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摩訶般若波羅蜜初品 如是我聞一時釋論第二
2. 초품(初品) 중 여시아문일시(如是我聞一時)를 풀이함
【經】如是我聞一時。
【論】問曰。諸佛經何以故初稱如是語。
【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論】 【문】 모든 불경(佛經)에는 어찌하여 첫머리에 ‘이와 같이[如是]’라고 말하는가?
答曰。佛法大海信爲能入。智爲能度。如是義者卽是信。若人心中有信淸淨。是人能入佛法。若無信是人不能入佛法。不信者言是事不如是。
【답】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다. ‘이와 같이’179)라고 함은 곧 믿음이니, 만약에 마음속에 믿음이 청정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이 없다면 불법에 들어갈 수가 없다. 믿지 않는 자는 ‘이 일은 이와 같지 않다’ 하니, 이는 믿지 않는 모습이거니와 믿는 이는 ‘이 일은 이와 같다’ 한다.
『대지도론』 1권(ABC, K0549 v14, p.499b01)
是不信相。信者言是事如是。譬如牛皮未柔不可屈折。無信人亦如是。譬如牛皮已柔隨用可作。有信人亦如是。復次經中說信如手。如人有手入寶山中自在取寶。有信亦如是。入佛法無漏根力覺道禪定寶山中。自在所取。無信如無手。無手人入寶山中。則不能有所取。無信亦如是。入佛法寶山。都無所得。佛言。若人有信。是人能入我大法海中。能得沙門果不空。剃頭染袈裟。若無信是人不能入我法海中。如枯樹不生華實。不得沙門果。雖剃頭染衣讀種種經能難能答。於佛法中空無所得。以是故。如是義在佛法初。善信相故。
復次佛法深遠更有佛乃能知。人有信者雖未作佛。以信力故能入佛法。如梵天王請佛初轉法輪以偈請佛。
또한 불법은 깊고도 멀어서 부처님이라야 비로소 알 수 있나니,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비록 당장에 부처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믿음의 힘 때문에 불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범천왕(梵天王)이 부처님께 최초의 법륜을 굴려 주시기를 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閻浮提先出 多諸不淨法
願開甘露門 當說淸淨道
염부제(閻浮提)에서 먼저 벗어나셨으니
온갖 부정한 법이 많습니다.
바라건대 감로186)의 문을 여시어
청정한 도법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佛以偈答。
이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我法甚難得 能斷諸結使
三有愛著心 是人不能解
나의 법은 매우 어려워서 얻기 어려우나
능히 모든 번뇌를 끊나니
3유(有)187)에 애착심이 있는 이는
이 법을 알지 못한다.
梵天王白佛。大德。世界中智有上中下。善濡直心者。易可得度。是人若不聞法者。退墮諸惡難中。譬如水中蓮華。有生有熟。有水中未出者若不得日光則不能開。佛亦如是。佛以大慈悲憐愍衆生故爲說法。佛念過去未來現在三世諸佛法。皆度衆生爲說法。我亦應爾。如是思惟竟。受梵天王等諸天請說法。爾時世尊以偈答曰。
범천왕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덕188)이시여, 세간의 지혜는 상등ㆍ중등ㆍ하등이 있는데, 곧은 마음을 잘 익힌 이는 쉽게 제도하려니와 이 사람이 불법을 듣지 못하면 온갖 악난(惡難)에 물러나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비유하건대 물속의 연꽃이 어린 것도 있고 성숙한 것도 있으며, 물 밖에 나온 것도 있고 물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것도 있는데, 이들이 모두가 햇빛을 받지 못하면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과 같이 불법 역시 그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로써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해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3세의 부처님들께서도 모두가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법을 설하셨으니, 나 역시 마땅히 그렇게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시고는 범천왕 등 여러 신들의 청을 받아들여 법을 설하기로 하셨으니,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답하셨다.
『대지도론』 1권(ABC, K0549 v14, p.499c01)
我今開甘露味門 若有信者得歡喜
於諸人中說妙法 非惱他故而爲說
나 이제 감로법189)의 문을 여노니,
누군가가 믿기만 하면 기쁨 얻으리.
모든 사람 가운데 묘한 법 설함은
남을 괴롭히려 함이 아니라네.
佛此偈中不說布施人得歡喜。亦不說多聞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人得歡喜。獨說信人。佛意如是。我第一甚深法微妙無量無數不可思議不動不猗不著無所得法。非一切智人則不能解。是故佛法中信力爲初。信力能入。非布施持戒禪定智慧等能初入佛法。如說偈言。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 가운데 보시하는 사람이 환희를 얻는다 하시지 않았고 또한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행하는 사람이 환희를 얻는다고도 하시지 않으신 채 오직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뜻은 다음과 같으리라.
‘나의 제일가는 심히 깊은 법은 미묘하여서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하고 흔들리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190) 집착되지 않고 얻을 수 없는 법이어서 일체지(一切智)를 얻은 이가 아니면 알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불법에는 믿음의 힘으로써 첫머리를 삼으니, 믿음의 힘으로써야 들어갈지언정 보시ㆍ지계ㆍ선정ㆍ지혜 등으로써 불법의 첫머리를 삼거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世間人心動 愛好福果報
而不好福因 求有不求滅
세간 사람들 마음이 흔들려
복된 과보만을 좋아하고
복의 원인은 심지 않으니
유(有)만을 구하고 멸(滅)은 구하지 않네.
先聞邪見法 心著而深入
我此甚深法 無信云何解
앞서부터 삿된 견해의 법을 들어
마음에 집착하여 깊이 들어갔나니
나의 이 심히 깊은 법은
믿음이 없고서야 어찌 들어가리오.
如提婆達大弟子俱迦梨等。無信法故墮惡道中。是人無信於佛法。自以智慧求不能得。何以故。佛法甚深故。如梵天王敎俱迦梨說偈。
제바달(提婆達)191)의 큰 제자인 구가리(俱迦梨)192) 등은 가르침을 믿지 않는 까닭에 나쁜 길에 떨어졌으니, 이 사람은 불법에 대해서 믿음이 없이 스스로 지혜를 부려 구하였지만 얻지 못했다. 왜냐하면 불법은 매우 깊기 때문이다.
범천왕이 구가리를 가르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欲量無量法 智者所不量
無量法欲量 此人自覆沒
한량없는 법을 헤아리려 하나
지혜로운 이는 헤아리지 않네.
한량없는 법을 헤아리려 하면
이 사람, 스스로를 묻어 버리리.
復次如是義者。若人心善直信。是人可聽法。若無是相則不解如所說偈。
또한 ‘이와 같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마음이 착하여 곧게 믿으면 이 사람은 법을 들을 수 있거니와 만일 그러한 모습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聽者端視如渴飮 一心入於語議中
踊躍聞法心悲喜 如是之人應爲說
세간 사람들 마음이 흔들려
말씀 속의 이치로 들어가네.
법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하나니
이러한 사람이라야 마땅히 말해 줄 수 있다네.
復次如是義在佛法初。現世利後世利涅槃利。諸利根本信爲大力。復次一切諸外道出家心念。我法微妙第一淸淨。如是人自歎所行法毁他人法。是故現世相打鬪諍。後世墮地獄。受種種無量苦。如說偈。
또한 ‘이와 같이’라는 말씀이 부처님 가르침의 첫머리에 있는 것은 이 세상의 이로움이나 뒷세상의 이로움이나 열반의 이로움 등 모든 이로움의 근본이 믿음을 큰 힘으로 삼음을 말한다.
또한 온갖 외도로서 출가한 사람들은 ‘나의 법은 미묘하고 청정하고 제일이다’ 하나니,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행하는 법은 찬탄하고 남이 행하는 법은 헐뜯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서로 치고 싸우다가 후세에는 지옥193)에 떨어져서 갖가지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自法愛染故 呰毁他人法
雖持戒行人 不脫地獄苦
자기의 법을 사랑하는 물듦 때문에
다른 이의 법을 헐뜯나니
비록 계행을 지키는 사람이라도
지옥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리.
是佛法中。棄捨一切愛一切見。一切吾我憍慢。悉斷不著。如栰喩經言。汝曹若解我栰喩法。是時善法應棄捨。何況不善法。佛自於般若波羅蜜不念不猗。何況餘法有猗著者。以是故佛法初頭稱如是。佛意如是。我弟子無愛法無染法無朋黨。但求離苦解脫不戲論諸法相。如說阿他婆耆經。摩犍提難偈言。
이는 불법 안에서 모든 애착과 모든 소견과 모든 아만을 버리고 남김없이 끊어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벌유경(筏喩經)』194)에 “너희들이 나의 뗏목의 비유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이때에 착한 법도 버려야 하겠거늘 하물며 착하지 못한 법이겠는가” 하신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반야바라밀에 대해서도 생각하거나 의지하지 않으셨거늘 하물며 의지할 다른 법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불법의 첫머리에 ‘이와 같이’라고 한 것이니, 부처님의 뜻은 다음과 같으리라.
‘나의 제자는 법에 애착하지 않고, 법에 물들지 않고, 패거리를 짓지 않고 오직 괴로움을 여의어 해탈하기만을 구해 모든 법의 모양을 희론하지 않는다.’
『아타바기경(阿他婆耆經)』195)에서 마건제(摩犍提)196)가 게송으로 따져 물었다.
決定諸法中 橫生種種想
悉捨內外故 云何當得道
결정적인 모든 법에서
어지러이 갖가지 생각을 냈다가
안팎의 모든 것을 모두 버리고는
어떻게 도를 얻을 수 있으리까?
佛答言。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非見聞知覺 亦非持戒得
非不見聞等 非不持戒得
결코 듣고 알고 느끼는 것도 아니요
계를 가짐으로써 얻는 것도 아니고
보고 듣는 것 아님도 아니며
계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도 아니네.
如是論悉捨 亦捨我我所
不取諸法相 如是可得道
이와 같은 논의 모두 버리고
나(我)197)와 내 것(我所)198) 모두 버리어
모든 법상 취하지 않아야
비로소 도를 얻을 수 있으리.
摩犍提問曰。
마건제가 물었다.
若不見聞等 亦非持戒得
非不見聞等 非不持戒得
如我心觀察 持啞法得道
보고 듣는 것도 아니요
계를 지켜서 되는 것도 아니요
보고 들음 아님도 아니요
계를 지니지 않음도 아니라면
내가 관찰해 생각건대
벙어리의 법이라야 도를 얻으리.
佛答言。
부처님께서 대답했다.
汝依邪見門 我知汝癡道
汝不見妄想 爾時自當啞
그대는 사견의 문에 의지해 있나니
나는 그대의 어리석은 길을 아노라.
그대가 망상을 보지 않는다면
그때엔 저절로 벙어리가 되리라.
復次我法眞實餘法妄語。我法第一餘法不實。是爲鬪諍本。今如是義示人無諍法。聞他所說說人無咎。以是故諸佛經初稱如是。略說如是義竟。
또한 나의 법은 진실이고 다른 법은 망어이다, 나의 법은 제일이고 다른 법은 진실치 못하다 한다면 이는 투쟁의 근본이다. 이제 ‘이와 같다’고 하는 뜻은 사람들에게 다툼 없는 법을 보임이니, 남이 말한 바를 듣고는 그 말한 사람에게 머묾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경전의 첫머리에서 ‘이와 같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다는 이치를 이상으로써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我者今當說。
이제 나[我]라고 함을 설명하리라.
問曰。若佛法中言一切法空一切無有吾我。云何佛經初頭言如是我聞。
答曰。佛弟子輩雖知無我。隨俗法說。我非實我也。譬如以金錢買銅錢人無笑者。何以故。賣買法應爾。言我者亦如是。於無我法中而說我。隨世俗故不應難。如天問經中偈說。
【문】 불법에서는 ‘모든 법이 공하여 모든 것에 나라 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불경 첫머리에 내가 들었다고 하는가?
【답】 비록 부처님의 제자들이 나 없음을 알기는 하나 세속의 법을 따라 나라 할지언정 실제의 나는 아니다.
비유하건대 금화로 동화[銅錢]를 사더라도 아무도 비웃을 이가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사고파는 법이 의례 그렇기 때문이다. 나라는 것도 그와 같아서 무아(無我)의 법 가운데 나를 말함은 세속을 따르는 까닭이니, 힐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천문경(天問經)』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有羅漢比丘 諸漏已永盡
於最後邊身 能言吾我不
어떤 나한 비구199)가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최후의 마지막 몸에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佛答言。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有羅漢比丘 諸漏已永盡
於最後邊身 能言有吾我
어떤 아라한 비구가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최후의 마지막 몸에도
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네.
世界法中說我非第一實義中說。以是故諸法空無我。世界法故雖說我無咎。
세간의 법[世界法]에서 나라고 함은 제일의제의 진실한 뜻 가운데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공하여 나가 없으나, 세계의 법에 따라 나라고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復次世界語言有三根本一者邪見。二者慢。三者名字。是中二種不淨一種淨。一切凡人三種語邪慢名字。見道學人二種語。慢名字。諸聖人一種語名字。
內心雖不違實法。而隨世界人故共傳是語。除世界邪見。故隨俗無諍。以是故除二種不淨語本。隨世故用一種語。佛弟子隨俗故說我無有咎。
또한 세간의 말에는 세 가지 근본이 있으니, 첫째는 삿된 소견이요, 둘째는 교만이요, 셋째는 이름이다.
이 가운데서 두 가지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요 한 가지는 깨끗하다. 모든 범부들은 세 가지 말을 하니, 삿된 소견과 교만과 이름이 그것이다. 견도(見道)의 학인200)은 두 가지 말을 하니, 교만과 이름이요, 성인은 한 가지 말만 하니, 이름이 그것이다.
속마음으로는 진실한 법을 어기지 않으나 세간의 사람을 따르는 까닭에 더불어 이러한 말로 의사를 전한다. 하지만 세간의 삿된 소견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세속을 따라도 다툼이 없다.
이런 까닭에 두 가지 부정한 말의 근본을 제거하고 세속을 따르는 까닭에 한 가지 말만을 사용한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세속을 따르기 때문에 나라고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사람이 나 없는 형상에 집착되어 “이것만이 진실하고 나머지는 거짓말이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당연히 “그대여,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나 없음이거늘 어찌하여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하는가?”라고 힐난 받으리라.
이제 모든 불제자들은 모든 법이 공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고 여기에 집착되지도 않는다. 또한 모든 법의 실상에 집착되었다고도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나 없는 법에 마음이 집착되리오. 그러므로 “어찌하여 나라고 말하는가?”라며 힐난해서는 안 된다.
『중론(中論)』201)에서 게송으로 말했다.
復次若人著無吾我相。言是實餘妄語。是人應難。汝一切法實相無我。云何言如是我聞。今諸佛弟子一切法空無所有。是中心不著。亦不言著諸法實相。何況無我法中心著。以是故不應難言何以說我。如中論中偈說。
若有所不空 應當有所空
不空尙不得 何況得於空
공하지 않은 바가 있다면
의당 공한 바가 있으려니와
공하지 않은 바도 없거늘
어찌 하물며 공함을 얻으랴.
凡人見不空 亦復見於空
不見見無見 是實名涅槃
보통 사람들은 공하지 않음을 보고
또한 다시 공함도 보지만
보는 것이 곧 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진실로 열반임을 보지 못한다.
非二安隱門 能破諸邪見
諸佛所行處 是名無我法
불이(不二)의 안온 법문이
모든 사견을 깨뜨리나니
부처님들이 행하시는 경지라야
이를 무아(無我)의 법이라 한다.
略說我義竟。
나라는 뜻을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聞者今當說。
이제 ‘듣는다’202) 함을 설명하리라.
問曰。聞者云何。聞用耳根聞耶。用耳識聞。用意識聞耶。若耳根聞。耳根無覺知故不應聞。若耳識聞。耳識一念故不能分別。不應聞。若意識聞。意識亦不能聞。何以故。先五識識五塵。然後意識識。意識不能識現在五塵。唯識過去未來五塵。若意識能識現在五塵者。盲聾人亦應識聲色。何以故。意識不破故。
【문】 듣는다는 것은 어떻게 듣는가? 귀[耳根]로 듣는가, 귀의 의식[耳識]203)으로 듣는가, 뜻의 의식(意識)으로 듣는가? 만일 귀로 듣는다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듣지 못한다. 만일 귀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귀의 의식은 한 생각뿐이기 때문에 분별치 못하며 또한 듣지 못한다. 만일 뜻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뜻의 의식 또한 듣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5식(識)204)이 5진(塵)205)을 안 뒤에야 뜻의 의식이 알기 때문이다. 뜻의 의식은 현재의 5진을 알지 못하고 오직 과거와 미래의 5진만을 아나니, 만일 뜻의 의식이 현재의 5진을 알 수 있다면 소경이나 벙어리도 빛과 소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뜻의 의식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答曰。非耳根能聞聲。亦非耳識亦非意識能聞聲事從多因緣和合故得聞聲。不得言一法能聞聲。何以故。耳根無覺故不應聞聲。識無色無對無處故。亦不應聞聲。聲無覺亦無根故不能知聲。爾時耳根不破。聲至可聞處。意欲聞情塵意和合故耳識生。隨耳識卽生意識。能分別種種因緣得聞聲。以是故不應作是難。誰聞聲。佛法中亦無有一法能作能見能知。如說偈。
【답】 귀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요, 귀의 의식이나 뜻의 의식으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여러 인연이 화합함으로써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니, 한 법이 소리를 듣는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식은 무색(無色)ㆍ무대(無對)ㆍ무처(無處)인 까닭에 역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소리 자체는 감각이 없고 감관도 없기 때문에 또한 소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귀가 망가지지 않고, 소리가 들을 수 있는 곳에 이르렀고, 뜻으로 듣고자 한다면 정(情)과 진(塵)과 뜻[意]206)이 화합하였기 때문에 이식이 생기며, 이식이 생기기만 하면 의식이 갖가지 인연을 분별하여 소리를 듣게 된다.
이런 까닭에 “누가 소리를 듣는가?”라며 힐난하지는 말아야 한다.
불법에도 어느 한 법이 짓거나 보거나 아는 일이 없나니, 이런 게송이 있다.
有業亦有果 無作業果者
此第一甚深 是法佛能見
업도 있고 과도 있지만
업과 과를 짓는 이가 없다.
이는 가장 높고 심히 깊으니
이 법은 부처님만이 아신다.
雖空亦不斷 相續亦不常
罪福亦不失 如是法佛
공하지만 단절됨[斷]은 아니요
상속하지만 항상함[常]도 아니다.
죄와 복 또한 잃지 않으니
이런 법을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說略說聞竟。
‘들었다’ 함을 간략히 풀이하여 마친다.
一者今當說。
이제부터 ‘어느 때[一時]’207)라 함을 설명하리라.
問曰。佛法中數時等法實無。陰入持所不攝故。何以言一時。
【문】 불법 가운데에는 수효[數]208)나 시간 등의 법이 실로 없나니, 음(陰)209)ㆍ입(入)210)ㆍ지(持)211)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어느 때라 하는가?
答曰。隨世俗故有一時無有咎。若畫泥木等作天像。念天故禮拜無咎。說一時亦如是。雖實無一時隨俗說一時無咎。
【답】 세속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때라 하여도 허물이 없다. 마치 진흙이나 나무를 조각해서 신상[天像]212)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그 신상을 생각하기 때문에 예를 올려 절을 한다 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어느 때라 한 것도 이와 같으니, 실제에는 어느 때라 할 것이 없지만 세속을 따라 어느 때라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問曰不應無一時。佛自說言。 佛世尊也。亦如說偈。一人出世間多人得樂。是者何人。
【문】 어느 때라 함이 없을 수는 없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한 사람이 세간을 벗어나면 여러 사람이 즐거움을 얻는다” 하셨다. 이는 누구를 가리킨 말이겠는가? 바로 불세존이시니, 게송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我行無師保 志一無等侶
積一行得佛 自然通聖道
나의 행은 스승의 보호가 없고
하나에 뜻을 두어 동행자가 없으며
하나의 행을 쌓아 부처의 경지를 얻으니
자연히 성스런 도에 통한다.
如是等佛處處說一。應當有一。
復次一法和合故物名爲一。若實無一法。何以故。一物中一心生非二非三。二物中二心生非一非三。三物中三心生非二非一。若實無諸數。一物中應二心生。二物中應一心生。如是等三四五六皆爾。以是故。定知一物中有一法。是法和合故。一物中一心生。
이러한 뜻을 부처님은 곳곳에서 말씀하셨으니, 마땅히 ‘어느 하나[一]’란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한 법이 화합했기 때문에 그 물건을 하나라 한다. 만일 진실로 한 법이 없다면 어찌하여 한 물건에 대해서는 한마음만 생기고 둘이나 셋이 생기지 않는가? 또한 두 물건에 대해서는 두 마음만 생기고 하나나 셋은 생기지 않으며, 세 물건에 대해서는 세 마음만 생기고 둘이나 하나가 생기지 않는가?
만일 진실로 모든 수효가 없다면 어느 한 물건에 대해서도 두 마음이 생겨야 할 것이요, 두 물건에 대해서도 한마음이 생기기도 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미루어 3ㆍ4ㆍ5ㆍ6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하다. 그러므로 결정코 알게 되니, 한 물건 안에 한 법이 있고, 이 법이 화합하기 때문에 한 물건에서 한마음이 생기리라.
答曰。若一與物一。若一與物異。二俱有過。
【답】 만일 어느 하나와 물건이 하나라든지 혹은 하나와 물건이 다르다든지 한다면 이 둘에는 모두 허물이 있다.
問曰。若一有何過。
【문】 어느 하나가 있은들 무슨 허물이 되는가?
答曰。若一甁是一義。如因提梨釋迦。亦是一義。若爾者在在有一者應皆是甁。譬如在在有因提梨。亦處處有釋迦。今衣等諸物皆應是甁一。甁一故如是處處一皆應是甁。如甁衣等。悉是一物無有分別。復次一是數法。甁亦應是數法。甁體有五法。一亦應有五法。甁有色有對。一亦應有色有對。若在在一不名爲甁。今不應甁一。一若說一不攝甁。若說甁亦不攝一。甁一不異故。又復欲說一應說甁。欲說甁應說一。如是則錯亂。
問曰。一中過如是。異中有何咎。
答曰。若一與甁異。甁則非一。若甁與一異。一則非甁。若甁與一合。甁名一者。今一與甁合。何以不名一爲甁。是故不得言甁異一。
問雖一數合故甁爲一。然一不作甁。
答曰。諸數初一。一與甁異。以是故甁不作一。一無故多亦無。何以故。先一後多故。如是異中一亦不可得。以是故二門中求一法不可得。不可得故。云何陰持入攝。但佛弟子隨俗語言名爲一。心實不著知數法名字有。以是故。佛法中言一人一師一時不墮邪見咎。
【문】 비록 하나라는 수효와 합하기 때문에 병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가 병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답】 모든 수효의 첫머리가 하나이다. 하지만 하나는 병과 다르니, 그러므로 병을 하나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가 없기 때문에 많음도 없다. 왜냐하면 먼저가 하나이고 나중이 많음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름 가운데서는 하나라는 것도 없다. 그러기에 두 부문에서 한 법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음ㆍ입의 경지에 속하겠는가?
다만 불제자들은 세속의 말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고 하거니와 실제로는 집착하지 않으면서 수효의 법이나 명자[名字]가 있다고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에서는 한 사람, 한 스승, 어느 한때라 하여도 삿된 소견의 허물에 빠지지 않는다.
略說一竟。
‘어느 하나’를 풀이해 마친다.
時者今當說。
이제 ‘때[時]’215)에 관해서 설명하리라.
問曰。天竺說時名有二種。一名迦羅二名三摩耶。佛何以不言迦羅而言三摩耶。
答曰。若言迦羅俱亦有疑。
【문】 천축(天竺)에서 시간을 말할 때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가라(迦羅)216)요, 또 하나는 삼마야(三摩耶)217)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찌하여 가라로 말씀하시지 않고 삼마야로 말하는가?
【답】 가라로 말한다 하여도 역시 의문이 있다.
問曰。輕易說故應言迦羅。迦羅二字三摩耶三字。重語難故。
答曰。除邪見故。說三摩耶。不言迦羅。復次有人言。一切天地好醜皆以時爲因。如時經中偈說。
【문】 가볍고 쉽게 말하기 위해서는 가라로 해야 된다. 가라는 두 음절이요 삼마야는 세 음절이니 말이 겹치고 어렵기 때문이다.
【답】 삿된 소견을 제하기 위하여 삼마야로 말하고 가라로 말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온갖 천지의 좋고 나쁜 것은 모두가 때[時]로써 원인을 삼는다”고 말했으며, 『시경(時經)』218)에서는 이렇게 게송으로 말하고 있다.
『대지도론』 1권(ABC, K0549 v14, p.502a01)
時來衆生熟 時至則催促
時能覺悟人 是故時爲因
때가 오면 중생이 익어지고
때에 이르면 재촉을 하고
때가 능히 사람을 깨우친다.
그러므로 때가 원인이 된다.
世界如車輪 時變如轉輪
人亦如車輪 或上而或下
세계는 수레바퀴 같아
때가 변함은 바퀴가 굴러감과 같으니
사람도 수레바퀴와 같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更有人言。雖天地好醜一切物非時所作。然時是不變。因是實有。時法細故。不可見不可知。以華果等果故。可知有時。往年今年久近遲疾見此相。雖不見時可知有時。何以故見果知有因故。以是故有時法。時法不壞故常。
答曰。如泥丸是現在時。土塵是過去時。甁是未來時。時相常故。過去時不作未來時。汝經書法。時是一物。以是故過去世。不作未來世。亦不作現在世。雜過故。過去世中亦無未來世。以是故無未來世。現在世亦如是。
問曰。汝受過去土塵時。若有過去時。必應有未來時。以是故實有時法。
答曰。汝不聞我先說。未來世甁。過去世土塵。未來世不作過去世。墮未來世相中。是未來世相時。云何名過去時。以是故過去時亦無。
問曰。何以無時。必應有時。現在有現在相。過去有過去相。未來有未來相。
答曰。若令一切三世時有自相。應盡是現在世。無過去未來時。若今有未來不名未來應當名現在。以是故是語不然。
問曰。過去時未來時。非現在相中行。過去時過去世中行。未來世未來時中行。以是故各各法相有時。
答曰。若過去復過去。則破過去相。若過去不過去。則無過去相。何以故自相捨故。未來世亦如是。以是故時法無實。云何能生天地好醜及華果等諸物。如是等種種除邪見故。不說迦羅時。說三摩耶。見陰界入生滅。假名爲時無別時。所謂方時離合一異長短等名字。出凡人心著。謂是實有法。以是故。除棄世界名字語言法。
問曰。若無時。云何聽時食遮非時食是戒。
答曰。我先已說世界名字法。有時非實法。汝不應難。亦是毘尼中結戒法。是世界中實。非第一實法相。吾我法相實不可得故。亦爲衆人瞋呵故。亦欲護佛法使久存定弟子禮法故。諸三界世尊結諸戒。是中不應求有何實。有何名字等。何者相應。何者不相應。何者是法如是相。何者是法不如是相。以是故是事不應難。
問曰。若非時食時藥時衣皆是柯邏。何以不說三摩耶。
【문】 만일 때가 없다면 어찌하여 때에 맞는 음식은 먹어도 좋다 하고 때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말라 함이 곧 계(戒)가 되는가?만약에 때에 맞는 음식221)ㆍ때에 맞는 약222)ㆍ때에 맞는 옷223)이 모두 가라가 아니라고 한다면224) 이들은 어찌하여 사마야로 말하지 않는가?
答曰。此毘尼中說白衣不得聞。外道何由得聞。而生邪見。餘經通皆得聞是故。說三摩耶令其不生邪見。三摩耶詭名。時亦是假名稱。又佛法中多說三摩耶。少說柯邏。少故不應難。如是我聞一時五語各各義略說竟。
【답】 이것은 비니 가운데 설해진 것으로, 속인[白衣]225)은 듣지 못한다. 외도가 어떻게 듣고서 삿된 소견을 내겠는가?
다른 경은 통틀어 누구나 들을 수 있으니, 그렇기에 삼마야를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삿된 소견을 내지 않게 했다.
삼마야는 거짓으로 때를 이름 지은 것이며, 때[時] 역시 거짓 이름이다. 불법에는 대개 삼마야로 말하고, 가라로 말한 경우는 적다. 적다고 해서 힐난하지 말라.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라는 다섯 어구226)의 뜻을 각각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摩訶般若波羅蜜初品如是我聞一時釋論第二
【經】如是我聞一時。
【論】問曰。諸佛經何以故初稱如是語。
答曰。佛法大海信爲能入。智爲能度。如是義者卽是信。若人心中有信淸淨。是人能入佛法。若無信是人不能入佛法。不信者言是事不如是。是不信相。信者言是事如是。譬如牛皮未柔不可屈折。無信人亦如是。譬如牛皮已柔隨用可作。有信人亦如是。復次經中說信如手。如人有手入寶山中自在取寶。有信亦如是。入佛法無漏根力覺道禪定寶山中。自在所取。無信如無手。無手人入寶山中。則不能有所取。無信亦如是。入佛法寶山。都無所得。佛言。若人有信。是人能入我大法海中。能得沙門果不空。剃頭染袈裟。若無信是人不能入我法海中。如枯樹不生華實。不得沙門果。雖剃頭染衣讀種種經能難能答。於佛法中空無所得。以是故。如是義在佛法初。善信相故。
復次佛法深遠更有佛乃能知。人有信者雖未作佛。以信力故能入佛法。如梵天王請佛初轉法輪以偈請佛。
閻浮提先出 多諸不淨法
願開甘露門 當說淸淨道
佛以偈答。
我法甚難得 能斷諸結使
三有愛著心 是人不能解
梵天王白佛。大德。世界中智有上中下。善濡直心者。易可得度。是人若不聞法者。退墮諸惡難中。譬如水中蓮華。有生有熟。有水中未出者若不得日光則不能開。佛亦如是。佛以大慈悲憐愍衆生故爲說法。佛念過去未來現在三世諸佛法。皆度衆生爲說法。我亦應爾。如是思惟竟。受梵天王等諸天請說法。爾時世尊以偈答曰。
我今開甘露味門 若有信者得歡喜
於諸人中說妙法 非惱他故而爲說
佛此偈中不說布施人得歡喜。亦不說多聞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人得歡喜。獨說信人。佛意如是。我第一甚深法微妙無量無數不可思議不動不猗不著無所得法。非一切智人則不能解。是故佛法中信力爲初。信力能入。非布施持戒禪定智慧等能初入佛法。如說偈言。
世間人心動 愛好福果報
而不好福因 求有不求滅
先聞邪見法 心著而深入
我此甚深法 無信云何解
如提婆達大弟子俱迦梨等。無信法故墮惡道中。是人無信於佛法。自以智慧求不能得。何以故。佛法甚深故。如梵天王敎俱迦梨說偈。
欲量無量法 智者所不量
無量法欲量 此人自覆沒
復次如是義者。若人心善直信。是人可聽法。若無是相則不解如所說偈。
聽者端視如渴飮 一心入於語議中
踊躍聞法心悲喜 如是之人應爲說
復次如是義在佛法初。現世利後世利涅槃利。諸利根本信爲大力。復次一切諸外道出家心念。我法微妙第一淸淨。如是人自歎所行法毁他人法。是故現世相打鬪諍。後世墮地獄。受種種無量苦。如說偈。
自法愛染故 呰毁他人法
雖持戒行人 不脫地獄苦
是佛法中。棄捨一切愛一切見。一切吾我憍慢。悉斷不著。如栰喩經言。汝曹若解我栰喩法。是時善法應棄捨。何況不善法。佛自於般若波羅蜜不念不猗。何況餘法有猗著者。以是故佛法初頭稱如是。佛意如是。我弟子無愛法無染法無朋黨。但求離苦解脫不戲論諸法相。如說阿他婆耆經。摩犍提難偈言。
決定諸法中 橫生種種想
悉捨內外故 云何當得道
佛答言。
非見聞知覺 亦非持戒得
非不見聞等 非不持戒得
如是論悉捨 亦捨我我所
不取諸法相 如是可得道
摩犍提問曰。
若不見聞等 亦非持戒得
非不見聞等 非不持戒得
如我心觀察 持啞法得道
佛答言。
汝依邪見門 我知汝癡道
汝不見妄想 爾時自當啞
復次我法眞實餘法妄語。我法第一餘法不實。是爲鬪諍本。今如是義示人無諍法。聞他所說說人無咎。以是故諸佛經初稱如是。略說如是義竟。
我者今當說。
問曰。若佛法中言一切法空一切無有吾我。云何佛經初頭言如是我聞。
答曰。佛弟子輩雖知無我。隨俗法說。我非實我也。譬如以金錢買銅錢人無笑者。何以故。賣買法應爾。言我者亦如是。於無我法中而說我。隨世俗故不應難。如天問經中偈說。 有羅漢比丘 諸漏已永盡 於最後邊身 能言吾我不 佛答言。
有羅漢比丘 諸漏已永盡
於最後邊身 能言有吾我
世界法中說我非第一實義中說。以是故諸法空無我。世界法故雖說我無咎。
復次世界語言有三根本一者邪見。二者慢。三者名字。是中二種不淨一種淨。一切凡人三種語邪慢名字。見道學人二種語。慢名字。諸聖人一種語名字。內心雖不違實法。而隨世界人故共傳是語。除世界邪見。故隨俗無諍。以是故除二種不淨語本。隨世故用一種語。佛弟子隨俗故說我無有咎。
復次若人著無吾我相。言是實餘妄語。是人應難。汝一切法實相無我。云何言如是我聞。今諸佛弟子一切法空無所有。是中心不著。亦不言著諸法實相。何況無我法中心著。以是故不應難言何以說我。如中論中偈說。
若有所不空 應當有所空
不空尙不得 何況得於空
凡人見不空 亦復見於空
不見見無見 是實名涅槃
非二安隱門 能破諸邪見
諸佛所行處 是名無我法
略說我義竟。聞者今當說。
問曰。聞者云何。聞用耳根聞耶。用耳識聞。用意識聞耶。若耳根聞。耳根無覺知故不應聞。若耳識聞。耳識一念故不能分別。不應聞。若意識聞。意識亦不能聞。何以故。先五識識五塵。然後意識識。意識不能識現在五塵。唯識過去未來五塵。若意識能識現在五塵者。盲聾人亦應識聲色。何以故。意識不破故。
答曰。非耳根能聞聲。亦非耳識亦非意識能聞聲事從多因緣和合故得聞聲。不得言一法能聞聲。何以故。耳根無覺故不應聞聲。識無色無對無處故。亦不應聞聲。聲無覺亦無根故不能知聲。爾時耳根不破。聲至可聞處。意欲聞情塵意和合故耳識生。隨耳識卽生意識。能分別種種因緣得聞聲。以是故不應作是難。誰聞聲。佛法中亦無有一法能作能見能知。如說偈。
有業亦有果 無作業果者
此第一甚深 是法佛能見
雖空亦不斷 相續亦不常
罪福亦不失 如是法佛
說略說聞竟。
一者今當說。
問曰。佛法中數時等法實無。陰入持所不攝故。何以言一時。
答曰。隨世俗故有一時無有咎。若畫泥木等作天像。念天故禮拜無咎。說一時亦如是。雖實無一時隨俗說一時無咎。
問曰不應無一時。佛自說言。一人出世間多人得樂。是者何人。佛世尊也。亦如說偈。
我行無師保 志一無等侶
積一行得佛 自然通聖道
如是等佛處處說一。應當有一。復次一法和合故物名爲一。若實無一法。何以故。一物中一心生非二非三。二物中二心生非一非三。三物中三心生非二非一。若實無諸數。一物中應二心生。二物中應一心生。如是等三四五六皆爾。以是故。定知一物中有一法。是法和合故。一物中一心生。
答曰。若一與物一。若一與物異。二俱有過。
問曰。若一有何過。
答曰。若一甁是一義。如因提梨釋迦。亦是一義。若爾者在在有一者應皆是甁。譬如在在有因提梨。亦處處有釋迦。今衣等諸物皆應是甁一。甁一故如是處處一皆應是甁。如甁衣等。悉是一物無有分別。復次一是數法。甁亦應是數法。甁體有五法。一亦應有五法。甁有色有對。一亦應有色有對。若在在一不名爲甁。今不應甁一。一若說一不攝甁。若說甁亦不攝一。甁一不異故。又復欲說一應說甁。欲說甁應說一。如是則錯亂。
問曰。一中過如是。異中有何咎。
答曰。若一與甁異。甁則非一。若甁與一異。一則非甁。若甁與一合。甁名一者。今一與甁合。何以不名一爲甁。是故不得言甁異一。
問雖一數合故甁爲一。然一不作甁。
答曰。諸數初一。一與甁異。以是故甁不作一。一無故多亦無。何以故。先一後多故。如是異中一亦不可得。以是故二門中求一法不可得。不可得故。云何陰持入攝。但佛弟子隨俗語言名爲一。心實不著知數法名字有。以是故。佛法中言一人一師一時不墮邪見咎。
略說一竟。
時者今當說。
問曰。天竺說時名有二種。一名迦羅二名三摩耶。佛何以不言迦羅而言三摩耶。
答曰。若言迦羅俱亦有疑。
問曰。輕易說故應言迦羅。迦羅二字三摩耶三字。重語難故。
答曰。除邪見故。說三摩耶。不言迦羅。復次有人言。一切天地好醜皆以時爲因。如時經中偈說。
時來衆生熟 時至則催促
時能覺悟人 是故時爲因
世界如車輪 時變如轉輪
人亦如車輪 或上而或下
更有人言。雖天地好醜一切物非時所作。然時是不變。因是實有。時法細故。不可見不可知。以華果等果故。可知有時。往年今年久近遲疾見此相。雖不見時可知有時。何以故見果知有因故。以是故有時法。時法不壞故常。
答曰。如泥丸是現在時。土塵是過去時。甁是未來時。時相常故。過去時不作未來時。汝經書法。時是一物。以是故過去世。不作未來世。亦不作現在世。雜過故。過去世中亦無未來世。以是故無未來世。現在世亦如是。
問曰。汝受過去土塵時。若有過去時。必應有未來時。以是故實有時法。
答曰。汝不聞我先說。未來世甁。過去世土塵。未來世不作過去世。墮未來世相中。是未來世相時。云何名過去時。以是故過去時亦無。
問曰。何以無時。必應有時。現在有現在相。過去有過去相。未來有未來相。
答曰。若令一切三世時有自相。應盡是現在世。無過去未來時。若今有未來不名未來應當名現在。以是故是語不然。
問曰。過去時未來時。非現在相中行。過去時過去世中行。未來世未來時中行。以是故各各法相有時。
答曰。若過去復過去。則破過去相。若過去不過去。則無過去相。何以故自相捨故。未來世亦如是。以是故時法無實。云何能生天地好醜及華果等諸物。如是等種種除邪見故。不說迦羅時。說三摩耶。見陰界入生滅。假名爲時無別時。所謂方時離合一異長短等名字。出凡人心著。謂是實有法。以是故。除棄世界名字語言法。
問曰。若無時。云何聽時食遮非時食是戒。
答曰。我先已說世界名字法。有時非實法。汝不應難。亦是毘尼中結戒法。是世界中實。非第一實法相。吾我法相實不可得故。亦爲衆人瞋呵故。亦欲護佛法使久存定弟子禮法故。諸三界世尊結諸戒。是中不應求有何實。有何名字等。何者相應。何者不相應。何者是法如是相。何者是法不如是相。以是故是事不應難。
問曰。若非時食時藥時衣皆是柯邏。何以不說三摩耶。
答曰。此毘尼中說白衣不得聞。外道何由得聞。而生邪見。餘經通皆得聞是故。說三摩耶令其不生邪見。三摩耶詭名。時亦是假名稱。又佛法中多說三摩耶。少說柯邏。少故不應難。如是我聞一時五語各各義略說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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