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야기

-노향림

억센 사투리로 진도가 내 고향인디, 어허,

소리꾼은 내처 불렀던 신명을 모두 버렸다.

제 영혼의 등받이마저 버리고 보니

내심 날아갈 것 같았다.


그 한 몸의 생계가 될까 하고 스스로 산 속에

입산하듯 들어가 벌을 치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 풀벌레 날갯짓 소리를 몇 벌씩

껴입었다 벗었다 했다.

다 해진 풀섭의 누더기도 기워 주었다.


아카시아, 싸리꽃, 꿀을 튜브처럼 짜 넣은

벌집을 털어내다 그는 그만 화상을 입었다.

벙벙해진 얼굴로 너와집도 함께 곰삭았다.


잠 못든 신새벽이 마비된 그의 망각을 간지렵혔다.

바람 한점 없이 평온한 진도벌이 이불이 되어

그의 곁에 눕기 시작했다.

목이 쉬어 피를 토해 낼 때까지 날마다 그가 앉은

벼랑이 등뼈 곧추세우고 기다렸다.


그의 득음에 멀리 진도가 고수가 되어 장단 맞추었다.

어허, 진도가 어디간디, 바로 여기지

아암 그렇고 말고, 산봉우리는 모두 바다가 되었제.

이제 바다는 산봉우리가 되는 것이여.

장단을 맞춘 산봉우리들이 여기 저기서

일어서 화답하기 시작했다.

[연못 -들꽃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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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해도

-노향림


섬진강을 지나 영산강 지나서

가자 친구여
서해바다 그 푸른 꿈 지나
언제나 그리운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가자 언제나 그리운
압해도로 가자
창밖엔 밤새도록 우리를 부르는
소리 친구여
바다가
몹시도 그리운 날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가자 언제나 그리운
압해도로 가자


하이얀 뭉게구름
저멀리 흐르고
외로움 짙어가면 친구여
바다 소나무 사잇길로 가자
우리보다 더 외로운 섬
압해도 압해도로 가자

가자 언제나 그리운
압해도로 가자

최영섭곡/박정하 바리톤

http://blog.daum.net/daum0724/7656147

압해도 노향림 시비 탐방

http://jnilbo.com/read.php3?no=122857&read_temp=20040915&section=52

[수련 -한택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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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꿩소리

-홍신선

누가 죽어서
저 들판의 대머리 빗기며
묵묵히
공허가 되어 와 섰느냐.

이제 이 세상에서
자네의 꿈은
저 들보리밭에 우는 산꿩 소리에나
남아서
꿔구엉 꿔구엉
제 속을 제 속의 멍울을
속속들이 다 뒤집어
허공에 허옇게 주느니

허공에 허옇게 들린
산꿩 소리나
받아 들고
누가 묵묵히
공허가 되어 와 섰느냐.

[말바비스커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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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 바람 속에서


-
홍신선


너와 나에게 젊음은 무엇이었는가


수시로 입 안 말라붙던 갈한 욕망은 무엇이었는가


아직도 눈먼 황소들로 몰려와서는 노략질하는 것,

잣대기다 무릎 꿇고 넘어지는 것, 나둥그러지기도 하는 것,


낡은 집 고향의 쓸쓸한 토방에서 내다보는 황사 바람이여


오늘은 너의 자갈 갈리는 목쉰 사투리들이 유난히 거칠다


깨진 벽틈 속 실낱의 좀날개바퀴 울음은 들리지 않는다


그 소리들은 외침들은 왜 그리 미미한가


쥐오줌 얼룩든 천정 반자들이 무안한 듯 과거로 내밀려 앉아 있다


너는 삭막한 하늘 안팎을 뉘우침처럼 갈팡질팡 들락이는데...



척추 디스크를 앓는 아내와


지방에 내려간 자식은


멀리 네 옷깃에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씨앗에서 막 발 뺀 벽오동나무의 발뿌리에다 거름 똥 채워주고


연탄재 버리고 깊은 낮잠 한 잎.


내일 모레쯤


살속에 밤톨만한 멍울을 감춘 박태기나무들이


종기 짜듯 화농한 꽃들을 붉게 짜낼 것이다.


나이 늘어 심은 어린 나무들이 한결 처연하다.


낙발처럼 날리는 센 햇살 몇올, 저녁 해가 폐광처럼 비어 있다



운명은 결코 뛰쳐나갈 수 없다는 것


장대높이뛰기로도 시대의 담벽은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그렇게 생각 안채로 들여보내고 하루를 네 귀 맞춰 개어 깔고


무심히 흑백 TV의 풀온을 당기면 떠오르는 화면,


꼿발 딛고 아득히 넘겨다보는

흐린 화면 너머의 더 흐린 화면 그 곳엔 무엇이 있었는가


황사 바람이여 지난 시절 그 4.19 5.16 5.17 속에


누가 장대높이뛰기를 하였는가


나는 어디에 고개 묻고 있었는가


비닐 씌운 두둑에 고추모 옮겨 심고 멍석딸기꽃 밑에 마른 짚 깔기


젖먹이 기저귀 갈아주듯 깔아주며


언젠가 풋딸기들이 뾰족한 궁둥이로 편히 주저앉을 것을 생각하는


나날의 이 도와 궁행은 얼마나 사소한가 거대한가


풀먹여 새옷 입듯이


마음 벗고 껴입는.

[도라지 &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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