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가열전 03

 

 

太子及賓客知其事者,皆白衣冠以送之。태자와 빈객들은 그 일을 알고 있는 자들이어서 모두 흰 의관을 하고 그를 보냈다.至易水之上,既祖,取道,[一]高漸離擊筑,荊軻和而歌,為變徵之聲,[二]士皆垂淚涕泣。역수가에 이르러 이미 조상신께 제사하고 여로에 올랐다.고점리는 축을 치고 형가는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변치음을 내니 인사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注[一]正義易州在幽州歸義縣界。注[二]正義徵,知雉反。又前而為歌曰:앞으로 나아가며 노래했다.「風蕭蕭兮 易水寒,壯士一去兮 不復還!」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물 차가와라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復為羽聲慨,士皆瞋目,髮盡上指冠。또 우성으로 소리하니 인사들이 모두 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은 모두 갓을 향해 곤두섰다. 於是荊軻就車而去,終已不顧。이에 형경은 수레에 올라 떠났는데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遂至秦,持千金之資幣物,厚遺秦王寵臣中庶子蒙嘉。嘉為先言於秦王曰:드디어 진에 이르렀다. 천금을 내건 폐물을 갖고 진왕의 총신인 중서자 몽가에게 후히 주니 몽가는 진왕에게 먼저 아뢰었다.「燕王誠振怖大王之威,不敢舉兵以逆軍吏,願舉國為內臣,比諸侯之列,給貢職如郡縣,而得奉守先王之宗廟。“연왕이 대왕의 위엄을 참으로 두려워하여 감히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 군대에 항거하지 못하고 온 나라가 내신이 되고 제후의 반열에 서서 공물 바치기를 군현과 같이하고 선왕의 종묘를 봉수하기를 원합니다.恐懼不敢自陳,謹斬樊於期之頭,及獻燕督亢之地圖,函封,燕王拜送于庭,使使以聞大王,唯大王命之。」두려워서 스스로 그 뜻을 개진하지 못하고 삼가 번오기의 목을 베어 연나라 독항의 지도와 함께 바치어 봉함하고 연왕이 궁정에서 배송하여 사자로 하여금 대왕게 주문케 하였사옵니다. 대왕께서는 명을 내리소서.”秦王聞之,大喜,乃朝服,設九賓,[一]見燕使者咸陽宮。[二]진왕은 듣고서 크게 기뻐하여 조복을 입고 구빈의 예를 마련하여 연나라 사자를 함양궁에서 접견했다.

 

注[一]正義劉云:「設文物大備,即謂九賓,不得以周禮九賓義為釋。」注[二]正義三輔黃圖云:「秦始兼天下,都咸陽,因北陵營宮殿,則紫宮象帝宮,渭水貫都以象天漢,橫橋南度以法牽牛也。」荊軻奉樊於期頭函,而秦舞陽奉地圖柙,[三]以次進。형가는 번오기의 두함을 받들고 진무양은 지도함을 받들고 차례로 나아갔다.

 

注[三]索隱戶甲反。柙亦函也。至陛,秦舞陽色變振恐,羣臣怪之。계단에 이르자 진무양은 얼굴빛이 변하며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여러 신하들이 이를 괴이히 여겼다.荊軻顧笑舞陽,前謝曰:형가는 무양을 돌아보고 웃으면서 앞으로 나아가 사과했다.「北蕃蠻夷之鄙人,未嘗見天子,故振慴。願大王少假借之,使得畢使於前。」“북번 만이의 비루한 사람이 일찍이 천자를 뵈온 적이 없으므로 떨며 두려워합니다.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작은 잘못을 용서하시어 어전에서 사자의 임무를 마칠 수 있게 해 주십시오.”秦王謂軻曰:「取舞陽所持地圖。」진왕이 형가에게 말했다.“무양이 가진 지도를 받아오라.”軻既取圖奏之,秦王發圖,圖窮而匕首見。형가는 이미 지도를 취해 바치었다. 진왕이 지도를 펼쳤는데 지도가 끝나자비수가 보였다.

 

因左手把秦王之袖,而右手持匕首揕之。인하여 형가는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잡고 진왕을 찔렀다.未至身,秦王驚,自引而起,袖絕。비수가 몸에 닿기 전에 진왕은 놀라서 스스로를 이끌어 일어나느라 소매가 떨어져나갔다. 拔劍,劍長,操其室。[四]時惶急,劍堅,故不可立拔。검을 뽑고자 했으나 검이 길고 칼집을 잡고 있는데다 시간이 황급한데 검은 견고하게 꽂혀 있어 뽑을 수 없었다.

 

注[四]索隱室謂鞘也。正義燕丹子云:「左手揕其胸。秦王曰:『今日之事,從子計耳。乞聽瑟而死。』召姬人鼓琴,琴聲曰『羅縠單衣,可裂而絕;八尺屏風,可超而越;鹿盧之劍,可負而拔』。王於是奮袖超屏風走之。」荊軻逐秦王,秦王環柱而走。형가가 진왕을 쫓아가니 진왕은 기둥을 돌아 달아났다.羣臣皆愕,卒起不意,盡失其度。여러 신하들은 모두 경악했고 갑자기 뜻밖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 할 바를 몰랐다.而秦法,羣臣侍殿上者不得持尺寸之兵;諸郎中[五]執兵皆陳殿下,非有詔召不得上。진나라 법에 여러 신하로서 전각 위에서 모시는 자들은 한 자 한 치의 무기도 갖지 못했었다. 여러 낭중으로 병기를 잡은 자들은 모두 전가 아래 진열하고왕명으로 부름이 없으면 전각에 오를 수 없었다.

 

注[五]索隱若今宿%之官。方急時,不及召下兵,以故荊軻乃逐秦王。而卒惶急,無以擊軻,而以手共搏之。지금 황급한 때에 아래의 병사들을 불러올릴 겨를이 없었으므로 형가가 진왕을 쫓았으나 창졸간에 황급한 일이라 형가를 칠 것이 없어 맨손으로 함께 형가를 쳤다.是時侍醫夏無且[六]以其所奉藥囊提荊軻也。[七]이때 시의 하무저가 받들고 있던 약낭을 형가에게 던졌다.

 

注[六]索隱且音即餘反。注[七]正義提,姪帝反。秦王方環柱走,卒惶急,不知所為,진왕은 방금 기둥을 돌아 달아나다가 창졸간에 황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左右乃曰:「王負劍!」[八]좌우에서 외쳤다.“대왕께서는 칼을 등에 지십시오.”

 

注[八]索隱王劭曰:「古者帶劍上長,拔之不出室,欲王推之於背,令前短易拔,負劍,遂拔以擊荊軻,斷其左股。荊軻廢,乃引其匕首以擿秦王,[九]不中,中桐柱。[一0]칼을 등지자 드디어 칼을 뽑아 형가를 공격하여 그의 왼쪽 다리를 잘랐다.형가는 쓰러지자 비수를 당겨 진왕에게 던졌다. 비수는 진왕을 맞히지 못하고 구리기둥에 맞았다.

 

注[九]索隱擿與「擲」同,古字耳,音持益反。注[一0]正義燕丹子云:「荊軻拔匕首擲秦王,決耳入銅柱,火出。」故云『王負劍』。」又燕丹子稱琴聲曰「鹿盧之劍,可負而拔」是也。秦王復擊軻,軻被八創。軻自知事不就,倚柱而笑,箕踞以罵曰:진왕은 다시 형가를 공격하여 여덟 군데 상처를 입혔다.형가는 스스로 일이 성취하지 못할 줄 알고 기둥에 의지하여 다리를 뻗고 앉아 진왕을 꾸짖었다.「事所以不成者,以欲生劫之,必得約契以報太子也。」[一一]“일이 성취하지 못한 것은 산 채로 겁을 주어 사로잡아 태자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계약 때문이었다.注[一一]集解漢鹽鐵論曰:「荊軻懷數年之謀而事不就者,尺八匕首不足恃也。秦王操於不意,列斷賁﹑育者,介七尺之利也。」於是左右既前殺軻,秦王不怡者良久。이에 좌우에서 신하들이 이미 앞으로 나아와 형가를 죽였다.진왕은 꽤 오랜 동안 기분이 언짢았다.已而論功,賞羣臣及當坐者各有差,而賜夏無且黃金二百溢,曰:「無且愛我,乃以藥囊提荊軻也。」이미 공을 논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상을 주고 마땅히 죄에 연좌된 자들에게 차등을 두었다. 하무저에게는 황금 이백 일을 하사했다.“하무저는 나를 사랑하여 약낭을 형가에게 던진 것이다.”於是秦王大怒,益發兵詣趙,詔王翦軍以伐燕。이에 진왕은 대로하여 군대 동원을 늘여 조나라로 나아가게 하고왕전의 군대에 조서를 내려 연나라를 치게 했다.十月而拔薊城。燕王喜﹑太子丹等盡率其精兵東保於遼東。열 달만에 계성을 함락하였다. 연왕 희와 태자 단 등은 정예병을 모두 이끌고동쪽으로 가 요동을 지켰다.秦將李信追擊燕王急,代王嘉乃遺燕王喜書曰:진 장군 이신이 추격하여 연왕이 급해지니 대왕 가가 영완 희에게 서신을 보냈다.「秦所以尤追燕急者,以太子丹故也。今王誠殺丹獻之秦王,秦王必解,而社稷幸得血食。」“진나라가 더욱 추격하여 연나라가 급해진 것은 태자 단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실제로 단을 죽여 진왕에게 바친다면 진왕은 반드시 공격을 풀게 되어 연나라의 사직은 제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고전 > 史記 사기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쾌열전 01  (0) 2012.03.16
형가(荊軻)열전 04  (1) 2012.03.15
형가(荊軻)열전 02  (0) 2012.03.15
형가(荊軻)열전 01  (2) 2012.03.15
5-2.오기열전  (0) 2012.03.10

 

 

형가열전 02

 

荊軻遂見太子,言田光已死,致光之言。

형가가 드디어 태자를 만나 전광선생이 이미 죽었음을 말하고 전광의 말을 전했다.

太子再拜而跪,膝行流涕,有頃而后 言曰

:태자는 재배하고 꿇어앉아 무릎으로 걸으며 눈물을 흘린 후에 말했다

.「丹所以誡田先生毋言者,欲以成大事之謀也。今田先生以死明不言,豈丹之心哉!」

“단이 전선생에게 말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은 큰일의 모책을 성공시키고자 함이었습니다.이제 전성생이 죽음으로써 말하지 않은 것을 밝혔으니 어찌 단의 본심이었겠습니까?

”荊軻坐定,太子避席頓首曰

:형가가 자리를 정하니 태자가 자리를 피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田先生不知丹之不肖,使得至前,敢有所道,此天之所以哀燕而不棄其孤也。[一]

“전선생은 단의 불초함을 모르고 앞에 나아가 감히 말할 수 있게 하시니이것은 하늘이 연나라를 가엾게 여겨 고립된 상태로 버려두지 않으신 것입니다.

 

注[一]索隱案:無父稱孤。時燕王尚在,而丹稱孤者,或記者失辭,或諸侯嫡子時亦僭稱孤也。又劉向云「丹,燕王喜之太子」。

今秦有貪利之心,而欲不可足也。

지금 진나라는 이를 탐하는 마음이 있으나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非盡天下之地,臣海內之王者,其意不厭。今秦已虜韓王,盡納其地。

천하의 땅을 다 차지하고 해내의 왕들을 신하로 삼지 않고서는뜻이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이미 한나라 왕을 포로로 삼고그 땅을 모두 빼앗았습니다.

又舉兵南伐楚,北臨趙

;또 거병하여 남쪽으로 초나라를 치고, 북쪽으로 조나라에 임하였습니다.

王翦將數十萬之衆距漳﹑鄴,而李信出太原﹑雲中。趙不能支秦,必入臣,入臣則禍至燕。

왕전은 수십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장 업을 공격하고, 이신은 태원 설중으로 나오니 조나라가 진나라의 군대를 막아내지 못해 반드시 진의 신하가 될 것입니다.진의 신하가 되면 그 화는 연나라에 미칠 것입니다.

燕小弱,數困於兵,今計舉國不足以當秦。諸侯服秦,莫敢合從。

연나라는 소국으로 잦은 병화에 지쳐 있습니다. 지금 온 나라의 힘을 다해 싸우더라도 진나라를 당해 내기엔 부족합니다.제후들은 진에 복종하여 감히 합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丹之私計愚,以為誠得天下之勇士使於秦,闚以重利;[二]秦王貪,[三]其勢必得所願矣。

단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진실로 천하의 용사를 얻어 사자로 보내어 큰 이로서 유인한다면 진왕은 탐욕한 자이니 사세(事勢)는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을 것입니다.

 

注[二]索隱闚,示也。言以利誘之。注[三]索隱絕句。

誠得劫秦王,使悉反諸侯侵地,若曹沫之與齊桓公,則大善矣;則不可,因而刺殺之。

진실로 진왕을 겁주어 제후들에게 빼앗은 땅을 다 반환케 하기를 조말이 제나라 환공에게 한 것과 같이 한다면 최선의 성과일 것입니다. 불가하다면 그를 찔러 죽이는것입니다.

彼秦大將擅兵於外而內有亂,則君臣相疑,以其閒諸侯得合從,其破秦必矣。

저 진나라 대장들이 밖으로는 제멋대로 전쟁을 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혼란을 일으킨다면 진나라 임금과 신하는 서로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 틈을 타서 제후가 합종한다면 진나라를 깨뜨리는 건 필연입니다. 此丹之上願,而不知所委命,唯荊卿留意焉。」이것이 단의 최상의 바램이지만 목숨을 맡길 자를 알지 못합니다. 형경은 이 점에 유의하십시오.

"久之,荊軻曰:「此國之大事也,臣駑下,恐不足任使。」

오래 있다가 형경이 말했다.“이는 나라의 대사입니다. 신은 노둔하고 재능이 없어 소임의 사자 일을 하기에 부족할까 두렵습니다.”

太子前頓首,固請毋讓,然後許諾。

태자가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굳이 청하기를 사양하지 않은 연후에야 허락했다.

於是尊荊卿為上卿,舍上舍。

이에 형가를 높여 상경을 삼고 상사의 객관에 머물게 하였다.

太子日造門下,供太牢具,異物閒進,車騎美女恣荊軻所欲,以順適其意。[四]

태자는 날마다 문 아래 나아가 태우의 음식을 제공하고 진기한 물건들을 바쳤으며거기(車騎)와 미녀들을 보내 형가가 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대로 하게 하여그의 뜻에 따라 만족시켰다.

 

注[四]索隱燕丹子曰「軻與太子遊東宮池,軻拾瓦投¨,太子捧金丸進之。又共乘千里馬,軻曰『千里馬肝美』,即殺馬進肝。太子與樊將軍置酒於華陽臺,出美人能鼓琴,軻曰『好手也』,斷以玉盤盛之。軻曰『太子遇軻甚厚』」是也。

久之,荊軻未有行意。秦將王翦破趙,虜趙王,盡收入其地,進兵北略地至燕南界。

그러한 지 오래건만 형가는 떠날 마음이 없었다. 진의 장군 왕전은 조나라를 격파하고조왕을 포로로 하였으며 그 땅을 모두 진에 편입하고 군대를 전진시켜북쪽으로 땅을 빼앗아 연나라 남쪽 경계에 이르렀다.

太子丹恐懼,乃請荊軻曰:「秦兵旦暮渡易水,則雖欲長侍足下,豈可得哉!」

태자 단이 두려워져 형경에게 청했다.“진나라 군대가 조만간 역수를 건너오면 족하를 오래 모시고자 한들어찌 가능하겠습니까?”

荊軻曰:「微太子言,臣願謁之。今行而毋信,則秦未可親也。

형가:“태자의 말씀이 없었더라도 신이 알현코자 했습니다. 지금 떠날지라도신뢰할 것이 없다면 진과 친할 수 없습니다.

夫樊將軍,秦王購之金千斤,邑萬家。誠得樊將軍首與燕督亢之地圖,[一]奉獻秦王,秦王必說見臣,臣乃得有以報。」

저 번오기 장군은 진왕이 금 천근과 읍 만호를 내걸고 찾고 있습니다.진실로 번장군의 머리와 연나라의 비옥한 땅인 독항의 지도를 얻어 진왕에게 바친다면 진왕은 반드시 기뻐하여 신을 인견할 것이고 신은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注[一]集解徐廣曰:「方城縣有督亢亭。」駰案:劉向別錄曰「督亢,膏腴之地」。索隱地理志廣陽國有薊縣。司馬彪郡國志曰「方城有督亢亭」。正義督亢坡在幽州范陽縣東南十里。今固安縣南有督亢陌,幽州南界。

太子曰:「樊將軍窮困來歸丹,丹不忍以己之私而傷長者之意,願足下更慮之!」

태자: “번장군은 곤궁하여 단에게 와 귀의했습니다.단은 사사로운 일로 장자의 뜻을 상하게 하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습니다.바라건대 족하는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荊軻知太子不忍,乃遂私見樊於期曰:「秦之遇將軍可謂深矣,父母宗族皆為戮沒。今聞購將軍首金千斤,邑萬家,將柰何?」

형가는 태자가 차마 한지 못할 줄 알고 드디어 가만히 번오기를 만났다.“진나라가 장군을 처우함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부모와 종족들이 모두 살육 당해 죽었습니다. 지금 장군의 머리에 금 천근과 읍 만호를 내걸었다고 들었는데 어찌 하겠소?”

於期仰天太息流涕曰:「於期每念之,常痛於骨髓,顧計不知所出耳!」

번오기는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렸다.

“번오기는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고통이 골수에 사무치나돌아보아도 계책을 낼 줄 모릅니다.”

荊軻曰:「今有一言可以解燕國之患,報將軍之仇者,何如?」

형가:“지금 한 말씀 올리는데, 연나라의 근심을 해소하고 장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어찌하겠소?”

於期乃前曰:「為之柰何?」

번오기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어떻게 하는 일인데요?”

荊軻曰:「願得將軍之首 以獻秦王,秦王必喜而見臣,

형가:“바라건대 장군의 머리를 얻어 진왕에게 바친다면 진왕은 반드시 기뻐하여 신을 인견할 것입니다.

臣左手把其袖,右手揕其匈,[一]然則將軍之仇報而燕見陵之愧除矣。將軍豈有意乎?」

신은 왼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를 것입니다.그렇게 하면 장군은 원수를 갚고 연나라는 수모의 부끄러움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장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注[一]集解徐廣曰:「揕音張鴆切。一作『抗』。」索隱徐氏音丁鴆反。揕謂以劍刺其胸也。又云一作「抗」。抗音苦浪反,言抗拒也,其義非。

樊於期偏袒搤捥[二]而進曰:「此臣之日夜切齒腐心也,[三]乃今得聞教!」

번오기는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팔을 움켜쥐고 나아와 말했다.“이것은 신이 밤낮으로 절치부심하던 일입니다. 이제 가르침을 듣게 되었습니다.”

注[二]集解徐廣曰:「一作『』。」索隱搤音烏革反。捥音烏亂反。勇者奮厲,必先以左手扼右捥也。捥,古「腕」字。注[三]索隱切齒,齒相磨切也。爾雅曰:「治骨曰切」。腐音輔,亦爛也。猶今人事不可忍云「腐爛」然,皆奮怒之意也。

遂自剄。太子聞之,馳往,伏屍而哭,極哀。既已不可柰何,乃遂盛樊於期首函封之。

드디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태자가 듣고는 달려가 시체에 엎디어 울었는데 매우 슬퍼했다.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번오기의 머리를 함에 넣고 봉함했다.”

於是太子豫求天下之利匕首,得趙人徐夫人匕首,[一]取之百金,使工以藥焠之,[二]以試人,血濡縷,人無不立死者。[三]

이에 태자는 천하의 예리한 비수를 미리 구하여 조나라 서부인의 비수를 얻었는데 백금에 취득했다. 공인으로 하여금 독약을 칼날에 칠하고 시험하여한 가닥 실낱 같은 피를 흘렸는데도 죽지 않은 자가 없었다.

注[一]集解徐廣曰:「徐,一作『陳』。」索隱徐,姓;夫人,名。謂男子也。注[二]索隱焠,染也,音潰反。謂以毒藥染劍鍔也。注[三]集解言以匕首試人,人血出,足以沾濡絲縷,便立死也。

乃裝為遣荊卿。燕國有勇士秦舞陽,年十三,殺人,人不敢忤視。[四]乃令秦舞陽為副。

이에 행장을 갖추어 형경을 보냈다. 연나라 용사 진무양은 열세 살 때 살인했는데사람들은 두려워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이에 진무양을 부사로 삼게 했다.

 

注[四]索隱忤者,逆也,五故反。不敢逆視,言人畏之甚也。荊軻有所待,欲與俱;其人居遠未來,而為治行。

형가는 기다려 함께 가고자 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멀리 거주하여 오지 않았지만행장을 갖추었다.

頃之,未發,太子遲之,疑其改悔,乃復請曰:

오래도록 떠나지 아니하니 태자는 출발이 더디다고 여겨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후회하는가 의심하여 다시 청했다.

「日已盡矣,荊卿豈有意哉?丹請得先遣秦舞陽。」

“날짜가 다했습니다. 형경이 어찌 다른 뜻이야 있겠습니까?단이 청하노니 진무양을 먼저 보낼 수 있겠습니까?”

荊軻怒,叱太子曰:「何太子之遣?往而不返者,豎子也!

형경이 노여워하며 태자를 꾸짖었다.

“어찌 태자로서 보내겠습니가? 한 번가면 돌아오지 못할 터인데 저 더벅머리 아이를요?

且提一匕首入不測之彊秦,僕所以留者,待吾客與俱。今太子遲之,請辭決矣!」遂發。

장차 비수 하나를 가지고 헤아릴 수 없는 강진에 들어가다니요. 복이 머무는 것은 나의 객인을 기다려 함께 가고자 합입니다. 지금 태자께서 더디다고 하니 하직하고 떠나겠습니다.”

드디어 형경은 출발했다.

 

'중국고전 > 史記 사기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가(荊軻)열전 04  (1) 2012.03.15
형가(荊軻)열전 03  (0) 2012.03.15
형가(荊軻)열전 01  (2) 2012.03.15
5-2.오기열전  (0) 2012.03.10
5-1.손무열전  (0) 2012.03.10

 

史記卷八十六

刺客列傳第二十六

자객열전 제26

 

曹沫者,魯人也, [본문 생략]專諸者,吳堂邑人也。 [본문 생략]豫讓者,晉人也 [본문 생략]聶政者,軹深井里人也。 [본문 생략]

 

荊軻者,燕人也。[一]其先乃齊人,徙於衛,衛人謂之慶卿。[二]而之燕,燕人謂之荊卿。형가(荊軻)는 연(燕)나라 사람이다. 그의 조상은 제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위나라로 가니 위나라 사람들이 경경이라 불렀다.연나라에 가니 연나라 사람들은 형경이라 불렀다.

 

注[一]索隱按:贊論稱「公孫季功﹑董生為余道之」,則此傳雖約戰國策而亦別記異聞。注[二]索隱軻先齊人,齊有慶氏,則或本姓慶。春秋慶封,其後改姓賀。此下亦至燕而改姓荊。荊慶聲相近,故隨在國而異其號耳。卿者,時人尊重之號,猶如相尊美亦稱「子」然也。荊卿好讀書擊劍,[一]以術說衛元君,衛元君不用。其後秦伐魏,置東郡,徙衛元君之支屬於野王。[二]그는 독서와 칼쓰기를 좋아하였다. 익힌 재주를 내세워 위나라 원군(元君)을 설득하였으나 원군이 쓰지 않았다.그 뒤에 진나라가 위나라를 쳐서 동군을 두고 위나라 원군의 일족을 야왕으로 옮겼다.注[一]集解呂氏劍技曰:「持短入長,倏忽從橫。」注[二]正義懷州河內縣。荊軻嘗游過榆次,[一]與蓋聶論劍,[二]蓋聶怒而目之。荊軻出,人或言復召荊卿。형가가 일찍이 유세길에 유차(楡次)를 지나다가 개섭(蓋攝)과 검술을 논하였다. 개섭이 성내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니 형가는 나가버렸다. 어떤 이가 형경을 다시 부르라고 말했다.

 

注[一]正義并州縣也。注[二]索隱蓋音古臘反。蓋,姓;聶,名。

 

 

 

蓋聶曰:「曩者吾與論劍有不稱者,吾目之;試往,是宜去,不敢留。」개섭이 말했다.“지난 번에 내가 그와 검술을 논하다가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있어서 내가 노려보았소.찾아가 보시오. 그는 떠나가 버리고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오.”使使往之主人,荊卿則已駕而去榆次矣。使者還報,蓋聶曰:「固去也,吾曩者目攝之!」[三]사자를 보내 주인집에 가게 했으나 형경은 이미 수레를 타고 유차를 떠났다.사자가 돌아와 보고하니 개섭이 말했다.“응당 떠났을 것이오. 내가 지난 번에 노려보았으니까.”

다른 이가 형가를 찾으러 갔으나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注[三]索隱攝猶整也。謂不稱己意,因怒視以攝整之也。正義攝猶視也。荊軻游於邯鄲,魯句踐與荊軻博,爭道,[一]魯句踐怒而叱之,荊軻嘿而逃去,遂不復會。형가가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노닐 적에 노구천이 형가와 장기를 두다가, 길을 다투어 노구천이 성내고 꾸짖으니 형가는 묵묵히 도망쳐 버려 드디어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注[一]索隱魯,姓;句踐,名也。與越王同,或有意義。俗本「踐」作「賤」,非。

 

荊軻既至燕,愛燕之狗屠及善擊筑者高漸離。[一]형가는 이미 연나라에 이르러 연나라의 개백정을 좋아했고 축을 잘 타는 고점리와 친했다.注[一]索隱筑似琴,有弦,用竹擊之,取以為名。漸音如字,王義*(之)*音哉廉反。

 

荊軻嗜酒,日與狗屠及高漸離飲於燕市,酒酣以往,高漸離擊筑,荊軻和而歌於市中,相樂也,已而相泣,旁若無人者。형가는 술을 좋아하여 날마다 개백정 및 고점리와 연나라 저자에서 음주했고, 술이 취하면 고점리는 축을 타고 형가는 이에 화답하여 저자에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 즐겼고, 이미 서로 울게 되면 곁에 사람이 없는 듯했다.荊軻雖游於酒人乎,[二]然其為人沈深好書;其所游諸侯,盡與其賢豪長者相結。형가는 비록 주객들과 놀았지만 사람됨이 침착하고 깊으며 독서를 좋아했다.그가 교유한 제후들은 모두 어질고 호걸스런 장자들과 교유했다.注[二]集解徐廣曰:「飲酒之人。」其之燕,燕之處士田光先生亦善待之,知其非庸人也。그가 연나라에 갔을 때, 연나라 처사 전광선생도 그를 잘 대우하였으니 그가 범용한 사람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居頃之,會燕太子丹質秦亡歸燕。燕太子丹者,故嘗質於趙,而秦王政生於趙,其少時與丹驩。얼마 후에 마침 연나라 태자 단이 진 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도망쳐 연나라로 돌아왔다. 연나라 태자 단은 일찍이 조나라에 인질로 있었는데, 진나라 왕 정이 조나라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에 단과 즐겁게 놀았다.及政立為秦王,而丹質於秦。秦王之遇燕太子丹不善,故丹怨而亡歸。정이 진나라 왕이 되었는데 단은 진나라에 인질이 되었다. 진왕 정은 연태자 단을 홀대하였으므로 단은 원한을 품고 도망쳐 돌아왔다.歸而求為報秦王者,國小,力不能。돌아와 진왕에게 보복해 줄 사람을 찾았으나 나라가 협소하여 국력으로 할 수 없었다.其後秦日出兵山東以伐齊﹑楚三晉,﹑稍蠶食諸侯,且至於燕,燕君臣皆恐禍之至。그 후 진나라는 날마다 산동에 군대를 출전시켜 제 초 삼진을 쳐서 차츰 제후의 당을 잠식하고는 장차 연나라에 이르려하니 연나라 군신들이 모두 화가 미칠까 두려워했다.太子丹患之,問其傅鞠武。[一]태자 단은 이를 근심하여 그의 태부 국무에게 물었다.

 

注[一]索隱上音麴,又如字,人姓名也。武對曰:「秦地徧天下,威脅韓﹑魏﹑趙氏,北有甘泉﹑谷口之固,南有涇渭之沃,擅巴﹑漢之饒,국무가 말했다."진나라는 땅이 천하에 골고루 퍼져있어 한 위 조씨를 위협하고, 북족으로는 감천 곡구의 험고함이 있고, 남쪽으로는 경수 위수의 비옥한 땅이 있어, 파와 한중의 풍요함을 천단하고 있습니다.

 

右隴﹑蜀之山,左關﹑殽之險,民衆而士厲,兵革有餘。意有所出,則長城之南,易水以北,[二]未有所定也。柰何以見陵之怨,欲批[三]其逆鱗哉!」오른쪽엔 농 촉의 험고함이 있고, 왼쪽엔 관 효의 험고함이 있는데다백성의 수가 많고 군사들은 사나우며 무기와 장비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한번 마음만 먹으면 장성의 남쪽과 역수의 북쪽이 어찌 될지 정한 것이 없습니다. 어찌 업신여김을 당했다는 원한 때문에 그의 심기를 거슬린단 말입니까?"

 

注[二]正義以北謂燕國也。注[三]集解批音白結反。索隱白結反。批謂觸擊之。丹曰:「然則何由?」단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對曰:「請入圖之。」국무가 대답했다. “들어가 계시면 이 일을 도모해 보겠습니다.居有閒,秦將樊於期得罪於秦王,亡之燕,太子受而舍之。얼마 후에 진나라의 장수인 번오기가 진왕에게 죄를 얻어 도망쳐서 연나라에 왔다. 태자 단이 번오기를 받아들여 머물게 했다.鞠武諫曰:「不可。夫以秦王之暴而積怒於燕,足為寒心,[一]又況聞樊將軍之所在乎?국무가 간하였다."안됩니다. 진왕은 포악하여 연나라에 분노를 쌓고 있어 매우 오싹합니다. 하물며 번장군의 소재를 알면 어찌 되겠습니까?

 

注[一]索隱凡人寒甚則心戰,恐懼亦戰。今以懼譬寒,言可為心戰。是謂『委肉當餓虎之蹊』也,禍必不振矣![二]雖有管﹑晏,不能為之謀也。願太子疾遣樊將軍入匈奴以滅口。그것은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에 고기를 던져두는 것과 같아서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관중과 안영이 있을지라도 대책을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원컨대 태자께서는 빨리 번장군을 흉노 땅으로 보내어 탈잡을 말을 없애소서.

 

注[二]索隱振,救也。言禍及天下,不可救之。請西約三晉,南連齊﹑楚,北購於單于,[三]其後迺可圖也。」청컨대 서쪽으로 삼진과 맹약을 맺고, 남쪽으로 제 초와 연결하며,북쪽으로 선우[흉노]와 강화한 후에야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注[三]索隱戰國策「購」作「講」。講,和也。今讀購與「為燕媾」同,媾亦合也。漢﹑史媾講兩字常,今欲北與連和。陳軫傳亦曰「西購於秦」也。太子曰:「太傅之計,曠日彌久,心惛然,[四]恐不能須臾。태자가 말했다."스승의 계책은 너무 많은 시일이 걸립니다. 나는 증오로 마음이 혼란하여 잠깐도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 且非獨於此也,夫樊將軍窮困於天下,歸身於丹,丹終不以迫於彊秦而棄所哀憐之交,置之匈奴,是固丹命卒之時也。願太傅更慮之。」또한 그것만이 아닙니다. 번 장군은 온 천하에 몸을 둘 곳이 없어서 저를 의지해 왔습니다. 제가 진나라의 협박을 받는다고 하여 우정을 버리고 그를 흉노로 보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진실로 단의 생명이 끝나는 때일 것입니다. 원컨대 태부께서는 다시 생각하십시오."鞠武曰:「夫行危欲求安,造禍而求福,計淺而怨深,국무가 말했다."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편안함을 찾고자 하고, 화를 만들면서 복을 구한다는 것은, 계책은 얕고 원망은 깊어질 뿐입니다. 連結一人之後交,不顧國家之大害,此所謂『資怨而助禍』矣。한사람의 뒤로 미뤄야 할 교의에 연결되어 국가의 위험을 돌아보지 않으니 이것은 원한을 보태고 화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夫以鴻毛燎於爐炭之上,必無事矣。且以鵰鷙之秦,行怨暴之怒,豈足道哉!기러기 털을 가져다 화로의 숯불 위에서 태운다면[진이 연나라를 멸망시키기는] 아무일도 없는 듯이 쉬운 일입니다. 독수리같은 진나라가 원망하고 포악한 성냄을 자행한다면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燕有田光先生,其為人智深而勇沈,可與謀。」연나라에 전광 선생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됨이 지혜가 깊고 용맹침착하여 함께 일을 도모할 만합니다."太子曰:「願因太傅而得交於田先生,可乎?」태자:“태부를 인연하여 전선생과 사귀고 싶습니다. 가능한지요?”鞠武曰:「敬諾。」국무:“삼가 그렇게하겠습니다.”出見田先生,道「太子願圖國事於先生也」。국무는 집을 나와 전선생을 뵙고,‘태자가 전선생과 국사를 도모하기를 청원한다.’고 말했다.田光曰:「敬奉教。」乃造焉。전광:“삼가 전교를 받들겠습니다.”하고, 태자 전에 나아갔다.

 

注[四]正義惛音。太子逢迎,卻行為導,跪而蔽席。[一]田光坐定,左右無人,태자가 맞이하는데, 뒷걸음치며 인도하여 굻어앉아 자리의 먼지를 털었다.전광이 앉으니 좌우에 사람들이 없었다.

 

注[一]集解徐廣曰:「蔽,一作『撥』,一作『拔』。」索隱蔽音疋結反。蔽猶拂也。

 

太子避席而請曰:「燕秦不兩立,願先生留意也。」태자는 자리를 피하며 청했다.“연과 진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이 점에 유의해 주십시오.”田光曰:「臣聞騏驥盛壯之時,一日而馳千里;至其衰老,駑馬先之。전광:“신이 듣건대 준마가 장성할 때엔 하루에 천리를 달리지만 노쇠함에 이르면노둔한 말도 그보다 앞선다고 합니다. 今太子聞光盛壯之時,不知臣精已消亡矣。雖然,光不敢以圖國事,所善荊卿可使也。」[二]지금 태자게서는 광의 장성하던 때를 듣고 신의 정력이 소진하여 없어진 것을 모르십니다. 비록 그러하오나 광이 감히 국사를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친한 형경은 사자로 갈 수 있습니다.”

 

注[二]正義燕丹子云:「田光答曰:『竊觀太子客無可用者:夏扶血勇之人,怒而面赤;宋意脈勇之人,怒而面青;武陽骨勇之人,怒而面白。光所知荊軻,神勇之人,怒而色不變。』」太子曰:「願因先生得結交於荊卿,可乎?」태자:“원컨대 선생을 인연으로 형경과 친교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田光曰:「敬諾。」전광:“삼가 그렇게 하겠습니다.”即起,趨出。太子送至門,戒曰:곧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나가니 태자가 전송하여 문가지 나와 경계하였다.「丹所報,先生所言者,國之大事也,願先生勿泄也!」“단이 말씀드린 것이나 선생이 말씀하신 것은 국가의 대사이니 선생께서는 누설하지 마십시오.”田光俛而笑曰:「諾。」[三]전광이 쳐다보고 웃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注[三]正義挽音俯。僂行見荊卿,曰:등을 구부리고 가다가 형경을 보고 말했다.「光與子相善,燕國莫不知。今太子聞光壯盛之時,不知吾形已不逮也,幸而教之曰『燕秦不兩立,願先生留意也』。“광이 그대와 친하다는 것을 연나라에서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이제 태자는 광이 장성하던 때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몸이 이미 일을 감당하지 못할 줄을 모르십니다.다행히 나에게 하교하기를, ‘연나라와 진나라는 연나라와 진나라는 양립할 수 없으니 선생은 유의하십시오.’” 라고 말했다.光竊不自外,言足下於太子也,願足下過太子於宮。」전광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족하를 태자에게 말했습니다.족하는 궁에 가서 태자를 뵙도록 해 주십시오.”荊軻曰:「謹奉教。」형가: “삼가 명령을 받들겠습니다.”田光曰:「吾聞之,長者為行,不使人疑之。전광:“제가 듣건대 장자는 일을 행하는데 남들에게 의심받게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今太子告光曰:『所言者,國之大事也,願先生勿泄』,是太子疑光也。夫為行而使人疑之,非節俠也。」지금 태자가 광에게 말씀하시기를,‘우리가 말한 것은 나라의 대사이니 선생은 누설치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는 태자가 광을 의심함입니다. 대저 행동하여 남에게 의심을 품게 하는 것은 절기(節氣)와 의협(義俠)이 아닙니다.”欲自殺以激荊卿,曰:「願足下急過太子,言光已死,明不言也。」因遂自刎而死。전광은 자살하여 형경을 격려하고자 하여 말했다.“원컨대 족하는 급히 태자에게 들려 광이 이미 죽었음을 말하여 발설하지 않았음을 밝혀 주십시오.”드디어 그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중국고전 > 史記 사기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가(荊軻)열전 03  (0) 2012.03.15
형가(荊軻)열전 02  (0) 2012.03.15
5-2.오기열전  (0) 2012.03.10
5-1.손무열전  (0) 2012.03.10
4.사마양저열전  (0) 2012.01.08


史記卷六十五

孫子吳起列傳第五

5-2.吳起(오기)열전

2. 吳起(오기)

吳起者,衛人也,好用兵。

오기라는 사람은 위나라 사람으로

용병에 능했다.

嘗學於曾子,事魯君。

일찍이 증자에게 배워

노나라 임금을 섬긴 일이 있다.

齊人攻魯,魯欲將吳起,

吳起取齊女為妻,而魯疑之。

그때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해 왔다.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대장으로 기용하려 했으나

오기가 제나라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므로

의심을 품고 주저하였다.

吳起於是欲就名,遂殺其妻,以明不與齊也。

그러자 오기는 이에 공명심에 불타

마침내 자기 아내를 죽여

자기와 제나라와의 관계하지 않음을 분명히 밝혔다.

魯卒以為將。將而攻齊,大破之。

노나라는 마침내 오기를 장군에 임명했고

오기는 장군이 되어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격파했다.

魯人或惡吳起曰:

「起之為人,猜忍人也。

其少時,家累千金,

游仕不遂,遂破其家,

그러나 노나라 어떤 사람들은 오기를 악평하여 이르기를

“오기의 사람됨이 시기심이 강하고 잔인하다.

젊었을 때도 천 금이나 되는 가산을

벼슬을 구해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그 집을 탕진했습니다.

鄉黨笑之,吳起殺其謗己者三十餘人,

而東出衛郭門。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조소하였다 하여

오기는 자기를 비방한 사람을 죽인 것이 30이 넘어

동으로 위나라에서 도망쳤었다.

與其母訣,齧臂而盟曰:

『起不為卿相,不復入衛。』

遂事曾子。

그때 오기는 어머니와 이별하면서

자기 팔을 물어뜯으며 맹세하였다.

‘저 오기는 대신이나 재상이 되기 전에는

다시 고향 위나라에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더니

마침내 증자를 섬기었다.

居頃之,其母死,起終不歸。

증자를 모시던 중에

그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오기는 끝내 귀국하지 않았다.

曾子薄之,而與起絕。

起乃之魯,學兵法以事魯君。

증자는 그를 박정하게 여겨

오기와 관계를 끊었다.

오기는 이 때문에 노나라에 왔다.

노나라에서 병법을 배우고 노나라 임금을 섬겼다.

魯君疑之,起殺妻以求將。

夫魯小國,而有戰勝之名,則諸侯圖魯矣。

노라나 임금이 그를 의심하니

제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장군 자리를 구하였다.

무릇 노나라는 작은 나라라

조그만 싸움에 이겼다는 공명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제후들의 표적이 되었다.

且魯衛兄弟之國也,而君用起,

則是弃衛。」

더군나 노나라와 위나라는 형제의 나라다.

그래서 임금이 그 위나라에서 도망쳐 온 오기를

계속 중용한다는 것은

위나라와의 친교를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魯君疑之,謝吳起。

노나라 임금 역시 심중에 의혹이 생겨

오기를 해임했다.

吳起於是聞魏文侯賢,欲事之。

文侯問李克曰:「吳起何如人哉?」

오기는 찾아갈 곳을 궁리하다가

당시에 현군이라고 칭송받던

위문후를 섬기려 했다.

문후는 중신인 이극에게 오기의 사람됨을 묻기를

“오기는 어떤 사람입니까?”하니

李克曰:

「起貪而好色,[一]然用兵司馬穰苴不能過也。」

이극이 이르기를

“오기는 재물을 탐내고 여자를 좋아하기는 하나

용병에 있어서는 사마양저와 겨룰 수 있을 정도입니다.”하였다.

於是魏文候以為將,擊秦,拔五城。

그리하여 문후는 오기를 장군에 임명했다.

과연 오기는 진나라를 쳐서

5개 성을 함락시켰다.

注[一]索隱按:王劭云:「此李克言吳起貪。下文云『魏文侯知起廉,盡能得士

心』,又公叔之僕稱起『為人節廉』,豈前貪而後廉,何言之相反也?」今按:

李克言起貪者,起本家累千金,破產求仕,非實貪也;蓋言貪者,是貪榮名耳,

故母死不赴,殺妻將魯是也。或者起未委質於魏,猶有貪W,及其見用,則盡

廉能,亦何異乎陳平之為人也。

起之為將,與士卒最下者同衣食。

臥不設席,行不騎乘,

오기는 장군이 되어

언제나 하급 병졸들과 의식을 같이 했고

누울 때도 자리를 까는 법이 없었으며

행군할 때도 수레에 타지 않았다.

親裹贏糧,與士卒分勞苦。

卒有病疽者,起為吮之。[一]

또한 자기가 먹을 양식은 자기가 가지고 다니는 등

사졸들과 노고를 나누었다.

언젠가 병졸들 가운데 종기를 앓는 사람이 생기자

오기는 그를 위하여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었다.

卒母聞而哭之。人曰:

「子卒也,而將,軍自吮其疽,何哭為?」

병졸의 어머니는 그 소문을 듣고 소리 내어 우니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 아들은 병졸에 지나지 않는데

장군께서 친절하게도 종기를 발아 주기까지 하지 않았소.

어찌 우는 것입니까?”

母曰:「非然也。往年吳公吮其父,

其父戰不旋踵,遂死於敵。

그 어머니는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도 오기 장군께서 그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 주었습니다.

그 아비는 감격한 나머지 끝가지 도망하지 않고 싸우다가

마침내 적에게 죽고 말았습니다.

吳公今又吮其子,妾不知其死所矣。是以哭之。」

오공께서 지금 또 자식의 종기를 빨아 주셨으니

첩은 그 자식도 싸우다가 죽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하였다.

注[一]索隱吮,鄒氏音弋軟反,又才軟反。

文侯以吳起善用兵,廉平,盡能得士心,

乃以為西河守,以拒秦、韓。

문후는 오기가 용병술에 뛰어날 뿐 아니라

청렴하고 공평하여

사졸의 인망을 얻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를 서하 태수로 임명하여

진나라와 한나라 군사를 막게 했다.

魏文侯既卒,起事其子武侯。

武侯浮西河而下,中流,顧而謂吳起曰:

위 문후가 죽자

오기는 계속해서 문후의 아들 무후를 섬겼다.

무후는 어젠가 배를 서하에 띄우고 물을 따라 내려가다

중간 지점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며 오기에게 말하기를

「美哉乎山河之固,此魏國之寶也!」

“참으로 아름답구려, 산하의 견고함이여

이것들이 우리 위나라의 보배입니다.”하니

起對曰:

「在德不在險。

昔三苗氏左洞庭,右彭蠡,

德義不修,禹滅之。

이에 오기가 답하기를

“임금의 덕일 뿐 험난한 지형은 아닙니다.

옛날 삼묘씨는 동정호를 왼쪽에 끼고

팽려호를 오른 쪽에 두었으나

덕의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라의 우왕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夏桀之居,左河濟,右泰華,

伊闕在其南,羊腸在其北,[一]

修政不仁,湯放之。

하나라의 걸왕이 도읍한 곳은

하수와 제수를 왼쪽에 끼고

태산과 화산을 오른쪽에 두었으며

이궐이 그 남쪽에 있고

양양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정사가 어질지 못한 나머지

상나라 탕왕에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殷紂之國,左孟門,[二]右太行,

常山在其北,大河經其南,

修政不德,武王殺之。

은나라 주왕은 맹문산을 왼쪽으로 하고

태행산을 오른쪽으로 하고

상산이 그 북쪽에 있고

하수가 그 남쪽에 둘렀으나

주왕이 덕으로써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나라 무왕이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由此觀之,在德不在險。

若君不修德,舟中之人盡為敵國也。」[三]

武侯曰:「善。」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문제는 임금의 덕에 있지 지형의 험난함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 임금님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이 배 안의 사람들도 모두 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무후는 이르기를 ‘과연 옳은 말이로다.“ 했다.

注[一]集解瓚曰:「今河南城為直之。」皇甫謐曰:「壺關有羊腸阪,在太原晉

陽西北九十里。」

注[二]索隱劉氏按:紂都朝歌,今孟山在其西。今言左,則東邊別有孟門也。

注[三]集解楊子法言曰:「美哉言乎!使起之用兵每若斯,則太公何以加諸!」

*(即封)*吳起為西河守,甚有聲名。

魏置相,相田文。[一]

오기에게 계속 서하 태수를 맡겼다.

이로부터 오기의 명성은 더욱 높아갔다.

위나라에서는 새로 재상의 직을 설치해

전문을 임영했다.

吳起不悅,謂田文曰:

「請與子論功,可乎?」

오기는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전문에게 말을 걸기를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소?”하니

田文曰:「可。」

전문이 이르기를 “좋소.”하였다.

起曰:

「將三軍,使士卒樂死,敵國不敢謀,子孰與起?」

오기가 이르기를

“3군의 장군이 되어

사졸들로 하여금 기꺼이 나라를 위해 죽도록 하며

또 적국이 감히 우리 위나라를 넘볼 수 없게 하는 점에서

당신과 나와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오.”하니

文曰:「不如子。」

전문이 이르기를

“당신에 어찌 미칠 수 있겠소.” 라고 했다.

起曰:「治百官,親萬民,實府庫,

子孰與起」

오기가 이르기를

“백관을 다스리고

백성들의 신뢰를 받으며

나라의 재정을 튼튼히 하는 점에서

누가 낫겠소?”하니

文曰:「不如子。」

전문이 이르기를

“당신을 따를 수 없소.”했다.

起曰:「守西河而秦兵不敢東鄉,

韓趙賓從,子孰與起?」

오기가 이르기를

“서하를 지켜

진나라 군사가 감시 동쪽을 향해

우리 위나라를 칠 생각을 못하게 하고

한·조 두 나라를 함께 복종하게 만든 점에서

누가 낫겠소.”하니

文曰:「不如子。」

전문이 이르기를

“당신을 따를 수 없소.”했다.

起曰:「此三者,子皆出吾下,

而位加吾上,何也?」

오기가 이르기를

“이 세 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 나만 못한데

지위는 나보다 높으니 무슨 까닭이오?” 하니

文曰:「主少國疑,大臣未附,百姓不信,

方是之時,屬之於子乎?屬之於我乎?」

전문이 이르기를

“지금은 임금님께서 아직 나이가 어려서

온 나라가 불안에 싸였소.

대신들은 아직 왕에게 심복하지 않으며

백성들도 왕을 신뢰하지 못하오.

이런 시기에

당신에게 맡길까요?

나에게 맡길까요?”하니

起默然良久,曰:「屬之子矣。」

오기는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이르기를

“당신에게 맡기겠지요.”하였다.

文曰:「此乃吾所以居子之上也。」

吳起乃自知弗如田文。

전문이 말하기를

“이것이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앉게 된 까닭이오.”하였다.

그제야 오기는 자신이 전문만 못하다는 것을 자인했다.

注[一]索隱按:呂氏春秋作「商文」。

田文既死,公叔為相,[一]

尚魏公主,而害吳起。公叔之僕曰:

「起易去也。」

그 뒤 전문이 죽자 공숙이 재상이 되었다.

공숙은 또한 위나라의 부마로 위세를 떨쳤다.

그는 오기를 해치려 했는데

때마침 부하 하나가 진언하기를

“오기를 내쫓기란 쉽습니다.” 하니

公叔曰:「柰何?」

공숙이 이르기를

“어떻게 말이냐?”하니

其僕曰:

「吳起為人節廉而自喜名也。

君因先與武侯言曰:

부하가 이르기를

“오기란 사람은 절조가 굳세고 청렴하지만

이름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상공께서 먼저

임금과 말씀하실 기회를 만들어 말씀하기를

『夫吳起賢人也,而侯之國小,

又與彊秦壤界,

臣竊恐起之無留心也。』

‘오기는 현인입니다.

임금께선 나라도 작은데

강한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신은 오기가 우리 나라에 머무를

생각이 없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武侯卽曰:『柰何?』

무후께서는 곧 이르기를

‘어떻게 하면 머무르게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君因謂武侯曰:

『試延以公主,起有留心 則必受之。

無留心則必辭矣。以此卜之。』

그러면 상공께서는 무후님께 이르기를

‘시험사마 공주를 시집보내도록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오기가 머무를 생각이면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고

머무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사양할 것이니

이것으로 점쳐 보십시오.’ 하였다.

君因召吳起而與歸,令公主怒而輕君。

吳起見公主之賤君也,則必辭。」

임금은 오기를 초대하여 함께 댁으로 가신 뒤에

공주로 하여금 성난 얼굴로

상공을 푸대접하는 태도를 보이도록 하십시오.

오기는 공주가 상공를 푸대접하는 태를 보면

반드시 사양할 것입니다.” 하였다.

於是吳起見公主之賤魏相,果辭魏武侯。

武侯疑之而弗信也。吳起懼得罪,

遂去,卽之楚。

이리하여 오기는 공주가 위상을 천대하는 것을 보고 과연

무후에게 부마되기를 사양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무후는 오기를 의심하여

그를 신임하지 않게 되었다.

오기는 죄를 입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마침내 떠나

바로 초나라로 건너갔다.

注[一]索隱韓之公族。

楚悼王素聞起賢,至則相楚。

초도왕은 일직부터 오기가 현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오기가 이르자 곧 초나라 재상에 임명했다.

明法審令,捐不急之官,

廢公族疏遠者,以撫養戰鬪之士。

오기는 법을 밝히고 영을 살펴

필요하지 않은 벼슬을 없애며

또 왕족들 중에서도 이미 멀어진 사람들의 봉록을 폐지시켜

그 비용을 싸음에 종사하는 군인들에게 돌렸다.

要在彊兵,破馳說之言從橫者。

그는 강병책을 적극 추진해

합종이니 연횡이니 하는 유세객의 논리를 무시해 버렸다.

於是南平百越;北并陳蔡,

卻三晉;西伐秦。

於是南平百越(어시남평백월) :

이리하여 남쪽으로 백월을 평정하고

북으로는 진·채를 병합하고

삼진을 물리치고

서쪽으로는 진나라를 쳤다.

諸侯患楚之彊。故楚之貴戚盡欲害吳起。

及悼王死,宗室大臣作亂而攻吳起,

한편 제후들은 초나라가 강성해짐을 우환으로 여겼고

그래서 초나라 귀족들은 모두 오기를 미워하여

죽일 기회를 엿보았다.

마침내 도왕이 죽자

종실의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일제히 오기를 공격하였다.

吳起走之王尸而伏之。

擊起之徒因射刺吳起,并中悼王。[一]

오기는 마침내 쫓기다가

도왕의 영구를 둔 방으로 가서 시신 위에 엎드렸다.

그러나 오기를 쫓던 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오기에게 화살을 소아 붙였다.

화살은 도왕의 시신까지 꿰뚫었다.

悼王既葬,太子立,[二]

乃使令尹盡誅射吳起 而并中王尸者。

坐射起 而夷宗死者七十餘家。

도왕의 장례식이 끝나고

태자가 임금으로 앉자

영윤에게 명해서 오기를 쏘기 위해

왕의 시신에까지 화살을 쏘아 댄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는데

이로 인해 멸족의 화를 입은 집은 70여 세대나 되었다.

注[一]索隱楚系家悼王名疑也。

注[二]索隱肅王臧也。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世俗所稱師旅,皆道孫子十三篇,

吳起兵法,世多有,

“세상에서 군사를 논하는 사람은

모두 손자 13편에 대해서 말하고

오기의 병법도

세상에 많이 유포되어 있다.

故弗論,論其行事所施設者。

그러므로 여기서는 논하지 않고

다만 그들의 사적과 시책에 대해서만 논했다.

語曰:「能行之者未必能言,能言之者未必能行。」

옛말에 이르기를

‘능히 행하는 사람이 반드시 능히 말하는 것은 아니며

능히 말하는 사람이 반드시 능히 행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했다.

孫子籌策龐涓明矣,

然不能蚤救患於被刑。

손빈은 방연을 치는 데에는 그렇게 밝았지만

그에 앞서 그에게 형벌을 당하는 화를 방지하지 못했다.

吳起說武侯以形勢不如德,

然行之於楚,以刻暴少恩亡其軀。悲夫!

오기는 무후에게는 형세가 덕만 못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러나 자신이 초나라에서 행한 것은

각박하고 몰인정하여 자신의 몸을 망쳤으니

슬픈 일인저 !

【索隱述贊】孫子兵法,一十三篇。美人既斬,良將得焉。其孫臏,籌策龐

涓。吳起相魏,西河稱賢;慘礉事楚,死後留權。

 

'중국고전 > 史記 사기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가(荊軻)열전 02  (0) 2012.03.15
형가(荊軻)열전 01  (2) 2012.03.15
5-1.손무열전  (0) 2012.03.10
4.사마양저열전  (0) 2012.01.08
5-2. 吳起列傳(오기열전)  (0) 2011.12.3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