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내가 다리를 앓아 핑계삼아 장인댁에 가니,

중형[허봉 [許篈, 1551 ~ 1588]은 내가 나들이 않음을 빈정대어 시를 지어 보냈는데

첫 수는 다음과 같다.

天意憐君慕太王 천의련군모태왕

故敎雙脚遍生瘡 고교쌍각편생창

隣家咫尺猶嫌遠 인가지척유혐원

何況蘋洲十里長 하황빈주십리장

하늘이 태왕(太王)을 사모하는 자네 마음 알아

짐짓 두 다리에 온통 부스럼이 나게 했구나

이웃이 지척이나 오히려 멀다 혐의하니

하물며 물마름 우거진 십리길이랴

또 다른 수는 다음과 같다.

知君不駕短轅車 지군불가단원거

高處黃門大路隅 고처황문대로우

擧世若從公事業 거세약종공사업

人間何地覓潛夫 인간하지멱잠부

체 짧은 수레도 안 타는 자네

덩그런 황문이 한길가에 서겠네

세상이 온통 공사에만 종사한다면

이 세상 어디메서 잠부를 찾을꼬

대개, 태왕이 그 비를 사랑하기에 세상에서 애처가를 태왕이라 부르는 것이다.

황문은 옛날 어떤 사람이 그 아내를 너무 사랑하여 그 친구가 빈정대기를,

“열녀는 홍살문을 세워 정문을 삼으니 정남(貞男)은 마땅히 황문을 세워야겠지.”

하였다 해서 쓴 것이니, 그 풍류와 익살이 모두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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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두남(斗南) 김일숙(金一叔)은 글은 보통이었으나, 남을 풍자하는 작품으로는 그 당시에 으뜸이었다.

이웃에 어른(丈人)이 있었는데 앞니가 길어 홀(笏) 모양 같았음으로,

다음과 같이 찬(贊)을 지었다.

生年七十 생년칠십

所長者齒 소장자치

齒兮可爲笏兮 치혜가위홀혜

나이 일흔에

긴 것이라곤 이[齒]니

이는 홀을 만들만 허구려

또 이웃사람이 눈이 가늘어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다음과 같이 찬을 지었다.

不欲觀諸眇視一世者邪 불욕관제묘시일세자사

其見者小 기견자소

豈非坐井觀天者邪 기비좌정관천자사

觀其眸子 관기모자

人焉瘦哉 인언수재

모든 것 보고 싶지 않아 한세상을 하찮게 보는 자인가

보이는 것이 작으니

우물에서 하늘을 보는 자 아닌가

그 눈동자를 보면

그 사람 무슨 수로 속마음 숨길손가

나의 중형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잘하였다.

김두남(金斗南)은 원주인(原州人)이며 응남(應南)의 사촌 동생이다.

음관으로 부윤(府尹)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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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근세 선비들은 예(禮)를 병으로 여기고 다만 허무(虛無)를 말하고 욀 뿐만 아니라

술에 취한 채 수레를 타고 태연히 거리를 나돌아다니며 조금도 꺼리낌이 없는 이가 있는데

엄숙한 선비나 단아한 선비조차 이에 물들었다.

요즘 박엽 숙야(朴燁 叔夜 숙야는 자)라는 사람이 있어 시문(詩文)을 잘하나 불행하였다.

기생집[秦樓]에서 나의 글씨 솜씨와 시법을 보고 본떠 가는 곳마다 벽에다 써대었는데

뒷사람이 와 보고는 으레 이를 아무개 글씨다 하였다.

그의 상춘곡(傷春曲)은 다음과 같다.

妖紅輭綠含朝陽 요홍연록함조양

鸎吟燕語愁人腸 앵음연어수인장

苔痕漬露翡翠濕 태흔지로비취습

杏花撲雪臙脂香 행화박설연지향

鳳衫輕薄春寒襲 봉삼경박춘한습

斜倚銀屛怨離別 사의은병원이별

藁砧一去歸不歸 고침일거귀불귀

屈指東風又三月 굴지동풍우삼월

연분홍 꽃 오련한 푸른 잎은 아침햇살 머금고

꾀꼬리 읊조리고 제비는 지지배배 남의 시름 자아내네

이끼 자욱 이슬에 함초롬 비취빛으로 젖었는데

흩날리는 눈같은 살구꽃은 연지빛으로 향기롭다

봉황 무늬 저고리는 흐르르 얇아 봄추위 스며드는데

은병풍 기대어서 이별을 슬퍼하네

서방님 한 번 떠나 돌아오질 않아

손꼽아 기다리던 그 봄도 또 삼월이라니

선자가리개[仙子障]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白玉花冠素霓裳 백옥화관소예상

手拈棋子費思量 수념기자비사량

經年不下神僊著 경년불하신선저

想是蓬萊日月長 상시봉래일월장

하얀 옥꽃 족두리에 무지개옷 입고서

손으로 바둑알 잡고 생각만 거듭

몇 해 두고 바둑은 두질 않으니

아마도 선경엔 세월이 긴가보이

달 나라 궁전[月殿]에 제한 시는 다음과 같다.

花苑夜蒼蒼 화원야창창

移燈賞海棠 이등상해당

露華侵絳帕 노화침강파

香氣襲紅裳 향기습홍상

鯨製黃金鑰 경제황금약

螺雕白玉牀 라조백옥상

行雲著行雨 행운저행우

歸見楚襄王 귀견초양왕

창창한 밤 꽃동산

등불 들고 해당화 구경

이슬은 붉은 너울에 스미고

향기는 다홍 치마에 배어드네

고래론 황금빛 자물쇠 만들고

소라는 백옥상에 아로새겼네

가던 구름 저물녘 비 되어 내리니

돌아가면 초 양왕을 뵙게 되겠네

이울어가는 봄[殘春]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屛暗下流塵 병암하류진

凝雲護綺輪 응운호기륜

斷絲縈落絮 단사영락서

雛燕語殘春 추연어잔춘

睡思生紅頰 수사생홍협

啼痕染翠巾 제흔염취건

盤龍玉臺鏡 반용옥대경

只待畫眉人 지대화미인

먼지 탄 병풍은 우중충한데

엉긴 구름 비단 수렐 옹위하듯

버들 꽃은 어지러이 흩날리고

제비새낀 이우는 봄을 재재거리네

졸음기 붉은 볼에 피어나고

눈물 자국 푸른 수건에 젖네

용이 서린 옥대의 거울은

눈썹 그릴 미인을 기다릴 뿐

선동요(仙洞謠)는 다음과 같다.

靑鳥翩翩錦字通 청조편편금자통

玉簫吹煙廣寒宮 옥소취연광한궁

情知洞裏如花女 정지동이여화녀

笑指風流許侍中 소지풍류허시중

푸른 새 깃으로 금자(錦字) 전하니

광한전엔 옥피리 소리

알고 말고 선동 안의 꽃같은 여인

웃으며 멋쟁이 허 시중을 가리킬 것을

시격(詩格)이 나와 비슷하며 자획(字畫)은 분간할 수 없어 진짠지 가짠지 사람들이 정말 의심하게 된다.

이 때문에 내가 화류가에 드나든단 소문을 얻게 되었으니 우습다.

옛사람이 찻집[茶肆]ㆍ술집[酒坊]에도 도리상(道理上) 들어가지 않았거든 하물며 이보다도 더한 기생집일까보냐?

서진(西晉) 말(末)의 선비가 청담(淸談)을 숭상하자 오호(五胡)가 중국을 어지럽게 했고, 당(唐)이 망할 무렵

세상 풍속이 풍류를 즐기자 칠성(七姓)이 쟁립(爭立)하였으니,

이 두 가지를 겸하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요행일 뿐이다.

박엽의 호는 국창(菊窓), 반남인(潘南人)이며 벼슬은 평안 감사를 지냈다.

계해년(1623) 인조반정 때에 사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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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양정집(梁廷楫)은 호남 사람으로 나이 10세에 글을 잘 써 고향에서 신동(神童)으로 소문났었다.

스님에게 보내는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百結一老翁 백결일노옹

倚杖巖下立 의장암하립

回頭如有看 회두여유간

應待東溟月 응대동명월

노닥노닥 기워 입은 한 늙은 영감

지팡이 의지하여 바위 아래 서 있어

머리 돌려 뭔지 기다리는 듯하니

필경 동해바다 달일 테지

어린 나이에 임금의 잔치에도 초대받았었으나 불행히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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