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는 같은 제목의 글이 여러 편 올라와 있어 펌.

서력기원을 세운 이가 1위인 걸 보면

서양인들의 가치기준이군요.

<신학대전>으로 삼위일체설을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5 추정 ~ 1274]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1265년 로마의 성 사비나 수도원에 설립된 도미니코 회 신학 대학의 지도를 위임받았고, '신학대전'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1267년 비테르보로 전임했고, 1268년 파리로 가서, 1269년 파리 대학 신학 교수에 다시 취임하였고, '신학대전' 2부, '악에 대하여'등을 비롯한 정규 토론집 이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에 대한 주해를 집필하였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에 의해 3년간의 기록을 가진 33세 청년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사상을 완성하는 데 1,200여 년이 걸린 셈이다.

14~16세기에 일어난 문화 운동인  르네상스로 중세[dark age]는 마감하게 되는데

이 글을 쓴 이는 신중심주의 역사관에 집착한 듯하군요. 

 


1.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BC 4? ~ AD 30]

기독교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가?
기독교 없는 서양은 서양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 서양적 가치관에 정복당해 있는
동양도 결코 지금의 동양이 아니었을 것이다.
33세에 죽은 목수의 삶이 전 인류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2. 마호메트[Muhammad, 570.4.22 ~ 632.6.8]

인류 1/3의 인생을 결정지은, 1000년을 주도한
이슬람 세계의 영원한 힘의 원천이었던 사람.
지금도 보라.
그의 이름은 여전히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구호로
수억의 사람들에게 힘을 떨치고 있다.

 


3. 공자[孔子, BC 551 ~ BC 479]

동아시아 문명권에 태어난 모든 남녀노소는
공자의 유령과 죽을 때까지 함께해 왔다.
한국, 일본,  중국은 물론
베트남, 몽골, 동남아시아인들 모두가
머리 속에 공자를 품고 산다.

 

4,석가모니[釋迦牟尼, BC 563? ~ BC 483?]
정치, 경제, 과학...허나 가장 강한 것은 종교.

우리나라 역사만 해도 실제로는
단군 왕검 + 석가모니 + 공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 32相

http://kydong77.tistory.com/1138

[인도 카주라호사원]

기단석의 카마수트라  (3) 2009/02/16

카주라호사원의 부조물

사원 외벽 후면과 우측의 부조물들  (4)

2009/02/16

사원 외벽 좌측의 부조물들  (2)

2009/02/16

사원 내부 동영상  (0)

2009/02/16

사원 내벽과 별전 외벽의 여신들  (1)

2009/02/15

사원 내부의 별전 -남근상  (1)

2009/02/15

[족자카르타]

보로부드르 사원  (0)

2014/07/25

[해설] 보로부드르 사원  (0)

2014/07/24

아, 보로부드르 사원! 3  (0)

2014/07/24

아, 보로부드르 사원! 2  (0)

2014/07/24

아, 보로부드르 사원! 1  (0)

2014/07/24


5. 플라톤[Plato, BC 428? ~ BC 348?]
유일한 진리', '절대적 가치'란 개념을 만들어 놓은 사람.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인류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은 플라톤.
(니체 제외. 허나 아무리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하면 뭐하나...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6. 채륜[蔡倫, 50? ~ 121?]
불 이후로 가장 혁신적이었던

기술의 발전 = 종이

 


7. 콜롬버스
본인은 상상도 못했을테지만.서양 중심의 세계관,

 자본주의, 제국주의,2번의 세계 대전, 종교 개혁, 산업 혁명,
그리고 미국까지...

이 모든것의 전환점은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있다.

 


8. 징기스칸[Chingiz Khan, 1162 ~ 1227.]
몽골제국의 창시자(재위 1206∼1227).1204년 내외 몽골을 통일하고,

1206년부터 서하(西夏), 금(金),만주 등을 공격하고,

 1219~ 223년까지 중앙아시아를 평정한 후

남러시아까지 정복하여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했다.
정복한 땅은 아들들에게 분할해 준 후에

 한국(汗國)을 이룩하게 하였고,

몽 본토는 막내 아들에게 주기로 했다.
그러나 1225년 원정에 참전하기를 거절한 서하를 응징하기 위해
현재의 중국의 간쑤 성의류판 산에 있다가
1227년 8월18일 불세출의 대정복자는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알렉산더 벽화.#

9. 알렉산더 대왕 
서양이 동양을 만났다. 그리고 세계가 바뀌었다.

 


10. 아리스토텔레스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
학문의 세계에 있어서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아마도 이 사람일 것이다.
남들은 한 분야에서 이루기만 해도 역사에 영원히 남을만한 성과를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해놓고 갔다.

 

11. 바울
맹자 없이 공자는 없었고 플라톤 없이 소크라테스는 없었다.
예수에겐 바울이 있었다.

 


12. 진시황제[BC 259 ~ BC 210]
이 인간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두려운 이웃이 되버린

중국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국에게 있어선 살아 있었을 땐 두려운자 였을 테지만

이만큼 고마운 사람이 없었을 거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 사상, 중국 민족, 중국 제국의 시초.

 


13. 살라딘
이슬람 세계에는 번영과 통일을,

유럽 세계에는 교황 체제의 몰락과
르네상스-종교개혁을 유발시킨 이슬람의 영웅.

 


14. 나폴레옹
본인은 자신의 영광과 권력만 쫓았지만,

워낙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엄청났던 까닭에
세계가 통째로 흔들려버렸다.
결과는 중세의 완전한 종결, 그리고 근대의 시작.

 

 
15. 율리우스 카이사르
서양의 뿌리는 유럽, 유럽의 뿌리는 로마,

그리고 로마를 그린 사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를 거치면서 로마는 전혀 다른,

우리가 알고 있는그 '로마'가 되었다.

 

16. 스탈린

태초에 마르크스가 있었고, 독생자 레닌이 났으나

교황 스탈린이 모든것을 바꾸어 놓았다.

 


17.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제2의 예수였다.
그가 남긴 경전은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던 율법이었다.
비록 지금 그의 제국은 망했지만,

여전히 그의 신도들은 세계에 다수 존재한다.

그가 철학과 역사관에 남긴 흔적은 여전히 선명하다.

 


18. 히틀러
유럽 제국의 자폭을 유도한 사람.
17, 18, 19세기에 걸치면서

유럽이 가지고 있던악과 비능률을 모조리 끌어안고 죽은,

어찌보면 희생양 같은 사람...? 

 


19. 당 태종
제2의 중국을 만들어 놓은 사람.
이 사람 때부터 중국이 한족만의 중국에서 벗어나

이민족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신했다.
그리고 결과는 시간이 흐를 수록

비대해지는 초대형 다민족 제국, 중국 !!

 



20. 찰스 다윈

인간을 원숭이로 만들어 버린 사람.그의 업적은

과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진화론 이후로 우리가 서로를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눈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3·1독립선언서

http://ko.wikipedia.org/wiki/3%C2%B71%EB%8F%85%EB%A6%BD%EC%84%A0%EC%96%B8%EC%84%9C#.EC.9B.90.EB.AC.B8_.EB.B0.8F_.ED.95.B4.EC.84.A4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는 조선제국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로 1919년 3월 1일의 독립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원문은 최남선이 초안했고, 공약삼장은 한용운이 작성한 글이다.

최남선이 초안, 일제에 합방된 조국을 독립시키고자 손병희를 비롯한 33명의 민족대표는 세계 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 곳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계획을 세웠다.

33명의 대표는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명월관에서 회동, 한용운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에 앞서 2월 26일 ‘보성사’에서 2만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28일에 천5백여 장을 학생들에게 분배하고 나머지를 그 밖의 각처와 각 지방에 분배했다.

탑골공원에서는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서 낭독하였다.

 

吾等(오등)은 慈(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 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 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 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 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해설: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 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 이것으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으로써 자손만대에 일러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마땅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半萬年(반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仗(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여일)한 自由發展(자유 발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基因(기인)한 世界改造(세계 개조)의 大機運(대기운)에 順應幷進(순응병진)하기 爲(위)하야 此(차)를 提起(제기)함이니, 是(시)이 天(천)의 明命(명명)이며, 時代(시대)의 大勢(대세)이며, 全人類(전 인류)共存同生權(공존 동생권)의 正當(정당)한 發動(발동)이라, 天下何物(천하하물)이던지 此(차)를 沮止抑制(저지 억제)치 못할지니라.

해설: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고 이것을 선언하는 터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모아 이것을 널리 알리는 터이며,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터이며, 사람된 양심의 발로로 말미암은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것을 드러내는 터이니,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므로,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것을 막고 누르지 못할 것이라.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 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유사 이래) 累千年(누천 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지 今(금)에 十年(십 년)을 過(과)한지라. 我(아) 生存權(생존권)의 剝喪(박상)됨이 무릇 幾何(기하)이며, 心靈上(심령상) 發展(발전)의 障碍(장애)됨이 무릇 幾何(기하)이며, 民族的(민족적) 尊榮(존영)의 毁損(훼손)됨이 무릇 幾何(기하)이며, 新銳(신예)와 獨創(독창)으로써 世界文化(세계 문화)의 大潮流(대조류)에 寄與補裨(기여 보비)할 奇緣(기연)을 遺失(유실)함이 무릇 幾何(기하)이뇨.

해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당하여, 역사 있은 지 여러 천년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년이 되도다. 우리가 생존권마저 빼앗긴 일이 무릇 얼마며, 정신의 발전이 지장을 입은 일이 무릇 얼마며, 겨레의 존엄성이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성을 가지고 세계 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할 기회를 잃은 일이 무릇 얼마인가!

噫(희)라, 舊來(구래)의 抑鬱(억울)을 先唱(선창)하려 하면, 時下(시하)의 苦痛(고통)을 擺脫(파탈)하려 하면, 將來(장래)의 脅威(협위)를 芟除(삼제)하려 하면, 民族的(민족적) 良心(양심)과 國家的(국가적) 廉義(염의)의 壓縮銷殘(압축 소잔)을 興奮伸張(흥분 신장)하려 하면, 各個(각개) 인격(人格)의 正當(정당)한 發達(발달)을 遂(수)하려 하면, 可憐(가련)한 子弟(자제)에게 苦恥的(고치적) 財産(재산)을 遺與(유여)치 안이하려 하면, 子子孫孫(자자 손손)의 永久完全(영구 완전)한 慶福(경복)을 導迎(도영)하려 하면, 最大急務(최대 급무)가 民族的(민족적) 獨立(독립)을 確實(확실)케 함이니, 二千萬(이천만) 各個(각개)가 人(인)마다 方寸(방촌)의 刃(인)을 懷(회)하고, 人類通性(인류통성)과 時代良心(시대 양심)이 正義(정의)의 軍(군)과 人道(인도)의 干戈(간과)로써 護援(호원)하는 今日(금일), 吾人(오인)은 進(진)하야 取(취)하매 何强(하강)을 挫(좌)치 못하랴. 退(퇴)하야 作(작)하매 何志(하지)를 展(전)치 못하랴.

해설: 오호, 예로부터의 억울함을 풀어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두려움을 없이하려면,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도의가 짓눌려 시든 것을 다시 살려 키우려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옳게 가꾸어 나가려면, 불쌍한 아들, 딸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이 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우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인 것을 뚜렷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속의 칼날을 품으니,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고, 인륜과 도덕이 무기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는 오늘, 우리가 나아가 이것을 얻고자 하는데 어떤 힘인들 꺽지 못하며, 물러서 계획을 세우는 데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할까!

丙子修好條規(병자수호 조규) 以來(이래) 時時 種種(시시종종)의 金石盟約(금석 맹약)을 食(식)하얏다 하야 日本(일본)의 無信(무신)을 罪(죄)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학자)는 講壇(강단)에서, 政治家(정치가)는 實際(실제)에서, 我(아) 文化民族(문화 민족)을 土昧人遇(토매인우)하야, 한갓 征服者(정복자)의 快(쾌)를 貪(탐)할 뿐이오, 我(아)의 久遠(구원)한 社會基礎(사회 기초)를 無視(무시)한다 하야 日本(일본)의 少義(소의)함을 責하려 안이 하노라.

해설: 병자수호조약 이후, 시시때때로 굳게 맺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탓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인은 실생활에서, 우리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이 터전을 식민지로 삼고, 우리 문화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대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감을 탐낼 뿐이요, 우리의 영구한 사회의 기틀과, 뛰어난 이 겨레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옳지 못함을 책망하려 하지 아니 하노라.

自己(자기)를 策勵(책려)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他(타)의 怨尤(원우)를 暇(가)치 못하노라. 現在(현재)를 綢繆(주무)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宿昔(숙석)의 懲辨(징변)을 暇(가)치 못하노라.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所任(소임)은 다만 自己(자기)의 建設(건설)이 有(유)할 뿐이오, 決(결)코 他(타)의 破壞(파괴)에 在(재)치 안이하도다. 嚴肅(엄숙)한 良心(양심)의 命令(명령)으로써 自家(자가)의 新運命(신운명)을 開拓(개척)함이오, 決(결)코 舊怨(구원)과 一時的(일시적) 感情(감정)으로써 他(타)를 嫉逐排斥(질축 배척)함이 안이로다.

해설: 자기를 일깨우기에 다급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원망할 여가를 갖지도 못하였노라. 현재를 준비하기에 바쁜 우리에게는 옛부터의 잘못을 따져 볼 겨를도 없노라.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나를 바로잡는 데 있을 뿐, 결코 남을 헐뜯는 데 있지 아니하도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을 따라 자기 집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는 일일 뿐,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의 감정을 가지고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일이 아니로다.

舊思想(구사상), 舊勢力(구세력)에 羈靡(기미)된 日本(일본) 爲政家(위정가)의 功名的(공명적) 犧牲(희생)이 된 不自然(부자연), 又(우) 不合理(불합리)한 錯誤狀態(착오 상태)를 改善匡正(개선광정)하야, 自然(자연), 又(우) 合理(합리)한 正經大原(정경 대원)으로 歸還(귀환)케 함이로다.

해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인 일본의 위정자의 공명심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이 그릇된 현실을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른 바탕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當初(당초)에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로서 出(출)치 안이한 兩國倂合(양국 병합)의 結果(결과)가, 畢竟(필경) 姑息的(고식적) 威壓(위압)과 差別的(차별적) 不平(불평)과 統計數字上(통계 숫자상) 虛飾(허식)의 下(하)에서 利害相反(이해 상반)한 兩(양) 民族間(민족간)에 永遠(영원)히 和同(화동)할 수 업는 怨溝(원구)를 巨益深造(거익 심조)하는 今來實績(금래 실적)을 觀(관)하라.

해설: 처음부터 이 겨레가 원해서 된 일이 아닌 두 나라의 합병의 결과는 마침내 억압으로 이뤄진 당장의 평안함과, 차별에서 오는 고르지 못함과 거짓된 통계수자 때문에, 이해가 서로 엇갈린 두 민족 사이에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도량이 날이 갈수록 깊이 패이는 지금까지의 사정을 한번 살펴 보라.

勇明果敢(용명 과감)으로써 舊誤(구오)를 廓正(확정)하고, 眞正(진정)한 友好的(우호적) 新局面(신국면)을 打開(타개)함이 彼此間(피차간) 遠禍召福(원화 소복)하는 捷徑(첩경)임을 明知(명지)할 것 안인가. 또, 二千萬(이천만) 含憤蓄怨(함분 축원)의 民(민)을 威力(위력)으로써 拘束(구속)함은 다만 東洋(동양)의 永久(영구)한 平和(평화)를 保障(보장)하는 所以(소이)가 안일 뿐 안이라, 此(차)로 因(인)하야 東洋安危(동양 안위)의 主軸(주축)인 四億萬(사억만) 支那人(지나인)의 日本(일본)에 對(대)한 危懼(위구)와 猜疑(시의)를 갈수록 濃厚(농후)케 하야, 그 結果(결과)로 東洋(동양) 全局(전국)이 共倒同亡(공도동망)의 悲運(비운)을 招致(초치)할 것이 明(명)하니,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朝鮮獨立(조선 독립)은 朝鮮人(조선인)으로 하야금 正當(정당)한 生榮(생영)을 遂(수)케 하는 同時(동시)에 日本(일본)으로 하야금 邪路(사로)로서 出(출)하야 東洋(동양) 支持者(지지자)인 重責(중책)을 全(전)케 하는 것이며, 支那(지나)로 하야금 夢寐(몽매)에도 免(면)하지 못하는 不安(불안), 恐怖(공포)로서 脫出(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東洋平和(동양 평화)로 重要(중요)한 一部(일부)를 삼는 世界平和(세계 평화), 人類幸福(인류 행복)에 必要(필요)한 階段(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區區(구구)한 感情上(감정상) 問題(문제)이리오.

해설: 용감하게 옛 잘못을 고쳐 잡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바탕한 우호적인 새시대를 마련하는 것이, 서로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인 것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또한 울분과 원한이 쌓이고 쌓인 이천만 국민을, 힘으로 붙잡아 묶어둔다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노릇이 아닐 뿐 아니라, 이것이 동양의 평안함과 위대함을 좌우하는 사억 중국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어지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전체가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운을 초래할 것이 뻔한 터에, 오늘 우리의 조선독립은 조선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 벗어나, 동양을 버티고 나갈 이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피하지 못할 불안과 공포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의 평화가 중요한 일부가 되는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 꼭 있어야 할 단계가 되는 것이라. 이것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느냐!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威力(위력)의 時代(시대)가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時代(시대)가 來(내)하도다. 過去(과거) 全世紀(전세기)에 鍊磨長養(연마 장양)된 人道的(인도적) 精神(정신)이 바야흐로 新文明(신문명)의 曙光(서광)을 人類(인류)의 歷史(역사)에 投射(투사)하기 始(시)하도다. 新春(신춘)이 世界(세계)에 來(내)하야 萬物(만물)의 回蘇(회소)를 催促(최촉)하는도다. 凍氷寒雪(동빙 한설)에 呼吸(호흡)을 閉蟄(폐칩)한 것이 彼一時(피 일시)의 勢(세)ㅣ라 하면 和風暖陽(화풍 난양)에 氣脈(기맥)을 振舒(진서)함은 此一時(차 일시)의 勢(세)이니, 天地(천지)의 復運(복운)에 際(제)하고 世界(세계)의 變潮(변조)를 乘(승)한 吾人(오인)은 아모 躊躇(주저)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기탄)할 것 업도다.

해설: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지나간 세기를 통하여 깍고 다듬어 키워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 위에 던지기 시작하누나. 새봄이 온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누나. 얼음과 찬 눈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저 한때의 시세였다면, 온화한 바람, 따뜻한 햇볕에 서로 통하는 낌새가 다시 움직이는 것은 이 한 때의 시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이 마당에, 세계의 변하는 물결을 타는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고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我(아)의 固有(고유)한 自由權(자유권)을 護全(호전)하야 生旺(생왕)의 樂(낙)을 飽享(포향)할 것이며, 我(아)의 自足(자족)한 獨創力(독창력)을 發揮(발휘)하야 春滿(춘만)한 大界(대계)에 民族的(민족적) 精華(정화)를 結紐(결뉴)할지로다.

해설: 우리가 본시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바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피우리라.

吾等(오등)이 慈(자)에 奮起(분기)하도다. 良心(양심)이 我(아)와 同存(동존)하며 眞理(진리)가 我(아)와 幷進(병진)하는도다. 男女老少(남녀노소) 업시 陰鬱(음울)한 古巢(고소)로서 活潑(활발)히 起來(기래)하야 萬彙群象(만휘 군상)으로 더부러 欣快(흔쾌)한 復活(부활)을 成遂(성수)하게 되도다. 千百世(천백 세) 祖靈(조령)이 吾等(오등)을 陰佑(음우)하며 全世界(전세계) 氣運(기운)이 吾等(오등)을 外護(외호)하나니, 着手(착수)가 곳 成功(성공)이라. 다만, 前頭(전두)의 光明(광명)으로 驀進(맥진)할 따름인뎌.

해설: 우리는 그래서 분발하는 바이라.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진리가 우리와 함께 전진하나니, 남자ㆍ여자, 어른ㆍ아이 할 것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하게 되누나. 천만세 조상들의 넋이 우리를 안으로 지키고,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으로 보호하나니, 일에 손을 대면 곧 성공을 이룩할 것이라. 다만 저 앞의 빛을 따라 전진할 따름이로다.

公約三章 (공약 삼 장)

一.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 生存(생존), 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이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一.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히 發表(발표)하라.

一.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 정대)하게 하라.

해설: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ㆍ인도ㆍ생존ㆍ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올바른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먼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가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파고다 (pagoda)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명사] <불교> 미얀마에서, ‘탑파’(塔婆)를 이르는 말. 서양에서는 동양의 불탑(佛塔)을 이른다.

[스페인어사전]

f. 여성명사

1. (불교나 힌두교에서, 여러 층의) 탑, 파고다

 

2. (불교나 힌두교의) 사원

 

3. (불교나 힌두교의) 신(神)

 

 

파고다공원에서 탑골공원으로 개칭함

공원 터는 고려시대에는 흥복사(興福寺), 조선시대에는 원각사(圓覺寺)가 건립되었으나 연산군과 중종 때 절을 폐지해 폐허가 되었다.

 그후 대한제국 광무원년인 1897년 당시 탁지부 고문이었던 영국인 존 브라운씨의 건의로 국내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을 조성, 원각사 탑의 이름을 따서 파고다공원으로 명명했다.

1992년에는 다시 이곳의 옛 지명을 따라 파고다공원에서 탑골공원으로 개칭하였다.

이곳을 3 · 1운동 때 '파고다 공원'이라고 불렀는데 이 '파고다'라는 말은  멀리 인도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파고다'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서 '신에 귀의한다'는 뜻을 가진 '파가바티(bhagavati)'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이 포르투갈어로 차용되어 파고드(pagode)가 되었고, 다시 영어로 차용되어 파고다(pagoda)가 되었다가 한국어로 차용되어 쓰인 것이다. 그래서 파고다는 '사찰의 탑'을 뜻하는 말이다.

 

 

현재 공원 경내에는 독립운동 봉화에 불을 당겼던 팔각정을 중심으로 국보 제 2호인 원각사지 10층석탑, 보물 제 3호인 원각사비 등의 문화재와 3.1 운동 기념탑, 3.1 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이 있다.

[참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13335&cid=43075&categoryId=43075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3140&cid=43667&categoryId=43667

 

 

만해용운당대선사(卍海龍雲堂大禪師碑) 전문/ 탑골공원 * 한룡운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ongchshin37&logNo=220363983877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273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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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목) 대학동기모임 집결지는 파고다공원 원각사지 10층석탑이었다. 

탑사진 끝의 석 장은 인터넷에서 퍼왔다.

 

 

https://namu.wiki/w/%EC%9B%90%EA%B0%81%EC%82%AC

 

원각사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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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부터 흥복사(興福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사찰로 조선 태조 때 조계종(曹溪宗)의 본사가 되었다.

세조 11년(1465) 사월초파일에 세조가 직접 방문하여 승려 2만 명에게 공양을 베풀고 죄인을 사면했으며 세금을 감면하였다. 1467년 사월초파일에는 원각사지 십층석탑을 완성하였고 이후로도 절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신하들이 왕에게 하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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