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 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풀협죽도]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릐,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층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漢拏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원추리 -허브종원]

















<그 강에 가고 싶다>

-김용택


그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강가에서는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가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맡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은 때로 나를 따라와 머물다가

멀리 간다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백합꽃 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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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위한 서시(序詩)>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무명(無明)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백합 & 나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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