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굿 163>

-김초혜


그대와 보낸

세월은

짧기만 한데

그대 기다리는

하루는

길기만 하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런 얼굴로

돌아와

내게

절을 하고 섰는

그대


인사도 없이

떠나려든

내 손을 잡아주오

그대 손을 놓고

편안히 떠나려오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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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굿 13>

-김초혜


서로 잊으며

켜지 않는 불


잡혀지지 않는 것

붙잡지 않으면서

어쩌려고

얼굴엔

얼룩울짓나


하나의 눈짓을

다른 눈짓으로

베어 내려는

눈부신 어지럼증


허깨비의 울음 말고

조그만 웃음이 되어

그대

마음에 뜨는

달이고 싶다

<사랑굿 33>

-김초혜


나만 흐르고

너는 흐르지 않아도

나는 흘러서

네가 있는 곳으로 간다


흐르다 만나지는

아무 데서나

빛을 키워 되얻는

너의 모습


생각이 어지러우면

너를 놓아 버리고

생각이 자면

네게 가까이 가

몇개의 바다를

가슴에 포갠다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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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굿 3>

-김초혜


나는 너에게

무엇이든 되고 싶다

누가 알면 큰일나는

겹도록 감추어 둔

비밀이고 싶다


종일을 숨어

그대 생각해도

마음 한금 건드리지 못하고

가난하고 약해지는


뚝 뚝 눈물이 되는 버릇

남은 살 몇 점

더 태워

삐인 발목 절룩이며

울고 섰는데

거울 앞에 서지 않는

너의

피곤한 미혹


그대

살을 우비는 냉정함의

절대한 그리움을

주저 앉히진 못할지라도

가거든 아니오기를

[원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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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원추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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