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번뇌 []

백팔결()이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중생의 눈 ·귀 ·코 ·혀 ·몸 ·뜻(마음) 등의 감각기관이 감관의 대상을 접할 때, 저마다 좋다[], 나쁘다[], 그저 그렇다[]는 세 가지가 서로 같지 않아서 18가지 번뇌를 일으킨다.

또 괴로움[] · 즐거움[]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것과 관련지어 18가지 번뇌를 갖게 된다.

이들을 합한 36가지 번뇌가 다시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갖기 때문에 36가지 번뇌에 3배를 하면 108가지 번뇌가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두어, 108개의 목환자를 꿰어 만든 108수주(:염주)를 만들어 돌리면서 삼보()를 생각하면 108가지 번뇌를 없애고 수승()한 과()를 얻는다고 하여 널리 신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번뇌를 108종으로 세분해 본 것일 뿐, 그 근원은 하나이다. 그것은 본래의 자기인 일심()을 잃는 데서 오는 것이므로, 일심을 잃지 않도록 하고, 또 잃더라도 빨리 되찾는 것이 백팔번뇌를 끊는 길이라고 한다.

[두산백과사전]

    <불교> 사람이 지닌 108가지의 번뇌.

    6()에 각기 고(), (), 불고불락(不苦不樂)이 있어

    18가지가 되고,

    이에 탐()과 무탐(無貪)이 있어 36가지가 되며,

    이것을 다시 과거, 현재, 미래로 각각 풀면 108가지가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엄청난 번뇌를 이른다.

    백팔(百八)

    [국어사전]

     

    아래는 [위키백과] 불교 포스트

    불교

    https://ko.wikipedia.org/wiki/%EB%B6%88%EA%B5%90

    오근과 육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5근(五根, 산스크리트어: pañcendriyāni, 영어: Five sensory faculties)은 안식(시각) · 이식(청각) · 비식(후각) · 설식(미각) · 신식(촉각)5식(五識)이 각자의 대상으로서의 색경(색깔과 형태) · 성경(소리) · 향경(냄새) · 미경(맛) · 촉경(감촉)의 5경(五境)을 지각할 때 사용하는 소의(所依)로서의 안근(眼根: 눈) · 이근(耳根: 귀) · 비근(鼻根: 고) · 설근(舌根: 혀) · 신근(身根: 몸)의 5가지 감각 기관을 말한다.[1][2] 전체적으로 말하면, 5식은 5근을 소의(所依: 성립 근거, 의지처, 도구, 감각 기관)로 하여 5경을 인식한다.

    제6식의식(意識)5경법경(法境)을 인식할 때 사용되는 소의(所依: 성립 근거, 의지처, 도구, 감각 기관)를 의근(意根)이라 정의한다. 부파불교설일체유부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에 따르면 의근은 실제로는 마음(6식, 또는 8식 중 6식, 즉 심왕, 즉 심법)이 과거로 낙사(落謝)한 것을 말한다.[3][4][5][6] 즉, 과거의 경험의 총체를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의근은 단지 제6의식만의 소의가 되는 것은 아니며 전5식소의도 된다. 또한 이 때문에 제6의식6경을 전체적으로 취할 수 있다.[4]

    5근과 의근(意根)을 합하여 6근(六根)이라 한다. 6근은 6입(六入) · 6처(六處) · 6입처(六入處) · 내6입(內六入) · 내6입처(內六入處) · 6내입처(六內入處) · 6정(六情) · 제입(諸入) · 6촉입처(六觸入處) · 6촉처(六觸處: 6촉의 소의처가 되는 6근[7][8]) 또는 6갱락처(六更樂處)라고도 한다.[9] 전체적으로 말하면, 6식(六識)은 6근을 소의(所依: 성립 근거, 의지처, 도구, 감각 기관)로 하여 6경을 인식한다. 한편,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의근 즉 '6식소의가 되는 과거의 경험의 총체'가 실제로는 8식 가운데 제7식말나식이라고 보는데,[5][6][10][11] 이 견해는 부파불교상좌부불교의 견해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는 대승불교의 특징적인 견해들 중 하나이다.

    의근제6근(第六根)이라고도 한다. 나머지 앞의 5근을 전5근(前五根)이라고도 하며 이들은 또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물질적 대상인 5경을 인식하는데 있어 소의가 되므로 5색근(五色根)이라고도 한다.

    "가자 가자 피안으로.
    피안으로 아주 가자, 영원한 깨달음으로. ”  
    반야심경

    불교

    위 단어 <불교>를 클릭하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kydong77.tistory.com/6783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불교 불경 > 붓다의 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三千大千世界  (0) 2011.10.14
원효,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0) 2011.05.27
붓다의 32상호  (1) 2009.02.12
팔정도 -해탈에 이르는 길  (0) 2008.09.28
사성제-부처님 생각  (0) 2008.09.28

붓다의 32상호(相好)



[은자주]장아함경에서 붓다의 32상호를 찾아본다. 한문은 신수대장경본, 국역은 동국대역경원의 작업이다.

是時。父王慇懃再三。重問相師。

“그 때에 부왕(父王)은 은근히 관상가에게 되풀이해 물었다.

汝等更觀太子三十二相。斯名何等。

'너희들은 다시 태자의 32상을 다시 한 번 살펴 보라. 32상이란 어떤 것인가?'

時諸相師卽披太子衣。說三十二相。

관상가들은 태자의 옷을 헤치면서 32상을 설명하였다.

一者足安平。足下平滿。蹈地安隱。

'첫 번째는 발바닥이 평평한 것입니다. 발바닥이 평평하므로 땅을 딛을 때 안온합니다.

二者足下相輪。千輻成就。光光相照。

두 번째는 발바닥에 수레바퀴살의 무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 개 바큇살로 되어 광명과 광명이 서로 비치고 있습니다.

三者手足網縵。猶如鵝王。

세 번째는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거위왕처럼 생긴 얇은 비단결 같은 막이 있는 것입니다.

四者手足柔軟。猶如天衣。

네 번째는 손발이 천상의 옷처럼 매우 부드러운 것입니다.

五者手足指纖。長無能及者。

다섯 번째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가늘면서도 길어 아무도 따를 자가 없는 것입니다.

六者足跟充滿。觀視無厭。

여섯 번째는 발꿈치가 원만해 보기에 싫지 않은 것입니다.

七者鹿膊腸。上下傭直。

일곱 번째는 장딴지가 사슴 다리 같아 아래위가 쪽 곧은 것입니다.

八者鉤[錙-田+貝]骨。骨節相鉤。猶如[錙-田+貝]連。

여덟 번째는 뼈마디가 서로 물리어 마치 쇠사슬처럼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九者陰馬藏。

아홉 번째는 남근(男根)이 말처럼 오므라들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十者平立垂手過膝。

열 번째는 바로 서서 팔을 드리우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것입니다.

十一․一一孔一毛生。其毛右旋。紺琉璃色。

열한 번째는 낱낱의 털구멍마다 하나씩 털이 나 있고 그것이 오른쪽으로 감겼으며 빛은 감청색 유리와 같은 것입니다

.

十二․毛生右旋。紺色仰靡。

열두 번째는 검푸른 털이 오른쪽으로 감아 돌아 위로 쓸려 있는 것입니다.

十三․身黃金色。

열세 번째는 몸이 황금빛인 것입니다.

十四․皮膚細軟。不受塵穢。

열네 번째는 살결이 부드럽고 매끄러워 먼지가 묻지 않는 것입니다.

十五․兩肩齊亭。充滿圓好。

열다섯 번째는 두 어깨가 가지런하고 둥글며 풍만한 것입니다.

十六․胸有萬字。

열여섯 번째는 가슴에 만(卍)자의 형상이 있는 것입니다.

十七․身長倍人。

열일곱 번째는 키가 보통 사람의 곱이나 되는 것입니다.

十八․七處平滿。

열여덟 번째는 일곱 부위10)가 모두 판판하고 두터우며 둥근 것입니다.

10) 발바닥ㆍ두 손바닥ㆍ두 어깨ㆍ정수리 혹은 목덜미를 말한다.

十九․身長廣等。如尼拘盧樹。

열아홉 번째는 몸뚱이의 길이와 너비가 니구로(尼拘盧)11)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11) 3본에는 니구류(尼拘類)로 되어 있다.

二十․頰車如師子。

스무 번째는 뺨이 사자와 같은 것입니다.

二十一․胸膺方整如師子。

스물한 번째는 가슴이 방정(方整)한 것이 사자와 같은 것입니다.

二十二․口四十齒。

스물두 번째는 이가 마흔 개나 되는 것입니다.

二十三․方整齊平。

스물세 번째는 이가 방정하고 고른 것입니다.

二十四․齒密無間。

스물네 번째는 이가 조밀하여 틈이 나 있지 않은 것입니다.

二十五․齒白鮮明。

스물다섯 번째는 이가 희고 깨끗하고 고운 것입니다.

二十六․咽喉淸淨。所食衆味。無不稱適。

스물여섯 번째는 목구멍이 깨끗하여 갖가지 음식의 맛이 입에 맞지 않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二十七․廣長舌。左右舐耳。

스물일곱 번째는 혀가 길고 넓어 좌우로 귀를 핥을 수 있는 것입니다.

二十八․梵音淸徹。

스물여덟 번째는 범음(梵音)12)이 맑고 깨끗한 것입니다.

12) 이 다섯 가지 속성을 고루 갖춘 브라흐마의 음성(brahmassara)을 말한다. 팔리본에는 “깔라비까(karavika:가릉빈가)의 소리”로 되어 있다.

二十九․眼紺靑色。

스물아홉 번째는 눈이 검푸른 것입니다.

三十․眼如牛王。眼上下俱眴。

서른 번째는 눈이 우왕(牛王)과 같고 아래위로 한꺼번에 깜박여지는 것입니다.

三十一․眉間白毫柔軟細澤。引長一尋。放則右旋螺如眞珠。

서른한 번째는 두 눈썹 사이에 보드랍고 가늘고 광택이 나는 흰 털이 있어, 펴면 한 길이나 되고 놓으면 오른쪽으로 소라처럼 감겨 진주(眞珠)와 같은 것입니다.

三十二․頂有肉髻。是爲三十二相。

서른두 번째는 정수리에 육계(肉髻:살상투)가 있는 것이니, 이것이 32상입니다'.”

[이하 게송 생략]

[참고]

혀와 남근에 대한 기록을 따로 적은 곳도 있다. 국역을 옮겨본다.

동국대 역경원 장아함경 국역본, pp.452-453.

마납은 곧 눈을 들어 여래의 몸을 살피면서 모든 상호(相好)를 찾아보았다.

다른 상호는 다 볼 수 있었으나 오직 두 가지 상만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곧 마음에 의심을 품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잠자코 생각하셨다.

'이제 이 마납이 두 가지 상을 보지 못해 의심을 품는구나.'

곧 넓고 긴 혀의 상을 내어 귀를 핥고 얼굴을 덮었다.

그래도 저 마납은 다시 한 가지 상을 의심했다.

세존께서는 다시 생각하셨다.

'이제 이 마납이 아직 한 가지 상을 보지 못해 의심하는구나.'

곧 신력으로 저 마납 혼자만 음마장(陰馬藏)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마납은 상을 전부 다 보고 나서야 여래에 대해서 다시는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돌고 물러갔다.

*음마장(陰馬藏)이란 숫말의 성기를 지칭한다.

'불교 불경 > 붓다의 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효,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0) 2011.05.27
백팔번뇌  (0) 2009.05.03
팔정도 -해탈에 이르는 길  (0) 2008.09.28
사성제-부처님 생각  (0) 2008.09.28
구담보살,12연기를 깨치시다  (0) 2008.09.06
팔정도(八正道)-해탈에 이르는 길

삼취경(三聚經)

-佛說長阿含經 卷第十


正見․ 正志․ 正語․ 正業․

즉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

正命․ 正方便․ 正念․ 正定。

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


又有七法向惡趣。七法向善趣。七法向涅槃。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이 있다.


云何七法向惡趣。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인가 하면,

謂殺生․ 不與取․ 婬逸․ 妄語․ 兩舌․ 惡口․ 綺語。

살생ㆍ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ㆍ음탕한 것ㆍ거짓말ㆍ이간시키는 말ㆍ욕설ㆍ꾸밈말이다.


云何七法向善趣。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인가 하면,

謂不殺生․ 不盜․ 不婬․ 不欺․ 不兩舌․ 不惡口․ 不綺語。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이간질하지 않고 욕설하지 않으며, 꾸밈말 하지 않는 것이다.


云何七法向涅槃。謂七覺意。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일곱 가지 법인가 하면, 일곱 가지의 각의(覺意)로서,

念覺意․ 擇法覺意․ 精進覺意․ 猗覺意․ 定覺意․ 喜覺意․ 捨覺意。

즉 염각의(念覺意)3)ㆍ택법각의(擇法覺意)4)ㆍ정진각의(精進覺意)5)ㆍ의각의(猗覺意)6)ㆍ정각의(定覺意)7)ㆍ희각의(喜覺意)8)ㆍ사각의(捨覺意)9)이다.


3) 수행함에 있어서 늘 잘 생각하여 정(定)과 혜(慧)가 한결같도록 하는 것.

4) 모든 법을 살펴서 선악(善惡)의 진위(眞僞)를 가려내는 것.

5) 적에 용맹한 마음으로 쓸데없는 사행(邪行)을 여의고 바른 도에 전력을 기울여 게으르지 않는 것.

6) 견해를 끊어버릴 적에 참되고 거짓됨을 알아서 올바른 선근(善根)을 생하는 것.

7) 들어서 번뇌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

8) 선법(善法)을 얻어서 기뻐하는 것.

9) 경계에 집착하던 마음을 여읠 적에 거짓되고 참되지 못한 것을 추억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


又有八法向惡趣。八法向善趣。八法向涅槃。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이 있다.


云何八法向惡趣。謂八邪行。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여덟 가지 삿된 행위[邪行]로서

邪見․ 邪志․ 邪語․ 邪業․

삿된 소견ㆍ삿된 뜻ㆍ삿된 말ㆍ삿된 행동ㆍ

邪命․ 邪方便․ 邪念․ 邪定。

삿된 생활ㆍ삿된 방편ㆍ삿된 생각ㆍ삿된 선정[定]을 말한다.


云何八法向善趣。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謂世正見․ 正志․ 正語․ 正業․

세상의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

正命․ 正方便․ 正念․ 正定。

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을 말한다.



云何八法向涅槃。謂八賢聖道。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여덟 가지 현성의 도(道)로서,

正見․ 正志․ 正語․ 正業․

즉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

正命․ 正方便․ 正念․ 正定。

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이다.


又有九法向惡趣。九法向善趣。九法向涅槃。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이 있다.

云何九法向惡趣。謂九惱。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아홉 가지 괴롭힘[惱]을 말한다.

有人已侵惱我。

어떤 사람이 과거에 나를 침노해 괴롭혔고,

今侵惱我。當侵惱我。

현재에도 나를 침노해 괴롭히며, 앞으로도 나를 침노해 괴롭힐 것이다.

我所愛者。已侵惱。

내가 사랑하는 것을 과거에 침노해 괴롭혔고,

今侵惱。當侵惱。

현재에도 침노해 괴롭히며, 앞으로도 침노해 괴롭힐 것이다.

我所憎者。已愛敬。

내가 미워하는 자를 과거에 사랑하고 공경했고,

今愛敬。當愛敬。

현재에도 사랑하고 공경하며, 앞으로도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다.


云何九法向善趣。謂九無惱。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아홉 가지 괴롭힘이 없는 것[無惱]을 말한다.

彼已侵我。我惱何益。

그가 과거에 나를 침노했는데 내가 번민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여

已不生惱。今不生惱。當不生惱。

과거에도 번민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는 것이다.

我所愛者。彼已侵惱。我惱何益。

내가 사랑하는 자를 저가 과거에도 침노했는데 내가 괴로워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여

已不生惱。今不生惱。當不生惱。

과거에도 번민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는 것이다.

我所憎者。彼已愛敬。我惱何益。

내가 미워하는 자를 저는 과거에도 사랑하고 공경했는데 내가 괴로워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여

已不生惱。當不生惱。今不生惱。

과거에도 번민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번민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번민하지 않는 것이다.


云何九法向涅槃。謂九善法。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아홉 가지 법인가 하면,

一喜。二愛。三悅。四樂。

첫째는 기쁨, 둘째는 사랑, 셋째는 기뻐함, 넷째는 즐거움,

五定。六實知。七除捨。八無欲。九解脫。

다섯째는 선정[定], 여섯째는 진실된 지견, 일곱째는 버림, 여덟째는 욕심 없음, 아홉째는 해탈이다.


又有十法向惡趣。十法向善趣。十法向涅槃。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과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이 있다.


云何十法向惡趣。謂十不善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인가 하면, 열 가지 불선(不善)으로서

身殺․ 盜․ 婬。

즉 몸으로 짓는 살생ㆍ도둑질ㆍ음행과

口兩舌․ 惡罵․ 妄言․ 綺語。

입으로 짓는 이간질하는 말ㆍ욕설ㆍ거짓말ㆍ꾸밈말과

意貪取․ 嫉妒․ 邪見。

뜻으로 짓는 탐욕ㆍ질투ㆍ사견(邪見)이다.


云何十法向善趣。謂十善行。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인가 하면, 열 가지 선행(善行)으로서

身不殺․ 盜․ 婬。

즉 몸으로 짓는 살생ㆍ도둑질ㆍ간음을 하지 않는 것,

口不兩舌․ 惡罵․ 妄言․ 綺語。

입으로 짓는 이간시키는 말ㆍ욕설ㆍ거짓말ㆍ꾸밈말을 하지 않는 것,

意不貪取․ 嫉妒․ 邪見。

뜻으로 짓는 탐욕ㆍ질투ㆍ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는 것이다.


云何十法向涅槃。謂十直道。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열 가지 법인가 하면, 열 가지의 곧은 길로서

正見․ 正志․ 正語․ 正業․

즉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

正命․ 正方便․ 正念․ 正定․ 正解脫․ 正智。

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ㆍ바른 해탈ㆍ바른 지혜이다.

諸比丘。如是十法。得至涅槃。

모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열 가지의 법은 열반에 이르게 할 수 있나니,

是名三聚微妙正法。

이것을 이름하여 3취(聚)의 미묘하고 바른 법이라 한다.



'불교 불경 > 붓다의 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팔번뇌  (0) 2009.05.03
붓다의 32상호  (1) 2009.02.12
사성제-부처님 생각  (0) 2008.09.28
구담보살,12연기를 깨치시다  (0) 2008.09.06
구담, 야단법석 중에도 四苦의 원인을 탐색하다  (0) 2008.09.06

사성제와 팔정도

http://kydong77.tistory.com/332

http://kydong77.tistory.com/admin/entry/post/?id=332&returnURL=CLOSEME

 

사성제(四聖諦) -부처님 생각

증일아함경


[은자주]사성제는 흔히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성제(道聖諦)를 말한다.

<증일아함경>에서와 같이 ‘고’를 넣어서

 “苦諦․ 苦習諦․ 苦盡諦․ 苦出要諦”라 말해도 의미는 같지만 뜻이 더욱 분명하여 이를 취한다.

참고로 춘추시대의 성인들을 보면 열 살 터울이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석가님은 사성제 팔정도를, 공자님은 삼강령 팔조목을 말씀하셨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들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삼강령(三綱領)

1) 명명덕(明 明德) 2) 친[신]민[親(新)民] 3) 지어지선(止於至善)


2. 팔조목(八條目)

1)격물(格物) 2)치지(致知) 3)성의(誠意) 4)정심(正心)

5)수신(修身) 6)제가(齊家) 7)치국(治國) 8)평천하(平天下)


팔정도(八正道)

正見ㆍ 正志ㆍ 正語․ㆍ正業․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

正命ㆍ 正方便ㆍ 正念ㆍ 正定。

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생각ㆍ바른 선정

 

春秋時代;B.C.770-B.C.403;

老子(B.C.571-?),

孔子(B.C.551-B.C.479,

釋迦牟尼(B.C.561-B.C.480)


是時。世尊告五比丘。

그때 세존께서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汝等當知。有此四諦。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진리[四諦]가 있다.

云何爲四。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苦諦․ 苦習諦․ 苦盡諦․ 苦出要諦。

괴로움에 대한 진리[苦諦]·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苦習諦]·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苦盡諦]·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진리[苦出要諦]가 그것이니라.


彼云何名爲苦諦。

저 어떤 것을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고 하는가?

所謂生苦․ 老苦․ 病苦․ 死苦․

이른바 태어나는 괴로움[生苦]· 늙는 괴로움[老苦]· 병드는 괴로움[病苦]· 죽는 괴로움[死苦]과

憂悲惱苦 ․ 愁憂苦痛。不可稱記。

근심 · 슬픔 · 번민의 괴로움[憂悲惱苦] · 시름하고 근심하는 고통[愁憂苦痛]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怨憎會苦 ․ 恩愛別苦 ․ 所欲不得。亦復是苦。

원수나 미운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괴로움[恩愛別苦]이며,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또한 괴로움이다.

取要言之。五盛陰苦。

긴요한 것만을 취하여 말하면 5성음고(盛陰苦)라고 한다.

是謂苦諦。

이것을 일러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云何苦習諦。

어떤 것을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라고 하는가?

所謂受愛之分。習之不惓。

이른바 느끼고 애착하는 부분들을 모으고 쌓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자꾸 모으며

意常貪著。

뜻으로 항상 탐하고 집착하는 것이니,

是謂苦習諦。

이것을 일러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彼云何苦盡諦。

저 어떤 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고 하는가?

能使彼愛滅盡無餘。亦不更生。

이른바 저 애욕을 남김없이 모두 없애 다시는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是謂苦盡諦。

이것을 일러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彼云何名爲苦出要諦。

저 어떤 것을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진리라고 하는가?

所謂賢聖八品道。

이른바 성현(聖賢)의 8성도(聖道)인,

所謂等見․ 等治․ 等語․ 等業․

바른 소견[等見]·바른 다스림[等治]·바른 말[等語]·바른 업[等業]·

等命․ 等方便․ 等念․ 等定。

바른 생활[等命]·바른 방편[等方便]·바른 생각[等念]·바른 선정[等定]을 말하는 것이다.

是謂名爲四諦之法。

이것을 일러 네 가지 진리의 법이라고 하느니라.


然復。五比丘。此四諦之法。

그리고 또 다섯 비구들아, 이 네 가지 진리의 법에서

苦諦者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眼生․ 智生․ 明生․ 覺生․ 光生․ 慧生。

거기에서 안목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며, 밝음이 생기고 깨달음이 생기며, 광명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는 것이니라.

本未聞法。

전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법이니라,



復次。苦諦者。

또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實․ 定。不虛不妄。終不有異。

진실하고 결정된 것이라서 허무한 것이 아니고 거짓이 아니며, 마침내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서

世尊之所說。故名爲苦諦。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苦習諦者。本未聞法。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전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법으로서,

眼生․ 智生․ 明生․ 覺生․ 光生․ 慧生。

거기에서 안목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며, 밝음이 생기고 깨달음이 생기며, 광명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는 것이니라.



復次。苦習諦者。

또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實․定。不虛不妄。

진실하고 결정된 것이라서 허무한 것이 아니고 거짓이 아니며,

終不有異。世尊之所說。

마침내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故名爲苦習諦。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苦盡諦者。本未聞法。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전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법으로서,

眼生․ 智生․ 明生․ 覺生․ 慧生․ 光生。

거기에서 안목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며, 밝음이 생기고 깨달음이 생기며, 광명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는 것이니라.



復次。苦盡諦者。

또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實․定。不虛不妄。終不有異。

진실하고 결정된 것이라서 허무한 것이 아니고 거짓이 아니며, 마침내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서

世尊之所說。故名爲苦盡諦。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苦出要諦者。本未聞法。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전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법으로서,

眼生․ 智生․ 明生․ 覺生․ 光生․ 慧生。

거기에서 안목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며, 밝음이 생기고 깨달음이 생기며, 광명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는 것이니라.



復次。苦出要諦者。

또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진리라는 것은

實․定。不虛不妄。終不有異。

진실하고 결정된 것이라서 허무한 것이 아니고 거짓이 아니며, 마침내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서

世尊之所說。故名爲苦出要諦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진리라고 하느니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