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78화 - 출가한 딸은 남인가 (出嫁外人)
옛날 해주 고을에
유씨 성을 가진 술사(術士) 한 사람이 있었다.
1)술사(術士 : 점을 치거나 풍수 지리에 능통한 사람.
이 사람은 특히 풍수지리에
능하다는 소문이 나서,
인근 사람들이 이 사람을 초빙해
조상의 좋은 묘 자리를 구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이 술사도 나이가 드니,
병들어 누워 암종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는 첫딸을 낳고 이어 두 아들을 낳아
2남 1녀 모두 혼인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술사의 두 아들은
부친의 병세가 점점 나빠지니,
하루는 그 옆에 와 앉아 이렇게 물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풍수지리에 능하시어
평생 동안 남의 묘 자리를 봐주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
편히 쉴 자리를 정해주지 않았사오니,
소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큰일이옵니다."
"으음, 그렇겠지.
지금 집안에 다른 사람은 혹시 없느냐?"
"예, 소자들과 집안의 안사람들만 있고
외인은 없사옵니다.
이에 술사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잘 들어라,
우리 산의 등성이 근처에 쓸 만한
묘 자리 두 곳이 있느니라.
그 한 땅에는
어느 좌(坐) 방향으로 산소를 쓰면
대대로 자손들이 높은 벼슬을 할 것이고,
다른 한 곳은
어느 좌 방향으로 산소를 쓰면
자손들이 큰 부자가 될 것이니,
너희들이 알아서 결정을 하도록 해라."
그 때 일찍이 오씨(吳氏)네 가문으로
시집을 간 술사의 딸이
부친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마침 친정에 와 있다가,
이 얘기를 창밖에서 모두 엿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술사가 세상을 떠나니
집안에서는 장례 절차를 진행했고,
입관 성복(成服)도 마쳤다.
이에 두 아들은 부친이 일러준 두 자리 중
어느 곳으로 정할 것인가를 의논하면서,
"우리나라는 부자보다
높은 벼슬을 하는 편이 훨씬 낫다."
라고 의견을 모아,
후손들이 높은 벼슬을 할 것이라는
그 자리로 결정하고
남은 장례 준비를 진행했다.
이에 장례 날 입관 시간을 받으니
아침 일찍 해야 하는 것으로 나와,
두 아들은 장례 전날 오후에
사람들을 시켜 묘혈을 파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진 뒤,
그들은 파놓은 묘혈에서
밤새 지키기로 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근처에 자리를 마련하고
밤샐 준비를 하는데,
곧 그들의 누나가
이불을 가지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두 동생은
자신들에게 주려는 이불로 알고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데,
누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여러 날
밤잠도 못 자고 고생을 했는데,
오늘밤까지 안 자고 여기를 지키면
내일 장례를 치르는데
지장이 많을 것 같구나.
그래서 오늘밤 이 묘혈은
내가 대신 지킬 테니,
두 동생은 집으로 내려가서 자고
내일 장례 절차에 차질이 없도록 해라.
이곳은 집에서도 멀지 않고
내 자라면서 자주 오르내리며 살았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 자거라."
이에 두 동생은 고맙게 여기면서
집으로 내려와 잤다.
그러나 이것은 누나의 흉계였다.
곧 후손들이 높은 벼슬을 한다는
이 자리를 나쁜 땅으로 보이게 하여
친정 부친의 산소를 다른 곳에 쓰게 하고,
여기는 뒷날 자신의 시아버지 묘로 쓰려는
계책을 꾸민 것이었다.
그래서 두 동생을 집으로 내려 보낸 누나는,
밤새 물을 길어 다 파놓은 묘혈에 부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두 동생이 새벽에 올라와 보니
묘혈에 물이 고여 있기에,
"아뿔사, 틀렸구나.
아무리 후손이 높은 벼슬을 할 땅이라지만,
이렇게 물이 고여서는 장지로 적합하지 않다.
여기는 도로 메우고,
부자가 날 것이라고 하신
그 곳으로 다시 정해야겠다."
라면서 한탄을 했다.
그리고 급히 일꾼을 시켜
그 자리를 메우고,
부자가 나올 것이라고 한 장소로 가서
서둘러 장례를 마쳤다.
이렇게 해서 두 아들은
장례 후 삼우제까지 잘 마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술사의 딸은
모친에게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얼마 전에 돌아가신 우리 시아버지 산소를
좋은 곳으로 개장하려고,
임시로 가매장을 해두었답니다.
그러니 일전에 친정 아버님 산소를 쓰려다가
물이 나서 도로 덮은 곳을,
우리 시아버지 산소로 쓸 수 있도록
두 동생에게 잘 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모친은 이왕 버려둔 곳이니
물이 나도 좋다면
그렇게 해도 무방할 것 같아,
두 아들의 의견을 물었다.
"얘야, 네 부친은
이미 좋은 곳에 묘를 썼으니,
지난번 물이 나서 덮어둔 그 곳을
네 누나 시아버지 산소로
쓸 수 있게 주면 어떻겠느냐?
네 누나가 마땅한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물이 좀 나더라도 그곳을 달라는구나."
이렇게 딸의 말을 전하면서
주고 싶은 뜻을 비쳤다.
그러자 두 아들은
이왕 못 쓰고 버려둔 곳이니,
누나에게 주어도 무방할 것 같아
그대로 허락했다.
그리하여 술사의 딸은
시아버지의 산소를 그 곳으로 이장했다.
훗날 해주 고을에는
유씨 가문에서는
부자가 많이 나오고,
오씨 가문에서는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자들이 많이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