] 去平安 來平安一下云 
[비] 가는 것도 평안(平安)이요, 오는 것도 평안이다.
[註] 廻程 言了事以後也 火中牛 坐斷性命 不滯生死也 撤手千聖外 始作火中牛 如何是火中牛 卓拄丈 不吃芳草不在屋 始得耕盡天下田 
[주] 돌아오는 길은 말이 끝난 사업 이후이다. ‘불 속의 소’는 앉아서 성명(性命)을 끊어버리고 생사(生死)에 걸리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뭇 성인들도 떨쳐 버려야 비로소 ‘불 속의 소’가 될 수 있다.
‘불 속의 소’란 무엇인가?
(주장자로 한 번 치고 읊는다) 「방초(芳草)도 먹지 않고 집도 없어야 비로소 천하를 다 얻어 경작할 수 있도다」.


④티끌은 다른가(塵異)
 
[批] 一室千燈 
[비] 한 방(房)에 일천 등(一千燈)이라.
[註] 離塵而不隔 處塵而不混 故曰塵異
[주] 속세를 떠났으나 떨어져 있지 않고, 속세에서 살지만 혼란이 없다.
그래서 진이(塵異)라고 한다.

 
<原文> 濁者自濁淸者淸 
더러운 것도 스스로 더러운 것이고, 깨끗한 것도 스스로 깨끗한 것이니

[批] 春光妙在各自得 堪笑種蘭剪荊棘 
[비] 봄빛의 묘함은 스스로 그런 것인데, 우습구나,
난(蘭)은 심고 가시는 자른다니.
[註] 濁者淸者 各有妙理 在濁不爲劣 在淸不爲高 奚取奚捨 且濁不離淸 淸不離濁 萬水一源 所以異者 波流之境也
[주] 더러움(탁함, 濁)과 깨끗함(맑음, 淸)은 각각 묘한 도리가 있다.
더러움에 있다고 열등하지 않고 깨끗함에 있다고 고상한 것은 아니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겠는가. 또한 더러움은 깨끗함에서 떠나 있지
않고 깨끗함은 더러움에서 떠나 있지 않다. 만가지 물[水]이 한 가지 근원에서 나왔는데 달라지는 까닭은 파류(波流)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原文> 菩提煩惱等空平 
보리(菩提)다, 번뇌다, 그게 그거다.

[批] 春草王孫今何在 黃沙白骨共無邊 
[비] 봄풀[春草] 왕손(王孫)은 지금 어디 있느냐?
황사(黃沙) 백골(白骨) 모두 가이 없구나.
[註] 菩提性空 煩惱本寂 一切平等 無有高下 妄分別 故有悟有迷
[주] 보리(菩提)는 자성(自性)이 공(空)하고 번뇌란 본디 없는 것[寂滅]이다. 일체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는데 헛되이 분별한다.
그러므로 깨달음과 미혹함이 있다.

<原文> 誰言卞璧無人鑑
 
누가 변화(卞和)의 구슬을 알아볼 사람 없다고 말했나?

[批] 卞璧千古不爲卞石
[비] 변화(卞和)의 구슬은 천고(千古)를 지나도
변화의 돌이 되지는 않는다.
[註] 楚人卞和 獻荊山之玉於楚厲王 王曰石也 遂刖一足 又獻於武正 王怒又刖一足 至於文王 和抱其墣 哭於荊山之下 王召問曰刖足者何怨乎 和曰不怨刖足 而怨眞玉以爲凡石 忠事以爲謾事 是以哭之 王使玉工剖之 乃眞玉也 是爲卞璧 卞和之足 再刖不三刖 則鑑玉終有人也 本自具足之法寶 受用亦有人也
[주] 초(超)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의 옥(玉)을 초(楚) 나라
여왕(厲王)에게 바쳤더니, 왕은 「돌이야」라고 하면서, 한쪽 발꿈치를 잘라 버렸다. 그가 무왕(武王)에게 다시 그것을 바쳤더니, 왕이 노하여 또 한쪽 발꿈치를 잘랐다. 문왕(文王)때에 이르러서 변화는 옥돌을 안고 형산 아래서 울고 있었는데, 왕이 불러 「발꿈치가 잘린 자가 무엇을 원망 하는가」라고 물었다. 변화는 「발꿈치 잘린 것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옥을
보통 돌이라 하는 것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일을 속이는 일이라 하니 그래서 웁니다」라고 말하였다. 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그것을 쪼개어 보니 진짜 옥이었다. 이것을 일러 ‘변화의 옥(구슬)’이라 한다.
변화의 발꿈치가 두번 잘리고 세번째 잘리지 않은 것은 옥을 알아보는 사람이 마침내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스스로 다 갖추어져 있는 불법(佛法)도 그것을 알아보고 쓰는 사람도 있다.
 
<原文> 我道驪珠到處晶 
내 가는 곳곳마다 구슬 빛 뿐이로다.

[批] 空谷之蘭 不以無人不馨 
[비] 빈 골짜기에 난(蘭)은 그 향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註] 驪珠驪龍之頷珠也 驪龍之名珠 無處不晶 性珠圓名 何處不顯 何時不熙
[주] 여주(驪珠)는 (바다속에 있는) 여룡(驪龍)의 턱에 있는 구슬(여의주)이다. 여룡의 명주(名珠)는 빛나지 않는 곳이 없다. 성품의 구슬[性珠]은 둥글고 뛰어나니, 어느 곳인들 나타나지 않는 곳이 있겠으며 어느 때인들 빛나지 않는 때가 있겠는가?
 
<原文> 萬法泯時全體現 
만법(萬法)이 스러질 때 본체(本體)가 온전히 나타나니

[批] 酒殘歌罷 淸興方妙 
[비] 술이 다하고 노래가 끝나야 맑은 흥취가 오묘해진다.
杖云
[註] 心生法生 一切萬法 妄想分別 妄念一息 萬法俱泯 妄息法泯 一心之妙體始現 如何是法泯體現 放下拄 落盡紅樹黃葉後 空山無處不見秋

[주] 마음이 생기면 법(法: 다르마, 사물, 만물)이 생기니 일체 만법(萬法)은 망령된 생각이 분별한다. 망령된 생각이 한번 끊어지면, 만법이 다 같이 없어진다. 망령된 생각이 끊어지고 만법이 없어지면, 일심(一心)의 오묘한 본체가 비로소 나타난다.
법이 사라지고 본체가 드러나는 것은 어떤 경지인가?
(주장자를 내려 놓고 읊는다) 「울긋 불긋 단풍 잎들이 다 떨어지니,
빈 산 곳곳 가을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구나!」

 
<原文> 三乘分別强安名 
삼승(三乘)을 분별하여 억지로 이름 붙인 것.

[批] 一 二 三 
[비] 하나, 둘, 셋.
[註] 妙體無名 大法不二 小乘不知 無名處 强立名字
[주] 오묘한 본체는 이름이 없고 큰 법[大法]은 둘이 아니다. 소승(小乘)은 이름 없는 곳을 알지 못하여 억지로 이름을 붙인다.
 
<原文> 丈夫自有衝天志 
장부(丈夫)는 스스로 하늘 뚫을 뜻을 품기에
 
[批] 乾坤一我 
[비] 하늘과 땅 나 혼자다.
[註] 無敵於前 無君於後 出正入奇 無妙不極 進攻退守 算無遺策 是謂將材 丈夫處世 固當若是 學道者 宜乎任運騰騰 不爲物役
[주] 앞에 적(敵)이 없고 뒤에 임금이 없다. 정도(正道)에서 나와 기기(奇奇) 묘묘(妙妙)함에 드니 묘함도 없고 끝도 없다. 나아가 무찌르고 물러나 지키니 헤아림도 없고 책략도 없다. 이를 참다운 장수의 재목됨이라 한다. 장부(丈夫)의 처세(處世)가 실로 이래야 마땅하다. 도(道)를 배우는 사람은 도를 운영할 때 씩씩하게 해야 외부의 사물에 사역(使役)되는 일이 없다.

<原文> 莫向如來行處行 
부처님 간 길 따위 뒤밟지 말라.

[批] 芳草有人跡 更踏落花路 
[비] 풀숲에 누가 먼저 간 흔적 있어, 다시 꽃 떨어진 길을 밟는다.
杖云
[註] 如來行處 已是陳跡 更尋別處去 方是妙境 如何是如來不行處 堅起拄 烟收鷗夢外 月隱雁影初 

[주] 부처님[如來]이 간 길은 이미 낡은 자취이니 다시 다른 곳을 찾아야 묘한 경지이다. 부처님이 가지 않은 길이 어디인가?
(주장자를 세우며 읊는다) 「연기(烟氣)는 따오기 꿈 밖에 거두었고,
달은 기러기 그림자 속에 숨는도다」.



⑤가르침(演敎)
 
[批] 無數黃葉葉 盡作止啼錢 
[비] 수 많은 누런 잎, 병든 잎, 우는 아기 달래는 종잇돈.
[註] 如來爲衆生 故無言說處 更生言說
[주] 부처님[如來]은 중생을 위해 짐짓 아무것도 말할 곳이 없는 곳에서
다시 말할 것을 만들었다.

<原文> 三乘次第演金言 
삼승(三乘) 말씀을 차례로 펼쳤고

[批] 不辨牛馬秋水至 莫道滄海有幾多 
[비] 소인지 말인지 모르면서 추수(秋水)에 이르러 바다가 넓다는지
많다든지 말하지 말라.
[註] 如來 爲聲聞 說四諦 爲緣覺 說十二因緣 爲菩蕯 說六婆羅密 故云次第 隨機說法 從緣度生 老婆心切
[주] 부처님[如來]은 ‘성문(聲聞)’을 위해 사제(四諦)를 설하고 ‘연각(緣覺)’을 위해 12인연(十二因緣)을 설하고, ‘보살(菩薩)’을 위해 6바라밀(六婆羅密)을 설하였다(聲聞, 緣覺, 菩薩에 대한 세 가지 敎法을 ‘三乘’이라 한다 : 역자주). 그래서 차례로 법문하였다고 한다. 근기(根機)에 따라 법을 설하고 인연을 좇아 중생을 제도하였으니, 노파심이 간절하였다.

 
<原文> 三世如來亦共宜 
삼세(三世) 부처들도 또한 그러했노라.

[批] 前車覆轍 後車不戒
[비]앞의 수레 뒤집어졌는데도 뒤의 수레 조심하지 않는다.
[註] 佛無異佛 衆生亦無有異 以無異之佛 敎不異之衆生 所說之法 不得不同
[주] 부처는 다른 부처와 다르지 않고 중생 역시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은 부처로 다르지 않은 중생을 가르치니,
설하는 법문도 같지 않을 수 없다.


<原文> 初說有空人盡執
처음에 ‘유(有)’와 ‘공(空)’을 말씀하자 사람들이 거기에 집착하여

[批] 種荳得荳 
[비] 콩 심은데 콩 난다.
[註] 說因果之有法 則執爲實有 說破相之空法 則更執頑空 隨言生執 不知色則是空 空卽是色
[주] 인과(因果)의 유법(有法)을 설하니 실유(實有)에 집착하고, 파상(破相)의 공법(空法)을 설하니 공(空)에 완강하게 집착하였다. 말에 따라 집착이 생기니 ‘색(色)이 공(空)이요 공이 곧 색’인 도리를 알지 못하였다.

 
<原文> 後非空有衆皆捐 
뒤에 ‘공(空)’도 ‘유(有)’도 아니라 하니
그제서야 모두 집착을 버렸도다.


[批] 君言亦復佳 
[비] 그대의 말이 아름답다.
[註] 衆生執有執空 故欲破其執 更說非空非有 則皆捨空有之前執
[주] 중생이 유(有)와 공(空)에 집착하므로 그 착심(着心)을 깨뜨리고자 다시 비공(非空) 비유(非有)를 설하였다. 그러자 모두들 공과 유에 대한 종전의 집착을 버렸다.
 
<原文> 龍宮滿藏醫方義 
용궁(龍宮)에 가득찬 저 보물은 약방문이요

[批] 病如牛毛 藥似泰山 
[비] 병(病)은 쇠털 같고 약(藥)은 태산 같다.
[註] 龍宮者 華嚴經䟽云 文殊與阿難海 結集法藏於鐵圍山間 入于龍宮 佛滅度後六百餘年 龍樹菩薩往龍宮 見華嚴大經 凡有三本 上中二本 文義浩博 非力所持 遂誦出下本 流布 云醫方義者 佛法之度人 如醫藥之療病 故云醫方義 滿藏者法有多種 故云滿藏
[주] ‘용궁’이란 화엄경소(華嚴經䟽)에 이르기를, 「문수보살과 아난(阿難) 존자가, 철위산에서 부처님 생전에 설하신 법장(法藏)을 결집(結集)할 때, 용궁에 들어갔다」고 한 그것이다. 부처님 돌아가신 6백년 후 용수(龍樹) 보살이 용궁에 가서 화엄대경을 보았다고 한다. 세 가지 본(本, 책)이 있었는데, 상(上) 중(中) 이본(二本)은 글의 뜻이 너무도 크고 넓어 갖고 오기에는 힘이 부쳐서, 마침내 하본(下本)을 암송하여 나와서 널리 퍼트렸다고 한다. ‘의사의 약방문’이란, 불법(佛法)이 세상 사람을 구제하되 마치 의사가 약으로써 병을 고치듯하기에 약방문이라 한 것이다. 가득찬 보물[滿藏]은 불법에도 수 많은 종류가 있어 가득히 간직해 놓은 것과 같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原文> 鶴樹終談理未玄 
학수(鶴樹)의 마지막 말마저 방편인 것을.

[批] 四十九年道不破 萬事於今水東流 
[비] 49년 동안 지껄여도 도(道)는 다 말할 수 없으니, 지금까지의 만사(萬事)여,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로다.
一下云
[註] 鶴樹者 世尊入滅時 詣娑羅雙樹間 樹變白色如鶴 故云鶴樹 世尊入滅槃 告大衆言 自從鹿野苑 終至跋提河 於是中間 未曾說一字 故云理未玄 且道如何理玄 打拄杖 老胡不解佛法意 漫說言語非理玄

[주] 학수(鶴樹)는 세존께서 돌아가실 때 두 사라수(娑羅樹) 나무 사이에서 돌아가셨는데, 나무가 마치 학처럼 흰색으로 변하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학수라 말한 것이다. 세존께서 열반에 드실 때 대중에게 말씀하기를
「녹야원(鹿野苑)에서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이 사이 일찌기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치는 현묘하지 않다’
(理未玄, 앞에서는 ‘방편이다’라고 옮겼음: 역자주)고 한다.
그런데 도(道)는 왜 이치가 현묘한가?
(주장자로 한번 치고 읊는다) 「오랑캐 늙은이가 불법의 참뜻을 알지 못하면서 ‘이치는 현묘하지 않다’고 제멋대로 지껄이네」.

 

<原文> 眞淨界中纔一念 
진정계(眞淨界) 가운데 한 생각 비침이여,

[批] 纔有一念 原非眞淨
[비] 한 생각 비쳤다면 본래 진정계(眞淨界) 아니네.
[註] 眞淨界 天界也 此中時間 與人世不同
[주] 진정계는 천계(天界)이다. 이 가운데 시간은 인간세(人間世)와 같지 않다.

<原文> 閻浮早已八千年 
염부(閻浮)에 이미 8천년이 지났구나!

[批] 一刻抵千金 
[비] 일각(一刻)이 천금(千金)이다.

[註] 閻浮 漢譯勝金 卽此世也 天界之一念間 卽閻浮之八千年 如何是一念八千年 良久 一翳在眼 空華亂墜 

[주] 염부(閻浮)는 한역(漢譯)으로 승금(勝金)이라 하는데 곧 이 세상을 말한다. 천계(天界)의 한 생각 사이는 곧 염부의 8천년이다. 이 ‘한 생각이 8천년’이란 무슨 말인가?
(잠시 후에 읊는다) 「눈을 한 번 비비니 허공 꽃이 어지러이 떨어지네」.



⑥근본에 이르다(達本)
 
[批] 踏破雲山無限路 還家依舊離家在 
[비] 운산(雲山) 끝없는 길 헤치고 여기 왔으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여전히 ‘집’을 떠나 있다.
[註] 百千方便 盡是機宜 一念回光 早已達本
[주] 백, 천가지 방편이 모두 이 기틀에 알맞고, 한 생각 빛을 돌이키니 벌써 근본에 도달하였다. 
 
 <原文> 勿於中路事空王
가는 길에 허공 왕(王)을 섬기지 말고

[批] 鄕愁無端惱殺人 
[비] 향수(鄕愁)가 부질없이 사람을 휘잡는다.
[註] 說玄談空 已非本意 隨言生解 又是錯了 空王者 解空之王 卽佛也 不知法之在己 中途彷徨 漫事空王 則虛費日月 後悔何及
[주] ‘십현담(十玄談)’을 설명하는 것은 공(空)하여 이미 그 본래의 뜻이
아니다. 말을 따라 해석하려는 것도 잘못이다. 허공 왕[空王]이란 공(空)을 해석하는 왕 즉 부처이다. 불법이 자기 몸에 있는 줄 모르고 중도에서 헤매고 부질없이 허공 왕만 섬기면 세월만 허비한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原文> 策杖還須達本鄕 
지팡이나 재촉하며 고향에 어서 가라.

[批] 方有事于旋踵
[비] 바야흐로 중요한 일은 발꿈치 돌리는 데 있다.
[註] 拘於言語 碍於聲色 紛紛擾擾 盡是中路彷徨 有何所得 但萬念不動 寂然絶塵 本鄕直在眼前
[주] 언어에 묶이고 소리와 색에 구속되어 갈팡질팡하면, 이것이 중도에서 방황하는 것이니, 얻는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만가지 상념이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세상 티끌을 끊어버리기만 하면, 본 고향은 바로 눈 앞에 있다.

<原文> 雲水隔時君莫住
운(雲), 수(水) 막힌 곳에 머뭇머뭇 하지 말라.

[批] 雲水仍是天涯 
[비] 운수(雲水)는 천애(天涯)니라.
[註] 雲水者 比之方便化城 到此而作奇特想 妄認化城 而爲本鄕 故住於雲水之方便者多矣
[주] 운수(雲水)는 비유컨대 방편이 빙 둘러처진 성(城)이 되는 것으로, 여기에 들어 앉으면 기행(奇行)과 특별한 상념을 짓게 되어 망녕된 인식의 성(城)에 갇혀 그것을 본 고향으로 삼게 된다. 그러므로 운수(雲水)의 방편에 머뭇거리는 자가 많아진다.
 
<原文> 雪山深處我非忙 
설산(雪山) 깊은 곳 바쁜 것 하나 없다.

[批] 勞而無功 
[비] 수고롭기는 하지만 공(功)은 없다네.
[註] 雪山者 皎皎一色 絶塵無雜之謂也 情除量盡 超乎云謂 拔於靑黃 到此有何色相之可比 萬事已了 無一紛忙
[주] 설산(雪山)은 고요한 한빛으로 세상 티끌이 끊어지고 잡념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정념(情念)이 사라지고 헤아림이 없어져서 언어를 초월하고 모든 분별[靑黃]을 넘어선다. 여기에 이르면 색(色)과 모양[相]의 세계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모든 사업이 이미 끝났으니 바쁠 것 하나 없다.


 
<原文> 堪嗟去日顔如玉  
슬프다, 지난 날은 옥(玉) 같은 얼굴이더니

[批] 回憶自生憐
[비] 지난 날을 돌아보니 연민이 일어난다.
[註] 不知萬法生於自心 妄隨情量 空費許多歲月 紅顔已失 能無慨乎
[주] 만법(萬法)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줄 모르고, 망령되게 정념과 헤아림을 따르고 수많은 세월을 허비하였으니 이미 홍안(紅顔)을 잃어버렸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原文> 却嘆廻時鬢似霜 
오는 길 머리카락에는 서리가 내렸구나!

[批] 佛法惟有白髮在 
[비] 불법(佛法)은 오직 백발(白髮)에 있다.
三下云
[註] 可憐靑春 失於情塵之中途 還本之時 已是白髮如霜 如何免得白髮 打拄杖 須知春消息 方到落花妙

[주] 불쌍한 청춘이여. 정념과 티끌의 도중 길에서 다 잃어버리고 본 고향에 돌아올 때에는 이미 흰 머리카락이 서리같구나.
흰 머리카락을 어찌하면 면할까?
(주장자를 세 번 치고 읊는다) 「봄 소식을 알지어다 그래야 낙화(落花)의 묘경(妙境)을 볼 수 있도다」

 
<原文> 撒手到家人不識 
손 털고 집에 오니 아는 사람 하나 없고

[批] 識則非妙 
[비] 알면 묘(妙)하지 않다.
[註] 情謂萬法 一切放下 無拘無碍 嵬然獨存 眉毛已非前日之陳跡 何人敢識得
[주] 정념은 만법(萬法)이니 일체 놓아버리고 구속과 막힘이 없이 우뚝한 산처럼 오직 홀로 독립해 있다[唯我獨存]. 눈썹에 이미 옛날 낡은 흔적이 남아있지 않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알아 볼 수 있겠는가.
 
<原文> 更無一物獻尊堂 
존당(尊堂)에는 한 물건도 바칠 것 없다.

[批] 猶有尊堂在 
[비] 그래도 존당은 존재하네.

[註] 佛法以無得爲得 旣無所得 無物能成孝養宜矣 如何能成孝養 良久 撤之無手還無家 白骨滿地草靑靑 

[주] 불법(佛法)은 얻지 않음을 얻음으로 한다. 얻은 것이라고는 없으므로, 효양(孝養)할 마땅한 물건이 없다. 어찌 효양할 것이 있겠는가?
(잠시 후에 읊는다) 「없는 손 털고 없는 집으로 돌아오니 백골(白骨)은 땅에 가득하고 풀빛은 청청(靑靑)하네」.



⑦귀향마저 부정하다(破還鄕)*

 * 매월당전집에 수록된 ‘십현담’ 원문에는 이부분의 소제목 이름이 ‘還源’으로 되어 있음(역자주).

[批] 何地非故鄕 
[비] 어느 곳인들 고향집 아니겠는가?
[註] 末云旣空 本亦非有 達本還鄕 更如昨夢
[주] 말단(末端)은 이미 공(空)하고 근본도 유(有)가 아니다.
근본에 이르고 고향 집에 돌아오는 것도 어제 밤 꿈과 같다.

<原文> 返本還源事已差 
본원(本源)에 돌아 가면 사업은 이미 틀린 것,

[批] 金屑雖貴 着眼則病 
[비] 금(金)이 귀하지만 눈에 들어가면 눈병 난다.
[註] 棄末而返本 捨流而還源 是有取捨進退也 纔有取捨 便成邪道 豈不差哉
[주] 말단을 버리고 근본에 돌아온다, 지류(支流)를 버리고 본원(本源)에 돌아온다는 것은 취하고 버리고 나아가고 물러남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취하고 버리는 것(방편)이 다시 잘못된 길(道)을 만든다. 어찌 틀리지 않았는가!

<原文> 本來無住不名家 
본시 머물곳 없고, 집 또한 없는 것.

[批] 滿身淸風明月 
[비] 온몸에 가득한 청풍(淸風) 명월(明月)이여.
[註] 佛法不在內外中間 無有定所 旣無定所 何名爲家 無處無家 則還鄕之事錯矣
[주] 불법(佛法)은 내외(內外) 중간(中間)이 없고 정해진 곳도 없다. 미리 정해진 곳이 없으니 왜 집이라 이름 붙이는가? 처소도머물 곳도 없고 집도 없으니 고향집에 돌아온다는 것은 틀린 것이다.

<原文> 萬年松逕雪深覆 
만년 소나무 오솔길에 눈 깊이 덮혀 있고

[批] 何日松有逕 雪覆又幾年 
[비] 어느 때의 소나무 오솔길이며, 눈 덮인지 몇 해인가.
[註] 思量未及 情塵不到 一切蹤跡斷絶 故如松逕雪覆 至於萬年之久 而不通塵跡
[주] 생각과 헤아림이 미치지 못하고 정념과 티끌이 이르지 못하여 일체의 종적(蹤跡)이 끊어진다. 그래서 「소나무 오솔길에 눈 덮혔다」고 비유한다. 만년(萬年)처럼 길어서 티끌의 종적이 들어올 수 없다.
 
<原文> 一帶峰巒雲更遮 
한 줄기 산 봉우리에 구름 다시 가린다.

[批] 一步更奇於一步 
[비]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내딛는 데 묘미가 있다.
一下云
[註] 非徒松逕不通 全山莫開 進之無路 退亦無門 勢至於百尺竿頭 更尋活路於萬法之中 而觸處便塞 至是而可謂勝地絶景 當恁麽時如何 打拄杖 雲中峰巒

[주] 소나무 오솔길 통하지 않고 모든 산이 막혀 있으니, 들어가는 길이
없고 나가는 길도 없어, 형세(形勢)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이른다.
다시 만법(萬法) 가운데서 활로(活路)를 찾지만 접촉하는 곳이 다시 막힌다. 이에 이르러서야 ‘승지절경(勝地絶景)’이라 할 만하다.
이런 때(‘절경’인 마음의 경지)는 어떤가?
(주장자를 한번 치고 읊는다) 「구름 속의 산 봉우리로다」.
 
<原文> 賓主穆時全是妄 
손님과 주인이 화목할 때 모두가 망령이오

[批] 禮有揖讓 
[비] 예의 하나 바르구나.
[註] 賓主和睦 雖云盛事 依然有賓有主 歷然分居 更事和睦 此非小故 非了事漢之所可肯定也
[주] 손님과 주인이 ‘화목’한 것은 비록 좋은 일이라 하겠으나, 의연히 ‘손님’이 있고 ‘주인’이 있어 뚜렷이 구별되어 있는데도, ‘화목’을 다스리니(섬기니) 이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무뢰한을 다스리는 마음 공부’[事漢之事]를 마치지 못했으므로 긍정할 바가 되지 못한다.

<原文> 君臣合處正中邪
임금과 신하가 동석(同席)한 곳 옳은 듯 하나 잘못된 것.

[批] 宮中紊亂 
[비] 궁중 법도가 문란하다.
[註] 君臣合處 無高無下 一味平等 在法非不云正 自向上一句看之 則猶是邪道
[주] 임금과 신하(이는 조동종의 ‘君臣五位’론과 관련된 표현임: 역자주)가 합석한 곳은 고하(高下)가 없다. 얼핏 보면 평등한 맛이 있어 법(法)으로 바르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위의 한 구절로 비추어 본다면,
이는 오히려 잘못이다.
 
<原文> 還鄕曲調如何唱 
환향(還鄕)의 노래를 어떻게 불러 볼까?

[批] 漁歌樵笛 
[비] 고기잡이 노래요 나뭇꾼의 피리로다.
[註] 以還鄕爲不可 而至於破還鄕 則還鄕曲調
如何唱道 方免得破 五音實難妙唱

[주] 고향에 돌아왔다는 말은 옳지 않다. 그래서 고향집마저 부수는 것이다. 그러니 환향(還鄕)의 노래를 어떻게 부르겠는가? 모두 놓아 부셔버려서 오음(五音, 통상적인 곡조)으로는 그 오묘한 경지를 노래하기가 실로 어렵다.
 
<原文> 明月堂前枯樹花 
명월당(明月堂) 앞 마른 나무에 핀 꽃이로다.

[批] 聲前非寂 聲後無聞 
[비] 소리 앞에도 고요하지 않았고 소리 뒤에도 들은 것 없다.

[註] 明月堂前 枯樹有花 此非聲色之所到 還鄕曲調 至是而諧音 如何和得此曲 良久云 坐斷生死路 猶是夢裡人 

[주] 「명월당 앞 마른 나무에 꽃이 핀다.」 이것은 소리와 색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다. 환향(還鄕)의 노래(곡조)는 이에 이르러 아름다운 소리[諧音]가 된다. 어떻게 이 노래에 화답하겠는가?
(잠시 후에 읊는다) 「앉아서 생사의 길을 끊어버리니 이 분은 꿈속의 사람이라네」.

⑧위치를 바꾸다(轉位)
 
[批] 步步白水靑山 
[비] 걸음마다 백수(白水)요 걸음마다 청산(靑山)이로다.
[註] 取之非佳 捨之更非妙境 故更轉一位 轉之又轉 應接不暇
[주] 취하면 아름답지 않고 버린다 해도 묘한 경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위치[位 : 轉位의 ‘位’는 조동종의 ‘偏正五位’론과 관련된 것임: 역자주〕를 한번 바꾸고 또 바꾸어 사람 대하기에 한가하지 않다.

<原文> 涅槃城裡尙猶危 
열반(涅槃)의 성(城)이 오히려 위태로워

[批] 佛祖位中多危懼 夜來依舊宿蘆花 
[비] 불조(佛祖)의 자리[位]에 위태로움과 두려움이 많아 밤이 오면 옛대로 갈대 숲에 깃든다.

[註] 執着生死 已是凡夫 碍於涅槃 亦非聖人 莫道生死可㦊 涅槃愈危

[주] 생사(生死)에 집착하면 이미 범부(凡夫)이다. 열반에 구애되어도 성인이 아니다. 생사만 두렵다 이르지 말라. 열반은 더욱 위태롭다.
 
<原文> 陌路相逢沒定期 
저자 거리에서 만남은 정해진 기약이 없네.

[批] 磊落不覊漢 可逢亦可離 
[비] 떠돌이 저 사내 만날 수도 있고 헤어 질 수도 있고.
[註] 阿耨菩提 無有定法 生死涅槃 有何選擇 南陌北路 隨時逢著 任意逍遙 豈有定期 以束任運哉
[주] 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정법(定法)이 없으니 생사와 열반에서무엇을 선택하겠가. 남쪽 저자와 북쪽 거리에서 때에 따라 만나고 뜻에 맡겨 소요(逍遙)하니 어찌 정한 기약이 있겠는가. 묶이되 뜻에 따라 흐를 뿐이다.

<原文> 權掛垢衣云是佛
방편으로 때묻은 옷 걸어놓고 부처라 부른다면

[批] 陽焰元非水 渴鹿豈可飮 
[비] 아지랑이 원래 물이 아닌데 목마른 사슴 어찌 마시겠는가.
[註] 權設化城 實非淨土 三十二相 亦非佛身 况垢衣乎
[주] 방편으로 성(城)을 쌓으니 진실로 정토(淨土)가 아니다. 32상(相)도 불신(佛身)이 아닌데 하물며 때묻은 옷일까 보냐.
 
<原文> 却裝珍御復名誰 
진주 비단 으리으리한 장식 다시 무어라 이름하리.

[批] 一醜甚於一醜 
[비] 추함에 추함을 더하는구나.
[註] 若以垢衣爲佛 華鬘瓔珞珍御之服 更名爲誰 欲以名相求佛 求得者終非佛也
[주] 만일 때묻은 옷을 부처라 한다면 화만(華鬘) 영락(瓔珞) 진기한 보배로 장식한 옷은 다시 무어라 이름하겠는가. 이름과 모양에서 부처를 구하고자 바란다면 그렇게 얻은 것은 결코 부처가 아니다.
 
<原文> 木人夜半穿靴去 
‘목인(木人)’이 한 밤중에 신을 신고 돌아가고

[批] 喝 
[비] 할(喝)!
[註] 木人未得神足 猶有穿靴之勞
[주] 나무 사람[木人]은 신족(神足)을 얻지 못하였으니 오히려 신을 신는 수고로움이 있다.

<原文> 石女天明戴帽歸 
‘석녀(石女)’는 날이 새자 모자 쓰고 가는구나.

[批] 百鬼遯跡 
[비] 백 가지 귀신이 자취를 감추었다
[註] 木人石女 均是本來面目 偏正兩得 體用全彰
[주] ‘목인(木人)’, ‘석녀(石女)’는 모두 본래의 면목(面目)이다.
편과 정[偏正, 偏位와 正位:역자주〕을 다 얻으면, 체(體)와 씀(用)이
완전히 빛난다.

<原文> 萬古碧潭空界月 
만고(萬古)의 푸른 못과 공계(空界)의 저 달!

[批] 雲泥有差 
[비] 구름과 진흙 그 차이이다.
[註] 碧潭有水 空界有月 不同上下 各盡其妙 佛法門中 奚取奚捨 萬法一如 相卽相離
[주] 푸른 못의 물, 공계(空界)의 달은 위․아래로 같지 않지만 각각 그 오묘함을 다하였다. 불법문중(佛法門中)에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겠는가. 만법(萬法)은 한결같아서 서로 융합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原文> 再三撈摝始應知 
두 번 세 번 걸러보아야 알게 된다.

[批] 無微不入 
[비] 적어도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註] 佛法廣大 無法非法 潭水空月 不離機用 雖然如是 學者不可造次 委曲玩味 方始有得 且道如何應知 良久云 沈楊柳綠 回頭風更高 
[주] 불법(佛法)은 광대(廣大)하여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다. 연못의 물 허공의 달은 대기(大機,기틀) 대용(大用,쓰임)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비록 이와 같으나 배우는 사람은 잠시라도 게을리하지 말고 곡진하게 그 맛을 음미하여야 비로소 얻음이 있다. 어떻게 해야 도(道)를 알겠는가?
(잠시 뒤에 읊는다) 「연기는 버드나무 녹음에 가라앉는데 머리를 돌이키니 바람은 다시 높구나」.


⑨기틀을 돌리다(廻機)

[批] 風起花香動 雲收月影移 
[비] 바람이 일자 꽃 향기 진동하고 구름이 걷히니 달 그림자 옮겨간다.
[註] 轉位 則廻機隨之 一廻二廻 不存軌則
[주] 위를 바꾸면[轉位], 회기(廻機, ‘회기’는 ‘道의 발동 자체’, ‘轉位歸’ 등의 뜻이 있다. : 역자주)도 거기에 따라간다. 한 번 회기하 두 번 회기하니 정해진 궤도와 규칙이 있지 않다.

<原文> 被毛戴角人酆來 
털 입고 뿔 얹고 저자 거리 들어오니
 
[批] 三世諸佛 爲牛爲馬 
[비] 삼세 제불(三世諸佛)이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한다.
[註] 被毛戴角牛也 廛井也 此言不居正位 從異類中行 隨機接物 應用無方
[주] 가죽 옷 입고 뿔 얹은 것은 소이다. 저자는 시정(市井)이다. 이는 정위(正位)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른 무리들을 쫓아 그 속에서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근기(根機)에 따라 사물을 접하고 두루두루 응용한다.

<原文> 優鉢羅花火裡開 
우담발라 꽃 불 속에 활짝 피었다.

[批] 所懷伊人 
[비] 내가 사모하는 이가 이 사람이다.
[註] 優鉢羅花 靈瑞也 花從火裡開 實是寄遇 佛祖之出世 有若此者
[주] ‘우담발라 꽃’은 신령스러운 서기(瑞氣)이다. 꽃이 불 가운데서 활짝 피어나니 진실로 드문 만남이다. 불조(佛祖)가 세상에 나온 것도 이와 같다.

<原文> 煩惱海中爲雨露 
번뇌의 저 바다에 이슬비 되고

[批] 無多春宵一滴露 終朝付與百花頭
[비] 짧은 봄밤 이슬 한 방울이 아침이 다하도록 온갖 꽃을 다 적셔준다.
[註] 衆生之煩憫熱惱 猶如大海 佛祖出世 以涅槃妙法 爲雨爲露 以潤火宅 乃令衆生 咸得淸凉
[주] 중생의 갖가지 걱정과 뜨거운 번뇌는 마치 큰 바다와 같은데, 불조(佛祖)가 세상에 나왔다. 열반 묘법(涅槃妙法)이 비가 되고 이슬이 되어 불타는 집을 적시었다. 이에 중생이 시원함과 서늘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原文> 無明山上作雲雷 
무명(無明)의 산 위로 우뢰 소리 울린다.

[批] 慶決平生 
[비] 평생(平生)을 결정한 것을 경축한다.
[註] 迷者碍於三毒無明 不得開發妙智 沈淪長夜 以大法之雲雷 破無明之迷山 爲功大矣
[주] 미혹(迷惑)한 자는 삼독(三毒) 무명(無明)에 막혀 오묘한 지혜를 열어 발전시키지 못하고 밤과 같은 어두움에 빠져든다. 구름 같고 우뢰 같은 큰 법으로써 무명의 미혹한 산(山)을 깨뜨려 버렸으니 공이 크다.
 
<原文> 鑊湯爐炭吹敎滅 
펄펄 끊는 가마 숯불 가르침의 나팔로 꺼버리고

[批] 割鷄牛刀 
[비] 닭잡는데 소잡는 칼을 쓴다.
[註] 鑊湯爐炭 地獄名也 佛法淸凉 能破熱獄
[주] 확탕(鑊湯) 노탄(爐炭)은 지옥 이름이다.
불법은 시원하고 서늘하여 뜨거운 지옥을 때려 부술 수 있다.
 
<原文> 劍樹刀山喝使摧 
험악한 세상이라도 ‘할(喝)!’ 소리에 깨버린다.

[批] 微勞何足謝 
[비] 조그마한 수고에 어찌 사례하겠느냐.
[註] 佛祖一喝 能摧劍樹刀山之地獄
[주] 불조(佛祖)가 한번 ‘할(喝)!’하면 칼과 창이 나무처럼 산처럼 많아 위태롭고 험악한 세상[劍樹刀山] 지옥도 깨버릴 수 있다.
 
<原文> 金鏁玄關留不住 
금자물쇠 현관(玄關)에 머물지 말고

[批] 神龍元非池中物 肯同魚鼈接香餌 
[비] 신룡(神龍)은 원래 물것[池中物]이 아니거늘 물고기,
자라처럼 낚시 밥에 걸리겠는가.
[註] 金鏁玄關 佛祖之關門 怜悧漢 不着佛求 不着法求 不着僧求 留於玄關 亦非妙境 故不住耳

[주] 금쇄(金鏁), 현관(玄關)은 불조(佛祖)의 관문이다. 영리(怜悧)한 사람은 부처를 구하는데 집착하지 않고, 법을 구하는데 집착하지 않고 승려를 구하는데 집착하지 않는다. 현묘한 관문[玄關]에 머무는 것도 오묘한 경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머물지 않는다[不住]고 한다.

<原文> 行於異路且輪廻 
다른 길로 가서 윤회하라.

[批] 一竿風月 滿地江湖 
[비] 낚시대에 풍월(風月)이요 온 천지가 강호(江湖)로다.
[註] 正位不離異路 涅槃卽在輪廻 男兒到處 本地風光 長在輪廻 不生不滅 爲牛爲馬 不居玄關 出世大丈夫 當若此也 如何是行於異路 良久云林太寂寞 管絃亦凄然 
[註] 正位不離異路 涅槃卽在輪廻 男兒到處 本地風光 長在輪廻 不生不滅 爲牛爲馬 不居玄關 出世大丈夫 當若此也 如何是行於異路 良久云林太寂寞 管絃亦凄然 
[주] 정위(正位)는 갖가지 길과 떨어져 있지 않다. 열반은 곧 윤회(輪廻) 속에 있다. 남자 가는 곳마다 본지풍광(本地風光)이니 긴 윤회 속에 존재한다.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소가 되고, 말이 되고, 현관(玄關)에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세상에 나온 대장부(大丈夫)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 갖가지 다른 길을 따라 간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잠시 후에 읊는다) 「운림(雲林)의 큰 적막이여 관현악도 처량하구나」.


⑩한빛(一色)
 
[批] 一色知在一色外 
[비] 한빛은 한빛 밖에 있음을 알라.
[註] 萬轉千回 徒增其勞 入之一色 是爲大同
[주] 천만 번 돌고 돌며 헛되이 노고만 더할 뿐이다. ‘한빛’으로 들면 크게 동화(同和) 된다.
 
<原文> 枯木岩前差路多 
마른 나무 바위 앞에 갈림길도 많아서,

[批] 愈岐愈失 
[비] 갈수록 갈림길 갈수록 빗나간다.
[註] 學者維以息緣絶慮爲宗 如枯木死灰 則與道遠矣 至是而如岩前岐路 不得其正而入 反爲所惑
[주] 배우는 사람은 오직 인연을 쉬고 생각을 끊음을 종지(宗旨)로 삼아 마치 마른 나무와 죽은 재와 같이 된다. 그러면 도(道)에서 멀어진다. 이에 이르면 마치 바위 앞에 갈림 길을 만난 것과 같아서 바른 길로 들어가기 어려우니 오히려 미혹(迷하惑)게 된다.

<原文> 行人到此盡蹉跎 
나그네 여기 와서 모두 어긋나게 된다.

[批] 歲不我與 
[비]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註] 行道之人 至於岐路而蹉跎 莫知所從 學法者 入於邪逕 終不得正道矣 初學者 當謹愼於始 未有悔於其終可也
[주] 길을 가는 사람이 갈림길에 이르면 갈 곳을 알지 못하게 된다.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사악한 길로 접어들면 끝내 정도(正道)를 얻을 수 없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처음에 조심해서 뒤에 뉘우침이 없게 해야 한다.

<原文> 鷺鷥立雪非同色 
백로(白鷺)가 눈(雪)위에 서지만 같은 색이 아니요,

[批] 同則非同 
[비] 같다면 이미 같은 것이 아니다.
[註] 白鷺之立雪 白則同色 白鷺之白 與白雪之白同 鷺與雪 元非一色 故云非同也
[주] 백로가 눈[雪] 위에 서면 흰색으로 모두 같은 색(同色)이다. 백로의 흰빛과 눈의 흰빛이 같지만 백로와 눈은 원래 한빛(一色)이 아니다. 그래서 「같지 않다」고 말한다.

<原文> 明月蘆花不似他 
명월(明月)과 갈대꽃도 비슷하지 않고 다르다.

[批] 有類卽非高 
[비] 견줄 것이 있다면 곧 높지 않다.
 
[註] 明月蘆花 其色大同 猶不可比方於一色 如何是一色 良久云五色玲瓏處 明暗未分前

[주] 명월(明月)과 갈대 꽃은 그 빛이 크게 같다. 그러나 ‘한빛’(一色)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 그러면 한빛(一色)이란 무엇인가?
(잠시 후에 읊는다) 「오색(五色) 영롱한 곳이여 명암(明暗)이 갈리기
전(前)이로다」.

 
<原文> 了了了時無可了 
‘알았다’, ‘알았다’고 할 땐 알았다고 할 수 없고

[批] 可愧傍人 
[비] 옆 사람 보기가 부끄럽다.
[註] 佛法本無可了之事 了知佛法 則實無可了 有可了 則非了也 學者以無得爲得 始得
[주] 불법(佛法)은 본래 알 수 없는 일이다. 불법을 모두 알았다고 한다면 실로 알았다고 할 수 없고,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안 것이 아니다. 배우는 사람은 얻음이 없는 것으로써 얻음을 삼아야 얻음이 있게 된다.
 
<原文> 玄玄玄處亦須呵 
‘현묘(玄妙)하다’, ‘현묘하다’고 한 곳 또한 웃음거리일 뿐.

[批] 無處不玄 
[비] 현묘하지 않은 곳은 없다.
[註] 不到玄處 望之若天涯 及到玄處 仍非妙境 萬境一如 諸法皆空 能所雙忘 根塵無碍 回頭一望 可笑前功
[주] 현묘한 곳에 이르지 못하면 그것[玄處]을 하늘 끝[天涯]처럼 바라 본다. 현묘한 곳에 이르렀다 한다면, 그것은 오묘한 경지가 아니다. 모든 경계가 한결같고 모든 법이 다 공(空)이다. 함(능동)과 됨(피동) 모두 없어지고 6근(六根 : 眼·耳·鼻․舌·身·意)과 5진(五塵 : 色·愛·相·行·識)에 거리낌이 없다. 머리 돌려 한 번 바라보니 지난 공부가 우습다.
 
<原文> 慇懃爲唱玄中曲 
그대 위해 남몰래 현중곡(玄中曲) 부르노니

[批] 三世佛祖 一時耳聾 
[비] 삼세(三世)의 불조(佛祖)마저 귀먹겠구나.
[註] 無玄玄處 有何玄曲 唱之非易 聽之亦難
[주] 현묘하고 현묘한 곳이 없는데 어찌 현중곡(玄中曲)이 있겠는가. 부르기도 쉽지 않고 듣기도 어렵다.
 
<原文> 空裡蟾光撮得麽 
허공 속의 저 달빛 움켜잡을 수 있겠느냐?

[批] 千手不到 萬古明月
[비] 천 개의 손이 이르지 못하니 만고(萬古)의 명월(明月)이다.
[註] 蟾光者 月光也 空裡月光 無人撮得 有人撮蟾光可得 則解玄中曲矣 如何撮得蟾 打拄杖 三下云月光不能熙人明 閒得呼兒拾螢來
[주] 섬광(蟾光)이란 달빛이다. 허공 속의 달빛은 아무도 움켜 잡을 수 없다. 달빛을 움켜잡을 수 있는 사람은 곧 현중곡(玄中曲)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달빛을 움켜잡을 수 있겠는가?
(주장자로 세 번 치고 읊는다) 「달빛이 세상 사람을 밝혀줄 수 없어 한가로이 아이 불러 개똥벌레 모아오게 하네」.

乙丑 六月 七日 畢

을축년(1925년) 6월 7일 마침

 

 

10/22(월) 조계사를 찾다.

부처님오신날은 연꽃으로 하늘을 덮던 조계사 뜨락은 국화 향기로 가득찼다.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대중공양이다. 외국관광객들까지 불러들이니 국격까지 높이는 셈이었다. 국화전을 기획한 조계사 관게자불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다양한 형태의 국화 배치에서도 한국인의 뛰어난 재주를 한껏 발휘했다.

우선 동영상과 사진을 통해 위의 찬사가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참에 김용임 노래 배경으로 나오는 동영상으로나마 내장산 단풍관광도 해 보지요.

 

 

조계사 국화전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5wwnYkXUe10

https://www.youtube.com/watch?v=V3x_QcCyLMY

[가요] 내장산 - 김용임 (2012)

https://www.youtube.com/watch?v=P28Yy-gRwfg 

 

 

<부모은중경>의 내용과 해석


<부모은중경>

제 1장 이 경을 설한 인연

제 2장 마른뼈의 가르침

제 3장 잉태했을 때의 고통

제 4장 낳으시고 기르신 은혜 / 열가지 부모의 은혜

제 5장 부모님 은혜를 잊어버리는 불효

제 6장 부모님 은혜갚기의 어려움

제 7장 불효에 대한 과보

제 8장 부모님 은혜를 갚는 길

제 9장 부처님께 맹세

제 10장 이 경의 명칭

이렇게 10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글 불설 대보 부모은중경

https://blog.naver.com/jwb6894/40114043827

한글 불설 대보 부모은중경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 대비구 3만 8천 인과 보살마하살들과 함께 사위국 왕사성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많은 대중을 거느리시고 남쪽으로 가시다가, 한 무더기의 뼈가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여래께서는 몸을 땅에 대고 그 뼈에 예배하셨다. 아난과 대중은 깜짝 놀라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삼계를 통틀어 으뜸가는 스승이시며, 온 중생의 자비하신 어버이시라 만 중생이 귀의하고 예배 드리는 여래이신데, 어찌 저 마른 뼈에다 예배를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되,

 「그대는 비록 나의 상수제자로서 출가한지도 오래 되었거늘 아직 널리 알지를 못하는구나. 이 한 무더기의 마른 뼈가, 혹 전생에 나의 조상이었거나 여러 대에 걸쳐 나의 부모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지금 예배를 한 것이니라.」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아난에게 이르셨다.

 「그대는 이 한 무더기의 뼈를 두 가지로 구분하여라. 만약 남자의 뼈라면 희고 무거울 것이며, 혹시 여자의 뼈라면 검고 가벼울 것이다.」

 아난이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남자는 이 세상에 있을 때, 도포에 띠를 두르고 목화를 신고 사모를 쓰기 때문에 그 복장을 보고 남자임을 알고, 여자들은 붉은 연지를 바르고 고운 옷을 입고 있어 곧 여자임을 알지만, 죽고 난 지금은 그 뼈가 다 한 가지인데 어찌 구분이 되겠습니까? 이 제자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아난아, 남자들은 세상에 있을 때, 때로는 절을 찾아가 강의도 듣고 삼보에 예배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 뼈가 희고 무겁다. 그러나 여자는 세상에 있을 때 정을 통하고 아들 딸을 낳아 기르매, 자식 하나를 낳을 때마다 진한 피 서 말 서 되를 흘리고, 여덟 말 너 되의 젖을 먹여야 하기 때문에 그 뼈가 검고 가벼우니라.」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아난은 마음이 찢어지듯 하여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 해야 어머님의 은덕을 갚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잘 듣고 또 잘 들어라. 내 이제 그대를 위해 차근차근 설해 주리라.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있는 열 달 동안의 쓰린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

 ①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첫째 달은, 마치 아침에 맺혔다 저녁까지도 보전치 못하며, 새벽에 모였다 낮만 되면 쓰러지는 풀잎 위의 이슬과 같으니라.

 ②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둘째 달은, 마치 우유 방울을 떨어뜨린 것 같고,

 ③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석달이 되면, 마치 피가 엉긴 듯하고,

 ④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넉달이 되면, 차츰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며,

 ⑤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다섯 달째는, 뱃속에서 다섯 부분의 모양이 생기느니라. 다섯 부분이란, 머리가 한 부분이고, 양 팔을 합하여 세 부분, 양 무릎을 합해 다섯 부분이니라.

 ⑥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여섯 달째는 어머니 뱃속에서 어린 아기의 여섯 정기가 생기느니라. 여섯 정기란 첫재 눈이고, 둘째 귀, 셋째 코, 넷째 입, 다섯째 혀, 여섯째 뜻이니라.

 ⑦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일곱 달째는, 어머니 뱃속에서 3백 60마디의 뼈와 8만 4천의 털구멍이 생기고,

 ⑧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여덟 달째는, 아기의 의지와 지혜가 생기고 아홉 부분의 모습이 뚜렷해 지며,

 ⑨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아홉 달째는,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받아 먹게 되느니라. 그러나 복숭아, 배, 마늘은 받지 않으며 오곡만을 받느니라. 어머니의 생장은 밑으로 향하고 숙장은 위를 향하여 한 산이 생기니, 이 산에는 세 가지 이름이 있느니라. 첫째는 수미산이요, 둘째는 업산, 셋째는 혈산이니라. 이 산이 한 번 무너지면 한 줄기 짙은 피가 되어 어린 아이의 입으로 들어 가느니라.

 ⑩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열 달째는, 마침내 낳게 되느니라. 만약 효성스럽고 착한 아이는 주먹으로 합장하고 나오니 어머니를 상하게 하지 않으나, 만약 오역죄를 지을 자식이면 어머니 태를 쳐서 찢고, 팔로는 어머니의 심장이며 간장을 치고, 엉덩이뼈를 발로 버티어 마치 천 개의 칼로 배를 휘젓고 만 개의 칼로 속을 찌르는 듯한 아픔과 고통을 주고 태어나느니라.

 이 외에도 또 열 가지의 은혜가 있느니라.

 

첫째, 아기를 배고 지켜주신 은혜이니,

오랜 겁 동안의 막중한 인연으로

오늘날 어머니의 태를 빌어

달이 차서 오장이 생겨나고

일곱 달에 육정이 열리니

어머니 몸은 태산처럼 무거워

바람만 불어도 조심되고

비단옷은 두고도 안 걸치시고

경대에는 먼지만 쌓이네.

 

둘째, 해산할 때 고통 받으시며 낳아주신 은혜이니,

아기를 배고 열 달이 지나서

어려운 해산 달이 하루 하루 다가오니

아침마다 중병 걸린 사람 같고

나날이 정신마저 흐려지듯

그 어려움은 글로 적기 어려워라.

근심과 슬픔이 가슴에 가득하여

친족에게 슬픔을 호소하고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시네.

 

셋째, 자식을 낳고 모든 근심을 잊으신 은혜이니,

인자하신 어머니가 그대 낳던 날

오장육부를 쪼개고 헤치는 듯

몸과 마음이 모두 끊기는 듯하고

마치 양을 잡은 자리처럼 피 흘렸어도

아기가 건실하단 말 들으면

그 기쁨이 더하고 또 더하네.

그러나 기쁨 뒤엔 다시 슬픔이 일어나니

그 고통이 몸과 마음에 사무치네.

 

넷째,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먹여 주신 은혜이니,

부모의 은혜가 깊고 무거워

사랑과 보살핌 잠시도 잊지 않고

단 것은 먹이시느라 잡숫지 못하고

쓴 것은 잡수시되 찡그리지 않으시네.

지중하신 애정 누를 길 없어

그 은혜 깊은 만큼 슬픔도 더하시네.

언제나 자식들만 배부르면

인자하신 어머니는 굶주림도 사양 않네.

 

다섯째, 마른 자리 골라 아기 눕히고 젖은 자리에 누우신 은혜이니,

어머니가 온통 몸이 젖어도

아기만은 한사코 마른 자리에 눕히시고

두 젖으로 아기의 주린 배를 채워 주시고

옷 소매로 추위를 막아 주시고

아기 걱정에 단잠을 설치시고

아기의 재롱으로 기쁨을 삼으시니

오직 아기의 편안만을 생각하시고

인자하신 어머니는 편안함을 바라지 않으시네.

 

여섯째, 젖을 먹여 길러주신 은혜이니,

인자하신 어머니의 은혜가 땅이라면

엄하신 아버지는 하늘이시네.

덮어주고 안아주신 어머니 은혜,

아버지의 은혜도 그와 같아서

눈이 비록 없어도 미워하지 않으시고

수족이 불구라도 싫어하지 않으시네.

내 속으로 친히 낳은 자식이기에

종일토록 아끼시고 가엾이 여기시네.

 

일곱째, 더러운 것을 깨끗이 빨아 주신 은혜이니,

아, 예전에 그리도 고우시던 그 얼굴

풍만하고 아릿답던 그 자태

푸르른 버들잎 같던 두 눈썹

양 볼은 붉은 연꽃잎 같으시더니

은혜가 깊을수록 그 모습 쓰러지고

부정한 것 빠시느라 상하시어도

오로지 자식 걱정하시느라

인자하신 어머니의 얼굴이 바뀌셨네.

 

여덟째, 멀리 떠난 자식을 걱정해 주시 은혜이니,

죽어서 헤어짐도 잊기 어렵거늘

생이별은 더욱 더 마음 아픈 것.

자식이 집 떠나 타향에 가면

어머니의 마음도 타향에 있네.

낮이나 밤이나 마음은 자식 쫓아

흐르는 눈물 몇 천 줄긴가?

새끼를 사랑하는 원숭이처럼

자식 생각에 애간장이 끊어지시네.

 

아홉째, 자식을 위해서는 나쁜 일도 하신 은혜이니,

강산 같이 중하신 부모님 은혜

그 은혜 깊고 깊어 갚기 어려워.

자식의 괴로움을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이 고생하면 어머니 마음도 편치 않네.

먼 길 떠난다는 말만 들어도

가는 길 잠자리는 춥지 않을까.

아들 딸의 고생은 잠깐이지만

어머님의 마음은 두고 두고 쓰려라.

 

열째, 끝까지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는 은혜이니,

부모님 은혜는 깊고도 무거워라.

사랑하는 그 마음 마르지 않아

앉으나 서나 마음엔 자식 생각 뿐.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자식 생각 떠나지 않네.

어머니의 나이 백 살이 되어도

여든 된 자식을 걱정하시네.

이같은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 끝나랴.

명이 다하시면 그제서야 그칠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내가 보건데, 중생들은 비록 인품은 이어받았으나 마음과 행실이 우매하여 부모에게 큰 은덕이 있음을 생각지 않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 불효하며 의리가 없더라.

 어머니가 아기를 배고 있는 열 달 동안은, 앉고 서는 것이 불안하고 마치 무거운 짐을 진 것 같고, 음식은 내리지 않아 마치 중병을 앓는 사람 같고, 달이 차서 아기를 낳을 때는 온갖 고통을 받으며, 자칫 잘못 되면 죽을까 두려우며, 마치 양을 잡는 것 처럼 바닥에 피가 흐른다.

 이처럼 고통을 받으며 이 몸을 낳은 뒤에는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아서 먹이고, 품에 안아서 기르시며 더러운 것을 빨아 주시면서도 싫어하거나 수고를 마다 않고, 더위도 참고 추위도 견디며 고생으로 생각지 않으신다.

 자식은 마른 자리에 눕히고 어머니는 축축한 데서 자며 3년 동안이나 어머니의 젖을 먹이며, 자라서 동자가 되고 청년이 되면 예절과 도의를 가르쳐 혼인시키고 벼슬을 시키거나 직업을 갖게 해 주신다.

 이처럼 무거운 짐을 지는 것 같은 수고를 하고 나서도 부모의 사랑은 그치지 않고 아들 딸이 병에 걸리면 부모도 같이 앓고, 자식의 병이 나으면 인자한 어머니의 병도 낳으신다.

 이와같이 기르고 보살피며 어서 어른이 되기만을 바라신다.

 마침내 자식이 다 자라면 오히려 불효를 하고 부모와 더불어 말을 하는데도 그 언행이 공손하지 못하고, 눈을 부라리고 눈을 흘기며, 부모와 형제들을 속이고 능멸하며, 형제 간에 욕하고 때리며, 친척들을 헐뜯는 등 예절과 체모가 없다.

 또 스승의 가르침도 따르지 않으며, 형제 간에 한 말도 이를 어긴다.

 어디를 가거나 돌아와서도 어른께 아뢰지 않고, 언행이 교만해지고, 제 마음대로 일을 처리한다.

 이런 일은 부모로서 훈계하고, 백부나 숙부들도 이를 타일러야지, 귀엽게만 보고 어른들이 감싸 주면 차차 자라면서 사나워지고 삐뚤어져서 잘못을 일러 주면 오히려 성을 내고 원한을 품게 된다.

 또 좋은 벗은 버리고 악한 친구들과 어울려, 이런 습성이 몸에 배서 마침내는 관기 어린 계교를 꾸미고, 남의 꾀임에 바져 타향으로 도망치거나 부모를 배반하여 집을 떠나 고향을 등지거나, 혹은 장삿꾼이 되거나 병졸이 되어 싸움터에 나가는 등 떠돌다 장가라도 들면 거기에 얽매어서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

 혹은 타향에서 지내는 동안 근신하지 않고 함부로 굴다가 남의 꾀임에 빠져 사건에 관련되어 관가에 잡히어 끌려 다니거나 억울한 형벌을 받고 감옥에서 목에 칼을 쓰고 발목에 사슬을 차기도 한다.

 혹은 병에 걸려 고통 받고, 재난을 당해 곤하고 괴롭고 굶주려도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고생하다가 마침내 남의 미움과 천대를 받고 의지할 데도 없이 길거리로 쫓겨나서 죽게 되어도, 누구 한 사람 구원해 주지도 않으니 이윽고 죽은 뒤에는 시체가 붓고 썩고 햇볕에 쬐고 바람을 맞아 타향 땅에서 백골이 이리 저리 굴러 다니게 되니, 일가 친척과 만나고 즐긴다는 것은 영영 이루지 못하게 된다.

 부모의 마음은 늘 자식을 따르고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으니, 혹은 피눈물을 흘리며 울어 눈이 어두워지고 심하면 장님이 되기도 하고, 혹은 너무 서러워 기진하여 병이 나기도 한다. 혹은 자식 생각에 몸이 쇠약해져서 죽기도 하며, 외로운 혼이 되어서도 끝내 자식 생각을 잊지 못한다.

 또 듣자니 자식이 효도와 의리를 숭상하지 않고, 나쁜 무리와 어울려 건달패가 되어 해로운 일만 즐겨서 하고, 다툼질이나 도둑질로 마을의 풍속을 어지럽히고, 술과 노름을 일삼고 많은 잘못을 저질러 형제들에게 누를 끼치고 부모를 괴롭히고 행패를 부리며 새벽에 집을 나가면 밤 늦게 돌아와서 부모의 근심을 더해주고, 부모가 어찌 지내며 추운지 더운지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조석 초하루 보름이 되어도 문안 드리지 않으며, 부모를 편히 모실 생각은 아얘 하지도 않으며, 부모가 늙고 쇠약해지면 남이 보기 부끄럽다고 화를 내고 구박을 한다.

 또한,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홀로 되어 쓸쓸히 지내게 되면, 마치 잠시 머물고 있는 손님처럼 대하고 기거하는 방에 먼지나 흙이 쌓여도 청소하지 않으며, 부모님이 기거하는 곳에 들려 문안하거나 보살피는 일이 없고, 춥거나 덥거나 굶주리거나 목이 마르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일체 단절하고 사니, 부모는 낮이고 밤이고 늘 탄식하고 슬퍼하며 지내신다.

 혹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마땅히 부모에게 먼저 드려야 하거늘 그러지는 않고, 겉으로는 부끄러운 채하고 남이 흉을 본다면서도 제 아내나 자식에게만 갖다 주는 등, 이런 짓은 추하고 힘들고 또 부끄러워도 개의치 않는다.

 또 아내나 첩과의 언약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다 지키면서 어른의 말과 꾸지람은 전혀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혹 딸자식인 경우, 시집 가기 전에는 모름지기 효순하다가도 일단 남의 아내가 되어 출가하면 차츰 불효하게 된다. 부모가 조금만 꾸짖거나 나무라면 곧 노여워하고 원망하면서도, 남편이 꾸짖고 심한 말을 하면 참고 달게 받는다. 그 뿐 아니라, 성이 다른 시집 친족들에게는 정을 베풀고 극진하면서도 친정 혈육들은 오히려 멀리한다. 혹 남편 따라 멀리 타향에 가게 되면, 늙은 부모와 이별하고도 그리워하거나 사모하지 않으며 소식마저 끊어져, 부모들은 창자가 끊어지고 거꾸로 매달리는 것 같은 고통을 받으면서 늘 보고 싶어 하기를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잠시도 잊지 못한다.

 부모의 은공은 한량없고 가이없어 불효하는 허물을 졸지에 이루 다 말하기 어렵다.」

 

 이 때 대중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부모의 은덕을 듣고, 몸을 일으켜 땅에 엎드려 스스로 부딪치니 몸의 털구멍마다 피가 흐르고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가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리고 큰 소리로 외쳐댔다.

 「괴롭고 괴롭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도 아픕니다. 저희들이 큰 죄인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두운 밤에 헤매는 것 같더니 이제야 저희 잘못을 알고 마음과 간장이 모두 부서지는 것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구원해 주십시오. 어찌해야 부모님의 깊고 무거운 은혜에 보답하겠습니까?」

 이 때 여래께서는, 여덟 가지 깊고도 무거운 미묘한 목소리로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잘 듣거라. 내 이제 그대들을 위해 알아듣기 쉽게 설해 주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살갗이 닳아서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가 드러나도록 수미산을 백 천 번 돌아도 부모의 깊은 은혜를 다 갚지 못하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흉년을 만나 부모를 위해 자신의 몸을 티끌처럼 잘게 다져서 공양하기를 몇 천 겁 동안 한다 해도 깊은 부모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하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자신의 눈동자를 예리한 칼로 도려내서 부모님을 위해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백 천 겁 동안을 한다 해도 깊은 부모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하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부모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백천 자루의 칼로 찔러 좌우로 쑤시기를 백천겁 동안을 거듭한다 해도 깊은 부모의 은혜는 다 갚지 못하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부모를 위해 자기 몸에 불을 붙여 등을 삼아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백천겁을 하더라도 깊은 부모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하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부모를 위해 뼈를 부수고 골수를 빼 내고, 백 천의 창으로 한꺼번에 몸을 찌르기를 백 천 겁을 거듭한다 해도 깊은 부모의 은혜는 다 갚지 못하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부모를 위해 뜨거운 무쇠 덩어리를 삼켜 온몸이 타고 지져지도록 하기를 백 천겁 동안을 거듭한다 해도 깊은 부모의 은혜는 다 갚지 못하리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대중들은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제야 저희들이 참으로 큰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어찌 해야 깊고 깊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그대들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거든, 부모님을 위해 이 경을 쓰고, 부모님을 위해 이 경을 독송하고,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죄와 잘못을 뉘우치고, 부모님을 위해 삼보에 공양하고, 부모님을 위해 재계를 지켜 받들고, 부모님을 위해 보시를 해서 복을 지어라.

 이렇게 하면 곧 효도하고 순종하는 자식이라 일컬을 것이며, 이런 행을 지키지 못하면 지옥에나 갈 자식이니라.」

 하셨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불효한 자식은 명이 다해 죽게 되면, 아비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이 대지옥은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각각 8만 유순이며, 사면에 철로 된 성이 있어 쇠 그물이 쳐져 있고, 그 땅엔 붉은 쇠가 깔려 있고, 불길이 활활 타 올라 마치 용광로와 같고, 불길은 우뢰처럼 번지고 번쩍이느니라.

 또 뜨거운 구리 물과 철물을 죄인의 입에 붓고, 무쇠로 된 뱀과 구리로 된 개가 연기와 불길을 뿜어 죄인들을 볶고 지져 몸의 기름이 타고 끓어 그 고통은 참고 견디기가 어려우니라.

 또 쇠 채찍과 쇠 꼬챙이와 쇠 망치, 쇠 창살, 칼 등이 바람개비처럼 돌고, 마치 구름과 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찌르고 베고 하느니라.

 죄인들이 이처럼 벌 받기를 몇 겁을 해도 쉬지 않고 끊이지 않으며, 또 다른 지옥에 들어가서 머리에 불 화로를 이고 다니기도 하고, 몸이 무쇠 수레에 찢기기도 하고, 또 창자며 뼈와 살이 이리 저리 불에 타기를 하루에도 천 번 만 번 거듭하느니라.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은 바로 전생의 오역죄와 불효를 저지른 죄 때문이니라.」

 대중들은 부모의 은덕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희가 어찌해야 깊고 깊은 부모의 은덕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이르셨다.

 「그대들이 부모의 은덕에 보답코자 하거든, 부모를 위해 경전을 거듭 펴내라. 이것이 진정으로 부모의 은혜를 갚는 길이니라. 한 권의 경전을 펴면 한 부처님을 뵙고, 1백 권의 경전을 펴내면 1백 분의 부처님을 뵙고, 1천 권의 경전을 펴면 1천 분의 부처님을 뵙고, 1만 권의 경전을 펴면 1만 분의 부처님을 만나 뵙게 되리라.

 이 사람은 경을 펴낸 공덕으로 여러 부처님께서 오시어 늘 옹호해 주실 뿐 아니라, 그의 부모는 천상에 태어나 온갖 즐거움을 누리며 영원히 지옥의 고통을 여의게 되리라.」

 이 때 대중과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과 사람 아닌 것과 그리고 천, 용, 야차, 건달바, 여러 나라의 왕 및 전륜성왕 등 모두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각기 원을 세우고 아뢰었다.

 「저희는 이 세상이 다하도록, 이 몸을 티끌처럼 잘게 부수어 가루로 내는 일을 백천겁 동안 거듭할지언정 맹세코 여래의 거룩하신 가르치심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또 백천겁 동안 혀를 끊어내어 그 길이가 백 유순이 되도록 늘리고, 쇠로 만든 쟁기로 이 혀를 갈아 피가 강처럼 흐르더라도, 맹세코 여래의 거룩하신 가르치심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또 백 천의 칼날이 이 몸을 좌우로 찌르고 관통하더라도 맹세코 여래의 거룩하신 가르치심은 어기지 않겠습니다.

 이 몸을 백 천 겁 동안 철망에 가두고 묶어 두더라도, 맹세코 여래의 거룩하신 가르치심을 어기지는 않겠습니다.

 또 백 천 겁 동안 이 몸을 작두와 방아로 자르고 부수어 백 천 만 조각을 내서 살갗과 살덩이와 힘줄 뼈가 모두 흩어지더라도 맹세코 여래의 거룩하신 가르치심을 어기지는 않겠습니다.」

 이 때 아난이,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오며, 또 저희가 어찌 받들고 받아 지녀야 하겠습니까?」

 하고 부처님게 여쭙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었다.

 「이 경은 이름하여 `대보부모은중경'이라 하니, 그대들은 마땅히 이 이름으로 받들고 받아 지녀라.」

 그러자 모든 대중과 천, 인, 아수라 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고 믿고 받아 지녀 행하기로 하고 예를 드리고 물러났다.

 

佛說父母恩重難報經
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https://blog.naver.com/jwb6894/40114043393



如是我聞,一時佛在舍衛國祗樹孤獨園,與大比丘二千五百人,菩薩摩訶薩三萬八千人俱
爾時,世尊引領大衆,直往南行,忽見路邊聚骨一堆
爾時,如來向彼枯骨,五體投地,恭敬禮拜
阿難合掌白言:『世尊!如來是三界大師,四生慈父,衆人歸敬,以何因緣,禮拜枯骨?』
佛告阿難:『汝等雖是吾上首弟子,出家日久,知事未廣. 此一堆枯骨,或是我前世祖先,多生父母. 以是因緣,我今

禮拜』
佛告阿難:『汝今將此一堆枯骨分做二分,若是男骨,色白且重;若是女骨,色黑且輕』
阿難白言:『世尊,男人在世,衫帶鞋帽,裝束嚴好,一望知爲男子之身. 女人在世,多塗脂粉,或薰蘭麝,如是裝飾

,卽得知是女流之身. 而今死後,白骨一般,敎弟子等,如何認得』
佛告阿難:『若是男子,在世之時,入於伽藍,聽講經律,禮拜三寶,念佛名號;所以其骨,色白且重. 世間女人,短

於智力,易溺於情,生男育女,認爲天職;每生一孩,賴乳養命,乳由血變,每孩飮母八斛四斗甚多白乳,所以憔悴,

骨現黑色,其量亦輕』
阿難聞語,痛割於心,垂淚悲泣,白言:『世尊!母之恩德,云何報答?』
佛告阿難:『汝今諦聽,我當爲汝,分別解說:
母胎懷子,凡經十月,甚爲辛苦
在母胎時,第一月中,如草上珠,朝不保暮,晨聚將來,午消散去
母懷胎時,第二月中,恰如凝酥
母懷胎時,第三月中,猶如凝血
母懷胎時,第四月中,稍作人形
母懷胎時,第五月中,兒在母腹,生有五胞. 何者爲五?頭爲一胞,兩肘兩膝,各爲一胞,共成五胞.
母懷胎時,第六月中,兒在母腹,六精齊開,何者爲六?眼爲一精,耳爲二精,鼻爲三精,口爲四精,舌爲五精,意爲

六精
母懷胎時,第七月中,兒在母腹,生成骨節,三百六十,及生毛乳,八萬四千.
母懷胎時,第八月中,生出意智,以及九竅.
母懷胎時,第九月中,兒在母腹,吸收食物,所出各質,桃梨蒜果,五穀精華.
其母身中,生臟向下,熟臟向上,喩如地面,有山聳出,山有三名,一號須彌,二號業山,三號血山. 此設喩山,一度

崩來,化爲一條,母血凝成胎兒食料.
母懷胎時,第十月中,孩兒全體一一完成,方乃降生.
若是決爲孝順之子,擎拳合掌,安詳出生,不損傷母,母無所苦.
倘兒決爲五逆之子,破損母胎,차(찢을. 手변+그칠 止)母心肝,踏母跨骨,如千刀攪,又彷彿似萬刃攢心.
如斯重苦,出生此兒,更分晰言,尙有十恩:
第一. 懷胎守護恩;
第二. 臨産受苦恩;
第三. 生子忘憂恩;
第四. 咽苦吐甘恩;
第五. 迴乾就濕恩;
第六. 哺乳養育恩;
第七. 洗濯不淨恩;
第八. 遠行憶念恩;
第九. 深加體恤恩;
第十. 究竟憐愍恩

第一.懷胎守護恩 頌曰
累劫因緣重,今來托母胎,月逾生五臟,七七六精開
體重如山岳,動止劫風災,羅衣都不掛,裝鏡惹塵埃
第二.臨産受苦恩 頌曰
懷經十個月,難産將欲臨,朝朝如重病,日日似昏沈
難將惶怖述,愁淚滿胸襟,含悲告親族,惟懼死來侵
第三.生子忘憂恩 頌曰
慈母生兒日,五臟總張開,身心俱悶絶,血流似屠羊
生已聞兒健,歡喜倍加常,喜定悲還至,痛苦徹心腸
第四.咽苦吐甘恩 頌曰
父母恩深重,顧憐沒失時,吐甘無稍息,咽苦不顰眉
愛重情難忍,恩深復倍悲,但令孩兒飽,慈母不辭饑
第五.迴乾就濕恩 頌曰
母願身投濕,將兒移就乾,兩乳充饑渴,羅袖掩風寒
恩連恆廢枕,寵弄纔能歡,但令孩兒穩,慈母不求安
第六.哺乳養育恩 頌曰
慈母像大地,嚴父配於天,覆載恩同等,父娘恩亦然
不憎無怒目,不嫌手足攣,誕腹親生子,終日惜兼憐
第七.洗滌不淨恩 頌曰
本是芙蓉質,精神健且豊,眉分新柳碧,검(뺨.肉부14획)色奪蓮紅
恩深摧玉貌,洗濯損盤龍,只爲憐男女,慈母改顔容
第八.遠行憶念恩 頌曰
死別誠難忍,生離實亦傷,子出關山外,母憶在他鄕
日夜心相隨,流淚數千行,如猿泣愛子,寸寸斷肝腸
第九.深加體恤恩 頌曰
父母恩情重,恩深報實難,子苦願代受,兒勞母不安
聞道遠行去,憐兒夜臥寒,男女暫辛苦,長使母心酸
第十.究竟憐愍恩 頌曰
父母恩深重,恩憐無歇時,起坐心相逐,近遙意與隨
母年一百歲,長憂八十兒,欲知恩愛斷,命盡始分離』

佛告阿難:『我觀衆生,雖紹人品,心行愚蒙,不思爹娘,有大恩德,不生恭敬,忘恩背義,無有仁慈,不孝不順
阿娘懷子,十月之中,起坐不安,如擎重擔,飮食不下,如長病人. 月滿生時,受諸痛苦,須臾産出,恐已無常,如殺

豬羊,血流遍地. 受如是苦,生得兒身,咽苦吐甘,抱持養育,洗濯不淨,不憚劬勞,忍寒忍熱,不辭辛苦,乾處兒臥

,濕處母眠. 三年之中,飮母白血,嬰孩童子,乃至成年,敎導禮義,婚嫁營謀,備求資業,携荷艱辛,懃苦百倍,不

言恩惠. 男女有病,父母驚憂,憂極生病,視同常事.
子若病除,母病方愈.
如斯養育,願早成人.
及其長成,反爲不孝.
尊親與言,不知順從,應對無禮,惡眼相視.
欺凌伯叔,打罵兄弟,毁辱親情,無有禮義.
雖曾從學,不遵範訓,父母敎令,多不依從,兄弟共言,每相違戾.
出入來往,不啓尊堂,言行高傲,擅意爲事.
父母訓罰,伯叔語非,童幼憐愍,尊人遮護,漸漸成長,한(개싸우는소리. 犬부-6획)戾不調,
不伏虧違,反生瞋恨.
棄諸親友,朋附惡人,習久成性,認非爲是.
或被人誘,逃往他鄕,違背爹娘,離家別眷.
或因經紀,或爲政行,荏苒因循,便爲婚娶,由斯留礙,久不還家.
或在他鄕,不能謹愼,被人謀害,橫事鉤牽,枉被刑責,牢獄枷鎖.
或遭病患,厄難縈纏,囚苦饑羸,無人看待,被人嫌賤,委棄街衢.
因此命終,無人救治,膨脹爛壞,日暴風吹,白骨飄零.
寄他鄕土,便與親族,歡會長乖,違背慈恩,不知二老,永懷憂念,
或因啼泣,眼暗目盲;或因悲哀,氣咽成病;或緣憶子,衰變死亡,
作鬼抱魂,不曾割捨.
或復聞子,不崇學業,朋逐異端,無賴粗頑,好習無益,鬪打竊盜,
觸犯鄕閭,飮酒樗蒲,姦非過失,帶累兄弟,惱亂爹娘,晨去暮還,
不問尊親,動止寒溫,晦朔朝暮,永乖扶侍,安床薦枕,並不知聞,
參問起居,從此間斷,父母年邁,形貌衰羸,羞恥見人,忍受欺抑.
或有父孤母寡,獨守空堂,猶若客人,寄居他舍,寒凍飢渴,曾不知聞.
晝夜常啼,自嗟自歎,應奉甘旨,供養尊親.
若輩妄人,了無是事,每作羞慚,畏人怪笑.
或持財食,供養妻兒,忘厥疲勞,無避羞恥;妻妾約束,每事依從,
尊長瞋呵,全無畏懼.
或復是女,適配他人,未嫁之時,咸皆孝順;婚嫁已訖,不孝遂增.
父母微瞋,卽生怨恨;夫婿打罵,忍受甘心,異姓他宗,情深眷重,
自家骨肉,卻以爲疏.
或隨夫婿,外郡他鄕,離別爹娘,無心戀慕,斷絶消息,音信不通,
遂使爹娘,懸腸掛肚,刻不能安,宛若倒懸,每思見面,如渴思漿,
慈念後人,無有休息.
父母恩德,無量無邊,不孝之愆,卒難陳報』
爾時,大衆聞佛所說父母重恩,擧身投地,搥胸自撲,身毛孔中,悉
皆流血,悶絶벽(앉은뱅이.足부-13획)地,良久乃蘇,高聲唱言:『苦哉,苦哉!痛哉,痛哉!
我等今者深是罪人,從來未覺,冥若夜游,今悟知非,心膽俱碎,惟願世
尊哀愍救援,云何報得父母深恩?』
爾時,如來卽以八種深重梵音,告諸大衆:『汝等當知,我今爲汝分
別解說:
假使有人,左肩擔父,右肩擔母,硏皮至骨,穿骨至髓,遶須彌山,
經百千劫,血流決踝,猶不能報父母深恩;
假使有人,遭饑饉劫,爲於爹娘,盡其己身,臠割碎壞,猶如微塵,
經百千劫,猶不能報父母深恩;
假使有人,爲於爹娘,手執利刀,완(깎을.刀부-8획)其眼睛,獻於如來,經百千劫,
猶不能報父母深恩;
假使有人,爲於爹娘,亦以利刀,割其心肝,血流遍地,不辭痛苦,
經百千劫,猶不能報父母深恩;
假使有人,爲於爹娘,百千刀戟,一時刺身,於自身中,左右出入,
經百千劫,猶不能報父母深恩;
假使有人,爲於爹娘,打骨出髓,經百千劫,猶不能報父母深恩;
假使有人,爲於爹娘,呑熱鐵丸,經百千劫,遍身焦爛,猶不能報父
母深恩.』
爾時,大衆聞佛所說父母恩德,垂淚悲泣,痛割於心,諦思無計,同
發聲言,深生慚愧,共白佛言:『世尊!我等今者深是罪人,云何報得父
母深恩?』
佛告弟子:『欲得報恩,爲於父母書寫此經,爲於父母讀誦此經,爲
於父母懺悔罪愆,,爲於父母供養三寶,爲於父母受持齋戒,爲於父母布
施修福,若能如是,則得名爲孝順之子;不做此行,是地獄人.』
佛告阿難:『不孝之人,身壞命終,墮於阿鼻無間地獄. 此大地獄,
縱廣八萬由旬,四面鐵城,周圍羅網. 其地亦鐵,盛火洞然,猛烈火燒,
雷奔電爍. 烊銅鐵汁,澆灌罪人,銅狗鐵蛇,恆吐煙火,焚燒煮炙,脂膏
焦燃,苦痛哀哉,難堪難忍,鉤竿槍槊,鐵鏘鐵串,鐵槌鐵戟,劍樹刀輪
,如雨如雲,空中而下,或斬或刺,苦罰罪人,歷劫受殃,無時暫歇,又
令更入餘諸地獄,頭戴火盆,鐵車碾身,縱橫駛過,腸肚分裂,骨肉焦爛
,一日之中,千生萬死. 受如是苦,皆因前身五逆不孝,故獲斯罪.』
爾時,大衆聞佛所說父母恩德,垂淚悲泣,告於如來:『我等今者,
云何報得父母深恩?』
佛告弟子:『欲得報恩,爲於父母造此經典,是眞報得父母恩也. 能
造一卷,得見一佛;能造十卷,得見十佛;能造百卷,得見百佛;能造千
卷,得見千佛;能造萬卷,得見萬佛. 是等善人,造經力故,是諸佛等,
常來慈護,立使其人,生身父母,得生天上,受諸快樂,離地獄苦.』
爾時,阿難及諸大衆 阿修羅 迦樓羅 緊那羅 摩侯羅伽 人 非
人等 天 龍 夜叉 乾闥婆 及諸小王,轉輪聖王,是諸大衆聞佛所言
,身毛皆豎,悲泣哽咽,不能自裁,各發願言:我等從今盡未來際,寧碎
此身猶如微塵,經百千劫,誓不違於如來聖敎;寧以鐵鉤拔出其舌,長有
由旬,鐵犁耕之,血流成河,經百千劫,誓不違於如來聖敎;寧以百千刀
輪,於自身中,自由出入,誓不違於如來聖敎;寧以鐵網周잡(둘레돌.혜부(터진입구)-3획)纏身,經百
千劫,誓不違於如來聖敎;寧以剉碓斬碎其身,百千萬段,皮肉筋骨悉皆
零落,經百千劫,終不違於如來聖敎.』
爾時,阿難從於坐中安詳而起,白佛言:『世尊,此經當何名之?云何奉持?』
佛告阿難:『此經名爲父母恩重難報經,以是名字,汝當奉持!』
爾時,大衆 天人 阿修羅等,聞佛所說,皆大歡喜,信受奉行,作禮而退.



<부모은중경>의 내용과 해석


제 1장 이 경을 설한 인연

제 2장 마른뼈의 가르침

제 3장 잉태했을 때의 고통

제 4장 낳으시고 기르신 은혜 / 열가지 부모의 은혜

제 5장 부모님 은혜를 잊어버리는 불효

제 6장 부모님 은혜갚기의 어려움

제 7장 불효에 대한 과보

제 8장 부모님 은혜를 갚는 길

제 9장 부처님께 맹세

제 10장 이 경의 명칭

이렇게 10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문본 불경 낭송은 그 뜻을 헤아리기 힘들지만 영인스님의 국역 불경 낭송은 책읽는 부담감도 없는데다 노래를 방불케 하는 그 낭랑한 음성에 빠져들어 마자막 부분까지 흥미진진하게 부처님 설법을 듣게 됩니다.

유교에서도 부모에게 효순하라고 가르칩니다만, 어머니의 은혜를 부처님이 아난에게 설명하신 것과 같이 자세하고 구체적인 표현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떻게 어머니의 잉태와 출산의 그 고통과 사랑을 아셨을까요? 그래서 부처님이시겠지만.

 

팔만대장 부처님께 비나이다 - 박종순/ 시조창 사설시조

https://www.youtube.com/watch?v=oGi4_qb2bJA

 

김용옥 - 산스크리트어 인도 침략자인 아리안족의 언어

고타마싯달타>석가모니/ 아쇼카왕 - 석가모니의 역사적 유적지에 석주 세움 

https://www.youtube.com/watch?v=86EutT1YRCY

 

김용옥 - 싯달타와 예수

https://www.youtube.com/watch?v=2uiYZzn2RLM

 

국역 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難報經:원문.해석문)

https://www.youtube.com/watch?v=-DUGoeayQdg

독송과 자막이 일치하지 안는 부분이 있으나 우리말 독송이니 이해에는 지장이 없으리라 봅니다. 아래 [참조]항의 여승의 독송에는 그런 문제가 없으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원제에서 생략한 難報(난보)는 보답하기 어렵다는 말이지만 그 실상은 갚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로 전해 들은 것과 그 체험은 판연히 다르니까요. 천양지판이지요.

한눈에 해독이 가능하도록 아래 꼭지에 국역가 원문을 함께 올립니다.

http://kydong77.tistory.com/17968

 

부모은중난보경 현대역/한문본 원문

의 내용과 해석 제 1장 이 경을 설한 인연 제 2장 마른뼈의 가르침 제 3장 잉태했을 때의 고통 제 4장 낳으시고 기르신 은혜 / 열가지 부모의 은혜 제 5장 부모님 은혜를 잊어버리는 불효 제 6장 부

kydong77.tistory.com

 

국역 천수경

https://www.youtube.com/watch?v=gr9hJgEMcxk&t=472s

 

국역 회심곡

https://www.youtube.com/watch?v=34QAUzT6Asw

 

[참조] 부모은중경

  https://www.youtube.com/watch?v=vuS8-WDwntU&t=429s

여승의 독송인데다 배경 사진도 아믐답네요.

 

김용옥 - <부모은중경> 해설

https://www.youtube.com/watch?v=75WxfdNvJf4&t=536s

 

* [참고]

 석가여래의 일생/ 김용옥 - 불교 1-28강  (0) 2018.08.17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17936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도올 김용옥 - 불교강의 1~28강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M79DZYYdoYMNNXqjOq1Mug3m5YsQM5rk

현재 불리워지는 <어버이날 노래>가  양주동박사의 번역대로 <어머님 마음>이므로 어버이날의 노래로는 부적합함을 앞 꼭지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어머님 마음 - 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yI-WxkseBeQ

어버이날에 부르던 이 동요의 가사가

아래 제7강에서 김용옥은  <부모은증경>의 번역임을 밝힙니다.

어머님 은혜

https://www.youtube.com/watch?v=ZoObmrn_EQQ&list=PLReBmp3WR8peIfvEVNWNy_JnwEc42l6i2

 

https://www.youtube.com/watch?v=zXZKrPsc0ns&list=PLReBmp3WR8peIfvEVNWNy_JnwEc42l6i2&index=2

 

노래 가사로 보면 어머니날 노래가 되겠군요.

젖은 자리에는 어머님 자신이 차지하고, 마른 자리에는 어린 자식을 눕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어머니날 노래>라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3culg27LAUU&list=PLReBmp3WR8peIfvEVNWNy_JnwEc42l6i2&index=6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시조에서처럼

가부장사회의 투영일 뿐 분명 날 낳으신 분은 어머니이듯이

"진자리 마른 자라 갈아 뉘시며"에서도 그런 분은 어머니입니다.

아버지는 사랑방에 주무시니 그런 일은 없습니다. 굳이 장황한 설명을 늘어 놓은 것은

어버이날 노래로 적합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숭실대 영문과 교수를 역임하다  소창진평의 향가연구에 분발하여 <고가연구>를 저술하신 양주동 박사님의 번역대로 <어머니 마음> 내지는 <어머니 은혜>일 따름입니다.

아래 포스트 참조

http://kydong77.tistory.com/17936?category=563674

 

석가여래의 일생/ 김용옥, 불교 1-28강

석가모니부처님의 출생지는 네팔이다. 네팔(Nepal)은 히말라야산맥 중앙부의 남쪽에 위치한다. 고타마 싣타르타 왕자는 네팔에서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 계층에서 출생하셨다. 29세에 처음으로

kydong77.tistory.com

 

양주동님의 '사뇌가 연구의 回憶'은 아래 '주석과 번역' 참조

梁柱東,詞腦歌 證釋 題詞 注譯 

爲堂 정인보님이 <고가연구> 출간에 대해 양박사의 학덕을 기려 지어 주신 題詞 五首를, 무애 양주동님은 국역과 함께 해설하셨다.  여러 수필집 등에서 양박사님이 작성한 글을 옮긴 것이다. 

향가강독 시간이면 서문에 실은 詞腦歌 證釋 題詞 로 시작하여 그 해설이 끝나면 중간고사 기간이 되었던 것 같다. 자타가 공인하던 당대 제일의 한학자가 자신의 학문을 인정한 데 대한 자화자찬도 많았지만 향가 원문부터 한문도 아닌 한자의 음과 뜻을 빌러 쓴 이두표기인데다 그 주석조차 조사 몇 개를 제외하면 인용문은 한문이 대부분어서  그 뜻을 짐작조차 못하는, 개코도 모르는 것들하고 무슨 토론을 하시겠는가? 말도 안되는 질의자의 질문를 막지 않고 끝까지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법륜스님이 아니라면.

손자뻘도 더되는 연령 차이지만 동시대를 산 인연으로 그런 천재학자를 만나뵈올 행운을 만났으니 그저 양박사님의 강의를 수강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마냥 감지덕지할 뿐입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향가25수 정리  (0) 2017.07.20

 

詞腦歌 證釋 題詞 其一  (0) 2017.07.18

詞腦歌 證釋 題詞 其二  (0) 2017.07.18

詞腦歌 證釋 題詞 其三  (0) 2017.07.18

詞腦歌 證釋 題詞 其四  (0) 2017.07.18

詞腦歌 證釋 題詞 其五  (2) 2017.07.18


梁柱東,詞腦歌 證釋 題詞 注譯  (0) 2017.07.18

 

https://kydong77.tistory.com/17172

 

梁柱東, 정인보의 詞腦歌 證釋 題詞 5首 注譯

무애 양주동(1903년 6월 24일, 경기도 개성 - 1977년 2월 4일 ) 선생님께서 향가연구서인 《고가연구》를 출간하자 위당 정인보(1893∼1950) 선생님이 그 위업을 고시 5수로 찬양했다. 그 고시가 인데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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