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19- 잔치 음식 담아오기 (郎伊食糧)

옛날에는 모두 가난하게 살았으니,

남의 잔치에 가서

좋은 음식을 좀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 욕망이 일곤 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한 사람이 대갓집 잔치에

초청을 받아 가면서

종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얘야, 커다란 자루를 하나

준비해서 가져가야 한다.

그래서 네게 먹으라는 음식이 나오면

모두 자루 속에 넣고

기침 소리를 내면,

내 상의 음식을 줄 테니

역시 자루에 넣어라.

그러고 나면

다시 기침 소리를 내야 하느니,

그 때 다른 사람의 상에서

음식을 집어다 주면

즉시 자루에 넣고

곧 다시 기침 소리를 내야 한다."

이와 같이

종과 단단히 약속을 하고는

잔칫집으로 갔다.

그리하여 종이 상전과 약속한 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음식을

모두 자루 속에 넣고 기침을 하니,

상전이 자기 앞에 놓인

상의 음식을 모두 종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아서 자루 속에 넣고,

또다시 종은 기침을 하여

신호를 보냈다.

이에 상전은 옆에 앉은 손님 상에서

슬그머니 음식을 가져다가

종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얘야, 이것을

낭이(郎伊)에게 갖다 주어라."

1)낭이(郎伊 : 주머니, 곧 자루.

그러자 종이 대답을 하면서

그 음식을 가지고 가서

자루 속에 넣었다.

이렇게 너댓 번을 계속하니,

이제 그 큰 자루에

음식물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담을 수 없게 되었다.

 

때는 정오가 훨씬 지났는데,

그 동안 좋은 음식 한 점

먹어보지 못하고

자루에만 담느라

배가 무척 고팠던 종은,

'이제 자루가 채워졌으니,

나도 좀 먹으라고

다른 손님 상에서

음식을 가져다주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일부러 길게 기침소리를 냈다.

이에 상전은

다른 손님 상에

남아 있는 음식을 가져와

종에게 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얘야, 이 음식도

낭이에게 갖다 주어라."

"영감마님!

이제 낭이는

양이 차서 구역질을 합니다."

"뭐라고? 그럴 리가 있나?

내 낭이의 양을 알고 있으니,

아직 더 먹을 수 있을 것이니라.

좀더 주어 보아라."

그러자 옆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돌아보면서 물었다.

"영감! 그 낭이가 누군데

그렇게 배가 커서

많이 먹는지요?"

"아, 그 낭이는

내가 데리고 있는 종이랍니다.

그 놈의 배가 워낙 커서

보통 사람보다

많은 음식을 먹는답니다."

상전은 이렇게 말하면서

종을 불러,

낭이에게 갖다 주라며

음식을 건네는 것이었다.

이에 배고픈 종은

울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자루에 음식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넣을 수도 없는데,

배고픈 종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왜 계속 자루에만

음식을 넣어라고 합니까?"

이와 같이 종은

상전을 욕하면서 달려나가,

곧바로 음식이 가득 찬

자루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잔칫상이 차려져 있는

손님들 자리에 왈칵 쏟아 버리자,

자루 속의 온갖 음식물이

마치 장맛비에 토사 쏟아지듯

쫙 흩어져 내렸다.

이를 본 손님들이

옷에 튄 음식물을 털고 일어서며

불평을 토하는데,

종은 딱 버티고 서서 소리쳤다.

"이것 보시라고요.

낭이란 놈이 어떻게 음식을

더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낭이에게

계속 음식을 주라고 하십니까?"

종은 더 이상

들어가지도 않는 자루에

계속 음식을 넣으라고 하면서,

굶주린 종의 뱃속은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는

상전을 원망하여

그 울분을 터뜨린 것이었더라

 

 

고금소총 제618- 그물 주머니째 잃다 (失網)

 

서울에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건망증이 너무 심해 금방 놓은 물건도 잊어버려 챙기지 못했다.

이 젊은이는 여러 번 과거를 보아 낙방을 했는데,

그 때마다 붓이며 벼루들을 잊어버리고 맨몸으로 돌아와

그 부친이 크게 걱정을 했다.

 

마침 과거가 있다는 방이 붙어 이 젊은이도 시험을 보러 가려고 하자,

그 부친이 무슨 장치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가는 노끈으로 커다란 그물 주머니를 하나 엮었다.

그리고는 과거장으로 들어가는 아들에게 이것을 주면서 당부했다.

"과거를 보고 나올 때는 붓이며 벼루 같은 도구를

모두 이 그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나오너라."

아들은 그렇게 하겠다면서 과거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시험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니 부친이 물었다.

"얘야, 붓 주머니는 어디에 있느냐?"

"예, 아버님 말씀대로 그물주머니에 담았습니다."

"응, 잘했구나. 그러면 운책(韻冊)은 어디에 있느냐?"

"예, 아버님. 그 운책도 주머니에 담았습니다."

"그랬다면 됐구나. 그러면 사집(私集)과 벼루는 어디 있느냐?"

"아버님, 그것도 모두 넣었습니다."

"그러면 됐다. 한대 그 모든 것을 담은 그물주머니는 왜 보이지 않느냐?

그건 어디에 두었느냐?"

이에 아들은 한참 동안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아버님! 그 주머니는 잊고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부친은 아들의 건망증을 고칠 수 없다면서 더 이상 챙기지 않았더라.

 

고금소총 제617- 그 물건도 함께 커진다 (金吾體大)

옛날에 한 사람이 오랫동안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침체해 있다가,

늦게서야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러니 한산하던 대문 앞이 갑자기 축하 손님들의 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복잡해졌고, 손님이 없어 먼지가 쌓이던 사랑채가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렇게 되니 그 부인은 접대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기분은 아주 좋았다.

그리하여 바쁘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그렇게 작고 초라해 보이던

남편의 몸이 갑자기 이렇게 커 보일 줄이야, 내 일찍이 상상이나 했던가!

이제야 남편의 큰 몸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구먼.'

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너무 좋아 가슴까지 설레었다.

'대감이 저녁에 들어오면 정말 몸이 커졌는지 물어보고 내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아마도 모든 부분이 다 커졌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인은 밤이 되기를 고대했다.

마침내 하루 해가 저물고 밤이 되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찾아오는 축하객을 맞느라 힘이 들고 지쳐서

피곤함을 느끼면서 저녁상을 받았다.

상머리에 앉은 부인은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 얼굴에 나타나 있는 피로한 기색은 느끼지 못하고,

그저 혼자 좋아하며 이렇게 물었다.

"여보! 당신 관직이 높고 위대해졌으니 신체도 따라 커진 것처럼 보이는데,

당신도 그런 게 느껴지는지요?"

이에 남편은 지치고 피곤하여 별로 귀담아 듣지도 않고,

그저 흘러가는 일상 대화로 여기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 그렇게 느껴졌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대체로 정승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몸이 크고 무거워 보인다오."

이 말을 듣고 부인은 너무나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밤이 깊었다.

남편이 안방으로 들어와 잠잘 준비를 하여 이불 속에 들었다.

이때 부인은 기분이 좋아서 남편의 몸을 만지며 야릇한 동작을 보이니,

남편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경험으로 부인이 살을 맞대고

놀고 싶어한다는 눈치를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부인의 옷을 벗기고, 피곤하여 잘 서지 않는 연장을 억지로 세워

부인의 음호에 접근시키고 힘을 주어 밀었다.

그러자 부인은 갑자기 화를 내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 내게 거짓말을 했군요. 조금 전에 관직이 높아지면

몸도 따라 커진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몸이 커진 만큼 당신의 연장도 따라 커졌어야 하는데,

지금 보니 다른 때보다 오히려 작게 느껴지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왜 그래요?"

이에 남편은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은 지위가 높아질수록 책임감이 무겁고 생각해야 할 일이 많아지며,

또한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니 심신이 피곤하여 

부인과의 잠자리가 도리어 위축되지만,

부인은 남편의 출세에 따른 자랑스러운 마음이 오히려 기분을 좋게 하여,

애정적 충동이 상승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전에 몸이 커지느냐고 묻던 부인의 말에 대한 참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에 남편은 혼자 빙긋 웃고는, 부인의 몸에 충격을 가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여보, 내 지위가 높아져 몸이 커진 것은 나와 경쟁 상태에 있는

내 친구들이 가장 잘 느낀다오.

그리고 내 몸이 커진 만큼 나의 연장도 물론 따라 커지는데,

당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첩들은 예민하게 느낀다오."

"여보 대감! 연장이 커진 것을 아내인 내가 알지 못하는데,

천한 첩들이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그건 말이 되지 않지요?"

그러자 남편은 좀더 힘을 내어 부인의 음호를 충격하면서,

그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했다.

"부인, 잘 들어요. 부인은 잘 모르는 문제가 있소.

남편의 지위가 높아지면, 그 부인의 지위와 호칭도 높아지지 않소.

그래서 남편의 몸이 커짐에 따라 그 연장도 자연히 커지게 마련인데,

남편 따라 지위가 높아진 부인의 몸 역시 동시에 커지는 법이요.

부인의 몸이 따라 커지니, 부인의 음호도 몸과 함께 커질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소.

이렇게 함께 커지니 남편의 연장이 크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요.

지금 내 연장은 지위에 따라 함께 커졌지만, 

부인의 것도 함께 커져서 못 느끼는 것이라오."

"그런데 첩은 어떻게 커진 것을 느껴요?"

"부인, 그것은 남자의 지위와 몸이 아무리 커져도

첩이란 부인과는 달라서, 지위가 높아지는 것이 없질 않소.

그래서 몸도 따라서 커지지 않고 그 음호도 그대로 있어,

커진 남자의 연장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라오."

이에 부인은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었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616- 지혜로 화를 면한 신랑 (智郞免禍)

 

옛날 어느 고을에 형리 사령(刑吏使令)1)이 있었다.

1)형리 사령(刑吏使令) : 지방 관아의 형방 밑에서 명령을 받드는 관리.

그 사령이 마침 서울에서 한 대감을 모시게 되었는데,

하루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많이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길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한동안 깊이 잠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밤중이었고,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밤이 매우 깊은 줄을 알았다.

'어떻게 한담? 밤이 매우 깊은 것 같은데..,

이 시각에 집으로 돌아가다간 필시 순라군에게 잡혀 고통을 당할 테고,

어쩐다? 어디 숨어서 밤을 지낼 곳이 없을까?'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마침 길옆 담장이 무너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옳지, 저 담장 안에 숨어 있다가 날이 밝으면 얼른 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달려가 그 무너진 담장 안으로 살짝 몸을 들여놓고 앉았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니 그곳은 어느 양반 대갓집 후원 뜰이었다.

사령은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앉아 있다가 이 집 사람들에게 들키면

도둑으로 몰려 큰 화를 당할 터인데,

다른 곳으로 가서 숨어야겠다.'

그리하여 후원에 키 큰 나무 한 그루가 보이기에

급히 그 위로 기어올라가, 나뭇가지 위에 웅크리고 앉아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이었다.

동쪽으로부터 열대여섯 살 된 대갓집 규수로 보이는 한 처녀가

후원으로 와서는 담뱃대를 물고 돌계단에 앉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는 건너편 서쪽에서 담장 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총각이 다가와 처녀 옆에 앉았다.

처녀와 총각은 돌계단에 앉아 껴안기도 하고 입도 맞추는 등

온갖 난잡한 장난을 하면서 한참 동안 서로 희롱하며 노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처녀가 말했다.

"이봐요, 우린 어떻게 하면 좋지요?

내일이면 나는 혼례식을 올리고

새신랑을 따라 시집가야 할 터인데,

그럼 우린 다시 만날 수 없잖아요.

새신랑을 어떻게 처치한다 해도 그게 어찌 쉬운 일이겠어요?"

그러자 총각은 한동안 묵묵히 있다가 처녀를 껴안으면서

가만히 속삭이듯 말했다.

"내 말 잘 들어요. 나에게 좋은 계책이 있으니,

내 말대로 차질 없이 시행만 하면 좋은 수가 생길 것이요."

"그게 무슨 수인데요? 어서 말해 보세요."

"잘 들어요. 내가 삼 노끈을 준비해 줄 테니,

첫날밤에 자지 않고 있다가 신랑이 잠들거든

그 음낭(陰囊)을 노끈으로 단단히 묶도록 해요.

그런 다음 끈의 한쪽을 창문 밖으로 내놓으면,

내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노끈을 힘껏 잡아당겨

죽게 할 것이요."

이에 처녀가 약속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총각은 다시 담장을 넘어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목격한 사령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통탄해 하면서,

이제 곧 날이 밝으려 하자 나무에서 내려와 살그머니

대문 있는 곳으로 돌아나왔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보니 자신이 평소 알고 있는 한 재상의 집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사령은 그 이름난 재상 집 딸이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새신랑을 없애려 음모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실이 너무나 슬펐다.

이에 사령은 하루 종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자신이 모시는 대감이 불러 달려가니 다음과 같이 명령하는 것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예물을 전해야 할 일이 있으니,

늦지 않게 내 집으로 대령하여 기다리도록 하라."

이튿날 아침 일찍 사령이 기다리고 있자

대감이 선물을 건네며 전하라고 하는데,

그 집은 바로 지난밤을 지새운 그 재상 댁이었다.

사령은 예물을 가져가서 전해 드리고,

하루 종일 그 댁에서 얼쩡거리며 혼례 절차를 구경했다.

시간이 지나 해가 지고 밤이 되어 어두워졌다.

그래도 사령은 친척 손님처럼 보이며 그 댁에 남아 동정을 살폈다.

 

밤이 깊어졌을 때, 마침 신랑이 측간에 가기 위해

초롱을 들고 혼자 나오는 것이었다.

사령은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생각하고

급히 앞으로 나아가 절을 올리고는 말했다.

"도련님, 오늘밤에 반드시 무슨 일이 있을 것이옵니다.

부디 잠들지 마시고 밤을 새우면서 살피시기 바랍니다."

"아니, 넌 누구냐? 네 정체가 무엇이길래

그런 미치광이 소리를 하느냐? 어서 썩 물러가지 못할까!"

사령은 다른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 얼른 절을 하고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측간에서 돌아온 신랑은 옷을 벗고 신부와 나란히 누웠으나,

조금 전의 그 말이 마음에 걸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말에 무슨 곡절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는,

일부러 자는 체하며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신부가 살그머니 일어나 앉더니,

손에 뭔가를 쥐고 자기의 사타구니 사이를 더듬는 것이었다.

이에 신랑이 벌떡 일어나 손을 낚아채니 삼 노끈이었는데,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도 신부는 입을 다물고 그저 떨고만 있었다.

이에 신랑이 계속 다그쳐 물으니,

신부는 더 이상 속이지 못하고 어떤 총각과 통정한 사실이며

죽이려 했다는 얘기를 모두 털어 놓는 것이었다.

'이 여자를 살려 두었다가는 두 집안의 치욕이 될 것이요,

소문이라도 난다면 나의 출세에도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반드시 조용히 처치함이 마땅하다.'

신랑은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은 아팠지만 그대로 결행하기로 했다.

이에 곧 그 끈으로 신부의 목을 졸라 죽이고는 끈을 풀어 숨긴 다음,

신부를 이불에 말아 놓고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쳐 장인어른을 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장인 장모며 종들도 모두 달려나오자,

신랑은 이불에 싸인 신부 옆에서 통곡을 하며 말했다.

"신부가 갑자기 춥다면서 떨더니

손쓸 겨를도 없이 숨이 막혀 헐떡이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 무슨 변고입니까?"

장인 장모가 놀라 딸의 몸을 펼쳐 보았으나 이미 숨을 쉬지 않았고,

별다른 상처도 없어 신랑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집으로 돌아온 신랑은 집안사람 누구에게도

그 진실을 말하지 않은 채 그대로 숨기고 지나갔다.

 

그 뒤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신랑은 그 동안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참판 자리에 올랐을 때였다.

하루는 초헌을 타고 거리를 지나가다 보니,

 

낡은 도포에 헌 갓을 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 길가에 서 있었다.

이에 참판은 하인을 시켜 그 사람을 앞으로 불러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반가운 듯이 말을 건넸다.

"이 사람아, 그 동안 보이지 않더니 어찌 되었기에 이리도 초라한 모습인가?

자네는 내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자네를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다네."

참판은 이렇게 말하고는 하인을 불러 이르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우리 집안과 오래 전부터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네.

여러 해 동안 못 보다가 오늘 우연히 길에서 만났으니,

집으로 모시고 가서 잘 대접하도록 하게.

내 곧 일을 마치고 돌아갈 것이니 속히 모시고 가게."

이 사람은 영문을 몰라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하인을 따라 참판의 집으로 와서 좋은 음식을 대접받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온 참판은 이 사람을 조용히 불렀다.

"자네는 나를 알아보겠는가? 자네가 아니었으면 내 어찌 오늘이 있었겠는가?

자네는 내 은인이니라.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늘 생각해 왔는데,

오늘 천행으로 만나게 되어 기쁘도다."

참판이 이와 같이 은인이라고 하면서 환대하니

이 사람은,

"소인 본시 형리 사령으로 시골을 떠돌며 7,8년을 살았사옵니다.

그러는 사이 무슨 일로 수차례 서울에 들리기는 하였사오나

실로 대감을 뵌 적은 없사오며, 

더구나 은인이라고 하신 말씀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한 말씀이옵니다."

하면서 의문을 표하고 알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숙였다.

곧 참판은 주위의 사람들을 물리치고는 옛날 혼례를 치르던

그 첫날밤의 일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제야 비로소 이 사람은 너무나 감격해 하면서 아뢰었다.

"소인 비록 세월은 오래되었지만 그 당시 일을 어찌 잊겠사옵니까?

당시 신랑이 위태롭게 생각되어 알려 드린 것이었는데,

그 때의 신랑이 바로 대감이라니 뜻밖의 말씀에

정말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사옵니다. 소인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참판은 다시 그간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이 사람을 자신의 문하에 두고 재산을 늘려주면서 잘 돌봐 주니,

이 사람은 여생을 평안하게 보냈더라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