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91- 상주가 시간 아는 방법 (喪人知時)

한 상주가 매우 무식하여

친상(親喪)을 당했는데도

장례 절차를 전혀 모르니,

친지들이 와서 모든 일을 도왔다.

집안에서의 절차가 끝나고

산소의 일만 남아 일관(日官)에게 가서

하관(下官) 시간을 받았으나,

매우 어려운 한밤중 '자시(子時)'였다.

일을 돕던 친척들이 모두

그 시간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고 하며,

읍내에 가서 자명종 시계를 빌려와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논하는데,

마침 상주가 나서서 말했다.

"자명종 시계는 빌려 올 필요가 없습니다.

한밤중 그 시간은

내가 귀신같이 맞출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사람들은

일단 상주에게 맡겨 두기로 하고

다른 준비에 들어갔다.

 

장례를 치르는 날,

산에 올라가 묘혈을 파놓고

한밤중 '자시'를 기다리는데

문득 상주가 벌떡 일어나면서,

"바야흐로 지금이 한밤중 '자시'이니

곧 하관하도록 합시다."

하고 소리쳤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관 작업을 시작하면서

관을 들어 막 옮기려는 순간,

갑자기 상주가 바지 끈을 풀더니

꼿꼿하게 선 양근을 꺼내

관 위에다 대고

힘차게 소변을 보는 것이었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놀라면서

무슨 무례한 짓이냐고 꾸짖으니,

 

상주는 천천히 대답했다.

"모두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장례 날을 받는 택일서(擇日書)에 따르면

병자생(丙子生)은 '소피(少避)'1)라 하였으니,

내가 바로 병자생이라

소변을 보는 건데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1)소피(少避) : 잠시 피하라는 뜻인데, 소변을 보는 것으로 해석함.

 

그러자 모두들 한바탕 크게 웃으면서

계속 작업을 하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한 사람이 물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상주는 한밤중 '자시'를 어떻게 알아냈소."

그러자 상주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 그것은 말입니다.

나는 매일 밤 '자시'가 되면

일년 내내 예외 없이

꼿꼿하게 양근이 발동하여

그냥 잘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아내와 잠자리를 하고 자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은 틀림없이 알지요."

 

이 말에 사람들은

또 한 번 폭소를 터뜨렸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590- 헛소리라고 둘러대기 (談語粧撰)

어떤 시골 생원이 먼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한 주막에 들렀다.

행장을 풀고 뜰에 나와 보니

마구간 옆에

새로 만들어진 작두가 있는데,

매우 좋아 보여

슬그머니 탐이 났다.

1)작두 : 소나 말에게 먹일 풀이나 짚을 써는 기구.

그리하여 날이 어두워지자

생원은 측간에 들어가

문을 닫고 앉아서,

자기를 따라온 종을 불러

측목(厠木)2)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2)측목(厠木) : 옛날에는 휴지가 없어 측간에 작은 나무 토막을 마련해 놓고 일을 본 뒤 그것을 항문에 대고 살그머니 돌려 닦았는데, 이 막대기를 말함.

얼마 후 측간 앞에 발소리가 나더니,

문이 조금 열리면서 손만 내밀어

측목을 전해 주는 것이었다.

곧 생원은 자기 종인 줄 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마구간 옆에 보니

좋은 작두가 있더구나.

나중에 몰래 그것을 가져다가

우리 짐 속에 감춰 두도록 해라.

집에 가져가면

아주 요긴하게 쓰일 것 같구나."

그런데 측목을 가져온 사람은

자기 집 종이 아니라

주막집 주인이었으니,

 

주인 역시 작은 목소리로,

"손님, 소인 집에도

다만 그 작두 하나뿐인데,

가져가시면 끊임없이 드나드는

저의 집 손님의 말 먹이를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그 작두는

가져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갑자기 들리는

주인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생원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너희 주막 측간에는

무슨 귀신이 있단 말이냐?

내 공연히 헛소리가 나오니

이 무슨 괴이한 일이냐?"

이에 주막집 주인은

웃음을 참으며 물러났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589- 손가락에 묻은 악취 (臭惡廢弓)

옛날 어떤 한량(閑良)1)이

늦은 봄 따뜻한 날에

사슴을 잡는다며

활을 가지고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1)한량(閑良) : 아직 급제하지 못한 무인을 일컫는 말.

한참을 이리 저리 돌다가

마침 한 사단(射壇)2)이 있기에,

올라가서 활쏘기 연습을

열심히 하다 보니

땀이 흐르고 목이 몹시 말랐다.

2)사단(射壇) : 활쏘기를 위해 마련해 놓은 축대.

그리하여 골짜기 시내를 찾아 내려가니,

마침 젊은 여인이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따뜻한 햇볕에 몸이 나른해졌는지,

소나무 그늘 아래에 누워서

곤하게 자고 있었다.

이에 한량이 가까이 가서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자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무슨 소리를 해도

눈을 뜨지 않자

몸을 약간 흔들어 보았으나

역시 깨지 않는 것이었다.

"많은 빨래에 지쳐서

깊이 잠든 게로구먼."

한량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여인의 옆에 몸을 붙여 누웠다.

그리고는 여인에게 팔베개를 해준 다음,

그 허리를 끌어당겨 몸에 붙이고

다리를 들어

여인의 아랫도리를 감아

품속으로 싸안았다.

그래도 여인은

잠에서 깨지 않기에,

그 치마 밑으로

오른 손을 넣고 더듬어서

오른손 깍지3)를 끼는 가운뎃손가락을

여인의 음호 속으로 끼워 넣고

살살 저어 흔들었다.

3)깍지 : 활을 쏠 때에 화살이 단단히 집히게 하려고 손가락에 끼는 것.

이러는 동안에도

여인은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았다.

그러자 한량은 손가락을

더 깊이 넣어 장난을 하다가

그만 자신도 고단하여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 후 깨어 보니

점심때가 훨씬 지났고,

여인은 그때까지도

계속 자고 있었다.

한량은 곧 손가락을 빼고

일어나 보니,

여인의 음호 속에 들어가 있던

가운뎃손가락이 퉁퉁 불어 커져 있었고,

다른 손가락과 손바닥은

여인의 농축액으로 범벅이 되어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었다.

 

한량은 얼른 일어나

냇가로 가서

물속에 한참 동안

손을 담가 몇 번을 씻고는,

다시 산등성이를 돌아서

활쏘는 사단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연습을 하기 위해 활을 잡고

화살을 활시위에 댄 다음

손가락 사이에 끼워 잡아당기니

오른손이 얼굴에 와 닿는데,

그 손에서 아직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냄새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화살이 튕겨져 나갔으나,

과녘이 있는 곳까지는

반도 미치지 못한 채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한량은 계속 활을 쏘며 연습을 했지만

손이 얼굴 가까이 닿을 때마다

여전히 심한 냄새가 코에 진동했고,

화살은 매번 과녘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한량은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하고

끊임없이 활을 쏘며

고쳐지기를 바랐지만

끝내 어쩌지를 못한 채

결국은 몇 달 후,

'손가락에 스며든 냄새 때문에

활에도 단단히 병이 들었구나.'

하면서 활쏘기를 영영 그만두고 말았다.

 

뒷날 한량은

친구들이 활을 쏘러 가자고 하기에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모두들 손뼉을 치면서 부러워했더라.

 

고금소총 제588- 네 코는 무쇠로 되었나 (爾鼻鐵鼻)

옛날 한 마을에

갑 ․ 을 두 처녀가 있어

매우 절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애정 행각에 대해

숨기지 않기로 했다.

갑 처녀가 먼저 시집을 가니

을 처녀는 말했다.

"얘야,

첫날밤 새신랑과 잠자리한

모습에 대해

숨김없이 이야기해 주려무나."

이렇게 조르자,

곧 갑 처녀는 첫날밤 신랑과

황홀했던 잠자리 상황을

손짓 몸짓 다해 가며

실감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듣던

을 처녀가 밑으로 농축액을 쏟으며

몸을 뒤틀고 떨더니,

갑자기 갑 처녀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코를

물어뜯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에 갑 처녀 집에서

을 처녀를 관아에 고소했다.

그리하여 관장이

두 처녀를 함께 불러 앉혀 놓고,

나졸을 시켜 자세한 상황을

물어 보라고 했다.

먼저 갑 처녀가

앞서 을 처녀에게 해주었던

말과 동작으로 똑같이 들려주니,

옆에서 듣고 있던 을 처녀가

갑자기 몸을 뒤틀면서

심문을 하고 있는

나졸에게 달려들어

그의 코를 물어 버렸다.

나졸이 코를 움켜쥐고

아프다고 소리치며

밖으로 달려나가니,

관장은 다시 급창을 불러

심문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급창이

두 처녀 앞으로 가서

앞서처럼 이야기해 보라고 하니,

갑 처녀가 이야기하는데

또다시 을 처녀는

급창에게 달려들어

그의 코를 물어뜯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관장은

코를 움켜쥐고 일어서면서

앞에 엎드려 있는 형방을 보고,

"형방, 형방!

자네 코는 무쇠로 만들어졌나?

속히 코를 쥐고 피하지 뭘 하나?"

하면서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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