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천하명문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한문으로 읽기엔 껄꺼럽고, 번역으로 읽어도 호흡의 행간 처리가 어려워 난해하긴 마찬가지다. 한양대 정민 교수가 자신의 홈피에 <연암읽기>를 올려 세간의 호평을 받고 있다. 원문과 번역문을 대역으로 읽으면 그 진수가 잘 드러날 것 같아 한문공부 삼아 한 번 시도해 본다.

이 글은 7월8일 일기에 정민 교수가 제목을 붙이고 감상을 적은 글이다.

http://jungmin.hanyang.ac.kr/

요동벌의 한 울음

好哭場論

初八日甲申晴.

초팔일 갑신 맑음.

與正使同轎, 渡三流河, 朝飯於冷井.

정사正使와 가마를 같이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行十餘里, 轉出一派山脚, 泰卜忽鞠躬, 趨過馬首, 伏地高聲曰: “白塔現身謁矣.”

십여리를 가서 한 줄기 산 자락을 돌아 나오자, 태복泰卜이가 갑자기 몸을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말 머리를 지나더니 땅에 엎디어 큰 소리로 말한다.

“백탑白塔 현신現身을 아뢰오.”

泰卜者鄭進士馬頭也.

태복이는 정진사鄭進士의 말구종꾼이다.

山脚猶遮, 不見白塔.

산 자락이 아직도 가리고 있어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趣鞭行不數十步, 纔脫山脚, 眼光勒勒, 忽有一團黑毬七升八落.

채찍질로 서둘러 수십 보도 못가서 겨우 산 자락을 벗어나자, 눈빛이 아슴아슴해지면서 갑자기 한 무리의 검은 공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吾今日始知人生本無依附, 只得頂天踏地而行矣.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인간이란 것이 본시 아무데도 기대일 곳 없이 단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서야 걸어다닐 수 있음을 알았다.

立馬四顧, 不覺擧手加額曰: “好哭場! 可以哭矣.”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서 말하였다.

“좋은 울음터로다. 울만 하구나.”

鄭進士曰: “遇此天地間大眼界, 忽復思哭, 何也?”

정진사가 말했다.

“이런 하늘과 땅 사이의 큰 안계眼界를 만나서 갑자기 다시금 울기를 생각함은 어찌된 것이요?”

余曰: “唯唯否否.

내가 말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오.

千古英雄善泣, 美人多淚. 然不過數行無聲眼水, 轉落襟前.

천고에 영웅은 울기를 잘하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하나,

몇 줄 소리 없는 눈물이 옷 소매로 굴러 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네.

未聞聲滿天地, 若出金石.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 마치 금석金石에서 나오는 것 같은 울음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네.

人但知七情之中, 惟哀發哭, 不知七情都可以哭.

사람들은 단지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퍼야 울음이 나오는 줄 알 뿐

칠정이 모두 울게 할 수 있는 줄은 모르거든.

喜極則可以哭矣, 怒極則可以哭矣,

기쁨이 지극하면 울 수가 있고, 분노가 사무쳐도 울 수가 있네.

樂極則可以哭矣, 愛極則可以哭矣,

즐거움이 넘쳐도 울 수가 있고, 사랑함이 지극해도 울 수가 있지.

惡極則可以哭矣, 欲極則可以哭矣.

미워함이 극에 달해도 울 수가 있고, 욕심이 가득해도 울 수가 있다네.

宣暢壹鬱, 莫疾於聲, 哭在天地, 可比雷霆.

가슴 속에 답답한 것을 풀어버림은 소리보다 더 빠른 것이 없거니와,

울음은 천지에 있어서 우레와 천둥에 견줄만 하다 하겠소.

至情所發, 發能中理, 與笑何異?

지극한 정이 펴는 바인지라

펴면 능히 이치에 맞게 되니, 웃음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리오?

人生情會, 未嘗經此極至之處, 而巧排七情, 配哀以哭.

사람의 정이란 것이 일찍이 이러한 지극한 경지는 겪어보지 못하고서,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안배하였다네.

由是死喪之際, 始乃勉强叫喚喉苦等字.

그래서 죽어 초상을 치를 때나

비로소 억지로 목청을 쥐어짜 ‘아이고’ 등의 말을 부르짖곤 하지.

而眞個七情所感, 至聲眞音, 按住忍抑, 蘊鬱於天地之間, 而莫之敢宣也.

그러나 진정으로 칠정이 느끼는 바 지극하고 참된 소리는 참고 눌러 하늘과 땅 사이에 쌓이고 막혀서 감히 펼치지 못하게 되네.

彼賈生者, 未得其場, 忍住不耐, 忽向宣室一聲長號, 安得無致人驚怪哉?

저 가생賈生이란 자는 그 울 곳을 얻지 못해 참고 참다 견디지 못해

갑자기 선실宣室을 향하여 큰 소리로 길게 외치니, 어찌 사람들이 놀라 괴이히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소.”

鄭曰: “今此哭場, 如彼其廣, 吾亦當從君一慟, 未知所哭. 求之七情所感, 何居?”

정진사가 말했다.

“이제 이 울음터가 넓기가 저와 같으니, 나 또한 마땅히 그대를 좇아 한 번 크게 울려 하나, 우는 까닭을 칠정이 느끼는 바에서 구한다면 어디에 속할지 모르겠구려.”

余曰: “問之赤子. 赤子初生, 所感何情?

내가 말했다.

“갓난아기에게 물어 보시게. 갓난아기가 갓 태어나 느끼는 바가 무슨 정인가를 말이오.

初見日月, 次見父母, 親戚滿前, 莫不歡悅.

처음에는 해와 달을 보고, 그 다음엔 부모를 보며,

친척들이 앞에 가득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오.

如此喜樂, 至老無雙, 理無哀怒, 情應樂笑, 乃反無限啼叫, 忿恨弸中.

이같이 기쁘고 즐거운 일은 늙도록 다시는 없을 터이니 슬퍼하거나 성낼 까닭은 없고 그 정은 마땅히 즐거워 웃어야 할 터인데도 도리어 무한히 울부짖는 것은 분노와 한스러움이 가슴 속에 가득차 있음이다.

將謂人生神聖愚凡, 一例崩殂,

이를 두고 장차 사람이란 거룩하거나 어리석거나 간에 한결같이 죽게 마련이고,

中間尤咎, 患憂百端, 兒悔其生, 先自哭弔.

그 중간에 커서는 남을 허물하며 온갖 근심 속에 살아가는지라

갓난아기가 그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스스로를 조상하여 곡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단 말이지.

此大非赤子本情.

그러나 이는 갓난아기의 본 마음이 절대로 아닐 것일세.

兒胞居胎處, 蒙冥沌塞, 纏糾逼窄,

一朝迸出寥廓, 展手伸脚, 心意空闊, 如何不發出眞聲盡情一洩哉?

아이가 태 속에 있을 때는 캄캄하고 막힌데다 에워싸여 답답하다가,

하루 아침에 넓은 곳으로 빠져 나와 손과 발을 주욱 펼 수 있고

마음이 시원스레 환하게 되니 어찌 참된 소리로 정을 다해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겠소?

故當法嬰兒, 聲無假做.

그런 까닭에 마땅히 어린아이를 본받아야만 소리를 거짓으로 지음이 없을 것일세.

登毗盧絶頂, 望見東海, 可作一場, 行長淵金沙, 可作一場.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는 것이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고, 황해도 장연長淵의 금사산金沙山이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오.

今臨遼野, 自此至山海關一千二百里, 四面都無一點山.

乾端坤倪, 如黏膠線縫, 古雨今雲, 只是蒼蒼, 可作一場.”

이제 요동벌에 임하매, 여기서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일천 이백 리 길에 사방에는 모두 한 점의 산도 없어 하늘가와 땅 끝은 마치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 놓은 것만 같아 해묵은 비와 지금 구름이 다만 창창할 뿐이니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오.”

亭午極熱.

한낮은 너무나 더웠다.

趣馬, 歷高麗叢阿彌庄, 分路.

말을 재촉하여 고려총高麗叢과 아미장阿彌庄을 지나 길을 나누었다.

與趙主簿達東及卞君來源鄭進士李傔鶴齡, 入舊遼陽,

其繁華富麗, 十倍鳳城. 別有遼東記.

주부主簿 조달동趙達東 및 변래원卞來源, 정진사鄭進士, 하인 이학령李鶴齡과 더불어 구요동舊遼陽에 들어가니, 그 번화하고 장려함은 봉황성鳳凰城에 열 배나 된다.

별도로 〈요동기遼東記〉가 있다.

이번에 읽으려는 〈호곡장好哭場論〉은 《열하일기》의 한 부분으로, 압록강을 건너 드넓은 요동벌과 상면하는 감격을 적은 글이다. 본래 제목이 없으나 선학先學의 명명命名을 따랐다.

1939년 경성제국대학 대륙문화연구회가 북경과 열하 일대를 답사하고 펴낸 보고서, 《북경北京․열하熱河の사적관견史的管見》에서 결론 대신 이 글을 적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문장이다.

새벽 먼동이 트기 전 출발한 행차는 아침부터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 이르러서야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십 여 리를 가서 산 기슭을 돌아나오려는데, 중국 길에 익숙한 하인 녀석이 갑자기 종종걸음을 하고 말 앞으로 가더니 머리를 조아리며, “백탑 현신이요!”

하는 것이다. 이제 곧 백탑이 눈 앞에 그 장대한 자태를 드러내 보이리란 뜻이다.

그러나 정작 백탑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진다. 말을 채찍질하는 수고를 많이 할 것도 없이 수십보를 지나자 그만 눈 앞이 아찔해진다. 망망한 시계視界, 눈 끝간데를 모르게 펼쳐진 아득한 벌판, 그리고 지평선. 백리의 넓은 벌도 보기 힘든 조선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광경이다. 그냥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백탑은 그 벌판 저편에 홀로 우뚝 서 있다. 내 눈에는 마치 검은 공이 허공 중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처럼만 보인다.

홍대용洪大容이 자신의 《연기燕記》에서 “하늘과 벌판은 서로 이어져 아마득히 드넓다. 오직 요양遼陽의 백탑만이 우뚝 자욱한 구름 가운데 서 있으니 北行에 으뜸가는 장관”이라고 적은 곳이다.

이덕무도 《입연기入燕記》에서 “큰 벌판은 평평하여 눈 끝 간 데까지 가이 없고, 일행의 인마人馬는 마치 개미 떼가 땅을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고 적고 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아무데도 의지할 곳 없이 그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밟고서야 걸어갈 수 있는 너무도 미약한 존재로구나. 통쾌하게 뚫린 시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 넓은 요동벌과 상면한 감격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 참으로 훌륭한 울음터로다.” 연암의 제일성은 이렇듯 뚱딴지 같다. 그리고는 예의 도도한 궤변이 이어진다. 울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린아이가 갓 태어나 내지르는 고고한 울음이 있고, 천고 영웅이 비분강개에 젖어 울부짖는 울음이 있다. 고개를 숙인 미인의 옷섶으로 뚝뚝 눈물만 떨어지는 말없는 울음도 있다. 그러나 마치 쇠나 돌을 두드려 나오는듯한, 천지에 꽉 차서 듣는 이를 압도하는 그런 울음은 아직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울음은 슬픔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기쁨과 분노, 즐거움, 그리고 사랑과 미움과 욕심 때문에도 인간은 운다. 가슴 속에 가득 차 있는 답답한 응어리를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데는 울음만큼 빠른 것이 없다. 그것은 마치 우레와 번개처럼 즉각적이다. 지극한 정리情理에서 나오는 울음은 주체할 수 없어 터져나오는 웃음처럼 거짓이 없다.

그 울음은 그닥 슬프지도 않으면서 짐짓 목청으로만 쥐어짜는 초상집의 곡哭 소리와는 다르다. 가슴으로 느끼는 진정眞情을 견디다 못해 내지르게 되면 그것은 마치 금석金石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지성진음至聲眞音이 되어 듣는 이를 압도하리라.

한나라 때 가의賈誼는 젊은 그의 능력을 시기한 신하들의 모함으로 뜻을 펴보지 못한 채 쫓겨나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뒤늦게 다시 임금의 부름을 받은 그는 그간 그 낙담의 시간 속에서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말들을 마치 포효하며 울부짖듯 거침 없이 토해내었다. 그때 그의 목소리는 마치 금석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지성진음至聲眞音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모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으리라.

아, 여보게 정진사! 비좁은 조선 땅에서 숨막히듯 답답하게만 살다가 이 드넓은 요동벌로 통쾌하게 나서려니, 나는 그만 한바탕 목을 놓아 울고만 싶네 그려. 마치 그 옛날 가의賈誼의 그 통곡처럼 나도 내 폐부 깊은 곳에서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오는, 금석이 광광 울리는듯한 그런 울음을 울고 싶네 그려.

정진사는 되묻는다. 자네의 말이 그와 같으니, 나도 자네와 함께 한바탕 시원스런 울음을 터뜨려 보게 싶네. 그러나 나는 아직 모르겠네. 자네의 울음은 그간의 협소한 나를 돌아보는 연민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농조득탈籠鳥得脫의 통쾌함에서 나온 것인가? 기쁨에서인가? 그도 아니면 분노에서이던가?

자네, 저 갓난아이에게 물어 보게. 저가 갓 태어나 고고한 울음을 터뜨릴 때, 그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말일세. 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말하곤 하지. 아이가 갓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그가 앞으로 지고 가야할 인생의 고통을 생각할 때에 하도 기가 막혀서 우는 것이라고 말일세.

그러나 자네 한번 생각해 보게. 태중에서 손과 발을 마음껏 펴 볼 수도 없고, 광명한 세상을 바라다 볼 수도 없이 답답하게 열 달을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환한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오고, 손과 발에 더 이상 아무 걸리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갓난아기가 느꼈을 통쾌함을 말일세. 그 통쾌함이 한꺼번에 소리가 되어 터져나온 것이 바로 그 울음일 것이네.

갑갑한 조선 땅에서 나는 지난 몇 십 년을 답답하게 살아왔네. 色目으로 갈리고 당파로 나뉘어 싸움질만 해대는 나라,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도 그저 제 한몸의 보신保身과 영달에만 급급할 뿐인 벼슬아치들, 학문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리 아닌 출세를 위한 방편으로만 여기는 지식인들, 손발을 마음껏 펴볼 수도 없게 욱죄는 제도와 이념, 한치 앞을 내다 볼 수조차 없는 암담한 시계視界, 이런 것들에 둘러싸여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네.

그런데 이제 그 복닥대며 아웅다웅하던 협소한 조선 땅을 벗어나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인 이 요동벌 앞에 서니, 나는 저 갓난아이의 통쾌한 울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란 말일세.

이제 이곳부터 산해관까지 일천 이백리의 길은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어, 보이느니 지평선 뿐이요, 아득한 옛날의 그 비는 지금도 내리고, 그 구름이 지금도 창창히 떠가고 있지 않는가?

하늘가와 땅 끝은 마치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 놓은 것만 같을 것이란 말일세.

이 광막한 벌판을 지나며 나는 내 존재의 미약함과, 내 안목의 협소함과, 살아온 날들의 부끄러움을 울어볼 참일세. 새로운 문명 세계를 만나는 설레임과 어제의 나를 과감히 버리는 두근거림을 울어볼 참일세. 그 뼈저린 자각을 울어볼 참일세.

《연암집》에는 이 요동벌에서의 도저한 감회를 노래한 시 한수가 실려 있다.

遼野何時盡 一旬不見山

曉星飛馬首 朝日出田間

요동벌 그 언제나 끝이 나려나

열흘이나 산이라곤 뵈이질 않네.

새벽 별 말 머리로 날리더니만

아침 해 밭 사이서 떠올라오네.

제목은 〈요야효행遼野曉行〉이다.

열흘을 가도록 요동벌은 단지 지평선만을 보여줄 뿐이다. 가도 가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벌판, 크게 지르는 소리는 메아리만 남기고 지평선 끝으로 사라진다.

말 머리 위론 새벽 별이 떨어지고, 밭두둑 너머로 아침 해가 누리를 비추며 떠오른다. 物象의 모습이 그 햇빛에 하나 둘씩 제 모습을 드러낸다. 아! 대지 위의 내 모습은 너무도 미소微小하구나.

한편 연암은 글의 마지막에서 이 밖에 조선 땅에서 한 바탕 울음을 울만한 곳을 두 군데 소개한다.

하나는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볼 때이고, 다른 하나는 황해도 장연長淵  바닷가 금사산金沙山이 그것이다.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서 동해를 바라볼 때의 흥취는 역시 요동벌과 마주 선 것 이상의 감격을 부르기에 충분하겠으되, 장연 금사산의 경우는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따로 읽어야 할 한 편의 글이 있다.

梅宕必發狂疾, 君知之乎?

매탕梅宕 이덕무李德懋가 필시 미친 병이 난 듯 한데 그대는 이를 아는가?

其在長淵, 常登金沙山.

그가 황해도 장연長淵에 있을 적에 일찍이 금사산金沙山에 올랐더라네.

大海拍天, 自覺渺小. 莽然生愁, 乃發歎曰:

한 바다가 하늘을 치매, 스스로 너무나 미소微小한 것을 깨닫고는 아마득히 근심에 젖어 탄식하며 말했더라지.

“假令彈丸小島, 饑饉頻年, 風濤黏天, 不通賑貸, 當奈何?

“가령 탄환만한 작은 섬에 기근이 해마다 들고, 바람과 파도가 하늘과 맞닿아 진대賑貸하는 곡식조차 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海寇竊發, 便風擧帆, 逃遁無地, 當奈何?

해구海寇가 몰래 쳐들어 와 바람을 타고 돛을 올려도

달아나 숨을 땅이 없을테니 어찌 한다지?

龍鯨鼉蜃, 緣陸而卵, 噉人如蔗, 當奈何?

용과 고래, 악어와 이무기가 뭍을 에워 알을 낳고서 사탕수수처럼 사람을 짓씹어 먹는다면 어찌 하지?

海濤盪溢, 渰覆邨閭, 當奈何?

넘실대는 파도가 마을 집을 덮쳐 버리면 어떻게 하나?

海水遠移, 一朝斷流, 孤根高峙, 嶷然見底, 當奈何?

바닷물이 멀리로 옮겨가 하루 아침에 물길이 끊어져 외로운 뿌리가 우뚝 솟아 아마득히 바닥을 드러낸다면 어찌 하나?

波齧島根, 潏汨旣久, 土石難支, 隨流而圯, 當奈何?

파도가 섬의 밑둥을 갉아 먹어 오래도록 물에 잠겨 흙과 돌이 견디지 못하고 물결을 따라 무너져 버리면 어떻게 할까?”

其疑慮如此, 不狂而何?

그 의심하고 걱정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미치지 않고 어쩌겠는가?

夜聽其言, 不覺絶倒, 信手錄去.

밤에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포복절도 하고서 붓을 들어 적어 두었더라오.

연암이 처남 이재성李在誠에게 보낸 편지글 〈여중존與仲存〉이다. 이덕무가 장연 바닷가의 모래산인 금사산에 올랐는데, 그 역시 연암이 요동벌을 앞에 두고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 광막한 시계視界에 그만 압도되고 말았다. 그래서 너무도 하잘 것 없는 존재의 나약함을 깨달음은 물론, 아울러 앞 바다에 떠 있는 섬조차도 탄알만하게만 여겨져 공연히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을 걱정하느라 노심초사 했더라는 이야기이다. 연암이 〈호곡장론〉의 말미에서 금사산을 거론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간에 인용된 이덕무의 글은 〈서해여언西海旅言〉이란 기행문에서 따온 것이다.

전문은 너무 길어 실을 수가 없고, 일부분만 읽어 보기로 한다.

卓立沙頂, 西望大海, 海背穹然, 不見其涘. 龍鼉噴濤, 襯天無縫.

사봉沙峰의 꼭대기에 우뚝 서서 서쪽으로 큰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 뒷편은 아마득하여 그 끝이 보이지 않는데, 용과 악어가 파도를 뿜어 하늘과 맞닿은 곳을 알지 못하겠다.

一庭之中, 限之以籬. 籬頭相望, 互謂之隣.

한 뜨락 가운데다 울타리로 경계를 지어, 울타리 가에서 서로 바라보는 것을 이웃이라 부른다.

今余與二生, 立于此岸, 登萊之人, 立于彼岸, 可相望而語然, 一海盈盈, 莫睹莫聆, 隣人之面, 不相知也.

이제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이편 언덕에 서 있고, 중국 등주登州와 내주萊州의 사람은 저편 언덕에 서 있으니, 서로 바라보아 말을 할 수도 있으되, 하나의 바다가 넘실거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니, 이웃 사람의 얼굴을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耳之所不聞, 目之所不見, 足之所不到, 惟心之所馳, 無遠不屆.

귀로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하며 발로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해도, 오직 마음이 내달리는 바는 아무리 멀어도 다다르지 못할 곳이 없다.

此旣知有彼岸, 彼又知有此岸, 海猶一籬耳, 謂之睹且聆焉, 可也.

이편에서는 이미 저편이 있는 줄을 알고, 저편 또한 이편이 있는 줄을 알진대, 바다는 오히려 하나의 울타리일 뿐이니, 보고 또 듣는다고 말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然假令搏扶搖而上九萬里, 此岸彼岸, 一擧目而盡焉, 則一家人耳, 亦何嘗論隔籬之隣哉?

그렇지만 가령 무언가를 붙잡고서 흔들흔들 구만리 상공에 올라가 이편 언덕과 저편 언덕을 한눈에 다 본다면 한 집안 사람일 뿐일 터이니, 또한 어찌 일찍이 울타리로 막혀있는 이웃이라 말하겠는가?

登高望遠, 益覺渺小. 莽然生愁, 不暇自悲, 而悲彼島人,

높이 올라 멀리를 바라보니, 더더욱 내가 잗단 존재임을 깨달아 아마득히 근심이 일어, 스스로를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저 섬에 사는 사람들을 슬퍼하였다.

假令彈丸小地, 饑饉頻年, 風濤黏天, 不通賑貸, 當奈何?

가령 탄환만한 작은 섬에 기근이 해마다 들고, 바람과 파도가 하늘과 맞닿아 진대賑貸하는 곡식조차 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海寇竊發, 便風擧帆, 逃遁無地, 盡被屠戮, 當奈何?

해구海寇가 몰래 쳐들어 와 바람을 타고 돛을 올려도 달아나 숨을 땅이 없어 전부 도륙을 당하게 되면 어찌 한다지?

龍鯨鼉蜃, 緣陸而卵, 惡齒毒尾, 噉人如蔗, 當奈何?

용과 고래, 악어와 이무기가 뭍을 에워 알을 낳고서 사나운 이빨과 독한 꼬리로 사탕수수처럼 사람을 짓씹어 먹는다면 어찌 하지?

海神赫怒, 波濤盪溢, 渰覆村閭, 一滌無遺, 當奈何?

해신海神이 크게 성을 내어 파도가 솟구쳐서 마을 집을 덮쳐 버려 남김없이 쓸어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海水遠移, 一朝斷流, 孤根高峙, 嶷然見底, 當奈何?

바닷물이 멀리로 옮겨가 하루 아침에 물길이 끊어져 외로운 뿌리가 우뚝 솟아 아마득히 바닥을 드러낸다면 어찌 하나?

波嚙島根, 潏汨旣久, 土石難支, 隨流而圯, 當奈何?

파도가 섬의 밑둥을 갉아 먹어 오래도록 물에 잠겨 흙과 돌이 견디지 못하고 물결을 따라 무너져 버리면 어떻게 할까?

客曰: “島人無恙, 而子先危矣.”

객이 말하였다.

“섬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대가 먼저 위태롭게 여기네 그려.”

風之觸矣, 山將移矣, 余迺下立平地, 逍遙而歸.

바람에 부딪치자 산이 장차 옮겨가려 하는지라, 나는 이에 내려와 평지에 서서 소요하다가 돌아왔다.

余東望佛胎長山, 諸環海之山, 而歎曰: “此海中之土也.”

내가 동쪽으로 불태산佛胎山과 장산長山 등 여러 바다에 둘러싸인 산을 바라보다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바다 속의 흙일세 그려.”

客曰: “奚爲也?”

객이 말하였다.

“무슨 말인가?”

“子試穿渠, 其土如阜, 天開巨浸, 拓滓成山.”

“자네 시험삼아 도랑을 파보게. 그 흙이 언덕처럼 쌓이겠지. 하늘이 큰 물길을 열면서 찌꺼기를 모은 것이 산이 된 것일세.”

仍與二生, 入追捕之幕, 進一大白, 澆海遊之胸.

그리고는 두 사람과 함께 뒤쫓아온 막사로 들어가 큰 술잔 하나를 내와 바다에서 노닐던 가슴을 축이었다.

금사산은 황해도 장연 땅 장산곶의 백사장을 말하니, 바람이 실어온 금모래가 산을 이룬 곳이다.

바람에 따라 산의 모습은 백변百變의 장관을 연출한다. 툭 터진 시야로 서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육지의 산들은 바다 속의 흙일 뿐이다. 모래산 위에 올라 가없는 바다를 바라보다 이덕무가 뜬금없이 던지는 말이다. 태청허공太淸虛空에 날아 올라서 본다면, 저 바다란 것도 한 국자의 물에 불과하고, 산이란 것은 개미집이나 한줌 흙더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이켠 언덕에서 저켠 언덕을 바라보면 바닷물이 막히어 서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알래야 알 수도 없지만, 높은 하늘에서 바라본다면 중국이니 조선이니 하는 울타리는 아무 의미가 없고 기실은 한 집안 사람일 뿐이다. 말 그대로 사해동포四海同胞인 것이다. 그러니 중국이니 조선으로 가르고, 노론老論과 남인南人으로 싸우며, 또 양반과 서얼로 울타리를 세우는 분별은 얼마나 허망한 것이냐.

그런 울타리 없는 세상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오직 마음 속으로만 다다를 수 있는 그런 곳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한층 거나해진 흥취를 못이겨, 숙소로 돌아와서도 그들은 큰 사발에다 술을 듬뿍 따라서 답답했던 가슴을 축였던 것이다.

이덕무는 일찍이 그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이렇게 적은 바 있다.

眞情之發, 如古鐵活躍池, 春筍怒出土;

진정眞情을 펴냄은 마치 고철古鐵이 못에서 활발히 뛰고, 봄날 죽순이 성난 듯 땅을 내밀고 나오는 것과 같다.

假情之飾, 如墨塗平滑石, 油泛淸徹水.

거짓 정을 꾸미는 것은 먹을 반반하고 매끄러운 돌에 바르고, 기름이 맑은 물에 뜬 것과 같다.

七情之中, 哀尤直發難欺者也.

칠정 가운데서도 슬픔은 더더욱 곧장 발로되어 속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哀之甚至於哭, 則其至誠不可遏.

슬픔이 심하여 곡하기에 이르면 그 지극한 정성을 막을 수가 없다.

是故眞哭骨中透, 假哭毛上浮. 萬事之眞假, 可類推也.

이런 까닭에 진정에서 나오는 울음은 뼛속으로 스며들고, 거짓 울음은 터럭 위로 떠다니게 되니, 온갖 일의 참과 거짓을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살아가는 일은 답답하고 속터지는 일이다. 봄날 죽순이 땅을 밀고 솟아나듯, 내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겉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울음과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진정에서 나와 뼛속까지 스며드는 그런 울음은 어디에 있는가? 갓난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터뜨리는 첫 소리 같은 음을 어떻게 울 수 있을까? 나의 시, 나의 노래는 그러한 울음이었던가? 슬프지도 않으면서 짐짓 슬픈체 우는 거짓 소리는 아니었던가? 기름이 물에 뜬 것처럼, 반반한 돌 위에 쓴 먹 글씨처럼 스미지는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그런 울음은 아니었던가?

아! 그곳은 어디에 있는가? 요동의 벌판에 있는가, 금강산 비로봉의 꼭대기에 있는가?

아니면 장연의 바닷가에 있는가? 나도 그런 곳에 서서 큰 소리로 한번 울어 보고 싶구나.

한편 추사 김정희는 〈요야遼野〉란 작품에서 연암의 〈호곡장론〉을 읽은 흥취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千秋大哭場 戱喩仍妙詮

譬之初生兒 出世而啼先

천추의 커다란 울음터라니

재미난 그 비유 신묘도 해라.

갓 태어난 핏덩이 어린아이가

세상 나와 우는 것에 비유하였네.



조선시대의 한문학

1.관각파 서거정/1

관각삼걸/1

:호음 정사룡, 소재 노수신, 지천 황정욱. 약칭 호소지(湖소芝).

16세기 한시사의 수준을 가장 높은 시인은 湖소芝로 병칭되는

湖陰 鄭士龍, 穌齋 盧守愼, 芝川 黃廷彧이다.

 

2.방외인문학 김시습 허균/3

김시습(), 1435(세종 17)∼1493(성종 2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2650&cid=46644&categoryId=46644

허균 [許筠] (1569~1618)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7428&cid=46644&categoryId=46644

 

3.사림파 김종직 영남사림/3

김종직,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김인후

 

4.해동의 강서파 /5

용재 이행, 읍취헌 박은

이행()의 시문집.용재집 [容齋集]

박은()의 문집 ≪읍취헌유고 稿

 

5.삼당파시인/5

고죽 최경창, 옥봉 백광훈, 손곡 이달

孤竹 崔慶昌, 玉峯 白光勳, 손곡(蓀谷) 이달(李達)


6.한문사대가 /7

월사 이정구, 상촌 신흠, 계곡 장유, 택당 이식

조선 중기 문장에 뛰어났던 월사 이정구()·상촌 신흠()·계곡 장유()·택당 이식() 등 네 사람.

이들의 호를 한 자씩 따서 월상계택(月象谿澤)

 선조·인조( ) 연간의 4가 상월계택(谿) 곧 상촌 신흠( ), 월사 이정구( ), 계곡 장유(谿 ), 택당 이식( )

 

7.후사가의 한시/8

한국 한시의 개발, 新體文

아정 이덕무,영재 유득공, 초정 박제가,강산 이서구

조선 정조() 때 실학() 관련의 네 학자.

아정·형암 이덕무( 1741~1793),

초정박제가( 1750~1815),

냉재齋  유득공 [柳得恭] (1748~?),

강산(薑山) 척재 이서구( 1754 ~1825) 등에 대하여 라 함.

법고창신의 신체문을 주창하고 실천한 연암 박지원은 지금의 탑골공원에서

대개 서자출신인 이들과 어울림.

 

등왕각시 병서(滕王閣詩 並序)

- 왕발(王勃, 650-676), 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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騰王閣序之序

 

唐高祖子元嬰爲洪州刺史 置此閣 時封騰王 故曰騰王閣*

당 고조 이연(李淵)의 아들이자 이세민의 동생인 원영이 홍주 자사가 되어 이 각을 세웠다. [영휘 4년,653]

그 때에 그가 등왕에 봉해졌기 때문에 등왕각*이라 불렀다.

*악양루, 황학루와 함께 강남의 3대 누각으로 이름높다.

 

咸亨二年 閻伯嶼爲洪州牧 大宴于此 宿命其壻 以誇客

함형 2년(671년)에 염백서가 홍주의 목사가 되어 등왕각을 중수하고 여기서 큰 잔치를 했는데

손님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그 사위 오자장(吳子章)에게 글을 준비해오도록 미리 명하였다.

 

因出紙筆遍請客 莫敢當

종이와 붓을 내어와 손님들에게 두루 청하였으나 감당하지 못하였다.

 

勃在席最少 受之不辭

왕발은 자리에서 가장 어렸으나 사양하지 않고 종이와 붓을 받았다.

 

都督怒 遣吏伺其文

도독이 화가 나서 아전을 보내어 그 글을 엿보게 하였다.

 

輒報 一再報 語益奇 乃瞿然曰 天才也

문득 알리고 다시 알려 왔는데 말이 갈수록 뛰어났고 마침내 놀라 멍하여 "하늘이 낸 재주로구나"하였다.

 

請遂成文 極歡而罷

글을 완성하라 청하고 즐거움이 다하고 모임을 마쳤다.

 

勃字子安少有逸才 高宗召爲博士 因作鬪鷄檄文 高宗怒 謂有交構之漸乃黜

왕발의 자는 자안이고 어려서부터 빼어난 재주가 있어 고종이 불러 박사를 시켰으나,

"투계격문"을 지은 일로 고종이 노하여 이간질의 조짐이 있다 말하고 이에 왕발을 내쳤다. [유배]

 

後到父任所 省侍 道過鍾離 九月九日 會此而作此序

뒤에 아버지의 임지인 교지[베트남]에 부모를 모시기 위해 가다가 종리에 들러 9월 9일 여기에 모여

이 서를 지었다.

 

등왕각시 병서(滕王閣詩 並序)

 

南昌故郡

(남창고군)이오 -

이곳은 옛 남창(南昌)고을 이었는데,

洪都新俯

(홍도신부)라 -

새로 새운 도독부의 소재 홍도(洪都)라네.

 

星分翼軫

(성분익진)하고 -

별자리로는 28수중 익성(翼星)과 진성(軫星)에 해당하는 땅으로,

地接衡廬

(지접형려)하니 -

서쪽은 형산(衡山)에 접해 있고, 북으로는 여산(廬山)에 접해 있고.

 

襟三江而帶五湖

(금삼강이대오호)하고 -

세 강이 옷깃처럼 두르고 다섯 호수가 띠처럼 둘러져 있으며.

*형강(荊江),송강(松江), 절강(浙江)의 세 강이 굽이돌아 흘러가고, 태호(太湖), 파양호(番+邑陽湖),

청초호(靑艸湖), 단양호(丹陽湖), 동정호(洞庭湖)의 다섯 호수가 산허리에 걸린 구름처럼 자리잡고 있다.

控蠻荊而引甌越

(공만형이인구월)이라 -:

이 곳은, 형만을 누르고 구월을 끌어당기는 위치이기도 하다네.

 

物華天寶

(물화천보)니 -

이곳 물산의 정화는 하늘이 내린 보배이니

龍光射牛斗之墟

(용광사우두지허)하고 -

용천검의 광채가 견우성과 북두성 사이를 쏘았고

人傑地靈

(인걸지영)이니 -

인물 걸출하고, 땅은 영기가 있어

徐孺*下陳蕃之榻

(서유하진번지탑)이라 -

서유는 태수인 진번(陳蕃)조차 걸상을 내려주며 맞아들였다네.

*평소 손님을 접대할 줄 모르는 진번(陳蕃)조차도 그 덕을 흠모하여 손수 걸상을 내려 맞이하였다고 하는, 만민의 우러름을

한몸에 받던 서치(徐穉)가 바로 이 땅에서 났다.

 

雄州霧列

(웅주무열)하고 -

경치 좋은 주(州)와 군(郡)이 안개처럼 즐비하고

俊彩星馳

(준채성치)하니 -

문채가 뛰어난 인물들이 밤하늘의 뭇 별처럼 찬란하게 활약하니

 

臺隍枕夷夏之交

(대황침이하지교)하고 -

이 곳 누대(樓臺)와 성 밑의 못은 초(楚)나라와 중화(中華)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賓主盡東南之美

(빈주진동남지미)라 -

이 곳 등왕각에 모인 많은 빈객(賓客)과 주인은 동남의 훌륭한 인물들이라네.

 

都督閻公之雅望

(도독염공지아망)은 -

도독 염공의 고상한 인망을 갖추어

棨戟遙臨

(계극요임)하고 -

계극을 앞세우고[의장용 창을 줄지어 앞세우고] 멀리서 부임해왔다

 

宇文*新州之懿範

(우문신주지의범)은 -

우문은 신임태수로 부임하던 중에

*새로 예주의 태수가 되어 훌륭한 위의(威儀)를 갖추고 임지로 가던 우문균(宇文鈞)이 잠시 수레를

멈추고 오늘 이 등왕각의 잔치에 참가하였다.

襜帷暫駐

(첨유잠주)라 -

휘장을 걷고 잠시수레를 멈추었다

 

十旬休暇

(십순휴가)하니 -

마침 천자께서 내리신 십순의 휴가날이라

勝友如雲

(승우여운)이오 -

훌륭한 벗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千里逢迎

(천리봉영)하니 -

천리 먼 곳의 사람들도 맞아들이니

高朋滿座

(고붕만좌)라 -

인품이 높은 친구들이 자리에 가득했다.

 

騰蛟起鳳

(등교기봉)은 -

솟아오르는 교룡 같고 날아오르는 봉황새 같은 친구들은

孟學士*之詞宗

(은맹학사지사종)이오 -

맹학사는 문장의 대가이고

*孟學士(맹학사)- 猛은 姓, 이름은 모름, 學士는 翰林院 學士. 문인의 최고 직위.

 

紫電淸霜

(자전청상)은 -

자줏빛 번개 같고 차가운 서릿발 같은 지조를 갖춘 인물들은

王將軍之武庫*

(왕장군지무고)라 -

없는 무기가 없는 왕장군의 무기고처럼 유능한 인재들이다.

*王將軍(왕장군)- 문인으로 든 맹학사에 對하여 무인으로 王氏를 든 것인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武庫(무고)- 武器庫에는 없는 것이 없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才智와 武勇을 갖춤이 무기고에 무기를 갖추어 놓은 것 같다는 뜻.

 

家君*作宰

(가군작재)하니 -

우리 아버님이 현령이 되시니

*家君(가군)- 왕발이 자기의 家親인 王福畤(왕복치)를 일컬은 것.

왕발의 <鬪鷄檄文>으로 인하여 交趾(오늘날 월남 북부)令에 좌천됨.

왕발은 高宗 上元 2년에 좌천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뱃길을 따라 남창에 왔다가, 당시 도독이었던

閻伯嶼(염백서)가 베푸는 등왕각 중수식에 참석함.

路出名區

(로출명구)라 -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유명한 이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童子何知

(동자하지)하여 -

어린 제가 무엇을 알아서

躬逢勝餞

(궁봉승전)리라 -

이 훌륭한 잔치를 만났겠습니까?

 

儼驂騑於上路

(엄참비어상로)하여 -

길가에 말 네 필을 위엄있게 치장하여

訪風景於崇阿

(방풍경어숭아)라 -

높은 산으로 풍광을 찾아갔다.

 

臨帝子之長洲

(임제자지장주)하여 - 제자의 땅 장주에 임하니

得仙人之舊館

(득선인지구관)이라 - 선인의 옛 관저가 있었다

 

層巒聳翠

(층만용취)하니 - 중첩한 산봉우리들은 비취빛을 띠고 솟아있고

上出重霄

(상출중소)하고 - 위로 솟아올라 높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飛閣流丹

(비각류단)하니 - 나는 듯한 누각에 단청빛이 흐르고

下臨無地

(하임무지)라 - 아래를 보니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鶴汀鳧渚

(학정부저)는 - 학이 노는 물가와 오리가 노니는 물가는

窮嶋嶼之縈廻

(궁도서지영회)하고 - 섬을 둘러 끝없이 이어져 있고

 

桂殿蘭宮

(계전란궁)은 - 계수나무 궁전과 목란 궁궐이

列岡巒之體勢

(열강만지체세)라-언덕과 산봉우리의 형세를 따라 줄지어 있다

 

披綉綉闥

(피수수달)하고 - 채색한 작은 문을 열고

俯雕甍

(부조맹)하니 - 조각한 용마루를 얹은 누각을 굽어보니

 

山原曠其盈視

(산원광기영시)하고 - 산과 들은 광활하여 그것이 시야에 가득하고

川澤盱其駭矚

(천택우기해촉)이라 - 시내와 못은 광대하여 보는 이의 눈을 놀라게 한다.

 

閭閻撲地

(여염박지)하니 - 촌락이 땅에 늘어서 있어

鍾鳴鼎食之家

(종명정식지가)오 - 종을 울려 모으고 솟을 걸어놓고 식사하는 큰 집안도 있다

 

舸艦迷津

(가함미진)하니 - 큰 배와 전함들이 나루터에서 왔다갔다하니

靑雀黃龍之舳

(청작황룡지축)이라 - 청작과 황룡을 그린 뱃고물이 보인다

 

虹銷雨霽

(홍소우제)하니 - 무지개 사라지고 비도 개니

彩徹雲衢

(채철운구)라 - 햇살이 구름 사이에서 드러난다

 

落霞與孤騖齊飛

(낙하여고무제비)하고 - 저녁노을은 짝 잃은 기러기와 나란히 날고

秋水共長天一色

(추수공장천일색)이라-가을 물빛은 높은 하늘과 같은 색이다.

 

魚舟唱晩

(어주창만)하니 - 고기잡이배에서 저녁에 노래부르니

響窮彭蠡之濱

(향궁팽려지빈)하고 - 그 울림이 팽려의 물가까지 들려오고

 

鴈陣驚寒

(안진경한)하니 - 기러기떼 추위에 놀라

聲斷衡陽之浦

(성단형양지포)라 - 그 소리가 형양의 포구까지 멀어진다

 

遙吟俯暢

(요음부창)하니 - 아득히 읊조리며 구부리며 펴고하니

逸興遄飛

(일흥천비)라 - 편안한 흥취가 제빨리 날듯이 일어난다

 

爽籟發而淸風生

(상뢰발이청풍생)하고 - 상쾌한 소리 들려오니 맑은 바람 일고

纖歌凝而白雲遏

(섬가응이백운알)이라 - 고운 노랫소리 엉기어 흰 구름까지 닿는다

 

睢園綠竹

(휴원록죽)은 - 휴원의 푸른 대나무는

氣凌彭澤之樽

(기릉팽택지준)이오 - 그 기상은 팽택령 도연명의 술잔을 능가하고

*옛날 양(梁)나라의 효왕(孝王)이 만든 휴원처럼 푸른 대나무가 무성한데, 그 푸른 대나무의 향기는,

왕홍(王弘)이 도연명에게 보내 주었던 술의 향기보다 드높다.

 

鄴水朱華

(업수주화)는 - 업수가의 붉은 연꽃은

光照臨川之筆

(광조임천지필)이라 - 그 빛 임천내사의 붓을 비춘다

*등왕각 연못에 핀 연꽃은, 뛰어난 문사 조식이 읊던 업수의 연꽃인 양, 임천의 내사(內史)였던

왕희지의 웅필과 서로 비추어 찬연히 빛을 발한다.

 

四美具

(사미구)하고 - 오늘 이 자리가 네 가지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四美:양신(良辰 좋은 때), 미경(美景 아름다운 경치)

상심(賞心그것을 감상하는 즐거운 마음), 낙사(樂事 즐거운 일)

네 가지 좋은 일,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의 기쁜 날, 더없이 아름다운 등왕각의 경치, 또 그것을

완상(玩賞)하는 그윽한 마음, 그리고 미주(美酒)와 시가(詩歌)에 음악이 어우러진 환락(歡樂)

二難*幷

(이난병)하니 - 두 가지 어려운 것도 함께 갖추었으니

*이난(二難):현주(賢主)와 가빈(佳賓)이 만나는 것.

 

窮睇眄於中天

(궁제면어중천)하고 - 하늘 중천까지 눈길 다 주고

極娛遊於暇日

(극오유어가일)이라 - 한가한 날에 마음껏 즐겨 논다

 

天高地逈

(천고지형)하니 - 하늘은 높고 땅은 아득하니

覺宇宙之無窮

(각우주지무궁)이오 - 우주가 무궁광대함을 깨달았도다.

 

興盡悲來

(흥진비래)하니 -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니

識盈虛之有數

(식영허지유수)라 - 차고 비는 것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 알았도다

 

望長安於日下

(망장안어일하)하고 - 멀리 태양아래 있는 장안을 바라보며

指吳會於雲間

(지오회어운간)이라 -구름 사이에 있는 오군과 회계군을 가리켜본다

 

地勢極而南溟深

(지세극이남명심)하고 - 지세가 다하니 남쪽 바다가 깊고

天柱高而北辰遠

(천주고이북신원)이라 - 하늘기둥은 높고 북극성은 멀리도 하다

 

關山難越

(관산난월)하니 - 관산은 넘기가 어려우니

誰悲失路之人

(수비실로지인)고 - 누가 길 잃은 사람을 슬퍼해 주리오.

 

萍水相逢

(평수상봉)하니 - 부평초와 물이 만났으니

盡是他鄕之客

(진시타향지객)이라 - 이들 모두가 타향의 길손이로다. [잔치가 끝나면 뿔뿔이 흩어진다.]

 

懷帝閽而不見

(회제혼이불견)하니- 제왕의 궁문을 그리워해도 보이지 않으니

奉宣室*以何年

(봉선실이하년)가 - 어느 해라야 선실에서 봉명할까.

*한(漢)나라의 가의(賈誼)는, 한때 참소를 입어 장사(長沙)로 쫓긴 몸이 되었으나, 그의 재주를 아낀

문제(文帝)가 다시 불러 선실(宣室) 궁전에서 봉사하였다고 한다. 나 왕발은, 천자가 계신 궁궐문의

문지기를 만나려 해도 이룰 수 없으니, 어느 세월에 가의처럼 죄가 풀리어 천자를 받들어 모실 것인가.

 

嗚呼

(오호)라 -: 아아

時運不齊

(시운불제)하고 - 시운이 고르지 못하고

命途多舛

(명도다천)하여 - 운명은 어긋나는 일이 많구나

 

馮唐*易老

(풍당이노)하고 - 풍당은 등용되기 전에 늙기 쉬웠고

*馮唐(풍당)은 효도로써 명성을 얻어 한나라 문제 때에 중랑서장(中郞署長)을 역임한 이래 경제 때

까지 중앙 고위관직을 담당하였음. 이후 한 무제가 즉위한 후 풍당을 발탁하려 하였지만 이미 나이

90이 넘은 상태라 부득이 관직에 나가지 못하였고 대신 풍당의 아들 풍수(馮遂)가 기용되었음.

따라서 풍당의 고사는 연로한 신하가 자신의 노쇠함을 비유하는 근거로 자주 이용되었음.

李廣*難封

(이광난봉)이라 - 이광은 공적이 있어도 봉해지기 어려웠다

*이광(李廣)은 문제 때 흉노를 70여 차례나 쳐 큰 공을 쌓았지만, 끝내 제후로 봉(封)해지지 못했다.

 

屈賈誼*於長沙

(굴가의어장사)는 - 굴원과 가의가 장사에 지내야 했음은

*한(漢)나라의 가의(賈誼)는, 한때 참소를 입어 장사(長沙)로 쫓긴 몸이 되었으나, 그의 재주를 아낀

문제(文帝)가 다시 불러 선실(宣室) 궁전에서 봉사하였다고 한다.

非無聖主

(비무성주)요 - 성군이 없었음이 아니었도다

 

竄梁鴻*於海曲

(찬양홍어해곡)은 - 양홍이 바닷가에서 숨어산 것은

豈乏明時

(기핍명시)아 - 어찌 밝은 시대가 부족한 것이겠는가.

*위(魏)나라의 양홍(梁鴻)은 무제에게 중용(重用)되었다가 간신들의 참소를 만나 북해의 양곡(陽曲)

으로 유배되었는데, 그것이 어찌 밝은 세상이 다하여 그랬다고 할 수 있겠는가.

 

所賴君子安貧

(소뢰군자안빈)하고 - 내가 믿는 바, 군자는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達人知命

(달인지명)이라 - 달인은 자기의 천명을 안다

 

老當益壯

(로당익장)하니 - 늙어질수록 더욱 강해진다면

寧知白首之心

(영지백수지심)고 - 어찌 노인의 마음을 알겠는가

 

窮且益堅

(궁차익견)하니 - 가난할수록 더욱 굳세어진다면

不墮靑雲之志

(불타청운지지)라 - 청운의 뜻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酌貪泉而覺爽*

(작탐천이각상)하고 -:탐천의 물을 마셔도 상쾌함을 느끼고

*누구든지 광주(廣州) 땅 탐천(貪泉)의 샘물을 마시면 탐욕이 생긴다고 하지만, 자신의 마음만 곧고

결백하다면 그 물을 마셔도 상쾌함을 느낄 것이다.

處涸轍以猶懽

(처학철이유환)이라 - 곤궁함에 처해도 오히려 기쁠 것이다

 

北海雖賖

(북해수사)나 - 북해가 비록 아득하여도

扶搖可接

(부요가접)이오 -회오리바람을 타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東隅已逝

(동우이서)나 - 젊은 시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桑楡非晩

(상유비만)이라 -노년기는 아직 아니도다

 

孟嘗高潔

(맹상고결)은 - 맹상은 성품이 고결하나

空懷報國之心

(공회보국지심)이오 - 공연히[부질없이] 나라에 보답할 마음만 가졌고

 

阮籍猖狂*

(완적창광)은 - 완적은 미친 듯이 행동하였으니

*진나라 사람으로 자를 사종(嗣宗)이라 하며, 당시 노자, 장자의 허무사상을 즐겨 죽림(竹林)에 모여 청담을 일삼던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이다. 술을 즐겨 예법에 구애받지 아니하므로 창광(猖狂)이라고 하였다.

豈效窮途之哭*

(기효궁도지곡)가 - 어찌 길 끝난 시골에서의 통곡을 본받겠는가

*완적이 때로 혼자서 수레를 타고 인적이 없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세상을 비관하며 통곡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참고] 阮籍 완적

:중국 삼국시대의 위(魏)나라 사상가, 문학자 겸 시인. 많은 기행 중 ‘청안백안(靑眼白眼)’의 고사는 유명하다.

裵楷往弔之 籍散髮箕踞 醉而直視 楷弔喭畢便去

배해왕조지 적산발기거 취이직시 해조언필변거

배해(裵楷)가 가서 그를 조문하자,

완적(阮籍)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는, 취한채로 똑바로 쳐다보았다.

해는 조문하는 애도의 말을 마치자 바로 갔다.

* 箕踞 [기거] 두 다리를 뻗고 앉음. * 喭: 애도할 언. * 便; 곧 변.

 

或問楷 凡弔者 主哭客乃爲禮 籍旣不哭 君何爲哭

혹문해 범조자 주곡객내위례 적기불곡 군하위곡

혹자가 해에게 묻기를

“무릇 조문하는 자는 상주가 곡하면 손님은 이에 예를 하는 법인데 적이 이미 곡하지도 않고 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곡을 하였는가?” 하였다.

 

楷曰 阮籍旣方外之士 故不崇禮典 我俗中之士 故以軌儀自居

해왈 완적기방외지사 고불숭례전 아속중지사 고이궤의자거

해가 말하기를 “완적은 이미 도가의 선비인 까닭에 예전을 숭상하지 않는다.

나는 속중의 선비인 까닭에 예절을 좇아 스스로 거처한다.” 하였다.

* 方外 [방외] 유가(儒家)에서, 불가(佛家)나 도가(道家)를 이르는 말.

* 禮典 [예전] 1 예의에 관한 법칙. 2 <책명>육전(六典)의 하나. 예조(禮曹)의 예악(禮樂), 제사(祭祀), 연향(宴享), 조빙(朝聘),

학교(學校), 과거(科擧) 따위의 여섯 가지 사무를 규정한 책이다.

* 軌: 좇을 궤. * 儀: 예절 의.

 

時人歎爲兩得 籍又能爲靑白眼 見禮俗之士 以白眼對之

시인탄위양득 적우능위청백안 견례속지사 이백안대지

당시의 사람들은 양득하는 것을 탄식하였으며, 적도 또한 청백안 할 수 있었으니,

예속의 선비를 보면 백안으로써 그를 대하였다.

* 兩得 [양득] =일거양득 [一擧兩得] 한 가지 일을 하여 두 가지 이익을 얻음. ≒양득·일거이득.

* 靑眼 [청안] 좋은 마음으로 남을 보는 눈.

* 白眼 [백안] 1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보는 눈.

* 禮俗 [예속] 예의범절에 관한 풍속.

 

及嵇喜來弔 籍作白眼 喜不懌而退

급혜희내조 적작백안 희불역이퇴

혜희(嵇喜)가 조문을 와서 이르자, 적이 백안을 지으니, 희는 기뻐하지 않고 물러났다.

* 懌: 기뻐할 역.

 

喜弟康聞之 乃齎酒挾琴造焉 籍大悅 乃見靑眼

희제강문지 내재주협금조언 적대열 내견청안

희의 아우 강이 그것을 듣고, 곧 술을 지니고 거문고를 끼고 와 이에 벌여놓자,

적은 크게 기뻐하며 비로소 청안을 보였다.

 

勃(발)은 三尺微命(삼척미명)이오 -

왕발은 삼척 작은 키의 미천한 사람으로

一介書生

(일개서생)이라 - 일개 서생에 지나지 않는지라

 

無路請纓

(무로청영)하니 -밧줄을 청할 길 없으니, 곧 벼슬을 청할 길 하나 없으니

終軍*之弱冠

(등종군지약관)이오 - 종군의 약관 때의 일을 기다려도 보고

*한(漢) 나라 때 남월왕(南越王)을 입조(入朝)하게 하기 위해 남월로 사신을 보낼 적에 종군(終軍)

자청하기를 “바라건대 긴 끈을 주옵소서. 제가 반드시 남월왕을 묶어 궐하에 끌어오겠습니다.” 하였다.

 

有懷投筆

(유회투필)하니 - 붓을 던질까 생각해 보았으니

宗慤*之長風

(모종각지장풍)이라 - 종각의 장풍을 부러워도 했다 .

*승풍파랑(乘風破浪):중국 남북조시대 송나라 장수였던 종각(宗慤)이 위기 때마다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우며 난관을 헤쳐 나가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舍簪笏於百齡

(사잠홀어백령)하고 - 백 살이 될 때까지 벼슬할 생각 버리고

奉晨昏於萬里

(봉신혼어만리)라 - 만리 먼 곳에 계신 부모님 안부를 받들리라

 

非謝家之寶樹

(비사가지보수)나 - 나는 사씨 집안에서 받드는 보배로운 나무 같은 사현은 아니지만

*사가(謝家)는 진(晋)나라 사현(謝玄). 숙부 사안(謝安)이 마치 보옥을 귀중히 여기듯 사현의 기량을

귀중하게 여기던 차 하루는 그에게 그의 염원하는 바를 물었다. 이에 현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비유하자면 영지와 난초 등 향기로운 옥수(玉樹)를 뜰 안 층계 아래 나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곧 훌륭한 자제가 나기를 원하는 것이니, 이것은 사씨 집안의 보수(寶樹)라고 할 만한 현능한 자제를

가리킨 말이다.

接孟氏之芳隣

(접맹씨지방린)이라 - 맹자처럼 좋은 이웃은 만나리라

 

他日趨庭

(타일추정)하야 - 훗날 뜰을 종종걸음으로 지날 때

叨陪鯉對*

(도배리대)라 - 공자의 아들인 리(鯉)가 배운 것처럼 나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이(鯉)는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의 이름, 대(對)는 대답이란 말이다. 이 대문은「논어」계씨편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근거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물었다. "그대는 선생님의 아들이라 특별히 배운 것이

있겠습니다"고. 이때 백어가 대답하였다. "특별히 배운 것이라곤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 아버님께서

혼자 뜰에 계실 때 종종걸음으로 뜰 앞을 지나가려 하자 아버님께서 ‘「시경」과 「예기」를 배웠느

냐?’고 물으셨습니다.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고 여쭈었더니, 아버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 「시경」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 누구와도 말을 할 수가 없고, 「예기」를 배우지 않는다면

사람 노릇을 할 수가 없다’고. 그래서 돌아와 「시경」과 「예기」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今晨捧袂

(금신봉몌)하니 - 오늘 소매를 받쳐 들고

喜托龍門*

(희탁용문)이라 - 용문에 기탁하니 기쁘도다

*託龍門(탁룡문)- 후한(後漢)의 이응(李膺)이 성품이 고결한 것으로 이름이 높으며 또 스스로 높은 체

뽐내어 웬만한 사람과는 사귀지를 않았다. 그래서 당시 선비들은 모두가 이응의 접대를 받는 것을 퍽

영광스럽게 여겨 이것을 일러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하였다.

용문이란 황하(黃河)의 상소에 있는 급류로

어쩌다 큰 잉어가 여기를 올라가게 되면 곧 용으로 화한다고 한다.

여기서 뜻을 얻어 크게 영달함을

등용문에 비유하게 된 것이다.

이 대문은 염백서(閻伯嶼)를 비유하고, 발 자신을 용문에 오른 잉어에 비유하여

그날, 등왕각의 연회에 참석하여 백서를 만나게 됨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그지없이 기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楊意*不逢

(양의불봉)하니 - 양득의를 만나지 못하여

*楊意(양의)-漢나라 무제때 구감을 지낸 양득의(楊得意)를 말함.

 

撫凌雲*而自惜

(무릉운이자석)이오- 능운부를 어루만지며 스스로 애석해한다

*凌雲(능운)-한나라 무제 때, 사마상여가 지은 대인부(大人賦-凌雲之賦)를 말함. 凌雲은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 또는 속세를 떠난다는 뜻.

 

[통석]今晨捧袂~ 撫凌雲*而自惜

나는 오늘, 의관을 갖추고 이 큰 잔치에 참석하여 주인 염공(閻公)을 만나뵙게 되니,

염공은 다름아닌 용문(龍門)이요 나는 용문에 오른 잉어라,

영광스럽고 기쁜 마음 한량없다.

한(漢)의 무제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지부(子虛之賦)>를 읽고 감탄하여

상여를 그리워하자, 무제를 모시던 양득의(楊得意)가 상여를 추천하였다 하는데,

나는 이제까지 양득의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

부질없이 상여의 <능운지부(凌雲之賦)>를 읊조리며 자신의 불우함을 애석히 여겨 왔을 뿐이다.

 

鍾期*旣遇

(종기기우)하니 - 백아(伯牙)는 종자기를 이미 만났으니

*鍾期(종기)-춘추시대 楚나라 사람 鍾子期를 말함.

奏流水以何慙

(주류수이하참)고- 흐르는 강물을 연주하여 무엇이 부끄러운가

*奏流水(주유수)-흐르는 강물을 연주하다. 伯牙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가,

"양양(洋洋)한 강하(江河)같구나."라고 말했다고 함.

 

嗚呼

(오호)라 : 아아

勝地不常

(승지불상)이오 - 명승지는 항상 있지 않고

盛筵難再

(성연난재)니 - 성대한 잔치는 다시 만나기 어렵나니

 

蘭亭*已矣

(난정이의)오 - 난정은 이이 버려졌고

*蘭亭(난정)-절강성 소흥(紹興) 서남쪽에 있는 정자이름. 晉나라의 王羲之가 명사들과 모여 주연을

베풀고 시를 짓던 곳.

梓澤*丘墟

(재택구허)라 - 재택은 페허가 되었도다.

*梓澤(재택)-晉나라의 石崇이 환락을 누리던 金谷園의 별명.

李白의 〈春夜宴桃李園序〉에도 언급되었다. 丘墟- 폐허. 빈터.

*진(晉)의 왕희지가 명사들과 더불어 주연(酒宴)을 베풀고 시를 짓던 난정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고,

진(晉)의 석숭(石崇)이 벌주(罰酒) 삼배(三杯)를 돌리며 환락을 누리던 재택(梓澤)의 금곡원(金谷園)

또한 폐허가 된 지 오래이니, 오늘날 등왕각만한 곳을 다시 또 어디서 찾아볼 수 있으랴.

 

臨別贈言

(임별증언)하니 - 이별에 임하여 말씀을 올림은

幸承恩於偉餞

(행승은어위전)이오 - 다행히 큰 잔치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오

 

登高作賦

(등고작부)하니 - 높은 곳에 올라 부를 짓는 것,

是所望於群公

(시소망어군공)이라 - 이것이 여러 공들에게 바라는 바이니

 

敢竭鄙誠

(감갈비성)하여 - 감히 저의 보잘것없는 정성을 다하여

恭疎短引

(공소단인)이라 - 공손히 짧게 지으니

*恭疏短引(공소단인)-삼가 짧은 서문(序文)을 짓다. 引은 서문.

 

一言均賦

(일언균부)하니 - 한 편의 시부를 지어

四韻俱成

(사운구성)이라 - 넉 자 韻[8구]으로 서문과 함께 아래 시를 읊는도다.

 

 

 

滕王高閣臨江渚

(등왕고각임강저)하니 - 등왕각 높은 누각 강가에 서 있는데

 

佩玉鳴鑾罷歌舞

(패옥명란파가무)라 - 패옥의 방울 소리에 가무가 끝나가네.

*佩玉(패옥)-사대부가 허리에 차는 옥. 걸을 때마다 서로 부딪혀 소리가 난다.

鳴鑾(명란)- 수레를 끄는 말의 고삐에 다는 방울 소리.

畵棟*朝飛南浦雲

(화동조비남포운)이오 -단청된 용마루에 아침 구름 날아오르고

*畵棟(화동)-아름다운 집의 용마루.

朱簾暮捲西山雨

(주렴모권서산우)라 - 붉은 주렴은 저녁에 서산의 비를 거두네.

 

閑雲潭影日悠悠

(한운담영일유유)하니 - 한가한 구름 못에 비치고 맑은 해 아득한데,

 

物換星移*度幾秋

(물환성이도기추)아 - 해 바뀌고 별 지니 몇 해가 지났는가

*星移(성이)-별의 위치가 옮겨지다. 곧 세월이 지나감을 말함.

閣中帝子今何在

(각중제자금하재)오 - 누각 세운 주인장은 지금 어디 있는가

 

檻外長江空自流

(함외장강공자류)라 - 난간 밖 긴 강물만 속절없이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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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발(王勃), 등왕각시서(滕王閣詩序)

http://blog.naver.com/brucelee55/150078052385 등왕각서_왕발(滕王閣序_王勃)/고문진보 후집 《滕王閣序》作者 王勃 雕像 왕발王勃(650 - 677... blog.naver.com 《滕王閣序》作者 王勃 雕像 王勃_ 滕王閣詩序 왕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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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왕각서_왕발(滕王閣序_王勃)/고문진보 후집

          《滕王閣序》作者 王勃 雕像     왕발王勃(650 -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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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滕王閣序》作者 王勃 雕像

 

 

王勃_ 滕王閣詩序

 

왕발王勃(650 - 677,字 子安)

찬란한 唐詩 선구자의 한 사람. 六朝의 탐미적인 유풍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그의 樂府體의

짧은 시는 소박한 가운데 시인의 감정을 잘 나타낸 걸작들이다.

산서성 河津 사람으로 여섯 살 때 글을 지었고, 스무 살이 되기 전에 進士가 되었다.

高宗(649-683 재위) 李治의 아들, 패왕沛王에게 총애를 받았으나 鬪鷄의 격문을 쓴 것이 여러 皇子

들의 사이를 이간시킨다 하여 쫓겨나 사천성 성도에서 방랑했다.

뒤에 교지交趾(베트남 북부)에 가 있는 아버지(福疇)를 찾아가다가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

그 도중 강서성 남창에서 지은 <등왕각서>(秋日登洪府滕王閣餞別序)와 그 일화는 서른도 채 못되어

죽은 시인의 천재성을 잘 보여준다.

 

 

원제목은 추일등홍부 등왕각전 별서(秋日騰洪符騰王閣錢別序)이며, 일반적으로 등왕각시서(騰王閣

詩序)라고 지칭한다. 등왕각은 그 옛터가 지금의 강서(江西) 남창시(南昌市)에 있다.

당 고조(高祖)의 아들 이원영이 등왕으로 봉해져 홍주 도독으로 지낼 때 이 누각을 세웠기 때문에

등왕각이라 부른다.

당 고종 상원 2년(675) 중양절(9월9일)에 홍주 도독 염공이 등왕각에서 주연을 열고 손님들을 청했

는데 마침 왕발이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남창을 지나다가 이 연회에 참석하여 즉석에서 시와 서를

지었다.

전반부는 홍주 일대의 "번화하고 풍요로우며 인물은 뛰어나고 지세는 신령스러운(物華天寶, 人桀地靈)"

형세와 등왕각의 수려하고 웅장한 아름다움 및 연회의 성황을 그려냈다.

후반부에서는 타향에서 객으로 지내며 품은 뜻을 펼쳐 볼 수 없음을 탄식한다.

경치 묘사와 서정적 묘사를 결합시켜 단숨에 지어내어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형식은 사육변려체(四六騈儷體)이며, 대구가 뛰어나고 음운도 잘 맞다.

 

 

騰王閣序之序

 

唐高祖子元嬰爲洪州刺史 置此閣 時封騰王 故曰騰王閣

당 고조(李淵)의 아들 원영이 홍주 자사가 되어 이 각을 세웠다.

그 때에 등왕에 봉해졌기 때문에 등왕각이라 불렀다.

 

咸亨二年 閻伯嶼爲洪州牧 大宴于此 宿命其壻 以誇客

함형 2년(671년)에 염백서가 홍주의 목사가 되어 여기서 큰 잔치를 했는데 손님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그 사위(吳子章)에게 글을 준비해오도록 미리 명하였다.

 

因出紙筆遍請客 莫敢當

종이와 붓을 내어와 손님들에게 두루 청하였으나 감당하지 못하였다.

 

勃在席最少 受之不辭

왕발은 자리에서 가장 어렸으나 사양하지 않고 종이와 붓을 받았다.

 

都督怒 遣吏伺其文

도독이 화가 나서 아전을 보내어 그 글을 엿보게 하였다.

 

輒報 一再報 語益奇 乃瞿然曰 天才也

문득 알리고 다시 알려 왔는데 말이 갈수록 뛰어났고

마침내 놀라 멍하여 "하늘이 낸 재주로구나"하였다.

 

請遂成文 極歡而罷

글을 완성하라 청하고 즐거움이 다하고 모임을 마쳤다.

 

勃字子安少有逸才 高宗召爲博士 因作鬪鷄檄文 高宗怒 謂有交構之漸乃黜

왕발의 자는 자안이고 어려서부터 빼어난 재주가 있어 고종이 불러 박사를 시켰으나

"투계격문"을 지은 일로 고종이 노하여 이간질의 조짐이 있다 말하고 이에 왕발을 내쳤다.

 

後到父任所 省侍 道過鍾離 九月九日 會此而作此序

뒤에 아버지의 임지에 부모를 모시기 위해 가다가 종리에 들러

9월 9일 여기에 모여 이 서를 지었다.

 

- 閻 : 마을 문(里門) 염. 閭와 同. 里(25호가 사는 마을)의 문을 말함.

閭閻(일반 백성). 여염집 : 일반 백성들이 사는 집.

倚閭之望 : 마을 문에 기대어 자식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

- 宿命 : 사전에 미리 명령함

- 咸亨 : 당 高宗(3대 李治)의 연호로 671~673년 사이에 썼다.

- 瞿然 : 놀라서 멍한 모양

- 交構 : 이간질(서로 얽음)

- 漸 : 물에 스밀 점. 즉 조짐

- 省侍 : 省親(부모 안부를 살핌) + 侍奉(부모를 받들어 모심)

 

 

 
滕王閣詩序(등왕각시서)
      -(唐)王勃(왕발)



南昌故郡(남창고군)이오

洪都新府(홍도신부)라.

옛날에 남창군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홍도부가 되었다.

星分翼軫(성분익진)하고 地接衡廬(지접형려)하니

별자리로는 翼星과 軫星에 해당되며, 땅은 衡山과 廬山에 접해 있다.

襟三江而帶五湖(금상강이대오호)하고 控蠻荊而引甌越(공만형이인구월)이라.

세 강이 옷깃처럼 두르고 있으며, 다섯 호수가 띠처럼 둘러져 있다.

또한 蠻荊을 억누르고, 甌越을 끌어 당기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物華天寶(물화천보)니 龍光射牛斗之墟(용광사우두지허)하고 人傑地靈(인걸지령)이니

이 곳 物産의 정화는 하늘이 내린 보배이니, 龍泉劍의 광채가 견우성과 북두성 사이를 쏘았었고,

이곳 인물들은 걸출하고 땅은 靈氣가 있어,

徐孺下陳蕃之榻(서유하진번지탑)이라.

徐孺는 태수인 陳蕃이 걸상을 내려주며 맞이하게 하였다.

雄州霧列(웅주무열)하고 俊采星馳(준채성치)하니 隍枕夷夏之交(대황침이하지교)하고

경치 좋은 고을들이 안개처럼 깔려 있고,

뛰어나게 빛을 발하는 인물들이 유성처럼 활약한다.

이 곳의 樓臺와 해자는 이민족과 중국 사이에 임해 있고,

賓主盡東南之美(빈주진동남지미)라.

이 곳에 모이는 손님과 주인은 모두 東南의 훌륭한 인물들이다.

都督閻公之雅望(도독염공지아망)은 棨戟遙臨(계극요림)하고

이 곳의 도독 염공은 고상한 인망을 갖춘 인물로 계극을 앞세우고 멀리서 부임해 왔고,

宇文新州之懿范(우문신주지의범)은 襜帷暫駐(첨유잠주)라.

본받을 만한 威儀를 갖춘우문은 신임태수로 부임해 가던 도중, 이 곳에 잠시 수레를 멈추었다.

十旬休暇(십순휴가)하니 勝友如雲(등우여운)이오 千里逢迎(천리봉영)하니 高朋滿座(고붕만좌)라.

마침 십순의 휴가날이라, 훌륭한 벗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고,

천리 먼 곳에 있는 사람까지도 맞이하여 대접하니, 고귀한 벗들이 자리에 가득하다.

騰蛟起鳳(등교기봉)은 孟學士之詞宗(맹학사지사종)이오

솟아 오르는 蛟龍같고 날아오르는 鳳凰같은 문장을 쓰는 맹학사는 문장의 대가이고,

紫電青霜(자전청상)은 王將軍之武庫(왕장군지무고)라.

자줏빛 번개같고 차가운 서릿발같은 지조를 갖춘 인물들이 왕장군의 무기고처럼 널려 있다.

家君作宰(가군작재)하니 路出名區(로출명구)라.

童子何知(동자하지)오? 躬逢勝餞(궁봉승전)이라.

나의 부친께서 현령으로 계신 곳으로 가던 길에 유명한 이 곳을 지나가게 되었으니,

어린 내가 무엇을 안다고 이 훌륭한 송별잔치에 직접 참석했겠는가!


時維九月(시유구월)이오
序屬三秋(서속삼추)라.

때는 9월, 계절은 한 가을이었다.

潦水盡而寒潭清(료수진이한담청)하고 煙光凝而暮山紫(연광응이모산자)라.

길바닥의 빗물은 다 말라 버리고, 찬 연못물은 맑으며,

안개와 햇빛이 한데 엉기어, 해질 녘 산은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儼驂騑於上路(엄참비어상로)하여 訪風景於崇阿(방풍경어숭하)라.

네 마리 말들을 위엄있게 치장하고 수레를 달려 높은 언덕으로 풍경을 찾아간다.

臨帝子之長洲(림제자지장주)하여 得仙人之舊館(득선인지구관)이라.

帝子가 누각을 세운 長洲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우에 신선의 舊館이 있다.

層巒聳翠(층만용취)하니 上出重霄(상출중소)하고

飛閣流丹(비각류단)하니 下臨無地(하림무지)라.

중첩한 산들이 비취빛을 띠고 솟아 높이 하늘을 찌르고,

높은 누각의 단청 빛이 흐르는 강물에 붉게 비치며, 아래로 깊은 강물에 임해 있다.

鶴汀鳧渚(학정부저)는 窮島嶼之縈回(궁도서지영회)하고

학이 노는 물가와 오리가 노는 모래톱이 섬을 빙 둘러 있고,

桂殿蘭宮(계전란궁)은 列岡巒之體勢(렬강만지체세)라

桂樹로 지은 궁전과 木蘭으로 지은 대궐이 언덕과 산의 형세를 따라 줄지어 있다.

披繡闥(피수달)하고 俯雕甍(부조맹)하니 山原曠其盈視(산원광기영시)하고

채색한 작은 문을 열고 조각한 용마루 얹은 누각 위에서 내려다보니 산과 들은 광활하여 시야에 가득 차고,

川澤盱其駭矚(천택우기해촉)이라.

시내와 못을 바라보니 그 광대함이 보는 이의 눈을 놀라게 한다.

閭閻撲地(려염박지)하니 鍾鳴鼎食之家(종명정식지가)오

촌락이 지상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데, 종을 쳐서 식구들을 모아 솥을 늘어 놓고 식사하는 大家들도 있다.

舸艦迷津(가함미진)하니 青雀黃龍之舳(청작황룡지유)이라.

큰 배와 전함들이 나루에서 정박할 곳을 찾아 서성거리는데 뱃머리에는 청작과 황룡이 그려져 있다.

虹銷雨霽(홍소우제)하니 彩徹雲衢(채철운구)라.

무지개는 사라지고 비가 개어 햇빛이 허공에서 비치고 있다.

落霞與孤鶩齊飛(락하여고목제비)하고 秋水共長天一色(추수공장천일색)이라.

저녁놀은 짝 잃은 따오기와 나란히 떠 있고, 가을 강물은 넓은 하늘과 한 색이다.

漁舟唱晚(어주창만)하니 響窮彭蠡之濱(향궁팽려지빈)하고

고기잡이 배에서 저물녘에 노래부르니 그 울림이 팽려의 물가에까지 들리고,

雁陣驚寒(안진경한)하니 聲斷衡陽之浦(성단형양지포)라.

기러기떼는 추위에 놀라 소리가 형양의 포구까지 울린다.


遙吟俯暢(요음부창)하니
逸興遄飛(일흥천비)라.

곳을 바라보며 읊조리고, 고개 숙이자 마음이 시원해지니 뛰어난 흥취가 재빨리 날아 오른다.

爽籟發而清風生(상뢰발이청풍생)하고 纖歌凝而白雲遏(섬가응이백운알)이라.

상쾌하게 퉁소소리 일어나니 맑은 바람이 일고, 고운 노래소리 엉기어 흰 구름에까지 다다른다.

睢園綠竹(휴원록죽)은 氣凌彭澤之樽(기릉팽택지준)이오

휴원의 푸른 대나무는 그 기상이 팽택현령의 술잔을 능가하고,

鄴水朱華(업수주화)는 光照臨川之筆(광조림천지필)이라.

鄴水가의 붉은 연꽃처럼 빛이 臨川內史의 붓에 비친다.

四美具(사미구)하고 二難並(이난병)하니 窮睇眄於中天(궁제면어중천)하고

오늘 이 자리에는 네 가지 아름다움을 모두 갖추었고,

두 가지 어려운 것도 함께 갖추었으니, 저 먼 하늘 눈길 닿는 곳 까지 바라보며

極娛遊於暇日(극오유어가일)이라.

이 한가한 날을 마음껏 즐긴다.

天高地迥(천고지형)하니 覺宇宙之無窮(각우주지무궁)이오

하늘은 높고 땅은 아득하니 이 우주가 무궁함을 깨닫고,

興盡悲來(흥진비래)하니 識盈虛之有數(식영허지유수)라.

기쁨이 다하면 슬픔이 오니 성쇠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望長安於日下(망장안어일하)하고 指吳會於雲間(지오회어운간)이라.

저 멀리 태양 아래 있는 장안을 바라보며, 구름 사이로 오회를 가리킨다.

地勢極而南溟深(지세극이남명심)하고 天柱高而北辰遠(천주고이부긴원)이라.

地勢가 다한 곳에 있는 南海는 깊고 天柱는 높으며 북극성은 멀리 보인다.

關山難越(관산난월)하니 誰悲失路之人(수비실로지인)고?

關山은 넘기 어렵다는데 그 누가 길 잃은 자를 슬퍼해주겠는가?

萍水相逢(평수상봉)하니 盡是他鄉之客(진시타향지객)이라.

부평초와 물이 서로 만난듯 하나 모두가 우연히 만난 타향의 길손들이네.

懷帝閽而不見(회제혼이불견)하니 奉宣室以何年(봉선실이하년)가?

帝王의 궁문을 그리워해도 보이지 않으니, 宣室에서 奉命할 날이 언제일까?

嗟乎(차호)라!時運不濟(시운부제)하고 命途多舛(명도다천)하여

아아! 時運이 고르지 못하고 운명은 어긋나는 일이 많구나.

馮唐易老(풍당이로)하고 李廣難封(이광난봉)이라.

馮唐은 등용되기 전에 이미 늙어버렸고, 李廣은 공적이 있어도 封해지기 어려웠으며,

屈賈誼於長沙(굴가의어장사)는 非無聖主(비무성주)요

賈誼는 長沙에서 실의한 채 지냈는데, 이것은 聖王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네.

竄梁鴻於海曲(찬양홍어해곡)은 豈乏明時(기핍명시)아?

양곡(梁鵠)이 바닷가에 숨어 산 것이 어찌 태평한 세상이 아니어서 그랬겠는가?

所賴君子安貧(소뢰군자안빈)하고 達人知命(달인지명)이라.

내가 믿는 바로는 君子는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고, 達人은 자신의 운명을 안다.

老當益壯(로당익장)하니 寧知白首之心(녕지백수지심)고?

늙을수록 더욱 강해진다면 어찌 노인의 마음을 알겠는가!

窮且益堅(궁의익견)하니 不墜青雲之志(불추청운지지)라.

가난할수록 더욱 굳건해진다면 靑雲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酌貪泉而覺爽(작탐천이각상)하고 處涸轍以猶懽(처학철이유환)이라.

貪泉의 물을 마셔도 상쾌하기만 하고, 곤궁하게 살아도 오히려 기쁘기만 하다.

北海雖賒(북해수사)나 扶搖可接(부요가접)이오

北海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회오리 바람을 타고 가면 이를 수 있다.

東隅已逝(동우이서)나 桑榆非晚(상유비만)이라.

젊은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노년기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孟嘗高潔(맹상고결)은 空懷報國之心(공회보국지심)이오.

孟嘗은 성품이 고결하였으나 부질없이 나라에 보답할 마음만 가졌었고

阮籍倡狂(완적창광)은 豈效窮途之哭(기효궁도지곡)가!

阮籍은 미친듯이 행동하여 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통곡했다는데 어찌 이를 본받겠는가!

勃(발)은 三尺微命(삼척미명)이오 一介書生(일개서생)이라.

나 왕발은 보잘 것 없는 목숨을 지닌 천한 일개 서생에 지나지 않아서

無路請纓(무로청영)하니 等終軍之弱冠(등종군지약관)이오

밧줄을 청할 길 없으니 약관의 終軍같은 사람을 기다려도 보고,

有懷投筆(유회투필)하니 慕宗愨之長風(모종각지장풍)이라.

붓을 던질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宗慤의 長風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舍簪笏於百齡(사잠홀어백령)하고 奉晨昏於萬里(봉신혼어만리)라.

백 살이 될 때까지 평생 벼슬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천만 리 먼 곳에 계신 부친께로 가서 아침 저녁 봉양해 드려야겠다.

非謝家之寶樹(비사가지보수)나 接孟氏之芳鄰(접맹씨지방린)이라.

나는 謝씨 집안에서 바라던 보배로운 나무는 아니지만, 맹자처럼 좋은 이웃을 만나야겠다.

他日趨庭(타일추정)하여 叨陪鯉對(도배리대)라.

훗날 정원을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면서 鯉가 부친인 공자에게 배운 것처럼 나도 부친의 가르침을 외람되이 받고자 한다.

今晨捧袂(금신봉몌)하니 喜托龍門(희탁룡문)이라.

오늘 소매를 받쳐 들고, 龍門에 기탁하니 그지없이 기쁘다.

楊意不逢(양의불봉)하니 撫凌雲而自惜(무릉운이자석)이오

楊意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凌雲賦를 읊으면서 홀로 애석해하지만,

鍾期既遇(종기기우)하니 奏流水以何慚(주류수이하참)고?

鍾子期같은 사람은 이미 만났으니 흐르는 강물을 연주한다고 해도 무엇이 부끄럽겠는가!

鳴呼(오호)라! 勝地不常(승지불상)이오 盛筵難再(성연난재)니

아아! 명승지는 흔하지 않고, 성대한 잔치자리에는 다시 참석하기 어렵다.

亭已矣(란정이의)오 梓澤丘墟(재택구허)라.

蘭亭은 버려진 채로 있고 梓澤은 폐허가 되었다.

臨別贈言(림별증언)하니 幸承恩於偉餞(행승은어위전)이오

이별에 임하여 이 글을 지어 올리게 된 것은 요행히 이 성대한 송별잔치에 참석하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登高作賦(등고작부)하니 是所望於群公(시소망어군공)이라

登高하였으면 賦를 지으라고 여러 공들에게 부탁하니,

敢竭鄙誠(감갈비성)하여 恭疏短引(공소단인)이라.

내가 감히 보잘 것 없는 정성을 다하여 삼가 짧은 서문을 짓고, 一言均賦(일언균부)하니 四韻俱成(사운구성)이라.한 마디 부를 지어서 四韻으로 서문과 함께 완성하였다.

 

滕王高閣臨江渚(등왕고각림강저)하니佩玉鳴鑾罷歌舞(패옥명란파가무)라.

등왕의 높은 누각 강 가에 임해 있는데 패옥과 명란을 울리던 가무도 다 끝났구나!

 

畫棟朝飛南浦雲(화동조비남포운)이오 朱簾暮捲西山雨(주렴모권서산우)라.

아름다운 누각 용마루 위에 아침에는 남포의 구름 날고,붉은 발 저녁 때 걷어 올리면 서산에 비 내리네.

 

閑雲潭影日悠悠(한운담영일유유)하니 物換星移度幾秋(물환성이도기추)아?

한가로운 구름 연못에 잠기고, 해는 유유히 지나가는데,만물이 바뀌고 별자리 옮겨 가니 몇 해가 지났는가?

 

閣中帝子今何在(각중제자금하재)오?檻外長江空自流(함외장강공자류)라.

누각 안에 있던 帝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난간 밖의 긴 강물은 무심히 홀로 흘러 가네.

 

출처 : 신완역 고문진보 후집/김학주 편저/명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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