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각 지장왕보살'은 가만히 서 있어도 땀으로 멱을 감는 여름날, 4년 전엔가 친견했을 땐 불상군의 뒤쪽 꼭대기에 작은 규모로봉안되어 있었는데, 새로 조성한 불전에는 한국관광객의 수요를 감안했음인지 석가모니 부처님에 버금가는 규모로 조성되었다. 불상 위 지붕처럼 얹어 새의 오물이나 먼지의 퇴적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승진(承塵)이라 하는데 세 번재 사진의 승진의 화려함에서 그분에 대한 존경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대웅전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된 장난이지만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거대한 규모의 나한전도 새로 지어져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여기서의 불사는 관광산업과 연계된 국가사업이므로 그 경비는 문제될 게 없었다.

대웅보전 안에는 높이19.6m의 금색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다. 통큰 중국인들을 실감한다. 네 번째 사진인데 나는 가로로 찍은 것밖에 없어 바로 아래 세로로 찍은 한 장을 퍼다 싣는다.

아래에 김교각 스님의 관련 뉴스를 소개한다.

'김교각 지장왕보살' 봉은사 봉안법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0657406

김교각은 신라 효소왕 5년(696년) 왕자로 태어났지만 성덕왕 19년(720년) 중국으로 건너가 구화산에서 75년간 수행했다. 중국인들은 그의 교화 활동을 ‘지장왕보살’로 추앙했다.

중국서 목조 입상으로 돌아온 김교각 스님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봉안

http://blog.daum.net/kinhj4801/13182900

김교각 스님은 신라 효소왕 5년(696년) 왕자로 태어나 출가했으며 성덕왕 19년(720년) 중국으로 건너가 구화산에서 75년간 수행한 뒤 99세에 입적했다. 생전의 교화활동이 지장보살과 흡사하다고 해서 중국인들은 그를 '지장왕보살'로 추앙하고 있다.
입적 후에도 썩지 않은 그의 육신을 등신불로 만들어 모신 구화산 육신보전은 중국불교의 4대 성지로 손꼽힌다.

이번에 봉안되는 김교각 지장왕보살 입상은 중국 정부가 조성해 한국에 기증하는 것으로 높이 3m의 목조 입상이다. 지난 20일 구화산 육신보전에서 점안법회를 봉행한 데 이어 한국으로 이운돼 23일 봉안법회를 갖고 고향인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봉안된다.

http://blog.naver.com/law8575/10024312995


김교각 스님 등신불 사진

http://blog.empas.com/kimcg3519/23600434


















관불(灌佛)의식에 대하여

구룡사에 아침 예불을 갔다. 초파일이면 아내는 사찰 세 곳에는 연등을 달아야 직성이 풀린다. 작은 정성인 연등이 사찰 경제에 일조를 한다면 무조건 만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법당 앞 마당에 꾸며진 관불대에서 아기 부처님께 관불(灌佛)했다. 관불이란 청정한 감로수로 아기 부처님의 몸을 씻는 의식을 말한다.

그분은 오른쪽 손으로 하늘을 향해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외치셨다 한다. 초기불교 시대에 그분의 신성성을 부각하기 위해 만든 설화 장치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말은 인생의 일회성에 근거한 실존에 대한 적확한 외침임을 부인할 수 없다. 홀로 태어나고 홀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인생길에 자립(自立)과 자조(自助)만이 생존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불교를 흔히 자리이타(自利利他) 또는 상구보리(上求 )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종교라 한다. 개인이 증득한 지혜에 타인도 함께 동승(同乘)케 함으로써 부처님의 나라를 지상에 구현한다는 게 신라인들이 꿈꾸던 불국토(佛國土)의 진정한 의미이리라. 그것은 대승불교의 취지이기도 하다.

구룡사의 관불대 풍경과 연등 사진을 싣는다.

관불의식의 의미는 아래 창에 소개하였습니다. 코멘트에 옮깁니다.

http://blog.daum.net/mkw728/3839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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