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72화 - 친구를 따돌려 봉변당하다 (諱食逢變)
어느 마을에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밤마다 모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놀았다.
마침 겨울철이라 밤은 긴데,
한참을 놀다보면 출출하여
밤참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중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 이렇게 긴긴밤을
이야기만 하면서 보낼 것이 아니라,
내일 밤부터는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술과 안주를 마련해 와서 요기를 하며
노는 것이 어떻겠느냐?"
이 말에 모두들 좋다고 찬성했다.
그리하여 밤마다 돌아가면서
음식을 마련해 먹기를
벌써 서너 차례씩 되었다.
한데, 그 중 한 사람은
집이 가난하다는 핑계로
아직까지 한 번도
음식을 마련해 오지 않았고,
더구나 몸이 크고 식성이 좋아
남보다 두 배는
더 많이 먹는 것이었다.
이에 모두들 이 친구에 대해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그 친구가 어디로 가고 없을 때,
그 친구를 따돌리고
다른 곳으로 피해 가서
저희들끼리만
음식을 먹기로 결의하게 되었다.
이에 몰래
음식 먹을 장소를 물색하던 중
한 친구가,
"조금 떨어진 곳에
빈집이 한 채 있으니
거기가 좋겠다."
라고 의견을 제시하여,
모두 그 곳에서 모이기로 했다.
이튿날 밤
친구들은 다 약속 장소로 갔는데,
이 친구만 모르고
평소 모이던 장소로 가니
아무도 없었다.
이에 그 집 부인에게 물었으나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하여
다시 다른 친구 집으로 가서 물어도
대답은 모두 같았다.
그는 한 번도 음식을 내지 못한
자기를 따돌리고,
다른 곳으로 몰래 가서
저희들끼리만 모였다고 생각하자,
집이 가난한 것에 대한
서러움과 함께 화가 치밀었다.
'요놈들이
내가 음식을 내지 않는다고
따돌린 모양인데,
그렇다면 갈 만한 곳이 어디일까?
옳지! 그 빈집이 틀림없어!'
이렇게 짐작하고
그 곳으로 몰래 찾아가서 살펴보자,
안에 불이 켜져 있고
사람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래서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접근하니
안에서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문 앞에 호랑이 한 마리가 앉아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에 그가 더욱 조심하며
그 뒤로 다가가서,
엉덩이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그러자 놀란 호랑이는
집안으로 돌진해 들어가,
음식상이며 벽과 창문을 받아
수라장을 만들고는
그대로 멀리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이 친구는 모르는 척
태연하게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안에서 음식을 먹던 친구들은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에 놀라
넘어지고 엎어지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는 너무 놀라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데,
마침 무슨 일로
늦게 도착한 친구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이 꺼져 있어,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송진이 밴 소나무 가지에
불을 붙여 들어가니,
사방이 난장판인 가운데
사람들이 쥐죽은 듯 앉아 있었다.
그래서 물으니
방금 호랑이가
들어왔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차츰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들 옷이 찢어지고
이마와 얼굴, 손을 다치는 등
성한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음식은
하나도 먹을 것이 없었고,
그릇들도 모두 깨진 채
음식물이나 화로 속의 재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 날 밤은
날씨가 무척 추웠는데,
그들의 옷은 술과 음식으로 젖어
생고생만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
따돌림을 당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 물었다.
"간밤에 나를 따돌리고
모두들 맛있게 잘 먹었나?"
그러자 모두들 시무룩하고 아무 말이 없더니,
이후로는 한 번도 야식을 하지 않았더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