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03- 자면서 남의 다리 긁기 (痒搔他脚)

어느 마을에 어떤 사람이 살았는데 매우 우둔했다.

하루는 멀리 여행을 하다가 날이 저물어,

주막에 들어가 다른 손님들과 함께 잠을 자게 되었다.

그들은 깊이 잠들어 코를 고는데

이 사람은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이 들려는 찰나,

갑자기 한쪽 다리가 몹시 가려웠다.

그러자 잠결에 날카로운 손톱으로 박박 긁었으나

어쩐 일인지 조금도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에 더욱 힘을 주고 긁어도 여전히 시원하지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옆에서 자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누가 남의 다리를 자꾸 박박 긁어서 아프게 하느냐?"

이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 보고서야

그것이 남의 다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자 이 사람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내 다리가 가려워서 힘껏 긁었는데,

도무지 시원하질 않아 이상하다 했더니

그게 당신 다리였구려." 하고 말하더란다.

 

고금소총 제602- 웃음을 자아내게 한 편지 (拙文胎笑)

한 선비의 아내가 맹인을 청하여

집안의 평온을 비는 안택굿을 하려고 준비했다.1)

1)옛날에는 집안의 평안을 비는 뜻에서 굿을 했는데, 이 일은 장님들이 담당했음.

 

그리하여 맹인이 안택경(安宅經)을 낭송하려고 하는데

병풍이 미처 준비되지 않아,

아내는 남편에게 친구 집에서 병풍 좀 빌려 달라고 간청했다.

선비는 굿을 하는 일이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친구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우리 집사람이 맹인에게 푹 빠져서

오늘밤 그를 불러들여 이상야릇한 일을 하려고 하니,

잠시 병풍을 빌려 주어 그 일이 성사되게 해 주었으면 좋겠네, 그려.'

이 글을 읽은 친구가 병풍을 빌려 주면서1) 일부러 놀려 주려고

다음과 같이 답장을 써보냈다.

 

"병풍은 빌려 주겠는데,

자네가 말한 그 '이상야릇한 일'이란 게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니 좀 알려 주게나."2)

2)선비가 보낸 편지의 내용이 맹인과 선비의 아내가

병풍을 치고 정사를 벌이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

 

이에 선비는 정말로 친구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묻는 줄 알고 다시 이렇게 써보냈다.

'이 사람아, 그것은 음양(陰陽)3)에 관계된 그런 이상야릇한 일이라네.'

3)음양(陰陽 : 음양 오행의 점치는 일 등을 뜻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남녀 관계를 나타내기도 함.

 

이 글의 내용 역시 맹인과 선비의 아내가

사랑을 나누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어,

친구들이 보고 웃음을 터뜨렸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601- 떡먹은 건 못 속여 (食餠莫掩)

한 마을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집에 있는 노인이 있었는데,

떡을 좋아하여

떡집 앞을 지나칠 때는

늘 안으로 들어가서

떡을 사먹고 나오는 것이었다.1)

1)당시에는 점잖은 사람이 직접 떡집에 들어가는 것을 큰 수치로 여겼음.

어느 날 아침에는

남색 창의2))를 입고

붉은 띠를 가슴에 두른 채,

2)창의 : 관리들의 평상복.

역시 떡집에 들어가서

떡을 사먹고는 슬그머니 나왔다.

이 때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새 사돈과 딱 마주쳐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는데,

사돈이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었다.

"영감님이 어찌하여

직접 떡집에 들어가셨습니까?"

이에 노인은 부끄러운 빛을 보이면서

사실대로 대답했다.

"예, 아침 일찍 집을 나와

배가 고프던 차에

마침 떡집이 있어

들어가 먹고 나오는 길이랍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부인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자,

부인은 다음과 같이

일러 주는 것이었다.

"영감처럼 연세도 있고

지위도 높으신 양반이

떡집을 드나들다 새 사돈을 만나서

사실대로 얘기했으니

매우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차라리 술을 마시고 나온다고

하시지 그랬습니까?

가게를 드나드는 일이

보기 좋은 일은 아니나,

그래도 떡보다는

술을 마셨다는 게

나은 편이지요."

부인의 말에

노인은 앞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오늘 아침에는 갑자기

새 사돈을 만나는 바람에 당황하여

그만 사실대로

털어 놓게 된 것이라며 웃었다.

 

며칠 후,

노인은 다시 떡집에서

떡을 사먹고 나오다가

또 그 사돈과 부딪쳤다.

이 때 역시 사돈이

어떻게 떡집에서 나오느냐고 물어,

노인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젓하게 대답했다.

"예, 사돈.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입니다."

이에 사돈이 다시 묻는 것이었다.

"술은 어떻게 마셨는지요?

찬 술은 아니었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따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쑥 대답했다.

"아, 예. 불에 구워 먹었답니다."

이리하여 역시 떡을 사먹은 것이

탄로나고 말았다.

 

그 뒤 노인은

다시 그 떡집에서

떡을 사먹고 나오다가

앞서의 새 사돈을 또 만났고,

지난번 부인이 일러 준 대로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이라고

적당히 잘 대답했다.

그런데 몇 잔을 마셨느냐는 물음에,

노인은 제대로 대답한다는 것이

그만 이렇게 말이

잘못 나오고 말았다.

"오늘은 한 개밖에

사먹지 않았답니다."

결국 '한 개'라는 말로

또 다시 떡을 사먹은 게 들통 나

부끄러움을 당해야 했다.

이와 같이 노인은 삼차에 걸쳐

새 사돈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고

다시는 떡집을 드나들지 않았다.

뒤에 노인이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니

모두들 배를 쥐고 웃었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600- 한 관장의 색욕 (一縣守承差)

 

한 고을의 관장이 왕명을 받들어, 이웃 고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밤이 되니 한 아전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 아전은 볼일이 있어 밖으로 나가고,

집안에는 아내와 두 딸만 남아 있었다.

그 두 딸 중에 큰딸은 이미 시집을 가서 머리를 올렸고

작은딸은 아직 처녀였는데, 그 얼굴이 매우 예쁘고 고왔다.

 

이를 본 관장은 마음이 혹하여서,

자신을 따라온 배리(陪吏)에게 어떻게 하면

저 작은딸과 호합하여 정을 나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배리는 한 가지 계교를 일러 주었다.

"곧 술상을 차려 자리를 마련하고 부인을 위로한 뒤,

틈을 보아 그 딸을 유인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관장은 푸짐하게 술상을 차려 초대하니,

부인은 놀라면서 사례를 하고 응하는 것이었다.

이 때 관장이 부인에게 술을 권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듣자니 두 딸이 있다고 하던데,

가히 참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겠는지요?"

이 말에 부인은 두 딸을 불러 나오게 했다.

이 때 작은딸은 부끄러워하고 거북해 했는데,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이에 관장은 애를 태우면서 술잔을 돌려

작은딸에게 이르렀을 때,

그녀가 술잔을 받아들고 마시는 순간

갑자기 낚아채 침실로 끌고 들어갔다.

이 때 따라간 아전은 뒤에서 도와 안으로 밀어 넣었다.

갑자기 당한 일에 크게 놀란 부인은,

급히 작은딸 앞으로 쫓아가서

그 허리를 잡고 큰딸을 소리쳐 불렀다.

"얘야! 큰일 났다. 속히 와서 도와줘라!"

이에 큰딸이 달려와서 그 어미를 도와 힘껏 잡아당기자

관장이 문득 손을 놓치는데, 그 순간 작은딸은 옷이 찢어지면서

몸을 빼내 겨우 달아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부인은 작은딸을 깊은 골방에 숨겨 놓았다.

 

이렇게 실패한 관장은 또다시 배리에게 물었다.

"다시 한 번 어떻게 해볼 계책은 없느냐?"

"예, 한 가지 남아 있긴 합니다. 한번 시도해 보시지요."

이렇게 배리는 또 다른 계책을 권했다.

그리하여 관장에게 방안에서 노끈으로

목을 맨 것처럼 꾸미게 한 뒤,

갑자기 크게 놀란 척하면서 소리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어찌 목을 다 매셨습니까?"

이 소리에 부인이 달려 나오니, 배리는 곧 꾸짖어 말했다.

"사또께서 간밤에 너희 모녀와 소란을 피운 일로 이런 변이 생겼으니,

이는 모두 네 집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라.

따라서 네가 속히 우리 사또의 목숨을 구해 내지 못한다면,

살인죄로 일문이 멸족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배리의 엄포에 겁을 먹은 부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이에 배리는 슬그머니 말했다.

"아직 사또의 기맥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니,

얼른 작은딸을 불러다 그 왕성하고 뜨거운 몸을 붙여 놓으면,

혹시 살아날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로다."

그러자 부인은 이 말을 그대로 믿고 작은딸을 불러내려 하는데,

마침 이 때 늙은 아전인 남편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에 부인이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자, 다 듣고 난 남편이 말했다.

"율문(律文)에 보면 위협을 가해 죽음으로 몰아넣는 경우 외에,

스스로 목을 매 죽은 것은 죄를 묻지 않게 되어 있소.

하물며 늙은 것이 내 딸을 탐했으니,

1만 번을 죽은들 무슨 상관일까?

게다가 거짓으로 목을 맨 척하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오."

이에 부인은 태도를 바꾸어 관장을 크게 꾸짖으며 말했다.

"개 같은 늙은 것이 만민의 부모인 관장이 되어,

남의 여식을 탐내며 그 속임과 휼계가 이와 같으니,

네가 무슨 면목으로 조정에 나아가겠느냐?

그러니 네가 죽은들 아무 문제도 없고,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을 것이니라."

이러면서 계속 모욕을 주니,

관장은 큰 욕을 당하고 밤중에 몰래 달아나 버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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