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79- 꿈속의 부귀 공명 (邯鄲枕)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일생에 부귀공명이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중국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중국 당나라 현종 때,

여옹(呂翁)이라 불리는 사람이

한단(邯鄲)이란 지역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주점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

마침 그 때 노씨 성을 가진

젊은이도 같이 들어와

한방을 쓰게 되었다.

젊은이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한탄했다.

"남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

출세하여 공명을 세우지 못하고

침체에 빠져 오랫동안

곤욕을 치르고 있으니,

나이는 자꾸만 들어가고

어찌 한스럽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여옹은

자신의 보따리 속에서

옆으로 구멍이 뚫린

목침을 하나 꺼내 주면서 말했다.

"이 목침을 베고 잠들면

소원하는 부귀공명을 누릴 것이니라."

이에 젊은이가 목침을 베고 누우니

금방 잠이 들었다.

그리하여 꿈속에서 과거에 급제하고

부잣집 아름다운 규수에게 장가들어

호화를 누리고,

조정의 대신이 되어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온갖 영화를 누리며 명성을 날리다가

기지개를 켜며 잠을 깼다.

 

이렇게 젊은이는 일생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살다가

잠에서 깼는데,

여옹은 옆에 그대로 앉아 있고,

잠들기 전에 안주인이 삶고 있던 좁쌀은

아직 다 익지도 않았다.

곧 젊은이는

사람의 일생에 부귀영화란

한낱 헛된 꿈이란 사실을 알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금소총 제578- 출가한 딸은 남인가 (出嫁外人)

옛날 해주 고을에

유씨 성을 가진 술사(術士) 한 사람이 있었다.

1)술사(術士 : 점을 치거나 풍수 지리에 능통한 사람.

이 사람은 특히 풍수지리에

능하다는 소문이 나서,

인근 사람들이 이 사람을 초빙해

조상의 좋은 묘 자리를 구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이 술사도 나이가 드니,

병들어 누워 암종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는 첫딸을 낳고 이어 두 아들을 낳아

2남 1녀 모두 혼인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술사의 두 아들은

부친의 병세가 점점 나빠지니,

하루는 그 옆에 와 앉아 이렇게 물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풍수지리에 능하시어

평생 동안 남의 묘 자리를 봐주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

편히 쉴 자리를 정해주지 않았사오니,

소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큰일이옵니다."

"으음, 그렇겠지.

지금 집안에 다른 사람은 혹시 없느냐?"

"예, 소자들과 집안의 안사람들만 있고

외인은 없사옵니다.

이에 술사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잘 들어라,

우리 산의 등성이 근처에 쓸 만한

묘 자리 두 곳이 있느니라.

그 한 땅에는

어느 좌(坐) 방향으로 산소를 쓰면

대대로 자손들이 높은 벼슬을 할 것이고,

다른 한 곳은

어느 좌 방향으로 산소를 쓰면

자손들이 큰 부자가 될 것이니,

너희들이 알아서 결정을 하도록 해라."

 

그 때 일찍이 오씨(吳氏)네 가문으로

시집을 간 술사의 딸이

부친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마침 친정에 와 있다가,

이 얘기를 창밖에서 모두 엿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술사가 세상을 떠나니

집안에서는 장례 절차를 진행했고,

입관 성복(成服)도 마쳤다.

이에 두 아들은 부친이 일러준 두 자리 중

어느 곳으로 정할 것인가를 의논하면서,

"우리나라는 부자보다

높은 벼슬을 하는 편이 훨씬 낫다."

라고 의견을 모아,

후손들이 높은 벼슬을 할 것이라는

그 자리로 결정하고

남은 장례 준비를 진행했다.

이에 장례 날 입관 시간을 받으니

아침 일찍 해야 하는 것으로 나와,

두 아들은 장례 전날 오후에

사람들을 시켜 묘혈을 파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진 뒤,

그들은 파놓은 묘혈에서

밤새 지키기로 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근처에 자리를 마련하고

밤샐 준비를 하는데,

곧 그들의 누나가

이불을 가지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두 동생은

자신들에게 주려는 이불로 알고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데,

누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여러 날

밤잠도 못 자고 고생을 했는데,

오늘밤까지 안 자고 여기를 지키면

내일 장례를 치르는데

지장이 많을 것 같구나.

그래서 오늘밤 이 묘혈은

내가 대신 지킬 테니,

두 동생은 집으로 내려가서 자고

내일 장례 절차에 차질이 없도록 해라.

이곳은 집에서도 멀지 않고

내 자라면서 자주 오르내리며 살았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 자거라."

 

이에 두 동생은 고맙게 여기면서

집으로 내려와 잤다.

그러나 이것은 누나의 흉계였다.

곧 후손들이 높은 벼슬을 한다는

이 자리를 나쁜 땅으로 보이게 하여

친정 부친의 산소를 다른 곳에 쓰게 하고,

여기는 뒷날 자신의 시아버지 묘로 쓰려는

계책을 꾸민 것이었다.

그래서 두 동생을 집으로 내려 보낸 누나는,

밤새 물을 길어 다 파놓은 묘혈에 부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두 동생이 새벽에 올라와 보니

묘혈에 물이 고여 있기에,

"아뿔사, 틀렸구나.

아무리 후손이 높은 벼슬을 할 땅이라지만,

이렇게 물이 고여서는 장지로 적합하지 않다.

여기는 도로 메우고,

부자가 날 것이라고 하신

그 곳으로 다시 정해야겠다."

라면서 한탄을 했다.

그리고 급히 일꾼을 시켜

그 자리를 메우고,

부자가 나올 것이라고 한 장소로 가서

서둘러 장례를 마쳤다.

이렇게 해서 두 아들은

장례 후 삼우제까지 잘 마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술사의 딸은

모친에게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얼마 전에 돌아가신 우리 시아버지 산소를

좋은 곳으로 개장하려고,

임시로 가매장을 해두었답니다.

그러니 일전에 친정 아버님 산소를 쓰려다가

물이 나서 도로 덮은 곳을,

우리 시아버지 산소로 쓸 수 있도록

두 동생에게 잘 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모친은 이왕 버려둔 곳이니

물이 나도 좋다면

그렇게 해도 무방할 것 같아,

두 아들의 의견을 물었다.

"얘야, 네 부친은

이미 좋은 곳에 묘를 썼으니,

지난번 물이 나서 덮어둔 그 곳을

네 누나 시아버지 산소로

쓸 수 있게 주면 어떻겠느냐?

네 누나가 마땅한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물이 좀 나더라도 그곳을 달라는구나."

이렇게 딸의 말을 전하면서

주고 싶은 뜻을 비쳤다.

그러자 두 아들은

이왕 못 쓰고 버려둔 곳이니,

누나에게 주어도 무방할 것 같아

그대로 허락했다.

 

그리하여 술사의 딸은

시아버지의 산소를 그 곳으로 이장했다.

훗날 해주 고을에는

유씨 가문에서는

부자가 많이 나오고,

오씨 가문에서는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자들이 많이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금소총 제577- 교활한 종의 흉계 (外愚內凶)

한 시골 선비가

매우 교활하고 맹랑한

종을 데리고 있었다.

선비는 그 종을

영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음흉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루는 서울에 볼일이 있어,

이 종에게 말을 몰게 하여

길을 나섰다.

서울에 도착해

마침 친척집 근처를 지나게 되자,

선비는 잠시 그곳에 들러

인사를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을 매둘 만한 곳이

마땅치 않으니

종에게 말했다.

"내 잠시 다녀올 테니

말과 함께 이 자리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야 한다.

서울 인심은 고약하여

눈만 감아도 코를 베어 가는 곳이니,

특별히 조심해야 하느니라."

선비는 이렇게 단단히 일러 놓고

친척집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종은 말을 몰고

시장으로 가서

안장을 팔아

돈을 받고는 단단히 감추었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몰고

본래 자리로 돌아와

말고삐를 잡고 길가에 앉아서는,

두 팔로 눈을 가린 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이에 선비가 나와서 보니

안장이 보이지 않고,

종은 길가에 앉아

고개를 쳐박고 있기에 물었다

"이 놈아!

말안장은 어디 두고,

왜 그렇게 고개는

쳐박고 앉았느냐?

어디가 아파서 그러느냐?"

이 때 종은

주인의 목소리인 줄 알면서도,

마치 모르는 사람인 양

여전히 얼굴을 들지 않은 채

대꾸했다.

"뭐요?

내가 고개를 들면

코를 베어 가려고

그러는 거지요?

내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으니,

날 속일 생각일랑 마시오."

"이 놈아!

무슨 소리냐? 나야 나!"

그러자 종이 비로소

놀라는 듯이 머리를 드니

선비가 물었다.

"얘야, 말안장은 어디 있느냐?

왜 안장이 안 보이느냐?"

"옛? 안장이라고요?

소인은 코를 베어 갈까봐

머리를 파묻고 있었을 뿐,

안장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놈아! 어찌된 일이냐?

서울 인심이 고약하다고

내 단단히 일렀거늘,

그게 무슨 소리냐?"

"주인어른께서 코를 베어 간다고

조심하라는 분부만 하셨지,

다른 것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어셔서

그저 코만 챙겼습니다요."

이에 선비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576- 칡넝쿨에 발이 걸린 꿈 (夢壓)

한 사람이 좁은 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그야말로 관동(關東)의 아름다운 경치를

모두 돌아다니면서 구경했다.

먼저 평해 월송정(月松亭)과

울진 망양정(望洋亭)을 구경하고,

삼척 죽서루(竹西樓) 를 돌아

강릉 경포대며 양양 낙산사,

그리고 간성 청간정(淸澗亭)에 올랐다.

이어서

고성 삼일포(三日浦)와

통천 총석정(叢石亭)을 관람하고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곧 장안사(長安寺)를 둘러보고

금강산 상상봉(上上峰)에 오르니

가슴이 탁 트이고

마음이 상쾌해졌는데,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천 길 만 길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 때 마침 중간에

우거진 칡넝쿨이 있어

거기에 한 쪽 발목이 걸리니,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린 채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이에 곁에서 자던 사람들이

놀라 깨서는

소리치는 사람을 흔들어 깨우자,

그는 곧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고 보니

덮고 자던 이불이 터져

구멍이 나 있었는데,

그 속에 발이 걸려

빠져나오지 못해 마구 흔들면서

그런 꿈을 꾼 것이었다.

같이 자던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듣고는 크게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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