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C-ZemR7EZgI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2/10/18/2022101800026.html

 

[류근일 칼럼] "다시 김문수 이야기...그는 '극우' 아닌 '자유주의자'"

다시 김문수 이야기를 해보자.아니, 김문수 이야기가 아니라,김문수가 제기한 논점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NL 주사파 등 좌익은 김문수를 극우라고 몰아간다.자칭 중도 보수란 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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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인용문은 발췌한 글입니다. 양해바랍니다
 
'극좌' vs '중도' vs '극우'...김문수는 과연 '극우'인가?

다시 김문수 이야기를 해보자.
아니, 김문수 이야기가 아니라,
김문수가 제기한 논점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NL 주사파 등 좌익은, 김문수를 '극우'라고 몰아간다.
자칭 중도 보수란 부류도, 종편에 나와 “김문수가 좀 지나쳤다”는 투로 나무란다. 
김문수는 그러나, 우익 일당독재·극우 전체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나치도, 파시스트도, 군사 권위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주사파 현상을 있는 그대로 명명백백하게 투시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자유주의자, 자유 레지스탕스일 뿐이다. 
 
이런 그를 '극좌'와 기회주의 자칭 '중도'는, 왜 걸핏하면 '극우'라고 모함하는가? 
1. 김문수는, '극좌'의 속셈과 꼼수를 훤히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그걸 밝은 태양 아래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극좌'로선, 김문수의 그런 '벗기기' 공격을 극도로 증오하고 적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적(敵)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저주를 김문수에게 퍼붓고 있다.
 
 
비겁한 사이비 '중도'의 '착한 사람' 척하기
 
2. 기회주의 사이비 '중도' 역시, 김문수식 전투적 자유 레지스탕스를 ‘극우’로 몰아친다.
그렇게 해서 자기들은, 그런 악당과는 구별되는 좌클릭 한 ‘착한 사람’임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이른바 '중도'의 착각
3. 여기서 자유인들은 자신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극좌'의 그런 전체주의 혁명 앞에서 기회주의 사이비 '중도'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김문수 같은 전투적 자유 레지스탕스로 싸울 것인가? 
기회주의 사이비 '중도'는,
오늘의 한국 '극좌' 운동권의 정체성과 관련해 한 가지 치명적인 착시(錯視)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극좌' 운동권의 전체주의 본질을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척하면서,
'극좌' 운동권이 마치 ‘민주적·합리적 진보(democratic left)’라도 된다는 양 대한다는 사실이다.
이건 전적인 착각이다.
오늘의 한국 '극좌' 운동권은, 
서유럽의 민주사회주의 정당 또는 사회민주주의 우파 같은 ‘민주적 좌파’가 아니다. 
운동권 정권의 대표란 자는,
통일혁명당 지도급 중 하나였던 신영복을 ‘내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라고 선포했다.
 
김문수의 용감한 사상투쟁 전면전
4. 이런 점을 볼 때, '극좌'의 혁명적 전략·전술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문수가
기회주의적·투항적 대응방식이 아닌 정면의 사상투쟁을 택한 것은,
지금의 시대적 성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결과라 할 것이다. 
김문수의 사상투쟁은,
있는 그대로의 극좌 현상을 정확하게,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극좌'는,
자신들의 시커먼 속내를 들키니까 화를 내는 것이고,
기회주의자 '중도'들은,
그들의 비열(卑劣)함이 드러나니까 싫어하는 것이다.

그 '화'와 '싫어함'을
“김문수는 극우다”로 표출하는 저들을,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g3z5lEZiBo 

 

https://namu.wiki/w/%ED%86%B5%EC%9D%BC%ED%98%81%EB%AA%85%EB%8B%B9%20%EC%82%AC%EA%B1%B4

 

통일혁명당 사건 - 나무위키

북한 정부는 남한에서 4.19 혁명이 실패한 주 이유가 바로 공산혁명을 이끄는 당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북한이 만든 '남조선혁명론'이 남쪽에 퍼지면서 지하 혁명조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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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혁명당은 지도이념을 명확히 내걸었으며 노동계급의 전위당임을 자처했다. 통혁당의 지도이념은 주체사상이며 최고의 목적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에 두고 있다. 당강령은 "당면의 최고 목표는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수행, 부패한 반봉건적 사회제도를 일소하고 민주주의제도 수립, 민족 재통일 성취"로 규정하였다.

구체적 목표로는 "첫째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철폐와 자주적 민주정권의 수립, 둘째 파쇼독재체제의 일소와 사회민주주의의 실현, 세째 민주적 토지개혁과 농.어촌 빈곤 일소, 네째 중요산업의 국유화와 자립적 민족경제의 실현, 다섯째 민주적 노동법령의 실시와 노동자의 사회 경제적 처지 개선, 여섯째 여성의 권익보장과 사회적 지위 향상, 일곱째 민주적 민족문화 창달과 지식인의 생활보장, 여덟째 교육쇄신과 무료교육제 및 장학금제 실지,아홉째 선진적인 의료보험제 실시와 무상치료제실시, 열번째 자위적 민족군대 창설, 열한번째 자주외교 구현과 반제평화애호국과의 교류, 열두번째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성취" 등의 사항을 들고 있다.

<청맥>은 대중잡지로, 그 역할은 민족주체의식과 반미의식의 선전선동의 무기, 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청년, 지식인 결집의 장, 당내 지도핵심 발굴의 장이었다. 전체적으로 청맥의 논조는 반정부, 반미노선으로 향했고 반공적인 기사는 일체 게재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보안상의 이유로 사회주의를 논평하는 기사도 게재되지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FC5LitSD-FU&t=54s 

 
 
 
 
 

https://kydong77.tistory.com/7454

 

제1대 이승만 전대통령 취임사

[은자주]1910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으로 철학박사 취득. 그의 학위논문은 미국내에서도 명문으로 평가받는다고 읽은 기억이 있다. 그는 국민들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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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대통령 취임사(1948년 7월24일)

『분투용진(奮鬪勇進)하여 새로운 국가를 만년반석(盤石) 위에 세우도록 합시다』

제1대 대통령 취임사 [발췌]

*이번 우리 총선거의 대성공을 모든 友邦(우방)들이 축하하기에 이른 것은 우리 애국남녀가 단단한 愛國誠心(애국성심)으로 각각의 책임을 다한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국회 성립 또한 완전무결한 민주제도로 조직 되어 2, 3 정당이 그 안에 대표가 되고 무 소속과 좌익 색채로 지목받는 대의원이 또한 여럿이 있게 된 것입니다. 기왕의 경험으로 추측하면 이 많은 국회의원 중에서 사상 충돌로 분쟁분열을 염려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극렬한 爭論(쟁론)이 있다가도 필경 表決(표결)될 때에는 다 공 정한 자유의견을 표시하여 순리적으로 진행하게 되므로 헌법과 정부조직법을 다 民意(민의)대로 종다수로 통과된 후에는 아무 이의없이 다 一心으로 복종하게 되므로 이 중대한 일을 조속한 한도 내에 원만히 해결하여 오늘 이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니 국회의원 일동과 전문위원 여러분의 애국성심을 우리가 다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왕에도 말한 바이지만 민주정부는 백성이 주장하지 않으면 그 정권이 필경 정객과 파당의 손에 떨어져서 전국이 위험한 데 빠 지는 법이니 일반국민은 다 각각 제 직책을 행해서 먼저 우리 정부를 사랑하며 보호해 야 될 것입니다. 내 집을 내가 사랑하고 보 호하지 않으면 필경은 남이 주인노릇을 하 게 됩니다. 과거 40년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義로운 자를 보호하고 不義 한 자를 물리쳐서 義가 서고 邪가 물러가야 할 것입니다. 전에는 임금이 小人을 가까 이 하고 賢人을 멀리하면 나라가 위태하다 하였으나 지금은 백성이 주장이므로민중이 義로운 사람과 不義한 사람을 명백히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以北(이북)동포 중 공산주의자들에게 권고하노니 우리 조국을 남의 나라에 附屬(부속 )하자는 불충한 사상을 가지고 공산당을 빙자하여 국권을 파괴하려는 자들은 우리 全민족이 원수로 대우하지 않을 수 없나니 남의 선동을 받아 제 나라를 결단내고 남의 도움을 받으려는 反逆(반역)의 행동을 버리고 南北의 정신통일로 우리 강토를 회복해 서 조상의 유업을 완전히 보호하여 우리끼 리 합하여 共産이나 무엇이나 民意를 따라 행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기왕에도 누누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의 賣國主義(매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므로 以北의 共産主義者들은 이것을 절실히 깨닫고 일제히 회심해서 우리와 같이 같은 보조를 취하여 하루 바삐 평화적으로 남북을 통일 해서 정치와 경제상 모든 복리를 다 같이 누리게 하기를 바라며 부탁합니다. 대외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와 다 親隣(친린)해서 평화를 증진하여 외교통상에 균평한 이익을 같이 누리기를 절대 도모할 것입니다. 만일 交際上(교제상) 親疎(친소)에 구별이 있다면 이 구별은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他動的(타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143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미국vs중국,한국의 선택은?, 남북분단과 6.25전쟁/리승만대통령취임사

https://www.youtube.com/watch?v=1gNVg2Y7ZQU https://www.youtube.com/watch?v=fFPfdykiWI4 https://www.youtube.com/watch?v=LDD-gXjqa48 https://kydong77.tistory.com/21142 미국vs중국, 한국의 선택은? h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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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6.25_%EC%A0%84%EC%9F%81

 

6.25 전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전쟁 이전 미리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과 소비에트 연방의 이오시프 스탈린의 협조와 지지를 얻은 김일성[22]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도선과 동해안 연선(沿線) 등 11개소에서 경계를 넘어 38선 이남으로 진격하였다. 조선인민군의 대공세에 유엔은 미국을 주축으로 바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82호를 의결하고 이 전쟁에서 한국을 원조하기로 결정하고 파병하였다. 그리하여 7월 7일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유엔군이 조직되었다.[23] 인민군은 무방비 상태였던 중부지방과 호남지방을 삽시간에 휩쓸었다. 연합군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배수진의 결전을 전개하였다.[24]

연합군은 더글러스 맥아더의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하여

10월 10일 평양에 이어 압록강 부근까지 이르렀으나,

11월 중순 중국인민지원군이 개입하여 전세가 다시 뒤집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혜산진까지 진격하던 국군은 1월 4일 서울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를 1.4후퇴라고 한다.

그러나 다시 3월 15일에 탈환하였다. 그 와중에 남로당의 남한 내부 전복을 위한 활동과 이를 제압하려는 대한민국 정부의 충돌로 거창 양민학살 사건국민 방위군 사건 등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3년 간 지속된 전투로 수많은 군인 및 민간인이 사상하였고, 대부분의 산업 시설들이 파괴되는 등 양측 모두가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념적인 이유로 민간인들의 학살이 자행되고 지주들의 처벌과 그 보복이 반복되면서 남·북 간의 적대적인 골이 깊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으로 인하여 설정된 한반도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휴전하였다. 현재까지 서류상으로 휴전 상태로, 협정 체결 이후에도 남북 간에 크고 작은 군사적 분쟁이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다.

 

6 25의 노래

 “‘6.25의 노래’는 금지곡이었다?”…검증해보니 / KBS뉴스(News)

https://www.youtube.com/watch?v=QJYZ1duyYJ4
 
https://www.youtube.com/watch?v=PiVfh2P6XUM
* 너튜브에 제목을 검색하면 동영상 시청이 가능함.

 

낙동강 전선 다부동 전투

https://www.youtube.com/watch?v=5hW9B708FtM
 

故 백선엽 장군 영면

https://www.youtube.com/watch?v=-V84FhMVxo8
https://www.youtube.com/watch?v=e5jTa5Ng4NU
 
 
 

 

https://kydong77.tistory.com/14967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경과,결과 [해설]

최후 본토 결전에서 승리를 외치던 일본 정부와 군부의 숨통을 누른 히로시마 원폭 투하. 1945년 8월 6일에는 히로시마, 이어 9일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경과,결과 http://ti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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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18344?category=484906 

 

맥아더, 인천상륙작전

인천 상륙 작전(仁川上陸作戰, Battle of Incheon)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시작된 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7만 5천여 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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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ydong77.tistory.com/18332

 

아, 박정희 대통령!/ 초대-19대 한국 역대대통령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A0%95%ED%9D%AC 박정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박정희(朴正熙[2], 1917년 1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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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wnygrkwumnk 

 

 

https://www.youtube.com/watch?v=ZAoJArCamSY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07/2013010702691.html

 

[김대중 칼럼] 한국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

김대중 칼럼 한국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 개발도상국 관료들의 한국 評 자기들이 잘산다는 사실과 위험한 대치 상황에 놓인 것, 中·日 얼마나 두려운지 몰라 안보 무감각증 속히 고치고 당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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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이 잘산다는 사실과 위험한 대치 상황에 놓인 것,

中·日 얼마나 두려운지 몰라'

안보 무감각증 속히 고치고 당당하고 신중한 주변 외교를!

 

 "대한민국" , 지정학적으로 최악의 나라

https://www.youtube.com/watch?v=jI689f7J8Dk 

 

 

https://www.youtube.com/watch?v=MTL-ccYnhcg 

 

 

https://www.youtube.com/watch?v=5nU77-l1nsA 

 

 

https://www.youtube.com/watch?v=7vUv-x-fNk4 

 

 

https://www.youtube.com/watch?v=nVBTrLNh4cQ 

 

 

 

 

 10월 17일 (월) 뉴스 9 - 카카오 사흘째 복구 중

https://www.youtube.com/watch?v=nSG0GVP-1GA 

 

 

https://namu.wiki/w/%EC%B9%B4%EC%B9%B4%EC%98%A4(%EA%B8%B0%EC%97%85) 

 

카카오(기업) - 나무위키

기업 정보 [ 펼치기 · 접기 ]상장시장종목코드법인번호1101111129497자본금446억 4,059만 9,000원(2021년 기준)매출액연결: 6조 1,366억 6,916만 7,665원(2021년 기준)별도: 2조 1,329억 1,588만 4,804원(2021년 기준)

namu.wiki

2015년 9월 23일 사명이 다음카카오에서 카카오로 변경되었다.#

2015년 11월 29일 카카오뱅크가 인터넷 은행 예비인가를 받았다. 헌데 여기서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기는데…… 로엔엔터테인먼트를 합병하면서 총자산이 5조 원이 넘어가버린 것. 5조 원 이상은 대기업 집단, 그러니까 재벌로 다루어지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금산분리법에 따라 산업자본인 카카오는 은행 지분을 10% 이상(법적으로는 4%, 금융위 허가를 받을 시에 10%) 소유할 수 없어서 인터넷 은행을 경영할 수 없게 되는 것. 관련기사.

그러나 공정위에서 대기업 기준을 자산기준 5조에서 10조로 올리기로 함으로써 한숨은 덜 듯. # 여론은 좋지 않다.[14] 그리고 2019년, 기어이 자산규모 10조원의 벽도 넘어버림에 따라 카카오는 정식으로 대기업으로 분류되었다. IT기업으로서는 국내 최초다.

네이버대비 사업 영역 확장이 두드러지다보니 문어발식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가령 네이버는 쇼핑몰 플랫폼에 도전하다가 쇼핑몰 업계의 항의로 인해 수수료 없는 단순 포털형태에 가까운 형태로 한발 물러섰으나, 카카오는 서비스 성장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해당 서비스를 네이버처럼 오픈 플랫폼 형태로 열어주는지, 혹은 카카오처럼 자회사를 통해 운영하는지가 핵심 논란거리다. 오픈 플랫폼 형태는 서비스 품질 관리가 어렵다는 맹점이 있고, 직접 운영의 경우 이용자 경험 관리가 용이하지만 ‘문어발'이라는 프레임에 다들 천착하다보니 실질적인 소비자 후생은 논외가 된 형태다. 표절 논란도 존재했다. 배달의민족으로 대표되는 배달앱 기능, 뱅크샐러드로 유명한 가계부 앱 등... 택시조합은 집단행동을 하며 반발이라도 했지만, 스타트업들은 그럴 힘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카카오가 기존의 불합리하거나 불편했던 시스템을 개선했다는 데에는 나름 의의가 있음이 틀림이 없다. 표절 논란이나 문어발식 사업 논란, 많은 이용자들이 환호했던 카풀 서비스 백지화 등을 살펴보면 크고 작은 기업과 이해당사자들의 ‘제 논에 물 대기’식 이슈 제기, 정치권의 기업 길들이기와 그에 편승한 이해관계자들의 여론 형성 등에 관해 다시한번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교통분야 관련 서비스를 개편하고 있다. 품고만 있던 김기사, 서울버스, 지하철 내비게이션 등을 카카오내비카카오버스카카오지하철로 바꿔서 재출시하고 주차장 앱인 파크히어를 인수하기도 했다.

2017년 7월 10일부로 코스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했다.[15] 그리고 카카오뱅크와 픽코마가 대박을 쳤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한 동안 주가가 껑충 뛰어올랐다.

2020년에 웹툰 시장 강화 위해 KADOKAWA 지분 4.9%을 인수했다.# 이후 2021년 1월 26일 지분 7.3%를 보유한것으로 발표되면서 KADOKAWA의 최대주주가 되었음이 알려졌다. #

 

 

 

https://www.youtube.com/watch?v=mpzmXj7wd_k 

 

 

https://www.youtube.com/watch?v=UJfuifXoFEo 

 

 

https://www.youtube.com/watch?v=ADasOukzwYs&t=29s 

 

 

https://www.youtube.com/watch?v=7g3z5lEZiBo 

 

 

 

https://www.youtube.com/watch?v=p8JiblFscwg 

 

 

https://www.youtube.com/watch?v=zyH3Rc5rO9I 

 

 

https://www.youtube.com/watch?v=7saBkCVbPSs 

 

 

https://www.youtube.com/watch?v=FC5LitSD-FU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417885_35744.html

 

'문재인 김일성주의자' 김문수 고발 의결‥이배용 역사관 논란

'문재인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김 위원장을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박근...

imnews.imbc.com

 

김문수의 사상투쟁...극좌 운동권 민낯 폭로

좌익의 정체성과 이른바 '중도'의 위선 까발려 

 "김문수는 전투적 자유 레지스탕스의 모범"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2/10/14/2022101400027.html

 

[류근일 칼럼] 김문수의 사상투쟁...극좌 운동권 민낯 폭로

법대 학생회장 이광백은 대중 활동가 조직인 동그라미의 책임자가 됐다. 그는 조직 이름을 ‘1995’로 바꿨다. 김일성이 ‘1995년은 통일의 원년’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조직의 기풍을 잡기에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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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mfNAFC4mjt4 

 

 

https://kydong77.tistory.com/1512

 

장자 외편 제17편 秋水14.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12.우물안 개구리

원추는 썩은 쥐는 먹지 않는다 - 장자(외편) ; 제17편 추수[14]- 惠子相梁, 혜자상량, 혜자가 양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莊子往見之. 장자왕견지. 장자가 그를 만나러 갔다. 或謂惠子曰: 혹위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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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10.2 - 2022.10.4. 향년 94세

https://www.youtube.com/watch?v=49XzBU96hbE 

 

https://www.sedaily.com/NewsView/26C8CRO9GQ

 

'이게 뭡니까' 보수 원로 김동길 명예교수 별세…향년 94세

정치 > 정치일반 뉴스: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긴 보수진영 원로 인사 김동길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별세했습니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회운동·현실정치에도 깊숙이

www.sedaily.com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긴 보수진영 원로 인사 김동길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향년 94세.

5일 유족에 따르면 숙환으로 입원 중이던 김 교수는 전날 오후 10시 30분께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지난 2월 코로나19에 확진됐다가 회복했지만, 3월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입원 뒤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928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월남해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미국 에반스빌대와 보스턴대에서 각각 사학과 철학을 공부해 문사철(文史哲)을 섭렵했고 100권 안팎의 저서를 남겼다.


https://namu.wiki/w/%EA%B9%80%EB%8F%99%EA%B8%B8

 

김동길 - 나무위키

1928년 10월 2일, 평안남도 맹산군 원남면 향평리에서 원남면장 김병두(金炳斗)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광산업에 손을 댔다가 가산을 모두 말아먹는 바람에 아주 어린 시절에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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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10월 2일  평안남도 맹산군 원남면 향평리 출생

2022년 10월 4일 (향년 94세) 사망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대동문길 75-28[1]

풍천(豊川) 김씨  , 호 산남(山南)

1928년 10월 2일평안남도 맹산군 원남면 향평리에서 원남면장 김병두(金炳斗)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광산업에 손을 댔다가 가산을 모두 말아먹는 바람에 아주 어린 시절에 어머니 및 형제들과 함께 맹산을 떠나 평양으로 옮겨 살았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고 한다. 이때 이후로 아버지와의 연락이 끊어져서 한동안 어머니 혼자서 김동길 자신을 포함한 4남매를 먹여 살리고 공부를 시키느라 엄청난 고생을 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장성한 후에도 아버지를 미워하며 끝내 김동길 그 자신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1945년 해방 직전에 교원 자격시험에 통과해서 평안남도 평원군의 괴산국민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러나 1946년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부모와 함께 야음을 틈타 월남했다.[4]

이렇게 서울에 도착한 김동길은 연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다니던 중 평소에 존경하던 백낙준과 함석헌 등을 좇아 역사학과로 전과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 미국에서 1년 동안 유학을 하고 돌아와 연세대 전임강사가 되어 영어를 가르쳤다. 그러나 미국에서 다시 공부를 하라는 백낙준의 권유에 따라 다시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인디애나 주에 있는 에반스빌 대학교 사학과에서 수학한 뒤 보스턴 대학교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5]

귀국한 후에는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랄한 사회풍자글을 계속 발표하였다. 유신 이후에는 함석헌이 발행하던 '씨알의 소리'에 노골적인 체제비판글을 게재하면서 민주화운동에 가담하였다. 학생운동권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기소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얼마뒤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분의 강연 한 편을 살펴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vyQAKdKDOlM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는?

불교정신 - 색즉시공 공즉시색/ 4성제, 8정도

https://www.youtube.com/watch?v=sdwC-KQ_qDo&t=147s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2159

 

승군(僧軍)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등(等)상호군(上護軍), 설헌(雪軒), 호군(護軍), 영오(靈悟), 부호군(副護軍), 처영(處英), 사과(司果), 희식(希式), 사과(司果), 처묵(處默), 의병장(義兵將), 홍정(弘靖), 해명(海明), 육정(六精),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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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대첩 - 7명의 승병
신라의 승려 도옥(道玉)
백제의 도침(道琛)
통일신라 말기의 난세에 해인의 승군을 조직

2. 고려시대의 승군
 1104년(숙종 9) 항마군(降魔軍)이라는 명칭으로 정규군에 편입된 이후, 그 뒤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마다 승군을 차출.
1010년(현종 1)에 거란의 침략으로 서경이 위기에 놓였을 때, 승장 법언(法言)은 사정(思政) 등과 함께 9,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임원역(林原驛)에 진을 치고 거란병을 공격하여 적병 수천 명을 살상하는 큰 전과를 올렸으나, 법언은 순국하였다.
인종 때에는 관선(冠宣)과 상숭(尙崇) 등이 묘청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1174년(명종 4) 1월 이의방(李義方)이 난을 일으켰을 때, 중흥사(重興寺) 승군 2,000여 명과 의승병들은 이의방을 죽이고, 나머지 역도들을 모두 섬멸하였다.
또 1176년(명종 6) 공주에서 망이(亡伊)와 망소이(亡所伊)가 난을 일으켰을 때에도 승군의 활동이 컸으며, 1182년(명종 12) 죽동(竹同)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도 안찰사 박유보(朴惟甫)가 이끈 관군은 죽동에게 패하였으나, 승군이 출병하여 그 난을 진압하였다.
1216년(고종 3) 8월 거란이 우리나라 서북쪽 국경을 침범하자,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적을 막게 하였는데, 이 때 승군 수백 명이 참가하였다. 특히 몽고의 침략 때에는 김윤후(金允侯)의 활약이 뛰어났다.
원나라가 살례탑(撒禮塔)을 도원수로 삼아 2차침략을 하여 처인성을 공격하였을 때, 승려였던 김윤후는 활을 쏘아 살례탑을 죽였고, 원나라가 4차침략을 하였을 때에는 충주산성 방호병감(防護兵監)이 되어 70여 일 동안 산성을 수호하여 적군을 물러가게 하였으며, 1254년(고종 41)의 제5차침략 때에도 충주성의 함락을 막았다.
5차침략 때 상주산성을 지키고 있던 승장 홍지(洪之)는 백발백중의 실력으로 적의 지휘관을 사살하고 사기를 꺾었으며, 여러 차례의 공방전으로 적의 병력 반 이상을 살상하여 적을 물리쳤는데, 이 5차침략 때 함락되지 않은 성은 충주성과 상주성뿐이었다.
고려 후기에는 승군의 세력이 매우 강성하였다. 1359년(공민왕 8) 12월 홍건적의 침입이 있게 되자, 선교양종의 승려들이 참여하여 이들을 막았고, 전국의 사찰에 있던 말을 군용으로 보충시켰다.
1377년(우왕 3)에 화통도감(火筒都監)을 세우고 화약제조술을 중국에서 도입하였을 때, 1급의 비밀에 속한 기술요원은 승군에서 충당하였고, 화통을 쏘는 포군(砲軍)은 서울과 각 지방의 사찰에 인원수를 할당하여 조직하였다.
1378년(우왕 4) 3월에는 대마도의 왜구와 강화도 인근의 왜구가 개경의 함락을 목적으로 대거 침략하게 되자, 조정에서는 경상도와 양광도에서 1,000인의 승군과 교주·서해·평안도에서 각 500인의 승군을 차출하여 병선을 제조하고 화약병기를 사용하여 적을 물리치게 하였으며, 1388년 4월 승군들이 왜구의 침략을 막았다.
3. 조선시대의 승군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승려 자체의 군사조직을 만들 수가 없었다. 오히려 무도첩승(無度牒僧)을 환속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 때를 같이하여 승군의 조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무도첩승을 승군으로 동원하여 일정 기간 성곽 또는 요새를 수축하게 한 뒤 그 대가로서 호패(號牌)를 급여하고 신분을 보장해 주었으나, 그 뒤의 무도첩승은 모두 환속시켜 군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1553년(명종 8)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무도첩승과 도첩승을 가리지 않고 모두 승군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왜변이 끝난 뒤에도 수년 동안에 걸쳐서 배를 만들거나 성을 쌓는 일에 동원하였다.
① 전란기의 승군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휴정(休靜)은 전국 사찰에 나라를 구할 것을 호소하는 격문을 보냈고, 전국 각지에서는 의승군(義僧軍)이 궐기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싸움은 영규(靈圭)의 청주성발성(淸州城拔城), 처영(處英)의 행주산성대첩을 비롯하여 유정(惟政)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평양탈환 때의 모란봉전투(牡丹峰戰鬪)도성수복 때의 수락산전투·노원평전투·송교전투 등을 들 수 있다.
유정이 의주에서 조정으로부터 도총섭(都摠攝)의 직첩을 받은 것은 1592년 7월이었는데, 휴정은 그 이전부터 600명의 승군을 조직하여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 승군은 뒷날에 조직된 법흥진(法興鎭) 승군의 모체가 되었다.
유정은 강원도에서 궐기한 150명의 승군을 이끌고 황해도를 거쳐서 1592년 10월 평양성 동쪽에 이르렀는데 이 때의 수는 700명이 넘었다. 다시 그들이 법흥진으로 갔을 때, 법흥진의 총 승군병력은 5,000명에 이르렀다. 평양탈환 직전인 11월부터 평양과 중화지방의 적군을 차단하는 작전에 임했던 법흥진승군은 평양탈환전에서도 유정의 지휘 아래 난공지점인 모란봉 방면을 담당하여 그 임무를 수행하였다.
산악지대의 지세와 지형을 평소 잘 숙지하고 있었던 승군이었으므로 평양탈환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북관(北關)에서의 적의 동태를 정찰하는 임무도 담당하였다. 승군은 의병과는 달리 끝까지 관에 의해 해체를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관군의 재정비와 명나라 군사가 온 뒤부터는 한편으로 싸움에 임하면서 한편으로는 군량미 수송도 담당하게 되었다. 또 한양의 수복 후에는 성을 쌓는 일을 담당하는 등 관군에 준하는 형태로 변하여 갔다.
전후 7년 동안에 걸쳐 전국 각지에서 승군의 활동이 전개되었는데, 전라도 무주지방에서의 공방전과 경기도에서의 죽산전투 등도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유정은 한양 수복 후에도 영남지방에서 왜구들과 싸우는 한편, 성을 쌓고 군량미를 조달하는 일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도산성공격(島山城攻擊)과 예교총공격(曳橋總攻擊)에도 참가하였다. 그리고 휴정의 뒤를 이어 직첩 없이 도총섭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대표적인 승병장으로는 휴정·유정·영규·처영 외에도 『선조실록』에는 많은 승려들의 기록이 있다. 무기를 만들고 성을 쌓는 데 공이 컸던 법견(法堅), 정보를 담당했던 행사(行思), 죽산성을 쌓았고 그 성의 수비대장을 겸했던 영주(靈珠), 담양옥천사에서 봉기한 인준(引俊), 용진의 월계산성(月溪山城) 수축의 책임을 맡았던 견우(見牛), 경상도에서 봉기하여 전공을 많이 세운 해안(海眼)이 있다.
그리고 서산대사의 부상으로 평양탈환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운 인오(印悟)와 천연(天淵), 평안도·황해도 일대의 수비대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법정(法正), 여천 일대의 무기고 수비에 공이 컸던 혜희(惠熙), 이순신의 해군에 편입되어 작전을 편 의능(義能), 해전에 참여한 삼혜(三惠), 서산대사의 뒤를 이어 도총섭이 되었고 파사성(婆裟城)을 쌓았던 의엄(義嚴)도 유명하다.
또한 충청도 부여 출신으로 의승을 모집하여 권율의 휘하에서 적을 맞아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한 설미(雪尾), 경상우도총섭이 되어 군량미의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를 짓는 한편, 해인사에서 활과 화살·화약을 만들어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승군에게 보급하고, 처음의 진주성싸움을 승리로 이끈 신열(信悅) 등이 있다. 또 1605년(선조 38) 4월 임진왜란 때의 군공(軍功)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의 녹공이 있었는데, 이 때 공신이 된 34명의 승군은 다음 [표]와 같다.

[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의 승군(僧軍)

 
등급(等級)관직(官職) 및 승명(僧名)
1 등(等) 동지(同知), 유정(惟政), 승장(僧將), 영규(靈圭), 삼행(三行)
2 등(等) 상호군(上護軍), 설헌(雪軒), 호군(護軍), 영오(靈悟), 부호군(副護軍), 처영(處英), 사과(司果), 희식(希式), 사과(司果), 처묵(處默), 의병장(義兵將), 홍정(弘靖), 해명(海明), 육정(六精), 혜근(惠根), 종인(宗印), 승보(勝寶), 도암(道庵), 한석(閑石), 사의(思義), 법관(法寬), 태원(太元), 옥준(玉俊), 덕응(德應), 의원(義元), 희인(希印), 호월(浩月), 호철(浩哲), 묘혜(妙惠)
3 등(等) 부호군(副護軍), 사묵(思默), 사과(司果), 법근(法近), 사과(司果), 보훈(寶訓), 사용(司勇), 태헌(太軒), 도의(道義)
다른 한편으로 국가에서는 승군 동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1593년 8월에 도총섭 밑에 각 도마다 총섭 2명씩을 두게 하여 조직을 일원화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는 각성(覺性)과 명조(明照) 등의 의승군이 활약하였다.각성은 1624년(인조 2) 팔도도총섭이 되어 남한산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였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3,000명의 의승을 모아 항마군이라 이름한 뒤 스스로 승대장이 되어 북상하였으나, 도중에 왕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진군을 중지하였다.

명조는 1627년 후금이 침략해 오자, 의승군 4,000명을 거느리고 안주(安州)에 진을 쳐서 크게 전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때에는 군량미를 모아서 전선에 보내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② 전란기 이후의 승군
병자호란 후에 승군들은 산성의 수축 및 수호에 주력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곳으로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두었던 남한치영(南漢緇營)과 북한치영(北漢緇營)을 들 수 있다.
각성이 감독하여 쌓은 남한산성 안의 남한치영은 각 도에서 의승을 불러서 번을 서게 하였고, 성 안의 9개 사찰 승군으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하였으며, 도총섭 1인 밑에 중군(中軍) 1인, 교령관 1인, 초관(哨官) 3인, 기패관(旗牌官) 1인, 성 안팎 10개 사찰의 원거승군(原居僧軍) 138명, 의승(義僧) 356인을 두었다.
북한치영은 1711년에 북한산성을 쌓음으로써 생겨나게 되었다. 주위 7,620보에 장대(將臺) 3곳, 대문 4곳, 암문(暗門) 10곳을 비롯하여 도총섭이 있는 중흥사(重興寺)를 중심으로 태고사·노적사·서암사·경흥사·국영사·원각사·부황사·보광사·보국사·용암사·봉성암 등의 사찰이 있었으며, 이들 사찰에 승군들이 머무르면서 산성을 수호하였다.
승영에는 도총섭 1인과 중군·좌별장·우별장·천총(千摠)·파총(把摠)·좌병방(左兵房)·우병방 각 1인, 교련관·기패관·중군병방(中軍兵房) 각 2인, 오기차지(五旗次知) 1인, 도훈도(都訓導)·별고감관(別庫監官) 각 1인, 사료군(射料軍) 10인, 서기 2인, 통인(通引) 2인, 고직(庫直) 3인, 책장무(冊掌務)·판장무(板掌務) 각 1인, 취수(吹手) 2인, 각사승장(各寺僧將) 11인, 수승(首僧) 11인, 의승 350인을 두었다.
이들 치영 외에도 역대 왕조실록을 둔 곳 가까이의 사찰인 강릉 월정사, 무주 적상산성, 봉화 각화사, 강화 전등사에 수호승군을 두어 실록 수호의 임무를 다하게 하였다. 이 승군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승군(僧軍))]

 

https://kydong77.tistory.com/18900

 

사명대사(泗溟大師) 유정(惟政)의 漢詩

이은영의 한시산책 사명대사, 목탁 대신 붓과 칼을 잡다 泗溟堂 영웅은 난세를 통해 세상에 나타난다. 물론 누구나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출중한 능력을... blog.naver.com 浮碧樓에서 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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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가르침

— 《논어》 위정편(爲政編)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 所欲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륙십이이순, 칠십이종심, 소욕부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15세에 공부를 하겠다는 뜻을 세웠고,

삼십세에 이르러 일가견을 지니게 되었으며,

40세에 되어서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50세에는 천명을 깨닫게 되었고,

60이 되어서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도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

 *矩(구) -'법도',

 

http://www.gimhae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881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 김해일보

공자가 재나라 국경을 지나다가 뽕을 따는 두 여인을 보았는데 동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얼굴이 구슬처럼 아름답고, 서쪽에서 뽕을 따는 여인은 박색이었다. 공자가 이 광경을 보고 농을 하기를

www.gimhaeilbo.com

 

조선시대 한국을 지키신 분들
세종 훈민정음 제정.
율곡 이이- 십만 양병설
퇴계 이황 - 理氣철학(朱子) 도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3848

 

이기론(理氣論)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주리적 이기관(主理的 理氣觀)의 대표적 이론은 이황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현일(李玄逸)에 의해 계승되고, 이진상(李震相)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황의 이기론은 이기론적 체계를 자연 현상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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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기의 상호 역할 관계를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 관계라고 하고, 또는 이이일(二而一)·일이이(一而二)의 관계라고도 말한다. ‘이·기가 서로 떠나 있지 않다.’는 명제는 현상적 사물의 특성을 두고 한 말이다. 현상적 사물의 존재란 실상 기의 존재이며, 기가 있어야 이는 사실상의 실재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기불상리’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사물상으로 보면 이 두 가지는 혼륜해 있어 나누어 각각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없다(在物上看 則二物渾淪 不可分開 各在一處 : 『朱子大全文集』, 卷46, 答劉叔文).”
이의 존재는 현상적인 기에 의해 그 존재성이 구현되는 반면, 기의 존재는 그 원인·이유로서 이가 있어야 바람직한 존재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 관계는 사물상의 관점에서 살펴본 관계라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기론(理氣論))]

* 서양철학으로 설명하면, '理'는 본질이고 '氣'는 현상을 말한다.

 

이순신 - 명량해전 12척의 배로 일본 전함들 침몰시킴.

 

안중근 外

https://kydong77.tistory.com/21379

 

안중근, 내가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 윤봉길, 상해의 홍구공원 폭탄 투척 사건

https://www.youtube.com/watch?v=yEO3NNOvaXk 내가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hOcB0pngL6g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6/2014032600457.html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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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 스트레이츠 타임즈에 보도된 안중근 의사의 "내가 이토를 처단한 열 다섯가지 이유"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둘째, 1905년 11월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셋째. 1907년 정미7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죄
넷째,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다섯째, 군대를 해산시킨 죄
여섯째,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일곱째,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여덟째,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아홉째,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열 번째, (제일은행) 은행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열한번째, 한국이 300만파운드의 빚을 지게 한 죄
열두번째,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열세번째,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열네번째, 일본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죄
열다섯번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등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dSphXcJF1c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379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뉴스 초점> 북 미사일 일본 상공 통과

https://www.youtube.com/watch?v=c1NJouXU5yo 

 

https://www.youtube.com/watch?v=CRMs4b-iXN0 

 

 

https://www.youtube.com/watch?v=MnZLxhO4CAA 

 

https://www.youtube.com/watch?v=RRci7AkqN8o 

 

 

https://www.youtube.com/watch?v=EvopuvxV_m4 

 

https://www.youtube.com/watch?v=qtAc-3qyt8Y 

 

文정부, IOC 제출 제안서…“28조 원 들여 평양 개발” > IOC 거부로 불발

https://www.youtube.com/watch?v=WtqCZ7p9LDE 

 

북 미사일에…한국 떠났던 미 핵항모, 다시 동해로 들어온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61424.html

 

북 미사일에…한국 떠났던 미 핵항모, 다시 동해로 들어온다

연합훈련 마치고 복귀하던 ‘로널드 레이건호’합참 “5일 동해상 진입할 것”…이례적 재출동

www.hani.co.kr

 

https://www.youtube.com/watch?v=zWggo7O_89s 

 

https://www.youtube.com/watch?v=dhYVdTRCd_c 

 

 

https://www.youtube.com/watch?v=rIAubCIB8yU 

 

 

https://www.youtube.com/watch?v=UtHiII0SZlk 

 

 

https://www.youtube.com/watch?v=lwhJ2ZL7Wsk 

 

국회의사당에서 찍힌 권성동의 휴대폰(자기 존재감 과시로 착각한 듯?)

여당분열의 단초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2172 

 

尹이 보낸 이모티콘 '체리따봉'이 여권 최악 내분 불렀다 - 뉴스버스(Newsverse)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에 출연해 생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 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 새끼 저 새끼’ 발언을 기자회견에서

www.newsverse.kr

 

https://www.youtube.com/watch?v=coBMuhEZqEg 

 

 

https://www.youtube.com/watch?v=A4mxIIIoUSY 

위 화면의  YouTube에서 보기를 클릭하면 동영상이 열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G1NM3sCGEw 

 

 

https://www.youtube.com/watch?v=NbDUzXpjpzU 

 

 

https://www.youtube.com/watch?v=GkwQCg38LpI 

 

 

https://www.youtube.com/watch?v=EXkCRD2DKw8 

 

 

https://www.youtube.com/watch?v=bH_SbOqlLjk 

 

 

https://www.youtube.com/watch?v=HBtZk4PLuu4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20830/115220861/1

 

윤핵관 기세가 예전같지 않다…“검핵관 용핵관 시대 열렸다는 말까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중징계 이후 극에 달한 여당의 내홍과 최근 진행중인 대통령실의 대대적인 인적개편이 맞물리면서 여권에서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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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bWhX2guqHBY 

 

https://www.youtube.com/watch?v=o3l0Aq3LGOs 

 

[야담여담]

https://www.youtube.com/watch?v=iMsMupIZLb8&t=139s 

 

 

https://www.youtube.com/watch?v=D7NhfY7K42Q 

 

https://www.youtube.com/watch?v=fyzH9tO7LR4 

 

https://www.youtube.com/watch?v=IqtSBk9InNQ 

 

 

https://www.youtube.com/watch?v=TtdSoqbpzis 

 

https://www.youtube.com/watch?v=EclBgyje0wc 

 

 

https://www.youtube.com/watch?v=vcDYRQzADf8 

 

 

https://www.ihalla.com/article.php?aid=1661750325731313346 

 

윤석열 대통령 국정지지율 여전히 30% 초반 '보합' [리얼미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3주 연속 소폭 오름세를 보이고 부정평가는 3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9일 나왔다. 리얼미터가 지난 22∼26일(8월 4주차) 전국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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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637 

 

민주당 “감사원 윤석열정부 공영방송장악 첨병” 감사원 “동의 못 해” - 미디어오늘

감사원이 KBS와 KBS 이사회에 대한 감사를 전격 개시했다고 밝혀 14년 만에 권력의 방송 장악에 동원됐다는 평가가 나온다.야당 등 정치권에서는 감사원이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선봉대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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