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달>

-기형도

1


과거는 끝났다.

송곳으로 서류를 뚫으며 그는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는 金을 본다.

자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수백 개 명함들을 읽으며

일일이 얼굴들을 기억할 순 없지.

또한 우리는 미혼이니까, 오늘도

분명한 일은 없었으니까

아직은 쓸모 있겠지. 몇 장 얄팍한 믿음으로

남아 있는 하루치의 욕망을 綴(철)하면서.


2


그들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한두 시간 차이났을 뿐. 내가 아는 것을

그들이 믿지 않을 뿐.

나에게도 중대한 사건은 아니었어.

큐대에 흰 가루를 바르면서

김은 정확하게 시간의 각을 재어본다.

각자의 소유만큼씩 가늠해보는 가치의 면적.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지.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좀 복잡한 타산이니까.

똑바로 말한 적이 자네는

한번도 없어.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와이셔츠 단추 한 개를 풀면서

날 선 칼라가 힘없이 늘어질 때까지

어쨌든 우리는 살아온 것이니.

오늘의 뉴스는 이미 상식으로 챙겨들고.


3


믿어주게.

나도 몇 개의 동작을 배웠지.

변화 중에서도 튕겨져 나가지 않으려고

고무풀처럼 욕망을 단순화하고

그렇게 하나의 과정이 되어갔었네. 그는

층계 밑에 서서 가스라이터 불빛 끝에 손목을 매달고

무엇인가 찾는 김을 본다. 무엇을 잃어버렸나.

잃어버린 것은 찾지 않네. 그럴 만큼 시간은 여유가 없어.

잃어 버려야 할 것들을 점검중이지. 그럴 만큼의 시간만 있으니까.

아무리 조그만 나프탈렌처럼 조직의 서랍 속에 숨어 있어도

언제나 나는 자네를 믿어왔네. 믿어주게.

로터리를 회전하면서 그것도 길의 중간에서

날씨야 어떻든 상관없으니까.


4


사람들은 조금씩 빨라진다.

속도가 두려움을 만날 때까지. 그러나

의사의 기술처럼 간단히 필라멘트는

가열되고 기계적으로 느슨히

되살아나는 습관에 취할 때까지 적어도

복잡한 반성 따위는 알코올 탓이거니 아마

시간이 승부의 문제였던 때는 지났겠지.

신중한 수술이 아니어도 흰색 가운을 입듯이

누구나 평범한 秒針(초침)으로 손을 닦는 나이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여주게. 휴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주 사무적인 착상이군. 여기와 지금이 별개이듯이

내가 집착한 것은 단순한 것이었어. 그래서

더욱 붙어 있어야 함을 알아두게. 일이 끝나면

굳게 뚜껑을 닫는 만년필처럼.


5


소리나는 것만이 아름다울 테지.

소리만이 새로운 것이니까 쉽게 죽으니까.

소리만이 변화를 신고 다니니까.

그러나 무엇을 예약할 것인가. 방이 모두

차 있거나 모두 비어 있는데. 무관심만이

우리를 수게 한다면 더 이상 기억할 필요는

없어진다. 과거는 끝났다. 즐거움도

버릇 같은 것. 넥타이를 고쳐매면서 거울 속의 키를

확인하고 안심하듯이 우리는 미혼이니까.

속성으로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휘파람불며

각자의 가치는 포켓 속에서 짤랑거리며

똑바로 말한 적이 자네는

한번도 없어. 제발

그만두게. 자네를 위해서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토해냈네. 또한

무엇이든 분명한 일이 없었고

아직도 오늘은 조금 남아 있으니까. 그럼.

굿바이.


사진 이동이 예술입니다

http://blog.paran.com/rudnfql12/26610946

[백합 & 원추리]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굿 3 -김초혜  (2) 2008.07.04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0) 2008.07.04
사랑한다는 말은 -서정윤  (0) 2008.07.04
서정윤, 홀로서기 3  (0) 2008.07.04
서정윤, 홀로서기 2  (0) 2008.07.04

<사랑한다는 말은>

-서정윤


사랑한다는 말은

기다린다는 말인줄 알았다.

가장 절망적일때 떠오른 얼굴

그 기다림으로 하여

살아갈 용기를 얻었었다.

기다릴수 없으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줄 알았다.

아무리 멀리 떠나있어도

마음은 늘 그대 곁에 있는데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살았다.

그대도 세월을 살아가는 한 방황자인걸

내 슬품속에서 알았다.

스스로 와 부딪치는 삶의 무게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한 줄도 모른채

나는 그대를 무지개로 그려 두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하고

떠나갈 수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

나로 인한 그대 고통들이 아프다.

더 이상 깨어질 아무것도 없을 때 ,

나는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돌아설 수 있었다

사진 이동이 예술입니다

http://blog.paran.com/rudnfql12/26610946

[원추리동산-한택]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0) 2008.07.04
종이달 -기형도  (1) 2008.07.04
서정윤, 홀로서기 3  (0) 2008.07.04
서정윤, 홀로서기 2  (0) 2008.07.04
홀로 서기 -서정윤  (0) 2008.07.04

홀로서기 3

서정윤

1

보고 싶은 마음을 오래 참으면 별이 된다고 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하늘이 유난히 맑다.
늘상 시행착오 속에 살면서 나를 있게 해 준 신이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숱한 밤을 밝혀도 아직도 나는 나의 얼굴을 모르고 있다.

2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역에서 그냥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지만 발길을 막고 서 있는 건 내 속에 나 혼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인가 새로운 자리를 찾아나서는 풀씨들만큼 충실한 씨앗이 되지 못했다.
그리움이 익으면 별이 된다고 내 속에서 빛나는 건 미처 못 지운 절망의 아픔들만 아직도 눈을 뜨고 있다.

3

노래가 질펀한 거리를 그대는 걷고 있다. 시간은 내 속에 정지해 있고 어쩌면 눈물만이 아프다.
혼자 불끄고 누울 수 있는 용기가언제쯤이면 생겨날 수 있나 모든걸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때가 나에게 있을까.
잊음조차 평온함으로 와 닿을 때 아,나의 흔들림은 이제야 끝났는가.

4

내가 준 고통들이 지금 내가 안고 궁그는 아픔보다 더 크고,그럴지라도 그 맑은 미소가 다시 피어나길 기도하는 것조차 알량한 자기 위한일 뿐 나에게 손 내밀어줄 신이 정말 있을까.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는 숱한 다짐들이 어떤 바람에도 놀라게 한다. 굳건히 설 수 있을 때까진 잊어야지내 속에 흐르는 강물이 결국은 바다로 간다는 걸 깨닫기 까지.

5

나는 여기 있는데 내 마음은 어디를 다니고 있는 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아프게 살아온 날들이 모두 돌아볼 수 없도록 참담하고 흔들리는 인간이 흔들리는 나무보다 약하다. 지하도를 빠져나오는 느낌이 모두 같을지라도 바람부는 날 홀로 굳건할 수 있다면 내 속에 자라는 별을 이제는 하늘로 보내 줄 수 있을텐데
아직도 쓰러져 있는 그를 위해 나는 꽃을 들고 있다.

6

술잔 속에서 그대가 웃고 있을때, 나는 노래를 부른다,사랑의 노래를, 보고 싶은 마음들은 언젠가 별이 되겠지 그 사랑을 위해 목숨 걸 때가 있다면 내 아픔들은 모두 보여 주며 눈물의 삶을 얘기 해야지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생을 위해 썩어지는 육신을 위해 우리는 너무 노력하고 있다.
노을의 붉은 빛을 닮은 사랑의 얼굴로 이제는 사랑을 위해 내가 서야 한다. 서 있어야 한다.

7

안다.너의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 나만은 그 아픔을 느낄 수 있기에 말하지 않는다 절망조차 다정할 수 있을 때 그대는 나의 별이 되어라. 흔들리는 억새풀이 애처롭고 그냥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었다 지는 들꽃이 더욱 정겹다.
그냥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사랑하기 위해 애쓰자. 사랑없는 삶으로 우리는 자신을 속일 수 없다 내 꿈으로 뛰운 별이 이제는누구의 가슴에 가 닿을지를 고민하지 말아야지.

 

[백합]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이달 -기형도  (1) 2008.07.04
사랑한다는 말은 -서정윤  (0) 2008.07.04
서정윤, 홀로서기 2  (0) 2008.07.04
홀로 서기 -서정윤  (0) 2008.07.04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에 -서정윤  (2) 2008.07.04

홀로서기 2

서정윤

추억을
인정하자
애써 지우려던
내 발자국의 무너진 부분을
이제는 지켜보며
노을을 맞자.
바람이 흔들린다고
모두가 흔들리도록
버려 둘 수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또
잊어야 했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육신의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
내 가슴에 쓰러지는
노을의 마지막에 놀라며
남은 자도 결국은
떠나야 한다.


아무도
객관적인 생각으로
남의 삶을
판단해선 안된다.
그 상황에 젖어보지 않고서
그의 고민과 번뇌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가졌던
그 숱한 고통의 시간을
느껴보지 않고서, 그누구도
비난해선 안된다.
너무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지만
그래도 가슴 아득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절망은 어쩔 수 없고
네 개의 가시로 자신은
완전한 방비를 했다면
그것은
가장 완전한 방비인 것이다


나로 인해
고통 받는 자
더욱 철저히 고통하게
해 주라.
고통으로 자신이
구원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남이 받을 고통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닌 것은 아닌 것일 뿐
그의 고통은
그의 것이다.
그로 인해 일어난 내 속의 감정은
그를 더욱 나약하게 만들 뿐
아닌 것은 언제나
아닌 것이다
그로 인한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결국은
옳은 길을 걸은 것이다.


나의 신을 볼
얼굴이 없다.
매일 만나지도 못하면서
늘 내 뒤에 서 있어
나의 긴 인생길을 따라다니며
내 좁은 이기심과 기회주의를
보고 웃으시는 그를, 내
무슨 낯을 들고 대할 수 있으리.

부끄러움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지만
자랑스레 내어 놓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기에
좀더 살아
자랑스러운 것 하나쯤
내어 보일 수 있을 때가 되면
자신있게 신을 바라보리라 지만,
언제가 되어질지는, 아니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겠기에
<나>가 더욱 작게 느껴지는 오늘
나를 사랑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나 인간이기에 일어나는
시행착오에 대한 질책으로
어두운 지하 심연에
영원히 홀로 있게 된대도
그 모두
나로 인함이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리
내 사랑하는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 유황부에 타더라도
웃으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있는 그
어디에도 내가 견디기에는
너무 벅찬데
나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든
신의 또다른 뜻은 무엇일까

 

[백합 ]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한다는 말은 -서정윤  (0) 2008.07.04
서정윤, 홀로서기 3  (0) 2008.07.04
홀로 서기 -서정윤  (0) 2008.07.04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에 -서정윤  (2) 2008.07.04
갈대 -신경림  (0) 2008.07.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