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11- 재빨리 둘러대 속이다 (急智善變)

한 선비가 있었는데,

집안에 얼굴이 예쁜 여종이 있어

마음에 두며 가까이하고 싶었지만,

여종 남편이 한집에서 일하고 있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그 남편을 멀리 심부름 보내 놓고,

그 동안 여종 방에 들어가서

즐기곤 했다.

한편, 이 사실을 눈치 챈

여종 남편은

항상 마음속에 한을 품고 있었다.

하루는 해가 지고

어두워질 무렵,

선비가 여종 남편을 불러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편지를 전하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다.

여종 남편이 생각해 보니

편지를 전하고 오면

제법 밤이 깊어질 것인데,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 주인이

자기 아내와 즐기기 위한

술책인 듯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증거를 잡아

추궁할 생각으로,

주인에게 편지를 받아 와서는

곧 아내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 주인어른께서

아무 동네에 사는 누구 집에

편지를 전하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는데,

난 지금 갑자기 복통이 나서

갈 수가 없소.

그러니 당신이

나 대신 다녀와야겠소.

난 아무래도 따뜻한 방에

좀 엎드려 있어야 할 것 같소."

이러면서 편지를 내미니,

아내는 하던 바느질을 거두고

옷을 갈아입은 뒤

급히 집을 나섰다.

이에 여종의 남편은 호롱불을 끄고,

아랫목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체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자 여종 남편의 예측은

완전히 적중했다.

선비는 여종의 남편이 심부름을 갔으니

당연히 여종 혼자 있을 줄 알고

살그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랫목 쪽으로 다가와 앉아,

이불 속으로 슬그머니 손을 넣고

더듬는 것이었다.

여종의 남편은 분노가 치밀고

진정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지만

꾹 참으며 한참 동안 기다렸다가,

덮고 있던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소리쳤다.

"어떤 놈이 남의 방에 들어와서

무슨 도둑질을 하려고

이리 더듬느냐?

대체 어떤 놈이냐?"

선비는 갑자기 소리치는

여종 남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엉겁결에 기지를 발휘하여

큰소리로 위엄 있게 꾸짖기 시작했다.

"네 이놈! 이 무슨 짓이냐?

내 편지를 전하라고 시켰거늘,

네 처를 대신 보내 놓고

이렇게 드러누워

주인을 기만하느냐?

내 전에도 네 놈이

속이는 줄 알고 있었기에

오늘 작정을 하고 적발하려 했는데,

그야말로 딱 걸려들었구나.

내 이번에는 네 놈의

그 앙큼한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겠노라."

선비는 이렇게 소리치면서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니,

여종 남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얻어맞으면서 애걸하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옵니다, 주인어른!

소인 갑자기 복통이 나서

부득이 심부름을 갈 수 없게 되자,

소인의 처를 대신 시킨 것이옵니다.

소인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이 놈아,

그러면 나에게 이야기하고

허락을 얻어야 하거늘,

네 놈 마음대로 했단 말이냐?

오늘은 특별히 용서하니,

이후에 또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이리하여 여종의 남편은

주인의 간음 사실을 밝히려다가

도리어 낭패를 당하고 서러워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선비의 친구들은

그의 임기응변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씁쓸해 했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610- 장인을 조롱하는 사위 (壻嘲婦翁)

옛날에는 방을 길게 하나로 만들어,

중간에 간단한 칸막이를 하거나

또는 미닫이문을 달아

둘로 나누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온돌을 만들 때

부엌이 붙은 방에만 아궁이를 만들고

불을 때서 먼 쪽 방에까지

연기가 나가게 해놓으니,

부엌에서 멀리 떨어진 방에는

불길이 닿지 않아 매우 추웠다.

한 사람이 처갓집에 갔는데

장인 장모는 따뜻한 방에 자고,

사위는 추운 방에서 자게 되었다.

사위가 미처 잠이 들기 전에 들으니,

장인 장모가 바야흐로 몸을 붙여

질펀하게 애정을 나누면서

어리광하듯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부인, 나는 말이야.

이렇게 몽롱할 때면

두 귀가 꽉 막혀서

귀머거리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오."

"예, 영감. 나는요,

이렇게 흥분될 때에는

사지가 탁 풀리고 전신이 늘어져

도무지 몸을 가눌 수가 없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뜨겁고 황홀한 순간을 보내고

정신을 차린 다음,

장모가 장인을 보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여보 영감,

우리가 그 흥분된 상태에서

속삭인 말이

필시 저쪽 방에 자는

사위 귀에 들렸을 것 같으니,

다른 데 가서 소문 내지 못하게

잘 타일러 주구려."

"알았소,

부인은 염려하지 마시오.

내 잘 타이르도록 하지."

 

그리고 날이 밝았다.

아침이 되자 장인은

사위를 앉혀 놓고

훈계하듯 말했다.

"자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우스갯소리를 할 때면 조심하여,

사사롭게 엿들은 소릴랑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네."

"예, 장인어른. 염려 마십시오.

이 사위는 다른 사람과 다르답니다.

남의 잘못이나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두 귀가 꽉 막혀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요,

사지가 탁 풀려서

도무지 몸을 가눌 수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위의 말에

장인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609- 등거리 입고 나왔네 (新兒背衣)

한 선비가 혼인 후

내리 세 아들을 낳았는데,

모두 얼굴이 못생겨 매우 언짢았다.

그래서 선비는 이렇게 한탄했다.

'내 정액이 너무 탁해서

태어나는 아이가

이렇게 곱지 못한 것 같으니,

이번에는 정액을 잘 걸러서

아이를 만들어 보겠노라.'

이렇게 생각하고,

밤에 잠자리를 하면서

아내의 음호를

가는 삼베 천으로 덮은 다음

행사를 시작하려 했다.

이를 본 아내가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이라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다.

"여보, 삼베 조각은

왜 덮는 것인가요?"

"아, 내 정액이 너무 흐려서

태어난 아이들 얼굴이

모두 곱지 않고 추하니,

이번에는 내 정액을 잘 걸러서

예쁘게 생긴 아이를

낳아 보려고 이런다오."

이러면서 바야흐로

삼베 조각 위에

양근을 접속시켜

조심스럽게 행사를 치렀다.

그런데 끝나고 보니

출입 운동을 하는 동안

양근에 씌워졌던 삼베 조각이

어디론가 사라져,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10삭이 지났다.

아내가 해산을 하자

과연 이번에는

잘생긴 아이가 태어났다.

그래서 부부는 기뻐하며

아이를 살펴보니,

잘 기워진 '삼베등거리'1)를

입고 있는 것이었다.

1)삼베등거리 : 삼베로 지은 저고리.

이를 본 선비가 기뻐하면서 소리쳤다.

"이번에 잘생긴 아이가 태어난 것은

분명히 내 정액을 걸러서

맑게 한 효험이 나타난 것이로다.

게다가 삼베 등거리까지 입고 나왔으니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로다."

이러면서 부부가 함께 크게 웃었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608- 어리석은 체하며 속이다 (知奸飾愚)

 

옛날에 한 상번 향군(上番鄕軍)1)이 있었는데,

매우 교활하고 사기 행각을 일삼아 이 자에게 속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1)상번 향군(上番鄕軍) : 시골관아 소속 군인이 서울 각 부처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고 내려가던 제도에 따라 차출되어 올라온 군인.


하루는 이 사람이 쉬는 날,

서울 거리를 거닐다가 닭 파는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수닭 한 마리가 유달리 크고 털 색깔과 아롱진 무늬가 특이하여

다른 닭들과는 완연히 달랐다.

이에 향군이 그것을 보는 순간,

기발한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것이었다.

'옳거니! 저 닭을 이용하여 서울 사람 좀 등쳐먹어야겠다.'

이와 같이 작정한 향군은 가까이 다가서서,

그 닭을 쓰다듬고 만지며 감탄을 연발하다가 닭 주인에게 물었다.

"이것이 닭은 아닌 것 같은데 무엇인지요?

일찍이 시골에선 못 보던 것으로 매우 기이하게 생겼습니다."

닭 주인이 이 말을 들으니,

시골에서 올라온 향군으로 어벙하고 어리석은 산골 사람처럼 보여

속으로 웃으면서,

"아, 그건 봉(鳳)이라는 것입니다, 매우 진귀한 동물이지요."
하고 슬쩍 속여 대답을 했다.

이에 향군은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혀를 내두르며 놀라는 체 하면서 그 닭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내 일찍이 봉황이란 이름만 들어보았지

아직까지 그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지금에서야 보는구려.

주인장 이 봉을 나에게 팔지 않겠습니까?

내 집안의 보물로 삼고자 합니다."

"아, 사시겠다고요? 아끼는 것이긴 하지만 그럽지요."

그래서 값을 물으니 닭 주인은 20냥이라 했고,

향군은 크게 기뻐하는 체하며 선뜻 20냥을 건네주었다.

향군은 그것을 붉은 비단 보자기에 싸서

옻칠을 한 좋은 상자에 담아 형조판서 집을 찾아간 뒤,

대문에서 두 손으로 높이 받들고 들어갔다.

 

마침 판서가 마루에 앉아 있기에,

향군은 뜰 아래 꿇어앉아 아뢰었다.

"판서대감!

소인이 마침 봉 한 마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들으니, 봉은 나라의 상서러움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기에,

소인의 정성을 전하께 바치고자 하옵니다.

원하옵건대, 판서대감께서 전하께 진상하시면

큰 은총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되옵나이다."

"뭐라고! 봉이라 했느냐? 어디 가져와 보려무나."

곧 판서는 사람을 시켜 열어 보라 하니,

봉이 아니라 한 마리의 닭이었다.

이에 판서는 목소리를 높여 향군을 꾸짖었다.
 

"이 놈아! 이것은 봉이 아니라 닭이니라.

네 어느 안전이라고 그 같은 망언으로 장난을 하느냐?

죄를 면치 못하리라."

"옛! 닭이라고요? 그러시면 판서대감!

소인이 이것을 비싸게 샀사오니,

그 값을 변상 받게 조처해 주옵소서."

"뭐라고? 누구에게서 얼마를 주고 샀단 말이냐?"

"예, 아뢰옵니다. 종루 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봉이라고 하면서 값은 50냥이라고 하기에,

소인이 돈을 아끼지 않고 그대로 주고 샀사옵니다.

정말로 이것이 닭이라고 한다면 소인을 속인 죄가 무거울뿐더러,

50냥이나 받은 것 또한 도적과 다름없지 않사옵니까?

서울 사람들의 맹랑한 짓이 이와 같사오니,

엄벌을 내리시어 50냥을 돌려받게 해주시옵소서."

향군은 이렇게 엄살을 떨면서 흐느끼며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형조판서는 아랫사람에게

속히 그 닭가게 주인을 잡아오라고 명했다.

얼마 후 닭을 팔았던 자가 끌려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네가 이 닭을 봉이라고 속여 저 향군에게 팔았느냐?"

"예, 그렇사옵니다. 하도 사고 싶어 하기에 팔았습니다."

닭 가게 주인이 그렇다고 순순히 시인하기에,

판서는 다시 엄하게 꾸짖었다.

"듣거라, 닭을 가지고 봉이라 속여 50냥이나 받았으니,

이는 밝은 대낮에 도적질한 것과 다름없지 않느냐?"

이에 닭 주인은 어이가 없었다.

"저 사람이 이 닭을 보고 너무나 칭찬을 하고 기이하게 여기면서 묻기에,

그 우둔함이 우습게 보여 소인이 장난삼아 봉이라고 한 것이옵니다.

게다가 값을 물어 역시 웃으면서 20냥이라고 대답하였사옵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곧바로 20냥을 내고 사가기에,

소인은 속으로 너무 우스워 하면서도 받아 두고는,

잘못된 사실을 알고 물리러 오면

다시 돌려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소인이 고의로 속여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은 아니옵니다."

이 말을 듣더니,

향군은 소리 내어 통곡을 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소인이 정말 50냥을 주고 샀거늘 저 사람이 20냥이라고 하니,

생떼를 써서 남의 돈 30냥을 빼앗으려는 술책을 부리고 있사옵니다.

하늘 아래 이런 원통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판서대감께서는 엄하게 문초하시어,

무식한 시골 사람으로 하여금

큰 재물을 손해 보는 일이 없게 해주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

형조판서는 한참 동안 두 사람을 내려다보다가 엄명했다.

"상인은 들어라!

너희 장사꾼들은 평소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여

백주 대낮에 부당하게 재물을 빼앗는 일이 허다하였거늘,

지금 또 변명으로 농간을 부리려고 하니 어찌 되겠느냐?

닭 한 마리의 값이 7.8냥에 지나지 않는데

네 입으로 20냥을 불렀다 했으니,

이 또한 도적질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이로 미루어 보면 저 사람이 50냥을 주었다는 말도

거짓이라 할 수 없거늘,

너는 민심을 어지럽힌 죄로 엄벌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

그러자 닭 가게 주인은 더 이상 변명해 봐야

소용없을 것으로 알고,

고개를 숙인 채 크게 한숨을 쉬면서 아뢰었다.

"판서대감!

소인이 잠시 농담을 한다는 것이 그만 저 사람을 속인 셈이 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사오니, 달리 변명할 말이 없사옵니다. 헤아려 주시옵소서."

이에 형조판서는 닭 가게 주인에게 곤장 50대를 내리고

50냥을 변상하라고 판결하니,

향군은 잠깐 사이에 돈 30냥을 벌고는 백배 사례하고 물러갔다.

이와 같이 교활한 사람의 지독한 농간은 법으로서도 가려내기 어려운 일이니,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두려워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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