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李達, 1539~1618(1609?)] 삼당파 시인의 한 분.

90.익지(益之)가 일찍이 ‘낙화(落花)’를 읊기를,

 

惆悵深紅更淺紅 추창심홍갱천홍一時零落小庭中 일시영락소정중不如留著靑苔上 불여유저청태상猶勝風吹西復東 유승풍취서복동

 

슬프다 진분홍에 또 연분홍 한꺼번에 풀풀 날아 작은 뜰에 지는구나 푸른 이끼에 붙어 남는 것만은 못하나 바람 따라 동서로 흩날리는 것보단 낫구나

 

하니, 어의(語意)가 함축되어 있다. 또 감회를 읊은 절구 두 수는 다음과 같다.

 

城闕參差甲第連 성궐참차갑제연五侯歌管沸雲煙 오후가관비운연灞陵橋上騎驢客 파릉교상기려객不獨襄陽孟浩然 불독양양맹호연

 

성궐은 들쑥날쑥 솟을대문 늘어섰는데 오후의 집 풍악소리 하늘 높이 울리는구나 패릉교 위 나귀 탄 나그네 양양땅 맹호연 만은 아니라오

 

둘째 수는 다음과 같다.

 

好爵高官處處逢 호작고관처처봉車如流水馬如龍 거여유수마여룡長安陌上空回首 장안맥상공회수咫尺君門隔九重 지척군문격구중

 

벼슬 높은 고관들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되고 수레는 물 흐르듯 말은 용 같네 장안 밭두렁에 부질없이 고개 돌리니 지척인 대궐문 아홉 겹이 가렸구나

 

용나루를 건너며[渡龍津]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秋江水急下龍津 추강수급하용진津吏停舟笑更嗔 진이정주소갱진京洛旅游成底事 경락려유성저사 十年來往布衣人 십년래왕포의인

 

가을이라 강물은 용나루에 급히 내리니 나루의 아전은 배 멈추고 웃었다 성냈다 서울 나들이 그 무슨 소용 십년을 오가도 포의인 것을

 

그 뜻이 몹시 서글프니 참으로 불우한 사람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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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복사비 받침석 쌍귀부[경주박물관]

[숭복사지 사진]

http://blog.daum.net/chgon/7717725

http://blog.daum.net/vmffktlqh/15855050

[소재지]숭복사비 崇福寺碑: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

 

경주초월산숭복사비

경주 初月山 崇福寺碑

경주초월산 대숭복사 비명 및 서

 

臣聞。

王者之基 祖德而峻孫謀也。

신은 듣자오니,

“왕자(王者)의 기틀은

선조의 덕으로 후손의 도모함을 높이는 것이라.” 하니

 

政以仁爲本。禮以孝爲先。

[仁孝爲一編大旨。]

정치는 인으로써 근본을 삼고

예법은 효도로써 으뜸을 삼는 것이다.

 

仁以推濟衆之誠。孝以擧尊親之典。

그 인으로는 대중을 구제하는 정성을 다하고

효도로는 어버이 높이는 법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莫不體無偏於夏範。[無偏無儻。王道蕩蕩。]

遵不匱於周詩。

[孝子不匱。永錫爾類。]

하범(夏範)에서 그 치우침이 없는 것을 본받지 않음이 없고

『시경(詩經)』에서 효자는 다함이 없다는 것을 따라야 하나니

 

聿修芟秕稗之譏。

[芟。刈也。秕。不成粟也。稗。似稻而實細也。比政事不明。]

스스로 닦아서 잘 익지 못하였다는 기롱(譏弄)을 없애며

 

克祀潔蘋蘩之薦。

[采蘩註。南國被文王之化。諸侯大夫能盡誠敬。以奉祭祀。]

제사함에는 마름따위의 제수 올림을 쳥결히 하여

 

俾惠渥均濡於庶彙。德馨高達於穹旻。

윤택한 지혜로 백성들을 고루 적셔주고

덕의 향기가 높은 하늘에까지 멀리 사무치게 하였다.

 

勞心而扇暍

[音謁。暑病。武王自孟津還于周。見暍人。左擁而右扇。]

그러나 마음을 수고롭게 하면서 더위 먹은 사람에게 부채질하

 

泣辜。[夏禹出見罪人。下車問而泣之。]

豈若拯羣品於大迷之域。

죄인을 보고 우는 것이

어찌 뭇 중생을 크게 미혹한 데서 건져주는 것만 하겠으며

 

竭力而配天饗帝。

[周頌。思文后稷。克配彼天。盖尊之也。]

豈若奉尊靈於常樂之鄕。

힘을 다하여 하늘에 짝하고 상제께 제사함이

어찌 높으신 혼령을 항상 즐거운 곳에 받드는 것만 하겠습니까.

 

是知敦睦九親。[堯典曰。九族旣睦。]

實惟紹隆三寶。[佛法僧。]

구친(九親) 에게 잘 화목함이

진실로 삼보를 받들고 높이는데 있음을 알게 한다.

 

矧乃玉毫光所燭照。金口偈所流傳。

靡私於西土生靈。爰及於東方世界。

[佛說法華時。放眉間瑞光。照東方萬八千里云。]

하물며 백호광명이 비추는 것과

불경의 게송이 흘러 전하는 것이 [金口는 부처님의 입]

인도의 중생에만 한하지 않고서

동방 세계에 미쳐 왔으니

 

則我太平勝地也。

性玆柔順。[東方配五常則仁。故柔順。]

氣合發生。[東方始生萬物]

곧 우리의 태평 승지는

성품이 넉넉해서 유순하고

기백(氣魄)이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기운에 합하였다.

 

山林多靜默之徒。以仁會友。

산림에는 참선하는 무리가 많아서

같은 무리들이 모여들고

 

江海協朝宗之勢。從善如流。

강과 바다는 조종(朝宗)의 기세에 협력하고

선을 따르는 것이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故激揚君子之風。薰漬梵王之道。

그러므로 군자의 풍도를 드높이고

석가의 도를 훈습(薰習)하니

 

猶若泥從璽。

[天子之璽。以紫泥封之。]

金在鎔。

[董仲舒曰。上之和下。下之從上。猶金之在鎔。此二句。明從善如流。]

마치 진흙인 인주(印朱)가 옥새를 따르고

쇠가 용광로에 있는 것과 같이

 

而得君臣鏡志於三歸。

士庶翹誠於六度。

[鏡。照也。翹。秀起貌。]

임금님과 신하는 뜻을 삼귀에 비추고

사류(士類)와 서민들은 육바라밀에 정성을 다함을 얻었다.

 

至乃國城無惜。能令塔廟相望。

나아가서는 국성까지도 아낌이 없어서

능히 탑묘를 많이 세우셨나니.

 

雖在贍部洲海邊。寧慚都史多[卽兜率]天上。

비록 남섬부주의 바닷가에 있으나

어찌 도솔타 천상에 부끄러우리요.

 

衆妙之妙。何名可名。

여러 가지 미묘함의 미묘함을 무슨 이름으로 다 말하겠는가?

 

金城之离。[金城。新羅都城名。]

日觀之麓。[日觀者。泰山東南峯名。而今新羅東。亦有之。]

금성의 남쪽 일관의 산기슭에는

 

有伽藍號嵩福者。

절이 있는데 숭복이라 이름하였다.

 

乃先朝[景文王] 嗣位之初載。

奉爲烈祖元聖大王[冊號敬信。卽景文王之九世祖。]

園陵追福之所修建也。

이는 옛 임금께서 왕위를 계승하시던 첫해에

열조 원성대왕의 원능을 받들고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粤若稽古寺之濫觴。

[詩云。三江浩浩。其源濫觴。註。濫。泛也。觴。杯也。謂岷山初出之源。但可泛一杯而已。故言凡事之始曰濫觴。]

이에 옛 절의 유래를 상고하며

 

審新刹之覆簣。

[孟子云。爲山九仞。功虧一簣。若盡一簣則是覆也。故言凡事之終云覆簣。]

새 절의 만들어짐을 살펴 보건대

 

則昔波珍飧 職名金元良者。

昭文王后 [元聖大王之母] 之元舅。

肅貞王后 [元聖大王之后] 之外祖也。

곧 옛적 파진손인 김원량은

소문왕후의 원구며

숙정왕후의 외조부였습니다.

 

身雖貴公子。心實眞古人。

몸은 비록 귀공자였으나

마음은 진실로 참 옛사람인지라

 

始則謝安縱賞於東山。儼作歌堂舞館。

처음엔 사안이 동산에서 마음껏 즐기듯이

노래하는 집과 춤추는 관을 의젓하게 세우더니

 

終乃慧遠 同期於西境。

捨爲像殿經臺。

[晉謝安携妓遊東山三十年。後與慧遠法師共對遺民雷次宗,周續之,宗炳等百二十人。結白蓮社。發願往生西方。]

종말엔 혜원이 서경에 뜻을 두듯이

그를 버리고 불전과 경대을 만드니

 

當年之鳳管鵾絃。

[崑山之竹。作管吹之。有龍鳳之音。以鵾之筋。作琴瑟之絃。用鐵撥彈。則其響如雷。]

此日之金鍾玉磬。

그 당시의 봉관 곤현이었던 것이

이 날에 금종과 옥경이였습니다.

 

隨時變改。出世因緣。

寺之所枕倚也。

때를 따라 변하여 고쳐진 것은

출세의 인연이며

절이 생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巖有鵠狀。仍爲戶榜鵠寺。

바위에 따오기 모양이 있거늘

그로 인하여 현판을 만들어

 

能使鴦廬 長價。

[䲶鴦必具雌雄。故東西翼廊謂鴦廬。]

永令鵝殿增輝。

[養鵝園林。則蛇遠去。如佛之所住。百害盡袪。故法堂謂之鵝殿。]

앙려로 하여금 길이 값지게 하고

안전으로 하여금 더욱 빛나게 하였으니

 

則彼波羅越之標形。

[西域達親國。有過去加葉佛伽藍。窮大石山作之。凡五層。最下層。作象形五百間石室。第二層。獅子形四百間。第三層。馬形三百間。第四層。牛形二百間。第五層。鴿形一百間。囱牖通明。室中朗然。是名波羅越寺也。]

곧 저 바라월의 표형과

 

崛恡遮之紀號。詎若飛千里以取譬。

[古詩。黃鶴飛千里。]

굴린차의 기호라도

어찌 천리에 나는 것으로 견주어 말하며

 

變雙林而刱題者哉。

[梁武帝時。傳大士於松山頂古寺。有雙擣樹。故改名雙林而居之。]

쌍림의 변한 것으로 표제함과 같으리까!

 

但玆地也。成卑鷲頭。

[梵語枯標陀羅。乃唐言鷲峯也。佛於此說法。]

다만 이 땅은 위력이 축두보다 낮으나

 

德峻龍耳。

[郭璞錦囊經云。葬龍耳。則三年內。白衣天子到門。]

與晝金界。[金沙寶界]

덕은 용이보다 높으며

금계를 마련할 만하고

 

宜開玉田。[王者之葬。用玉匣。]

옥전이 세워질 만합니다.

 

洎貞元 [唐德宗年號] 戊寅年 [元聖大王十四年] 冬。

遺敎窀穸之事。因山是命。

[綱目註。帝王之葬。因其山川。而不復起墳。]

정원 무인년 겨울을 당하여

능 모시는 일을 칙명하시니

산으로 인하여 이에 명령하셨으나

 

擇地尤難。乃指淨居[寺。]

將安秘殿 [王陵。]

땅을 선택하기가 더욱 어렵기에

이에 절에다

비전을 봉안하려 하였습니다.

 

時獻疑者有言。

昔游氏之廟。

[鄭公欲毀游氏之廟。以廣園囿。子產曰。子游之善。不能保五畝之宅耶。公乃止。○子游是言偃之字。而曰游氏者未詳。]

그 때에 의아하는 이가 있어서 말하되

“옛적에 유씨의 사당과

 

孔子之宅。

[魯恭王欲壞孔子舊宅。以廣其居。聞有金石絲竹之音。乃不壞。]

皆不忍終毀。

공자의 집도

모두 차마 무너뜨리지 아니했기에

 

人到于今稱之。則欲請奪金地。

無乃負須達多大捨之心乎。

[須達多。指給孤獨。作祇垣精舍者。比金元良也。]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를 칭송하거늘

지금 금지를 뺏으려고 하니

수달다의 크게 희사하는 마음을 저버림이 아니겠느냐.

 

冥裝者。地所祐 天所隧。

[地則增其厚。天則減其虛。]

咎不相補矣。

이 절터에 장사지내는 것은

땅은 돕겠지만 하늘은 허물하는 바이니

서로 보완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

 

而莅政者譏曰。

정사에 임하는 자가 기롱해서 말하기를,

 

梵廟也者。所居必化。

無往不諧。

“절이란 거주하면 반드시 교화하여

어디에 가도 화합하지 않음이 없으니

 

故能轉禍基爲福場。百億劫濟其危俗。

그러므로 능히 재앙의 터를 변화시켜 복된 장소로 만들어서

백억 겁 동안 그 험난한 세속을 제도하는 것이오.

 

靈[隧也]者。頫硂坤脈。

[頫音府。低頭也。硂同銓。坤脈。五行之氣運於地中。猶人之血脈運於皮膚之中。]

영이란 아래로는 땅의 맥을 짚어보고

 

仰揆乾心。

[二十八宿。與列星羅于乾心。各有主張分地。]

위로는 하늘의 마음에 맞추어

 

必在苞 [抱同]四象于九原。

[四象。老少陰陽。九原。葬處也。]

千萬代保其餘慶。

반드시 사상을 장지(葬地)에 포괄하여

천만대 동안 그 끼친 복[음덕(陰德)]을 보전하는 것이다.

 

則也法無住相 [佛法。]

禮有盛期 [葬禮。]

易地而居。順天之理。

법은 머무르는 모양이 없고

장례예는 이루는 시기가 있나니

땅을 바꾸어 거주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순응함이라.

 

但得靑烏善視。

[郭璞之師靑烏先生。善陰陽地理。著錦囊經。]

豈令白馬悲嘶。

[梁高傳云。昔外國王。盡毀諸寺。惟招提一寺未及毀。夜有白馬繞塔悲嘶。王乃停毀。改招提爲白馬寺。]

다만 청오 같은 풍수가를 만나 잘 보도록 할지니

어찌 사찰을 헐어 백마로 하여금 슬피 울게 하리오?

 

且驗是仁祠 [寺也。]本隸 [付屬] 戚里。[金元良也。]

또 살펴 보건대 이 인사는 본래 척리에 예속 되었나니

 

誠宜去卑就峻。[應上威卑德峻。]

진실로 낮음을 버리고 높은데에 나아가며

 

捨舊 [寺也] 謀新 [陵也。]

使幽庭據海域之雄。[陵也]

淨刹擅雲泉之㜫 [寺也。]

옛절을 버리고 새로운 왕능을 꾀하여

왕릉은 전국의 웅장한 데에 의거하게 하고

청정한 사찰은 산수의 아름다움을 드러나게 한즉

 

則我王室之福山高峙。

彼候門之德海安流。

[周禮。師候穰。註。候者。候迎。吉祥。佛之所居。亦候迎吉祥。故曰候門。]

우리 왕실의 복산이 높아질 것이며

불문(佛門)의 덕의 바다가 잘 흐를 것이라” 하였으니

 

斯可謂知無不爲。各得其所。

이야말로 “알면 못하는 것이 없고

각기 제 자리를 얻게 함이라” 하겠습니다.

 

豈與夫鄭子產之小惠。

魯恭王之中轍。同日而是非哉。

어찌 정나라 자산이 자유(子遊)의 묘를 헐지 않은 조그만 은혜와

노나라 공자의 집을 헐려다 그만둔 것은

같은 날 시비하겠습니까?

 

宜聞龜筮協從。可見龍神歡喜。

으레 거북과 시초에 물어서 맞아 따르게 되면

용신팔부(龍神八部}의 기뻐함도 보게 되리라 하여

 

遂遷精舍。爰創玄宮。

兩役庀徒。[庀音披。具也治也。]

百工蕆事。[蕆音闡。備也。]

이에 정사를 옮기고

현궁을 창건하니

두 일이 진행되고

여러 기술진이 일을 추진하였다.

 

其改創紺宇。則有緣之衆。

相率而來。

그 절을 옮겨 세울 적엔

인연 있는 사부대중이 서로 모여와서

 

張袂不風。植錐無地。

옷소매를 펼쳐 놓아도 바람이 일지 않고

송곳 꽃을 땅이 없을 정도로서

 

霧市奔趨於五里。

[後漢。張楷能作五里霧。學術者塡門。人謂霧市。]

오가는 사람들이 오리에 뻗쳤으며

 

雪山和會於一時。

[西域記。伊爛那城長者之子二百億。性情仁善。投雪山學佛。凡有所須。自其居家。至于雪山。隣里奴僕。交路替傳。曾不踰時。其和會可知。]

설산이 한 때에 모여 이루어졌습니다.

 

至於撤瓦抽椽。奉經戴像。

迭相授受。競以誠成。

그 기와를 걷고 서까래를 빼내며

경전을 받들고 불상을 모심에

번갈아 소로 주고 받들며

다투어 정성을 다하여 이루었나니

 

役夫之跬步不移。釋子之宴居已就。[寺役畢。]

인부들의 분주하던 발걸음도 쉬게 되고

스님들의 요사채가 이미 마련되었습니다.

 

其成九原。則雖云王土。

且非公田。於是括以邇封。

[括。量也。封。墳也。邇封。封之近地。]

그 구원을 성취함엔

비록 왕의 국토라고 하나

공전이 아니기에

그 봉분에 가까운 땅을 검토해 보고

 

求之善價。益丘隴餘二百結。

[丘隴。田畓結卜數。]

酧稻穀合二千苫。[猶石也]

값이 높은 땅을 구하여

구농 이백여 결을 더하고

곡식 이천 석을 주며

 

旋命所司 [司治葬者]

與王官之邑。 [之葬地也。]

또 유사와 왕도의 군읍에 명령하여

 

共芟榛徑。分蒔松埏。

함께 가시덤불의 길을 닦고

아울러 묘역에 소나무를 심었다.

 

故得蕭蕭多悲風。激舞鳳歌鸞之思。

[言宮人歌舞。以思先王。]

그러므로 씁쓸히 슬픈 바람이 불 때는

춤추는 봉황과 노래하는 난조의 생각*을 자아내고

[先王의 덕을 사모하는 생각]

 

鬱鬱見白日。

助盤龍踞虎之威。

[言陵之形勢也。漢書。諸葛亮至石頭城。嘆曰。鍾山虎踞。石頭龍盤。眞帝王之宅。]

울울창창한 곳에서 해를 보니

서린 용과 걸터앉은 범의 위세를 더했다.

 

且觀其地。壤異瑕丘。

[檀弓。公叔文子昇於瑕丘。嘆曰。吾將死。葬于斯。]

境連暘谷。[日出處。]

또 그 땅을 보건대 땅은 하구와 다르나

경계는 양곡에 연했습니다.

 

祇樹之餘香未泯。[曾是寺址穀林之佳氣增濃。]

穀林。[堯葬處。] 之佳氣 增濃

기수의 남은 행기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곡림의 아름다운 기운이 더욱 무르녹으며

 

繡峯則四遠相朝。[峯如錦繡]

練浦則一條在望。[浦似亘練]

비단 같은 봉우리는 먼 사방에서 서로 조회하고

마전한 베와 같은 개는 한 가닥이 눈앞에 있었나니

 

實謂橋山孕秀。[黃帝壽百一十歲。昇龍上天。葬弓劒於橋山。]

畢陌標奇。[畢陌。文王葬地。]

실로 교산의 빼어남을 품고

필맥의 기이함을 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而使金枝 [本孫] 益茂於鷄林。

금의 가지[왕손]로 하여금

계림에서 더 무성하게 하고

 

玉派 [外孫]

增深於鰈水者矣。

[爾雅。東方有比目魚。其名曰鰈。○葬事畢]

옥의 줄기[외손]이

우리나라에]에 부리를 더욱 깊게 함이다.

 

初寺宇之徙也。

雖同聳出。[言寶塔多也。見法華經。]

未若化城哉

처음 절이 옮김에

비록 보탑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으나

절 같지는 않았다.

 

得剗荊棘而認岡巒。

가시덤불을 깎아내고

산의 언덕이 드러나게 되었다.

 

雜茅茨而避風雨。

띠집과 섞인 채로 바람과 비를 피하면서

 

僅踰六紀。

[十二年爲一紀。取歲星一周天。]

驟歷九朝。

[元聖,照聖,哀莊,憲德,德興,僖康,神武,文聖,憲安。]

而屢値顚覆。

겨우 칠십팔년을 넘고

어언 아홉 조정을 지나

문득 전복 당했으되

 

未遑嵩飾。

미처 보수할 여가가 없었는데

 

三利之勝緣 有待。

[憲安王無子。欲擇膺廉爲壻。膺廉聞長女醜而少女有姿色。欲娶少女。範喬曰。娶長女有三利。一。王無子。以壻爲太子。二。少女自然相從。三。終得大位。是爲景文王。]

세 가지 이로운 좋은 조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千齡之寶運無虧。

천년전 보배로운 국운이 이지러지지 않았다.

 

伏惟先大王

 [景文王也。僖康王之曾孫。]

虹渚騰輝。

[虹。水名。顓頊母曰女節。見有星流華渚。感而生顓頊。]

엎드려 생각하건대 선대왕께서는

불가에서 무지개가 비추는 상서로움이 있어

 

鰲岑降跡。[慶州有鰲山。]

始馳名於玉鹿。

[敎授官也。南唐建學舍於玉鹿洞。以李道爲洞主。掌敎授。]

금오산 기슭에서 태어나시어

이름을 한림원에 날리시고

 

別振風流。

따로 풍류를 떨쳤다.

 

俄綰職於金貂。

[侍中冠名。漢官儀。貂蟬註。金取堅。蟬取高居飮潔。貂取內勁悍外溫潤。]

조금 있다가 금초의 직을 받아

 

栖鳳沼而沃心。

[周靈王太子晉。吹鳳簫求凰。與秦穆公之女季嘯。俱爲神仙而去。後人稱太子所居室曰鳳閣。所遊池曰鳳沼。]

우리나라의 풍속을 말끔히 쇄신하니

 

肅淸海俗。據龍田而種德。

[易乾卦九二曰。見龍在田。利見大人。言其德已著。如舜遇釐降。卽其時也。先王之爲憲安婿亦類此。]

신하로 있으면서 덕을 심었고

태자로 있으면서 마음을 윤택하게 하엿다.

 

發言則仁者安人。謀政乃導之以道。

말을 내면 어진 이로 사람을 편안케 함이오

정사를 꾀함엔 이에 도로써 인도하였다.

 

八柄之重權咸擧。

[周禮。太宰以八柄紹王。御羣臣。註。一。有德則爵。二。有功則祿。三。言語合道則賜予。四。有善行則置于位。五。有大勳則使子孫享養。六。有大罪則殺而奪符。七。有罪則廢而放之。八。有過失則譴責。]

여덟 가지 권세의 무거운 권한을 모두 쥐고

 

四維之墜緖 斯張。

[四維。天之東西南北。人之仁義禮智。]

인륜의 떨어진 도리를 이에 회복시키니

 

歷試諸難。利有攸往。

모든 난관을 다 겪었지만

가는 곳마다 이롭게 하였다.

 

旋屬憂侵杞國。

[李白詩。杞國無事憂天傾。此言王之昇遐。取天傾意。]

位曠搖山。

[古文。邦國曠位。山岳搖動。亦言王之昇遐。]

곧바로 임금의 승하함을 만나니

왕위가 비어 산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雖非逐鹿之原。

亦有集烏之苑。

[詩云。瞻烏爰止。于誰之屋。言未知寶位將止于誰也。]

비록 사슴을 쫒아 잡는 언덕[왕위를 쟁탈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역시 까마귀가 모이는 동산이 있었습니다.

[임금의 지위가 누구에게 갈 지 알지 못했다.]

 

然以賢以順。且長且仁。

爲民所推。捨我奚適。

그러나 어질며 유순함으로 하였고

덕과 인으로 하셨기에

백성의 추대하는 바가 되었나니

우리를 버리고 어데로 가시겠습니까?

 

乃安身代邸。

[漢文帝以代王至長安。受皇帝位於代邸。]

注意慈門。[佛門也]

이에 몸을 대저에 두시고

뜻을 불문에 기우리시며

 

慮致祖羞。

[移寺而安陵。若不嵩飾其寺。則是爲祖先奉佛之羞。]

선조에게 부끄러움이 될까 하여

 

願興佛事。

불사 일으키기를 발원하시고

 

因請芬皇寺僧嵩唱。

以修奉梵居之旨白于佛。

[芬皇寺。在今慶州邑北。]

분황사의 중 숭창을 청하여

절을 중수하여 받들 뜻으로써 부처님께 고하고

 

復遣金純行。以隆宣祖業之誠告于廟。

다시 김순행을 보내어

선조의 업적을 높이고 펼 정성으로써 사당에 고하셨으니

 

詩所謂愷悌君子。求福不回。

시전에서 이른바,

“훌륭한 군자는 복을 구함이 삿되지 아니하다. ”한 것이오

 

書所謂上帝時歆。下民祗協。

서전에서 말한바,

“상제께서 이에 흠향하시매 아랫 백성이 공경하며 복종하였다.”는 것이였습니다.

 

故能至誠冥應。善欲克從。

그러므로 능히 지극한 정성이면 귀신도 감응되며

잘하려는 욕심은 모두 성취하였다.

 

卿士大夫 與守同心龜協。

赫赫東國而君臨之。

공경과 사대부가 占과 합치되니

동국을 빛내어 군림하셨습니다.

 

爰遣陪臣。[諸侯之臣。於天子爲陪臣。]

告終稱嗣。[憲安王薨。景文王嗣位。]

이에 대신을 보내어

헌안왕의 떠나심과 그 왕위 계승함을 아뢰었더니

 

遂於咸通六年。[唐懿宗年號。]

드디어 함통 육년에

 

天子使攝御史中丞胡歸厚。

以我鄕人前進士裵匡。

腰魚 [金魚袋] 頂豸 [音池。一名神羊。似鹿而一角。生于北荒。楚文王好服豸冠。漢爲法冠。御史冠之。堯時。有一雙獬豸立於階下。善者入則引之。不肖者入則觸之。死葬殿左。朱草生長一丈。小人入則指之。]

爲輔行 [副使。]

천자께서 어사 증승 호귀후와

우리 고을 사람 전 진사이었던 배광으로 하여금

허리에 금어를 차고 머리에 해태관을 씌어

부사를 삼아

 

與王人田獻銛[音暹。利也。]

來錫命曰。

왕인 전헌섬와 함께 와서 칙명을 전하여 말하기를,

 

自光膺嗣續。

克奉聲猷。俾彰善繼之名。

빛나는 왕위를 승인 전달함에

천자의 명을 받들어서 잘 계승하였다.

 

允協至公之擧。

[非王子弟。而以仁善承位。故曰至公。]

지극히 공정한 추천에 미더운 경의를 표했다.

 

是用命爾爲新羅國王。

이에 당신을 임명하여 신라의 왕을 삼는다.”고 하였다.

 

仍授檢校太尉兼持節充寧海軍使。

이에 검교태위겸지절통영해군사를 제수하였다.

 

向非變齊標秀。至魯騰芳芬。

전일에 제나라가 변하여 빼어나게 표수하고

노나라에 이르러 향기를 드날리게 한 것이 아니면

 

則何以致飛鳳筆而寵外諸侯。

降龍旌而假大司馬之如是矣。

[筆柄雕鳳。旌上畫龍。]

어찌 봉의 붓을 날려 먼 제후를 총애하며

용의 기장목을 내려 대사마와 같은 것을 주겠는가?

 

亦旣榮沾聖澤。

必將親拜靈丘。[先王陵。]

또한 이미 영광스럽게도 천자의 은택을 입었으니

반드시 몸소 선왕의 능에 참배하여야 한다.

 

肆以備千乘之行。

奚翅耗十家之產。

[漢文帝曰。百金。中人十家之產。]

그러므로 왕릉을 옮길 만반의 준비는 하였지만

어찌 많은 경비를 소모하겠는가

 

遂命大弟相國。

致齊淸廟。代謁玄扃 [陵也。]

드디어 태제 상국을 명하여

청묘에 제사 드리고

릉에 대신 뵙게 하셨나니

 

懿乎 鷄樹 [鷄林] 揚蕤

[音惟。草木華垂貌。又孫氏瑞應曰。王者禮備至。則葳蕤生于殿前。]

아름답도다!

왕의 가계가 무성하니

 

鴒原挺茂。

[詩。常棣註。鶺鴒行。則首尾相接。喩兄弟急難相救。]

형제는 뛰어났도다.

 

歲久而永懷耕象。

[陸龜蒙曰。世謂舜田于歷山。象爲耕。鳥爲耘。吾觀象行。必端而必深。法其端深曰象耕。鳥之啄食。務疾而畏奪。法其疾畏。故曰鳥耘。非眞象鳥耕耘。]

해가 오랠수록

길이 밭가는 코끼리의 단정한 행위를 사모하게 하고

 

時和而罷問喘牛。[漢相丙吉事。]

시절이 평화로우니 소가 피곤하여 헐떡이는 것을 물을 필요가 없었다.

 

藻野耨川。

[文選云。靚粧藻野。袨服耨川。或曰 當作耨野藻川 言耘耨於野 采藻于川]

들판을 수놓고 시내를 채색하였으니

 

東者如雲

보는 자가 구름처럼 많았다.

 

乃有鮐背之叟

[鮐音台 鮐背 老人氣衰 皮膚消瘠 背若鮐魚 故曰鮐背 釋名 九十曰背鮐 見字彙]

鵠眉之僧

[眉之皓白 如鵠眉之白也]

이에 복어 등인 늙은이와

따오기 눈썹인 중이 있어

 

[抃音便 拊手也 列子老幼喜躍抃舞]

手相慶

大相賀曰

손벽을 치며 서로 경사로 여기고 크게

기뻐하며 치하하면서 말하였습니다.

 

貴介弟

[左傳 伯州ꝃ曰 王子圍寡君之貴介弟介 大也]

之是行也

“귀하신 개제의 행차여

 

聖帝[懿宗皇帝]之恩光著矣

[著者八域皆聞故也]

吾君之孝理成焉

[理 道也 孝理成者 榮鬱光先故]

성스러운 임금님의 은덕이 현저하시며

우리 임금님의 효심이 이룩되었도다” 라고 하였다.

 

禮義鄕風 綽[綽音作 寬貌]

有餘裕[裕 寬意也]

예의와 향풍이 풍요하게 여유가 있었으며

 

遂使海波晏[晏 安也 柔和貌也]

塞塵淸[干戈息靜 王克寧海軍使重任故]

드디어 물결이 고요하고

변방의 풍진이 맑아지며

 

天吏均

 [受命于天 謂之官吏 淮南子曰 四時者 天之吏也 吏卽四時也 言四時順行 天無烈風淫雨]

천리가 고르고

 

地財羨[羨音衍 餘也]

지재가 불어나게 되어

 

則乃踵[繼也]修蓮宇[寺也]

威護柏城[陵也]

이에 연우을 잇달아 중수하고

능을 잘 보호하시게 되었도다.

 

今也其時 捨之何俟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니

이 때를 버리고 어느 때를 기다리리오.

 

於是孝誠旁達

思夢相符

[晝思夜夢相符]

이에 효성이 크게 사무치고

생각과 꿈이 서로 부합하여

 

乃見[現也]聖祖大王[元聖王]

撫而告曰

성조의 대왕을 뵙게 되었나니

대왕께서 어루만지시며 이르시되,

 

余而[而 汝也]祖也

“나는 너의 할아버지다.

 

而[而 汝也]欲建佛像 飾護予陵域

네가 불상을 세우며 나의 능역을 꾸며 보호하려고 하니

 

小心翼翼

[詩云 維此文王 小心翼翼翼翼 恭愼貌]

조심하여

 

經始勿亟

[詩云 經始勿亟 庶民子來 註 經度也 亟 急也 言臺之經度始役 王言勿急 而庶民子來而作也]

일 함에 빨리 하려 말라.

 

佛之德予之力 庇爾躬

부처님의 덕과 나의 힘이 너를 도와 주리라.

 

允執厥中 天祿永終

[論語云 堯曰 咨爾舜 天之曆數在爾躬 允執厥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舜亦以命禹 書云 舜命禹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云云 至永終 參看銘中德符命禹以上註]

진실로 그 중용을 잡아서

천록을 길이 마치라” 하셨습니다.

 

旣而韻耿銅壺[漏壺也]

形開玉枕

[莊子 其寢也魂交 其覺也形開]

이미 정신이 동호에 반짝이고

몸이 옥침에서 열리어서는

 

不占十煇

[春官掌十煇之法 以觀妖祥 煇謂日傍之光 一曰侵 陰陽相侵 赤雲爲陽 黑雲爲陰 二曰象 如赤鳥 三曰鐫 日旁雲氣刺日 四曰監 赤雲在日傍 如冠珥 五曰闇 日月食也 六曰瞢 日月無光 雲氣貫日而遏 八曰叙 雲氣次序如山 九曰躋 升虹也 十曰想 雜氣形象]

십훈에 점쳐보지 않아도

 

若佩九齡

[禮記云 文王謂武王曰 汝何夢矣 夢帝與我九齡 西方有九國 君王其終撫 文王曰 我百 爾九十 吾與爾三焉 文王九十七終 武王九十三終]

구령을 얻음과 같았습니다.

 

遽命有司 虔修法會

華嚴大德釋決言 承旨 於當寺

문득 유사에게 명령하여

정성스레 법회를 베풀게 하시니

화엄대덕인 중 결언이 당사에서 교지를 받들어

 

講經五日

所以申孝思而薦冥福也

경을 오일 동안 강설하였으니

그 효도의 생각을 펴고 명복을 비는 바이었습니다.

 

仍下敎曰

不愛其親 經所戒也[卽孝經也]

無念爾祖 詩寧忘乎

[詩云 無念爾祖 寔繁有徒]

인하여 교지를 나리시되

그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것을 경에서 경계하는 바며

너의 할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으랴 하는 시를 어이 잊으랴.

 

睠言在藩

[小雅云 睠言顧之 註 睠 反顧也]

有欲修寺

근념함이 울타리에 있었고

절을 수리하고자 하였는지라

 

魂交[在夢時]致感

㾕慄[㾕音甚 感寒體戰也 慄 悚縮也]

衿靈[心神也]

혼이 사귀어 감응이 이루어짐에

송구함이 가슴과 마음에 가득 찬지라.

 

旣愧三年不蜚

[楚莊王三年不政 伍擧曰 有鳥在阜 三年不飛不鳴 是何鳥也 曰 飛將衡天 鳴將驚人也]

이미 삼년 날지 않음엔 부끄러우나

 

深思一日必葺

[葺音緝 茨也 又修補也]

百尹[尹 治也 猶言百官]

御史 謂利害何

하루에 반드시 수리하기를 벌써 깊이 생각했도다.

백윤과 어사들은 이해가 어떻다고 하느냐.

 

雖保無賣兒貼婦之譏

[宋明帝 以湘東舊宅爲寺 謂何尙之曰 此是朕之大功德 散騎常侍虞愿對曰 此是賣兒貼婦之錢 佛若有知 必當悲愍 何功德之有 註 貼 以物爲質 言徭役繁重 民不能供 故或賣兒質婦 以當役錢]

비록 아이를 팔고 부인을 잡힌 비방이 없음은 보장하나

 

或慮有鬼怨人勞之說

[秦築長城 鞭撻民丁 役使鬼神 民作魚游河曲 鬼有怨恨之聲也]

혹 귀신의 원망과 사람의 수고롭다는 말이 있을까 두렵나니

 

獻可替否 爾無忽諸

[替 廢也 否 非也 忽輕也 諸 語辭]

타당하면 실행하고 부당하면 폐지하여

부디 소홀이 하지 말라.

 

宗臣繼宗勛榮以下

協議上言曰

종신 계종과 훈영이하에서

이를 발표하여 협의하고 말을 올리되,

 

妙願感神 慈靈現夢

미묘하신 소원이 신명에게 감응되고

인자하신 신령이 꿈에 나타나심은

 

誠因君志先定

果見衆議僉同

진실로 임금님의 뜻이 이미 정해지심이어늘

과연 뭇 공론이 모두 일치되었아오니

 

是寺也成 九族多慶

이절이 이룩되면

구족이 경사가 많을 것이옵니다.

 

幸値農隙 請興杍工

[杍音子 治木器 又木工也]

다행이 농사철이 아닌 때를 당하여

목공들을 불러 드릴쎄

 

爰用擇人龍

[馬岌謂宋纖曰 人中之龍]

於建禮仙門

[摩詰詩 建禮高秋夜 註 建禮 門名 蓋禮曹門也]

이에 인룡을

건례선문에서 뽑고

 

擧僧象於昭玄精署[僧之持律院也]

乃命宗室三良

승상을 소현정서에서 천거하되

종실의 셋 어진 이에게 명령하였으니

 

曰端元 毓榮 裕榮 與釋門二傑

曰賢諒 神解

말하자면 단원.민영.유영이명 석문의 두 호걸에게 맡겼으니

말하자면 현량과 신해였다.

 

及贊導僧崇唱等 督其事

그리고 그 일을 돕는 중 숭창들이

그 일을 맏았습니다.

 

且國君爲檀越

[梵云檀 此云施 越是唐語 言行施越苦海]

또 나라임금님께서 단월이 되시고

 

邦彦[爾雅云 美士爲彦]

爲司存 [存 在也 司而在者 卽有司也]

나라 선비가 유사가 되었으니

 

力旣有餘 心能匪懈

힘도 남음이 있고 마음도 부지런했습니다.

 

將俾小加大 豈宜新間舊

장차 작은 것을 크게 만들려 함에

어찌 새것에다 옛것을 섞이는 것이 좋으리오마는

 

然恐沮檀溪宿願

[梁武帝 伐竹木 沈檀溪 積茅如岡阜 立願云 事若成 則當以此材 建立伽藍 竟得如意]

단계의 옛 소원을 저바릴까 두렵고

 

不瑕[與無乃同]傷 

내원의 옛 공적을 손상하지 않으려 하여

 

苑前功

[西域 有中虛 樹 女子從中而出 王取而爲后 建寺於其地 號苑]

選掇故材

就遷高 

[掇音徹 入聲 拾也 採也  音陟 基址]

옛 재목을 골라 추리고

높은 터에 나아가 옮긴 것입니다.

 

於是占星揆日

[詩云 定之方中 作之楚宮 揆之以日 作之楚室 註云 是占星之意也]

이에 점치고 택일하며

 

廣拓[拓音尺 開也]宏規

큰 규범을 널리 들어

 

合土範金

[造作器用 見禮運]

爭呈妙技

[呈 視也 露也 技 材也]

흙을 조화하고 금을 지어붓으며

미묘한 솜씨를 다투어 보인지라

 

雪梯

[雪 當作雲 公輸般爲楚 造雲梯攻宋 墨子拒之 出墨子]

구름 사다리엔

 

而倕材架險

[倕 黃帝時巧匠名]

수인 재목으로 험한 데에 얹어 놓았고

 

霜塗

[霜 白也塗土也]

서리 바름엔

 

而堊

[古之土工 堊 白土也]

黏香

[黏 着也 言以香和土而塗之]

노의 백토에 향을 이겨 넣으며

 

斸巖麓

[斸音燭 斬也 麓 山足]

而培垣[培 加土也]

바위 산발을 깎아

담을 돋우고

 

壓溪流而敞戶[敞 高曠也]

시내 흐름을 메워

창호를 높게 하며

 

易荒階以釦砌

[釦音口 金飾也 言砌石之隙 以鉛錫而鑄飾]

變卑廡以琱廊[琱 雕飾也]

황무한 섬돌을 금테로 장식한 섬돌로 바꾸고

낮은 행랑을 옥으로 조각한 행랑으로 만들었습니다.

 

複殿[上下皆殿]龍盤

겹겹인 전당엔 용이 서렸는데

 

中以盧舍那[毗盧舍那佛之略稱 實無異於釋迦牟尼]

爲主

복판에 비로자나를 주인으로 모시고

 

層樓鳳跱

[跱與峙同 屹立貌 樓若鳳之屹立]

上以修多羅

[修多羅 梵語經典之意] 爲名

층층인 누각엔 봉황이 우뚝 섰는데

위에 수다라로써 이름하였다.

 

高設鯨桴

[張衡東京賦 撥鯨魚鏗牢鍾 註 海岸有獸 名蒲牢 其聲如鍾 性畏鯨 見鯨輒吼 故鑄鍾 以蒲牢爲首 桴則像鯨而擊之]

고래등 같은 집 마룻대를 높여 베풀고

 

對標鸞檻[畫鸞於檻]

난조 같은 난간을 마주 올렸다.

 

綺井

[綺井者 卽藻井也 畫芰荷水草以覆之 所以避火 乃井上板子]

기정엔

 

華攢[攢 族聚也]而鞢

[鞢音狎 鞢音燮 花相次比貌 何平叔景福宮賦云 紅葩 鞢]

繡栭

[栭 樑上柱 又說文 屋枒上樑也 卽樑上短柱 承屋脊者]

꽃을 모아 포개어 수놓았고

 

枝擁[擁 衛也 羣從也]

而杈枒

[杈枒音叉耶 杈木交枝 枒木無枝 言栭梠相接 齒牙相入]

주두는 서로 끼어 두 가지로 가새목 지은지라

 

聳翼如飛 回眸必眩

날개를 솟구쳐 날아갈 듯 하니

보는 이마다 눈이 아찔하겠도다.

 

其以增崇而改作者 有若睟容[佛也]別室

[景堂 別於正殿與僧寮也]

그밖에 더 높이고 고쳐 지은 것은 부처님 모신 법당과

 

圓頂[僧也]蓮房

[蓮之爲物 一房百子 故喩僧之一舍羣居]

스님들이 거처할 연방이며

 

揣食臑堂

[揣 度也 量也 臑 朱子曰 音耎 熟也 卽食堂也]

공양하는 식당과

 

晨炊屋

[廣也 卽今香積殿]

음식 만드는 공수간이었습니다.

 

加以雕礱罄虰

[礱音弄 磨也 罄音敬 盡也]

더욱 공교로은 솜씨를 다하여 아로새기고 다듬었으며

 

彩雘[雘音 廓 丹中之善者 多出衡山]窮精

정력을 기우려 채색하고 단청하였으니

 

巖洞共淸 烟霞相煥

암굴과 골짜기도 따라 맑으며

연기와 놀이 서로 찬란하도다.

 

玉刹

[法堂上左右白竿]

掛蓬溟之月

兩朶霜蓮

옥의 찰간에 봉명의 달이 걸렸으니

두 송이 서리 같은 연꽃이며

 

金鈴激松澗之風 四時天樂

금방울에 소나무 간수의 바람에 울리니

사시장철 하늘의 풍류로다.

 

就觀勝槩 傑出遐陬

또 절승한 경치를 보건대

이 먼 모퉁이에서 걸출하였나니

 

左峯巒則雞足挐雲

[三峯特秀 如雞足之倒立 挐 牽引也]

왼쪽의 산봉우리는 닭발이 구름을 찌를 듯 하고

 

右原隰則龍鱗

[隰音濕 阪下隰也 公羊傳云 上平曰原 下平曰隰 遠視隰 則如龍鱗之閃日] 閃日[文選云 龍鱗閃日 又云 疆域綺錯 原隰龍鱗云云]

오른쪽의 언덕은 용 비늘이 햇빛에 번쩍이도다.

 

前臨則

앞에 임하면

 

[字書云 山色靑黑者 謂之黛]

列鯷嶠[鯷音地 又言弟 魚名 頭大尾小也 言山形上大下小 如鯷魚形也 有云 鯷魚膓大着地 而背靑黑色 山形如之也 嶠 山也]

메기 산이 검게 벌려 있고

 

師睇 [睇音弟 目小視也]

則鉤連鳳岡[傍有飛鳳山故]

뒤로 돌아보면

봉 묏부리가 갈구리처럼 연해 있도다.

 

故得遠而望也 峭而奇

迫而察也 爽而麗

그러므로 멀리서 바라보면 높고 기이하며

가까이서 보면 상쾌하고 수려하니

 

則可謂樂浪

[本是四郡之一 慶州亦嘗稱樂浪]

仙境

가히 낙랑의 선경이라 할만하며

 

眞是樂邦 初月

참으로 낙방의 초월이었습니다.

 

名山 便爲初地

[十地中初地也 地有生成 住持四義]

명산이 문득 복된 땅으로 되었음이며

 

善建而事能周匝

[匝 周也 遍也 ○ 寺與陵俱修也]

잘 건립하여 일이 두루 이룬 것이오

 

勤修而福不虛捐

必謂大庇仁方

上資寶壽

부지런히 닦았음에 복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

반드시 인방을 크게 덮으며 위로 보수를 돕는다 하겠도다.

 

罩[罩音朝 壓也]三千界[言統合三千世界]爲四境

삼천 세계를 망라하여 넷 경계를 삼으며

 

籌五百歲爲一春

[人間五百歲 四天王一晝夜 卽上資寶壽者 卽彼天壽也]

오백 세로 한 봄을 삼을 것이온데

 

豈期獵豹樊岑

[山名 似是樊山 而未可詳之]

어이 기약하리? 번산에서 표범을 사냥하고는

 

方歡竪尾

[叢譜符命篇云 孫權獵豹樊岑 有老嫗問曰 今日獵何獸 曰得一豹也嫗曰 何不竪尾 因忽不見 因立神嫗廟 註云 竪尾者 何不立太子乎]

바야흐로 꼬리 세운 것을 기뻐하시다가

 

跨龍荊岫[荊山]

형산에서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遽泣墮鬚

[黃帝鑄鼎於荊山下湖水上 鼎成 龍至 帝及羣臣宮女七十二人 乘龍上天 百姓攀龍鬚 鬚絶 帝墮弓 百姓抱弓號泣 喩景文王昇遐 ○ 輦佛旣勤 豈期至此乎]

문득 떨어진 수염을 잡고 울 줄이야.

 

獻康大王[景文王太子]德峻妙齡

神淸遠體

헌강 대왕은 젊은 나이에 덕이 높으셨고

건강한 몸에 정신이 맑으시니

 

仰痛於寢門問竪

 [文王爲世子時 王季有疾 則雞初鳴 就寢門 問候於宦竪]

우러러 침문에서 환관에게 부왕의 안부를 묻는 것을 슬퍼하시고

 

俯遵於翼室宅宗

[宅 居 宗 主 蓋帝王居喪 則不居正殿 徙居翼室 爲居憂之宗主也]

 

머리 숙여 익실에서 거상(居喪)하는 것을 지켰다.

 

滕文公盡禮居憂

[滕文公爲世子 使然友問居憂之禮於孟子 極盡死葬之禮]

終能克己[克除私欲]

등문공의 예를 다하여 복 입음은

마침내 능히 자신을 극복하심이오,

 

楚莊王俟時修政

其實驚人

[楚阜之鳥 三年不飛不鳴 飛將衝天 鳴將驚人之語]

초장왕이 때를 기다려 정사를 다스림은

그 실로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矧復性襲華風 躬滋慧露[佛法也]

抗[擧也] 尊祖之義

激歸佛之誠

하물며 또 천성이 중국의 풍도를 답습하고

몸이 지혜의 감로[불교 교리]에 젖으시어

조상을 높이는 의리를 행하고

부처님께 귀의하는 정성을 격발(激發)시켰다.

 

中和[唐僖宗年號] 乙巳年秋 敎曰

중화 을사년 가을에 교지를 나리시되.

 

善繼其志 善述其事

永錫爾類 在我而已

그 뜻을 잘 계승하고

그 일을 잘 서술하며

길이 선왕의 유지를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나에게 있을 뿐이다.

 

先朝所建鵠寺

宜易榜 爲大崇福寺

먼저 왕의 세웠던바 곡사는

마땅히 사액(寺額)을 바꾸어

대숭복으로 하라.

 

其持經開士

[蒙疏 大心始開]

그 경을 수지독송(手持讀誦)하는 보살과

 

提綱淨吏

[卽維那執綱紀者也]

사찰의 기강을 세우는 정리(淨吏)들이

 

南畝以資供施

一依奉恩故事

[武烈王爲眞智王追福所建]

남쪽에 있는 밭으로써 공양과 보시에 충당하게 하여

한결같이 봉은사의 고사에 의지하도록 하라.

 

其故波珍飧金元良所捨地利

輸轉非輕[納三寶爲寺]

宜委正法司

[紏正僧法之司]

그 옛날 파진손 김원량이 희사한 땅의 산물로 얻은 이익은

운반하는 것이 중요하니

마땅히 정법사에 위임하도록 하라

 

別選二宿德

編籍爲常住

薦祉于冥路

따로 두 숙덕을 선출하여

적에 편입하여 상주(常住)하게 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빈다면

 

則有以見居上位[王位]者

無幽不察

윗 자리에 있는 내가

유명(幽明)까지 살피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니

 

結大緣者[金元良] 有感必通

큰 인연을 맺은 이로 감응이 있어

반드시 통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自是鳧鍾[考工記 黃帝命鳧氏造鍾]

吼泬寥[泬音穴 宋玉九辨 泬寥兮天高 註 泬 曠蕩也 寥 空也]

이로부터 종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졌고

 

龍鉢

[檀經云 曹溪寶林寺前潭中 有一龍常出沒 現形甚巨 師叱之曰爾不能現小身耶 龍乃小身躍出 師展鉢曰 爾入老僧鉢 龍乃入鉢 師至堂 爲龍說法 龍乃蛻去 故云龍鉢耶 又龍所獻鉢歟]

바루에는

 

飫香積

[維摩經云 淨名居士過上方四十二恒河沙世界 至香積世界 借一鉢飯 供養一萬文殊]

음식이 가득하도다.

 

唱導則六時玉振

[孟子註云 八音 金木土絲竹匏革石 擊金而始之 始條理也 後擊磬收之 終條理也 磬是玉也]

창도함에 육시로[하루 종일] 옥경(玉磬) 소리 떨치고

 

修持則萬劫[具云劫波 此云時分]

 珠聯[持戒之法 如聯珠而不絶]

수지함엔 만겁동안 구슬이 이어짐이라.

 

偉矣哉

得非尼父所謂無憂者其惟文王

父作之 子述之者耶[父王季 子武王]

위대하도다!

공자의 이른바 “근심이 없는 이는 그 오직 문왕이신저!

아비가 일으키니 아들이 서술한다.“는 것이 아닌가?

 

慶曆

[唐代無慶曆年號 或唐曆 亦似未瑩]

景午[僖宗光啓二年丙午 丙字 高宗諱 故改丙爲景]

年春

경력 병오년 봄에

 

顧謂下臣曰

돌아보며 하신에게 이르시되,

 

禮不云乎 銘者自名也

以稱其先祖之德 而明著之後世

예기에서 말하지 아니했더냐.

명(銘)이란 스스로 이름하는 것이니

그 선조의 덕을 칭송하여

후세에까지 밝게 나타내는 것이다.

 

此孝子孝孫之心也

이것이 효자 효손의 마음이다.” 라고 하였다.

 

先朝締構[刱寺]之初

發大誓願

선조가 절을 이룩할 처음에

큰 서원을 발하셨는데

 

金純行與若[汝也]父肩逸

嘗從事於斯矣

김순행이 그대의 아버지 견일과 함께

일찍이 이 일에 종사하였다.

 

銘一稱而上下皆得

[吾與汝俱得孝子之心也]

명이 한번 일컬어지면

위 아래가 모두 이름을 얻게 되니

 

爾宜譔銘

[譔 造也 又屬辭記事曰撰 銘名也 名記其功也]

그대는 마땅히 명을 지으라.” 하였다.

 

臣也浪跡星槎

[杜詩註云 漢張蹇乘槎 泝河源 至一處而見一丈夫牽牛一美女織錦

問曰 此何處也 女授一石曰 問于城都嚴君平 蹇還如言問之 君平曰 此是織女支機石 某年月日 客星犯牽牛 其時爾應到彼也 此喩入中國也]

신은 배를 타고 중국에 가서

 

偸香月桂

[東坡詩註云 月中有桂 高五百丈 衆仙於中傲戲 下有一人 常斫之 則吳剛也 言偸香者 孤雲卽入唐登甲科]

월계의 향기로움을 도둑질하였으나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虞丘永慟

[家語云 孔子至虞丘 聞子阜哭甚哀 問其故 對曰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遊宦列國 旣歸而親沒 故哭之云]

우구에서의 영원한 비통이오며

[부모가 돌아가실 때 임종을 못한 것이 영원한 슬픔이니]

 

季路徒榮

[家語云 子路少時 爲親負米 及親沒仕楚 歎曰 雖列鼎而食 累茵而坐 雖欲爲親負米 其可得乎 言孤雲親沒 徒榮也]

계로의 헛된 영화일 뿐이었다.

[비록 벼슬을 했다 하나 헛된 영화입니다.]

 

承命震驚 撫躬悲咽

[昔於乘桴之時 父有嚴訓 今於還錦之日 父不待養 季路子阜 實與我千古同情 況有君命 及於父事 心驚淚咽 無地措躬]

왕의 명령을 받자옵고 깜짝 놀라

몸을 어루만지면서 슬피 오열하였다.

 

竊思西宦日

嘗覽柳氏子珪[江南人] 錄東國事之筆

그윽히 생각해 보니 중국에 가서 벼슬할 적에

일찍이 유자규의 동국의 일을 기록한 글을 보니

 

所述政條 莫非王道

그 서술한 바가 바르고 조리가 있어

왕도 아님이 없었다.

 

今讀鄕史

完是聖祖大王[卽元聖王] 朝事蹟

지금에 향사를 읽어 보니

완연히 성조대왕[元聖王] 조정의 사적이었습니다.

 

抑又流聞

[流聞 傳聞也 禮王制 千里之外曰流 遠聞也]

漢使胡公歸厚之復命也

또 전해진 말을 듣자오니

한의 사신 호귀후가 복명하였는데

 

飽採風謠[指吾邦漢詩]

白時相曰

우리의 풍속과 가요를 넉넉히 채취하고서

당시의 그 승상에게 아뢰었다.

 

自愚已往 出山西者

[漢書云 山東出相 山西出將 故烈士武夫 多出涼州]

不宜使海東矣

“내가 갔다온 후로

산서에서 출생한 자는

마당히 해동에 사신을 보내지 마십시오.

 

何則 雞林多佳山水

東王詩以印之而爲贈

왜냐하면 계림에는 아름다운 산수가 많아서

동왕이 시를 지어 나에게 주었는데

 

賴愚嘗學爲綴韻語

强忍愧之

저는 일찍이 좀 배워서 운어를 엮을 줄 알아

억지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화합하였습니다.

 

不爾爲 海外笑必矣

그렇게라도 하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해외에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니

 

君子以爲知言

[東國之行王道 右文學 中國人習知之]

군자들은 이를 옳은 말이라 여겼다고 한다.

 

是惟烈祖以四術開基

[武烈大王金春秋統合三韓 以忠愛無私 用賢簡能 四術開基]

또 공손히 생각하옵건데

열조께서 사술로써 터전을 마련하시고

 

 

先王以六經

[詩 書 易 禮記 春秋周禮]

化俗

豈非貽厥之力[書 貽厥孫謀 貽 遣也]

먼저 임금님께서도 육경으로써 풍속을 교화하시니

어찌 그가 끼친 힘이 아니리오.

 

能得煥乎其文

則銘無愧辭

[世說云 貺邕曰 吾爲人作銘 常有慙容 惟爲郭有道碑銘 無愧耳]

능히 그 문채(文彩)를 환히 얻으니

명(銘)에 부끄러운 말이 없었고

 

筆有餘勇

[言若使我贊揚四術六經之化 則無愧於心 有勇於文]

붓을 잡아도 남은 용기가 있었다.

 

遂敢窺天[以管窺天]

드디어 감히 하늘을 엿보고

 

酌海[傾蠡酌海]

始緝[繼續]凡詞

바닷물을 잔질하는 심정으로

비로소 속된 말을 엮어본다.

 

誰知墜月摧峯

[獻康王薨 如月墜山崩]

俄興永恨

누가 알았으리오?

달이 떨어지고 산이 무너지매

이윽고 영원한 한이 일어나더니

 

旋遇定康大王

[景文之子 獻康之弟]

곧바로 정강대왕이 즉위하셨다.

 

功成遺礪

[遺 餘也 礪 石砥也 言前人礪砥 後人亦磨 以成其功 喩定康大王亦成獻康之餘業也]

남은 것을 이어서 공을 이루니

 

韻叶吹篪

[伯氏吹塤 仲氏吹篪 比兄弟皆得王位也]

형제가 화목하였다.

 

旣嗣守丕圖

[王業也 丕 大也]

이미 큰 왕업을 이어 왕위를 지켰으니

 

將繼成遺績

無安厥位

[書 伊訓文 其云 無輕民事 惟難 無安厥位 惟危也]

장차 남긴 일을 계승하여 이루시려고

그 지위에서 편안한 날이 없었다.

 

未喪其文[喪 終也]

而遠逐日弟兄

遽値西山之影

그 비문을 마치지 못하였는데

멀리 해와 같은 형님을 좇다가

문득 형님의 죽음을 만났다.

 

高憑月妹姊

永流東海之光
[說文 東王以日爲兄弟 以月爲姊妹 又春秋感精符曰 人主 父天母地 兄日妹月也 今定康遠逐獻康兄之日 而共作西山之影 言其死也 死而無子 傳於眞聖妹 則是憑月流光也]

높이 달의 자매[진성여왕]에 의하여

길이 동해에 비추는 빛을 전하셨습니다.

 

伏惟大王殿下 [眞聖女主]

엎드려 생각하건대 진성여왕 전하는

 

瓊萼聯芳

[萼音諤 詩註云 華下有萼 萼下有跗 華萼相承覆 猶兄弟相順而榮顯意也 唐玄宗 兄弟五人 作華萼聯芳樓]

형제자매의 덕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璇源激爽[王者本系之譜 尊稱爲璇源也]

왕가의 계보가 심히 밝고 좋았으며

 

體英坤德

[相合無間曰體 草之秀者曰英 質英合坤之德]

纘懿天倫

[纘音鑽 繼也 懿 美也 言繼美之天倫]

빼어난 곤덕을 본받아

아름다운 천륜을 계승하셨다.

 

諒所謂懷神珠

[諒音亮 信也 卽八歲龍女懷方 成佛也]

진실로 이른바 신비로운 구슬을 품고

 

鍊彩石

[事文類抄云 昔 女媧鍊五色石 補蒼天缺 斷鰲足 以立四極 其後 工共氏

與顓頊爭爲帝 怒而觸不周山 天柱絶 地維斷 故天傾西北 日月星辰就焉 地不滿東南方 故百川歸焉]

채색돌을 연마하여

 

有虧皆補 無善不修

이지러짐이 잇으면 모두 보수하고

모든 선을 닦지 않음이 없었다.

 

故得寶雨金言

[寶雨經云 爾時 東方有一天子 名曰月光 乘五色雲來 詣佛所 退坐一面 佛告天子言 我涅槃後 最後時分 第五百年中 法欲滅時 汝於此瞻部洲東北方摩訶支那國位居阿鞞跋致 實是菩薩 故現女身爲自在主 經於多歲正法治化 養育衆生 建立塔寺 常修梵行 名曰日月爭光天子 爾時月光天子 從佛世尊聞受記已退坐一面 註云 摩訶 此云大 支那 此云東震阿 鞞跋致 此云不退轉]

그러므로 보우경(寶雨經)의 부처님 말씀으로

 

焯然授記

분명히 수기함과

 

大雲玉偈

[通載云 唐中宗文明元年甲申七月 沙門十輩詣闕 上大雲經 盛稱則天當卽宸極 則天大悅頒經于天下郡國 各建大雲寺 九月 則天革唐稱周則天皇帝 比眞聖女主也]

대운경의 옥게송이

完若合符

완연히 부합함을 얻게 된 것이다.

 

且以文考成佛宮

康王施僧供

已峻琉璃之界[寺也]

또 경문왕께서 절을 이룩하시고

헌강왕께서 스님들의 공양을 보살피시어

이미 유리의 세계[불교계]를 높이셨으나

 

未刊琬琰之詞

[曲禮 典瑞現圭 以治德結好 註 琬圭九寸 繅以象德 琬猶圜也 琰音鹽 說文云 璧上起美色 又圭之銳上者]

비석의 글을 새기지 못해서

 

申命瑣才

[瑣 玉屑 言才少也 申 重也 先王旣命今王重命之]

俾搖柔翰

[翰 筆也 柔 無力也 言不如長杠巨筆也]

거듭 재주없는 신에게

글을 짓도록 명하시니

 

臣雖池慚變墨

[羲之洗硯 池色變黑]

而筆忝夢椽

[忝辱也 王珣 字坦之夢 人與大筆如椽 人曰 當有大手筆 如言]

신은 비록 왕희지가 벼루를 씻어 못의 물이 먹물로 변하고

장순이 꿈에 서까래만한 붓을 받은 데 비하면 부끄러우나

 

竊比張融不恨無二王之法

[齊張融善草書 高帝曰 恨卿無二王書法 答曰 臣非恨無二王法 亦恨二王無臣法 二王 羲之獻之]

장융이 두 왕씨[왕희지, 王坦之]의 필법 없음을 한탄하지 아니함에

그윽히 비교될 것이며

 

庶幾曹操或解有八字之褒

[邯鄲淳撰曹娥碑云 孝順第一曹娥碑 蔡邕陰題云 黃絹幼婦外孫薤臼 曹操解]

거의 조조가 여덟 글자의 찬사를 풀이함에 가까울 것이다.

 

設使灰撲塡池

[漢武帝鑿昆明池 得灰 問東方朔 不知 藏之府庫後有西來胡僧曰

此乃天地撲滅時 劫灰也]

설령 재가 곤명지를 채우고

 

塵飛漲海

[列仙傳云 麻姑自言 見東海三爲桑田 向到蓬萊 水又淺於往者 豈將復還爲陵陸乎 王方平曰 聖人皆言 海中行復揚塵也]

 

먼지가 날아서 바다에 창일할지라도

 

本枝蔚矣

齊若木而長榮

[淮南子曰 灰野之山 有樹 名曰若木 日入處也]

본 가지[왕의 후예]는 울창할 것이라

약목과 가지런히 길이 번영할 것이며

 

豐石[豐厚也 石碑也] 巋然

[巋音奎 獨貌 莊子云 巋然有餘]

큰 돌이 높고 견고하여

 

對沃焦而卓立

[十住毘婆娑云南海有石 其名沃焦 萬流至此皆焦 故海水不增 取久遠之義]

남해의 옥초처럼 높이 서 있을 것입니다

 

齎誠拜手

[首至手而不至地也 出書註中]

抆涕[思先王之命 自然流涕] 援毫

정성을 가지런히 하여 합장하고

눈물을 씻으며 붓을 잡았다.

 

追蹤華[蹤迹之華麗也]

而獻銘曰

빛나는 발자취를 좇아

다음과 같이 명(銘)을 바친다.

 

迦衛慈王[具云迦維衛 此云赤澤也]

嵎夷太陽[嵎夷 曰出處]

가위라의 자비하신 왕은

우이의 거룩한 태양처럼

 

現于西土[西土 佛生處]

出自東方[東方 日出處]

서토에 나타나시어

동방에서 돋았구나.

 

無遠不照[日也]

有緣者昌[佛不度無緣衆生也]

먼 데를 비추지 않음 없고

인연 있는 데는 모두 빛나시니

 

功崇淨刹

福蔭冥藏[陵也]

공이 청정한 절에 높았으며

복이 명장에까지 덮었도다.

 

烈烈英祖[元聖王]

德符命禹[指大舜]

열열하신 영조께서는

덕이 명우에 부함 하신지라

 

納于大麓

[舜典云 納于大麓 烈風雷雨弗迷 註云史記曰 堯使舜入山林川澤 暴風雷雨 舜行不迷]

奄有下士[天下也]

큰 산에 들어가심 무난하시고

하토를 문득 두시어

 

保我子孫

爲民父母

우리의 자손을 보호하시며

백성의 부모 되옵시니

 

根深桃野[東方]

派遠桑浦[東海]

그 뿌리 도야에 깊었고

줄기는 멀리 상포에 뻗으셨습니다.

 

蜃紼龍輴

[蜃似蛇而大 蜃紼 謂其長如蜃也 輴 喪輿也 龍輴 謂喪輿之上刻畫爲龍也]

신불과 용순으로

 

山園保眞

[莊子云 已返其眞 而我猶爲人猗 案古人指死而無分別 謂之眞無分別 謂之眞無分別者 體魄是也]

산원에서 진체를 보호하시며

 

幽堂[墓也] 闢隧

[墓道也 上有負土成墳 傍掘地通道 以納棺也]

 

유당에 묘 길을 만드시고

 

聳塔遷鄰[移寺]

萬歲哀禮[陵也]

千生淨因[寺也]

용탑을 가까운 곳에 옮기시니

만세동안 애모하는 예도와

천생의 청정한 터전은

 

金田厚利[寺也]

玉葉長春[聖子神孫謂之玉葉]

금밭의 두터운 이익이며

옥 잎사귀의 영원한 봄이옵니다.

 

孝孫淵懿[淵 深 懿 美]

昭感天地

효손이 많고 아름다우시여

빛나게 천지를 감동하셨네

 

鳳翥龍躍

[說文云 飛擧也 言子孫如鳳飛龍躍也]

金圭合瑞

[此二句 言子孫英傑 世世顯榮金圭 諸侯所執之信 圭 上圓下方 瑞 信也 五等諸侯 各有所執 公執桓圭 侯執信圭 伯執躬圭 子執穀璧 男執蒲璧也 言以王之金圭 符合于天子之冒 周禮 天子執冒 以朝諸侯 冒 鎭圭也 以德覆冒天下]

봉이 날으고 용이 뜀이여

금규가 옥신부에 합했도다.

 

乞靈不昧

徼[徼音要 求也]福斯至

신령께 빌으심 흐리지 않아

복을 맞아들이매 이 이르렀나니

 

欲報之德[先祖之德]

克隆法事[造寺]

그 덕 갚으시려고 하여

법사를 높이 받드셨네.

 

妙選邦傑[俗三良 僧二傑]

嚴敦國工[工 匠也]

나라의 인걸을 잘 선출하시며

전국의 장인들을 불러 들이고

 

伺農之隙 成佛之宮

농사철 아닌 때를 틈타시어

부처님 궁전 이룩하시니

 

彩檻攢鳳 雕樑架虹

채색 난간엔 봉황이 모이고

아로새긴 들보엔 무지개 섰으며

 

繚[繚音了 纏也]墉[墉 垣也]雲矗

繢[繢音會 五彩以畫]壁霞融

두른 담엔 구름이 솟아 오르고

그림 벽에는 노을이 어리었도다.

 

盤基爽塏[爽 高明也 塏 高燥也]

觸境蕭灑

둘레의 터전은 양명하며 조강하고

보이는 풍경마다 소쇄하며

 

藍岫交聳 蘭泉[味甘香也]迸瀉

푸른 묏부리는 다투어 솟았고

향기로운 샘물은 솔솔 흐르도다.

 

花娓[美也]春巖 月高秋野

꽃이 아름답게 핀 봄산이며

달이 높이 뜬 가을밤이니

 

雖居海外 獨秀天下

비록 바다 밖에 있음이나

홀로 천하에서 아름답도다.

 

陳稱報德

[陳後主 爲高祖創報德寺]

隋號興國

[隋文帝創興國寺]

진에서는 보덕이라 칭하였고

수에서는 흥국이라 이름했으니

 

孰與家福 興之國力

어찌 집안의 복이라만 하랴

이 나라의 힘을 높이심이로다

 

堂聒妙音 廚豐淨食

법당엔 미묘한 소리 요란하고

주방엔 청정한 음식 풍족하니

 

嗣君[定康王]遺化

萬劫無極

임금님의 끼치신 덕화 이어받아

만겁동안 무궁하오리

 

於鑠媧后

[詩云 於鑠王師 註云 於 歎歎 鑠 盛也 媧后 眞聖女君]

情敦孝友

[孝於父母 友愛於兄弟也]

아! 빛나신 여와 임금님이시여

효도와 우애의 정 두터우시어

 

致媺雁行

[媺 與美同 雁飛有次第 故比兄弟也]

愼徽龍首

[愼 脩也 徽 美也 龍首 指陵上也]

안항의 아름다움 이루시고

용수(龍首)의 정성을 기우르셨네

 

詞恧腐毫

[恧音六 慚也 毫 筆 腐 謙辭]

문장 꾸밈은 썩은 붓임이 죄스러우며

 

書慚掣肘

[掣 引也 肘 臂節也 說苑云 魯使宓子賤爲單父宰 子賤恐魯君聽讒而不得便其政 請於魯君之近史善寫者 俱與之官 使之寫書 傍坐 掣其肘 書醜則怒 更欲善書 則又掣 書者歸告魯公 魯公不會其意 問于孔子 孔子曰 不齊 君子也 意者以此爲諫乎 公悟以從之 單父大治也 ○ 不齊 子賤之名也]

글씨 솜씨는 팔목 당김이 부끄럽습니다.

 

鰌壑雖渴

[鰌壑 鰌魚所在之壑 卽東海也 鰌音秋 長千餘丈 入穴則潮水退 出穴則潮水進]

고래 구렁은 비록 다할지라도

 

龜珉不朽

[珉 美石 卽龜上所竪之碑也 世傳言 龍生九子 不成龍而各有所好

一曰贔屭 形似龍而好負重 故碑下趺是也 二曰螭吻 形似獸 性好望 故今之屋上獸頭是也 三曰蒲牢 形似龍而好吼 今之鍾上紐是也 四曰狴犴 形似虎 有威力 故立于獄門是也 五曰饕餮 性好飮食 故立于鼎蓋是也 六曰。性好水。故立于橋頭是也。七曰睚䀝。性好殺。故立于刀環是也。八曰金猊。形似獅。性好烟。故立于香罏是也。九曰椒圖。形似螺蚌。性好閉。故立于門鋪首是也。

거북 옥돌은 썩지 않으리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685

 

사산비명(四山碑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남북국시대 통일신라학자 최치원이 지은 비문 가운데 자료적 가치가 높은 4편을 모아 엮은 금석문집.

네 편의 비문은

①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성주사 터에 있는 대낭혜화상탑비(국보, 1962년 지정),

②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경내에 있는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국보, 1962년 지정),

③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면 말방리 대숭복사에 있었던 초월산대숭복사비명,

④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면 원북리 봉암사 경내에 있는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2010년 지정)를 가리키며,

위의 네 군데 산 이름을 취하여 일반적으로 ‘사산비명’이라 일컫는다.

신라 불교사에서 우뚝한 위치를 차지하는 세 선사(禪師)의 일생 행적과 화엄종 계열의 왕실 원찰(願刹)인 대숭복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비문으로서, 사비명(寺碑銘)의 찬술은 『문선(文選)』에 보이는 왕건(王巾)의 ‘두타사비명(頭陀寺碑銘)’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전에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네 비 모두 왕명에 의해 찬술되었으며,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로부터 은거하기 이전에 걸쳐 찬술되었다.

현재 대숭복사비를 제외한 세 비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절과 함께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 대숭복사비는 1931년 이후 그 잔편(殘片)이 몇 차례 발굴되었다.

진감선사비와 대숭복사비는 최치원이 직접 글씨까지 썼으며, 대낭혜화상비는 화상의 종제(從弟)인 최인연(崔仁渷, 뒤에 崔彦撝로 개명)이, 지증대사비는 분황사(芬皇寺) 승려 혜강(慧江)이 썼다. 『사산비명』은 우리나라 금석문의 신기원을 여는 웅문거편(雄文巨篇)으로서, 화려한 수사(修辭)에다 함축미와 전아(典雅)함을 잘 갖추고 있다.

『계원필경집』주1)이 재당시(在唐時)에 이룩한 대표적 저술이라면 『사산비명』은 귀국한 이후에 남긴 저술 가운데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사산비명』의 자료적 가치와 중요성은 종래 불교학인들 사이에서 과외독본(課外讀本)으로 널리 읽혀져 왔다는 점과 함께 다수의 주해본이 계속해서 나올 만큼 식자층의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사산비명』은 조선 선조 · 광해군 때 명승(名僧) 해안(海眼: 鐵面老人 · 中觀)이 처음으로 『고운집(孤雲集)』에서 네 비문을 뽑아 책으로 엮고 주석을 붙인 이래, 연담 유일(蓮潭有一) · 몽암(蒙庵) · 홍경모(洪景謨) 등의 주해가 이어졌으며, 근세까지 십 수종의 주해본이 나왔다. 이 가운데 정주(精註) · 정교본(精校本)으로는 『문창집(文昌集)』(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과 『계원유향(桂苑遺香)』(崔完秀 소장), 『사산비명주』(梵海 覺岸註), 『정주사산비명(精註四山碑銘)』(石顚 朴漢永註) 등이 꼽힌다.

이 『사산비명』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연대상으로 훨씬 앞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생한 사실(史實)을 담은 제1차 자료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우리의 고대사 연구, 특히 신라의 선종사를 비롯한 불교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데, 이덕무(李德懋) · 정약용(丁若鏞) · 성해응(成海應)과 같은 저명한 실학자들이 『사산비명』을 신라시대의 귀중한 사료로 여겨 중시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사산비명』의 문체는 만당(晩唐) 시기에 크게 유행했던 변려문체(騈儷文體)로서, 육조풍(六朝風)의 기어(綺語)주2)와 묘구(妙句)주3)가 많고, 변려문에서 구사(驅使)되는 각종 수사기법과 기교, 그리고 중국 역대 금석문의 법식(法式)이 풍부하게 활용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교에 흐르거나 나열식의 기술로 꾸며진 것이 아니고, 매우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서술되었다.

또한 문의(文意)가 창달, 원만하고 음조(音調)가 잘 맞으며, 전고(典故)의 사용이 적절할 뿐 아니라, ‘화려함이 많지만 부박(浮薄)하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비문이라는 제약된 형식 때문에 문학적 가치를 충분히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명(銘)을 비롯하여 문학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단서가 적지 않다. 문체적 특성 역시 당시의 문풍(文風)과 문장 스타일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또 『사산비명』은 글의 성격이나 형식상 최치원의 사상과 철학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은 아니지만, 여느 비문과는 달리 찬자(撰者)의 사상적 · 철학적 편린들을 많이 담고 있으므로, 그것을 통해 최치원의 철학사상까지도 추론(推論)할 수 있다. 특히 당시 학인(學人)들의 삼교관(三敎觀)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함께 최치원 철학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동인의식(東人意識)과 동방사상(東方思想)을 고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자료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높다.

 
주1)

신라 후기의 학자인 최치원의 시문집. 그가 지은 1만여 수의 시 가운데 정수만을 가려 뽑은 것이다. 20권 4책.    우리말샘

주2)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약삭빠르게 꾸며 대는 말.    우리말샘

주3)

매우 뛰어난 글귀. 

 

 

http://blog.naver.com/gamrae007/100087501517

 

유당 신라국 고 강주 지리산 쌍계사 교시 진감선사 대공영탑비명

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大空靈塔碑

 

전서국 도통순관 시어사 내봉공 사 자금어대 신 최치원은 교지를 받들어 찬술함.

(국보 제 47 호)

 

 

 

夫道不遠人。人無異國。

대저 도가 사람에게 멀지 아니하고

사람은 다른 나라가 없다

 

是以東人之子。爲釋爲儒。

[此人爲釋。與我之爲儒同其勞。]

이르므로 동방사람의 아들이

석(釋)이되고 유(儒)가 되는 데는

 

必也西浮大洋。重譯 通語不一 從學。

命寄刳木。[黃帝刳木爲舟。]心懸寶洲。

[水中可居地曰洲○洲亦作主。西域記。南贍部州地有四主。南衆편001主。北馬主。東人主。西寶主。衆편002卽交趾。馬卽匃奴。人卽震旦。寶卽西域。今指中原曰寶洲。]

반드시 서쪽으로 큰 바다에 떠서

이중 삼중 통역을 거쳐 유학할 제

목숨은 조각배에 부쳤고

마음은 보배의 고장으로 행하였다.

 

虛往實歸。先難後獲。亦猶采玉者不憚崑丘之峻。

[治水經云。崑崙山。高五萬里。河源出其東。日月相碍而隱。其中多寶玉。]

빈것으로 갔다가 채워서 돌아오고

어려움을 먼저 한 뒤에 소득이 있었으니

마치 옥을 캐는 자가 곤륜산의 높은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探珠者不辭驪壑之深。

[說文。河上翁之子。沒川而得千金之珠。翁曰。珠在驪龍頷下。汝遭其睡。若悟則當爲虀粉。]

진주를 찾는 자는

용이 잠든 물속의 깊은 것을 피하지 아니함과 같았다.

 

 

遂得慧炬。則光融五乘。

[聲聞,緣覺,菩薩,人乘,天乘。]

嘉肴則味飫六籍。[六經。]

드디어 지혜의 횟불을 얻어서 빛이 오승에 통하고

아름다운 음식을 얻어 맛이 육경에 배불렀다.

 

競使千門入善。能令一國興仁。

다투어 청문으로 하여금 선으로 들어오게 하고

능히 일국으로 하여금 인에 흥기되게 하였다.

 

而學者或謂

身[音干]毒[印度別名。佛所生地。]與闕里[孔子所居里]之說敎也。

分流異體。

학자들이 혹 말하기를,

인도와 궐리의 교를 설하는 것이

흐름이 나누이고 체(體)가 달라서

 

圓鑿方枘。[鑿枘。本相入之物。惟方枘圓鑿。則不相入]。

互相矛盾。[韓子曰。有賣矛與盾者。譽其矛曰。犀革無所不入。譽其盾曰。矢戟不能入。傍人曰。以子之矛。刺子之盾。入耶。不入耶。]

守滯一隅。

둥근 구멍에 네모난 나무자루를 박는 것이라 하여

서로 모순되어 각기 한 모퉁이만 고집한다.

 

嘗試論之。

說詩者不以文害辭。不以辭害志。

禮所謂言豈一端而已。夫各有所當。

내가 시험삼아 논하건대

시를 설하는 자는 문으로서 사(辭)를 해하지 아니하고

사로서 뜻을 해하지 아니할 것이니

예기에 이른바 말이 어찌 일단뿐이리요

대저 각기 마땅한 바가 있다.

 

 

故廬峯慧遠著論。

謂如來之與周孔。發致雖殊。

所歸一揆。體極 [體達至極之理]

그러므로 여산의 혜원이 논을 지어서

여래와 주공 공자가 출발한 것은 비록 다르나

돌아가는 바는 한가지이니 지극한 이치에 통달하였다.

 

不能兼者。[釋不兼儒。儒不兼釋。]

物不能兼受故也。

능히 서로 겸하지 못하는 것은

물이 능히 겸하여 용납하지 못하는 때문이다.

 

沈約有云。

孔發其端。釋窮其致。

眞可謂識其大者。

始可與言至道矣。

[慧遠許沈約之言也]

심약의 말에

공자는 발단(發端)을 하였고

석씨는 극치가 된다 하였으니

참으로 그 큰 것을 아는 이로서

비로소 더불어 지극한 도를 말 할 수는 있다 하겠도다.

 

至若佛語心法。玄之又玄。

名不可名。說無可說。

雖云得月。指或坐忘。

[見月休觀指。歸家罷問呈。]

終類係風。影難行捕。[言佛說虛無]

불이 말한 심법은 현(玄)하고 또 현(玄)하여

이름으로 이름할 수 없고 설하려 하여도 설할 것이 없어서

비록 달(月)을 얻었다 이르나 손가락을 혹 잊어버려

마침내 바람을 매고 그림자를 포착하기 어려움과 같다.

 

然陟遐自邇。取譬何傷。

그러나 멀고 높은 데로 오르자면 가깝고 낮은 데서부터 하는 것이니

여기서는 비유를 취한들 무슨 해로움이 있으리오?

 

且尼父謂門弟子曰。

予欲無言。天何言哉。 [子曰。予欲無言。子貢曰。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子曰。天何言哉。四時行焉。萬物生焉。]

또한 공자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라고 했으니

 

則彼淨名之默對文殊。[文殊問。何等是不二法門。淨名默然不應。文殊曰。善哉善哉。乃至無有言語文字。直入不二法門。]

善逝之密傳迦葉。[善逝。涅槃也。卽佛之十號中一數也。世尊在靈山會上。拈花示衆。獨迦葉微笑破顏。]

곧 저 정명이 침묵으로써 문수를 대한 것과

선서(善逝)가 비밀히 가섭(迦葉)에게 전한 것은

 

不勞鼓舌。能叶印心。

혀를 놀리지 아니하고

능히 마음에 새기게 하는 것이다.

 

言天不言。[二字缺] 奚適而得

하늘이 말하지 아니한다고 말하였으니

이것을 버리고 어디에 가서 얻으리오?

 

遠傳妙道。廣耀吾鄕。

亦豈異人哉。禪師是也。

미묘한 도를 멀리 전하여 우리 고장에 널리 빛낸 이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선사가 그분이시다.

 

 

禪師法諱慧照。俗姓崔氏。

其先漢族。冠盖山東。 [卽華山之東。六國在焉。]

선사는 법휘는 혜조요 속성은 최씨이다.

그 선대는 한족으로 산동의 명문이었는데

 

隋師征遼。多沒驪貊。

수나라가 요동을 칠 때에

고구려에서 많이 죽고

 

有降志而爲遐者。爰及聖唐。囊括四郡。

[唐高宗遣蘇定方。與新羅合攻百濟滅之。又遣李繢等。合攻高麗滅之。置安東都護府。以嶭仁貴爲統官。]

今爲全州金馬人也。 [金馬。今益山。舊屬全州。]

뜻을 굽혀 그곳의 백성이 된 자가 있었으니

당에 이르러 사군을 점령하매

지금은 전주 금마 사람이 되었다.

 

父曰昌元。在家有出家之行。

아버지는 창원인데

재가 하면서 출가의 행이 있었다.

 

母顧氏。嘗晝假寐 [不脫衣冠而眠。]

夢一梵僧謂之曰。

어머니 고씨가 일찍이 낮잠을 자는데

꿈에 한 중이 와서 이르기를,

 

吾願爲阿㜷之子。

[㜷音彌。楚人呼母曰阿㜷。江南人稱母曰阿嫗。]

以琉璃罌爲寄。

未幾娠禪師焉

“내가 어머니의 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고

유리 항아리로서 표적을 삼더니

얼마 안되어 선사를 임신하였다.

 

生而不啼。

乃夙挺銷聲息言之勝芽也。

나면서 울지 아니하였으며

곧 일찍부터 소리없고 말없는 깊은 도의 싹을 타고났던 것이다.

 

曁齔[改齒也]從戲。

必燌葉爲香。采花爲供。

칠팔세가 되자 유회할 때에

반드시 잎을 태워서 향을 삼고

꽃을 따서 공양을 삼았으며

 

或西向危坐[跪也。]

移晷未嘗動容。

혹 서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시간이 지나도록 몸을 움직이지 않았으니

 

是知善本

固百千劫前所裁植。

非可跂 [舉足望也] 而及者。

이것은 선의 뿌리가

실로 백천겁(百千劫)전에 심어진 바이요

배워서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自丱泉弁。[丱音貫。束髮在後也。弁。冠也。男二十而冠。]

십여세로부터 이십세에 이르기 까지

 

志切反哺。[烏哺其雛。五十日而後。雛還哺其母。]

跬步不忘。

부모를 봉양하기에 뜻이 간절하여

잠깐도 잊지 아니하였으나

 

而家無斗儲。又無尺壤

집에 저축이라곤 없었고

또 농사지을 만한 땅도 없어서

 

可盜天時者。

[列子。齊之國氏大富。宋之向氏問術焉。國氏曰。吾善爲盜也。向氏歸家。無所不盜。以藏獲罪而怨之。國氏曰。若只知爲盜之言。而不知爲盜之意也。吾乃盜天地之時與利。而生吾禾。植吾榢。築吾垣。建吾舍。陸盜禽獸。水盜魚鱉。此皆天之所生。非吾所有。然吾善盗天時。故富而無殃。]

천시를 이용하여

 

口腹之養。惟力是視。

생계를 자력으로 돌보았으니

 

乃裨販陬隅。[南蠻人以靑魚謂陬隅。郝隆詩云。陬隅躍淸池。]

爲贍滑甘之業。[以苦澁者自養。滑甘者奉親。乃孝子之事。]

생선을 팔아

좋은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手非勞於結網。

心已契於忘筌。[網。捉兔具。筌。捕魚器。網筌喻能詮。

兔魚喻所詮。言不假文字而得旨之意。]

손으로는 그물을 맺지 아니하였으며

마음은 이미 통발을 잊는 데 부합하였다.

 

能豐啜菽之資。

[檀弓。啜菽飮水。能盡其歡。不違其志。故能令親歡。]

允叶采蘭之詠。[詩云。循彼南山。言采其蘭。此是孝子養親之事。]

콩죽을 끓여먹어도

부모의 기쁨을 다할 수 있었고

 

洎鍾艱棘。[居喪也。詩云。棘人欒欒。]

負土成墳。迺曰。

상을 당하자

스스로 흙을 저다가 성분하고는 말하기를,

 

鞠育之恩。聊將力報。

希微之旨。盍以心求。

[道經云。目之不見曰希。搏之不得曰微。言至道玄玄。]

길러준 부모 은혜는 힘으로 갚았으나

미묘한 도리는 어찌 마음으로 구하지 아니하랴.

 

吾豈匏瓜。壯齡滯跡。[論語曰。吾豈匏瓜哉。焉能係而不食。]

내가 어찌 박과 오이가 둥글에 매인 것처럼

젊은 나이에 한구석에 박혀 있으리오? 하고

 

遂於貞元二十年。[唐德宗年號。新羅元聖王元年。]

詣歲貢使 [至使也]

求爲枋人。[舟長也。]

드디어 정원 이십 년에

당나라로 가는 세공사에게 찾아가서

선장이 되기를 청하여

 

寓足西泛。

多能鄙事。視險如夷[平也。]

몸을 의탁하여 서쪽으로 바다를 건널 적에

고된 일을 많이 하고

험한 풍파를 평지와 같이 여겼다.

 

揮楫慈航。超截苦海。

자비의 배에 노를 저어서

고해를 질러 건넜다.

 

及達彼岸。告國使曰。

피안에 도달하자

국사에게 고하기를

 

人各有志。請從此辭。

“사람마다 각각 뜻이 있는 것이니

나는 여기서부터 하직하겠소” 하고

 

遂行至滄洲。

謁神鑑大師。[馬祖傍傳。鹽官齊安之嗣。]

投體方半。

드디어 행하여 창주에 이르러

신감대사를 뵈옵고

절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大師怡然曰。

戲別非遙。喜再相遇。

[通載。杯度在彭城。聞羅叶入關中。嘆曰。吾與此子戲別三百餘年。]

대사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장난삼아 이별한 지가 멀지 아니하였는데

두번 서로 만남이 기쁘구나” 하고

 

遽令剃染。頓受印戒。

문득 머리를 깍고 가사를 입히고

심인과 계를 함께 주니

 

若火添燥艾。水走卑邍。

마른 쑥에 불을 부치고

물이 낮은 데로 흐르는 것 같았다.

 

 

然徒中相謂曰。

東方聖人。於此復見。[前見道義。今見禪師。]

무리들 가운데서 서로 이르기를,

“동방의 성인을 이에 다시 보겠다.” 하였다.

 

禪師形貌黯然。

衆不名而目爲黑頭陀。

선사의 얼굴빛이 검으므로

모두가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고 지목하여 흑두타라 했으니

 

斯則探玄處默。眞爲漆道人後身。

[道安法師貌黑。故人謂之漆道人。亦曰黑頭陀。]

이는 곧 현묘함을 탐구하고 묵묵히 행함이

진정 칠도인의 후신이었으니

 

豈比夫邑中之黔。能慰衆心而已哉。

[左傳。宋皇國父爲平公築臺。子罕請候農隙。築者謳曰。澤門之白。實興我役。邑中之黔。能慰我心。盖子罕貌黑而居邑中。]

어찌 읍중의 검은 사람인 자한(子罕)이

백성의 마음을 위로한 데에 비할 수 있겠는가?

 

永可與赤髭靑眼。以色相顯示矣。

[佛陀耶舍赤髭。達麽靑眼。]

영원토록 수염이 붉은 불타야사나 푸른 눈의 달마와 함께

색상으로써 나타내 보인 것이다.

 

元和五年。[唐憲宗年號]

원화 5년에

 

受具於嵩山少林寺。

[嵩山。中岳也。寺之窟前。有二株桂樹。故曰少林寺。]

琉璃壇側。

구족계를 숭산 소림사의 유리단 곁에서 받으니

 

聖善[詩云。母氏聖善。]前夢。

完若合符。

어머니의 전일의 꿈이 완연히 부합했다.

 

旣瑩戒珠。復歸黌海。

이미 계주가 밝았으매 다시 경을 배웠다.

 

聞一知十。茜絳藍靑。[出淮南子。]

하나를 듣고는 열을 알매

강색이 꼭두서니에서 나와 꼭두서니 보다 붉었고

청색이 쪽에서 나와 쪽보다 푸르렀다.

 

雖止水澄心。

[人莫鑑於流水。而鑑於止水。]

而斷雲浪跡。

비록 고인 물처럼 맑은 마음이나

조각구름 같이 떠다니며 배우는 자취였다.

 

粤[於也]有鄕僧道義。

先訪道於華夏。

고향의 중 도의라는 이가

먼저 중원으로 도를 물으러 왔었는데

 

邂逅適願。西南得朋。

[易坤卦。東北喪朋。西南得朋。邂逅相遇。適我願兮。]

四遠參尋。證佛知見。

우연히 서로 만나 바라는 바가 일치하였으니

서남쪽에서 벗을 얻은 것이다.

사방으로 멀리 찾아다니며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증득하였다.

 

義公先歸故國。

禪師卽入終南。[長安山名]登萬仞之峯。

餌松實而止觀。

寂寂者三年。

도의 는 먼저 고국으로 돌아오고

선사는 바로 종남산에 들어가 만길 봉우리에 올라가서

솔씨를 따먹으며

적적하게 선정과 지혜의 지관법을 익힌 지 삼년이었다.

 

後出紫閣。[函谷關外池名。]當四達之道。

織芒屩而廣施 憧憧者又三年。[芒屩。藁鞋也。憧憧。往來不絶也。]

뒤에 자각으로 다시 나와 사방으로 통하는 길에서

짚신을 삼아 보시를 널리하여 왕래하기 또 삼년이었다.

 

於是苦行旣已修。

他方亦已遊。

雖曰觀空。豈能忘本。

이리하여 고행을 이미 닦았고

타국의 지방도 이미 유람하였으니

비록 공(空)을 공부한다 할지라도

어찌 본국을 잊을 수 있겠는가.

 

乃於大和四年[唐文宗年號]來歸。

大覺上乘。照我仁域。

드디어 태화 4년(830)에 돌아오매

불교의 최상승 도리로

우리의 어진 강토를 비추었다.

 

興德大王 飛鳳筆迎勞曰。

흥덕대왕이 편지를 보내어 맞아 위로하기를,

 

道義禪師。曏已歸止。

上人繼至。爲二菩薩。

“도의 선사가 전일에 돌아왔더니

상인이 잇달아 이르렀으매 두 보살이 되었도다.

 

昔聞黑衣之傑。[南朝齊武帝。敕沙門法獻,玄暢爲天下僧主。會于帝前。肩輿入殿。時稱黑依二傑。]

今見縷褐之英。[縷褐。弊衣也。]

옛날에 검은 옷입은 호걸이 있었다 들었더니

지금에 누더기 걸친 영웅을 보겠도다.

 

彌天慈威。擧國欣賴。

하늘에 가득한 자비스런 위엄을

온 나라가 기뻐하여 의지하는구나

 

寡人行當以東鷄林之境。

成吉祥之宅也。[行。將也。吉祥。卽薄伽梵。六義之一也。]

과인이 장차 동쪽 계림 지경으로

상스러운 집을 만들라”고 했다.

 

始憩錫於尙州露嶽長柏寺。[今南長寺。]

처음에 상주 노악산 장백사에 석장을 멈췄는데

 

毉門多病。來者如雲。

方丈雖寬。物情自隘。

의원 문전에 병자가 많듯이 찾아오는 이가 구름 같았으매

절간이 비록 넓었으나 사람들이 자연 군색했다.

 

遂步至康州[今晉州]智異山。

有數於莬 [楚人稱虎之名] 哮吼前導。

避危從坦。不殊兪騎。[兪。仁也。如仁順馬在前去。書。帝曰。兪之先行騎。註。兪者。輿後相應之騎。]

드디어 걸어서 강주 지리산에 이르렀는데

몇마리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앞에서 인도하여

위험한 곳을 피해 평탄한 길로 가게 함이

앞에서 이끄는 기마(騎馬)와 다르지 않았다.

 

從者無所怖畏。豢犬如也。

따르는 사람들도 두려워함이 없어

마치 기르는 개처럼 여겼다.

 

則與善無畏三藏 [佛名] 結夏靈山。

곧 선무외삼장이

영산에 하안거를 하는데

 

猛獸前路。深入山穴。

見牟尼立像。宛同事跡。

맹수가 길을 앞서 깊이 산혈로 들어가매

모니의 입상을 본것과 사적이 완연히 같으니

 

彼竺曇猷之扣睡虎頭。令聽經。

亦未專媺於僧史也。

[晉沙門竺曇猷。一名法獻康居國人。在豐城赤石山石室誦經。有猛虎數十蹲在猷前。一虎獨睡。猷以如意杖扣睡虎頭。呵曰。何不聽經。俄而羣虎皆去。]

저 축담유가 자는 범을 두드려 경을 듣게 한 그것만이

홀로 승사에 미담이 될수 없다.

 

因於花開谷 故三法和尙蘭若遺基。

纂修堂宇。儼若化城。

화개곡에

옛 삼법화상의 절터를 그대로 인연하여

절을 지으니 엄연히 화성과 같았다.

 

洎開成[唐文宗年號] 三年。

愍哀大王 驟登寶位。[開成三年戊午。金明弑僖康王自立。四年己未。金陽等討金明誅之。立古微爲王。卽神武王也。追諡金明曰愍哀。]

深託玄慈。

개성 삼년에 이르러

민애대왕이 갑자기 보위에 오르자

깊이 자비에 의탁하였다.

 

降璽書餽齋費。而別求見願。

새서(璽書)를 내려 공양할 물자를 보내고

특별히 친견하기를 청했다.

 

禪師曰。

在勤修善政。何用願爲。

선사가 이르기를,

“부지런히 선정을 닦는 데 있는데

어찌 만날 필요가 있습니까?” 고 했다.

 

使復于王。王聞之愧悟。

以禪師色空雙泯。定惠俱圓。

사신이 돌아가 왕에게 복명하니

왕이 듣고 부끄러워하고 깨달아서

선사는 색과 공이 함께 소멸되고

정과 혜가 모두 원만하다 하여

 

降使賜號爲惠照。

昭字避聖祖廟諱 易之也。[廟諱。卽昭聖大王也。名俊邕。]

사신을 보내 호를 주어 혜조라 하니

소자는 성조의 어휘이므로 피하여 바꾼 것이다.

 

仍貫籍于大皇龍寺。[如無染碑。編錄興輪寺奴婢田地之意。]

徵詣京邑星使。[漢書。李郃善天文。和帝遣使觀風。郃見使。問京中消息。使曰。君何以知吾爲使也。郃曰。見有二使星來向益州。故知之。]

인하여 대황룡사에 적을 옮기게 하고

서울로 오라고 불렀는데

 

往復者 交轡于路。

而嶽立 不移其志。

사자의 왕래가 길에 고삐가 엉길 정도였지만

산악처럼 우뚝하여 그 뜻을 옮기지 않았다.

 

昔僧稠非元魏之三召云。

在山行道。不爽大通。

[齊鄴西龍山雲門寺僧稠。拒元魏孝明帝之前後三召也。爽。差也忒也。]

옛날 승조법사가 원위의 세 번 부름을 거절했다 했으니

산에 있어 도를 행하매 대통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栖幽養高。異代同趣。

깊숙한데 살아서 고상함을 기르려는 것이

시대는 달랐으나 지취(志趣)는 한가지였다.

 

居數年。請益者。

稻麻城列。殆無錐地

두어 해를 머물매

가르침을 청하는 자가

벼와 삼대처럼 늘어서고 성같이 에워싸서

거의 송곳 꽂을 틈조차 없었다.

 

遂歷銓[音全。言選擇也。]奇境。

得南嶺之麓。

塽塏[地高明也]居㝡。

드디어 기이한 지경을 두루 선택하여

남령의 산기슭을 얻으니

높고 시원함이 제일이었다.

 

經始禪廬。

却倚霞岑。俯壓雲澗。

淸眼界者。隔江遠岳。

爽耳根者。逬石飛湍。

사찰을 창건하는데

뒤로는 노을 끼는 언덕을 의지하고

앞으로는 구름이는 시내를 굽어보니

안계를 맑게 하는 것은 강 건너 먼 산이요

귀를 서늘하게 하는 것은 돌구멍에서 솟구치는 나르는 여울이었다.

 

至如春谿花。夏徑松。

秋壑月。冬嶠雪。

四時變態。萬象交光。

더욱이 봄에 피는 시내의 꽃과

여름에 그늘지는 길옆의 솔이며

구렁을 비추는 가을의 달과

봉우리를 덮는 겨울의 눈들이

사시가 모습을 바꾸고

만상의 빛을 번갈으며

 

百籟和唫。

[凡有孔竅。皆曰籟。人籟則比竹是已。地籟則衆竅是已。天籟則人心自動者是已。見莊子齊物。]

백가지 울림소리가 어울려 읊조리고

 

千巖競秀。

수천 개의 바위들이 다투어 빼어났다.

 

嘗遊西土者。

至止咸愕。視謂

일찍이 서토에 놀던 자가

와서는모두 깜짝 놀라 보고 이르기를,

 

遠公東林。[晉惠遠。於廬山創東林寺。]

移歸海表。

“혜원의 동림사를 바다건너 옮겨 왔구나

 

蓮花世界。非凡想可擬。

壺中別有天地則信也。

연화세계는 범인의 상상으로 비겨 볼 바 아니로되

항아리 속에 별천지가 있다더니 정말이로다”고 했다.

 

架竹引流。

環階四注。

始用玉泉爲榜。

대로 홈을 만들어 시냇물을 끌어다가

축대에 돌아가며 사방으로 물을 대고

비로소 이름하여 옥천이라고 현판을 붙였다.

 

屈指法胤。則禪師迺曹溪之玄孫。

是庸建六祖影堂。[今雙溪寺也。]

彩飾粉墉。廣資導誘。

법통을 헤아려 보니 선사는 곧 조계의 현손이다.

이에 육조의 영당을 세워

분바른 벽에 단청으로 채색하여

널리 신도를 귀의시키는 데에 이바지 하니

 

 

經所謂 [法華經偈] 爲說衆生。

故綺錯繪衆像者也。

경에 이른바,

 “중생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비단에 여러상을 섞어 그린다” 함이었다.

 

 

大中四年 [唐宣宗年號] 正月九日 詰旦 [平明。]告門人曰。

대중사년 정월 구일 이른 아침에

문인에게 말씀하셨다.

 

萬法皆空。吾將行矣。

一心爲本。汝等勉之。

無以塔藏形。無以銘紀跡。

“ 만 가지 법이 다 공이니 내 장차 떠나가려 한다.

하나의 마음이 근본이니 너희들은 힘쓸지니라,

탑에다 유해를 갈무리지 말고

명으로써 행적을 기록하지 말아라.” 하고

 

言竟坐滅。

報年七十七。積夏四十一。

말을 마치자 앉아서 열반에 드니

금생의 나이 77세이고

법랍이 41세였다.

 

于時。天無纖雲。

風雷歘欻起。

虎狼號咽。杉栝變衰。

그때 하늘에는 실구름도 없었는데

바람과 우뢰소리가 혼연히 일어나며

호랑이는 슬피 울부짖고

삼나무·잣나무가 변하여 시들더니

 

俄而紫雲翳空。

空中有彈指聲。

會葬者無不入耳。

이윽고 자주빛 구름이 하늘에 자욱하고

공중에서 손가락 퉁기는 소리가 나서

장사에 모인 자는 듣지 못한 이가 없었다.

 

則梁史載

褚侍中翔。嘗請沙門

爲母疾祈福。聞空中彈指。

양나라 역사에 실려 있기를,

“저시중 상이 일찍이 사문을 청하여

어머니의 병환을 위해 복을 빌다가

공중에서 손가락 퉁기는 소리가 났다.” 했으니

 

聖感冥應。豈誣也哉。

성스런 감응이 보이지 않게 나타났으니

어찌 거짓이겠는가.

 

凡志於道者。寄聲相吊。

未忘情者。銜悲以泣。

天人痛悼。斷可知矣。

무릇 도에 뜻을 둔자는 글을 보내어 멀리 조상하고

정을 잊지 못하는 이는 슬픔을 머금고 울었으니

하늘과 사람들이 애도함을 단연코 알 수 있다.

 

靈函幽隧。[函。棺也。隧。墓道。]

預使備具。

弟子法諒等。號奉色身。

不踰日而窆于東峯之冢。[山頂也。]

遵遺命也。

관곽과 묘혈을 미리부터 준비 했으매

제자 법량 등이 울부짖으며 색신을 모셔서

날을 넘기지 않고 동쪽 산봉우리에 장사 지내니

유언을 좇음이었다.

 

禪師性不散樸 [不亂不質而得其中。]

言不由機 [巧飾。]

선사는 성품이 꾸밈이 없고

말은 꾸미지 않았으며

 

服暖縕黂。

[列子曰。父衣縕黂。縕。久絮。黂。雄麻也。言挾纊弊麻衣。]

食甘糠麧。

[音屹。漢書晉灼註。米屑也。又音劾。說文云。堅麥。]

옷은 헌 솜과 굵은 삼베도 따뜻하게 여겼고,

밥은 겨와 보리싸라기도 달게 먹었다.

 

芧[音序。山栗。卽橡子也。]菽雜糅。

蔬佐無二。

도토리와 콩을 섞은 밥에

반찬도 두 가지가 없었으며

 

貴達時至。曾無異饌。

門人以墋腹[墋音參。不澄淸之意。]進難。

 

귀한 손이 가끔 왔으나

일찍이 다른 반찬이 없어

문인이 거친 음식을 귀한 손님에게 드리기 어려워하면

 

則曰。

곧 이르기를,

有心至此。雖糲[麤米]何害。

“마음이 있어 여기까지 왔으니

비록 거친 밥인들 무엇이 해롭겠는가?”라고 했다.

 

尊卑耋穉。接之如一。

높은 이나 낮은 이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접대함이 한결같았다.

 

每有王人[王使]乘馹傳命。

遙祈法力。則曰。

가끔 왕사가 역마를 타고 와서 왕명을 전하여

멀리서 법력을 빌면

곧 말하기를,

 

凡居王土而載佛日者。

孰不傾心護念。爲君貯福。

“무릇 왕토에 살고 불일을 이고 있는 자로서

누구인들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을 다해서

왕을 위해 복을 빌지 않겠습니까?

 

亦何必遠汚綸言

[王言如絲。其出如綸。]

於枯木朽株。

[自謙之辭。]

또한 어찌 멀리서 마른 나무 썩은 등걸 같은 나에게

윤언을 더럽히려 하십니까?

 

傳乘之 飢不得齕。

渴不得飮。吁可念也。

전하고 말탄 일행들이 굶주려도 먹지 못하고

목말라도 마시지 못하는 것이 걱정입니다.” 했다.

 

或有以胡香 爲贈者。

則以瓦載煻灰。

不爲丸而焫之曰。

혹시 호향을 선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질그릇에다 잿불을 담아

환을 짓지 않은 채로 태우면서 말하기를,

 

吾不識是何臭。虔心而已。

“나는 이 냄새가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다만 마음만 경건히 할 뿐이다.” 라고 했다.

 

復有以漢茗爲供者。

則以薪㸑石釜。

不爲屑而煮之曰。

또한 중국의 차로 공양하는 이가 있으면

섶으로 돌솥에 불지피고

가루를 만들지 않은 채로 끓여 마시며 말하기를,

 

吾不識是何味。濡服而已。

“나는 이 맛이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창자를 적실 뿐이다.” 라고 했다.

 

守眞忤俗。皆此類也。

진을 지키고 속을 싫어함이 다 이러하였다.

 

雅善梵唄。[長聲渴。]金玉其音。

側調飛聲。爽快哀婉。

평소부터 범패를 잘 불렀으니

그 목소리가 금 옥 같아서

곁들인 음조와 날아가는 소리가

상쾌하여 애완하여 슬프고 우아하여

 

 

能使諸天歡喜。永於遠地流傳。

모든 천상사람들을 환희케 하고

길이 먼곳까지 흘러 전해지니,

 

學者滿堂。誨之不倦。

배우려는 자가 당에 가득찼는데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至今東國習魚山之妙者。

[曹子建喜讀佛經。一日遊魚山。聞有空聲特異。淸颺哀婉。因倣其聲。以爲梵唄。]

지금껏 동국에서 어산의 묘한 곡조를 익히는 자가

 

競如掩鼻。

[謝安有鼻病。故音濁。士子愛其詠。掩鼻而效之。]

效玉泉餘響。

豈非以聲聞度之之化乎。

다투어 손으로 코를 가리고 콧소리를 내는 것처럼

옥천의 남긴 음향을 본뜨려 하니

어찌 소리로 중생을 제도하는 교화가 아니리오?

 

禪師泥洹。當文聖大王之朝。

上側僊襟。[王心也。凡人之心則塵衿。]將寵淨諡。

及聞遺戒。[坐滅時語] 愧而寢之。

선사가 열반에 든 것이 마침 문성대왕 때였는데

왕이 진정으로 슬퍼하며

청정한 시호를 내리려 하다가

그가 남긴 훈계를 듣고는 부끄러워해 그만두었다.

 

越三紀。

門人以陵谷爲慮。

扣不朽之緣於慕法弟子。

36년이 지난 뒤에

문인들이 세월이 오래되면 언덕이 골짜기가 될 것을 염려해서

법을 사모하는 제자들에게 길이 썩지 않게 할 인연을 의론했더니

 

內供奉一吉干[音汗也。一品爵。]楊進方。

嵩文臺郞鄭詢一。斷金爲心。[易曰。二人同心。其利斷金。]

勒石是請。

내공봉 일길간인 양진방과

숭문대랑 정순일이 굳게 합심하여

돌에 새기기를 주청했다.

 

 

憲康大王 恢弘至化。

欽仰眞宗。追諡眞監禪師。

헌강대왕이 지극한 덕화로 넓히고

진종을 흠양하여 진감선사라 추시하고

 

大空靈塔。

仍許篆刻。

以永終譽。

대공령탑이라 이름하고

인하여 전자의 새김을 허락하여

아름다운 이름을 영구히 하도록 했다.

 

懿乎

日出暘谷。無幽不燭。

海岸植香。久而爾芳。

아름답다

해가 동쪽에서 나오니

깊숙한 데까지 비치지 않음이 없고

해안에 향나무를 심으니

오랠수록 더욱 꽃답도다.

 

或曰。

禪師 垂不銘不塔之戒。

어떤이가 말하기를,

“선사가 탑도 하지 말라 명도 하지 말라” 는 훈계를 남겼는데

 

而降及西河之徒[弟子。]

不能確奉先志。

求之歟。抑與之歟。

適足爲白圭之玷。

 

지금에 문도들이

능히 확고하게 스승의 뜻을 받들지 못했으니

그네들이 구했던가 아니면 위에서 주었던가

실로 백옥의 티가 될 만하다.”고 했다

 

噫。非之者亦非也。

不近名而名彰。盖定力之餘報。

슬프다

그르게 여기는 자 또한 그르다

명예를 가까이 하지 않아도 이름이 드러나니

수행의 남은 보답이다.

 

與其灰滅電絶。

曷若爲可爲於可爲之時。

使聲震大千之界。

저 재처럼 사라지고 번개처럼 끊어지기보다는

할 때에 할 수 있는 일을 하여

명성을 대천세계에 떨치도록 하는 것이 낫다.

 

而龜未戴石。龍遽昇天。[獻康王薨。]

今上[定康王也]繼興。

귀석에 비를 얹기 전에

대왕이 갑자기 승하하고

금상이 이어 즉위하니

 

塤篪相應。

[小雅。伯氏吹塤。仲氏吹篪。]

意諧付囑。善者從之。

질나발과 저가 서로 응하듯이

의리로 부촉한 것에 화합하여

착한 일을 따르셨다.

 

以隣岳招提有玉泉之號。

[卽今之晉州玉泉寺。]

爲名所累。衆耳致惑。

근처의 산에 절도 옥천이라 불렀으니

이름이 중복되어 백성들의 귀가 미혹될까 염려했다.

 

將俾棄同卽異。則宜捨舊從新。

같은 이름을 버리고 달리하려 하니

마땅히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좇아야 하는데

 

使視其寺之所枕倚。

則以門臨複澗爲對。

乃錫題爲雙溪焉。[改玉泉爲雙溪]

 

그 절이 자리잡은 곳을 살펴보게 하니

 

동구에 두 갈래의 시내가 마주했으므로

이에 제호를 내려 쌍계사라 했다.

 

 

申命下臣曰。

다시 신에게 명을 내려,

 

師以行顯。汝以文進。

宜爲銘。

“선사는 수행으로 나타났고

그대는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니

마땅히 비명을 지으라,” 하셨다.

 

 

致遠拜手曰。唯唯。

치원이 절한 후에

 ”네네” 하고 대답했다.

 

 

退而思之。頃捕名中州。

[先生十二入唐。十八登第。文名大振。二十八東還。乃僖宗光啓元年。而定康王嗣位之初載也。至翌年。僖宗遣使。特令先生撰中興功德頌一卷。]

물러나와 생각하니

얼마전에 중원에서 이름을 얻었고

 

 

嚼腴咀雋于章句間。

[腴。肥魚臠。雋。肥鳥肉。比古人典籍深奧有味也。]

 

장구의 사이에서 아름답고 맛난 것을 맛보았으나

 

 

 

未能盡醉衢罇。

[衢罇比聖人之道。杜詩云。聖人之道。猶中衢而致樽者。斟酌多少得其宜。]

미처 거리에 둔 술 항아리[성인의 정전]를 마시어 흠뻑 취하지 못했고

 

惟媿深跧泥甃。

[跧。就。泥。淤泥。甃。井也。言踐盡其勇。只就泥甃間。]

오직 깊이 우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況法離文字。無地措言。

[先生自言。北學中州。未能盡得聖人之道。則況於佛家文字。無所措言。]

하물며 불법은 문자를 떠났기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임에 있어서랴.

 

 

苟或言之。北轅適郢。

[道之相違也。]

굳이 혹 말한다면

수레채를 북으로 향하면서 남방인 영 땅에 가려는 것과 같다.

 

 

第以國主之外護。門人之大願。

그러나 국왕의 보살핌과

문인의 큰 바램으로

 

 

非文字。不能昭昭乎羣目。

문자가 아니면

뭇 사람의 눈에 밝게 보여줄 수 없으므로

 

 

遂敢身從兩役。

 [兩。二也。以儒而役於佛。爲二役。]

드디어 몸은 유교와 불교에 겸하고

 

 

力效五能。

[鼯鼠。一名夷由。有五能五不能。一能飛不能過屋。二能緣不能穿木。三能逾不能渡谷。四能穴不能掩身。五能走不能先人。喻述作之能反不能也。]

힘은 오능을 본받으려 하노니

 

 

雖石或憑。言可慚可懼。[慚於心而懼於人也]

비록 돌에 의탁한다 할지라도

부끄럽고 두렵도다

 

 

而道強名也。何是何非。

[字解曰。強。自是也。自是以道爲名。何必是非。]

그러나 도란 것은 억지로 이름한 것이니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 것인가

 

 

掘[音凡。莊子。掘若枯木。不動之意。]

筆藏鋒。

則臣豈敢。[王命也。不敢不作。]

 

석각으로 새길 만한 글인즉

 

신이 어찌 감당하리오마는

 

 

重宣前義。謹札銘云。[札。櫛也。編之如櫛齒相比。]

거듭 명령하신 임금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삼가 아래와 같이 명을 짓는다.

 

 

 

 

杜口禪那。歸心佛陀。[禪那。靜慮。佛陀。覺也。]

根熟菩薩。弘之靡他。

입을 다물고 선정을 닦았으며

마음은 불타에 귀의했도다.

근기가 익은 보살이라

넓힌 게 다른 것이 아니로다

 

 

猛探虎窟。遠泛鯨波。

去傳秘印。來化斯羅。[新羅之一稱。]

용맹하게 호랑이굴을 찾아

멀리 바다를 건넜도다.

가서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인 비인을 전해받고

돌아와 신라를 교화했네.

 

尋幽選勝。卜築巖磴。

 

水月澄懷。雲泉奇興。

깊은 승지 찾아 골라

바위 벼랑에 절을 지었네.

물과 달에 마음 밝히고

구름과 샘물에 흥을 부쳤네.

 

 

 

山與性寂。谷與梵應。

觸境無閡。息機是證。

산은 성과 함께 적연하고

골은 범패소리에 메이리쳤네.

경계에 닿는 곳마다 걸림이 없고

기심을 끊었으니 이가 곧 증독이다.

 

 

道贊五朝。

[憲德,興德,僖康,神武,文聖。]

威摧衆妖。

默垂慈蔭。顯拒嘉招。

도는 다섯 왕조 험찬했고

위엄은 모든 요귀 꺽었었네.

묵묵히 자비 음덕 드리우면서도

겉으로는 부름을 물리쳤네.

 

 

海自飄蕩。山何動搖。

無思無慮。匪斲匪雕。

바다야 제대로 표탕하나

산이야 어찌 동요될까.

사려가 없었으매

다듬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았네.

 

 

食不兼味。服不必備。

風雨如晦。始終一致。

음식은 맛을 겸하지 않았으며

옷은 갖추어 입지 않았다.

바람 비가 그믐밤 같은데도

시종이 한결 같았네.

 

 

慧柯方秀。法棟俄墜。

洞壑凄涼。烟蘿憔悴。

지혜의 가지가 바야흐로 빼어나는데

법의 동량이 갑자기 꺽였다.

골과 구렁이 처량도 하고

연하와 등라가 초췌하다.

 

人亡道存。

終不可諼。

[爾雅云 忘也 詩 衛風 終不可諼兮]

사람은 가도 도는 남았으니

영원토록 잊지 못하리라.

 

上士陳願。大君流恩。

상사가 소원을 진달했으매

대군이 은덕을 베풀었네.

 

燈傳海裔 塔聳雲根 [雲根 石也]

법등은 신라인들에게 전해왔고

탑은 바위 위에 솟구쳤네.

 

天衣拂石 *[天衣拂石 取久遠之意劫頌云 有石長廣四萬里 長壽天人過百年 六銖袈裟磨鍊盡 是則名爲一大劫]

천의(天衣)의 스침에 반석이 다 닳도록

 

永耀松門 [松門 卽寺刹]

영원히 불문(佛門)에 빛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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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쌍계사(雙磎寺) 십리벚꽃길/최치원,河東雙磎寺眞鑑禪師塔碑

*磎 = 谿 = 溪 (시내 계) https://www.youtube.com/watch?v=9N4ol59mCXg https://www.youtube.com/watch?v=fMZxF5BXSGA https://www.youtube.com/watch?v=0ZaSLmZiviE https://www.youtube.com/watch?v=z9_B6WzjBxo https://www.youtube.com/watch?v=kBx9WEZ3FRc https:

kydong77.tistory.com

 

https://bosar.tistory.com/13431347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최치원의 사산비문 신라 말기 학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4개의 비문. 지리산(智異山)의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溪寺眞鑑禪師大空塔碑), 만수산(萬壽山)의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초

bosar.tistory.com

이수는 용틀임이 실감나게 비틀려 새겨졌고, 앙화 위에 보주가 올려져있다. 중앙 네모진 부분은 두전(頭篆)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비석의 제목인 제액(題額)을 쓴다. 대부분 전서체로 쓰기에 전액(篆額)이라고 한다. 진감선사탑비는 '敭해동고진감선사비(海東故眞鑑禪師碑)'라고 쓰여 있다.

*진감선사탑비 두전의 첫 글자는 으로 밝혀졌지만 학자 사이에 양(揚), 당(唐) 및 상(傷)의 古字로 보는 등 의견이 다르다고 한다.

*'敭' 은  '揚'의 古字. "오르다, 날다, 흩날리다"의 뜻. '위대한' 정도로 해석함이 부합할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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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휘양산 봉암사 마애불

https://www.youtube.com/watch?v=pBBbVA9icOA https://www.youtube.com/watch?v=hI28nQLIjbA https://www.youtube.com/watch?v=5-Tud47j1xY https://www.youtube.com/watch?v=LT5aahyBdTs https://kydong77.tistory.com/1662 인위적인 정치로는 세상이 혼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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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BBbVA9icOA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685

 

사산비명(四山碑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네 편의 비문은

①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성주사 터에 있는 대낭혜화상탑비(국보, 1962년 지정),

②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경내에 있는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국보, 1962년 지정),

③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면 말방리 대숭복사에 있었던 초월산대숭복사비명,

④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면 원북리 봉암사 경내에 있는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2010년 지정)를 가리키며,

위의 네 군데 산 이름을 취하여 일반적으로 ‘사산비명’이라 일컫는다.

신라 불교사에서 우뚝한 위치를 차지하는 세 선사(禪師)의 일생 행적과 화엄종 계열의 왕실 원찰(願刹)인 대숭복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비문으로서, 사비명(寺碑銘)의 찬술은 『문선(文選)』에 보이는 왕건(王巾)의 ‘두타사비명(頭陀寺碑銘)’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전에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네 비 모두 왕명에 의해 찬술되었으며,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로부터 은거하기 이전에 걸쳐 찬술되었다. 현재 대숭복사비를 제외한 세 비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절과 함께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 대숭복사비는 1931년 이후 그 잔편(殘片)이 몇 차례 발굴되었다.

진감선사비와 대숭복사비는 최치원이 직접 글씨까지 썼으며, 대낭혜화상비는 화상의 종제(從弟)인 최인연(崔仁渷, 뒤에 崔彦撝로 개명)이, 지증대사비는 분황사(芬皇寺) 승려 혜강(慧江)이 썼다. 『사산비명』은 우리나라 금석문의 신기원을 여는 웅문거편(雄文巨篇)으로서, 화려한 수사(修辭)에다 함축미와 전아(典雅)함을 잘 갖추고 있다.

『계원필경집』주1이 재당시(在唐時)에 이룩한 대표적 저술이라면 『사산비명』은 귀국한 이후에 남긴 저술 가운데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사산비명』의 자료적 가치와 중요성은 종래 불교학인들 사이에서 과외독본(課外讀本)으로 널리 읽혀져 왔다는 점과 함께 다수의 주해본이 계속해서 나올 만큼 식자층의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사산비명』은 조선 선조 · 광해군 때 명승(名僧) 해안(海眼: 鐵面老人 · 中觀)이 처음으로 『고운집(孤雲集)』에서 네 비문을 뽑아 책으로 엮고 주석을 붙인 이래, 연담 유일(蓮潭有一) · 몽암(蒙庵) · 홍경모(洪景謨) 등의 주해가 이어졌으며, 근세까지 십 수종의 주해본이 나왔다. 이 가운데 정주(精註) · 정교본(精校本)으로는 『문창집(文昌集)』(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과 『계원유향(桂苑遺香)』(崔完秀 소장), 『사산비명주』(梵海 覺岸註), 『정주사산비명(精註四山碑銘)』(石顚 朴漢永註) 등이 꼽힌다.

이 『사산비명』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연대상으로 훨씬 앞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생한 사실(史實)을 담은 제1차 자료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우리의 고대사 연구, 특히 신라의 선종사를 비롯한 불교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데, 이덕무(李德懋) · 정약용(丁若鏞) · 성해응(成海應)과 같은 저명한 실학자들이 『사산비명』을 신라시대의 귀중한 사료로 여겨 중시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사산비명』의 문체는 만당(晩唐) 시기에 크게 유행했던 변려문체(騈儷文體)로서, 육조풍(六朝風)의 기어(綺語)주2와 묘구(妙句)주3가 많고, 변려문에서 구사(驅使)되는 각종 수사기법과 기교, 그리고 중국 역대 금석문의 법식(法式)이 풍부하게 활용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교에 흐르거나 나열식의 기술로 꾸며진 것이 아니고, 매우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서술되었다.

또한 문의(文意)가 창달, 원만하고 음조(音調)가 잘 맞으며, 전고(典故)의 사용이 적절할 뿐 아니라, ‘화려함이 많지만 부박(浮薄)하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비문이라는 제약된 형식 때문에 문학적 가치를 충분히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명(銘)을 비롯하여 문학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단서가 적지 않다. 문체적 특성 역시 당시의 문풍(文風)과 문장 스타일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또 『사산비명』은 글의 성격이나 형식상 최치원의 사상과 철학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은 아니지만, 여느 비문과는 달리 찬자(撰者)의 사상적 · 철학적 편린들을 많이 담고 있으므로, 그것을 통해 최치원의 철학사상까지도 추론(推論)할 수 있다. 특히 당시 학인(學人)들의 삼교관(三敎觀)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함께 최치원 철학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동인의식(東人意識)과 동방사상(東方思想)을 고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자료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높다.

 

[주]최치원 선생의 문장이 명문이라 하나 한문은 읽을 수 없고.

한글 번역을 보아도 많은 불교 용어에다 작가의 문장 핵심이 드러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이에 본인은 문이라고 하더라고 대구가 많은 한문문장의 특성을 이해하고

정독하기 위해서 글을 토막쳐 대역을 시도해 보았다.

기존의 번역에서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 부분은 이지관 스님의

<역주 역대고승비문,신라편>(가산문고,1993)를 참고하였다.

원문과 번역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은 그대로 두었다.

쪽수가 표시된 것은 최씨문중본의 원문 쪽수로 보면 된다.

 

 

 

원문

http://blog.naver.com/dasomchy?Redirect=Log&logNo=50007351646

 

(봉암사지증대사원문 )

  故曦陽山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銘 (봉암사지증대사원문 ) 常叙曰 五分位[以仁義禮智信 配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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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kydong47/memo/40114541524

 

[공유] (봉암사지증대사원문 )

  故曦陽山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銘 (봉암사지증대사원문 ) 常叙曰 五分位[以仁義禮智信 配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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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jbart/150069827611

 

국보 제315호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문화재청 자료)

           국보 제315호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nbs...

blog.naver.com

 

 

 

http://blog.daum.net/seogwipo/13425091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2007. 10. 19.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입니다. 2007년 10월 19일 문경 봉암사 봉암결사 60주년을 기념하면서 조계종의 사부대중들이 부처님 법대로 진솔하게 수행하겠다며 제2

sangmin-1.tistory.com

 

논문

http://blog.naver.com/bhjang3/140051285817

 

崔致遠의 ‘鳳巖寺智證大師碑文’攷

  崔致遠의 ‘鳳巖寺智證大師碑文’攷    李 九 義 - 상주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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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양산 봉암사 교시 지증대사 적조탑비명 및 서

聞慶 曦陽山 鳳巖寺 智證大師 寂照塔碑銘 

문경 희양산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명

입조하정겸연봉황화등사조청대부 전수병부시랑원서서원학사사자금어대 신최치원이 교지를 받들어 찬술함.

최병헌번역

 

 

常叙曰 五分位

 

[以仁義禮智信 配東西南北中]

 

서문에 말하기를,

오상으로 방위를 나눔에

 

配動方 [東是萬物始生之方故曰 動方]者曰仁

 

동방에 배치되는 것을 仁(인)이라하고

 

 

三敎[儒佛老]立名 顯淨域者曰佛

 

삼교에 명칭을 세움에

정역에 나타난 것을 佛(불)이라 한다.

 

仁心卽佛 

 

佛目能仁[梵語釋迦 華言能仁]  則[音測 法也]也

 

仁心(인심)이 곧 佛(불)이니

불목이 인이 될 수 있는 것이 법칙이다. 

 

導郁夷 [東方] 柔順性源

 

達迦衛[竺國] 慈悲敎海

 

욱이 [東方] 의 유순한 성품의 근원을 인도하여

인도[가위]의 자비스러운 교해에 통하게 하니

 

寔猶石投水 雨聚沙然

 

[以石投水無碍而直下 大而瀑流 不勞而沙聚 言其易也]

 

이는 진실로 돌을 물에 던지고

비가 모래를 모으는 것과 같이 쉬운 것이다. 

 

矧[音申 況也] 東諸侯之外守者

 

莫我大也

 

하물며 동방제후의 나라로

우리와 같이 큰 것이 없으며 

 

而地靈旣好生爲本 風俗亦交讓爲先

 

[東方生長萬物先於他域故云

 

地靈好生 三韓古俗 好讓不爭 行者相逢皆住讓路故云 交讓爲先]

 

지령은 이미 호생을 근본으로 삼고

풍속은 또한 서로 사양하는 것을 먼저 하니

 

熙熙[和樂貌 老子云 衆人熙熙 如享太牢如春登臺]  太平之春

 

隱隱[安心貌 又彷彿貌]  上古之化

 

화락한 태평의 봄이오

은은한 上古(상고)의 교화이다. 

 

加以性參釋種

 

遍頭居寐錦之尊

 

[遍頭 削髮也 寐錦 王號也 眞興王末年祝髮被僧衣 自號法雲 王妃亦效之爲尼 住永興寺]

 

더욱이 성품은 석종에 첨례하니

편두는 금탑의 놓은 지위에 앉아 있고

 

語襲梵音

 

彈舌足[音走]多羅之字

 

[多羅且云貝多羅 卽西域木名 其葉長廣潔白 故書寫經文也]

 

언어는 범음[산스크리트어]을 따르니

혀를 움직이면 곧 다라[다라니]의 글자가 되었다.

 

是乃天彰 [彰 明也 或云 指漢明帝 未詳]

 

西顧

 

海印東流

 

[海印佛之證法也 會玄記 七寶山間 香水海中 閻浮提 有情無情 一切物像炳現其中 故謂之海印]

 

이는 진실로 하늘이 불법을 들어

서쪽 나라를 돌아보고

해인이 동쪽 나라에 유포하니 

 

宜君子之鄕 染法王之道

 

[佛爲萬法之王 故云法王也]

 

日日深 又日深矣

 

마땅히 군자의 나라에

법왕의 도가 감영됨이

나날이 깊어지고

또 나날이 깊어졌다.

 

且自魯紀隕星

 

 

[道安三敎論云 惠光遐照 莊王目覩夜明 註云 春秋云

 

魯莊公七年歲次甲寅四月辛卯夜 恒星不現 星隕如雨

 

卽周之莊王十年也 莊王遂易筮云 西域銅色人出也 所以夜明

 

非中華之灾也 淨名疏云 周時佛興 星隕如雨]

 

또한 노나라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을 기록하였고

 

漢徵佩日

 

[弘明集云 漢明帝永平三年 帝夢金人 項佩圓光 飛行殿庭

 

忻而悅之 詰朝遍問羣臣 此何神耶 通事舍人傳毅曰 臣聞

 

天竺有道者號曰佛也 殆將其神乎

 

帝信爲然 卽遣中郎蔡諳 博士王遵等十八人同往西域 求迎佛法

 

往月支國 遇迦葉摩騰 竺法蘭二梵僧 帝白 

 

畫釋迦像及舍利幷四十二章經 白馬駄之至洛陽

 

乃永平十年 帝大悅 立精舍 號曰白馬寺 以安之也]

 

 

한나라에서 금인(金人)의 목에 일륜(日輪)이 채여 있음을 증거함으로부터

 

像跡則百川含月

 

상적은 곧 백천이 달을 머금은 듯하고

法音則萬籟號風

 

법음은 곧 만뢰가 바람을 부르는 듯하여 

或緝懿縑緗

 

[古文云 學富縑緗 ○ 縑緗淡黃帛 古者無紙 書用竹帛也

 

懿 懿德也 如魯史列子等文 或纂四聖懿德故也]

 

혹은 그 아름다운 덕은 겸상에 엮어지기도 하였고 

或鐫花琬琰

 

[鐫 刻也 琬琰 美玉也 言佛之花容 刻於美玉也]

 

혹은 그 아름다운 말은 완염에 새겨지기도 하였다. 

 

故濫觴洛宅

 

[書云 三江浩浩 其源濫觴 註 濫泛也 觴杯也 謂江出珉山

 

初出之源 可泛一盃而已 凡事之始初云濫觴

 

 

○ 洛宅 召公宅於洛邑 故云洛宅 言佛法始到洛陽故也 又弘明集云

 

周昭王二十四年甲寅夏四月八日 江漢川池 忽然汎漲 山泉大地

 

皆悉動震 五光氣 入貫太微 遍於四方 盡作靑黃色間 王問太史蘇由

 

對曰 有大聖人 生于西方 故現此瑞 一千年後 聲敎及此

 

因刻石 埋南郊祀側 此佛法將來之始應 此應上魯紀句]

 

그러므로 낙택에 남상이 되고

懸鏡秦宮

 

[始皇時 有外國沙門悉利防等十八人 持佛經來 始皇囚防等

 

夜有丈六金身 面如懸鏡 破獄出之 乃驚懼謝焉 此佛法現著之事]之事跡

 

진궁에 거울을 걸어놓은 사적은 

昭昭焉如揭合璧

 

[此明白之意 古詩 日月如合璧 五星如連珠]

 

밝기가 합벽을 걸어 놓은 것과 같으니 

苟非三尺喙

 

[孔子曰 丘願有三尺喙 說盡天下之事也]

 

五色毫

 

[說文云 江淹夢受五色筆 自後文藻日新]

 

진실로 삼척의 혀와 오색의 붓이 아니면 

焉能措辭其間

 

駕[傳也]說于後

 

어찌 능히 그 사이에 문자를 배치하여

후세에 언설을 전하게 할 수 있겠는가.

 

 

就以國觀國

 

考從鄕至鄕

 

[此用道經文 以一國觀一國 以一鄕觀一鄕

○ 舊註云 上國字中國  下國字西國也

 

上鄕字中原也下鄕字東方也言以我國觀他國也]

 

나아가서 나라로써 나라를 보고

고을로부터 고을에 이르게 된 것을 상고하면 

則風傳沙嶮而來

 

[沙卽繩度之流沙也嶮卽傳 傳身之葱嶺也 見三莊傳]

 

불법의 유풍이 유사와 총령을 지나서 중국에 들어오고 

波及海隅[東國]之始

 

그 여파가 해동에 비로소 미쳐왔다. 

昔當東表鼎峙之秋

 

[鼎峙三韓也 卽指三國並立言]

 

옛날 동국이 정립한 때에 당하여 

有百濟蘇塗之儀

 

[三韓古代諸國 各有別邑 建大木縣鈴鼓事鬼神 謂之蘇塗 出魏志東夷傳]

 

백제에는 소도의 의식이 있었으니 

若甘泉金人之祀

 

[魏書佛老志云 武帝元狩中 霍去病 入西域獲渾邪王及金人一軀來 長丈餘

 

帝以爲大神 置甘泉宮 燒香禮拜 此佛道之漸興也]

 

이는 한무제가 감천궁에서 금인(金人)에게 예배하는 것과 같았으며 

 

厥後西晉曇始 始之貊[東夷]

亦攝騰東入

[攝騰 西域僧名 漢明帝時 入中國也]

그 후 서진의 담시가 맥국에 온 것은

가섭 마등이 후한에 들어온 것과 같으며 

 

句驪阿度 度于我

[阿度 新羅訥祗王時墨胡子 自高句麗 禮作窟室處之 後阿度與侍子三人亦來]

고구려의 아도가 신라에 건너온 것은 

 

如康會南行

[吳書 赤烏四年 有康居國大丞相子 姓康 名僧會者 棄俗被緇 以遊化爲任 行至建康 營立茅茨設像行道 限于三七日 甁中乞舍利有驗 吳王權喜 建塔立寺度人]

강희가 남방의 오나라에 간것과 같았으니

 

時迺梁菩薩帝 反同泰一春

이때는 곧 양나라 보살제가

동태사에서 궁으로 돌라온지 일년만이오

 

我法興王 剬律條八載也

[梁書 武帝紀云 大通元年三月辛未 輿駕幸同泰寺 捨身 甲戍還宮 卽新羅法興王十五年也]

우리 법흥황이 율령을 제정한지 팔년만이었다.

 

亦旣海岸植與樂之根

[慈能與樂 悲能拔苦]

또한 이미 동해의 언덕에 여락의 뿌리를 심었고

 

日鄕耀增長之寶

[信能增長智功德也]

해가 뜨는 나라에 증장의 보물을 빛내었으니

 

天融善願 地聳勝因

[海岸 東海之岸 日鄕 日出之鄕 皆指東國也]

하늘은 선원에 합하였고 땅은 승인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

 

爰有中貴 [廣利傳 中貴從廣 註 居中用事之貴人]

捐軀[指異次頓殉敎事]

上仙 [君也] 剔髮

[指眞興王剃髮事]

이에 중귀가 몸을 버리고

상선이 머리를 깍았으며

 

苾蒭 [草名 具五義故比僧 見大法數]

西學

비추는 서쪽으로 중국에 가서 배우고

 

羅漢 [此云殺賊 亦云應供 殺無明賊 應人天供器也]

東遊

나한은 동국에 나왔다.

 

因爾混沌能開

[東國佛敎之初世界]

이로 인하여 혼돈한 상태가 능히 개화되고

 

娑婆[堪忍也]遍化

사바세계가 두루 교화하게 되었으니

 

莫不選山川勝槩

窮土木奇功藻[音早 文飾也]

산천의 좋은 경계를 가려서

토목의 기이한 공역을 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宴坐之宮 燭修行之路

信心泉涌 慧力風揚

연좌의 궁을 화려하게 꾸미고 수행하는 길을 밝혀

신심이 샘물처럼 솟아나고 혜력이 바람처럼 드날리니 

 

果使漂杵

[書 武成云 旣戊午 師渡孟津 癸亥 陣于商郊 俟天休命 甲子昧爽 受率其旅 若林會于牧野 罔有敵于我師 前徒倒戈攻于後徒 以此血流漂杵 一戎衣天下大定云云 註曰 杵或何鹵楯也 昧爽昧冥 爽明 將明未明之時也 若林 詩所謂其會如林也 紂兵若林 然無克我師之志 故紂之前徒倒戈 反攻其在後之徒 自相屠殺 至血流漂杵也]

과연 절구공이가 떠서 

蠲灾

[三國戰爭 血流漂杵 至新羅統合 而時得平和]

재앙을 제거하고 

 

鍵櫜騰慶

[禮記云 武王克商 濟河而西 馬散華山之陽 不復乘 牛散之桃林之野

不復服 車甲釁而藏之府庫 而不復用 倒載干戈包以虎皮 名曰建櫜 註云 建鍵同 鎖閉兵器也]

무기를 자루에 넣고 경사를 칭송하게 되었다. 

 

昔之蕞爾[蕞音萃 小貌 左傳蕞爾同]

三國

옛날의 조그마한 세 나라가

 

今也壯哉一家

[新羅武烈王滅百濟 文武王滅高句麗也]

이제 장하게도 한 집안이 되었다. 

 

雁刹

[西域記 昔有一伽藍僧 依小乘敎 食五淨肉 見羣雁飛翔 戲曰 今日廚供有缺 宜善知時 有雁折翼而下 上座大德曰 此佛菩薩 憐汝等愚昧 示現 因以瘞雁爲塔 故塔謂之雁塔 刹 塔上竿柱也]

雲排

안찰은 구름처럼 벌려져서 

將無隙地

빈땅이 없으며 

鯨桴 [張衡東京賦 發鯨魚 魚鏗牢鍾 註云 海岸有獸 名蒲牢 其聲如鍾 性畏鯨 見鯨輒吼 故如今鑄鍾 像蒲牢爲頭 擊鍾之桴 像鯨故曰鯨桴]

雷振

경부는  천둥처럼 진동하여

 

不遠諸天

제천에 멀지 않으니

 

漸染有餘 幽求不斁

[音亦 厭也 詩云 爲締爲綌服之無斁也]

점염의 여유가 있으며

유구의 싫증이 나지 않았다. 

 

其敎之興也

그 교가 일어남에

 

毘婆娑 [音義云 此云廣解 又云分分說 總有三義 廣說 勝說 異說 卽小乘敎論也]

先至

비바사가 먼저 이르르니 

 

則四郡 [樂浪 臨屯 玄菟 眞蕃]

驅四諦[苦 集 滅 道]之輪

사군에 사제의 볍륜을 달리고

 

摩訶衍[大乘敎也]後來

則一國耀一乘[佛乘]之鏡

마하연의 뒤에 오니

한 나라에 일승의 거울을 빛나게 하였다.

 

然能令義龍雲躍

그리하여 능히 오룡이 구름같이 뛰게 되고

 

律虎風騰

[高僧傳云 陳義淨 能通義學 故曰義龍 隋贊寧 能解律學 故曰律虎也]

율호가 바람같이 오르게 되어

 

洶[音匈 水勢湧貌]

學海之波濤

학해의 파도가 용솟음치고

 

蔚[音鬱 草木盛貌]

戒林之柯葉

계림의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되었다. 

 

道咸融乎無外

도는 밖이 없는 곳까지 모두 융합 하였고

 

情或涉於有中

정은 가운데가 있는 데까지 거의 지나쳤으니

 

抑止水停漪 [漪 水波也 比妄想]

생각컨데 고요한 물이 비단처럼 잔잔하고

 

高山佩旭[旭 初出日 比心印]者

높은 산이 햇빛을 쪼인 듯한 사람이

 

蓋有之矣 世未之知

대개 있었지만

세상에서는 이를 알지 못하였다.

 

洎長慶[唐穆宗年號]初

有僧道義 西泛

장경 초년에 이르러

중 도의가 서방으로 건너가서

 

睹西堂之奧 [西堂 馬祖弟子智藏禪師]

서당의 오지을 보고

 

智光[自心也]侔智藏而還

始語玄契者

지광을 지장으로부터 취하여 돌아와

처음으로 현계를 말하니 

 

縛猿心

護奔北之短

[奔北者 適越北轅之意]

원숭이의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혀

북쪽으로 달아나는 단점을 비호하고

 

矜鷃翼

誚圖南之高

[莊子 斥鷃笑大鵬曰 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翶翔蓬蒿之間 此亦飛之至也 而彼奚適也 此比敎學之謗禪]

메추리가 제 날개를 자랑하여

붕이 남쪽 바다로 떠나려는 대망을 비난하였다.

 

旣醉於誦言

[詩云 誦言如醉]

이미 송언에 취하여

 

競嗤爲魔語

是用韜光廡下

[見無染碑中廡玉註]

다투어 마어라고 비웃음으로

빛을 무하에 감추었고

 

斂迹壺中[並見無染註]

罷思東海東

[東海 通一國東 新羅之東]

자취를 호중에 감추어

신라에 전법할 생각을 그만 두고

 

終遁北山北

[佛陀耶舍 謝秦使曰 脫如見禮羅什 則貧道當遠遁於北山之北]

마침내 북산의 북쪽에 은둔하였으니

 

豈太易之無悶

[文言曰 遯世無悶 不見是而無悶 註云 悶病也 又憂也]

어찌 주역에서 말한 세상을 피해 살아도 근심이 없다는 것과 

 

中庸之不悔者耶

[中庸云 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也]

중용에서 말한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더라도 뉘우침이 없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然秀冬嶺

[陶淵明四時詩曰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也]

芳定林

그러나 겨울 산봉우리에 빼어나고

정림에서 꽃다우매

 

螘慕 [徐無鬼云 羊肉不慕蟻 蟻慕羊肉 羊肉羶也舜有羶行 百姓悅 故三徙成都 至之墟 而十有萬家]

者彌山

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사람이 산에 가득하고

 

鷹化 [變惡爲善 如鷹化爲鳩也 出禮月令]

者出谷

악인이 변화하여 선인이 된 사람이

골짜기에 꽉 차게 되었으니

 

道不何廢

도라는 것은 폐하여질 수 없는 것이요

 

時然後行 [時至後行化也]

때가 되면 저절로 행해지는 것이다.

 

及興德大王纂戎 [纂繼也 戎大也]

흥덕대왕이 왕위를 계승하고

 

宣康太子監撫

[監撫者 太子之職 古詩云 撫軍監國太子事]

선강태자가 감무를 하게 되매

 

去邪毉國 樂善肥家

[去邪云云 善治國家之意]

사도를 제거하여 나라를 바로잡으며

선을 좋아하여 집안을 살찌게 하였다.

 

有洪陟大師

去西堂證心 來南岳休足

이때에 흥척대사가 또한

서당지장에게 심인을 받고

남악에 와서 머무르니

 

鷩冕

[鷩似山雞而小 乃華虫 天子玉冕 公袞冕 侯伯鷩冕 子男毳冕 大夫絺冕 士玄冕 蓋朝祭之冠 上玄下纁 前後有旒各十二 每旒十二玉 玉之色 以朱白蒼黃玄爲次 冕者 略俛之意 前低一寸二分]

왕이

 

陳順風之請

[順風 莊子云 廣成子在崆峒 黃帝問至道 又欲官陰陽遂郡生 廣成子曰 而欲問者物質也 欲官者物殘也 奚足語至道 黃帝退 捐天下築特室 席白茅 間在三月 復往邀之 廣成子南首而臥 黃帝順下風膝行而進 再拜稽首 而問治身之道]

귀의하며 초청을 하였고

 

龍樓

[宮闕也 杜詩 雞鳴問寢龍樓曉]

궁궐에서는

 

慶開霧之期

[開霧云云 師來南岳休足 故以比南山玄豹隱霧澤毛也 霧雨七日而限滿 則開霧而出頭也 大師出山之期 猶玄豹開霧出頭之時也]

흥척의 출산을 경하하였다.

 

顯示密傳 朝凡暮聖

밝게 보이고 비밀히 전하여 주어

아침의 범부가 저녁에 성인이 되니

 

變非蔚也

[繫辭云 聖人虎別 其文炳君子豹別 其文蔚 辨人狸別 其文華 言殊炳明著也 蔚文深密貌 猶爲漸次也]

변함이 점차로 된 것이 아니라

 

興且勃焉

[左傳 臧文仲曰 禹湯罪己 其興也勃焉]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다.

 

試較其宗趣

시험적으로 그 종취를 고찰한다면

 

則修乎修沒修

證乎證沒證

[無修 無證 言虛無也]

수에 수했으나 수하는 것이 아니고

증에 증했으나 증하는 것이 아니며

 

其靜也山立

其動也谷應

그가 고요히 있을 때는 산처럼 서 있으나

그가 움직일때는 산골짜기가 응하니

 

無爲之益 不爭而勝

무위의 이익이

다투지 않고도 이기게 되었다.

 

於是乎 東人方寸地

[人之心四方各一寸也]

靈矣

이에 동국 사람은 마음 속이 신령해졌는지라

 

能以[靜同]利 利海外

不言其所利 大矣哉

[能以云云 用乾卦 能以美利利天下 不言其所利 大矣哉之文也]

능히 정리로써 해외사람을 이롭게 하였는데도

그 이로운 바를 말하지 않으니 위대하도다.

 

爾後觴騫河

[觴 盃也 騫 飛也 盃度和尙 携一木盃渡河]

이후 술잔이 물결을 따르듯이

구도승의 선박이 왕래하고

 

筌融道

[卽道義 明宗旨之意]

無念爾祖

소시의 방편이 진도에 융합하였으니

너의 조상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寔繁有徒

진실로 무리가 많이 있도다.

 

或劍化延津

[言得道中原而不還也 西晉惠帝時 張華 使雷煥掘鼓城獄而得雌雄二劍 各佩其一 華誅 失劍所在 煥死 其子雷華 持劍渡延平津 劍躍入水 使潛水者求之不得 但見雙龍琬蜒而去]

혹은 칼이 연평진에 용으로 변화하여 들어가듯이 하고 [중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고]

 

或珠還合浦

[言得道而還也 後漢孟嘗 爲合浦太守 郡不産穀 海出寶珠 民以爲業 先是太守貪取珠 民不勝其苦 珠徙交趾郡 至是革袪舊弊 珠卽還來]

혹은 구슬이 합포로 다시 돌아오듯이 했다.[중국에 가서 득법하고 돌아왔으니 ]

 

爲巨擘[卽居首指者也]者

可屈指焉

뛰어난 인물이 된 사람이

가히 손가락을 꼽아 셀만하다.

 

西化則靜衆無相

[高僧傳云 大師燒指求法 草衣 食土<凡木根之皮曰土> 居靜衆寺 保唐 無住 亦門人也 玄宗西幸 禮敬殊甚 有唐近朝詞宗柳尙書宗元 按節東川 畫無相 無住 道一 智藏四祖師眞 起四證堂 幕吏詞宗李商隱 爲碑序 大師冠其序 云 大師表海遐封辰韓顯族 始其季妹 夙挺冥機 見金夫 以有躬 授寶刀以敗面 大師得因上行 豁悟迷途 載驗土風<風俗> 東國素稱君子 旋觀沙界 西方始有聖人 銘曰 猗歟靜衆 太隔天尋 遺珪擲組 爐指求心 柔管伐毳 掬土<食土>延陰 蘇<倉廩>含檀鉢 露涉瓊針 其碑在蜀東川 惠義寺南禪院 是也 凡物之長 謂之天尋 謂中原也]

중국에 귀화하여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정중사의 무상,

 

常山慧覺[金雲卿弟也 馬和尙弟子]

禪譜益州金 鎭州金者[禪譜云 黃梅子金生名也]

상산혜각, 익주김, 진주김 등이 이들이고

 

 

東歸則前所叙北山義[道義] 南岳陟[洪陟]

귀국한 사람은 앞에서 말한 설악산의 도의와 지리산의 홍척과

 

 

而降太安徹[惠徹]國師 慧目育 智力聞

그리고 세대가 내려 와서는 태안사의 혜철국사, 혜목산의 현욱, 지력문,

 

 

雙溪照[惠昭] 新興彦[沖彦] 涌巖體 珍丘休[覺休]

쌍계사의 혜소, 신흥언, 용암체, 진구휴,

 

 

雙峯雲[惠雲] 孤山日[品日] 兩朝[景文憲康] 國師 聖住染

[高僧傳云 無染 新羅國傳法師 西堂藏法嗣 道義洪陟惠徹 章敬惲法嗣玄昱覺休 鹽官安法嗣 品日 大梅常法嗣 迦智沖彦 白兆圓法嗣 惠雲 兩朝國師法嗣 景文憲康二王育門體三人 各上字及嗣法 皆未詳 炤之嗣法 亦未詳]

쌍봉산의 도윤, 굴산사의 범일, 양조국사, 성주사의 무염은

 

 

菩提宗 德之厚爲父衆生

보리의 종으로서 덕의 후함은 중생에게 아버지가 되고

 

道之尊爲師王者

도의 높음은 임금에게 스승이 된 사람들이었으니

 

古所謂

逃名名我隨

避聲聲我追者

[綱目云 法眞 名可得聞 身難得見 逃名而名我隨 避聲而聲我隨也]

 

옛말에 이른바

이름을 피해 달아나도 이름이 나를 따르고

명성을 피해 달아나도 명성이 나를 따른다는 것이다.

 

 

故得皆化被恒沙[衆生也 世界也]

蹟傳豐石[浮屠與碑]

그런 까닭으로 교화는 중생세계에 덮이었고

자취는 부도와 비석에 전하였으며

 

 

有令兄弟 宜爾子孫

俾定林標秀於雞林

慧水安流於鰈水

[爾雅云 東方有比目魚 其名鰈 音帖 卽東海也]矣

좋은 형제가 있고 자손이 많이 있어

정림을 계림에 빼어나게 하고

혜수를 접수에 흐르게 하였다.

 

 

別有

 [ 別有云云 不往中國 在此得道之意]

不戶不牖而見大道

[不戶云云 老子云 不出戶知天下 不窺牖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但穿明則爲戶 更以木交飾則爲牖]

별도로 지게문을 나가지 않고 들창을 내다보지 않고도

대도를 보았으며

 

 

不山不海而得上寶

[漢書云 邴原欲遠遊學 請安丘孫崧 崧辭曰 君鄕里鄭君玄 學覽古今 博聞强識 誠學者之師模也 君乃捨之 躡屩千里 所學以鄭爲東家丘耶 原曰 人各有志 所向不同 有登山而採玉者 有入海而探珠者 豈可以登山者不如海之海入海者不如山之高哉 君謂僕以鄭爲東家丘 則君以僕爲西家之愚夫耶 崧謝 愚夫者 家語云 孔子西家有愚夫 不能識孔子爲聖人 乃曰 彼東家丘 吾知之矣]

산에 오르지 않고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도

상보를 얻음이 있었으니

 

 

恬然息意 澹乎忘味

[莊子云 魚相忘於江湖 人相忘於道術 以至於廢枕忘饌]

조용히 뜻을 쉬고 담담히 맛을 잊게 되었다.

 

 

彼岸也不行而至

此土也不嚴而治

저 언덕에 가지 않아도 이르렀고

 이 나라를 엄하게 하지 않아도 다스려졌으니

 

 

七賢

[見道以前凡夫之位 小乘以五停心觀 別相念住 總相念住之三賢位及煖 頂 忍世 第一法之四善根爲七賢 大乘以初發心人 有相行人無相行人 方便行人 習種性人 性種性人 道種性人爲七賢]

孰取譬

칠현에게 누가 비유되겠으며

 

 

十住

[發心 治地 修行 生貴 具足 正心 不退 童眞 法王子 灌頂]

難定位[不歷階位而證大道]者

십주에 지위를 정하기 어려운 사람은

 

 

賢溪山智證大師 其人也

현계산의 지증대사 그 사람이다.

 

 

始大成也

[大成者 取孟子 夫子集大成之語也 成 變也 金石絲竹匏土革木八音 各爲一變 是小成 合八音 以金爲始修理 以玉爲終條理 則是大成也]

처음으로 대성할 적엔

 

發蒙于梵體大德

범체대덕에게서 몽매를 깨우치고

 

稟具于瓊儀律師

경의율사에게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終上達也

[下學而上達大法也]

마지막으로 상달할 적엔

 

探玄于慧隱嚴君

[智證大師法統上之父也]

혜은엄군에게서 현리를 탐구하여

 

授黙于楊孚令子

 [法統上智證之子也 嚴令 尊美之稱]

양부영자에게 묵계를 전수하여 주었다.

 

法胤

[胤音允 說文 子孫相承績也]

 

그 법연은

唐四祖爲五世父

[道信之傍出者]

당나라의 사조 도신을 오세부로 하여

 

東漸[進也 次也]

于海

동쪽으로 점차 바다에 전해져 왔다.

 

遡游

[遡與泝同爾雅云 逆流而上曰泝洄 順流而下曰泝流也]

數之

흐름을 거슬러 이를 헤아리면

 

雙峯[四祖諡號]子法朗 孫愼行

曾孫遵範 玄孫慧隱 來孫大師也

쌍봉사조의 제자는 법랑이요, 손제자는 신행이요,

증손제자는 준범이요, 현손제자는 혜은이요, 말손제자가 대사이다.

 

朗大師 從大毉

[代宗諡四祖曰大醫]

之大證

법랑대사는 대의 사조의 대증에 따랐었는데

 

按杜中書正倫纂銘

[纂與撰同 集述也 卽四祖銘也]

두중서 정륜이 지은 비명을 상고해 보면

 

叙云

遠方奇士 異域高人

無憚嶮途 來至珍所

서에 말하기를, 먼지방의 기사와 이역의 고인이

험난한 길을 꺼리지 아니하고 진소에 이르러

 

 

則掬

[與寶同掬 曲禮云 受珠玉者 以掬 註云 兩手承之 恐墮破也]

歸止

곧 보물을 움켜쥐고 돌아가니

 

非師[法朗]而誰

사가 아니고 누구겠는가?라고 하였다.

 

第知者不言

[道經云 知者不言 言者不知也]

復藏于密

다만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다시 은밀한 데 감추었으니

 

能撢[古探字]秘藏

唯行[愼行]大師

능히 비장한 것을 찾아낸 사람은

오직 신행대사 뿐이었다.

 

然時不利兮 道未亨[通也]也

그러나 때가 이롭지 못하여

도가 통하지 못하였다.

 

乃浮于海

[論語云 子曰 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由]

이에 바다에 떠서 하늘에 알리니

 

聞于天肅宗皇帝 寵賂天什

[什 篇也 天什 卽天子所製詩文也]曰

숙종황제가 몸소 시구를 내리시기를,

 

 

龍兒渡海不憑筏

鳳子沖虛無認月

[龍兒鳳子 指大師 不憑筏無認月 不執方便云]

용이 바다를 건느려면 떼배를 힘입지 아니하고 봉이 하늘을 나르려면 달을 돌보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師以山鳥海龍二句爲對

[山不擇鳥 鳥能擇山

海不擇龍 龍能擇海之語也]

사는 산조와 해룡의 두 글귀로써 대답하였으니

 

有深旨哉

깊은 뜻이 있었다.

 

東還三傳 至大師

畢萬之後 斯驗矣

[左傳 晉卜偃曰 畢萬之後必大 指魏文侯斯 能興宗業 言今大師能復振祖風]

신행이 신라로 돌아와서 삼대를 전하여

대사에게 이르게 되었으니

필만의 후손이 업한다는 말이

이에 증험된 것이다.

 

其世緣 則王都[慶州]人 金姓子

그 세속의 인연은 즉 왕도 사람이요.

김씨 성의 아들이니

 

號道憲 字智詵

父贊壞 母伊氏

호는 도헌이요, 자는 지선이다.

아버지는 찬괴요, 어머니는 이씨이다.

 

 

長慶[唐穆宗年號] 甲辰歲 現乎世

中和[僖宗年號]壬寅曆 歸乎寂

장경 갑진년에 세상에 태어나서

중화 임인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恣坐[夏安居最終之日 謂之姿坐]

也 四十三夏

승려생활이 사십삼년이고

 

歸全也

[曾子臨死 謂門人妻子曰 啓予手足見之 我身托於父母 所生之身 不壞而歸全云云 孝經亦同此說也]

五十九年

전생애가 오십구년이다.

 

其具體則身仞[七尺]餘

面尺所[所餘也]

그 갖추어진 신체는 키가 팔척이 넘고

얼굴이 일척 정도 였으니

 

儀狀魁岸

[江充爲人魁岸 岸者有廉積如崖岸不形]

語言雄亮[亮 明朗也]

의상은 뛰어나고 존엄하며

언어는 웅장하고 통달하였으니

 

眞所謂威而不猛者

[論語贊孔子語]

참으로 이른바 위엄이 있으나

사납지 아니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始孕洎滅

奇蹤秘說

神出鬼沒

筆不可紀

처음에 잉태할 때부터 세상을 떠날때까지

기이한 자취와 신비한 설화는

신출귀몰하여

붓으로는 기록할 수가 없다.

 

今撮其感應聳人耳者 六異

이제 그 감응이 사람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것으로

여섯 가지의 이상한 사실과

 

操履[志操行履]警人心者

六是而分表之

지조와 행실이 사람의 마음을 놀라게 한 것으로

여섯 가지 옳은 일을 간추려서 나누어 표시한다.

 

 

初母夢一巨人告曰

처음에 어머니 꿈에 한 거인이 고하기를,

 

僕昔勝見[毘波尸也]佛 季世 爲桑門[僧也]

“‘나는 옛날에 승견불의 말세에 승려가 되었었는데

 

以謓恚故 久墮龍報

報旣旣[旣 盡也]矣

當爲法孫

성낸 까닭으로 오랫동안 용보에 떨어졌으나,

업보가 이미 끝났으니

마땅히 법손이 될 것이다.

 

故侂[侂與托同]妙緣

願弘慈化

그러므로 묘연에 의탁하여

자비스러운 교화를 홍포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因有娠 幾四百日

이내 임신하여 거의 사백일이 지나서

 

灌佛

[佛誕之日儀 卽浴佛會也]

之旦[四月八日] 誕焉

관불회의 아침에 탄생하였다

 

事驗蟒亭

[高僧傳云 漢安息國沙門安淸 字世高 本世子 當嗣位 讓叔父 出家 聰敏好學 外國典籍無不綜達 旣已遊方徧歷諸國 以漢桓帝建和四年 至洛陽 値靈帝末 關洛擾亂 因附舟 至廬山渡 昔同學達 湖廟神 靈甚 能分明 風途往來之舟 會艤舟 奉牲請福 神降語曰 舟有沙門 可上來 高至 神曰 吾昔與汝 俱出家學道 吾雖好施 性多嗔 故今爲廟神 周回千里 皆吾所管轄 報形極醜 旦夕且死 必入地獄 吾有絹疋幷雜寶物 可爲代吾造塔建寺 使我生善處 高曰 何不出形 神曰 形甚魏異 衆人必懼 高曰但出形 神從帳中出頭 乃大蟒 至高膝邊 高出梵音 贊唄祝願 蟒悲淚如雨 高卽取絹疋寶物 辭別神 神卽過命 暮有一少年 上船跪高前受其祝願 神報曰 得離惡形 生善處己 後人於西山澤中 見一死蟒 頭尾數里 高至預章 建大安寺也]

일은 망정에 증험하였고

 

 

夢符象室

[世尊生也 見相者 相者曰 自古夢見象 則生大聖人也 今兒無乃夢見象而生耶 慈母許之曰 如是云云 佛母摩耶 夢見大聖乘六牙白象 從天而下 降神入胎故 見西域記 見釋氏源流]

꿈은 상실에 부합하여

 

 

使佩韋者益誡

[西門豹性急 佩韋自警]

가죽을 차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경계하게 하고

 

擁毳者[被袈裟而修行之僧也]

精修

가사를 입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밀하게 수도하게 하였으니

 

降生之異一也

탄생의 기이한 것이 첫째이다.

 

 

 

生數夕不嚥

乳[音耨 上聲 又音遘 以手壓取乳而餉也 楚人以爲乳]

之則

號欲嗄 [嗄音愛 嘔逆也] [音忽 所吹起也]

태어난 지 여러 날에 젖을 먹지 않고

젖을 짜서 먹이면

곧 울면서 목이 쉬려고 하였는데

 

有道人 過門誨曰

문득 도인이 문을 지나가다가 깨우쳐 주기를

 

欲兒無聲 忍絶焄腥

[焄 借作葷 辛臭之菜 腥 魚肉也 言乳母不食也]

“‘아이에게 소리를 없이 하고자 하면 훈채와 날고기를 참고 끊으시오하므로

 

母從之 竟無恙

어머니가 그 말에 따랐더니

마침내 아무런 탈이 없게 되어

 

使乳育者加愼

肉食者懷慚

젖으로 양육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삼가게 하고

고기를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품게 하였으니

 

宿習之異二也

숙습의 기이한 것이 둘째이다.

 

 

 

九歲喪父 殆毁滅

[毁形滅性也]

아홉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거의 회멸되게 되었는데

 

有追福僧[主典父濟之僧也]

憐之諭曰

추복승이 이를 불쌍히 여겨 깨우쳐 말하기를,

 

幻軀易滅 

壯志 [出家度生之志]

難成

덧없는 몸은 사라지기가 쉬우나

장한 뜻은 이루기가 어려운 것인데

 

昔佛報恩有大方便

子勉之

옛날 부처님이 그 부모의 은혜를 갚은 큰 방편이 있으니

그대는 이를 힘쓸 것이다고 하였다.

 

因感悟輟哭

白所生[母也] 請歸道

인하여 느끼어 깨달아서 곡을 거두고

어머니에게 아뢰어 입도를 청하니

 

母慈其幼

復念保家無主 確不許

어머니는 그의 어린 것을 사랑하고

다시 집안을 보존할 주인이 없음을 생각하여

확고하게 허락하지 아니하였는데

 

耳踰城故事

[釋氏源流云 悉達太子踰城出家 成佛度生也]

부처님이 출가할 때 성을 넘어간 고사를 듣고

 

則亡去 就學浮石山

곧 도망해 가서 부석산에 나아가 배웠다.

 

忽一日心警坐屢遷

홀연히 어느날 마음이 놀래어 자리를 여러 번 옮겼는데

 

俄聞倚閭[母也]成疾

조금 후에 어머니가 그를 기다려 병이 났다는 말을 듣고

 

遽歸省而病隨愈

곧 돌아가 어머니를 뵈오니

병이 즉시 나았으므로

 

時人方之阮孝緖

[梁武帝時人 家世仕宦 年十四五 通經大旨 十六丁外艱 終喪入鍾山聽經久之 在席驚心而歸家 母果罹疾而合用蔘 躬入終南山 有鹿引指蔘處 采用而母疾愈]

그때 사람들이 그를 완효서에게 비교하였다.

 

居無何[言不多時]

染沈疴[沈疴 痼疾也 卽師染母之疾故也]

얼마 안되어

고질이 전염되어

 

謁毉無效 枚卜之

[杵 箇箇請卜而問之]

의원에 보여도 효험이 없어

여러 점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僉曰 宜宜名隸大神[佛也]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마땅히 이름을 대신에게 예속 시켜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母追惟曩夢

試覆以方袍[袈裟]而泣

어머니는 그 전의 꿈을 생각하여

시험삼아 방포로써 덮고 울면서

 

誓言斯疾若起

乞佛爲子

맹세하여 말하기를,

이 병이 만약 나아서 일어난다면 부처님에게 원하여 아들이 되게 하겠습니다고 하였더니

 

信宿

[左傳 凡師行 一宿爲舍 再宿爲信 過信爲次也]

이틀을 자고 난 후에

 

果大瘳[瘳音秋 愈也]

과연 아주 나았었다.

 

 

仰悟慈親 終成素志

우러러 자친을 깨우쳐서

마침네 본디 뜻을 이루어서

 

 

使舐犢者割愛

[漢書太尉楊彪之子修 爲曹操所殺 操見彪問曰 公何瘦之甚 對曰 愧無日磾先見之明 猶懷老牛舐犢之愛 操爲之改容 注云 金日磾 漢昭帝之臣 其子與宮人戲 日磾見之卽殺其子也]

자식 사랑하기를

늙은 소가 새끼 송아지를 핥듯이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하는 마음을 끊어 버리게 하고

 

 

飮蛇者釋疑

[晉書 樂廣遷河南尹 有親客 久不至 廣問故 答曰 前蒙賜酒 見盃中有蛇影而疾 是以久失問候 時廳掛有角紫弓 廣意弓影如蛇 復置前處 謂客有所見否 客曰如初 乃告所以 客病遂豁然而愈 註云 客杜滿]

술잔 속에 뱀의 그림자를 마신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을 풀게 하였으니

 

孝感之異三也

효도의 감동 시킨 것이 기이한 셋째다.

 

 

 

至十七受具 始就壇

[羯摩戒壇]

십칠세 때에 이르러 구족계를 받고

비로소 강단에 나아갔는데

 

覺袖中光熠熠然

探之得一珠

豈有心而求

[黃帝遊於赤水北 登于崑崙丘 遺其玄珠 使智者索之不得 使離婁索之不得 乃使罔象 索而得之 注云 明眼者 有心故不得 盲眼者 無心故得之也]

소매 속에 신광이 선명함을 깨닫고

이를 더듬어 한 구슬을 얻었으니

어찌 마음을 두고 구한 것이겠는가.

 

乃無脛而至

[會稽典錄 孔融云 珠玉無脛而自至者 人好之也 善言不行而自至者 亦類是矣]

이에 종아리가 없어도 이르게 된 것이니

 

眞六度經所喩矣 [以戒喩珠]

참으로 육도집행에서 깨우친 것이다.

 

使飢嘑者

[楞嚴經云 說食飢夫 蒸沙迷客 比敎學人]

自飽

굶주려 부르짖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배부르게 하고

 

醉偃者

[法華經云 醉臥不識衣內繫珠 比禪學人]

能醒

취해서 넘어진 사람으로 하여금 능히 깨어나게 하였으니

 

勵心之異四也

마음을 힘쓰게 한 것이 기이함이 넷째이다.

 

 

 

坐雨

[卽夏安居 西域之法 一年分爲帆悶寒三際

自二月十六日至 六月十五日 爲熱際

六月十六日 至十月十五日 爲雨際

十月十六日 至二月十五日 爲寒際]

하안거를 마치고

 

 

竟將他適

장차 다른 곳으로 가려 하는데

 

夜夢遍吉[普賢也]菩薩撫頂提耳曰

밤의 꿈에 보현보살이 이마를 어루만지고 귀를 쥐면서 말하기를,

 

 

苦行難行 行之必成

고행은 실행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행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形開

[莊子云 其寐也魂交 其寤也形開]

꿈을 깨니

 

 

㾕然[心驚聳縮貌]

黙篆肌骨[言銘佩也]

가려움증이 생겨

잠잠한 가운데 기골에 도장이 새겨졌다.

 

 

自是不復服繒絮焉

이로부터 다시는 명주옷과 솜옷을 입지 않았으며,

 

修[與線同]之須

[須補破之具]

取必麻楮

노끈과 가는 실의 사용에도

반드시 삼과 닥나무실을 사용하고

 

不穿達履

[詩云 先生如達 達 小羊也 三韻聲彙云 達與 同 達履 羊皮履]

양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지 않았으니

 

矧羽翣[扇也]

毛茵[毛皮褥也]餘用乎

하물며 새깃의 부채와

털로 만든 자리를 사용했겠는가?

 

使縕黂

[縕 麻絮也 黂 麻布也 言著麻絮衣也]

者開眼

솜옷과 난마를 입는 자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고

 

衣蟲者[錦繡衣者]

厚顔[恧怩也]

명주옷을 입는 자로 하여금 낯가죽을 두껍게 하였으니

 

律身之異五也

율신의 기이함이 다섯째이다.

 

 

自綺年[妙年也] 飽老成之德

加瑩戒珠

유년으로부터 노성의 덕을 갖추었고

더욱 계주를 밝히었으니

 

可畏者

[論語云 後生可畏也]

競相從求益

후진들이

다투어 서로 추종하여 배움을 청하게 되었다.

 

大師拒之曰

대사가 이를 거절하여 말하기를,

 

人之大患 好爲人師

[孟子曰 人之大患 在好爲人師 王勉註曰 學問有餘 人資於己 不得已而應之可也 若好爲人師 則自足而不復有進矣 此人之大患也]

“‘사람의 큰 근심은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니

 

强欲惠不惠

[言無惠人之才 而强欲惠之 則大不可也]

억지로 은혜를 베풀고자 하여도

은혜를 베풀 수가 없게 되는 이다.

 

 

其如模不模邪

[模 法也 言其如爲師 而不可爲師 何耶之意也 淮南王草木譜 吳證問曰 何以取木爲義 曰 昔 模木 生周公塚上 其葉春靑夏赤秋白冬黑 以色得其正也 楷木 生孔子塚上 其幹枝疎而不屈 以質得其直也 正與直可爲法 則況在周孔之塚乎]

스승이 되려고 하여도

스승이 될 수 없는데 어찌하겠는가?

 

 

況浮芥海鄕

[所得者小 如浮舟於大海]

하물며 큰 바다에 떠 있는 지푸라기같이

 

自濟未暇

[楞嚴 演若達多迷頭逐影之事]

제 자신도 구제할 여가가 없으니

 

無影逐 爲必笑之態

그림자를 쫓고자 하나

쫓을 수가 없는 것과 같이

반드시 웃음거리의 모양이 될것이다라고 하였다.

 

後山行 有樵叟礙前路曰

그 후에 산을 가는데

나무꾼이 이르러 앞길을 막으면서 말하기를

 

先覺覺後覺

[孟子曰 伊尹曰 天之生斯民也 使先知覺後知 使先覺覺後覺也 予天民之先覺者也 予將以斯道 覺斯民也 非予覺之而誰云云]

선각이 후각을 깨닫게 하는데

 

何須悋空殼[幻身]

어찌 환신을 아낄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就之則無見焉

그에 나간 즉 보이지 않았다.

 

爰媿且悟 不阻來求

이에 부끄럽고 또한 깨달아서

와서 배움을 청하는 사람을 막지 아니하니

 

森竹葦[衆多貌]

于雞籃山水石寺

[卽連山開泰寺 或云 尙州龍興寺 未詳]

계람산 수석사에는 대와 갈대같이 빽빽하게 몰려들었다.

 

俄卜築他所曰

조금 후에 다른 곳에 집을 짖고 말하기를,

 

不繫[孔子曰 吾豈繫匏瓜哉 言周遊天下也]

爲懷

能遷是貴

매어있지 않는 것이 본래의 생각이니 능히 옮겨 가는 것이 귀중한 일이다고 하였다.

 

使佔畢者

[佔音占 初學記云 今之敎學者 呻其佔畢 註 佔 視也 畢 簡也 但諷詠所覘視之簡牘 不能通其蘊奧也 呻 諷吟之聲也]

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三省

[論語曰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註云 傳謂受之於師 習謂熟之於己]

날마다 세번 반성하게 하고

 

營巢者

[禮記云 昔者 先王未有宮室 冬則居塋室 夏則居櫓巢云云]

선실을 짓는 사람으로 하여금

 

九思

[論語云 君子有九思 疑思問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忿思難 見得思義]

아홉 가지를 생각하게 하였으니

 

垂訓之異六也

훈계를 내린 것의 기이함이 여섯째이다.

 

 

 

贈太師景文大王

心融鼎敎[三敎也]

面渴輪工

[大轉法輪之工 指大師]

증태사 경문대왕이

마음으로 삼교에 통하고

대사를 만나 뵙고자 하여

 

遙深爾思

覬俾

[覬 覬覦也 俾 俾倪也 言欲得希幸之貌]

我卽

멀리서 그대의 생각을 깊이 하여 나의 법칙을 도와 주기를 바란다하면서

 

乃寓書曰

이에 서신을 보내기를,

 

伊尹大通

[孟子曰 伊尹曰 何事非君 何使非民 治亦進 亂亦進]

“‘이윤은 대세를 통달하였고

 

宋纖小見

[晉書 宋纖有遠操 不與世俗交遊 太守馬岌造焉 高臺重閣拒不可見 岌嘆曰 名可望而身不可見 德可仰而形不可覩 然後 知先生人中之龍也 乃銘詩於石壁曰 丹岸千尺 靑壁萬尋 奇林鬱鬱 蔚若鄧林 其人如玉 維國之珍 室邇人遠 實勞我心]

송섬은 명성만을 들렸었는데

 

以儒辟釋 自邇陟遠

유도로써 불교에 비유한다면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甸邑

[甸音田 王居五百里內爲甸服 卽五服之一 見禹貢]

巖居

頗有佳所

왕경지바의 암거에도

자못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木可擇矣

[仲尼曰 鳥能擇木 木豈擇鳥耶]

無惜鳳儀

[尙書 蕭韶九成 鳳凰來儀 註 來舞而有容儀也]

새가 나무를 가려 않듯이

봉황이 오는 거동을 아끼지 마시옵소서라 하고

 

妙選近侍中可人

[桓溫過王敦墓曰 可人可人 言稱可之人也]

근시 가운데 가한 사람으로

 

鵠陵

[先王陵號 元聖卜陵白鵠墟 故似仍號焉]

昆孫 

立言爲使

원성왕의 종손인

입언을 선발하여 사신을 삼아

 

旣傳敎已  因攝齊焉

[攝 摳也 齊 衣下縫也 禮 將升堂 兩手摳衣 使去地尺 恐躡之而傾跌失容也 景景褰衣 弟子之禮也]

이에 교지를 전하여

 섭제하게 하였다.

 

 

答曰

修身化人 捨靜奚趣

대사가 대답하기를,

자신을 닦고 남을 교화 시키는데 고요한 곳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鳥能之命

[應擇木語 善爲我辭 幸許安塗中 莊子釣於濮水 楚王使大夫二人往先焉曰 願以竟內累矣 莊子持竿不顧曰 吾聞楚有神龜死已三千歲矣 王巾笥而藏之廟堂之上 此龜者 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 二大夫曰 寧生而曳尾塗中 莊子曰 往矣 吾將曳尾於塗中]

새가 능히 나무를 가려야 한다는 말은

나를 위하여 잘 말하여 준 것이니

 

 

無令在汶上

[論語云 季氏使閔子騫爲費宰 閔子騫曰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言遠去也]

진흙속에 편안히 있게 허락하여 주어 문수 위에 있게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上聞之 益珍重

임금이 이 말을 듣고 더욱 진중하게 여겼다.

 

自是譽四飛於無翼

[戰國策云 衆口所移 無翼而飛]

衆一變於不言

이로부터 명예는 날개가 없이 사방에 전해지고

대중은 말하지 않는 가운데 일체 변해졌다.

 

咸通[唐懿宗年號]五年冬

함통 오년 겨울에

 

端儀[女之官名也]

長翁主 [景文王之姊]

단의장옹주가

 

未亡人爲稱

[禮 夫死 妻隨死 乃夫人之行 未能隨死 故稱未亡人也 左傳云楚令尹子元者 楚文王弟之子 欲蠱惑文王 夫人息嬀 以事爲館於其宮側 振萬<振動萬舞>焉 夫人聞之泣曰 先君以是舞也 習戎備也 今令尹不尋諸仇讎 而於未亡人之側 不亦異乎]

미망인으로 일컬어 졌었는데

 

 

當來佛是歸

敬謂下生[翁主自云下生也]

厚資上供

당래불에 귀의 하여

삼가 하생이라 하고

시사를 후하게 하였다.

 

 

以邑司[翁主所封之地]

所領賢溪山安樂寺

읍사의 관할인 현계산 안락사가

 

富有泉石之美

請爲猿鶴主人

[山林隱居之士與猿鶴爲友之意]

천석의 아름다움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까닭으로

원학의 주인이 되어주기를 청하니

 

 

大師乃告其徒曰

대사는 이에 그 문도에 알리기를,

 

山號賢溪 地殊愚谷

[劉子云 齊桓公 逐鹿入谷中 問一老 此何谷 對曰愚公之谷 以臣名得之]

산의 이름을 현계라 하니 땅은 우곡과 다를 것이며

 

寺名安樂 僧盍住持

從之徙焉

절 이름을 안락이라 하니 승려가 주지하기에 합당할 것이다하고는

이에 따라 옮기었다.

 

居則化矣 使樂山者

[論語曰 仁者樂山 智者樂水]

益靜

거주한즉 교화하여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고요하게 하고

 

擇地者愼思

行藏之是一焉

땅을 가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삼가게 하였으니

나가서 도를 행하고 물러가서 숨는 것의 옳음이 첫째이다.

 

 

 

 

他日告門人曰

어느날 문인에게 고하기를,

 

故韓粲[官名]金公嶷勳[嶷音億]

度我爲僧

報公以佛

고 한찬 김공의훈이 나를 승적에 넣어 중이 되게 하였으니 김공에게 불로써 보답하겠다하고는

 

乃鑄丈六玄金像

傅[塗也]之以銑

[爾雅云 金之絶澤 謂之銑也]

이에 장육현금상을 주조하여

황금으로 발라서

 

 

爰用鎭仁宇[寺也]導冥路

절을 지키고 명로를 인도하는 데 쓰게 하여

 

使行恩者日篤

은혜를 베푸는 자로 하여금 날로 독실하게 하고

 

重義者風從

의를 갚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람을 쫒아 따라오게 하였으니

 

知報[知恩而報也]之是二焉

은혜에 대한 보답을 알게 하는 것의 옳음이 둘째이다.

 

 

 

至八年丁亥

檀越翁主 使茹金[人名]等 持伽藍南畝

[伽藍 此云衆園 卽賢溪伽藍也 南畝者 田地 通云南畝也]

함통 팔년 정해에 이르러

단월옹주가 여금등으로 하여금 가람의 남묘와

 

曁臧獲[奴婢也 男曰臧 女曰獲也]

本籍[文簿]授之

장획의 문서를 가지고 그것을 주게 하여

 

爲壞袍[袈裟]傳舍

[奴隸車馬之所 或云 補縫破衣之舍]

俾永永不易

괴포의 전사로 삼아

영구히 바꿀 수 없게 하니

 

大師因念言

대사가 인하여 생각하여 말하기를,

 

王女資法喜 尙如是矣

왕녀께서 불법을 믿어 숭상하기를 좋아함이 이와 같으니

 

佛孫味禪悅

[華嚴經云 若飯食時 當願衆生禪悅爲食 法喜充滿]

豈徒然乎

불제자로 선열을 맛보는 일이

어찌 헛되이 그렇겠는가.

 

我家匪貧 親黨皆歿

우리 집이 가난하지 않은데

친당이 모두 죽었으니

 

與落路行人之手

寧充門弟子之膓

길가는 사람의 손에 떨어지기 보다는 차라리 문하제자의 배를 채우게 하는 것이 낫겠다하고

 

遂於乾符[僖宗年號]六年

드디어 건부 육년에

 

捨莊[莊 田廬也] 十二區

田五百結隸寺焉

[百卜爲一結 ○ 方俗 以周五弓爲一結 四肘爲弓 一尺八寸爲肘 王荊公詩曰 臥占寬閒五百弓]

장 십이구의

전 오백결을 절에 예속시켰다.

 

飯孰譏囊

[孰譏食蟲之飯囊 著實工夫 則可免此譏 漢書 彌衡曰時輩唯荀或則可與同言 餘人皆酒帒飯囊]

밥은 누가 주머니라고 나무라겠으며

 

粥能銘鼎

[正考父鼎銘云 饘於是 粥於是 以糊予口]

죽은 능히 좋은 솥이어야겠는가?

 

民天

[史記酈生傳云 王者以民爲天而民以食爲天]

是賴

백성이란 먹는 것을 하늘로 삼으니

 

佛土[卽西方淨土也]可期

불토를 가히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雖曰我田 且居王土

비록 말하기를 내 토지라고 하지마는

왕토에 있으니

 

始資疑於王孫韓粲繼宗·

執事侍郎金八元·金咸熙

及正法大統釋玄亮

처음 왕손 한찬 계종과

집사시랑 김팔원 김함희

및 정법대통 석현량에게 질의 하니

 

 

聲九皐  應千里

[聲九皐者 詩云 鶴鳴九皐 聲聞于天  應千里者

周易云 鳴鶴在陰 其子和之 我有好爵 吾與爾縻之

君子居其室出其言 善則千里之外應之]

임금에게 전해져서 허락을 받게 되어

[학이 깊은 유택에서 우니, 소리가 하늘에까지 들린다

천리 밖에 있는 자들도 응한다]

 

 

贈太傅獻康大王[卽景文王之子] [佳之也]

而允[肯也]之

중태부헌강대왕이 자기의 마음으로 남을 살펴서

이를 윤허하여 주었다.

 

 

其年九月 敎南川郡統僧訓弼

[亦金姓也]

그해 구월에 남찬군 승통 훈필에게 교지를 내려

 

標別墅[墅與莊同]

劃正場[以禁標明示寺領]

별서를 표하여

생장을 구획하여 주게 하였다.

 

斯蓋外佐君臣益地

內資父母生天

이것은 대개 밖으로는 군신의 익지를 돕고

안으로는 부모가 하늘에 태어나게 하는데 이바지하며

使續命者

[卽百姓也 南史 劉善明傳 靑川飢荒 善明開倉以救 鄕里多獲全濟 百姓呼其家爲續命田]

興仁

목숨을 잇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을 일으키게 하고

 

賞歌者悛過

[仇池筆硯云 唐裴晉公 召一妓 作半日遊 賞絹五疋 書生有詩云 一曲淸歌一疋絹 佳人猶自意嫌經 不知貧女寒窓下 幾度抛梭織得成]

노래 부르는 이를 상주는 사람으로 하여금 허물을 고치게 하였으니

 

檀捨之是三焉

단월의 희사한 것의 옳음이 셋째이다.

 

 

有居乾慧地[卽初乾慧地 是乾有其慧]者曰沈忠

건혜지에 거하는 사람으로

심충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

 

聞大師刃餘[莊子云 其於游刃 恢恢然猶有餘地]

定慧

대사가 수단은 정혜에 여유가 있고

 

鑑透乾坤

[師之神鑑 通透於天文地理也]

신감은 천문지리를 통달하며

志確曇蘭

[東晉時僧 蓮社高賢傳 慧持傳云 慧持法師 以東間經籍付道泓 西間法典付曇蘭 以泓行業淸敏 蘭神悟天發 並能係軌師蹤故也]

뜻은 소구담과 축법란 처럼 확고하고

 

術精安廩

[南朝陳時僧 續高僧傳 安廩傳云 安廩 性好老莊 早達經史 又善太一之能 幷解孫吳之術]

학술은 도안과 늠보다 정밀하는 말을 듣고

 

禮足已[見禮畢] 白言

예를 갖추어 사뢰어 말하기를,

 

弟子有剩地

在曦陽山腹 鳳巖龍谷

제자가 남은 땅이 희양산복의 봉암용곡에 있는데

 

境駭橫目

[何尙之曰 橫目之俗 不可與言 莊子有云 橫目之民]

幸構禪宮

지경이 괴이하여 사람의 눈을 끄니

선찰을 세우기를 바랍니다고 하였다.

 

徐答曰

吾未能分身 惡用是

이에 대사는 서서히 대답했다.

내가 몸을 나눌 수 없는데 어찌 이를 사용겠습니까?

 

忠請膠固 加以山靈

심충의 청이 확고부동하고

더욱이 산이 신령스럽게 생겨

 

有甲騎爲前騶之異

[騶音鄒 說文 廐御也 月令季春 天子敎于田獵 命僕及七騶咸駕 註 天子馬有六種名 騶一幷總主 爲七騶]

갑기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기이한 형상이었으므로

 

乃錫[錫杖]挺樵蹊而 歷相焉

[說文 歷 推察也 相省視也]

이에 나무꾼이 다니는 길로 지팡이를 짚고 가서

지세를 살피었다.

 

且見山屛四迾

또한 살펴보니 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리었으니

 

則鸑[鸑鷟 禽經曰 紫鳳也]

翅掀[掀音軒 以手高飛也 又高聳貌]

붉은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水帶百圍

則虯[音紏 無角龍]腰偃石

물이 백겹으로 띠처럼 둘리었으니

이무기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였다.

 

旣愕且唶

[愕音岳 驚遽貌 唶音借 鳴也 又歎也]曰

이에 놀라고 또한 탄식하며 말하기를,

 

獲是地也 庸[豈也]非天乎

이 땅을 얻게 된 것은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는가.

 

不爲靑衲[僧也]之居

其作黃巾[賊也]之窟

승려의 거처가 되지 않는다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遂率先於衆 防後爲基

[先於人而作基 以防後慮]

起瓦簷四柱以壓之

마침내 대중에 솔선하여

후환을 방비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서

와첨 사주를 세워서 이를 누르게 하고

 

鑄鐵像二軀以衛之

철불상 두구를 주조하여

이를 호위하게 하였다.

 

至中和 [唐僖宗年號]辛丑年

중화 신축년에 이르러

 

敎遣前安輪寺僧統俊恭

肅正史裴聿文 標定疆域

교를 내려 전 안륜사의 승통 준공과

사정상 배율문을 보내어

강역을 표정케 하고

 

 

艿賜

[艿與芿同 陳根未芟 新草又生 艿 言不改鳳巖山 仍爲鳳巖寺也]

牓爲鳳巖焉

이어 방을 내리어 봉암이라 하였다.

 

及大師往化數年

후에 대사가 가서 교화한 지 수년만에

 

有山甿[甿與氓同]

爲野寇者

산백성으로서 야구가 된 자가 있어

 

始敢拒輪

[莊子曰 螳蜋 怒其臂以當車轍 比初不從師化也]

처음은 감히 화륜에 항거 했으나

 

終能食葚

[詩云 翩彼飛鴞 集于泮林 食我桑葚 懷我好音 憬彼淮夷 來獻其琛 註云 淮夷被魯侯之化 變惡來獻 如飛鴞之食葚變音 比初不從化者 從化爲善也]

마침내 능히 대사의 교화에 쫓아 감화되었으니

 

得非深㪺[㪺音拘 酌也]

定水

預沃魔山之巨力歟

정수를 깊이 따루어

미리 마산에 물을 댄 큰 힘이 아니겠는가.

 

使折臂者

[晉書 羊祜 相墓者 言祜祖墓有帝王氣 祜果墮馬折臂而至三公無子 今言折臂 指上捨地也]

標義

팔을 자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리를 표시하게 하고

 

掘尾者制狂

[伯宅編云 祿山 逆謀日熾 每反入長安 恐有如渠者之 ○唐含元殿前途 詰曲宛轉 如龍尾 此則指野寇 又掘發也 尾終也 吳語 狐埋之 狐掘之 是以無成功 言小賊以埋掘無成功自終也]

용미를 파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심을 제어하게 하였으니

 

開發之是四焉

선심을 개발시킨 것의 옳음이 넷째이다.

 

 

太傅大王 以華風掃弊

[掃夷狄之弊]

태부대왕이 중화의 풍속으로서 폐풍을 일소하고

 

慧海濡枯

불교의 진로로써 마른 땅을 적시어서

 

素欽靈育[北魏高僧玄高之俗名 出梁高僧傳]

之名

평소부터 영육의 이름을 흠앙하고

渴聽法深之論

[通載云 東晉時 竺潛 字法深 興寧二年甲子 詔 講般若經於禁中 乃辭還剡山 支遁寓書 求買沃州小嶺歸隱 潛答曰 欲來當綌 未聞巢由買山而隱也 寧康二年卒 哀帝賜錢十萬建塔 言今王聽法於禪師 如哀帝聽法於法深也]

불교의 강론 듣기를 간절하게 바랐었는데

 

乃注心雞足[指賢溪山]

灑翰鶴頭以徵之曰

이에 계족산에 마음을 기울이어

서한을 보내어 대사를 부르기를

 

外護小緣 念踰三際

內修大惠 幸許一來

밖에서 소연을 도호한 지가 잠깐 삼제가 지났으니 안으로 대혜를 닦으시어 한번 와 주심을 바랍니다고 하였다.

 

大師感動琅函[御書之稱]言及 勝因通世

대사는 왕의 서신에 좋은 인연은 온 세상에 같이 하고

 

同塵率土

[老子云 和其光同其塵 言與塵俗 同一混處之謂也 詩云 溥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此詩 言率土莫非王臣 則奚必我獨賢勞也 [老子云 和其光同其塵 言與塵俗 同一混處之謂也 詩云 溥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此詩 言率土莫非王臣 則奚必我獨賢勞也 此文 言同塵率土 則師亦隨俗不辭賢勞也]

진속은 온 나라에 같이 하자는 말에 미쳐 감동되어

 

懷玉出山

[老子云 聖人被褐懷玉 ○案 懷玉出山 如卞和之懷玉 出自荊山 欲獻王門也]

옥을 품고 산을 나오니

 

轡織迎途

[詩云 六轡如織 言處處車馬 當途爭迎也]

거마가 베 날듯이 길에서 맞이하였다.

 

至足于禪院寺 錫安信宿

引問心于月池宮

선원사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여 편안히 이틀 동안을 쉬게 하고

월지궁에 인도하여 심법을 질문하게 되었다.

 

時屬織蘿不風

溫樹方夜

[綱目云漢長樂宮中有溫室殿 三公入朝 時議政之所也 其宮庭中有樹]

때는 섬라에 바람이 불지 않고

온수에 바야흐로 밤이되었는데

 

適覩金波之影

[杜詩云 金波耿玉繩 金波 月也 玉繩 星也]

端臨玉沼之心[心 中也]

마침 금파의 그림자가

옥소의 복판에 단정히 임한 것을 보고

 

大師俯而覬 仰而告曰

대사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있다가

우러러 보고 말하기를,

 

是卽是[上是水月 下是心也]

餘無所言

이것은 이것이니 그 나머지는 할 말이 없습니다고 하였다.

 

上洗[洗與洒同]然忻契曰

임금은 상쾌한 모양으로 혼연히 계합하여 말하기를,

 

金仙

[唐武宗 改佛號爲大覺金仙]

花目

[佛以靑蓮花目 顧視迦葉 迦葉破顔微笑 故見拈頌拈花]

所傳風流  固協於此

금선 화목의 전해 온 풍류가 진실로 이에 합치됩니다라고 하고

 

遂拜爲忘言師

마침내 배하여 망언사로 삼았다.

 

及出 俾藎臣

[詩 大雅 王之藎臣 註 忠愛之篤 進進無已]

譬旨

대사가 나감에 미쳐 신신으로 하여금 교지를 알려

 

幸宜小停 答曰

잠시 머물러 주기를 청하니 대답하기를,

 

謂牛戴牛 所直無幾

[梁武帝 遣使召陶弘景 弘景畫畫二牛以進 一則戴金籠厭粟豆 一 則無覇獨臥於芳草中 帝曰 此人如此 其可致耶 言若留京 則如戴牛價少]

우대우라고 이르지만 값이 얼마되지 않으며,

 

以鳥養鳥[莊子云 以己養鳥 鳥不飮食 三日而死 詳見無染註]

爲惠不貲[不貲 猶言不少]

새로써 새를 기르면

그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請從此辭 枉之則折

이로써 작별하기를 청하오니 이를 굽히면 부러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上聞之喟然 以韻語歎曰

임금이 이말을 듣고 탄식하여 운어로써 찬탄하기를,

 

挽旣不留 空門鄧侯

[晉書 鄧收 字伯道 爲吳郡太守 除水以外束薪斗米 不食於民 稱疾去職 民至有臥輪 人歌曰 鄧侯挽不留 謝公推不去]

만류하여도 이미 머물지 않으니 공문의 등후로다.

 

 

師是支鶴

[西晉哀帝時 支遁 字道林 人有遺鶴者 乃放之曰 沖天凌雲之物 豈耳目之所玩哉 君子多稱其達]

스님은 바로 지둔의 학이온데

 

吾非趙鷗

[通載云 後趙石勒弟 名虎 字季龍 襲兄之位 徙都鄴城 尤傾心事佛圖澄 朝會引見 侍御史擧ꞈ升殿 太子諸公扶翼而前 主者唱曰大和尙 坐者皆起 勑司空李農 朝夕問候 支遁聞之曰 澄公 其以季龍爲鷗鳥乎○ 鷗鳥者 列子傳云 昔有人無心日坐江邊 鷗鳥聚遊膝下矣 其父見之 語之曰 汝之膝下鷗鳥取來 從其父敎 有心而待鳥 鳥則不來 言澄公以季龍爲鷗而同遊 大師則不與王同遊而入山故也]

나는 조나라의 갈매기가 아니로다라고 하였다.

 

 

乃命十戒弟子 宣敎省副使馮恕行

援送歸山

이에 십계제자 선교성부사 풍서행에게 명하여

대사를 전송하여 산에 돌아가게 하였다.

 

使待ꟙ者離株

[此大師出山 如離株見無染註]

羨魚者學網

[臨淵羨魚 不如退而結網 比辭京入山 居靜修心也]

토끼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무 줄기를 떠나게 하고

물고기를 탐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물 만드는 것을 배우게 하였으니

 

出處之是五焉

나아가서 교화하고 물러가서 도를 닦는 일의 옳음이 다섯째이다.

 

 

在世行 無遠近夷險

대사는 세상에 나가 있을 때에는

멀고 가까움과 험준하고 평탄함을 말할 것 없이

 

未嘗代勞以蹄角[馬牛]

일찍이 말이나 소로써 그 노고를 대신하게 하지 않았으며

 

及還山

산에 돌아감에 미쳐선

 

冰雪梗跋涉

[梗 塞也 草行曰跋 水行曰涉 又行不由蹊隧曰跋涉 今則後也]

빙설이 길을 막으므로

 

乃以栟櫚

[音呂 說文云 梗木也 出安南 性堅 紫紅色 可作床几輪輿等也]

步ꞈ[今之步轎也]寵行

병려나무로 만든 보여를 내려 총행하니

 

謝使者曰

사자에게 사절하여 말하기를,

 

是豈非井大春所云車耶

[後漢 井丹 字大春 常曰 黃帝作車 少昊加牛 大禹加馬 已不可 況代人乎]

이것이 어찌 정대춘의 이른바 인거가 아닌가.

 

顧英君

[顧 顧視也 英君 俗人中英俊者]

所不須

속인 가운데 영준한 사람을 돌아보아도 사용하지 않는 것인데

 

矧形毁者乎

하물며 삭발한 사람으로야 사용하겠는가.

 

然命旣至矣 受之爲濟苦具

그러나 명령이 이미 이르렀으니 그것을 받아서 괴로움을 구제하여 주는 도구로 삼겠다고 하였다.

 

 

及移疾于安樂練若

[練若阿練若之略稱 又云蘭若 乃比丘之修行處 卽寺院也]

후에 병으로 여락난야에 옮겨가서

 

扶錫不能起 始乘之

석장을 짚고도 일어날 수 없게 됨에 미쳐

비로소 이것을 타게 되었다.

 

使病[憂也]病者了空

병을 근심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괴로움을 구제하게 하고

 

賢賢者離執

[病病至離執 病不至處 師因乘輿能至 病豈實乎 是乃勝病濟苦 故云了空 賢賢者 亦得捨却不乘爲是之偏執也]

어진 사람을 경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집을 버리게 하였으니

 

用捨之是六焉

사용하고 버리는 것의 옳음이 여섯째이다.

 

 

至冬抄[末也 十二月也]

旣望之二日[十八日]

겨울 끝달의 기망 후 이일에 이르러

 

趺坐晤言

[晤音吳 鄭箋 對也 蘭亭記 晤言 一室謂相對言也]

之際

가부좌를 하고 않아서 서로 대하여 말할 즈음에

 

泊然[恬靜無爲也]

無常

조용히 입적하였다.

 

嗚呼

星廻上天 月落大海

아아!

별은 하늘로 돌아가고

달은 큰 바다에 떨어졌다.

 

終風[詩註云 終日之風也]吼谷

온종일 바람은 산골짜기에 진동하니

 

則聲咽虎溪

[慧遠入滅 虎溪若咽]

그 소리는 호계가 울부짖는 것 같았고

 

積雪摧松

則色侔鵠樹

[佛入滅 娑羅樹色變 白如鵠 故謂鵠樹也]

적설이 소나무를 꺾으니

빛깔은 학수와 같았다.

 

物感斯極 人悲可量

만물의 느낌도 이같이 극도에 달했는데

사람의 슬픔이야 헤아릴 수 있겠는가!

 

信[再宿]而假殯[猶言草殯]于賢溪

이틀 후에 현계산에 임시로 빈소를 짓고

 

期而遷窆于曦野

기년에 드디어 희양산 아래로 옮겨 장사를 지내었다.

 

太傅王馳毉問疾

降騋營齊

태부대왕이 의원을 보내어 병을 위문하고

말을 내리어 제를 지내게 하니

 

不暇無偏無頗

[洪範註云 偏 不中也 頗 不平也 偏頗好惡 己私之生於心也 是不遵王之義也 言不外假無偏頗 實出於內心之至也]

정치를 고루 보살피는데 여지가 없으면서도

 

能諧有始有卒

[卒 終也 言待師死生一如]

능히 시종이 하나 같았던 것이다.

 

特敎菩薩戒弟子建功鄕[地名]令[官名]金立言

慰勉諸孤[弟子]

임금은 특별히 보살계제자 건공향령 금입언에 명하여

여러 어린 제자들을 위로케 하고

 

賜諡智證禪師 塔號寂照

시호를 지증선사

탑호를 적조라 내리었다.

 

仍許勒石 俾錄狀聞

이어 탑비의 건립을 허락하고

행장을 기록하여 아뢰게 하니

 

門人性蠲·敏休·楊孚·繼徽等

문인 성견,민휴,양부,계휘 등은

 

咸得鳳毛者

[晉謝鳳 有文章 而其子超宗 又有文章 謂之得鳳毛]

斂陳迹以獻

모두 봉미를 얻은 자들로

묵은 사적을 거두어 모아 바쳤다.

 

至乙巳歲

[師 僖宗中和二年壬寅十二月十八日卒 公 僖宗光啓元年乙巳來 師殞後四年來也]

을사년에 이르러

 

有國民媒儒道 嫁帝鄕

[孤雲 年十二入唐 十八登科]

국민 중에서 유도를 매개로하여 황제의 나라에 들어가서

 

而名掛輪中

[月輪桂中 比登科也]

이름을 계적중에 기록하고

 

職攀柱下者

[侍御史 着鐵冠立柱下]

曰崔致遠

관직이 주하사에 등용된 사람이 있어

이름을 최치원이라 하는데

 

捧漢后[天子]龍緘[詔書]

한후의 조서를 받들고

 

齎淮王鵠幣

[桂苑筆耕云 行次山陽 太尉<高騈>寄賜衣緞 令充歸覲 續壽信物 謹以詩謝]

희왕의 의단을 가져 왔으니

 

雖慙鳳擧

頗類鶴歸

[先生自謙言 己之榮貴 雖不足爲鳳擧之比 其去家久而今始歸 則頗與丁氏鶴相似]

비록 봉의 거동에는 부끄럽지만은

자못 학의 돌아감에 비길 만하였다.

 

上命信臣淸信者陶竹陽

授門人狀 賜手敎曰

임금이 총신으로 불교신자인 도죽양에 명하여

문인이 쓴 대사의 행장을 주고 수교를 내리기를,

 

[音樓 絲麻之縷 可經緯者 或云 藍縷弊衣也]

[音曷 織毛爲之 可御寒者 陸佃曰黃黑色]

東師

누갈의 동국 스승이

 

始悲西化[大師]

서방으로 돌아간 것은 비로소 슬프고

 

繡衣[御使 衣繡衣故也]

西使

深喜東還[孤雲]

수의의 서방 사자가

동국으로 돌아온 것은 매우 기쁘다.

 

不朽[指碑文]之爲 有緣而至

영구히 전할 일이

인연이 있어 이르게 된 것이니

 

無恡外孫之作

[漢列女傳云 孝女曹娥 會稽上虞人也其父盰 能絃聲 爲巫祝 桓帝鴻嘉二年五月五日 泝松江濤 迎婆娑神溺死不得屍骸 娥年十四 沿流呼泣 晝夜不絶聲 旬有七日 遂投江而死 三日後 與父屍俱出之 吏爲之立碑云 孝順第一曹家女者 邯鄲淳作其碑文 蔡邕題其陰曰 黃絹幼婦外孫 臼 楊修見卽悟 曹操行三十里知之 歎曰 有知無知 較三十里]

좋은 글짓는 것을 아끼지 말아

 

將酬大士

[指智證禪師 法華文句記 大論稱菩薩爲大士 亦曰開士 又釋門正統 宋神宗宣和元年 詔 改釋氏爲金仙 菩薩爲大士 僧爲德士]

之慈

대사의 자비에 보답하게 하라고 하였다.

 

臣也雖東箭非材 而南冠多幸

[晉 顧象 吳郡人 虞澤 會稽人 並起討蘇峻 時後人贊曰 顧實南冠 虞唯東箭也 註 南冠者文人 東箭者武士]

신이 비록 동방의 비재이지마는

남관의 댜행을 얻게 되었다.

 

方思運斧

[昔 莊子 因送葬 過惠子之基 顧謂從者曰 郢人堊漫其鼻端 若蠅翼 使匠石斲之 匠石運斤成風 聽而斲之 盡其堊而鼻不傷 郢人立不失容 宋元君聞之 召匠石曰 試爲寡人爲之 匠石曰 臣嘗能爲之 然臣之質死矣 吾無以爲對也 比作文之妙]

바야흐로 재주를 부릴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遽値號弓

[言王昇遐也 黃帝鑄鼎於荊山之下 鼎成龍至 帝及羣臣宮女七十二人 乘龍而上天 百姓攀龍鬚 鬚絶 帝墮弓 羣臣百姓 抱弓而號 因名弓爲烏號]

갑자기 헌강왕의 승하하심을 만나게 되었다.

 

況復國重佛書

家藏僧史 法碣相望

禪碑最多

[說文云 方者爲碑 圓者爲碣]

하물며 다시 나라에서는 불서를 소중히 여기고

집에서는 승사를 간수하며 법갈이 서로 바라보고

선비가 가장 많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遍覽色絲[謂妙辭也]

試搜殘錦

두루 절묘한 글을 보고

시험삼아 금송을 찾았다.

 

則見無去無來之說

競把斗量

살펴보건데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다는 말이

다투어 말로 헤아리게 되고

 

不生不滅之譚

動論車載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다는 말이

움직이면 수레로 실을 만하였다.

 

曾無魯史新意

[春秋 乃孔子筆削魯史 則是史外典心之要典 而今於法碣中 不見其意]

일찍이 노사의 신의가 없고

 

或用周公舊章

[孔子修禮記 盡用周公之所撰周禮 言攝取前代章句也]

혹은 주공의 구장을 인용하였다.

 

是知石不能言

[陳腐之文 刻於石面 爲石所慚]

益驗道之云遠

이로써 돌은 능히 말을 못하니

더욱 도의 현묘하고 심원한 것을 증험함을 알겠도다.

 

唯懊[音奧 惱也 又悔恨也]

師化去早[師壬寅化]

臣歸來遲[公乙巳來]

오직 한스러운 것은 대사의 입적한 것이 빨랐고

신의 귀국한 것이 늦은 것이다.

 

靉靆字誰告前因

[法華靈驗傳 秦郡東寺 有沙彌誦法華經 甚通利 到藥草喩品靉靆二字 隨敎隨忘 師苦責之 師夢一僧曰 此沙彌前生 在寺側東村受身 誦法華藥草喩品 白魚食靉靆二字 其經現在其家 往驗之 明旦師就彼家問之 果有法華經一 部 取看果缺二字 兒亡已十七年 果與此沙彌年時胎月相應也]

애체의 글자는 누가 전의 인과인 것을 고하며

 

逍遙義不聞眞訣

[通載云 東晉安帝隆安四年 後秦姚興弘始三年庚子三月庭樹生連理 逍遙園有葱變茝 以表智人應入中國 十二月二十日迎羅什法師 居逍遙園 興以國師禮待之 甚見優寵 資學三千 拔萃有八曰道生 僧肇 道融 僧叡 道恒 僧影 惠觀 惠嚴等 可謂一時之盛 千載光華 興卑萬乘之心 尊三寶之敎 莫不精究 洞其深旨 比什公逍遙園證師月池宮也]

소요유의 뜻은 참다운 비결을 듣지 못하였다.

 

每憂傷手

[相傳云 大匠若無則 小匠恐傷手 不能執斧 言以我腐儒 不敢下手於大師之碑]

매양 손이 상할 것을 근심하고

 

莫悟伸拳

[傳燈錄云 二十五祖奢耶多 自生至長 恆拳左手 見獅子尊者而申之 有一粒珠 衆皆驚異 獅子叙其宿因 而勸出家 今言無緣於佛 莫悟其理]

주먹을 펴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歎時則露往霜來

때를 탄식한즉 이슬이 지나가고 서리가 오니

 

遽涸愁鬢

문득 근심스러운 귀밑이 삐죽 말라졌으며

談道則天高地厚

[莊子云 至人德 若天高地厚也]

도를 말한 즉 하늘처럼 높고 땅처럼 두터우니

 

厪腐頑毫

[左思作三都賦 十稔始成 擲地金聲 今之述作不佳 僅塞腐毫 之責 故云僅腐]

겨우 뻣뻣하여진 붓털을 적실 뿐이었다.

 

將諧汗漫之遊

[淮南子云 盧敖遊北海 見一道士 問曰 夫子何與我爲友 士曰 吾將遊於汗漫之上 乃聳身直入雲中 敖仰視曰 吾比夫子 若壤蟲之於黃鵠也 此比大師於道士 而自比於敖也]

장차 한만한 놀음에 화합하려하여

 

始述崆峒之美

[崆峒山 有廣成子宮 景美不可盡述也 此言述大師之景行]

비로소 공동의 아름다운 자취를 서술한다.

 

 

有門人英爽 來趣受辛

[臼 受辛 字 二字用意有味]

문인 영상이 와서 글을 재촉하였다

 

 

金口是資

[資 依也 后稷廟前有金人三緘其口 蓋愼言之意 言自家資無言而不答也]

금인의 말을 삼가는 교훈을 빌려쓰니

 

石心彌固

[皮日休云 宋廣平爲相 疑其鐵石心腸 不解此軟媚詞 註云 宋璟封廣平公 諡文貞 比不許之尤固]

돌의 마음은 더욱 단단하다.

 

忍踰刮骨

[五代萇從簡 中流矢 命醫刮骨而言笑忍痛 三國志 關雲長事亦同 言忍不作序之甚]

참는 것은 뼈를 긁는 것보다 고통스럽고

 

求甚刻身[求之益甚]

구하는 것은 몸에 새기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影伴八冬

[案 孤雲獨坐燈下 伴自家之影於八冬而作文也 八冬 八年之冬也]

그림자는 팔동에 짝하였고

 

言資三復

[言謂行狀也 論語曰 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 南容一日三復讀之孔子以兄之子妻之]

말은 삼복에 힘입었다.

 

 

抑六異六是之屬辭

생각컨대 여섯 가지의 기이한 일과 여섯가지의 옳은 일의 속사가

 

無媿 賈[賈 買也 見初月註]勇有餘者

고용에 부끄러움 없이 여유가 있는 것은

 

實乃大師內蕩六魔

[與六塵同 色 聲 香 味 觸 法]

실로 대사가 안으로는 육마를 소탕하고

 

外除六蔽

[慳貪 破戒 瞋恚 懈怠 散亂 愚癡]

밖으로는 육폐를 제거하여

 

行苞六度

[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智慧]

행하면 육도를 포괄하고

 

坐證六通

[神足通 天眼通 天耳通 他心通 宿命通漏盡通]

故也

[其苦心勞身 旣至若是 則竟不可不爲屬辭爾]

앉으면 육통을 증험하였기 때문이다.

 

事譬採花

[然記事也 如蜂之採花 但取其香不擇其味]

일은 비유하면 꽃을 따는 것 같고

 

文難削藁

 [後魏李季白上書切諫 卽消其藁 而今則登石 難於消也]

글은 초고를 소각하는 것보다 어렵다.

 

遂同榛楛勿翦

[陸機賦云 彼榛楛之勿剪兮 亦蒙榮於集翠 註云 庸文雜於麗句 如榛楛之同翠於松柏之下 善惡雖殊 同歸于美 喩自家之庸文 蒙榮於大師之美行]

드디어 진호를 자르지 않는 것과

 

有慙糠粍在前 [習鑿齒 與道安法師周遊 安先去 齒曰 簸之揚之糠粍在前 安曰 淘之汰之沙石在後]

강비가 앞에 있는 것이 부끄럽다.

 

跡追蘭殿之遊

[梁武帝 與達摩共遊蘭殿 卽王之正殿也]

자취는 난전의 노는 것을 좇았으니

 

誰不仰月池佳對

[月池宮說心 爲忘言師也]

누가 월지궁의 아름다운 대면을 사모하지 않을 것이며

 

偈效柏梁之作

[漢武帝作柏梁臺 命盧多遜作七字詩 七言始於此五言始於蘇武河陽詩]

게는 백량대의 시를 본받았으니

 

庶幾騰日域[東方]高譚

바라건대 일역의 고담으로 전하리라.

 

 

其詞曰

그 사에 이르기를,

 

麟聖依仁乃據德

[孔子未生時 有麒麟吐玉書於闕里人家曰 水精之子 繼衰周而素王天下 孔母徵在 以繡紱而泣 絶春秋之筆]

인성은 인에 의지하고 덕에 의거하였고

 

鹿仙知白能守黑

[敦煌實錄云 老子父 姓韓 名虔 夜夢日精敷野而仙人駕鹿入室

與上洋朱氏特猪婢子 合孕而生故曰鹿仙]

녹선은 백을 알고 흑을 지키었다.

 

二敎徒稱天下式

이교는 부질없이 천하의 격식이라고만 일컫고

 

螺髻眞人難确力

[佛頭髮如螺形 故謂佛螺髻眞人也 确力 競勝負也]

나계진인과는 힘을 겨루기 어려웠다.

 

十萬里外鏡西域

[成光子曰 自長安至中印度境五萬八千里 西至那拘遮國五萬八千里]

십만리 밖에서는 서역의 거울이 되었고

 

一千年後燭東國

[見上文洛宅註]

일천년 뒤에는 동국의 촛불이 되었다.

 

雞林地在鼇山側

[鼇山者 列子 湯問云 渤海之東 有大壑焉 其中有五山 而五山之根 無所連著 常隨波上下往還 帝恐流于西極 使巨鰲十五擧首戴之 五山始峙]

계림지경은 금오산 곁에 있으며

 

仙儒自古多奇特

선과 유에 예로부터 기특함이 많았다.

 

可憐羲仲不曠職

[羲和 堯時主四時之官 賓日餞日也]

거룩할손 희중의 직책을 비우지 않았는데

 

更迎佛日辨空色

다시금 불일을 맞아 공과 색을 분별하였네.

 

敎門從此分階

[三輔黃圖云 未央殿前左 右平 註 天子殿高九尺 階爲九級 中分左右 有齒 人行之 右則平之 平者 以文磚相亞次 令輦車得上也 音戚 階璣也]

교문은 이로부터 각 파로 갈렸으나

 

言路因之理溝洫

[洫音革 田間水道 卽深廣 八尺曰洫 深廣四尺曰溝]

법론은 고루 퍼져 인심을 다스렸다.

 

身依ꟙ窟心難息

[ꟙ窟 喩隱者之居處]

몸은 퇴굴에 의지했으나 마음은 편안키 어렵고

 

足躡羊歧眼還惑

[羊腸山 有九曲險路 上四句言敎路多端]

발자취는 양기에 다달으니 눈이 도로 현혹되었다.

 

法海安流眞叵測

법해는 어디로 흐르는가 진실로 측양하기 어려운데

 

心傳眼訣苞眞極

마음으로 전하고 눈으로 변론함이 진리의 극치를 포괄하였도다. 

 

得之得類罔象得

[春池失珠 覓之不後 罔象無心而得之 出莊子]

얻었으매 얻음이 망상의 얻음 같고 

 

黙之黙異寒蟬黙

[蟬之不鳴者雄也 不鳴是黙 大師則具說 故異於常黙]

말이 없으매 말없음이 한선의 울지 않음과는 다르다. 

 

北山義與南岳陟

垂鵠翅與展鵬翼

[鵠則一擧飛千里 鵬則一擧九萬里 比遊中原]

북산의 도의는 홍곡의 쪽지를 쳐뜨렸고

남악의 홍척은 대붕의 나래를 펼쳤구나. 

 

海外時來道難抑

遠派禪河無雍塞

해외에서 돌아오매 도는 꺽기 어려워서

멀리 뻗은 선의 흐름이 막힘이 없었구나. 

 

蓬托麻中能自直

[寶鑑云 蓬生麻中不扶而自直]

다복쑥은 삼대에 의지하매 능히 스스로 곧았으며 

 

珠探衣內休傍貸

[衣內 卽法華 親友係珠衣內 其人醉不知 後更逢親友 始知其珠不從外得 貸音惕 借也]

구슬을 옷안에서 찾으니 옆으로 구할 것이 없었다.

 

 

湛若賢溪善知識 十二因緣非虛飾

[六是六異也]

담담하기 현계의 선지식은

십이인연이 허식이 아니었다. 

 

何用攀絚兼拊杙

[攀絚 渡流沙之事 拊杙 越葱嶺之事 言在此而得道]

무엇하려 드림줄 더위잡고 말뚝에 매어달릴 것이며 

 

何用砥筆及含墨

[言不假文字而得道]

어찌하여 붓끝을 물에 빨고 먹물을 먹일 것인가. 

 

彼或遠學來匍匐[指上義與陟也]

我能靜坐降魔賊[指大師]

저는 간혹 멀리 배워 고생으로 돌아왔으나

나는 능히 고요히 않아 마적을 물리쳤네. 

 

莫把意樹誤栽植

莫把情田枉稼穡

의수를 함부로 심지 말 것이며

정전을 부질없이 가꾸지 말 것이다. 

 

莫把恒沙論萬億

항사같이 많은 수행의 지경공덕을 논하지 말 것이며 

 

莫把孤雲定南北

[此四句 戒門人之辭 初二句 戒空守黙之痴禪 虛栽意樹枉稼情田 次二句 戒參愚僧空論功德虛行南北者]

고운 같은 떠돌이 자취의 남북정처를 말할 것 없다.

 

德馨四遠聞薝蔔

[書云 黍稷非馨 唯德是馨 薝蔔 桅子花也]

덕은 사해에 퍼지매 담복처럼 향기롭고 

 

惠化一方安社稷

[土穀之神 有德者 配食焉 共工氏之子句龍氏 食於社 厲山氏之子柱 食於稷 乃王者崇奉神明 以報天地之功用 是國家安危所在之所]

지혜는 일방의 교화하매 사직이 평안했다. 

 

面奉天花飄縷

[天花 御札也 縷者 師之行狀也 卽出入宮之淸儀也]

몸소 천화를 받들으매 가사를 펄적였고 

 

心憑水月呈禪拭

[拭音式 以巾拔垢也 卽呈禪門拭心之言也上句 入王城時事 此句 答王問心之事也]

마음은 수월에 부쳤으매 선식을 바쳤구나. 

 

寯嗣佳綿誰入棘

腐儒玄杖慙摘埴

[盲者以杖探路之狀也 玄杖 筆也 言以儒記佛 如盲人之不知去路]

연면한 행록은 형극처럼 복잡하니

부유의 무식한 붓은 갈길은 못잡겠네 

 

跡耀寶幢名可勒

[寶幢 指塔也]

자취가 보당에 광채가 나니 이름을 가히 새길만 한데 

 

才輸錦頌文難織

[輸 負也]

내 재주 금송에 뒤졌으매 글을 짜내기 어렵구나.

 

 

 

囂腹欲飫禪悅食

[囂腹 鳴腹也 禪悅食 六度經云 以禪悅爲食 以智慧爲劍

此以碑文爲食也]

주린 창자로 선열의 공양에 배부르고자

 

 

來向山中看篆刻

산중에 와서 전자의 새김질을 보살피도다.

 

 

분황사 석 혜강이 글씨를 쓰고 아울러 글자를 새김 세 팔십삼

원주대덕 능선 통준 오유나 등 현일 장해 명선

 

단월선갈 서0대장군착자금어대 소파앙질미가은현장군 희필

당현0인신치000우덕명

용덕사년 세차갑신 유월 일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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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사산비명(四山碑銘)/ 격황소서(檄黃巢書) · 雙女墳傳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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