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八十五

呂不韋列傳第二十五 

려불위렬전제25-1

 

呂不韋者,陽翟[一]大賈[二]人也。

往來販賤賣貴,[三]家累千金。

여불위(呂不韋)는 한나라 양책(陽翟)의 대상이다.

여러 나라를 돌아니며 싼 값에 물건을 사서 비싼 값에 팔아

수 천금의 재산을 모았다.

注[一]索隱音狄,俗又音宅。地理志縣名,屬潁川。按:戰國策以不韋為濮陽

人,又記其事W亦多,與此傳不同。班固雖云太史公採戰國策,然為此傳當別

有所聞見,故不全依彼說。或者劉向定戰國策時,以己異聞改彼書,遂令不與

史記合也。正義陽翟,今河南府縣。

注[二]索隱音古。鄭玄注周禮云「行曰商,處曰賈」。

注[三]集解徐廣曰:「一本云『陽翟大賈也,往來賤買貴賣』也。」索隱王劭賣

音作育。案:育賣義同,今依義。

秦昭王四十年,太子死。

其四十二年,以其次子安國君[一]為太子。

安國君有子二十餘人。安國君有所甚愛姬,

立以為正夫人,號曰華陽夫人。

진소왕 40년(기원전 267년) 진나라의 태자가 죽었다.

42년 태자의 동생 안국군(安國君)을 태자로 삼았다.

안국군에게 20여 명에 달하는 아들이 있었고

평소에 매우 사랑하는 희첩이 있어

후에 그녀를 정비로 삼아 화양부인(華陽夫人)이라고 칭했다.

華陽夫人無子。安國君中男名子楚,[二]

子楚母曰夏姬,毋愛。

子楚為秦質[三]子於趙。

秦數攻趙,趙不甚禮子楚。

그러나 화양부인과의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다.

안국군의 아들 중에 이름이 자초(子楚)라고 있었는데

그의 모친은 하희(夏姬)였으나 안국군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자초는 조나라에 인질이 되었다.

진나라가 수차에 걸쳐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자초에게 진나라의 왕손에 대한 예를 행하지 않았다.

注[一]索隱名柱,後立,是為孝文王也。

注[二]索隱莊襄王也。戰國策曰本名異人,後從趙還,不韋使以楚服見,王

后悅之,曰「吾楚人也而子字之」,乃變其名曰子楚也。

注[三]索隱舊音致,今讀依此。穀梁傳曰「交質不及二伯」。左傳曰「信不由中,

質無益也」。

子楚,秦諸庶孽孫,[一]

質於諸侯,車乘進用[二]不饒,居處困,不得意。

呂不韋賈邯鄲,見而憐之,曰

「此奇貨可居」。[三]

  자초는 진나라의 서얼 춘신의 왕손으로

제후의 나라에 인질이 되어 거마를 타고 행차할 때도 충분치 못했고

거차하는 숙소는 곤궁하여 마음먹은 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여불위가 한단에 장사하러 왔다가 지나가는 자초를 보고

매우 측은하게 여기며 말했다.

“ 참으로 사둘만만 진기한 재화로다!”

乃往見子楚,說曰:「吾能大子之門。」

그리고는 곧바로 자초를 찾아가 말했다.

" 저는 공자의 문호를 크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子楚笑曰:「且自大君之門,而乃大吾門!」

자초가 웃으며 말했다.

" 우선 그대 자신의 집 문호를 크게 만들고,

이후에나 내 집의 문호를 넓히시오."

呂不韋曰:「子不知也,吾門待子門而大。」

여불위가 말했다.

" 공자께서는 모르시고 계십니다.

우리집의 문호는 공자를 맞이하기 위해 이미 크게 높여놨습니다. "

子楚心知所謂,乃引與坐,深語。[四]

呂不韋曰:

자초가 마음 속으로 여불위의 뜻을 짐작하고

여불위를 인도하여 자리에 앉도록 한 다음

마음속에 품고 있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불위가 다시 말했다.

「秦王老矣,安國君得為太子。

竊聞安國君愛幸華陽夫人,華陽夫人無子,

能立適嗣者[五] 獨華陽夫人耳。

" 진왕은 연세가 매우 연로하고

안국군은 태자가 되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안국은 화양부인(華陽夫人)을 사랑하고 있으나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있으니

누가 태자의 뒤를 이을 황태손으로 설지는

오로지 화양부인에게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今子兄弟二十餘人,

子又居中,不甚見幸,久質諸侯。

即大王薨,安國君立為王,

則子毋幾得與長子[六]

及諸子旦暮在前者爭為太子矣。」

지금 공자의 형제는 모두 20여 인에 달하고

그 중 공자의 서열은 중간 정도이나 크게 총애를 받지 못한 결과

오랫동안 제후들의 나라에 인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진왕께서 돌아가신다면

부친이신 안국군께서 왕위에 오르더라도

공자께서는 장자가 될 기회도 없을뿐 아니라

여러 공자들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안국군 앞에서

경쟁하여 태자가 될 기회도 없습니다. "

子楚曰:「然。為之柰何?」

자초가 말했다.

"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

呂不韋曰:

「子貧,客於此,

非有以奉獻於親及結賓客也。

不韋雖貧,請以千金為子西游,

事安國君及華陽夫人,立子為適嗣。」

여불위가 답했다.

" 공자께서는 가진 재물이 없이 이곳에서 인질생활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진나라에 계시는 부친이나 화양부인께 바칠 것도 없고

또 이곳에서 빈객들과 사귈 수도 없습니다.

이 사람이 비록 가난하다하나

청컨대 천금의 돈을 가지고 서쪽으로 들어가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받들어 공자를 적서로 세우려고 합니다. "

子楚乃頓首曰:

「必如君策,請得分秦國 與君共之。」

자초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 일이 그대의 계획대로 된다면

약속컨대 진나라를 나누어 그대와 함께 다스리겠소."

注[一]索隱韓王信傳亦曰「韓信,襄王孫」。張晏曰「孺子曰子」。何休注

公羊「,賤子也。以非嫡正,故曰」。

注[二]索隱按:下文云「以五百金為進用」,宜依小顏讀為「賮」,音才刃反。

進者,財也,古字假借之也。

注[三]集解以子楚方財貨也。正義戰國策云:「濮陽人呂不韋賈邯鄲,見秦質子

異人,謂其父曰:『耕田之利幾倍?』曰:『十倍。』『珠玉之贏幾倍?』曰:『百倍。』『立主定國之贏幾倍?』

曰:『無數。』不韋曰:『今力田疾作,不得煖衣飽食;今定國立君,澤可遺後

世,願往事之。』秦子異人質於趙,處於城,故往說之。乃說秦王后弟陽泉

君曰:『君之罪至死,君知之乎?君門下無不居高官尊位,太子門下無貴者,而

駿馬盈外廄,美女充後庭。王之春秋高矣,一日山陵崩,太子用事,君危於累

卵,而不壽於朝生。今有計可以使君富千萬,寧於太山,必無危亡之患矣。』

陽泉曰:『請聞其說。』不韋曰:『王年高矣,王后無子。子傒有承國之業,士

倉又輔之。王一日山陵崩,子傒立,士倉用事,王后之門必生蓬蒿。子楚異人,

賢材也,棄在於趙,無母,引領西望,欲一得歸。王后誠請而立之,是異人無

國有國,王后無子有子。』陽泉曰:『諾。』入說王后,為請於趙而歸之。」

注[四]索隱謂既解不韋所言之意,遂與密謀深語也。

注[五]正義適音嫡。

注[六]索隱毋音無。幾音冀。幾,望也。左傳曰「日月以幾」。戰國策曰「子傒

承國之業」。高誘注云「子傒,秦太子異人之異母兄弟也」。正義言子楚無望得

為太子。

呂不韋乃以五百金與子楚,為進用,結賓客;

而復以五百金買奇物玩好,自奉而西游秦,

여불위는 5백 금을 자초에게 주어

빈객들과 교분을 맺는 데 쓰도록 하고

자기는 나머지 5백 금으로 기이한 보물과 노리개를 사서 휴대하고

서쪽의 진나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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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八十四

屈原賈生列傳第二十四

굴원가생열전 제24

24-2.가의열전 04

後歲餘,賈生徵見。

孝文帝方受釐,[一]坐宣室。[二]

그후 1년여 뒤에 가생은 왕의 부름을 받고 알현했다.

효문제는 제사 음복을 받고 선실(宣室)에 있었다.

上因感鬼神事,而問鬼神之本。

왕은 귀신의 일에 느낀 바 있어

귀신의 근본에 대해 질문했다.

注[一]集解徐廣曰:「祭祀福胙也。」駰案:如淳曰「漢唯祭天地五畤,皇帝不

自行,祠還致福」。釐音僖。

注[二]集解蘇林曰:「未央前正室。」索隱三輔故事云:「宣室在未央殿北。」

應劭云:「釐,祭餘肉也。音僖。」

賈生因具道所以然之狀。至夜半,文帝前席。

가생이 그 상태를 말하는 가운데

밤중에 이르렀고

문제(文帝)는 앞으로 다가앉았다.

既罷,曰:

「吾久不見賈生,自以為過之,今不及也。」

이야기를 마치자 문제가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가생을 보지 못하여

스스로 가생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미치지 못하는구나.”

居頃之,拜賈生為梁懷王太傅。[三]

얼마 후에 가생을 양 회왕의 태부로 임명했다.

注[三]索隱梁懷王名楫,文帝子。

梁懷王,文帝之少子,

愛,而好書,故令賈生傅之。

양나라 회왕은 문제의 소자로

문제의 사랑을 받았고 글을 좋아했다.

그리하여 가생을 태부로 삼았다.

文帝復封淮南厲王子四人皆為列侯。

賈生諫,以為患之興自此起矣。

문제는 회남 여왕의 아들 4인을 모두 열후로 삼았다.

가생은 환난이 여기에서 일어난다고 간(諫)하였다.

賈生數上疏,言諸侯或連數郡,

非古之制,可稍削之。文帝不聽。

가생은 여러 차례 상소했다.

제후가 여러 군을 연병하는 것은

옛 제도가 아니니 이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했으나

문제는 듣지 않았다.

居數年,懷王騎,墮馬而死,[一]無後。

賈生自傷為傅無狀,哭泣歲餘,亦死。

수년 후 회왕은 말을 타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후사가 없었다.

가생은 태부로 해놓은 일이 없음을 상심하고

한 해 남짓 곡읍하다가 또한 죽었다.

注[一]集解徐廣曰:「文帝十一年。」

賈生之死時年三十三矣。

及孝文崩,孝武皇帝立,

舉賈生之孫二人至郡守,

가생이 죽을 때의 나이는 33세였다.

효문제가 죽고 효무황제가 서게 되었을 때

가생의 손자 두 사람이 기용되어 군수에 이르렀다.

而賈嘉最好學,世其家,與余通書。

가가(賈嘉)는 학문을 매우 좋아하여 대를 이었는데

나와도 편지 왕복이 있었다.

至孝昭時,列為九卿。

효소제 때에 이르러 구경(九卿)의 반열에 참여했다.

太史公曰:

余讀離騷﹑天問﹑招魂﹑哀郢,悲其志。

適長沙,觀屈原所自沈淵,[一]

未嘗不垂涕,想見其為人。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離騷﹑ 天問 ﹑招魂 ﹑哀郢 등의 초사를 읽고 굴원의 뜻을 슬퍼했다.

또 장사에 가서 굴원이 스스로 빠져죽은 못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그의 사람됨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注[一]索隱按:荊州記云「長沙羅縣,北帶汨水。去縣四十里是原自沈處,北岸有廟也」。

及見賈生弔之,

又怪屈原以彼其材,游諸侯,

何國不容,而自令若是。

가생이 굴원을 조상한 글을 볼 적에,

또 굴원이 그만한 재질로 제후들을 유세하였다면

어느 나라엔들 용납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스스로 이 같은 최후를 맞은 것을 괴이히 여겼다.

讀服烏賦,同死生,輕去就,

又爽[二]然自失矣。

<복조부>를 읽어보니

죽고 사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가볍게 여겼다.

또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아 멍하니 자신을 잊었다.

注[二]集解徐廣曰:「一本作『奭』。」

【索隱述贊】屈平行正,以事懷王。瑾瑜比潔,日月爭光。忠而見放,讒者益

章。賦騷見志,懷沙自傷。百年之後,空悲弔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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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八十四

屈原賈生列傳第二十四

굴원가생열전 제24

24-2.가의열전 03/ `服賦`

賈生為長沙王太傅[一]三年,

有鴞飛入賈生舍,止于坐隅。

가생이 장사의 태부가 된 지 삼 년에

올빼미가 날아와서 집에 들어와 방구석에 앉았다.

注[一]索隱為長沙傅。案:誼為傅是吳芮之玄孫產襲長沙王之時也,非景帝之

子長沙王發也。荊州記「長沙城西北隅有賈誼宅及誼石在矣」。正義漢文帝年

表云吳芮之玄孫差襲長沙王也。傅為長沙靖王差之二年也。括

地志云:「吳芮故城在潭州長沙縣東南三百里。賈誼宅在縣南三十步。湘水記云

『誼宅中有一井,誼所穿,極小而深,上斂下大,其狀如壺。傍有一局石,

容一人坐,形流古制,相承云誼所坐』。」

楚人命鴞曰「服」。[二]

賈生既以適居長沙,

長沙卑溼,自以為壽不得長,

傷悼之,乃為賦以自廣。[三]

초나라 사람들은 올빼미를 ‘복’이라 부른다.

가생은 이미 귀양가서 장사에 있고,

장사는 땅이 낮고 습기가 많아서

수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것을 상심하고 슬퍼하여 이에 부를 지어 스스로 위안했다.

注[二]集解晉灼曰:「異物志有山鴞,體有文色,土俗因形名之曰服。不能遠飛,

行不出域。」索隱案:鄧展云「似鵲而大」。晉灼云「巴蜀異物志有鳥*[如]*小

?,體有文色,土俗因形名之曰服。不能遠飛,行不出域」。荊州記云「巫縣有

鳥如雌?,其名為鴞,楚人謂之服」。吳錄云「服,黑色,鳴自呼。」

注[三]索隱案:姚氏云「廣猶寬也」。

其辭曰:

부(賦))의 글은 이러하다.

[제1단]

單閼之歲兮,[一]四月孟夏,

庚子日施兮,

모년 사월 초여름

경자일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을 때에

注[一]集解徐廣曰:「歲在卯曰單閼。文帝六年歲在丁卯。」索隱爾雅云「歲在

卯曰單閼」。李巡云「單閼,起也,陽氣推萬物而起,故曰單閼」。孫炎本作「蟬

焉」。蟬猶伸也。正義閼,烏葛反。

服集予舍,[二]止于坐隅,

貌甚閒暇。

복(올빼미)이 나의 여사에 와서 방구석에 앉으니

그 모습이 매우 한가로웠다.

注[二]集解徐廣曰:「施,一作『斜』。」索隱施音移。施猶西斜也。漢書作「斜」也。

異物來集兮,私怪其故,

이상한 새 날아와 멈춰 있는 것을

내 그 까닭을 괴이히 여겨

發書占之兮,筴言其度。[三]

책을 펴고 점쳤더니

점쾌가 길흉을 일러주기를,

注[三]索隱漢書作「讖」。案:說文云「讖,驗言也」。今此「筴」蓋雜筴辭云然。

正義發策數之書,占其度驗。

曰「野鳥入處兮,主人將去」。

‘들새가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주인이 장차 떠나리라.’ 였다.

請問于服兮:[四]

복에게 청해 묻노니,

注[四]索隱于,於也。漢書本有作「子服」者,小顏云「子,加美辭也」。

「予去何之?吉乎告我,

凶言其菑。[五]

내 가면 어디로 갈 것인가?

길한 징조인가 내게 알려라.

흉한 징조인가 그 재앙을 말하라

注[五]正義音災。

淹數之度兮,語予其期。」[六]

더디고 빠른 시기를 내게 말해다오.

注[六]集解徐廣曰:「數,速也。」

服乃歎息,舉首奮翼,

복이 이에 탄식하고

머리를 들고 날개를 떨친다.

口不能言,請對以意。[七]

입으로 말할 수 없으니

청컨대 뜻으로 대답하리라.

注[七]索隱協音臆也。正義協韻音憶。

[제2단]

萬物變化兮,固無休息。

만물은 항상 변화하여

진실로 휴식함이 없네.

斡流而遷兮,[一]或推而還。

돌아 흘러서 옮겨가고

혹은 밀어서 돌아간다.

注[一]索隱斡音烏活反。斡,轉也。

形氣轉續兮,變化而。[二]

형체와 기운이 굴러가며 서로 이어져

변화함이 매미가 선탈(蟬脫)함과 같아서

注[二]集解服虔曰:「音如蟬,謂變蛻也。」或曰蟬蔓相連也。索隱韋昭云:

「而,如也。如蟬之蛻化也。」蘇林云:「音蟬,謂其相傳與也。」

沕穆無窮兮,[三]胡可勝言!

그 이치 깊고 아득하여 끝이 없네.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注[三]索隱漢書「無窮」作「無閒」。沕音密,又音昧。沕穆,深微之貌。以言

其理深微,不可盡言也。正義沕音勿。

禍兮福所倚,[四]福兮禍所伏;[五]

화란 복이 의지하는 곳

복이란 화가 숨어 있는 곳.

注[四]正義於犧反,依也。

注[五]索隱此老子之言。然「禍」字古作「」。案:倚者,立身也。伏,下身

也。以言禍福遞來,猶如倚伏也。

憂喜聚門兮,吉凶同域。[六]

근심과 기쁨은 한 문에 모이고

길흉은 지경을 같이 한다네.

注[六]正義言禍福相因,吉凶不定。

彼吳彊大兮,夫差以敗;

오나라 창대하였으나

부차는 패배하였고

越棲會稽兮,句踐霸世。

월나라 회계에 깃들었으나

구천은 세상에 패자(霸者)가 되었네.

斯游遂成兮,卒被五刑;[七]

이사는 유세에 성공하였으나

마침내 오형을 받았으며

注[七]集解韋昭曰:「斯,李斯也。」

傅說胥靡兮,[八]乃相武丁。

부열은 형도(刑徒)였으나

마침내 무정의 정승이 되었네.

注[八]集解徐廣曰:「腐刑也。」索隱徐廣云:「胥靡,腐刑也。」晉灼云:「胥,

相也。靡,隨也。古者相隨坐輕刑之名。」墨子云「傅說衣褐帶索,傭築於傅

巖」。傅巖在河東太陽縣。又夏靖書云「猗氏六十里黃河西岸吳阪下,便得隱穴,

是說所潛身處也」。

夫禍之與福兮,何異糾纆。[九]

화와 복의 관계는

새끼의 눈과 무엇이 다르랴.

注[九]集解應劭曰:「福禍相為表裏,如糾纆繩索相附會也。」瓚曰:「糾,絞

也。纆,索也。」索隱韋昭云:「纆,徽也。」又通俗文云:「合繩曰糾。」字

林云:「纆三合繩也,音墨。」糾音九。

命不可說兮,孰知其極?

천명이란 말할 수 없는 것,

누가 그 궁극의 이치를 알 수 있으랴.

水激則旱兮,矢激則遠。[一0]

물은 격돌하면 곧 빨라지고

화살은 격하면 멀리 가는 법.

注[一0]索隱此乃淮南子及鶡冠子文也。彼作「水激則悍」。而呂氏春秋作「疾」,

以言水激疾則去疾,不能浸潤;矢激疾則去遠也。說文「旱」與「悍」同音,

以言水矢流飛,本以無礙為通利,今遇物觸之,則激怒,更勁疾而遠悍,猶人

或因禍致福,倚伏無常也。

萬物回薄兮,振蕩相轉。

만물은 회전하면서

서로 부딪치고 진동하며 회전한다.

雲蒸雨降兮,錯繆相紛。

수증기 구름 되고 비 되어 내리니

교착하고 얽히어 서러 분분하구나.

大專槃物兮,[一一]坱軋無垠。[一二]

조화의 신이 만물을 주조함에

넓고 커서 한계가 없구나.

注[一一]集解漢書「專」字作「鈞」。如淳曰:「陶者作器於鈞上,此以造化為

大鈞。」索隱漢書云「大鈞播物」,此「專」讀曰「鈞」。槃猶轉也,與播義同。

如淳云:「陶者作器於鈞上,以造化為大鈞也。」虞喜志林云:「大鈞造化之神,

鈞陶萬物,品授形者也。」案:上鄒陽傳注云「陶家名模下圓轉者為鈞,言

其能制器大小,以比之於天」。

注[一二]集解應劭曰:「其氣坱軋,非有限齊也。」坱音若。央軋音若乙。索隱

坱圠無垠,應劭云:「其氣坱圠,非有限齊也。」案:無垠謂無有際畔也。說文

云「垠,圻也」。郭璞注方言云「坱圠者,不測也」。王逸注楚詞云「坱圠,雲

霧氣昧也」。正義坱,烏郎反。軋,於點反。

天不可與慮兮,[一三]道不可與謀。

하늘의 이치는 예측할 수 없고

도(道)는 심원하여 미리 꾀할 수 없다.

注[一三]索隱與音預也。

遲數有命兮,惡識其時?

더디고 바른 것은 명수가 있는 것

어찌 그 때를 알 수 있으랴.

[제3단]

且夫天地為鑪兮,造化為工;[一]

또한 저 천지란 커다란 풀무,

조화는 공장이고

注[一]索隱此莊子文。

陰陽為炭兮,萬物為銅。[二]

음양은 숯이며

만물은 구리쇠.

注[二]索隱既以陶冶喻造化,故以陰陽為炭,萬物為銅也。

合散消息兮,安有常則;[三]

합치고 흩어지고 녹이고 더하는 것이

어찌 일정한 법칙이 있으랴.

注[三]索隱莊子云:「人之生也,氣之聚也,聚則為生,散則為死。」

千變萬化兮,未始有極。[四]

천변만화함이

본래부터 끝이 없다.

注[四]索隱莊子云:「人之形千變萬化,未始有極。」

忽然為人兮,何足控摶;[五]

홀연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무얼 그리 틀어잡고 아끼리오?

注[五]集解如淳曰:「控,引也。控摶,玩弄愛生之意也。」索隱按:控,引也。

摶音徒端反。控摶謂引持而自玩弄,貴生之意也。又本作「控揣」。揣音初委反,

又音丁果反。揣者,量也。故晉灼云「或然為人,言此生甚輕耳,何足引物量

度己年命之長短而愛惜乎」!

化為異物兮,[六]又何足患![七]

변화하여 이물이 된들

또 무얼 그리 근심하리오?

注[六]索隱謂死而形化為鬼,是為異物也。

注[七]索隱協音環。

小知自私兮,賤彼貴我;[八]

적은 지혜로 스스로 사사로이

저것은 천박하고 나는 귀중하다 한다.

注[八]索隱莊子云「以物觀之,自貴而相賤」是也。

通人大觀兮,物無不可。[九]

통달한 사람이 크게 보면

어떤 물건이건 불가한 것은 없다.

注[九]索隱莊子云「物固有所然,物固有所可,無物不然,無物不可」也。

貪夫徇財兮,烈士徇名;[一0]

탐욕하는 이는 목숨 걸고 재물을 구하고

열사는 이름을 위하여 순절한다.

注[一0]集解應劭曰:「徇,營也。」瓚曰:「以身從物曰徇。」索隱此語亦出

莊子。臣瓚云「亡身從物謂之殉」也。

夸者死權兮,[一一]品庶馮生。[一二]

자랑하는 이들은 권세에 목숨을 걸고

서민들은 무작정 생에 매달린다.

注[一一]集解應劭曰:「夸,毗也。好營死於權利。」瓚曰:「夸,泰也。莊子

曰『權勢不尤,則夸者不悲』也。」索隱言好夸毗者死於權利,是言貪權勢以

自矜夸者,至死不休也。按:犍為舍人注爾雅云「夸毗,卑身屈己也」。曹大家

云「體柔人之夸毗也」。尤,甚也。言勢不甚用,則夸毗者可悲也。

注[一二]集解孟康曰:「馮,貪也。」索隱漢書作「每生」,音謀在反。孟康云

「每者,貪也」。服虔云「每,念生也」。鄒誕本亦作「每」,言唯念生而已。今

此作「馮」,馮亦持念之意也。然案方言「每」字合從手旁,每音莫改反也。正

義馮音憑。

述迫之徒兮,或趨西東;[一三]

이익에 유혹되고 빈천에 쫓기는 무리들은

동서로 분주히 달린다.

注[一三]集解孟康曰:「怵,為利所誘怵也。迫,迫貧賤,東西趨利也。」索隱

漢書亦有作「私東」。應劭云:「仕諸侯為私。時天子居長安,諸王悉在關東,

小怵然,內迫私家,樂仕諸侯,故云『怵迫私東』也。」李奇曰:『私』多作

『西』者,言東西趨利也。」怵音黜。又言怵者,誘也。

大人不曲兮,[一四]億變齊同。

대인은 굽히지 않고

억만의 변화에도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

注[一四]索隱張機云:「德無不包,靈府弘曠,故名『大人』也。」

拘士繫俗兮 如囚拘;[一五],

세속에 얽매인 사람은

목책 속의 죄수와 같지만

注[一五]集解徐廣曰:「音華板反,又音脘。」索隱音和板反。說文云「,

大木柵也」。漢書作「」,音去隕反。

至人遺物兮,獨與道俱。[一六]

지덕을 지닌 사람은 만물을 초월하여

홀로 도(道)와 함께 한다.

注[一六]索隱莊子云:「古之至人先存諸己,後存諸人。」張機云:「體盡於聖,

德美之極,謂之至人。」

人或或兮,好惡積意;[一七]

많은 사람들은 의혹에 휩싸여

좋아하고 미워함을 가슴에 쌓아가지만

注[一七]集解李奇曰:「或或,東西也。所好所惡,積之萬億也。」瓚曰:「言

#懷抱好惡,積之心意。」正義按:意,合韻音憶。

真人淡漠兮,獨與道息。[一八]

진인(眞人)은 그 마음이 담박하여

홀로 도와 함께 안식한다.

注[一八]索隱莊子云:「古之真人,不知悅生,不知惡死,不以心捐道,不以人

助天。」呂氏春秋曰:「精氣日新,邪氣盡去,反其天年,謂之真人也。」

釋知遺形兮,超然自喪;[一九]

지식과 형체를 떠나

초연히 자신을 잃고

注[一九]集解服虔曰:「絕聖知而忘其身也。」索隱按:釋智謂絕聖智也。

遺形者,「形故可使如槁木」是也。自喪者,謂「心若死灰」也。莊周云「今者

吾喪我,汝知之乎」?

寥廓忽荒兮,與道翶翔。

마음이 광대무변하여

도와 함께 비상한다.

乘流則逝兮,得坻則止;[二0]

흐름을 타면 흘러가고

물가에 닿으면 멈춰선다.

注[二0]集解徐廣曰:「坻,一作『坎』。」駰案:張晏曰「坻,水中小洲也」。

索隱漢書「坻」作「坎」。按:周易坎「九二,有險」,言君子見險則止。

縱軀委命兮,不私與己。

몸을 내놓아 천명에 맡기고

자신을 사사로운 것으로 하지 않는다.

其生若浮兮,其死若休;[二一]

삶은 뜬구름 같고

죽음은 휴식과 같은 것.

注[二一]索隱莊子云「勞我以生,休我以死」也。

澹乎若深淵之靜,氾乎若不繫之舟。[二二]

담담함은 심연의 고요함과 같고

둥둥 떠 있는 것은 매어놓지 않은 배와 같아라.

注[二二]索隱出莊子也。

不以生故自寶兮,[二三]養空而浮;[二四]

살아있음을 스스로 귀중히 여기지 않고

공허한 마음을 길러 부유(浮游)한다.

注[二三]索隱鄧展云:「自寶,自貴也。」

注[二四]集解漢書音義曰:「如舟之空也。」索隱言體道之人,但養空性而心若浮舟也。

德人無累兮,[二五]知命不憂。

덕 있는 사람에겐 허물됨이 없다.

천명을 알고 근심하지 않는다.

注[二五]索隱按:德人謂上德之人,心中無物累,是得道之士也。

細故蔕芥兮,何足以疑![二六]

자잘한 사고(事故)란 초목의 가시 같은 것

어찌 의심하리오?

注[二六]集解韋昭曰:「音士介反。」索隱音介。漢書作「介」。張楫云:「遰

介,鯁刺也。以言細微事故不足遰介我心,故云『何足以疑』也。」正義,忍邁反。,加邁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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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八十四

屈原賈生列傳第二十四

굴원가생열전 제24

24-2.가의열전 02/ '신'

訊曰:[一]

신(訊)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注[一]集解李奇曰:「訊,告也。」張晏曰:「訊,離騷下章亂辭也。」索隱誶

曰。李奇曰:「誶,告也,音信。」張晏曰:「訊,離騷下章誶亂也。」劉伯莊

音素對反。訊猶宣也,重宣其意。周成﹑師古音碎也。

已矣,國其莫我知,

그만이로구나

나라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獨堙鬱兮[二] 其誰語?

홀로 답답하고 분한 마음

누구에게 말하랴.

注[二]索隱漢書作「壹鬱」,意亦通。

鳳漂漂其高遰[三]兮,

夫固自縮而遠去。[四]

注[三]索隱音逝也。

注[四]索隱縮,漢書作「引」也。

봉황새는 훨훨 날아 멀리 갔네

진실로 스스로 위축하여 멀리 갔네.

襲九淵之神龍兮,[五]

沕[六]深潛以自珍。[七]

깊은 못을 덮친 신룡은

깊이깊이 잠기었네.

注[五]集解鄧展曰:「襲,重也。」或曰襲,覆也,猶言察也。索隱襲,復也。

莊子曰「千金之珠必在九重之淵,而驪龍頷下」,故云「九淵之神龍」也。

注[六]集解徐廣曰:「亡筆反。」

注[七]集解徐廣曰:「沕,潛藏也。」索隱張晏曰:「沕,潛藏也。音密,又音勿也。」

彌融爚[八]以隱處兮,[九]

夫豈從螘與蛭螾?[一0]

스스로 제 몸을 소중히 간직하여 광명을 멀리하고 숨어지낼 뿐

어찌 개미, 거머리, 당강아지들에게 추종하랴.

注[八]集解徐廣曰:「一云『偭獺』。」

注[九]集解徐廣曰:「一本云『彌蝎爚以隱處』也。」索隱漢書作「偭獺」,

徐廣又一本作「彌蝎爚以隱處」,蓋總三本不同也。案:蘇林云「偭音面」。應

劭云「偭,背也。獺,水蟲,害魚者。以言背惡從善也」。郭璞注爾雅云「似

鳧,江東謂之魚鵁」。正義顧野王云:「彌,遠也。融,明也。爚,光也。」沒

深藏以自珍,彌遠明光以隱處也。

注[一0]集解漢書「螘」字作「蝦」。韋昭曰:「蝦,蝦也。蛭,水蟲。螾,

丘螾也。」索隱螘音蟻。漢書作「蝦」。言

偭然絕於獺,況從蝦與蛭螾也。蛭音質。螾音引也。正義言寧投水合神龍,

豈陸葬從蟻與蛭蚓。

所貴聖人之神德兮,

遠濁世而自藏。

소중히 여길 것은 성인의 신덕이니

탁한 세상 멀리 떠나 자신을 감추네.

使騏驥可得係羈兮,

豈云異夫犬羊![一一]

준마에게 굴레를 매어둔다면

어찌 개나 양과 다르랴.

注[一一]正義使騏驥可得係縛羈絆,則與犬羊無異。責屈原不去濁世以藏隱。

騏文如綦也。驥,千里馬。

般紛紛其離此尤兮,[一二]

亦夫子之辜也![一三]

반환(槃桓)하며 마음 산란하여 머뭇거리다 이런 화에 걸린 것도

또한 선생의 허물이로다.

注[一二]集解蘇林曰:「般音盤。」孟康曰:「般音班。」或曰盤桓不去,紛紛

構讒意也。索隱般音班,又音盤,槃桓也。紛紛猶藉藉,構讒之意也。尤謂怨咎也。

注[一三]索隱漢書「辜」作「故」。夫子謂屈原也。李奇曰:「亦夫子不如麟鳳

翔逝之故,罹此咎也。」

瞝九州[一四]而相君兮,

何必懷此都也?

천하를 골고루 둘러보고 어진 임금 도울 일이지

하필이면 이 국도(國都)만을 생각했던가?

注[一四]索隱瞝,丑知反,謂歷觀也。漢書作「歷九州」。

鳳皇翔于千仞之上兮,

覽悳煇而下之;[一五]

봉황새는 천 길 높은 하늘 위를 날다가

덕의 밝은 광휘 보이면 거기 내리고

注[一五]索隱案:言鳳皇翔,見人君有德乃下。故禮曰「德煇動乎內」是也。

見細德之險*(微)**[]*兮,

搖增翮[一六]逝而去之。[一七]

작은 덕에서 험난한 징조를 보면

날개를 크게 저어 거기서 떠난다네.

注[一六]集解徐廣曰:「一云『遙增擊』也。」

注[一七]正義搖,動也。增,加也。言見細德之人,又有險難微起,則合加動羽翮,遠逝而去之。

彼尋常之汙瀆兮,[一八]

豈能容吞舟之魚!

저 심상한 작은 못이나 도랑에

어찌 배를 삼키는 큰 물고기를 용납하랴.

注[一八]集解應劭曰:「八尺曰尋,倍尋曰常。」索隱音烏獨二音。汙,潢汙;瀆,小渠也。

橫江湖之鱣鱏兮,[一九]

固將制於蟻螻。[二0]

강호를 가로지르는 전어나 심어 같은 大魚도

[한 번 작은 못이나 도랑에 들면]

진실로 땅강아지에 제압당하지.

注[一九]集解如淳曰:「大魚也。」瓚曰:「魚無鱗,口近腹下。」

注[二0]索隱莊子云庚桑楚謂弟子曰「吞舟之魚,蕩而失水,則螻蟻能制之」。

戰國策齊人說靖郭君亦同。案:以此喻小國暗主不容忠臣,而為讒賊小臣之所見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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