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적 배경 4·19로 인한 자유당 1당 독재의 붕괴, 5·16으로 인한 군사 정부의 등장 등 정치·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극심한 경제난이 지속되었으나,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제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4·19 이후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고조되고, 분단 현실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또한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인간 존재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문제 의식이 대두되어 참여 문학이 본격화되었다.
2. 1960년대 시문학의 특징
① 사회 부패에 대한 고발과 비판의 기능 : 시인은 현실에 대한 고발과 비판적 지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실 참여주의자들은, 사회 의식을 직시하고, 서민 의식을 바탕으로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비판적 내용을 작품화하였다.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풀', 신동문의 '비닐 우산',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신경림의 '농무', 조태일의 '황포', 김지하, 최하림, 이성부 등
② 순수 서정과 시의 예술적 기교 추구 : 현실 참여주의에 반대하고, 시의 예술성과 순수성, 그리고 서정성을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를 추구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전통성을 계승하려는 쪽과 시의 예술적 기교를 추구하려는 쪽으로 나뉘었다.
·시의 전통성 계승 - 민요적 형식의 현대적 수용, 토속적인 삶에 대한 추구, 자연에 대한 서정성 등을 추구하였다. 서정주, 김광섭,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박재삼, 이동주, 김남조, 조병화, 박성룡 등
·시의 예술적 기교 추구 - 새로운 기법과 정신을 바탕으로 시적 표현과 인식의 방법을 혁신하려는 경향. 새로운 언어와 기법 실험, 관념적인 주제의 탐구, 시적 순수성에 대한 열정 등을 통해 시의 현대성을 추구하였다. 시가 난해해지고 시의 형식이 복잡해지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김춘수, 전봉건, 송욱, 신동엽, 문덕수, 김광림 등
③ 현대 시조의 발달 :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를 계승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현대적 감각을 살린 현대 시조가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김상옥, 이호우, 정완영, 이영도에 의해 주도됨.
3. 문학사적 의의 ① 현실 참여 문제 : 전쟁과 4·19, 5·16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거치는 동안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비인간화 현상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의식을 형상화한 현실 참여적 성격의 문학이 대두되었다.
② 문학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서정주의와 기교주의의 문학 : 현실 참여의 문학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한편에서는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전통적 서정주의와 기교주의 문학이 뚜렷한 맥을 형성하여 문학의 예술성을 재고하는 데 기여하였다.
③ 사실주의 문학의 경향 : 민족의 분단이라는 비극성, 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비참한 삶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면서, 이를 사실적으로 증언, 조명하고자 하였다. 역사에 대한 반성과 비판, 사회 현실에 대한 통찰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 묘사를 통해, 현실 비판적인 사실주의 문학이 전개되었다.
4. 작가와 작품
1) 현실 참여주의 ① 신경림 : <문학 예술>에 추천되어 등단. '농무' 등 ② 조태일 : <신춘시> 동인. '식칼론', '횡포' 등 ③ 김지하 :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비판함. '오적', '황톳길', '들녘' 등 ④ 이성부 : 개성과 생기 있는 남도적 향토색과 저항적인 현실 의식을 기조로 함. '이 공동의 아침에', '이농', '벼랑 아래에서' 등
2) 전통적 서정주의 ① 이동주 : <문예>지를 통하여 등단. '혼야', '강강술레' 등 ② 박재삼 : 현실주의 참여보다는 전통적인 정서에 연결된 맑은 감수성을 견지함. '흥부의 가난', '은행나무 그늘에서' 등 ③ 조병화 : 도시인의 정서를 부드럽고 수월하게 노래함. '밤의 이야기', '비는 내리는데' 등 ④ 정한모 :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림. '일기', '나비의 여행' 등 ⑤ 천상병 : <신작품>의 동인. 서정을 발판으로 한 신고전주의 경향. '광화문에서', '새' 등 ⑥ 이형기 : 자신의 문학을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유독성의 문학'이라고 규정함. '적막강산', '돌베개의 시' 등
3) 모더니즘의 변형 ① 김춘수 : '순수시'의 극단적 형태로서 '무의미 시'를 주장하고 실천함. '처용단장', '타령조' 등 ② 전봉건 : 초기의 현실적인 관점에서 점차 초현실적인 언어 표현에 주력함. '손의 바다', '의식' 등 ③ 송욱 : 역설적, 냉소적인 언어 구사와 새로운 시형으로 개성 있는 시세계를 추구함. '별 너머 향수', '왕과 조물자' 등 ④ 문덕수 : 내면 세계의 깊이를 초현실주의적인 수법으로 탐구. '선에 대한 소묘의 이미지', '벽' 등 ⑤ 김종삼 : 관념을 재제하고 사상적 이미지들로 내면 세계를 표상함. '앙포르멜', '스와니 강이랑 요단강이랑' 등 ⑥ 박희진 : 뚜렷한 의지를 가지고 현실과 역사, 종교와 생활 등의 문제 추구. '초록의 시', '북한산 진달래' 등
4) 순수 서정주의 ① 김광섭 : <해외 문학>, <문예 월간> 동인. 생경한 관념 세계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원숙한 경지의 시 창작. '동경', '마음', '성북동 비둘기' 등 5) 비판적 현실 의식의 시 ① 김수영 : 참된 시민 의식적 시인으로서의 통찰과 안목을 발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거대한 뿌리', '풀' 등 ② 신동엽 : 강인한 참여 정신을 가지고 건실한 역사 의식을 작품 속에 투영. '아니오', '껍데기는 가라' 등
*기타 참고 자료
1960년대는 1960년 4·19 혁명의 거대한 민중의 열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의 열망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좌절되고, 민주화의 과제는 근대화의 발전 논리와 냉전 체제의 안보 논리에 휘말려 결국 길고 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렇듯 1960년대는 모순과 갈등의 시대였다. 식민지 시기를 뒤이은 분단비극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4·19 혁명과 5·16 쿠데타라는 역사적 사건을 연이어 겪으면서, 한국의 시단은 이러한 1960년대의 상황을 맞아 다양한 시적 응전력을 시험하기에 이른다. 우선 첫째로, 4·19와 5·16의 충격과 영향으로 투철해진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적극적으로 변혁의 의지를 작품 내에 수용하고자 하는 일군의 작품들이 있다. 이러한 작품의 선편은 김수영이 쥐고 있다. 그는 1950년대의 소시민적 비애를 담담하게 노래하다가, 4·19를 계기로 <푸른 하늘을> 이후 <풀>에 이르기까지 현실 참여의 시작 활동을 전개한다. 그의 이러한 현실 인식은 <껍데기는 가라>, <금강>의 신동엽의 민족주의적 역사 의식과 연결되고, 이성부의 <벼>와 조태일의 <국토> 등으로 계승된다. 한편, 사회적 관심을 특히 강조한 시와는 달리 순수한 서정과 낭만성을 강조한 경향의 시들도 크게 대두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50년대 이후 계속되어 온 주된 흐름으로, 정한모, 조병화, 김남조, 박재삼, 박성룡 등이 그 중심적 위치에 선다. 이러한 전대의 흐름과도 달리 현대시의 지성적 영역을 개척하려는 일군의 시인이 등장하는데, 1950년대에 등장한 김춘수, 김광림, 김종삼, 황동규 외에도 이승훈, 오세영, 이수익, 정현종, 오규원 등의 신인들이 주로 이 경향에 가세한다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 태학사>
김만옥은 1946년 3월 6일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여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바다에서 여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하였으나 그의 어머니의 노력으로 1960년 3월 완도중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이 무렵 김만옥은 『학원』이란 잡지에 많은 시와 산문을 게재했으며, 『학원』지의 학생기자로 활동하였다.
1963년 3월,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고교 2학년이던 1964년 11월, 첫 시집 『슬픈 계절의』를 발간했다. 이 무렵 김만옥은 광주 시내 고등학교 문학지망생들과 함께 〈석류〉, 〈시향〉 등의 동인을 조직하여 활동했다.
1965년 4월 고교 재학 중,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가 가작으로 뽑혔으며, 1967년 2월, 『사상계』 제8회 신인문학상에 시 「아침 장미원」외 3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1985년 1월 김준태의 편집으로 유고시집 『오늘 죽지 않고 오늘 살아 있다』(청사)가 간행되었다.
<고향생각>
ㅡ문정희
전라도 보성으로 간다.
옹색과 능그러움으로 누우런 얼굴
떠날적 마다 데리고 떠나도
그대로 남은 가슴이다.
그늘이 제일 먼저 뛰어 나와
컹컹 짖어대며 나를 맞는다.
처음도 없이 견디는 것만 있는
그대의 살결
터럭이 빠지도록 기다려도
지기만 하는 땅바닥
서러운 사투리 골짝마다 걸어 놓고
넉넉한 건 그래도 하늘이어서
아, 모래톱에도 씻기지 않는
죄 같은 육자배기의 보성으로 간다.
<고향생각> - 전문, 문정희39)
<황톳길> - 전문, 김지하52) *52)는 각주번호임. 이하도 동일함.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사 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메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밤마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이파리
뻗시디 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대낮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 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피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황톳길> - 전문, 김지하52)
<國土 ․ 2> - 전문, 조태일75)
참말로 별일이다.
내 꿈속의 어떤 村落에서는
헐벗은 눈물과 눈물들이
소리 없이 만나고, 쉴 새 없이 부딪쳐서
또 다른 눈물들을 탄생시킨다.
눈물의 새끼들은 순식간에 자라서
愛撫도 맘 놓는 定處도 없는 곳에
또 다른 눈물들을 탄생시킨다.
뿐이랴.
어매의 눈물이 아배의 맨살에 닿자
살도 어느덧 눈물이 되고,
아배의 눈물이 어매의 맨살에 역습하자
그 살도 또한 눈물이 되는.
오오 황홀한 범람
그것은 모두 부릅뜬 눈망울인데
하염없이 바라만 보아도
내 몸도 거칠게 출렁이는 눈물이 된다.
뼉따귀와 魂이 한 함성으로 번지는
눈물의 頂点 頂点
참말로 별일이다.
<國土 ․ 2> - 전문, 조태일75)
<벼>
-이성부76)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말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無盡辭說調> 무진사설조
- 임보77)
어제는
내 친구인 미생물학교수가 전자현미경 얘기를 했는데, 몇 십만 배로 늘릴 수 있 다는 그 전자현미경을 통해 인체를 관찰하면, 우리의 눈 주위에 박힌 눈썹털 하나 에도 수십만 개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는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딱정벌레들처럼 발과 머리와 몸통의 형체를 제대로 갖춘 의젓한 생명체로 살아가고 있다는데.
오늘은
내 친구인 천문학교수가 망원경 얘기를 하는데, 은하계 속에는 수많은 태양계들 이 널려 있다는데, 별과 별 사이는 몇 십만 광년이나 되는 것도 있고, 아니 어떤 항성에서 출발한 빛은 아직도 이 지상에 도달되지 않은 것도 있는데, 이 우주의 끝 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도대체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어느 분의 눈썹털 속 에 들어앉아 보채는 것이려나.
인간들이 그 가녀린 지혜로 얽어 로케트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인공위성을 쏘 아 올리기도 하여 달도 화성동 휘어잡아 보는 것은 어느 한 눈썹 속의 딱정벌레가 옆 눈썹으로 건너뛰는 일처럼 우습고 우스운 일이어서 철학을 하는 내 친구 하나 는 그저 술잔 속이나 드려다 보면서 그 시리고 시린 마음을 달래기도 하는데.
일전에는
영혼을 볼 수 있다는 어느 심령학자가 사후의 얘기를 하는데, 장차 우리가 돌아 갈 곳은 시간도 공간도 아닌, 밝은 자는 밝음 속에서, 어두운 자는 어두움 속에서 영원히 스며 흐르는―, 영혼 본연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조금은 덜 허허로운 얘기를 하기는 하는데,
허나,
내 육안으로 보면 알맞게 부푼 저 산과 들판, 곱게 자란 초목, 훈훈한 발마, 저 색깔 고운 과일, 내 가족들의 따스한 체온……
어떤 분이 이 지상에 내 마음 오래 매어 두려 베푸신 저 풍성한 환영임을 내 모 르는 바 아니로되 이 한 꿈 더디 깨기를 바라는 것은, 이 한 꿈 더디 깨기를 바라 는 것은….
<無盡辭說調> - 전문, 임보77)
김남주, 『학살 2』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낮이었다
낮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이민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민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낮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낮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낮 12시였던가
-김남주, 『학살 2』중에서
<나의 칼 나의 피>
- 김남주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에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살찐 그대 가슴 위에 언덕에
골짜기의 평화 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자유의 나무를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키워주랴 누가 지키랴,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법이 판검사가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형제들이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살길 위에
파도로 험산 사나운 뱃길 위에
고개 넘어 평지길 황토길 위에
사래 긴 밭의 이랑 위에 가르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입맞춤 위에
물결처럼 포개지는 그대 잠자리 위에
구석기의 돌 옛 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
오, 자유여 자유의 나무여 <나의 칼 나의 피> - 전문,김남주
<겨울 공화국> 111)
- 양성우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쉬는 것을 보았는가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가라앉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부르면서
불끈불끈 주먹을 쥐고
으드득 으드득 이빨을 갈고 헛웃음을
껄껄걸 웃어대거나 웃다가 새하얗게
까무러쳐서 누군가의 발 밑에 까무러쳐서
한꺼번에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가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논과 밭이 얼어붙는 겨울 한때를
여보게 우리들은 우리들을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가
< 중 략 >
우리들의 슬픈 겨울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일컫게 하고,
묶인 팔다리로 봄을 기다리며
한사코 온몸을 바둥거랴야
하지 않은가
여보게 <겨울 공화국> - 전문, 양성우111)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전문, 황지우151)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
자기들 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 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으로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 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전문, 황지우151)
<가을의 노래>
- 노향림
누군가 동전만한 햇볕들이
텅 빈 거리에 떨어진 것을 봅니다.
인사불성인 땡볕과
아스피린 몇 알.
아직 귀가하지 못한
중학생 아이의 탈선이
숨죽여
리어카 뒤에 숨고 맙니다.
지천으로 쌓인 철 이른 밀감들이
철 안 든 아이들의
말들로 묻혀 있고
들여다 보면
편두통을 앓는지
말에는 아직
발긋발긋 실핏줄이 비쳐 보입니다.
날개 없는 어깻죽지도 보입니다
햇볕에 등 기대고
기댈 데가 있어
대만족인 주인은 듣고 있습니다.
이따금 가을의 섬세한
은빛 날개 스치는 소리.
<가을의 노래> - 전문, 노향림118)
118) 노향림(1942.4.2~ )은 전남 해남 출생. 1970년 『월간문학』에 <불>등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덧없이 바라보던 벽에 지치어 불과 시계를 나란히 죽이고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아닌 여기도 저기도 거기도 아닌 꺼져드는 어둠 속 반딧불처럼 까물거려 정지한 '나'의 '나'의 설움은 벙어리처럼...... 이제 진달래꽃 벼랑 햇볕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 벽 차고 나가 목매어 울리라! 벙어리처럼, 오-- 벽아.ㅡㅡㅡ덧없이 바래보든 壁 에 지치어 불과 時計를 나란이 죽이고
어제도 내일도 오늘도 아닌 여긔도 저긔도 거긔도 아닌
꺼저드는 어둠속 반딧불처럼 까물거려 靜止한 「나」의 나」의 서름은 벙어리처럼…
이제 진달래꽃 벼랑 햇볓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 壁차고 나가 목매어 울리라! 벙어리처럼 오 ― 壁아
[여담]
시인의 회고에 따르면 초판본 출간 당시 정지용이 ‘궁발거사 화사집(窮髮居士 花蛇集)’이라는 제호를 써주며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세 시인이 내가 공식적으로는 첫 번째로 시단에 추천한 시인들이지만 내심은 자네가 내 수제자이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화사(花蛇) ―서정주(1915∼2000)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잃은 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석유(石油) 먹은 듯……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애비는 종이었다.[1]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2]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3]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4] 갑오년[5]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6]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7]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8]에는 몇 방울의 피[9]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10]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1968년 경남 진주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프랑스 폴 베를렌 메스대 불문학 석사
●당선소감
임택수 씨
해지는 줄도 모르고 플루트를 가지고 놀던 어린 조카는 이제 대학생이 됐습니다. 치아 교정장치를 하고서 미팅에 나갑니다. 조카의 방 벽에는 언젠가 만들어 준 허브 스머지 스틱이 조용히 말라갑니다. 올해가 가기 전, 새것으로 바꿔주어야겠습니다.
“오!!!!!!!!!!!!”
당선 소식을 들은 y가 느낌표 열두 개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침묵. 그렇죠, 할 말을 잃은 것이죠. 비현실적인 거죠. 백 번쯤 떨어지면 당연한 거죠.
저 대신 환호해준 사람들, 뜻밖에 울거나 울먹인 사람들, 눈치 없이 축하 문자를 계속 보내온 사람까지, 모두 사랑한다고 적어봅니다. 그런데 저는,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오더라고요. 너무너무 좋아도 욕이 나오나봅니다.
지난여름, 플로베르와 제임스 설터를 챙겨 지방으로 내려왔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니 앞뒤가 좀 안 맞지만 사실입니다. 열다섯. 을지로 입구 인쇄골목. 그때는 집을 돕겠다고 일했었지요. 잉크 묻은 손에 떨어지던 봄 햇살이 아련합니다. 잘 마른 슬픔이 지금은 없어진 그 골목길을 돌아다닙니다.
얼마 전 또 한 사람이 떠났습니다. 이제는 몸이 상하도록 슬퍼하지 않습니다.
지금 쓰지 않으면 평생 쓰지 못한다고 글쓰기의 현재성을 말하던 사람. 그의 평생에 없었던 일이 드디어 일어났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 씁니다. 누구의 인생을 뒤흔들거나 세상의 어둠 한구석을 밝히는 작은 불빛이 되겠다는 포부가 이제는 없습니다. 내가 쓰는 것으로 그런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오만이고 욕심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나는 그저 내가 즐거워지기 위해, 내가 위로받기 위해, 내가 용기 내기 위해, 내가 답을 찾기 위해 씁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 쓴 것들이 부끄럽지만 운 좋게 다른 이들을 만나 시간 낭비가 되지 않는다면, 운이 더 보태져서 숨소리처럼 작은 울림이라도 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 또한 나만의 기적일 것입니다.
그렇게 쓰인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나만 생각하는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음에도 이 영광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주실 분들이 있습니다. 뭘 하기는 한다는데 어슬렁거리기나 하는 것 같은 나를 보며 분통 터졌을 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변함없는 우정으로 응원과 믿음을 보내주는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 분에게 가장 고맙습니다.
언제가 되었든 신춘문예에 꼭 당선되고 싶었습니다. 이제야 도착해 깨닫습니다. 운이 나빠서, 경험과 고통이 부족해서, 내가 못나서, 세상이 나를 못 알아봐서 늦은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랬다는 것을요. 이렇게 된 이상 다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계속 써보겠습니다. 나를 위해. 나의 언어로.
올해 9개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총 7337편이다. 문학을 읽지 않는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응모작은 지난해(6970편)보다 367편 늘었다. 부문별으로는 중편소설 290편과 단편소설 687편, 시 5301편, 시조 580편, 희곡 62편, 동화 305편, 시나리오 66편, 문학평론 17편, 영화평론 29편이었다.
중편소설 응모작은 소재가 풍부했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이야기는 줄어들고 해외로 배경을 넓힌 작품이 많았다. 공상과학(SF), 판타지, 역사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도 돋보였다”고 말했다. 정한아 소설가는 “배달기사 등 비정규직의 애환을 다룬 작품도 있었다. 경제 불황 때문인지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시각이 일부 있었다”고 했다. 손홍규 소설가는 “단편소설의 문학적 미학을 품으면서도 장편소설의 서사성을 품은 작품을 본심 후보로 올렸다”고 했다.
단편소설에선 ‘비인간’의 존재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사람보다는 반려동물·식물을 다룬 작품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김성중 소설가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작품도 있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의 교류를 다루는 건 ‘나와 너’보단 ‘나의 세계’를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손보미 소설가는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더라도 새로 만난 사람보단 가족, 회사 동료 등 익숙한 관계를 다뤘다”고 했다. 김금희 소설가는 “선생님이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이야기도 있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교권 침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