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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의 능엄신주 범어독음과 국역

https://www.youtube.com/watch?v=Rc6Z0gLvp-Y https://kydong77.tistory.com/21628 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 국역 전10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ube393&logNo=220020727513 능엄경 전문 正本首楞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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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券 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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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屠漢亦得成道(도한역득성도),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

제5장 屠漢亦得成道(도한역득성도)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 問曰:旃陀羅殺生作業,如何得成佛? “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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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屠漢亦得成道(도한역득성도)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

問曰:旃陀羅殺生作業,如何得成佛?

“찬드라는 살생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어떻게 성불할 수가 있습니까?”

答曰:只言見性不言作業。

“단지 견성을 말할 뿐, 업 짓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縱作業不同,一切業拘不得。

비록 업 짓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과 같지 않아도, 어떤 업도 그를 구속할 수가 없다.

從無始曠大劫來,只為不見性,墮地獄中,

애초부터 다만 본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 속에 떨어진 것이다.

所以作業輪迴生死。

그러므로 업을 지어 생사에 윤회한다. 본성을 깨닫게 되면, 끝내 업을 짓지 않는다

從悟得本性,終不作業。若不見性,念佛免報不得,非論殺生命。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염불해도 과보를 면하지 못하니, 생명을 살해하는 것까지 말할 것도 없다.

若見性疑心頓除,殺生命亦不奈它何。

만약 본성을 보면, 의심이 문득 사라지니, 생명을 죽인 것도 그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14.

自西天二十七祖,只是遞傳心印。吾今來此土,唯傳頓教大乘,即心是佛,不言持戒精進苦行。

인도의 27조사가 다만 차례차례 심인(心印)을 전했을 뿐이며,

나는 이제 이 땅에 와서 오직 돈교대승(頓敎大乘)의 즉심시불(卽心是佛)만을 전할 뿐,

지계(持戒)나 보시(布施)나 정진(精進)이나 고행(苦行)을 말하지는 않는다.

乃至入水火,登於劍輪,一食長坐不臥,盡是外道有為法。

나아가 물과 불 속에 들어가고, 칼을 꽂은 바퀴 위에 올라가고,

한 끼 밥만 먹고, 늘 앉아서 눕지 않는 것 등은 모두 외도의 유위법(有爲法)이다.

若識得施為運動靈覺之性,汝即諸佛心。

만약 행위와 동작의 신령스런 깨달음의 본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대가 곧 모든 부처의 마음이다.

前佛後佛只言傳心,更無別法。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단지 마음을 전한다고만 하였으니, 다시 다른 법은 없다.

若識此法,凡夫一字不識亦是佛。

若不識自己靈覺之性,

假使身破如微塵,覓佛終不得也。

만약 이 법을 알아차리게 되면, 범부가 한 글자도 알지 못해도 역시 부처이지만,

만약 자기의 신령스런 깨달음의 본성을 알지 못하면,

설사 몸이 부서져서 가루가 되더라도 부처 찾는 일은 끝내 이룰 수 없다.

者亦名法身,亦名本心,

부처는 또 법신(法身)이라고도 하고, 본심(本心)이라고도 한다.

佛此心無形相,無因果,無筋骨,

猶如虛空,取不得。不同質礙,不同外道。

이 마음에는 모습도 없고, 인과(因果)도 없고, 근육과 골격도 없고,

마치 허공과 같아서 붙잡을 수도 없고,물질과 같지 않고, 외도와 같지가 않다.

此心除如來一人能會,其餘眾生迷人不明了。

이 마음은 여래(如來) 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뿐,

그 나머지 중생인 어리석은 사람들은 밝게 알 수가 없다.

15.

此心不離四大色身中,

이 마음은 사대색신(四大色身, 흙 물 불 바람) 속을 벗어나지 않는다.

若離是心,即無能運動。

만약 이 마음을 벗어난다면, 움직일 수가 없다.

是身無知,如草木瓦礫。身是無性,因何運動。

이 몸에는 지각(知覺)이 없으니 마치 초목(草木)이나 기와조각 같고,

이 몸에는 정식(情識)이 없으니 무엇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겠는가?

若自心動,乃至語言施為運動,見聞覺知,

皆是動心動用。

만약 자기 마음이 움직이면, 말하고 행동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들이,

모두 움직이는 마음이 움직여 작용함이다.

動是心動,動即其用。

움직이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이니, 움직임이 바로 그 작용이다.

動用外無心,心外無動。

움직여 작용함 밖에 마음이 없고, 마음 밖에 움직임이 없다.

動不是心,心不是動。

움직임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은 움직임이 아니다.

動本無心,心本無動。

움직임에는 본래 마음이 없고, 마음에는 본래 움직임이 없다.

動不離心,心不離動。

움직임은 마음을 떠나지 않고, 마음은 움직임을 떠나지 않는다.

動無心離,心無動離,

움직임에는 마음이 떠나지 않고, 마음에는 움직임이 떠나지 않는다.

動是心用,用是心動。

動即心用,用即心動。

不動不用,

움직임은 마음의 작용이고, 작용은 마음의 움직임이다.

움직이면 마음이 작용하고, 작용하면 마음이 움직이니,

움직이지 않으면 작용하지도 않는다.

用體本空。空本無動,

動用同心,心本無動。

작용의 바탕은 본래 공(空)인데, 공은 본래 움직임이 없다.

움직임과 작용은 마음과 같지만, 마음에는 본래 움직임이 없다.

故經云:動而無所動,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움직이니 또 움직일 것은 없다’고 한 것이다.

終日去來而未曾去,終日見而未曾見,

終日笑而未曾笑,終日聞而未曾聞,

終日知而未曾知,終日喜而未曾喜,

終日行而未曾行,終日住而未曾住。

이 까닭에 종일 왔다갔다하지만 한 번도 왔다갔다한 적이 없으며,

종일 보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종일 웃지만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으며,

종일 듣지만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으며,

종일 알지만 한 번도 안 적이 없으며,

종일 기뻐하지만 한 번도 기뻤던 적이 없으며,

종일 다니지만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으며,

종일 머물지만 한 번도 머문 적이 없다.

故經云:言語道斷,心行處滅,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가는 곳이 사라졌다’고 한다.

見聞覺知,本自圓寂。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본래 두루 고요하다.

乃至瞋喜痛癢何異木人,只緣推尋痛癢不可得。

나아가 성내고 기쁘고 아픈 것이 나무 인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만 아픔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故經云:惡業即得苦報,善業即有善報,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악업(惡業)은 고통스런 과보를 가져오고, 선업(善業)에는 좋은 과보가 있다.

不但瞋墮地獄,喜即生天。

성을 내면 지옥에 떨어질 뿐만 아니라,

기뻐하면 하늘에 태어난다’고 한 것이다.

若知瞋喜性空,但不執即業脫。

만약 성냄과 기쁨의 본성이 공(空)임을 알아서

집착하지 않기만 하면, 모든 업(業)에서 해탈한다.

若不見性,講經決無憑,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 경전을 읽는다면, 결정코 의지할 것이 없다.

說亦無盡。略標邪正如是,不及一二也。

말을 하려면 끝이 없으니,

간략히 삿됨과 바름을 드러낸 것이 이와 같지만,

한 두 가지에도 미치지 못한다.

16.

頌曰

 

心心心難可尋,寬時遍法界,窄也不容針。我本求心不求佛,了知三界空無物。若欲求佛但求心,只這心這心是佛。我本求心心自持,求心不得待心知。佛性不從心外得,心生便是罪生時。

 

偈曰

 

吾本來此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達摩大師血脈論終

 

頌曰 (송왈)

心心心難可尋,寬時遍法界,窄也不容針。

심심심난가심,관시편법계,착야불용침。

마음 마음 하지만 마음은 찾기가 어려우니,

넓을 때에는 법계(法界)에 두루하고,

좁을 때에는 바늘도 들어갈 틈이 없다.

我本求心不求佛,了知三界空無物。

아본구심불구불,료지삼계공무물。

나는 본래 마음을 찾고 부처를 찾지 않으니,

;삼계(三界)가 비어서 물건이 없음을 밝게 안다.

若欲求佛但求心,只這心這心是佛。

약욕구불단구심,지저심저심시불。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다만 마음을 찾을지니,

단지 이 마음, 마음 하는 마음이, 곧 부처이다.

我本求心心自持,求心不得待心知。

아본구심심자지,구심불득대심지。

나는 본래 마음을 찾았으나, 마음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라

마음을 찾아도 마음을 기다릴 수는 없음을 안다.

佛性不從心外得,心生便是罪生時。

불성불종심외득,심생편시죄생시。

불성은 마음 밖에서 얻을 수 없으니,

마음이 생기면 곧 죄가 생기는 때이다.

17.

偈曰 (혜가대사께 전한 전법게)

吾本來此土。 傳法救迷情。

오본래차토。 전법구미정。

나는 본래 이 땅에 와서,

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려 했다.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일화개오엽。 결과자연성。

하나의 꽃에 다섯 잎이 열리니,

열매 맺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 달마대사 혈맥론 정리 마침 -

 

http://buddhism.lib.ntu.edu.tw/BDLM/sutra/chi_pdf/sutra10/T19n0945.pdf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五

(一名中印度那蘭 陀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唐天竺沙門般剌蜜諦譯

阿難白佛言:「世尊!如來雖說第二義門,今觀世間解結之人,若 不知其所結之元,我信是人終不能解。世尊!我及會中有學聲聞亦 復如是,從無始際與諸無明俱滅俱生,雖得如是多聞善根名為出 家,猶隔日瘧。唯願大慈哀愍淪溺,今日身心云何是結?從何名 解?亦令未來苦難眾生,得免輪迴,不落三有。」作是語已,普及 大眾五體投地雨淚翹誠,佇佛如來無上開示。 爾時,世尊憐愍阿難及諸會中諸有學者,亦為未來一切眾生為出世 因、作將來眼,以閻浮檀紫光金手摩阿難頂,即時十方普佛世界六 種振動,微塵如來住世界者各有寶光從其頂出,其光同時於彼世界 來祇陀林灌如來頂,是諸大眾得未曾有。於是阿難及諸大眾,俱聞 十方微塵如來異口同音告阿難言:「善哉,阿難!汝欲識知俱生無 明,使汝輪轉生死結根,唯汝六根更無他物。汝復欲知無上菩提, 令汝速登安樂解脫寂靜妙常,亦汝六根更非他物。」 阿難雖聞如是法音心猶未明,稽首白佛:「云何令我生死輪迴、安 樂妙常同是六根,更非他物。」

佛告阿難:「根塵同源,縛脫無二,識性虛妄猶如空花。阿難!由 塵發知,因根有相,相見無性,同於交蘆。是故汝今,知見立知, 即無明本;知見無見,斯即涅槃、無漏真淨。云何是中,更容他 物?」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真性有為空, 緣生故如幻;

55

無為無起滅, 不實如空花。

言妄顯諸真, 妄真同二妄,

猶非真非真, 云何見所見?

中間無實性, 是故若交蘆;

結解同所因, 聖凡無二路。

汝觀交中性, 空有二俱非;

迷晦即無明, 發明便解脫。

解結因次第, 六解一亦亡;

根選擇圓通, 入流成正覺。

陀那微細識, 習氣成暴流;

真非真恐迷, 我常不開演。

自心取自心, 非幻成幻法,

不取無非幻, 非幻尚不生,

幻法云何立? 是名妙蓮華,

金剛王寶覺, 如幻三摩提,

彈指超無學。 此阿毘達磨,

十方薄伽梵, 一路涅槃門。」

於是阿難及諸大眾,聞佛如來無上慈誨祇夜、伽陀,雜糅精瑩妙理 清徹,心目開明歎未曾有。阿難合掌頂禮白佛:「我今聞佛無遮大 悲,性淨妙常真實法句,心猶未達六解一亡舒結倫次。惟垂大慈再 愍斯會及與將來,施以法音洗滌沈垢。」 即時,如來於師子座,整涅槃僧、斂僧伽梨,覽七寶机,引手於 机,取劫波羅天所奉花巾,於大眾前綰成一結,示阿難言:「此名 何等?」 阿難大眾俱白佛言:「此名為結。」 於是如來綰疊花巾又成一結,重問阿難:「此名何等?」 阿難大眾又白佛言:「此亦名結。」如是倫次綰疊花巾總成六結, 一一結成,皆取手中所成之結持問阿難此名何等?阿難大眾亦復如 是,次第酬佛此名為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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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阿難:「我初綰巾,汝名為結,此疊花巾先實一條,第二第三 云何汝曹復名為結?」 阿難白佛言:「世尊!此寶疊花緝績成巾,雖本一體,如我思惟: 『如來一綰得一結名,若百綰成終名百結,何況此巾秖有六結,終 不至七亦不停五。』云何如來秖許初時,第二第三不名為結?」 佛告阿難:「此寶花巾,汝知此巾元止一條,我六綰時名有六結, 汝審觀察,巾體是同因結有異。於意云何,初綰結成名為第一,如 是乃至第六結生,吾今欲將第六結名成第一不?」 「不也,世尊!六結若存,斯第六名終非第一,縱我歷生盡其明 辯,如何令是六結亂名。」 佛言:「六結不同,循顧本因一巾所造,令其雜亂終不得成,則汝 六根亦復如是,畢竟同中生畢竟異。」 佛告阿難:「汝必嫌此六結不成,願樂一成,復云何得?」 阿難言:「此結若存,是非鋒起於中自生,此結非彼彼結非此,如 來今日若總解除,結若不生則無彼此,尚不名一,六云何成?」 佛言:「六解一亡亦復如是。由汝無始心性狂亂,知見妄發發妄不 息,勞見發塵如勞目睛,則有狂花於湛精明,無因亂起一切世間山 河、大地、生死、涅槃,皆即狂勞顛倒花相。」 阿難言:「此勞同結,云何解除?」 如來以手將所結巾偏掣其左,問阿難言:「如是解不?」 「不也,世尊!」 旋復以手偏牽右邊,又問阿難:「如是解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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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也,世尊!」 佛告阿難:「吾今以手左右各牽竟不能解,汝設方便,云何成 解?」 阿難白佛言:「世尊!當於結心解即分散。」 佛告阿難:「如是,如是!若欲除結,當於結心。阿難!我說佛法 從因緣生,非取世間和合麁相,如來發明世出世法,知其本因隨所 緣出,如是乃至恒沙界外,一滴之雨亦知頭數,現前種種松直、棘 曲、鵠白、烏玄皆了元由。是故,阿難!隨汝心中選擇六根,根結 若除塵相自滅,諸妄銷亡不真何待。阿難!吾今問汝,此劫波羅巾 六結現前,同時解縈得同除不?」 「不也,世尊!是結本以次第綰生,今日當須次第而解,六結同體 結不同時,則結解時云何同除?」 佛言:「六根解除亦復如是。此根初解先得人空,空性圓明成法解 脫,解脫法已俱空不生,是名菩薩從三摩地得無生忍。」 阿難及諸大眾蒙佛開示,慧覺圓通得無疑惑。一時,合掌頂禮雙足 而白佛言:「我等今日身心皎然快得無礙,雖復悟知一六亡義,然 猶未達圓通本根。世尊!我輩飄零積劫孤露,何心何慮預佛天倫, 如失乳兒忽遇慈母,若復因此際會道成,所得密言還同本悟,則與 未聞無有差別。惟垂大悲惠我祕嚴,成就如來最後開示。」作是語 已,五體投地,退藏密機冀佛冥授。 爾時,世尊普告眾中諸大菩薩及諸漏盡大阿羅漢:「汝等菩薩及阿 羅漢,生我法中得成無學。吾今問汝,最初發心悟十八界誰為圓 通?從何方便入三摩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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驕陳那五比丘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在鹿苑及於雞 園,觀見如來最初成道,於佛音聲悟明四諦。佛問比丘,我初稱 解,如來印我名阿若多。妙音密圓,我於音聲得阿羅漢。佛問圓 通,如我所證,音聲為上!」 優波尼沙陀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亦觀佛最初成道, 觀不淨相生大厭離,悟諸色性以從不淨,白骨微塵歸於虛空,空色 二無成無學道,如來印我名尼沙陀。塵色既盡妙色密圓,我從色相 得阿羅漢。佛問圓通,如我所證,色因為上!」 香嚴童子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聞如來教我諦觀諸有 為相。我時辭佛宴晦清齋,見諸比丘燒沈水香,香氣寂然來入鼻 中,我觀此氣非木、非空、非煙、非火,去無所著來無所從,由是 意銷發明無漏,如來印我得香嚴號。塵氣倏滅妙香密圓,我從香嚴 得阿羅漢。佛問圓通,如我所證,香嚴為上!」 藥王、藥上二法王子并在會中五百梵天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 言:「我無始劫為世良醫,口中嘗此娑婆世界草木金石,名數凡有 十萬八千,如是悉知苦醋鹹淡甘辛等味,并諸和合俱生變異,是冷 是熱有毒無毒悉能遍知。承事如來了知味性非空、非有、非即身 心、非離身心,分別味因從是開悟,蒙佛如來印我昆季藥王、藥上 二菩薩名。今於會中為法王子,因味覺明位登菩薩。佛問圓通,如 我所證,味因為上!」 跋陀婆羅并其同伴十六開士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等 先於威音王佛聞法出家,於浴僧時隨例入室,忽悟水因既不洗塵亦 不洗體,中間安然,得無所有。宿習無忘乃至今時從佛出家,今得 無學,彼佛名我跋陀婆羅。妙觸宣明,成佛子住。佛問圓通,如我 所證,觸因為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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摩訶迦葉及紫金光比丘尼等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於 往劫於此界中,有佛出世名日月燈,我得親近聞法修學,佛滅度後 供養舍利、然燈續明,以紫光金塗佛形像,自爾已來世世生生身常 圓滿紫金光聚,此紫金光比丘尼者,即我眷屬,同時發心,我觀世 間六塵變壞,唯以空寂修於滅盡,身心乃能度百千劫猶如彈指。我 以空法,成阿羅漢。世尊說我頭陀為最,妙法開明銷滅諸漏。佛問 圓通,如我所證,法因為上!」 阿那律陀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初出家常樂睡眠,如 來訶我為畜生類,我聞佛訶啼泣自責,七日不眠失其雙目,世尊示 我樂見照明金剛三昧,我不因眼觀見十方,精真洞然如觀掌果,如 來印我成阿羅漢。佛問圓通,如我所證,旋見循元斯為第一!」 周利槃特迦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闕誦持無多聞性, 最初值佛聞法出家,憶持如來一句伽陀,於一百日得前遺後、得後 遺前,佛愍我愚教我安居調出入息。我時觀息微細窮盡,生住異滅 諸行剎那,其心豁然得大無礙,乃至漏盡成阿羅漢,住佛座下印成 無學。佛問圓通,如我所證,返息循空斯為第一!」 驕梵鉢提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有口業,於過去劫輕 弄沙門,世世生生有牛呞病,如來示我一味清淨心地法門,我得滅 心入三摩地,觀味之知非體非物,應念得超世間諸漏,內脫身心外 遺世界,遠離三有如鳥出籠,離垢銷塵法眼清淨成阿羅漢,如來親 印登無學道。佛問圓通,如我所證,還味旋知斯為第一!」 畢陵伽婆蹉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初發心從佛入道, 數聞如來說諸世間不可樂事,乞食城中心思法門,不覺路中毒刺傷 足,舉身疼痛我念有知,知此深痛雖覺覺痛,覺清淨心無痛痛覺, 我又思惟如是一身寧有雙覺?攝念未久身心忽空,三七日中諸漏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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盡成阿羅漢,得親印記發明無學。佛問圓通,如我所證,純覺遺身 斯為第一!」 須菩提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曠劫來心得無礙,自憶 受生如恒河沙,初在母胎即知空寂,如是乃至十方成空,亦令眾生 證得空性,蒙如來發性覺真空,空性圓明得阿羅漢,頓入如來寶明 空海,同佛知見印成無學,解脫性空我為無上。佛問圓通,如我所 證,諸相入非非所非盡,旋法歸無斯為第一!」 舍利弗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曠劫來心見清淨,如是 受生如恒河沙,世出世間種種變化,一見則通獲無障礙,我於路中 逢迦葉波,兄弟相逐宣說因緣,悟心無際從佛出家,見覺明圓得大 無畏,成阿羅漢為佛長子,從佛口生從法化生。佛問圓通,如我所 證,心見發光光極知見斯為第一!」 普賢菩薩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已曾與恒沙如來為法 王子,十方如來教其弟子,菩薩根者修普賢行,從我立名。世尊! 我用心聞,分別眾生所有知見,若於他方恒沙界外,有一眾生心中 發明普賢行者,我於爾時乘六牙象,分身百千皆至其處,縱彼障深 未合見我,我與其人暗中摩頂,擁護安慰令其成就。佛問圓通,我 說本因,心聞發明分別自在斯為第一!」 孫陀羅難陀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初出家從佛入道, 雖具戒律,於三摩提,心常散動未獲無漏。世尊教我及俱絺羅觀鼻 端白,我初諦觀經三七日,見鼻中氣出入如煙,身心內明圓洞世 界,遍成虛淨猶如瑠璃,煙相漸銷鼻息成白,心開漏盡,諸出入息 化為光明,照十方界得阿羅漢,世尊記我當得菩提。佛問圓通,我 以銷息息久發明,明圓滅漏斯為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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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樓那彌多羅尼子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曠劫來辯才 無礙,宣說苦空深達實相,如是乃至恒沙如來祕密法門,我於眾中 微妙開示得無所畏。世尊知我有大辯才,以音聲輪教我發揚,我於 佛前助佛轉輪,因師子吼成阿羅漢,世尊印我說法無上。佛問圓 通,我以法音降伏魔怨銷滅諸漏斯為第一!」 優波離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親隨佛踰城出家,親觀 如來六年勤苦,親見如來降伏諸魔制諸外道,解脫世間貪欲諸漏, 承佛教戒如是乃至三千威儀、八萬微細,性業、遮業悉皆清淨,身 心寂滅成阿羅漢,我是如來眾中綱紀,親印我心持戒修身眾推無 上。佛問圓通,我以執身身得自在,次第執心心得通達,然後身心 一切通利斯為第一!」 大目犍連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初於路乞食逢遇優樓 頻螺、伽耶、那提三迦葉波,宣說如來因緣深義,我頓發心得大通 達,如來惠我袈裟著身鬚髮自落,我遊十方得無罣礙,神通發明推 為無上,成阿羅漢。寧唯世尊,十方如來歎我神力,圓明清淨自在 無畏。佛問圓通,我以旋湛心光發宣,如澄濁流久成清瑩斯為第 一!」 烏芻瑟摩於如來前,合掌頂禮佛之雙足而白佛言:「我常先憶,久 遠劫前性多貪欲,有佛出世名曰空王,說多婬人成猛火聚,教我遍 觀百骸四肢,諸冷暖氣神光內凝,化多婬心成智慧火,從是諸佛皆 呼召我名為火頭,我以火光三昧力故成阿羅漢。心發大願,諸佛成 道,我為力士親伏魔怨。佛問圓通,我以諦觀身心暖觸無礙流通, 諸漏既銷生大寶焰登無上覺斯為第一!」 持地菩薩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念往昔普光如來出現 於世,我為比丘,常於一切要路、津口、田地、險隘,有不如法妨 損車馬,我皆平填,或作橋梁、或負沙土,如是勤苦經無量佛出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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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世,或有眾生於闤闠處,要人擎物我先為擎,至其所詣放物即行 不取其直。毘舍浮佛現在世時,世多饑荒,我為負人,無問遠近唯 取一錢,或有車牛被於陷溺,我有神力為其推輪拔其苦惱,時國大 王筵佛設齋,我於爾時平地待佛,毘舍如來摩頂謂我:『當平心 地,則世界地一切皆平。』我即心開,見身微塵與造世界所有微塵 等無差別,微塵自性不相觸摩,乃至刀兵亦無所觸,我於法性悟無 生忍成阿羅漢。迴心今入菩薩位中,聞諸如來宣妙蓮華佛知見地, 我先證明而為上首。佛問圓通,我以諦觀身界二塵等無差別,本如 來藏虛妄發塵,塵銷智圓成無上道斯為第一!」 月光童子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憶往昔恒河沙劫,有 佛出世名為水天,教諸菩薩修習水精入三摩地,觀於身中水性無 奪,初從涕唾如是窮盡津液、精血、大小便利,身中漩澓水性一 同,見水身中與世界外浮幢王剎諸香水海等無差別。我於是時初成 此觀,但見其水未得無身,當為比丘室中安禪,我有弟子窺窓觀 室,唯見清水遍在屋中了無所見,童稚無知取一瓦礫投於水內,激 水作聲顧盻而去,我出定後頓覺心痛,如舍利弗遭違害鬼,我自思 惟:『今我已得阿羅漢道久離病緣,云何今日忽生心痛,將無退 失?』 「爾時,童子捷來我前說如上事,我則告言:『汝更見水,可即開 門入此水中除去瓦礫。』童子奉教,後入定時還復見水瓦礫宛然, 開門除出,我後出定身質如初,逢無量佛如是至於山海自在通王如 來,方得亡身,與十方界諸香水海,性合真空無二無別,今於如來 得童真名預菩薩會。佛問圓通,我以水性一味流通,得無生忍圓滿 菩提斯為第一!」 瑠璃光法王子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憶往昔經恒沙 劫,有佛出世名無量聲,開示菩薩本覺妙明,觀此世界及眾生身, 皆是妄緣風力所轉。我於爾時,觀界安立、觀世動時、觀身動止、

63

觀心動念,諸動無二等無差別,我時了覺此群動性,來無所從去無 所至,十方微塵顛倒眾生同一虛妄,如是乃至三千大千,一世界內 所有眾生,如一器中貯百蚊蚋啾啾亂鳴,於分寸中鼓發狂鬧。逢佛 未幾得無生忍,爾時心開,乃見東方不動佛國,為法王子事十方 佛,身心發光洞徹無礙。佛問圓通,我以觀察風力無依,悟菩提心 入三摩地,合十方佛傳一妙心斯為第一!」 虛空藏菩薩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與如來定光佛所得 無邊身,爾時手執四大寶珠,照明十方微塵佛剎化成虛空,又於自 心現大圓鏡,內放十種微妙寶光流灌十方,盡虛空際諸幢王剎來入 鏡內涉入我身,身同虛空不相妨礙,身能善入微塵國土,廣行佛事 得大隨順,此大神力由我諦觀,四大無依妄想生滅,虛空無二佛國 本同,於同發明得無生忍。佛問圓通,我以觀察虛空無邊入三摩地 妙力圓明斯為第一!」 彌勒菩薩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我憶往昔經微塵劫,有 佛出世名日月燈明,我從彼佛而得出家,心重世名好遊族姓。爾 時,世尊教我修習唯心識定入三摩地,歷劫已來以此三昧事恒沙 佛,求世名心歇滅無有,至然燈佛出現於世,我乃得成無上妙圓識 心三昧,乃至盡空如來國土淨穢有無,皆是我心變化所現。世尊! 我了如是唯心識故,識性流出無量如來,今得授記次補佛處。佛問 圓通,我以諦觀十方唯識,識心圓明入圓成實,遠離依他及遍計執 得無生忍斯為第一!」 大勢至法王子與其同倫五十二菩薩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 「我憶往昔恒河沙劫,有佛出世名無量光,十二如來相繼一劫,其 最後佛名超日月光,彼佛教我念佛三昧。譬如有人,一專為憶一人 專忘,如是二人若逢不逢、或見非見,二人相憶二憶念深,如是乃 至從生至生,同於形影不相乖異,十方如來憐念眾生如母憶子,若 子逃逝雖憶何為?子若憶母如母憶時,母子歷生不相違遠,若眾生 64 心憶佛念佛,現前當來必定見佛去佛不遠,不假方便自得心開,如 染香人身有香氣,此則名曰香光莊嚴。我本因地以念佛心入無生 忍,今於此界攝念佛人歸於淨土。佛問圓通,我無選擇,都攝六 根,淨念相繼得三摩地斯為第一!」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五

 

[1] 업장의 근본을 살핌

아난아! 그 두번째 뜻은 너희들이 반드시 보리의 마음을 일으켜 보살승(菩薩乘)에서 큰 용맹을 내어

결정코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을 버리려고 한다면 응당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살펴보되

이것이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업장을 짓고 삶을 불려왔으니

그 무엇이 업장을 지었으며 그 무엇이 과보를 받는가 생각해 보아라.

아난아! 네가 보리를 닦는다면서도 만약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면

허망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이 어느 곳에서 뒤바뀐 것인지를 알 수 없으리니,

그 곳도 오히려 모르거든 어떻게 항복을 받을 것이며 또한 여래의 지위를 얻을 수 있겠느냐?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매듭을 푸는 사람을 살펴 보아라.

맺힌 데를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푸는 방법을 알겠느냐?

허공이 너에게 찢겼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어째서 그런가하면 허공은 형상이 없기 때문에 맺히고 풀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너의 앞에 나타난 눈, 귀, 코, 혀와 몸과 마음의 여섯 가지가

도적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집의 보배를 스스로 빼앗나니,

이로 말미암아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중생세계에 얽매이게 하였기 때문에

기세간(器世間)을 초월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난아! 무엇을 중생세계라고 하느냐?

세(世)는 옮겨 흐르는 것이고 계(界)는 방위를 말함이니 지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동쪽, 서쪽, 남쪽, 북쪽과 동남, 서남과 동북, 서북과 위, 아래가 계(界)가 되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세(世)가 되니, 방위는 열이고 흐르는 숫자는 셋이다.

일체 중생이 허망함이 얽히어 서로 이루어져서

몸 속에서 바뀌고 옮겨져서 세와 계가 서로 연관이 되나니라.

그 계(界)의 성질이 비록 열 방향으로 설정되었으나 정해진 위치는 밝힐 수 있으니,

세상에서는 다만 동, 서, 남, 북만 지목하고

위와 아래는 위치가 없으며 중간은 정해진 방향이 없나니라.

사방의 수가 반드시 분명해서 세(世)로 더불어 서로 연관이 되어,

三, 四와 四, 三이 완연히 굴러 열 둘이 되어서

흘러 변하는 것이 세번 거듭하여 一, 十, 百, 千이 되니,

처음과 끝을 모두 묶으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 가운데

공덕이 각각 一千 二百이 있나니라.

아난아! 너는 다시 그 가운데에서 우열을 정해 보아라.

눈은 보기는 하되 뒤는 어둡고 앞만 밝으니,

앞 방향은 완전하게 밝고 뒷 방향은 완전하게 어두우며

왼쪽과 오른쪽은 겉만 보는 것이라서 三분의 二니

그 작용을 통틀어 논하면 공덕이 완전하지 못하다.

三분으로 공덕을 말하면 一분은 공덕이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은 오직 八百의 공덕일 뿐이니라.

귀는 두루 들어서 시방에 남김이 없나니

움직임에 있어서는 가깝고 먼 것이 있는 듯하나

고요한 상태에서는 한계가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는 원만하여 一千 二百 공덕이니라.

코는 냄새를 맡음에 있어 내쉬고 들이쉼을 통해서 냄새를 맡게 되는데,

들이쉬고 내쉼은 있으나 중간에 교체되는 동안엔 끊어지나니,

코에 대하여 증험해 보건댄 셋으로 나눈 가운데 하나가 빠졌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는 八百 공덕이 되나니라.

혀는 말을 함에 있어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다하나니

말은 방위와 나뉘어짐이 있으나 이치는 다함이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는 一千 二百 공덕이 원만하니라.

몸은 접촉으로 인하여 느낌이 생기나니

거슬리고 순함을 알아서 합하였을 적에는 알고 떠나면 알지 못한다

떠나면 하나이고 합하면 둘이니 몸에 대하여 징험해 보건댄

셋으로 나눈 가운데 하나가 빠졌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은 오직 八百 공덕뿐이니라.

뜻은 시방삼세의 일체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묵묵히 포용해서

성인과 범부를 포용하지 않음이 없어

그 끝닿은 데까지 다하였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은 一千 二百 공덕이 원만하니라.

 

[2] 원만한 감각기관을 살핌

아난아! 네가 지금 나고 죽는 애욕의 흐름을 거슬러서 그 흐름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나고 죽음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여섯 가지 느껴 작용하는 감각기관이 어느 것이 합하고 어느 것이 떠나며,

어느 것이 깊고 어느 것이 얕으며,

어느 것이 원만하게 통하고 어느 것이 원만하게 통하지 못하는 것인지를 징험해 알아야 한다.

만약 그러한데에서 원만하게 통한 감각기관을 알아서

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함이 짜여서 된 업장의 흐름을 거슬러서

원만하게 통함을 따를 수만 있다면

원만하지 못한 감각기관에 의지하여 닦는 것과는 시간의 흐름이 서로 배가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여섯 가지 맑고 원만하게 밝은 본래 지니고 있는 공덕의 수량이 이러함을 갖추어 나타내었으니,

네가 자세히 선택함을 따라 그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내가 밝혀서 너로 하여금 더 나아가게 하리라.

시방의 여래는 십팔계(十八界)에서 낱낱이 수행하여

모두 원만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여 그 중간에 우열이 없거니와

다만 너는 근기가 하열(下劣)하여 그 가운데 원만하게 자재한 지혜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가 이를 선양해서 너로 하여금 다만 한 문으로만 깊이 들어가게 하겠으니,

한 문으로 들어가 허망함이 없어지면

저 여섯 가지 느낌이 있는 감각기관이 일시에 청정하게 될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한 문으로깊이 들어가서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일시에 청정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지금 이미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하여

삼계의 중생들이 세간에서 견도문(見道門)을 수행할 적에 끊어야 할 의혹을 없앴다.

그러나 아직도 여섯 개의 감각기관 중에 오랫동안 쌓여서 생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의 허망한 습관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습관은 모름지기 수도를 통하여 끊어야만 되는 것이어든

더구나 그 가운데에 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분제(分劑)와 두수(頭數)이겠느냐?

너는 또다시 살펴 보아라. 앞에 나타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하나이냐 여섯이냐?

아난아! 만약 하나라면 귀로는 왜 보지못하고 눈으로는 왜 듣지 못하며,

머리로는 왜 다니지 못하고 발은 왜 말하지 못하느냐?

만약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결정코 여섯을 이룬다면

내가 지금 이 모임 중에서 너희에게 미묘한 법문을 말할 적에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어느 것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저는 귀로써 듣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귀가 저절로 듣는데 몸과 입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입으로 질문할 적에 몸은 일어나서 공경하여 받드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가 아니라 여섯이며 여섯이 아니라 하나이니,

마침내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과 그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이

원래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거늘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뒤바뀐데 빠져왔으므로

원만한 맑음에서 一이니 六이니 하는 이치가 생겼느니라.

너는 수다원으로써 비록 여섯 가지는 소멸하였으나

아직 한가지는 없어지지 못하였느니라.

마치 큰 허공을 여러가지 다른 모양의 그릇에 담아 놓으면

그릇의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허공도 다르다고 하다가

그 그릇을 치우고 허공을 보면 허공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저 허공이야 어떻게 너를 위하여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겠느냐?

더구나 또다시 어떻게 하나다 하나가 아니다라고 하겠느냐?

네가 아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의 수용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3]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근원

어두움과 밝음 등 두 가지가 서로 나타나므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보는 것을 발생시키나니,

보는 정기가 빛을 비추어서 그 빛이 맺혀져서 눈이 되니

그 눈의 근원은 청정한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졌고,

그러므로 눈의 실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는 마치 포도알과 같다.

그것은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라서

빛을 따라서 흘러 달아나느니라.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가 서로 부딛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듣는 것이 발생하나니

듣는 정기가 소리에 비치고 그 소리가 말려서 근(根)이 된다.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그를 이름하여 이체(耳體)라 하니,

마치 새로 돋아나는 권이(券耳)의 잎새와 같다.

그것은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소리를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통하고 막히는 두 가지가 서로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냄새를 맡나니,

맡는 정기가 향기에 비쳐서 그 향기를 받아들여 근(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비체(鼻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두 개의 오이가 드리운 것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향기를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그대로 있거나 변화하는 두 가지가 서로 섞여서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맛을 보나니

맡보는 정기가 맛에 비쳐서 그 맛을 짜내어 근(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설체(舌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초생달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맛을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떠나거나 합하는 두 가지가 서로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것에 붙어 느낌이 생기나니,

느끼는 정기가 접촉에 비추고 그 접촉이 뭉쳐서 근(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신체(身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장구통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감촉을 따라 치닫느니라.

나고 없어지는 두 가지가 서로 이어지므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것에 붙어 깨닫게 되나니,

깨닫는 정기가 법에 비추어서 그 법을 잡아서 근(根)이 된다.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의사(意思)라고도 하니

마치 어두운 방에서 보는 것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법을 따라 치닫느니라.

아난아!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저 밝은 깨달음의 밝음이 있는 밝혀야 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서

그 정밀하고 또렷함을 잃고 허망한데 붙어서 빛을 발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밝음과 어두움을 여의면 보는 실체가 없을 것이고,

움직임과 고요함을 여의면 원래 듣는 바탕이 없을 것이며,

통하고 막힘이 없으면 맡는 성품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여의고 합함이 아니면 부딪쳐 느낌이 반드시 없을 것이며,

나고 죽음이 없으면 깨달음이 어디에 붙어 있겠느냐?

 

[4] 빛을 발함

네가 다만 밝고 어두움, 통하고 막힘, 그대로 있고 변함, 합하고 여윔, 나고 없어짐의

열 두 가지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을 따르지 아니하면

마음대로 한 감각기관을 골라서 거기에 집착된 것을 벗겨내고 속으로 굴복시켜서

이를 본래의 참된 상태로 돌아가면 본래의 밝은 빛을 발하리니

밝은 성품이 환하게 밝아지면

나머지 다섯 가지 집착도 선택에 따라서 원만하게 벗겨질 것이다.

앞에 나타난 대상이 일으킨 바 지견(知見)을 따르지 아니하여

밝음이 감각기관을 따르지 않고,

그 감각기관에 의탁하여 밝음이 발생하면 그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서로 서로 작용하나니라.

아난아! 네가 어찌 알지 못하랴?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아나율타는 눈이 없이도 볼 수 있고

발난타룡은 귀가 없이도 들을수 있으며,

긍가신녀는 코가 없어도 냄새를 맡고 교범바제는 혀가 다른데도 맛을 알며,

순야다신은 몸이 없이도 감촉을 느끼나니 여래의 광명 중에 비치므로

잠깐 나타나기는 하지만 본래가 바람의 체질이므로 그 몸은 원래 없으며,

멸진정(滅盡定)을 닦아 고요함을 깨달아 성문이 된 이 모임 가운데에서

마하가섭 같은 이는 오래전부터 의근(意根)이 없어졌어도

원만하고 밝게 깨달아 앎에 있어 마음을 쓰지 아니하나니라.

아난아! 지금 네가 모든 감각기관에서 원만하게 벗어나면

안으로 환하게 광명을 발하여 이러한 부질없는 대상인 물질과

기세간(器世間)의 모든 변화하는 현상들이

마치 끓는 물에 얼음이 녹는 듯해서 생각을 따라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리라.

아난아! 마치 저 세상 사람들이 보는 힘을 눈에 집중시켰다가

만약 갑자기 눈을 감으면 어두운 현상이 앞에 나타나서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캄캄하여 머리나 발과 같으리니,

그 사람이 손으로 몸을 따라 더듬으면 그가 비록 보지는 못하더라도

머리인지 발인지는 한결같이 분별하여 깨달아 아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니,

대상을 보는 것은 밝음을 인해야 하고 어두우면 볼 수 없거니와 밝지 않더라도

스스로 발하면 모든 어두운 현상이 영원히 어둡지 않으리니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이미 소멸되면

어찌하여 밝은 깨달음이 원만하고 오묘함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5] 질문하여 논란함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처음 수행할 때의 깨닫는 마음으로

늘 머무르기를 구하고자 하거든 과위(果位)의 명목과 서로 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과위 중에 보리와 열반, 진여와 불성, 암마라식과 공여래장, 대원경지등

일곱 가지 명칭이 그 이름은 비록 각기 다르나

청정하고 원만해서 그 자체의 성품이 단단하게 엉김은

마치 금강왕(金剛王)이 항상 머물러서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그 보고 듣는 것이 밝고 어둡고 움직이고 고요하고 통하고 막힘을 여의면

마침내 실체가 없음이 마치 생각하는 마음이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을 여의면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장차 끊어 버리는 것을 수행하는 원인으로 삼아

여래의 일곱 가지 항상 머무는 과업을 얻을 수 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약 밝고 어두움을 여의면 보는 놈이 마침내 공(空)하게 되어

마치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이 없는 것과 같으며,

생각의 자성이 없어진 것과 같아질진댄

이리 저리 순환하면서 미세하게 추구하여도

본래 나의 마음과 마음의 처소가 없을지니

장차 무엇으로 원인을 삼아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 겠습니까?

여래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맑고 정밀한 것이 원만하고 항상하다'고 하시더니

그것이 진실한 말씀이 못되고 끝내는 농담같은 말씀이 되었으니

어떻게 여래가 진실한 말씀만 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소서."

 

[6] 미혹을 가려냄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많이 듣는 것만 즐겨 배우고 정기가 새는 것을 모두다 끊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다만 뒤바뀐 원인만을 깨닫고

참으로 뒤바뀐 것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실제로 알지 못하나니,

네가 아직도 진실로 마음 속으로 믿어 복종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지금 내가 시험삼아 티끌 세상의 모든 일들을 들어서 너의 의혹을 제거시켜 주리라.

"그때에 여래께서 나후라에게 명하여 종을 한 번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지금 종소리가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대답하기를 "저희들이 듣고 있습니다."

종소리가 없어지자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을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이 함께 대답하기를 "들리지 않습니다."

그때에 나후라가 또 한 번 종을 치자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은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또 대답하기를 "모두 듣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네가 어떤 것을 듣는다고 하고 어떤 것을 듣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저희들이 듣고 종을 친 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사라져서 메아리까지 다 없어지면 들리지 않습니다."

여래께서 또다시 나후라를 시켜서 종을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네가 지금 소리가 나느냐 나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대답하기를 "소리가 납니다."

조금 있다가 소리가 없어지거늘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은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대답하기를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잠깐 있다가 나후라가 다시 와서 종을 치니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대답하기를 "소리가 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떤 것을 소리가 난다고 하고 어떤 것을 소리가 없다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소리가 있다고 하고 종을 친 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없어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소리가 없다고 하나이다."

 

[7] 항상하다는 것을 징험함

부처님께서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

"너희들이 지금 어찌하여 스스로 하는 말이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저희들이 지금 무엇을 이랬다 저랬다 했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들리느냐고 물으니 너는 들린다고 말하였고,

또 너에게 소리가 나느냐고 물으니 너는 소리가 난다고 말하여

듣고 소리가 나는데 대한 대답이 일정하지 아니하니

그런 것이 어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아난아! 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진 것을

너는 들음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음이 없을진댄

듣는 성품이 이미 없어져서 마른 나무와 같으리니

종을 다시 친들 네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있음을 알고 없음을 아는 것은 그 들리는 대상인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저 듣는 성품이야 네게서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듣는 것이 참으로 없다고 할진댄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 소리가 저절로 생겼다 없어졌다 할지언정

네가 듣는데 있어서 소리가 생기고 없어짐이

너의 듣는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너는 아직도 뒤바뀌어서 소리를 듣는 것으로 착각하나니

어찌 혼미하여 항상한 것을 끊겼다고 여기는 것이 이상한 일이겠느냐?

끝내는 모든 움직임, 고요함, 열림, 닫힘, 통함, 막힘을 여의고서

듣는 성품이 없노라고 말하지 못하리라.

마치 깊이 잠든 사람이 침대에서 한참 자고 있을 적에

그 가족들이 다듬질이나 방아를 찧으면

그 사람이 잠결에 방망이 소리와 절구 소리를 듣고

그때에 갑자기 깨어나서 가족에게 말하기를,

'조금전 잠결에 이 소리를 들었다'고 하리니, 아난아!

그사람은 잠결에 어떻게 움직이고 고요하며 열리고 닫히고 통하고 막힘을 기억하랴마는

그 형체는 비록 잠자고 있었으나 듣는 성품은 혼미하지 않았나니,

가령 너의 형체가 없어져서 목숨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 성품이야 어찌 너에게서 없어지겠느냐?

모든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든 빛과 소리를 따르면서 생각을 좇아 흘러돌아서

일찌기 청정하고 오묘하고 항상한 성품은 깨닫지 못하여 항상한 것은 따르지 않고

나고 없어지는 것만 좇아다니므로 이로 말미암아 세세생생에 잡념으로 흘러 돌게 되나니,

만약 나고 죽음을 버리고 항상 참되고 항상함을 지키면 항상한 빛이 앞에 나타나서

감각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의식하는 마음이 때를 따라 없어질 것이다.

생각하는 현상이 허망한 대상이고 의식하는 마음이 더러운 때가 된다.

두 가지 다 멀리 여의면 너의 법안(法眼)이 때를 따라서 맑고 밝아지리니

어찌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8] 상서로운 빛을 발하시다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비록 제이의(第二義)의 문을 말씀하셨으나,

지금 관찰해 보건댄 세상에서 맺힌 것을 푸는 사람이 만약 그 맺히게 된 원인을 알지 못하면

저는 이 사람은 끝끝내 풀 수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와 이 모임 가운데 있는 유학과 성문들도 이와 같아서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든 무명과 더불어 함께 생기고 함께 없어지나니,

비록 이렇게 많이 듣는 하나의 훌륭한 근기를 지녀서 이름만 출가하였다고 할 뿐,

마치 하루씩 거르는 학질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바라옵건댄 큰 자비로써 빠져서 헤어나지 못함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오늘 이 몸과 마음이 어찌하여 이렇게 맺혀졌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푸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또한 미래의 고난받는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를 면해서

삼계(三有)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게 해주소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널리 대중들과 함께 온 몸을 땅에 던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정성을 다하여 여래의 위없는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모임 가운데

모든 배울 것이 있는 자들을 가엾게 여기시며,

또한 미래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세간을 벗어나는 원인을 말씀하시어

장래의 법안(法眼)을 만들어 주려 하사

염부단자금광(閻浮檀紫金光)의 손으로 아난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니

그때에 시방에 넓은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가지로 진동하며

그 세계에 계시는 모든 여래가 각각 보배의 빛이 그 정수리로부터 나오니,

그 광명이 동시에 그 세계에서 기타림으로 와서 여래의 정수리에 닿거늘

여러 대중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일을 보게 되었다.

 

[9] 진실로 참다운 요체

그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함께 들었는데,

시방의 모든 여래가 다른 입에서 같은 소리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훌륭하다! 아난아!

네가 나면서부터 함께 생긴 무명이 너로 하여금 윤회하고 전전하게 하는

나고 죽는 것이 맺혀진 근원을 알고자 할진댄

그것은 오직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 때문이요, 다른 물건이 아니며,

네가 다시 위없는 보리가 너로 하여금 편안하고 즐겁게 해탈케 하는

고요하고 편안하고 오묘하고 항상함을 속히 증득하는 방법을 알고자 할진댄

그것도 역시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인함이지 다른 물건이 아니니라."

아난이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은 들었으나

마음에는 아직도 분명치가 못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어째서 저로 하여금 나고 죽음에 윤회하게 하며,

편안하고 즐겁고 오묘하고 항상하게 함이

모두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요 다른 물건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되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이 근원은 같으며 얽매임과 해탈도 둘이 아니며

의식하는 성품의 허망함이 허공의 꽃과 같으니라.

아난아! 대상인 물질로 말미암아 앎을 발하며, 감각기관으로 인해서 현상이 있나니

현상과 보는 놈이 성품이 없어서 허수아비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제 알고 보는 것이 앎을성 립하면 곧 무명의 근본이고,

알고 보는 것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는 곧 열반으로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끊긴 참되고 청정함이니

어떻게 그 가운데에 또다시 다른 물체를 용납하겠느냐?"

 

[10] 응송(應頌)과 풍송(諷誦)

그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하여 게송을 설하셨다.

참다운 성품에는 작위함이 없거늘 인연으로 생기는 것은 허깨비와 같다네.

작위도 없으며 생기거나 없어짐도 없어서 진실되지 못함이 허공의 꽃과 같으니라.

거짓을 말하여 진실을 나타낸다면 거짓과 진실이 둘 다 거짓이라네.

진실도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거니 어찌하여 보는 놈이다 보이는 물질이다 하겠느냐?

중간에 진실한 성품이 없나니 그러므로 허깨비와 같나니라.

맺히고 풀림이 원인한 바가 같아서 성인과 범부가 두 길이 아니라네.

너는 어우러진 마음 속의 성품을 보아라. 허공과 실체 이 두가지가 다 아니니,

혼미하여 어두우면 곧 무명이요 밝게 열리면 곧 해탈이니라.

맺힌 것을 푸는데는 차례를 지켜서, 六이 풀리면 一도 따라서 없어지리라.

감각기관 가운데 원만한 놈을 선택하면 흐름에 들어가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리라.

아다나(阿陀那)의 미세한 의식은 습기가 사나운 흐름을 이루나니

진실과 진실 아님에 미혹할까 염려하여 내가 늘 말하지 않았노라.

제 마음에서 제 마음을 취하면 환망(幻妄)아닌 것이 환법(幻法)이 되나니

취하지 않으면 환망 아닌 것조차도 없으리라.

환망이 아닌 것도 오히려 생기지 않거든 환법이 어떻게 이루어지랴?

이것을 이름하여 '묘연화', '금강왕보각', '여여불삼매'라 하나니

손가락을 퉁기는 사이에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초월하리라.

오직 이 비유할 수 없는 법은 시방 바가범이 오직 이 한 길이 열반에 이르는 문이니라.

 

[11] 맺어진 이유

이에 아난과 여러 대중이 부처님의 위없이 자비하신 가르침인

기야(祇夜)와 가타(伽陀)가 섞여 엉겼으면서도

정밀하고 밝아 오묘한 이치가 맑게 통함을 듣자옵고

마음의 눈이 밝게 열려서 일찌기 없던 일임을 찬탄하더니,

아난이 합장하여 이마를 땅에 대어 예를 드리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지금 부처님께서 차별없는 큰 자비로 말씀하신

성품은 청정하고 오묘하고 항상하다는 진실한 법구를 들었사오나

마음에는 아직도 六이 풀리면 一이 없어진다는 매듭을 푸는 차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댄 큰 자비를 베푸시와 여기에 모인 무리들과 장래의 중생들을 다시 가엾게 여기셔서

법음(法音)을 베풀어 속에 밴 때까지 깨끗이 씻어주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사자좌에서 열반증을 정돈하고 승가리(僧伽梨)를 여미신 다음

칠보로 단장한 책상을 끌어당겨서 겁바라천(劫坡羅天)이 바친 화건(華巾)을 가져다가

대중앞에서 이를 매어 매듭을 만들어 아난에게 보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께 아뢰기를

"그것은 매듭이라고 합니다."

이에 여래께서 다시 첩화건(疊華巾)을 매어서

또 한 개의 매듭을 만들어 거듭 아난에게 물으시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또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그것도 매듭입니다."

이와 같이 차례로 첩화건을 매어 모두 여섯 개의 매듭을 만들었는데

한 번씩 매듭을 만들 때마다 화건으로 만든 매듭을 들고서 아난에게 묻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도 그와 같이 차례로 부처님에게 대답하기를 "그것도 매듭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처음 화건을 맺은 것을 네가 매듭이라고 하였으니

이첩화건은 앞서의 실제는 한 가닥이었거늘

두 번째 세 번째에도 어찌하여 너희들은 다시 매듭이라고 하는고?"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이 보첩화는 짜서 만든 수건으로서 비록 본래는 하나이나

저의 생각으로는 여래께서 한 번 맺으시면 한 개의 매듭이라고 하고,

만약 백 번 맺으면 백 개의 매듭이라고 해야할 것이거든,

더구나 이 수건이 다만 여섯 개의 매듭 뿐이어서

일곱은 되지 못하였으며 다섯에는 머물지 않았사옵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다만 처음 것만 인정하시고

두 번째 세 번째 것은 매듭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보화건은 네가 아다시피 이 수건이 원래는 하나였으나

내가 여섯 번 매듭을 지었을 때에 여섯 개의 매듭이란 이름이에게 되었나니

너는 자세히 관찰하여라.

수건 자체는 같은 것이지만 매듭으로 인하여 달라진 것이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처음 맺어서 매듭이 된 것을 첫 번째라고 말하니

그렇게 하여 여섯 번째 매듭까지 생겼으니,

내가 지금 여섯 번째 매듭을 가지고 첫 번째 매듭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섯 번째 매듭이 만약 있으면 이는 여섯 번째 매듭이지 결코 첫 번째 매듭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제가 여러 생을 두고 끝까지 밝혀본다고 한들

어떻게 이 여섯 번째 매듭의 이름을 바꿀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여섯 개의 매듭이 같지는 아니하나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하나의 수건으로 된 것인데

섞이게 한다는 것은 마침내 성립될 수 없나니라.

곧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도 역시 이와 같아서

필경에는 같은 가운데 마침내 다른 것이 생기나니라."

 

[12] 푸는 요령을 보이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굳이 이 여섯 개의 매듭이 하나로 이루어지지 못함을 싫어해서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면 다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아난이 말하기를,

"이 매듭을 만약 그대로 두면 시비가 벌떼처럼 일어나서

그 가운데 자연 이 매듭은 저것이 아니고 저 매듭은 이것이 아니라고 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여래께서 오늘날 만약 다 풀어서 매듭이 생기지 않게 하실 것 같으면

곧 이것이다 저것이다 라고 하는 일이 없어져서

오히려 하나라고 이름할 것도 없을 것이거든 여섯이 어떻게 성립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여섯이 풀리면 하나가 없어지는 이치도 그와 같으니라.

네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마음의 성품이 어지러워짐을 따라서 깨닫고

보는 것이 허망하게 생겨나고

그렇게 생긴 허망함이 쉬지 아니하여 보는 놈이 피로해져서

물질의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 마치 눈동자가 피로해 지면

곧 허공의 헛보이는 꽃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맑고 정밀하고 밝은 것에 원인 없이 일체 세간의 산과 강, 이 땅덩어리와

나고 죽음과 열반이 어지럽게 일어나나니

이는 모두가 곧 어지럽고 혼란한 피로에서 생긴뒤 바뀐 헛꽃의 현상이니라."

 

[13] 자세히 보이시다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 피로 때문에 생기는 현상은 매듭지어진 것과 같은 것이니 어떻게 풀어 없애야 되겠습니까?"

여래께서 손으로 매듭이 생긴 수건을 잡고서 그 왼쪽을 당기며

아난에게 묻기를 "이렇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다시 손을 돌려 그 오른쪽을 당기면서

또 아난에게묻기를 "이렇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손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각각 당겼으나 마침내 풀지 못하였으니

너는 방편을 베풀어 보아라. 어떻게 해야 풀리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마땅히 매듭 중심서부터 풀면 풀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나니라. 매듭을 풀려거든 매듭 중심에서부터 풀어야 하나니라.

아난아! 내가 말하기를 '불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하였나니

세간과 화합하는 거친 현상들을 취한 것이 아니니라.

여래는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발명하여

그 근본 원인이 인연한 바를 따라 나오는 것을 깨달으며,

이와 같이 항하사 처럼 많은세계속에 한 방울의 비까지도 그 수효를 알며,

눈에 나타나는 갖가지 현상 가운데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으며

따오기는 희고 까마귀는 검은 것에 대하여 그 까닭을 모두 알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아난아! 너의 마음 속을 따라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라. 

감각기관의 매듭이 만약 풀리면 대상인 현상도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모든 허망한 것이 사라져 없어지면 참되지 않음이 어찌 있겠느냐?

아난아! 내가 지금 네게 묻겠는데 이 겁파라수건의 여섯 개의 매듭이 앞에 나타났으니

동시에 매듭을 풀면 한꺼번에 풀릴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그 매듭이 본래 차례로 맺혀진 것이므로 지금도 마땅히 차례로 풀어야 할 것입니다.

여섯 개의 매듭이 본체는 같지만 그 매듭은 동시에 맺혀진 것이 아니므로

그 매듭을 푸는데 어떻게 한꺼번에 풀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으로 인하여 생기는 의혹을 풀어 버리는 것도 이와 같나니라.

그 감각기관이 처음 풀어지면 먼저 인공(人空)을 얻고

허공의 성품마져 원만하게 밝아져서 법의 해탈이 이루어지나니

법을 해탈하고 나서 모두가 공하다는 것까지도 생기지 않아야

이것을 보살이 삼마지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고 하나니라."

 

[14] 소리와 색과 향기

아난과 여러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받자옵고

지혜로운 깨달음이 원만하게 통해서 의혹이 없어짐을 얻고는

일시에 합장하여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하고 아뢰기를 ,

"저희들이 오늘에야 몸과 마음이 밝아져서 걸림이 없음을 쾌히 얻었습니다.

비록 다시 하나와 여섯이 없어지는 이치를 깨닫기는 하였사오나

아직도 원만하게 통한 본근(本根)은 깨닫지 못하였사오니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정처없이 헤매면서 여러겁을 외롭게 떠돌다가

무슨 마음 무슨 생각이 부처님의 천륜(天倫)에 참여하게 되었습니까?

마치 어미를 잃어버렸던 젖먹이가 그 어머니를 만난 듯합니다.

만약 다시 이 모임으로 인하여 도가 이루어진다면

얻어들은 비밀스런 말씀이 본래 깨달음과 같아서 듣지 못한 것과 다름이 없겠습니다.

바라옵건댄 오직 큰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에게 신비하고 존엄하신 은혜로서말씀해 주셔서

여래의 최후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여주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온 몸을 땅에 던지고서 물러나와

숨을 죽이고 앉아서 부처님의 은밀한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에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의 여러 큰 보살들과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어진 큰 아라한에게 널리 구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보살과 아라한이 나의 법 가운데에서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이루었나니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최초의 발심하여 十八계(界)를 깨달았을 적에

어느 것이 원만하게 통한 것이며 어떤 방편으로 삼마지에 들어갔느냐?"

교진여 다섯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녹야원과 계원에 있을 적에

여래께서 최초로 도를 이루심을 보고

부처님의 음성에서 사제(四諦)를 깨달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물으시므로 제가 먼저 안다고 하였는데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아야다(阿若多)'라고 하셨으니,

오묘한 음성이 은밀하고 원만하였으므로 저는 그 음성으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음성이 으뜸인가 하옵니다."

우바니사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도 부처님께서 최초로 도를 이루심을 보았더니

청정하지 못한 모양을 보게 하셨으므로 크게 싫어 여의여야겠다는 생각을 내어

모든 물질의 성품을 깨달았나이다.

깨끗지 못한 것과 백골(百骨)과 미세한 티끌을 따라 허공으로 돌아가서

허공과 물질이 둘다 없어져서 더 배울 것이 없는 도를 이루었으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나사타(尼沙陀)'라고 하셨는데,

색이 라는 대상이 이미 다 없어져서 미묘한 물질이 은밀하고 원만하였사오매

저는 그 물질의 모양으로부터 아라한을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색신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향엄동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여래께서 저에게 모든 작위가 있는 형상을 자세히 살피라고 하심을 듣고서

제가 그때 부처님에게 하직하고 깨끗한 방에서 편안히 생각에 잠겼다가 여러 비구가 침수향 태우는 것을 보았더니

그 향기가 은연중에 코 속으로 들어오거늘

제가 그 향기는 나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연기도 아니요 불도 아니어서

가도 닿는 데가 없으며 와도 좇아온 데가 없음을 관하였나이다.

이로 인하여 뜻이 사라져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끊어짐을 발명하였사오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향엄(香嚴)'이란 호를 주셨사온데

대상인 향기가 문득 사라지고 오묘한 향기가 은밀하고 원만하거늘

저는 그 향엄으로부터 아라한을 얻었사오니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향기가 으뜸인가 하나이다."

 

[15] 맛과 감촉과 법

약왕과 약상 두 법왕자가 모임 가운데 있다가 오백의 범천(梵天)과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한량없는 세월 동안 세상의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입으로 이 사바세계의 풀, 나무, 쇠붙이, 돌을 맛본 그 가지 수가 무릇 十만 八천이나 되니

이와같이 쓰고, 시고,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것 등의 맛과 아울러

화합해서 생긴 맛, 함께 생긴 맛, 변하여 생기는 맛과 찬 맛, 더운 맛,

그리고 독이 있고, 없고를 두루 맛보아 알 수 있었습니다만

여래를 받들어 모시면서 맛의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며,

몸과 마음에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몸과 마음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으며,

맛의 원인을 분별하여 이로 인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여래께서 저희 형제를 인가하시어 약왕, 약상 두 보살로 이름하여 주심을 받자와

지금 모임 중에서 법왕자가 되어서 맛으로 인해 깨닫고서 보살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맛으로 닦는 것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발타바라가 그 도반인 열 여섯 명의 개사(開士)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희들이 앞서 위음불의 처소에서 법을 듣고 출가한 후

스님들과 목욕할 적에 차례를 따라 욕실에 들어갔었는데

홀연히 물로 인하여 깨닫고서 이미 때를 씻은 것도 아니며,

또한 몸을 씻는 것도 아니며, 중간이 편안하여 지닌 것이 없음을 얻었습니다.

숙세의 습기를 잊지 못해서 지금에 와서도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얻었으니,

부처님께서 저를 '발타바라'라고 이름하여 주심을 받자옵고

오묘한 접촉으로 밝아져서 불자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접촉으로 인하여 닦는 것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마하가섭과 자금광비구니 등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지나간 세월에 이 세계 속에 있을 적에

세상에 나온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이름이 '일월등(日月燈)'이었습니다.

제가 가까이 모시면서 법을 듣고 닦아 익혔더니

그 부처님이 멸도(滅度)하신 뒤에는 사리를 공양하면서 등을 켜 계속 밝혔사오며,

자단금(紫檀金)으로 부처님의 형상에 도금하였더니

그후 부터는 세세생생에 몸에 항상 자금광 빛이 모여 원만하였나이다.

이 자금광 비구니 등은 곧 저의 권속이니 그때 다 함께 발심하였나이다.

저는 세간의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이 변하여 없어짐을 보고서

오직 비고 고요함으로써 멸진정(滅盡定)을 닦아서

몸과 마음이 百, 天 겁을 지내어도 마치 손가락을 퉁기는 기간과 같이 짧았으므로

저는 공(空)한 법으로써 아라한을 이루었으니

세존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두타(頭陀)에 최고라고 하셨습니다.

오묘한 법이 밝게 열려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모두 다 소멸시켰으니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법으로 인함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16] 눈과 코와 혀

아나율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 출가하여 늘 수면을 즐기더니 여래께서 저를 꾸짖되 축생의 무리가 된다고 하시므로

저는 부처님의 꾸지람을 듣자옵고 울면서 자책하여 七일을 잠자지 않았더니 두 눈이 멀었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낙견조명금강삼매(樂見照明金剛三昧)를 가르쳐 주셨으므로

저는 눈으로는 시방세계를 보지 못하지만 참다운 정기가 환희 열려서

마치 손바닥에 있는 과일을 보는 듯하였더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아라한을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이유를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보는 것을 돌이켜 근본을 따르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주리반특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외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많이 듣는 성품이 없었더니

처음 출가하여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듣고서 여래의 비밀하신 게송을 기억하려는데

百일 동안이나 앞에 것을 외우면 뒤에 것을 잊고 뒤에 것을 외우면 앞에 것을 잊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겨 저에게 편안히 있으면서 숨쉬는 것을 조절하라고 하시므로

제가 그때에 숨쉬는 것을 관하여 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모든 행동의 찰나를 미세한 것까지 다 연구하여

그 마음이 환해져서 크게 걸림이 없음을 얻었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없어지는 데까지 이르러 아라한을 이루어서

부처님의 자리 아래에 머물었거늘 더 배울 것이 없음을 이루었다고 인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숨쉬는 것을 돌려 공(空)을 따름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교범바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리기를,

"저는 입으로 죄를 지었으니 과거 겁에 스님을 조롱한 탓으로

세세생생에 소처럼 되새김하는 병이 있었거늘

여래께서 저에게 일정한 맛의 청정한 마음의 법문을 가르쳐 주셨으므로

저는 잡념이 없어질 수 있어서 삼마지에 들어가 맛을 아는 것이 실체도 아니고 물질도 아님을 관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생각 동안에 세간에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안으로는 몸과 마음을 해탈하고 밖으로는 세계를 버려서 삼계[三有]를 멀리 벗어남이

마치 새가 새장에서 벗어난 것과 같아서 때와 먼지를 소멸하여 법안이 맑아져서 아라한을 이루었으니,

여래께서 친히 인가하시어 배울 것이 없는 도에 올랐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맛을 돌이켜 지(知)로 돌아감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17] 몸과 뜻

필릉가바차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으로 발심하고서 부처님을 따라 도에 들어가

자주 여래께서 세간에는 즐길만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자옵고

성중에서 걸식한 적에 마음으로 법문을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길에서 독한 가시에 발을 찔리고 온 몸이 매우 아팠습니다.

제가 느낌이 있으므로 이렇게 아픔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비록 깨달음이 있어 아픔을 느끼지만 깨달음의 청정한 마음에는 아픔과 아픔을 느끼는 것이 없으므로

제가 또 생각하기를 이 한 몸에 어찌 두 개의 깨달음이 있으랴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가다듬은 지 오래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이 문득 공(空)해져서

三, 七일 동안에 모든 번뇌가 다 없어져서 아라한을 이루고서

친히 인가하심을 받아 더 배울 것이 없음을 발명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순수하게 깨달아 몸을 버리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오랜 겁(劫 이전부터 마음에 걸림이 없음을 얻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았음을 스스로 기억합니다.

처음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비고 고요하다는 것을 알았더니

이와 같이 시방에 이르기까지도 공(空)하여졌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공한 성품을 증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깨닫는 성품이 참으로 공한 것임을 밝혀 주셔서

공한 성품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아라한을 증득하고,

여래의 보명공해(寶明空海)에 들어가 부처님의 지견(知見)과 같아졌거늘

더 배울 것이 없음을 이루었다고 인가하시어 해탈한 빈 성품에 저보다 더할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모든 현상이 아닌데에 들어가고 능히 아니라는 것과 아니라고 여겨 질 대상이 다하여

법을 돌리어 없는데로 들어가는 방법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18] 안식(眼識)과 이식(耳識)

사리불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오랜 겁으로부터 마음으로 보는 것이 청정하여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 것이 항하사와 같사오니,

세간과 출세간에 갖가지 변화를 한번 보면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을 얻었습니다.

저는 길로 다니다가 가섭파 형제가 인연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한함을 깨닫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보고 깨닫고 하는 것이 밝고 원만해서 큰 두려움이 없음을 얻어 부처님의 장자가 되었으니,

부처님의 입을 좇아 났으며 법을 좇아 화생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이유를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광명을 발하여 그 광명이 극에 달한 지견(知見)이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보현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이미 일찍부터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 여래의 법왕자가 되었사오니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보살근기(菩薩根機)가 있는 제자들을 가르칠 적에 보현행을 닦으라고 하셨으니

이는 저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음으로 듣는 방법으로써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지견(知見)을 분별해서

만약 다른 곳의 항하사 같이 많은 세계에 어떤 한 중생이라도 마음으로 보현행을 발명하는 자가 있으면

저는 그때에 육아(六牙)의 코끼리를 타고 백억의 몸으로 분신하여 그들이 있는 곳마다 찾아가겠사오니,

비록 그 사람이 업장이 깊어서 저를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는 몰래 그 사람의 이마를 만지며 옹호하고 편안하게 위로해서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는 본래의 원인을 말하겠사오니

마음으로 듣는 것이 밝게 발하여 분별이 자제한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19] 비식(鼻識)과 설식(舌識)

손타라난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에 출가하여 부처님을 따라 도에 들어가서 비록 계율은 갖추었으나

삼마지에서 마음이 항상 흩어지고 움직여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없음을 얻지 못하였더니

세존께서 저와 구치라를 시켜서 코 끝의 흰 부분을 관하게 하시거늘

저는 처음부터 자세히 관해서 三, 七일을 지나서야 코 속의 기운을 보게 되었는데

들고 나고 하는 것이 마치 연기와 같다가 몸과 마음이 안으로 밝아져서 세계에 원만하게 통하고

두루 비어서 청정해진 것이 마치 유리처럼 맑으니,

연기와 모양이 차츰 사라지고 코의 숨이 희게 되면서 마음이 열리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겨서

들고 나는 숨이 변하여 광명이 되어서 시방세계를 비추어서 아라한이 되었으니

세존께서 저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 보리를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오래도록 숨이 사라져서 광명을 발하고,

광명이 원만하여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부루나미다라니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오랜 겁으로부터 말 재주가 뛰어나서 괴로움과 허공에 대하여 말하고 실상을 깊이 깨달았으며,

그처럼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여래의 비밀스러운 법문을

제가 대중 가운데서 미묘하게 열어 보여 두려움이 없음을 증득하였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큰 말재주가 있음을 아시고 음성륜(音聲輪)으로써 저로 하여금 발양(發揚)하게 하셨는데

저는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을 도와 법륜을 굴리면서 사자후(獅子吼)로 인하여 아라한이 되었으니,

세존께서 저를 인가하시기를 설법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법음으로 악마와 원수를 항복받고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소멸시키는 방법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0] 신식(身識)과 의식(意識)

우바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친히 부처님을 따라 성을 넘어 출가하여 여래께서 六년동안 괴로움을 견디시며

모든 마구니들을 항복받고 외도들을 제압하여

세간의 탐욕 따위외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는서 해탈하심을 친히 보시고서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율을 받들어 이렇게 三천 가지 행동과

八만 가지 미세한 성업(性業)과 차업(遮業)이 모두 청정해졌으며

몸과 마음이 고요해져서 아라한이 되었사오니,

저는 여래의 대중 가운데 규율을 세우는 책임을 맡았으므로

부처님께서 저의 마음을 인가하여 계를 지키고 몸을 닦는데는 대중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몸을 단속하여 몸이 자재하게 되고,

다음에는 마음을 단속하여 마음이 통달한 연후에 몸과 마음이 모두 통하여 이롭게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대목건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에 길에서 우루빈나와 가야, 나제인 세 가섭을 만나

여래의 인연법에 대한 깊은 이치를 말하는 것을 듣고 제가 갑자기 발심하여 크게 통달하게 되었으니,

여래께서 저에게 가사가 몸에 입혀지고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시방세계에 돌아다녀도 걸림이 없었으며

신통을 발휘함이 으뜸임을 미루어 아라한이 되었사오니 어찌 세존뿐이겠습니까?

시방의 여래들께서도 저의 신통력이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맑은 데로 돌아가 마음의 빛을 발함이 마치 흐린 물을 가라앉혀서

오래되면 맑고 깨끗하게 되는 듯함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1] 불(火大)과 흙(地大)

오추슬마(烏芻瑟摩)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항상 과거를 생각하니 오랜 겁전에 탐욕스러운 성품이 많았더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 이름이 '공왕'이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음욕이 많은 사람은 맹렬한 불덩이리가 된다'고 하시며 저로 하여금 백해(百骸)와 사지의 따뜻한 기운을 두루 관하라고 하시거늘 신비한 광명이 안에서 엉키면서 많은 음심이 변하여 지혜의 불을 성취하니, 그로부터 여러 부처님께서 저를 '화두(火頭)'라고 부르셨는데 저는 화광삼매(火光三昧)의 힘으로 아라한이 되었으니, 마음에 큰 서원을 발하여 모든 부처님께서 도를 성취하려 하시거든 제가 역사가 되어 마구니와 원수를 친히 항복받겠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 몸과 마음의 따뜻한 감촉이 걸림이 없이 유통함을 자세히 관하여 모든 정기가 새는 것이 이미 소멸되어서 큰 보배의 불꽃이 생겨나서 위없는 깨달음에 오르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지지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생각하니 지난 옛적에 보광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는데 제가 그때 비구가 되어서 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과 나루에서 산과 길이 험악하고 좁아서 여법(如法)하지 아니하여 수레와 말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손상시켜서 제가 모두 메워서 평탄하게 하며 혹은 다리를 놓기도 하고 흙과 모래를 져다 메우기도 하면서 이렇게 노력하기를 한량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할 때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중생이 복잡한 곳에서 삯군을 얻어 짐을 지우려고 하면 제가 먼저 짐을 지고 그 목적지까서 가서 짐을 내려 놓고는 곧 돌아오고 삯은 받지 않았으며, 비사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적에는 여러 해 동안 흉년이 들었는데 저는 그때에도 짐군이 되어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일전만 받았으며, 또 수레를 멘 어떤 소가 흙구렁에 빠지게 되면 저의 신통력으로 그 바퀴를 밀어 주어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때 국왕이 부처님을 맞아 재를 베풀었는데 제가 그때에 길을 평탄하게 닦아놓고 부처님을 기다렸더니 비사여래께서 정수리를 만지시며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평탄하게 가지면 온 세계의 땅이 다 평탄해질 것이라'고 하시므로 제가 곧 마음이 열려서 몸에 있는 미세한 티끌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미세한 티끌과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아서 미세한 티끌과 자성이 서로 접촉되지 않았으며, 마침내 도병(刀兵)까지도 접촉됨이 없어서 저는 법의 성품에서 무생인(無生忍)을 깨달아 아라한이 되었나이다. 그리고 지금은 마음을 돌리어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여래께서 묘연화의 불지견지(佛知見地)를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제가 먼저 증명하여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몸과 세계의 두 미세한 티끌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어서 본래 여래장에서 허망하게 미세한 티끌이 생긴 것임을 자세하게 관찰하여서 그 미세한 티끌이 사라지고 지혜가 원만하게 되어 위없는 도를 이루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2] 물(水大)

월광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해 보니 지난 옛적 항하사 같이 많은 겁(劫) 이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 하셨으니 그 이름이 '수천(水天)'이었습니다. 모든 보살들을 가르치셔서 물의 정밀한 성품을 닦고 익혀서 삼마지에 들어가되 몸 속에 있는 물의 성품이 서로 빼앗음이 없어서 처음으로 눈물과 춤으로부터 진액, 정액, 피와 대변, 소변에 이르기까지 몸 속에 돌아다니는 모든 물의 성품은 동일한 것임을 관하여 그 물이 몸 속에 있는 것과 세계밖에 부당왕찰(浮幢王刹)의 향수해와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에 처음 그 관법을 이루어서 다만 물만 보았을 뿐 몸이 없어짐은 얻지 못하여 비구가 되었으므로 방 안에서 편안히 참선을 하고 있었는데 저의 제자가 창문을 뚫고 방 안을 엿보더니 맑은 물만 방에 가득할 뿐이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거늘 어린 것이 무지하여 자갈을 가져 다가 물 속에 던져 소리가 나게 하고는 힐끔힐끔 돌아보며 떠나갔습니다. 제가 선정에서 나온 뒤에 갑자기 가슴이 아프기가 마치 사리불이 원한의 귀신을 만난 것과 같았으므로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금 나는 이미 아라한의 도를 얻어서 오래전부터 병의 인연을 벗어났는데 어찌하여 오늘 갑자기 가슴이 이렇게 아픈가? 아마도 퇴보하여 잃게 되는 것이 아니려나 하였는데 그때 동자가 제 앞에 와서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일을 말하였습니다. 저는 곧 말해주기를 '네가 다시 물을 보거든 즉시 문을 열고 그 물 속에 들어가서 자갈을 건져내라'고 하였더니 동자가 시키는대로 하여 다음에 선정에 들어갔을 적에 다시 물을 보니 자갈이 완연하거늘 문을 열고 건져 내었더니 제가 그 다음 선정에서 나오니 몸이 처음과 같았습니다. 그후 한량 없는 부처님을 만났으되 산해자재통왕여래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몸이 없어져서 시방세계의 모든 향수해로 더불어 성품이 참다운 허공에 합하여 둘도 없고 차별도 없으므로 지금 여래에게 '동진'이란 이름을 얻어 보살의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물의 성품이 한결같이 흘러 통하여 무생인을 얻어서 보살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3] 바람(風大)과 허공(空大)

유리광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날 항하사 겁 이전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 이름이 '무량성'이었습니다. 보살께서 본래 깨달으신 오묘한 마음을 열어 보이시되 이 세계와 중생의 몸이 모두가 허망한 인연인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임을 관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에 경계가 편안히 성립된 것과 시간이 흘러가는 것과 몸의 움직이는 형상과 마음이움직이는 생각을 관하였으되 모든 움직임이 둘이 아니어서 평등하여 차별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때에 이 여러가지 움직이는 성품이 와도 좇아 온 데가 없고 가도 갈 곳이 없어서 시방의 미세한 티끌 같은 뒤바뀐 중생들이 다같이 허망해서 삼천 대천의 세계 속에 있는 중생들은 마치 한 그릇 속에 담아놓은 백 마리의 모기가 앵앵거리고 시끄럽게 울면서 분촌만한 속에서 고동치고 발광하며 소란스럽게 구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을 만난지 오래지 아니하여 무생인을 얻었는데 그때에 마음이 열려서 동방의 부동불국(不動佛國)을 보고서 법왕자가 되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섬겼으며 몸과 마음이 광명을 발하여 환하게 통해서 걸림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바람의 힘이 의지할 데가 없음을 관찰하여 보리심을 깨닫고 삼마지에 들어가 시방의 부처님과 합해서 오묘한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허공장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제가 여래와 함께 정광 부처님 처소에서 끝이 없는 몸을 얻었습니다. 그때에 손에는 네 개의 큰 보배구슬을 들고서 시방에 미세한 티끌 같이 많은 부처님 세계를 비추어 허공으로 변화시켰으며, 또 스스로의 마음에 크고 둥근 거울을 나타내서 그 속에서 열 가지 미묘한 보배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끝없는 허공의 모든 세계를 비쳐주고는 거울 속으로 들어왔고 내 몸에 들어와서는 몸이 허공과 같아서 서로 방해하거나 걸림이 없으며 몸이 작은 먼지 같이 많은 국토에 들어갈 수가 있어서 널리 불사를 행하여 크게 순하게 따름을 얻으니, 이 큰 신비한 힘은 네 가지 원소는 의지한 데가 없어서 허망한 생각으로 생기고없어지는 것이라서 허공과 다름이 없으며, 불국과 본래 같은 것임을 자세히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같은 데에서 발명하여 무생인을 얻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허공이 끝이없음을 관찰하여 삼마지에 들어가서 오묘한 힘이 원만하고 밝게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4] 의식(識大)와 의식(根大)

미륵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해보니 지나간 옛적에 미세한 티끌처럼 많은 겁 이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으니 그 이름이 '일월등명'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게 되어서 마음에는 세상의 명성을 소중하게 여겨 족성(族姓)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저로 하여금 유심식(唯心識) 선정을 닦아 익혀서 삼마지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겁을 지나면서 이 삼매로써 항하사처럼 많은 부처님을 섬겼더니 세상의 명성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없어졌고, 연등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기에 이르러서는 제가 위없이 오묘하고 원만한 식심 삼매를 증득하여 허공에 가득한 여래와 국 토의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것까지가 모두 제 마음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러한 것이 오직 심식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의식의 성품이 한량없는 여래를 배출하나니 지금 수기를 얻어서 부처님 지위를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시방이 오직 의식으로 인하였음을 자세히 관하여 의식하는 마음이 원만하고 밝아져서 원만하게 성취한 진실에 들어가 의타(依他)와 변계집을 멀리 벗어나서 무생인을 증득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대세지보살이 그의 동료 쉰 둘이나 되는 보살들로 더불어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항하사 겁에 어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니 그 이름이 '무광량'이었으며, 열 두 분 여래가 일겁(一劫)동안 계속하여 나셨는데 그 마지막 부처님의 이름이 '초일월광'이었습니다. 그 부처님이 저에게 염불삼매를 가르치시기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은 기억하기를 전념하나 다른 한 사람은 잊어버리기를 전념하면 이러한 두 사람은 만약 서로 만났더라도 만난 것이 아니며 보았더라도 본 것이 아니거니와 두 사람이 서로 기억해서 이렇게 기억하는 두 생각이 깊으면 이와 같이 이생에서 저생에 이르도록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서로 어긋나지 않으리니, 시방 여래는 중생을 가엾게 생각하심이 마치 어미가 아들을 생각하듯 하시나니 만약 아들이 도망하여 간다면 비록 생각한들 무엇하겠느냐? 아들이 만약 어머니를 생각함이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할 때처럼 한다면 어미와 아들이 여러 생을 지내더라도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만약 중생의 마음이 부처님을 기억하면서 염불하면 지금이나 뒷 세상에 반드시 부처님을 보게 되어 부처님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방편을 빌리지 않고서도 저절로 마음이 열려지는 것이 마치 향기를 물들이는 사람의 몸에 향기가 밴 것과 같을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향광엄장(香光嚴蔣)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본래의 인지(因地)에서 염불하는 마음으로 무생인에 들어갔고, 지금 이 세계에서도 염불하는 사람을 이끌어다가 정토에 돌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특별한 것을 가림이 없어서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모두 단속하면서 깨끗한 생각이 서로 계속하여 삼마지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 券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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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의 능엄신주 범어독음과 국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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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卷 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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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道不在山野(도부재산야), 도는 승과 속인을 분별하지 않는다

제4장 道不在山野(도부재산야) 도는 승과 속인을 분별하지 않는다 13. 問曰:白衣有妻子,婬欲不除,憑何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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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道不在山野(도부재산야)

도는 승과 속인을 분별하지 않는다

13.

問曰:白衣有妻子,婬欲不除,憑何得成佛?

“세속인은 처자가 있고, 음욕도 없애지 않는데, 어떻게 성불할 수 있습니까?”

答曰:只言見性不言婬欲。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 음욕을 말하지는 않는다.

只為不見性;但得見性,婬欲本來空寂,自爾斷除,亦不樂著,

단지 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욕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견성하기만 하면 음욕은 본래 공적(空寂)하니, 끊어 없앨 필요도 없고, 즐겨 집착하지도 않는다.

縱有餘習,不能為害。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해가 되지 않는다.

何以故?性本清淨故。

雖處在五蘊色身中,其性本來清淨,染污不得。

무엇 때문인가? 본성이 본래 깨끗하기 때문이다.

비록 오온(五蘊)의 색신(色身) 속에 있지만, 그 본성은 본래 깨끗하여 오염될 수가 없다.

法身本來無受,無飢無渴,無寒熱,無病,無恩愛,無眷屬,無苦樂,無好惡,無短長,無強弱,

법신(法身)은 본래 감각을 받아들임이 없어서, 배고픔도 없고, 목마름도 없고, 추움도 없고, 더움도 없고,

병도 없고, 사랑도 없고, 딸린 권속도 없고, 고통과 즐거움도 없고, 좋아함과 싫어함도 없고,

장점과 단점도 없고, 강함과 약함도 없다.

本來無有一物可得;

본래 얻을 수 있는 한 물건도 없다.

只緣執有此色身,因即有飢渴寒熱瘴病等相,

다만 이 색신(色身)이라는 원인에 집착하기 때문에, 배고픔, 갈증, 추움, 더움, 질병 등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若不執,即一任作。

만약 집착하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자재하게 행위하여라.

若於生死中得自在,轉一切法,與聖人神通自在無礙,無處不安。

만약 생사 속에서 자재(自在)를 얻어 일체법을 굴린다면, 성인과 같이 신령스러이 통하고 자재하고 막힘이 없어서 불안한 곳이 없을 것이다.

若心有疑,決定透一切境界不過。不作最好,

만약 마음에 의심이 있다면, 결코 어떤 경계도 뛰어넘지 못한다. 조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作了不免輪迴生死。

조작하면 생사의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若見性,旃陀羅亦得成佛。

만약 본성을 본다면, 찬드라(candala; 도살업 등에 종사하는 최하층의 천민)도 역시 성불할 수 있다.“

[1] 의심스러운 점을 질문함

 이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히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엄있고 덕 높으신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제일의 제(第一義諦)를 잘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세존께서 항상 추천하시기를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가 제일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여래의 미묘한 법음을 듣자오니 마치 귀먹은 사람이 백 걸음 밖에서 모기 소리를 듣는 것과 같으니

본래 볼 수도 없거든 더구나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록 분명하게 말씀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의혹 을 덜게 하였사오나

저는 아직도 그 뜻을 끝까지 추구하여 의혹이 없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 같은 무리들은 비록 깨달았다고는 하나

익혀온 습기와 번뇌가 아직 다 없어지지 못하였거니와

저희들은 모임 가운데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없는데까지 이른 자들이므로

비록 모든 새는 것을 다 끊어버렸다 하더라도

지금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음을 듣고서는 오히려 의혹과 회의에 얽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간에 일체의 근(根), 진(塵), 음(陰), 처(處), 계(界)등이 다 여래장이어서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홀연히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모든 물질들이 생겨나서 차례로 변천하여

끝마쳤다가는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것입니까?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은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퍼져서 맑고 고요히 늘 머문다'고 하셨나니

세존이시여!

만약 흙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어떻게 물을 용납하며

물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불은 생기지 못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물과 불의 두 성분이 허공에 가득하여

서로 능멸(凌滅)하지 아니하는지 그 이치를 밝힐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흙의 성질은 가로막는 것이고 허공의 성질은 텅텅 빈 것이거니

어찌하여 두 가지가 다같이 법계에 두루 퍼진다고 하십니까?

저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어두운 구름을 벗겨 주소서."

모든 대중들과 이렇게 말하고서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

여래의 더없이 높은 자비로운 가르침을 흠모하여 목마르게 기다렸다.

 

[2] 여래께서 의혹을 풀어줌

그때에 세존께서 부루나와 모임 가운데에서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어진 무학(無學)인 모든 아라한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여래가 오늘 널리 이 모임을 위해서

수승한 이치 속에서도 참되고 수승한 이치의 성품을 설명하여

너희 모임 중에서 소승인 성문들과 일체의 두 가지 빈 것을 얻지 못한 이들과

상승(上乘)으로 회향하는 아라한 등으로 하여금

모두 일승의 열반의 자리[寂滅場地]인 참된 아련야(阿練惹)의 올바르게 수행할 방법을 얻게 하고자 하노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부루나 등이 부처님의 법음을 흠모하여 잠자코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루나야! 네가 말한 바와 같이 '청정한 본래 자연 그대로라면

어떻게 홀연히 산과 강과 대지가 생기겠느냐?'고 하는데

너는 여래가 늘 말하는 '성각(性覺)은 오묘하고 밝으며

본각(本覺)은 밝고 오묘하다'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그러한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늘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한 깨달음이니 밝음이니 하는 것은 성품이 밝은 것을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아니면 깨달음이 밝지 못한 것을 밝은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이 밝지 못한 것을 이름하여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밝힐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밝힐 것이 없다면 밝혀야 할 깨달음이 없으리라.

밝힐 것이 있으면 깨달음이 아니고 밝힐 것이 없으면 밝은 것이 아니며

밝음이 없으면 깨달음의 맑고 밝은 성품이 아니리라.

성품의 깨달음이 반드시 밝은 것이어서 허망하게 밝혀야 할 깨달음이라고 하나니라.

깨달음은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건만 밝힘으로 인하여 밝혀야 할 것이 이루어졌으니

그 밝혀야 할 것 이미 망령되게 이루어지면

너의 허망한 작용의 능력을 생기게 해서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서 불꽃처럼 성하게 다름을 이루었나니라.

 

[3] 세계의 시초

저 다른 것을 다르다고 여겨서 그 다른 것으로 인해 같음이 성립되었고

같음과 다름을 분명히 구분하고 그로 인해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흔들리고 어지러운 것이 서로 작용하면 피로가 생기고

그 피로가 오래되면 번뇌가 생겨서 자연 서로 혼탁하게 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오염과 번뇌[塵勞煩惱]가 일어나나니라.

움직여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고요하게 있는 것은 허공이 되나니

허공은 같으나 세계는 다르니 그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이 참다운 현상계[有爲法]이니라.

깨달음의 밝음과 허공의 어두운 것이 서로 작용하여 동요하기 때문에

바람바퀴[風輪]가 있어 세계를 잡아 지탱[熱持]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공에 크게 소리쳐서 흔들림이 생겨나고 밝은 것을 굳혀서 막힘이 이루어지니

저 금은 보배는 밝은 깨달음이 굳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금륜(金輪)이 국토를 보전하여 지탱하는 것이며,

깨달음이 굳어져서 금은 보배가 되고 밝음이 흔들려서 바람이 일어나니

바람과 금이 서로 마찰하므로 불 빛이 생겨 변화하는 바퀴가 되었으며,

금보의 밝음이 윤택한 기운을 생기게 하고 불 빛은 위로 치솟기 때문에

물바퀴[水輪]가 생겨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불은 위로 오르고 물은 흘러 내려서 서로 발하여 굳어져서

젖은 곳은 큰 바다가 되고 마른 곳은 육지와 섬이 되었으니

이러한 이치로써 저 바다 가운데서는 불 빛이 늘 일어나고

육지와 섬 가운데서는 강물과 냇물이 늘 흐른다.

물의 힘은 불보다 열세이면 맺혀서 높은 산이된다.

그러므로 산에 돌이 부딪치면 불꽃이 일어나고 녹으면 이 되며

흙의  보다 열세이면 돋아나서 풀이나 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숲과 늪이 타버리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된다.

서로 엉켜서 허망함이 발생하여 번갈아 서로 종자가 되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세계가 서로 계속되나니라.

 

[4] 중생의 시초

또다시 부루나야 밝은 것이 허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깨달음의 밝은 것이 허물이 되니

허망한 것이 이미 성립되면 밝은 이치가 이를 앞지르지 못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듣는 것이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보는 것이 색깔을 벗어나지 못하여

빛과 향기, 맛과 촉감 등 여섯 가지 허망함이 이루어지나니

그로 말미암아서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것이 나뉘어져서

같은 업장끼리 서로 얽히고 어울리고 떠나는 것이 변화를 이루나니라.

보는 것이 밝아서 빛이 발하고 밝게 봄으로 해서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다르게 보면 미움이 생기고 같은 생각은 사랑이 생겨서 그 사랑이 흘러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들여 태(胎)가 되어서 서로 어우러짐이 발생하고 같은 업장끼리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그 인연으로 해서 갈라람과 알포담등이 생기나니라.

태로 생하는 것과 알로 생하는 것, 습기에서 생하는 것과 화생으로 생하는 것이

제각기 응할 바를 따라서 알로 생하는 것은 오직 생각으로서만 생겨나고

태로 생하는 것은 (情)으로 인해 생겨나며,

습기로 생하는 것은 합하여 느낌으로서 생기고 화생은 떠나서 응함으로 생기니,

정, 생, 각, 합, 떠남으로 생기는 것들이 다시 서로 변하고 바뀌어서 업을 받는데

그 업장을 따라 혹은 날고 혹은 잠기고 하니 그러한 인연으로 중생이 서로 계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여러가지 욕심으로 말미암아서 그것이 애욕의 성품이 생김을 돕는데

그 애욕을 여읠 수가 없어서 갖가지 업장을 짓게 되나니

그 때문에 나고 죽는 윤회가 계속하게 되나니라.

모든 세간의 부부가 혼인하여 교합해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낳아 끊이지 않나니

이러한 것들은 음욕을 탐냄으로 업장이 된 것이고,

또 모든 세간에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이

힘이 강하고 약함에 따라서 번갈아가며 서로 잡아 먹나니

이러한 것들은 살생을 탐하는 것으로 업장이 된 것이며,

또 다시 모든 세간에 다른 사람이 가진 재물과 돈을

크고 작은 요망한 도적들이 억지로 빼앗거나 몰래 가져가나니

이러한 것들은 도적질을 탐함으로 업장이 된 것이니

가령 세상에서 사람이 양을 잡아 먹었을 경우

그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되어

이러한 열 가지 생명을 지닌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죽고 나고 나고 죽고하여 번갈아 와서 서로 잡아 먹으면서

악업이 함께 생겨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계속되나니 나머지도 이와 같나니라.

네가 나의 목숨을 저버리면 나는 너의 빚을 갚고 내가 너의 목숨을 저버리면

네가 나의 빚을 갚아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보응(報應)하게 되며,

너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거든 나는 너의 얼굴을 어여삐 여기고 내가 너의 마음을 사랑하면

너는 나의 얼굴을 어여삐 여겨 이러한 인연으로 백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얽매이게 되나니라.

오직 음욕과 살생 그리고 도적질, 이 세 가지가 모든 악의 근본이 된다.

그러한 인연으로 업장과 과보가 서로 연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이러한 세가지의 뒤바뀜이 서로 계속되는 것은

모두 밝은 깨달음인 밝고 또렷한 의식이 분별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인하여

허망함을 따라 보는 것이 생기나니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차례로 변하여 흘러도

이 허망으로 인하여 끝나면 다시 시작하곤 하느니라."

 

[5] 오묘한 공은 습기가 없다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 오묘한 깨달음과 본래 오묘한 각명(覺明)은

여래의 마음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이거늘

까닭없이 산과 강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생기는데

여래께서는 지금 오묘하고 빈 명각(明覺)을 얻었사온데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작용이 있는 익혀온 번뇌가 언제 다시 생기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마치 혼미한 사람이 어떤 취락(聚落)에서

남쪽을 북으로 의혹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 미혹은 미혹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냐 깨달음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이렇게 혼미한 사람은 미혹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또한 깨달음으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미혹은 본래 뿌리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미혹으로 인했다고 하겠으며

깨달음이 미혹으로 생긴 것이 아닌데 어떻게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미혹한 사람이 정히 미혹하여 있을 때에

어떤 깨달은 사람이 옳게 지시하여 깨닫게 한다면

부루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비록 미혹하였으나 그 마을 시장에서 다시 미혹이 생기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루나야! 시방의 여래도 역시 그러하니라.

그 미혹은 근본이 없어서 성품이 필경에는 빈 것이니

옛날에는 본래 미혹함이 없었으나

미혹이 있는 듯 한데서 깨닫나니

미혹을 깨달아 미혹이 없어지면 깨달음이 있어 미혹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눈병이 난 사람이 허공의 꽃을 보는 것과 같아서

눈병이 없어질 것 같으면 그 꽃은 허공에서 없어지나니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저 허공의 꽃이 없어진 빈 자리에서

그 꽃이 다시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너는 그러한 사람을 볼 적에 어리석다고 하겠느냐 지혜롭다고 하겠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거늘 허망으로 인하여 생기고 없어짐을 보는 것이니

그 꽃이 허공에서 없어짐을 보는 것도 이미 뒤 바뀐 것이거늘

명령하여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게 한다면 이는 실로 미친 바보짓입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미친 바보짓하는 사람을 이름하여 어리석다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다면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의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허공에서 어느 때에 다시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가 나옵니까하고 묻느냐?"

또 마치 금광에 순금이 섞여 있다가 그 금이 완전하게 순금이 되고나면

다시는 섞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마치 나무가 불에 타서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열반도 역시 그와 같나니라.

 

[6] 네 가지 원소는 서로서로 용납함

부루나야! 또 네가 묻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의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어째서 물의 성품과 불의 성품이 서로 능멸하지 않습니까?"하였고,

또 묻기를 "허공과 땅덩어리가 다 함께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부루나야! 비유하면 허공의 본체가 여러가지 모양이 아니지만

그러나 저 여러가지 모양이 나타남을 막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부루나야!

저 커다란 허공이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우며,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개이면 맑으며,

기운이 엉키면 탁하고 흙먼지가 쌓이면 흙비가 되며,

물이 맑으면 밝게 비치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러한 여러 방면에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들이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느냐 허공을 따라 있는 것이냐?

만약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부루나야!

장차 해가 비칠 적에는 이미 그것은 해의 밝음이므로

시방세계가 다같은 햇빛이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공중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게 되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서 생긴 밝음이라면 허공이 응당 스스로 비칠 것인데

어찌하여 밤중이나 구름이 끼었을 적에는 빛을 내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밝음은 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허공이나 해와 다른 것도 아니니라.

그 현상을 살펴보건대 본래가 허망해서 가리켜서 말할 수가 없음이

마치 허공의 꽃에서 헛된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떻게 서로 능멸하는 이치를 따지겠느냐?

성품을 살펴보건대 본래 참된 것이라서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일 뿐이다.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의 마음이 본래 물이나 불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느냐고 묻느냐?

참되고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네가 허공으로서 밝히면 허공이 나타나고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각각 밝히면 곧 그것들도 각각 나타나며

만약 다 함께 밝히면 곧 다 함께 나타나나니라.

어떤 것을 함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부루나야!

마치 물 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두 사람이 함께 물 속의 해를 보다가 동쪽과 서쪽으로 제각기 가면

물 속의 해도 제각기 두 사람을 따라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가서

본래부터 표준한 곳이 없으니 따져 말하기를,

"저 해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제각기 가느냐?"고 하며

"각자 가는 해가 이미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로 나타나느냐?"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완연히 허망하여 의지할 수가 없나니라.

 

[7] 허망한 것을 좇아 나타남

부루나야! 너는 물질과 허공으로서 여래장에서 서로 밀어내고 서로 빼앗으므로

여래장도 따라서 물질과 허공이 되어 우주에 두루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바람은 움직이고 허공은 맑으며 해는 밝고 구름은 어두운 것인데

중생들은 어리석고 미련해서 깨달음을 저바리고 허망한 티끌과 어울리므로

번뇌가 일어나서 세간의 현상이 있게 되나니라.

나는 오묘하고 밝은 것이 생겨나거나 없어지지도 않는 것으로서 여래장과 합하였는데

여래장이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이므로 우주에 원만하게 비춘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하나가 한량없는 것이 되고 한량없는 것이 하나가 되며,

적은 가운데 큰 것을 나타내고 큰 가운데 적은 것을 나타내며,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의 세계에 두루 퍼지며,

몸으로 시방의 끝 없는 허공을 머금으며,

한 털끝에서 보왕(寶王)의 세계를 나타내며,

작은 먼지 속에 앉아서 큰 법륜(法輪)을 굴리나니라.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에 합하므로 진여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을 발하니

여래장의 본래 오묘하고 원만한 마음은 마음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흙도 아니요 물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요 불도 아니며,

눈도 아니요 귀, 코, 혀, 몸, 생각도 아니며,

빛도 아니요 소리, 향기, 맛, 촉감, 법도 아니며,

안식계(眼識界)도 아니요 이렇게 의식계(意識界)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밝음도 밝음이 없음도 아니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마져 다함도 아니며,

이와같이 늙음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며, 늙음과 죽음이 다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괴로움도 아니요 괴로움의 원인도 아니며, 괴로움을 없는 자리도 아니요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증득함도 아니며, 보시도 아니요 계율도 아니며, 인욕도 아니요 정진도 아니며,

선정도 아니요 반야도 아니며, 바라밀다도 아니니라.

이와 같아서 여래도 아니요 응공도 아니며, 정변지도 아니요 대열반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며, 주체도 아니요 청정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나니

이렇게 세간과 출세간도 모두 아니기 때문이요.

곧 여래장의 원 밝은 마음인 오묘함은

곧 마음이요 허공이며, 흙, 물, 바람, 불이요 곧 눈, 코, 혀, 몸, 생각이며,

곧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法)이요 곧 눈으로 보아 의식하는 경계이며,

이렇게 뜻으로 생각하여 의식하는 경계에까지 이르며,

곧 밝음과 밝음이 없음이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까지 다 끊음이며

이렇게 곧 늙음이요 죽음이며, 곧 늙음과 죽음이 다함이요

곧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을 없애는 자리[滅],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 지혜, 증득함이며,

곧 보시, 계율,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바라밀다이고 이렇게 곧 여래, 응공, 정변지이며, 곧 대열반이요,

곧 항상함(常), 즐거움(樂), 주체(我), 청정(淨)이니 이것이 모두가 곧 세간법과 출세간법이므로

곧 여래장인 오묘하고 밝은 마음의 근본은 그런 것도 아니요 그렇지 아니함도 아니며,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이니라.

어찌하여 세간의 삼유(三有)의 중생들과 출세간의 성문 연각들이 알고 있는 마음으로

여래의 위없는 보리를 추측하여 헤아려서 세간의 언어로써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거문고, 비파. 공후가 비록 묘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손가락이 없으면 끝끝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너와 중생들도 역시 이와같아서 보배로운 깨달음의 참 마음이 각각 원만하건만

만일 내가 손가락을 놀리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거늘

너는 잠시만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가 먼저 일어나나니

이는 위없는 깨달음의 길을 부지런히 구하지 않고

소승을 좋아하여 적은 것을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탓이니라."

 

[8] 허망함이 일어나는 원인

부루나가 말하기를,

"저와 여래는 보배의 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아서

진실하고 오묘하고 청정한 마음이 다를 것이 없이 원만한 것입니다만

저는 옛날 시작도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한 생각을 내어서 오랫동안 윤회 속에 있었으므로

지금 성인의 과업을 이루었으나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모든 허망함이 모두 다 없어져서 홀로 오묘하게 참되고 항상하시니

감히 여래께 묻습니다만 일체 중생들은 무슨 원인으로 허망한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 오묘하게 밝은 것을 가리우고 이렇게 윤회에 빠져 허덕이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비록 의심은 없앴으나 나머지 의혹이 다 없어지지 못하였으니

내가 세상에서 현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지고 지금 다시 네게 묻겠다.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시라벌성 안에 연야달다(演若達多)가 홀연히 이른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다하니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무슨 원인으로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겠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일 뿐 다른 까닭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은 본래 원만하고 밝고 오묘한 것이니

이미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였던들 어떻게 원인이 있다고 하겠으며

만약 원인이 있으면 어떻게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겠느냐?

스스로 일으킨 모든 망상들이 전전하며 서로 원인이되어

미혹을 좇아 미혹이 쌓여서 끝없는 세월을 지내왔으므로

비록 부처님께서 발명해주었어도 오히려 돌이키지 못하나니라.

이와 같이 미혹한 원인은 미혹으로 인하여 저절로 생긴 것이니

미혹함이 원인이 없다는 것을 알면 허망한 생각이 의지할 데가 없나니

오히려 생기는 것도 없는데 무엇을 없애려느냐?

보리를 얻은 자는 잠을 깬 사람이 꿈 속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마음에는 비록 꿈 속의 일이 분명하지만 무슨 수로 꿈 속에 물건들을 취할 수 있겠느냐?

더구나 원인이 없어서 본래 있지도 않은 것이랴.

저 시라벌성의 연야달다와 같은 경우는

어찌 인연이 있어서 자기의 머리를 무서워하면서 달아났겠느냐?

홀연히 미친 증세가 없어지면 그 머리는 밖에서 얻어진 것이 이니며

비록 미친 중세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어찌 잃어버린 것이겠느냐?

부루나야! 허망한 성품이 이러하니 원인이 어찌 있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만 세간의 업장과 과보 그리고 중생,

이 세 종류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따라 분별하지 아니하면

세 가지 인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곧 너의 마음 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은 자연 없어질 것이다.

무명이 없어지면 곧 보리의 뛰어나게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우주에 두루퍼져서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니 어찌하여 애써가며 수고롭게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해서 타향에서 곤궁하게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것과 같아서

비록 실제는 빈궁하지만 여의주는 잃은 것이 아니니

홀연히 지혜있는 사람이 그 여의주를 가르켜주면

원하던 것이 마음을 따라서 큰 부자가 되리니

그때에야 바야흐로 그 신비로운 여의주가 밖에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으리라."

 

[9] 자연으로 인연을 깨뜨림

그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일어나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께서 지금 말씀하시기를,

음욕, 살생, 도적질의 세 가지 업연이 끊어지므로해서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마음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이 자연 없어지리니

미친 성품이 없어지면 이는 곧 보리인지라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인(因)과 연(緣)이 분명한 것이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완전히 버렸습니까?

저도 인연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열리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치는 어찌 나이 어린 저희들 유학인 성문들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있는 대목견련과 사리불과 수보리 등도

늙은 범지(梵志)를 추종하다가 부처님의 인연법을 듣고서 발심하여 깨달아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끊어지는 도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리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왕사성의 구사리 등이 말하는 자연이라야 제일의(第一義)가 되리니

바라옵건데 큰 자비를 베푸시어 혼미하고 답답한 것을 열어 밝혀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치 성 가운데 있는 연야달다가 만약 미친 성품의 인연을 제거하여 없앨 수만 있다면

미친 성품이 아닌 것이 자연히 나오는 것과 같아서 인연과 자연의 이치가 여기에서 끝나나니라.

아난아! 연야달다의 머리가 본래 자연 그대로일진댄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자연 아닌 것이 없거늘

무슨 인연 때문에 머리를 두려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약 자연의 머리가 인연 때문에 미쳤다면

어찌하여 자연이 인연 때문에 잃어지지 않는냐?

본래의 머리는 잃은 것이 아니거늘,

미쳐 두려워함이 허망하게 생겼다면 이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느냐?

본래 미친 것이 자연이라면 미친 두려움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겠지만

미치지 않았을 적에는 미친 증상이 어디에 숨었었으며

미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면 머리는 본래 미쳐 날뜀이 없을 것이어늘

어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일 본래의 머리라는 것을 깨닫고나서 미쳐서 달아났던 것을 알면

인연과 자연이 모두 장난같은 논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세 가지 연(緣)이 끊어지므로 곧 보리심이다'고 한 것이다.

 

[10] 잘못을 경책하고 수행을 권유함

보리의 마음이 생기고 나서 없어지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모두 다하여 공부의 작용이 없는 길에 만약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것은 자연의 마음이 생기며 나고 없어지고 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분명하니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세간의 모든 현상이 섞여서 한 몸이 되는 것을 화합의 성품이라 하고

화합하지 않은 것을 본연의 성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본래 자연과 본래 자연이 아닌 것,

화합과 화합이 아닌 것, 자연과 합해진 것을

모두 여의며 따라서 벗어나고 화합함이 모두 아니라야

이 구절이 바야흐로 장난같은 논란이 없는 진리라고 할 수 있나니라.

보리와 열반이 아직도 아득하고 멀어서 네가 여러 겁동안 애써서 닦는 것으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비록 다시 시방여래의 십이부경(十二部經)에 청정하고 오묘한 이치를 기억해 가짐이

항하의 모래와 같더라도 장난같은 논리만 더할 뿐이다.

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함에 있어서 결정코 분명하고 또렷하므로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많이 들은 것으로는 제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겁을 많이 들음을 쌓아 익혔건만 마등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거늘

어찌하여 나의 불정신주(佛頂神呪)를 기다려서 마등가의 마음에 음욕의 불꽃이 다 없어지게 하고

아나함을 증득하여 나의 법 가운데에 정진의 숲을 이루고 애욕의 강을 말려서 너로 하여금 해탈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비록 여러 겁을 여래의 비밀스럽고 오묘하고 장엄한 것을 기억해 가졌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를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도를 닦아서

세간에서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는 것만 같지 못하나니라.

마등가와 같은 경우는 전세에 음란한 여자였으나

신주(神呪)의 힘으로 인하여 그 애욕을 소멸하고

지금은 나의 법 가운데 들어와서 성비구니(性比丘尼)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나후라의 어미인 야수다라와 함께 과거세의 인연을 깨달아

많은 세상을 지내오면서 맺어온 인연이 탐욕과 애욕으로 괴로움이 된 것임을 깨닫고서

일념으로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감이 없는 선행을 닦았으므로 혹은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혹은 수기(授記)를 받기도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듣는데 머물러 있느냐?"

 

[11] 아난이 간청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의혹이 사라져 없어지고 마음의 참 모습을 깨달아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져서 일찌기 있기 않았던 것을 얻고는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없이 크고 자비하신 청정한 보배의 왕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잘 열어주셔서

이러한 여러가지 인연을 방편으로 이끌어주시고 권장해주시는 한편

캄캄한데 빠진 자를 인도하여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서

여래장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 퍼져서

여래께서 시방국토의 청정한 보엄묘각왕찰(寶嚴竗覺王刹)을 함유(含有)하였음을 알았습니다만

여래께서 다시 꾸짖으시기를,

'많이 듣기만 하는 것은 공이 없어 닦아 익히는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시니

저는 지금 마치 나그네 생활을 하던 사람이 홀연히 천왕(天王)이 주신 호화로운 집을 받은 것과 같아서

비록 큰 집을 얻었으나 문을 찾아 들어감이 요긴한 것과 같사오니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와 저희 이 모임에 있는 여러 몽매(夢昧)한 자들을 깨우쳐 주시어

소승을 버리고 마침내 여래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본디 발심했던 길을 얻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배울 것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지난날 반연하던 마음을 항복받고

다라니(陀羅尼)를 얻어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서 모임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

 

[12] 뜻을 펴 종지를 표함

그때에 세존께서 모임 가운데 있는 연각과 성문들이 보리의 마음에 자재하지 못한 자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앞으로 닥칠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 말법의 중생들이 보리의 마음을 발할 자들을 위하여

무상승(無上乘)의 오묘한 수행의 길을 열어주려고 하시어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의 마음을 내어 여래의 오묘한 삼마지에 피로하고 게으름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응당 먼저 깨달음을 발하려는 첫 마음을 일으킨 때에 두 가지 결정의 의미를 밝혀야 하나니라.

무엇을 '처음 발심한 때에 두 가지 결정의 뜻'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첫번째 뜻은 너희들이 만약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菩薩乘)을 닦아서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가고자 할진댄

응당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깨달음과 같은가 다른가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아난아! 만약 인지에서 나고 없어지는 마음으로 본래 수행할 원인으로 삼아서

불승(佛乘)의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구할진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나니라.

그러한 뜻으로 너는 마땅히 모든 기세간(器世間)의 만들 수 있는 법을 비추어 밝혀 보아라.

다 변하여 없어지나니라.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법을 보아라.

어느 것이 무너지지 않더냐?

그러나 끝끝내 허공이 허물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을 터이니 무엇 때문인가?

허공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허물어져 없어지지 않나니라.

너의 몸 속에서 굳은 모양은 흙이 되고 축축한 것은 물이 되며,

따뜻한 촉감은 불이 되고 움직이고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되나니

이 네 가지 원소가 얽혀서 너의 맑고 원만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나뉘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살피는 것이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겹의 혼탁함이 생기나니라.

 

[13] 다섯 가지 혼탁의 현상을 밝힘

어떤 것을 혼탁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맑은 물은 청결함이 본래부터 그러한 것이고

저 흙과 뿌연 모래의 종류는 본 바탕이 엉키는 것이니

두 가지의 본체는 자연의 법칙이라서 그 성품이 서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이 그 흙과 모래를 가져다가 맑은 물에 넣으면 흙은 엉키는 것을 잃어버리고

물은 맑음을 잃어버려서 형태가 흐릿하게 되는 것을 혼탁[濁]이라고 이름하나니

너의 다섯 겹으로 쌓인 혼탁한 것도 역시 이와 같나니라.

아난아! 네가 허공이 시방에 두루한 것을 볼 적에 허공과 보는 놈이 구분되지 아니하여

허공은 있고 실체는 없으며 보는 놈은 있고 깨달음은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첫번째 둘러싼 것으로 그 이름이 '겁탁'이니라.

네 몸이 현재 네 가지 원소가 뭉쳐서 몸이 되었으므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막혀서 장애가 되며

물과 불, 바람과 흙이 돌아가며 깨달아 알게 하여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니

이는 두번 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견탁'이니라.

또 너의 마음 속에 기억하고 의식하고 외우고 익히고 하여

성품에서 깨닫고 보고 하는 것을 발하고 모양은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을 나타내니

대상인 물질을 여의면 현상이 없고 깨달음을 여의면 성품이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세번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번뇌탁'이니라.

또 네가 아침 저녁으로 생기고 없어짐이 멈추지 아니하여

느끼고 보는 놈은 늘 세간에 머물고자 하며

업장을 지어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항상 국토에 옳겨져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네 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중생탁'이니라.

너희들의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원래 다른 성품이 아니거늘

모든 대상 물질이 가로 막아서 형상도 없이 다른 것이 생기나니라.

성품 가운데 서로 알고 작용 가운데 서로 배반하여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것은 다섯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명탁'이다.

 

[14] 상근기가 유익함을 획득함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지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으로 하여금 멀리 여래의 상(常), 낙(樂),아(我),정(淨)과 계합하기를 바라거든

먼저 마땅히 나고 죽는 근본부터 골라 버리고, 나고 죽지 않는 맑고 원만한 성품에 의해서 이룩해야 하리니

맑음으로써 허망하게 났다 죽었다 하는 것을 돌이켜서 이를 항복받아 본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명각(命覺)인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얻어 인지(因地)의 마음을 삼은 다음에야

과지(果地)를 닦아 증득함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마치 흐린 물을 맑게 할 적에 고요한 그릇에 담아서 흔들리지 않게 오래 두면

모래와 흙은 저절로 가라앉고 맑은물만이 앞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은

처음으로 객진번뇌(客塵煩惱)를 항복 받았다고 이름할 것이요,

앙금을 버리고 순수한 물만 남게 한 것과 같은 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영원히 끊었다고 이름할 수 있으니

밝은 모양이 정밀하고 순수하면 일체가 변하여 나타나도 번뇌가 되지 않아서

모두가 열반의 청정하고 오묘한 덕과 부합하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너는 지금 알고 있느냐?

아미타불이 저기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니 너는 일어나 합장하고서 서쪽을 향해 이마로 예를 올려라.

아난이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는 동안에 아미타불이 큰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비추시니

수없이 많은 천지와 수없이 많은 해와 달이 모두 다 빛을 잃어버리고

오직 한줄기 부처님의 광명만이 힘차고 환하게 빛나거늘

이 모임의 사부대중 가운데 모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저 아미타불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장엄함을 통해 보고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고서

곧 차등이 있을 수 없는 아뇩다라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

<< 券四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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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산스끄리뜨어 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으로 ‘위없는 올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 또는 지혜’라 번역된다.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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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끄리뜨어 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으로

‘위없는 올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 또는 지혜’라 번역된다.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한역되며,

빠알리 원어(anuttara sammasambodhid)도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번역된다.

한문의 음사표기는 아누다라삼막삼보제(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지만,

속화된 발음의 변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읽는다.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을 가리킨다.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四

(一名中印度那蘭 陀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爾時,富樓那彌多羅尼子在大眾中即從座起,偏袒右肩右膝著地, 合掌恭敬而白佛言:「大威德世尊!善為眾生敷演如來第一義諦。 世尊常推說法人中我為第一,今聞如來微妙法音,猶如聾人逾百步 外聆於蚊蚋,本所不見,何況得聞?佛雖宣明令我除惑,今猶未詳 斯義究竟無疑惑地。世尊!如阿難輩,雖則開悟習漏未除;我等會 中登無漏者,雖盡諸漏,今聞如來所說法音尚紆疑悔。世尊!若復 世間一切根、塵、陰、處、界等,皆如來藏清淨本然,云何忽生山 河大地諸有為相,次第遷流終而復始?又如來說地、水、火、風本 性圓融,周遍法界湛然常住。世尊!若地性遍,云何容水?水性周 遍火則不生,復云何明水火二性俱遍虛空,不相[夌*欠]滅?世 尊!地性障礙,空性虛通,云何二俱周遍法界?而我不知是義攸 往,惟願如來宣流大慈,開我迷雲及諸大眾。」作是語已,五體投 地,欽渴如來無上慈誨。 爾時,世尊告富樓那及諸會中漏盡無學諸阿羅漢:「如來今日普為 此會宣勝義中真勝義性,令汝會中定性聲聞、及諸一切未得二空迴 向上乘阿羅漢等,皆獲一乘寂滅場地,真阿練若正修行處。汝今諦 聽,當為汝說。」富樓那等欽佛法音默然承聽。 佛言:「富樓那!如汝所言,清淨本然云何忽生山河大地?汝常不 聞如來宣說性覺妙明、本覺明妙?」 富樓那言:「唯然,世尊!我常聞佛宣說斯義。」 佛言:「汝稱覺明,為復性明稱名為覺?為覺不明稱為明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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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樓那言:「若此不明名為覺者,則無所明。」 佛言:「若無所明則無明覺,有所非覺無所非明,無明又非覺湛明 性。性覺必明,妄為明覺;覺非所明,因明立所。所既妄立,生汝 妄能;無同異中熾然成異,異彼所異因異立同,同異發明,因此復 立無同無異。如是擾亂相待生勞,勞久發塵自相渾濁,由是引起塵 勞煩惱起為世界。靜成虛空,虛空為同,世界為異,彼無同異真有 為法。覺明空昧相待成搖,故有風輪執持世界;因空生搖,堅明立 礙彼金寶者,明覺立堅,故有金輪保持國土;堅覺寶成,搖明風 出,風金相摩故有火光為變化性,寶明生潤,火光上蒸,故有水輪 含十方界;火騰水降交發立堅,濕為巨海乾為洲潬,以是義故,彼 大海中火光常起,彼洲潬中江河常注,水勢劣火,結為高山,是故 山石擊則成炎、融則成水,土勢劣水,抽為草木,是故林藪遇燒成 土、因絞成水。交妄發生遞相為種,以是因緣世界相續。 「復次,富樓那!明妄非他,覺明為咎。所妄既立,明理不踰,以 是因緣,聽不出聲見不超色,色香味觸六妄成就,由是分開見覺聞 知,同業相纏合離成化,見明色發明見想成,異見成憎同想成愛, 流愛為種納想為胎,交遘發生吸引同業,故有因緣生羯囉藍、遏蒱 曇等,胎卵濕化隨其所應,卵唯想生、胎因情有、濕以合感、化以 離應,情想合離更相變易,所有受業逐其飛沈,以是因緣眾生相 續。 「富樓那!想愛同結,愛不能離,則諸世間父母子孫相生不斷,是 等則以欲貪為本;貪愛同滋,貪不能止,則諸世間卵化濕胎隨力強 弱遞相吞食,是等則以殺貪為本;以人食羊,羊死為人,人死為 羊,如是乃至十生之類,死死生生互來相噉,惡業俱生窮未來際, 是等則以盜貪為本。汝負我命,我還汝債,以是因緣經百千劫常在 生死;汝愛我心,我憐汝色,以是因緣經百千劫常在纏縛,唯殺盜 婬三為根本,以是因緣業果相續。富樓那!如是三種顛倒相續,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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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覺明明了知性,因了發相,從妄見生山河大地,諸有為相次第遷 流,因此虛妄終而復始。」 富樓那言:「若此妙覺本妙覺明與如來心不增不減,無狀忽生山河 大地諸有為相;如來今得妙空明覺,山河大地有為習漏何當復 生?」 佛告富樓那:「譬如迷人於一聚落惑南為北,此迷為復因迷而有? 因悟所出?」 富樓那言:「如是迷人,亦不因迷,又不因悟。何以故?迷本無 根,云何因迷?悟非生迷,云何因悟?」 佛言:「彼之迷人正在迷時,倐有悟人指示令悟。富樓那!於意云 何,此人縱迷,於此聚落更生迷不?」 「不也,世尊!」 「富樓那!十方如來亦復如是。此迷無本,性畢竟空,昔本無迷, 似有迷覺,覺迷迷滅,覺不生迷。亦如瞖人見空中花,瞖病若除華 於空滅;忽有愚人,於彼空花所滅空地待花更生。汝觀是人為愚? 為慧?」 富樓那言:「空元無花,妄見生滅,見花滅空,已是顛倒;勅令更 出,斯實狂癡。云何更名如是狂人為愚?為慧?」 佛言:「如汝所解,云何問言:『諸佛如來妙覺明空,何當更出山 河大地?』又如金鑛雜於精金,其金一純更不成雜,如木成灰不重 為木,諸佛如來菩提涅槃亦復如是。 「富樓那!又汝問言:『地水火風本性圓融周遍法界,疑水火性不 相[夌*欠]滅;又徵虛空及諸大地,俱遍法界不合相容。』富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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那!譬如虛空體非群相,而不拒彼諸相發揮。所以者何?富樓那! 彼太虛空,日照則明、雲屯則暗、風搖則動、霽澄則清、氣凝則 濁、土積成霾、水澄成映。於意云何,如是殊方諸有為相,為因彼 生?為復空有?若彼所生,富樓那!且日照時既是日明,十方世界 同為日色,云何空中更見圓日?若是空明,空應自照,云何中宵、 雲霧之時不生光耀?當知是明非日非空不異空日。觀相元妄無可指 陳,猶邀空花結為空果,云何詰其相[夌*欠]滅義?觀性元真唯妙 覺明,妙覺明心先非水火,云何復問不相容者?真妙覺明亦復如 是。汝以空明則有空現,地水火風各各發明則各各現,若俱發明則 有俱現,云何俱現?富樓那!如一水中現於日影,兩人同觀水中之 日,東西各行則各有日,隨二人去一東一西,先無准的不應難言: 『此日是一,云何各行?各日既雙,云何現一?』宛轉虛妄,無可 憑據。 「富樓那!汝以色空相傾相奪於如來藏,而如來藏隨為色空周遍法 界,是故於中風動、空澄、日明、雲暗,眾生迷悶背覺合塵,故發 塵勞有世間相;我以妙明不滅不生合如來藏,而如來藏唯妙覺明圓 照法界,是故於中一為無量、無量為一,小中現大、大中現小,不 動道場遍十方界,身含十方無盡虛空,於一毛端現寶王剎,坐微塵 裏轉大法輪,滅塵合覺故發真如妙覺明性。而如來藏本妙圓心,非 心非空;非地非水非風非火;非眼非耳鼻舌身意;非色非聲香味觸 法;非眼識界如是乃至非意識界;非明無明、明無明盡,如是乃至 非老非死,非老死盡;非苦非集非滅非道;非智非得;非檀那、非 尸羅、非毘梨耶、非羼提、非禪那、非鉢剌若、非波羅蜜多;如是 乃至非怛闥阿竭、非阿羅訶、三耶三菩;非大涅槃,非常非樂非我 非淨,以是俱非世出世故。即如來藏元明心妙,即心即空;即地即 水即風即火;即眼即耳鼻舌身意;即色即聲香味觸法;即眼識界如 是乃至即意識界;即明無明、明無明盡,如是乃至即老即死,即老 死盡;即苦即集即滅即道;即智即得;即檀那、即尸羅、即毘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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耶、即羼提、即禪那、即鉢剌若、即波羅蜜多;如是乃至即怛闥阿 竭、即阿羅訶、三耶三菩;即大涅槃,即常、即樂、即我、即淨, 以是即俱世出世故。即如來藏妙明心元,離即離非,是即非即,如 何世間三有眾生及出世間聲聞、緣覺,以所知心測度如來無上菩 提,用世語言入佛知見?譬如琴瑟箜篌琵琶雖有妙音,若無妙指終 不能發,汝與眾生亦復如是,寶覺真心各各圓滿,如我按指海印發 光。汝暫舉心塵勞先起,由不勤求無上覺道,愛念小乘得少為 足。」 富樓那言:「我與如來寶覺圓明、真妙淨心無二圓滿,而我昔遭無 始妄想久在輪迴,今得聖乘猶未究竟。世尊!諸妄一切圓滅獨妙真 常,敢問如來一切眾生何因有妄,自蔽妙明受此淪溺?」 佛告富樓那:「汝雖除疑,餘惑未盡。吾以世間現前諸事今復問 汝。汝豈不聞,室羅城中演若達多,忽於晨朝以鏡照面,愛鏡中頭 眉目可見,瞋責己頭不見面目,以為魑魅無狀狂走。於意云何,此 人何因無故狂走?」 富樓那言:「是人心狂,更無他故。」 佛言:「妙覺明圓本圓明妙,既稱為妄云何有因?若有所因云何名 妄?自諸妄想展轉相因,從迷積迷以歷塵劫,雖佛發明猶不能返, 如是迷因因迷自有,識迷無因妄無所依,尚無有生欲何為滅。得菩 提者,如寤時人說夢中事,心縱精明,欲何因緣取夢中物,況復無 因本無所有。如彼城中演若達多,豈有因緣自怖頭走,忽然狂歇頭 非外得,縱未歇狂亦何遺失。富樓那!妄性如是,因何為在?汝但 不隨分別世間、業果、眾生三種相續,三緣斷故三因不生,則汝心 中演若達多狂性自歇,歇即菩提,勝淨明心本周法界,不從人得, 何藉劬勞肯綮修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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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譬如有人於自衣中繫如意珠不自覺知,窮露他方乞食馳走,雖實 貧窮珠不曾失,忽有智者指示其珠,所願從心致大饒富,方悟神珠 非從外得。」 即時,阿難在大眾中,頂禮佛足起立白佛:「世尊!現說殺盜婬 業,三緣斷故三因不生,心中達多狂性自歇,歇即菩提,不從人 得。斯則因緣皎然明白,云何如來頓棄因緣?我從因緣心得開悟, 世尊此義何獨我等年少有學聲聞,今此會中大目犍連及舍利弗、須 菩提等,從老梵志聞佛因緣,發心開悟得成無漏。今說菩提不從因 緣,則王舍城拘舍梨等所說自然成第一義。惟垂大悲,開發迷 悶。」 佛告阿難:「即如城中演若達多,狂性因緣若得滅除,則不狂性自 然而出,因緣自然理窮於是。阿難!演若達多頭本自然,本自其然 無然非自,何因緣故怖頭狂走?若自然頭因緣故狂,何不自然因緣 故失?本頭不失狂怖妄出,曾無變易何藉因緣?本狂自然,本有狂 怖,未狂之際狂何所潛?不狂自然,頭本無妄,何為狂走?若悟本 頭,識知狂走,因緣自然俱為戲論。是故我言三緣斷故即菩提心。 菩提心生生滅心滅,此但生滅,滅生俱盡無功用道。若有自然,如 是則明自然心生,生滅心滅此亦生滅,無生滅者名為自然。猶如世 間諸相雜和成一體者,名和合性,非和合者稱本然性。本然非然, 和合非合,合然俱離,離合俱非,此句方名無戲論法。菩提涅槃尚 在遙遠,非汝歷劫辛勤修證,雖復憶持十方如來、十二部經,清淨 妙理如恒河沙,秖益戲論。汝雖談說因緣自然決定明了,人間稱汝 多聞第一,以此積劫多聞熏習,不能免離摩登伽難,何因待我佛頂 神呪,摩登伽心婬火頓歇得阿那含,於我法中成精進林,愛河乾枯 令汝解脫。是故阿難!汝雖歷劫憶持如來祕密妙嚴,不如一日修無 漏業,遠離世間憎愛二苦;如摩登伽宿為婬女,由神呪力銷其愛 欲,法中今名性比丘尼,與羅睺羅母耶輸陀羅同悟宿因,知歷世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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貪愛為苦,一念薰修無漏善故,或得出纏、或蒙授記。如何自欺, 尚留觀聽?」 阿難及諸大眾聞佛示誨,疑惑銷除心悟實相,身意輕安得未曾有, 重復悲淚頂禮佛足,長跪合掌而白佛言:「無上大悲清淨寶王善開 我心,能以如是種種因緣方便提獎,引諸沈冥出於苦海。世尊!我 今雖承如是法音,知如來藏妙覺明心遍十方界,含育如來十方國 土,清淨寶嚴妙覺王剎;如來復責多聞無功,不逮修習。我今猶如 旅泊之人,忽蒙天王賜以華屋,雖獲大宅要因門入。唯願如來不捨 大悲,示我在會諸蒙暗者捐捨小乘,畢獲如來無餘涅槃本發心路, 令有學者從何攝伏疇昔攀緣,得陀羅尼入佛知見。」作是語已,五 體投地,在會一心佇佛慈旨。 爾時,世尊哀愍會中緣覺、聲聞,於菩提心未自在者,及為當來佛 滅度後末法眾生發菩提心,開無上乘妙修行路,宣示阿難及諸大 眾:「汝等決定發菩提心,於佛如來妙三摩提不生疲惓,應當先明 發覺初心二決定義。云何初心二義決定? 「阿難!第一義者,汝等若欲捐捨聲聞,修菩薩乘入佛知見,應當 審觀因地發心與果地覺為同?為異?阿難!若於因地,以生滅心為 本修因,而求佛乘不生不滅,無有是處。以是義故,汝當照明諸器 世間,可作之法皆從變滅。阿難!汝觀世間,可作之法誰為不壞, 然終不聞爛壞虛空。何以故?空非可作,由是始終無壞滅故。則汝 身中堅相為地、潤濕為水、煖觸為火、動搖為風,由此四纏分汝湛 圓妙覺明心,為視、為聽、為覺、為察,從始入終五疊渾濁。云何 為濁?阿難!譬如清水,清潔本然,即彼塵土灰沙之倫,本質留 礙,二體法爾性不相循,有世間人取彼土塵投於淨水,土失留礙水 亡清潔,容貌汩然明之為濁,汝濁五重亦復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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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汝見虛空遍十方界,空見不分;有空無體、有見無覺,相 織妄成,是第一重名為劫濁。汝身現摶四大為體,見聞覺知壅令留 礙,水火風土旋令覺知,相織妄成,是第二重名為見濁。又汝心中 憶識誦習,性發知見容現六塵,離塵無相離覺無性,相織妄成,是 第三重名煩惱濁。又汝朝夕生滅不停,知見每欲留於世間,業運每 常遷於國土,相織妄成,是第四重名眾生濁。汝等見聞元無異性, 眾塵隔越無狀異生,性中相知、用中相背,同異失準,相織妄成, 是第五重名為命濁。 「阿難!汝今欲令見聞覺知遠契如來常樂我淨,應當先擇死生根 本,依不生滅圓湛性成,以湛旋其虛妄滅生,伏還元覺得元明覺, 無生滅性為因地心,然後圓成果地修證。如澄濁水貯於淨器,靜深 不動,沙土自沈清水現前,名為初伏客塵煩惱;去泥純水,名為永 斷根本無明。明相精純,一切變現不為煩惱,皆合涅槃清淨妙德。 「第二義者,汝等必欲發菩提心,於菩薩乘生大勇猛,決定棄捐諸 有為相,應當審詳煩惱根本,此無始來發業潤生誰作?誰受?阿 難!汝修菩提,若不審觀煩惱根本,則不能知虛妄根塵;何處顛倒 處尚不知,云何降伏取如來位?阿難!汝觀世間解結之人,不見所 結,云何知解?不聞虛空被汝隳裂。何以故?空無相形,無結解 故。則汝現前眼耳鼻舌及與身心,六為賊媒自劫家寶,由此無始眾 生世界生纏縛故,於器世間不能超越。 「阿難!云何名為眾生世界?世為遷流,界為方位。汝今當知東西 南北東南西南東北西北上下為界,過去未來現在為世;位方有十, 流數有三。一切眾生織妄相成,身中貿遷,世界相涉;而此界性, 設雖十方定位可明,世間秖目東西南北,上下無位中無定方,四數 必明與世相涉,三四四三宛轉十二,流變三疊一十百千,總括始終 六根之中,各各功德有千二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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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難!汝復於中克定優劣,如眼觀見後暗前明,前方全明後方全 暗,左右傍觀三分之二,統論所作功德不全,三分言功一分無德, 當知眼唯八百功德;如耳周聽十方無遺,動若邇遙諍無邊際,當知 耳根圓滿一千二百功德;如鼻嗅聞通出入息,有出有入而闕中交, 驗於鼻根三分闕一,當知鼻唯八百功德;如舌宣揚盡諸世間出世間 智,言有方分理無窮盡,當知舌根圓滿一千二百功德;如身覺觸識 於違順,合時能覺離中不知,離一合雙,驗於身根三分闕一,當知 身唯八百功德;如意默容十方三世一切世間出世間法,惟聖與凡無 不苞容盡其涯際,當知意根圓滿一千二百功德。 「阿難!汝今欲逆生死欲流,返窮流根至不生滅,當驗此等六受用 根,誰合?誰離?誰深?誰淺?誰為圓通?誰不圓滿?若能於此悟 圓通根,逆彼無始織妄業流,得循圓通,與不圓根日劫相倍,我今 備顯六湛圓明,本所功德數量如是,隨汝詳擇其可入者,吾當發明 令汝增進。十方如來於十八界,一一修行皆得圓滿無上菩提,於其 中間亦無優劣;但汝下劣未能於中圓自在慧,故我宣揚,令汝但於 一門深入,入一無妄,彼六知根一時清淨。」 阿難白佛言:「世尊!云何逆流深入一門,能令六根一時清淨?」 佛告阿難:「汝今已得須陀洹果,已滅三界眾生世間見所斷惑,然 猶未知根中積生無始虛習,彼習要因修所斷得,何況此中生住異滅 分劑頭數?今汝且觀現前六根,為一?為六? 「阿難!若言一者,耳何不見、目何不聞、頭奚不履、足奚無語? 若此六根決定成六,如我今會與汝宣揚微妙法門,汝之六根誰來領 受?」 阿難言:「我用耳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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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言:「汝耳自聞,何關身口?口來問義,身起欽承,是故應知非 一終六,非六終一,終不汝根元一元六。阿難!當知是根非一非 六,由無始來顛倒淪替,故於圓湛一六義生,汝須陀洹雖得六銷猶 未亡一,如太虛空參合群器,由器形異名之異空,除器觀空說空為 一,彼太虛空云何為汝成同不同?何況更名是一非一?則汝了知六 受用根亦復如是。由明暗等二種相形,於妙圓中粘湛發見,見精映 色結色成根,根元目為清淨四大,因名眼體如蒲萄朵,浮根四塵流 逸奔色;由動靜等二種相擊,於妙圓中粘湛發聽,聽精映聲卷聲成 根,根元目為清淨四大,因名耳體如新卷葉,浮根四塵流逸奔聲; 由通塞等二種相發,於妙圓中粘湛發嗅,嗅精映香納香成根,根元 目為清淨四大,因名鼻體如雙垂爪,浮根四塵流逸奔香;由恬變等 二種相參,於妙圓中粘湛發嘗,嘗精映味絞味成根,根元目為清淨 四大,因名舌體如初偃月,浮根四塵流逸奔味;由離合等二種相 摩,於妙圓中粘湛發覺,覺精映觸搏觸成根,根元目為清淨四大, 因名身體如腰鼓顙,浮根四塵流逸奔觸;由生滅等二種相續,於妙 圓中粘湛發知,知精映法覽法成根,根元目為清淨四大,因名意思 如幽室見,浮根四塵流逸奔法。 「阿難!如是六根,由彼覺明有明明覺,失彼精了粘妄發光,是以 汝今離暗離明無有見體,離動離靜元無聽質,無通無塞嗅性不生, 非變非恬嘗無所出,不離不合覺觸本無,無滅無生了知安寄。汝但 不循動靜、合離、恬變、通塞、生滅、暗明,如是十二諸有為相, 隨拔一根脫粘內伏,伏歸元真發本明耀;耀性發明,諸餘五粘應拔 圓脫,不由前塵所起知見,明不循根寄根明發,由是六根互相為 用。 「阿難!汝豈不知,今此會中阿那律陀無目而見;跋難陀龍無耳而 聽;殑伽神女非鼻聞香;驕梵鉢提異舌知味;舜若多神無身有觸, 如來光中映令暫現,既為風質其體元無;諸滅盡定得寂聲聞,如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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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中摩訶迦葉,久滅意根圓明了知不因心念。阿難!今汝諸根若圓 拔已內瑩發光,如是浮塵及器世間諸變化相如湯銷氷,應念化成無 上知覺。阿難!如彼世人聚見於眼,若令急合,暗相現前,六根黯 然頭足相類,彼人以手循體外繞,彼雖不見,頭足一辯知覺是同, 緣見因明暗成無見,不明自發則諸暗相永不能昏,根塵既銷,云何 覺明不成圓妙。」

阿難白佛言:「世尊!如佛說言,因地覺心欲求常住,要與果位名 目相應。世尊!如果位中,菩提、涅槃、真如、佛性、菴摩羅識、 空如來藏、大圓鏡智,是七種名稱謂雖別,清淨圓滿體性堅凝,如 金剛王常住不壞;若此見聽離於暗明、動靜、通塞,畢竟無體,猶 如念心離於前塵本無所有,云何將此畢竟斷滅以為修因,欲獲如來 七常住果?世尊!若離明暗見畢竟空,如無前塵念自性滅,進退循 環微細推求,本無我心及我心所,將誰立因求無上覺?如來先說湛 精圓常,違越誠言終成戲論。云何如來真實語者?惟垂大慈開我蒙 悋。」

佛告阿難:

「汝學多聞未盡諸漏,心中徒知顛倒所因,真倒現前實 未能識,恐汝誠心猶未信伏,吾今試將塵俗諸事當除汝疑。」

即時,如來勅羅睺羅擊鍾一聲,問阿難言:「汝今聞不?」

阿難大眾俱言:「我聞。」

鍾歇無聲,佛又問言:「汝今聞不?」

阿難大眾俱言:「不聞。」

時,羅睺羅又擊一聲,

佛又問言:「汝今聞不?」

阿難大眾又言:「俱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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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問阿難:「汝云何聞?云何不聞?」

阿難大眾俱白佛言:「鍾聲若擊則我得聞,擊久聲銷音響雙絕,則 名無聞。」

如來又勅羅睺擊鍾,問阿難言:「爾今聲不?」

阿難言:「聲。」

少選聲銷,佛又問言:「爾今聲不?」

阿難大眾答言:「無聲。」

有頃,羅睺更來撞鍾,

佛又問言:「爾今聲不?」

阿難大眾俱言:「有聲。」

佛問阿難:「汝云何聲?云何無聲?」

阿難大眾俱白佛言:「鍾聲若擊,則名有聲,擊久聲銷音響雙絕, 則名無聲。」

佛語阿難及諸大眾:「汝今云何自語矯亂。」

大眾阿難俱時問佛:「我今云何名為矯亂?」

佛言:「我問汝聞,汝則言聞;又問汝聲,汝則言聲。惟聞與聲報 答無定,如是云何不名矯亂?

阿難!聲銷無響,汝說無聞,若實無 聞,聞性已滅同于枯木,鍾聲更擊汝云何知?

知有知無,自是聲塵 或無或有,豈彼聞性為汝有無?聞實云無,誰知無者?

是故,阿難!聲於聞中自有生滅,非為汝聞聲生聲滅,令汝聞性為有為無。 汝尚顛倒惑聲為聞,何怪昏迷以常為斷。終不應言,離諸動靜、閉 塞、開通說聞無性。如重睡人眠熟床枕,其家有人於彼睡時擣練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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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其人夢中聞舂擣聲,別作他物,或為擊鼓、或復撞鍾,即於夢 時自怪其鍾為木石響,於時忽寤遄知杵音,自告家人:『我正夢 時,惑此舂音將為鼓響。』

阿難!是人夢中豈憶靜搖、開閉、通 塞,其形雖寐聞性不昏,縱汝形銷命光遷謝,此性云何為汝銷滅?

以諸眾生從無始來,循諸色聲逐念流轉,曾不開悟性淨妙常,不循 所常逐諸生滅,

由是生生雜染流轉;若棄生滅守於真常,常光現 前,塵根識心應時銷落,想相為塵、識情為垢二俱遠離,則汝法眼 應時清明,云何不成無上知覺?」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四

 

正本首楞嚴經 卷 四

 

[1] 의심스러운 점을 질문함

 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히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엄있고 덕 높으신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제일의 제(第一義諦)를 잘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세존께서 항상 추천하시기를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가 제일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여래의 미묘한 법음을 듣자오니 마치 귀먹은 사람이 백 걸음 밖에서 모기 소리를 듣는 것과 같으니 본래 볼 수도 없거든 더구나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록 분명하게 말씀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의혹 을 덜게 하였사오나 저는 아직도 그 뜻을 끝까지 추구하여 의혹이 없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 같은 무리들은 비록 깨달았다고는 하나 익혀온 습기와 번뇌가 아직 다 없어지지 못하였거니와 저희들은 모임 가운데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없는데까지 이른 자들이므로 비록 모든 새는 것을 다 끊어버렸다 하더라도 지금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음을 듣고서는 오히려 의혹과 회의에 얽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간에 일체의 근(根), 진(塵), 음(陰), 처(處), 계(界)등이 다 여래장이어서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홀연히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모든 물질들이 생겨나서 차례로 변천하여 끝마쳤다가는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것입니까?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은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퍼져서 맑고 고요히 늘 머문다'고 하셨나니 세존이시여! 만약 흙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어떻게 물을 용납하며 물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불은 생기지 못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물과 불의 두 성분이 허공에 가득하여 서로 능멸(凌滅)하지 아니하는지 그 이치를 밝힐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흙의 성질은 가로막는 것이고 허공의 성질은 텅텅 빈 것이거니 어찌하여 두 가지가 다같이 법계에 두루 퍼진다고 하십니까? 저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어두운 구름을 벗겨 주소서."

모든 대중들과 이렇게 말하고서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 여래의 더없이 높은 자비로운 가르침을 흠모하여 목마르게 기다렸다.

 

[2] 여래께서 의혹을 풀어줌

그때에 세존께서 부루나와 모임 가운데에서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어진 무학(無學)인 모든 아라한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여래가 오늘 널리 이 모임을 위해서 수승한 이치 속에서도 참되고 수승한 이치의 성품을 설명하여 너희 모임 중에서 소승인 성문들과 일체의 두 가지 빈 것을 얻지 못한 이들과 상승(上乘)으로 회향하는 아라한 등으로 하여금 모두 일승의 열반의 자리[寂滅場地]인 참된 아련야(阿練惹)의 올바르게 수행할 방법을 얻게 하고자 하노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부루나 등이 부처님의 법음을 흠모하여 잠자코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부루나야! 네가 말한 바와 같이 '청정한 본래 자연 그대로라면 어떻게 홀연히 산과 강과 대지가 생기겠느냐?'고 하는데 너는 여래가 늘 말하는 '성각(性覺)은 오묘하고 밝으며 본각(本覺)은 밝고 오묘하다'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그러한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늘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한 깨달음이니 밝음이니 하는 것은 성품이 밝은 것을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아니면 깨달음이 밝지 못한 것을 밝은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이 밝지 못한 것을 이름하여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밝힐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밝힐 것이 없다면 밝혀야 할 깨달음이 없으리라. 밝힐 것이 있으면 깨달음이 아니고 밝힐 것이 없으면 밝은 것이 아니며 밝음이 없으면 깨달음의 맑고 밝은 성품이 아니리라.

성품의 깨달음이 반드시 밝은 것이어서 허망하게 밝혀야 할 깨달음이라고 하나니라. 깨달음은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건만 밝힘으로 인하여 밝혀야 할 것이 이루어졌으니 그 밝혀야 할 것 이미 망령되게 이루어지면 너의 허망한 작용의 능력을 생기게 해서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서 불꽃처럼 성하게 다름을 이루었나니라.

 

[3] 세계의 시초

저 다른 것을 다르다고 여겨서 그 다른 것으로 인해 같음이 성립되었고 같음과 다름을 분명히 구분하고 그로 인해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흔들리고 어지러운 것이 서로 작용하면 피로가 생기고 그 피로가 오래되면 번뇌가 생겨서 자연 서로 혼탁하게 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오염과 번뇌[塵勞煩惱]가 일어나나니라. 움직여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고요하게 있는 것은 허공이 되나니 허공은 같으나 세계는 다르니 그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이 참다운 현상계[有爲法]이니라.

깨달음의 밝음과 허공의 어두운 것이 서로 작용하여 동요하기 때문에 바람바퀴[風輪]가 있어 세계를 잡아 지탱[熱持]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공에 크게 소리쳐서 흔들림이 생겨나고 밝은 것을 굳혀서 막힘이 이루어지니 저 금은 보배는 밝은 깨달음이 굳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금륜(金輪)이 국토를 보전하여 지탱하는 것이며, 깨달음이 굳어져서 금은 보배가 되고 밝음이 흔들려서 바람이 일어나니 바람과 금이 서로 마찰하므로 불 빛이 생겨 변화하는 바퀴가 되었으며, 금보의 밝음이 윤택한 기운을 생기게 하고 불 빛은 위로 치솟기 때문에 물바퀴[水輪]가 생겨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불은 위로 오르고 물은 흘러 내려서 서로 발하여 굳어져서 젖은 곳은 큰 바다가 되고 마른 곳은 육지와 섬이 되었으니 이러한 이치로써 저 바다 가운데서는 불 빛이 늘 일어나고 육지와 섬 가운데서는 강물과 냇물이 늘 흐른다. 물의 힘은 불보다 열세이면 맺혀서 높은 산이된다. 이면 돋아나서 풀이나 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숲과 늪이 타버리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된다. 서로 엉켜서 허망함이 발생하여 번갈아 서로 종자가 되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세계가 서로 계속되나니라.

 

[4] 중생의 시초

또다시 부루나야 밝은 것이 허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깨달음의 밝은 것이 허물이 되니 허망한 것이 이미 성립되면 밝은 이치가 이를 앞지르지 못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듣는 것이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보는 것이 색깔을 벗어나지 못하여 빛과 향기, 맛과 촉감 등 여섯 가지 허망함이 이루어지나니 그로 말미암아서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것이 나뉘어져서 같은업장끼리 서로 얽히고 어울리고 떠나는 것이 변화를 이루나니라.

보는 것이 밝아서 빛이 발하고 밝게 봄으로 해서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다르게 보면 미움이 생기고 같은 생각은 사랑이 생겨서 그 사랑이 흘러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들여 태(胎)가 되어서 서로 어우러짐이 발생하고 같은 업장끼리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그 인연으로 해서 갈라람과 알포담등이 생기나니라. 태로 생하는 것과 알로 생하는 것, 습기에서 생하는 것과 화생으로 생하는 것이 제각기 응할 바를 따라서 알로 생하는 것은 오직 생각으로서만 생겨나고 태로 생하는 것은 (情)으로 인해 생겨나며, 습기로 생하는 것은 합하여 느낌으로서 생기고 화생은 떠나서 응함으로 생기니, 정, 생, 각, 합, 떠남으로 생기는 것들이 다시 서로 변하고 바뀌어서 업을 받는데 그 업장을 따라 혹은 날고 혹은 잠기고 하니 그러한 인연으로 중생이 서로 계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여러가지 욕심으로 말미암아서 그것이 애욕의 성품이 생김을 돕는데 그 애욕을 여읠 수가 없어서 갖가지 업장을 짓게 되나니 그 때문에 나고 죽는 윤회가 계속하게 되나니라.

모든 세간의 부부가 혼인하여 교합해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낳아 끊이지 않나니 이러한 것들은 음욕을 탐냄으로 업장이 된 것이고, 또 모든 세간에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이 힘이 강하고 약함에 따라서 번갈아가며 서로 잡아 먹나니 이러한 것들은 살생을 탐하는 것으로 업장이 된 것이며, 또 다시 모든 세간에 다른 사람이 가진 재물과 돈을 크고 작은 요망한 도적들이 억지로 빼앗거나 몰래 가져가나니 이러한 것들은 도적질을 탐함으로 업장이 된 것이니 가령 세상에서 사람이 양을 잡아 먹었을 경우 그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되어 이러한 열 가지 생명을 지닌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죽고 나고 나고 죽고하여 번갈아 와서 서로 잡아 먹으면서 악업이 함께 생겨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계속되나니 나머지도 이와 같나니라.

네가 나의 목숨을 저버리면 나는 너의 빚을 갚고 내가 너의 목숨을 저버리면 네가 나의 빚을 갚아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보응(報應)하게 되며, 너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거든 나는 너의 얼굴을 어여삐 여기고 내가 너의 마음을 사랑하면 너는 나의 얼굴을 어여삐 여겨 이러한 인연으로 백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얽매이게 되나니라.

오직 음욕과 살생 그리고 도적질, 이 세 가지가 모든 악의 근본이 된다. 그러한 인연으로 업장과 과보가 서로 연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이러한 세가지의 뒤바뀜이 서로 계속되는 것은 모두 밝은 깨달음인 밝고 또렷한 의식이 분별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인하여 허망함을 따라 보는 것이 생기나니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차례로 변하여 흘러도 이 허망으로 인하여 끝나면 다시 시작하곤 하느니라."

 

[5] 오묘한 공은 습기가 없다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 오묘한 깨달음과 본래 오묘한 각명(覺明)은 여래의 마음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이거늘 까닭없이 산과 강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생기는데 여래께서는 지금 오묘하고 빈 명각(明覺)을 얻었사온데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작용이 있는 익혀온 번뇌가 언제 다시 생기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마치 혼미한 사람이 어떤 취락(聚落)에서 남쪽을 북으로 의혹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 미혹은 미혹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냐 깨달음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이렇게 혼미한 사람은 미혹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또한 깨달음으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미혹은 본래 뿌리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미혹으로 인했다고 하겠으며 깨달음이 미혹으로 생긴 것이 아닌데 어떻게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미혹한 사람이 정히 미혹하여 있을 때에 어떤 깨달은 사람이 옳게 지시하여 깨닫게 한다면 부루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비록 미혹하였으나 그 마을 시장에서 다시 미혹이 생기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루나야! 시방의 여래도 역시 그러하니라. 그 미혹은 근본이 없어서 성품이 필경에는 빈 것이니 옛날에는 본래 미혹함이 없었으나 미혹이 있는 듯 한데서 깨닫나니 미혹을 깨달아 미혹이 없어지면 깨달음이 있어 미혹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눈병이 난 사람이 허공의 꽃을 보는 것과 같아서 눈병이 없어질 것 같으면 그 꽃은 허공에서 없어지나니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저 허공의 꽃이 없어진 빈 자리에서 그 꽃이 다시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너는 그러한 사람을 볼 적에 어리석다고 하겠느냐 지혜롭다고 하겠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거늘 허망으로 인하여 생기고 없어짐을 보는 것이니 그 꽃이 허공에서 없어짐을 보는 것도 이미 뒤 바뀐 것이거늘 명령하여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게 한다면 이는 실로 미친 바보짓입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미친 바보짓하는 사람을 이름하여 어리석다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다면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의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허공에서 어느 때에 다시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가 나옵니까하고 묻느냐?" 또 마치 금광에 순금이 섞여 있다가 그 금이 완전하게 순금이 되고나면 다시는 섞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마치 나무가 불에 타서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열반도 역시 그와 같나니라.

 

[6] 네 가지 원소는 서로서로 용납함

부루나야! 또 네가 묻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의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어째서 물의 성품과 불의 성품이 서로 능멸하지 않습니까?"하였고, 또 묻기를 "허공과 땅덩어리가 다 함께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부루나야! 비유하면 허공의 본체가 여러가지 모양이 아니지만 그러나 저 여러가지 모양이 나타남을 막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부루나야! 저 커다란 허공이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우며,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개이면 맑으며, 기운이 엉키면 탁하고 흙먼지가 쌓이면 흙비가 되며, 물이 맑으면 밝게 비치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러한 여러 방면에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들이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느냐 허공을 따라 있는 것이냐? 만약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부루나야! 장차 해가 비칠 적에는 이미 그것은 해의 밝음이므로 시방세계가 다같은 햇빛이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공중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게 되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서 생긴 밝음이라면 허공이 응당 스스로 비칠 것인데 어찌하여 밤중이나 구름이 끼었을 적에는 빛을 내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밝음은 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허공이나 해와 다른 것도 아니니라. 그 현상을 살펴보건대 본래가 허망해서 가리켜서 말할 수가 없음이 마치 허공의 꽃에서 헛된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떻게 서로 능멸하는 이치를 따지겠느냐? 성품을 살펴보건대 본래 참된 것이라서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일 뿐이다.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의 마음이 본래 물이나 불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느냐고 묻느냐?

참되고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네가 허공으로서 밝히면 허공이 나타나고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각각 밝히면 곧 그것들도 각각 나타나며 만약 다 함께 밝히면 곧 다 함께 나타나나니라.

어떤 것을 함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부루나야! 마치 물 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두 사람이 함께 물 속의 해를 보다가 동쪽과 서쪽으로 제각기 가면 물 속의 해도 제각기 두 사람을 따라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가서 본래부터 표준한 곳이 없으니 따져 말하기를 "저 해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제각기 가느냐?"고 하며 "각자 가는 해가 이미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로 나타나느냐?"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완연히 허망하여 의지할 수가 없나니라.

 

[7] 허망한 것을 좇아 나타남

부루나야! 너는 물질과 허공으로서 여래장에서 서로 밀어내고 서로 빼앗으므로 여래장도 따라서 물질과 허공이 되어 우주에 두루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바람은 움직이고 허공은 맑으며 해는 밝고 구름은 어두운 것인데 중생들은 어리석고 미련해서 깨달음을 저바리고 허망한 티끌과 어울리므로 번뇌가 일어나서 세간의 현상이 있게 되나니라.

나는 오묘하고 밝은 것이 생겨나거나 없어지지도 않는 것으로서 여래장과 합하였는데 여래장이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이므로 우주에 원만하게 비춘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하나가 한량없는 것이 되고 한량없는 것이 하나가 되며, 적은 가운데 큰 것을 나타내고 큰 가운데 적은 것을 나타내며,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의 세계에 두루 퍼지며, 몸으로 시방의 끝 없는 허공을 머금으며, 한 털끝에서 보왕(寶王)의 세계를 나타내며, 작은 먼지 속에 앉아서 큰 법륜(法輪)을 굴리나니라.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에 합하므로 진여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을 발하니 여래장의 본래 오묘하고 원만한 마음은 마음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흙도 아니요 물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요 불도 아니며, 눈도 아니요 귀, 코, 혀, 몸, 생각도 아니며, 빛도 아니요 소리, 향기, 맛, 촉감, 법도 아니며, 안식계(眼識界)도 아니요 이렇게 의식계(意識界)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밝음도 밝음이 없음도 아니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마져 다함도 아니며, 이와같이 늙음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며, 늙음과 죽음이 다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괴로움도 아니요 괴로움의 원인도 아니며, 괴로움을 없는 자리도 아니요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증득함도 아니며, 보시도 아니요 계율도 아니며, 인욕도 아니요 정진도 아니며, 선정도 아니요 반야도 아니며, 바라밀다도 아니니라.

이와 같아서 여래도 아니요 응공도 아니며, 정변지도 아니요 대열반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며, 주체도 아니요 청정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나니 이렇게 세간과 출세간도 모두 아니기 때문이요.

곧 여래장의 원 밝은 마음인 오묘함은 곧 마음이요 허공이며, 흙, 물, 바람, 불이요 곧 눈, 코, 혀, 몸, 생각이며, 곧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法)이요 곧 눈으로 보아 의식하는 경계이며, 이렇게 뜻으로 생각하여 의식하는 경계에까지 이르며, 곧 밝음과 밝음이 없음이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까지 다 끊음이며 이렇게 곧 늙음이요 죽음이며, 곧 늙음과 죽음이 다함이요 곧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을 없애는 자리[滅],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 지혜, 증득함이며, 곧 보시, 계율,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바라밀다이고 이렇게 곧 여래, 응공, 정변지이며, 곧 대열반이요, 곧 항상함(常), 즐거움(樂), 주체(我), 청정(淨)이니 이것이 모두가 곧 세간법과 출세간법이므로 곧 여래장인 오묘하고 밝은 마음의 근본은 그런 것도 아니요 그렇지 아니함도 아니며,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이니라.

어찌하여 세간의 삼유(三有)의 중생들과 출세간의 성문 연각들이 알고 있는 마음으로 여래의 위없는 보리를 추측하여 헤아려서 세간의 언어로써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거문고, 비파. 공후가 비록 묘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손가락이 없으면 끝끝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너와 중생들도 역시 이와같아서 보배로운 깨달음의 참 마음이 각각 원만하건만 만일 내가 손가락을 놀리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거늘 너는 잠시만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가 먼저 일어나나니 이는 위없는 깨달음의 길을 부지런히 구하지 않고 소승을 좋아하여 적은 것을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탓이니라."

 

[8] 허망함이 일어나는 원인

부루나가 말하기를 "저와 여래는 보배의 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아서 진실하고 오묘하고 청정한 마음이 다를 것이 없이 원만한 것입니다만 저는 옛날 시작도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한 생각을 내어서 오랫동안 윤회 속에 있었으므로 지금 성인의 과업을 이루었으나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모든 허망함이 모두 다 없어져서 홀로 오묘하게 참되고 항상하시니 감히 여래께 묻습니다만 일체 중생들은 무슨 원인으로 허망한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 오묘하게 밝은 것을 가리우고 이렇게 윤회에 빠져 허덕이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비록 의심은 없앴으나 나머지 의혹이 다 없어지지 못하였으니 내가 세상에서 현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지고 지금 다시 네게 묻겠다.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시라벌성 안에 연야달다(演若達多)가 홀연히 이른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다하니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무슨 원인으로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겠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일 뿐 다른 까닭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은 본래 원만하고 밝고 오묘한 것이니 이미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였던들 어떻게 원인이 있다고 하겠으며 만약 원인이 있으면 어떻게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겠느냐? 스스로 일으킨 모든 망상들이 전전하며 서로 원인이되어 미혹을 좇아 미혹이 쌓여서 끝없는 세월을 지내왔으므로 비록 부처님께서 발명해주었어도 오히려 돌이키지 못하나니라.

이와 같이 미혹한 원인은 미혹으로 인하여 저절로 생긴 것이니 미혹함이 원인이 없다는 것을 알면 허망한 생각이 의지할 데가 없나니 오히려 생기는 것도 없는데 무엇을 없애려느냐? 보리를 얻은 자는 잠을 깬 사람이 꿈 속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마음에는 비록 꿈 속의 일이 분명하지만 무슨 수로 꿈 속에 물건들을 취할 수 있겠느냐? 더구나 원인이 없어서 본래 있지도 않은 것이랴.

저 시라벌성의 연야달다와 같은 경우는 어찌 인연이 있어서 자기의 머리를 무서워하면서 달아났겠느냐? 홀연히 미친 증세가 없어지면 그 머리는 밖에서 얻어진 것이 이니며 비록 미친 중세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어찌 잃어버린 것이겠느냐? 부루나야! 허망한 성품이 이러하니 원인이 어찌 있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만 세간의 업장과 과보 그리고 중생, 이 세 종류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따라 분별하지 아니하면 세 가지 인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곧 너의 마음 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은 자연 없어질 것이다.

무명이 없어지면 곧 보리의 뛰어나게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우주에 두루퍼져서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니 어찌하여 애써가며 수고롭게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해서 타향에서 곤궁하게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것과 같아서 비록 실제는 빈궁하지만 여의주는 잃은 것이 아니니 홀연히 지혜있는 사람이 그 여의주를 가르켜주면 원하던 것이 마음을 따라서 큰 부자가 되리니 그때에야 바야흐로 그 신비로운 여의주가 밖에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으리라."

 

[9] 자연으로 인연을 깨뜨림

그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일어나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께서 지금 말씀하시기를 음욕, 살생, 도적질의 세 가지 업연이 끊어지므로해서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마음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이 자연 없어지리니 미친 성품이 없어지면 이는 곧 보리인지라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인(因)과 연(緣)이 분명한 것이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완전히 버렸습니까? 저도 인연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열리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치는 어찌 나이 어린 저희들 유학인 성문들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있는 대목견련과 사리불과 수보리 등도 늙은 범지(梵志)를 추종하다가 부처님의 인연법을 듣고서 발심하여 깨달아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끊어지는 도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리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왕사성의 구사리 등이 말하는 자연이라야 제일의(第一義)가 되리니 바라옵건데 큰 자비를 베푸시어 혼미하고 답답한 것을 열어 밝혀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치 성 가운데 있는 연야달다가 만약 미친 성품의 인연을 제거하여 없앨 수만 있다면 미친 성품이 아닌 것이 자연히 나오는 것과 같아서 인연과 자연의 이치가 여기에서 끝나나니라.

아난아! 연야달다의 머리가 본래 자연 그대로인진댄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자연 아닌 것이 없거늘 무슨 인연 때문에 머리를 두려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약 자연의 머리가 인연 때문에 미쳤다면 어찌하여 자연이 인연 때문에 잃어지지 않는냐? 본래의 머리는 잃은 것이 아니거늘, 미쳐 두려워함이 허망하게 생겼다면 이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느냐?

본래 미친 것이 자연이라면 미친 두려움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겠지만 미치지 않았을 적에는 미친 증상이 어디에 숨었었으며 미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면 머리는 본래 미쳐 날뜀이 없을 것이어늘 어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일 본래의 머리라는 것을 깨닫고나서 미쳐서 달아났던 것을 알면 인연과 자연이 모두 장난같은 논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세 가지 연(緣)이 끊어지므로 곧 보리심이다'고 한 것이다.

 

[10] 잘못을 경책하고 수행을 권유함

보리의 마음이 생기고 나서 없어지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모두 다하여 공부의 작용이 없는 길에 만약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것은 자연의 마음이 생기며 나고 없어지고 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분명하니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세간의 모든 현상이 섞여서 한 몸이 되는 것을 화합의 성품이라 하고 화합하지 않은 것을 본연의 성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본래 자연과 본래 자연이 아닌 것, 화합과 화합이 아닌 것, 자연과 합해진 것을 모두 여의며 따라서 벗어나고 화합함이 모두 아니라야 이 구절이 바야흐로 장난같은 논란이 없는 진리라고 할 수 있나니라.

보리와 열반이 아직도 아득하고 멀어서 네가 여러 겁동안 애써서 닦는 것으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비록 다시 시방여래의 십이부경(十二部經)에 청정하고 오묘한 이치를 기억해 가짐이 항하의 모래와 같더라도 장난같은 논리만 더할 뿐이다.

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함에 있어서 결정코 분명하고 또렷하므로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많이 들은 것으로는 제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겁을 많이 들음을 쌓아 익혔건만 마등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거늘 어찌하여 나의 불정신주(佛頂神呪)를 기다려서 마등가의 마음에 음욕의 불꽃이 다 없어지게 하고 아나함을 증득하여 나의 법 가운데에 정진의 숲을 이루고 애욕의 강을 말려서 너로 하여금 해탈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비록 여러 겁을 여래의 비밀스럽고 오묘하고 장엄한 것을 기억해 가졌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를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도를 닦아서 세간에서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는 것만 같지 못하나니라.

마등가와 같은 경우는 전세에 음란한 여자였으나 신주(神呪)의 힘으로 인하여 그 애욕을 소멸하고 지금은 나의 법 가운데 들어와서 성비구니(性比丘尼)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나후라의 어미인 야수다라와 함께 과거세의 인연을 깨달아 많은 세상을 지내오면서 맺어온 인연이 탐욕과 애욕으로 괴로움이 된 것임을 깨닫고서 일념으로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감이 없는 선행을 닦았으므로 혹은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혹은 수기(授記)를 받기도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듣는데 머물러 있느냐?"

 

[11] 아난이 간청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의혹이 사라져 없어지고 마음의 참 모습을 깨달아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져서 일찌기 있기 않았던 것을 얻고는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없이 크고 자비하신 청정한 보배의 왕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잘 열어주셔서 이러한 여러가지 인연을 방편으로 이끌어주시고 권장해주시는 한편 캄캄한데 빠진 자를 인도하여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서 여래장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 퍼져서 여래께서 시방국토의 청정한 보엄묘각왕찰(寶嚴竗覺王刹)을 함유(含有)하였음을 알았습니다만 여래께서 다시 꾸짖으시기를 '많이 듣기만 하는 것은 공이 없어 닦아 익히는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시니 저는 지금 마치 나그네 생활을 하던 사람이 홀연히 천왕(天王)이 주신 호화로운 집을 받은 것과 같아서 비록 큰 집을 얻었으나 문을 찾아 들어감이 요긴한 것과 같사오니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와 저희 이 모임에 있는 여러 몽매(夢昧)한 자들을 깨우쳐 주시어 소승을 버리고 마침내 여래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본디 발심했던 길을 얻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배울 것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지난날 반연하던 마음을 항복받고 다라니(陀羅尼)를 얻어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서 모임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

 

[12] 뜻을 펴 종지를 표함

그때에 세존께서 모임 가운데 있는 연각과 성문들이 보리의 마음에 자재하지 못한 자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앞으로 닥칠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 말법의 중생들이 보리의 마음을 발할 자들을 위하여 무상승(無上乘)의 오묘한 수행의 길을 열어주려고 하시어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의 마음을 내어 여래의 오묘한 삼마지에 피로하고 게으름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응당 먼저 깨달음을 발하려는 첫 마음을 일으킨 때에 두 가지 결정의 의미를 밝혀야 하나니라.

무엇을 '처음 발심한 때에 두 가지 결정의 뜻'이라고 하는가하면 아난아! 첫번째 뜻은 너희들이 만약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菩薩乘)을 닦아서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가고자 할진댄 응당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깨달음과 같은가 다른가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아난아! 만약 인지에서 나고 없어지는 마음으로 본래 수행할 원인으로 삼아서 불승(佛乘)의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구할진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나니라.

그러한 뜻으로 너는 마땅히 모든 기세간(器世間)의 만들 수 있는 법을 비추어 밝혀 보아라. 다 변하여 없어지나니라.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법을 보아라. 어느 것이 무너지지 않더냐? 그러나 끝끝내 허공이 허물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을 터이니 무엇 때문인가? 허공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허물어져 없어지지 않나니라.

너의 몸 속에서 굳은 모양은 흙이 되고 축축한 것은 물이 되며, 따뜻한 촉감은 불이 되고 움직이고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되나니 이 네 가지 원소가 얽혀서 너의 맑고 원만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나뉘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살피는 것이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겹의 혼탁함이 생기나니라.

 

[13] 다섯 가지 혼탁의 현상을 밝힘

어떤 것을 혼탁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맑은 물은 청결함이 본래부터 그러한 것이고 저 흙과 뿌연 모래의 종류는 본 바탕이 엉키는 것이니 두 가지의 본체는 자연의 법칙이라서 그 성품이 서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이 그 흙과 모래를 가져다가 맑은 물에 넣으면 흙은 엉키는 것을 잃어버리고 물은 맑음을 잃어버려서 형태가 흐릿하게 되는 것을 혼탁[濁]이라고 이름하나니 너의 다섯 겹으로 쌓인 혼탁한 것도 역시 이와 같나니라.

아난아! 네가 허공이 시방에 두루한 것을 볼 적에 허공과 보는 놈이 구분되지 아니하여 허공은 있고 실체는 없으며 보는 놈은 있고 깨달음은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첫번째 둘러싼 것으로 그 이름이 '겁탁'이니라.

네 몸이 현재 네 가지 원소가 뭉쳐서 몸이 되었으므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막혀서 장애가 되며 물과 불, 바람과 흙이 돌아가며 깨달아 알게 하여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니 이는 두번 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견탁'이니라.

또 너의 마음 속에 기억하고 의식하고 외우고 익히고 하여 성품에서 깨닫고 보고 하는 것을 발하고 모양은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을 나타내니 대상인 물질을 여의면 현상이 없고 깨달음을 여의면 성품이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세번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번뇌탁'이니라.

또 네가 아침 저녁으로 생기고 없어짐이 멈추지 아니하여 느끼고 보는 놈은 늘 세간에 머물고자 하며 업장을 지어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항상 국토에 옳겨져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네 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중생탁'이니라.

너희들의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원래 다른 성품이 아니거늘 모든 대상 물질이 가로 막아서 형상도 없이 다른 것이 생기나니라. 성품 가운데 서로 알고 작용 가운데 서로 배반하여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것은 다섯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명탁'이다.

 

[14] 상근기가 유익함을 획득함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지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으로 하여금 멀리 여래의 상(常), 낙(樂),아(我),정(淨)과 계합하기를 바라거든 먼저 마땅히 나고 죽는 근본부터 골라 버리고, 나고 죽지 않는 맑고 원만한 성품에 의해서 이룩해야 하리니 맑음으로써 허망하게 났다 죽었다 하는 것을 돌이켜서 이를 항복받아 본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명각(命覺)인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얻어 인지(因地)의 마음을 삼은 다음에야 과지(果地)를 닦아 증득함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마치 흐린 물을 맑게 할 적에 고요한 그릇에 담아서 흔들리지 않게 오래 두면 모래와 흙은 저절로 가라앉고 맑은물만이 앞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은 처음으로 객진번뇌(客塵煩惱)를 항복 받았다고 이름할 것이요, 앙금을 버리고 순수한 물만 남게 한 것과 같은 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영원히 끊었다고 이름할 수 있으니 밝은 모양이 정밀하고 순수하면 일체가 변하여 나타나도 번뇌가 되지 않아서 모두가 열반의 청정하고 오묘한 덕과 부합하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너는 지금 알고 있느냐? 아미타불이 저기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니 너는 일어나 합장하고서 서쪽을 향해 이마로 예를 올려라. 아난이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는 동안에 아미타불이 큰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비추시니 수없이 많은 천지와 수없이 많은 해와 달이 모두 다 빛을 잃어버리고 오직 한줄기 부처님의 광명만이 힘차고 환하게 빛나거늘 이 모임의 사부대중 가운데 모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저 아미타불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장엄함을 통해 보고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고서 곧 차등이 있을 수 없는 아뇩다라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

<< 券四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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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의 능엄신주 범어독음과 국역

https://www.youtube.com/watch?v=Rc6Z0gLvp-Y https://kydong77.tistory.com/21628 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 국역 전10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ube393&logNo=220020727513 능엄경 전문 正本首楞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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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공경치 말라는 이유를 밝히다

제3장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 공경치 말라는 이유를 밝히다 8. 問曰:因何不得禮佛菩薩等? "무엇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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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卷 3

 

제3장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

공경치 말라는 이유를 밝히다

8.

問曰:因何不得禮佛菩薩等?

"무엇 때문에 부처나 보살들에게 절하면 안됩니까?"

答曰:天魔波旬阿修羅示見神通,皆作得菩薩相貌。

“천마(天魔)와 파순(波旬)과 아수라(阿修羅)가 신통(神通)을 드러내어 모두 보살의 모습을 지을 수 있다.

種種變化,是外道,總不是佛。

여러 가지로 변화(變化)하는 것은 모두 외도(外道)이고, 결코 부처가 아니다.

佛是自心,莫錯禮拜。

부처는 자기 마음이니, 착각하여 절하지 말라.

佛是西國語,此土云覺性。覺者靈覺,

각(覺)이란 신령스럽게 깨어 있는 것이다.

應機接物,揚眉瞬目,運手動足,皆是自己靈覺之性。

기연(機緣)에 응하고, 사물을 대하며, 눈썹을 찡그리고, 눈을 깜빡이며,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신령스럽게 깨어 있는 본성이다.

性即是心,心即是佛,佛即是道,道即是禪。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도(道)이고, 도가 곧 선(禪)이다.

禪之一字,非凡聖所測。

선(禪)이라는 한 글자는 범부도 성인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又云:見本性為禪。若不見本性,即非禪也。假使說得千經萬論,若不見本性,只是凡夫,非是佛法。

“본성을 보는 것이 선(禪)이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선이 아니다.

설사 천 권의 경전과 만 권의 논서를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다만 범부일 뿐, 불법(佛法)은 아니다.

至道幽深,不可話會,典教憑何所及。

지극한 도는 그윽하고 깊어서 말로써는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

경전의 가르침이 어떻게 미치겠는가?

但見本性,一字不識亦得。

단지 본성을 보기만 하면, 한 글자도 몰라도 된다.

見性即是佛,

자기 본성을 보는 것이 바로 부처이다.

聖體本來清淨,無有雜穢。

성스런 본바탕은 본래 청정하여 잡스런 때가 없다.

所有言說,皆是聖人從心起用。

있는 말들은 모두가 성인(聖人)이 마음에서 일으켜 사용하는 것이다.

用體本來空,

작용이니 본체니 하는 것은 본래 헛된 이름이다.

名言猶不及,十二部經憑何得及。

말로 미치지도 못하는데, 12부 경전으로 어떻게 미칠 수 있겠는가?

道本圓成,不用修證。

도(道)는 본래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닦아서 증득(證得)할 필요가 없다.

9.

道非聲色,微妙難見。

도는 소리와 색이 아니니, 미묘하여 보기가 어렵다.

如人飲水,冷暖自知,不可向人說也。

마치 사람이 물을 마셔서 차갑고 따듯함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아서, 남에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唯有如來能知,餘人天等類,都不覺知。

오직 여래(如來)만이 알 수 있을 뿐, 나머지 사람이나 하늘사람 등의 부류는 전혀 깨달아 알지 못한다.

凡夫智不及,所以有執相。

범부의 지혜로는 미치지 못하니, 모습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不了自心本來空寂,妄執相及一切法即墮外道。

자기의 마음이 본래 텅 비고 고요한 줄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모습을 붙잡고, 일체법을 붙잡으면, 바로 외도(外道)에 떨어진다.

若知諸法從心生,不應有執,執即不知。

만약 모든 법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남을 안다면, 붙잡지 말아야 하니, 붙잡으면 알지 못한다.

若見本性,十二部經總是閑文字。

만약 본성을 본다면, 12부 경전은 모두 부질없는 문자이다.

千經萬論只是明心,言下契會,教將何用?

천 가지 경전과 만 가지 논서가 다만 마음을 밝히는 것이니,

말끝에 계합(契合)하여 알아차리면, 가르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至理絕言;教是語詞,實不是道。

지극한 도리는 말을 벗어났지만, 가르침은 말이니, 사실은 도(道)가 아니다.

道本無言,言說是妄。

도는 본래 말이 없고, 말은 허망한 것이다.

若夜夢見樓閣宮殿象馬之屬,及樹木叢林池亭如是等相;不得起一念樂著,盡是托之處,切須在意。

만약 밤에 꿈속에서 누각, 궁전, 코끼리, 말 등을 보거나, 나무, 수풀, 연못, 정자 등과 같은

모습들을 보더라도, 이러한 모습들에는 좋아하여 집착하는 한 생각도 낼 수가 없으니,

모두가 의탁하여 생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臨終之時,不得取相,即得除障。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 모습을 붙잡지 않을 수 있다면, 의심을 제거할 수 있다.

疑心瞥起,即魔攝。

마음이 잠깐이라도 일어나면, 곧 마구니에게 사로잡힌다.

法身本來清淨無受,

법신(法身)은 본래 청정하여 받을 것이 없다.

只緣迷故,不覺不知,因茲故妄受報。所以有樂著,不得自在。

다만 인연을 따라서 헤매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알 지 못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망령되이 과보를 받는다.

그러므로 좋아하여 집착하게 되면, 자재할 수가 없다.

只今若悟得本來身心,即不染習。

지금 만약 깨닫는다면, 본래의 몸과 마음은 습기(習氣)에 물들지 않는다.

若從聖入凡,示見種種雜類,自為眾生,

만약 성인을 벗어나 범부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을 드러내 보인다면, 스스로 중생이 되는 것이다.

故聖人逆順皆得自在,一切業拘它不得。聖成久.

그러므로 성인은 거스르는 경계에서든 순탄한 경계에서든 모두 자재할 수 있으니,

어떤 업도 그를 구속할 수 없어서 성스러움이 영원하다.

有大威德,一切品類業,被它聖人轉,天堂地獄無奈何它。

큰 위덕(威德)이 있는 모든 종류의 업(業)을 저 성인이 부리니, 천당과 지옥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다.

凡夫神識昏昧,不同聖人,內外明徹。

범부는 정신과 의식이 어두우니, 성인이 안팎이 밝게 통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若有疑即不作,作即流浪生死,後悔無相救處。

만일 의심이 있으면 행하지 않지만, 행하게 되면 생사의 바다 위에서 떠다니게 되어, 뒤에 후회하더라도 구해 줄 수가 없다.

貧窮困苦皆從妄想生,

若了是心,遞相勸勉,但無作而作,即入如來知見。

가난과 고생이 모두 망상으로 말미암아 생기니,

만약 이 마음을 깨닫는다면, 서로서로 권고하여 다만 행함 없이 행한다면, 곧 여래의 지견으로 들어간다.

10.

初發心人,神識總不定;

처음 발심한 사람은 정신과 의식이 전혀 안정되어 있지 않다.

若夢中頻見異境,輒不用疑,皆是自心起故,不從外來。

만약 꿈속에서 흔히 이상한 경계를 보더라도, 바로 의심할 필요는 없으니, 모두 자기의 마음이 일으킨 것이고, 밖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夢若見光明出現,過於日輪,即餘習頓盡,法界性見。

꿈에서 만약 밝음이 나타남을 보았는데, 태양보다도 더 밝다면, 곧 남은 습이 문득 없어지고, 법계(法界)의 본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若有此事,即是成道之因。唯自知,不可向人說。

만약 이러한 일이 있다면, 바로 도를 이루는 원인이지만, 오직 스스로가 알 뿐, 남에게는 말할 수 없다.

或靜園林中行住坐臥,眼見光明,

或大或小,莫與人說,亦不得取,亦是自性光明。

혹시 고요한 숲 속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사이에 눈에서 밝음을 보는데,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다면, 남에게 말하지도 말고, 취하지도 말지니, 역시 자성(自性)의 밝음이다.

或夜靜暗中行住坐臥,眼睹光明,與晝無異,不得怪,並是自心欲明顯。

혹은 밤중에 조용한 어둠 속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누움에, 눈에서 밝음을 보아 낮과 다름이 없다면, 괴이하게 여기지 말 것이니, 모두가 자기 마음이 밝게 드러나고자 하는 것이다.

或夜夢中見星月分明,亦自心諸緣欲息,亦不得向人說。

혹은 밤에 꿈속에서, 별이나 달을 또렷이 보더라도, 자기 마음이 여러 인연을 쉬고자 하는 것이니, 역시 남에게 말해서는 안된다.

夢若昏昏,猶如陰暗中行,亦是自心煩惱障重,亦自知。

꿈이 만약 어둡고 어두워서 마치 어두운 그늘 속을 가는 것과 같다면,

자기 마음에 번뇌의 장애가 두꺼운 것이니, 역시 스스로 알 수 있다.

11.

若見本性,不用讀經念佛,

만약 본성을 본다면, 독경하고 염불할 필요가 없다.

廣學多知無益,神識轉昏。

널리 배우고 많이 알아보아야 이익될 것이 없고, 정신과 의식이 더욱 혼미하게 될 뿐이다.

設教只為標心;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다만 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若識心,何用看教?

만약 마음을 안다면, 가르침을 살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若從凡入聖,即須息業養神,隨分過日。

만약 범부를 빠져나와 성인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곧 업(業)을 쉬고 정신을 수양하면서 분수따라 시간을 보내야 한다.

若多瞋恚,令性轉與道相違,

만약 자주 성을 내거나 기뻐한다면, 본성을 돌려서 도와 서로 어긋나게 만들 것이다.

自賺無益。

스스로 이익을 보려 한다면, 이로울 것이 없다.

聖人於生死中,自在出沒,隱顯不定,

성인은 생사 속에서 자재하여, 나타나고 사라지고 숨고 드러남에 정해진 것이 없다.

一切業拘它不得。聖人破邪魔,

모든 업이 그를 구속할 수가 없으니, 성인은 삿된 마구니를 부순다.

一切眾生但見本性,餘習頓滅。神識不昧,須是直下便會,只在如今。

모든 중생이 본성을 보기만 하면, 남은 습이 문득 소멸하고, 정신과 의식이 어둡지 않아서, 바로 그 자리에서 즉각 알아차린다.

欲真會道,莫執一切法;

다만 지금 진실로 도를 알아차리고자 한다면, 어떠한 법에도 집착하지 말라.

息業養神,餘習亦盡。自然明白,不假用功。

업을 쉬고 정신을 수양하면, 남은 습도 역시 사라져서, 저절로 명백할 것이니, 힘써 공부할 필요가 없다.

外道不會佛意,用功最多;違背聖意,

외도(外道)는 부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힘써 공부하는 것을 최고로 삼으니, 성인의 뜻과는 어긋난다.

終日驅驅念佛轉經,昏於神性,不免輪迴,

하루 종일 바쁘게 염불하고, 경전을 뒤져 보아야, 정신의 본성에는 어두워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佛是閑人,何用驅驅廣求名利,後時何用?

부처는 한가한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바삐 두루 명성과 이익을 찾겠는가? 나중에 어디에다 쓰겠는가?

但不見性人,讀經念佛,長學精進;六時行道,長坐不臥;廣學多聞,以為佛法。此等眾生,盡是謗佛法人。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은, 경을 읽고, 염불하고, 늘 배움에 열심히 공부하고, 하루 종일 도를 행하고,

늘 배움에 앉아서 눕지 않고, 두루 배우고 많이 듣는 것을 불법으로 삼는다.

이러한 중생들은 모두가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들이다.

12.

前佛後佛,只言見性。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이다.

諸行無常。若不見性,妄言我得阿耨菩提,此是大罪人。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니,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서

망령되이 ‘나는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큰 죄인이다.

十大弟子阿難多聞中得第一,於佛無識只學多聞,

10인의 큰 제자 가운데, 아난(阿難)은 다문(多聞) 가운데 첫째였지만, 부처를 알지는 못하고, 다만 배워서 많이 알 뿐이었다.

二乘外道皆無識佛,識數修證,墮在因果中。

이승(二乘)과 외도(外道)는 모두 부처를 알지 못하고, 하나하나 닦아서 깨닫는다고 알고 있으니, 인과에 떨어져 중생의 업보를 받고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

是眾生業報,不免生死,遠背佛意,即是謗佛眾生,殺卻無罪過。

부처의 뜻에 위배되면 곧 부처를 비방하는 중생이니, 죽여도 도리어 죄나 허물이 없다.

經云:闡提人不生信心,殺卻無罪過。

경에서 말하기를 ‘천제인(闡提人)은 믿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죽여도 도리어 죄나 허물이 없다.’라고 하였다.

若有信心,此人是佛位人。

만약 믿는 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부처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若不見性,即不用取次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순서대로 나아가도 소용없다.

謗它良善,自賺無益。 善惡歷然,因果分明。

저 선량한 성인을 비방하고 스스로 이익을 보려 해도 이로울 것이 없으니, 선과 악이 또렷하고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天堂地獄只在眼前,愚人不信,現墮黑暗地獄中;亦不覺不知,只緣業重故,所以不信。

천당과 지옥이 다만 눈앞에 있는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믿지 않고,

지금 깜깜한 지옥 속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만 업이 무겁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이다.

譬如無目人,不信道有光明,縱向伊說亦不信,只緣盲故,憑何辨得日光;愚人亦復如是。現今墮畜生雜類,誕在貧窮下賤,求生不得,求死不得。

마치 눈 없는 사람이 빛이 밝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그에게 말해 주어도 믿지 못하는 것은,

다만 맹인(盲人)이기 때문이니, 어떻게 햇빛을 알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아서, 지금 축생의 잡류에 떨어져 있고, 빈궁하고, 하천(下賤)하게 태어나 있어서,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雖受是苦,直問著亦言我今快樂,不異天堂。

비록 이러한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바로 물으면 또한 말하기를

‘나는 지금 즐거워서 천당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故知一切眾生,生處為樂,亦不覺不知。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살아 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면서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겠다.

如斯惡人,只緣業障重故,所以不能發信心者,不自由它也。

이와 같이 악(惡)한 사람은 다만 업장이 무겁기 때문에, 신심(信心)을 낼 수가 없는 것이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다.

若見自心是佛,不在剃除鬚髮,白衣亦是佛。若不見性,剃除鬚髮,亦是外道。

만약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보면, 머리를 깎을 필요가 없으니, 세속인 또한 부처이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머리를 깎아도 역시 외도이다.”

<< 卷三 끝 >>

 

http://buddhism.lib.ntu.edu.tw/BDLM/sutra/chi_pdf/sutra10/T19n0945.pdf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三

(一名中印度那蘭 陀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復次,阿難!云何六入本如來藏妙真如性?阿難!即彼目精瞪發 勞者,兼目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明暗二種妄塵,發見居中 吸此塵象,名為見性,此見離彼明暗二塵,畢竟無體。如是,阿 難!當知是見非明暗來,非於根出,不於空生。何以故?若從明 來,暗即隨滅,應非見暗。若從暗來,明即隨滅,應無見明。若從 根生,必無明暗。如是見精,本無自性。若於空出,前矚塵象歸當 見根;又空自觀,何關汝入。是故當知眼入虛妄,本非因緣、非自 然性。 「阿難!譬如有人以兩手指急塞其耳,耳根勞故頭中作聲,兼耳與 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動靜二種妄塵,發聞居中吸此塵象,名 聽聞性,此聞離彼動靜二塵,畢竟無體。如是,阿難!當知是聞非 動靜來,非於根出,不於空生。何以故?若從靜來,動即隨滅,應 非聞動。若從動來,靜即隨滅,應無覺靜。若從根生,必無動靜。 如是聞體,本無自性。若於空出,有聞成性即非虛空;又空自聞, 何關汝入。是故當知耳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急畜其鼻畜久成勞,則於鼻中聞有冷觸,因觸分 別通塞虛實,如是乃至諸香臭氣,兼鼻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 于通塞二種妄塵,發聞居中吸此塵象,名嗅聞性,此聞離彼通塞二 塵,畢竟無體。當知是聞非通塞來,非於根出,不於空生。何以 故?若從通來,塞自隨滅,云何知塞?如因塞有,通則無聞,云何 發明香臭等觸?若從根生,必無通塞。如是聞體,本無自性。若從 30 空出,是聞自當迴嗅汝鼻,空自有聞,何關汝入。是故當知鼻入虛 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以舌舐吻熟舐令勞,其人若病則有苦味,無病之 人微有甜觸,由甜與苦顯此舌根,不動之時淡性常在。兼舌與勞同 是菩提,瞪發勞相因甜苦淡二種妄塵,發知居中吸此塵象,名知味 性,此知味性離彼甜苦及淡二塵,畢竟無體。如是,阿難!當知如 是嘗苦淡知,非甜苦來,非因淡有,又非根出,不於空生。何以 故?若甜苦來,淡即知滅,云何知淡?若從淡出,甜即知亡,復云 何知甜苦二相?若從舌生,必無甜淡及與苦塵。斯知味根本無自 性。若於空出,虛空自味非汝口知,又空自知,何關汝入。是故當 知舌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以一冷手觸於熱手,若冷勢多熱者從冷,若熱功 勝冷者成熱,如是以此合覺之觸顯於離知,涉勢若成因于勞觸。兼 身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離合二種妄塵,發覺居中吸此塵 象,名知覺性。此知覺體,離彼離合違順二塵,畢竟無體。如是, 阿難!當知是覺,非離合來,非違順有,不於根出,又非空生。何 以故?若合時來,離當已滅,云何覺離?違順二相,亦復如是。若 從根出,必無離合違順四相。則汝身知,元無自性。必於空出,空 自知覺,何關汝入。是故當知身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勞倦則眠睡熟便寤,覽塵斯憶失憶為妄,是其顛 倒生住異滅,吸習中歸不相踰越,稱意知根。兼意與勞同是菩提, 瞪發勞相因于生滅二種妄塵,集知居中吸撮內塵,見聞逆流流不及 地,名覺知性。此覺知性,離彼寤寐生滅二塵,畢竟無體。如是, 阿難!當知如是覺知之根,非寤寐來,非生滅有,不於根出,亦非 空生。何以故?若從寤來,寐即隨滅,將何為寐?必生時有,滅即 同無,令誰受滅?若從滅有,生即滅無,孰知生者?若從根出,寤 寐二相隨身開合,離斯二體,此覺知者同於空花,畢竟無性。若從 31 空生,自是空知,何關汝入。是故當知意入虛妄,本非因緣、非自 然性。 「復次,阿難!云何十二處本如來藏妙真如性?阿難!汝且觀此祇 陀樹林及諸泉池。於意云何,此等為是色生眼見?眼生色相?阿 難!若復眼根生色相者,見空非色,色性應銷,銷則顯發一切都 無,色相既無,誰明空質?空亦如是。若復色塵生眼見者,觀空非 色,見即銷亡,亡則都無,誰明空色?是故當知,見與色空俱無處 所,即色與見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汝更聽此祇陀園中,食辦擊鼓、眾集撞鐘,鐘鼓音聲前後 相續。於意云何,此等為是聲來耳邊?耳往聲處?阿難!若復此聲 來於耳邊,如我乞食室羅筏城,在祇陀林則無有我;此聲必來阿難 耳處,目連、迦葉應不俱聞,何況其中一千二百五十沙門,一聞鐘 聲同來食處。若復汝耳往彼聲邊,如我歸住祇陀林中,在室羅城則 無有我;汝聞鼓聲,其耳已往擊鼓之處,鐘聲齊出應不俱聞,何況 其中象馬牛羊種種音響。若無來往,亦復無聞。是故當知聽與音聲 俱無處所,即聽與聲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汝又嗅此鑪中栴檀,此香若復然於一銖,室羅筏城四十里 內同時聞氣。於意云何,此香為復生栴檀木?生於汝鼻?為生於 空?阿難!若復此香生於汝鼻,稱鼻所生當從鼻出,鼻非栴檀,云 何鼻中有栴檀氣?稱汝聞香當於鼻入,鼻中出香說聞非義。若生於 空,空性常恒,香應常在,何藉鑪中爇此枯木?若生於木,則此香 質因爇成煙,若鼻得聞合蒙煙氣,其煙騰空未及遙遠,四十里內云 何已聞?是故當知香鼻與聞俱無處所,即嗅與香二處虛妄,本非因 緣、非自然性。 「阿難!汝常二時眾中持鉢,其間或遇酥酪醍醐名為上味。於意云 何,此味為復生於空中?生於舌中?為生食中?阿難!若復此味生 32 於汝舌,在汝口中秖有一舌,其舌爾時已成酥味,遇黑石蜜應不推 移,若不變移不名知味,若變移者舌非多體,云何多味一舌之知? 若生於食,食非有識,云何自知?又食自知,即同他食,何預於 汝,名味之知?若生於空,汝噉虛空當作何味?必其虛空若作鹹 味,既鹹汝舌亦鹹汝面,則此界人同於海魚;既常受鹹了不知淡, 若不識淡亦不覺鹹,必無所知,云何名味?是故當知味舌與甞俱無 處所,即甞與味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汝常晨朝以手摩頭。於意云何,此摩所知,唯為能觸。能 為在手?為復在頭?若在於手,頭則無知,云何成觸?若在於頭, 手則無用,云何名觸?若各各有,則汝阿難應有二身。若頭與手一 觸所生,則手與頭當為一體,若一體者觸則無成;若二體者,觸誰 為在?在能非所,在所非能。不應虛空與汝成觸。是故當知覺觸與 身俱無處所,即身與觸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汝常意中所緣善、惡、無記三性,生成法則。此法為復即 心所生?為當離心別有方所? 「阿難!若即心者,法則非塵,非心所緣,云何成處?若離於心別 有方所,則法自性為知?非知?知則名心,異汝非塵,同他心量即 汝即心,云何汝心更二於汝?若非知者,此塵既非色、聲、香、 味、離合冷煖及虛空相,當於何在?今於色空都無表示,不應人間 更有空外,心非所緣,處從誰立。是故當知法則與心俱無處所,則 意與法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復次,阿難!云何十八界本如來藏妙真如性?阿難!如汝所明, 眼色為緣生於眼識,此識為復因眼所生,以眼為界?因色所生,以 色為界?阿難!若因眼生,既無色空無可分別,縱有汝識欲將何 用?汝見又非青黃赤白,無所表示從何立界?若因色生,空無色時 汝識應滅,云何識知是虛空性?若色變時,汝亦識其色相遷變,汝 33 識不遷,界從何立?從變則變,界相自無;不變則恒。既從色生, 應不識知虛空所在。若兼二種眼色共生,合則中離,離則兩合,體 性雜亂云何成界?是故當知眼色為緣生眼識界,三處都無,則眼與 色及色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又汝所明,耳聲為緣生於耳識。此識為復因耳所生,以耳 為界?因聲所生,以聲為界? 「阿難!若因耳生,動靜二相既不現前,根不成知,必無所知;知 尚無成,識何形貌?若取耳聞,無動靜故,聞無所成。云何耳形雜 色觸塵,名為識界,則耳識界復從誰立?若生於聲,識因聲有,則 不關聞,無聞則亡聲相所在;識從聲生,許聲因聞而有聲相,聞應 聞識不聞非界,聞則同聲,識已被聞誰知聞識,若無知者終如草 木。不應聲聞雜成中界,界無中位,則內外相復從何成?是故當知 耳聲為緣生耳識界,三處都無,則耳與聲及聲界三,本非因緣、非 自然性。 「阿難!又汝所明,鼻香為緣生於鼻識。此識為復因鼻所生,以鼻 為界?因香所生,以香為界? 「阿難!若因鼻生,則汝心中以何為鼻?為取肉形雙爪之相?為取 嗅知動搖之性?若取肉形,肉質乃身,身知即觸,名身非鼻,名觸 即塵,鼻尚無名云何立界?若取嗅知,又汝心中以何為知?以肉為 知,則肉之知元觸非鼻;以空為知,空則自知肉應非覺,如是則應 虛空是汝,汝身非知,今日阿難應無所在;以香為知,知自屬香, 何預於汝?若香臭氣必生汝鼻,則彼香臭二種流氣,不生伊蘭及栴 檀木,二物不來,汝自嗅鼻為香為臭。臭則非香,香應非臭,若香 臭二俱能聞者,則汝一人應有兩鼻,對我問道有二阿難,誰為汝 體?若鼻是一,香臭無二,臭既為香香復成臭,二性不有,界從誰 立?若因香生識因香有,如眼有見不能觀眼,因香有故應不知香, 34 知則非生,不知非識。香非知有,香界不成;識不知香,因界則非 從香建立,既無中間不成內外,彼諸聞性畢竟虛妄。是故當知鼻香 為緣生鼻識界,三處都無,則鼻與香及香界三,本非因緣、非自然 性。 「阿難!又汝所明,舌味為緣生於舌識。此識為復因舌所生,以舌 為界?因味所生,以味為界? 「阿難!若因舌生,則諸世間甘蔗、烏梅、黃連、石鹽、細辛、薑 桂都無有味。汝自嘗舌為甜為苦?若舌性苦,誰來嘗舌?舌不自 嘗,孰為知覺?舌性非苦,味自不生,云何立界?若因味生,識自 為味,同於舌根應不自嘗,云何識知是味非味?又一切味非一物 生,味既多生識應多體,識體若一體必味生。鹹淡甘辛和合俱生, 諸變異相同為一味應無分別,分別既無則不名識,云何復名舌味識 界?不應虛空生汝心識。舌味和合,即於是中元無自性,云何界 生?是故當知舌味為緣生舌識界,三處都無,則舌與味及舌界三, 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又汝所明,身觸為緣生於身識。此識為復因身所生,以身 為界?因觸所生,以觸為界? 「阿難!若因身生必無合離,二覺觀緣身何所識。若因觸生必無汝 身,誰有非身知合離者?阿難!物不觸知,身知有觸;知身即觸, 知觸即身。即觸非身,即身非觸,身觸二相元無處所,合身即為身 自體性,離身即是虛空等相,內外不成中云何立?中不復立內外性 空,即汝識生從誰立界?是故當知身觸為緣生身識界,三處都無, 則身與觸及身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又汝所明,意法為緣生於意識。此識為復因意所生,以意 為界?因法所生,以法為界? 35 「阿難!若因意生,於汝意中必有所思,發明汝意。若無前法,意 無所生,離緣無形,識將何用?又汝識心與諸思量,兼了別性,為 同為異?同意即意,云何所生?異意不同,應無所識。若無所識, 云何意生?若有所識,云何識意?唯同與異,二性無成,界云何 立?若因法生,世間諸法不離五塵。汝觀色法,及諸聲法、香法、 味法,及與觸法,相狀分明以對五根,非意所攝。汝識決定依於法 生,汝今諦觀法法何狀?若離色空、動靜、通塞、合離、生滅,越 此諸相終無所得。生則色空諸法等生,滅則色空諸法等滅,所因既 無,因生有識作何形相?相狀不有界云何生?是故當知意法為緣生 意識界,三處都無,則意與法及意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白佛言:「世尊!如來常說和合因緣,一切世間種種變化,皆 因四大和合發明。云何如來因緣、自然二俱排擯?我今不知斯義所 屬,惟垂哀愍,開示眾生中道了義無戲論法。」 爾時,世尊告阿難言:「汝先厭離聲聞、緣覺諸小乘法,發心勤求 無上菩提,故我今時為汝開示第一義諦。如何復將世間戲論、妄想 因緣而自纏繞?汝雖多聞如說藥人,真藥現前不能分別,如來說為 真可憐愍。汝今諦聽,吾當為汝分別開示,亦令當來修大乘者通達 實相。」阿難默然,承佛聖旨。 「阿難!如汝所言,四大和合,發明世間種種變化。阿難!若彼大 性體非和合,則不能與諸大雜和,猶如虛空不和諸色;若和合者, 同於變化,始終相成生滅相續,生死死生生生死死,如旋火輪未有 休息。阿難!如水成氷氷還成水。汝觀地性,麁為大地細為微塵, 至隣虛塵析彼極微,色邊際相七分所成,更析隣虛即實空性。阿 難!若此隣虛析成虛空,當知虛空出生色相。汝今問言:『由和合 故,出生世間諸變化相。』汝且觀此一隣虛塵,用幾虛空和合而 有?不應隣虛合成隣虛。又隣虛塵析入空者,用幾色相合成虛空? 若色合時,合色非空;若空合時,合空非色。色猶可析,空云何 36 合?汝元不知如來藏中,性色真空性空真色,清淨本然周遍法界; 隨眾生心應所知量,循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性,皆 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阿難!火性無我,寄於諸緣。汝觀城中未食之家欲炊爨時,手執 陽燧日前求火。阿難!名和合者,如我與汝一千二百五十比丘今為 一眾,眾雖為一,詰其根本各各有身,皆有所生氏族名字,如舍利 弗婆羅門種、優盧頻螺迦葉波種,乃至阿難瞿曇種姓。阿難!若此 火性因和合有,彼手執鏡於日求火,此火為從鏡中而出?為從艾 出?為於日來?阿難!若日來者,自能燒汝手中之艾,來處林木皆 應受焚。若鏡中出,自能於鏡出然于艾,鏡何不鎔。紆汝手執尚無 熱相,云何融泮。若生於艾,何藉日鏡、光明相接,然後火生。汝 又諦觀鏡因手執、日從天來、艾本地生,火從何方遊歷於此?日鏡 相遠非和非合,不應火光無從自有。汝猶不知如來藏中,性火真空 性空真火,清淨本然周遍法界;隨眾生心應所知量。阿難當知!世 人一處執鏡一處火生,遍法界執滿世間起,起遍世間寧有方所,循 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 言說,都無實義。 「阿難!水性不定,流息無恒。如室羅城迦毘羅仙、斫迦羅仙及鉢 頭摩訶薩多等諸大幻師,求太陰精用和幻藥,是諸師等,於白月晝 手執方諸承月中水。此水為復從珠中出?空中自有?為從月來?阿 難!若從月來,尚能遠方令珠出水,所經林木皆應吐流。流,則何 待方珠所出;不流,明水非從月降。若從珠出,則此珠中常應流 水,何待中宵承白月晝。若從空生,空性無邊水當無際,從人洎天 皆同陷溺,云何復有水陸空行?汝更諦觀,月從天陟,珠因手持, 承珠水盤本人敷設,水從何方流注於此?月珠相遠非和非合,不應 水精無從自有。汝尚不知如來藏中,性水真空性空真水,清淨本然 周遍法界;隨眾生心應所知量,一處執珠一處水出,遍法界執滿法 37 界生,生滿世間寧有方所,循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 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阿難!風性無體,動靜不常。汝常整衣入於大眾,僧伽梨角動及 傍人,則有微風拂彼人面。此風為復出袈裟角?發於虛空?生彼人 面?阿難!此風若復出袈裟角,汝乃披風,其衣飛搖應離汝體;我 今說法,會中垂衣,汝看我衣風何所在?不應衣中有藏風地。若生 虛空,汝衣不動,何因無拂?空性常住,風應常生;若無風時,虛 空當滅。滅風可見,滅空何狀?若有生滅,不名虛空;名為虛空, 云何風出?若風自生彼拂之面,從彼面生當應拂汝,自汝整衣云何 倒拂?汝審諦觀,整衣在汝,面屬彼人,虛空寂然不參流動,風自 誰方鼓動來此?風空性隔非和非合,不應風性無從自有。汝宛不知 如來藏中,性風真空性空真風,清淨本然周遍法界;隨眾生心應所 知量。阿難!如汝一人微動服衣有微風出,遍法界拂滿國土生,周 遍世間寧有方所,循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性,皆是 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阿難!空性無形,因色顯發。如室羅城去河遙處,諸剎利種及婆 羅門、毘舍、首陀兼頗羅墮、旃陀羅等,新立安居鑿井求水,出土 一尺於中則有一尺虛空,如是乃至出土一丈中間還得一丈虛空,空 虛淺深隨出多少。此空為當因土所出?因鑿所有?無因自生?阿 難!若復此空無因自生,未鑿土前何不無礙,唯見大地逈無通達? 若因土出,則土出時應見空入,若土先出無空入者,云何虛空因土 而出?若無出入,則應空土元無異因,無異則同,則土出時空何不 出?若因鑿出,則鑿出空,應非出土?不因鑿出,鑿自出土,云何 見空?汝更審諦諦審諦觀,鑿從人手隨方運轉,土因地移,如是虛 空因何所出?鑿空虛實不相為用、非和非合,不應虛空無從自出。 若此虛空,性圓周遍本不動搖,當知現前地水火風均名五大性真圓 融,皆如來藏本無生滅。阿難!汝心昏迷,不悟四大元如來藏,當 38 觀虛空為出為入,為非出入。汝全不知如來藏中,性覺真空性空真 覺,清淨本然周遍法界,隨眾生心應所知量。 「阿難!如一井空空生一井,十方虛空亦復如是,圓滿十方寧有方 所,循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 度,但有言說,都無實義。 「阿難!見覺無知,因色空有。如汝今者在祇陀林,朝明夕昏;設 居中宵,白月則光黑月便暗,則明暗等因見分析。此見為復與明暗 相并太虛空,為同一體、為非一體?或同、非同?或異、非異?阿 難!此見若復與明與暗及與虛空元一體者,則明與暗二體相亡。暗 時無明,明時非暗,若與暗一,明則見亡;必一於明,暗時當滅, 滅則云何見明見暗?若暗明殊,見無生滅,一云何成?若此見精與 暗與明非一體者,汝離明暗及與虛空,分析見元作何形相?離明離 暗及離虛空,是見元同龜毛兔角。明暗虛空三事俱異,從何立見? 明暗相背,云何或同?離三元無,云何或異?分空分見本無邊畔, 云何非同?見暗見明性非遷改,云何非異?汝更細審、微細審、詳 審、諦審,觀明從太陽、暗隨黑月、通屬虛空、壅歸大地,如是見 精因何所出?見覺空頑非和非合,不應見精無從自出。若見聞知, 性圓周遍本不動搖,當知無邊不動虛空并其動搖,地水火風均名六 大性真圓融,皆如來藏本無生滅。阿難!汝性沈淪,不悟汝之見聞 覺知本如來藏,汝當觀此見聞覺知,為生為滅?為同為異?為非生 滅?為非同異?汝曾不知如來藏中,性見覺明覺精明見,清淨本然 周遍法界,隨眾生心應所知量。如一見根見周法界,聽嗅嘗觸覺觸 覺知,妙德瑩然遍周法界,圓滿十虛寧有方所,循業發現。世間無 知,惑為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 義。 「阿難!識性無源,因於六種根塵妄出。汝今遍觀此會聖眾,用目 循歷,其目周視但如鏡中,無別分析,汝識於中次第標指,此是文 39 殊、此富樓那、此目乾連、此須菩提、此舍利弗。此識了知為生於 見?為生於相?為生虛空?為無所因突然而出?阿難!若汝識性生 於見中,如無明暗及與色空,四種必無元無汝見,見性尚無從何發 識?若汝識性生於相中,不從見生,既不見明亦不見暗,明暗不矚 即無色空,彼相尚無識從何發?若生於空,非相非見,非見無辯, 自不能知明暗色空,非相滅緣,見聞覺知無處安立;處此二非,空 非同無,有非同物,縱發汝識欲何分別?若無所因突然而出,何不 日中別識明月。汝更細、詳、微細詳審,見託汝睛,相推前境,可 狀成有,不相成無,如是識緣因何所出?識動見澄非和非合,聞聽 覺知亦復如是,不應識緣無從自出。若此識心本無所從,當知了別 見聞覺知圓滿湛然性非從所,兼彼虛空地水火風均名七大性真圓 融,皆如來藏本無生滅。阿難!汝心麁浮,不悟見聞發明了知本如 來藏。汝應觀此六處識心,為同為異?為空為有?為非同異?為非 空有?汝元不知如來藏中,性識明知覺明真識,妙覺湛然遍周法 界,含吐十虛寧有方所,循業發現。世間無知,惑為因緣及自然 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爾時,阿難及諸大眾蒙佛如來微妙開示,身心蕩然得無罣礙。是諸 大眾,各各自知心遍十方,見十方空如觀掌中所持葉物,一切世間 諸所有物皆即菩提妙明元心,心精遍圓含裹十方;反觀父母所生之 身,猶彼十方虛空之中吹一微塵,若存若亡,如湛巨海流一浮漚, 起滅無從。了然自知獲本妙心常住不滅,禮佛合掌得未曾有,於如 來前說偈讚佛: 「妙湛總持不動尊, 首楞嚴王世希有, 銷我億劫顛倒想, 不歷僧祇獲法身; 願今得果成寶王, 還度如是恒沙眾, 將此深心奉塵剎, 是則名為報佛恩。 伏請世尊為證明, 五濁惡世誓先入, 如一眾生未成佛, 終不於此取泥洹; 大雄大力大慈悲, 希更審除微細惑, 40 令我早登無上覺, 於十方界坐道場, 舜若多性可銷亡, 爍迦囉心無動轉。」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三

 

正本首楞嚴經 卷 3

[1] 육입에 나아가 여래장을 밝힘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육입이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지면 곧 허공에서 또다른 헛보이는 꽃이 보일 것이니 그 눈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보는 것이 생겨 그 중간에 있으면서 이 물질의 현상[色像]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보고 깨닫는 성품[見覺性]'이라고 하니 그 보는 놈의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본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보아 깨닫는 성품은 밝고 어두운 데에서 온 것이 아니며 눈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부터 왔다면 어두워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어두운 데로부터 왔다면 밝아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눈에서 생긴 것일진댄 반드시 밝음과 어두움이 없으면 이렇게 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다. 또 허공이 스스로 볼 것이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眼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갑자기 귀를 막아서 그것이 오래되어 피로해지면 머리 속에서 또다른 허망한 소리가 들릴 것이니 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 생긴 현상이니라.

움직이는 것과 고요한 것, 이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듣는 것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소리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들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듣는 놈이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듣는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2] 허망한 것은 실제가 없음을 밝힘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들어 깨닫은 성품은 움직임과 고요함에서 온 것이 아니며 귀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움직임에서 왔다면 고요해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고요함을 듣지 할 것이고, 만약 고요한 데서 왔다면 움직이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움직임을 듣지 못할 것이고, 만약 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움직임과 고요함이 없으면 이러한 듣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고, 만약 허공을 좇아 나온 것이라면 듣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거든 또 허공이 스스로 들을 것인데 너희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로 들어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耳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코로 숨을 급하게 들이쉬어서 오래 들이쉬고 있으면 피로가 생겨서 코 속에 찬 촉감이 있음을 느낄 것이니, 그 촉감으로 인하여 트이고 막힘과 허하고 실한 것을 분별하며, 그와 같이 모든 향기와 구린내까지도 맡는 것이니 코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트인 것과 막힌 것, 이 두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냄새 맡음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모든 냄새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맡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냄새를 맡는 놈이 트이고 막힘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냄새라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맡아 깨닫는 성품은 트이고 막힌데서 온 것이 아니며 코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트인데서 왔을진대 막히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막힘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만일 막힌데서 왔을진대 트이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트임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만약 코에서 생긴 것일진대 반드시 트임과 막힘이 없으면 그와같이 맡는 정기가 본래자성이 없을 것이고,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일진댄 냄새를 맡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루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냄새를 맡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핥아서 오래오래 핥다가 피로가 생기면 그 사람이 만약 병이 있으면 쓴 맛을 느낄 것이고, 병이 없는 사람이면 약간 단 촉감을 느낄 것이다. 그 달고 쓴 것으로 인하여 저 혀의 의식이 드러날 것이고, 핥지 않을 적에는 담담한 성품이 항상 있으리니 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의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맛을 봄이 생겨 그것이 중간에 있으면서 이 맛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맛보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맛을 보는 놈이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맛이라는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3] 참된 것에 의해 허망함을 일으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맛보아 깨닫는 성품은 달고 쓴데서 온 것이 아니며 담담한 맛에서 온 것도 아니며 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달고 쓴데서 왔을진대 담담하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담담한 맛을 알 것이며, 만약 담담한데서 왔을진대 달거나 쓰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그 달고 쓴 맛을 알 것이며, 만약 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달거나 쓰거나 담담함이 없으면 이렇게 맛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맛을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이 이루어지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맛볼 것이니 그것이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로 맛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舌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찬 손으로 뜨거운 손을 잡았을 적에 만약 찬 기운이 많으면 뜨거운 손이 차가워질 것이고 만약 더운 기운이 많으면 찬 손이 뜨거워지리니, 이와 같이 합했을 때 깨닫는 촉감은 서로 떨어져도 느낌이 남아 있나니 교섭하는 세력이 만일 이루어진다면 접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 것이니 몸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떨어지고 합하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촉감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촉감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느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느낌이 떨어지고 합하는 것과 배반하고 따르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는 느끼는 그 자체가 없으리나.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느껴 깨닫는 성품은 본래 떨어지거나 합해진데서 온 것이 아니고 어긋나거나 따르는데서 온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떨어지는 데서 온 것이라면 합하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합하는 것을 느끼며, 만약 합하는 데서 온 것이라면 떨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떨어짐을 느끼겠느냐? 어긋남과 따르는 두 가지 현상도 역시 그러한 것이며, 만약 몸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떨어짐과 합함과 어긋남과 따르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느끼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느낌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의 접촉으로 인식하는 것[身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4] 십이처에 나가 여래장을 나타냄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피로하면 잠자고 실컷 자고는 문득 깨어서 대상을 보면 기억하며, 그 기억이 사라지면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뒤바뀐 생겨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것이니, 습관을 흡수하여 들여서 그것이 가운데로 돌아가되 서로 뛰어넘지 아니함을 '생각으로 인식하는 근원'이라고 하나니 생각과 피로는 모두다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생기고 없어지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모아진 앎이 중간에 있으면서 내진(內塵)을 흡수해 들여서 그 보고 들음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흐름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거꾸로 흐름을 '알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앎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깨고 잠자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알아 깨닫는 성품은 생기거나 없어지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깨거나 잠자는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생기는데서 온 것이라면 없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누구로 하여금 없어짐을 알게 하며, 만약 없어지는데서 온 것이라면 생기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생기는 것을 알겠느냐? 깨고 잠자고 하는 두 가지 형상도 역시 그러하다. 만약 생각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생기고 없어지고 깨고 잠자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아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지각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지각하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으로 생각하여 인식하는 것[意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십이처(十二處)가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眞如)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네가 다시 기타림 숲과 모든 샘물과 못들을 보아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런 것들은 물질의 모양이 눈으로 보는 작용을 생기게 한다고 여기느냐 눈이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고 여기느냐?

아난아! 만약 눈이 색질의 모양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색질의 모양이 아니므로 색질의 성품이 응당 사라질 것이다. 색질의 성품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모든 것이 없어진다. 색질의 모양이 이미 없어지면 누가 허공의 본질(本質)을 밝히겠느냐? 허공도 역시 그러하니라.

 

[5] 감각기관에 의거하여 밝힘

만약 물질이 눈으로 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물질의 모양이 아니므로 눈으로 보는 것이 곧 사라져 버리리니 사라져 없어지면 모두가 없어질 것인데 무엇이 허공인지 물질인지 밝히겠느냐?

아난아! 너는 다시 이 기타원 가운데서 밥이 마련되면 북을 치고 대중을 모을 적엔 종을 쳐서 그 북과 종소리가 앞뒤로 서로 연속됨을 들어 보아라.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런 것들은 소리가 귀가에 온다고 생각되느냐? 아니면 귀가 소리 있는 곳으로 간다고 생각되느냐?

아난아! 만약 그 소리가 귀 가에서 오는 것이라면 내가 시라벌성에서 걸식을 할 적에 기타림에는 내가 없는 것처럼 그 소리가 반드시 아난의 귀 가에 온 것이라면 목련과 가섭은 응당 함께 듣지 못해야 할 것이어늘 어찌 그 가운데 千二백 五十명의 사문들이 한꺼번에 종소리를 듣고 밥 먹는 곳으로 모두 모이느냐?

만약 네 귀가 소리나는 곳으로 갔다면 내가 기타림에 왔을 적에는 시라벌성엔 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네가 북소리를 들을 적엔 그 귀가 이미 북치는 곳으로 갔으면 종소리가 함께 나더라도 응당 모두 듣지 못할 것이거든 더구나 어떻게 그 가운데 코끼리, 말, 소, 염소 등 갖가지 소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더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듣는 것과 소리는 모두 처소가 없으므로 듣는 곳과 소리나는 곳의 두 처소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너는 다시 이 향로에서 나는 전단향 냄새를 맡아 보아라. 그 향을 만약 한 수(銖)만 태우면 시라벌성 四十리 안에서 동시에 그 향기를 맡을 것이다. 네 생각엔 어떠하냐? 그 향기는 전단향 나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코에서 생겼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허공에서 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그 향기가 너의 코에서 생긴 것이라서 코에서 나온 것이라 하면 마땅히 코에서 나와야 할 것인데 코가 전단이 아니거늘 어떻게 코 속에 전단의 향기가 있다고 하겠느냐? 네가 향기를 맡는다고 한다면 마땅히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코 속에서 향기가 나온다면 냄새를 맡는다는 말은 옳지 못하니라.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허공의 성품은 항상한 것이므로 향기도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 어째서 향로에다 이 나무를 태워야만 향기가 생긴다더냐?

만약 나무에서 생긴 것이라면 그 향기의 본질은 태우므로 인하여 연기가 되었으므로 코가 냄새를 맡을 적에는 응당 연기가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그 연기가 공중으로 올라가 멀리 퍼지기도 전에 四十리 안에서 어떻게 그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이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향기와 코와 냄새를 맡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냄새 맡는 곳과 향기나는 곳의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6] 처소는 실제가 없음을 밝힘

아난아! 네가 매일 두 때씩 대중 가운데서 발우를 가지고서 이따금 유병(油餠)이나 밀반(蜜飯)을 만나게 되면 최고의 맛이라고 하나니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맛은 허공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음식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이 맛이 너의 혀에서 나온 것이라면 너의 입 속에는 혀가 하나 뿐이니 그 혀는 조금전에 이미 단 맛이 되었으므로 흑석밀(黑石蜜)을 먹게 되더라도 응당 달라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달라지지 않는다면 맛을 안다고 할 수 없고 만약 달라진다면 혀가 여러 개가 아닌데 어떻게 여러가지 맛을 한 개의 혀로서 알겠느냐?

만약 음식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음식은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스스로 알겠느냐? 또 음식이 스스로 안다면 곧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니 너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맛을 안다고 하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네가 허공을 씹어보아라. 무슨 맛이더냐? 만약 허공이 짠 맛이라면 이미 너의 혀를 짜게 하였으므로 네 얼굴도 짜야 하리니 그렇다면 이 세계의 사람들은 바다의 고기와 같아서 늘 짠 것을 받아왔으므로 담담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담담함을 알지 못한다면 역시 짠 것도 느끼지 못해서 반드시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니 어떻게 맛을 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이 알아야 한다. 맛과 혀와 맛을 보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 맛보는 것과 맛,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항상 새벽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 만져서 느끼는 것은 어느 것이 감촉을 느낀다고 생각하느냐? 느끼는 것이 손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만약 손에 있는 것이라면 머리는 느낌이 없어야 하리니 어떻게 감촉을 느낀다더냐?

만약 머리에 있을 것 같으면 손은 쓸모가 없으리니 어떻게 접촉한다고 하겠느냐? 만약 각각 있는 것이라면 너 아난은 응당 두 몸둥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머리와 손이 한 번의 접촉으로 생기는 것이라면 곧 손과 머리가 한 몸이 되어야 할 것이고, 만약 한 몸 이라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만약 두 몸이라면 감촉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손에 있다면 머리는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고, 머리에 있다면 손은 몰라야 할 것이니 허공이 너와 더불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촉감을 느끼는 것과 몸은 모두가 처소가 없어서 몸과 감촉,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7] 십팔계에 의하여 여래장을 밝힘

아난아! 네가 항상 생각속에 반연하는 착한 성품과 악한 성품, 그리고 무기성(無記性)의 세 가지 성품이 법칙(法則)을 생성(生成)하나니, 이 법칙은 마음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냐 아니면 마음을 떠나서 별도로 처소가 있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마음에 의한 것이라면 법(法)은 대상이 아니므로 마음의 반연하는 바가 아니거니 어떻게 처소를 이루겠느냐?

만약 마음을 떠나서 따로이 방소가 있는 것이라면 법칙의 자성이 앎이 있느냐 없느냐? 만약 앎이 있다면 마음이라고 이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너와는 상관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대상도 아니므로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같은 것이니 너에 의한 것이며, 마음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네 마음이 네게 있어서 다시 둘이 되겠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그 대상은 빛, 소리, 향기, 맛과 떠나거나 합해지는 것과 차거나 따뜻한 것과 허공의 모양도 아닐 것이니 어디에 있다고 하겠느냐? 지금 물질과 허공에 모두 표시할 수 없으니 응당 인간이 다시 허공 밖에 있지 아니하니라. 마음이 반연하는 것이 아니면 법의 처소가 어디로부터 이루어지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법칙과 마음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마음과 법칙,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十八계(界)가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눈과 빛이 인연이 되어서 안식(眼識)이 생긴다'고 하나니, 그 인식은 눈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므로 눈으로 경계(界)를 삼아야 한다고 하겠느냐? 아니면 물질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물질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눈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이미 빛과 허공이 없으면 분별할 수가 없을것이어니 비록 너의 의식이 있은들 어디에 쓰려하느냐? 네가 보는 것이 또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이 아니라서 표시할 수가 없는데 무엇으로 경계를 성립하려느냐?

만약 물질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허공이 색깔이 없을 적에는 너의 의식도 응당 없어져야 하± 어떻게 그것이 허공의 성품인 줄을 알 것이며, 만약 색깔이 변할 적엔 너도 그 색깔의 모양이 변함을 안다면 너의 의식은 변하지 않는 것인데 경계가 어디를 좇아 성립되겠느냐?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면 곧 변하므로 경계의 모양이 스스로 없을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면 곧 항상하더라도 이미 빛을 따라 생겼으므로 응당 허공의 소재를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두 가지를 겸해서 눈과 빛이 함께 생기게 했을진댄 합 하였다면 가운데가 나뉘어지고 서로 나뉘어진 것이라면 둘이 합하여진다. 그 체성(體性)이 섞이어 혼란할 것이니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과 빛이 인연이 되어서 눈으로 보아 아는 경계를 생기게 한다고 하는 그 세 가지가 모두 없는 것이어서, 눈과 빛 그리고 빛의 경계, 이 세가지가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8] 귀와 소리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이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로 들어 아는 것이 생긴다'고 하나 그 의식은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소리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소리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현상이 이미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귀가 앎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반드시 아는 것이 없다면 안다는 것도 오히려 성립됨이 없을 터이니 인식이 어떤 모양이겠느냐? 만약 귀로 듣는 것을 취한다면 움직이고 고요함이 없으므로 듣는 것이 성립될 수 없으리니 어떻게 귀와 형상이 물질과 감촉이 섞인 것을 가지고 인식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귀로 인식하는 경계가 다시 어디를 따라 성립되겠느냐?

만약 소리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귀가 인식하는 것은 소리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듣는 것과는 직접 연관이 없을 것이니 듣는 그 자체가 없다면 소리의 소재가 없을 것이다. 저 인식하는 것이 소리를 좇아 생기고 소리는 듣는 것으로 인하여 소리의 모양이 생긴다고 인정한다면 들을 적에 응당 그 인식하는 것을 들어야 하며 듣지 못한다면 귀가 인식하는 경계가 아니리라.

듣는 것은 소리와 같아서 의식이 이미 들음을 당하였거니, 또다시 무엇이 의식을 듣는 것인 줄 알겠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마침내 풀이나 나무와 같을 것이다.

소리와 듣는 것이 섞이어서 중간의 경계를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니 귀가 인식하는 경계가 중간 위치가 없으면 안과 밖의 모양이 다시 어디로부터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가 인식하는 경계를 생기게 한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귀와 소리 그리고 소리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9] 코와 향기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 의식은 코로 인하여 생긴 것 이므로 코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향기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향기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코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마음 속에 그 무엇을 코라고 하겠느냐? 살로 된 한 쌍의 오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느냐? 냄새를 맡아 아는 움직이는 성품이라고 생각하느냐? 만약 살로된 모양이라고 여긴다면 살로 된 바탕은 곧 몸이고 몸이 느끼는 것은 곧 감촉이니 몸이라고 하면 코는 아니고 감촉이라고 하면 이는 곧 감촉의 대상이다. 코도 오히려 이름할 수 없거니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만약 냄새를 맡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할진댄 또 네 마음 속에 무엇으로 안다고 생각하느냐? 살이 안다고 한다면 살이 아는 것은 본래가 감촉이지 코가 아니며 허공이 안다고 한다면 허공은 스스로 아는 것이라서 살은 응당 깨닫지 못할 것이니 그렇다면 이는 허공이 곧 너이고 네 몸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의 아난은 응당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향기가 안다고 생각한다면 아는 그 자체가 향기에 속하는데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만약 향기와 구린 냄새가 반드시 네 코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그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 냄새가 이란(伊蘭)이나 전단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물질이 오지 않을 적에 네가 네 코를 맡아 보아라. 향기로우냐 구리냐?

구린 냄새는 향기가 아니며 향기는 응당 구리지 않으리니 만약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를 다 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너 한 사람이 응당 두 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도 물을 적에도 두 아난이 있으리니 어느 것이 너의 몸이더냐?

만약 코가 하나라면 향기와 구린내 두 가지가 아니라 구린내가 이미 향기가 되며 향기가 다시 구린내가 되어서 두 성분이 있지 아니하리니 경계가 무엇으로 인하여 성립되겠느냐? 만약 향기에 인하여 생긴다면 그 인식은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니 이는 마치 눈이 다른 것은 볼 수 있으면서도 눈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응당 향기를 알지 못하리니 안다면 향기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한다면 이는 코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향기가 앎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향기의 경계가 성립되지 못하고 인식하는 것이 향기를 느끼지 못하면 인식하는 경계가 향기로 해서 이루어짐이 아니리라.

이미 중간이 없으면 안팎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저 냄새맡는 성품이 마침내 허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코와 향기 그리고 향기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0] 혀와 맛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아서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니 그 혀의 인식은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맛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모든 세간의 감자와 오매와 황연과 소금과 세신과 생강, 계피가 모두 맛이 없을 것이다. 네가 네 혀를 맛보아라. 달더냐 쓰더냐?

만약 혀의 성품이 쓰다면 누가 와서 혀를 맛보겠느냐? 혀가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이어니 무엇이 알아 깨닫겠느냐? 혀의 성품이 쓴 것이 아니라면 맛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 터이니 어떻게 경계가 이루어지겠느냐?

만약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인식하는 걋 스스로 맛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는 곧 혀와 같아서 응당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맛인지 맛이 아닌지를 알겠느냐? 또 온갖 맛이 한 물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맛이 여러 가지에서 생기므로 그 인식하는 것도 응당 여러 개의 몸이 될 것이며, 인식하는 본체가 만약 하나이고 그 체는 반드시 맛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맛의 화합된 것이거나 함께 생기는 것과 여러 가지로 변하여 달라진 것이 함께 동일 맛이 되어서 응당 분별이 없을 것이다. 분별이 이미 없으면 인식한다고 할 수 없거니 어떻게 혀가 맛보아서 인식하는 경계라고 하겠느냐? 허공이 너의 마음에 인식을 생기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혀와 맛이 화합하면 곧 그 가운데는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경계가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 처소는 모두 없어서 혀와 맛 그리고 혀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1] 몸과 접촉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몸과 접촉이 인연이 되어서 몸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나니 그 인식은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몸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접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접촉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반드시 합해지고 나눠지는 두 가지를 깨닫게[覺觀]할 인연이 없으리니 몸이 무엇을 알겠느냐?

만약 접촉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너의 몸이 없어야 하리니 어찌 몸도 아닌 것이 합하고 나뉘어짐을 알겠느냐?

아난아! 물질이 접촉하여도 알지 못하고 몸이라야 접촉이 있음을 아나니 몸을 안다면 곧 그것은 접촉하는 놈이고 접촉함을 안다면 곧 그것이 몸이니, 그렇다면 곧 접촉하는 놈이라면 몸이 아니고 몸이라면 접촉하는 놈은 아니다. 몸과 접촉하는 놈이 두 가지는 본래 처소가 없는 것이다. 몸에 합하면 곧 몸 자체의 성품이 되고 몸에서 떠나면 곧 허공과 같은 모양이므로 안과 밖이 이루어지지 않거니 중간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중간이 성립되지 아니하면 안과 밖의 성격이 빌 것인데 너에게 인식하는 것이 생긴다고 한들 어데를 좇아 경계가 성립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과 접촉하는 것이 인연이 되어서 몸과 인식의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어서 몸과 접촉하는 것 그리고 몸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이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2] 생각과 법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아서 '뜻과 법진(法塵)이 인연이 되어서 의식(意識)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 의식은 뜻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뜻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법진(法塵)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법진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뜻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의중(意中)에는 반드시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너의 뜻을 나타나게 하리니 만약 앞의 법진(法塵)이 없으면 뜻이 생길 곳이 없을 것이다. 대상을 여의고서는 형상이 없는 것이거니 의식을 어디다 쓰겠느냐?

또 너는 의식하는 마음과 모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과 겸하여 분명하게 분별하는 성품이 같다고 생각하느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뜻과 같으면 그것이 곧 뜻일 터이니 어떻게 생긴 것이며 뜻과 다르면 같지 아니하므로 응당 인식하는 것이 없어야 하리니, 만약 인식할 것이 없으면 어떻게 뜻이 생긴다고 하겠으며, 만약 인식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 의식(意識)이라고 하겠느냐? 같거나 다르거나 한 두 성품이 성립됨이 없으니 경계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법진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세간의 모든 법이 다섯 가지 대상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너는 빛, 소리, 향기, 맛, 접촉을 살펴 보아라. 모양이 분명하여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상대할지언정 뜻의 간섭을 받는 것은 아니니 너의 의식이 결정코 법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면 너는 지금 자세히 보아라. '법진'이라는 그 법은 어떤 모양이더냐? 만약 밝고 어둡거나 움직이고 고요하거나 통하고 막혔거니 그대로 있고 변하거나 합하고 떠나거나 함을 벗어나면 이 여러 가지 모양을 뛰어 넘고서는 마침내 얻을 것이 없으리니 생긴다면 물질이나 허공 등의 모든 법(法)이 생겨날 것이고 없어진다면 물질이나 허공 등의 모든 법이 없어지느니라.

인연하는 것이 이미 없거니 인연으로 해서 의식이 생기는 것이 어떤 형상이 되겠느냐? 모양이 없으면 경계가 어떻게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과 법진이 인연이 되어서 뜻이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어서 뜻과 법진 그리고 뜻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이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3] 아난이 발하여 일으키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늘 화합과 인연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일체 세간에 갖가지 변화가 모두 네 가지 원소의 화합으로 인하여 드러난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과 자연 두 가지 다 아니라고 배척하셨습니까? 제가 지금 그 뜻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기시어 중생들에게 중도의 또렷한 이치를 보이시와 장난같은 논리에 빠짐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 때에 세존이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앞에서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모든 소승법(小乘法)을 싫어해서 발심하여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성실하게 탐구하므로 내가 지금 너에게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열어 보였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세간의 장난같은 논리인 망상의 인연에 스스로 얽매이느냐? 네가 비록 많이 들었다고는 하나 마치 약을 말하는 하는 사람이 참다운 약이 앞에 있는데도 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여래가 진실로 너를 가련하다고 하신 것이니라."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분별해서 열어 보이며 또한 장래에 대승을 닦을 자들로 하여금 실상을 통달하게 하겠다.

아난이 잠자코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들었다. 아난아! 네 말과 같아서 '네 가지 원소[四大]가 화합하여 세간의 갖가지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니, 아난아! 만약 저 원소[大]의 성품 자체가 화합이 아니라면 모든 원소와 섞일 수 없음이 마치 허공의 모든 물질이 화합할 수 없는 것과 같고, 만약 화합할 수 있다면 변화함과 같아서 처음과 끝이 서로 이루어지며 나고 없어짐이 서로 이어져서 났다가는 죽고 죽었다가는 나며 나고 죽고 죽음이 마치 화륜(火輪)이 도는 것과 같아서 쉼이 없으리라.

아난아! 마치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얼음이 다시 물이 되는 것과 같나니라.

 

[14] 흙이라는 원소

네가 땅의 성품을 살펴 보아라. 큰 것은 큰 땅덩이가 되고 작은 것은 미세한 먼지가 되나니, 인허진(隣虛塵)에 이르러서는 아주 지극히 작은 색변제상(色邊際相 : 지금의 분자)을 일곱 등분으로 쪼개어서 이루어진 것이니 다시 인허진을 쪼갠다고 한들 어찌 참다운 허공의 성품이야 되겠느냐? 아난아! 만약 저 지극히 작은 먼지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허공도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네가 지금 '화합으로 말미암아 세간에 모든 변화하는 현상이 생기지 않느냐'고 물었으니 너는 우선 이 하나의 지극히 작은 먼지를 보아라. 몇 개의 허공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냐?

응당 지극히 작은 먼지가 합해져서 지극히 작은 먼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지극히 작은 먼지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얼마나 되는 물질이 합해서 허공이 되었겠느냐?

만약 물질이 합해졌을 경우 물질이 합해진 것이지 허공은 아니며 만약 허공이 합해졌을 경우 허공이 합해진 것이지 물질은 아니니, 물질은 오히려 쪼갤 수가 있지만 허공이야 어떻게 합할 수가 있겠느냐?

너는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질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물좇 청정하고 본래의 자연 그대로여서 이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 정도에 응하여 업보대로 나타나거늘 세간 사람들은 지식이 없어서 인연과 자연의 성품이라고 픽ㅗ構 있으니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므로 다만 말이 있을 뿐이지 실제 이치는 전연 없는 것이니라.

 

[15] 불이라는 원소

아난아! 불이라는 원소[火大]의 성품은 실체가 없어서 모든 인연에 붙어야만 하나니 너는 이 성 안에 밥을 먹지 아니한 집을 보아라. 밥을 지으려고 할 적에 손에 양수(陽燧)를 들고 햇볕 앞에서 불을 구하나니 아난아! 화합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내가 너희들 一千二百 五十비구들과 지금 한 무리가 된 것과 마찬가지니 그 무리는 비록 하나이나 그 근본을 따지면 각각 몸이 다르며 모두 태어난 씨족과 그 이름이 따로 있으니 사리불은 바라문 종족이고 우루빈나는 가섭바(迦葉波)종족이고 그리고 아난은 구담(瞿曇)의 종성인 것과 같나니라.

아난아! 만약 불의 성품이 화합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라면 저 손이 거울을 잡고 햇빛에서 불을 구할 적에 그 불은 거울 속에서 나오는 것이냐 쑥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니면 해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해에서 나왔다면 자연 네 손에 있는 쑥을 태울 적에 거쳐 오는 곳의 숲과 나무가 모두 타야 할 것이며, 만약 거울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울에서 나와 쑥을 태울 수 있는 것인데 거울은 어찌하여 녹지 않느냐? 네 손에 들려 있으면서도 오히려 뜨겁지도 아니하니 어떻게 녹겠느냐? 만약 쑥에서 생긴 것이라면 어째서 해와 거울의 빛이 서로 닿은 다음에야 불이 생기느냐?

너는 또 자세히 보아라. 거울은 손에 들려 있고 해는 하늘에서 오며 쑥은 땅에서 난 것인데 불은 어느 곳으로부터 여기에 온 것이냐? 해와 거울이 거리가 멀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그렇다고 불꽃이 나는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니라.

네가 오히려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속에 성품이 불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불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 퍼져 있으면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는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한 곳에서 거울을 들면 한 곳에 불이 생기고 우주에 골고루 들고 있으면 온 세상에 가득하게 일어날 것이다. 온 세상에 골고루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생각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16] 물이라는 원소

아난아! 물의 성품은 일정하지 않아서 흐르고 그치는 것이 항상함이 없나니라. 시라벌성에 가비라(迦毘羅)신선과 작가라(斫迦羅)신선과 발두마(鉢頭摩)와 하살다(訶薩多)등의 환술사 들이 달[太陰]의 정기를 구하여 그것으로 환술의 약을 화합할 적에 그 환술사들의 달밝은 밤중에 손에 방저(方諸)를 들고 달 속의 물을 받는데 그 물은 구슬 속에서 나온 것이냐 공중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냐 아니면 달에서 온 것이냐?

아난아! 만약 달에서 온 것이라면 오히려 먼 곳에 구슬로 하여금 물이 생기게 할 수 있는 것이거니 그렇다면 경과하는 곳의 숲과 나무가 다 물이 흘러야 하리니 물이 흐른다면 어찌하여 방저(方諸)에서 생기기를 기다릴 것이며 흐르지 않는다면 물이 달에서 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만약 구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 구슬 속에 항상 물이 흐르리니 어찌하여 밤중에 밝은 달빛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의 성품이 변두리가 없으므로 물도 마땅히 한계가 없어서 인간으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다함께 물에 잠길것인데 어찌하여 다시 물과 육지와 허공의 구별이 있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히 보아라. 달은 하늘에 떠 있고 구슬은 손에 들려 있고 구슬의 물을 받는 쟁반은 본래 사람이 설치해 놓은 것이니 물은 어디로부터 여기에 흐르느냐? 달과 구슬은 거리가 서로 멀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물의 정기가 오는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기지는 아니할 것이다.

너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물이 청정한 본래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한 곳에서 구슬을 잡으면 한 곳에 물이 나오고 온 우주에서 두루 잡으면 우주에 가득하게 생긴다. 세상에 가득하게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 말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는 것이다.

 

[17] 바람이라는 원소

아난아! 바람의 성품은 실체가 없어서 움직이고 고요함이 일정하지 아니하다. 네가 옷깃을 여미고 대중에게 들어갈 적에 가사 자락이 펄럭여서 곁에 있던 사람에게 미치면 곧 가벼운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 스치리니 그 바람은 가사에서 나오느냐 허공에서 생겼느냐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겼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네 옷이 펄럭이지 아니하였을 적에는 어떤 연고로 바람이 스치지 않느냐? 허공의 성품은 항상 있는 것이므로 바람도 마땅히 항상 있어야 할 것이며 바람이 없을 적에는 허공이 마땅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없는 것은 알 수가 있지만 허공이 없어지는 것은 어떤 모양일까? 만약 생기거나 없어짐이 있다면 허공이라고 이름하지 못할 것이고 허공이라고 이름한다면 어찌하여 바람이 나오겠느냐?

만약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마땅히 네게로 불어와야 할 것인데 네가 옷을 여밀적에 어찌하여 바람이 꺼꾸로 부느냐?

너는 자세히 보아라. 옷을 여미는 것은 너에게 있고 얼굴은 저 사람에 속해 있으며 허공은 고요하여 요동하지 않는데 바람은 어느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것이냐? 바람과 허공은 성품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화합이 아니니 바람이 어디서부터 온 데가 없는데 저절로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니라.

>너는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속에 성품이 바람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바람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해서 중생들의 마음으로부터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아난아! 만일 너 한 사람이 의복을 약간 펄럭이면 가벼운 바람이 나오고 우주에 골고루 펄럭거리면 우주에 가득하게 생기나니 세상에 골고루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거늘 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克건構 헤아림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는 것이다.

 

[18] 보는 원소

아난아! 보고 깨닫는 것이 앎이 없어서 물질과 허공으로 인하여 생기나니 네가 지금 기타림에 있을 적에 아침에는 밝고 저녁에는 어두우며 설사 밤중이라도 보름달이 비출 적에 환하고 그믐에는 어두운데 그 밝고 어두운 것들을 보는 것으로 인하여 분석하나니, 보는 것이 밝고 어두운 형상과 아울러 큰 허공과 똑같이 한 덩어리이냐 한 덩어리가 아니냐? 혹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며 혹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

아난아! 그 보는 것이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큰 허공으로 더불어 본래 한 덩어리라면 밝고 어두운 두 가지 실체가 서로 없어서 어두울 적엔 밝음이 없어지고 밝을 적엔 어두움이 없어지리라.

만약 어둠과 한 덩어리라면 밝은 적에는 마땅히 보는 놈이 없어질 것이며 반드시 밝음과 한 덩어리라면 어두울 적에는 마땅히 보는 놈이 없어질 것이다. 없어지면 어떻게 밝음과 어두움을 보겠느냐? 만약 밝음과 어두움은 다르다고 할지언정 보는 놈은 생기고 없어짐이 없을 것인데 한 덩어리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이와 같이 보는 정기가 밝음과 어둠으로 한 덩어리가 아니라면 너는 밝음과 어둠 그리고 큰 허공을 여의고서 보는 놈의 근원을 분석해 보아라. 어떤 모양이겠느냐? 밝음을 여의고 어두움을 여의며 그리고 허공을 여의면 보는 놈은 본래 거북의 털이나 토끼 뿔과 같을 것이니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허공, 이 세 가지가 다 다르다면 무엇으로 인하여 보는 놈이 성립되겠느냐?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배치되는데 어떻게 같다고 하겠으며 세 가지를 다 여의면 본래 없는데 원래 없는 것은 어떻게 다르다고 하겠으며, 허공을 보는 놈을 나눈다면 본래 한계가 없는데 어떻게 같지 않다고 하겠으며, 어두움도 보고 밝음도 보아서 보는 성품이 변하여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하게 살펴 보아라. 밝음은 태양으로부터 오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데서 오며 통함은 허공에 속하고 막힘은 대지(大地)로 돌아간다. 이와 같아서 보는 정기는 어디로 인하여 생기느냐?

보는 것은 깨달음이고 허공은 완고한 것이어서 화합이 아니니 보는 정기가 어디서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라. 오묘하게 보고 듣고 아는 것이 그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동요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변두리가 없고 동요하지 않는 허공과 동요하는 흙, 물, 불, 바람을 아울러 여섯 가지 원소라고 이름하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고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너의 성품이 잠겨 빠져서 네가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 생기더냐 없어지더냐 같더냐 다르더냐 생기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냐 같음도 다름도 아니냐?

너는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보는 것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봄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이는 마치 하나의 보는 놈이 우주를 두루보는 것처럼 듣는 놈, 냄새맡는 놈, 맛보는 놈, 접촉하는 놈, 그리고 깨달아 아는 놈이 오묘한 덕이 밝아서 우주에 두루하고 시방에 원만하거니 어찌 장소가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의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19] 의식이라는 원소

아난아! 의식의 성품은 근원이 없어서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생기나니라.

네가 지금 이 모임의 성스러운 대중들을 두루 살필 적에 눈으로써 차례로 둘러보는데 그 눈이 둘러보는 것은 다만 맑은 거울과 같아서 별달리 분석할 것이 없겠지만 너의 의식은 속에서 차례로 지목하기를 이는 문수이고 부루나이며, 이는 목건련이고 수보리이며, 이는 사리불이라고 할 것이니라.

그렇게 아는 의식이 보는 놈에서 생기는 것이냐 대상에서 생기는 것이냐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냐 까닭없이 돌연히 나오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너의 의식의 성품이 보는 가운데에서 생긴다면 밝고 어두운 것과 물질과 허공은 없을 것이다. 이 네 가지가 반드시 없으면 따라서 너의 보는 것도 없어지리니 보는 성품도 오히려 없거니 무엇으로부터 의식이 발생하느냐? 만약 너의 의식하는 성품이 대상 속에서 생기고 보는 것을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밝음도 보지 못하며 어두움도 보지 못해서 밝고 어두움을 보지 못하면 곧 허공과 물질이 없으리니 그 대상도 오히려 없거니 의식이 무엇으로부터 발생하겠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겼다면 대상도 아니고 보는 놈도 아닐지니 보는 놈이 아니라면 분별함이 없어서 자연 밝음도 어두움도 허공도 물질도 알지 못할 것이며, 대상이 아니라면 인연이 없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편안하게 성립할 곳이 없을 것이다. 대상도 아니고 보는 것도 아닌 데에 있다고 한다면 허공은 없는 것과 같을 것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물질의 형상과는 같지 않을 것이니 비록 너의 의식이 발생한다한들 무엇을 분별하겠느냐?

만약 원인도 없이 돌연히 나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한낮에는 밝은 달을 인식하지 못하느냐?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보는 놈은 네 눈에 의지하였고 대상은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미루어 말하는 것이니, 형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형상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 되나니 이와 같은 의식의 인연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의식은 움직이고 보는 놈은 맑아서 화(和)도 아니고 합(合)도 아니며 듣고 냄새 맡고 깨닫고 아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의식의 인연이 좇아서 온 데가 없이 스스로 생기지는 아니하니라.

만약 이 의식하는 마음이 본래 좇아온 데가 없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확실하게 분별하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원만하고 고요하고 맑아서 그 성품이 좇아온 데가 없는 것이니, 저 허공과 흙, 물, 불, 바람을 겸하여 균등하게 일곱가지 원소라고 하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거나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네 마음이 거칠고 허망해서 보고 듣고 밝음을 발하여 확실하게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여섯 가지 처소에서 의식하는 마음을 관찰하여 보아라. 같으냐 다르냐 빈 것이냐 있는 것이냐? 아니면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더냐 빈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더냐?

너는 일찌기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의식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의식은 오묘한 깨달음이 맑고 고요하여 우주에 두루해서 시방세계를 삼켰다 뱉었다 하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장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림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20] 허공이라는 원소

아난아! 허공의 성품은 형상이 없으므로 색깔로 인하여 나타나나니 이는 마치 시라벌성처럼 강이 먼 곳에 모든 찰제리 종족과 그리고 바라문과 비사와 수타와 또는 바라타와 전다라 등이 편안히 살 곳을 새로 세우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구할 적에 흙을 한 자[尺]쯤 파내면 그 속에 한 자의 허공이 생기고 이와 같이 흙을 한 길[丈]쯤 파내면 그 속에 다시 한 길의 허공이 생기게 되어 허공의 얕고 깊음이 흙을 많이 파내고 적게 파내는 것에 따라 생기나니 허공은 흙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파내는 도구로 인하여 생기느냐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기느냐?

아난아! 만약 또 혀공이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흙을 파내기 전에는 어찌하여 걸림이 없지 아니해서 오직 아득한 대지(大地)만 보이고 멀리 통달하지 못하더냐? 만약 흙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흙을 파낼 적에 응당 허공이 줄어들어감을 보아야 할 것인데 만약 흙이 먼저 나오는데도 허공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허공이 흙으로 인하여 생긴다고 하겠느냐? 만약 나오거나 줄어들어감이 없다면 허공과 흙이 본래 다른 원인이 없을 것이니 다른 원인이 없으면 같은 것이거늘 그렇다면 흙이 나올 적에 허공은 어찌하여 나오지 않느냐?

만약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허공이 생긴다면 마땅히 파내는 데에 따라 허공이 생기는 것이므로 흙은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며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파냄으로해서 흙이 나오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허공을 보게 되느냐?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파내는 도구는 사람의 손으로부터 방향을 따라 움직이고 흙은 땅으로 인하여 옮겨지니 이와 같이 허공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파내서 허공이 되게 함은 허(虛)와 실(實)이 서로 작용하지 못해서 화합함이 아니니 응당 허공도 어느 곳으로부터 온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니라.

만약 이 허공의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요동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앞에서 밝힌 흙, 물, 불, 바람과 보는 것, 의식, 그리고 허공과 함께 균등하게 일곱 가지 원소[七大]라고 하니 그 성품은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나고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너의 마음이 혼미해서 네 가지 원소가 본래 여래장임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허공을 살펴 보아라. 나오느냐 들어 가느냐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너는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깨달음과 성품이 깨달음인 참다운 허공은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느니라. 아난아! 만약 하나의 우물을 파서 공간이 생기면 허공이 한 우물만치 생기는 것과 같아서 시방의 허공도 그와 같이 시방에 원만한 것이거니 어찌 방향과 장소가 있겠느냐? 업장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어늘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여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인양 의혹하나니 이는 모두가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기 때문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니라.

 

[21] 아난이 게송으로 찬탄함

그때에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오묘한 가르치심을 받고서 몸과 마음이 환하게 열려서 걸림이 없어지고 모든 대중들이 각각 스스로 마음이 시방에 가득함을 깨달아서 시방의 허공 보기를 마치 손에 가지고 있는 나뭇잎을 보듯하며, 모든 세상의 사물들이 모두 보리의 오묘하고 밝은 원래의 마음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의 정기가 두루하고 원만해서 시방을 둘러싸고 있어 부모가 낳아준 몸을 돌이켜 보되 이는 마치 저 시방의 허공 속에 나부끼는 한 작은 먼지가 있는 듯 없는 듯한 것과 같고, 마치 큰 바다에 떠가는 한조각 물거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좇아 온 데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 분명히 스스로 깨달아서 본래 오묘한 마음이 항상 머물러서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을 증득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합장하여 일찍기 없었던 초유의 일을 얻고서는 여래의 앞에서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미묘하고 청정한 덕을 모두 지니신 흔들림이 없으신 세존께서는 수능엄왕으로서 세상에 드문 존재이십니다. 저의 억겁 동안 뒤바뀌었던 허망한 생각을 없애 주셔서 아승지겁을 거치지 않고서도 법신을 얻게 하였습니다. 지금 저희들도 성과(聖果)를 얻어 보왕(寶王)이 되어서 이렇게 항하사 같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깊은 마음으로 티끌 같은 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받들 것이오니 이것은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증명하여 주소서. 맹세코 오탁(五濁)의 악세에 먼저 들어가서 단 하나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위하여 열반에 들지 않겠습니다. 큰 자비와 큰 힘을 지니신 거룩하신 분이시여 다시금 저희들의 미세한 의혹을 없애게 하사 저로 하여금 하루 바삐 위 없는 깨달음에 올라 시방 세계의 도량에 앉게 하여 주소서.

허공[舜若多]의 성품은 없앨 수 있을지언정 굳고 굳은 이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 卷三 끝 >>

 

 

https://www.youtube.com/watch?v=Rc6Z0gLv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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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의 능엄신주 범어독음과 국역

https://www.youtube.com/watch?v=Rc6Z0gLvp-Y https://kydong77.tistory.com/21628 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 국역 전10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ube393&logNo=220020727513 능엄경 전문 正本首楞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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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迷心萬行 未免輪回(미심만행 미면윤회)

제2장 迷心萬行 未免輪回(미심만행 미면윤회) 미혹한 마음으로 만행을 해도 윤회는 면치 못한다 5. 問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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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二卷

제2장

迷心萬行 未免輪回(미심만행 미면윤회)

미혹한 마음으로 만행을 해도 윤회는 면치 못한다

5.

問曰:若不見性,念佛誦經布施持戒精進,廣興福利,得成佛否?

“만약 본성을 보지 않더라도,

염불하고, 경을 외우고,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정진(精進)하고, 널리 복되고 이로운 일을 한다면,

성불(成佛)할 수 있습니까?“

答曰:不得。

“성불할 수 없다.“

又問:因何不得?

“어찌하여 성불할 수 없습니까?“

答曰:有少法可得,是有為法,是因果、是受報、是輪迴法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법이라도 있다면,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고,

인과법(因果法)으로서, 과보(果報)를 받는 것이니, 곧 윤회(輪廻)하는 법이다.

不免生死,何時得成佛道。成佛須是見性。

생사(生死)를 벗어나지 못하고서, 어느 때에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겠는가?

성불이란 모름지기 본성을 보는 것이다.

若不見性,因果等語,是外道法。

만약 본성을 보지 않으면, 인과(因果) 등의 말들은 외도(外道)의 법이다.

若是佛不習外道法。

만약 부처라면, 외도법(外道法)을 익히지 않는다.

佛是無業人,無因果,

부처는 업을 짓는 사람이 아니니, 부처에게는 인과(因果)가 없다.

但有少法可得,盡是謗佛,憑何得成。

다만 얻을 수 있는 조그만 법이라도 있기만 하면, 모두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어떻게 성불하겠는가?

但有住著一心一能一解一見,佛都不許。

하나의 마음(一心)에든, 하나의 능력(一能)에든, 하나의 이해(一解)에든, 하나의 견해(一見)에든, 머물기만 하면, 부처는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佛無持犯,

부처에게는 지키거나 범할 것이 없다.

心性本空,亦非垢淨。

마음의 본성은 본래 공(空)이니, 역시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諸法無修無證,無因無果。

모든 법은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佛不持戒,佛不修善,佛不造惡,佛不精進,佛不懈怠,

부처는 계율을 지키지도 않고, 선(善)을 닦지도 않고, 악(惡)을 짓지도 않고, 정진(精進)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다.

佛是無作人。但有住著心,見佛即不許也。

부처는 만드는 일이 없는 사람이니, 마음에 머물러 부처를 본다면, 용납되지 않는다.

佛不是佛,莫作佛解。

부처는 부처가 아니니, 부처라는 견해를 만들지 말라.

若不見此義,一切時中,一切處處,皆是不了本心。

만약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한다면,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결코 본래 마음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若不見性,一切時中擬作無作想,是大罪人,

만약 자성을 보지 못하고서, 언제나 ‘만드는 일이 없다’라는 생각을 만들려 한다면, 이것은 큰 죄인이고,

是癡人,落無記空中;昏昏如醉人,不辨好惡。

어리석은 사람이고, 무분별의 허공 속에 떨어져서 어둡기가 술취한 것과 같은 사람이어서 좋고 나쁨을 판별하지 못한다.

若擬修無作法,先須見性,然後息緣慮。

만약 만드는 일이 없는 법을 닦으려 한다면, 먼저 반드시 자기성품을 본 연후에야 반연하는 생각이 쉬어지는 것이다.

若不見性得成佛道,無有是處。

자성을 보지 못하고도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는 경우는 절대 없다.

有人撥無因果,熾然作惡業,妄言本空,作惡無過;

어떤 사람은 인과(因果)를 무시하고 마구 악업(惡業)을 짓고는, 망녕되이 말하기를,

‘본래 공(空)이니 악한 일을 해도 허물이 없다.’고 한다.

如此之人,墮無間黑暗地獄,永無出期。

이러한 사람은 무간흑암지옥(無間黑暗地獄)에 떨어져 영원토록 벗어날 기약이 없다.

若是智人,不應作如是見解。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된다.

6.

問曰:既若施為運動,一切時中皆是本心;色身無常之時,云何不見本心?

“이미 움직이고 동작함이 언제나 모두 본래 마음이라면, 육체가 무상(無常)할 때에 어떻게 본래 마음을 보지 못합니까?“

答曰:本心常現前,汝自不見?

“본래 마음이 늘 앞에 드러나 있지만,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問曰:心既見在,何故不見?

“마음이 이미 드러나 있는데, 무슨 까닭에 보지 못합니까?“

師曰:汝曾作夢否?

“그대는 꿈을 꾼 적이 없는가?“

答:曾作夢。

“꿈 꾼 적이 있습니다.“

問曰:汝作夢之時,是汝本身否?

“그대가 꿈을 꿀 때에, 그대의 본래 몸인가?“

答:是本身。 

“본래 몸입니다.“

又問:汝言語施為運動與汝別不別?

“그대의 말과 움직임과 동작은 그대와 따로 있는가, 따로 있지 않는가?“

答曰:不別。 

“따로 있지 않습니다.”

師曰:既若不別,即此身是汝本法身;即此法身是汝本心。

“이미 따로 있지 않다면, 곧 이 몸이 그대의 본래 법신(法身)이고, 이 법신이 그대의 본래 마음이다.

此心從無始曠大劫來,與如今不別;

이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과 다르지 않아서, 생기거나 사라진 적이 없다.

未曾有生死,不生不滅。不增不減,不垢不淨,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고,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好不惡,不來不去;亦無是非、亦無男女相、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옳고 그름도 없고, 남녀의 모습도 없고,

不亦無僧俗老少、無聖無凡;亦無佛、亦無眾生、

승속(僧俗)과 노소(老少)도 없고, 성인(聖人)도 없고, 범부도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亦無修證、亦無因果、亦無筋力、亦無相貌;

닦아서 깨달음도 없고, 원인도 결과도 없고, 근력(筋力)도 없고, 용모(容貌)도 없다.

猶如虛空,取不得、捨不得,山河石壁不能為礙;

마치 허공과 같아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산이나 강이나 석벽(石壁)이 가로 막을 수도 없다.

出沒往來,自在神通;

나타나고 사라지고 가고 옴에, 자재(自在)하고 신령스러이 통한다.

透五蘊山,渡生死河;一切業拘此法身不得。

오온(五蘊)의 산을 통과하고, 생사(生死)의 강을 건너니, 어떤 업(業)이라도 이 법신(法身)을 구속할 수 없다.

此心微妙難見,此心不同色心,

이 마음은 미묘(微妙)하여 보기가 어려우니, 이 마음은 색심(色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此心是人皆欲得見。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니, 사람들은 모두 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於此光明中運手動足者,如恆河沙,及乎問著,總道不得,猶如木人相似,

이 광명(光明) 속에서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물어 보면 전혀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나무로 만든 사람과 같다.

總是自己受用,因何不識?

모두가 스스로 받아서 사용하는데, 무슨 까닭에 알지 못하는가?

佛言一切眾生,盡是迷人,因此作業,墮生死河,欲出還沒,只為不見性。

부처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은 전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까닭에 업을 지어서

생사(生死)의 강에 떨어져 나오고자 하지만 도리어 잠겨 버리니, 단지 본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眾生若不迷,因何問著其中事,無有一人得會者,自家運手動足因何不識?

중생이 만약 어리석지 않다면, 무슨 까닭으로 물어 보면 그 가운데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으며, 스스로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면서도 무슨 까닭에 알지 못하는가?

故知聖人語不錯,迷人自不會曉。

그러므로 성인의 말은 잘못됨이 없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故知此難明,惟佛一人能會此法;餘人天及眾生等,盡不明了。

그러므로 이것은 밝히기가 어려워서 오직 부처 한 사람만이 이 마음을 잘 알아차릴 뿐,

나머지 사람들과 하늘사람과 중생들은 전혀 밝게 깨닫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若智慧明了,此心號名法性,亦名解脫。生死不拘,

만약 지혜가 이 마음을 밝게 깨달으면, 바야흐로 법성(法性)이라 이름하고, 또 해탈이라 이름 하니, 생사에 구속받지 않기 때문이다.

一切法拘它不得,是名大自在王如來;

모든 법이 그를 구속할 수 없으니, 일컬어 크게 자유로운 으뜸가는 여래[大自在王如來]라 하고,

亦名不思議,亦名聖體,

또 생각과 말로 하지 못한다[不思議, 부사의]고 하고, 또 성스러운 바탕[聖體, 성체]이라고 하고,

亦名長生不死,亦名大仙。

또 영원히 살아서 죽지 않는다[長生不死]고 하고, 또 큰 신선[大仙]이라 한다.

名雖不同,體即是一。聖人種種分別,皆不離自心。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바탕은 곧 하나이니, 성인(聖人)이 여러 가지로 분명한 것이 모두 자기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心量廣大,應用無窮,應眼見色,應耳聞聲,

마음의 크기는 광대하고, 응대하여 작용함은 끝이 없다. 눈에 응해서는 색을 보고, 귀에 응해서는 소리를 듣고,

應鼻嗅香,應舌知味,乃至施為運動,皆是自心。

코에 응해서는 냄새를 맡고, 혀에 응해서는 맛을 알고, 나아가 움직이고 동작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이다.

一切時中但有語言道斷,即是自心。

언제나 말길이 끊어지기만 하면, 곧 자기 마음이다.

故云如來色無盡,智慧亦復然。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색(色)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그러하다.’라고 하였다.

色無盡是自心,心識善能分別一切,乃至施為運用,皆是智慧。

색에 다함 없음이 곧 자기 마음이고, 마음인 의식이 모든 것을 잘 분별함과 나아가 움직이고 동작함이 모두 지혜이다.

心無形相,智慧亦無盡。

마음은 모습이 없고, 지혜 역시 다함이 없다.

故云如來色無盡,智慧亦復然。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색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그러하다.’고 한 것이다.

四大色身,即是煩惱,色身即有生滅,

사대색신(四大色身)이 곧 번뇌이니, 색신에는 생멸(生滅)이 있기 때문이다.

法身常住無所住,

법신은 언제나 머물러 있으니, 다시 머물 것은 없다.

如來法身常不變異故。

래의 법신은 한결같아서 다르게 변하지 않는다.

經云:眾生應知,佛性本自有之。

그러므로 경(經)에서 말하기를, ‘중생은 불성이 본래 스스로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라고 하였다.

7.

迦葉只是悟得本性,

가섭(迦葉)은 다만 본성(本性)을 깨달았을 뿐이다.

本性即是心,心即是性,性即此同諸佛心。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본성이다. 바로 이것이 모든 부처의 마음과 같다.

前佛後佛只傳此心,除此心外,無佛可得。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이 마음을 전하였을 뿐이다. 이 마음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다.

顛倒眾生不知自心是佛,向外馳求,終日忙忙;

뒤집힌 중생은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치달려 찾아서 하루 종일 바쁘다.

念佛禮佛,佛在何處?

염불(念佛)하고 예불(禮佛)하지만, 부처가 어디에 있는가?

不應作如是等見,但知自心,心外更無別佛。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된다. 단지 자기 마음만 알면, 마음 밖에 다시 다른 부처가 없다.

經云:凡所有相,皆是虛妄。又云:所在之處,即為有佛。

경(經)에서 말하기를 ‘무릇 모습 있는 것은 모두 허망(虛妄)하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있는 그곳에 곧 부처가 있다.’ 고 하였다.

自心是佛,不應將佛禮佛;

但是有佛及菩薩相貌,忽爾見前,切不用禮敬。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이니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해서는 안된다.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문득 앞에 나타나더라도, 결코 절하고 공경할 필요가 없다.

我心空寂,本無如是相貌,

若取相即是魔,盡落邪道。

나의 마음은 텅 비고 고요하니, 본래 그런 모습은 없다.

만약 모습을 취한다면 곧 마구니에게 포섭되니, 모두 사도(邪道)에 떨어진다.

若是幻從心起,即不用禮。

만약 (불상과 보살상이라는) 환상(幻想)이 마음에서 생긴다면, 절할 필요가 없다.

禮者不知,知者不禮,禮被魔攝。

절하는 자는 (진실을) 알지 못하고, (진실을) 아는 자는 절하지 않는다.

절 하는 것은 마구니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恐學人不知,故作是辨。

학인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할까봐 염려되어, 그 때문에 이렇게 판별하는 것이다.

諸佛如來本性體上,都無如是相貌,切須在意。

모든 부처와 여래와 본성(本性)의 바탕 위에는 전혀 이러한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但有異境界切不用採括,亦莫生怕怖,不要疑惑,

다른 경계가 있더라도, 결코 붙잡아 취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我心本來清淨,何處有如許相貌。

나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니, 어느 곳에 이와 같은 모습이 있겠는가?

乃至天龍夜叉鬼神帝釋梵王等相,亦不用心生敬重,亦莫怕懼;

나아가 천룡(天龍), 야차(夜叉), 귀신(鬼神), 제석천(帝釋天), 범천(梵天) 등의 모습에 대해서도, 또한 마음을 써서 공경하거나 귀중하게 여기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我心本來空寂,一切相貌皆是妄見,但莫取相。

나의 마음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니, 모든 모습은 전부 허망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결코 모습을 붙잡지는 말라.

若起佛見法見,及佛菩薩等相貌,而生敬重,自墮眾生位中。

만약 부처라는 견해, 법이라는 견해를 내고, 부처라는 모습, 보살이라는 모습을 내어서,

공경하고 귀중하게 여긴다면, 스스로 중생의 처지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若欲直會,但莫取一切相即得,更無別語。

만약 진실로 알아차리고자 한다면, 다만 어떤 모습도 취하지 않으면 될 뿐, 달리 할 말은 없다.

故經云:凡所有相,皆是虛妄。都無定實,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무릇 있는 모습들은 모두 허망하다.'고 하였으니, 전혀 정해진 진실은 없는 것이다.

幻無定相。是無常法,

환상(幻相)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으니, 이것이 곧 무상(無常)한 법이다.

但不取相,合它聖意。

단지 모습을 취하지 않기만 하면, 저 성인의 뜻과 합할 것이다.

故經云:離一切相,即名諸佛。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모습을 떠난 것을 모든 부처라고 일컫는다.’라 한 것이다.

<< 卷2 끝 >>

 

http://buddhism.lib.ntu.edu.tw/BDLM/sutra/chi_pdf/sutra10/T19n0945.pdf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二

(一名中印度那蘭 陀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爾時,阿難及諸大眾聞佛示誨身心泰然,念無始來失却本心,妄認 緣塵分別影事,今日開悟如失乳兒忽遇慈母,合掌禮佛,願聞如來 顯出身心真妄虛實現前生滅與不生滅二發明性。

波斯匿王起立白佛:「我昔未承諸佛誨勅,見迦旃延毘羅胝子,

咸 言:『此身死後斷滅,名為涅槃。』

我雖值佛今猶狐疑,云何發揮 證知此心不生滅地?令此大眾諸有漏者咸皆願聞。」

佛告大王:「汝身現存,今復問汝,汝此肉身為同金剛常住不朽? 為復變壞?」

「世尊!我今此身終從變滅。」

佛言:「大王!汝未曾滅,云何知滅?」

「世尊!我此無常變壞之身雖未曾滅,我觀現前念念遷謝新新不 住,如火成灰漸漸銷殞殞亡不息,決知此身當從滅盡。」

佛言:「如是,大王!汝今生齡已從衰老,顏貌何如童子之時?」

「世尊!我昔孩孺膚腠潤澤,年至長成血氣充滿,而今頹齡迫於衰 耄,形色枯悴精神昏昧,髮白面皺逮將不久,如何見比充盛之 時。」

佛言:「大王!汝之形容應不頓朽。」

17

王言:「世尊!變化密移我誠不覺,寒暑遷流漸至於此。何以故? 我年二十雖號年少,顏貌已老初十年時;三十之年又衰二十;于今 六十又過于二;觀五十時宛然強壯。世尊!我見密移雖此殂落,其 間流易且限十年,若復令我微細思惟,其變寧唯一紀二紀,實為年 變;豈唯年變,亦兼月化;何直月化,兼又日遷;沈思諦觀剎那剎 那,念念之間不得停住,故知我身終從變滅。」

佛言:「大王!汝見變化遷改不停,悟知汝滅;亦於滅時,知汝身 中有不滅耶?」

波斯匿王合掌白佛:「我實不知!」

佛言:「我今示汝不生滅性。大王!汝年幾時見恒河水?」

王言:「我生三歲,慈母携我謁耆婆天,經過此流。爾時即知是恒 河水。」

佛言:「大王!如汝所說,二十之時衰於十歲,乃至六十,日月歲 時念念遷變,則汝三歲見此河時,至年十三其水云何?」

王言:「如三歲時,宛然無異,乃至于今年六十二,亦無有異。」

佛言:「汝今自傷髮白面皺,其面必定皺於童年,則汝今時觀此恒 河,與昔童時觀河之見有童耄不?」

王言:「不也,世尊!」

佛言:「大王!汝面雖皺,而此見精性未曾皺,皺者為變、不皺非 變,變者受滅、彼不變者元無生滅,云何於中受汝生死,而猶引彼 末伽梨等都言此身死後全滅?」

王聞是言,信知身後捨生趣生,與諸大眾踊躍歡喜得未曾有。

18

阿難即從座起禮佛,合掌長跪白佛:「世尊!若此見聞必不生滅, 云何世尊名我等輩遺失真性顛倒行事?願興慈悲洗我塵垢。」

即時,如來垂金色臂,輪手下指示阿難言:「汝今見我母陀羅手為 正為倒?」

阿難言:「世間眾生以此為倒,而我不知誰正誰倒。」

佛告阿難:「若世間人以此為倒,即世間人將何為正?」

阿難言:「如來竪臂,兜羅綿手上指於空,則名為正。」

佛即竪臂,告阿難言:「若此顛倒首尾相換,諸世間人一倍瞻視, 則知汝身與諸如來清淨法身比類發明,如來之身名正遍知,汝等之 身號性顛倒,隨汝諦觀汝身佛身,稱顛倒者名字何處號為顛倒?」

于時,阿難與諸大眾瞪矒瞻佛目精不瞬,不知身心顛倒所在。佛興 慈悲哀愍阿難及諸大眾,發海潮音遍告同會:

「諸善男子!我常說 言:『色心諸緣及心所使諸所緣法,唯心所現。』汝身汝心皆是妙 明真精妙心中所現物,云何汝等遺失本妙圓妙明心寶明妙性,認悟 中迷晦昧為空,空晦暗中結暗為色,色雜妄想想相為身,聚緣內搖 趣外奔逸,昏擾擾相以為心性。一迷為心,決定惑為色身之內,不 知色身外洎山河虛空大地,咸是妙明真心中物。譬如澄清百千大 海,棄之,唯認一浮漚體,目為全潮窮盡瀛渤。汝等即是迷中倍 人,如我垂手等無差別,如來說為可憐愍者。」

阿難承佛悲救深誨,垂泣叉手而白佛言:「我雖承佛如是妙音,悟 妙明心元所圓滿常住心地;而我悟佛現說法音,現以緣心允所瞻 仰,徒獲此心未敢認為本元心地。願佛哀愍宣示圓音,拔我疑根歸 無上道。」

19

佛告阿難:「汝等尚以緣心聽法,此法亦緣非得法性。如人以手指 月示人,彼人因指當應看月;若復觀指以為月體,此人豈唯亡失月 輪,亦亡其指。何以故?以所標指為明月故。豈唯亡指,亦復不識 明之與暗。何以故?即以指體為月明性,明暗二性無所了故。汝亦 如是,若以分別我說法音為汝心者,此心自應離分別音有分別性。 譬如有客寄宿旅亭,暫止便去終不常住,而掌亭人都無所去名為亭 主;此亦如是,若真汝心則無所去。云何離聲無分別性?斯則豈唯 聲分別心,分別我容離諸色相無分別性,如是乃至分別都無非色非 空。拘舍離等昧為冥諦,離諸法緣無分別性,則汝心性各有所還, 云何為主?」

阿難言:「若我心性各有所還,則如來說妙明元心云何無還?惟垂 哀愍為我宣說。」

佛告阿難:「且汝見我見精明元,此見雖非妙精明心,如第二月非 是月影,汝應諦聽,今當示汝無所還地。

阿難!此大講堂洞開東 方,日輪昇天則有明耀,中夜黑月雲霧晦暝則復昏暗,戶牖之隙則 復見通,牆宇之間則復觀擁,分別之處則復見緣,頑虛之中遍是空 性,欝[土*孛]之象則紆昏塵,澄霽斂氛又觀清淨。

阿難!汝咸看 此諸變化相,吾今各還本所因處。云何本因?阿難!此諸變化明還 日輪。何以故?無日不明,明因屬日,是故還日;暗還黑月;通還 戶牖;擁還牆宇;緣還分別;頑虛還空;欝[土*孛]還塵;清明還 霽。則諸世間一切所有,不出斯類。汝見八種,見精明性當欲誰 還?何以故?若還於明,則不明時無復見暗,雖明暗等種種差別, 見無差別;諸可還者自然非汝,不汝還者非汝而誰?則知汝心本妙 明淨。汝自迷悶喪本受輪,於生死中常被漂溺,是故如來名可憐 愍。」

阿難言:「我雖識此見性無還,云何得知是我真性?」

20

佛告阿難:「吾今問汝,今汝未得無漏清淨,承佛神力,見於初禪 得無障礙;而阿那律見閻浮提,如觀掌中菴摩羅果;諸菩薩等見百 千界;十方如來窮盡微塵清淨國土無所不矚。眾生洞視不過分寸。

阿難!且吾與汝觀四天王所住宮殿,中間遍覽水陸空行,雖有昏明 種種形像,無非前塵分別留礙,汝應於此分別自他。今吾將汝擇於 見中,誰是我體?誰為物象?阿難!極汝見源,從日月宮,是物非 汝;至七金山周遍諦觀,雖種種光亦物非汝;漸漸更觀雲騰、鳥 飛、風動塵起、樹木山川、草芥人畜,咸物非汝。

阿難!是諸近遠 諸有物性,雖復差殊,同汝見精清淨所矚,則諸物類自有差別,見 性無殊,此精妙明誠汝見性。若見是物,則汝亦可見吾之見?若同 見者名為見吾;吾不見時,何不見吾不見之處?若見不見,自然非 彼不見之相;若不見吾不見之地,自然非物,云何非汝?又則汝今 見物之時,汝既見物物亦見汝,體性紛雜,則汝與我并諸世間不成 安立。

阿難!若汝見時是汝非我,見性周遍非汝而誰?云何自疑汝 之真性,性汝不真取我求實。」

阿難白佛言:「世尊!若此見性必我非餘,我與如來觀四天王勝藏 寶殿居日月宮,此見周圓遍娑婆國;退歸精舍只見伽藍,清心戶堂 但瞻簷廡。世尊!此見如是,其體本來周遍一界,今在室中唯滿一 室,為復此見縮大為小?為當牆宇夾令斷絕?我今不知斯義所在, 願垂弘慈為我敷演。」

佛告阿難:「一切世間大小內外諸所事業各屬前塵,不應說言見有 舒縮。譬如方器,中見方空,吾復問汝,此方器中所見方空,為復 定方?為不定方?若定方者,別安圓器空應不圓;若不定者,在方 器中應無方空。汝言不知斯義所在,義性如是云何為在。

阿難!若 復欲令入無方圓,但除器方空體無方,不應說言更除虛空方相所 在。若如汝問,入室之時縮見令小,仰觀日時汝豈挽見齊於日面? 若築牆宇能夾見斷,穿為小竇寧無續迹?是義不然。一切眾生從無

21

始來迷己為物,失於本心為物所轉,故於是中觀大觀小;若能轉物 則同如來,身心圓明不動道場,於一毛端遍能含受十方國土。」

阿難白佛言:「世尊!若此見精必我妙性,今此妙性現在我前,見 必我真,我今身心復是何物?而今身心分別有實,彼見無別分辨我 身,若實我心令我今見,見性實我,而身非我,何殊如來先所難 言:『物能見我?』惟垂大慈開發未悟。」

佛告阿難:「今汝所言:『見在汝前』是義非實。若實汝前,汝實 見者,則此見精既有方所非無指示。且今與汝坐祇陀林,遍觀林渠 及與殿堂,上至日月前對恒河,汝今於我師子座前,舉手指陳是種 種相,陰者是林,明者是日,礙者是壁,通者是空,如是乃至草樹 纖毫大小雖殊,但可有形無不指著。若必有見現在汝前,汝應以手 確實指陳何者是見。阿難!當知若空是見,既已成見,何者是空? 若物是見,既已是見,何者為物?汝可微細披剝萬象,析出精明淨 妙見元,指陳示我,同彼諸物分明無惑。」

阿難言:「我今於此重閣講堂,遠洎恒河上觀日月,舉手所指縱目 所觀,指皆是物無是見者。

世尊!如佛所說,況我有漏初學聲聞, 乃至菩薩亦不能於萬物象前剖出精見,離一切物別有自性。」

佛言:「如是,如是!」

佛復告阿難:「如汝所言,無有精見,離一切物別有自性,則汝所 指是物之中無是見者。今復告汝!汝與如來坐祇陀林更觀林苑,乃 至日月種種象殊,必無見精受汝所指;汝又發明此諸物中何者非 見?」

阿難言:「我實遍見此祇陀林,不知是中何者非見?何以故?若樹 非見,云何見樹?若樹即見,復云何樹?如是乃至若空非見,云何

22

為空?若空即見,復云何空?我又思惟是萬象中,微細發明無非見 者。」

佛言:「如是,如是!」

於是大眾非無學者,聞佛此言茫然不知是義終始,一時惶悚失其所 守。如來知其魂慮變慴,心生憐愍,安慰阿難及諸大眾:

「諸善男 子!無上法王是真實語,如所如說不誑不妄,非末伽梨四種不死矯 亂論議,汝諦思惟無忝哀慕。」

是時,文殊師利法王子愍諸四眾,在大眾中即從座起,頂禮佛足合 掌恭敬而白佛言:

「世尊!此諸大眾,不悟如來發明二種精見色 空,是非是義。

世尊!若此前緣色空等象,若是見者應有所指;若 非見者應無所矚。而今不知是義所歸故有驚怖,非是疇昔善根輕 尠,唯願如來大慈,發明此諸物象與此見精元是何物,於其中間無 是非是。」

佛告文殊及諸大眾:「十方如來及大菩薩,於其自住三摩地中,見 與見緣并所想相,如虛空花本無所有。此見及緣元是菩提妙淨明 體,云何於中有是非是?文殊!吾今問汝,如汝文殊,更有文殊是 文殊者?為無文殊?」

「如是,世尊!我真文殊,無是文殊。何以故?若有是者,則二文 殊。然我今日非無文殊,於中實無是非二相。」

佛言:「此見妙明與諸空塵亦復如是,本是妙明無上菩提淨圓真 心,妄為色空及與聞見,如第二月,誰為是月?又誰非月?

文殊! 但一月真,中間自無是月非月。是以汝今觀見與塵,種種發明名為 妄想,不能於中出是非是,由是精真妙覺明性,故能令汝出指非 指。」

23

阿難白佛言:「世尊!誠如法王所說,覺緣遍十方界,湛然常住性 非生滅,與先梵志裟毘迦羅所談冥諦,及投灰等諸外道種說有真我 遍滿十方,有何差別?世尊亦曾於楞伽山,為大慧等敷演斯義,彼 外道等常說自然,我說因緣非彼境界。我今觀此覺性自然非生非 滅,遠離一切虛妄顛倒,似非因緣與彼自然,云何開示不入群邪, 獲真實心妙覺明性?」

佛告阿難:「我今如是開示方便,真實告汝,汝猶未悟,惑為自 然。阿難!若必自然,自須甄明有自然體。汝且觀此妙明見中,以 何為自?此見為復以明為自?以暗為自?以空為自?以塞為自?阿 難!若明為自,應不見暗;若復以空為自體者,應不見塞。如是乃 至諸暗等相以為自者,則於明時見性斷滅,云何見明?」

阿難言:「必此妙見性非自然。我今發明是因緣性,心猶未明,諮 詢如來是義云何合因緣性?」

佛言:「汝言因緣,吾復問汝。汝今同見,見性現前,此見為復因 明有見?因暗有見?因空有見?因塞有見?

阿難!若因明有,應不 見暗;如因暗有,應不見明。如是乃至因空、因塞,同於明暗。復 次,

阿難!此見又復緣明有見?緣暗有見?緣空有見?緣塞有見?

阿難!若緣空有,應不見塞;若緣塞有,應不見空。如是乃至緣 明、緣暗,同於空塞。當知如是精覺妙明非因非緣,亦非自然非不 自然,無非不非無是非是,離一切相即一切法。汝今云何於中措 心,以諸世間戲論名相而得分別?如以手掌撮摩虛空,只益自勞! 虛空云何隨汝執捉?」

阿難白佛言:「世尊!必妙覺性非因非緣。世尊云何常與比丘,宣 說見性具四種緣,所謂因空、因明、因心、因眼。是義云何?」

24

佛言:「阿難!我說世間諸因緣相,非第一義。

阿難!吾復問汝。 諸世間人說我能見,云何名見?云何不見?」

阿難言:「世人因於日、月、燈光見種種相,名之為見;若復無此 三種光明,則不能見。」

「阿難!若無明時名不見者,應不見暗;若必見暗,此但無明云何 無見?

阿難!若在暗時,不見明故名為不見;今在明時不見暗相, 還名不見。如是二相俱名不見。若復二相自相[夌*欠]奪,非汝見 性於中暫無,如是則知二俱名見,云何不見?

是故阿難!汝今當 知,見明之時,見非是明;見暗之時,見非是暗;見空之時,見非 是空;見塞之時,見非是塞,四義成就。汝復應知,見見之時,見 非是見;見猶離見,見不能及。云何復說因緣、自然及和合相?汝 等聲聞狹劣無識,不能通達清淨實相,吾今誨汝,當善思惟,無得 疲怠妙菩提路。」

阿難白佛言:「世尊!如佛世尊為我等輩宣說因緣及與自然,諸和 合相與不和合,心猶未開;而今更聞見見非見,重增迷悶。伏願弘 慈施大慧目,開示我等覺心明淨。」

作是語已,悲淚頂禮,承受聖 旨。 爾時,世尊憐愍阿難及諸大眾,將欲敷演大陀羅尼諸三摩提妙修行 路,告阿難言:

「汝雖強記,但益多聞;於奢摩他微密觀照心猶未 了。汝今諦聽,吾今為汝分別開示,亦令將來諸有漏者獲菩提果。

阿難!一切眾生輪迴世間,由二顛倒分別見妄,當處發生當業輪 轉。云何二見?一者眾生別業妄見;二者眾生同分妄見。 「云何名為別業妄見?

阿難!如世間人目有赤眚,夜見燈光別有圓 影五色重疊。於意云何?此夜燈明所現圓光,為是燈色為當見色?

阿難!此若燈色,則非眚人何不同見,而此圓影唯眚之觀?若是見

25

色,見已成色,則彼眚人見圓影者名為何等?復次,阿難!若此圓 影離燈別有,則合傍觀屏帳几筵有圓影出;離見別有,應非眼矚, 云何眚人目見圓影?是故當知色實在燈,見病為影,影見俱眚,見 眚非病。終不應言是燈是見,於是中有非燈非見。如第二月,非體 非影。何以故?第二之觀,揑所成故。諸有智者不應說言,此揑根 元是形非形離見非見;此亦如是,目眚所成,今欲名誰是燈是見, 何況分別非燈非見。 「云何名為同分妄見?阿難!此閻浮提除大海水,中間平陸有三千 洲,正中大洲東西括量,大國凡有二千三百,其餘小洲在諸海中, 其間或有三兩百國,或一或二,至于三十、四十、五十。阿難!若 復此中有一小洲只有兩國,唯一國人同感惡緣,則彼小洲當土眾 生,覩諸一切不祥境界。或見二日或見兩月,其中乃至暈蝕珮玦彗 勃飛流,負耳虹蜺種種惡相,但此國見;彼國眾生,本所不見亦復 不聞。阿難!吾今為汝以此二事進退合明。 「阿難!如彼眾生別業妄見,矚燈光中所現圓影雖現似境,終彼見 者目眚所成,眚即見勞非色所造,然見眚者終無見咎。例汝今日以 目觀見山河國土及諸眾生,皆是無始見病所成,見與見緣似現前 境,元我覺明見所緣眚,覺見即眚本覺明心,覺緣非眚覺所覺眚, 覺非眚中此實見見。云何復名覺聞知見?是故汝今見我及汝并諸世 間十類眾生,皆即見眚;非見眚者,彼見真精,性非眚者故不名 見。 「阿難!如彼眾生同分妄見,例彼妄見別業一人,一病目人同彼一 國,彼見圓影眚妄所生,此眾同分所現不祥,同見業中瘴惡所起, 俱是無始見妄所生。例閻浮提三千洲中,兼四大海娑婆世界,并洎 十方諸有漏國及諸眾生,同是覺明無漏妙心,見聞覺知虛妄病緣, 和合妄生、和合妄死。若能遠離諸和合緣及不和合,則復滅除諸生 死因,圓滿菩提不生滅性清淨本心本覺常住。

26

「阿難!汝雖先悟本覺妙明,性非因緣、非自然性,而猶未明如是 覺元,非和合生及不和合。阿難!吾今復以前塵問汝。汝今猶以一 切世間妄想,和合諸因緣性,而自疑惑。證菩提心和合起者,則汝 今者妙淨見精,為與明和?為與闇和?為與通和?為與塞和?若明 和者,且汝觀明,當明現前,何處雜見?見相可辨,雜何形像?若 非見者,云何見明?若即見者,云何見見?必見圓滿,何處和明。 若明圓滿,不合見和,見必異明;雜則失彼性明名字。雜失明性, 和明非義,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復次,阿難!又汝今者妙淨見精,為與明合?為與暗合?為與通 合?為與塞合?若明合者,至於暗時明相已滅,此見即不與諸暗 合。云何見暗?若見暗時不與暗合,與明合者應非見明,既不見明 云何明合?了明非暗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阿難白佛言:「世尊!如我思惟,此妙覺元與諸緣塵及心念慮非和 合耶?」 佛言:「汝今又言覺非和合。吾復問汝。此妙見精非和合者,為非 明和?為非暗和?為非通和?為非塞和?若非明和,則見與明必有 邊畔。汝且諦觀,何處是明?何處是見?在見在明自何為畔?阿 難!若明際中必無見者,則不相及,自不知其明相所在,畔云何 成?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 「又妙見精非和合者,為非明合?為非暗合?為非通合?為非塞 合?若非明合,則見與明性相乖角,如耳與明了不相觸,見且不知 明相所在,云何甄明合非合理?彼暗與通及諸群塞,亦復如是。阿 難!汝猶未明一切浮塵諸幻化相,當處出生隨處滅盡,幻妄稱相, 其性真為妙覺明體,如是乃至五陰、六入,從十二處至十八界,因 緣和合虛妄有生,因緣別離虛妄名滅,殊不能知生滅去來,本如來

27

藏常住妙明,不動周圓妙真如性,性真常中求於去來、迷悟、死 生,了無所得。

「阿難!云何五陰本如來藏妙真如性?阿難!譬如有人以清淨目觀 晴明空,唯一精虛逈無所有,其人無故不動目睛瞪以發勞,則於虛 空別見狂花,復有一切狂亂非相;色陰當知亦復如是。阿難!是諸 狂花,非從空來,非從目出。如是,

阿難!若空來者,既從空來還 從空入,若有出入即非虛空,空若非空,自不容其花相起滅,如阿 難體,不容阿難。若目出者,既從目出還從目入,即此花性從目出 故,當合有見。若有見者,去既花空旋合見眼;若無見者,出既翳 空,旋當翳眼。又見花時,目應無翳,云何晴空號清明眼?是故當 知色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手足宴安百骸調適,忽如忘生性無違順,其人無 故以二手掌於空相摩,於二手中妄生澁滑冷熱諸相;受陰當知亦復 如是。阿難!是諸幻觸,不從空來,不從掌出。如是,

阿難!若空 來者,既能觸掌,何不觸身?不應虛空選擇來觸。若從掌出,應非 待合。又掌出故,合則掌知,離即觸入,臂腕骨髓應亦覺知入時蹤 跡,必有覺心知出知入,自有一物身中往來,何待合知要名為觸? 是故當知受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談說醋梅口中水出,思踏懸崖足心酸澁;想陰當 知亦復如是。

阿難!如是醋說,不從梅生,非從口入。如是,

阿 難!若梅生者,梅合自談,何待人說?若從口入,自合口聞,何須 待耳?若獨耳聞,此水何不耳中而出?想踏懸崖與說相類。是故當 知想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暴流波浪相續,前際後際不相踰越;行陰當知亦復如 是。

阿難!如是流性,不因空生,不因水有;亦非水性,非離空 水。如是,

阿難!若因空生,則諸十方無盡虛空成無盡流,世界自

28

然俱受淪溺。若因水有,則此暴流性應非水,有所有相今應現在。 若即水性,則澄清時應非水體。若離空水,空非有外水外無流。是 故當知行陰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阿難!譬如有人取頻伽瓶,塞其兩孔滿中擎空,千里遠行用餉他 國;識陰當知亦復如是。阿難!如是虛空,非彼方來,非此方入。

如是,阿難!若彼方來,則本瓶中既貯空去,於本瓶地應少虛空。 若此方入,開孔倒瓶應見空出。是故當知識陰虛妄,本非因緣、非 自然性。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二

29 

正本首楞嚴經 卷 2

 

[1] 깨달음에 나아가도록 함

그 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평안해져서 생각하기를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본심을 잃어버리고 앞에 나타나는 물질만을 분별하는 그림자같은 일들을 헛되게 인정해오다가 오늘에야 깨달은 것이 마치 어머니를 잃었던 젖먹이가 홀연히 어머니를 찾은 것과 같아서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여래께서 몸과 마음의 진실하고 거짓된 것과 허망하고 실한 것을 나타낸 현재 눈앞에 일어나는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는 것의 두 가지 성품에 대하여 분명하게 들려주기를 원하였다.

그 때에 바사닉왕이 일어서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을 적에 가전연과 비라지자를 만났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이 몸이 죽은 뒤에 아주 끊겨 없어지는 것[斷滅]을 열반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록 부처님을 만났사오나 아직도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사오니, 어떻게 설명해 주셔야 이 마음의 나고 멸함이 없는 경지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대중들 속에 정기가 새는 자 있어서 그들도 모두 정기가 새는 것을 끊지 못한 자들도 모두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이르시기를 "그대의 몸이 현재 살아 있으므로 지금 그대에게 묻겠는데, 그대의 이 육신이 금강(金剛)과 같아서 항상 머물러 있어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여기느냐? 아니면 언젠가는 변하여 없어지리라고 여기느냐?"

세존이시여! 저의 지금 이 육신은 마침내 변하여 없어질 것입니다."

부처님이 대왕에게 이르시기를 "그대가 아직 죽지 않았거늘 어떻게 죽을 것을 아느냐? "세존이시여! 저의 이 무상하게 변하여 없어지는 몸이 비록 아직은 죽은 것이 아니오나 제가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생각마다 변해가고 새록새록 달라져서 마치 불에 타 재가 되는 것과 같아서 점점 쉬지 않고 늙어져가고 있으므로 결단코 이 몸이 언젠가는 다 없어질 것임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다. 대왕아! 그대의 나이는 지금 이미 늙었는데도 얼굴 모습은 동자때와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어렸을 적에는 피부와 살결이 윤택하였었고, 점점 성장함에 따라 혈기가 충만하더니 이제는 나이가 먹어 쇠모함이 임박해지니 형색은 초췌하고 정신은 혼미하며 머리털을 희어지고 얼굴은 쭈그러져서 오래가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한창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2] 참된 것이 있음을 밝힘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얼굴이 갑자기 늙은 것이 아니리라." 대왕이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해 가므로 제가 진실로 깨닫지 못합니다만 추위와 더위가 흘러감에 따라 점점 이 지경에 이르렀나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저의 나이 20세 적에는 비록 젊었다고는 하나 얼굴은 이미 10세 때보다 늙었고, 30세에는 또 20세 때보다 늙었으며, 지금 60에 또 둘을 더 하고 보니 50세 때를 돌이켜 보면 지금보다 훨씬 강장(强壯)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점차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서 비록 이렇게 저락함에 있어 그 사이에 세월이 흘러 변함을 10년씩 한정하여 말하였습니다만, 만약 다시 저로 하여금 자세히 생각하게 하오면 그 변해감이 어찌 일기(一紀), 이기(二紀)뿐이겠습니까? 실은 해마다 변한 것입니다. 어찌 해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역시 달마다 변한 것이며 어찌 달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날마다 변한 것이니, 곰곰히 생각하면 찰나(刹那)마다 생각마다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이 마침내 변화해 없어질 줄을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대왕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변천하여 머물지 않는 변화를 보고 그대가 줄어 없어질 것을 알았다고 하는데 또한 죽어 없어질 때에 그대의 몸 속에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아십니까?"

바사닉왕이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사실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보여 주리라! 대왕아! 그대의 나이 몇 살 때에 황하강 물을 보았더냐?" 대왕이 말하기를 "제가 난 지 세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기바천에 참배하러 갈 적에 그 강을 건넜는데 그 때에 항하강임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말과 같아서 스무 살 때엔 열 살 때보다 늙었으며, 예순이 되도록까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한 생각마다 변천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대가 세 살 적에 보던 그 물과 열 세 살 때 보던 그 물이 어떠하더냐?"

대왕이 말하기를 "세살 때와 같아서 조금도 달라짐이 없었으며, 지금 예순 두살이 되었사오나 역시 달라짐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지금 머리털이 희어지고 얼굴이 쭈그러짐을 애달파하나니, 그 얼굴은 반드시 어렸을 적보다 쭈그러졌겠지만, 그대가 지금 항하강 물을 보는 것과 지난날 어렸을 적에 항하강물을 보던 것이 어리고 늙음의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왕이 말하기를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얼굴이 비록 쭈그러졌으나 그 보는 정기만은 본래의 성품 그대로 쭈그러진 것이 아니다. 쭈그러지는 것은 변하겠지만 쭈그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없어지게 되겠지만 저 변하지 않는 것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거늘 어떻게 그 가운데에서 그대의 나고 죽음을 받았는데 오히려 저 말가리(末伽梨)등의 말을 인용하여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아주 없어진다고 하는고."


대왕이 그 말을 듣고는 진실로 이 몸이 죽은 뒤에 이 생을 버리고 다른 생에 태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대중들과 함께 기뻐 날뛰면서 아직까지 없었던 법문을 들었다고 하였다.


[3] 부처님께서 열어 보이심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일 이 보고 듣는 놈이 정말로 나고 죽음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행동을 한다고 하셨습니까? 원컨대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어 우리의 찌든 때를 씻어 주시옵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금빛의 팔을 드리우시고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시며 아난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나의 모타라(母陀羅)손을 보아라. 바로 되었느냐, 거꾸로 되었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상의 중생들은 이것을 거꾸로라고 하겠지만 저는 어느 것이 바로이고 어느 것이 거꾸로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만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것을 바로라고 하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여래께서 팔을 세우시고 도라면같은 손이 위로 허공을 가리키시면 바로라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뒤바뀜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한 배(倍)나 더 거꾸로 보는구나." "그러나 알아야 한다. 너의 몸을 모든 여래의 청정한 법신과 비슷한 종류로 비교해서 밝혀 본다면, 여래의 몸은 '바르게 두루 앎[正偏知]'이라 이름하고 너희들의 몸은 '성품이 뒤바뀜[性顚倒]'이라 부른다.

따라서 너는 자세히 살펴 보아라. 네 몸을 부처님의 몸에 비교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어느 곳을 이름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냐?"

그 때에 아난이 모든 대중들과 더불어 눈을 크게 뜨고 부처님을 보면서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은 채 몸과 마음의 뒤바뀐 곳을 알지 못하였다.

[4] 반연하는 것은 성품이 없음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사 모든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바다 조수와 같은 음성[海潮音]을 내시어 같은 회상에 모인 대중들에게 널리 이르시기를 "선남자들아! 내가 항상 말하기를 '물질과 마음의 모든 인연과 마음에 끌려다니는 것과 반연되는 모든 현상들이 오직 마음에 나타난 것이라'고 하였다. 너의 몸과 마음이 모두 오묘하게 밝은 참되고 정밀한 마음속에서 나타난 물건인데 어찌하여 너희들은 본래부터 오묘한 원만하고 밝은 마음과 보배롭고 밝고 오묘한 성품을 잃어버리고 깨달음 속에 혼미한 것만을 인정하는구나?

어두워서 허공이 되어서는 그 허공과 어두움속에서 어두움이 뭉쳐져 물질이 되나니 그 물질이 허망한 생각과 뒤섞여서 생각과 모양을 지닌 것은 몸이 되고, 연(緣)이 모여 안에서 흔들리며 밖으로 달려나가는 혼미하고 어지러운 모양을 심성(心性)이라고 하니, 일단 혼미한 것을 마음이라고 생각함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거기에 현혹되어 그것이 이 몸둥이 속에 있다고 여기고 그 색신과 밖에 있는 산과 강, 허공과 대지(大地)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된 마음속의 물건임을 알지 못하나니, 비유하면 맑고 깨끗한 百千의 큰 바다는 버리고 오직 하나의 들뜬 물거품을 바다 전체인 양 잘못 인식하여 눈앞의 조수를 보고 바다라 하며 바다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너희들은 곧 미혹한 속에서도 배나 더 미혹한 사람이니 마치 내가 손을 드리운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여래께서 가엾은 사람 이라고 말씀하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서 자비로 구원해 주시는 깊은 가르침을 받자옵고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이 오묘한 음성을 듣자옵고 오묘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원만하게 항상 머무는 마음 자리를 깨달았으나 제가 현재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음성을 깨달은 것도 현재의 반연하는 마음이며, 진실로 우러러보는 것도 다만 이 마음에서 생긴 것이기에 감히 본래의 마음 자리라고 인정하지 못하겠사오니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시와 원만한 법음을 베푸시어 저의 의혹의 뿌리를 뽑아서 위없는 최고의 도에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아직까지도 반연으로 생긴 마음으로 법을 듣나니 그 법도 역시 반연일 뿐이라서 법성(法性)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보일 경우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보아야 마땅할 것인데,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다만 달을 잃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도 잃어버릴 것이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이는 가리키는 손가락을 가지고 밝은 달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어찌 손가락만 잃을 뿐이리요? 또한 밝은 것과 어두운 것도 알지 못하리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곧 손가락을 달의 밝은 성품이라고 생각하여 밝고 어두운 두 성품에서 깨달을 것이 없기 때문이니 너 또한 그러하니라.

약 나의 설법하는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이 마땅히 음성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서도 따로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나그네가 여정(旅亭)에 기숙하기 위하여 잠시 머물렀다가 문득 떠나버리면 이는 마침내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지만, 여정을 맡은 사람은 갈 곳이 없으므로 여정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그와 같아서 만약 진실한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을 터이니 어찌 소리를 여의었다고 해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요?

이것이 어찌 소리로 분별하는 마음 뿐이리요. 내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물질의 모양을 여의고서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니, 이와 같이 분별함이 전연 없는 데에까지 이르러서는 물질도 아니고 허공도 아니므로 구사리(拘舍離)등이 이에 어두워서 명제(冥諦)라 하나리라. 법의 반연을 떠나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다면 곧 너의 심성(心性)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을 터이니 어찌 주인이라고 하겠느냐?"

 

[5] 보는 성품이 돌아갈 데가 없음을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만약 저의 심성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한다면 여래께 서 말씀하시는 오묘하고 밝은 본래의 마음은 어찌하여 돌아갈 곳이 없습니까? 가엾게 여기셔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또 네가 나를 보는 그 정기의 밝은 근원은 이 보는 놈이 비록 오묘하고 정밀하게 밝은 마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는 마치 제 二의 달인지라 달 그림자가 아닌 것과 같으니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지금 너에게 돌아갈 곳이 없음을 보여주리라.

아난아! 이 큰 강당의 동쪽이 환하게 틔여서 둥근 해가 하늘에 떠오르면 곧 밝게 빛나고, 달도 없는 한 밤중에 구름과 안개마져 자욱하면 더욱 어두우며, 문 틈으로 다시 통함을 보고 담장 사이는 막힘을 보며, 분별하는 곳에 반연함을 보고 완벽한 허공속은 모두가 비었으며, 흙비의 현상은 티끌이 얽힌 것이라고 맑게 개여 우내가 걷히면 또 다시 맑음을 보게 되나니라. 아난아! 네가 이 여러가지 변화하는 모양을 살펴 보아라. 내가 지금 각각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무엇을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이라 하는가. 아난아! 이 모든 변화 중에서 밝은 것은 둥근 해로 돌아가나니, 왜냐하면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니 밝은 것의 근본을 해에 속한다. 그러므로 해로 돌아가는 것이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 데로 돌아가며, 통함은 문으로 돌아가고 막힘은 담장으로 돌아가며, 반연은 분별로 돌아가고 완벽한 허공은 허공으로 돌아가며, 흙비는 티끌로 돌아가고 맑음은 개인 데로 돌아가나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이러한 종류에 지나지 않나니라. 그런데 네가 이 여덟 가지를 보는 정기의 밝은 성품은 어디로 돌아가게 하려느냐?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 돌아간다면 밝지 아니할 적에는 어두움을 보지 못하리니, 비록 밝음과 어두운 것들이야 여러 가지로 차별한다 하더라도 보는 것은 차별이 없나니라. 모든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자연 네가 아니거니와 네게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네가 아니고 그 누구이겠느냐?

그러니 깨달을 지어다. 너의 마음이 본래 오묘하고 밝고 깨끗한 것인데, 네가 스스로 혼미하여 근본을 잃고 윤회하면서 생사 속에서 항상 표류하기 때문에 여래가 가련하다고 한 것이다."


[6] 물질에 나아가 결정 선택함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비록 보는 성품이 돌아갈 데가 없음은 알겠습니다만 어떻게 그것이 저의 참 성품이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노니, 지금 네가 정기가 새는 것이 없어진 청정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받들어 저 초선천(初禪天)을 보는데 장애가 없었으며, 아나율은 염부제(閻孚提) 보기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라 열매를 보듯 하였으며, 모든 보살들은 百, 千의 세계를 보며, 시방의 여래는 티끌처럼 많은 천정한 국토를 통틀어서 보지 못하는 곳이 없지만 중생들이 보는 것은 푼촌(分寸)에 지나지 않나니라.

아난아! 장차 내가 너와 함께 사천왕이 거주하는 궁전을 볼적에 중간에 물과 육지와 허공에 다니는 것을 두루 보겠는데, 비록 어둡고 밝은 갖가지 형상들이 있으나 모두가 앞에 나타난 물질을 분별하는 마음을 가리지 않음이 없으니 너는 마땅히 여기에서 나와 남을 분별하라. 지금 내가 너를 데리고 보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너의 몸이고 어느 것이 다른 물체인지를 가려 주리라.

아난아! 네가 보는 것의 근원을 끝까지 추구하여 보아라. 해와 달의 궁전까지도 모두가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칠금산(七金山)에 이르도록 두루두루 자세히 관찰하여 보아라. 비록 갖가지 빛이 있어도 역시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그 밖에 점점 다시 관찰해 보아라. 구름이 뜨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리는 것과 나무와 산, 냇물과 풀, 사람과 축생이 모두 물상이지 너는 아니니라.

아난아! 이 가깝고 먼데 있는 모든 물질의 성질이 비록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똑같이 너의 청정하게 보는 정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니, 여러 가지 물상은 자연 차별이 있을지언정 보는 성품은 다름이 없으니, 이 보는 정기의 오묘하고 밝음이 진실로 너의 보는 성품이니라.

만약 보는 그 자체가 물상이라면 네가 또한 나의 보는 성품을 보아야 하리라. 만일 함께 보는 것을 가지고 내가 보는 성품을 본다고 할진대 내가 보지 못할 때에는 어찌하여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너는 보지 못하느냐?

만약 보지 아니하는 것을 본다면 자연 저것은 볼 수 없는 모양이 아니니라.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연 물질이 아닌데 어찌 네가 아니라고 하겠느냐? 또한 네가 지금 물질을 볼 적에 네가 이미 물질을 보았거든 물질도 너를 보아서 실체와 그 성품이 어지럽게 섞여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세간이 편안하게 정립되지 못할 것이다.

아난아! 만약 네가 볼 때엔, 이것이 네가 보는 것이지 내가 아닐진대 보는 성품이 골고루 있는데 네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어찌하여 너의 참다운 성품이 너에게서는 참되지 못한 성품인 양 의심해서 나에게 물어 진실을 구하려고 하느냐?"

 

[7] 결론지어 나타냄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성품이 반드시 저이지 남이 아닐진대 제가 여래와 함께 사천왕의 수승하고 장엄한 보배의 궁전과 일월궁(日月宮)을 볼 적에는 그 보는 것이 두루 원만해서 사바국(娑婆國)에 골고루 퍼졌다가 정사에 돌아오면 다만 가람(伽藍)만 보이고 청심호당(淸心戶堂)에서는 다만 처마만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보는 것이 이와 같아서 그 본체가 본래는 온 세계에 고루 퍼졌다가 지금 방안에 있을 적에는 오직 온 방에만 가득하게 되는데, 그럴 적에는 그 보는 것이 큰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입니까? 아니면 담과 지붕에 막혀서 좁아지고 끊어진 것입니까? 지금 저는 그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를 위해 설명하여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일체의 세상과 크고 작은 것과 안이나 밖, 그리고 여러 가지 사업이 각각 앞에 나타나는 물질에 속하는 것이니, 보는 것이 퍼지거나 움츠러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나니라.

비유하면 그것은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하늘을 보는 것과 같나니라. 내가 다시 너에게 묻겠는데 이 모난 그릇 속에서 보이는 모난 하늘이 모나게 정해진 것이냐 아니면 모나게 정해진 것이 아니냐? 만약 모나게 정해진 것이라면 따로이 둥근 그릇 속에서도 그 하늘은 둥글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약 정 해진 것이 아니라면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하늘이 아니어야 할 것이니, 네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한 그 이치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따질 수 있겠느냐?

아난아! 만약 모나고 둥근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다만 모난 그릇을 없앨지언정 하늘 그 자체는 모난 것이 아니니 또다시 허공의 모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네가 물은 것처럼 방에 들어갔을 적에 보는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이라면 해를 쳐다볼 적에는 네가 어찌 보는 것을 늘려서 해에 닿게 한 것이겠으며, 만약 담과 지붕이 막혀서 보는 것이 끊어진 것이라면 작은 구멍을 뚫었을 적에는 어찌 이은 흔적이 없느냐? 그 이치는 그런게 아니니라.

일체의 중생이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지금까지 혼미한 자신을 물질로 생각해서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물질에 지배를 받는 바가 되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 크고 작은 것을 보지만, 만약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면 여래와 같아서 곧 마음이 원만 하게 밝아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한 개의 털 끝에 시방의 국토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8] 꾸짖으셔서 깨닫게 함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정기가 반드시 나의 오묘한 성품이라면 지금 이 오묘한 성품이 현재 제 앞에 있어야 하리니, 보는 것이 반드시 저의 참다운 마음이라면 지금 저의 몸과 마음은 또다시 어떤 물건입니까? 지금 이 몸과 마음은 분별함이 실제가 있거니와 저 보는 것은 분별함이 없어서 저의 몸과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참으로 내 마음이어서 나로 하여금 지금 보게 한다면 보는 성품은 진정한 나이겠지만 몸은 내가 아닐 것이니, 여래께서 앞에서 힐난하여 말씀하신 '물질이 나를 보리라'고 하신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바라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우쳐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지금 네가 말한 '보는 것이 내 앞에 있습니다'라고 한 것은 그 이치가 옳지 않나니라.

만약 참으로 네 앞에 있기 때문에 네가 진정 보는 것이라면 이 보는 정기가 이미 장소가 있을 것이니 가리켜 보이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또 지금 너와 함께 기타림(祇陀林)데 앉아서 숲과 냇물과 전당(殿堂)을 두루 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고 앞에는 항하를 대하였으니, 지금 네가 나의 사자좌 앞에서 손을 들어 가리켜 보아라. 이 갖가지 모양들이 그늘진 것은 숲이고 밝은 것은 태양이며, 막힌 것은 벽이고 통한 것은 허공이니, 이렇게 형상이 있는 것들은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으니, 만일 그 보는 것이 반드시 현재 네 앞에 있는 것이라면 네가 마땅히 손으로 확실하게 가리켜 보아라. 어느 것이 보는 것이냐?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이미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느 것이 허공이며, 만약 물체가 보는 것이라면 이미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느 것이 물체이겠느냐? 너는 미세하게 온갖 물상을 구분하여 정밀하고 밝으며 맑고 오묘하게 보는 근원을 가려내어 나에게 지적하여 보여주되 저 물질과 같이 분명하여 의혹이 없게 하여 보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이곳의 여러 층으로 된 강당에서 멀리는 황하강에까지 이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지만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에 있어서 가리키는 것은 모두가 물질이라서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아직 정기가 새는 것을 끊어버리지 못한 처음으로 배움의 길에 들어선 성문(聲聞)이거니와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 나야만 별도로 자성이 있음이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렇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처럼 정밀하게 보는 놈을 가려낼 수 없고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나야만 별도로 정밀하게 보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네가 가리키는 이 물상 속에는 보는 것이 없겠구나. 지금 다시 너에게 말하겠는데 네가 여래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서 다시 숲과 동산, 그리고 해와 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을 보아라. 갖가지 물상이 각기 다르지만 반드시 보는 정기가 네가 가리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너는 다시 밝혀 보아라. 이 모든 물상 중에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니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사실 이 기타림을 두루 보았으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본다고 하겠으며,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나무라고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허공을 보며,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허공이라고 하겠습니까? 제가 또 생각하니 이 온갖 물상 중에서 정밀하고 자세하게 밝혀 보건대 보는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러하니라."

 

[9] 본체는 하나라는 것을 밝힘

그때에 대중 가운데에서 배울 것이 없지 아니한 자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자옵고 멍청하게 이 이치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하며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마치 간직하고 있던 것을 잃은 듯하였다.

여래께서 그들의 정신이 변하여 어리둥절함을 아시고 가엾은 마음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을 위안하시기를 "모든 선남자들아! 위없는 법왕의 진실한 말씀이며 여여(如如)한 말씀이기에 속이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니, 말가리(末伽梨)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는 네 가지 거짓으로 혼란하게 하는 논의와는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자세히 생각하여 애모(哀慕)함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

그때에 문수사리 법왕자보살이 여러 사부대중을 가엾게 여기사 대중 가운데 계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기 모인 모든 대중들은 여래께서 밝혀주신 두 가지 정밀하게 보는 것과 물질이나 허공에 대하여 이것인지 이것이 아닌지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허공과 물질의 형상이 보는 것이라면 응당 가리킬 것이 있어야 하며, 만약 보는 것이 아니라면 응당 볼 것도 없어야 할 터이니, 지금 그 이치의 본 뜻을 알지 못하여 놀랍고 두렵기는 할지언정 그렇다고 이것이 옛날보다 선근(善根)이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를 밝혀주시옵소서. 이 모든 물상과 보는 정기가 본래 무엇이길래 그 중간에 이것과 이것이 아님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와 여러 대중들에게 이르시기를 "시방의 여래와 큰 보살들이 그 스스로 머무는 삼마지 가운데 보는 것과 보이는 대상과 그리고 생각하는 모양은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보는 것과 그 대상은 본래가 보리의 오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실체인데 어찌 그 가운데 '이것이다, 저것이다' 할 것이 있겠느냐?

문수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문수인 것과 같아서 또 다른 문수가 문수이냐? 문수가 아니냐?" 문수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진실한 문수이므로 그러한 또다른 문수는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이것은 두 문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문수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실제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라고 할 두가지 모양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보는 성품의 오묘하고 밝은 것과 허공과 물질도 역시 이와 같아서 본래 오묘하고 밝은 위없는 보리의 깨끗하고 원만한 참 마음이거늘 이것이 허망하게 허공과 물질과 듣고 보는 것이라 여겨서 마치 제二의 달과 같으니 어느 것이 달이고 어느 것이 달이 아니라고 하겠느냐?

문수야! 하나의 달만이 참된 것이라면 그 중간에는 자연 '달이다, 달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보는 것과 그 대상을 보고서 여러 가지로 밝혀냄을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 그 가운데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하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참되고 순수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가리키고 가리키지 않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겠다."

 

[10] 거듭 떨쳐버리고 곧바로 보이심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진실로 법왕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각연(覺緣)이 시방 세계에 가득하여 맑고 고요하게 늘 머물러서 그 성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아닐진대 선범지(先梵志)인 사비가라가 말한 명제(冥諦)와 투회(投灰)등 모든 외도종자가 말하는 참 나라는 것이 시방 세계에 고루 가득히 있다는 것과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세존께서도 일찌기 능가산에서 대혜보살(大慧菩薩)등을 위하여 이 이치를 말씀하실 적에 '저 외도들은 항상 자연이라고 말하였나니 내가 말한 인연은 저들의 경계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관찰해 보건댄 깨닫는 성품이 자연 그대로여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체의 허망하게 뒤바뀐 것을 멀리 벗어나니 아마도 인연이 아닌 것 같고 마치 저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설명하셔야만 우리들로 하여금 모든 삿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오묘하게 깨닫는 밝은 성품을 얻을 수 있게 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이렇게 방편을 보여서 진실하게 말하였는데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자연인가 하고 의혹을 품느냐? 아난아! 만약 자연이라고 기필한다면 그 자연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서 자연의 본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너는 또 이를 관찰해 보아라. 오묘하고 밝게 보는 것 가운데 무엇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이 보는 놈은 밝음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어두움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니면 허공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막힌 것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밝은 것을 자(自)라고 한다면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허공을 자연의 본체라 한다면 응당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다른 어두운 현상에 이르는 것으로 자연이라 생각한다면 밝을 때에는 보는 성품이 아주 없어질 것인데 어떻게 밝음을 보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반드시 이 오묘하게 보는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제가 지금 이것은 인연의 성품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만 마음에 아직까지 분명하지 못하여 여래께 묻습니다. 이 이치가 어찌하여야 인연의 성품에 맞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인연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지금 보는 것으로 인하여 보는 성품이 앞에 나타나나니 이렇게 보는 놈은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응당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은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허공과 막힘에 이르기까지도 밝음이나 어두움과 같을 것이다.

아난아! 이 보는 것이 밝은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운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만약 허공을 따 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허공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밝음으로 인해서와 어두움으로 인해서도 허공이나 막힘과 같나니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정밀한 깨달음의 오묘하고 밝음이 인(因)도 아니며 연(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며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며, 아닌 것과 아님이 아닌 것도 없으며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도 없어서 일체의 모양에서 벗어나 일체의 법에 나아가나니라.

네가 지금 그 가운데 어떤 마음을 가지길래 모든 세간에서 장난삼아 논란하는 명상(名相)으로 분별하려 하느냐? 이는 마치 손바닥으로 허공을 만지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애만 쓸 뿐이지 허공이야 어떻게 네게 잡히겠느냐?"

 

[11] 모양을 여의어야 함을 밝힘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기필코 이 오묘한 깨닫는 성품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라면 세존께서 어찌하여 늘 비구에게 말씀 하시기를 보는 성품이 네 가지 연을 갖추어야 하니, 이른 바 허공을 원인으로 삼고 밝음을 원인으로 삼으며, 마음을 원인으로 삼고 눈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을 뜻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그것은 내가 세간에 인연의 모양을 말한 것이지 제일의(第一義)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니라.

아난아! 내가 다시 네게 묻겠는데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나니 어떤 것을 본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는 것을 본다고 하고 만약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난아! 만약 밝음이 없을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어두움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반드시 어두움을 본다고 한다면 이는 다만 밝음이 없는 것이지 어떻게 봄이 없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에는 밝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금 밝을 때에 어두운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을 또다시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렇다면 두 모양을 모두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두 모양이 서로 빼앗는다고 할지언정 너의 보는 성품이 그 가운데 잠시라도 없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본다고 해야지 어찌하여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밝음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밝음이 아니며, 어두움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어두움은 아니며,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허공은 아니며, 막힌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막힌 것은 아니니라.

네 가지 이치가 성취되었으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는 놈을 볼 적에 보는 놈은 보는 것이 아니니라.

보는 성품은 오묘하여 그것이 오히려 보는 것을 벗어나서 보는 것으로도 미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인연이다 자연이다 어울려 조화된 모양이다라고 말하겠는가? 너희 성문(聲聞)들이 용렬하고 지식이 없어서 청정한 실상(實相)을 통달하지 못하니, 내가 지금 너에게 가르쳐 주겠으니 마땅히 잘 생각해서 오묘한 보리의 길에서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말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오직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서로 어울려 조화된 현상과 어울려 조화되지 못함을 설명해 주셨으나 마음은 아직 열리지 아니하였는데 이번에 다시 보는 놈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심을 듣고서는 더욱 의혹이 짙어집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서 큰 지혜의 눈을베푸시어 저희들에게 깨닫는 마음이 밝고 맑음을 보여주소서."

말을 마치고는 슬피 울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성인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였다.

 

[12] 허망한 모양을 따로따로 풀이함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엽게 여기시사 큰 총지문(總持門)과 모든 삼매의 오묘한 수행 방법[길]을 다시 말씀하시기 위하여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비록 기억력은 강하나 다만 많이 듣는 것만 힘썼고 사마타의 미묘하고 정밀하게 비추어 봄에 대해서는 마음에 아직까지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나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내가 너를 위하여 이를 분별하여 보여줄 것이며, 또한 장래에 정기가 새는 것이 있는 자들도 보리의 과업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세간을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분별하여 보는 것이 허망하여 그것이 장소에 따라 발생하며 업보에 따라 흘러 전전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두 가지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첫째는 중생의 별업(別業)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의 동분(同分)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별업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눈이 붉어지는 눈병이 생기면 밤에 등불을 볼 적에 또다른 둥근 그림자가 생겨서 다섯 가지 색깔이 중첩으로 보이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는 이것이 등불의 빛이냐 아니면 보는 것의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그와 같은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둥근 그림자는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만 보느냐? 만약 그것이 보는 것의 빛이라면 보는 것이 이미 빛을 이루었거니 저 눈병이 있는 사람만이 둥근 그림자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또 아난아! 만약 이 둥근 그림자가 등불을 여의고서도 또다른 것이 있다면 마땅히 곁에 있는 병풍과 휘장과 의자와 자리를 볼 적에도 둥근 그림자가 생겨야 하며, 보는 것을 떠나서도 또다른 것이 있다면 응당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만 둥근 그림자가 보이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빛깔은 사실 등불에 있는 것인데, 보는 것의 병으로 인하여 그림자가 되었나니라. 그림자와 보는 것이 모두가 눈병으로 생긴 것이지만 눈병을보는 것은 병이 아니다. 그러니 이것을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고 할 것이 못되며, 또 그 가운데에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라고도 할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제二의 달은 본체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다. 왜 그런가 하면 제二의 달을 보는 것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들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을 가리켜 '달의 형체다 달의 형체가 아니다 한다거나, 보는 것이니 보는 것이 아니니'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나니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병으로 생긴 것이어니 지금 무엇을 이름하여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고 하려느냐? 더구나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겠느냐?

 

[13] 매듭지어 말씀하심

어떤 것을 '같은 분수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느냐 하면,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 큰 바닷물을 제외하고 중간의 육지에 三千개의 섬이 있으니 한 복판에 있는 큰 섬을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보면 큰 나라가 二千 三백이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가운데 혹은 삼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혹은 이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혹은 한 두 나라에서 三十, 四十, 五十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니라.

아난아! 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으니 오직 한 나라 사람만이 악한 인연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작은 섬에서 사는 중생은 일체의 상서롭지 못한 세계를 봄에 있어 더러는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달무리나 해무리[暈適], 해의 귀걸이, 혜성[彗], 패성, 흐르는 별똥[飛流], 부이(負珥),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나쁜 모양을 오직 이 나라의 사람들만 볼지언정 저쪽 나라의 중생들은 본래 보지 못하고 또한 듣지도 못하나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앞뒤로 맞춰가면서 밝혀 주리라.

아난아! 저 중생들이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등불주위에 둥근 그림자가 비록 대상의 물체처럼 나타나지만 마침내 보는 자의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눈병은 곧 보는 것의 피로로 생긴 것이지 빛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눈병을 보는 자는 마침내 보는 잘못은 없나니라.

예컨댄 네가 오늘 눈으로 산과 강, 그리고 국토와 여러 중생들을 보는 것이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놈이 병들므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보는 놈과 보이는 대상은 마치 눈 앞의 대상처럼 나타나지만 본래는 나의 깨닫고 분별하는 것으로 대상인 물체를 보는 눈병이다. 그러니 깨닫고 보는 것은 눈병이겠지만 본래부터 있어온 깨달음의 밝은 마음으로 대상인 물체를 깨닫는 것은 눈병이 아니리라.

분별할 대상을 분별하는 것은 눈병이고, 분별하는 본각[性覺]의 밝은 근본은 눈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사실 보는 놈을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다시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그리고 모든 세상의 열 가지 중생을 보는데 그것은 모두 보는 놈의 눈병이지 눈병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저 보는 놈이 정밀하고 참된 이유는 성품이 병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보는 놈이라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아난아! 저 중생의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한 사람을 예로 들어 비유하면 눈병이 생긴 한 사람은 한 나라와 같으며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가 눈병으로 생긴 것과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상서롭지 못한 것이 보는 것이 같은 업장 가운데 장악으로 생긴 것이니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놈이 허망함에 의하여 생긴 것이다.

염부제(閻浮提) 三千 개의 섬과 사방의 큰 바다와 사바세계와 그리고 시방의 정기가 새는 것이 있는 모든 나라들[有漏國]과 모든 중생들을 예로 들면 이 모두가 깨닫고 분별하는 새는 것이 끊어진 오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여 허망한 병으로 인하여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서 허망하게 나고 죽나니라.

 

[14] 요체를 들어 결론지어 대답함

만약 화합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 모든 인연을 멀리 여의면 곧 여러 가지 나고 죽는 원인을 없앨 수 있어서 원만한 보리의 나고 죽지 아니하는 성품을 이루어 청정한 본래의 마음에 본래의 깨달음이 늘 머무르게 되리라.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本覺)의 오묘하고 밝은 성품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깨달음의 근원은 서로 어울려 조화되어 생긴것도 아니며 서로 어울려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닌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나타나는 경계로서 네게 묻겠는데, 너는 지금 오히려 일체 세간의 허망한 생각으로 화합하는 모든 인연의 성품으로 인하여 스스로 의혹하기를 보리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긴다고 여기는구나.

만약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적에는 마땅히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곳에 보는 것이 섞였느냐? 보는 것과 물질은 분별할 수 있지만 섞인 것은 어떠한 형상이냐?

만약 보는 놈이 아니라면 어떻게 밝은 것을 보며, 만약 보는 놈이라면 어떻게 보는 놈을 본다고 하겠느냐? 보는 놈은 반드시 밝은 것과는 다르므로 섞이었다면 저 성품이 밝다는 이름을 잃으리니 섞임으로 해서 밝은 성품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밝음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네가 지금 오묘하고 청정하게 보는 정기는 밝은 것과 어울린 것이냐, 어두운 것과 어울린 것이냐, 통한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막힌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만약 밝음과 합한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맑은 모양이 이미 없어질 것이니, 저 보는 놈이 어두움과는 어울리지 못할 터이니 어떻게 어두움을 본다고 하겠느냐?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음과 합했을 적에도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밝음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것이며 밝은 것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도 역시 이러하니라.

 

[15] 다른 것들도 같음을 밝힘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희 생각 같아서는 이 오묘한 깨달음의 근본이 모든 상대되는 물질과 그리고 마음과 생각으로 화합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또 말하기를 깨달음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묻겠다. 이 오묘하게 보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음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보는 놈과 밝은 것이 반드시 경계선이 있어야 하리니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밝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보는 놈이냐? 보는 놈과 밝은 것이 어디로부터 경계가 되는냐?

아난아! 만일 밝은 것 중에 반드시 보는 놈이 없다면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밝은 모양이 있는데를 알지 못할 것인데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또 오묘하게 보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 아니라면 곧 보는 놈과 밝음의 성격이 서로 어긋남이 마치 귀와 눈이 서로 닿지 않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너는 아직도 일체의 부질없는 물질인 모든 허깨비 같이 변화하는 모양이 곳을 따라 생기며 곳을 따라 없어짐을 알지 못하는구나. 허망한 허깨비 같은 것을 물질이라고 하지만 그 성품은 참으로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이다. 이와 같이 오음(五陰)과 육입(六入)과 십이처(什二處)와 십팔계(十八界)도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기는 것이며 인연이 흩어져서허망하게 없어지나니, 진실로 생기고 없어지고 가고 오고 하는 것이 본래는 여래장(如來藏)이어서 항상 머무르는 것이며 오묘하고 밝은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며 두루 원만한 오묘하고 참다웁고 변함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성품의 참되고 항상한 가운데서는 가고 옴과 미혹하고 깨달음과 나고 죽고 함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나니라.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五陰)이 본래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맑은 하늘을 볼 적엔 오직 하나의 맑은 하늘일 뿐이어서 멀리 아무 것도 없거늘 그 사람이 까닭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가 생기면 곧 허공에서 또다른 광화(狂華)가 보이며 또다시 몹시 어지러워 모양이 없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색음(色陰)도 그러하니라.

 

[16] 허망한 것인 줄 깨달으면 곧 참됨

아난아! 이 헛보이는 꽃은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미 허공에서 생겼으니 다시 허공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가령 나오고 들어감이 있다면 곧 허공이 아니며 허공이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 그 꽃 모양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함이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을 쫓아 나왔으므로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니 이 헛보이는 꽃의 성품이 눈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마땅히 볼 수 있을 것인데, 만약 보는 것이 있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에 꽃이 있으므로 돌아올 적에 마땅히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것이 없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을 가리웠으므로 돌아올 적에 마땅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다. 또 헛 꽃을 볼 적에 눈이 응당 가리움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맑은 허공이라야 청정하고 밝은 눈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색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손발이 편안하고 모든 뼈마디가 적절히 조화되었을 때는 홀연히 살아있음을 잊은 듯하여 성품이 어긋나거나 순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없이 두 손바닥을 허공에서 서로 비비면 두 손바닥에서 허망하게 껄그럽거나 미끄럽거나 차거나 뜨거운 여러가지 모양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라. 수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 여러가지 허깨비같은 허망한 접촉이 허공에서 부터 온 것도 아니며 손바닥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닥에 접촉 하였는데 어찌 몸에는 접촉하지 아니하였느냐? 응당 허공이 이를 선택하여 와서 접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손바닥으로부터 나왔다면 손바닥이 합하기를 기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합할 적에 손바닥이 느낀다면 뗄 적에는 접촉이 들어가서 팔과 손목과 골수들이 응당 들어갈 때의 자취를 느껴야 할 것이니라. 반드시 느끼는 마음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감을 안다면 자연 한 물건이 몸 가운데 오갈 것인데 어찌 손바닥과 합해져야만 느끼는 것을 접촉이라고 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수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신 매화 열매를 말하면 입 안에서 침이 생기고, 까마득한 벼랑에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지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상(想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러한 신 이야기가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뉨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면 매실이 마땅히 스스로 말을 해야 할 것이어늘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만약 입을 쫓아 들어갔다면 마땅히 입으로 들어야 하리니 어찌 귀를 기다리겠느냐? 만약 유독 귀만이 듣는다면 이 침이 어째서 귀속에서 나오지 않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상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흐르는 성품이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며, 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물의 성품도 아니며,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곧 시방의 끝없는 허공에 끝없는 흐름이 생겨서 세계가 자연히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며, 만약 물로 인해 있는 것이라면 이급히 흐르는 물의 성품은 마땅히 물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능유(能有)와 소유(所有)의 모양이 지금 마땅히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만약 곧 물의 성품이라면 맑은 때에는 응당 물의 본체가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이라면 허공은 밖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물 밖에는 흐름이 없어야 할지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행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병의 두 구멍을 막고 가운데는 허공을 가득히 채워가지고 천리나 되는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사용하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라. 식음(識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러한 허공은 저쪽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이쪽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니라. 아난아! 만약 저쪽에서 오는 것이라면 본래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병이 있던 곳에는 마땅히 허공이 조금 줄었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이곳으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일 적에는 마땅히 허공이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식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 卷2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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