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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명 나라 사람 중 글로 이름을 날린 십대가(十大家)는
공동(崆峒) 이헌길(李獻吉)ㆍ양명(陽明) 왕백안(王伯安)ㆍ형천(荊川) 당응덕(唐應德)ㆍ
좨주(祭酒) 왕윤령(王允寧)ㆍ안찰(按察) 왕신중(王愼中)ㆍ심양(潯陽) 동분(董玢)ㆍ
녹문(鹿門) 모곤(茅坤)ㆍ창명(滄溟) 이반룡(李攀龍)ㆍ봉주(鳳洲) 왕세정(王世貞)ㆍ
남명(南溟) 왕도곤(汪道昆)인데,
이공동(李崆峒)은 오로지 서한(西漢)만 본받고,
왕세정ㆍ이반룡은 난삽한 글귀가 선진(先秦)을 앞지르고자 하고,
왕남명(汪南溟)은 화려하고 건실하며 동분ㆍ모곤은 평이하고 원숙하며,
왕신중은 풍부하다.
그러나 명 나라 사람은 모두 역겹게 여기며 진부하고 속되다고 한다.
나의 의견도 거의 같다.
백안(伯安)은 문(文)을 전공하지 않고 학문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박잡함을 면치 못하고,
형천(荊川)은 전아 순실(典雅純實)하여 모두 대가가 될 만하다.
왕원미(王元美)의 무리가 명인(明人)의 문장을 서한(西漢)에 비기고,
이헌길(李獻吉)을 태사공(太史公 사마천을 말함)에게 비기고,
우린(于鱗)은 양자운(揚子雲)에게 비기고,
자기는 사마상여(司馬相如)에게 비겼으니, 그 자기 자랑이 너무도 심하다.
우리나라 김계온(金季昷)ㆍ남지정(南止亭) [지정은 남곤(南袞)의 호]ㆍ김충암(金冲庵 )[충암은 김정(金淨)의 호]ㆍ노소재(盧蘇齋) [소재는 노수신(盧守愼)의 호]의 글은
명 나라 십대가 속에 넣어 동심양(董潯陽)이나 모녹문(茅鹿門)에 비긴다면 그다지 못할 것 없으나 중국에서 팔을 휘두르고 뽐낼 수 없음이 안타깝다.
계온(季昷)의 이름은 종직(宗直), 호는 점필재(佔畢齋)이며, 선산인(善山人)이다. 벼슬은 이조 판서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점필재가 제천정운(濟川亭韻)에 차운한 시에,
吹花劈柳半江風 취화벽유반강풍
檣影擔搖背暮鴻 장영담요배모홍
一片鄕心空倚柱 일편향심공의주
白雲飛度酒船中 백운비도주선중
꽃을 흩날리고 버들을 꺾는 반강 바람에
돛그림잔 석양 기러기를 진 채 건드렁거린다
한 조각 고향 생각에 부질없이 기둥에 기대니
흰 구름만 날아서 술 실은 배를 스치는구나
라 하였고, 보천탄즉사(寶川灘卽事)란 시에는,
桃花浪高幾尺許 도화랑고기척허
銀石沒頂不知處 은석몰정불지처
兩兩鸕鶿失舊磯 양양로자실구기
銜魚却入菰蒲去 함어각입고포거
복사꽃 필 때 이는 파도 그 몇 자런가
은빛 바윈 이마까지 묻혀 보이도 않는구나
쌍쌍이 나는 가마우지 옛 놀던 자갈밭 잃고는
물고기 입에 문 채 줄과 부들 속으로 날아드네
라 하였으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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