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71- 청개가 사당에 든 꿈 (靑蓋入祠)

옛날에 과거에 급제를 하면,

그 사람을 지붕이 없는

가마에 태워 높이 메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그 영광스러운 얼굴을

널리 보도록 하였는데,

이를 '유가(遊街)'라고 했다.

한편, 무과에 급제를 하면

나라에서 그를 찬양하는 표시로

'청개(靑蓋)'라는 것을 내려 주어,

유가를 할 때

가마 앞에 들고 다니도록 했다.

이 '청개'는 긴 막대기 위에

약간 펼쳐진 우산을

겹쳐 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흔히 '청개'라고 하면

무과 급제를 상징하는 말로 이해했다.

어느 고을에 한 무인이 있었는데,

그는 무과에 급제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 또한

무과에 급제를 하니

사람들이 모두 축하했고,

무인 역시 큰 자랑으로 여겼다.

 

하루는 무인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에 이어 아들까지

거듭 급제한 것을 자랑하고 싶어

어깨를 으쓱거려가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어젯밤에

'청개'가 우리 집 가묘(家廟)에

두 번씩이나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오.

그래 너무 좋아서 기뻐하다 잠이 깨었소."

자기 집 가묘의 조상이 도와서,

자신에 이어

아들까지 '청개'를 세우고 다니는

무과 급제의 영광을 안았다는

자랑을 하려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받아서

이렇게 비꼬며 말했다.

"사당으로 두 번이나

'청 삽살개'가 들어갔으면,

반드시 그 개가

가묘 안에 오줌을 쌌겠구먼."

이에 사람들이 한바탕 웃었다.

'청개'를

'청(靑)개(犬)'로 바꾸어 한 말이었다.

'삽살개'를 한자어로

'청방(靑尨)'이라 하기 때문에

'덮개 개(蓋)'자를

'개 방(尨)'자의 우리 말 '개'와 연관시켜

나타낸 것이었으며,

가묘에서 개가 오줌을 싼다는 것은

큰 모욕에 해당되어,

너무 자랑하는 것이 듣기 싫어

이렇게 비꼰 것이었더라.

 

고금소총 제570- 볼기가 아프다고 문자를 쓰다 (痛臀以文)

옛날에 한 사람이 어릴 때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여,

한문 문장에 대한 기초를 터득했다.

그리하여 읽은 책에 나오는 짧은 구절이나

또는 한자를 결합해 문장을 만들어 쓰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며,

대화를 할 때에도

항상 문자(文子)1)를 사용하니,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1)문자(文子) : 글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한문 투의 언어.

한데 이 사람은

남들이 잘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물으면,

그 문자를 풀이해 주면서

자기가 유식하다는 것을 뽐내고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능숙하지도 않은 한문 실력으로

아는 체한다고 비웃었으며,

이 사람이 문자로 뭐라 이야기하면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어느 날 하루 밤에는

이 사람 집에 호랑이가 나타나

장인어른을 물고 갔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다음과 같이 외쳤다.

"호입가중(虎入家中)하여 오지장인착거(吾之丈人捉去)라,

유총창자(有銃槍者)는 지총창이래(持銃槍而來)하고,

유철추자(有鐵椎者)는 지철추이래(持鐵椎以來)하라."1)

1)호랑이가 집안으로 들어와서 나의 장인을 잡아갔다.

총과 창이 있는 사람은 총과 창을 가지고 나오고,

쇠망치가 있는 사람은 쇠망치를 가지고 나오라.)

 

이렇게 밤새도록 외쳐 댔지만,

동네 사람들은

또 무슨 문자를 쓴다고 하면서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이 사람은 관아로 달려가,

호랑이에게 사람이 물려갔다고

밤새 외쳤지만

아무도 나와 주지 않더라고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고소했다.

이 말을 들은 관장은

화를 내면서 이렇게 명령했다.

"한 마을 사람들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이웃의 어려움을

구제해 주지 않은 죄를 물을 것이니,

즉시 잡아들이라."

이에 사령들이 달려가서

마을의 젊은이들을 잡아끌고 왔다.

"들어라!

너희들은 의리가 없도다.

사람이 호랑이에게

물려간다고 소리치는데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으니,

태장을 맞아 마땅한 것이니라.

무슨 이의가 있으면 속히 아뢰어라."

"아뢰옵니다.

저 사람은 항상

문자를 써서 말을 하는데,

소인들 중에는

글공부를 한 사람이 없어,

평소에도 저 사람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옵니다.

그리고 간밤에도 뭐라 문자를 써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사오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여

나가보지 않았사옵니다."

"여봐라!

저런 고얀 놈이 있나?

뭐가 그리 유식하다고

일상생활에 문자를 써서

알아듣지 못하게 했단 말이냐?

저놈에게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 죄를 물어

태장을 치도록 하고,

그 대신 죄 없는 마을 사람들은

물러가게 할지어다."

관장의 판결에 따라

이 사람을 엎어 놓고 볼기를 치니,

아프다는 소리 역시

문자를 써서 하는 것이었다.

곧 '아프구나, 볼기여!'라는 말을,

"통의(痛矣)라, 둔야(臀也)여!"

하고 소리치니

듣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569- 과장 표현의 두 스님이 서로 만나다 (大風相逢)

세상에 알려지기로

합천 해인사(海印寺)는

가마솥이 크기로 유명하고,

안변의 석왕사(釋王寺)는

측간(厠間)이 깊기로 소문나 있었다.

하루는 해인사 스님이,

'도대체 석왕사의 측간이 얼마나 깊기에

사람들이 그리 말하는지

내 한번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석왕사의 스님 한 분도,

"내 해인사에 가서

그 가마솥을 한번 보고 와야겠다."

라고 말하면서,

해인사 스님이 길을 나선

바로 그 무렵에

절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그래서 여러 날 만에

두 스님이 길에서 딱 만나니,

석왕사 스님이 보고서

합장 배례하고 물었다.

"대사께서는 어느 절에 계시며

어디로 가시는 길인지요?"

"예, 소승은

합천 해인사에 거주하옵는데,

안변 석왕사의 측간이

얼마나 깊기에 그러는지

확인하고자 가는 중이옵니다."

 

"아, 소승은

안변 석왕사에 거주하옵는데,

해인사의 가마솥이 얼마나 크기에

그렇게 소문이 났는지,

눈으로 확인하고자 가는 길이옵니다.

그러니 이렇게 중도에서 만난 것은

아마도 부처님의 영험이 계셨나 봅니다."

이렇게 해서 두 스님은

길옆 잔디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자 석왕사 스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체 스님 절의 가마솥은

얼마나 큰지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해인사의 가마솥이

얼마나 큰지

말로 설명하기는 좀 어렵군요.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

지난 동지 때

거기에 팥죽을 쑤었는데,

상좌스님이 그 솥 안에

배를 띄워

팥죽을 젓고 다니셨답니다.

한데 소승이 절을 떠날 그 때까지

아직 한 바퀴를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아! 그렇게 큰가요?

아마 동해보다 더 큰 모양입니다."

"뭐, 동해보다 크기야 하겠습니까?

그보다는 작을 겁니다."

 

두 스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이번에는 해인사 스님이 물었다.

"들으니 스님 절의 측간이

깊다고 하던데,

얼마나 깊은지요?"

"예, 그 깊이를

말로써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소승이 절을 떠날 때

주지 스님께서

측간에 들어가 일을 보셨는데,

아마도 그 대변 덩어리가

아직 바닥에 닿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 역시 참으로 깊군요.

그렇다면 그 깊이가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벌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뭐,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야

되겠습니까?

그 정도는 아니랍니다.

 

이와 같이 서로 문답한 두 스님은

함께 일어서면서 말했다.

"오늘 이렇게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알 만하니,

구태어 가서

눈으로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면서 두 스님은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각자 자기 절로 돌아갔다고 한다.

 

고금소총 제568- 궁 없는 장기 두기 (博無宮)

옛날에 두 재상이

이웃하여 살면서 매우 친했다.

이 두 대감은

장기를 무척 좋아하면서도

그저 말들이 가는 길만

겨우 알고 있을 뿐,

규칙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고 들지 않았다.

예를 들면

포가 포를 잡아 먹을 수 없다든가,

'장군!'을 불러

궁(宮)1)을 피하지 못하면

지게 되는 규칙은 모르고 있었다.

1)궁(宮) : 漢과 楚로 왕을 상징.

하지만 두 대감은

늘 만나서 장기를 두었고,

또 이 대감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놀았기 때문에,

그들이 장기를 둘 때면

옆으로 몰려와 서로들 훈수를 두어,

막상 장기를 두는

두 대감은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그래서 하루는 재상이

집에서 일하는 겸인을 불러

이렇게 시켰다.

"오늘은 골방으로 들어가서

단둘이 장기를 둘 테니,

누가 보자고 해도

절대 들여서는 안 되느니라."

이러고는 둘만 골방으로 들어가

장기를 두는데,

마침 두 대감과 친분이 두터운

손님이 와서 겸인에게 물었다.

"대감은 어디 계시냐?"

"예, 우리 대감님은

골방에서 장기를 두시는데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엄명이 계셨습니다."

"뭐라고? 아니, 무슨 일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다는 게냐?"

"예, 하도 모두 훈수를 두니까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음, 그렇다면 나는 들어가도 좋겠네.

나는 장기를 둘 줄 모르니

어찌 훈수를 두겠는가.

내 어서 들어가 보겠네."

이렇게 말하고는

손님은 골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주인 대감이 눈을 흘기면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는데

어찌 들어왔나?

훈수를 두려거든 속히 나가게."

"아, 대감!

저는 장기를 둘 줄 모릅니다.

훈수라니요?"

이러고 옆에 앉아 보고 있자니,

주인 대감 앞에는

있어야 할 궁이 없었다.

이에 그 손님은

비록 장기 둘 줄은 몰라도

옆에서 늘 봐온 것이 있는지라,

궁 없는 것이

너무 생소하게 느껴져 물었다.

"대감! 대감 앞에는

궁이 어디로 갔는지요?"

"아, 그건 말일세.

자네가 들어오기 직전,

저 친구가 자기 포하고

바꿔 먹었다네."

"옛? 궁 없이도 장기를 둡니까?

좀 이상한데요."

"왜? 난 비록 궁은 잡아먹혔지만,

아직도 차와 포가 살아 있으니

계속 둘만 하다네.

자네는 훈수 두지 말고 가만히 있게나."

이에 손님이 나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모두들 배를 잡고 뒹굴면서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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