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6월 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핵폐기와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 1000만명 서명보고대회에서 "정부는 더욱 강력한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동길 “호남 우상 DJ에 도전, 나도 자연사 못할듯"

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025719&year=2009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3일 “호남의 우상인 김대중 씨의 ‘절대권’에 도전했기 때문에 자연사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밝혀 또 한번 논란이 예상된다.

김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요새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면 적화통일이냐’라는 주제를 가지고 논쟁이 불이 붙었는데, 협박과 공갈이 빗발친다”면서 “‘나는 이제 살 만큼 살았기 때문에, 맞아 죽어도 찔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하면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수가 생각보다 엄청 많다) ‘듣기 거북하니 제발 그런 말 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 교수 자신을 특정세력이 테러할 것이라고 암시하는 대목이다.

또한 김 교수는 “대학교수로서 60년대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에 반대한 나는 70년대, 유신헌법·유신체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정보부 지하실, 서빙고의 보안사, 서대문과 안양의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허구한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며 “그 때에는 아직 젊어서, 아까운 목숨이긴 했지만, 죽을 각오를 하고 힘을 다하여 싸웠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나는 사명이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망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그 때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두려움이 없다”며 “과장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다. 명백한 진실이다. 다만 한 사람이라도, 두 사람이라도, ‘자유를 위해 살다 자유를 위해 죽었다’고 나를 기억해 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유언처럼 남겼다. [데일리안 = 동성혜 기자]


[주] 작가 정유정 / 내 심장을 쏴라 -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새 책...'내 심장을 쏴라' 外 [동영상]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2&aid=0000250187

원문 http://blog.naver.com/lugali/50053577494

포스트 제목을 뭔가 거창하게 붙이고 싶었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으므로 PASS. 이럴 때마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는 졸라 빡센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죠.

어제죠. 샀습니다. '내 심장을 쏴라'. 오프라인에서 11,000원 제값주고 샀단 말이죠. 가끔씩은 이렇게 지를 때도 있어야죠. '1억원 고료 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 문학상 공모 사상 최고 심사위원진의 압도적 선정!'따위의 중의적인 표현으로 의미가 모호한 문구에 끌려 산 건 아닙니다. 오롯이 세계문학 수상작을 다 훑은 한 분의 독서취향이 생각나서 샀습니다.

끝.

이라고 하기에는 굳이 포스팅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좀만 더 사설을 풀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명의 인간이 생각났습니다.

1. 프리드리히니체. 그린비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 중 니체를 쓴 고병권에 의하면 니체는 질병과 치유의 변증법으로 생성된 철학자라고 합니다.

2. 조경란. 독자와의 만남에서 그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에게 책은 치유의 수단이었다고. 한편 모순적이게도 내가 가장 암울한 시기에 쓴 책이 가장 많이 팔렸다고.

3. 억지로 누군가를 쓰려 했으나. 별로 생각 안 나네요. 한국인은 삼세판이라고, 인물도 세 명 추리려 했는데 더 이상 생각 안 나므로 PASS.

이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의 평가 이렇습니다 ; 초반에 조금 지루하나 서사가 진행될수록 강해지는 흡입력. 저도 동감합니다. 그 동안 책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된제 탓인지 모르겠으나 소설 초반은 확실히 지루합니다. 심사위원의 말로는 '폭넓은 취재를 바탕으로 한 치밀한 얼개, 한 호흡에 읽히는 문장, 간간이 배치된 블랙 유머'라고 하는데. 이 중 저는 세 번째는 동감하기 힘들었습니다. 문장 자체가 재밌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요즘 작가들은 문창과 출신이 많아 그런지 문장은 모두 다듬어 나오는 듯합니다. 이 시대에 박상륭이나 서정인 같은 문체를 고집하기라도 하면 큰일 나죠. 폭넓은 취재는 정신병동, 의학에 대해 잘 모르는 저 같은 독자가 보기에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하게 썼습니다. 작가의 경력을 보니 간호사로 근무했던데, 이때의 경험이 생생히 묻어납니다. 문창과를 안 좋아하기로 유명한 황석영 작가가 심사위원진에 포함되어 있는 점과 묘하게 맞닿아 있네요. 이상 작품에 대한 평은 끝.

그 다음은 전적으로 저의 마음대로 썰 풀기입니다.

이 소설은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정신병원이란 어떤 곳이냐. 감시와 감금, 처벌의 공간입니다. 푸코는 정신병동의 등장을 학교와 군대의 등장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며 근대는 규율권력이 만들어진 시기라고 말하죠. 알튀쎄의 논의로 연장시키면 규율권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국가, 민족국가가 되겠죠. 규율권력은 만인을 감시하고 통제하지만 이 중에서 특히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비이성적인 사람입니다. 사람은 이성적 존재라는 말을 우리는 학교 등지에서 들었지만 이러한 사실에 테클 거는 사람이 포스트모더니스트죠.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가치의 회복을 주장했고, 푸코는 근대를 이성이 감성을 폭력적으로 통제하는 시기라 구분, 데리다는 플라톤의 로고스 중심 철학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푸코의 논의를 중심으로 이어가겠습니다. 그는 '광기의 역사'에서 근대 이전까지 광기에 대한 공동체의 대응은 경애 또는 추방이었지 감시와 통제, 처벌을 통한 훈육이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흔적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는 백치이면서 성인인 사람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백치'가 그렇고 '미성년'이 그렇죠. 이는 그리스정교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성, 합리적 사유가 부족하다는 징표는 성스러움의 표시였죠. 도스토예프스키가 활동하던 19세기 러시아는 아직 서유럽에서 발생한 3중혁명(산업혁명, 프랑스혁명, 과학혁명)의 여파가 덜 미친, 후진적인 사회였습니다. 그의 소설에서 광인이 긍정적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당시의 러시아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반면에 루쉰의 '광인일기'를 보면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때 광인은 서구제국주의의 위협에 직면한 중국의 비참한 처지를 비극적으로 읊는 인물입니다. 우습고 조롱을 받을 만한 사람이죠. 즉 광기에 대한 전형적인 태도입니다. 광인에 대한 가치 평가, 이것이 근대성의 한 측면입니다.

이성, 합리성으로 제단할 수 없는 사람을 굳이 정상의 범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 왜 할까요. 근대는 산업자본주의 시대입니다. 요즘이야 정보화사회, 탈산업사회다 해서 노동이 생산 요소 중에 가장 하찮게 치부되지만 산업화 초반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직하면 리카도, 마르크스가 노동가치설을 얘기했겠습니까. 잉여자원을 많이 쌓기 위해서 인간의 시계를 바꿀 필요가 있었습니다. 게으른 자, 태만한 자, 주정뱅이, 백치는 모두 비정상이나 광기의 범주로 묶여 보내집니다. 그것이 감옥이든 정신병원이든. 여기서 그들은 감시와 통제를 거쳐 훈육의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다소 성공적일 경우 이들은 원래의 공동체로 복귀해서 수많은 너트나 볼트 중 하나가 되지만 현재 정신의학이 거두고 있는 성과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실패하죠.

광인, 미친사람, 미친놈, 미친X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치료의 대상?감금의 대상? 사회에서 마음대로 활개치고 다니면 안 되는 인간, 아니 인간 아닌 동물? 대동소이한 반응이죠.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이건 근대적인 증후란 말이죠. 인간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 비해 우리가 광인을 다루는데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시종일관 묘사하는 진실입니다. 특히나 농촌과 같은 촌락 공동체가 아닌 도시에서 광인을 대하는 시선과 처세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논쟁을 상기시킬 정도로 잔혹합니다. 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철에서 광인 보면 무조건 피합니다. 일상의 공간이 아닌 광인을 정상인으로 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정신병원은 사정이 어떨까요. 비슷합니다.

정신병원은 미친 사람이 들어오면 갇혀야 하는 곳이고, 정상인 사람이 들어와도 갇히면 미치는 곳이니까요.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류승민과 이수명.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류승민은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로맨티스트. 이수명은 충격적인 어머니의 자살 장면을 평생의 외상으로 안고 사는 불행한 기억의 소유자. 끊임없이 정신병동을 탈출해서 나도 이 땅에서 원하는 바를 당당히 행하고 살고 싶어하는 승민. 이곳에서의 생활에 안주하다가 승민을 보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수명. 소설은 수명의 시선을 통해 진행됩니다. 수명의 눈에 비춰진 병원 관계자들과 환자들의 차이는 전무. 오히려 환자를 감시하는 점박이는 환자들에 비해 더 난폭하고 광기어린 행동을 합니다.

작가는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인생에 대한 기막힌 알리고리입니다. 지구상의 다른 공간도 그렇듯 정신병동은 소우주이고 이곳에 사는 다양한 인물, 이곳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사건은 인생살이의 축소판이죠. 모든 사람이 살다 보면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 타자는 지옥이야, 지옥에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지의 질문에 부딪칠 겁니다. 광인 역시 그러한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저 역시 수백 번 겪었고 지금도 스스로 되묻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죠. 앞서도 말했듯 조경란 작가는 책이 치유의 도구라고 말했습니다. 정신없이 기업 원서 찔러놓고 면접 보러 다니고, 결국 한 군데도 걸리지 못하여 잠시 한숨 쉬는 동안 책을 거의 못 읽었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느꼈습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냐. 면접비 득템보다 그 시간에 괜찮은 책 한 권 읽는 게 더 괜찮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사람이 바라볼 때 저의 이런 생각은 기회비용을 따지면 넌 장래 돈 벌기는 글렀고 앞으로 손가락 빨기에 적절한 사유라고 조롱할 지 모르나. 중요한 건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생성이니까요. 저는 이렇게 살래요.

이 책은 서울로 들고 갈게요. 음. 이 부분까지 안 읽으셨겠죠 ㅋㅋ

아 마지막으로 하나.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뜨거운 감동과 생에 대한 각성이 꿈틀대며, 희망에 대한 끈을 다시 움켜잡게 만드는 마력이 깃든 작품!'

살면서 희망은 안 가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1人이지만,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다소 앞이 지루하여 읽기에 힘든 점이 있지만.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세계문학상 수상작을 꿰고 있는 싱클레어님.

'문학 > 시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정주 / 국화 옆에서  (2) 2009.10.14
노향림/해뜨는 나라의 아침  (1) 2009.09.06
소월 선생像  (1) 2009.06.11
246명의 시인들이 뽑은 애송시  (1) 2009.05.23
109명의 현역시인이 뽑은 최고의 시 01  (1) 2009.05.23

[은자주]왕십리 오거리 우체국 앞에 있던 소월선생상이 어디로 옮겨졌나 궁금했는데

성동문화회관 소월아트홀 앞의 한길가 정원에 시 비석에 장식까지 더하여 잘 보존되어

있어 너무나 반가웠다.

평양 정주 아저씨가 성동구와 인연을 맺은 건 단지 <왕십리>라는 시 한 편 뿐이다.

지명을 시어화하는 그의 타고난 재주가 본인도 예상 못한 그의 자취를 엉뚱한 곳에

남기게 된 셈이라고나 할까?

소월을 성동구의 문화브랜드로 설정한 기획자의 아이디어에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은자라면 왕십리 미나리깡이나 생각해 낼까?

소월아트홀에서는 매년 봉산탈춤 정기공연이 열린다.

환상적 색채감각과 역동적인 춤의 하모니라 극찬되는 봉산탈춤을 은자도 여기서만 두 번이나 관람했다.

그 보고서는 이 블로그에도 탑재되어 있다.

김흥국 아저씨 상도 세워질지 몰러.



















시인들이 뽑은 애송시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즐겨 읊는 시는 김춘수의 ‘꽃’이고, 가장 애송하는 시인은 서정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예지 ‘시인세계’(주간 김종해) 가을호의 설문조사 ‘시인들이 좋아하는 애송시’에 따르면, 현역시인 246명을 대상으로 애송시 3편씩을 조사한 결과 23명이 김춘수의 ‘꽃’을 선정해 가장 애송하는 시로 꼽혔다.

이어 윤동주 ‘서시’(18명),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15명), 서정주 ‘자화상’, 이형기 ‘낙화’(이상 14명), 한용운 ‘님의 침묵’, 서정주 ‘동천’(이상 12명), 김소월 ‘진달래꽃’, 김수영 ‘풀’(이상 11명), 정지용 ‘향수’(10명) 등의 순이었다.

시인별로는 미당 서정주가 가장 많이 애송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당은 72명의 시인들로부터 추천을 받았으며, 이 숫자는 두번째로 많은 추천을 받은 백석(40명)의 두배에 가까운 수치다. 뒤를 이어 김수영(36명) 김소월(34명) 윤동주(32명) 김춘수(30명) 정지용(27명) 박목월(23명) 김종삼 신경림(이상 16명) 한용운(15명)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시인들에게 평소 애송하는 시 3편을 뽑아 달라는 복수응답조사로 실시된 조사에서 ‘꽃’은 시인 김종해, 김종미 등 23명으로부터 선택돼 최고의 애송시로 뽑혔다.
이어 윤동주의 ‘서시’(18명),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15명), 서정주의 ‘자화상’, 이형기의 ‘낙화’(각각 14명 ), 한용운의 ‘님의 침묵’, 서정주의 ‘동천’(각각 12명), 김 소월의 ‘진달래꽃’, 김수영의 ‘풀’(각각 11명), 정지용의 ‘ 향수’(10명) 순으로 조사됐다.

시에 대한 전문적인 감각, 예민한 감성을 지닌 시인들의 애송시 리스트는 일반인들의 목록과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이번 조사는 백석의 시 정도만 빼놓고 시인들의 애송시 역시 일 반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이남호(고려대 국어교육과)교수는 “김춘수의 ‘꽃’ 이 감상과 지성, 감각과 사유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서시’ 는 단순함과 순수함이 아름다운 결정을 이룬 명시이지만 두 작품 모두 약간은 소녀 취향의 대중적 작품으로 시인들의 애송시가 평범하고, 지나치게 많이 알려진 작품이라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고 평가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사랑받는 시란 결국 전 문가나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마음을 두드리고, 영혼에 다 가서는 것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애송시를 시인별로 살펴보면, 72명이 꼽은 시인 서정주가 가장 많이 애송되는 시인으로 조사됐다. 이교수는 “지난 십여년동안 문단 안팎에서 서정주를 폄훼하는 분위기가 짙었고, 서정주와 그 의 시가 정치적 이유로 매도당했지만, 그런 외풍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정주의 시가 한국 현대시 지형에서 훌륭한 유산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고 분석했다. 서정주의 시는 ‘동천’, ‘ 국화 옆에서’, ‘무등을 보며’ 등 23편이 애송시로 꼽혔다. 이 어 시인 40명이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 10편 을 선택했고, 김수영의 ‘풀’, ‘눈’ 등 16편은 시인 36명으로 부터 애송시로 추천받았다. 이어 김소월(34명), 윤동주(32명), 김춘수(30명), 정지용(27명), 박목월(23), 김종삼, 신경림(각각 1 6명)순으로 조사됐다. 시인 10명 이상으로부터 애송되고 있는 시 인들은 모두 22명으로 이중 작고 시인은 15명, 생존시인은 7명이 며, 생존시인은 김춘수, 신경림, 이형기, 황동규, 김종해, 강은 교, 이성복 시인이다.

이남호 교수는 시인들의 애송시와 애송시인 리스트를 살펴본 뒤 ▲애송시의 목록이 구태의연하고 ▲민중시 계열의 시인이나 작품 들이 애송시 목록에 거의 오르지 못했으며 ▲일반적인 문학사적 평가에 비해 백석이 시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평가 했다.

또 이 교수는 “시인들의 애송시 목록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고, 시적 수준, 성향, 시대, 나이, 평가 등에서 큰 차이가 나는 시인 과 작품들이 분포돼 있다”며 “이는 시인들의 다양한 개성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문학적 기준과 취향에 대한 우리 시단의 동의가 그만큼 약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 일간신문 스크랩 )
----------------------------------------------------------------------
동천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우리 님 : 절대적 존재 (시적 화자가 신성시하는 대상)
* 고운 눈썹 : 초승달(미완성의 의미) -가치있는 삶, 인간의 근원적 생명 등을 암시함
* 즈믄 밤의 : 천(千) 밤의, 여기서는 '오래고 오랜 세월'의 뜻
* 맑게 씻어서 : 눈썹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
* 옮기어 심어 놨더니 : 완성 추구의 의미 암시
* 동지 섣달 : 불모의 현실, 지상의 계절
* 날으는 : 나는, 날아가는 (시적 허용)
* 매서운 새 : 영원과 무한을 동경하는 인간의 야망
(달 : 영원의 비상, 새 : 찰나적 비상)
* 시늉하며 : 같은 모양을 지으며
* 비끼어 가네 : 완성을 위한 기다림의 존중

-----------------------------------------------------------------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 살구가 곡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숫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친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는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해와 감상

사계절의 순환이 뚜렷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생의 한 단면을 계절의 순환현상을 통해서 유추해 보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무성한 녹음'의 계절을 예비하면서 떨어지는 꽃송이를 통해 인생사에서의 이별과 더 나아가서는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일깨워 주고 있다.
시인은 지금 떨어지는 꽃을 보며 그 꽃의 사라짐을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바꾸어 놓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란 낙화를 의인화한 표현이다. 낙화가 아름다운 것은 때가 되면 피었다가 지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이 시의 뛰어난 점은 이러한 낙화의 정경에서 모든 인간사의 이별, 죽음의 원리를 통찰해 내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시인은 `지고 있다, 가야 한다, 죽는다, 뒷모습, 낙화, 결별, 가을' 등 비관적인 시어와 이별을 뜻하는 시어들을 주로 선택하여 사용함으로써 작품 전체를 쓸쓸함으로 채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애상적 분위기 자체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이별의 아픔과 슬픔이 아련하게 채색될수록 그에 따르는 영혼의 성숙은 값지고 빛나게 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즉 이면적으로는 `아픔 속의 성숙'이라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읽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무성한 녹음, 열매, 가을'은 모두 낙화가 있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꽃이 떨어진 다음 수목은 더욱 우거져 여름날의 무성한 녹음과 가을날의 소담스런 결실로 발전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이별의 열병을 거쳐 청춘의 한 고비를 지날 때 우리의 삶도 원숙해져 무성한 녹음과 보람찬 결실을 맞이할 수 있다.
마지막 6연과 7연은 이러한 깨달음을 심미적인 영상으로 표현하였다.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꽃잎이 진다'라든가,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이라든가 하는 표현은 고통을 견디며 성장하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해설: 조남현]

------------------------------------------------------------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